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봉헌을 축하드립니다] 광주대교구 본촌동본당 광주대교구 본촌동성당. 광주대교구 광주 본촌동본당(주임 최윤복 신부)은 11일 광주 양산로71번길 5-1 현지에서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새 성전을 봉헌했다.새 성전은 대지면적 1797.1㎡에 전체 면적 972.08㎡, 건축 면적 651.22㎡의 지상 2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1층에는 성체조배실과 사무실, 사제 집무실, 교육관, 회합실, 2층에는 278석 규모의 성당을 비롯해 고해소와 유아실 등을 갖추고 있다. 성당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성당 정문 위에는 이사야서 11장 6절의 ‘새 하늘 새 땅’, 성당 내부에는 ‘천지 창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주제로 한 최성호(루카) 작가의 유리화를 설치했다. 또 ‘십자가의 길 14처’는 조광호(인천교구 조형미술연구소장)신부, 성모동산의 ‘성모자상’은 엄종환(요셉) 작가의 작품이다. 성당 외벽에는 본당 수호성인인 성 요한 세례자상과 성 김대건 신부상이 나란히 서 있다. 2012년 8월 신설된 본촌동본당은 최근까지 인근 건물을 빌려 임시 성당으로 사용해왔다. 본당 공동체는 성전 건축을 위해 ‘12사도단’을 결성, 최근까지 묵주기도 110만 8164단, 성경 읽기 21만 966장을 봉헌했다.최윤복 주임 신부는 “대출금 상환 중에도 성전 기금을 아끼지 않은 신자들의 희생과 품삯으로 하루를 사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금싸라기 같은 성금과 기도로 이 성당이 지어졌다”며 “모든 본당 교우들에게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백영민2015.04.08
![[가톨릭 리빙] (4)축성된 미사주는 그리스도의 성혈](//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4327_1.4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빙] (4)축성된 미사주는 그리스도의 성혈성찬례 통해 성혈로 변화하는 포도주...국내 미사주, 엄격한 규정 따라 생산 한국 천주교 미사주는 엄격한 전례 규정에 따라 섬세하게 생산된다. 지하 저장고에는 미사주용 저장 탱크가 따로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1989년 개봉한 영화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한 성배 (Holy Grail)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속 인디애나는 아버지가 총에 맞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성배를 찾으러 뛰어간다. 촌각을 다투는 짧은 시간 안에 수 백 개의 술잔 중에서 바로 그 ‘성배’를 찾아야만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때, 인디애나가 선택한 잔은 바로 가장 허름한 나무잔이었다. 그 잔에 물을 담아 아버지의 총 맞은 배에 부으니 상처가 감쪽같이 나았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스토리다. 그런데 실제로 2000년 전 새로운 계약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잔에 담았던 그 예식은 현재까지도 가톨릭 신자들의 미사 성제를 통하여 매일, 매주 재현되고 있다. 성직자들은 성찬례를 행하면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 그러나 일반 신자들이 미사를 통해 축성된 성혈을 성체와 함께 모시는 양형 영성체는 한때(13세기) 금지되기도 했지만, 피정이나 연수 등 특별한 행사에서는 사제의 허락 하에 양형 영성체를 하고 있다. 필자는 대학생 시절에 주일학교 교사를 오래 했다. 와인을 전혀 몰랐던 당시에는, 신부님이 미사 때 드시는 포도주가 얼마나 맛있는지, 진짜 포도주인지 등등이 궁금해, 보좌 신부님 허락하에 조금 맛본 적이 있었다. 무척 시고 맛이 없었던 기억이었다.이제 와인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다시 이 미사주에 대한 칼럼을 쓰니 감개가 무량하다. 한국 천주교에서 공인한 미사주는 경북 경산의 마주앙 공장에서 생산된다. 거룩한 미사에 사용되는 와인인 만큼,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엄격한 규정에 따라 생산된다. 경북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회 수사들이 품질 관리를 하고 있으니, 유럽의 명품 와인들도 수도자들이 생산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다. 공장은 매년 포도 수확기에 축복식을 거행하고 있다. 축복식은 거룩한 미사주의 원료가 될 당해 연도 포도 수확에 대해 감사하고, 미사주 생산에 축복을 기원하는 행사다. 미사주 화이트의 경우 의성 지역의 청포도 세이벨(Seibel) 품종을 사용하며, 미사주 레드는 경산지역에서 재배하는 MBA 품종을 쓴다. 일반 와인과는 달리 미사주는 화이트 와인이 더 많이 사용된다. 이는 미사 집전 중 혹시라도 붉은 포도주를 쏟으면 수단과 제대에 얼룩질 우려가 크기 때문인 듯하다. 축성 후 성혈로 변모된 포도주는 절대 남겨서는 안 되므로, 사제는 그것을 모두 마셔야 한다. 그리고 집전 사제는 미사 중 포도주를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따라 마신다. 미사주에 관한 허영엽 신부의 글(평화신문 2008년 9월 7일자, ‘성경 속 상징’ 포도주편)에 의하면, 미사 중 사제가 포도주에 물을 조금 섞는 것은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뜻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을 의미(2베드 1,4)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 두자.필자는 이번 기회에 마주앙 미사주를 마셔 보았다. ‘마주앙 미사주’로 이름이 적힌 와인은 화이트, 레드 모두 12%vol 의 알코올을 가지고 있으며, 용량은 700ml 이다. 미사주 화이트 와인은 밝고 투명한 엷은 노란색을 띠었다. 향에서는 레몬 향과 오렌지, 청사과의 풋풋하고 싱그런 풍미가 나 기분이 좋았다. 입안에서는 맛깔스러운 산미와 동시에 따사로운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자애로우신 성모 마리아의 손길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미사주 레드 와인은 밝은 루비빛 색상에 딸기와 복분자, 자두향이 풍부하며, 미려한 질감에 부드러운 타닌을 함유하였다. 한 모금 한 모금에 인류 대속의 피를 흘리신 성자의 성혈이 그대로 내 혈관을 타는 느낌이 들었다. <스테파노, 손진호와인연구소> 문채현2015.09.22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0)루이 부이에 (하)](//cpbc.co.kr/CMS/newspaper/2014/09/rc/530670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0)루이 부이에 (하)전례와 성사는 영성생활 발전의 초석 지금 우리는 루이 부이에를 영성신학자로 살펴보고 있지만, 사실 부이에가 교의신학자 및 전례신학자로도 활동하면서 성사론(聖事論)과 전례(典禮)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저술 활동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부이에가 자신의 영성신학을 전개하는 데 성사론과 전례적 관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관점은 다른 영성신학자들보다 더욱 두드러지면서 부이에의 영성신학에서 고유한 특징을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시작은 성경에서부터먼저 부이에는 그리스도교인이 영성생활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한 기준점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개신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개신교와 차이가 있다면 성경을 올바로 알아듣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번에 부이에가 영성생활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관점이 개신교의 개인적인 측면이 강조된 점과 가톨릭교회의 이웃 사랑을 통한 공동체적인 측면이 강조된 점에 있다고 언급하였다.