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생명이야기] 18. 지혜문학 안에서의 생명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성경은 창세기 첫 장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하느님의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생명체가 되게 하셨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지혜문학의 표현을 따르면,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 23)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셨고(지혜 9,1), 당신의 지혜로 인간을 빚으시어 당신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통치하게 하시고 세상을 거룩하고 의롭게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지혜 9,2-3). 당신 손에서 생명을 받은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잠언 3,19), 많은 업적들을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 차게 하셨습니다(시편 104,24).구약성경은 지혜가, 스스로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잠언 8,22)”고 말하며 원래 하느님에게서 기인한다고 가르칩니다. 지혜의 말을 듣고, 지혜를 찾아 얻는 것은 생명을 얻으며 주님의 총애를 받게 될(잠언 8,35)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지혜문학은 사람이 지혜를 얻어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리게 될 것이며, 현실을 올바로 알고 지혜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스라엘 현인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지혜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이를 실천하도록 젊은이들에게 권했습니다. 한 인간이 훌륭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가능한 지식과 정보를 젊은이들에게 조언으로 제시하고 그들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가르침을 되풀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를 찾는 자가 생명을 얻는 것”(잠언 8,35; 집회 4,12)으로 가르쳤습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면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그 왼손에는 부와 영광이 들려 있다…. 지혜는 붙잡는 이에게 생명의 나무, 그것을 붙드는 이들은 행복하다(잠언 3,16.18)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길에서 벗어나는 자들은 “더 이상 생명의 길에 이르지 못한다(잠언 2,19)“고 선언합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킴으로써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둘 중에 생명을 선택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신명 30,15-20). 또한 지혜 추구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키려는 노력과 동일시(집회 24,23; 바룩 4,1)되기도 합니다. 지혜는 ‘생명의 나무’(잠언 3,18)이기에, 지혜를 추구하는 근본 목적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지혜서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지만”(지혜2,13-14),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신명 32,39),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시는 분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장에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들을 위해 에덴동산을 꾸미시고 그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금하셨지만 생명나무를 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고 불멸성을 보증하였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들이 내쳐지는 이유로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된다”(창세 3,22)는 하느님의 걱정스러운 말씀이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주님을 경외함으로 시작되는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지혜의 현인들은 제시합니다. cpbc2014.06.26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3.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cpbc.co.kr/CMS/newspaper/2016/02/rc/621253_1.0_titleImage_1.jpg)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3.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속죄의 삶 사는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 전해 교정사목 현황2015년 12월 말 현재 전국 65개 교정 시설에서 수형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1087명에 이른다. 군종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에서 교정사목을 하고 있는데, 서울ㆍ대구·대전ㆍ수원교구 등 8개 교구는 교정사목 전담 사제를 두고 있다. 6개 교구는 사회사목국에서 교정사목을 담당하고 있고, 마산교구는 삼위일체 수도회가 교구로부터 교정사목을 위탁받았다.교정사목 봉사자는 1007명인데, 서울대교구가 170명으로 가장 많고 수원교구(150명), 부산교구(132명), 광주대교구(115명)가 뒤를 잇는다. 봉사자들은 미사 준비, 수형자 상담, 교리교육, 성경공부반 운영,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운영, 간식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서울구치소ㆍ대전교도소ㆍ춘천교도소, 청소년 보호시설 고봉중고등학교 등 전국 교정시설에서는 매주 또는 2주일에 한 번 종교 집회(미사)가 열린다. 교정사목 전담ㆍ협력 사제들과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이 시간에 수형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봉헌한다. 남부교도소, 서울ㆍ성동구치소 등 5개 교정시설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김지영 신부)는 미사 봉헌뿐 아니라 교리교육, 다채로운 문화 행사, 외부 강사 초청 특강 등을 열어 수형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있다. 춘천교구 교정사목 봉사회는 춘천교도소에서 매주 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화요일에는 예비신자 교리, 수요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연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좋은 이웃’이라는 신앙상담 시간을 갖는다. 다른 교구 교정사목위원회 활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6년째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안옥수(데레사)씨는 “수형자들은 얼굴도 모르는 자신들을 꾸준히 찾아주고 관심을 두는 사제와 수도자,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다”고 말했다.