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멜 성인들의 가르침 집대성한 영성 신학 교과서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나는 교회의 딸입니다 / 복자 마리 에우젠 신부 / 윤주현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나는 교회의 딸입니다 / 복자 마리 에우젠 신부 / 윤주현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영성 대가 마리 에우젠 신부 예수의 성녀 데레사 중심으로 가르멜의 방대한 영성 탐구 가르멜 영성을 종합적으로 엮은 두 권의 책이 세트로 출간됐다. 바로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1권)와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2권). 프랑스 아비뇽 아키텐 관구장과 가르멜 수도회 부총장을 역임하고, ‘노트르담 드 비 재속 수도회’를 설립한 복자 마리 에우젠(Marie Eugène, 1894~1967) 신부의 대표작이다. 저자는 맨발 가르멜의 설립자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를 중심으로 가르멜 성인들의 가르침을 영성 신학적 전망에서 통합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과 사랑의 합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제시한다. 1, 2권의 제목인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합니다”와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는 각각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어린 시절 품었던 이상과 임종할 당시 자신의 생애를 종합하며 남긴 말씀이다. 저자는 이 두 문장을 바탕으로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부터 시작된 맨발 가르멜의 영성을 가르멜 수도회의 역사·교의신학·토미즘·영성 신학과 연계해 체계적인 영성적 비전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걸작 「영혼의 성」을 기본 뼈대로 영성 생활의 초보 단계부터 정점인 변모적 합일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여정을 심도 있게 고찰했다. 1권에서는 영혼이 하느님을 찾고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하느님께로 나아가는지 이야기하며, 2권에서는 영혼이 겪는 정화와 성장의 과정,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일치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합일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변모는 진정한 탈바꿈과 같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가 직접 강조한 비유의 의미이다. ‘여러분에게 사실을 알려드립니다만, 변모된 그 영혼조차 제 자신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꺼먼 번데기와 하얀 나비가 다르듯이, 그러한 변모가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권 266쪽) 이 과정에서 예수의 성녀 데레사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작품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각각의 영성 주제를 다방면에서 설명했다. 더불어 가톨릭 신학의 기준점인 성경을 비롯해 토마스 성인의 「신학대전」, 베르나르두스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같은 영성 대가들의 가르침도 소개한다. “참사랑에 의해 침투된 의지는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을 끌어안기 위해 자신의 갈망들을 포기해야 하며, 이는 완전하게 그리고 부드러운 유연한 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분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 그분이 하신 것을 사랑한다.’ ‘완덕은 그분의 뜻을 실행함으로 성립된다.’”(1권 69쪽) 2000쪽에 달하는 책을 번역한 가르멜영성연구소장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는 “한마디로 가르멜의 영성을 종합한 걸작이자 대표적인 영성 신학 교과서”라며 “마리 에우젠 신부님은 본서를 통해 영성의 길이 수도 생활이나 사제의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개방된 보편적인 소명임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또 “이 점은 현대 교회가 제시하는 교회의 비전, 특히 평신도들의 위상을 드높이며 세상 안에서 부름을 받은 그들의 소명을 강조하는 현대 교회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전했다. 이번 책들은 ‘가르멜 클래식’ 대장정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르멜 클래식’은 가르멜 영성을 오늘의 한국 가톨릭교회에 깊이 있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고전 시리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8.27

가톨릭 등 3대 종교, 고공농성 문제 해결 촉구대통령실 앞 복직 염원 긴급 기도회... 새 정부에 “노동권 외면 말라” 한목소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앞줄 오른쪽) 신부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끝날 것 같은 여름은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공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럼에도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를 거리로 내몬 이 현실을 끝내기 위해 버티고 있습니다.”(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진혜씨) “새 정부 들어 많은 움직임이 있지만 해결의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노동권을 살리고 기울어진 노동구조를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민생이라는 생각으로 나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씨) ‘친노동’ 정책을 표방해온 이재명 정부가 출범 3개월을 앞둔 가운데, 부당해고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공에서 ‘복직’을 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김시몬 신부)를 비롯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회와사회위원회,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3대 종단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박진혜, 고진수 고공농성 문제 해결을 위한 3대 종교 긴급 기도회’를 열었다. 박씨와 고씨가 하루속히 땅을 밟고, 일터로 복귀하길 염원하는 마음에서다. 3대 종단은 “권력을 쥔 이들이 더 이상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대화와 해결에 나서길 호소한다”고 기도회 취지를 설명했다. 22일은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진혜씨와 서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인 고진수씨가 고공농성을 벌인 지 각각 593일, 191일째 되는 날이다. 박씨는 원청 일본그룹 ‘니코덴토’가 고용 승계를 하지 않은 채 구미공장을 철수했다며 지난해 1월 공장 9m 높이 출하동 옥상에 올랐다. 고씨는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사측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해고했는데, 노동조합원 12명만 타깃이 돼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거리 농성을 벌이다 지난 2월 서울 세종호텔 앞 철제구조물 위에 올라 투쟁 중이다. 노동사목위원장 김시몬 신부는 이날 미사 중 강론에서 “고공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문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면서 “분명히 해결 가능한 문제이고, 그들 역시 한 인간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이며 한 나라의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조금씩 변화가 보이지만, 정부는 고공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 신부는 이어 “하느님께서는 성당 안에서만 계시지 않고, 우리가 있는 곳에 함께 계신다”며 “하느님께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시길 바라시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고,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신다”고 말했다. NCCK 위원 이성환 목사는 “신약, 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는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된다는 일화가 등장한다”며 “쓸모없어져서 버려진 돌이 가장 귀한 머릿돌로 태어나듯 사회를 고발한 약자들은 사회가 나아갈 길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지금은 버려진 돌처럼 보이지만 곧 이 세상에 머릿돌로 부활할 이들의 손을 잡고 이 세상을 더 좋게 바꿔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계종 시경 스님은 “이 두 분께서 빨리 땅을 밟고 복직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는 조치를 취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앞서 21일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여성 성직자, 수도자, 종교인들이 같은 장소에서 종단 연합 기도를 진행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5.08.27

생명 주시며 인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영[저는 믿나이다] (53) 성령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진리의 영”(요한 16,13)이라 부르신 성령께서는 참하느님으로 성자 안에 주어진 ‘생명’을 인간에게 전하시는 분이시다. 루카 로세티 다 오르타, ‘삼위일체 하느님’, 프레스코화, 1738~1739년, 이탈리아 토리노 이브레아 성 가우덴치오 성당.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성령에 대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내용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의 현존을 올바로 인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1코린 12,3) 이 말씀은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기 위해선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에서 싹 트지만, 원천적으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우리에게 파견하시어 당신을 충만히 계시하시고, 그것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깊이 깨닫고 믿음으로 충만해지면서 얻게 되는 초자연적인 선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만을 믿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받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은 삼위일체 하느님에 근거합니다. 성령은 ‘주님’이십니다. 곧 ‘하느님의 영’이시지요.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영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2; 2,7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한 구원 계획의 처음부터 끝까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일하신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성자의 강생으로 시작된 이 ‘마지막 때’에 이르러서야 성령께서는 계시되고 주어지고 위격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지셨다. 이때에는 새로운 창조의 ‘맏이’이시며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이 계획이 성령이 주어짐으로써 교회, 성인의 통공, 죄의 사함, 육신의 부활, 영원한 생명 등으로 인류 안에서 구체화될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86)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을 통해 생명을 주십니다.