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학교, 올바른 성모신심 전도하기 10년 2005년 부산교구에서 첫 개설, 부산 서울에서 700여 명 수료 지난해 4월 서울 마리아학교를 통해 성경 등에 나타나는 마리아에 대해 듣고 있는 신자들. 사진제공=마리아학교 “레지오 활동을 한 지 올해로 20년째인데 한 번도 성모님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마리아학교를 수강하며 성모님을 제대로 알게 됐어요.”지난해 11월 말 서울 마리아학교를 수료한 7기생 전선수(스테파노, 60, 서울대교구 대치동본당)씨는 수료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레지오 교본도 그 내용을 몽포르 성 루도비코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라는 저서에서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걸 마리아학교에 와서야 알게 됐다.지난 2005년 3월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주관으로 부산교구에서 첫 개설돼 새해로 개설 10주년을 맞는 ‘마리아학교’에 신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새해로 부산교구에서 11기째, 서울대교구에서 8기째를 맞으면서 ‘입소문’을 타 현재까지 마리아학교를 통해 부산에서 436명이, 서울에서 309명이 수료, 참다운 성모신심을 다졌다.강좌는 기초와 심화, 두 과정으로 3개월씩 나눠 진행한다. 기초과정은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조규만 주교, 이정순 수녀) △교부들의 마리아론(장인산 신부) △마리아의 4대 교의(정복례 수녀) △전례 속의 마리아(윤종식 신부) 등을, 심화 과정은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이정순 수녀) △마리아 공경(정영한 신부) △현대 신학에서의 마리아(이정순 수녀) △이콘 속의 마리아(최연희) 등으로 짜여 있다. 새해 강좌는 부산의 경우 2월 3일 개강해 매주 화요일 부산 마리아피정센터(051-634-4845) 에서, 서울에선 2월 5일 개강해 매주 목요일마다 명동 가톨릭회관(02-774-0448)에서 열린다. 마리아학교장 이정순(프란치스카) 수녀는 “구원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신 성모님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확실한 균형을 잡게 된다”며 “성모님이 우리 신앙 여정에 얼마나 중요한 어머니이신지를 모든 신자가 알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4.12.24
![[생활 속의 복음] 하느님의 일, 사람의 일](//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2106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하느님의 일, 사람의 일연중 제24주일(마르 8,27-35)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올여름을 너무 힘들게 지냈습니다. 날씨도 무척 더웠고, 경제ㆍ정치 상황도 1997년 이후로 최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일어난 사회적 갈등, 예비군 사격 훈련장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 새로운 신분 관계(갑과 을)의 현실, 메르스라는 바이러스의 공포로 서로가 믿음을 잃어버린 시간, 정치권과 정부기관의 부정부패ㆍ능력 부족(거짓 정보로 확인된 황병서의 숙청설 등), 민간인 사생활 사찰… 신뢰가 무너진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의 중국 경제 위기는 더욱 힘든 시간이 닥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의 근본은 어디부터일까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소식으로 하루와 한 해를 시작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요?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는 이야기뿐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용서하고 돕고 살아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개인주의적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즘 말로 ‘한창 잘 나갈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신원에 대해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변의 평가를 이야기하며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평가를 접하시고는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진정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사상과 이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리를 실천하고 따르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면서 세상의 주인으로, 세상 창조사업의 협력자로 살아갈 때 인간으로서 존재 이유(창세 1,28)를 알고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에 반해 상대와의 비교(카인과 아벨)나 물질적인 풍요ㆍ특권(다윗과 솔로몬)을 지향할 때는 죄를 범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자비에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모상(image)으로서 실상(reality)인 하느님을 닮아가는 모든 행동과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인간의 일’은 ‘허상’인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추석을 준비하는 시골 어르신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입니다. 자식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 평가를 기대하면서 한 해 노동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이목과 관점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괴로움을 겪기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신뢰와 용서 그리고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았는지 되돌아보기보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성과와 사회적 성공이라는 평가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자신의 소설 「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처럼 ‘허위의 탈’ 속에 자신을 감추지 말고, 진리를 따라서 정당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멋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멋’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운동선수가 떠오릅니다. 한 사람은 축구선수 차범근입니다. 뛰어난 운동 실력으로 유명하지만 저는 1980년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자신에게 고의적이고 치명적인 반칙을 한 위르겐 겔스도르프 선수를 용서한 일이 먼저 생각납니다. ‘용서’라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인물은 핸드볼 선수 윤경신입니다. 지금까지도 독일 핸드볼 리그(분데스리가)에서 전설로 불리는 선수입니다. 그의 진정한 전설은 10여 년간 활약한 소속팀 ‘굼머스바흐’ 가 재정난으로 힘들어할 때 타 팀으로 이적하지 않고 모금 활동을 하고 자신의 집과 차를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구단을 살려낸 일입니다. 두 사람은 돈과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용서와 신뢰’라는 하느님의 일을 행한 멋진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진정한 인간의 행복입니다. 행복하십시오. 교우 여러분! cpbc2015.09.09
![[복음 이야기] (43) 예수님의 언어, 아람어](//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2357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43) 예수님의 언어, 아람어골고타·파스카·탈리타 쿰… 모두 아람어 예수님님은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선 오브 갓」의 중 한 장면. 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그리스 말)로 쓰여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영어처럼 당시 국제 공용어인 헬라 말을 하신 것일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소 가르치실 때는 ‘아람 말’을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토라와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낭독하신 것을 보면 히브리 말과 글도 아신 것이 분명하다. 아람어는 일찍이 비옥한 반월형 지대인 북시리아 평야에 정착했던 아람 민족의 말이다.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맏물을 봉헌할 때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5)하고 고백한 것처럼 아람 민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다. 아람어는 기원전 10세기 전후 유프라테스 상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페르시아만, 시리아, 이란, 팔레스티나, 지중해 연안까지 근동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사용하던 공용어였다. 성경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아람 민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언어도 그 지역 말과 섞여 히브리말로 고착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바빌론 유배 때까지 유다인의 일상 언어는 히브리 말이었다고 한다.