출소자 자활 돕기도 적극적교정사목위는 가난한 출소자들의 자활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출소자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줘 자립을 돕는 ‘기쁨과 희망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기쁨과 희망은행은 지난 1월 말까지 192명에게 창업자금을 빌려줘 출소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전국 교구에서 가장 많은 교정시설(12곳)을 담당하는 대전교구 교정사목부(담당 강창원 신부)를 비롯한 6개 교구가 출소자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한다. 전주교구(전담 이정현 신부) 교정사목위는 소년원을 퇴소하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 ‘천사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대구대교구 교정사목위(담당 정황래)는 출소자들이 일할 수 있는 식품 공장 ‘빠스카의 집’을 운영한다. 13명의 출소자가 이곳에서 두부와 묵을 만들어 판매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대전 교정사목부는 2010년부터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 교육인 ‘윤슬 교육’을 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김지영 신부는 “교도소를 하나의 본당, 수형자들은 본당 신자라고 생각하고 사목하고 있다”면서 “신자 수형자들이 언젠가는 교도소 밖 일반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텐데, 그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교도소 안에서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또 “수형자들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새롭게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교구 교정사목 담당자들의 협의체인 ‘한국 가톨릭 교정사목 전국협의회’(회장 강창원 신부)는 매년 봉사자 연수, 사제ㆍ수도자 연수를 개최해 교정사목 봉사자를 길러내고 있다. 또 전국 교정시설 신자 교도관 모임인 ‘성심회’ 가족의 날 행사도 열고 있다. 수형자들이 원하는 것은? 갇힌 공간에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수형자들은 늘 자유가 제한된다. 신앙생활도 정해진 시간 지정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다. 매주 수형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시간 제약에 대한 아쉬움을 호소했다. 일반인들은 언제든지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고해성사도 할 수 있지만, 교도소 안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 있는 ‘종교 집회’ 시간에만 사제를 만날 수 있다. 이것도 그날이 공휴일이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집회 자체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또 여름과 겨울 각 한 달여 간은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쉬어야 한다. 종교 담당 교도관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러 사정으로 수형자들은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 전국 51개 교도소 가운데 수형자를 위한 경당은 단 한 곳도 없다. 봉사자들이 쉬거나 종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종교실은 마련돼 있지만 그것마저 창고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그만큼 수형자들이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도소 내 공간이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감방’ (수용 거실) 안에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기라도 하면 수형자들 간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춘천교도소에서 교리교육 봉사를 하는 박영선(프란치스코)씨는 “종교 때문에 다른 종교 신자 수형자와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시간 남짓한 종교 집회, 쁘레시디움 회합 시간을 제외하면 동료 신자들과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서 “결국 홀로 신앙을 키워야 하는데 교도소 안에는 신앙 서적도 부족해 수형자들이 ‘공부’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아쉬워했다.신앙생활 공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한 수감 시설에서 재소자를 교화하고 교정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수형자들은 출소 후에도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전과자’에 대한 신자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춘천교구 교정사목 봉사회 이효원(스테파노) 회장은 “본당 신자들의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아 성당에 발길을 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출소자들이 많다”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지영 신부는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는 수감자들에게 자비의 희년인 이 성년에 우리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며 “갇힌 이들을 위로하고 하느님 자비로 감싸주며 연대와 세심한 배려로 치유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6.02.24

잊지 말아야 할 이 땅의 고통, 십자가에 담아 순교자 현양비를 쌓다광주대교구청 ‘비움의 십자가’ 제작한 조각가 이춘만 선생 이춘만 조각가는 “‘비움의 십자가’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 곧 하느님과 하나 됨을 일러주는 기도 매체”라고 말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내내 침잠(沈潛)하듯 말씀의 바다 속 깊숙이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 작품 앞에 와서 기도하고 묵상할 텐데, 하느님의 한없는 뜻을 담아내야 하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제작에 임했겠습니까.”광주대교구청에 설치된 ‘비움의 십자가’를 제작한 조각가 이춘만(크리스티나, 75) 선생은 “‘비움의 십자가’는 사실 10년 전부터 구상해 온 프로젝트”라며 “그러던 중 마침 제 작품 세계를 알아봐 주신 김희중 대주교님, 옥현진 주교님과 함께 논의해 탄생시키게 된 산물”이라고 설명했다.이춘만 선생은 반세기 동안 성미술 조각을 해온 국내의 대표적 여류 조각가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대형 순교 기념비를 비롯해 전주 천호성지 십자가의 길, 명동대성당 김대건 신부상 등 수많은 작품을 해왔다. 작가를 모르는 이들은 으레 ‘남성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여길 정도로 크고 웅장하면서 굵고 강한 선으로 이뤄진 작품을 해오기로 유명하다.그가 다시 깊은 명상 끝에 탄생시킨 ‘비움의 십자가’ 역시 높이 8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다. 