(이사 42,5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 그 사랑인 삼위일체의 생명을 주신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 우리가 성령의 힘을 받아 가능해진 새로운 생명의 원리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를 참포도나무에 접목시켜 주신 그분께서는 우리가 사랑, 기쁨,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욱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35~736) 성령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름 부음 받은 이’ 곧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부어지셨기’ 때문이며, 강생에서부터 그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 이번에는 그리스도께서 성부 곁에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곧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성령을 그들에게 주신다. 그리하여 이 공동 파견이 성부께서 성자의 신비체 안에서 자녀로 삼으신 그들 안에 펼쳐질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의 사명은 그들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일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90)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성령께서는 첫 근원이신 성부에게서,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증여를 통하여, 친교를 이루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64) 따라서 성령을 믿는 것은 성령께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한 본체로서 하나의 천주성을 지니셨고, 그 영광은 동일하고,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하다는 신앙 고백을 함축한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시고 신앙을 통해서만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당신의 강림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신 ‘교회’를 통해 당신 현존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교회가 전하는 사도들의 신앙 곧 △성경 안에서 △살아있는 거룩한 전통 안에서 △교회의 교도권 안에서 △성사와 전례 안에서 △기도 안에서 △교회를 이루는 은사와 직무 안에서 △사도적 삶과 선교적 삶의 표징들 안에서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 성령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인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 이 공동 사명은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성령 안에서 성부와 이루는 그리스도의 친교에 참여하게 한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들 안에, 특히 성체 안에 탁월하게 현존하게 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37)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1.25
![[2025 결산-문화출판] ‘희년’에 차려진 문화의 향연](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2/16/vVI1765859218476.jpg)
[2025 결산-문화출판] ‘희년’에 차려진 문화의 향연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스틸컷(위 사진)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사진. 모팩스튜디오·NHN 링크 제공 2025년 가톨릭 문화출판계는 ‘희년 -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대주제와 함께했다. 연초에는 희년의 뿌리와 의미를 소개하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고, 희년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로마의 4대 대성전을 소개하는 책과 영화가 공개됐다. 관련 전시회와 음악회도 곳곳에서 개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상 순례를 마쳤지만,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이어지며 꺼지지 않는 희망의 순례를 알렸다. 프란치스코·레오 14세 교황 책 잇단 출간… 영화 ‘콘클라베’ 화제 12년간 사도좌를 지켰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4월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고, 5월 레오 14세 교황이 목자로서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서점가에서는 두 교황의 생애와 신앙을 다룬 책이 잇따라 소개됐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이 6년간 직접 집필한 최초의 자서전 「희망」이 3월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동시 출간됐다. 교황이 삶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 가치인 ‘희망’을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생애 주기에 따라 다채로운 에피소드, 사진과 함께 소개한 책이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나의 인생」은 바티칸 전문기자가 교황과 나눈 대화를 통해 20세기와 21세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을 돌아본다. 두 책 모두 이주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되기까지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생각, 소탈한 모습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 힘쓴 일관된 철학이 담겨 있어 선종 직후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하반기부터는 「교황 레오 14세」, 「파파 레오 14세」, 「하베무스 파팜」, 「레오 14세 교황의 생각」 등 새 교황의 삶의 궤적과 신앙을 다룬 책이 줄이어 출간됐다. 선출 직후에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이면서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및 선교사 출신 교황이 선출된 의미와 신앙의 발자취를 엮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레오 14세 교황의 행보가 본격화되면서는 미국 시카고와 페루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사목 경험이 전 세계 14억 신자들을 어떻게 하나로 결속해 시노드적 교회를 추구할지 앞으로의 과제를 짚은 내용이 이어져 눈에 띄었다. 한편 교황을 선출하는 특별한 투·개표 방식을 배경으로 전개돼 화제였던 영화 ‘콘클라베’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후 국내에서 역주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4~21세기 성인·한국 가톨릭 대표 사제들의 책 연이어 출간 올해도 다양한 성인의 삶과 신앙이 한 권의 책에 담겨 독자들을 만났다. 가장 눈에 띄는 책은 아우구스티노(354~430) 성인의 여러 번역서다. 성인의 삶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외침」을 비롯해 「혼돈 속의 질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 자전적 고백 문학의 효시이자 그리스도교 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백록」,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등이 공개됐다. 상당수는 로마 교부학 대학 아우구스티니아눔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은 변종찬(1967~2004) 신부의 유작 원고들을 기본으로 한다. 반면 최초의 밀레니얼 세대 성인인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짧은 생애와 깊은 신앙을 담은 책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라는 애칭답게 디지털 시대의 신앙 모델을 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직하면서도 따뜻한 발걸음을 남긴 우리나라 사제들의 회고록도 쏟아졌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이면서 격동의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남긴 유일한 회고록의 재개정판이 나왔고,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의 전신인 가톨릭음악원을 설립하고 여러 성가집을 한데 묶은 「가톨릭성가」를 편찬하는 등 한국 교회음악의 기틀을 잡은 차인현(1938~2025) 신부의 회고록도 출간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4회기에 참가하고, 유신 정권과 신군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는 등 국내외는 물론 교회 안팎으로 격동의 한 세기를 몸소 겪은 윤공희(1924~)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다룬 「대주교 윤공희」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가톨릭 미술계 거장 작품 잇따라 전시 한국 미술계는 물론 성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의 전시회도 잇달았다. 좀처럼 감상하기 힘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데다 곳곳의 전시장에서 열려 더욱 뜻깊었다. 먼저 60년을 한결같이 인체 조각에 매달린 조각가 임송자(리타, 84) 선생의 작품 세계는 김종영미술관에서, 정대식(마티아, 86) 화백의 60여 년 작가 인생에 깃든 신앙 여정은 갤러리 1898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1927~2023) 시인의 시와 김세중(프란치스코, 1928~1986) 조각가의 작품,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 조광호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우러진 색다른 전시는 김세중 미술관을 가득 메웠다. ‘빛의 화가’ 김인중(도미니코 수도회) 신부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서울대교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최근까지 이어졌다. ‘빛의 기도’를 주제로 신앙과 예술이 일치된 삶을 살았던 송경(클라라, 1936~2022) 화백의 회고전은 스페이스 성북에서, 성스러우면서도 친숙한 조각과 그림으로 평생을 봉헌해 온 최봉자(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의 첫 개인전은 흰물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 ‘킹 오브 킹스’ 등 한국 창작물 선전 무대와 스크린에서 한국 창작물의 선전도 눈에 띄는 한 해였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 어워즈에서 작품상·극본상·음악상 등 6관왕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초연된 작품과 한국인 창작자가 미국 공연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까운 미래,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신형에 밀린 구형 ‘헬퍼봇’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역으로 인간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다. 현재 국내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The King of Kings)’는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등 ‘기생충’을 넘어 한국영화 중 현지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기록됐다. 찰스 디킨스의 「예수의 생애」를 모티브로 제작된 이 작품은 디킨스가 아서왕을 동경하는 막내아들에게 진정한 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부활까지 성경의 주요 장면을 훑으며, 모든 시간과 인물을 통해 ‘사랑’이라는 큰 주제를 드러낸다. 국내외 더빙에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참여해 더욱 화제였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2.16