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 아람어의 다른 방언들에 눌리어 히브리말은 서서히 변화해 갔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의 10대들의 통속적 말을 기성세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가 변질한 것이다. 이 시대 율법학자들은 회당에서 히브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유다 지방의 히브리 말로 성경을 필사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가 멸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하면서 페르시아 왕들은 아람어를 행정 공용어로 채택해 유포시켰고, 이스라엘도 그 영향을 면할 수 없었다. 마치 로마 제국시대 헬라어가 귀족 상류층의 언어였고, 라틴 말이 백성들의 언어였던 것처럼,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사제와 귀족 등 상류층의 말이 됐고, 히브리 말은 일반 민중의 언어가 됐다고 한다. 그러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을 정복한 후 헬라어가 아람어의 자리를 대신했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 지방 사람들이 주로 히브리 말을 썼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됐을 때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연설할 때 굳이 히브리 말로 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사도 22,2). 복음서에는 유다인들의 일상어로 아람 말이 등장한다. ‘압바’(마르 14,36), ‘가빠타’(요한 19,13), ‘골고타’(마태 27,33), ‘맘몬’(마태 6,24- 본문에는 헬라어 마모나스로 음역해 놓음), ‘파스카’(루카 2,41), ‘하켈 드마’(사도 1,19), ‘마라나 타’(1코린 16,22) 등이 복음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아람 말이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탈리타 쿰”(마르 5,41)라고 하신 말씀이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하신 말씀 모두 아람 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죄명패에는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20). 이는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에 이 말들이 상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라틴 말은 칙령의 언어로 공용어였다. 유다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에서 내려온 훈령은 늘 헬라어로 번역됐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헬라 말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저주받아야 한다”고 경멸했지만 로마 제국에 통용되던 헬라어를 막을 수 없었다.한편, 구약의 에스테르기와 예레미야서 일부, 다니엘서 일부도 아람어로 쓰였고, 마태오 복음도 처음에는 아람어로 쓰였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라는 게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사순 ㆍ부활 시기에 자주 상영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는 말이 모두 아람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이 궁금하면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추천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5.01.28
![[평화칼럼] 형제의 난](//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5722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형제의 난리길재 베드로(기획취재부 차장) 형제의 난(亂)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국내 굴지의 재벌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집안사람끼리, 형제간에 다투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형제간의 갈등을 꼭 부정적 시각에서 볼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보면 형제간 갈등과 다툼 속에서 인류사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설혹 그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교훈을 주고 있다. 성경 속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창세기는 인간이 죄를 범하는 3장부터 마지막 50장까지 온통 상속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점철돼 있다. 동생 아벨을 살해한 카인(창세 4,1-16), 이복 형제인 이사악과 이스마엘(창세 21,9-21), 이사악으로부터 형 에사우의 장자 축복을 가로챈 야곱(창세 27,1-40), 야곱의 사랑을 시샘한 형들이 동생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버린 이야기(창세 37,12-36) 등 끊임없이 형제간 갈등을 소개하면서 창세기는 인간의 죄보다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이 더 크고 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속을 둘러싼 형제간의 다툼은 복음서에도 나온다. 이야기의 발단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하늘나라에서 자신들 중 한 명은 주님의 오른쪽에, 다른 이는 왼쪽에 앉게 해 달라는 청에서 시작됐다(마르 10,35-37; 마태 20,20-23). 얼핏 보면 우애 깊은 형제로 보일지 몰라도 오른편이 왼편보다 더 높은 자리로 차별해 공을 달라는 이야기이다. 이 말을 들은 나머지 제자들은 이들을 언짢게 여겼고, 제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마르 9,33-37; 마태 18,1-5; 루카 22,25-27). 또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라고 중재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가르치신다. 그러면서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루카 12,33)라고 권고하신다. 더불어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고 말씀하신다. 이는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뜻일 것이다.예수님은 형제간의 갈등이 있을 때 ‘자아를 버리라’고 가르치신다.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없는 자기중심주의의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이 자비와 축복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며 자선을 베풀 때 비롯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는 내 것만을 챙기려 들지 말고 타인을 향한 존재가 되라는 권고이다. 치부를 드러내는 형제의 난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나 아닌 너에게’ 열린 존재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평화신문2015.08.05
![[생명과 함께] ① 생명을 받아들이는 준비와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 가르침](//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518_1.2_titleImage_1.jpg)
[생명과 함께] ① 생명을 받아들이는 준비와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 가르침임신·출산, 하느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소명이자 선물 “우리 엄마 아빠처럼 자식을 낳아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내 인생이 고통스러운데 삶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생명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엄마처럼 희생하며 살 자신도 없습니다.”30대 중반의 사업가 미혼 여성인 김 아녜스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은 하겠지만 자녀를 낳아 기를 자신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명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의 등장이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최근 청소년의 자녀관과 결혼관을 조사한 결과가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 1179명 중 ‘어른이 됐을 때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한 청소년이 5명 중 1명(21.1%)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계는 최근 30년간 지속돼 온 저출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지적하고, 저출산 극복을 위해 종교계가 노력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한국이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생명의 교회’인 가톨릭 교회는 임신과 출산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생명을 선물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무슨 노력을 해야 할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공동으로 신년 기획 ‘생명과 함께’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순서 ① 생명을 받아들이는 준비와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 가르침 ②~③ 난임 부부와 자연출산조절법(Ⅰ,Ⅱ)④이른둥이들이 신생아중환자실에 간 사연 ⑤ 미혼모가 아니라 엄마입니다 2014년 9월 첫 아이를 출산한 최정은(엘리사벳)씨. 