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브라운 (중)](//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4104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1)에드먼드 브라운 (중)요한복음, 선교보다 공동체 신앙 성숙에 초점 둬 요한 공동체브라운은 「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1979, 국내에는 개신교에서 「요한교회의 신앙과 역사」로 출간)에서 사랑받는 요한 공동체의 성장을 네 단계로 추측한다. 첫 단계에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복음서 이전, 50~80년).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며 예수님의 초기 활동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지만 열두 제자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는 요한 공동체의 창시자며 역사적 인물이고, 역사적 예수님과 요한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 두 번째 단계는 복음서가 기록되던 때(90년경)로, 당시의 요한 공동체 삶의 정황을 알 수 있는 단계다. 요한 공동체가 사마리아인들과 반(anti)-성전적인 경향을 가진 그룹들을 받아들인 후 ‘유다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공동체는 점차로 자신들이 불신자로 생각하는 ‘세상’, ‘유다인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과 대립하는 입장을 취했다. ‘불신자들’과 소위 ‘숨은 그리스도인들’(crypto-Christians)은 유다인들로서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가졌으나 회당에 남아 있던 자들이다(요한 12,42-43). 그들은 야고보가 지도자로 있었던 ‘공교회’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로 여겨진다. 세 번째 단계는 요한의 편지들이 기록되던 때(100년경)로서, 요한의 폐쇄적인 공동체는 내적 분열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 분열로 인해 요한복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되었다. 한 그룹은 소위 ‘공교회’를 향해 나아갔고 ‘반대자들’은 후에 가현적 영지주의로 알려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네 번째 단계는 편지들이 기록된 이후, 요한 공동체 역사가 분열되고 와해된 단계다(1요한 2,19 참조). 이때 요한의 편지 배후에 있는 그룹은 공교회에 합병되었고, ‘반대자들’은 영지주의에 흡수되었다. 브라운의 갑작스러운 죽음(1998) 후에 사람들은 분명히 그가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의 컴퓨터에는 요한복음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저장돼 있었다. 그는 새로운 요한복음 주석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몰로니(Moloney)가 이것을 편집하여 나온 책이 바로 「요한복음 개론」(2003)이다. 브라운은 요한복음서의 풍부한 진가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요한복음서 개론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요한복음서 구성 단계브라운은 첫 번째 요한복음 주석서에서(1966) 복음서 구성을 다섯 단계로 보았으나, 새 개론서에서는 세 단계로 재배열했다.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활동과 제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열두 제자는 아니나 예수님의 제자인 사랑받는 제자가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제자가 공동체 역사를 형성했을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사랑받는 제자들의 제자들이 복음사가와 편집자로 활동한 시기이다. 이 이론들은 복음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대한 브라운의 가설적인 대답이다. 복음서 구성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면서 브라운은 주석가가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에 대해서 다음 사항을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현 형태의 복음서는 전체적으로 통일된 문서로 간주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그가 역사 비평 방법으로 성경을 주석했지만, 생의 끝에 가서는 성경 본문 자체에서 메시지를 끌어내는 방법(내러티브 방법)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복음사가, 편집자요한복음 21장 24절은 저자를 예수님께서 사랑받는 제자로 기술한다. 고대에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요한(대부분 제베대오의 아들로 추정)이며, 복음서의 저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비평의 연구는 그가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아니라고 본다. 브라운에 의하면, 그는 비록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던 제자였으나, 그의 삶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에 대한 사랑과 지식으로 요한 공동체의 발전을 구현했기에 이상화됐다고 본다. 사랑받는 제자는 요한복음서에 통합된 기본 증언에 책임이 있는 목격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기록된 복음서를 구성(복음사가)하고 편집(편집자)하는 데 책임이 있는 이다. 복음사가는 물려받은 자료를 적극적인 가르침으로 변경했다(특히 유다교의 축제와 제의에 대해). 그는 무엇보다도 믿음의 다양한 반응을 묘사하기 위해 예수님과 여러 인물과의 만남의 장면을 구성했던 뛰어난 극작가였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할 때 그 자신이 파라클레토스-성령의 지속적인 활동을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간 후에도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에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려주신다는 가르침이다.영지주의와의 관계브라운은 요한 전승에 끼친 영향들과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한 후에, 요한복음서에 대한 영지주의나 성경 외의 헬라적 사상(필로)의 영향을 부정했다. 불트만 이후로 요한복음이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서 쓰였다고 생각했으나, 브라운은 복음서가 영지주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요한 공동체가 분열됨에 따라 공동체의 몇몇 구성원들이 영지주의에 빠져들어간 것이라고 본다. 즉 영지주의가 요한복음서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영지주의가 복음서를 수용한 것이다(영지주의는 기원후 2세기에 가서야 발전된 체계로 등장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서가 보다 폭넓은 전통적 유다교, 즉 구약성경, 유다 관행, 그리고 당시의 유다 사상 세계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쿰란 문서의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타인 유다인들이 요한복음과 유사한 용어와 사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목적요한복음의 새 개론서가 제공한 가장 중요한 공헌 중의 하나는 복음서의 목적을 논하면서 변증의 암시들을 추적한 점이다. 브라운은 몇 가지 변증적인 측면이 복음서의 목적이라고 보기보다는 복음서가 발전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통찰했다. 그 중 ‘유다인들’이라는 용어는 브라운이 가장 관심을 보인 주제다. 그는 ‘유다인들’을 그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유다인들과 동일시한다. 브라운은 복음서 이야기에서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요한복음서의 목적은 그리스도인 이방인과 유다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요한 20,31 참조). 복음서는 믿지 않는 이들의 개종보다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복음서는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하며 신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어둠보다는 빛을 선택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심판을 견디어 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끈다. 세례와 성찬례에 관한 것은 전례를 통해서 지상의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는 감동을 주려는 것이다. 