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신자 위한 교육 과정 개설주교회의 여성소위, 찾아가는 교육 ‘여성 아카데미’ 마련… 영성·리더십 등 구성 가톨릭 교회 여성 신자들이 더 활기차고 의미 있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 개설됐다.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는 2년의 준비 끝에 ‘여성 아카데미’를 선보였다. 교육을 원하는 교구나 본당, 단체에 강사들이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교육’으로 강의 주제는 △여성의 영성 △여성 리더십과 좋은 인간관계 △공동체 팀워크 재조직이다. 강사진은 심리 상담, 철학, 사회학, 신학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여성의 영성은 △교회의 가르침-여성의 존엄과 소명(강사 박정우 신부, 서울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창세기와 아가서의 여성 이야기(장경 교수, 서강대 신학대학원) △성경 읽기를 통한 영성적 치유(김세서리아 교수, 이화여대) △여성 리더의 심리적 건강(박은미 교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으로 진행된다. 여성 리더십과 좋은 인간관계는 △중년기 여성의 자기 리더십(강성숙 수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한국 대표) △보살핌의 윤리와 가정 영성(김세서리아 교수) △공동체 활동과 긍정적 자기 관리(박은미 교수) △여성 리더의 영성(최혜영 수녀, 가톨릭대)로 이뤄져 있다. 주제별로 4강의씩 있는데, 필요한 강의 한두 개만 골라 신청해도 된다. 강사료는 강의당 30만 원(100분 기준)이다. 공동체 팀워크 재조직 프로그램은 강성숙 수녀가 진행하며 조직 변화 관리 기법(OST, Open Space Technology)에 관한 교육이다. 조직 운영에 변화와 화합을 꾀하는 공동체 교육으로 제격이다. 주교회의 여성소위 총무 박은미(헬레나) 교수는 “여성 리더십 교육이기는 하지만 본당 견진교리나 사순 특강, 대림 특강에도 활용하면 좋다”면서 “여성소위에서 만든 여성 아카데미가 신자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및 신청 : 010-8344-2080, 박은미 교수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6.03.08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5) 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 주교 고향, 아미앵](//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0906_1.0_titleImage_1.jpg)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5) 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 주교 고향, 아미앵성인 주교가 보살핀 조선 교회, 이젠 프랑스에 사제 파견 어린 다블뤼가 세례받을 때 사용한 세례대와 선교 여정을 표현한 그림이 생르 성당 뒤편 기도소에 설치돼 있다. 시의원인 아버지. 공장을 소유할 정도의 경제적 풍요로움. 신앙을 중요시하는 집안 분위기. 7세에 라틴어 공부 시작. 10세 때 예수회 기숙사 학교 입학.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St. Marie Antoine Nicolas Daveluy, 1818~1866) 주교의 이야기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왜 가난하고 박해받는 조선의 선교사가 되기로 했을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성 다블뤼 주교가 어릴 적 신앙을 키운 프랑스 아미앵(Amiens)을 찾았다.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140㎞ 떨어진 곳, 피카르디 지방 솜 주의 주도 아미앵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성당과 종각,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작가 쥘 베른의 집 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아미앵은 일찍이 도시로 발전해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크기는 작아도 없는 것은 없다. 백화점과 마트 등 현대식 쇼핑센터와 옛 성당과 수도원, 근대 건물들이 섞여 묘한 세련된 분위기가 흘렀다.생르(St. Leu) 성당서쪽 영국 해협으로 흘러드는 솜(Somme)강은 아미앵을 관통해 흐르고 있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줄기와 맞닿은 곳에 어린 다블뤼가 세례받은 생르 성당이 보였다.큰 성당은 아니었지만 종탑 곳곳에 세밀하게 조각된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까맣게 변해 버린 외벽은 조각의 화려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그을린 자국이었다. 다블뤼 주교의 어릴 적 추억과 함께 시대의 아픔도 간직한 장소였다.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태극기였다. 2005년 서울대교구 갈현동본당 신자들이 아미앵을 방문해 전달한 것이었다. 성당 뒤편은 성인을 기리는 기도소로 꾸며져 있었다. 기도소엔 어린 다블뤼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 사용한 세례대도 놓여 있었다. 세례대 뒤에는 조선에 발을 딛기까지 여정을 표현한 그림도 함께 걸려 있었다. 또 갈현동본당 신자들이 선물한 현수막도 이곳에 걸려 있었다. 현수막 속 적힌 손글씨가 함께한 순례단 마음을 울렸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나 됩시다.’ 순례단은 잠시 의자에 앉아 주모경을 바쳤다.아미앵 노트르담(Amiens Notre Dame) 주교좌성당아미앵에서 노트르담 주교좌성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높은 성당 지붕만 찾으며 걸어도 금방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딕 건축의 ‘파르테논 신전’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화려한 조각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성당 외관은 순례단을 압도했다. 고개를 들어도 지붕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앙 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문 양쪽으로는 열두 사도의 모습이 조각으로 표현돼 있었다. 성당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조각은 3600여 점. 각기 다른 생김새에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성당 내부 넓이는 7700㎡, 축구장 크기였다. 아치형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거인 같았다. 내부 곳곳엔 요한 세례자의 생애 등 성경 내용을 표현한 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눈으로 읽는 돌로 만든 성경이였다.성당 가장 안쪽 벽면에 걸린 그림 속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성 다블뤼 주교와 조선 신자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하얀 주교관을 내려놓고 두 손 모은 다블뤼 주교와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엔 한국 신자가 제작해 봉헌한 성해함이 있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입국부터 순교까지 일대기를 그려 넣은 빈 성해함이었다. 다블뤼 주교의 성해는 본당에서 따로 보관 중이었다.안내를 맡은 아미앵주교좌본당 보좌 김지훈(서울대교구) 신부는 순례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사제가 없이 고통받는 조선 교회를 위해 몸소 뛰어든 다블뤼 주교와 사제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 교회를 위해 선교를 지원한 김 신부, 두 사제가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과거의 한국 교회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외국 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받은 것을 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위해 애쓴 프랑스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고 보존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요.”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성 다블뤼 주교는 누구인가성 다블뤼 주교는 1841년 사제품을 받고 184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그는 1845년 중국 김가항성당에서 봉헌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한 후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 김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했다.1857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에게 주교품을 받은 다블뤼 주교는 내포 지방 선교에 온 힘을 기울였다.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면서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대목구장이 됐다. 하지만 3월 30일, 대목구장 재임 23일 만에 충청도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후에 주교의 유해는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에 안치됐다. 