수원교구 상미본당 입당 미사 3월 22일 문희종 주교 주례로 봉헌 입당 미사를 거행하는 상미 성당 조감도 전경. 수원교구 제공 수원교구 상미본당(주임 최범근 신부) 입당 감사미사가 3월 2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미로 29에 위치한 새 성전에서 총대리 문희종 주교 주례로 봉헌된다. 2019년 6월 18일 설립 이후 모본당인 신갈본당 지하에서 미사를 봉헌해 온 상미본당 공동체는 6년여 만에 새로 건립한 성전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착공 기준으로는 지난 2023년 11월 18일 기공식 후 약 16개월 만이다. 새 성전은 대지면적 3274㎡, 연면적 2266㎡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지하 2층에는 주차장, 지하 1층에는 주차장·교리실, 1층에는 성전·사무실, 2층에는 성가대·사제관이 위치한다. 설계와 감리는 신예건축이, 시공은 티디에이종합건설이 맡았다. 신갈본당과 영통영덕본당에서 분가한 상미본당은 신자 수 1857명으로 시작해 현재 2100여 명의 공동체로 성장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구갈동·영덕동 일부를 관할하며 주보 성인은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다. 그동안 상미본당 공동체는 ‘성전 건립기금 약정식(2차례)’과 ‘하늘나라 예탁금’을 모금하는 한편, 주임 최범근 신부가 20개 본당에서 후원 미사를 봉헌했다. 또 신자들은 묵주기도 200만 단, 성전 건립 기도 56만 7810회, 전 신자 80주간 신·구약 성경통독 등으로 마음을 모았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5.03.12

레베카의 선택 (2)[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7) 야곱의 사다리 조형물.(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외벽) 야곱은 어느날 꿈속에서 하늘에 닿아있는 사다리(층계)를 보게 된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15) 활달한 성격의 에사우는 모험심과 도전 정신이 강했고, 야곱은 지적이고 사려가 깊으며 차분한 성격이었다. 들사람 에사우는 당연히 체격도 우람했을 것이다. 반면 야곱은 약하고 온순했다. 여기서 이사악, 에사우, 야곱 시대가 거친 유목 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중동 지역에선 유목생활이 주류였다. 그래서 풀이 많은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부족 단위 소규모 전투가 빈번히 일어나던 때였다. 이런 여건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늠름한 기상의 에사우가 부족을 이끌 지도자로 적합했다. 야곱은 양치기로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전사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버지 이사악도 그래서 맏아들인 에사우를 더 사랑했다. 결국 야곱은 에사우의 그늘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레베카가 야곱을 더 사랑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쌍둥이.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은 곧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큰일이 벌어진다. 아버지 이사악은 에사우에게 축복을 내리고 가문을 이어가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맏아들에게 장자권을 수여하기 위해 에사우를 부른다. 하지만 야곱이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사악을 속였고, 결국 에사우에게 주어질 맏아들의 권리와 축복을 빼앗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사우는 불같이 화를 냈다. 성경은 에사우가 겪었을 상실감과 분노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상세한 묘사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사우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해준 축복 때문에 야곱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에사우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으니, 그때에 아우 야곱을 죽여 버려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레베카는 큰아들 에사우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놓고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의 형 에사우가 너를 죽여서 원한을 풀려고 한다. 그러니 내 아들아, 내 말을 듣고 일어나 하란에 있는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달아나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얼마 동안 그분 집에 머물러라.’”(창세 27,41-44) 힘으로는 야곱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놀란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하란을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야곱은 오랜 세월 타향살이 과정에서 피땀 흘려 재산을 모았고, 큰 부자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이 그리워졌다. 야곱은 형에게 돌아가 예전의 잘못을 빌고 깨진 형제간의 우애를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와 많은 재물을 주고, 형과 화해를 했다.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이다.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그리고 에사우와 화해한 후 베텔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전승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성경도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는데, 성경의 골치 아픈 편집 역사는 차치해 두자. 이야기의 핵심만 알면 된다. 바로 야곱이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이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약속, 하느님에 대한 순명, 믿음의 중요성 등 인간이 신을 섬기는 원리들을 확립했다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장(場)을 마련했다. 인류 영성사에 큰 주춧돌을 놓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창세 32,29) “이스라엘이 이제 너의 이름이다.”(창세 35,10)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유대인,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모두 똑같은 말일까. 다르다면 왜 그럴까. 각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글 _ 편집부 cpbc2023.11.13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두 번째 번역서 출간「창세기」에 이어 「마르코복음서」 발간, 내러티브 분석법으로 복음서 읽기 도와 마르코복음서 스티븐 P. 아헌 크롤 염철호 신부 옮김 성서와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이 책이 아마도 복음서라는 고대 문학의 새로운 장르임을 알려주는 첫 번째 표지일 것이다. ‘에우앙겔리온Euangelion’(복음, 좋은 소식)이라는 말이 결코 새로운 단어는 아니지만, 바오로의 서간 이전에 나온 문학작품에서는 단 한 번 단수 형태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마르코는 ‘복음’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남겨 두고 있다. 이야기의 복잡함이 조각조각 쌓이면서 이미지, 줄거리, 성격 묘사, 그리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암시들로 짜인 하나의 태피스트리tapestry를 이룬다.”(57쪽)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마르코복음서」가 출간됐다. ‘제롬(Jerome)’은 성경을 당시 서민들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놓은 예로니모(Hieronymus) 성인의 영어식 이름이다. 2022년 ‘가톨릭성서모임’ 창립 50주년 및 2023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 창사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는 1968년 전 세계 가톨릭 학자들이 모여 만든 「제롬 성경 주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의 전면 개정판(2022)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2027년까지 총 33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창세기」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된 「마르코복음서」는 전례력으로 ‘나해’인 새해에 미사 전례에서 들을 수 있는 복음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자신이 ‘내러티브 분석’ 방법을 활용했다고 밝힌다. 내러티브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혹은 ‘서술, 서사’를 의미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 가는 구조, 방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1970년대에 와서 성경 본문에 신문학비평이 적용되면서, 마르코복음서는 줄거리, 등장인물 변화, 어조, 문체, 설정 등 잘 짜인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책을 번역한 부산가톨릭대학교 부총장 염철호 신부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르코복음서에 제시되는 모든 정보는 실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저자가 독자와 상호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 가는 이야기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이며, 독자도 그 이야기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전한다. 한편 “모든 독자는 해당 이야기를 읽을 때 자기 나름의 해석적 문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저자 스티븐 P. 아헌 크롤은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신약학(복음서와 바오로 서간) 교수로, 그리스와 헬레니즘 종교, 제2성전 유다교, 고대와 현대 해석학 이론에 관해 탐구하며 다수의 책과 논문을 집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2.07