성령을 파라클레토스(보호자)라고 부르는 것은 목격자의 시대가 지나갔지만, 예수님과의 관계까지 상실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신자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파라클레토스-성령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예수님 현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가 선교 문서였다는 증거는 많지 않지만, 믿음을 성숙하게 이끌고자 하는 요한의 목적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 믿음의 행동을 하도록 인도한다는 역할도 한다(요한 17,22-23). 참고영지주의(靈知主義 , Gnosticism)=고대에 존재했던 교파 중 하나로 기원 후 1~3세기에 활발히 전개. 정통 교리는 구원이 믿음(신앙, 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에 반해 영지주의는 구원이 앎(gnosis)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불트만(Bultman Rudolf, 1884~1976, 독일 신학자)=역사적 신학 연구과 더불어 복음서의 사료 이전의 여러 문서의 전승·성립 과정을 명확히 했다. 성경의 실존주의적 해석에 기초해 비신화화를 주장했다. 파라클레토스(parakletos)=헬라어에서 유래, 보호·중재·위로자 등으로 번역. 이혜자 수녀(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평화신문2014.12.10
![[가톨릭 신앙의 보물]<1>성경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상)- 홍승모 몬시뇰(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장)](//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2816_1.3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성경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상)- 홍승모 몬시뇰(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장)성경 대할 때 학문, 영성, 실천적 측면 고려해야 신자들은 교회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 2000년 동안 이어온 교회는 가톨릭 신앙의 다양한 전례와 전승을 통해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삶에 풍성한 은총을 제공하고 있다. 그 은총은 교회의 보물인 전례와 전승의 참 의미를 깨달을 때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있다. 교회의 전례와 전승을 신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하는 평화방송 TV 프로그램 '가톨릭 신앙의 보물들'을 연재한다.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사용한 칠십인역 성경. 성경을 읽을 때는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영성적 접근과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 성경을 읽는 가톨릭 신앙의 고유한 관점에 대해 살펴보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는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을 따라 성경 해석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마련했다. 첫째, 성경 전체 내용과 단일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구성하는 복음서가 아무리 다양해도 실제로 성경은 하느님 구원 계획의 단일성으로 하나다. 구약과 신약도 단일성을 갖고 있다. 모든 구원 계획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에 따라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의 문서ㆍ기록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성경은 교회의 마음 안에 적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영적 해석을 내려주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실제로 교회는 성전 안에 하느님 말씀의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셋째, 신앙의 유비에 유의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신앙의 유비는 신앙 진리 상호 간의 일관성과 계시의 전체 계획 안에 있는 신앙 진리의 일관성을 말한다. 신약은 구약에 감춰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에서 드러난다. 보통 구약을 공부하다 보면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로우신 분, 심판하시는 분, 두렵고 무서운 분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신약의 그리스도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하느님이 구원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이후 밝혀진 하느님 계획의 중심이며 심장이다. 구원 계획은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접근하면 올바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느님 말씀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성경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성경은 구약의 창세기에서 시작해 신약의 요한 묵시록으로 끝난다. 성경의 시작과 끝은 구원을 향한 보편적인 전망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죄 탓에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과 달리 요한 묵시록은 다시는 죽음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에 사용된 어휘는 요한 묵시록에도 사용된다. 가톨릭교회 고유 모임인 세계 성서사도직 연맹회의가 2008년 개최됐다. 각국의 성서 모임 대표들이 5년 주기로 모여 회의를 한다. 2008년 회의 주제가 하느님 말씀에 관한 것이었다. 하느님 말씀이 교회 사명과 선교 사명에 어떻게 긍정적인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실천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이에 대한 신앙인의 관심 촉구가 이 시대 과제로 부각됐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하느님 말씀이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의 삶에 얼마나 뿌리 내리고 열매를 맺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렇듯 성경을 바라보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해석학적 관점에서 성경이 지니는 세 가지 중요한 관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성경 본문은 학문적 영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인이 성경 구절을 읽으며 느끼는 것들이 성경 저자가 실제로 전하려는 것이었을까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학문적 접근으로 성경을 숙독하고 면밀하게 역사적ㆍ학문적 관점에서 성경 본문이 말하려는 것을 찾아야 한다. 본문이 내포한 하느님의 거룩한 계시를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학술적이고 역사적 검증으로 연구 검토해야 한다. 둘째, 성경 본문은 그 성경 본문을 읽는 독자 각자의 삶의 상황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독자와 무관한 과거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의미를 재해석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영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학문적 영역이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오병이어'(빵 다섯 개와 물 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볼 때 꼭 학문적 영역으로만 접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여기는 신앙의 믿음이 관련돼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 본문을 읽은 독자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그 말씀을 온전히 전달하고 깨달은 의미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공동체 전례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실현해야 한다. 신앙으로만 성경을 바라보면 성경 해석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톨릭 신앙만의 고유한 방법들, 즉 이 세 가지 기준과 관점에 따라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귀중한 것을 가질 수 있다. 정리=백영민 기자 cpbc2013.11.12
