![[완전한 사랑] (10)예수회](//cpbc.co.kr/CMS/newspaper/2015/03/rc/560619_1.0_titleImage_1.jpg)
[완전한 사랑] (10)예수회신자들 영성생활이 깊이 있고 풍요롭도록 도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예수회 공동체를 방문해 정제천 관구장 신부와 함께한 모습. 예수회 제공 새 학기를 맞은 서강대(서울 마포구 신수동) 교정은 싱그러웠다. 봄볕은 따스하고, 오가는 대학생들의 발걸음에는 활기가 넘쳤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지….예수회센터를 찾아가면서 일부러 서강대를 가로지른 것은 잠시나마 캠퍼스의 기운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예수회 한국관구 본부와 예수회센터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서강대와 담을 맞대고 있다. 캠퍼스 구내나 마찬가지다. 너른 캠퍼스를 곁에 두고 젊은이들과 늘 함께하는 수도회라는 점이 무척 부러웠다.예수회는 특별히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신자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친숙한 수도회가 됐다. 종교를 넘어 모든 이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름 아닌 예수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방한 당시 교황 통역 겸 수행비서 역할을 했던 이도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다. 교황은 방한 기간 중 비공식 일정으로 예수회 공동체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예수회센터는 예수회 사도직 활동의 큰 축인 교육과 영성, 그리고 사회사도직을 한데 아우르는 다목적 공간이다. 일반 신자를 위한 또 하나의 대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봄(3∼5월)과 가을(9∼11월)로 나눠 진행되는 강좌 프로그램이다. 이번 봄 학기에는 △영적 식별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영성과 철학 상담 △성경 대학 △성경과 영성 △영어 성경 나눔 △영신수련 정기 강좌 △영성의 향기 △몸 신학 등 예수회 이냐시오 영성을 기초로 한 17개 강좌가 개설된다. 센터가 이번 학기 가장 역점을 두는 강좌는 ‘교황 프란치스코 영성 강좌’다. 17일에 시작해 9주간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마련되는 강좌에는 정제천 신부와 유경촌(서울대교구) 주교 등이 강사로 나서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교황의 영성을 다각도로 조명할 예정이다. 지난 가을 처음 개설했는데, 프란치스코 효과에 힘입어 300여 명이 등록할 만큼 성황을 이뤘다. 예수회센터 강좌는 수준 높은 강의로 이름이 높다. 수강생들은 다른 기관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깊이 있는 강의라고 입을 모은다. 강좌를 바꿔가면서 몇 년씩 듣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강혜금(엘리사벳, 서울 서초3동본당)씨도 그런 경우다.“2008년부터 계속 예수회센터 강좌를 듣고 있는데, 어떤 강의든 한 번도 저를 실망하게 한 것이 없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하느님을 찾고 만나야 한다는 점을 배웁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영성의 깊이를 더해주는 예수회센터 강의는 단연 최고입니다.” 강씨와 마찬가지로 몇 년째 센터 강의를 듣고 있는 나성미(마르티나, 서울 반포본당)씨는 “ ‘이런 강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로 내용이 알차다”면서 “무엇보다 왜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점이 감사하다”고 만족해했다.센터에는 다채로운 강좌와 함께 이냐시오 영신수련(2박 3일, 4박 5일, 9박 10일) 피정도 연중 개설돼 있다. 피정은 성경으로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 사랑받는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며, 세상 한가운데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해가면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이끈다. 단체와 수도회 의뢰를 받아 예수회 사제가 지도하는 위탁 피정도 한다. 센터 교육과 피정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예수회 설립자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이다. 예수회센터장 권오면 신부는 이냐시오 영성을 한마디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예수회는 가톨릭 교회 최초의 활동 수도회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고 세상에서 복음을 사는, 세상에 투신하고 봉사하는 영성을 추구합니다. 참된 영성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투신함으로써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 영적으로 충전하는 것이 이냐시오 영성의 특징입니다.”진정한 사랑과 영성은 세상에로의 투신으로 이끈다는 권 신부는 기도 없는 투신은 행동주의에 불과하다는 교황 말씀처럼 복음에 토대를 둔 영성과 사회적 투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교회’를 외치며 그 어느 교황보다도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가 될 것을 촉구하는 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권 신부 이야기를 듣고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가 됐다. 예수회센터 연락처 : 02-3276-7733 http://center.jesuits.kr예수회는예수회(Society of Jesus, S.J)는 스페인의 성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년)와 그가 지은 「영신수련」(靈神修練)으로 단련 받은 회원들로부터 유래한다. 「영신수련」은 예수회 영성의 유산인 동시에 기도 지침서로서 예수회의 근간이 되는 문헌이다. 16세기 당시는 대격변기이자 종교개혁의 시대였다. 이냐시오가 ‘주님 안의 벗들’이라고 부른 그의 동료들은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열망으로 자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해 찾았다.하느님의 섭리는 이냐시오를 통해 새로운 생활양식을 일으켜 교회에 봉사하도록 했다. 그들이 공동으로 갖게 된 비전 안에서 예수회 생활양식이 자라났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딴 예수회가 1540년 사도좌 인가를 받아 설립됐다. 초대 총장에 선출된 이냐시오 선종 당시 예수회원은 이미 1000여 명에 달했고, 4대륙에 파견됐다. 현재 전 세계 예수회 회원은 1만 8000여 명으로 세계 최대 수도회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는 1955년 파견됐으며, 한국관구 회원은 현재 176명(사제 110명, 수사 66명)이다. 한국 예수회는 서강대로 대변되는 교육 사도직과 이냐시오 영성 사도직은 물론 사회사도직과 청년사도직, 해외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3.17
![[성경속 궁금증] 87. 성경에서 순례는 어떤 의미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4994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7. 성경에서 순례는 어떤 의미인가?구약에선 계약의 궤 안치된 예루살렘 순례… 그리스도인 삶 자체가 주님 향한 순례 여정자크 스텔라, '엠마우스의 순례자들', 17세기께, 유화, 낭트 미술관, 프랑스. "윤형중 신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소문 성지에 관해 걱정이 태산이셨어요. 이곳 순교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성지를 개발하지 못한 것을 굉장히 안타까워하셨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서울대교구장님이 이렇게 관심을 두시니 참 다행입니다. 윤형중 신부님이 열심히 하늘나라에서 전구하고 계신가 봐요."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만난 나이 지긋하신 어느 수녀님께서 나에게 다가와 하신 말씀이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9월 2일 교구 내 성지들을 묶어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을 선포했다. 교구가 순례길을 공식 선포하기는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지난 10일에는 한국 주교단이 서울대교구 성지순례에 나섰다. 