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역사의 현장 광복 70년 분단 70년] <7> 한국의 교계제도 설정과 ... 제2차 바티칸 공의회](//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7023_1.0_titleImage_1.jpg)
[사진 속 역사의 현장 광복 70년 분단 70년] 한국의 교계제도 설정과 ...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 한국 교회의 눈부신 성장 신화 시작되다 1962년 6월 29일. 서울 명동대성당 입구에 경축 현판이 설치됐다. 이날 오후 4시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 공포식’을 거행한다는 내용이었다.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지 131년 만에 정식 교구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는 경축 현판 사이로 드나드는 신자들의 얼굴엔 기쁨이 넘쳐났다. 이날 전례는 석 달 전인 3월 10일 자로 교황 요한 23세가 ‘한국에 교계제도를 설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교서 「복음의 비옥한 씨」(Fertile Evangelii semen)를 반포한 데 따른 교황교서 시행 예식이었다. 공포식에선 서울ㆍ대구ㆍ광주대목구가 대교구로 승격돼 서울 노기남 대주교와 대구 서정길 대주교, 광주 현 하롤드 대주교가 주한 교황사절 직무대리 찰스 버튼 무튼 몬시뇰에게 서칙서와 팔리움(Pallium)을 받았다. 이어 노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됐다. 무튼 몬시뇰은 제대 왼쪽에서 목장을 쥔 노 대주교의 손을 잡고 대주교좌로 이끌었다. 이는 교계제도 설정 공포식이 거행된 직후에 처음으로 노 대주교가 대주교좌에 착좌하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팔리움 수여와 함께 이날 전례의 절정이었다. 이날 교계제도 설정으로 한국 교회는 11개 대목구(북한 평양ㆍ함흥 대목구 포함)가 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서울ㆍ대구ㆍ광주 등 3개 관구가 설정됐다. 이후로 7개 교구가 새로 설정되지만, 3개 관구에 18개 교구(평양ㆍ함흥교구 포함), 1개 자치수도원구(덕원자치수도원구) 체제로 이루어진 한국 교회의 대체적인 틀은 이때 갖춰졌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그간 교황청에서 직접 관할하는 ‘선교지 교회’에서 벗어나 보편 교회 안에서 개별 교회로서의 온전한 면모를 갖추게 됐다. 교회법적 측면에서 보면, 교계제도 설정은 한국 교회의 교구들이 온전한 개별 교회의 형태를 갖추게 됐을 뿐 아니라 개별 교회의 연합체인 관구를 형성해 교구 간 상호 협력과 공동 사목을 증진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1962년 11월 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로 참석한 한국 주교단이 교황 요한 23세를 특별알현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출처=노기남(한국교회사연구소 펴냄) 한국 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던 1962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한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그해 10월 11일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한국 교회에서는 노기남 대주교를 포함해 9명의 주교가 참석했다. 1965년 12월 8일까지 만 3년 이상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의 진리들을 현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선포했다. ‘아조르나멘토’라는 표현으로 쇄신과 개혁을 통해 시대에 적응할 것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특히 각 민족의 언어로 전례를 거행하는 쇄신과 종교 간 대화, 세상을 향한 교회의 개방,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 권고 등을 통해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신앙을 구현하고자 했다. 한국 교회와 사회를 포함한 한국의 현대사는 지난 50여 년간 공의회의 직ㆍ간접적 영향권 안에서 있었던 셈이다.공의회가 일으킨 ‘쇄신과 적응’의 바람은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 교회에 불어왔다. 공의회가 남긴 4개 헌장과 9개 교령, 3개 선언문 등 총 16개 문헌은 전례나 신앙생활의 변화뿐 아니라 교회의 울타리에 안주해 있던 하느님 백성에게 세상으로 나갈 것을 독려했다. 특히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 활동의 바탕을 이뤄 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엔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가 두드러졌고, 한국 교회의 성장을 이끌었다. 교계제도 설정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라 한국 교회는 특히 질적, 양적 측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전국 교구장들은 1962년 9월 사단법인체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설립했으며, 교계제도 설정 이후로 7개 교구가 새로이 분할 설정됐다. 1969년엔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가 한국 교회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이후 1970∼1980년대 들어 한국 교회의 제도적 발전과 성장은 확연히 탄력을 받는다. 