다블뤼 주교는 1984년 5월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평화신문2016.04.19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8) 김자호 가브리엘 (간삼파트너스 회장)](//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136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8) 김자호 가브리엘 (간삼파트너스 회장)‘놀면서 일하자’는 이상한 대표이사, 숨겨진 뜻은? 간삼파트너스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자호 회장.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어떡하면 좀 더 재미있고 잘 놀 수 있을까? 늘 궁리하는 CEO를 만났다. 경영은 휴대폰으로 하고 정밀 설계하듯 시간을 쪼개면서 논다. 심지어 착한 사람이 있는 천당 대신 악한 사람이 있는 지옥에 가서 함께 놀면서 선도하고 싶다고 한다. 건축가가 본업이지만 문학, 예술, 스포츠 등 모두 만능이다. 재미있는 역설이지만 따뜻한 역발상의 인간미가 배어 있다. 건축물은 기본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터뷰 내내 그의 농담과 말의 재미에 취해 시간의 길을 잃고 말았다. 국내 유수의 건축회사인 간삼(間三)파트너스 김자호(가브리엘) 회장이다. 자신을 대표이사가 아닌 대표사원이라고 부른다. 김자호 대표사원의 놀면서 배운 건축, 놀면서 깨달은 인생, 노는 힘을 준 신앙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놀면서 간지(間志)게 일하는 법’을 배워보자.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사훈이 ‘놀면서 일하자’인데 어떤 의미인가요.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합니다. 놀기만 하면 안 되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일을 하자는 뜻입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칭찬을 많이 해주면 금방 성장합니다. 칭찬하면 고래도 춤춘다잖아요. 제 역할은 일을 잘할 수 있게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전 직원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신다고요.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34년이 지난 현재 618명인데요, 제 방에 가면 빨간 앨범이 하나 있어요. 불조심하듯이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뚜껑을 빨갛게 만들었는데요, 1번부터 618번까지 직원 명단이 있고 그 뒤에는 그만둔 사람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모두 다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회사를 나간 사람들에게 특별히 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분들이 우리 회사에 대한 선전을 더 잘해 주고요. 이직한 사람 중에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꽤 있는데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놀기만 하는 직원, 일만 하는 직원, 회장님은 누구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노는 사람, 일하는 사람 둘 다 있어야 합니다. 건달 같은 친구도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만 있으면 회사 분위기는 망해요. 스트레스만 쌓이고 창조적인 생각들을 못 하거든요. 풍물도 보고 견학도 하고 다른 경험도 하고 밤거리도 좀 알고 그래야지요.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양쪽이 다 필요해요. ▶간삼의 의미가 시간, 공간, 인간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철학이 담겨 있는지요.1983년에 이 회사를 만들고 이름이 필요한데 작고하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신 김수근 선생님이 학교 선배님이셔서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십시오” 했더니 우리는 공간 건축이니까 너희는 간(間)을 두 개 더 넣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건축은 인간과 시간, 공간인데 삼간 하니까 좀 왜소해 보여서 간삼(間三)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건축 철학과 연결돼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시간, 공간, 인간의 건축은 어떤 건축입니까. 일반 사람들은 건물을 보는 것이고 건축물은 건축가가 디자인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기능이나 동선을 잘 맞추고 디자인을 잘해서 최종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인데요, 여기에 혼(魂)과 정성이 담겨야 하고 그게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집트에 우리나라 한옥이 있으면 어울리겠습니까? 반대로 을지로 네거리에 피라미드가 있으면 안 어울리죠. 건축물은 수학문제를 풀듯이 정답이 없습니다. 귀납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만족하고 맞출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신입사원에게 일일이 손편지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그래요. 신입사원들은 자라나는 새싹이라 처음부터 공을 들입니다. 우리 회사에 합격하면 제가 편지를 손수 써서 합격통지서를 보냅니다. 어떤 때는 꽃이나 떡을 보내 합격 통지를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 CEO로서의 다짐이죠. 신입사원 교육은 한 3개월 정도 하는데요, 첫 번 강의는 30년 동안 늘 제가 합니다. 강의 주제는 한마디로 인간이 되라는 것인데요, 제 경험에 의하면 첫 번째 직장에서 얻은 지식이 직장을 바꾸더라도 한 70%는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이 되는 법을 좀 알려 주세요. 설계하는 데도 법이 있습니다. 건축법이 있고 재개발법, 도시계획법이 있고 그 위에는 헌법이 있죠. 헌법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윤리이고 그 위에는 도덕입니다. 인간은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게 하나도 없죠. 문을 열었으면 닫을 줄 알고,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놓을 줄 알고, 학교 갔다 왔으면 인사할 줄 알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인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와 도덕 없이 놀면 건달이 되는 것이죠.▶처음부터 건축가가 꿈이셨나요.저는 학교 다닐 때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 어느 학교가 좋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친구 따라서 대학을 갔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원래 의사 집안인데 의사는 90%가 외우는 직업이지요. 건축은 창조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2050년이 돼도 없어지지 않는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디지털이 돼도 건축은 아날로그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을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인간적인 직업이죠. ▶인공지능이 설계하고 로봇이 건축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초창기만 해도 투시도에 연필로 긋고 청사진을 만들고 했는데 30년 사이에 삼각자, T자, 직각이 다 없어졌어요. 옛날에는 구름 같은 집을 만들면 계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년 걸려서 구조 계산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몇 시간이면 합니다. 또 건축에서 제일 먼저 없어진 게 국경인데요. 현장에 가지 않아도 설계 대상 지역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건축의 최후는 아날로그입니다. 현장에서 잠을 자면서 바람 소리도 듣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도면은 첨단 기계로 할 수 있지만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죠.▶설계 기부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회사는 이윤을 다시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부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습관화되고 몸에 배어 있어야 하지 돈이 많다고 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안이 가톨릭 집안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이 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의사였기 때문에 환자에게 했지만 저는 건축을 통해서 한 것이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원하시면 좋은 것 만들어 드리고 국내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콜롬비아, 몽골 등에 설계 기부를 많이 했습니다. 광희문 성지순교 현양관은 신부님이 너무 고생하셔서 리모델링 설계를 해드렸습니다.▶회사 경영도 놀면서 하신다고 들었는데요.요즘은 휴대전화로 다 합니다.