총 4개의 탑에 27개 부조가 퍼즐처럼 채워졌고, 탑 사이 비워진 틈은 십자가 형태를 한 독특한 형상이다. 뒷면엔 ‘성령’, ‘어린양’ 등을 표현한 벽화까지 새겨진 입체 조각탑이다. 이 선생은 “비움의 십자가는 ‘순교 현양비’”라고 했다. 비움의 십자가는 그의 말처럼 이 땅에서 일어난 다양한 ‘고통 이야기’를 빼곡히 담고 있다.가장 아랫단(壇)의 거대한 예수님상과 순교성인상을 시작으로 시선을 올려보면 6ㆍ25전쟁 참전 용사와 참수당하는 순교자들을 비롯해 5ㆍ18 광주 민주항쟁 당시 거리의 사람들, 세월호 참사 희생자까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가 고안한 5등신 조각상은 실제 감정을 품은 작은 인간처럼 아픔과 고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느님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다.“인체는 하느님 언어를 담는 그릇입니다. 눈은 감정을, 손은 나눔 기도 소통을 표현합니다. 성경 말씀이 조각상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제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 것도 그만큼 조각이 기쁨, 슬픔 등 가치관을 담고 살아 숨쉬기 때문이죠.”이춘만 선생은 1958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하던 해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인생과 철학을 가장 고민하던 그 시기 김세중(프란치스코, 당시 서울대 미대 교수) 선생 권유로 성미술에 입문하게 됐다”고 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을 생소하게 본 이들의 혹평과, 성미술에 대한 엄격한 잣대 속에 힘든 나날도 많았지만, 그는 ‘성미술하는 수도자 삶’을 자처하고 그 상상력과 고통마저 ‘그림 일기’에 풀어내며 주님께 의탁했다.이 선생은 “19살 작은 체구 여자아이의 소묘를 알아봐 주신 장발(루도비코,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장) 교수와 김세중 선생과의 인연, 그리고 세월을 거쳐 오늘 이렇게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모두 빈틈없는 하느님 섭리와 이끄심 말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 각자에겐 하느님이 주신 전능함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철저히 비우지 않고선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비움의 십자가’는 나를 비우는 것이야말로 곧 하느님과 하나 됨을 일러주는 기도 매체입니다.”이 선생이 자신의 드로잉 작품이 빼곡히 그려진 ‘그림 일기장’을 가방 깊숙이서 꺼내 보여 줬다. 돌조각으로만 마주하던 형태들이 종이 위 소묘로 채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말씀과 묵상 글이 가득했다. 반세기 조각가의 고민 흔적들이 지면에서도 살아 숨 쉬는 듯했다.그의 작품 60여 점을 감상할 ‘이춘만 성미술전’도 26일까지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갤러리 현에서 열린다. 문의 : 062-380-2210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6.05.04

예수님의 진짜 모습 궁금하다면…세계적 성서학자 로핑크 신부역사비평적 방법으로 풀어낸예수 말씀과 행적 예수 마음 코칭 예수 마음 코칭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김혁태 옮김/생활성서/2만 9000원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은 어떠했을까. 무엇이 예수님이 하신 원래 말씀이고 행적들일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이다. 이러한 궁금증에 학자들은 역사 비평적 방법으로 연구한 예수님을 제시한다.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그리스도교가 ‘신화’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준다.최근 국내에 소개된 「예수 마음 코칭」은 이러한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세계적인 신약성서 학자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로핑크(독일, 82) 신부다. 그는 예언자, 사회 혁명가, 치유자, 사회 활동가 등으로 편협하게 단순화한 예수님 모습이 잘못됐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성경 속 예수님을 철저히 역사적으로, 비평적으로 분석하며 역사와 전통, 신앙과 지성의 지평 위에서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이 바로 역사적 예수님이었음을 드러내 보인다.“하느님 백성 이스라엘 없이는 그분을 생각할 수 없다. 그분은 이 백성의 전통 안에서 사셨다. 따라서 이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그들의 신앙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만 그분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32쪽)로핑크 신부가 쓴 이 책은 종종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쓴 「나자렛 예수」와도 비교된다. 「나자렛 예수」 역시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목 역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쓴 「나자렛 예수」와 똑같다. 이에 대해 로핑크 신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책과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본래 무엇인가’ ‘그분의 요구와 주장은 무엇인가’라는 역사적 질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로핑크 신부는 복음서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그 행동을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실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온 생애는 ‘하느님의 다스림’(그는 하느님 나라를 하느님 다스림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과 결부돼 있다고 봤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은 것도, 제자들을 파견한 것도 모두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지금 이 순간에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상향(유토피아)이 아니라 “이미 실현되고 있는 미래”라고 했다.“(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그분 사후에 곧바로 지중해 주변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토양을 바탕으로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그분의 복음을 사는 공동체들이 자라났다. 바로 이 사실에서도 그분의 하느님 나라가 유토피아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629쪽)책은 67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주제 역시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있는 것은 김혁태(전주교구, 광주가톨릭대 교수) 신부의 매끄러운 번역 덕분이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10.07
![[교황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9. 서론과 2장 - 1](//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8288_1.0_titleImage_1.jpg)