성신교정 성당 김대건 신부 유해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온종일 걸어서 순례하고 절두산 성지에서 마침 미사를 봉헌했다. 주교님들과 수도자들, 신자들이 함께한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성지순례는 하느님과 관련된 성스런 땅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경신행위의 하나다. 순례의 기원은 뚜렷하지 않지만 유다교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유월절과 오순절 및 초막절 등 매년 3번씩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서 그들이 수확한 곡식을 바치던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그리스도교 시대에 들어오면 순례는 신에 대한 흠숭의 의미뿐 아니라 회개하는 행위나 성인에 대한 존경의 행위로 인식됐다. 이스라엘 안에 많은 순례 장소가 있었다. 대부분 이 장소들은 거룩한 역사와 관계가 있는 성소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으로 그들의 하느님을 찾아갔다(창세 35,1-7).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을 불렀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창세 12,8). 여러 중요성을 지닌 성소들, 특히 스켐(여호 24,25), 베텔(1사무 10,3), 브에르세바(아모 5,5)에서는 순례 집회가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계약의 궤가 안치돼 있던 실로의 성소에서는 매년 하느님의 축제가 거행됐다. "그들은 마침내 말하였다. '그래, 해마다 실로에서 주님의 축제가 열리지!' 실로는 베텔 북쪽, 베텔에서 스켐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쪽으로, 르보나 남쪽에 있었다"(판관 21,19). 그런데 다윗이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에 옮기고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1열왕 5-8) 이후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 순례가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됐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그분의 인격이 새 성전이 되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 예배의 중심이 되셨다. 그리하여 지상에 더이상 성소로서의 장소가 없어지고 만다(요한 2,19-21). 이때부터 하느님의 백성의 삶 자체가 진정한 종말론적 순례가 됐다. "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히브 13,14).교회는 초대교회부터 그리스도 삶이나 성인들의 삶 안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현존 장소를 순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늘날도 순례는 신자들에게 신앙과 기도 안에 친교를 보여 주는 기회를 제공하며 주님을 향해 여행하는 기회가 된다. cpbc2013.09.24

새해 력·다이어리 준비하세요 교회 내 출판사들이 다양한 달력과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2015년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리며 교계 출판사에서 제작한 새해 달력과 다이어리로 알찬 내년을 준비해보자.▨가톨릭출판사=가족이 함께 한해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담아 ‘세상에 하나뿐인 2015 우리 가족 달력’을 선보였다. 벽걸이 형식으로 가족 이름과 매달 중요 행사를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나라별 특색 있는 성당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콘) △순교의 땅, 신앙의 숨결-평양 교구 성당(펜화) 등 3종의 벽걸이 달력과 탁상 메모용 다이어리도 선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과 사진을 함께 엮은 365일 말씀 달력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는 날짜에 요일을 명기하지 않아 여러 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묵상 달력이다. 상단에는 성인 축일과 기념일, 정부 공식 기념일도 수록했다. 문의 : 02-6365-1838 ▨기쁜소식=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사진을 주제로 한 벽걸이 달력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를 출시했다. 공항 영접에서부터 주교단과의 만남,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 124위 시복 미사, 꽃동네 방문과 청년대회 폐막미사,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까지 교황 방한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탁상 메모용 다이어리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도 만들었다. 문의 : 02-762-1194▨바오로딸=온화 작가의 그림이 실린 탁상용 말씀 달력 ‘주님과 함께’는 전례력에 따라 매일 성경 말씀 한 구절을 영문과 함께 실어 말씀을 깊이 묵상하도록 이끈다. 포켓용 수첩 ‘말씀과 함께’는 빨강ㆍ파랑ㆍ노랑 등 모두 6가지 색상이다. 수첩의 가장 큰 특징은 ‘365일 성경 통독 계획표’가 들어 있다는 것! 수록된 성경 통독은 「영적 일기와 함께하는 내 하루의 성경」(바오로딸)을 참조했다. 문의 : 02-944-0944 ▨분도출판사=△이스라엘 성지 사진 △로마 성지 사진 △마돈나(성모 마리아) 성화가 담긴 벽걸이 달력 3종과 이스라엘 숫자판 달력을 내놨다. 별도 디자인의 맞춤형 달력 제작도 가능하다. 문의 : 02-2279-9581▨생활성서=다이어리 ‘Bible & Life’(110㎜ x 175㎜)를 제작했다. 녹색ㆍ와인색ㆍ연밤색ㆍ파란색 등 4가지며, 성경 통독표와 매주 복음 구절, 주요 기도문, 단상을 실었다.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 편하다. 문의 : 02-945-5986 남정률 기자 백영민2014.11.11
갤러리 1898서울 이콘연구소 10기, 차영주 금속공예가, 설치 미술가 서효은 소신정 작, 40x30cm, 이콘, 2014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10기 졸업생들과 금속공예가 차영주(비비안나)씨, 설치 미술가 서효은(마리아)씨 전시가 4~10일 서울 명동 1898갤러리 제1, 2, 3전시실에서 열린다.이콘연구소 10기 졸업생 24명이 내놓은 작품은 저마다 이콘 특유의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성경 속 예수와 성인들의 옷자락 한올 한올, 머리칼 가닥들이 출렁이듯 살아있는 모습이다. 전시 주제 ‘영혼의 빛을 따라서’처럼 교회를 지탱하는 성인들의 빛나는 얼을 느낄 수 있다.차영주씨는 ‘죽음’과 ‘수난’이라는 고통의 주제에 늘 집중하는 작가다. 이번 ‘차영주 레퀴엠’ 전시에서 그는 다양한 금속을 자유자재로 다듬어 다양한 고통의 작품들을 내놨다. 커다란 액자 속 3개의 금속 못은 예수를 나무에 고정한 도구다. 자줏빛 금속과 나무를 적절히 혼합시켜 만든 성작들도 새롭다. 차 작가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인 죽음이 꼭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만이 아닌, 하느님과 만나는 희망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30대 청년작가 서효은씨는 다양한 재료를 동원해 설치미술을 선보이는 작가다. 공업용 비닐랩에 매일의 성경 말씀을 적고, 양초에서 흘러내린 파라핀을 다듬어 손에 잡히는 작은 인형들을 만드는 등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커다란 이불에 자신이 사는 주소를 적어 빨랫줄에 설치하는 등 이 모든 예술활동의 이유는 ‘나 자신 찾기’와 연결된다. 전시 주제 ‘빙빙빙’(Being Being Being)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중인 자신을 함축하고 있다. 문의 : 02-727-2336이정훈 기자 백영민2015.01.2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7>](//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6810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죄에 물든 인간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친히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기도다. 그림은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님’.