(웃음) 사람이 나설 때 물러설 때를 잘 알아야 하듯이 제 나이쯤 되면 후배들이나 파트너들에게 물려주고 물러나야지 나이 들어서 자꾸 있으면 그것은 노악(老惡)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제 역할이지 제가 연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이 일을 안 합니다. ▶회장님께서 놀면서 깨달은 인생이란 무엇인지요. 혼자가 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려하고 베풀고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인생이면 좋겠습니다. 남은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것은 고독과의 싸움이겠죠.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남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도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어요. 저는 대표이사라는 말을 잘 안 쓰고 대표사원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사원입니다. 직원들이 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 회사가 있는 것이지 제가 잘해서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천당 대신에 지옥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요.지옥에 가야 친구들도 많고 나쁜 사람도 더 만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천당에는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히틀러, 김일성도 거기 가면 볼 수 있을 걸요?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을 잘 선도하면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람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시흥 전진상 무료 진료소 준공 때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 감사패 대신 ‘천당 표 한 장 달라’고 부탁했더니 추기경님께서 “그거 구할 수 있으면 나도 좀 주게”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마음에 담아둔 성경 구절 있으세요.주님의 기도를 좋아하고요. 재미있게 들은 구절은 ‘하늘을 나는 새를 봐라. 먹을 것이 없는데도 저렇게 살고 있지 않으냐’하는 부분인데요. 인생을 살다 보니까 창고에 쌓아놓지 않고 저금통장에 돈이 없어도 항상 마음이 푸근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정계나 권력에 줄을 좀 대고 싶은 유혹은 없으셨나요.솔직히 매우 많았어요. 그런데 저의 지론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공짜는 없다’입니다. 정부가 선도하고 경제가 끌고 가고 정치가 잘 맞춰주면 나라 발전에는 참 좋습니다. 다만, 유착에 부패와 부조리가 생겨 문제가 되는 것이죠. 기술자는 기술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지 정치 논리에 자꾸 휘말리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좀 주세요.용기를 가져야 해요.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학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깡통이 되면 안 되잖아요. 모든 것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고요. 자신만의 기준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하게 친구도 사귀어 보고 고생도 해 봐야 용기가 생깁니다. 열심히 노는 게 좋아요. ▶어떤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리더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 놀아본 경험과 용기가 있어야 하고 희생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어도 돼요. 지갑에 돈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저는 더 나이 들면 혼자 놀아야 해서 요즘 판소리 단가를 몇 개 배우고 있습니다. 악기가 없어도 되잖아요. 방송 시각 TV : 14일 오후 7시, 15일 오후 11시, 16일 오전 8시 cpbc2017.03.08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8.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8185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8.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승리의 가시관’, 남용우 작, 1975,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예수 성심, 성모 성심’, 남용우 작, 1975,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건축가 유희준의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던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에는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남용우의 1970년대 대표작 ‘예수 성심, 성모 성심’과 ‘승리의 가시관’이 설치돼 있다.남용우는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당시 학장이던 장발에게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를 연구하라는 권유를 받고 졸업 후인 195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쾰른과 뮌헨 미술대학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글라스 페인팅 작업으로 유리 고유의 물성을 탐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독일 체류 중이던 1968년 서울 초동교회의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 여러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작품을 선보였다. 빛으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1975년에 완성된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센병 환우촌에 위치한 성당에 놓인다는 것과 수호 성인이 예수 성심, 성모 성심임을 고려해 이에 맞는 상징들을 도입하고, 강렬한 원색을 중심으로 한 추상적인 구성을 취했다. 작가의 의도에 따른 상징과 색의 상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궁극적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제대 뒤편에 놓인 ‘예수 성심, 성모 성심’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색과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나뉜 구획에 따라 작품 하단에는 한센병 환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목발과 승리의 상징인 빨마가지를, 화면의 상단에는 예수 성심을 표현했다. 여기에 납선으로 이뤄진 윤곽선에 검은색 안료로 페인팅을 더 해 거친 가시의 인상을 그려냄으로써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과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동일시해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붉은색과 푸른색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같은 색이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여러 톤의 색유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 더욱 풍성한 빛의 뉘앙스를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빛의 환희는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이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극복되고 기쁨으로 승화돼 예수 성심으로 향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렇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색의 상징으로 미사에 참여한 한센병 환자들에게 그들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며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제대 양옆 벽에 위치한 원형 창 중에 1975년에 설치된 ‘승리의 가시관’ 역시 붉은색과 푸른색을 주조로 추상적인 가시관의 형상을 페인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남용우의 초기 회화 작품인 ‘오상’(1958)의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그의 회화 작업들이 스테인드글라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술계 흐름과, 교우와의 소통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975년 설치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십자고상 뒤편의 긴 창과 왼편의 원형 창에만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스테인드글라스가 추가로 제작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시차를 두고 완성된 작품인 만큼 작품 경향이나 표현된 내용 등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독일 체류 시절의 작품에는 당시 미술계의 흐름이 적극적으로 반영됐고, 귀국 후 진행된 작업은 한국적인 것과 교우들과의 소통을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스테인드글라스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며 작품 안에서 교우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해 아직까지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이 참으로 매력적이면서도 쉽지 않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백영민2016.08.10