같은 관점에서 부이에는 성경을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개신교의 방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해석되는 장소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개인적인 해석으로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죽은 글자처럼 성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말씀하신 분의 현존으로 여전히 생명이 부여되는 곳에서, 즉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성령이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곳에서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성령이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곳은 바로 전례가 거행되는 곳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전례적인 모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느님 자신에 의해 함께 모이도록 불린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기 때문이다.”그동안 가톨릭교회는 모든 유형의 전례 예식 안에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고 가르침을 들었다. 특히 부이에에 따르면, “미리 준비되고 조명된 신약의 체험 속에서 심화된 구약의 교훈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형성되고 완성되는 전례 예식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전례의 독서와 복음에서 구약성경의 말씀과 신약성경의 말씀을 선택하여 봉독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런데 이렇게 전례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그저 무작위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이에에 따르면, “교회가 전례를 통해 전해 주는 체계화된 성경의 점진적인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백성의 전 역사를 우리 각자가 내적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 중심의 전례 예식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은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고 영성생활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와 달리 공동체적인 측면의 중요성 때문에 전례 예식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라고 언급한 부이에는 그러한 전제 조건이 잘 충족되면 다시 전례 안에서 접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개개인에 더 적합한 가르침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고 본다. 즉, 부이에에 따르면, “하느님 백성의 전례 생활은 성경 전체가 집중되고 이해의 출발점이 되는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우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방법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하느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공동체적인 측면이 마련된 후에 개개인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진정한 의미를 알아듣는다는 것이다.또한 부이에는 전례 예식 중에서도 특히 미사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면서 그 의미에 다가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실 교회가 전례와 특히 미사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소화하기 위하여 성경에 대한 모든 영적 독서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며 어떻게 적절히 묵상 되어야 하는지 실천적으로 가르쳐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이 전례주년에 맞추어 짜인 독서와 복음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한다면 영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생활은 영성생활의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그리스도의 신비로 나아가기그런데 그리스도교인은 전례 예식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접하면서 깨달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부이에에 따르면, “우리가 이 신비에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선포된 신비를 믿음 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성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톨릭교회에서 미사 전례는 성사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성사생활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부이에는 “본래의 모습을 지닌 성경의 말씀은 이와 반대로 자연스럽게 성사적인 실재성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성사들을 통해 말씀의 대상인 하느님의 신비가 영광의 희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서 교회 안에서 전달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부이에에 따르면, 사실 “성사들이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통한 그리스도의 실재성과 그리스도 부활의 충만함에 참여하도록 그리스도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 안으로 뛰어들어야 할 우리 자신들의 실재성 사이에 있는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에 “미사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선포된 하느님의 신비로부터 축성의 말에 의해 현존하게 된 하느님의 신비로 자연스러운 이동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사 전례에서 거행되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이 우리 구원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영적 여정의 한 방법이다.