 젤롯](//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2851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31) 젤롯목적 위해 폭력도 서슴지 않은 열혈당원 예수님 시대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나름 ‘열심히’ 살려는 경건한 유다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경건한 유다인들을 ‘젤롯’(우리말로 열심쟁이)이라 했다. 젤롯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이방인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했다. 하느님께 열심인 이들 젤롯은 자신들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선 서슴지 않고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 마타티아스 사제처럼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지 않은 유다인들을 처벌하거나 심지어 살해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 젤롯은 이방인들에게서 이스라엘을 분리시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용의가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도 젤롯이 있었다. 바로 ‘시몬’(루카 6,15; 마르 3,18; 마태 10,4; 사도1,13)이다. 헬라어 성경 본문에는 시몬을 ‘호 젤로테스’(루카 6,15; 사도 1,13)와 ‘호 카나나이오스’(마르 3,18; 마태 10,4)라 구분해 부르고 있는데 반해 우리말 성경은 모두 ‘열혈당원’이라 번역해 놓았다. 최근 미국 성경학계 중심으로 시몬을 가리키는 ‘호 젤로테스’가 특정 당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하는 유다인으로 보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시몬은 혁명 세력인 젤롯당원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 과격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얻어진 별명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을 일러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젤로테스)이었습니다”(갈라 1,14)라고 소개했다. 또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사도 22,3)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기 전 젤롯으로 교회를 박해했고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또 젤롯은 예수님 시대 로마와 그 동조자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결성된 혁명 조직을 말하기도 했다. 서기 6년 갈릴래아 출신 유다는 로마인들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구 조사를 실시하자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납세 거부 운동을 주도하며 열혈당을 결성했다.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이 열혈당을 바리사이, 사두가이, 에세네와 구별해 ‘제4철학’이라고 「유다 고대사」에서 소개했다.이들은 ‘시카’(단검)를 들고 예루살렘 도심 중심가 대로에서 한낮에 암살을 자행해 ‘시카리’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특히 축제 기간에 주로 암살을 자행했는데 로마인이나 로마 군인이 아니라 항상 그 동조자들인 유다인 권력자와 부자들을 선별해 납치 살해했다. 이들은 서기 66년 여름 가난한 농민들과 연합해 제1차 유다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게 밀려 70년 야르데 숲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고, 최후의 항거지인 마사다 요새에서 74년 모두 자결했다. 이때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만 960명이 옥쇄했다. 역사가 가운데 예수님을 젤롯당원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그 동조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울러 사상적으로는 혁명적이었으나 폭력을 거부하고(마태 26,52) 세리를 받아들이고(마르 2,15-17),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고 가르친 예수님은 열혈당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통상 예수님과 젤롯을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예수님은 비폭력을 가르치고 실천했으나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유다 당국자와 로마 지도자들에겐 심각한 위협이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성전 중심의 현 체제와 로마 지배를 비판했고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질서 즉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 때문에 예수님은 결국 유다 당국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로마인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10.07

가수 장혜진(멜라니아), 목소리에 새로움을 담다힙합 등 흑인음악 노래한 싱글 앨범 발매, 8~9일 16년 만에 소극장 콘서트도 장혜진. 4월 15일 서울 사근동 한양여자대학교 교수회관. 복도에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따라가 문을 두드렸다. ‘라이브의 여왕’ 가수 장혜진(멜라니아, 의정부교구 중산본당)씨의 교수연구실이었다. 가수이자 실용음악과 교수인 그의 연구실 한쪽 벽면은 음반 수백 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한 음악을 듣는 편이에요. 워낙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최신 유행곡도 빠지지 않고 듣죠. 그래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음악적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거든요.”팬들은 이런 장씨를 ‘진화하는 가수’라고 부른다. 그런 애칭에 걸맞게 장씨는 최근 힙합, R&B 등 흑인음악에 도전, 싱글 앨범(1~2곡만 담아 발표하는 음반) ‘Ordinary 0325’를 내놨다.“신예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한 의미 있는 앨범이에요. 특히 장혜진이 부르는 흑인음악은 어떨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Ordinary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10월까지는 싱글 앨범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이에요.”16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것도 있다. 오는 8~9일 서울 서교동 롯데카드 아트센터 아트홀에서 여는 소극장 콘서트 ‘아름다운 날들’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만의 공연에 장씨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소극장 공연은 관객 숨소리, 표정, 반응 모두 한눈에 보여요. 그래서 더 기대되고 마음이 떨려요. 과연 많이 와주실까, 좋아하실까 생각도 들고요. 더 큰 감동 얻어가실 수 있게 색다른 이벤트도 많이 준비 중입니다.”음악 작업, 공연 연습, 대학 강의, 방송 등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지만 장씨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기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신앙인이다 보니 일상 생활하면서 감사하단 생각을 자주 해요.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 상황에 좌절하기보다 주어진 오늘이 있기에 감사하고, 또 내일을 희망하는 거죠.”장씨의 이런 마음가짐은 세례받은 계기와 연관이 있다. 21년 전, 장씨는 의사로부터 생후 5개월 된 딸을 잃을지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씨는 신자였던 언니 말을 따라 딸에게 먼저 세례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딸은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모두가 기적이라고 했어요. 그때 저도 아이 따라 세례를 받았죠. 당시에 감사함에 뭔가라도 하고 싶어 신ㆍ구약 성경 필사도 했어요. 지금 딸은 펜싱 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건강해졌답니다.”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성가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장씨는 신자로서 교회 행사에도 종종 얼굴을 비치고 싶다며, 앞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찾아올 것을 약속했다.“이번 콘서트를 계기로 소극장 공연도 계속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앨범 활동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세요. 평화신문 독자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행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백영민2015.04.29