교세 성장도 그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교계제도가 설정된 1962년에 53만여 명에 그쳤던 신자 수는 53년 만인 2014년 말 현재 556만 971명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또한, 1965년 1월부터는 ‘우리말 미사’가 봉헌됐으며, 1966년 「미사통상문」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1968년엔 박해 시대 기도서 「천주 성교 공과」를 현대화해 「가톨릭 기도서」를 발간했고, 1977년 「공동번역 성서」를, 2005년엔 한국 천주교회만의 신ㆍ구약 합본 「성경」을 완역하는 등 토착화의 진전과 함께 교회 또한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또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전환, 성숙 단계에 접어든다. 2002년 6월엔 한국 지역 교회법을 승인받아 교계제도 설정 40년 만에 완전한 형태의 지역 교회법을 갖췄다. 이 같은 한국 교회의 발전은 교계제도의 설정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의 실천에 따른 결실이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5.08.12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화와 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성화 제작 ‘한국 순교 복자 124위 복자화’와 ‘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성화’에 참여한 작가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장긍선 신부, 최진호, 이정희, 오목훈 작가. 이정훈 기자 이콘 보급과 교육에 힘쓰는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가 최근 대작(大作) 2점을 내놨다.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화와 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성화이다.14일 서울 중림동 이콘연구소에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작가들은 “두 작품을 준비하는 지난 시간은 은총 그 자체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대형 이콘 제작에 작가 9명의 정성이 들어갔다. 이들은 성경 속 인물과 교회 성인을 재현하는 이콘에서 한발 나아가 한국 순교 복자들을 토착화된 시각으로 새롭게 표현한 ‘대형 창작 이콘’을 해낸 것이다. 그간 한국 순교 성인의 개별 이콘은 더러 있었지만, 124위 복자를 한 폭의 이콘으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은 장긍선 신부와 최진호(그리시아)ㆍ이정희(마리아 프란체스카) 작가가 맡아 지난해 11월부터 판에 천을 덧붙이고 아교를 칠하는 ‘판 작업’에만 두 달이 꼬박 걸렸다.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지에서 공수해온 천연 안료를 쓴 채색 작업은 최근에야 마쳤다. 가운데 금박을 두른 비단옷에 왕후의 단아한 풍모를 지닌 한국적인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124위 복자가 서 있다. 도포 자락, 손 모양, 표정은 선명하다. 멀리서 봐도 복자 한 분 한 분 개별적으로 보이듯 입체적이다. 이콘에 쓰이는 특유의 섬세한 표현기법 덕분이다. 작가들은 124위의 나이와 업적 등을 일일이 찾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신기하게도 124위 순교 복자 기념일인 5월 29일을 앞두고 이콘이 완성됐다.최 작가는 “천상 승리의 복자인 이분들은 들뜬 모습이라기보다 결연하고 초연한 달관의 표정이었을 것이라 여기고 표현했다”면서 “마음을 비우고 주님께 잠시 손을 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이 작가는 “양반, 중인, 궁녀 등 복자의 신분과 나이를 고려하고, 신주를 태우고 교회 가르침을 따른 윤지충 바오로는 상복을 입히는 등 다양한 의미들을 담았다”며 “첫 복자 이콘 제작에 함께한 것이 무척 뿌듯하고 기쁘다”고 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이콘은 장긍선 신부와 6명 작가가 함께했다. 전형적인 이콘 기법으로 표현한 금빛 옷자락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좌측엔 검은 수단을 입은 성 김대건 신부와 우측엔 갓을 쓴 최양업 신부가 서 있다. 하단 중앙엔 신학교 모태인 초가의 배론 신학교가 있다. 무지개 위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의 왼손 복음서에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란 구절이 적혀 있다. 앞으로 신학생들이 보고 되새길 사목자의 참된 소명을 적은 것이다. 240x174㎝에 이르는 이 작품은 대신학교 성당에 설치돼 25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축복한다. 장 신부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신기하게 124위 복자 기념일에 맞춰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에는 복자들의 이끄심이 있었던 것 같다”며 감사해 했다.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은 27일~6월 2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리는 제8회 이콘연구소 회원전 ‘영혼의 빛을 따라서’에서 회원 30여 명의 작품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5.05.2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3)루돌프 슈나켄부르크 (하)](//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47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3)루돌프 슈나켄부르크 (하)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믿음 키우는 데 일조 슈나켄부르크의 마지막 저서 「네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저서 「나자렛 예수」를 풀어나가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사진은 자신의 저서를 들고 서 있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CNS】 슈나켄부르크는 은퇴 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는데 1961년 「신약성경의 교회」란 책을 펴냈으며, 1985년과 1987년에는 사목적 성경 해석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에히터 비벨(Echter Bibel) 주석서 「마태오 복음」을 출간했다. 1990년에는 「예수의 길」(Der Jesusweg)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파견하시다」(Gott hat seinen Sohn gesandt)를, 1995년에는 「예수와의 친교」(Freundschaft mit Jesus), 1998년에는 「네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Die person Jesu Christi im Spiegel der vier Evangelien)을 출간했다. 