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친교 이루며 사랑 실천에 힘쓰자전국 교구장 2015년 사목교서, 어떤 내용이 담겼나 교구장 주교가 교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하는 사목교서는 새해 교구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사목 청사진이다. 따라서 사목교서를 보면 그 교구가 어떤 사목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교구장마다 사목 지향이 다른 만큼 사목교서의 내용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통일된 흐름을 찾기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과 방한 메시지는 대다수 주교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근래 발표되는 사목교서는 1년이 아니라 장기적 단위의 계획에 따른 교서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큰 흐름에서 몇 개의 주제를 잡아 사목교서에 나타난 한국 교회의 향방을 짚어본다.성경과 기도성경 공부와 기도라는 신앙생활의 기초에 충실할 것을 요청하는 교구가 많았다. 염수정(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은 “많은 고민과 부담을 안고 사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날마다 기도 안에서 주님과 가까이 지낸다면 복음의 기쁨을 누리면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며 기도 없이는 복음화가 불가능하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상기시켰다. 유수일(군종교구장) 주교는 “지난 3년을 ‘신앙, 희망, 사랑’의 해로 지내왔는데, 이를 완성하려면 기도를 해야 한다”면서 끊임없이 감사하고 기도하는 한 해를 보낼 것을 요청했다. 유흥식(대전교구장)ㆍ안명옥(마산교구장)ㆍ황철수(부산교구장) 주교는 성경 공부에 초점을 맞췄다. 유 주교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해’라는 사목교서를 통해 성경 공부와 필사가 신앙생활에 큰 활력과 확신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안 주교는 내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영적 쇄신을 위한 방안으로 성경 읽기와 필사, 가정 기도 바치기 등을 강조했다. 황 주교는 존중과 배려, 희생과 섬김이라는 복음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영성문화운동으로 성경 읽기와 성경 나눔, 성경 피정, 신심서적 읽기 등을 제안했다. 가정 복음화가정 사목이 모든 사목의 출발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정을 주제로 지난 10월 세계 주교 시노드 임시총회를 개최한 데 이어 내년에 정기총회를 열기로 함에 따라 가정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는 추세다.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년간 가정 복음화를 추진해온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는 세계 주교 시노드 결과와 연계해 가정 사목에 지속적으로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어 세대(가정)별 신앙 활성화와 일치를 본당 복음화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최기산(인천교구장) 주교는 성가정이 되는 한해를 기원하면서 △기도하는 가정 △대화와 사랑의 공동체 실현 △고통 속에 있는 가정에 관심 △함께 봉사하는 공동체 등을 제시했다. 김운회(춘천교구장) 주교는 “가족은 운명 공동체로서 가정의 냉담 교우가 신앙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와 새롭게 만나는 기쁨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며 자체 개발한 선교 프로그램으로 가정 공동체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2015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축제의 해를 보내는 김지석(원주교구장) 주교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하느님’이라는 제목의 사목교서에서 사랑 안에서의 실천을 통해 가정과 교회에 기쁨이 충만하게 함으로써 복음적 생명력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이웃과 함께하는 교회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사회적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복음에 따라 교회 밖의 어려운 이웃과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감싸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조환길(대구대교구장)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나 자신과 하나라고 여기며 다른 이를 향하여 쏟는 사랑의 관심을 역설하셨다”면서 “소외된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찾고 섬기는 데 힘으로 모았으면 한다”고 권고했다. 장봉훈(청주교구장)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인 2015년을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정하고, 세상에 파견된 교회로서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우선적으로 찾아 나서는 선교 활동 △지역의 소외된 청소년들을 찾아 나서는 청소년 사목 활동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찾아 나서는 가정 사목 활동을 당부했다. 교구 50주년(2013년) 표어를 ‘소통과 참여로 쇄신하는 수원교구!’로 정한 이용훈(수원교구장) 주교는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소통이 사랑의 체험을 전제하듯이, 교회가 표방하는 소통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면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청했다. 「복음의 기쁨」프란치스코 교황을 알려면 「복음의 기쁨」을 읽어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복음의 기쁨」은 교황 생각의 정수를 집약한 책이다. 이병호(전주교구장) 주교와 이기헌(의정부교구장) 주교는 「복음의 기쁨」에서 사목의 실마리를 찾았다.이병호 주교는 “그리스도인-제자-복음 선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일깨우는 「복음의 기쁨」의 정신과 방법에 따라 복음 선포의 주역이 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밖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의정부교구 새로운 10년의 좌표를 제시한 이기헌 주교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과 방한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복음의 기쁨을 사는 삶,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선포 등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셨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 백성은 이 세 가지 핵심을 삶의 방향으로 삼아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안동교구(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을 ‘2차 선교의 해’로 보내면서 사목교서를 따로 발표하지 않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선교하기’라는 제목의 사목지침을 통해 선교 지향적인 모습으로 쇄신함으로써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교구 공동체로 나아가기로 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cpbc2014.11.26
![[성경 속 도시]<10>이스라엘 백성이 쓴물을 마신 곳, 마라](//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234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이스라엘 백성이 쓴물을 마신 곳, 마라 목마른 백성 위해 쓴물을 단물로 바꾼 주님 지금도 종려나무가 많은 마라의 우물가. 모세는 이 우물의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켰다. 리길재 기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탈출했다. 성경은 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제외하고 걸어서 행진한 장정만도 60만 명 가량이나 됐다고 전한다. 그 밖에도 많은 이국인, 양과 소 등 가축 떼도 많았다(탈출 12,37-38). 일행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인도에 따라 갈대 바다를 건넜다. 이들을 잡으려고 뒤따르던 이집트의 병거와 기병들은 수장됐다. 갈대 바다를 건넌 일행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은 지중해를 따라 해안가를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행은 광야로 나갔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탈출 15,22).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했다. "피 하히롯을 떠나서는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서 광야로 나가, 에탐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걸어가 마라에 진을 쳤다"(민수 33,8).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이곳 우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느님께 원망을 퍼부었다.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불평했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물이 됐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성경학자들은 마라 지역이 오늘의 '아윤 무사'(AyunMusa)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집트말 아윤은 '우물'을, 무사는 '모세'를 뜻한다. 곧 '모세의 우물'이다. '마라'는 우리말로 '쓰다, 쓴맛, 슬픔'을 의미한다. 이곳 물이 쓴 이유는 지금도 지하수에 소금기가 있는 물이 나와 민물과 섞여 쓴맛을 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나무는 어떤 나무였을까? 마라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 중에는 '종려나무'가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종려나무는 야자나무의 일종인 대추야자나무를 말한다. 대추야자나무의 열매는 산성을 띠고 있다. 