영지주의·금욕주의 등에 맞서 정통 신앙을 지키다[저는 믿나이다] (5) 사도 시대 신앙을 해치는 이단들 그리스도교는 사도 시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정통 신앙을 위협하는 다양한 이단들과 맞서며 온전한 믿음을 고수해 나갔다. 렘브란트 작 ‘베드로와 바오로의 논쟁’, 1628, 유화,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호주. 지금까지 우리는 가톨릭 신앙에 있어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 믿음에 유익이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는 사도 시대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해석해 교회에 혼란을 일으켰던 사례들을 신약 성경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는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팔레스티나 지역 밖에서 살던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완전히 다른 문화권, 특히 헬레니즘 문화와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실히 전달했으나 구성원 가운데 몇몇은 교회 가르침과 달리 자기 나름으로 신앙을 변형시켰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유다교와 분리될 수 없다며 그리스도인들도 구원받기 위해선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유다교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도 먹어선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또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은 유다교 율법에 따라 여전히 정한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기도했습니다.(사도 3,1; 5,21 참조) 당시 유다인들은 그리스도교를 ‘나자렛파’라 부르며 유다교의 새 종파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신약 성경 ‘사도행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49년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구원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할례와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합니다.(사도 15장 참조)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역사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선 이원론적인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영지주의는 2~3세기 고대 교회 안에서 대두되지만 이미 신약 성경이 쓰이던 사도 시대 초대 교회 안에서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원론과 종교 혼합주의를 기반으로 한 영지주의는 플라톤 사상처럼 세상을 선한 영적 세계와 악한 물적 세계로 구분합니다. 이들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하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지식과 완전한 자유를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자부했습니다.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하고 참된 영적 지혜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육체를 업신여겨 그리스도의 강생도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유다 서간’과 ‘베드로의 둘째 서간’은 영지주의를 경고하는 대표적 정경입니다. 이들 두 서간은 영지주의자들을 ‘거짓 교사들’, ‘육욕에 빠진 자’ ‘꿈꾸는 자’ ‘본성만 따르는 짐승 같은 자’ ‘자신만 돌보는 이기주의자’ ‘불평불만꾼’ ‘아첨꾼’이라 비난합니다. 이들이 성령이 아니라 자기 본능에 따라 방탕한 생활을 하는 ‘현세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통 교회에 적대적인 자들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천사들을 모독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 곧 영지주의자들을 세 가지 형태로 식별합니다. 첫째, 이들은 불경합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주님께서 드러내 주신 진리와 참된 생활양식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둘째, 이들은 방탕합니다. 불륜을 저지르고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자들입니다. 셋째,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기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입니다.(1-4절) 그러면서 유다서는 영지주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 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라.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고 자비를 베풀어라.(20-25절) 세 가지 당부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기본 덕인 ‘믿음·희망·사랑’과 일치합니다.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향주삼덕은 모든 윤리의 기초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도록 주신 은총입니다. 영지주의는 오늘날에도 교회의 큰 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영지주의는 하느님과 하느님 은총의 신비든, 하느님의 초월성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 결국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에 이르게 한다”고 경계했습니다. 또 종말을 고대하던 열심한 신자들 사이에서 극단적 금욕 생활을 조장해 신앙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마르치온은 이미 사도로부터 이어진 정통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신생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은 선하시기에 구약 성경의 공정하고 벌하시는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일 수 없다고 철저히 구분했습니다. 또 극단적 금욕 생활을 실천해 결혼을 거부했습니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는 이렇게 유다이즘과 영지주의적 이원론, 금욕주의 등에 대항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정통 신앙을 고수해 나갔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12.03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만 타지 말고 동굴 성당도 가보자레오 14세 교황 첫 해외 사목 방문지, 튀르키예에서 만나는 ‘믿음의 흔적들’ 동굴수도원과 동굴 성당이 운집한 괴레메 야외 박물관. 레오 14세 교황이 이달 말 튀르키예를 방문할 예정이다. 교황 즉위 후 첫 해외 사목방문으로,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지금의 이즈니크 순례가 포함돼 있다. 동방 교회의 중심지였던 튀르키예는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동·서양은 물론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중세 1000년의 그리스도교와 이후 이슬람이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를 자랑한다. 지중해·흑해·에게해 연안의 휴양도시를 비롯해 새하얀 계단식 석회 온천과 과거 화산 폭발로 조성된 신비로운 지형 등 자연이 빚어낸 색다른 풍광 역시 손꼽히는 관광 자원이다. 특히 중동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경우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독특한 기암괴석 위로 하늘을 나는 열기구 체험 및 협곡을 따라 하이킹·지프·낙타 투어 등을 할 수 있어 최근 튀르키예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신앙인이라면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명소가 또 있다. 바로 수많은 암석 속에 위치한 믿기 어려운 ‘믿음의 흔적들’이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내 성 바바라 예배당 내부. 빛이 차단돼 프레스크화가 잘 보존된 '어둠의 교회'. 2~4세기 초 박해 피해 신앙인들이 살았던 동굴 성당과 동굴 수도원 카파도키아는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 때 만든 동굴 성당과 동굴 수도원이 많은 곳이다. 카파도키아는 옛 지명으로 지금의 괴레메·네브셰히르 등이 해당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 전인 2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신앙인들이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 특히 괴레메 근처에 몰려와 살았다. 이 지역은 화산 폭발로 생긴 응회암 퇴적물이 많다. 비교적 무른 응회암은 간단한 도구로도 쉽게 깎아낼 수 있어 동굴을 만들고 주거 및 성찬례 공간으로 사용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뤘던 것이다. 특히 바실리오(330~379) 성인이 고향인 카파도키아 카이사레아(현 카이세리)의 주교로 사목하면서 그를 따르는 은둔형 수도자들이 생활하게 됐고, 이곳의 동굴 수도원은 13세기까지 확산됐다. 200개 이상의 개별 암석을 깎은 성당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바위 블록에 성당과 기도처, 주방 및 좌석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남녀 수도원과 식당, 다수의 교회를 묶어 ‘괴레메 야외 박물관’으로 공개하고 있다. 카파도키아 지하도시에 조성된 신학교. 미로처럼 좁고 낮은 통로로 연결된 지하 도시 데린쿠유. 괴레메 동굴 교회 및 수도원 식당, 누적된 그을음과 좌석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비잔티움 제국 때 2만명 거주했던 지하 도시 동굴 수도원 및 성당은 성화상 논쟁 이후 비잔틴 미술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비잔티움 레오 3세 황제가 우상 숭배로 규정해 8세기 초부터 100여 년간 대대적인 성화상 파괴가 이뤄질 때 카파도키아 지역은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 성화상 공경자들의 은신처가 됐다. 좁은 동굴 성당에 빼곡히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상당수는 국교가 달라지며 눈이 파이고 얼굴이 사라지는 등 훼손됐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잘 버텨냈다. 특히 창문이 너무 작아 ‘어둠의 교회’로 불리는 카란륵 성당의 성화들은 제대로 빛이 들지 않은 덕분에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성화가 있는 공간은 대부분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기적과 수난, 성모자상 등을 담았다. 지상의 동굴에 머물던 신앙인들은 박해자들을 피해 카이마클리나 데린쿠유 같은 지하 도시도 확장했다. 지하 구조물은 이미 기원전에 조성됐고, 아나톨리아반도를 두고 여러 민족 및 제국이 힘겨루기를 했던 만큼 다양한 민족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지나, 비잔티움 제국 때 최고조에 달해 거의 2만명의 그리스도교인이 피난처로 이용했다고 한다. 데린쿠유는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지하 도시로, 200개 이상의 작고 분리된 지하 도시가 이 터널로 연결돼 있다. 환기구 역할을 하는 직경 1m 규모의 구멍이 도시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축사를 시작으로 방·식품 저장고·와이너리·아치형 천장으로 식별할 수 있는 성당과 신학교, 심지어 시신을 처리하는 공간과 감옥까지 마련되어 있다. 미로처럼 사방으로 뻗은 통로는 폭이 매우 좁고 천장이 낮은 곳이 많다. 외부 침입에 대비한 것으로, 일부 구간을 봉쇄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가 곳곳에 배치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깊이는 85m에 달하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방문객에게는 일부만 공개한다. 이들 지역을 아우르는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암석 유적지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대부분 20유로 안팎의 입장료가 있고, 택시 외에는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지만, 하늘에 떠 있는 근사한 열기구만큼 카파도키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지상과 지하 세계, 이색적인 믿음의 유산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0.29