![[생활 속의 복음]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cpbc.co.kr/CMS/newspaper/2015/07/rc/579490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성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일(마태 10,17-22)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한여름입니다. 7월이 되면 여름 휴가와 방학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올해 7월은 전염병, 바이러스 때문에 참 고민이 많은 시기가 됐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멀리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근처에 사는 친지를 만나 감사의 고백을 하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합니다.현재 우리 사회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해도 미래가 불안한 상황입니다. 누구 하나 믿고 살아가기가 힘든 사회입니다. 정부는 많은 이들을 위한 정책을 결정한다지만 실상은 소수의 엘리트와 부자를 위한 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ㆍ도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등 지역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들은 중앙정부의 원의에 따릅니다. 우리(가톨릭)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현실의 아픔과 어려움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도덕적 가르침으로 더욱더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워가고 있는듯 합니다. 오늘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성인을 기억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삶에 대한 설명은 공통적으로, 대략 이렇게 시작됩니다. “1821년 충청도 솔뫼마을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훌륭한 재주)와 굳센 성격(강한 의지력)과 진실한 신심(경건한 신심)으로 생활하던 중…” 즉 어릴 때부터 특출했다는 말인데, 김대건 신부님이 비상한 재주와 강한 의지력을 지녔다고 판단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제 순교 성인 몇 분을 더 찾아봤습니다. ‘베트남의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 순교자는 1785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어….” “일본의 성 바오로 미키 사제 순교자는 오사카 인근의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고…” “베드로 샤넬 사제 순교자는 프랑스 벨리 근교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목동으로 지내다가 16세 때 소신 학교에 입학했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신앙 선조 대부분은 어른이 됐을 때도 평범하거나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예로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75세에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사악이 태어날 때까지 신실하게 하느님 말씀을 따라 생활했습니까?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때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시오”(창세 13,10-20)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목숨을 위해 부인을 파라오에게 내주는 겁 많고 부도덕한 사람입니다. 또한 사라이의 몸종 하가르에게서 대를 이으려 하였다는(창세 16,2) 기록에서, 하느님과의 약속을 얼마나 의심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인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의 일생은 어떠했나요? 그 외에도 엘리야, 요나 등 많은 예언자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습니다.저는 이렇게 평범한 이들이 더 마음에 끌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특출한 재능을 지닌 영웅을 닮기에는 애초부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웅을 포기하고 저 멀리 있는 이야기 속 한 주인공으로, 혹은 소설 속의 한 인물로 투사(透寫)하게 됩니다.교우 여러분은 어떤 성인(聖人) 순교자를 만나고 싶습니까?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초인적 능력을 지닌 분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신앙생활에 대해 갈등을 겪고 죄를 범하지만 회개하면서 결국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인을 원하시나요? 그래서 저는 기도 드립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으로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인, 김대건 신부님의 “모든 신자는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김대건 신부의 편지 중)라는 말씀을 통해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떳떳한 신앙인이 되길 말입니다. cpbc2015.07.01

김대건 신부 초상...이렇게 많았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특집, 초상화 열전 우석 장발이 1925년 79위 시복식 후 그린 초상. 키 176㎝에 근엄함을 더해주는 수염, 인자하면서도 굳건한 눈빛까지. 기다란 도포 자락 흩날리며 박해 시대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신자를 믿음으로 이끈 성 김대건 신부의 모습이다. 한국 교회에서 김대건 신부만큼 초상과 조각 작품이 많은 성인도 없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어도 우리가 ‘김대건 신부’하면 쉽게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다. 그만큼 한국 교회 첫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는 모두에게 신앙의 모범이다.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한국 교회 미술사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살펴봤다.최초의 성 김대건 신부 초상화김대건 신부 초상은 1920년대부터 미술가들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초상화는 우석 장발(루도비코, 1901~2001) 화백이 그린 작품. 한국 서양화단의 개척자이자 성 미술의 선구자인 그는 당시 용산신학교 교장이었던 기낭(Guinand, 1872~1944) 신부 사제 수품 은경축을 기념해 김대건 신부 초상을 제작했다. 이때 성 앵베르 주교, 성 샤스탕 신부, 성 모방 신부 등 3위 초상을 함께 그렸는데, 현재 그의 작품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자 복(福)과 길(吉)을 배경으로 둥글둥글한 김대건 신부의 인상이 이채롭다.어떤 초상화가 최초인가?뒤이어 제작된 김대건 신부 초상은 1925년 프랑스인 선교사 플뢰레 (Fleuret)가 그린 김대건 신부 성화다. 당시 79위 시복식을 앞두고 그려진 플뢰레의 작품은 펜화다. 그러나 플뢰레의 작품이 최초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라는 설도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 제452호에 따르면, 방상근(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프랑스 선교사 플뢰레의 펜화 그림이 1896년 간행된 「조선과 프랑스 선교사들」이란 책에 실려 있는 것을 찾아냈다. 장발 화백의 그림보다 30여 년 앞서 프랑스 선교사가 그린 게 최초라는 것이다.1925년 장발은 로마에서 거행된 시복식 참석 후 1928~1929년 사이 ‘복자 김대건 성화’를 새로 제작한다. 상본으로 만들어져 신자들에게 배포된 그림은 현재 절두산순교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김대건 신부의 인상이 한결 부드럽고 색채가 자연스러운 게 특징이다.