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대담] 성경읽기 생활화로 그리스도 만나는 기쁨 체험](//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9186_1.0_titleImage_1.jpg)
[새해 대담] 성경읽기 생활화로 그리스도 만나는 기쁨 체험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에게 듣는다 / 대담=이창훈 평화신문 편집국장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이창훈 편집국장과 대담하고 있다. 염 대주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고 묵상해야 한다며 성경을 통해 허약한 신앙을 회복하는 한 해를 보낼 것을 당부했다.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2014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한국 천주교회는 230주년을 맞아 30년 전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이래 다시 한 번 올해 순교 복자 124위의 탄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또 새 복음화를 위해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새해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길 희망하면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에게 교구 사목 방향과 사회 주요 현안을 풀어갈 지혜를 들어본다.▶교구민과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의 교우들과 주민들에게도 덕담을 청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북녘의 동포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충만하게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지난 한 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선의를 가지고 가족과 사회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모든 분에게 격려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꿈과 희망으로 맞은 2014년, 우리 모두가 작지만 풍요로운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사랑과 나눔 안에서 큰 기적을 이루어내기를 바랍니다. 올 한해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으시고 영육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에 대한 신자들의 기대가 높습니다. 교황님의 한국 사목 방문이 새해 이뤄질런지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축복이고 영광입니다. 지난해 초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으로 새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전 세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이 교황명으로 사용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일입니다. 한 바티칸 전문기자가 '가장 놀랄 만한 일'이자 '전에 없는 충격'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요. 더욱이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교황님의 모습에 전 세계는 열광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이름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중세 성인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 인권, 소박, 가톨릭교회의 재건'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 때문에 새 교황님이 이 이름을 선택하신 것은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교황님의 방문을 위해 신자 여러분의 기도를 특별히 부탁드립니다." ▶새해는 103위 한국 순교성인 시성 3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염원했던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이 올해 거행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가운데 27위가 서소문 순교자인데 이번 시복식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서울대교구는 현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그리고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와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984년 여의도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모신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과 103위 순교자들의 시성식을 성대하게 치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의 모든 신자는 무엇보다 신앙 선조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복 시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올해 중으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27위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이하 서소문성지)에서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서소문성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순교성지입니다. 또한 서소문성지는 순교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신앙을 증거한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죽음으로 보여준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사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가 근대화로, 나아가 현대 민주 사회로 나아가는 데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소문은 조선 시대의 여러 성문 중 동남쪽에 있던 광희문(光熙門)과 더불어 도성 안의 시체를 운반하던 곳이었습니다. 서울 지역 순교지 중 절두산이 병인박해 때 집단처형 장소였고 새남터는 국사범, 지도자급 인물들의 형 집행 장소였습니다. 반면에 서소문 밖 네거리는 주로 일반 평민들의 처형장이었습니다. 포졸들은 처형할 신자들을 소가 끄는 마차에 태우고 울퉁불퉁한 서소문 언덕길을 내리달려 신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 신자들이 아래쪽 네거리에서 처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서소문성지는 신앙을 찾아 자발적인 노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실천했던 평신도들의 순교지였습니다. 그래서 서소문성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에서는 서소문이 있었던 지역을 가리키며 교우들에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성호를 긋고 순교자께 기도를 바치도록 대대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제 시작한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은 순교자들의 전구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시민휴식공간에 그치던 서소문 근린공원을 사회, 종교, 근대사적 가치를 지닌 세계 최대 천주교 순교성지로 조성하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기에 서울대교구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참여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부와 서울시, 중구, 서울대교구 신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역사문화공원 조성이 가능합니다. 세계적 역사문화공간으로 제대로 조성할 수 있도록 신자 여러분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길 바랍니다. 시복식과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통해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위대한 정신과 믿음을 후손에게 전하는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성인과 순교자를 본받아 하느님 말씀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소문성지가 더 잘 보존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순교자들의 역사적 진리를 가르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는 것은 신앙인 각자가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입니다. 우리도 순교 성인들의 후예답게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신앙의 빛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참 신앙인이 되도록 한층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시복식은 이 모든 것을 함축해서 세상에 증거하고 선포하는 의식이 될 것입니다. 시복식이 103위 순교성인들과 하느님의 종 124위의 전구로,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잘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대주교님께서는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 위기가 '허약한 신앙'이라 진단하셨습니다. 신앙의 해가 폐막됐지만 교구장님께서는 새해부터 5년간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기 위해 세부적인 사목지침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첫 해 '하느님의 말씀은 새로운 복음화의 원동력'을 주제로 사목교서를 발표하셨는데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신앙의 해'를 시작하면서 발표한 사목교서에서 한국 천주교회 신앙의 위기는 '허약한 신앙'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울러 허약한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섯 가지 표어에 담아 제시했습니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 그것입니다. 이 지침에 따라 신앙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 교구의 사제, 수도자, 신자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 기초를 튼튼히 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기초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 교구는 신앙의 해 다섯 가지 표어를 한 해에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실천하고자 합니다. 