![[성경 속 도시] (26) 티아티라](//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277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6) 티아티라회개의 기회를 저버린 교회 상업 발달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티아티라의 유적지. 제공=평화방송여행사 김원창 티아티라는 ‘속죄물’이란 뜻을 지닌 요한 묵시록 교회 중 한 곳이다. 최초로 기원전 7세기께 리디아인들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고 ‘펠로피아’라 명명했다. 기원전 3세기께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인 셀레우코스가 이곳을 점령해 군대를 주둔시키고, 이곳에서 출생한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티아티라’라 불렀다. 그 후 도시를 확실히 정착시키기 위해 유다인들을 이주시킴으로써 상업도시로도 번성했다. 과거의 유적은 거의 묻혀 있고 도시의 한 모퉁이에 아폴로 신전과 회랑, 그리고 비잔틴 교회의 폐허만 남아 있다. 교회터에는 현재 석축 기둥과 담장만 남아 있다. 태양신 아폴로 영향 받아 티아티라는 지리적으로 비옥한 목초지가 있는 계곡을 끼고 형성된 도시다. 이곳 도시에서 발견된 동전에는 주석으로 된 갑옷을 입고 전차를 타고 전쟁에 나가는 태양신 아폴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도시 사람들이 태양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기원전 132년 로마가 아나톨리아에서 크게 세력을 얻게 되자 이 지역에서 태양신 아폴로는 로마 황제로 둔갑해 황제를 숭배하는 사상으로 바뀌었다. 티아티라는 당시 염색업뿐 아니라 직조, 피혁, 도기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장사하려면 동업 조합에 가입해야만 했고, 절기마다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조합원들은 조합 내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들은 아폴로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면 술을 마시고, 우상에게 바친 제사 음식을 먹고 마셨고, 제사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신전의 사제들과 음행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티아티라 교회를 향해 편지할 때 “이제벨이라는 여자를 용인하고 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한다”(묵시 2,20)고 했다. 실제로 티아티라 도시와 인연을 가진 인물은 리디아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에 탄복해 사도 바오로의 선교의 협조자가 됐다. 리디아로 인해 필리피 교회는 사도 바오로에게도 아주 특별한 교회가 됐다. 리디아와 그 가족이 첫 열매가 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큰 교회를 이루게 된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4-15). 회개하지 않아 책망 들어 리디아는 필리피 교회의 첫 영세자였다.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로 티아티라 출신이었다. 당시에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에서 자색 염료를 얻거나 자색이 나는 달팽이를 통해 원료를 얻었다. 자색 천 한 필을 염색하려면 많은 재료가 필요했다. 따라서 자색 천은 당연히 고가품으로 팔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자색 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의 신분이 왕족이나 귀족이었다고 전한다. 티아티라 교회는 성경에서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았다는 책망을 들었던 교회로 묘사된다.“내가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자기 불륜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라, 내가 그를 병상에 던져 버리겠다. 그와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 함께 저지르는 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속으로 던져 버리겠다”(묵시 2,21-22).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08.05
![[성경 속 도시] (22) 필라델피아](//cpbc.co.kr/CMS/newspaper/2014/07/rc/51836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2) 필라델피아박해에도 신앙 지킨 충실한 교회 필라델피아 유적지에 황폐하게 서 있는 성 요한 성당. 제공=김원창 현재 필라델피아를 찾으면 성 요한 성당이 황폐한 상태로 커다란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필라델피아’는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그래서 필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지역 통치자였던 유메네스 2세의 동생 아탈루스 2세에게 간신들이 그를 왕위에 오르도록 충동질했다. 그러나 동생은 이를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후 형이 죽고 동생이 왕이 되자 형제 사랑의 표시로 이 도시의 이름을 필라델피아로 명명했다. 이 도시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릴 만큼 많은 신전이 있었고 수많은 종교행사가 거행되었다.지리적으로는 로마의 문화가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관문에 자리 잡고 있다. 코가미스 계곡에 자리 잡은 필라델피아는 동쪽 지역으로 가는 통로였다. 이곳은 직물과 가죽산업이 발달했고, 포도 재배지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최고신이 포도주 신인 디오니시우스라는 것만 보아도 포도재배와 포도주 생산이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요한 묵시록 첫 장에 등장하는 7개 교회 중 하나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묵시 1,11).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소개된 필라델피아 교회는 칭찬만 받은 모범적인 교회였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묵시 3,8). 필라델피아는 기원후 19년쯤 지진으로 성읍이 대파됐으며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재건됐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신자 수가 적었지만, 신앙이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교회였다. 또 필라델피아 교회의 신자들은 신분이나 지위가 변변치 못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아주 적은 능력을 갖춘,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필라델피아 교회는 특별히 칭찬을 받았다. 그들은 작은 능력으로도 하느님 말씀을 잘 지켰다. 또 당시 소아시아에서는 로마의 박해가 계속됐다. 그래서 박해가 두려워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가 하면, 이교도와 타협하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필라델피아 교회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교회가 직면했던 도전은 밖에서 오는 박해만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의 도전도 거셌다. 일부 신자들은 유다인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교회를 파괴하려고 했다. “보라, 나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이렇게 하겠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라,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묵시 3,9). 이처럼 필라델피아 신자들은 교회 안팎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07.09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5> 6번 찬미 노래 부르며](//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7682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번 찬미 노래 부르며마침 성가로 많이 불리는 성가 “찬미 노래 부르며 주 대전 떠납니다”라는 6번 ‘찬미 노래 부르며’ 가사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제의 파견에 대한 응답으로 적합하기에, 흔히 미사 마침 성가로 가장 많이 불리는 성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성가의 기원을 살펴보면 하루를 향해 세상에 파견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웰 메이슨. 