정채석·문학진 화백실제 김대건 신부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모습을 그린 이는 동양화가 정채석(비오) 화백이다.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와 미리내성지, 절두산순교기념관에 보관돼 있던 김대건 신부 유해를 계측한 결과를 토대로 1971년 복자화를 제작했다. 정갈하게 입은 검은색 수단에 모관(비레뚬)을 쓴 모습은 굳건한 의지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1982년 서양화가 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화백이 그린 ‘김대건 신부 성인화’는 한국 교회 공식 성인 영정 제1호로 지정된 성화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표준 영정제작위원회 의뢰를 받아 제작된 이 성인화는 김대건 신부의 영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천상 빛을 상징하는 흰 도포에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영대를 한 김대건 신부는 성경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오른손에는 십자고상을 들고 있다. 엄혹했던 박해시대를 상징하는 어두운 배경을 타고 뒤로는 우뚝 솟은 산들이 눈에 띈다. 김대건 신부의 신앙이 산보다 높음을 암시해준다.성 김대건 신부 현양한국 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인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과 조각 작품은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 솔뫼ㆍ절두산ㆍ새남터순교성지와 성당, 수도회 등 각지에 셀 수 없이 많다. 이와 더불어 한국 교회는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후속 사업으로 1997년부터 김대건 신부의 유해 등 해부학적 자료를 토대로 얼굴을 실제에 가깝게 복원해내기도 했다. 또 올해 서울 대신학교 개교 160주년을 맞아 최근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이콘까지 제작되는 등 김대건 신부 현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5.07.01

성령의 인도로 가정복음화의 새 길 찾아나서 세계주교시노드 임시총회 5일 개막, ‘가정’ 주제로 19일까지 열려 세계주교시노드 임시총회 개막 전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시노드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며 기도하고 있다. 【CNS】 【외신종합】 전 세계 주교들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회 현안을 논의하는 세계주교시노드가 5일 바티칸에서 미사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19일까지 가정을 주제로 2주간 열리는 이번 시노드는 임시총회로 같은 주제로 내년에 열리는 정기총회를 준비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개막 미사를 집전하면서 “시노드 참가자들이 성령의 인도에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 계획은 실패하게 될 것”이라면서 시노드가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시노드 사무총장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은 6일 첫 회의를 시작하며 “그리스어에 뿌리를 둔 시노드라는 말은 함께 걸어간다는 뜻”이라면서 “오늘날 가정에 어떻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말했다. 한편 시노드 개막 전날인 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선 시노드 전야 기도회가 성대히 열렸다. 가족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기도를 바친 신자들은 주님의 빛이 모든 가정에 깃들기를 기원했다. 다음은 시노드 개막 이모저모. 시노드 전야 기도회◎…4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전야 기도회에는 신자 4만 명이 모여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가정을 주제로 한 시노드답게 자녀들과 함께 온 부부들이 많았다. 이들은 촛불로 성 베드로 광장을 밝히며 가정 문제를 다루는 시노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기도했다. 이날 이탈리아 세 가정이 신앙 체험을 발표했다. 두 자녀를 둔 한 부부는 6년 동안 별거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위기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가톨릭 프로그램 ‘르투르바이’에 참가한 뒤, 다시 화목한 가정을 꾸리게 된 경험을 들려줬다. 교황은 기도회에서 “지금 이 시대 가정에 맞는 교회의 사목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가정은 인류의 못자리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공동체로 그 어느 것과도 대체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부부 복자◎…교황은 개막 미사에 앞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복자품에 오른 2쌍의 부부 유해에 분향하고 기도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혼인과 가정생활의 모범을 보인 이들은 가정을 주제로 한 시노드 임시총회 기간에 특별히 기억하고 공경할 성인과 복자로 선정됐는데, 이들 유해는 시노드 기간에 시노 드를 위한 기도와 전례가 매일 거행되는 로마 성모마리아대성당에 안치됐다. 2쌍 복자 부부 가운데 1쌍은 데레사 성녀의 부모인 루이스 마르탱과 마리아 젤리 게랭 마르탱 부부며, 다른 1쌍은 부부로선 처음으로 2001년 시복된 루이지 벨트라메 콰트로기와 마리아 코르시니 부부다.루이지ㆍ마리아 부부는 4자녀를 낳아 신앙으로 기르며, 자녀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했다. 또한 막내딸을 임신했을 당시 의사가 산모 건강이 나빠 아이를 낳을 경우 사망할 확률이 90%라며 낙태를 권유했지만, 부부는 낙태하지 않고 묵주기도의 힘으로 버티며 막내딸을 출산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부모는 2008년 시복됐는데, 자녀에게 일치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줬다. 이들 부부 역시 자녀 모두를 성직자와 수도자로 키웠다. 선교사업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데레사 성녀가 일찍부터 신앙에 눈뜰 수 있었던 것도 부모 덕분이다. 성경으로 풍성해진 주일 낮 삼종기도◎…세계주교시노드 개막 미사를 마친 교황은 낮 삼종기도를 주례하면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가정 문제를 논의하는 시노드가 시작했다”고 알리며 시노드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했다. 교황은 “시노드를 위한 기도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면서 “성모께서도 이번 시노드를 돌봐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성 바오로수도회 수도자들이 삼종기도에 참가한 가정들에게 성경을 나눠줬다. 교황은 “가정이 믿음과 희망으로 성숙하려면 하느님 말씀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데, 마침 성 바오로수도회에서 성경을 가져왔다”고 기뻐했다. 교황은 “성경을 책장에만 두지 말고 꼭 가지고 다니며 자주 들춰봐야 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가족이 함께, 부부가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누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은 하느님 말씀의 힘과 빛으로 성장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첫 회의 시작, 자유로운 토론 강조◎…6일 시노드 첫 회의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참가자들에게 “두려움 없이 말하고 귀 기울여 들으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예전 추기경회의 때 한 추기경이 교황과 반대되는 뜻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 의견을 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면서 “그건 옳지 않다. 시노드 정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눈치 보느라 말을 아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만들어가기를 요청했다.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은 이번 시노드가 개막 전부터 이혼한 뒤 재혼한 신자들의 영성체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거워진 것을 의식한 듯 “누구든지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건설적인 자세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으며,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이번 시노드의 특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노드 책임보고관 페터 에드로 추기경은 “산아제한, 가정에 지워진 사회적 경제적 부담, 가정 내 폭력, 중독 문제 등 다뤄야 할 가정문제가 광범위하다”면서 “재혼한 신자들의 영성체 허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가정 문제 전체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2014.10.07