사실 성경 말씀, 기도, 교회의 가르침, 미사와 성사, 사랑의 실천은 신앙의 성장과 강화를 위한 핵심 요소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이 다섯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허약한 신앙체질이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14년에는 첫 번째 주제인 성경 말씀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 믿음은 주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시작하고 성장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그래서 교회는 성경 말씀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면서 탁월한 영적 양식으로 여겨왔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만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없고, 따라서 신앙이 식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하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을 건네시면서 당신 자녀들에게 필요한 힘과 지혜, 용기를 주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고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매일 성경 읽기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또한 주일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그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미리 읽고 마음에 새기는 준비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준비한다면, 말씀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으로 다가와 우리의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만들 것입니다." ▶교구장님께서는 생명 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시고 다양한 사목 활동을 펼치고 계시는데 교회의 생명 운동을 신자 개개인에게 확산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반인간적이고 반윤리적인 경향이 허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 상황을 보고 더 이상 침묵하거나 수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이런 반생명적이고 반윤리적인 경향을 거꾸로 돌려서, 생명을 보존하고 가꿔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5년 10월 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탄생했습니다. 생명위원회는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결과로 탄생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생명존중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또한 2005년부터 12월 첫 주일(2005년은 인권주일)을 '생명의 날'로 정하고, 서울대교구의 모든 본당에서 '생명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대해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도 축복 메시지를 전해 주셨고, 세계 가톨릭교회의 1500여 개 교구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세계 가톨릭교회가 생명 존엄성 수호를 시대적 소명으로 공감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명으로 가는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길만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 특별히 위기에 처한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백성으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백성이 된 우리는 죽음의 문화 속에 신음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생명문화 건설의 주인공이 생명의 백성인 바로 우리 신자들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세상에 생명의 복음이 선포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만큼 가까워질 것입니다." ▶사회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치유와 화합을 위한 교회의 목소리를 많은 이들이 듣길 원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현명하면서도 이성적으로 또 교회 가르침대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질서를 지키며 그분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은 백인백색(百人百色)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지닐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흑색이나 백색만 있지 않고 형형색색(形形色色)이 존재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지만 세상을 흑백으로만 판단할 때 공동체는 화를 부르고 불행해집니다. 사람은 자신만 옳고 정의로우며 다른 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진리는 모두 상대적입니다.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공존의 원칙이 중요합니다. 타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적극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 옛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영이 머무르는 '평화의 왕국'을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고 표현했습니다(이사 11,1-9 참조). 모든 이가 함께 공존하는 평화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이의 성격과 장점을 인정하면 그 사람의 말이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인정해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협력할 수 있고, 협력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이 모든 일의 해결책인 것이죠. 사랑이 없는 정의는 위험하고 잔인합니다. 사랑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서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의는 사랑에 뿌리를 둘 때 진정한 정의가 됩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것, '사랑'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1코린 13,9-10 참조). 그렇게 사랑에 바탕을 둔 정책이 바로 공동선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이들도 돌보면서 함께 가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위정자들은 정치의 목적이 국민 전체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곧 국민에게 행복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계층이나 당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국민 전체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당이나 집단을 위한 노력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남을 생각하고 도와주고 기다리며 배려하는 사랑의 운동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년 전부터 북한 주민을 위한 기도와 나눔, 교육운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남북 관계 진전과 북한 주민, 그리고 평양교구민들을 위해 새해 어떤 사업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서로 방문하고 교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실제적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지속했던 카리타스를 통한 도움을 계속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인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평안도는 우리나라 복음화의 길목이었기에 성 김대건 신부님을 위시한 수많은 순교자가 지나간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본격적인 복음화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파리 외방전교회와 성 베네딕도회, 메리놀 외방전교회 등 많은 선교사의 노력으로 지금의 북한지역 각지에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거의 모든 본당마다 학교와 양로원, 병원시설 등을 세워 그 지역의 실질적인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특히 일본 식민통치 하의 암흑시기에도 우리 민족의 민족적 자존심과 독립에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많은 이들에게 빛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공산정권의 수립으로 북한 지역 교회와 모든 시설은 폐쇄되고, 북한 전 지역이 새로운 순교자들의 피로 흥건히 적셔졌습니다. 결국 지금 북한교회는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50년이 넘는 긴 세월 속에 제6대 평양교구장이신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님을 비롯해 교구 사제들, 여러 수도자들,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평신도들의 희생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도 임지를 떠나지 않고 교회와 신자들과 끝까지 함께했던 성직자들, 그리고 이러한 착한 목자들을 온몸으로 막고 지키기 위해 피 흘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신자들의 열성을 우리 모두도 본받아, 우리 인류를 위한 사랑에 피를 흘리신 주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북녘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우리에게 보다 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많은 형제, 자매님들께서 이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바치기를 바랍니다." ▶새해 우리 국민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소망합니다. 그런데 사실 행복은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이와 나누며, 이웃과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쉽게 행복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을 통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삶이란 겸손한 자세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복의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3.12.24
![[2013 결산-교회사목] 흐트러진 신앙 세우고 순교자 현양 더욱 고취](//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8161_1.1_titleImage_1.jpg)