이 성가 작곡자인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은 「가톨릭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를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그는 사실 전문적인 음악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그저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틈틈이 곡을 쓰던 아마추어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보스턴에 있던 ‘헨델과 하이든협회’라는 음악 단체에서 그의 곡을 출판해 줬고, 이것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가 1824년 만든 이 성가 선율의 타이틀은 ‘안식일’이다. 한편 이 성가 선율에 맞춰 가장 많이 부르는 원어 가사는 존 뉴튼(John Newton, 1725~1807)이 지은 ‘지난 이레 동안에’(Safely Through Another Week)이다. 뉴튼은 영국 성공회 성직자이자 찬미가 작사가로서 우리 「가톨릭 성가」 458번 ‘주의 말씀 듣고’의 원어 가사가 되는 찬미가를 쓴 사람이면서 동시에 유명한 ‘Amazing Grace’의 가사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깊은 신심을 지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나, 그가 7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내 새어머니를 맞았으나 적응하지 못한 채 10살에 선원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항해를 떠나게 된다.그는 주로 서아프리카 노예선에서 일했는데, 이 당시 아프리카 흑인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때였다. 이렇게 흑인들을 짐승처럼 취급하며 일하던 중 그가 탄 배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침몰과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기도했고, 그 기도 덕분인지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내 선원 생활을 그만둔 그는 성경과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어 호소력 있는 설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83세로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기억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두 가지만은 분명히 기억합니다. 하나는 내가 대단히 큰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이 가사는 1774년 만들어졌으며, 그의 동료였던 윌리엄 카우퍼와 함께 1779년에 출판한 「올니 찬미가집」(Olney Hymns)에 수록되어 있다. 이 찬미가집은 당시 주로 시편을 성가 가사로 하던 분위기 속에서 시편이 아닌 새로 작곡된 복음 찬미가들을 수록했던 모음집이라는 데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원어 가사가 “또 다른 한 주를 안전하게 지내온 우리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셨네…”로 시작하는 이 성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숨겨진 하느님 은혜의 손길을 노래하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한 손복희 수녀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가사로 꾸며 놓았다. 이 성가는 하루 혹은 한 주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이 순간까지 인도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을 향해 또다시 파견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아침 기도나 새벽 미사에 가장 적절한 성가라고 할 수 있겠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백영민2016.02.03

재미·상상력 더한 영화, 성경 공부 부록으로 제격이정훈·백슬기 기자가 이야기하는 성서주간 영화 올해엔 어느 때보다 성경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성서 주간(23~29일)을 맞아 영화로 보는 성경 읽기는 어떨까. 평화신문 문화 담당 기자들이 ‘성서 주간에 볼만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이정훈 기자 : 올해는 이른바 ‘성경 영화의 해’였다고 할까요? 성경을 주제로 한 영화가 참 많았어요.백슬기 기자 : 뭐니뭐니해도 영상 시대잖아요. 성서 주간에 성경 내용을 담은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구세사를 역동적으로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이: 특히 「노아」와 「선 오브 갓」 등이 많은 관객의 관심을 얻었죠.백: 「노아」는 러셀 크로우, 엠마 왓슨 등이 열연한 대형 블록버스터였죠. 어마어마한 방주가 파도를 거슬러 힘겹게 나아가는 장면의 그 규모는 지금껏 성경 소재 영화 가운데 최고였죠. 거대 민족을 이끄는 가장이자 인간으로서 노아의 고뇌를 잘 드러냈죠.이: 하지만 기대에 비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했어요. 노아의 아들 셈, 함, 야펫의 가족 관계나 뱀 가죽으로 의식을 행하는 모습 등은 성경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이었죠. 러셀 크로우는 흔히 생각하는 따뜻한 노아의 이미지와도 다소 상반됐고요.백: 하느님께서 왜 사람과 동물을 각기 짝을 이뤄 방주에 타게 했는지 아세요? 서로 돕고 사랑하도록 이끄시고자 하신 거예요. 2007년 개봉한 「에반 올마이티」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유쾌하게 그려내면서도 성경이 지닌 교훈을 잘 전달해줬죠.이: 「에반 올마이티」의 톰 새티악 감독은 ‘전능한’(almighty) 시리즈를 내놓으며 딱딱하게만 여겨지던 종교 소재를 재치있게 다룬 사람이죠. 짐 캐리가 열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도 청소년들까지 사로잡았죠. 유쾌한 종교 영화 또 안 나오나요?백: 올해 4월 부활시기에 맞춰 개봉한 미남 예수님이 등장한 「선 오브 갓」은 마르코 복음서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예요. 고기 낚는 베드로와 군중 5000명에게 빵과 물고기를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 중풍환자를 일으키는 모습 등에서 예수님의 인자한 성품을 눈앞에서 보듯 잘 표현했죠.이: 딱 10년 전 개봉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비교하자면, 분위기가 차분하고 서정적이면서 영상미가 가미됐죠. 군중과 제자들 앞에서 주님에 대한 믿음과 당당함을 놓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도 드러나 있어요.백: 「선 오브 갓」은 미국 히스토리채널 드라마 「더 바이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에요. 지난 10월 국내에서도 5주간 방영됐었죠. 아담과 하와 이야기부터 예수님 부활까지 신ㆍ구약 성경을 10부작으로 다뤘는데, 배우들 연기가 매우 실감 나요.이: 올해 말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기를 그린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죠?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의 할리우드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무엇보다 성경 영화는 그냥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을 함께 읽으며 감상하는 게 관건이라고 봐요. 그걸 제대로 포착하려면 말씀 내용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백 : 영화가 지닌 상상력, 표현력과 함께 성경 내용을 잘 되새기며 보는 게 성경 영화를 감상하는 핵심일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성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되새긴다면 더욱 유익하겠죠?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슬기 기자 jdarc@ 평화신문2014.11.18
![[추기경 정진석] (29) 새로운 세계](//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4118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29) 새로운 세계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 그 감격의 현장에 함께 1968년경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성베드로 대성전을 배경으로 한국 신부들과 함께한 정진석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 로마! 정진석 신부는 드디어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정 신부의 로마행에는 작은 행운도 따랐다. 때마침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 교회 역사상 43년 만의 시복식인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전세기를 빌려 역사적인 시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정진석 신부는 이 비행기로 함께 가기로 했다. 혼자서 여러 번 갈아타는 비행편에 비하면 시간도 절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그 긴 여행을 같은 동포 신자들과 같이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정진석 신부의 입학이 결정된 학교는 로마의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였다. 우르바노대학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 신학교로 선교 지역에서 온 신학생, 신부들을 주축으로 지역 교회에서 헌신할 사목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중심을 둔 역사 깊은 신학교였다. 