전임 교황의 저서 중에서 특히 슈나켄부르크의 마지막 작품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교황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와 그리스도인 신앙에 대한 갈등이 함께 녹아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임 교황의 책을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슈나켄부르크는 이 책의 의도를 ‘오늘날 학술적인 연구로 불안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구원자와 세상의 구세주로 확고하게 믿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했다(「네 복음서~」, 6쪽).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평생의 연구 실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나자렛 예수의 역사적 모습을 학술적인 노력으로, 역사비평적 방법들을 이용하여 신빙성 있게 보여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에 부족하다’(같은 책, 348쪽). 또한 ‘전승의 여러 층을 가려내고 거기서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을 얻어내기 위한 학술적인 노력은 전승사와 편집사를 둘러싼 문제로 늘 논란을 계속하는 상황으로 끌어들여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같은 책, 349쪽). 그러나 그 역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방법론을 따르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다. 슈나켄부르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예수상은 여러 전승이 단계적으로 겹쳐져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진정한’ 예수는 그저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복음서는 역사적 기초를 전제하고는 있지만, 믿음의 관점에서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그는 술회한다(같은 책, 353쪽).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역사적 기초’라는 것이 도대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슈나켄부르크는 가장 결정적인 것을 지적하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확실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의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하느님과의 연대성이다(같은 책 353쪽). 하느님 속에 닻을 내리지 않고서는 예수라는 인물은 그저 희미한 그림자와 같고 비현실적이며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인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같은 책, 354쪽). 이것은 또한 이 책을 꾸려나가는 데 구심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예수를 어디까지나 아버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시는 분으로 바라본다. 친교는 그분 인품의 근원적인 핵심이다. 이 친교가 없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 친교가 바탕이 되어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현존하신다”(「나자렛 예수」 1권, 10~11쪽). 자신의 저서뿐 아니라 슈나켄부르크의 큰 업적 중에 하나는 편집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남긴 책들이다. 가장 중요한 발자취는 무엇보다 가톨릭-개신교 주석서와 독일에서 출간되는 성경연구 잡지인 「비블리쉐 차이트슈리프트」(Biblische Zeitschrift)의 편집인 활동이다. 또 사회주의 정권의 억압으로 1938년 발행이 중단됐던 이 잡지를 1957년에 부활시키는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삶을 살았던 학자슈나켄부르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단순한 삶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은퇴 후에도 뷔르츠부르그 시내의 작은 집에서 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근처 양로원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연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알프스 지역으로 휴가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자신의 집에서 연구하고 집필했다. 유일한 취미가 있었다면 사제였던 형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과도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제자 중에 특별히 어려운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는 은퇴 후에도 그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마치며슈나켄부르크는 교회가 내적, 외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교회 내의 커다란 사건들을 두루 거친 시기에 활동했던 성서학자였다. 