[2013 결산-교회사목] 흐트러진 신앙 세우고 순교자 현양 더욱 고취신앙의 해 폐막하며 성경,교리서 공부에 더욱 매진 '신앙의 해'로 지낸 한국 천주교회의 2013년 한 해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신자들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성장하고 활성화해 나간 뜻깊은 해였다. 신자들은 성경 쓰기와 읽기를 통해 그리스도와 새롭게 만났고, 교구장과 사제, 사제와 평신도는 인격적 만남과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공부를 통해 내적 성장을 다진 해였다. 2013년 한국천주교회 교회사목 부문을 결산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한국 주교단이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서울대교구가 조성한 성지순례길을 걸으며 염수정 대주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신앙의 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포한 '신앙의 해'가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폐막했다. 한국천주교회는 신앙의 해 동안 신자들에게 신앙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흐트러진 신앙의 틀을 새롭게 세우는 데 매진했다. 교구와 본당별로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육을 단체와 계층별로 시행했고, 성경 암송ㆍ교리경시대회, 신앙실천운동 등을 통해 신앙을 생활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 순교신심 함양 한국교회가 지속해온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건이 올해 교황청 시성성의 신학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시성성 추기경 회의를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종판결만 남게 돼 내년 하반기나 후년께 시복식이 거행될 전망이다. 주교회의는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시복도 공식 추진하기로 했다. 교구별 순교자 현양운동도 활기를 띠었다. 서울대교구가 조성해 한국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이 걸은 '성지순례길 3코스'는 신자들 사이에 걷고 싶은 도보순례길로 사랑받고 있다. 좌ㆍ우 포도청 순교지를 재조명했고, 서소문 순교성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사업이 정부 예산 편성만 남겨놓고 있을 만큼 결실을 보였다. 인천교구는 이승훈 묘역을 역사문화공원으로 꾸미기로 했고, 대전교구는 하부내포 '서짓골 성지'를, 군종교구는 '왜고개 성지'를, 제주교구는 걷기와 순교 신심을 접목한 서귀포 하논성당 순례길을 새로 조성했다. 또 안동교구는 교구 내 성지순례지 16곳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했고, 대전 갈매못 성지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아울러 올해 전국 111곳 성지를 순례한 완주자가 160명을 돌파했다. ▨교구별 활동 2013년 한국 천주교회는 벽두부터 마산교구에서 '사제 인사이동 시 환송과 환영에 관한 지침'을 내놓아 신선한 충격을 주는 등 모든 계층과 소통하고 낮은 자리로 임하려는 노력을 실천한 한 해였다. 또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교구 조직 재정비에 힘을 쏟은 한 해였다. 서울대교구는 처음으로 사제단 전체모임을 열어 교구장과 사제간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소통을 물꼬를 텄고, 사목 정보도 공유했다. 또 교구장 대리제와 지구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성직자 전담기구 설치를 모색하는 교구조직 정비사업에 착수했고, 본당관할구역 「편람」을 발행했다. 청주교구는 '초대교회 만나기'프로그램을 시행, 사도행전 2장 42-47에 나오는 첫 신자공동체 생활을 모델로 각 본당 소공동체들이 실제 나눔을 통해 초대모습을 체험했다. 광주대교구는 9개에서 14개 지구 체계로 개편했고, 인천교구는 노인사목을 강화하기 위해 노인사목부를 신설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신앙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 수원교구는 대리구제도 개정 지침을 시행하는 등 교회운영과 관리는 평신도에게 맡기고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찾아가는 사목을 펼치고 있다. 의정부교구는 교구 주력 사목 방향을 잡기 위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자들의 신앙의식과 신앙생활'을 조사했고, 교구 숙원사업 중 하나인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봉헌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사제평생교육기관인 엠마오연수원을 제주도 이시돌 목장에 기공했고, 대구대교구도 100주년 기념 범어주교좌성당을 올해 착공했다. 또, 보편교회와 연계해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과 함께하는 성체조배를 교구와 본당별로 거행했다. ▨생명운동 낙태를 허용한 모자보건법 제정 40년을 맞아 모자보건법 폐지와 연명 의료 중단으로 안락사 악용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는 '임종기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교회 입장을 제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해였다.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운동본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중심으로 모자보건법 폐지를 위해 사순절 40일 동안 매일 한 끼 단식, 미사 참례, 묵주기도, 생명기도를 봉헌했고, 특별 세미나를 개최해 모자보건법 폐지의 당위성을 홍보했다. 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연명 의료 중단'은 절대 안 된다며 생명윤리 차원에서 신중을 기할 것과 안락사를 미화하는 '존엄사' 용어도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서울대교구는 생명수호활동을 본당까지 확산, 본당 생명수호 담당제 제도인 '마리아 요셉'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임산부와 태아 축복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함과 생명부스를 설치한 본당이 117개로 늘었고, 생명분과 위원 590명과 생명교사 90명이 활동하고 있다. 또 '찾아가는 생명교사' 89명을 올해 처음으로 배출해 본당과 단체 모임서 생명교육을 하고 있다. 아울러 생명윤리ㆍ의료ㆍ법조계 전문가로 구성된 '가톨릭생명윤리자문단'을 발족, 생명윤리 현안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는 올해 첫 생명수호대회를, 청주교구는 태아보호 및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로 제1회 생명 UCC공모전을 개최했다. ▨청소년 사목 미래교회의 주인공인 청소년 사목에 대한 지평을 넓힌 한 해였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가톨릭청년교리서 「유캣」을 통한 청소년ㆍ청년 교리교육이 전 교구에서 활기를 띠었다. 1980년대 이후 명맥이 끊긴 '한국가톨릭대학생회'가 부활했고,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는 '청소년사목지침서(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인천교구 정신철 주교는 청년 신앙상담을 위한 토크 콘서트를 개최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청주교구는 전환기 청소년 사도직 프로그램 '수호천사 153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교구장 인준 첫 「청소년 성가집」을 발간했고, 대학동 고시원 밀집지역에 '청소년 인재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와 '자살예방 협약'을 맺어 청소년 자살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 청년 300여 명이 제28차 리우세계청년대회에 참가했고, 대전ㆍ청주ㆍ전주교구에서 청년대회를 열어 청년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도'임을 일깨워줬다. ▨ 인물 이형우 아빠스의 사임에 따라 제5대 성베네딕도회 왜관 성마오로 쁠라치도수도원 아빠스로 박현동 신부가 선출됐고, 교황청으로부터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로 임명됐다. 또 수원교구 김정원ㆍ윤석원 신부가 몬시뇰로 서임됐고,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아시아주교회의연합 사회위원회 주교 위원으로 선임됐다. 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과 가톨릭교육성 장관 제논 그로홀레브스키 추기경,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 쿠르트 코흐 추기경이 방한했다. cpbc2013.12.17
![[나의 묵주이야기] 111.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동참하다](//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3655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11.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동참하다이정순 데레사(서울대교구 세검정본당) 본당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선교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묵주기도를 하자고 하셨다. 방법은 구역ㆍ단체별로 모여 성모상 앞에서 묵주 고리 기도를 하고 묵주기도가 끝나면 “나는 선교할 수 있다”를 외치는 것이었다. 선교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얘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선교한다는 것은 용기도 안 나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모여서 오른손을 치켜세우며 큰 소리로 “나는 선교할 수 있다!”를 반복해서 외치니 그 선교 구호가 나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묵시 3,16)는 성경 구절과 함께 말이다. 미지근한 나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당시 나는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거나 TV를 보면서 보내는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미지근한 나의 신앙생활에 대한 꾸지람, 주님께서 나를 뱉어 버리시면 어쩌나? 성경 말씀이 자꾸 되뇌어지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그러던 어느 날 빛의 신비 3단을 구역 식구들과 함께 바치는데,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이 마음에 자꾸 와 닿았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우연히 주보에서 경찰사목위원회가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별생각 없이 전화하게 되었고 교육을 받게 되었다. 경찰사목은 서울에 있는 경찰서나 기동대에 파견되어 유치장, 전ㆍ의경과 현직 경찰을 상대로 선교하는 단체다. 선교사가 많이 부족한 곳이라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현장 참관을 다니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경찰을 직접 대해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선교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병이 될 정도로 나를 압박했다.두려움을 잊고자 100일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은 가시질 않아 본당 수녀님과 면담을 했다. “수녀님 제가 막상 선교 활동을 하려니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요.” 