![[성경 속 궁금증] 82. 성경에서 빵을 나누어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646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82. 성경에서 빵을 나누어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빵 나눔은 친교ㆍ형제적 사랑의 구체적 표현한스 홀바인, '최후의 만찬', 1524~25, 스위스 바젤 쿤스트미술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빵은 생명의 음식이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면서 악마에게 받은 첫째 유혹이 빵이었다(마태 4,1-11; 루카 4,1-13).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빵이 주된 식량이다. 그곳은 주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벼가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여러 곡식으로 빵을 만들어 먹는다. 빵을 만드는 대표적인 곡식은 밀이지만 예수님 시대 당시에는 이것도 귀해서 일반 서민들은 주로 보리빵을 먹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해 만들어내신 빵도 보리빵이었다(요한 6,9). 구약에서 가장(家長)은 식사를 주도하면서 시작기도를 봉헌하고 음식에 축복한 뒤에 다른 음식에 앞서 빵을 나눠줬다. 빵은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떼어서 먹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도 매우 간단했다. 물은 돌려 마시고 빵은 그냥 떼어서 나눠 먹으면 됐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마르 6,41)을 일으키시고 이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셨다. 또한, 최후 만찬에서는 이렇게 하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소개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 성 목요일 저녁,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한 식탁 풍경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예수님께서 빵을 쪼개어 나누는 목적은 친교나 형제애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먹는 것은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어떤 사람과 빵을 함께 자주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가까운 사이, 곧 친구임을 뜻한다. 따라서 빵을 함께 나누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룸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이들에게 직접 빵을 나눠 주신다. 당신을 따르느라 굶주린 군중을 위해 제자들이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신다(마태 14,13-21).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이처럼 자기의 빵을 굶주린 이와 나눠 먹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 큰 의무로, 형제적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 여겨졌다. 예수님은 단식하고 고행을 하는데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중략)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 6-7). 그리고 배고픈 이에게 빵을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죄가 됐다. "자네는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지 않았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거절하였네"(욥 22,7).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요한 6,33)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요한 6,35)이라 선언하셨다. 신약성경에서 빵을 나눈다는 의미는 생명, 즉 구원을 나눈다는 의미가 된다.cpbc2013.07.30
![[나의 묵주이야기] 127.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묵주기도의 힘](//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5563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27.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묵주기도의 힘박소영 아타나시아(군종교구 자운대본당)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업이 군인인 남편은 당시 세계 분쟁 지역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며 레바논 파병을 자원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있었고 뱃속에는 둘째가 갓 피어나기 시작한 때라, 나는 남편의 도전에 대해 무조건 응원해줄 입장이 되지 못했다. 홀로 아이를 건사하고 출산해야 하는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고 두려워, 남편의 파병 지원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루하루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할 때, 독실한 신자이셨던 시부모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성당으로 이끄셨다.처음 성당에 들어서던 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돌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너그러운 엄마 품처럼 나를 꽉 안아주는 성당에서, 한없이 나약해진 마음이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그리고 그게 문밖에서부터 나를 반겨주시던 성모님과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나를 바라보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날로 교리공부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을 만났다. 여러 달이 지나자 나는 아타나시아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었고, 그 시간은 이기적인 사람이라며 비난했던 남편에 대해 바로 보고, 남편을 이해하며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파병을 지원한 남편의 마음이 결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크게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여 짊어진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부터 나는 매일 남편의 안전을 위해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묵주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남편을 항상 지켜주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어 든든한 마음으로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 성모님께서 다 알아주시며 때론 나를 가엾게 봐주시고 때론 대견하게 봐주시며 나에게 응원의 손길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을 느끼며 그 크신 은혜로움에 감사했다.파병 반년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편을 위한 묵주기도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에 보답하듯 타국에서 성실하게 임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오랜 기간 냉담 중이었던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 그동안의 냉담에 깊이 반성하며 주님을 만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앞서 성당으로 향하는 남편을 보며 우리 가정을 위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할 따름이다.예비신자였을 당시 한 자매님께서 ‘고난이 찾아와도 우리에겐 묵주기도가 있으니 든든하다. 이건 나에게 큰 백’이라고 하신 말씀이 종종 생각난다. 남편의 파병 기간 내가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성모님의 품 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묵주기도의 힘을, 그 기적을 비로소 깨닫는다. 오늘도 나는 제대에 촛불을 밝힌다. 5살, 3살이 된 아이들은 엄마의 기도 시간임을 알고 알아서 저희 방석에 앉아 묵주를 고사리손에 쥔다. 아이들과 나란히 성모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나에겐 가장 축복받은 시간이요, 주님의 가장 크신 은총이 아닐까. 아이들이 묵주기도와 함께 성장하면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cpbc2015.06.10