지금도 마라에 거주하고 있는 베두인들은 자생하는 대추야자나무의 덜 익은 열매로 알코올이나 식초를 만들어 사용한다. 모세는 대추야자나무를 던져 물을 중화시켰을 것이다. 모세의 우물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는 모래벌판에 수십 그루의 대추야자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이곳은 오늘날 시나이산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다. 황량한 광야뿐인 이곳에 적응해 살고 있는 민족은 오직 베두인뿐이다. 이 지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일 뿐 아니라 지중해 저편에 있는 유럽 대륙에서 시나이반도를 거쳐 홍해와 인도양을 통해 동양으로 가는 교두보다.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쓴 물을 마신 것은 이집트를 탈출해 시나이반도로 들어와서 겪게 되는 첫 번째 시련이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cpbc2014.03.18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 (1) 톨레도](//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7924_1.0_titleImage_1.jpg)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역사 탐방] (1) 톨레도16세기 분열의 풍파에도 오롯이 걸어온 톨레도 성체 행렬 주교회의 주최로 교회 쇄신과 영성의 땅 스페인 교회를 6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 9일 일정으로 순례했다. 16세기 교회 분열 시기 교회의 쇄신을 주도한 맨발의 가르멜회가 시작하고 예수회의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태어난 곳, 20세기 꾸르실료와 오푸스 데이가 탄생한 땅.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 있는 스페인 교회에 대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엘 그레코의 그림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한 폭 그림이 옴짝달싹 못 하게 얼어붙게 했다. 엘 그레코가 45살 되던 해인 1586년에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작품이다. 스페인 톨레도 산토 토메(성 토마스 사도) 성당 안 오르가스 백작 무덤 위에 걸린 이 그림을 마주하면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그림은 당시 ‘의로운 사람’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장면과 그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가슴 뛰게 한 장면은 그림 한가운데 배치된 천사가 오르가스 백작의 ‘의로운 영혼’을 자궁처럼 묘사된 어머니의 태(胎)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이다. 그 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좌우편에 성모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가 자리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교회’를 의로운 인간이 죽은 후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궁으로 묘사한 것이다. 묵시적이고 영적인 기발하고 놀라운 표현이다. 엘 그레코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16세기 유럽은 ‘교회 분열’이라는 대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다.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은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 ‘은총’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하느님께서 오직 당신 은총으로 사람을 의롭게 하시기에 오르가스 백작처럼 구원받기 위해 굳이 선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제도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표현으로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부인하면서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해석했다.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불길에 맞서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트렌토) 공의회’를 열었다.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18년에 걸쳐 진행된 이 공의회는 지금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견줄 만큼 혁신적인 교회 쇄신을 단행했다. 공의회는 로마 표준 라틴어 성경과 미사 경본, 시간 전례서, 교리서 등을 마련했고, 신학교와 수도원 정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선행 실천을 권고했다. 아울러 일곱 성사가 교회의 참된 성사임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실재하신다고 재확인했다.격랑의 시기,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톨레도는 격랑의 이 시기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교두보이자 중심지였다. 당시 스페인 국왕은 펠리페 2세(1527~1598)였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그림에도 등장하는 펠리페 2세는 프로테스탄트와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과 네덜란드, 시칠리아, 사르데냐, 밀라노, 나폴리, 튀니지, 필리핀, 아프리카 일부와 중남미 전역을 다스리던 그는 통치 이념을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두고 죽을 때까지 트리엔트 공의회 회기 결의 사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체 거동’ 즉 성체 행렬이다. 성체성사를 거부하는 프로테스탄트에 저항해 펠리페 2세와 스페인 교회는 톨레도 대성당에서 출발해 도심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성체 행렬’ 예식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때마다 시행하면서 성체에 대한 신앙 고백을 공적으로 드러냈다.전례력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 성체 성혈 대축일(올해는 6월 4일)을 지내는데 때마침 톨레도를 방문한 7일 톨레도 대성당 제대에는 성체 행렬을 마친 성체 현시대(성광)가 놓여 있었다. 교회 분열의 파국을 막고 가톨릭 신앙과 성체성사의 신비를 고백하기 위해 톨레도 전역에 높이 들렸던 바로 그 성체 현시대였다. 1524년 제작된 이 현시대는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순금 18㎏에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돼 있는데 모두 신자들이 기도와 함께 자발적으로 봉헌한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는 16세기 교회 분열 때처럼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반생명 문화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톨레도 대성당 제대 위의 성체 현시대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대 사회의 도전에 맞서 굳건히 신앙과 교회를 고수하고 쇄신해 나갈 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에 답하듯 톨레도 시민들은 지금도 매해 성체 성혈 대축일이면 이 성체 현시대를 앞세워 성체 행렬을 하고 있다.이처럼 톨레도는 타호강을 둘러싼 난공불락의 성채 도시 모습 그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보루이자 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톨레도는?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67km 떨어진 카스티야 왕국의 옛 수도. 톨레도라는 이름은 로마제국 시대 이 지역을 톨레툼(Toletum)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됐다. 로마제국 이후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번성하다 711년 무어왕 타릭에 의해 점령된 후 374년간 이슬람의 땅이 됐다. 이후 1085년 카스티야 왕국 알폰소 6세가 수복,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할 때까지 왕국의 수도로 정치, 종교, 문화, 산업의 중심지였다.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하면서 쇠락해갔으나 톨레도 대성당은 지금도 스페인 교회의 수석 성당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톨레도 전경. 평화신문2015.06.23
![[성경 속 궁금증] 91. 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10/rc/48059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91. 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 전적으로 신뢰지오토 디 본도네,'가난 부인과 결혼하는 성 프란치스코', 1296~1298년께, 프레스코화,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가난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적, 물질적 결핍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재물을 하느님의 축복이며 인간이 희망하는 대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사회에 불의와 부정이 생기게 됐다. 또한 사회적 가난과 물질적 결핍의 원인이 권력자나 부자들의 착취와 이웃에 대한 무자비함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이런 부정한 현상은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됐다. "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 가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그 안에서 살지 못하고 포도밭을 탐스럽게 가꾸어도 거기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아모 5,11). 성경에서는 점차로 가난하고 압제 받는 자는 선량한 사람들이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생활 이후에는 '가난한 이와 억압받는 이'가 축복받을 의인들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 됐다. 신약성경에서 가난은 예수님 자신의 생활이나 제자들에게 요구한 생활조건이 된다. 