수녀님께서 위로하시며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90일 가까이하고 있을 무렵, 성체조배 중 무엇인가 갑자기 가슴 한복판을 찌르면서 온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는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홀가분해져 갔다.일주일쯤 후에 경찰사목위원장 신부님에게서 연락이 오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경비부대에 파견되었다. 첫 교리를 마치고 묵주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울면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높게 쳐들고 큰 소리로 “주님, 부족한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거듭거듭 외치는 것이 아닌가! 감정을 추스르며 어찌 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니 성모님께서 주님께 감사하는 마무리까지 해주신 것 같았다.우리 대원들은 군 복무 대신 시위 진압과 치안을 담당하는 의경이다. 추위와 더위를 비롯한 많은 어려움에 노출되어 힘들게 근무하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과 격려를 하며 보살피고 있다. 10년이 넘는 선교 활동을 하면서 성모님의 돌보심을 얼마나 많이 느끼는지 모른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모님께 의지하면 용기가 생길 뿐 아니라 신기하게도 선교에 수월함을 느낀다.성모님, 제게 용기를 주시고, 파견해서 얻은 우리 대원들이에요. 너무 너무 예쁘지요~!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평화신문2015.02.03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1)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3)](//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6463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1)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3)귀향했으나 예전의 유다가 아니었기에…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3).한 시대를 시작하기 위하여 오늘은 또 역사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위에 인용한 것은 역대기의 마지막 부분과 에즈라기의 첫 부분에 실려 있는 키루스 칙령의 내용입니다.에제키엘은 언젠가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고 예고했고, 제2이사야는 해방이 가까웠음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그 날이 왔습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바빌론에 유배가 있던 유다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한 것입니다. 바빌론에 비해서 페르시아는 정복 민족들에게 관용적이었다고 했지요. 무력으로 그들을 내리누르는 것보다, 적당히 풀어주면서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쉽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고 합니다. 제국의 넓이를 생각하면 그럴 법도 했겠습니다.엄밀하게 말해서, 키루스가 역대기나 에즈라기에 나온 그대로의 칙령을 반포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로 말하면 키루스에게 유다는 너무 작은 땅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민족들의 종교 자유를 제한하는 바빌론의 금령들을 폐지했고 바빌론이 여러 나라의 신전에서 빼앗아 온 신상과 기물들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신전을 다시 지음으로써 재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다인들도 고향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도성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즈라기 6장 3-5절에서는 페르시아 왕실에서 성전 건축 비용을 대어 주도록 했다고까지 말합니다.귀향이 반갑지만은 않아하지만, 돌아가라고 한다고 모두 신이 나서 즉시 바빌론을 떠나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상상했다면 바빌론 유배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배 간 이들은 바빌론의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정착을 했고, 유다의 상황이 오히려 어려웠습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수십 년간 장사를 한 가게가 재개발로 철거될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떠나가기 어려워합니다. 머나먼 바빌론에서 50년간 땅을 가꾸고 일을 해왔다면 어떻겠습니까?페르시아 왕실은 세스바차르에게 예루살렘 성전 기물들을 되돌려줄 임무를 맡겼습니다(에즈 5,15 참조). 세스바차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 귀향한 이들의 수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고, 이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크게 진척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도성이 워낙 많이 파괴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유배를 가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있던 이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땅입니다. 지배 계층과 기술자들이 유배를 간 다음, 바빌론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유배를 가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이들이 바빌론 정복자들로부터 땅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들은 바빌론에 절대 충성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나 본래 땅 주인이 돌아옵니다. 더 늦게 돌아온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땅은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할까요? 좀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유배 전의 땅 주인은 더 이상 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문제는, 유배가 끝난 다음 정복 세력이 아니라 유다인들 자체 안에서 있었던 분열과 갈등의 상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성전 재건축하고 도성 성벽도 재건이후의 역사는 더 간단히 요약하고 다음 주부터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기원전 520년에는 다윗 왕조의 후손인 즈루빠벨과 사제 예수아의 지도로 또 한 집단이 귀환합니다. 기원전 520~518년에는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가 성전 재건을 독려하였고, 기원전 515년에는 소위 제2성전이라고 하는 재건된 성전의 봉헌이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처럼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귀향 후 공동체의 중심이 됩니다.기원전 5~4세기의 상황에 대해서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 외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의 고위 관리가 되어 있었던 느헤미야는 기원전 445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 도시의 성벽을 재건합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이 일을 완수했고, 그 후 약 십여 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그 후 얼마 동안 페르시아에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한편, 사제이며 율법학자였던 에즈라는 주로 종교적인 영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때가 언제인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에즈라기 7장 7절에서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 제칠년”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라면 그 해는 기원전 458년일 것이고(느헤미야가 활동하기 전) 그렇지 않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라면 기원전 398년이 됩니다(느헤미야가 활동한 다음). 성경에서는 에즈라가 느헤미야보다 먼저 왔다고 말하는데, 묘사된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느헤미야가 먼저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에즈라가 한 일은 종교적인 개혁으로서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이 있었던 다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등장하기까지 유다에는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10.06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4>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매 순간 마주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의 기도를 통해 간청한다. 그림은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의 ‘광야에서 유혹 받으시는 예수’. 216.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는 무엇을 뜻하나요?일용할 양식에 관한 청원을 통해 우리는 삶에 필요한 물질적ㆍ정신적 재화를 비롯한 모든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에서 구합니다.217.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말씀은 인간이 물질적 수단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갈망을 갖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835항). 다시 말해 우리 내면은 성체성사로써 양육됩니다.218.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는 무엇을 뜻하나요?우리 자신이 자비롭지 못하며 서로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지 못합니다(2838~2845, 2862항). 우리에게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의 삶이 가능합니다.219.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는 무엇을 뜻하나요?우리는 매일, 매 순간 죄에 떨어지고 하느님을 거부할 위험에 있기 때문에, 유혹의 지배에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두지 않으시길 하느님에게 간청합니다(2846~2849항).220.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는 무엇을 뜻하나요?주님의 기도에서 ‘악’은 어떤 부정적인 정신적 기운이나 에너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유혹자나 거짓말의 선조, 사탄 또는 악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악한 인격체를 가리킵니다(2850~2854, 2864항).221. 주님의 기도를 ‘아멘’으로 마무리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아멘이란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2855~2856, 2865항). 