무관심의 세계화는 맞서 싸워야 할 난제 프란치스코 교황, 사순 시기 담화 통해 내적 쇄신 주문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 시기를 앞두고 담화를 발표,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맞서 싸워야 할 난제라고 지적하고 이를 위한 하느님 백성의 내적 쇄신을 주문했다. 교황은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야고 5,8)라는 말씀을 주제로 발표한 담화에서 “이웃과 하느님께 대한 무관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현실적인 유혹”이라며 “이러한 까닭에 해마다 우리는 사순 시기에 목소리를 높여 우리 양심을 일깨우는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무관심의 세계화에 빠지지 않고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도록 세 성경 구절을 묵상할 것을 제안했다. 우선 교회에는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코린 12,26)라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단 하나인 몸의 지체이기에 그분 안에서는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무관심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본당과 공동체에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 참조)라는 말씀을 제시하고, “교회가 있는 모든 곳이, 특히 본당과 공동체가 무관심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자비의 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황은 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야고 5,8)라는 말씀을 제시하고, △지상 교회와 천상 교회의 일치 안에서 기도하고 △자선 행위를 통해 모든 이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며 △다른 이들의 고통은 회개하라는 부르심인 만큼 형제자매에게 다가가게 하는 사랑의 길로 이끄시도록 성령께 내어맡기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끝으로 “저희 마음을 주님 마음과 같게 하소서”라는 예수 성심 호칭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고, 모든 신자와 모든 교회 공동체가 사순의 여정을 지내며 열매 맺기를 기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cpbc2015.02.11

메르스 확진·의심자는 주일·대축일 의무 관면 수원·전주·부산·마산 교구, 사목적 배려 담은 조치 발표 … 각종 행사 잇따라 취소·연기 명동대성당 입구에 있는 성수대에 성수가 비워져 있다. 명동주교좌본당은 최근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성수대를 비웠다. 이힘 기자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방지를 위해 교회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있는 가운데 수원과 전주, 부산과 마산교구가 메르스와 관련한 사목적 배려를 담은 조치를 내놨다.메르스 환자가 많이 나온 지역을 관할하는 수원교구는 3일 교구 본당에 보낸 공문에서 “당분간 성지순례, 신심단체 대회 등 대형 신앙 집회를 자제하고 참석에 신중을 기해 달라”면서 “특히 노인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나 행사는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부득이한 사정으로 순례나 모임을 진행할 때는 반드시 메르스 감염에 대한 사전 점검과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신자들의 참여는 자제시켜 달라”고 권고했다. 수원교구는 메르스 증상이 의심되거나 확진 받은 신자에 대해서는 교구장 명의로 주일과 대축일 의무를 관면하고, 본인이 원하는 기도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 단체와 모임(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 등)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본당 사제에게 보고하고 당분간 해당 모임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모임 참석자들이 오해와 구설수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잠복기인 7∼14일간 성당에 나오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을 사제들에게 주문했다.수원교구는 사제와 수도자들에 대해서는 미사 전후에 항상 손을 씻고,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교구에 보고해 긴급조치를 받는 한편 교회 밖의 대중 집회 참석이나 밀집 장소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교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는 메르스로 인해 온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감염 확산이 진정되고 메르스 예방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교회 자체적으로 감염이 확산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메르스 양성 환자가 발생한 순창 지역을 관할하는 전주교구도 5일 공문을 통해 “6월 중에 계획된 실내 공간에서의 행사나 활동은 감염 확산에 따른 위험과 신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고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미사 중 악수나 다른 형식의 신체 접촉을 제한하고 양형 영성체는 자제할 것을 권하는 한편 성당과 시설, 기관은 손소독제 등 필요한 개인 위생용품을 비치해 위생 관리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교구는 또 고열이나 기침 등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거나 감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큰 신자의 주일 미사를 관면하고, 주일 미사를 궐한 경우 그날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묵주기도 5단이나 본인이 선택한 적절한 기도를 바치도록 했다. 부산교구도 9일 이같은 내용의 공지를 발표했다. 마산교구는 9일 공지를 통해 각 국의 모든 연수와 교육을 연기 및 취소한다면서 부득이하게 행사나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경우 사목국장과 협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본당 차원의 신심 행사와 성지순례 등은 “신부님들 재량에 맡긴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대부분 교구와 기관들은 메르스가 더 이상 퍼져 나가지 않도록 예정된 행사들을 취소 또는 연기하고 있다. 한편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여의도성모병원ㆍ부천성모병원을 관장하는 서울대교구 가톨릭학원 이경상 보건정책실장 신부는 “환자 접촉자를 신속히 격리하는 등 초동 단계부터 최선을 다해 대처한 결과 두 병원 모두 현재 안전한 상태”라면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두 병원을 이용하는 데 불안감을 갖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cpbc2015.06.09