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후반부에서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며 청원을 올릴 뿐만 아니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청원도 함께 올립니다.지난 글에서 우리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원죄로 인해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푸셨던 은총 지위를 잃어버렸고, 탐욕으로 죄에 물들게 됐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죄는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직접적으로 방해하기에 마땅히 제거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결국 탐욕으로 상처 입은 우리 본성이 나약해지면서 바로 내 안에서 죄가 생기게 됩니다. 내 탓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없애려고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모든 죄를 깔끔하게 없애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온전히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외적 요인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를 죄로 기울게 하는 외적 요인으로는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세상과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고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선성(善性)을 담고 있는 피조물로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우리의 영적 여정을 도와줍니다.그러나 성경 말씀은 이차적으로 죄와 연대해 악한 모습을 지닌 세상에 관해서도 언급합니다. 특히 요한계 문헌은 악한 실체로서의 세상 개념을 제시합니다.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1요한 2,16).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의 영적 여정을 방해하며 영원한 생명과 대립함으로써 우리를 죽음으로 유혹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느님께 잘 나아가기 위해,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것입니다.한편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악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 곧 사탄, 악마, 하느님께 대항하는 천사를 가리킨다. 악마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가로막는 자이다”(2851항). 물론 성경에서도 “죄를 지은 천사”(2베드 2,4), 즉 타락 천사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앙인은 세례 예식에서 단순히 죄를 끊어 버린다고만 고백하지 않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악의 유혹도 끊어 버린다고 고백해야 하며,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도 끊어 버린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결국 악마는 죄를 생겨나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에 악마를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악마는 우두머리로서 악한 세상에 영향을 끼치면서 복합적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 여정을 더욱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꼭 악에서 구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악마뿐만 아니라, 악마의 지배를 받는 악한 세상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며 우리의 영적 여정을 방해합니다. 비록 인간은 죄와 악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극복해야만 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으로 모든 유혹을 극복하고 믿음 안에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5.06.17
![[사도직 현장에서] 어느 할머니의 꿈](//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0822_1.0_titleImage_1.jpg)
[사도직 현장에서] 어느 할머니의 꿈윤민재 신부(수원교구 죽전1동 하늘의문본당 주임)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와 “신부님, 저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할머니, 뭐가 무서워요?” 하고 여쭸더니, “잠을 자려고 하면 큰 뱀이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워서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했는데 새어머니는 오빠 한 분을 데려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새어머니와 오빠 밑에서 모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새어머니는 때로는 밤새 때리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시면서 옛날의 서러웠던 기억이 나셨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셨고, 혼인도 하시고 구김 없이 잘 사셨습니다.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께 “그분들을 용서하셨느냐?”고 여쭸더니 “이미 잊은 지 오래야”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할머니, 혹시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적이 있나요?” 하고 여쭸습니다.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할머니, 하느님께서 할머니를 무척 사랑하시나 봐요. 그런 모진 고생을 하셨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 할머니께 조그마한 연옥 벌도 받지 않게 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많은 은총을 받으실 것 같은데요.”할머니는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시며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신청하셨습니다. 다음 날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신부님, 어젯밤에 또 그 뱀이 나타났는데, 제가 목을 잡아 힘차게 던져버렸어요. 그런데 그 뱀이 무척 작더라고요. 뻗어버렸어요. 그리고 잠을 푹 잤어요. 감사합니다.” 할머니를 통해 원수를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평화신문2015.07.08
![[성경속 궁금증] 94.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자권은 어떤 것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73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94.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자권은 어떤 것인가아버지 권한ㆍ재산 물려받고 계보 잇는 맏아들… 하느님의 진정한 장자는 예수 그리스도얀 빅토르스, '아들 요셉을 축복하는 야곱', 1635년께, 캔버스에 유채,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관.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장자권'은 말 그대로 장자의 신분과 위치와 권리를 말한다. 유다인들에게 장자는 '제일 먼저 어머니의 자궁을 연 자'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유다인 문화 속의 장자는 가족과 종족의 범위 안에서 일정한 우선적 지위와 존귀함, 신성함과 권위, 주권과 책임, 그리고 계승권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장자권은 아버지의 권한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고 혈통적으로 아버지의 계보를 잇고 가정에서 아버지의 주도권을 이어받아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할 권한을 갖는다. 또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 상속받는다고 법을 정했다. "미움 받는 여자의 아들을 맏아들로 인정하여 그에게 자기의 모든 재산에서 두 몫을 주어야 한다. 