우리의 삶과 우리의 운명과 우리가 느끼게 될 기쁨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할 때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한 처음에 우리를 지어낸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평화신문ㆍ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cpbc2015.04.0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14>](//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5800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의 체험은 신비 생활에 해당하는 대표적 예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Giovanni, 1378∼1455)의 바오로의 회심. 수덕·신비 생활 추구한 고대 그리스도인중세에 들어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 구분17세기에 잘못된 신비 생활로 인한 파문현대 들어 수덕·신비 생활 중요성 재인식지금까지 가톨릭 영성 생활의 기본적인 개념과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영성 생활을 잘 실천하기 위한 심화 과정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영성 생활과 관련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신학으로서의 영성 생활, 학문으로서의 영성 신학의 형성 과정과 기본 개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영성 생활은 각자 개인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느끼는 대로 마구잡이 식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영성 생활이 개인의 개별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다 하더라도 올바른 영성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야만 합니다.가톨릭 영성 생활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가톨릭 교회 영성 역사를 살펴보면 영성 생활 안에 신비적인 측면과 수덕적인 측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약 성경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사도 9,3-6), 셋째 하늘에 올라가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2코린 12,1-4). 이는 신비 생활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 신앙인들에게 육의 행실을 끊어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추구할 것을 권고합니다(갈라 5,16-25). 이 또한 악습은 끊고 덕행은 증가시키고자 하는 수덕 생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영성 역사 안에서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영성 생활의 중요한 축을 이루게 됩니다.고대에 그리스도인은 보조적으로 수덕 생활을 실천하면서 신비 생활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먼저 몇몇 교부들은 신비 생활의 여정을 객관적으로 밝혀 소개하고자 학문적인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대 수도자들은 신비 생활의 여정을 수덕 생활로 꾸미면서 신비체험을 위한 방법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한편 중세에 들어서는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신학자들이 시도하였던 신비 생활에 대한 설명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신앙인들은 그러한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없어 자기 마음대로 신비 생활을 실천하다가 오류에 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수도자들은 신비 생활의 여정 안에서 실천하던 수덕 생활에 더욱 집중하면서 마치 수덕 생활만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신앙인들은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실천하지 못하고 두 가지 측면을 따로 구분하여 접근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근세에 들어오면서 불행한 상황도 나타났습니다. 17세기에 영성 생활 분야에서 잘못된 신비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 당국은 서둘러서 그들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파문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신비 생활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몇몇 영성가들은 이단적인 영성 생활을 극복하고 영성 생활 안에서 신비 생활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수덕 생활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신학자들은 영성 생활 안에서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은 모두 있어야만 하는 중요한 두 가지 축이라는 사실에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즉, 수동적인 측면이 강조된 신비 생활과 능동적인 측면이 강조된 수덕 생활은 영성 생활 안에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별개의 측면이기 때문에, 잠시나마 부정적인 경험이 있었다고 신비 생활을 등한히 하면서 수덕 생활만 실천하며 영성 생활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신앙인들은 신비 생활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특히 예수회와 도미니코회 소속 신학자들이 신비 신학과 수덕 신학에 대한 연구 결과물들을 내어 놓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과 노력들 덕분에 가톨릭 교회는 객관적으로 체계를 갖추어서 신비 생활과 수덕 생활을 바라보면서 연구할 수 있었고, 신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백영민2015.08.05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 새롭게 도약‘가톨릭 영성 전문가’ 양성 목표로 교과과정 전면 개편… 4일부터 2학기 신입생 원서 접수 시작 2003년 개원한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이 ‘가톨릭 영성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전면적인 교과과정 개편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대학원장에 취임한 김이균 신부는 학생들의 의견과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교과과정 개편을 이끌었다. 공통선택과목과 교육ㆍ성서ㆍ예술ㆍ종교영역 등 4개 영역에 다수 과목을 평면적으로 배치한 기존 과정을 뚜렷한 방향을 설정해 공통영역 10개 과목과 가톨릭 영성(성경과 영성, 가톨릭 영성사, 교육과 영성) 영역 21개 과목, 문화 영성(전례와 예술, 종교, 철학, 문화) 영역 24개 과목으로 재편했다. 변화를 주도한 김 신부는 “가톨릭 영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한 다양한 문화현상 안에서 영성적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식별할 수 있도록 교육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위 취득에 필요한 최소 이수 학점은 24학점(과목당 2학점, 논문을 쓰지 않을 경우 30학점)이다. 가톨릭 영성 영역 과목을 18학점(9과목) 이상 이수한 이들에게 학위와 별도로 수여하는 ‘가톨릭영성전문과정 이수증’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김 신부는 “가톨릭 영성은 성직자와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전파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며 “영성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져 교회 안에 가톨릭 영성이 흘러넘치고, 영성이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교회 밖 사람들도 쉽게 갈망하는 대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훌륭한 교수진을 섭외하고 좋은 강의를 많이 마련해 놓았다”면서 “많은 이들이 지원해 가톨릭 영성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문화영성대학원은 장학금 혜택이 풍부하다. 재학생의 60%가량이 장학금을 받는다. 성직자ㆍ수도자는 등록금의 50%, 가톨릭대 교직원ㆍ 졸업생은 30%, 교직원의 배우자ㆍ직계비속은 50%를 장학금으로 준다. 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재학생과 봉사자 중 대학원장의 추천을 받은 이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조교로 근무하는 학생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수여한다. 문화영성대학원은 4일부터 2학기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4년제 대학 졸업자, 2015년 8월 졸업예정자가 지원할 수 있으며 나이ㆍ학부 전공과 관계없이 문화영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문화영성대학원 누리방(gcs.catholic.ac.kr) ‘인터넷 지원하기’와 우편(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22 가톨릭대 성의교정 성의회관 611호 특수대학원 교학팀)으로 접수할 수 있다. 5학기 과정이며 수업은 월ㆍ화ㆍ목요일 오후 16시 50분에 시작된다. 문의 : 02-2258-7814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5.04.29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4)고대 근동와 성경의 가시나무](//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5302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4)고대 근동와 성경의 가시나무가시, 하느님 상징하는 성경 속 코드 지난 시간에 이어 인류 최초 장편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길가메쉬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 엔키두를 잃은 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후 그는 영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영생을 갈구한 길가메쉬는 태초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죽음의 강을 건너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비밀을 물었지만, 그는 "돌아가라"란 말만 했다. 낙담한 채 돌아가려던 길가메쉬를 가엽게 여긴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남편에게 "길가메쉬는 여기까지 오느라 지쳤어요. 무슨 선물을 하실 거죠?"라고 질문한다. #영생의 식물 가시나무 아내의 말을 들은 우트나피쉬팀은 신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거기서 영생의 비밀을 지닌 가시나무에 대해 말해준다. "그 가시는 장미처럼 네 손을 찌를 것이고, 네 손이 그 식물에 닿으면 너는 다시 젊은이가 될 것이다." 길가메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시덤불을 움켜잡는다. 