[교황 생태 회칙 해설] 9. 서론과 2장 - 1과학적 패러다임 신봉에 재앙 직면한 인류, 종교 간 대화와 형제애 쌓고 위기 극복해야 1장에서 교황은 신뢰할 만한 과학적 사실들을 근거로, ‘지금 우리의 공동 가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개한다. 이는 교황이 “지루하고 추상적”(17항)인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실재가 관념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교회 사람들에게 ‘실재주의자’가 되자고 권한다. 1장은 ‘실재’를 놓고 모든 사람이, 특히 과학자 및 전문가들이 정직하고 진실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해달라는 교황의 요청이라 할 수 있다(201항 참조).교황은 인류가 직면한 사태(도전)의 급박함과 엄중함과 복잡함을(15항) “고통스럽게 자각”하여 “자신의 인격적 고통으로 변환”(19항) 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아무리 “최악의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다시 선한 것을 선택하고…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새로운 경로”(205항)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전하며 ‘공동 가정을 돌보는 일’에 관한 실효적인 대화와 토론을 긴급히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화와 토론의 자리에서 이 회칙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문화와 경험과 재능을 갖고 참여하고 협력”해서 구축해야 할 “새롭고 보편적 연대”에 기여하기를 교황은 바란다(14항). ‘창조의 복음’이라는 제목을 붙인 2장은 간단히 ‘유다-그리스도교 전통’(15, 76, 78항)에서 이해하는 ‘창조’ 혹은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이해하는 창조와 세상’으로 서술해도 될 것을 교황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 하나는 모든 종교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스스로 믿는 이들이라 고백합니다. 이 (신앙)고백이 종교들 사이의 대화를 재촉해야 합니다. 자연 보호를 위하여, 사회적 약자를 방어하기 위하여, 존경과 형제애의 관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말입니다”(201항). 또 다른 이유는 회칙 전편에 걸쳐 엿볼 수 있는 것으로서 ‘지난 2세기에 걸쳐 세상을 이끌어 온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행적’에 대한 반성(특히 3장 참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지난 200년 동안 우리의 공동 가정에 상처 입히고 학대한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재앙에 맞설 수 있는 문화가…지도력이…법적 틀이 없다는 것입니다”(53항).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다음 진술에서 일단의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정치는 경제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경제도 효율성만 따르는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189항). 3장에서 밝히고 있지만, 오늘날 재앙의 뿌리는 지난 2세기의 근대정신과 닿아 있으며, 그 근대성은 절대 주체로서의 인간관과 단순한 객체로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 기술적 패러다임을 절대화했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창조주 혹은 종교들을 밀어내버리거나 하위문화쯤으로 간주하고 있다(62항).그러나 교황은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을 뿐, 서로 생산적이며 심층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으며, 대화를 제안한다(62항). 회칙 제2장은 “인류와 세상에 유익한” 즉 “해방의 경로를 모색하는” 이 대화에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자세와 확신을 제시한다(64항). 회칙 제2장의 소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I 신앙이 비추는 빛(63~64항), II 성경의 지혜(65~75항), III 우주의 신비(76~83항), IV 창조의 조화 안에 있는 각 피조물의 메시지(84~88항), V 우주적(보편적) 친교(89~92항), VI 재화의 공동(보편) 목적(93~95항), VII 예수님의 눈길(96~100항).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백영민2015.08.1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7)장 르클레르크(하)](//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6538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7)장 르클레르크(하)성경 중심으로 교회와 함께 고백하는 기도 생활 강조 르클레르크는 개인 취향 빠지는 주관적인 경향을 극복하려면 교회가 만든 공식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사진은 미사 중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 【CNS 자료사진 중세 연구 통해 밝혀진 역사 장 르클레르크가 질송의 권유를 받아 중세 수도원운동(Monasticism)을 연구하면서 이론적 측면에서 수도신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비체험(Mysticism)에 관한 슈톨츠의 연구에 영향을 받으며 연구하면서 실천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에 대한 고유한 관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르클레르크가 특히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던 중세는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에서 수덕 생활은 초세기부터 영성 생활을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였지만,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덕 생활이 과도한 고신극기의 모습을 바뀌면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실천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따라서 같은 시기에 평신도 그리스도인 및 또 다른 성직자, 수도자들은 기도 생활 안에서 체험하는 신비 생활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 하지만 적절한 이론이나 외형적 틀 없이 추구한 기도 생활은 신비 생활을 왜곡시키면서 중세 후기에 신비 체험과 관련된 영성적 이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르클레르크는 중세를 연구하면서 이러한 역사를 분명히 목격하였다.기도 생활의 어려움한편, 르클레르크가 신학자로서 연구를 시작하던 20세기 직전까지 교회는 다시 한 번 수덕 생활과 신비 생활의 부조화를 경험하였다. 