갓 태어난 아기를 배 위에 올려 놓고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있다. 최정은씨 제공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첫 아이를 임신한 최정은(엘리사벳, 36)씨는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사실 얼떨떨해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했다”고 털어놨다.“배가 불러오면서 태동이 느껴졌고 그때부터 태교를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최씨는 아이와 만나는 소중한 첫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출산 직후, 아기와 교감하며 아빠가 편지를 읽어주게 하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지난해 가을, 둘째 아이를 출산한 강지혜(안나, 35)씨는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가 태교에 신경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태아에게 집중하는 시간보다도 꾸역꾸역 일하다가 쉬고 싶은 생각만 가득한 채 퇴근한 날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장애아 선별 검사를 비롯해 산모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검사가 너무 많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털어놨다.혼인성사의 은총으로 가정 공동체를 이루는 부부는 출산을 통해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가정공동체」 28항 참조)을 부여받는다. 생명을 전달하는 임무를 통해 부부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처음 경험하는 부부에게 신앙인으로서 생명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쉽진 않다.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에서 태교 강의를 하는 성옥경(가타리나, 안양 맘스베베자연출산조산원)씨는 “산모는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태아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면서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짜증이 나면 태아도 고스란히 엄마의 부정적 감정을 전달받게 된다”고 말했다. 성씨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잘 털어버리고, 태아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자주 들려줄 것을 권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피임으로 부부의 생식 능력을 배제하는 것은 부부 사랑의 내적 진리를 왜곡하는 것으로 본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하느님께서는 자연의 법칙과 임신의 시기를 지혜롭게 마련하셨기에 필연적으로 다음 출산까지 일정한 간격이 생기게 되어 있다”며 어떠한 부부 행위든지 인간 생명을 출산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함(「인간생명」 11항)을 강조했다.“인간이 어느 정도 하느님의 주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 생명 그 자체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특별한 의무 안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책임은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여 출산을 통해서 생명을 주는 것에서 그 절정에 다다릅니다”(「생명의 복음」 43항).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출산이 임박했을 때 두려운 마음과 걱정이 가득했지만 기도했습니다. 성모님은 마구간에서도 예수님을 건강하게 낳으셨으니 나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다고 되새겼어요.”두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묵주기도와 성경 필사로 새 생명을 맞은 엄마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육아휴직 중인 조효숙(율리에타, 34, 수원교구 안산 고잔본당)씨.그는 3년 전 첫 아이를 갖기 전부터 남편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묵주기도를 시작한 계기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였습니다. 남편의 쾌유와 함께 우리 부부 사이에 생겨날 아기를 위해 기도했어요. 부모님과 함께 남양 성모성지를 찾아 100단 묵주기도도 함께하고요.”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는 조씨는 첫 아이 태교로 퇴근 후 잠언을 필사했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잠언 필사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둘째를 임신하기 전에는 가까이 지내는 영적 친구와 휴대 전화로 54일 기도를 바쳤다. 일상은 육아로 전쟁이었지만 임신과 출산, 양육 그 모든 과정은 인간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터졌던 때였다. “아기를 낳고 나니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적 친구와 전화로 바친 묵주기도의 지향은 둘째 아이의 임신에만 있지 않았다. 탈핵과 정치ㆍ경제인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더 많이 기도했다. 조씨는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은 나의 소유가 아닌 하느님이 주신 선물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면서 “그저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조씨는 두 아이 모두 조산원에서 출산했다. 의료적 도움을 받지 않고 엄마와 태아의 힘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출산하고 싶었다.그는 “늘 기도하면 여유가 생기고 화도 덜 내고, 안정적인 엄마가 되어 줄 수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엄마처럼 묵묵히 뒤에서 기도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털어놨다.그는 “어릴 땐 내 잘난 맛에 엄마처럼 안 산다고 했는데,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만큼 할 수 있을까 싶다”며 웃었다. 이지혜 기자 cpbc2015.12.29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6)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4171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6)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하느님의 자비하심은 그 넓이가 다르기에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 성당 바닥의 모자이크, 4세기. 월드컵 결승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시합을 하게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날은 모두 다 애국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응원석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 자리를 잘못 앉아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상대편을 응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대로 축구 시합은 한 나라, 한 학교, 한 반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성이 과도하게 되면 상대편을 응원하는 사람과는 부딪치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축구를 응원하던 이들이 서로 충돌하여 참사가 벌어진 일들도 없지 않지요.에즈라-느헤미야 시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 도성도 복구하고, 율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삶으로 자신들의 전통을 확고하게 다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동전의 이면같이 이에 따라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배타성이었습니다. 축구 시합에서 우리 편을 응원하다 보면 상대방이 점수를 얻는 것을 기뻐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요나는 이러한 시대를 대변합니다. 요나서의 성경 본문에는 요나가 “아미타이의 아들”이라고 나옵니다(요나 1,1). 그렇다면 열왕기 하권 14장 25절에 따라 그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예언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기원전 8세기).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요나서는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채택하여, 그 이야기를 통해 에즈라 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전달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실제로 요나라는 이름의 예언자가 니네베에 갔던 것도 아니고, 니네베가 하루아침에 회개했을 가능성도 매우 희박합니다. 요나서에 사용된 히브리어 역시 예로보암 시대가 아니라 늦은 시기의 특징들을 보이며, 요나서의 주인공 요나는 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니네베로 가려면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하느님의 명령을 피하여 오히려 서쪽 끝까지 도망치려 합니다. 