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도 잘 드러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란 경제적 사회적인 상태보다는 정신적 성향이나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즉,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자신의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비운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것을 소유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애착을 버려야 행복하다고 가르친다. 즉 행복은 조건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죽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고 가난하게 되셨다(마태 26,26-28 참조). 그래서 사도들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생활했으며 부자들에게 경고하며 자선을 베풀 것을 강조하고,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라고 가르친다(마태 25,35-46).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형제애의 주요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는 또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가난한 상태가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이 모든 것도 하느님의 뜻이었다. 이러한 희생은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줬다. 오늘같이 물질중심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진정으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먼저 물질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6,13 참조). 재물과 이기심을 벗어나 하느님만을 섬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이다. cpbc2013.10.29
![[성경속 궁금증] 95. 성경에서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의 의미는?](//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4940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95. 성경에서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의 의미는?돈과 재물만을 탐하는 인간의 욕심 경계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9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뻬제르부르크 에르메타쥬미술관. 성경은 돈과 재물에 대한 무분별한 애착과 사랑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경은 돈과 재물 자체가 문제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이 잘못이라고 경계한다. 성경에서는 돈과 재물만을 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불의와 파멸에 이르게 됨을 지적한다. "황금을 좋아하는 자는 의롭게 되지 못하고 돈을 밝히는 자는 돈 때문에 그릇된 길로 들어서리라"(집회 31,5).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설교하셨다. 이 말은 열심히 일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 25). 바늘구멍은 가장 작은 구멍으로 간주된다. 더구나 낙타는 보통 큰 몸집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돈 많은 부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무리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논쟁과 토론이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듣고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고 수군거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비유적으로 강조하신 것이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자기 재물을 내놓거나 나누어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자기 물질을 내놓고 나누어 쓰기도 했다. 이것은 바로 재물의 주권이 하느님에게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의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재물을 나누어줄 수 있다. 이 하늘나라와 부자에 대한 비유는 결코 부자에 대한 비난이나 단죄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하셨다. 즉, 하느님께서는 "스스로는 구원될 수 없는 사람"을 구원으로 데려가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느님 나라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모든 희망을 걸고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큰 유혹은 역시 재물에 대한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가지 악의 뿌리라고 한다. 더욱이 예수님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재물이나 돈의 유혹은 인간이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죄악도 대부분 재물에 대한 욕심과 관련이 많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재물에 대한 유혹을 극복할 것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부와 바늘귀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이다. cpbc2013.11.26

“주님의 일꾼으로 봉사” 다짐 가톨릭대 신학대학, 독서직·시종직 수여식 독서직 후보자가 조규만 주교에게 독서직을 받고 있다. 서울 대신학교 제공 “예, 여기 있습니다!”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대성당. 신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성당을 가득 메웠다. 중백의를 입은 신학생들이 두 손을 모으고 제단 위에 한 명씩 올라갔다. 신학교 5학년 51명(서울 41명, 의정부 9명, 베트남 1명)과 6학년 43명(서울 32명, 의정부 8명, 한국외방선교회 3명)이 각각 독서직과 시종식을 받는 날이었다.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주례로 거행된 예식에서 신학생들은 한 명씩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왼손을 가슴에 댄 채 독서직 수여자들은 성경에, 시종직 수여자들은 성합에 손을 올렸다. 주님의 일꾼으로 충실히 봉사할 것을 다짐하는 순간이었다.독서직과 시종직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직무로 전례 중에 성경을 봉독할 수 있는 직위를 ‘독서직’, 사제를 도와 제대에서 봉사할 수 있는 직위를 ‘시종직’이라고 한다. 교회법은 부제나 사제가 되려는 이가 이 직무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교회법 1035조).조규만 주교는 “오늘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은 여러분은 사제직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며 “사제직의 기본인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제가 되도록 하느님과의 대화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영하 날씨에 눈발까지 날렸던 이날 신학교는 독서직ㆍ시종직 수여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인파로 떠들썩했다. 축하 현수막과 피켓을 준비해온 신자들은 직 수여식을 마치고 나오는 신학생들 이름을 환호하며 열렬한 축하인사를 건넸다.시종직을 받은 김성재(요셉, 28, 압구정본당) 신학생은 “사제직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제단 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시종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받았다”며 “부담도 되지만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거라 믿으며 기도와 공부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성직 지망자는 성전 문을 지키는 수문품, 시편과 독서를 낭독하는 강경품, 마귀를 물리치는 구마품, 제대에 봉사하는 시종품 네 단계를 포함해 차부제품, 부제품을 받아야 사제품을 받고 사제가 될 수 있었다. 과거의 칠품(七品)은 1973년부터 사제품과 부제품만 남고 나머지는 폐지됐다. 강경품과 시종품은 직으로 남아 사제직을 준비하면서 받도록 교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평화신문2015.03.04
![[성경 속 생명 이야기] 4.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다](//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1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4.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다인간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부활하신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성모님께 맡겨지셨듯이, 이 강생의 신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교회의 모성적 보호에 맡겨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을 그 가슴 깊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생명의 복음」 3항).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은 강생의 신비라는 교회의 신앙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생명의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자리는 생명에 대한 온갖 위협 속에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을 모독하고 마치 인간이 생명의 주인인 양 생명에 대해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또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가장 작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인간 생명인 수정아, 배아, 태아들이며 아직 인간 생명인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들과 불치의 말기 환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그리고 아직' 우리와 똑같은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 고귀한 생명이기에 결코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들은 발을 딛고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습니다. 2010년 5월 헌법재판소는 인간 배아 등이 제출한 헌법소원에 대해 배아는 인간이 아니기에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헌소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배아가 인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생명의 시작은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어머니의 체내에서 결합되는 수정의 순간부터입니다. 