물론 부이에에 따르면, “성체성사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리스도의 신비를 온전히 우리 안으로 옮기고, 영광의 희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가 우리 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준비의 기도와 제물의 봉헌 및 성체 배령은 특히 그리스도교인이 성사생활을 통해 영성생활을 실천하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부이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기도는 … 하느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며 우리를 불러 주신 당신의 이름을 알아듣는 것,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그 사랑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찬례에서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이것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 생활의 봉헌에서 구체화되고, 이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 배령은 성부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봉헌에서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아드님이 되신 바로 그 실재성 안에서 우리를 일치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영성생활 어렵지 않게 이렇게 부이에는 가톨릭교회의 영성생활은 전례생활과 성사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영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영성생활이 아주 특별하거나 어려운 실천을 수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상적인 전례생활과 성사생활에 소박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영성생활은 성직자,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신도 그리스도교인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부이에는 가르치고 싶었다.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평화신문2014.09.24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8) “그런 다음에”(요엘 3,1)](//cpbc.co.kr/CMS/newspaper/2015/12/rc/606738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8) “그런 다음에”(요엘 3,1)벌준 뒤 다독여주시는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요엘 예언자를 통해 심판 후에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성령 강림을 통해 이뤄진다. 그림은 엘 그레코 작, ‘성령 강림’. 요엘 예언서에는 중요한 주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무서운 심판의 날인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는 경고와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한 예언자가 이 두 가지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의심스러울 만큼 철저히 서로 대조되는 두 주제입니다. 여기서,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지점을 표시해 주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요엘 3,1)입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그 후에 구원의 때가 오리라는 것입니다.요엘 예언자가 언제 활동했는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풍이 불던 해’라고 하면 그것이 1950년대인지 2000년대인지 알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요엘은 메뚜기 재앙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엘서의 연대에 대해선 기원전 9세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부터 기원전 3세기라고 보는 사람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요즘은 주로 기원전 5-4세기라고 보지만, 메뚜기 재앙은 성경 여기저기서 언급될 만큼 이스라엘에는 종종 일어나던 재앙이었습니다.그런데 어느 해에 메뚜기 떼가 몰려와 농작물을 모두 갉아먹었을 때, 요엘은 이 재앙이 앞으로 다가올 더 무서운 심판의 전조라고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아모스부터 시작하여 이미 과거의 예언자들이 장차 닥쳐올 ‘주님의 날’을 선고했습니다. 그날은 이스라엘에게 빛이 아니라 어둠일 것이며, 죄에 대한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요엘은 이제 메뚜기 떼와 가뭄, 외적의 침입과 같은 상황 앞에서 이 예언자들의 말을 상기시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그 심판의 날을 대비하라고 말합니다(2,1 참조). “주님의 날은 큰 날, 너무도 무서운 날, 누가 그것을 견디어내랴?”(2,11).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회개입니다(2,12-17).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2,13)라는 유명한 구절이 여기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며 하느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회개가 전부는 아닙니다. 회개가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아무리 울며불며 땅을 쳐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탈출기 34장 6-7절에서 선포되었던 하느님의 두 번째 이름,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라는 것입니다(2,13). 요엘서뿐만 아니라 다른 예언서나 시편들에서도 특히 유배 이후의 본문들 여러 곳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멸망을 겪은 시점에서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이 이스라엘이 살길이었기 때문입니다.