즉, 17세기에 신비 체험과 관련된 이단이 출현하여 악영향을 끼치고 난 후 200여 년간 교회 안에서 신비 생활은 자취를 감추고 이단의 찌꺼기를 척결하고자 수덕 생활만 강조되는 영성 생활이 실천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19세기 말엽부터 교회는 다시 올바른 신비체험을 경험하면서 신비 생활에 대한 반감이 줄고 공개적으로 관심도 갖고 연구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를 몸소 체험한 르클레르크는 그리스도인이 영성 생활을 위해 기도 생활을 실천할 때, 아무 틀도 없이 신비 생활만 추종하는 것보다 적당한 틀 안에서 수덕 생활과 함께 접근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고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그런 까닭에, 르클레르크는 현대 영성신학자답게 현대인의 입장에서 기도 생활의 어려움과 그에 대한 극복 요령을 수덕 생활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설명하였다.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현대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대부분 시간은 생산과 소비에 사용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도하기 위하여 보내 시간은 겉보기로는 소비된 시간이요 결실 없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외적인 성취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외적인 결과를 거부해야 한다.”르클레르크에 따르면, 물론 “우리가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을 기도로 바친다는 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얼마간의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무엇인가를 포기하면서 기도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기도의 가치에 대하여 확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르클레르크는 말한다. “즉 기도에 대한 확신을 했을 때만이 이와 같은 포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따라서 르클레르크는 기도 생활을 수덕 생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시도하였다. 즉, “현대의 소용돌이치는 삶 안에서 기도의 수덕은 노력을 의미”하는데, 특히 “시간에 대한 수덕은 희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의식적으로 있으려 하는 우리의 기도 활동에서 우리 자신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르클레르크는 지적한다. 사실 르클레르크가 생각하는 피조물인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려는 우리의 지향을 끊임없이 감소시키고, 얽매어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 경향에서 탈피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에 접하고자 하는 하나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르클레르크가 생각하는 기도 생활은 단지 일정한 시간 동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는 많은 장애물을 의도적으로 극복하여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은총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수덕 생활과 연계된 기도 생활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발성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서 “우리의 자유를 교육”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기도 생활은 새로운 활기를 가지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게 된다는 것이다.기도 생활에서 유의점한편 르클레르크는 기도 생활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도 지적하였다. 즉, “주관적인 경향의 기도를 열심히 한다면 그 결과 나의 체험은 아주 깊게 느끼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주관적인 체험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너무도 빈약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취향에 맞는 개인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에서 탈피”하며, “자신에게서 소외되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르클레크는 말한다. 르클레르크는 우리가 주관적인 경향을 극복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마련하여 함께 바치던 공식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본다. 즉, “이러한 교회의 기도는 어떠한 형식으로 이루어지든 문제 되지 않으며 또한 이 교회의 기도를 혼자서 했을 때라도 교류는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가 확인하고 제시하고 반복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영양분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듣지 않는 위험에 빠지게 되며 그 결과 우리 자신에게만 말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정반대로 만약 “우리가 교회가 제시하는 영감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생명 없이 될 수 있는 빈약한 주관주의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그런데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우리는 교회의 공식 기도문을 능가하는 원천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 말씀이다. 사실 “하느님은 성경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성경은 하느님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알려주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그분과 맺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의하여 영감을 받은 기도는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입시킨다.”그리고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우리는 성경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께 좋은 가르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때, 우리의 기도 생활은 원만하게 실천된다. 특히 르클레르크는 “우리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과의 깊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을 기초로 두고 인간적이고 내적인 일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장하여 잘 사용하여야 하며”, 이것이 수덕 생활의 관점에서 다가가 실천하는 기도 생활이라고 강조하였다.영성생활에 큰 도움 준 영성신학자 결국, 르클레르크는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었다.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과 은총의 이끄심에 따라 기도 생활을 실천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면서 교회와 함께 고백하는 기도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가톨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영성 생활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현대 영성신학자 르클레르크에 대해 불행하게도 한국 가톨릭 교회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르클레르크의 중요 저서들이 번역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편적인 가르침조차 간단하게 소개된 적도 없었다. 