‘주님의 날’이 오면 하느님의 영이 내려 구원하리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60) 요엘서 요엘서는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는 경고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당신 영을 부어 주시어 구원하실 것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 ‘요엘 예언자’, 1508년께,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요엘서는 메뚜기 떼의 재앙과 가뭄으로 시작합니다.(1,4-12) 이 재앙은 아모스서 내용(아모 7,1-3)과 비슷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요엘서를 아모스서 앞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요엘은 우리말로 ‘야훼는 참하느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어 요엘을 음차해 ‘Ιωηλ’, ‘Joel’, ‘요엘서’로 표기합니다. 요엘 예언자는 ‘프투엘의 아들’(1,1)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언 대상이 예루살렘의 원로들과 사제들에게 집중돼 있고, 성전에서 거행하는 단식 의식을 말하고 있어 그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을 것이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엘서 또한 언제 저술돼 최종 편집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엘이 활동하던 당대 임금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던 강대국의 이름이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로와 사제들이 유다인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고(1,2.13; 2,16-17), 바빌론 포로 생활 귀환 후 조직화된 성전 의식이 소개되고(1,9.13), 유다인 공동체가 이미 지어진 예루살렘 성벽 안에 살고 있는 것(2,7-9)으로 미뤄 보아 대략 기원전 400년 전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과 예루살렘 함락이 오래전 일로 묘사되고 있는 것(4,2ㄴ-3) 또한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 줍니다. 요엘서는 전반부(1─장)와 후반부(3─4장)로 구분됩니다. 전반부는 이스라엘 현실을 묘사하고 다가올 ‘주님의 날’을 예언합니다. 후반부는 하느님께서 영을 내려 구원과 심판을 하시리라 선언합니다. 내용에서 보듯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는 경고와 ‘하느님께서 당신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요엘서의 중심 주제입니다. 이처럼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너무 달라 일부 성경학자들은 ‘요엘서의 이중 저자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학계에서는 ‘단일 저자설’이 주류입니다. 중심 주제인 ‘주님의 날’이 책 전체에 일관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뚜기 떼가 몰려와 농작물을 모두 갉아 먹었던 어느 해, 요엘은 이 재앙이 앞으로 다가올 더 무서운 심판의 전조라고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요엘은 심판에 대비해 무엇보다 먼저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엘 예언자는 유다인들에게 탄원 기도를 올리고 참회 예절을 거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구약 시대 유다인들은 슬픔이나 재난을 당했을 때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했습니다. 요엘 예언자는 이러한 참회 예식을 형식에 그치지 말고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큼 진심으로 참회하라고 합니다.(2,1-17)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재앙을 멈추시고 죽음과 불행의 땅에 생명과 기쁨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2,18-27) 이에 요엘은 유다인들에게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하고 책망합니다.(2,13) 요엘은 메뚜기 떼 재앙과 기근을 몰고 올 가뭄은 다가올 ‘주님의 날’의 전조라고 합니다. 이날이 종말을 뜻함을 모든 유다인은 압니다. 이날은 아모스와 이사야, 스바니야, 에제키엘, 오드비야, 말라키 등 여러 예언자가 예고한 날입니다. 이날을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 멸망의 날’이라고(아모 5,18-20; 8,9-14), 이사야와 에제키엘 예언자는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메시아의 날’(이사 49,8-10; 에제 34,12)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날은 이스라엘이 자기 죄에 대해 심판을 받고 구원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날은 단순한 끝 날이 아니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 하늘 새 땅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요엘은 주님의 날이 ‘단순히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됐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또 이 종말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멸망과 함께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는 새로운 예언을 합니다. 요엘은 주님의 날에 하느님의 영이 모든 민족에게 내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사팟 골짜기에서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사팟은 ‘야훼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악인들에 대한 단죄와 형벌입니다. 동시에 모든 민족 가운데 하느님께 성실했던 이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는 날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주님의 영은 판관, 임금, 예언자 등 특정한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그런데 요엘서는 하느님께서 주님의 날에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당신 영을 풍성히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며, 그분을 전할 능력을 받습니다.(3,1-5) 요엘의 이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이뤄집니다. 요엘서의 묵시 문학적 내용은 신약 성경의 여러 경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구약의 ‘주님의 날’은 신약 성경에 와서 ‘그리스도의 날’로 이어집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로, 곧 ‘주일’입니다. 이날은 ‘안식일 다음 날’로, 그리스도교에서 주님의 날은 ‘주간 첫째 날’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13장과 요한 묵시록은 요엘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령 강림 사건을 전해주는 사도행전 2장도 요엘서 내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2.01

참회하며 예수님 부활 준비하는 40일간의 사순[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44) 전례 주기 ③ 사순 시기는 40일간 예수님의 수난을 함께 묵상하며 주님의 승리와 부활을 기도하는 때다. 한 신자가 재의 수요일 예식에서 재를 이마에 바르고 기도하고 있다. OSV 사순 시기(四旬 時期) 사순(40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 전 6주간에서 주일을 뺀 36일에 4일(재의 수요일까지 역산해 계산함)을 더한 시기를 일컫습니다. 성경에서 ‘40’(또는 4)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목전에 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약 성경에서 ‘40주야’를 단식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40일간’ 지상에 머무셨습니다. 따라서 ‘40’이란 숫자는 참회와 속죄로 우리를 새로 거듭나게 하며, 신비롭고도 살아계신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참회와 속죄의 시기입니다. 아울러 희망에 부풀어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주님 부활 대축일을 합당하게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① 재의 수요일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첫날로 사제는 자주색 제의를 입고 재를 축성해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죽음을 상징하는 재를 얹는 것은 참되게 사는 방법을 찾고, 죄의 행실에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로부터 재는 죽음·슬픔·불행·속죄·보속 및 죄를 씻는 정회의 상징이었습니다. 교회는 이날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키기를 명하고, 극기·금욕·자선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② 성주간(聖週間)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의 일주일간을 말하며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주간입니다. ③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승리의 상징으로 종려나무 또는 올리브 가지를 주님 가시는 길바닥에 깔았던 일에서 유래합니다. 성지 주일에 사제는 붉은색 제의를 입고 성지(성스러운 가지)를 축성해 나눠줍니다. 성지 축성과 분배는 원칙적으로 성전 밖에서 행해집니다. 성지를 손에 든 사제와 신자들은 행렬을 이뤄 복음 낭독 후 향을 피우고 십자가를 앞세워 성전에 들어가 예수 수난 미사 전례에 임하게 됩니다. 성지 주일의 주제와 상징은 주님의 승리와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수난입니다. ④ 성삼일(聖三日) 성주간 후반부 3일을 가리키는데,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되는 성목요일과 주님 수난 예식이 있는 성금요일 그리고 성토요일 부활 성야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 저녁기도로 끝납니다. - 성목요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시며 유언을 남기신 날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성체성사와 함께 사제직을 설정해 당신의 구원 성업을 세상에 전해 모든 이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날은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으로 유다인들의 손에 넘겨지신 날이기도 합니다. 성목요일 전례는 성유 축성 미사와 주님 만찬 미사(발 씻김 예식·성체 옮기는 예식·밤 중 성체 조배)로 진행됩니다. - 성금요일 : 이날 주제는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을 재현하고 기념하며, 그 원인이 된 인류의 죄를 아파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전체 분위기는 슬프지만, 부활의 희망을 안고 있습니다. 사제는 순교를 뜻하는 붉은색 제의를 입습니다. 과거에는 검은색 제의를 입었습니다. 성금요일 예식은 말씀의 전례·십자가 경배·영성체로 구성되며,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것을 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기에 성금요일에는 미사뿐 아니라 다른 성사도 집행하지 않습니다. - 성토요일 : 교회는 이날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것처럼 주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단식하며 그리스도 부활을 기다립니다.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시간 전례 외에는 아무런 전례도 없는 날입니다. 단지 위독한 환자를 위한 병자 영성체만 할 수 있습니다.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5.04.01

전설적 가수의 일대기가 건네는 특별한 질문[월간 꿈 CUM] 즐기는 꿈CUM _ 영화 (17) 밥 말리 : 원 러브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감독, <밥 말리 : 원 러브> 포스터 평생을 바쳐 ‘평화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폭력과 차별에 맞서 사랑으로 하나 된 세상의 꿈을 전했던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잘못된 신앙, 흔히들 ‘이단’이라고 부르는 그릇된 믿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영화 ‘밥 말리 : 원 러브’는 간단치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밥 말리’(1945~1981)는 1970년대 ‘레게 음악’의 상징으로 존경받았던 자메이카의 영웅이었습니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 인종차별, 끝없는 정치적 혼란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노래에 담아냈던 민중의 대변자였지요. 그의 이름 위로 밥 딜런과 김민기가 겹쳐 보인다고 하면 대충 설명이 될 듯합니다. 그는 자메이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라스타파리’(Rastafari)라는 신흥종교의 신봉자였습니다. 라스타파리는 흑인 노예의 해방이란 관점에서 성경을 멋대로 해석한 사이비 종교인데, 위안받을 길 없었던 당시 자메이카 국민들에게 널리 퍼졌고, 밥 말리 역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 참 평화가 오는 날까지 멈추지 말자”는 그의 절창은 모두가 더불어 나눠야 할 다짐이지만, 예술가의 정서가 거짓된 신앙에 닿아 있다는 점은 영화감상의 뒤끝을 복잡하게 합니다. 밥 말리는 그의 공연을 두려워하는 폭도들에게 총격을 받고 영국으로 망명합니다. 그곳에서 20세기 최고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 ‘엑소더스’를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와 사랑의 음악회를 엽니다. “(화합의 염원을 전하는) 전달자는 그 자신이 메시지가 돼야 한다”는 스스로의 신념을 목숨을 걸고 실천한 것이지요. 영화는 “사랑으로 하나 되자(One Love)”는 그의 호소가 전세계에 메아리쳤던 1976년부터 2년여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예술에 끼친 ‘라스타파리’의 영향 또한 숨기지 않았고요. 런닝타임 107분 동안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밥 말리의 열창을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시겠습니까? 노래에 실린 메시지에만 집중하시겠습니까, 그가 지녔던 잘못된 종교관을 비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을 연민하시겠습니까? ‘밥 말리 : 원 러브’가 건네는 특별한 숙제를 같이 풀어보자고 제안합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 cpbc2025.05.26