요엘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을 되돌려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초점은 주님의 날과 그 심판이 아니라, 그 후의 일들입니다. 요엘을 유배 후의 예언자로 본다면, 과거에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예레미야가 예고했던 바와 같이 멸망했고 왕정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구원을 기다릴 때입니다. 요엘보다 앞서 에제키엘, 하까이, 즈카르야 등의 예언자들이 이미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었습니다. 이때에 요엘은 이제 곧 약속들이 성취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선포합니다.그 이유는 주님께서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2,18)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열정’으로 번역된 단어는 보통 ‘질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느님을 일컬어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고 할 때에 사용되는 그 단어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땅에 대해 ‘질투’하시는 것은, 오직 당신의 것이고 당신께 속해 있어야 하는 땅이 다른 이들에게 짓밟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느님은, 당신의 땅을 누가 건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되찾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땅을 되찾으심으로써 “주 너희 하느님이 바로 나요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음을”(2,27) 알게 하십니다.이어서 나오는 “그런 다음에”(3,1)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심판이 모두 끝난 다음에,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요엘서에서 심판 이후에 이루어질 구원을 묘사하는 데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는 것입니다. 보통 주님의 영은 판관, 임금, 예언자 등 특정한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그런데 요엘서에서는 누구에게나 당신의 영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들과 딸,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남종과 여종은 결국 특정한 성별과 나이와 신분에 한정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고 꿈을 꾸고 환시를 본다는 것(3,1 참조)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전할 말씀을 전달받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말하자면 모든 이들이 예언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 예언은 사도행전 2장 16-21절에서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오신 때는 예언자들의 기다림이 성취된 순간이 될 것입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전에 다른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산에는 남는 이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영이 내릴 것입니다. 요엘은 그 믿음을 품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세상이 무사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 안에서 심판이 선고될 이유를 보고,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 안에서 구원의 희망을 봅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12.01
![[성경 속 도시]<1> 연재를 시작하며, 칼데아의 우르](//cpbc.co.kr/CMS/newspaper/2013/12/rc/490212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연재를 시작하며, 칼데아의 우르대도시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가 읽는 성경은 이미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책이다. 그 배경은 이스라엘과 근동지역이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와 지리, 풍습 등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많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 시대의 지리를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성경을 공부할 때 단어 사전 못지않게 지리나 풍물 사전도 필요하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낯선 지명들이 많이 나온다. 모두 몇 개의 지명이 나오는지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이 지명이 현재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곳도 대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을 풀려면 해당지역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성지순례 중에 현지 가이드로부터 이 지역 설명을 들으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성경을 읽을 때 겪는 어려움은 그 밖에도 많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읽다 보면 '칼데아의 우르'라는 지역이 나온다.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창세기 11,31). 그런데 이 '칼데아의 우르'라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어떤 지역이었는지는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돼 있다. 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칼데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험한 행위였지만,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창세기는 아브라함 가족이 칼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자리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칼데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하는데, 이곳은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따라서 우르라는 도시를 잘 알려면 수메르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기원전 5000년경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이 지역은 기원전 3000년경에는 세계 최고의 문명을 누렸다. 