하지만 바티칸 공의회는 그에게 썩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슈나켄부르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릴 때 공의회에 참여하는 독일 신학자들 가운데 성서학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몹시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가톨릭 성서학계 역시 혼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등장한 역사적 연구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슈나켄부르크는 역사적 연구와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학자였다. 그의 모든 연구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의 저술들을 통해 드러나는 주장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성경연구는 무엇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다양한 결과들을 통해, 그리고 학자들의 열띤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고, 그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슈나켄부르크에게 성경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담고 있는 문헌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현재에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학자들의 모든 연구와 노고는 시간적으로 제약을 받기에 항상 ‘선행된 연구’이지 ‘마지막 결과’는 아니었다. 그의 글들에선 사제이면서 신학자로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함께 과거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슈나켄부르크의 바람은 자신의 마지막 책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오랜 세월 연구하고 사색하는 가운데 태어난 이 저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근본 문제들을 새롭게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학적 탐구와 비판적 토론의 영향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혼미해져 가고 있다. 그들이 구세주요 세상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네 복음서~」, 7~8쪽).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은 그의 연구들은 ‘전통적 참고서’가 됐을 만큼 그 사이 많은 다양한 새로운 연구들이 진행됐다. 비록 학문적 글들이기에 누구나 쉽게 읽기엔 지루하고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슈나켄부르크의 책들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책들 중 일부만이 우리말로 번역됐다는 사실이다.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평화신문2014.10.14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1)구약성경의 다양한 나무들](//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69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1)구약성경의 다양한 나무들참나무·향엽나무, 성소 알리는 표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나무인 참나무, 향엽나무, 돌무화과나무에 대해 살펴보자. 구약성경에서도 참나무와 향엽나무는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거룩한 나무다. 두 나무에 얽힌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도 비슷한 점이 많다. 참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 '엘로온'과 향엽나무를 의미하는 '엘라'는 높다, 세다, 첫째 가다를 뜻하는 고대 셈어 어근에서 파생한 단어다. 이 나무들의 이름을 직역하면 '드높은 나무' 또는 '우두머리 나무' 정도 된다. 창세기 12장에서 스켐의 성소는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참나무는 곧 성소를 알려 주는 표지다. "그리하여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판관 9,6). 모레의 참나무는 널리 알려진 지명으로 쓰였다. 마치 명동성당처럼 누구나 아는 명소를 안내의 기준으로 삼듯이 당시 참나무가 그 같은 역할을 했다. 참나무는 또 임금을 세우는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었다. 또 흥미롭게도 장례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레베카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베텔 아래에 있는 참나무 밑에 묻혔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알론 바쿳(통곡의 참나무)이라 하였다"(창세 35,8). #거룩한 나무-참나무와 향엽나무 향엽나무도 참나무와 종교적 쓰임새가 비슷하다. 여호수아의 시대에 유서깊은 성소인 스켐에서 하느님과 백성이 새로 계약을 맺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백성이 맺은 계약의 증거로 큰 돌에 모든 말씀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큰 돌을 가져다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여호 24,26). 참나무가 장례 요소로 쓰인 것처럼 사울의 시신을 수습한 곳도 향엽나무 밑이었다. 향엽나무는 참나무처럼 장사 지내는 곳이었으며, 아울러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앉아 하느님 뜻을 전하는 거룩한 곳이었다. 고대 근동의 다양한 민족들도 이 나무들에 깃든 거룩한 의미를 공유했다.