그 다음에,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가 사흘 만에 니네베에 내려놓습니다. 이 부분 역시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요나 이야기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로 기록된 책임을 보여 주는 단서입니다.그러면, 요나서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첫째는,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며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느님의 명령을 피해 타르시스로 떠나는 1장에서는 그가 도망치는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 마지막 4장에 가면 그는 하느님께 화를 내며 그 이유를 말하지요. 그는, 하느님께서 죄 많은 도시 니네베에게 멸망을 선고하라고 하시지만 사실은 니네베를 용서해 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요나 4,2 참조). 그것이 싫어서, 니네베인들이 구원되는 것이 싫어서 하느님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 한 것이지요.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이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원수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니네베라 하더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던 아주까리가 말라 죽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죽겠다고 하는 요나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 아주까리가 자라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요나가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떤다면, 하느님이 어찌 그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으시겠습니까?이것이 에즈라 시대의 유다인들을 향한 요나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이방 여자들을 내보내야 하겠습니까? 다른 민족들은 멸망해도 좋다고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요나서는 그 시대의 유다인들에게, 구원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둘째는,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요나 1,9), 그 하느님이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나 4,2). 문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시리아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머리로는 하느님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으나, 그 하느님을 용납하지 못합니다.요나서는 그런 요나에게 회개를 요청합니다. 회개는 나훔 예언자가 “피의 성읍”(나훔 3,1)이라고 불렀던 니네베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참지 못하는 요나에게도 회개가 필요했습니다. 나에게 멸망을 선포하라고 하셨으면 반드시 그 멸망을 이루시어 나의 명예도 지켜 주시고 원수에게 앙갚음도 하게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선포한 경고를 철회하시면서까지 인간을 가엾이 여기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합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에는 좋아하면서 남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에는 화를 내는 우리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으라고 촉구합니다.그래서 요나 이야기는, 하느님만큼 자비롭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11.17
![[성경속 궁금증] 83. 성경에서 족보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74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3. 성경에서 족보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구약, 혈통보다는 신앙의 맥 잇는 '계보'… 예수 족보에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 담겨얀 호사르트, '성모와 아기 예수', 1527년경,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성경에는 여러 개의 족보가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족보를 읽다 보면, 족보가 그저 무미건조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성경 속에 기록된 족보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의 신학적 의도가 담겨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신앙 사건과 체험을 중심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알게 하려고 역사나 족보의 기록을 사용하고 있다. 유다인들은 예로부터 족보를 '탄생의 책'이라고 부르면서 무척 중요시했다(창세기 5장). 족보는 이스라엘의 기원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됐으며, 또한 그들이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임을 보여준다(창세 1-11).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다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은 뿌리가 하찮은 노예 민족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거룩한 자손'임을 밝혀주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들은 보통 직선적인 족보 형태로 세대별로 한 명씩 기록했다. 이런 족보의 목적은 맨 마지막에 거론되는 사람이 적자의 권리를 상속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족보는 성경의 사건을 담기 위한 그릇이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약의 족보는 혈통보다는 신앙의 맥을 잇는 계보로써 중요하다. 구약성경에서의 족보는 신앙의 계보를 밝히고 이스라엘 종족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간접적인 신앙생활 지침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경의 마태오 복음(1장)과 루카 복음(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기존 족보와 기록 방식이 다르다. 신약 성경의 족보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계시로써 약속해온 메시아임을 밝히고 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들려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마태 1,16-17).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서 여인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다. 마태오는 여인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언급해 다윗의 후손이 끊기려는 순간마다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태오 복음에 등장하는 족보에 이미 하느님의 섭리는 남녀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처럼 신약성경의 예수 족보에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 가족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인간의 혈통보다 더 중요한 새로운 신앙 공동체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하느님의 구원을 위해 믿음의 족보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cpbc2013.08.06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4370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모세의 죽음과 오경의 주제약속의 땅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현재 삶에 안주하던 이스라엘을 일으킨 모세 이방인임을 고백하고 본향 따르게 이끌어 오경은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 우리에게 전해 느보 산에서 바라본 가나안 땅. 왼쪽 푸른 부분이 사해다.추리 소설을 읽을 때, 앞에서는 알아보지 못했던 작은 사건들의 의미를 결말에 이르면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의미있는 단서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책들을 읽을 때에도 저는 그 방법을 즐겨 씁니다. 흔히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요소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첫 부분이 모세오경, 토라, 율법입니다. 이 부분은 신명기 34장에서 모세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자연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지만, 완결되지 않은 결말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는 당신께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고난을 보았고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가나안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는데(탈출 3,7-8 참조), 모세는 그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G. 