그 아들이 자기 정력의 맏물이며 그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신명 21,17). 장자는 또한 아버지의 축복권을 이어받는다.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고 아들에게 언약의 축복을 할 권리가 있다. 성경에서 보면 맏아들의 권리 중에 부모가 죽기 전에 하느님으로 오는 축복을 특별히 받도록 돼 있다(창세 27,27-29).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사악으로 이어지는 이 장자권은 단순히 자손을 잇고 재산을 물려받으며 축복을 해주는 권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주역이 되는 특권이었다. 성경에서 장자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다. 차남으로 태어난 야곱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장자권을 차지하고자 했다. 형 에사우는 사냥을 하고 돌아왔을 때 배가 너무 고팠다. 야곱은 이 기회를 포착해서 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넘겨받았다(창세 25,29-34). 이처럼 장자권은 에사우의 경우와 같이 팔아넘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처럼 장자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소실 빌하와 동침해 스스로 장자권을 잃어버렸다.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자손들은 이러하다. 르우벤은 맏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잠자리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의 맏아들 권리가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넘어가고, 족보에 맏아들로 오르지 못하였다"(1역대 5,1). 성경에서 '장자'라는 단어는 상징적으로 우선권이나 지상권을 의미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맏아들'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하고,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탈출 4,22). 장자가 특별한 우선권을 소유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보다 우선적인 권리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 아버지의 '맏아들'로 언급된다(로마 8,29). 특별히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야말로 부활의 첫 열매임을 증언하고 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콜로 1,18). 하느님의 진정한 장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셈이다.cpbc2013.11.19
![[성경 속 도시] <13> 주님 기적이 일어난 신비로운 땅 르피딤](//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54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주님 기적이 일어난 신비로운 땅 르피딤이민족과 전투에서 첫 승리 거둔 곳 호렙 바위에서 샘이 솟아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해소해준 르피딤 산 꼭대기에는 '야훼 니씨'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리길재 기자 '평원'이란 뜻을 지닌 르피딤은 신 광야와 시나이 광야 사이에 있는 골짜기다. 이곳은 아주 기름진 평원으로 사람이 많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주님의 분부대로 신 광야를 떠나 차츰차츰 자리를 옮겨 갔다. 그들은 르피딤에 진을 쳤는데,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탈출 17,1). 르피딤도 역시 광야 지대이지만 특히 이곳은 양쪽으로 험한 바위산을 거느리고 좁은 계곡으로 길게 뻗어 있어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다. 또 보기 드물게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곳이다. 홍해를 건너 시나이산으로 오는 도중에 도로변을 따라 4㎞ 정도에 걸쳐 대추야자 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여러 곳에 물이 있는 꽤 큰 마을이다. 삭막한 광야의 계곡 한 모퉁이에 이런 오아시스가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성경에 따르면 르피딤은 두 개의 커다란 사건과 관련이 있다. 우선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쳐 샘을 솟게 해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준 사건이 대표적이다. 르피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 마실 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라",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보다 못한 모세가 하느님께 하소연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탈출 17,5-6). 모세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호렙 바위 위에서 반석을 내리쳤다. 그러자 바위에서 샘이 솟아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르피딤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했다고 해서 그곳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부르게 되었다(탈출17,7). '마싸'는 '시험하다'라는 뜻이며, '므리바'는 '다툰다'라는 뜻이다. 르피딤 지역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온 이후 광야 생활 최초로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건이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러 나갔을 때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만 있으면 이기는 싸움이었다. 아말렉의 군사는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쳐 승리했다.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 그의 발 아래 놓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런 다음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 주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처지지 않았다"(탈출 17,12).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믿었다. 모세가 이곳에 아말렉과 싸워 승리한 기념으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니씨'라 하였다(탈출 17,15). 한때 모세가 손을 들고 서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모세 기념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다. 지금은 그 흔적으로 주님의 기적을 확인하지만, 르피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한 소중한 장소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cpbc2014.04.09