‘선입견 없는 관심’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 담아낸 선교사[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3·끝>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 1925년,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수도원·연합회 28년 이끈 초대 총아빠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선교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초대 총아빠스로 28년간 수도원과 연합회를 이끈 인물이다.<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세례명 요셉)는 1870년 12월 20일 상트 오틸리엔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랑바이트에서 태어났다. 1875년 7월 25일 사제품을 받고 한 달 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해 1896년 11월 1일 ‘노르베르트’라는 수도명으로 서원했다. 1902년 12월 18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초대 아빠스로 선출된 32세의 베버 신부는 임기 초기부터 특유의 열정적 추진력으로 수도원과 연합회를 발전시키는 데 전념했다. 그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그는 베네딕도회 수도 생활과 선교 활동이 결합된 새로운 선교 모델을 모색해 1909년 2월 25일 한국에 진출한 서울 백동 수도원에서 실현했다. 수도자들은 수도원 안에서 베네딕도 수도 규칙에 따라 생활하면서 전례와 학문·기술 교육 등을 통해 선교 활동을 펼쳤다.<사진 2> 베버 총아빠스가 면밀히 추진한 아빠스좌 백동 수도원 설립은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결과를 낳았다. 첫째, 백동 수도원은 새로운 선교 모델의 핵심 요체인 수도 생활과 선교 활동의 병행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는 선교 베네딕도회의 정체성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동아프리카에도 아빠스좌 수도원 설립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둘째, 백동 수도원은 한국 교회 최초, 선교지에 세운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최초, 동아시아 최초 성 베네딕도회 아빠스좌 수도원이다. 한국 교회의 수도 생활을 소개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셋째, 백동 수도원은 교육기관이자 사업체였던 숭공학교(1910~1923)를 통해 465명의 장인을 배출하며 가톨릭의 중산층과 한국인 성소자를 양성했다. 넷째, 백동 수도원은 탁월한 학문기관이었다. 당시 성경·언어·문화·예술·양봉·식물 연구의 중심지였다. 다섯째, 백동 수도원을 찾아오는 신자들과 방문자들에게 전례의 가치와 환대의 영성을 보여줬다. 동시대인의 영적 시야를 넓고 풍부하게 열어줬다.<사진 3> <사진 2> ‘말 위에 올라탄 베버 총아빠스’, 1911년,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베버 총아빠스와 하우현 신자’, 1911년 3월 하우현 성당,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 방문 백동 수도원과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슈바이클베르그 수도원이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면서 연합회 구성 법적 요건을 갖추게 된 상트 오틸리엔은 총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했고,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가 탄생했다. 성 베네딕도회 총연합회의 13번째 연합회로 가입했다. 이때부터 노르베르트 베버는 ‘총아빠스’와 ‘연합회 총재’라는 두 가지 직함을 가지게 됐다. 그는 ‘제2의 창립자’라고 불릴 정도로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의 성격과 구조를 새로 확립하고 선교 지역을 확장해 나갔다. 아빠스로 소임을 시작한 1902년 99명에 불과하던 수도자 수는 그가 사임한 1931년에는 949명으로 증가했다. 28년 재임 동안 독일·동아프리카를 비롯해 한국·중국·필리핀·미국·베네수엘라 등에 수도원을 설립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연합회 안팎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고,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수도자였고, 선교사였으며, 여행가·예술가·사진가·영화 제작자·사냥꾼·민속학자·종교학자·세계 시민·작가였다. 한마디로 그는 ‘다층적 인물’이었다. 다양한 관심과 열정적 추진력, 재빠른 이해력과 진정한 인간성, 도전을 향한 용기 등 베버 총아빠스의 타고난 재능은 한국 문화의 풍요로움을 깊이 인지하게 했다. 낯선 문화와 종교에 대한 그의 개방성과 관용의 마음은 ‘선입견이 없는 관심’에서 출발했다. 그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선교 현안을 해결하는 동시에 한국의 정신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어 가기 위해 험한 여행을 마다치 않았다. 한국 문화와 관련한 두 권의 책과 잘 편집된 한 편의 영화와 수백 장의 한국 사진 아카이브가 그 결실이다.<사진 4> <사진 4> ‘겸재 화첩 금강내산전도’, 1911년 ?, 유리건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한국 문화의 풍요로움에 심취한 선교사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15」는 베버 총아빠스가 1911년 2월 21일부터 6월 24일까지 한국 곳곳을 세심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여행기다. 관찰한 내용을 글과 사진·수채화·스케치 등으로 담았다. 1925년 여행의 결과물인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27」는 서울 시가·혼례·장례·농업·각종 수공업·춤·농악·사찰·미신·금강산 풍경 등을 담았다. 총 촬영 필름분량이 15㎞나 된다. 「한국의 금강산에서, 1927」는 베버 총아빠스의 금강산 유람기다. 이 책에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 2점이 수록돼 있다. 베버 총아빠스는 또 한국 문화재 수집가였다. 유명한 ‘겸재 정선 화첩’뿐 아니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 박물관에 소장된 많은 한국 관련 민속품이 그의 수집품이다.<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선교사로 활동하다 1956년 4월 3일 리템보에서 선종, 페라미호 수도원 묘지에 안장됐다. 그의 선교 사상은 선교지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나라의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는 마음이 따뜻한 한 문화인으로 한국 문화의 풍요로움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1.19

구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 21주일 (루카 13,22-30) 얀 미커 작, ‘덕의 좁은 길과 악의 넓은 길’,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합니다. 많은 종교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종교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가 마음대로 구원을 주거나 말거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지, 하느님께서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 갇혀 계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루카 13,25-27)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일지라도 하느님 뜻에 맞게 살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천주교 신자가 되고, 성경을 읽고, 강론을 듣고, 성체를 모신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지만,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작은 사람,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사제인 저에게도 오늘 예수님 말씀은 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사제라는 직책만으로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주님,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거행하지 않았습니까? 문 좀 열어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온갖 허물과 수많은 죄로 하느님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자비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이 보장되거나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주님 가르침에 따라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돈과 재물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학식과 재능과 천주교 신자라는 이름과 어느 정도의 선행과 자선으로 치장하며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자만하기도 합니다. ‘내가 신부인데⋯, 내가 천주교 신자인데⋯, 내가 사회에서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자선을 이만큼이나 베풀었는데⋯’하는 생각으로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는 어렵습니다. ‘쉽고 편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세상의 생각과 다르게, ‘어렵고 힘들어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면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한 선택의 기준을 어떻게 삼고 있습니까? 2025.08.20