폰 라트(von Rad) 같은 학자들은 구약의 첫 부분이 신명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기로 끝나야 한다는 6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 땅을 목적지로 하여 출발했으니, 그 땅에 들어가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까지를 끝내고 열두 지파가 각각 자신의 땅을 받게 되는 것으로 줄거리가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4경설, 9경설 등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의 전통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토라 또는 모세의 율법이라 불러 왔습니다. 유다교에서는 제2경전을 포함하지 않는 히브리 성경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 왔고, 이러한 구분은 성경 자체 안에도 표시되어 있습니다(집회서 머리글 참조). 신명기 34장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셨고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신명 34,10 참조) 모세와 그 다음 세대를 뚜렷이 구별해 줍니다. 모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수아기의 첫머리에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율법을 되새기라고 명하고 있어서(여호 1,7-8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율법을 가르친 모세 시대와 율법을 배우는 여호수아 시대를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명기에서 큰 매듭이 지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 다섯 권을 묶어 주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신명기가 모세의 죽음으로 끝나니, 물론 모세는 이 책들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어떤 인물로 이해해야 할까요? 계속 오경의 결말 부분에 머물러 봅시다. 모세는 기력이 다해서 안타깝게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신명 34,7)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일찍 죽어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신명 34,5). 느보 산 위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땅이다”(신명 34,4)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창세기와 신명기가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땅의 약속을 받았고, 모세도 아직 그 실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오경이 계속되는 동안 내내 유효합니다. 땅의 정복이나 땅의 소유가 아니라 땅의 약속이 오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탈출기 3장 10절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십시오. 하느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모세에게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모세의 몫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칼데아 우르에서 “가거라”(창세 12,1)라는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보여 주실 땅을 찾아 낯선 길을 떠났듯이,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집트를 떠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자리잡고 살고 있어도, 그곳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있기를 바라신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의 삶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신 당신 백성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게 합니다.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는 나약한 이스라엘에게(민수 11,4 참조), 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실 땅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편안한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이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게 하는 것(히브 11,13 참조), 그것이 모세가 한 일이었고 오경이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올 때까지(묵시 22,2 참조), 우리는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습 이대로의 세상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오경은 우리를 위한 책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 백영민2014.12.10
![[신앙단상] 순교 영성의 한류를 꿈꾸며](//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2294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순교 영성의 한류를 꿈꾸며김선동 루카(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CJPA/Seoul) 회장)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좋은 책은 성서이다. 다음으로 가장 귀하고 좋은 책은 ‘한국 천주교회사’라고 말하고 싶다. 성서는 삶의 의미와 영원한 행복과 사랑을 가르치는 책이요, ‘한국 천주교회사’는 그 성서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기록’이기 때문이다.” 감수성 강하던 시절 저의 가슴에 신앙의 불꽃을 지피시던 고 박도식 도미니코 신부님은 당신이 엮은 「103위 순교성인전」 서문을 그렇게 여셨습니다. 또 많은 이가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방한하셔서 김포공항에서 무릎을 꿇고 땅에 친구(親口)하시며 “순교자의 나라, 순교자의 땅”이라고 되뇌시던 모습을 우리 교회사 중 최고 명장면으로 꼽는 데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얘기는 ‘우리가 1만 명이 넘는 순교자의 거룩한 피를 위대한 신앙 유산으로 물려받았음’을 자타가 공인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1946년 9월 16일,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 경축행사를 시작점으로 순교자 현양 및 시복시성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져 이미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가 탄생하였고,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외 252위의 시복도 청원 중입니다. 전국 곳곳 성지 개발 역시 여러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외국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많지만, 국내로 찾아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영성이 촘촘히 깃들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활동하신 이스라엘, 가톨릭 교회 본산인 바티칸, 성모님의 발현지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버킷리스트와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산티아고나 다른 성인들 삶의 터와는 경쟁(?)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화 한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데다 때마침 한국 순교성지가 교황청 세계 공식 순례지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정기 성지순례단 일원으로 국내 성지를 자주 순례하지만 다녀온 후 늘 갈증을 느낍니다. 그 해갈의 실마리를 산티아고를 한 달간 순례하고 돌아와 “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죽으면 이번 순례의 추억 덕분인 줄로 아시게”라고 하신 어느 선배의 말에서 붙들어 봅니다. 순례의 묘미가 보고 배우는 데 있지 않고, 느끼고 묵상하는 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성지에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없어서 대부분의 순례가 허겁지겁 당일치기로 끝나기 때문에 항상 아쉬움이 남지 않나 싶습니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한 달 이상 순례하고자 하는 이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텔이나 여관, 찜질방을 찾아 헤맨다면 순례가 아니라 방황이 될 것입니다. 반경 30~40㎞ 사방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성지가 있어 어느 성지에서나 새벽에 파견 미사를 봉헌한 후 목적지를 향해 자신과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며 걸어가고 그곳에서 다시 내일 떠날 채비를 하고…. 그래서 신자 비신자 구분 없이 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삶에 지친 모든 이가 다시 시작할 힘을 얻고 인생의 의미와 삶의 지혜를 깨닫는 한류 특유의 순례의 길을 만드는 일은 신앙 선조의 거룩한 희생을 향하여 후손인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화답이 아닐까요? 평화신문2015.07.16