![[성경 속 도시]<11>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오아시스 '엘림'](//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2300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오아시스 '엘림'탈출 여정의 피로 풀어준 임시 휴식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휴식처가 됐던 엘림은 지금도 종려나무가 울창한 오아시스다. 리길재 기자 이스라엘 백성은 갈증으로 고통받았던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렀다. 마라와 엘림은 가깝게 연결된 지역이다. 엘림에는 샘물이 12개나 있었으며, 큰 종려나무가 드리운 시원한 그늘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그들은 엘림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샘이 열두 개, 야자나무가 일흔 그루 있었다. 그들은 그곳 물가에 진을 쳤다"(탈출 15,27). 땡볕의 광야를 헤매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갈증을 풀어주는 물처럼 더 소중하고 반가운 것은 없을 것이다. 마라와 달리 물이 풍부하고 그늘의 쉼터가 있는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 이후 비로소 처음으로 모든 피로와 긴장을 풀고 평온한 휴식을 즐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엘림은 지역적으로 마라와 신 광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성경에 언급돼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탈출 16,1). 엘림은 수에즈 운하의 동남쪽 100㎞ 지점에 위치한 오아시스 촌락이다. 오늘날의 '와디 그란델'로 추정된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이곳에는 적절한 물을 공급해주는 담수샘이 있고,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멋있는 협곡과 종려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깊이 파인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고이기도 한다. 엘림을 떠나 '신 광야'로 향하면 황량한 벌판이 끝나게 되면서 작은 모래 산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다. 석회암 절벽 사이에 산들이 형성돼 있다. 신 광야라는 지명은 당시 이 지역에서 숭배했던 달신에서 비롯하는 지명이다. 지금 이 지역에는 작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마을의 잔재만 남아 있다.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원망했다.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하고 불평하였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중략)…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24~26).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 도착한 후에 후회하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인내했더라면 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분께 시험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기 여정은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세상에는 마라의 샘처럼 쓰라린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림처럼 위로도 함께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갖고 힘을 내야한다. 그러나 인생은 끝이 없는 여정이듯이, 엘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최종 정착지가 아니라 임시 휴식처일 뿐이었다. 그들은 곧 다시 고난의 길인 광야를 걸어야 했다. 엘림에서의 휴식은 단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고난과 역경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껴질 때 적당한 장소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또 휴식을 통해 다시 원기를 회복하여 가나안을 향한 고난의 길을 다시 갈수 있게 됐다. 물과 그늘이 없어서 고통스럽게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오아시스를 준비하셨던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 도착한 후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앙과 삶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곳이 바로 성경의 땅 광야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cpbc2014.03.25
![[나의 묵주이야기] 120.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함께하소서”](//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7228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20.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함께하소서”최정아 안젤라(미국 캘리포니아 성라파엘 한인본당)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냉담 상태였지만 나의 영세를 계기로 냉담을 푸신 엄마는 레지오 마리애도 가입하시고 묵주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쓰시며 열심히 외기러기 신자 생활을 하셨다.그러나 그 이후 나를 비롯한 4형제는 성당에 나가다 말다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아빠가 세례를 받으셨고 사목위원까지 하시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 성당에 나가자고 항상 부모님이 권하셨지만 게을러지고 감사를 잊은 내 맘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할 때 관면 혼배를 권하시는 부모님의 뜻을 남편은 순순히 받아들였고 신부님 앞에서 약속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잠시를 빼고는 나는 계속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우여곡절 끝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성경 지식도 없던 나이지만, 내가 광야에 떨어진 집 나간 죄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이 힘듦을 하느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들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나는 어느날부터 묵주를 들고 내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건 나의 힘이 아니었다.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묵주기도가 나의 의지처가 되어 간절히 성모님과 함께하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하지 않아 잘되지 않을 것 같던 기도가 항상 해왔던 것처럼 5단의 신비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단비처럼 적셔졌다.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마음이 느껴졌고 항상 나를 내려다보시며 사랑을 전해주시려 애타게 부르신 하느님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감사만이 넘쳐날 뿐이었다.내가 받은 이 많은 은총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매순간 묵주기도 때마다 성가정을 지향하였다. 불교 신자이던 남편도 순순히 세례를 받고 성당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출퇴근길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신자가 되었고, 아이들도 세례를 준비하고 있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내가 이끄는 대로 성당에 가고 주일학교에 아무 말 없이 참여하는 건 나의 묵주기도에 항상 들어가 있던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청원에 응답해 주신 힘이라고 생각한다.난 항상 묵주기도를 드린다. 처음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여 했지만, 남을 위하여 하는 기도에는 내 기도가 이미 들어가 있다고 하신 김웅렬 신부님의 강론을 들은 이후로는 내 주위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식에 묵주를 꺼내 든다. 기쁠 때는 감사 기도로, 슬플 때는 위로를 청하며…. 이 기도는 나의 힘이 아닌, 날 이끌어주시는 성령과 우리를 위해 함께 빌어주시는 성모님의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오늘도 묵주를 꺼내 든다. 몸이 아픈 이웃을 위해서, 먼 길 떠나 공부하러 가는 친구 딸을 위해서, 많이 부족한 나 자신을 위해서, 또 아직 주님께 의탁하지 못하는 내 형제자매들을 위하여….이 모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사랑하는 성모님, 찬미 받으소서!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cpbc2015.04.22