곧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결합되는 그 순간 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수정아, 배아, 태아의 과정을 거쳐 한 생명이 탄생하게 됩니다.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어느 한 순간도 인간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수정아부터 출생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출생 후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년을 거쳐 다시 죽음을 통해 생을 마감해 하느님께로(본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 생명은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생명의 연속성'이라 부릅니다. 생명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연속성의 과정에 어떤 인위적 변형을 통해 보다 인간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을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상품으로 여기게 할 것입니다. 또 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창조주임을 자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비인격적이며 비윤리적이고 인간생명을 매우 심하게 위협하는 두려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열었던 모자보건법 14조의 예외조항이 발효된 지 올해로 41년이 됐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와 생명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자보건법 14조는 아직도 유효하게 낙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으며, 오히려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법안이 제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에는 연명의료 결정 법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안락사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는 창조주께 대한 극도의 모욕입니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생명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이 생명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굴의 신념으로 모든 시대와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를 '기쁜 소식'으로 전파해야 합니다"(「생명의 복음」 1항). 모든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복음에로 초대됐습니다. 온갖 생명 위협 속에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며 가치있고 숭고한, 그래서 거룩하기까지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무고한 인간생명을 의도적으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이성의 작용으로 습득한 지식과 마음으로부터의 깨달음을 통한 행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 2,14-24 참조)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생명의 복음을 읽고 깨닫아 생명을 지키기 위해 봉사하는 일,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요청하신 복음 선포 곧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cpbc2014.02.25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1.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민들](//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7749_1.0_titleImage_1.jpg)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1.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민들사귐·섬귐·나눔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기’ 염수정 추기경과 유경촌 주교가 노숙인을 위해 배식을 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오늘날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관심의 대상일까? 뉴스에 등장하는 남 이야기로만 여기지는 않는가. 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사순 시기 담화에서 “우리는 자비의 육적 활동과 영적 활동을 적극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쉴 곳을 마련해주는 육적 활동과 더불어 조언, 교육, 기도와 같은 영적 활동으로 ‘자비의 실천’을 요청한 것이다. 그 첫 번째로 가장 소외된 이웃 가운데 오랜 기간 사회와 이웃의 외면 속에 사는 ‘빈민’에 대해 돌아봤다. 대한민국 빈민 현주소우리나라 도시화율은 90%를 훌쩍 넘는다.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시로 인구 과잉, 집중된 현상은 곧 실업, 빈곤, 주택, 환경, 범죄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다. 1960년대부터 불어닥친 산업화 열풍, 도시 재개발, 각종 개발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곳곳에서 빈민을 낳았다.빈민의 범주 안에는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인 도시 빈민을 비롯해 주거 취약 계층, 차상위 계층,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다양한 이들이 속한다. 2010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판잣집, 움막 등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 계층이 전국 11만 3000가구에 달하며, 서울에만 2013년 현재 12만 명이 집 없는 취약 계층이다. 저소득층 관련 조사 결과는 더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약 135만 명(90만 가구)에 이르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은 1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빈부 격차가 큰 대한민국은 2013년 상위 10%와 하위 10% 소득 격차가 10배 넘게 벌어지는 등 소득의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빈민을 ‘위해’가 아니라 빈민과 ‘함께’1970년대 강제 철거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빈민들과 함께 지낸 ‘빈민의 대부’ 예수회 정일우(존 빈센트 데일리, 1935~2014) 신부는 어느 날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추기경님, 이 나라에 국민이란 존재가 있기나 하는 겁니까?”이역만리 대한민국 가난한 이들의 삶에 들어가 스스로 빈민이 된 미국인 정 신부가 이 같은 질문을 하자 김 추기경은 소스라치게 놀라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정 신부는 “서울 양평동 판자촌이 철거되는데 사람들이 갈 데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 추기경은 곧장 독일 원조 단체에 편지를 보내 극적으로 미화 1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지원금은 철거민 200여 가구가 경기도 시흥으로 이주하는 ‘씨앗’이 됐다. 철거민의 대부 제정구(바오로, 1944~1999) 의원과 함께 빈민들 삶을 돌봤던 정일우(1935~2014) 신부의 활동은 이후 교회 빈민사목의 밀알이 됐다.1987년 설립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현장에서 철거민들을 ‘위해서’(for)가 아닌 ‘함께’(with) 살았던 사목자와 평신도의 삶을 본받아 설립됐다. ‘사귐’, ‘섬김’, ‘나눔’의 정신으로 발족한 빈민사목위원회는 서울 주요 빈민촌에 선교본당을 설립, 그들을 위한 △협동조합 운영 △대출 사업 △취업 상담 △의료 상담 △신앙 상담 등 다양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현재 서울에는 금호1가동ㆍ무악동ㆍ봉천3동ㆍ삼양동ㆍ장위1동 등 5개 선교본당이 있으며, 각 선교본당에는 현재 20~40여 명의 주민이 미사, 성경공부, 교리교육 등에 참여하고 있다. 또 선교본당들은 주민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지역 센터 역할을 하는 ‘평화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모두 7곳의 평화의 집이 있고, 평화의 집마다 ‘복음화 위원’이라 불리는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빈민들의 삶을 돕고 있다. 빈민사목위원회 홍은하(젬마) 사무국장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빈민들을 위해 ‘교회 문턱’을 낮추고, ‘초대 교회 신앙 공동체’ 모습을 이루며 살도록 선교본당이 공소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긴급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실생활 어려움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가난의 굴레는 생각만큼 쉽사리 벗겨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빚’과 ‘가난의 대물림’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과거 비닐하우스와 판자촌 형태 주거에서 개선된 형태인 ‘공공 임대주택ㆍ임대 아파트’에 입주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도리어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낳는 등 개별 이웃의 어려움을 더욱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우언회 위원장 임용환 신부“빈민사목위원회 사명은 ‘빈민과 함께 살기’입니다. 그들이 공동체성을 더욱 고양해 연대하도록 하느님의 힘을 전하는 것이 저희 주된 활동입니다.”