![[성경속 궁금증] 81.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의미](//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5291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1.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의미가정의 기초는 부부… 나자렛의 성가정은 모든 신앙인 부부의 표양요아킴 파티니르, '이집트를 향한 탈주 중 휴식', 패널에 유채, 스페인, 프라도미술관. 사람에게는 알맞은 환경과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가정이며 집이 바로 보금자리일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이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여러 병리적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뿌리가 병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사랑과 관심과 경험의 보고(寶庫)이다. 성경에도 가정에 대한 언급이 많다. 가정은 부부 관계와 자녀를 포함한 공동체이며 신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7-28). 구약성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정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부권 가족'으로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매우 분명하고 엄격하고 독특한 종교교육을 시행했다(신명 6,4-9 참조). 가정에서의 이러한 종교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에게도 자신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임을 철저하게 인식도록 했다. 따라서 가정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민족적 신앙 형성의 기본적 자리였다. 성경에서는 가정의 기초가 부부 관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는 혼인계약으로 둘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룬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5-6). 가정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인류는 이 창조 질서를 따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확산해 왔다. 성경에서 가정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보금자리(잠언 27,8 참조)이며, 자기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지붕(집회 29,21 참조)이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후손을 낳아 그에게 종교 교육을 베풀고 덕의 모범을 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업적이다(잠언 14,1 참조). 올바른 가정이 되려면 지혜와 덕 있는 아내가 있어야 하고 아무도 그를 대치할 수 없다(잠언 31,10-31 참조). 이것은 하느님의 업적으로서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시편 127,1). 신약에 등장하는 가정도 대체로 이스라엘 가정의 모습을 계승한 것이었다. 다만 교육의 내용이 달라졌다. 구약의 율법 외에도 그리스도의 생애와 훈계(에페 6,4 참조)가 첨부됐다. 초대 교회에서는 하느님 나라의 성취를 위해서는 가족의 많은 희생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마태 10,34-39 참조).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의 가정을 나자렛의 성가정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과 충실 그리고 순종과 헌신은 모든 신앙인 부부의 표양이 된다(루카 2,41-52 참조).cpbc2013.07.2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7)샤를르 페로 (상)](//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9076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7)샤를르 페로 (상)유다교 전문가이자 역사적 예수 연구의 대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1929~2013) 신부는 예수 시대의 유다교 전문가로서 「예수와 역사」라는 책으로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 크게 공헌한 프랑스 성서학자다. 그는 1세기 유다교, 역사적 예수 연구,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론과 교회 직무, 사도 바오로에 관한 저서들을 통해 20세기 가톨릭 성서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갔다. 생애와 저작페로 신부는 1929년 2월 16일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물랭에서 태어났고 2013년 11월 11일 고향 물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소신학교를 거쳐 17살에 대신학교에 입학했고 1953년 사제로 수품했다. 페로 신부는 대신학교에서 다양한 동방 언어를 배우는 데 열중했는데 수품 후 물랭교구 신학교에서 관심 분야와는 달리 교구장 요구로 2년간 교회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후 페로 신부는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공관복음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유다인으로 가톨릭 사제가 된 시온회 신부들의 강의를 들으며 유다교 연구에 몰두했다. 나중에 그가 예루살렘성서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한 것도 유다교에 관한 그의 관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페로 신부는 1955년부터 물랭교구 신학교에서 가르쳤고 1960년 리용가톨릭대학으로 옮겼다가 훠이예(A. Feuillet) 신부의 후계자로 임명돼 1969년부터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동방 언어(시리아어, 아람어)와 신약성경을 가르쳤다. 학생 시절 시온회 신부들과 만남을 계기로 1세기 유다교 연구에 천착했던 그는 고대 유다교 회당의 성경 독서에 관해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고, 1973년 마침내 「성경 독서, 팔레스타인에서 안식일과 축일 때 읽었던 옛 독서들」(La lecture de la Bible, Les anciennes lectures palestiniennes du Sabbat et des ftes)을 간행했다. 1976년 9권으로 간행된 신약성경 입문 시리즈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했고 1979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로서 「예수와 역사」(Jsus et l’histoire)를 간행했다. 이 밖에 페로 신부는 「가명 필로의 성서 고사기」(Les antiquits bibliques I,II par Pseudo-Philon, Sources chrtiennes, Paris, Cerf, 1976) 역주에 공동으로 참여했고 Cahier Evangile 시리즈에 「예수의 유년기」(Recits de l’enfance de Jesus: Matthieu 1~2―Luc 1~2, Paris, Cerf, 1976)와 「로마서」(Epitre aux Romains, Paris, Cerf, 1988)를 펴냈다. 또한 영어로 출간된 미르카(Mirka)에 유다인 학자들과 함께 주요 논문을 수록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러다가 1994년 은퇴, 파리가톨릭대학교 명예 교수, 물랭교구 참사위원으로 위촉됐다. 페로 신부는 은퇴 후 오히려 더욱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는데 「기적이란 무엇인가」(Miracles, tout simplement)를 1995년에 간행하였고 1997년에는 초대 공동체의 그리스도론에 관한 저서로서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Jsus, Christ et Seigneur des premiers chrtiens)이라는 역저를 냈다. 또 같은 해에 페로 신부는 유명한 Que sais je 시리즈에 「예수」(Jsus)라는 소책자를 간행했는데 여러 판을 거듭하며 독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1999년 페로 신부의 70번째 생일을 맞아 프랑스 성서학계는 「고대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음식과 식사」(Nourriture et repas dans les milieux juifs et chrtiens de l’antiquit)라는 기념 논문집을 그에게 헌정하였다. 2000년에는 「예수 그 이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직무」(Aprs Jsus, Le ministre chez les premiers chrtiens)라는 책을 냈고 「성경 사전 증보판」(Suppment au Dictionnaire de la Bible, tom XIII, 2005)에 고대 유다교의 ‘회당’에 대한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이며 또한 전례적인 연구를 담은 장문의 글을 기고하였다. 마지막으로 페로 신부는 「예수와 역사」,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예수 이후, 초대 교회의 직무」라는 예수에 관한 3부작의 연장선상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신약성경과 고대 유다교를 배경으로 역사적이고 주석학적 연구를 수년간 진행하여 마침내 2013년 봄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본 나자렛의 마리아」(Marie de Nazareth au regard des chrtiens du premier sicle, Paris, Cerf, 2013)를 출판했다. 이 책은 페로 신부의 학문적 여정의 종착역이자 그의 모든 저술 활동을 완성하는 기념비적 저작이다. 