![[성경 속 도시] <5>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헤브론](//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71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헤브론아브라함과 족장 시대 활동 중심지 헤로데 임금이 세운 헤브론 성벽. 이 성벽은 예루살렘 성벽과 똑같이 만들어졌다.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약 30㎞ 떨어져 있는 땅 헤브론은 '동료' '결합' '친구'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히타이트족으로부터 땅을 사들이면서 구약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은 이스라엘 족장 시대의 활동 무대가 되는 구원 역사의 핵심 지역에 속한다. 아브라함은 얼마 동안 이 부근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거주했다.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창세 13,18). 사라는 여기서 죽고, 아브라함은 아내의 묘소로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을 샀다(창세 23,2-20). 이사악과 야곱도 한때 헤브론에 머물렀다. "마침내 야곱은 마므레 곧 키르얏 아르바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사악에게 다다랐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나그네살이하던 헤브론이다"(창세 35,27). 그리고 사울이 죽은 후 기원전 1000년께 다윗은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원로들과 계약을 맺었고,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그 후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돼 7년 6개월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통치했다.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2사무 5,5). 이처럼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족장들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중요한 곳이다. 헤브론은 예부터 물도 풍부하고 거주에 좋은 조건을 갖추어 포도 농사로 유명했다. 가나안 정탐을 하고 왔던 12명의 정찰대는 헤브론 근처의 에스콜 골짜기에서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를 따다 모세에게 바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했다(민수 13,23-27 참조). 헤브론은 현재도 포도의 특산지이며 농산물 거래 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유리세공과 토기, 가죽 제조업이 발달해 팔레스타인 경제의 중심지이다. 성경에서는 헤브론에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이전의 다양한 갈등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모리족과 히타이트족(창세 23장)이 살았던 헤브론은 가나안족의 중심 도시였다. 헤브론은 다윗이 그의 왕국을 건설한 곳이면서도 뼈아픈 곳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2사무 15,1-12 참조).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요르단으로 달아났다. 바빌론 유배 이후 헤브론은 에돔 사람이 점령했지만 유다 마카베아가 탈환했다. 그 후 로마군에 파괴된 헤브론은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해 4세기에는 큰 도시가 됐다. 페르시아에 점령됐던 634년에는 전성기를 누렸으며 900년께는 '하느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고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헤브론은 63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1100년부터 1260년까지 잠시 십자군에게 정복된 것을 빼고는- 계속 이슬람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다. 20세기 들어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고 1948년 요르단으로 편입됐다. 헤브론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점령된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 속한다.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되고 1997년 1월부터 팔레스타인 관할로 이관됐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cpbc2014.02.04
![[성경 속 생명 이야기] 2.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5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2.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인간 생명, 하느님 사랑의 절정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1,26-27; 2,3).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들을 모두 만드시고 창조의 절정으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느님의 인간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하늘과 땅, 물과 길짐승과 뭍짐승과 같은 피조물들을 "생겨라!"는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는데,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하십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어떤 존재를 만들 것인지 먼저 구상하십니다.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자." 인간은 그래서 하느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이를 두고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으로, 그렇게 구상한 인간을 더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노동입니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하느님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만큼 노동은 신성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아주 질 좋은 흙을 찾아 정성스레 한삽 한삽 떠서 작업장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흙을 깨끗하고 정결한 물과 섞어 다집니다. 그리고선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듯 맨발로 아름다운 꽃모양으로 흙을 곱게 다듬습니다. 흙 속에 이물질이나 숨구멍 이외에 다른 파공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적당한 양의 흙을 떠서 달팽이 모양이 되도록 손으로 다시 다듬습니다. 그래야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가도 터지지 않고 균열이 없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후 물레에 흙을 얹고 빚습니다. 발로 물레를 돌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도 그려 넣고 손으로 마감질도 합니다. 그런 후에 유약을 묻혀 굽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도록 높은 온도에서 여러 번 여러 시간에 걸쳐 굽게 됩니다. 이렇게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얼굴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땀이 맺힙니다. 그 도공의 얼굴을 통해 인간을 진흙으로 빚으시며 땀을 흘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노동과 하느님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이 귀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이웃의 우리 형제자매입니다. 하느님은 그러나 이 특은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당신은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루아'(Ruah)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 생명은 바로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존엄합니까. 그것이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이 인간을 거룩함과 연관지어 이야기하십니다. 