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임용환 신부는 “빈민사목위원회의 지난 30년은 주거권 투쟁, 연대 공동체 마련 등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도 특히 도시 빈민이 조금이나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함께해 온 시간이었다”고 말했다.서울 빈민사목위 활동은 과거 철거 현장에서 시작해 이후 ‘선교본당 체제’를 구축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선 용산 참사 사건, 세월호 사건 등 곳곳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사목에도 주안을 두고 있다. 아울러 임 신부는 새터민, 이주민 등 빈민의 범주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임 신부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러나 빈민의 주거 문제, 일자리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재개발 현장, 산동네에 사는 홀몸 어르신들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학원비, 수학 여행비도 없어 전전하는 등 빈민의 어려움은 전 세대에 걸쳐 진행 중이며, 대물림되고 있다”고 말했다.임 신부는 “많은 빈민 가정이 가난 때문에 해체되고, 자녀는 방치돼 제대로 된 교육도 이뤄지지 않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는 대기업 위주, 개발 위주 정책보다 이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예산을 늘리고, 교회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에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서울 빈민사목위는 이를 위해 교육과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 빈민의 현실을 알려 왔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현재 빈민사목위가 있는 교구는 서울ㆍ광주ㆍ부산 세 군데다.“한겨울을 전기장판 하나로 나는 어르신들을 위해 말벗이 돼 주세요. 청소년들을 위한 재능 기부 교육자도 돼주세요. 우리 각자가 아끼고 절약하는 삶이 곧 이웃과 가난한 이들을 돕는 간접 후원 활동이 됩니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16.02.03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평신도 신학의 선구 양한모 <10·끝>](//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762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평신도 신학의 선구 양한모 주님 부르심에 응답한 평신도 신학의 선구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집전미사 도중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에 대해 강론하는 양한모. 통일 신학을 제안하다1980년 5월에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나라 밖에 알리는 일에서 양한모는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으나, 이번에는 체포되거나 연행되지 않았다. 함께한 오태순 신부가 잠시 도피 끝에 자진 출두하여 심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동조자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 준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양한모는 민족의 비극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가톨릭에 귀의한 직후인 1970년대에는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지위와 역할을 구명하는 신도 신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와 그 일부인 평신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그가 보기에는, 당시에 한국 가톨릭 교회가 어느 면에서 신앙과 지상의 현실, 교회와 세속을 구분함으로써 초월주의적인 입장에서 압박받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적 구원에만 치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세상 안에 존재하며, 그러기에 자신의 존립 근거를 모순된 현실을 끊임없이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세상의 문제에 교회 나름의 방식으로 뛰어들어서 세상을 그리스도의 세계로 변화시킬 임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그렇다면 한국 천주교회의 임무는 무엇일까. 양한모는,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구체적으로 한국이라는 현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따라서 그 임무 역시 민족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역사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나아가 그 문제를 푸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고통은 분단에 있고, 그러니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임무는 통일이며, 그런 만큼 가톨릭 교회는 당연히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 양한모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한편으로는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 문제에 대한 신학적 내용을 정립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1983년 봄에 사제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전국에서 모인 70여 명의 사제 앞에서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통일 신학’의 출발을 제안했다.그는 이날 우리 민족이 겪는 슬픔과 번뇌, 기쁨과 희망은 곧 한국 가톨릭 교회의 슬픔과 번뇌, 기쁨과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민족이 고통스러워서 신음하는 소리는 바로 교회가 아파서 외치는 신음 소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족의 현실에 대한 교회의 자각을 촉구했다.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의 비극과 통일을 향한 미래의 희망을 성경의 메시지에 비추어 해석하고, 통일이라는 민족사적이고 세계사적인 과제를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맥락에서 바라보며 풀어나가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그 실현 방안의 하나로서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일이기도 한 북한 선교에 소명감을 가지고 임하자고 호소했다.통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 일조하다이렇듯 현실적이고도 간곡한 제안을 하면서, 그는 통일 신학의 원칙 여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첫째, 남북한 백성 전체의 회심을 요청한다.둘째, 화해 정신에 입각한 남북 관계 개선으로 통일을 향한 대화를 시도한다.셋째, 복음의 자유와 복음을 위한 자유를 확보한다.넷째, 평화 확보를 우선 과제로 삼고, 평화의 복음을 통해 통일을 성취한다.다섯째, 복음적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원점, 곧 일체성을 회복한다.여섯째, 우리 스스로 새 인간, 새 민족이 된다.이 자리에서 그는 하루라도 서둘러서 연구소를 세워 가톨릭의 입장에서 통일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제언도 잊지 않았다. 사실, 당시만 해도 한국 가톨릭 교회는 통일 문제나 북한 선교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이나 기관이 통일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이기도 했다.하지만 이 강연을 전후로 해서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져 갔다. 1982년에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북한 선교를 채택했고, 12월에 실무 담당 부서인 ‘북한선교부’를 설치했다. 북한선교부는 1985년 10월에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주교회의 상설기구인 ‘북한선교회원회’가 되었고, 1988년 5월에는 산하에 ‘한국천주교 통일사목연구소’를 두어 통일 사목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한편, 양한모는 개인적으로 통일 문제를 가톨릭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틈나는 대로 글로 써서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선교위원회라는 실천의 장에서도 위원으로서 활동했다. 1990년에는 발표한 글들을 모아서 「민족 통일과 한국천주교회」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통일에 대한 입장은 어디까지나 복음적이어야 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복음적 통일은 남한과 북한의 화해로써 분열에서 일치로 향하고, 친교로써 민족 공동체를 실현하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그 나름의 통일 신학의 방향을 제시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다20세기 후반부터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국가들이 스스로 붕괴되었다. 이로써 공산주의는 그 결함을 이론으로도 실제로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한때는 수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다. 양한모 역시 그러했다. 소년 시절에 일찌감치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들었고, 한동안 공산주의자로서 활동했다. 하지만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 본성을 존중하는 세상 또는 그런 삶을 추구하던 그에게 공산주의는 해답이 아니었다. 그 점을 깨닫는 순간, 그는 전향을 결행했다. 온갖 비난이며 불이익이 예견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그가 판단한 대로 공산권은 몰락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의 전성시대를 노래했다. 그러나 양한모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인류를 구원하거나 이끌어 갈 이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본주의의 입장에서,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한 공산주의자가 전향하고 변신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체험과 교훈을 후대에게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고뇌와 그에 따른 노력으로 남은 생애를 일관했다.