그런데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 간 각 도시국가가 난립해 서로 싸움을 벌였다. 각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초기 왕조시대에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들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퉜다. 수메르의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상 많은 공적을 남겼다. 따라서 오늘날로 보면 우르가 가장 발전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문명 도시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떠난 것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높이 추앙했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도시와 지역은 독특한 역사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지고, 성경을 통해 얻는 내용도 더욱 풍요로워진다. 물론 재미도 느끼게 된다. 이제 시작하는 '성경 속 도시'가 독자들의 성경 읽기에 재미를 더해주고, 누구나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 백영민2013.12.31
성경 중심으로 새로운 복음화에 박차전국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본 2014년 한국 천주교회 사목 방향 전망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중심에 두는 생활, 가정 복음화와 청소년 사목 강화, 전례 활성화와 선교,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복음화. 교회력으로 새해 시작인 대림 제1주일을 맞아 전국 각 교구장 주교들이 발표한 2014년 사목교서와 사목지침에 나타난 2014년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 방향이다. 교구장 사목교서 혹은 사목지침은 대통령의 연두 교서처럼, 각 교구장 주교들이 자기 교구의 새해 사목방향과 실천지침을 제시하는 문서로, 해마다 다른 주제로 교서를 발표하던 데서 벗어나 근래에 들어서는 짧게는 2~3년 길게는 5~10년까지 중ㆍ장기 계획을 세워 사목교서를 발표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성경 : 서울대교구는 교구내 사목 모든 분야에서 성경을 새로운 복음화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날 미사 독서와 복음 말씀 읽고 묵상하기 △성경 필사 △성경 통독 △성경 가훈 △성경 공부 프로그램 참여하기 등 다양한 실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2016년 교구 50주년 희년을 맞는 마산교구는 이를 준비하기 위한 영적 쇄신으로 성경 필사, 읽기, 공부하기 등을 제시했다. 이미 922명이 신ㆍ구약성경을 완필해 교구장 축복장을 받은 대전교구 역시 신앙의 기쁨을 체험하는 성경공부를 계속 독려하고 있다. ▨가정 : 2012년부터 3년 동안을 가정의 해로 정한 광주대교구는 마지막 해인 2014년에는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 교회를 가꾸는 데 주력할 계획이고, 부산교구 역시 새해를 '가정 복음화의 해'로 정해 △기도하는 가정 △본당 공동체의 신심운동에 참여하는 가정 △봉사하는 가정을 가꾸는 데 힘쓰기로 했다. 청주교구는 '성체 중심의 지역 복음화 해'라는 큰 주제 아래 '복음화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가정 사도직'을 실천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다. ▨청소년 : 2014년 아시아청년대회와 한국청년대회를 개최하는 대전교구가 청소년 사목에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고 있고, 인천교구도 '젊은이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라는 사목교서를 통해 청년들의 신앙 활성화에 힘을 모을 것을 당부했다. 청주교구는 학교와 동료 청소년을 찾아가는 청소년 사도직에 주력할 계획이다. 의정부교구 역시 '새로운 복음화'라는 목표 아래 청년 청소년을 복음화의 우선적 대상으로 삼아 이들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고 있다. ▨선교 : 대구대교구는 전례의 활성화를 통한 선교의 활성화를 사목 방향으로 제시했고, 안동교구 역시 2014년을 선교의 해로 정해, "가라! 두려워하지 마라! 선포하여라!"며 전 교구민들에게 선교를 독려했다. 청주교구는 '비전 2050'(신자와 미사 참례자 50% 증가 및 냉담교우 50% 감소로 2020년 20만 교구 공동체 구현) 실현을 위해 특별히 지역 복음화를 강조하고 있다. 춘천교구는 순교 정신을 선교로 계승할 것을 천명하면서 교구 설정 80주년이 되는 2019년에 복음화율 10%와 주일미사 참례율 4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전주교구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기쁨의 물결을 온 세상에 퍼뜨려 새 기쁨으로 복음의 사도가 될 것을 교구민에게 주문했다. ▨중장기 사목 목표 설정 : 이미 광주대교구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가정의 해를 사목 목표로 지내오고 있으며,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신앙의 해를 지내면서 주력해온 △말씀 △기도 △교회 가르침 △미사 △사랑 실천이라는 다섯 주제들에 대해 올해부터 5년 동안 한 주제씩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원주교구는 2015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10년 전부터 3년씩 3단계로 사목목표를 설정해 왔으며, 3단계 마지막 해인 2014년을 '교우 수도자 성직자 일치의 해'로 제시했다. 또 2012년부터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대신덕을 매해 사목교서 주제로 삼아온 군종교구는 2014년을 사랑의 해로 삼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진력하기로 했다. 이 밖에 의정부교구는 교구가 7개월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공동체 운동 △청소년 청년 사목 △사회적 관심과 실천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3.11.26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 칼날 같은 하느님의 말씀 <3>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4307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 칼날 같은 하느님의 말씀 <3>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약속의 땅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느보 산에서 바라본 가나안 땅. 왼쪽 푸른 부분이 사해다. 추리 소설을 읽을 때, 앞에서는 알아보지 못했던 작은 사건들의 의미를 결말에 이르면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의미있는 단서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책들을 읽을 때에도 저는 그 방법을 즐겨 씁니다. 