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의례를 거행했고, 나무를 깎아 신상을 만들었다. 구약성경은 일부 이스라엘인들도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의를 거행했음을 전한다. 또 이 나무들로 우상을 만들었다는 대목도 여러 차례 나온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고난받는 이유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성찰했다. 그러면서 주님께 불충한 이유가 "참나무들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또 가까운 미래에 고난받을 이스라엘의 모습을 "시든 향엽나무처럼"이라고 말했다. 두 나무는 이스라엘의 죄와 고난을 표현하는 데에도 쓰인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그 참나무들 때문에 너희는 정녕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가 선택한 그 정원들 때문에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너희는 정녕 잎이 시든 향엽나무처럼 되고 물이 없는 정원처럼 되리라"(이사 1,29-30). 두 나무에 대한 구약성경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거룩한 성소나 하느님의 현존과 연관됐을 때는 긍정적이지만 우상, 이방 신과 관련됐을 때는 단호하게 부정적이다. 이스라엘인은 두 나무에 대한 고유한 신학적 성찰을 발전시켰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을 역사적 고난과 수치가 이 나무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난을 견디고 남을 미래도 역시 이 나무들의 그루터기로 상징됐다. #돌무화과나무 고대 이스라엘인은 고대 근동의 중요한 종교적 상징을 완전히 탈신화했다. '돌무화과나무'는 이집트에서는 '거룩한 나무'였지만, 구약성경에는 그저 '재산'이나 '목재'다. 특히 값이 싸고 부실하고 보잘것없는 의미로 쓰인다. "솔로몬 임금 덕분에 예루살렘에서는 은이 돌처럼 흔해졌고, 향백나무는 평원 지대의 돌무화과나무만큼이나 많아졌다"(1열왕 10,27; 2역대 1,15; 9,27). 아모스 예언자는 스스로를 촌뜨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여기서도 이 나무는 아모스의 직업과 관련된 것일 뿐 특별한 종교적 심성을 찾아볼 수는 없다. 돌무화과나무나 가꾸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아모 7,14). 그러나 이스라엘에 큰 영향을 끼친 이집트에서 돌무화과나무는 강한 신성을 지닌 나무였다. 멤피스인들이 섬기던 대중적인 하토르 여신의 표상이었고, 18왕조와 19왕조 시대에는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이런 이웃 종교의 상징성은 구약성경에서 탈색됐다. 단 한 번도 성소나 의례와 연관되지 않았고, 우상 숭배와도 관련 없는 그저 값싼 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이집트 종교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면 아래 구절에서 희미한 상징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일으키신 기적을 찬미하는 시편 78편은 이집트인들의 중요한 재산인 포도나무와 돌무화과나무가 못 쓰게 됐다는 점을 말한다. 돌무화과나무를 그냥 재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집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박으로 저들의 포도나무를, 서리로 저들의 돌무화과나무를 죽이셨다"(시편 78,47).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퇴사자22013.07.02
![[성경속 궁금증] 76. 성경에서 노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7915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76. 성경에서 노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경험과 지혜 풍부해 권위의 상징으로 표현안토니오 데 페라다 '성 예로니모', 1643년, 캔버스에 유채,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요즘은 '100세 시대'라 해 예전보다 10년에서 20년은 육체적으로 더욱 젊게 살 수 있게 됐다. 특히 의학의 발달로 노년에도 젊은이의 건강을 유지하는 분들이 많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육체의 젊음은 더욱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과 함께 누구나 늙는다. 신체의 늙음은 다소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늙으면 기력이 빠지고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정신까지도 희미해진다. 인간의 늙음은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늙음은 중요한 주제이다. 성경에서 노년은 점점 연약해지며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표현된다. 노년의 유약함 때문에 성경은 노인을 무시하는 것을 배격하고 노인들에 대한 돌봄을 권장한다. "아버지를 구박하고 어머니를 내쫓는 자는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자식이다"(잠언 19,26).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 된다. "아 죽음아, 너의 판결이 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 나이를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 많은 인간에게, 반항적이고 참을성을 잃은 자에게 얼마나 좋은가!"(집회 41,2). 성경은 노년에 부패나 수치스러운 불의를 범하기도 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다니 13,5). 성경에서 늙음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노년은 경험과 지혜의 풍부함과 함께 권위의 표징이었다. 이러한 권위는 체험과 경륜을 수반해야 하는 지혜와도 관련이 있다(1열왕 12,6-20 참조).