이렇게 그가 걸어온 길은 어찌 보면 곧은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굽은 길을 돌아서 뒤늦게 온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나름대로 채비를 차리고서 올곧게, 때맞춰서 왔을 따름이다. 가령, 그는 사상적으로 준비되어 있었기에 이 땅의 평신도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선각(先覺)이자 선구(先驅)로서, 그는 자신이 알게 된 바를 실행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에 기여하고자 했다. 그리고 경제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이기를 마다치 않았다. 그러기에 1992년 세상의 삶을 마감할 때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끝>다음 호부터는 성모병원의 기초를 다진 의사 박병래(요셉, 1903~1974) 편이 연재됩니다. 백영민2016.03.09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7)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6658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7)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절체절명의 순간, 표징 보여주시는 하느님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작 ‘이사야’, 프레스코화, 1729년. 이사야서 1장 1절에서는 이사야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활동했다고 말합니다. 모두 기원전 8세기 남왕국 유다의 임금들입니다.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보다는 아시리아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기원전 8세기의 문제는 언제나 아시리아입니다. 이사야와 미카의 시대 역시 아시리아의 확장에서부터 출발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6장에서는 그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 곧 기원전 740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찌야 시대에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말하기 어려워지지요.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면, 기원전 745년에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아시리아의 임금이 된 후 아시리아는 이미 강력한 팽창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탐 시대도 이사야의 활동은 그리 분명치 않습니다. 이사야서에 직접 등장하는 임금은 주로 아하즈와 히즈키야입니다.좀더 이른 시기였던 아모스와 호세아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가 시리아를 괴롭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여력이 없으니 이스라엘은 잠시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명백히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세력이 더욱 커질 때, 이제는 이스라엘에게도 문 앞의 작은 적 시리아가 문제가 아닙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손을 잡고서라도 점점 거세게 다가오는 아시리아를 막아야 했습니다. 아니, 둘이 손을 잡아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남왕국 유다까지 반 아시리아 동맹에 끌어들이려 합니다.그때 유다의 임금이 바로 아하즈였습니다. 아하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아시리아는 아직 강 건너 불이었기에,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동맹 제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시리아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남왕국 유다로 쳐들어옵니다. 이것이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입니다(기원전 736-734년, 이사 7장). 그들은 아하즈를 몰아내고 다른 사람을 왕위에 앉히려 합니다. 당황한 아하즈는 고전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오히려 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손을 내밀며,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막아 달라고 합니다.이사야는 벌벌 떨고 있는 아하즈를 꾸짖습니다. 어리석은 정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사야가 뛰어난 외교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나라와 손을 잡고 어느 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임금을 설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7,9)는 것입니다. 다윗 왕조를 선택하시고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하즈를 굳게 서 있게 해야 합니다.이러한 맥락에서 임마누엘의 예언이 나오게 됩니다(7,10-17). 하느님은 유다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아하즈에게 손수 표징을 보여 주시는데 그 표징이 곧 임마누엘,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의 탄생입니다.신약 성경의 인용으로 더 유명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서는 70인역의 그리스어 본문을 따라 이 구절을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고 인용하지만 이사야서의 본문은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로 되어 있습니다. 긴 설명은 생략하고, 그 젊은 여인은 아하즈의 아내이고 여인이 낳을 아들은 히즈키야입니다. 아하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800년 후에 있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표징이었습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침입으로 다윗 왕조가 위협을 받는 순간에, 아하즈에게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하느님께서 다윗 왕조를 보호하고 계심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적용된 것은,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이르러 더 충만하게 실현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마태오 복음 사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짐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어쨌든, 아하즈는 이사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시리아의 군사 원조를 청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팔레스티나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던 아시리아는 유다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여, 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합니다. 더 시간이 흐른 다음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 호세아가 아시리아를 거슬러 일어나자,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 5세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킵니다(기원전 722년).그럼 남왕국 유다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당분간은 위험을 피했고 멸망도 면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안보를 강대국에 맡기는 것은 고대에나 현대에나 강대국에 대한 종속과 의존을 가져옵니다. 유다는 아시리아에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조공을 바치는 한 아시리아는 굳이 유다를 멸망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공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었고, 종교적으로도 아하즈는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아하즈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그리고 이사야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시리아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도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 문제는 다음 주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06.16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43>](//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1834_1.0_titleImage_1.jpg)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각국을 사목 방문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위로하며, 이들을 위한 사목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7월 파라과이를 방문, 빈민촌을 찾아 노인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2015년 12월 8일부터 자비의 해가 시작된다. 특별 희년이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야 한다고 교황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소리쳤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성장하면서 잃어버린 것들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산부인과 병동의 신생아들은 그중 한 아이가 울면,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이것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은 인간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하도록 창조됐다고 말했다. 