삶의 가장 근본적인 영적 에너지인 ‘사랑’[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0. 치유의 근본 원리인 ‘사랑’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의 기본 요소를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의 세 가지로 규정한다. 노동은 생명의 조건에 부합하는 육체적·생물학적인 기초활동이며, 작업은 연속성을 지닌 도구적 인공 세계를 창조하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다. 행위는 다원성과 탄생성에 기반해 복수의 인간이 함께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로서의 정치적 활동을 의미한다. 활동적 삶에 대응하는 말로는 ‘정신적 삶’ 혹은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이 있다. 이는 인간이 육체적 조건 속에서만 살아가지 않고 정신적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런데 활동적 삶이든 정신적 삶이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신체적·생물학적 활동을 통해 이런 생명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는다. 영양 섭취가 이런 활동에 속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적·생물학적 활동의 에너지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에너지는 신체적 에너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체적 에너지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이 건강한 음식이라면, 정신적 에너지를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일용할 영적 양식이다. 오로지 영적 양식만이 진정으로 정신적 삶에 활력을 주는 만큼, 이것이 결핍될 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적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적 에너지는 무엇일까? 기쁨·위로·평화 등이 그러한 것이겠지만 삶의 가장 근본적인 영적 에너지는 ‘사랑’이다. 「신약 성경」의 「요한의 첫째 서간」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요한의 첫째 서간의 신앙 고백은 심오한 철학적·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또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바로 하느님의 초월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상처를 주고받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사랑에 근거해 용서받고 치유를 받는다. 사랑은 우리를 존재의 긍정과 충만으로 초대하는 삶의 긍정적 에너지이다. 이 영적 에너지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수고하여 얻는 것으로, 즉 초월적 사랑을 향해 부단히 자기를 개방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영적 에너지를 그때그때 얻지 못할 경우 무와 허무, 부정과 거부, 절망과 실의에 쉽게 빠지게 된다. 상처 입은 자신을 치유할 수도 없게 된다. 영혼의 상처는 흔적 없이 아물기보다 고통의 흔적으로 영원히 남기에 이를 보듬는 사랑의 긍정 에너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의 결핍으로 내적 충만함을 느끼지 못할 때 영혼의 상처는 언제든 다시 나타나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우리는 평소 사랑을 얻고자 노력하기보다는 자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한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 사랑의 본질이 ‘주는 사랑’이 아닌 ‘오는 사랑’에 있음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사랑받지 않은 자는 결코 사랑할 수 없으며, 치유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cpbc2025.03.05

하느님 자녀로 새 삶을 살게 하는 세례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2) 세례성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예수 세례’, 영국 런던 국립미술관. 세례성사는 우리가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게 하는 성사입니다.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참다운 자녀로 다시 태어나 교회 일원이 됩니다. 또 교회에서 베푸는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① 세례성사의 성경적 근거 구약의 세례 -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는 것을 새로운 탄생으로 여겼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통제에서 벗어나 홍해를 통과한 것을 세례받은 것으로 봤습니다. 반면 홍해를 통과하지 못한 이방인들은 개종할 때 세례를 받음으로써 깨끗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임을 기억하며 전통적으로 할례를 받고 파스카에 참여했는데,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은 그 전에 먼저 개종 의식으로 세례를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하느님 백성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신약의 세례 - 요한 세례자가 주는 세례는 유다교에서 개종자에게 주는 세례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준비 행위로서의 세례였습니다.(루카 3,3 참조) 즉 회개의 세례입니다. 요한은 참회를 위한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태 3,13-17 참조) ②세례의 종류 수세(水洗) : 일반적인 세례입니다. 세례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에 잠기는 예식을 합니다. 물로 씻는 것은 몸의 더러움을 닦아내는 것입니다. 세례 때 물로 이마를 씻는 것은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원죄와 자기가 범한 모든 죄를 씻는 좋은 상징이 됩니다. 성경에서 물은 생명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혈세(血洗) :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했거나 구원의 진리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 적용되는 세례입니다. 자신의 피로써 구원받았다고 해 혈세라 불립니다. 혈세의 효과는 수세와 같으나 성사의 인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만 다릅니다. 화세(火洗) : 세례를 받지는 않았으나 자기 양심에 따라 살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애덕을 실천하는데 온 삶을 바친 이들에게 적용되는 세례입니다. 자기 열성으로 구원받아 화세라고 하는데, 효과는 혈세와 같습니다. ③ 세례성사의 효과 원죄, 본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됩니다.(로마 3,24 참조) 그리스도 몸의 지체, 즉 신비체를 이룹니다.(1코린 12,27 참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본성과 생명에 참여합니다.(2베드 1,4 참조) 영구적인 인호(소멸할 수 없는 표지)를 받고 하느님 은총인 다른 성사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얻습니다.(에페 1,13 참조)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집이 됩니다.(에페 2,19-22)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느님 백성을 이룹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승리에 참여하게 됩니다. ④ 세례명을 정하는 이유 세례 때 새로 받는 이름을 세례명이라 합니다. 보통 가톨릭교회가 공식 인정한 성인·성녀를 특별히 수호자로 삼아 모범으로 모시고, 보호받자는 뜻으로 세례명을 정합니다. 덕목을 의미하는 단어나 천사 이름으로 짓기도 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2015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결정에 따라 사목적 혼란을 피하고자 세례명의 변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cpbc2024.12.24

레베카의 선택 (1)[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6) 요한 게오르그 플라체르(Johann Georg Platzer, 1704~1761)의 ‘우물가의 레베카’(Rebecca at the Well) 부분, 1735,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 박물관.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 cock, 1899~1980) 감독이 1940년에 연출한 영화 ‘레베카’(Rebecca)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독특한 소재로 당시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레베카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3800~4000년 전, 이사악의 아내 이름도 레베카였다.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는 이미 죽고 없지만, 마치 히치콕 감독의 영화 속 레베카처럼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약 그녀가 둘째 아들 야곱이 아닌, 첫째 에사우를 더 사랑했다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 명백한 이사악은 아내 레베카를 통해 특별한 위로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머니 사라의 죽음 뒤에 이뤄진 혼인이어서, 아내에 대한 정이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이사악과 레베카, 또 그의 아들 야곱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 25장에 자세히 나온다. 마흔 살의 늦은 나이에 레베카와 혼인한 이사악은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다.(창세 24,67 참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20년이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사악은 아이를 얻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레베카가 임신을 했다. 그것도,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덜어 주기라도 하듯, 아들 둘(쌍둥이)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레베카도 임신 초기, 직감으로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쌍둥이임을 알았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로 물었다. “어째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주님께서 대답했다.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세 25,22-23) 세상에 먼저 나온 이가 ‘에사우’이고, 둘째가 ‘야곱’이다. 참고로 에사우는 이슬람 민족의 조상이 된다. 유대인의 조상이 야곱이니까, 유대인과 아랍인은 애초에 쌍둥이 형제인 셈이다. 야곱은 영어 이름에서 제이콥(Jacob), 잭(Jack) 혹은 재키(Jake) 등으로 변형된다. 요한이 존(John), 베드로가 피터(Peter), 바오로가 폴(Paul), 마리아가 메리(Mary), 안나가 앤(Anne)으로 변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 이름과 관련, ‘야곱’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는 요한(존)과 베드로(피터), 바오로(폴)에 비해 크게 앞선다. 미국의 한 단체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남자아이 이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이 야곱(Jacob)이었다. 야곱은 ‘다른 사람의 뒤꿈치를 잡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태어날 때 형 에사우의 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야곱은 ‘남의 자리를 뺏다, 기만하다’라는 뜻과 관련되기도 한다.(창세 27,36 참조) 반면 에사우는 ‘털복숭이’라는 뜻이다. 1990년에 케빈 코스트너(Kevin Michael Costner, 1955~)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도 인디언들의 이름 중에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차는 새’ 등과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나오는데,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사람의 특징을 따서 이름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늦게 본 아들과 딸의 이름을 ‘막둥이’ 또는 ‘말순이’라고 지었다. 어쨌든 비슷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 형제면 성격도 비슷할 법한데, 에사우와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달랐다. “아이들이 자라서,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이사악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창세 25,27-28) 글 _ 편집부 cpbc2023.11.06