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늙음은 면류관이다. "주님을 경외함은 살날을 더해 주지만 악인의 수명은 짧아진다"(잠언 10,27). 그래서 의인들은 늙어서도 대대로 후손을 보는 보람을 누리게 된다. "손자들은 노인의 화관이고 아버지는 아들들의 영광이다"(잠언17,6). 천수를 누린 아브라함처럼 의인들은 행복하고 왕성한 노후를 보낸 후 자신의 수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민족은 나이와 그에 따른 경험에 권위를 부여한다. 성경에서도 원로들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이었다. 노년의 상징인 머리의 백발은 존경을 받을 만하다. "너희는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을 존경해야 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32). 교회 공동체에서도 나이 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오로의 충고를 따라 덕행으로 빛나야 한다. "나이 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녀야 합니다.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티토2,2-3). 성경에서 노년의 늙음은 영원의 상징이었고, 복과 책임감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cpbc2013.06.11
![[시노드] 상처난 가정, 율법 아닌 자비로운 손길로 보듬어야](//cpbc.co.kr/CMS/newspaper/2015/10/rc/600385_1.0_titleImage_1.jpg)
[시노드] 상처난 가정, 율법 아닌 자비로운 손길로 보듬어야이번 시노드의 정신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24일 대의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3주간에 걸쳐 숨 가쁘게 진행된 시노드의 폐막식을 주재하고 있다. 【바티칸=CNS】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참가 교부들은 지난 3주간 숱한 토론과 발언, 또 그만큼의 고뇌로 시노드홀을 뜨겁게 달궜다. 회의장 밖으로 전해지는 주제와 토론 분량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피하려면 이번 시노드를 관통한 정신을 읽어야 한다. 시노드에서 드러난 몇 가지 핵심 주제어를 통해 시노드를 다시 정리했다. 마음을 열고 들어라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4일 개막 미사에서 “이 시대의 가정을 둘러싼 환경은 매우 복잡하므로 성령께 마음을 열고 주님의 목소리와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듣는 시노드’를 강조했다.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황은 회기 중에 이를 또 한 번 강조했다. “시노드(함께 걷는다는 뜻)적 교회는 듣는 교회입니다. 서로 들으면서 배워야 합니다. 가정의 이야기, 그들의 기쁨과 희망, 그들의 고통과 고민을 직접 듣지 않고서 가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실제로 대의원 주교들은 토론장의 경청하는 분위기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 대표로 참석한 강우일 주교는 10월 18일 바티칸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서로의 의견과 상황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의원들이 “(아프리카에서) 혼인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라고 소개하자 서구권 대의원들은 ‘신선한 문화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가정의 다양한 삶에 대해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안테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이 10월 17일 내놓은 메시지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시노드의 발걸음은 로마 주교(교황)가 들음으로써 정점에 이릅니다. 시노드는 언제나 ‘베드로와 함께(with) 베드로 아래에서(under)’ 활동합니다. 이는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일치를 보증하는 것입니다.”이는 하느님 백성을 이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자꾸 다른 목소리를 내는 보수 성향의 추기경들을 두고 한 말로 해석된다. 보수 성향의 추기경 13명이 시노드의 절차상 문제점을 써서 교황에게 보낸 서한을 누군가 언론에 흘려 며칠 간 시노드홀 안팎이 술렁거리는 ‘스캔들’이 있었다. 자신의 권위를 좀처럼 내세우지 않던 교황은 이날 “베드로 사도는 사도단의 바위이고, 로마 주교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내 “거꾸로 세운 피라미드처럼 으뜸은 기초 아래에 있다”며 권위를 다시 내려놓은 후 “예수님 제자들에게 유일한 권위는 봉사의 권위이고, 유일한 권세는 십자가의 권세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대의원 상당수는 이혼과 재혼, 낙태, 동성결혼 등으로 ‘상처난 가정’을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콜러릿지 대주교가 이 같은 인식을 대변했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 서너 명이 있는 황금기 시절의 로맨틱한 가정을 돌아보고 있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진짜 위기는 너무 좁은 시각으로 결혼과 가정을 이해하고 있는 데 있다. 시노드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주교들끼리 둘러앉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될 것이다.”