![[생활 속의 복음] 영웅이신 예수님](//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0821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영웅이신 예수님연중 제15주일 (마르 6,7-13)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신문과 TV에 관심을 끄고 살아가기로 결심을 해봤습니다. 언론에서 거짓과 슬픈 소식만을 전달하고 있는 현실이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살자고 다짐했지만, 결국은 신문ㆍ방송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많은 영웅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메르스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의료진의 소식을 접하면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이들처럼 눈물 흘리고, 좌절하고,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회개와 자유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마르 6,12-13).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를 실천한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동지침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 경험을 나누며 제 자랑을 할까 합니다. 용서를 부탁합니다. 16년 전 병자 영성체를 다닐 때 일입니다. 한 할머니께서 제가 방문할 때마다 점심을 주문해 주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간병인 제도가 보편화 돼 있지 않아서 환자 집에 방문하면 정결하지 못한 환경과 독특한 냄새 때문에 솔직한 심정으로 빨리 나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식사를 했습니다. 방문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아들과 어머니 같은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페루 선교를 준비하면서 할머니와 만남은 중단됐습니다.성골롬반외방선교회 본부에서 교육을 받던 어느 날, 수업 도중 전화가 와서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할머니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임종 전에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신부님과 통화를 원하셔서 전화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마음속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할머니를 위한 미사와 기도를 봉헌했던 기억이 납니다.페루 리마본당에서 사목하던 시절 매주 목요일에 미사를 봉헌하던 한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사 후에 눈에 확 띄는 미모의 여성이 다가오더니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병자성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혹시 거짓말로 나를 납치하려는 것은 아닌가?’, ‘나를 유혹해 금품을 노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교우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유혹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증인(신자)을 통해 제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여인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습니다. 80대 초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한 달 사이에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병자성사를 베풀고 가족들에게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할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나누고 성경을 읽어드리고 기도를 해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그 여인이 미사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장례미사를 청하러 왔나? 아니면 더 병세가 악화돼 따지러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공지 시간에 발언권을 요청하더니 “빠드레(아빠, 신부) 토마스가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가신 다음 날부터 할아버지가 걷기 시작했고, 말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동네에 ‘기적을 일으키는 신부’라는 소문이 돌아 미사 참례 신자도 많아지고 대접도 잘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테세우스전’에 보면 테세우스는 진실한 마음으로 마을과 가문들을 찾아다니며 “아테네를 왕이 없고 민중에 의해 다스려지며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주는 도시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에게서 편견과 이기심이라는 병, 명예와 성공이라는 우상, 거짓이라는 마귀를 퇴치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의 영웅이신 예수님! cpbc2015.07.08
![[성경속 궁금증] 79. 성경에서 여성들은 어떤 존재로 표현되고 있나?](//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2637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79. 성경에서 여성들은 어떤 존재로 표현되고 있나?구약시대에는 남자의 재산목록으로 매매 가능… 예수, 여성을 한 인격체로 존중ㆍ제자처럼 활동코레조, '만져서는 안 될 사람', 1525,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구약시대에 여자는 남자의 재산목록 중 하나였고 집안의 한 재산으로 매매가 가능한 존재로 생각됐다. 그래서 여인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격리됐으며 철저히 아버지나 남편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구약시대 여성들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불리했다. 엄격한 토라, 율법, 랍비 문헌에서 여성을 금하는 성전 의식을 실행했다. 이스라엘의 연중행사인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에도 여성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율법을 배울 수 없었고 율법교사가 될 수도 없었다. 여자의 손에 토라가 들어가느니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시대였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집과 밭, 소와 나귀와 마찬가지로 부인도 남편의 소유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이스라엘 여성의 위치가 노예와 법률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혼인 지참금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남편과의 이혼 혹은 사별 시 여성에게 지급될 금액이 기록된 혼인 증서를 담보로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보통 여성이 혼인하게 되면 남편 집에 들어가 살면서 힘든 가정일을 해야 했다. 여성은 가축을 지키고, 밭에서 일하며, 집에서 밥을 짓고, 양털로 실을 뽑아 옷을 짜는 일을 했다. 남편의 잠자리 준비 및 남편의 얼굴과 손발을 씻겨 주는 것도 부인의 의무에 속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남녀를 모두 같은 존재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탈출 20,12). 남성 중심 시대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란히 언급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도 여인들의 위치는 큰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공적인 삶은 철저히 남자들에게만 허용됐다. 여성들에게는 집안에서의 생활만이 요구됐다. 혼인하지 않은 처녀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일은 오직 외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처럼 여성들이 가정과 공적인 삶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었다. 집안에서도 딸들은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예수님의 여성관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태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성별과 사회적 계급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고 그를 따를 수 있었다. 예수님은 여인들을 남자와 똑같은 인간으로 보셨다. 더욱이 일부다처제 및 이혼 금지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마르 10,6-12)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을 높이 평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던 시대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여성도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셨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예수님의 제자처럼 활동했다.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3).cpbc201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