세계 곳곳의 선교지에서 학생들이 오기에 나라와 인종이 매우 다양했다. 아프리카만 해도 수십 개나 되는 나라에서 학생들이 왔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외국의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거나 미사를 하면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모두가 하나의 언어(라틴어)로 기도와 노래를 하는 것은 보편 교회에 대한 연대를 생각하게 했다. 문화와 언어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 자체가 정진석 신부에게는 공감과 유대의 큰 체험이었다.공의회가 가져온 변화당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 많은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세계 교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보다 ‘평신도의 교회 참여’였다. 공의회는 평신도를 “각기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교회헌장」 33항)으로 인정하여 세속의 복음화와 성화를 위한 고유의 사도직 임무를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하나의 큰 흐름은 전례의 토착화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전례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미사를 모국어로 집전토록 하고, 성경과 교회법전 등의 자국어 번역을 장려했다. 그리고 성당 제단 벽면에 붙어 있던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가운데로 옮겨졌다. 제단과 신자석을 가로막던 난간도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일치 운동과 비그리스도교 문화 혹은 타 종교와의 관계 개선을 권장해 각 지역 교회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은 공의회가 변화시킨 교회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한국도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던 터였다. 정진석 신부는 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다.베드로 대성전에서의 시복식1968년 10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시복식은 한국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시복식이었다. 1차 시복식은 1925년 7월 5일 거행됐다. 당시 시복식에는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두 분이 참석했다. 조선의 두 주교는 수행원도 없이 부산에서 출발해 고베, 상해, 홍콩, 싱가포르, 사이공, 수에즈 등을 거쳐 마르세유에 닿는 여정으로 로마에 당도했다. 당시 「경향잡지」 편집을 맡고 있던 한기근 신부는 조선인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5월 11일 로마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7월 1일에는 뉴욕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장면ㆍ장발 형제가 로마에 당도했다. 이로써 1925년 첫 시복식에는 단 3명의 한국인이 참석했다. 1968년 10월 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두 번째 시복식에는 많은 신자가 참석했다. 한국에서 민간인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전세 냈다. 두 번째 시복식에는 2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한국인 순례단 136명,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 65명, 그리고 유럽에 사는 유학생 등이 참석했다.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시복 미사는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미사의 여러 부분에 한국어가 사용됐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1969년 추기경 서임)가 교황을 대리해 미사 주례를 맡았다. 김수환 대주교가 입장하자 ‘칙서’가 낭독됐다. 라틴어 원문 낭독에 이어 이인하 대전교구 부주교가 한국어로 낭독했다. 김수환 대주교의 선창으로 ‘떼 데움(Te Deum)’이 시작될 때 성당 전면에 걸려 있는 복자들의 초상화 가림막이 걷혔다. 이어 대미사가 봉헌됐다. 미사 마지막에는 교황청 성가대가 이문근 신부가 작곡하고 최민순 신부가 작사한 ‘장하다 복자여~’로 시작하는 ‘복자 찬가’를 합창했다. 웅장한 한국어 성가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가득 울리자 이내 성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이날 오후 성체강복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날 시복된 새 복자들에게 경배한 후, 한국의 24위 순교자들을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신앙의 귀감’이라고 극찬하며 한국이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온 신자들은 교황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다음날 한국 신자들은 김수환ㆍ노기남ㆍ장병화 주교와 함께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신자들이 바티칸을 순례하는 것도 어려웠고, 교황 알현은 더더욱 어려웠다. 교황은 거듭 한국 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표하며 성작을 선물했다. 한국 교회와 순교자의 후손, 신자들의 선물에도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시복식은 당시 교회뿐 아니라 국내 일반 매체에서도 호응이 높았다. 이후 교회에서는 엄청난 순교자 현양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시성식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유학생 정진석 신부정진석 신부는 시복식 당일 성 베드로 대성전 옥상에 올라가 시복식을 생중계하는 데 참여했다. 정 신부의 로마 생활은 한국 신앙 선조들의 시복식으로 시작한 셈이었다. 시복식 사흘 뒤인 9일 우르바노대학에 입학했고, 수업은 15일 뒤에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학기에 들어갔다. 강의는 라틴어로 진행돼 강의를 듣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3년간 라틴어 교사로 지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유학생활에서 어려운 것으로 식사와 언어를 꼽을 수 있는데, 다행히 이탈리아 음식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언어도 말하고 듣고 쓰는 데 문제가 없으니 정 신부의 유학 생활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니 공부도 재미있었다. 공부하다 지칠 때면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우르바노대학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정 신부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바라보며 지난 시복식의 감동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향한 주님 은혜에 감사함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끔 주말이 되면 로마에 있는 후배 신학생들과 함께 장을 보고 한국 음식을 해먹으며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감사하게, 쉼 없이 열심히 공부한 덕에 1년 반 만에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평화신문2016.12.14

위기의 지구, 인간의 변화와 실천 재촉하네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공부·해석하는 포럼·세미나 잇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회칙을 다양한 관점에서 공부하고 해석하는 포럼과 세미나, 심포지엄 등이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11월 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비추어 본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통합 생태’를 주제로 정기세미나를, 이에 앞서 24일에는 정평위 환경소위원회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찬미받으소서」를 성서ㆍ생태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톨릭 에코포럼’을 열었다. 정기세미나와 에코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공동의 집 △신학적 성찰 △통합의 생태 △성서신학과 「찬미받으소서」 등 네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공동의 집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회칙 「찬미받으소서」 첫 장의 제목이다. 어떻게 하면 교황이 말한 ‘공동의 집’에서 모든 피조물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태 위기와 공동체 해체 시대, 「찬미받으소서」가 주는 울림에 대하여’를 발표한 박승옥(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은 공동의 집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했다. 