이번 기회가 그를 아는 좋은 기회였길 생각하면서 훗날 또 다른 기회를 간절히 바란다.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평화신문2014.08.2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30>](//cpbc.co.kr/CMS/newspaper/2015/12/rc/607033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초자연적 윤리덕 그리스도의 윤리덕은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에 직접 넣어주셨다고 해서 ‘주입적 윤리덕’으로 일컬으며 은총에 기반을 둔다. 죄를 지으면 덕의 능력이 축소돼 윤리덕은 쇠퇴한다.성 베드로 사도 대리석상. 수덕 생활에서 핵심은 선으로 이끄는 덕을 최선을 다해 반복해 실천함으로써, 그 덕이 자신의 몸에 확고하게 배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기원전 중국이나 그리스의 현자 및 철학자들이 선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이 실천하는 윤리적인 덕에 대한 다양한 목록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연적 윤리덕’을 실천하며 올바른 선을 추구함으로써 성인군자로 존경받기도 했습니다.자연적 윤리덕자연적 윤리덕은 자주 반복해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습득적 윤리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적 윤리덕을 습득한다면 추구하고자 하는 선을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자연적 윤리덕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에 이미 세상에 새겨 놓으신 창조 질서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영향으로 구약 성경뿐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도 다양한 덕행 목록을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노고에 덕이 따른다. 정녕 지혜는 절제와 예지를,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 준다”(지혜 4,7).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7).기원전 현자들과 그리스도교 윤리덕의 차이하지만 그리스도교가 기원전 현자들과 거의 비슷한 이름의 덕행 목록을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기원전 현자들이 언급한 자연적 윤리덕은 창조 질서를 통해 깨닫게 된 덕이기에 사람들이 올바른 선을 추구하며 막연하게 창조주를 향해 나아가기만 합니다. 또한 자연적 윤리덕은 특성상 끊임없는 반복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천을 게을리하면 덕이 쇠퇴해 버립니다.반대로 그리스도교가 언급한 윤리덕은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 안에 행동 원리를 직접 넣어주시어 작용하도록 했기 때문에 ‘초자연적 윤리덕’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자연적 특성 때문에 인간 영혼은 하느님께 공로를 쌓을 수 있습니다. 초자연적 윤리덕은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 안에 직접 넣어주셨다고 해서 ‘주입적 윤리덕’이라고도 일컫습니다.그런데 초자연적 윤리덕은 주입됐다고 하더라도 자연적 윤리덕의 습득적인 특성을 일부 공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은총으로 주입된 초자연적 덕이라 하더라도 덕을 보다 쉽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이도 있어서 주입적 윤리덕은 신앙인이 초자연적 선을 추구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주입적 윤리덕은 은총에 기반을 두기에 신앙인이 죄에 떨어지게 되면 덕의 능력이 축소되고 덕의 실천에 방해를 받음으로써 결국 초자연적 윤리덕은 쇠퇴해 버립니다.‘사추덕’(四樞德)그리스도교는 다양한 초자연적 윤리덕 중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하는 ‘현명’, ‘정의’, ‘용기’, ‘절제’의 네 가지 덕을 선택하여 ‘사추덕’(四樞德)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덕’(智德)이라고도 하는 “현명은 모든 상황에서 우리의 참된 선을 식별하고 그것을 실행할 올바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천 이성을 준비시키는 덕”(「가톨릭 교회 교리서」 1806항)입니다. 따라서 지덕(현명)은 사추덕의 나머지 덕들뿐 아니라 다른 모든 덕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첫 번째 덕입니다. 즉, 지덕을 통해 성화를 위해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죄의 원인과 기회를 잘 간파해 죄에 물들지 않고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덕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지덕은 윤리덕보다 상위에 있는 신학덕의 영역까지 관여해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5.12.02

문화에 복음 녹여 전하니 눈과 귀에 쏙 들어오네[2015 문화 결산] 2015년 교회 문화 활동은 다양한 분야에서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이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주년 기념 공연과 전시를 비롯해 영화, 미술, 음악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문화 복음화’가 이뤄졌다. 평화방송·평화신문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평화나눔 음악회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이 교황 방한의 기쁨을 되새기며 노래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문화 사목 박차서울대교구는 지난 8월 교구 문화위원회와 성음악위원회를 각각 설립해 ‘문화 사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문화위원회는 첫 사업으로 ‘신앙, 인문학을 만나다’를 주제로 ‘청년문화학교’ 강좌를 열었는데, 예상을 훌쩍 넘는 170여 명이 9주 강의에 꾸준히 참여했다.성음악위원회는 10월 ‘말해주세요. 성가대 이야기’ 포럼을 처음 개최, 각 본당 성가대원들의 고충을 들었다. 교회 음악가 박원주ㆍ이상철ㆍ최호영 신부는 각개 전투식으로 펼쳐지는 본당 성가대원들의 어려움과 의견을 듣고 조언해줬다. 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성음악 로드맵’을 만들어 교회 성음악 전반을 지원할 계획이다.서울가톨릭미술가회는 20년 만에 성미술 세미나를 개최해 가톨릭 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했다. 미술가들은 세미나에서 △성미술 작품의 체계적인 보호ㆍ관리 △종교미술 가치를 보급할 현대 종교미술관 건립 등을 교회에 건의했다.한국 교회 1번지 명동성당은 올해 ‘문화가 있는 명동’을 매달 열었다. 클래식ㆍ재즈의 대가들이 무대를 장식하며 성당을 찾는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부산교구는 2015년을 ‘문화 복음화의 해’로 정하고, 1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문화를 전하는 데 힘썼다. 교구 선교사목국은 신심 서적 읽기 추천 도서 50권을 선정, 매달 2~3권씩 주보에 소개했다. 사목국은 연말에 추천 도서 독후감 공모전도 열어 나눔을 풍성하게 했다. 