고통을 무릅쓰고 가시를 잡는 그에게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디어 길가메쉬는 소망하던 영생의 비밀을 얻었다. 그는 기쁨에 차 가시나무의 이름을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다'로 지었다. 길가메쉬는 고향으로 가시나무를 가져가 노인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다. 참 진리를 깨달은 이들이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과 같다. 영생이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을 넘어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 영생의 본질은 영원한 젊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힘도 없이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영생과 다르다. 길가메쉬도 젊음을 되찾아 영생을 얻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소원을 이룬 길가메쉬가 샘물가에서 잠시 잠에 빠진 사이 뱀이 나타나 영생의 비밀인 가시나무를 가져가 버렸다.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야기는 끝난다. 영생의 식물인 가시나무를 움켜쥔 체험이 그의 몸과 마음과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아픔처럼 남아 있는 것. 길가메쉬 서사시는 깨달음을 전한다. 가시에 찔린 아픔은 깨달음에 대한 비유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하느님 뜻을 알아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한 깨달음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잊힌다. 마치 가시덤불을 쥐었던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그 체험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서사시보다 1000년이 지난 후에 나온 구약성경은 셀 수 없이 많은 고대 근동의 체험과 문화가 축적된 문헌이다. 구약성경은 고대 근동의 다른 종교에 대한 성찰과 문화적 토대 위에 이스라엘이 지닌 야훼 하느님을 향한 독특한 믿음을 표현한 수준 높은 책이다. #가시의 의미 길가메쉬 서사시의 가시나무는 아카드어로 '엣데투'라고 했다. 구약성경에서 가시나무는 히브리어로 '아타드'이다. "가시나무 불(아타드)이 너희 솥을 뜨겁게 하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날로든 태워서든 그 안의 것을 없애 버리시리라"(시편 58,10). 여기서 아타드를 주님의 별칭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판관기 9장에 나오는 '요탐의 우화'는 참된 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판관 9,8-9).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게 가서 임금이 돼달라고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가시나무에게 가 임금이 돼달라고 청하자 가시나무가 답한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판관 9,15). 예전에는 아타드를 가시덤불로 해석했다. 성서식물학에서는 가시덤불을 10m가 넘는 나무로 본다. 현대에는 가시덤불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가시나무(Christ Thorn)이라고 지었다. 이 나무로 예수님의 가시관을 만들었다고 봤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에서 나는 값진 선물과 덤불(가시덤불, 떨기나무)에 사시는 분의 은총으로 복을 받아라"(신명 33,16). 구약성경은 하느님을 가시덤불에 사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에서 떨기나 덤불이란 단어가 나올 때 가시가 있음을 염두에 두자. 그 가시는 하느님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 죄를 사하러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는 가시관을 쓰셨다. 마치 탈출기 3장에서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 것과 매우 흡사하게, 예수 그리스도 또한 가시관 안에 계셨다. 두 장면 모두 가시라는 통일된 모습에서 하느님의 상징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시관은 '영광과 존귀의 관'이었던 것이다(히브 2,9 참조). 이처럼 가시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부터 구약ㆍ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관통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코드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퇴사자22013.07.23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8> 강론 II](//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1868_1.0_titleImage_1.jpg)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강론 II“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강론을 시작되해야 한다고 말한다. 테살로니카 바오로 사도의 설교 기념터 모자이크화는 베로이아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담았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교의 전형적 형태의 선포는 본질적인 것, 즉 필수 불가결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이고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며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강론은 첫 선포, 즉 구원의 선포와 함께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선포보다 더 견고하고 심오하며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두 분 교황님과 함께 52-53). 첫 선포, 가장 중요한 것,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강론은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강론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 전체가 지향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지속적 성숙 통해 완성되는 복음화위의 첫 선포의 내용이 사도들의 케리그마(kerygma, 선포)이다. 권고 「복음의 기쁨」 3장 후반부에서는 케리그마의 내용을 다음의 문장으로 친절히 요약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십니다”(164항).첫 선포의 내용은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그분의 생전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그 내용 전체가 전달되어야 한다. 교황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첫 선포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심화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케리그마의 심화를 통한 복음화’라는 주제로 설명하였다. 복음화는 지속적인 성숙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그렇다면 케리그마를 심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스스로 지키고 다른 사람이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 지키도록 한 모든 내용이 해당된다. 모든 덕과 계명이 그 내용이다. 기회 닿는 대로 교회의 교리와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무들에 대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이 이 모든 계율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계명 가운데 으뜸이며 모든 율법의 완성인 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이 가르침을 실행하도록 끊임없이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가 심판받는 기준도 바로 이 사랑의 계명을 얼마나 실천하였느냐에 달려 있다(마태 24,31-46 참조). 사제들의 강론에서 늘 강조되어야 할 부문이다.선포, 신앙인 삶의 중심이 돼야 교황은 신자들에게 베풀어지는 교리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케리그마와 신비 교육’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다. 신비 교육이란 새롭게 세례받은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부활 시기 동안 특별한 관심과 배려 속에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교육을 의미한다. 「어른 입교 예식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성사들에 자주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새 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고,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고 공동체 생활을 해 가면서 다른 신자들과 더 쉽고 유익하게 친교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신비 교육 기간은 새 신자들이 대부모의 도움을 받아 다른 신자들과 더욱 친밀해지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어른 입교 예식서 39). “우리는 교리교육에서도 첫 선포 또는 케리그마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재발견하였습니다.… 교리교사의 입에서 첫 선포가 되풀이하여 울려 퍼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이 선포가 ‘첫’이라고 불리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나중에 잊히거나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로 대체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질적인 의미에서 첫째입니다. 그것이 으뜸 선포, 곧 다양한 방식으로 언제나 우리가 거듭 들어야 하는 것이고, 교리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모든 단계와 시기에 언제나 우리가 거듭 선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4항). 신자들의 재교육 차원에서도 케리그마는 그 중심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 케리그마는 교리교육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의 의미를 더욱 온전히 이해하도록 해주고,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무한에 대한 갈망에 응답할 수 있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백영민2015.09.08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8>
신명기, 이스라엘 임금 규정