페로 신부의 저서 가운데 여러 권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그의 주저인 「예수와 역사」(박상래 옮김, 가톨릭출판사)를 필두로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예수 이후, 초대 교회의 직무」(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가 차례로 번역됐다. 한국교회와 인연페로 신부는 1960년대 리용 가톨릭대학교에서 일찍이 박상래 신부와 정양모 신부를 학생으로 만났고 1970년대 중반부터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는 이영길ㆍ김건태ㆍ안병철ㆍ김태원ㆍ이상영ㆍ이중섭 신부 그리고 필자에 이르기까지 십여 명의 한국 신부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교회와 인연을 맺었다.필자는 2000년에 페로 신부를 한국에 초대했고, 페로 신부는 2주간 머물면서 몇 차례의 강연과 함께 한국 교회와 문화와 자연을 경험했다. 특히 페로 신부는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리스도는 당신 생애의 전부라고 고백하며 예수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와 그리스도에 대한 실존적인 추종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페로 신부는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한국어 번역판 서문에서 “한국 교회는 놀라운 생명력 안에서 영의 숨결에 따라 자신의 주님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서 새로운 말씀으로 부유해진 성령 강림 하의 한국적 상황에서 이제는 자신의 주님을 고유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한국 교회는 사목자와 신학자 그리고 교리교육 담당자들이 힘을 합하여 복음 전통과 보편 교회의 오랜 신앙에 근거하면서도 오늘의 언어로 이루어진 신앙고백의 새로운 표현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로 신부는 ‘오늘날 한국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우리 모두에게 던졌다. 백운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1985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1988~1996년 프랑스 파리가톨릭대, 성서 신학박사 ▲1997~2014년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교학처장, 신학과사상학회장 ▲2014년 3월 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취임 평화신문2014.11.11

마산교구 성경경시대회서 '은빛상' 수상한 92세 조양순 할머니"성경은 나의 힘이자 모든 것" 성경경시대회에서 은빛상을 받은 조양순 할머니. "성경경시대회는 젊은 사람들만 참여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경시대회에 참가해 주교님이 주시는 상까지 받게 되니 기쁘고 떨립니다." 10일 경남 창원시 성지여고에서 열린 마산교구 제2회 성경잔치 시상식. 성경경시대회 부문 '은빛상' 수상자로 조양순(안나, 92, 마산교구 양덕동본당) 할머니가 호명되자, 허리를 펴지 못하는 조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안명옥(마산교구장) 주교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은빛상은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 어르신에게 주는 상. 장내에는 할머니를 향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조 할머니는 지난해 교구가 마련한 첫 성경잔치에서 성경경시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 할머니는 경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예상 문제집도 풀어보고, 별도로 문제를 내준 본당 수녀와 전화로 채점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조 할머니는 "평소에 읽고 사귀어온 하느님 말씀을 문제로 푸는 일이 재미있고, 꼭 하느님이 내게 시키시는 일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할머니는 10년 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 교리공부를 하던 중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세례를 받은 후에는 손자와 남편이 2~3개월 차이로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갓 세례받고 가족들을 떠나보낸 조 할머니는 "하느님은 없다"고 부정하며 성당에 등을 돌렸다.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지옥 같은 날을 보냈다. 5년 동안 냉담했던 조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는 개신교 신자들은 위로도 해주고 교회에 나오라고 손짓도 하는데, 왜 가톨릭 신자들은 쉬고 있는 나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한 교우의 도움을 받아 성당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은 조 할머니는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해 기도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이때부터 조 할머니는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씻은 후 꼬박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 조 할머니는 "이제는 그동안 냉담했던 시간이 후회스럽다"면서 "그저 빨리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하느님 말씀은 내 아들이자, 손자이자, 남편과 다름없습니다. 나의 힘이자 모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성경과 함께 살다가 성경과 함께 죽고 싶습니다." 조 할머니는 "하느님께 자랑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녀가 두 명 있다는 것과 나를 돌봐주러 오는 요양보호사가 예비신자 교리를 받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흐뭇해했다. 손춘복 명예기자cpbc2013.11.19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5>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5782_1.1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억척 심부름꾼 신나무골성지 사제관 전경(왼쪽)과 내부(오른쪽). 초기 조선 교회는 편지를 쓸 사람도, 더구나 북경의 주교와 만나기 위한 여행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신자들은 애절한 기도를 통해 이 일을 감행, 두 통의 편지가 중국 주교와 로마 교황청에 전달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1) 성경의 부재(박해로 성경 압수, 훼손 및 분실).2) 성전의 부재(성직자 부재로 교회 가르침 공백 지속).3) 성사 생활 부재(고해성사와 성체성사 그리고 기타 성사 생활의 불가로 영적 성장이 멈춘 상태 고백).4)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성직자 파견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긴 박해의 터널을 지나선교사들은 편지 2통을 포르투갈 언어로 번역하여 모두 로마로 보냈다. 교황은 편지를 받고 너무나 기뻐하며 선교사 파견을 서두르고 조선 교회를 중국 교회로부터 독립시켰다. 그렇게 해서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파리외방전교회에 선교를 맡겼다. 그 당시 파리외방전교회는 선교사 파견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한국에 선교사 파견을 결정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4대 박해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여명(黎明)이 보이기 시작한다. 1886년 한불조약에 이어 1899년 교민조약 그리고 1904년 선교조약을 통해 교회에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 1831년 조선교구 창설 후 1837년부터는 샤스탕 신부가 신나무골과 언양 등지에 머물면서 선교를 시작했다. 샤스탕 신부 순교 후에는 다블뤼 신부가, 1849년부터 1861년 6월까지 12년간은 최양업 신부가 신나무골을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였다. 이후 최양업 신부가 과로로 쓰러지고 나서는 다시 다블뤼 신부가 신나무골 지역을 맡았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 충청ㆍ경기 지방에서 박해를 피해 내려온 교우들이 산중에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생겨난 교우촌이다. 그러던 중 대규모 박해가 일어났다. 바로 1866년(고종 3)부터 1871년까지 대원군에 의해 자행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병인박해다. 잔인했던 신유박해(1801년)는 막을 내렸으나 천주교를 나라의 원수로 규정함으로써 복음 전파는 커다란 장애물을 만났다. 무엇보다 먼저 신유박해로 조선의 천주교회는 큰 타격을 입었다. 주문모 신부가 순교함으로써 유 파치피코 신부가 1834년 입국할 때까지 한국 교회는 목자 없는 교회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지도층 신자들이 거의 순교하거나 유배되었고 교회 서적들도 대부분 압수됨에 따라 한국교회는 빈사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살아남은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간 지역으로 숨어들어 계속 복음을 전했다. 또한 순교자들의 용기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어 신앙의 불모지였던 전라도 남부와 남쪽의 도서 지방, 그리고 경상도를 벗어나 강원, 황해, 평안, 함경도 등 궁벽한 구석까지 천주교 신앙이 확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대목구장 장 마리 귀스타브 블랑(백규삼) 주교가 대구본당을 신설하고, 초대 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아킬레 바오로 로베르(김보록) 신부를 임명했다. 1882년 경상도 지역 전담 신부로 임명받은 김보록 신부는 먼저 대구 시내로 진출하려 했으나 당시 천주교에 대한 적대감과 신자들에 대한 위협 때문에 경상도 신나무골 교우촌에 거처를 마련한다. 