거룩함은 오직 하느님께만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인간에게도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만든 인간을 보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만 '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써 하느님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또한 참 하느님이신 분이 참 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인간이 지니는 가치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해 줍니다(「생명의 복음」 2항). 이 구원의 신비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가치와 거룩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존엄성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 생명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것입니다. cpbc2014.02.04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26>](//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178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그리스도인의 성소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심’, 두초 디 부오닌세냐, 템페라, 1311년, 43.5x46cm,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필자와 함께 시작한 영성 산책도 어느덧 반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 글을 읽으면서도 수덕 생활을 위해 이렇게 어렵사리 노력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견해가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의 길’만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최소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의 길 문턱에라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필자는 이 영성 산책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의 차별이나 낙오도 없이 모두 다 거룩해지고 완전해지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단순히 가까스로 구원받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은 단계에 다다르면서 구원의 완전성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권면의 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권면의 길을 통해 영적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최선을 다해 영적 여정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명의 길에 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더 노력할 마음이 없이 계명의 길을 통해서만 영적 여정을 걸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던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선 처음에는 십계명에 포함된 계명들을 언급하면서 계명의 길을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계명의 길을 잘 걷고 있다고 자신하는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점을 발견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애덕을 실천하라는 권면의 길을 권고하셨습니다. 재산이 너무 많았던 부자 청년은 이내 시무룩해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마태 19,16-22 참조).어쩌면 이와 같은 권고 말씀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 안에는 그리스도인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의 말씀만 있을 뿐이지, 어려울 것 같으면 다소 쉬운 길로 돌아가도 된다는 식으로 권고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임무를 거부하고 쉽게 돌아가려는 잔꾀는 절대로 통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모세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자신이 무엇이기에 파라오 왕과 이스라엘 자손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라며 머뭇거렸지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항상 함께 할 것이니 ‘있는 나’가 보냈다고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탈출 3,7-15 참조).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자 아이라서 말할 줄 모른다고 핑계를 댔지만,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함께하면서 구원해 주실 것이고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레 1,4-10 참조). 또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던 몇몇 사람이 예수님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거나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죽은 이의 일은 죽은 이에게 맡기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루카 9, 57-62 참조). 따라서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한 제자들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야고보와 요한도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18-22). 심지어 마태오는 세관에서 일하다 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9,9).이렇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에둘러 돌아가는 쉬운 길이 없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여 최상의 단계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길만이 눈앞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인간적인 셈을 하느라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최고로 어려우면서도 최상의 선을 보장해 주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세상일을 내려놓고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지고 완전해지도록 하느님께 불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5.11.04
![[생활 속의 복음] 단절을 통한 새로운 시작](//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9479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단절을 통한 새로운 시작사순 제4주일(요한 3,14-21)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오늘 시편(화답송)을 보니 카리브해 출신 흑인 혼성 그룹 ‘보니 엠’(Boney M)이 생각납니다. 1978년 발표한 ‘바빌론의 강’(Rivers of Babylon)은 레게음악, 흑인 특유의 리듬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흥겹게 했습니다. 하지만 노래의 가사는 흥겨운 리듬과는 다르게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 배어있습니다.‘바빌론의 강’의 내용과 비슷한 처지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 합창 ‘가라, 내 생각이여, 금빛날개를 타고’를 들으면서 한 주간을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주변 상황이 우리에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더라도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하느님 자비를 기억하면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복음은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예수님께서는 밤에 몰래 찾아온, 당대 유명한 바리사이 니코데모와 대화를 나누십니다. 