율법 익히며 계명 지킬 것 강조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 율법 따른 다윗이스라엘의 가장 칭송받는 왕으로 꼽혀하느님, 다윗 왕조와 함께할 것 약속지금도 평화의 임금 기다리는 유다인 이제부터는 좀더 이스라엘 역사를 가까이 놓고 성경을 읽어야겠습니다. 판관기만 해도 도식적이거나 전설적인 부분들이 적지 않았지만, 사무엘기와 열왕기는 한 걸음 더 역사 기록에 근접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더불어 진행 속도도 느려지겠습니다.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임금은 사울이었습니다. 왕정을 반대하던 사무엘이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울을 기름 부어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랴. 사울의 왕국은 이스라엘 중북부를 중심으로 몇몇 지파들이 결합하여 생겨난 것으로서, 사울은 주로 군사 지도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사무엘기 상권 15장 28절에 따르면 그가 다스린 것도 두 해 동안에 불과했습니다.그의 통치가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 사무엘기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를 배척하셨다고 말합니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울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전투를 하기 전에, 사제가 아니면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손으로 제사를 바쳤던 것이었습니다(1사무 13장). 이에 사무엘은 사울의 왕국이 더 이상 서 있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두 번째는 아말렉과 전쟁을 하면서 아말렉인들을 전멸시키고 그들의 소와 양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하느님께 제사를 바친다는 명목으로 소와 양들을 살려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사무엘이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여호수아기, 판관기와 같은 신명기계 역사서의 신학이 나타납니다. 영토를 정복하고 다른 민족들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듯이, 왕조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사울을 내치셨으니, 사무엘은 가서 다윗을 기름 부어 임금으로 세웁니다. 그 후에 다윗은 열두 지파의 통일 왕국을 세우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전체의 임금이 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임금이며 이후의 임금들을 평가하는 잣대였습니다. 성경의 어떤 책에서도 다윗은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표현되지만, 신명기계 역사서에서 다윗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키라는 그 명을 따랐기에 훌륭한 임금이었습니다.그런데 다윗의 통치는 그 앞뒤에 붙은 이야기들이 깁니다. 사무엘기 상권 16장부터 하권 5장까지를 ‘다윗의 왕위 등극 설화’라고 합니다. 사울과의 갈등 속에 다윗이 임금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더 지나서는 사무엘기 하권 9─20장과 열왕기 상권 1─2장에 “다윗의 왕위 계승 설화”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여러 사건을 거쳐 솔로몬이 임금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왕위 등극 설화와 왕위 계승 설화가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윗의 일생은 참 파란만장했습니다.그런데 이 이야기들에서 다윗은, 그 모든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흠 없이 충실했던 인물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가 죄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역대기에서보다 더 솔직하게 사무엘기는 밧 세바 사건과 같은 다윗의 잘못을 분명하게 밝힙니다(2사무 11─12장).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왕위를 찬탈하거나 그의 집안에 맞서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스 보셋을 죽인 이들을 벌합니다. 사무엘기에 따르면, 먼저 하느님께서 사울을 배척하셨고 그다음에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하느님의 선택에 확인 도장을 찍는 것이 사무엘기 하권 7장, 나탄의 예언입니다. 다윗이 하느님께 집(성전)을 지어 드리려 하자 하느님께서 나탄을 통하여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집안을 일으켜 주시겠고, 그의 후손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다윗 왕조와 영원히 함께하시겠다는 약속, 중요한 장면입니다. 다윗 왕조가 존속하던 때에는 이 약속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지탱해 주었고,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에 의하여 왕국이 멸망한 다음에도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은 살아남았습니다. 하느님은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셨으며 하느님의 약속은 한 왕조의 붕괴로 무너지고 끝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메시아 희망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 ‘메시아’라는 단어는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하여 임금을 지칭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스라엘에 임금이 존재하지 않게 된 때에도 이스라엘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나탄의 예언이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믿고, 유다인들은 지금도 이 약속이 유효하다고 믿기에 평화의 임금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마지막, 다윗의 왕위 계승 설화에서는 다윗의 여러 아들이 죽고 죽이는 역사가 전해집니다. 암논이 죽고, 압살롬이 죽고, 아도니야가 임금이 되려다가 실패하고 결국은 솔로몬이 임금이 됩니다. 이 모두가 다윗이 죽기 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한 부분만 보겠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가던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나는 네가 싫다’하시면, 나로서는 그저 그분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나에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오”(2사무 15,26). 내가 임금이라 해도 왕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의 왕좌에 대해 그분 보시기에 좋으실 대로 하시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주님께 선택받은 다윗 임금의 자세였습니다.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2사무 7,16). 평화신문2015.04.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2)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중)](//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2854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2)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중)‘윤리적 가르침 실천이 신앙 생활의 중심’ 강조 요한 사도 슈나켄부르크의 저서와 논문 그리고 서평들은 상당히 많다. 앞서 언급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은 1930~40년대에 신비신학(Mysterintheologie)으로 가톨릭 전례에 큰 반향을 가져왔던 오도 카젤(Odo Casel, 1886~1948)의 영향을 받아 단순히 바오로 세례에 관한 성서적 해석만이 아니라 사도들의 세례신학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슈나켄부르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이미 현재의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자 종말의 완성을 향한 희망이라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바오로 세례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이기에 단순히 세례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바오로의 윤리나 신비 그리고 종말론과 함께 종합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기에 세례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현실에서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실천될 때 의미가 있다. 바오로 서간슈나켄부르크는 바오로 서간에서 구원론적 역사의 관점을 강조하고 이것이 바오로 서간 전체에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슈나켄부르크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이 직접적으로 바오로에게 속한, 곧 바오로 친서라고 봤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서간들을 차명 서간, 즉 바오로의 이름을 빌려 다른 이들에 의해 쓰인 서간들로 생각한다. 1959년 슈나켄부르크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하느님 나라」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관점을 유지한다. 슈나켄부르크는 이 책에서 하느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하느님 나라가 가지는 종말론적인 긴장관계(이미와 아직 아닌) 안에서 현재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를 구분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지니는 종말론적 특징으로, 이것은 한 마디로 예수의 선포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결국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된다. 당시 많은 해석이 성장을 나타내는 비유(자라는 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봤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슈나켄부르크의 성경 해석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신학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하느님의 현존과 다스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외에도 그는 구원의 완성을 지향하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통해 실천을 요구하는 특징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하느님 나라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했다. 또한 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가 초대 교회 안에서 그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슈나켄부르크에 의하면 예수의 선포는 예언자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됐고 그렇기에 초대 교회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곧 오리라는 종말론적 기대와 희망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요한복음슈나켄부르크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요한복음 연구였다. 