이른바 공감 능력은 창조주가 모든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 문화 속에서 이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회적 분위기, 즉 문화 자체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폐쇄적으로 변해 있을 때,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감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었다. 오늘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능력을 복원시켜야 한다. 그와 같은 노력을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가난한 이들 잊지 말아야교황은 사회교리의 한 부문을 말하면서 ‘자비’와 ‘자선’을 강조했다. 자비와 자선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할 때, 가능한 것이다. 교황은 이 주제를 ‘허사가 되지 않도록 복음에 충실하십시오’라는 소제목으로 다룬다. 복음은 무어라고 말하는가? 무엇보다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자비를 입을 것이기에 행복하다는 성경 말씀(마태 5,7)과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야고 2,13)고 말했다. 우리가 모두 마음을 돌이키길 촉구하신 말씀이다.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집회 3,30)는 말씀도 인용하면서,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통성을 확인받고자 했을 때, 그들이 제시한 정통성의 핵심 기준은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갈라 2,10)임을 확인시킨다. 이 모든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아주 단순 명료하여, 교회는 이를 상대적으로 해석할 권리가 없음도 분명히 하였다(194항).이처럼 자비와 자선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특별한 자리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안에 마련하셨다고 설명한다. 가난한 이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가난하게 사셨고,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 분이셨다.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고,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 하셨다. 이 모든 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우선적인 선택과 자비의 첫 수혜자가 그들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교회는 그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자들의 특별한 관심을 촉구하였다. 가난한 이들이 겪는 최악의 차별은 영적 관심의 부족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이들은 특별한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지니고 있기에, 신앙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우정과 강복, 말씀과 성사 거행, 그리고 신앙의 성장과 성숙의 여정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200항). “이러한 까닭에,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미치는 구원의 힘을 깨닫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초대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그들의 요구에 우리의 목소리를 실어 주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을 이해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그 신비로운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198항). Q>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거듭 강조했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 안에서 발견될 가난한 자들이, 교회와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교회 중심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목의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가? 또 좀 더 적극적인 복음의 방향이 있다면, 어떤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백영민2015.11.04

평화방송TV와 함께...신앙생활에 활력을! 녹음이 우거진 6월, 평화방송TV(SKY 평화 174)가 신앙에 활력을 더하는 새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전삼용 신부의 교리를 위한 교리전삼용(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신부가 성경과 예화를 바탕으로 가톨릭 신앙의 근본을 흥미롭게 전한다.▶방송 일시: 월요일 오전 8시ㆍ오후 8시, 주일 오후 10시장하다 순교자, 신앙의 용사여한국 교회가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중 40여 명의 신앙과 행적을 돌아보며 순교 영성을 되새긴다. ▶방송 일시: 월요일 오전 9시ㆍ오후 10시, 토요일 오후 4시파파 프란치스코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든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엄하게 교회와 신자의 소명을 알리는 그의 모습을 전한다. ▶방송 일시: 월요일 오후 7시 20분, 수요일 오후 3시 20분, 주일 오후 11시마음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정연정(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주임)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반 알현과 삼종 기도, 산타 마르타 숙소 미사 강론 속 메시지를 신학적으로 풀어낸다. ▶방송 일시: 목요일 오전 9시ㆍ오후 10시, 토요일 오전 7시 20분이콘을 통해 본 전례주년과 성인 축일동방 교회에서 발달한 이콘은 초기 교회의 영성을 잘 품고 있다. 장긍선(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신부가 이콘을 통해 가톨릭 주요 전례력과 성인 이야기를 전한다. ▶방송 일시: 토요일 오후 7시 20분, 주일 오전 7시 20분PBC 현장 중계교회 안에서 열리는 강연회와 심포지엄 등 유익한 강좌를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방송 일시: 목요일 오전 8시, 금요일 자정, 월요일 오후 4시나의 삶, 나의 노래 생활성가 가수를 초대해 작곡 과정과 그 안에서 느끼는 신앙 체험에 귀를 기울여 본다. ▶방송 일시: 월요일 낮 12시 30분, 수요일 오후 9시 10분, 주일 오전 10시 5분이 밖에도 현대 사회 이슈를 가톨릭 신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살펴보는 ‘교회와 세상’, 가톨릭 의료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주 특별한 만남-생명 그리고 사랑’, 전국 저명 사제와 수도자에게 신앙의 지혜를 청해 듣는 ‘신앙강좌-길’, 영국 BBC 인기 드라마 ‘명탐정 브라운 신부’를 7월부터 차례로 방영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문의: 02-2270-2609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문채현2015.06.17
![[아! 어쩌나] 313. 기도가 무슨 소용?](//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670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313. 기도가 무슨 소용?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사석에서 대화 중 요즈음은 종교가 필요 없다. 특히 기도가 무슨 소용이냐는 힐난을 들었습니다. 기도해도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이런 비난에 대하여 영성심리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요?답: 아무리 기도를 해도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은 자주 듣는 말입니다. 또 일부 사이비 종교들로 인하여 종교가 사람들의 일상과 가정을 파괴하고 마약 같은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서 코끼리를 다 안다는 것처럼 무지한 짓입니다. 우선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더라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진화 과정의 흔적 즉, 파충류 같은 지층, 포유류의 지층, 영장류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같은 마음으로 거룩하고 넓은 마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마음이 우리 안에 혼재해 있어서 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건강 관리를 잘못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듯이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됩니다.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짐승만도 못한 놈, 사람 구실 못하는 놈이라고 욕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그런 지층으로 되어 있음에 선지식이 있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욕을 먹지 않으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느님의 눈이 나를 보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을 절제하고 다듬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벌레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사람 구실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마르크스가 말한 아편의 기능 때문입니다. 아편은 아주 통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한시적으로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아편처럼 부작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에 잠시의 휴식을 주는 기능을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믿음을 갖고 희망을 품으면 찌들어가는 마음,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오랫동안 군부 독재로 인하여 피폐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은 그래도 행복지수가 높은데 그 이유는 국민들의 신심, 불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병들어가지 않는 것은 불교 신심이 준 선물인 것입니다. 