내가 소중하듯 이웃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고, 재물과 음식을 탐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고, 풀 한 포기 생명체도 허투루 다루지 말고, 음식과 물건들을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찬미받으소서」는 예수님이 일깨워주셨던 이런 평범함과 상식의 힘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이웃과 함께하는 ‘연대’를 강조하며 “공동의 집’이 없는 개인 구원은 불가능할뿐더러 신기루 같은 환상”이라고 했다. 박 이사장은 “「찬미받으소서」는 공동의 집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웃 생명체인 풀과 나무와 벌레와 짐승 모두가 들어와 함께 살 자격과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생태 구원은 하나라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단순히 분석과 비판만 하고 행동과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오직 삶과 현실을 바꾸는 실천만이 하느님이 주신 피조물들의 다채로운 무지갯빛 우애의 집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공동의 집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신학적 성찰개신교 신학자는 「찬미받으소서」를 어떻게 바라볼까. ‘복음서로서 창조 세계 : 「찬미받으소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발표한 최광선(호남신학대 영성신학 교수) 목사는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 인간중심주의, 반생태적 문화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타당하며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잘 인식하도록 도와준다”면서 “다만 왜 그동안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이 기술ㆍ산업 사회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파괴하는 동안 침묵했거나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진단이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최 목사는 또 “「찬미받으소서」는 ‘다양한 관계를 드러내는 전체로서 우주는 하느님의 다함 없는 풍요로움을 드러낸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통해 다양성이 궁극적 신성을 드러내는 방법임을 강조한다”면서 “다양성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고, 자연 전체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자 하느님을 현시하는 곳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최 목사는 ‘생태적 권고의 부족함’을 「찬미받으소서」의 아쉬운 점으로 들면서도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해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누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류 문명사와 지구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통합의 생태교황은 「찬미받으소서」 4장에서 ‘통합 생태론’의 다양한 요소에 관한 성찰을 제안한다. 교황은 통합 생태론을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오늘날 문제들이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통합의 생태를 향한 한국천주교회의 노력-쇄신, 복음화, 대화’를 발표한 박동호(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부는 ‘통합의 생태’를 위해 한국 교회는 쇄신하고, 복음화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사실 쇄신과 복음화와 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의 교역과 생활에 관한 교령’에서 언급됐기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면서 “공의회가 폐막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생소하다면 그동안 한국 교회가 ‘쇄신, 복음화, 대화’를 회피ㆍ무시했거나, 우리 교회의 요새가 너무 높고 견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신부는 또 “무엇보다도 성직자와 봉헌생활자들의 책임과 ‘사회적 부채’에 대해 고통스럽게 성찰해야 한다”면서 이는 “(쇄신, 복음화, 대화에 있어) 성직자와 봉헌생활자의 책임과 부채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정직하고 공개적인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생태신학의 관점에서 본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이재돈(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신부는 “회칙은 우리가 생태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필요한 생태적 회개와 생태교육, 생태영성, 더 나아가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사랑을 제시한다”고 말했다.성서신학과 「찬미받으소서」잘못된 성경 해석이 생태 위기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성서신학의 관점에서 본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최승정(가톨릭대) 신부는 성서적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바라본 2장(피조물에 관한 복음)을 분석하며 이런 주장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회칙 67항은 “사람들은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 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 착취를 조장했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교회가 이해한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최 신부는 “생태론자들은 성경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오늘날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하곤 했다”면서 “그리스도교가 말씀을 부정확하게,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했기에 생태론자들의 비난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이 성경을 인간 중심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최 신부는 이어 “성경은 하느님 중심, 즉 신 중심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인간 역시 피조물이며 따라서 인간에게 여타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의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면서 “창세기 1장 28절의 ‘지배’의 개념은 (땅을) 일구고 돌본다(창세 2,15)는 의미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2015.12.01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17. 제4장 혼인의 사랑 ⑥ (142~152항)성(性), 하느님이 피조물에 주신 놀라운 선물 격정적인 사랑(142~144항)부부 사랑은 “인간 전체의 행복을 다 포괄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몸과 마음의 표현을 특수한 품위로 풍요롭게 하고 또한 이 표현들을 부부 애정의 특수한 요소와 표시로 삼아 고귀하게 할 수 있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르친다(「사목헌장」 49항). 부부 사랑은 단순히 정신적인 사랑, 영적인 사랑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말하자면 성애(性愛)와 감정으로도 표현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제 부부 사랑과 감정의 세계에 대해 언급한다. 감정의 세계(145~146항)욕구와 느낌과 감정, 열정(passion) 등은 모두 혼인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실제로 현세를 사는 인간이 추구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즐거움과 아픔, 기쁨과 슬픔, 온유함과 두려움 같은 감정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 또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당신을 거부한 것에 대해 아파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셨다. 예수님의 이런 민감함은 그분의 인간적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열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우리가 “좋다고 느낀다”고 해서 정말로 좋다고 보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느낌이, 예를 들어 사랑한다는 감정이 실제로 가정 전반에 또 가족의 공동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내나 남편에 대해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나 느낌 자체를 가지고 아내나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은 자녀들의 기쁨을 사랑하신다(147 ~149항)“교회는 그 모든 계명과 금기로 삶의 가장 고귀한 것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창조주의 선물인 기쁨이 우리에게 신적인 것을 어느 정도 미리 맛보게 해주는 행복을 주는 바로 그 순간에 교회가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닌가?”