교부들이 성경에서 선별한 주옥같은 가르침 모아[책] 교부들의 가르침 1 가난-교만 교부들의 가르침 1 가난-교만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김정수 엮음 분도출판사 교부 문헌을 주제별로 선집한 「교부들의 가르침」이 출간됐다. 교부들의 성경 해석 역사는 고대 그리스도교의 역사라 하겠다. 해석학의 꽃인 이해의 방법이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변할 뿐 아니라 해석의 내용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분도출판사와 한국교부학연구회는 지난 2008년부터 2022년까지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 29권을 펴냈다. 교부들이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성경 각 구절을 풀이한 내용을 골라 엮은 것으로, 이번에 펴낸 「교부들의 가르침」의 뿌리가 됐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에서 주요 개념을 가나다순 250여 항목으로 분류한 「교부들의 가르침」은 해마다 한 권씩 총 열 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 정신이자 종교 개혁의 첫 외침은 ‘원천으로 돌아가자!’였다. 신약 성경과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교부들은 교회 전통에서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 성경과 성전(聖傳)이라는 계시의 두 원천에서 성전의 핵심은 교부들의 가르침에 들어 있다. 이들이 남긴 대다수 문헌은 직접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쓴 글인 만큼 「교부들의 가르침」 역시 독자들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 예로니모 “‘재산은 사람의 목숨을 보장해 준다’(잠언 13,8)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부자에게는 그런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어 자기 목숨을 보장받지 않고 썩어 없어질 곡식을 쌓아 두는 데 바빴습니다. 네, 장차 그 앞에 서야 할 주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내어 놓지 않아 속절없이 멸망할 참이었는데도, 그는 썩어 없어질 곡식을 쌓아 두기만 했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설교」 36,9.) “교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을 적으로 대합니다. (중략) 다른 악한 행동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 벌이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교만으로 가득 찬 마음만은 하느님을 직접 대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적으로 간주하십니다.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면 언제나 하느님의 것을 자신의 것인 양 주장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브라가의 마르티누스 「교만」 7.) 「교부들의 가르침」 제1권에서는 가난에서 교만까지 설명한다. 가난, 가정, 겸손, 계명, 고독, 고통, 관대함, 교만 등에 관한 성경 구절과 해설이 담겨 있다. 총서에서는 전체적으로 교회 일치와 쇄신,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성, 성직자들의 사목과 설교, 평신도의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될 그리스도교 문헌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에 관한 일부 진술은 오늘날의 상황과 잘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저자 하성수(한국교부학연구회) 선임연구원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시대의 징표와 요구를 읽어 내려 한 교부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학자였다”며 “「교부들의 가르침」에 담긴 오래고도 새로운 정신문화 유산에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1.18
![[금주의 성인] 성 마르첼라 (1월 31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1/21/dN81737440390314.jpg)
[금주의 성인] 성 마르첼라 (1월 31일)325/335~410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과부, 모든 성인과 로마 부인들의 영광 마르첼라 성인. 사진=가톨릭온라인 마르첼라 성인은 예로니모 성인이 “모든 성인과 로마 부인들의 영광”이라고 칭송했던 사람입니다. 마르첼라는 325~335년 사이 이탈리아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자비롭고 경건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결혼한 뒤에는 7개월 만에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합니다. 이때 마르첼라는 남은 생애를 자선과 기도, 그리고 고행하며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집정관 케레알리스의 구혼도 거절하고 동방 은수자들의 생활을 본받으며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마르첼라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리우스파의 박해로 추방당해 로마에 피신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 주교와 그 일행을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저택으로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마르첼라는 그들을 통해 이집트 테베의 은수자들과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르첼라는 고기와 술을 끊는 절제는 물론, 영적 독서와 기도에 열중하고 사도와 순교자들의 성당을 방문하며 기도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습니다. 마르첼라의 모범에 감동한 로마의 여러 귀부인과 과부, 젊은 여성들이 그의 지도를 받으러 모여들면서 짧은 시간에 이들로 이뤄진 공동체가 로마에 여러 개 생겨났습니다. 마르첼라는 자신과 어머니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아벤티노 저택을 수도자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과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마르첼라는 382년 성 다마소 1세 교황이 예로니모를 로마로 불렀을 때, 그에게 숙소를 마련해주고 환대하며 집에 초대했고, 그에게서 성경 강의와 영적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후 바울라 성인과 에우스토키움 성인은 영적 스승인 예로니모가 있는 성지 베들레헴으로 가서 스승을 도와 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마르첼라는 나날이 성장하는 로마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 남았습니다. 나중에는 프린치피아 성인과 함께 시골의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겨 계속 성경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예로니모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410년 알라리크 1세 휘하의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러 왔을 때였습니다. 고령이었던 마르첼라는 그의 막대한 재산을 빼앗으려는 고트족 병사들에게 붙잡혀 채찍질과 구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마르첼라는 사랑하는 제자 프린치피아를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병사들은 이미 마르첼라가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 나눠준 것을 알고, 그를 피신처로 지정된 성벽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 풀어줬습니다. 마르첼라는 이때 입은 상처로 몇 달 후 프린치피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습니다.cpbc2025.01.22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생명의 영이신 성령[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9) 협조자- 성령 베첼리오 티치아노 작 ‘성령 강림’, 1570년 경, 유화, 이탈리아 베네치아 구원의 성모성당.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얼·숨결·바람·거룩한 영(靈)’ 등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표상은 생명을 연상하게 합니다. 모든 생명에 생기를 줘 물에서, 불에서, 숨결에서 생명의 힘찬 율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생명의 영이신 하느님으로, 인간을 성화시키고 하느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영원으로부터 계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성령 - 구약 : 하느님의 영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힘으로 나타나며, 특히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리셔서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려는 은혜로 나타납니다.(창세 1,31; 7,1-24; 1사무 16,13)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영이 모든 사람 위에 내리시는 것을 예언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영을 받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엘 예언자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에 의해 생명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요엘 3,1-5) - 신약 : 위로자·협조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후 승천하실 때 위로자 성령을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오순절에 사도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청을 들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것입니다.(요한 15,26) 이렇게 파견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사람을 진리로 이끄시는 일입니다.(요한 16,13)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구원이 세상 마칠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도록 교회를 통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의 참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로써 생명과 구원을 베푸십니다. 교회의 무지와 나약함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인 구원사업을 계속 수행한 성령은 우리의 협조자이시며 위로자이십니다. 성령의 선물 - 성화 은총(생명의 은총) :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생활하시며 하느님 나라로 참여시키는 초자연적인 은총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이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지니고 하느님을 향해 힘찬 생명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도움의 은총(조력 은총) :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은총 안에 살도록 도와주는 은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인간이 받아들이고 응답하도록 초대하십니다. - 성령의 특별한 은혜 : 일상을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은 제일가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특별히 옳은 일이나 특별한 의미에서, 특별히 보이는 성령의 은혜를 ‘특은’(카리스마)이라 부릅니다. 예언·영의 식별·기적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특은’은 초대 교회의 그것과는 형태를 달리합니다. 필요한 것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특은’은 특별한 사목 능력이나 밝은 지혜(신학)·현명한 통치 능력·예술형태의 발견·훌륭한 교육·성인들의 탁월한 일생 등입니다. - 성령의 7가지 은사(성령칠은)와 9가지 열매 성령칠은 : 지혜(슬기)·통달(깨달음)·의견(깨우침)·용기(굳셈)·지식(앎)·공경(받듦)·경외(두려워함) 성령의 열매 :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온유·착함(선행)·성실·절제 성령 강림 : 오순절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성령께서 각 사람 위로 내려오셨음을 말합니다. cpbc202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