부산가톨릭센터도 문화 복음화의 해 동안 매달 한 영화를 정해 무료 상영회를 열었다. 더불어 다양한 특별 기획전을 마련해 일반 문화 센터 전시와 차별화된 복음적 가치가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다.본당들도 음악회ㆍ전시회ㆍ성극 등을 열어 적극적으로 사목 지침을 따랐다. 양산본당은 ‘문화 복음화 운동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본당 공동체와 지역 사회에 복음 정신을 전했다. 특히 성경 퍼즐, 한 줄 성경 쓰기 등 본당 누리집을 활용하는 다채로운 활동들을 마련해 주목을 받았다.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주년‘프란치스코 효과’는 교황 방한 1년이 지난 올해에도 활발히 전해졌다. 8월 서울 명동대성당 들머리에는 교황 방한 때 감동이 담긴 사진들이 걸렸고, 명동성당이 개최한 음악회 ‘교황님 기억합니다’에 참석한 신자들은 교황 방한 영상도 함께 감상하며 연주에 빠져들었다.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황이 남긴 메시지 ‘평화ㆍ나눔ㆍ사랑’을 주제로 평화나눔음악회를 열었다.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씨를 비롯해 교황 행보에 매료된 이승환씨까지, 가수들도 1년 전 기쁨을 노래했다. 대전교구는 8월 15~16일 해미순교성지에서 ‘프란치스코 데이’ 청년 축제를, 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은 꽃동네 희망의 집 잔디광장에서 열린 음악회를 열며 1년 전 기쁨을 다시 한 번 기념했다.영화는 복음을 싣고가톨릭영화인협회와 한국가톨릭문화원은 나란히 제2회 가톨릭영화제, 제2회 한국가톨릭어린이영화제를 각각 열었다. ‘가족의 재발견’을 주제로 서울 명동역CGV에서 열린 두 번째 가톨릭영화제에는 가족 관계를 돌아보는 장ㆍ단편 영화 42편이 상영됐으며, 영화인, 수도자, 관객이 소통하는 토크쇼도 열렸다. 제2회 한국가톨릭어린이영화제에는 어린이 감독 60여 명과 부모들이 2박 3일간 김포시 문화아트센터에서 연출과 연기를 배우고, 작품을 만들며 영화에 흠뻑 빠졌다. 전년보다 더 많은 관객과 참가자가 찾아들면서 두 영화제는 상업 영화 틈바구니에서 교회 안팎에 복음을 전하는 장(場)으로 더욱 자리매김했다.토크 콘서트 바람올해 교회는 ‘토크 콘서트’가 대세였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5월 청년들과 만난 첫 토크콘서트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공지영(마리아) 작가, 김제동(프란치스코)씨 등 스타들도 교회 곳곳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고 신앙의 의미와 체험을 전했다. 젊은이들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주교의 금쪽같은 덕담, 유명인들의 재치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 올해는 특히 하향식 일방 소통에서 벗어 ‘위와 아래의 만남’을 이루는 ‘토크 콘서트 사목’이 교구와 단체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선보인 해였다.평화방송ㆍ평화신문 문화사업가톨릭 종합매체인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올해부터 ‘찾아가는 문화공연, 함께해요! PBC 문화마당’을 시작했다. △영화 △음악회 △연극 및 뮤지컬 등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지닌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일선 본당을 위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벌써 몇몇 본당은 PBC 문화마당을 통해 인형극과 생활성가 공연을 열었다.아울러 최근 출시한 가톨릭 모바일 공동체 모바일 앱 ‘코이’는 신자 자영업자와 이용자를 연결해주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친교를 나누도록 하는 생활 속 새로운 교회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5.12.23
[성경 속 생명이야기] 17. 고엘(구원자)이신 하느님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생명의 복음 제3장에서는 생명에 관련된 하느님의 계명(살인해서는 안 된다)에 대해 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신성한 법이라고 설명합니다.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살게 하시고, 인간을 자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셔서 나머지 창조물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면서 이 지상에서 하느님과 같은 주인 역할을 하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 생명에 대한 절대적 주인이 바로 당신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신명 32,39)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이전에, 하느님께서는 인간 생명을 다루는 부분에 관해서는 특별히 그 피의 복수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강조하십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로 살해하고 난 뒤에 그 형벌이 짊어지기에 너무나 크다고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며 만나는 자마다 자신을 죽이려 할 것임을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카인에게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배로 앙갚음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도 카인을 죽이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자신의 친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한 카인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직접 카인의 구원자(고엘)가 되어 주십니다. 구약에서 고엘에 관해 살펴보면, 레위기 35장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피신할 도피성읍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반면에 고의로 살인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하며 피의 보복자는 그런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실제로 카인은 아벨을 지키도록 요구되지는 않았지만, 아벨의 형제로서 아벨이 살해되었을 때 대속자 역할을 하고 또 그 피에 대해 복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카인 자신이 아벨의 살인자여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위해 직접 그 ‘피의 보복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창세 4,15) 레위기(17,11)를 보면, 생물의 생명은 그 피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제물로 사용되는 동물의 피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단에 쓰는데,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살인으로 흘려진 피는 거룩한 땅을 더럽혀서 하느님이 현존하시기에 부적합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으며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에 대한 살인은 반드시 보복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하느님이 직접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창세 