종교를 단순히 아편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산 증거입니다. 또한 미얀마 국민들은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나누고 서로 위해주고 서로 배려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곳 교민들 이야기에 의하면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누가 탈이 나면 그 사람이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주고, 음식을 먹을 때는 낯선 이에게도 권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복음적 나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계 최빈곤국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미얀마 국민들은 종교적 심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과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가지게 합니다. 진정한 종교적 심성이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전 안에서만 사용되는 종교적인 책이 아니라 바람직한 이상적 사회를 구현하는 방법을 알려준 지침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소득 수준과 경제지표로 선진국 후진국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복음지수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5.10.07
![[성경 속 도시] <4>아브람이 나그네살이 한 땅 이집트](//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1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아브람이 나그네살이 한 땅 이집트 이스라엘인이 탈출한 곳, 아기 예수의 피신처 고대 문명 발상지로 비옥한 땅을 가진 이집트는 가뭄과 기근이 닥칠 때마다 유목민들의 피난처가 됐다. 사진은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 때 건립한 필레 대신전 모습. 사진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아브람 일행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스켐에서 길을 떠나 차츰차츰 헤브론 남쪽지역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고대 유목민들이 그랬듯이 반유목민으로 살아가던 아브람도 가뭄이 닥치자 비옥한 땅 이집트로 갔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그네살이를 시작했다. 창세기는 아브람이 파라오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전한다. 아브람은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내 사라이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과연 사라이를 본 파라오는 그녀에게 반했다. 그래서 그는 아브람에게 잘해 줬다. 아브람은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됐다"(창세 12,9-20). 이집트에서 아브람은 다시 발길을 돌려 네겝으로 돌아온 다음 북쪽으로 향했고, 그 전에 자신이 천막을 쳤던 베델 근처에 이르렀다(창세 13,4). 여기서 아브람과 롯은 재산 문제로 더는 한 지역에 같이 살 수 없게 돼 헤어지기로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있다. 고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이집트는 구세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고대에 유복했던 이 땅은 굶주린 이스라엘 성조들이 몸 붙여 살던 곳이다. 또한 이집트는 패전한 이스라엘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예레 42장 참조). 더불어 이곳은 아기 예수님께서 피신한 곳이기도 하다.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이집트는 히브리인들을 억압했던 곳이고,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탈출한 곳이다(탈출 1―13장).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고역과 노예 생활에서 탈출할 때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건과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해방절 축제를 대대로 지내고 있다(탈출 12,1-14). 신약에서는 성령강림 때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이집트인도 포함돼 있었다고 기술한다.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사도 2,10). 2세기 말엽 이집트교회는 이미 굳건한 조직을 갖춘 모습으로 역사에 나타나며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오스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이집트는 642년 이후 아랍의 지배를, 1517년 이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그동안 혹독한 박해를 받았으며 3000여 개의 교회가 파괴됐다. 신앙의 자유는 1882년부터 비로소 보장됐다. 요셉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난하는(마태 2,14-15 참조) 부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아기 예수의 가족이 사막과 광야를 가로질러서 이집트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어느 날 종려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때마침 탐스럽게 익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 마리아가 갈증이 나서 힘들어하자 아기 예수는 종려나무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나무는 허리를 구부려 달콤한 열매로 가족의 갈증을 씻어줬다. 아기 예수는 고마운 종려나무에게 상을 줬다. 천사를 불러 나뭇가지 하나를 에덴동산에 옮겨 심게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바로 그 종려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손에 들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대부터 종려나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식물이었다. 종려나무는 '왕이신 하느님'을 기념하는 초막절에도 사용됐고(느헤 8,15), 예수님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던 것은 비슷한 상징성을 띤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cpbc2014.01.21
![[2013 결산-출판] 프란치스코 교황에 주목, 성경,교리 열공!](//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8213_1.1_titleImage_1.jpg)
[2013 결산-출판] 프란치스코 교황에 주목, 성경,교리 열공!새 교황 관련 책자 봇물, 신학 대가들의 예수 관련 책자도 줄이어 2013년 국내 가톨릭 출판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 책 출간이 잇따랐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교황 프란치스코」(성바오로)는 교황 생애와 더불어 교황 앞에 놓인 가톨릭교회 문제를 살펴봤고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하양인)는 교황 행보를 주목하며 그의 강론을 소개했다. 「세상 끝에서 온 교황 프란치스코」(생활성서)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을 지낸 마리오 호르헤 베르골료 추기경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추기경 시절 그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천국과 지상」(율리시즈) 역시 교황의 추기경 시절 대담집으로 종교 문제부터 다양한 사회 문제까지 교황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예수회에서는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을 축하하며 「예수회 역사」(이냐시오영성연구소)를 발간했고, 작은형제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탄생을 기념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생애를 담은 「당신을 위한 성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출판사)를 펴냈다. 올 한 해 신자들 사이에선 신앙의 해를 선포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권고대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껍고 딱딱한 교리서와 씨름하는 신자들을 위해 대구관구 대신학원장 김정우 신부가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해설」 번역 개정판을 선보였고, 서울대교구 김귀웅 신부는 1000쪽이 넘는 교리서를 60쪽으로 요약한 「핵심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펴냈다. 신앙의 근본을 돌아본 신앙의 해를 보내며 책 중의 책인 성경을 빠트릴 수 없는 일. 다양한 성경 해설서들이 신자들 신앙생활을 도왔다. 김혜윤(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수녀는 「예언서」(생활성서)를 발간, 10년에 걸쳐 펴낸 '쉽게 풀어쓴 구약성경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고 수원가톨릭대 성경연구회 역시 '요한복음 맛들이기' 편을 끝으로 「소공동체를 위한 성경공부」 시리즈 4복음서 맛들이기를 완결했다. 성경입문서로는 「안셀름 그륀의 성경 이야기」(분도출판사)와 「바이블 가이드」(생활성서) 등이 나왔고, 복음말씀 해설과 묵상서로는 「하느님 말씀」(바오로딸), 「주일ㆍ대축일 성경 묵상」(나이테미디어), 신은근 신부의 「만남」(바오로딸), 전원 신부의 「말씀으로 아침을 열다」, 「말씀의 빛 속을 걷다」 (가톨릭출판사)등이 출간됐다. 신학 대가들의 예수에 관한 책이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나자렛 예수」 3권(유년기, 바오로딸)이 발간돼 「나자렛 예수」 시리즈가 완결됐고, 신약학의 대가 클라우스 베르거 교수의 「예수」(성바오로)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의 「예수 그리스도」(수원가톨릭대출판부)가 국내에 소개됐다. 교계출판사 성서와함께, 생활성서사는 각각 창립 40돌과 30돌이라는 경사를 맞았고, 지난 10월에는 최인호(베드로) 소설가가 세상을 떠나 슬픔을 남겼다. 한편 6개 교계 출판사 협의체인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해 일반인에게도 가톨릭 서적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