흔히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요소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구약 성경의 첫 부분이 모세오경, 토라, 율법입니다. 이 부분은 신명기 34장에서 모세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자연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지만, 완결되지 않은 결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는 당신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고난을 보았고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가나안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는데(탈출 3,7-8 참조), 모세는 그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끝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G. 폰 라트(von Rad) 같은 학자들은 구약의 첫 부분이 신명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기로 끝나야 한다는 6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 땅을 목적지로 하여 출발했으니, 그 땅에 들어가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까지를 끝내고 열두 지파가 각각 자신의 땅을 받게 되는 것으로 줄거리가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4경설, 9경설 등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의 전통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토라 또는 모세의 율법이라 불러 왔습니다. 유다교에서는 제2경전을 포함하지 않는 히브리 성경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 왔고, 이러한 구분은 성경 자체 안에도 표시되어 있습니다(집회서 머리글 참조).신명기 34장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셨고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신명 34,10 참조) 모세와 그 다음 세대를 뚜렷이 구별해 줍니다. 모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수아기의 첫머리에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율법을 되새기라고 명하고 있어서(여호 1,7-8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율법을 가르친 모세 시대와 율법을 배우는 여호수아 시대를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명기에서 큰 매듭이 지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 다섯 권을 묶어 주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신명기가 모세의 죽음으로 끝나니, 물론 모세는 이 책들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어떤 인물로 이해해야 할까요?계속 오경의 결말 부분에 머물러 봅시다. 모세는 기력이 다해서 안타깝게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신명 34,7)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일찍 죽어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신명 34,5).느보 산 위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땅이다”(신명 34,4)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창세기와 신명기가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약속을 받았고, 모세도 아직 그 실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오경이 계속되는 동안 내내 유효합니다. 땅의 정복이나 땅의 소유가 아니라 땅의 약속이 오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탈출기 3장 10절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십시오. 하느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모세에게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모세의 몫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칼데아 우르에서 “가거라”(창세 12,1)라는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땅을 찾아 낯선 길을 떠났듯이,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집트를 떠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자리잡고 살고 있어도, 그곳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있기를 바라신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의 삶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신 당신 백성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게 합니다.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는 나약한 이스라엘에게(민수 11,4 참조), 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실 땅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편안한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이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게 하는 것(히브 11,13 참조), 그것이 모세가 한 일이었고 오경이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올 때까지(묵시 22,2 참조), 우리는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습 이대로의 세상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오경은 우리를 위한 책입니다.“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 평화신문2014.12.10