(147항)이 내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에로스(남녀의 사랑)와 관련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세간의 그릇된 인식을 질문 형태로 표현한 것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의 기쁨」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베네딕토 16세는 그리스도교가 에로스를 독살하는 바람에 에로스가 점차 악한 것으로 변질돼 버렸다고 주장한 20세기 무신론적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의 답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과장이나 일탈한 형태의 금욕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성경에 충실한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에로스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곡되고 파괴적인 형태의 에로스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에로스를 그릇되이 신격화하는…행위는 사실상 에로스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에로스를 비인간화하기 때문이다”(147항;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항).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그러나 에로스가 절제되고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로스가 인간에게 단순히 순간적 쾌락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절정 곧 우리의 온 존재가 열망하는 지복을 어느 정도 미리 맛보게 해주려면 에로스는 절제되고 정화되어야 한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항).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교황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본능의 영역에서는 훈련이 필요할 뿐 아니라 때로는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과도할 때, 억제하지 못할 때, 또는 즐거움에만 집착할 때는 오히려 그 즐거움 자체를 약화시키고 가정생활에 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본능에, 감정에 절제와 정화가 필요하고 성숙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랑의 에로틱한(性愛) 차원(150~152항)여기서 혼인의 성적 사랑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性)은 하느님 친히 창조하신 것이고 당신 피조물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150항)이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몸의 신학’으로 혼인과 가정생활의 의미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따른다. 그래서 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 또는 성이 출산을 위해 필요하기에 관용할 따름이라고 하는 주장은 교회의 가르침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적 욕구는 멸시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150항). 성애(性愛)는 “부부의 관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하느님의 선물로 보아야 한다”(152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8.24

한국 교회 속 ‘작은 독일 교회’ 30주년서울 국제본당 소속 독일 공동체, 재한 독일인, 한·독 가정 등 참석
사회 나눔 확대 계획 6일 봉헌된 독일공동체 설립 30주년 기념 미사에서 독일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서울 국제본당 소속 독일 공동체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수도원 내 성당에서 유경촌(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 주례로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1977년 설립된 서울 국제본당에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외국인 공동체가 있다. 초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공동체 미사를 해온 본당은 1987년 현재 자리로 옮겨 공동체별 미사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독일 공동체가 어느덧 설립 30년을 맞은 것이다.이날 독일어로 미사를 주례하며 독일 신자들과 교류한 유경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30년 세월을 한국교회와 함께해온 공동체가 주님 울타리 안에 독일인의 아름다운 신앙을 더욱 전하는 가교가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독일 공동체는 독일 주교회의에서 파견된 사제가 공동체 사목을 맡아왔다. 그러다 독일 현지 사제 감소 등의 이유로 최근 독일인 사제 파견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수도회 사제들이 돌아가며 미사를 주례해오고 있다. 대신 독일 주교회의는 공동체 책임자로 2014년 첫 평신도 여성 책임자인 유타 하슬러씨를 파견했다.현재 공동체에 나오는 신자는 독일인 한국 주재원, 독일-한국인 가정, 파독 간호사 등 7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교회 주요 전례에 따른 축제를 함께 열고, 성경 모임을 하며, 10여 군데 자선단체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독일 공동체 책임자 유타 하슬러씨는 “우리는 한국 속 ‘작은 독일 교회’로서 양국을 신앙으로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독일인 영성을 다지는 공동체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서울역 인근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이 있는 ‘한사랑 가족 공동체’ 등 사회복지 시설과 연계한 나눔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6.03.15

자비의 특별 희년에 맞는 성모성월에 어울리는 책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프란치스코 교황 지음/엘레나 인베르세티 엮음/이정석 옮김/가톨릭출판사/1만 원프란치스코 교황의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다음 날 가장 먼저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찾아 기도했다. 해외 사목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가서 성모님께 인사드린다. 자비의 특별 희년 시작일을 12월 8일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정한 것만 봐도 교황이 얼마나 성모님께 의지하는 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은 성모님 삶과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우는 교황의 말씀 모음집이다. 교황은 성모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님께 우리를 이끌어 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더욱더 성모님께 의탁하고 간구하기를 요청한다.교황은 “성모님은 늘 서둘러 오신다”고 했다.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모님의 은총을 기억합시다.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시고, 절대 우리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그 은총을 말이지요. 성모님은 늘 우리를 위해 서두르십니다”(52쪽).책은 부록으로 성모님께 드리는 여러 기도문을 실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아파레시다의 성모님께 드리는 봉헌문 △성모님께 교회를 의탁하는 기도 △파티마의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등을 담았다. 자비의 어머니-성모님과 함께 한 달을마리 폴 파란 지음ㆍ그림/김영주 옮김/성바오로/5000원요셉의 아내, 동정녀 중에 동정녀, 순종의 여인, 천상의 별, 세상의 여왕…. 모두 성모님을 표현하는 말이다. 책은 성모님의 삶과 영성을 하루에 하나씩 묵상하도록 이끈다. 성경 말씀과 묵상 글, 기도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돼 있는데, 기도와 묵상 글은 고대 사막 교부나 중세 수도자들이 성모께 바친 기도와 동방 교회 전례에서 전해오는 기도 등에서 발췌했다. 교회 역사 초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교부들과 신비가들은 성모님의 신앙과 삶을 묵상하고, 성모님께 대한 경탄과 사랑, 공경을 표현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이집트 출신의 마리아 폴 파란(성 베네딕도회) 수녀다. 이콘 전문가인 파란 수녀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이콘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매일 하나씩 성모님 이콘을 보며 묵상해도 좋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