김보록 신부는 당시 블랑 주교에게 보낸 사목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경상도 신자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순회) 선교사가 그들을 방문하고는 다시 떠나가기 때문에 버림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그는 또 ‘1886년 4월에는 마침내 경상도 첫 사제관을 신나무골에 두었다’고 적고 있는데, 여기에 쓴 사제관이 바로 신나무골 성지의 사제관이다.서상돈과 김보록 신부의 만남1885년 서상돈의 나이 35세에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의 교우촌으로 옮겨 오면서 서태순의 딸인 사촌 여동생 서마리아와 함께 교회 일을 하기 시작했다.우리 삶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만남을 내 인생 공부의 총량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상돈에게 김보록 신부와의 만남은 또 하나의 기적이고 신비이다. 서상돈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김보록 신부는 그를 구원해주었다. 김보록 신부는 하느님이 보내 준 수많은 그의 조력자 중 한사람이었다.1888년 겨울, 김보록 신부는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죽전 새방골로 옮겨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였다. 낮에는 바깥 출입을 삼가고 밤이면 상복으로 변장하고 신자들을 방문하여 성사를 주다가 5년 뒤 대구시로 거처를 옮겼다.연화리에 있어 연화서당이라 불리기도 하는 신나무골 학당은 1920년 신동초등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신학문과 구학문 그리고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던 배움과 복음전파의 전당이었다. 큰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영남 지방의 복음화에 헌신했던 김보록 신부가 1883년 설립했다. 1855년에 충북 제천에 세워진 배론 신학교를 제외한다면, 천주교 내에서는 가장 일찍 신학문을 가르쳤던 신교육 기관이었다. 이후 김보록 신부의 거처가 주민에게 알려졌고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구경을 왔다. “눈이 파래.” “저 머리 좀 봐. 사람이 아니야.”“야손가 뭔가 하는 사람의 살을 매일 먹는대.”“피도 매일 마신다네.”그들 가운데 천주교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불량배들이 신부의 거처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다. “양놈. 죽여라!”“너희 나라로 돌아가라!”“야소가 무슨 귀신이냐?”“확 불을 싸질러 버려야 정신을 차리겠냐?”“불 지르자!”“내쫓아!”아전과 포졸, 군중은 돌을 던지고 구타하는 등 이들에게 모욕을 주었다. 김보록 신부는 판관과 감사를 찾아가 건의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일행을 대구 밖으로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김보록 신부는 대구의 아전 2명이 신자들을 투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 중 허 골룸바라는 여성 신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투옥돼 옥살이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다. 김보록 신부는 즉시 서울과 프랑스에 알려 이들을 석방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허 콜롬바(골룸바) 투옥 사건’이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김보록 신부는 조선교구장 뮈텔에게 사건의 전말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서한을 받은 뮈텔 주교는 프랑스 공사 플랑시를 통해 조선 정부에 항의하고 대구 감사의 파면과 보상 등 6개 항을 요구했다. 그 결과 조선 정부는 감사 파면 외 5개 항에 대한 요구를 수락하고 프랑스 공사에 공식 사과문을 보냈다. 협상이 타결되자 대구로 거처를 옮긴 김보록 신부는 이후 30년 동안 대구 지방의 천주교회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서상돈은 김보록 신부를 통해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김보록 신부는 조선에 대한 사랑이 유별하여 바쁜 사목 중에도 학교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게 배움을 길을 열어 놓았다. 1899년을 전후하여 대구읍내 새방골·대어빌·영천 등지에 학당을 설립할 때, 서상돈은 정규옥(鄭圭鈺) 등 교회 내 신자들과 재정 지원 및 학교 운영을 도왔다. 계산동본당 부속인 한문서당 해성재(海星齋)도 그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날로 발전을 거듭하던 해성재는 1908년 4월 1일,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립학교(聖立學校)로 탈바꿈했다. 이 학교는 2년 뒤 부속으로 야간부인 성립여학교를 설치하는 등 여성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서상돈은 또한 1905년 달서여학교 설립에 이일우(李一雨) 등과 함께 적극 관여하였다. 달서여학교는 1909년 학부대신(대한제국 때에 학무행정을 관장하던 중앙 관청)으로부터 정식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합리적인 가정생활을 위한 부인 야학회를 운영하는 등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여학교로 발전을 거듭했다. <계속> 백영민2015.08.05
![[성 요셉 대축일]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과 그 신심](//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9310_1.0_titleImage_1.jpg)
[성 요셉 대축일]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과 그 신심자기 희생·봉헌으로 성가정을 수호한 ‘아버지’ 19일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 공동 수호자인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복음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불리는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실한 도구로 선택돼 성가정을 돌봤다. 가정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가장인 아버지 역할이 부각되면서 새롭게 조명되는 이가 요셉 성인이다. 요셉은 가장으로,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서 그리스도인 남자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영원한 모범이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경 구절은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그에 대한 언급이나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 묵상해 보면 요셉은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했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했고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도록 하고 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예수,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아들이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요셉은 먼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보호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끝까지 지켜줬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셉은 또 예수의 양부로서 성실한 아버지 역할을 다했다.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 동안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성경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예수의 지혜와 키를 자라게 한 아버지가 요셉이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은 16세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에 의해 보편화했다. 데레사 성녀는 요셉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나는 성 요셉을 나의 변호자이며 보호자로서 존경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 요셉께서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도와주신 일을 나 자신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성 요셉에게 언제나 순종하셨으므로 지금도 천국에서 성 요셉의 소원은 모두 기쁘게 들어주십니다. 나는 할 수 있다면 전 세계를 성 요셉에 대한 신심에 투입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나는 성 요셉이 얼마만큼 하느님 앞에 신뢰가 있느냐는 것을 나 자신의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 요셉에 대하여 참으로 신심을 가진 사람으로 신덕에 진보하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성 요셉은 자기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영성 진보를 특별히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자서전」 6).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했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