이미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요한복음을 다루었던 것처럼 슈나켄부르크는 일생 동안 요한의 문헌을 연구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독일 프라이브루그대 신약 교수였던 알프레드 비켄하우저(Alfred Wikenhauser, 1883~1960)에 의해 시작된 ‘헤르더 신학 주석’ 시리즈의 첫 번째 주석서로 슈나켄부르크의 「요한서간」이 1953년 출간됐다. 지금도 ‘헤르더 신학 주석’은 가톨릭 성서학계에서 펴내는 명망 있는 주석서로 꼽힌다. 이후 슈나켄부르크는 같은 시리즈에 「요한복음」 주석서를 썼다. 이 요한복음 주석서는 총 4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1500쪽이 넘는 분량의 방대한 주석서다. 영미권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서학자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1928~1998)이 펴낸 「요한복음」과 함께 여전히 가치 있는, 전통적인 주석서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세 권은 각각 1965년, 1971년과 1975년에 출판됐고 1984년 부록으로 내용을 보완하는 제4권이 출간됐다. 이 책은 여러 나라말로 번역됐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주석서에서 그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의 해석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며 요한복음의 신학적 일관성을 나타내는 이론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1966~67년에 ‘신약성경 연구학회’에서 펴내는 ‘신약성경 연구’(NTS; New Testament Studies)라는 잡지에 실은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글에서 슈나켄부르크는 불트만의 주장이 갖는 취약점을 지적하고 역사비평 방법론에 따른 해석을 통해 요한복음에 대한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주석서를 시작하는 머리말에서 “지난 100년간의 신학적 작업들과 지난 10년간의 학문적인 연구가 없었다면, 이 주석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자신의 주석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초기 교회 공동체 신앙고백이 담긴 이 문헌을 해설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워낙 방대한 주석서라 그 내용을 지면에 담는 것은 지루할 뿐더러 불가능해 보이지만, 슈나켄부르크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주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슈나켄부르크가 자신의 주석서에서 강조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에 관한 것이다. 제3권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정리해서 담을 만큼 그에게 이 주제는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랑받던 제자에 관한 문제는 요한복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지금의 형태로 주어졌는지에 대한 복잡한 논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분위기는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사랑받는 제자가 역사적이지 않은 상징적인 인물이거나 만들어진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이 제자를 역사적인, 즉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의견은 후대에도 받아들여졌다. 슈나켄부르크에 따르면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는 요한복음 저자로 생각되는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랑받던 제자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다(요한 21,23). 그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복음서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이 인물이 역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됐다. 물론 요한복음 마지막 장인 21장은 후대에 보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신학적으로 동떨어져 있거나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슈나켄부르크의 주장은 현대의 학자들 의견과 상당히 가깝다. 이 논쟁은 여전히 학계에서 지속되고 있지만, 슈나켄부르크의 주장은 현대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 저술들슈나켄부르크는 1982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주석서를 출간했다.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는 교회다. 그렇기에 많은 학자들은 에페소서에서 초기 교회의 조직이나 직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라는 에페소서 4장 11절을 통해 초대 교회의 조직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슈바이처).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이 구절이 교회의 조직화된 직무를 나타내는 것이기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교회의 전통적인 권한과 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바오로 서간에서 보이는 특징과도 부합하기에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이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퇴 후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책은 「산상설교」(1984)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신약성경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1986년과 88년에 나온 「신약성경의 윤리적 선포」(Die sittliche Botschaft des Neuen Testaments)는 현실의 신앙인들에게 전해주는 신약성경의 윤리적 가르침을 심도 있게 다뤘다. 그는 세례를 통한 신앙생활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윤리적 덕목을 실천하는 것에 중심이 있다고 밝힌다. 물론 성경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믿음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세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서신학 교수) 평화신문2014.10.07
![[사제 성화의 날 기획] 좋은 사제 되기 첫걸음, 신자들과 ‘소통’부터](//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5467_1.4_titleImage_1.jpg)
[사제 성화의 날 기획] 좋은 사제 되기 첫걸음, 신자들과 ‘소통’부터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상은? 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가 2013년 발표한 ‘의정부교구 신자들의 신앙의식과 신앙생활’에 따르면 신자들은 사제가 가장 먼저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분야로 소외계층 방문을 꼽았다. 쉬는 교우 방문, 성경공부 지도, 소공동체 중심 사목,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전 신자와 개인 면담이 뒤를 이었다.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을 대략이나마 알 수 있는 설문조사였다.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의 모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상(像)은 어떤 모습일까. 사제성화의 날(12일)을 맞아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 10여 명에게 그들이 바라는 사제 모습을 물었다. 신자들은 익명 보도를 전제로 솔직한 바람을 드러냈다. ‘소통’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최 안토니오(38)씨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제, 신자들을 이끌어가려고 하지 말고 신자들과 함께 걸어가려고 하는 사제의 모습을 바란다”면서 “신자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데, 신자들 의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이 모든 걸 결정하고 끌어가려는 사제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최씨는 “신자들도 흠 없는, 완벽한 사제의 모습을 바라서는 안 된다”면서 “사제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자신은 얼마나 교회 가르침을 잘 따르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이 엘리사벳(67)씨는 “신자들과 소통하고 신자들을 신명 나게 해주는 사제가 많아졌으면 한다”면서 40여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제로 한연흠(수원교구 백암본당 주임) 신부를 꼽았다. 그는 “미사가 끝나면 문 앞에서 신자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시며 배웅해주시고, 늘 신자들을 기쁘게 해줄 방법을 고민하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정 데레사(33)씨는 “신부님들이 청소년, 젊은이들과의 소통에 좀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한다”면서 “‘예전에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보다는 청소년ㆍ청년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려 노력해 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서울대교구 한 신자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것처럼 신부님들도 강론을 신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해주셨으면 한다”면서 “강론을 잘한다는 신부님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 신자들이 그 성당을 찾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세례명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40대 여성 신자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습의 사제를 가끔 보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사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 노력하면서 성직자답게 거룩한 삶으로 농익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신자들도 사제를 통해 예수님의 품성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9년 차 사제인 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신부는 “신자들 각각이 원하는 사제의 모습이 모두 다른데, 이를 사제 한 사람이 모두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면서 “사제는 여러 가지를 다 잘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