9,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교도권은 무고한 이나 죄인, 불의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권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권과 절대적으로 평등함을 주장하며(「생명의 복음」 57항), 이 평등성으로 진정한 사회관계의 기초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특히 무죄한 생명을 죽이는 고의적 낙태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개인적 책임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머니 모태에서 빚어지기 전부터 알고 계셨으며(예레 1, 4), 어머니 뱃속에서 엮으신 분이며(시편 139,13), 아직 태아일 때부터 당신 두 눈으로 보고 계시고(시편 139,16), 이미 정해진 날이 시작하지 않았을 때부터 당신 책에다 모든 것을 적어두고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어머니 뱃속에서 이끌어내시고, 어머니 젖가슴에 평화로이 안겨주시는 분이시기에 모태에서부터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시편 22,10-11) 성경에서는 낙태나 안락사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카인의 고엘이 되어 주기도 하시는 하느님께서 초기 단계의 무고한 인간 생명에 대해서도 고엘이 되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평화신문2014.06.17
![[생활 속의 복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4398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그리스도 왕 대축일(요한 18,33ㄴ-37)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생활 속의 복음으로 교우 여러분을 만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왜 이렇게 늦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고 많은 격려와 충고를 해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동료 신부님들 말씀은 마음속에 기억하겠습니다. 숨을 고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번 주에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이유는 많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멋진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동ㆍ서양에는 훌륭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장자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장자는 「잡편」에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아온 자신이 자유로운 삶을 ‘세 부류의 사람과 진인(眞人)’이라는 가르침으로 이야기합니다. “난주(暖姝)에 속하는 사람은 이론을 배우기만 하고 여과 없이 그것을 따라 자기의 학설로써 만족하는 사람으로 주관이 없는 사람이고, 유수(濡需)에 속하는 사람은 돼지의 몸에 붙어사는 이와 같은 사람으로 일시적인 안락을 꾀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루(券婁)에 속하는 사람은 순임금과 같은 사람으로 자신의 참됨과 인간성으로 평생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세 부류의 인간상을 초월하는 이가 진인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본성으로 되돌아간 사람입니다.”구약성경에서는 야곱을 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경쟁을 시작했고, 형제나 이웃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외모로 여인을 평가하던 아주 속물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돌보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진실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파라오를 축복해주는 것은 정말 너무나 멋진 모습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르나바 성인이 있습니다. 유다교에서 개종해 물질적 유혹을 극복한 성인은 후배인 바오로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며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인간적 욕심을 내려놓고 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철저히 실천하신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치 이웃집 어르신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시대에도 예수님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가 있습니다. 브라질의 35대 대통령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재임 2003~2010)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땅콩을 팔고 구두닦이를 하며 살다가 14살에 상파울루 철강공장에서 취직해 일했습니다. 18세에 새끼손가락이 절단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공장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하였지만, 워낙 가난해 임신한 아내와 아기를 잃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실업자가 돼 길가에 앉아 울기도 했던, 눈물이 많았던 그는 훗날 하루에 1달러의 수입으로 살아가던 가난한 형제들 4000여만 명의 지지로 57살에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당선 후 많은 외국자본이 브라질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결석률 15% 미만을 유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소득수준 하위 25%의 국민들에게 생활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그의 정책에 힘입어 10년 후에는 국민 2000만 명이 중산층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룰라 대통령을 두고 “이분이 나의 우상이다. 나는 그를 깊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룰라 대통령을 통하여 세상의 희망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를 묵상하다 보니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가 보입니다. 제1 독서에서 예언자 다니엘은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다니 7,14)라고 이야기하며 사랑과 정의, 봉사로 통치되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제2 독서와 복음은 사제직과 진리를 증언하는 예언직을 보여줍니다. 교우 여러분들께서 세 가지 직무를 완성하신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했으면 합니다. 진인과 함께 그리스도를 배우고 선포하여 주십시오. 아멘.※지난 1년 동안 ‘생활 속의 복음’을 집필해 주신 박재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주수욱(서울 대방동본당 주임)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십니다. cpbc20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