니코데모는 예수님께서 하신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는 말씀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바로 오늘 복음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위로부터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영으로 태어나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성경의 여러 말씀과 신학적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라는 말씀에 대한 묵상과 해설을 통해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뱀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민수기 21장 4-9절에 죽음의 원인과 새로운 생명이 설명돼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뱀같이 슬기롭고”(마태 10,16)라는 구절 외에는 뱀은 간사하고 사람에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동물로 묘사됩니다. 하느님 본질과는 대립적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뱀은 당시 사회에서 지혜의 상징이자 치료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뱀은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생명’과 관련이 있는 사상이자 학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주님 말씀을 따라 ‘구리 뱀’을 만듭니다(민수 21,9). 구리는 이집트가 히타이트 국가와의 전쟁으로 철기문명을 접한 후 이집트인들의 자존심이 됐습니다. 전쟁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도구이자 버려야 하는 폐물이 되었습니다. 즉 구시대의 가치와 우상을 높이 매달아 단절시키는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생명을 살게 된 것입니다. 구리 뱀 사건으로 아담 이후 단절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모세와 그의 동료들은 노예로 살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폐습을 높이 매달았고, 진정한 자유인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십자가에 들어올린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들어올려짐’은 단절과 외면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죄수를 높이 매달고 온갖 욕설과 폭행을 하는 인류의 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희생과 봉사를 통한 영광과 명예의 의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극히 존경하는 경우 어깨 위에 들어올립니다. 또 군중 앞에 올려서 환호와 갈채를 보내기도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에 지니고 있는 욕심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매달고 철저하게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한편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한없는 사랑과 희생을 본받아 매일 매일 예수님을 따라가며 살아야겠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고통받던 이집트 시대에 하느님과의 소중한 만남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그릇된 즐거움에 철저히 순응하는 삶으로부터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처절한 치욕과 아픔을 체험하는 순간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우리에게도 또 다른 십자가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모두 구시대 유산과의 단절을 통해 위에서부터 새로이 태어납시다. cpbc2015.03.11

부룬디에 성경 1만 권 지원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현지어 성경 인쇄 발송 계획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도움을 받아 그림으로 된 가톨릭교리를 읽고 있는 중국 어린이들. 사진제공=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2007년부터 6년간 20여 개 나라에 성경 약 30만 권을 보내온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회장 김효선, 담당 이문주 신부)가 아프리카 부룬디교회에 키룬디어(부룬디 현지어) 성경을 보낸다. 2011년 9월, 부룬디 무잉가교구의 요아킴 응따혼데레예 주교가 한국을 방문해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에 성경 1만 권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인쇄 경비 혹은 성경 구입 비용을 현지에 보내거나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후원해온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는 가톨릭출판사에 의뢰해 인쇄부터 제본, 포장, 운송까지 직접 하기로 했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는 인쇄에 앞서 교정 과정에서 오류를 없애기 위해 키룬디어에 능통한 부룬디 성경학자 신부의 한국 방문을 요청해놨다. 빠르면 올 성탄절에 부룬디 신자들에게 성탄 선물로 보낼 계획이다. 1898년 시작된 부룬디교회는 설립 31년 만에 키룬디어로 된 신약성경을 번역하고, 2004년부터 구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2011년 신구약합본 성경을 갖게 됐다. 키룬디어 성경에 대한 필요성은 교회 안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자국어 성경을 찍어내기에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부룬디교회는 8개 교구 100개 본당으로 이뤄졌으며, 본당마다 2만 5000명에서 5만여 명의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부룬디 총인구의 65~70%가 가톨릭 신자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담당 이문주(요셉의원 원장) 신부는 "서울대교구장님의 적극적 관심과 문서 선교의 사명을 지닌 가톨릭출판사와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의 뜻이 한데 모여 가능한 일"이라며 "이는 한국교회가 실질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는 성경을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이웃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2007년 설립됐다. 1969년 베트남 군종신부로 파견된 이문주 신부가 베트남교회와 인연을 맺은 게 계기가 됐다. 이 신부가 군종신부로 사목하는 동안 베트남 신자들은 이 신부에게 베트남어 성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고, 이 신부는 몇몇 신자들과 함께 10년간 베트남어 성경을 지원해왔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는 미얀마의 한 주교가 베트남어 성경 지원 소식을 듣고, 미얀마교회에 성경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발족했다.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가난 때문에 자국어로 된 성경을 접하지 못하는 나라에 체계적으로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이 신부가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는 태국 소수민족인 카렌족에게 카렌어 성경을 보급하고, 과테말라에 스페인어 성경, 페루에 케추아어 성경을 지원해왔다. 지금까지 단순히 성경을 보급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후원해왔다면 지금은 교육에 초점을 맞춰 성경대회와 성경교육 등에 필요한 경비도 지원해주고 있다. 현재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후원회원은 850여 명이며, 지금까지 성경을 지원ㆍ보급하는 데 든 비용은 2억 4000만 원 가량이다. 이문주 신부는 "지금까지 필요한 만큼 후원금이 들어와 성경을 보급할 수 있었다"면서 "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가톨릭 신자들의 사명"이라며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 문의 : 02-2676-9981,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사무실 이지혜 기자이지혜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