성령 하느님,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저성인·신학자 등이 체험한 성령의 다채로운 모습 담아, 깊고 묵직한 내용을 독자 눈높이로 전한 성령 안내서 성령 하느님,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존 헨리 뉴먼 외 지음/안세환 옮김/생활성서/7500원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다. 구약과 신약을 통해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은 쉽게 만나지만, 성령 하느님은 만나기가 쉽지 않아 도대체 누구인지 알기가 어렵다. ‘성령의 성사’라고 일컬어지는 견진성사를 받는 이들도 성령 하느님께는 좀처럼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 견진성사 때 성령 하느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켜 주도록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마음을 열어 드려야 함에도 그렇다. 「성령 하느님,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ㆍ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ㆍ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ㆍ존 헨리 뉴먼(1801∼1890)ㆍ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1927∼2012)를 비롯해 교회의 권위 있는 신학자, 성서학자, 신비신학자, 영웅적인 신앙의 증거자 등 28명이 깨닫고 체험한 성령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성령 안내서다.제목이 보여주듯, 책은 평범한 신자 눈높이에 맞추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다가 글 한 편의 분량도 두 쪽에 불과할 만큼 간략하다. 장마다 절반에 가까운 여백은 묵상으로 채우라는 초대장 같다. 그러나 저자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내용은 더없이 깊고 묵직하다. 성령 하느님은 그들 마음을 어떻게 불살랐을까.“우리의 모든 원의와 만족감을 내려놓고, 우리를 성령께 전적으로 맡겨 드립시다. 그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께서 이루시는 활동에 충실히 응답하고, 은총의 힘에 우리의 모든 반항심을 완전히 종속시킴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루이 랄망, ‘성령께 사로잡혀 인도되기’ 중에서).“하느님의 영이 없으면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할수록 성령은 사랑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영, 즉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몸인 것처럼, 성령, 즉 사랑이 없는 영혼은 죽은 영혼과 마찬가지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성령은 사랑이십니다’ 중에서).“오, 거룩함의 영이시여, 제가 소유한 선한 것은 당신에게서만 오나니, 당신이 제 마음속에 놓으신 신적 불꽃을 통해 성부와 만나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오, 성령이시여, 당신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한없이 더 보배로우니, 저에게는 그것이 생명이나이다”(존 헨리 뉴먼, ‘참 생명의 샘이신 성령이시여’ 중에서).유경촌(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매일의 삶에서 성령 하느님의 발자취를 찾도록 그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매일매일 성령 하느님과 데이트하듯 그분을 만나게 해줄 것”이라고 추천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백영민2015.07.08

영적 목마름, 신앙 서적 읽기로 해소한다의정부교구 금곡본당 영적독서단
, 신앙 서적 읽기로 영적 갈증 해소
5일 금곡본당 영적독서단 단원들이 모임 후 「YOU CAT」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유리 기자 5일 의정부교구 경기 남양주시 금곡성당(주임 하정용 신부). 노란색 책을 든 신자들이 하나 둘 성당 카페로 모여든다. 신자들의 손에 들린 책은 「YOU CAT」(유캣ㆍ가톨릭 청년 교리서). 금곡본당 영적독서단 단원들이 함께 읽은 15번째 책이다.“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고민해보았을 질문들에 대해 명쾌하면서도 쉬운 표현으로 해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나 미신자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정자, 클라라).단원들은 한 명씩 책을 읽은 소감과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나눈다. 책을 다 읽지 못해도,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콩나물에 물을 줄 때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어느덧 콩나물이 쑥쑥 자라 있는 것처럼, 신자들의 작은 노력이 모여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금곡본당 영적독서단은 2013년 11월 첫 발걸음을 뗐다. 신자 재교육과 남성총구역 활성화 차원에서 남성모임으로 시작한 것이 이듬해 3월 여성 신자들의 참여로 여성모임까지 만들게 됐다. 남성모임 조인제(스테파노) 단장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목마름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신부님께서 정해주신 책을 한 달 동안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갈증이 많이 해소된 기분”이라고 했다. 영적독서단은 매월 첫 번째 토요일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여성모임과 남성모임을 진행했다. 매 모임에는 주임 신부가 함께했고 책도 본당 예산으로 단원들에게 지원해 신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했다.금곡본당 신자들은 모임을 통해 「복음의 기쁨」과 같은 교황 권고부터 「교부들의 신앙」(제임스 C.기본스 추기경), 「전례봉사」(정의철 신부),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손희송 신부),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안셀름 그륀),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평화방송ㆍ평화신문) 등 교회의 다양한 분야를 다룬 책을 접했다.영적독서단 여성모임에 참여했던 박정자(실비아)씨는 “영적독서단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며 신앙적으로 성숙해진 것을 느낀다”며 “독서단을 시작한 이후로 미사도 앞줄에서 봉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영적 독서란 하느님과 자신의 내면적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책을 읽으며 기도와 덕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책의 범위는 성경부터 교회 문헌, 일반 신앙 서적까지 포함한다.금곡본당은 영적독서단뿐 아니라 신자들의 재교육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주임 신부가 직접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신자들에게 강의했다. 지난 4월 12일부터 7월 12일까지는 교회의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기도와 십계명, 몸의 신학, 삼위일체 등에 대해 강의를 듣는 ‘꾸미오리’(히브리어로 ‘일어나 비추어라’)도 진행했다. 영적독서단은 5일 모임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는 시기를 갖는다.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평화신문201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