우루과이의 다니엘 베르옷 추기경은 아버지가 제각각인 아이들을 키우는 미혼모가 많은 남미 현실을 언급하고 “우리는 성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시노드의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이혼 후 재혼자의 영성체 허용 여부에 대해 ‘허용’ 의견을 피력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폴란드 주교단처럼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부류도 있다. 대의원들은 상처받은 가정의 상황을 식별하고, 그들이 진정한 뉘우침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언어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의(敎義)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못을 박았다. 콜러릿지 대주교는 “재혼자 영성체 허용, 동성애, 동거 등 3가지가 매우 골치 아픈 문제”라며 “하지만 이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실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라인하드 막스 추기경은 “교의는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말했다. 식별하고 동반하라이번 시노드의 또 다른 키워드는 ‘식별’과 ‘동반’이다.한 예로 혼인성사의 약속을 깼다 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라면 다른 파혼자와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돌아온 탕자를 반갑게 맞이한 성경 속 아버지의 마음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는 말씀에 대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의원들은 “가정 문제는 워낙 복잡해 획일화할 수 없다. 지역 교회가 지역과 상황을 고려해 복음적 식별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식별 과정에서 지역과 문화 환경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사인 동시에 목자이셨듯, 교회는 엄격하게 가르치는 스승인 동시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는 상처 입고 길 잃은 사랑들을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함께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주장은 그들에게 사목적 관심을 제대로 쏟지 못했다는 대의원들의 반성에 이어 나왔다. 스페인어권 소그룹 대표는 “우리는 그들을 꾸짖는 것을 멈춰야 한다. 우월적이면서 속 좁은 태도로 그들을 대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요지의 토론 결과를 발표했다. 대의원들은 “동정심보다 더 나가야 한다. 슬픔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회개로 초대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이끌려면 그들 삶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분권‘건강한 분권’(healthy decentralisation), 즉 합리적 판단에 따라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말은 교황이 10월 17일 주교 시노드 설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먼저 꺼냈다. “교황이 ‘함께 걷는’ 교회 안에서 각 지역의 온갖 문제들을 식별하는 일에 그 지역 주교를 대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건강한 분권화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교황은 어떤 사안을 지역 주교들의 식별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첨예한 사안에 대한 지역 교회의 사목적 접근을 허용하자고 주장한 독일의 레인하드 막스 추기경 등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기는 하다. 건강한 분권의 필요성은 회기 중 몇 차례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영국 국교회의 티모시 손튼 주교는 “몇몇 의제는 지역 단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회의장에 지역성과 보편성이라는 프레임이 얼마만큼 필요한지에 대한 긴장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역 국경에 따라 죄를 바꾸자는 얘기인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지역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평화신문2015.10.28

124위 복자, 이콘화로 만나다 서울 이콘연구소, 복자 이콘화와 가톨릭대 신학대 개교 160주년 기념 성화 완성 '하느님의 종 124위 복자화'와 '신학교 설립 160주년 기념 성화'에 참여한 작가들. 오른쪽 위부터 장긍선 신부, 최진호, 이정희, 오목훈 작가. 이정훈 기자 이콘 보급과 교육에 힘쓰는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가 최근 대작(大作) 2점을 내놨다.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화와 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성화다.14일 서울 중림동 이콘연구소에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작가들은 “두 작품을 준비하는 지난 시간은 은총 그 자체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대형 이콘 제작에 작가 9명의 정성이 들어갔다. 이들은 성경 속 인물과 교회 성인을 재현하는 이콘에서 한발 나아가 한국 순교 복자들을 토착화한 시각으로 새롭게 표현한 ‘대형 창작 이콘’을 해낸 것이다. 그간 한국 순교 성인의 개별 이콘은 더러 있었지만, 124위 복자를 한 폭의 이콘으로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은 장긍선 신부와 최진호(그리시아)ㆍ이정희(마리아 프란체스카) 작가가 맡아 지난 해 11월부터 판에 천을 덧붙이고 아교를 칠하는 ‘판 작업’에만 두 달이 꼬박 걸렸다.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지에서 공수해온 천연 안료를 쓴 채색작업은 최근에야 마쳤다. 가운데 금박을 두른 비단옷에 왕후의 단아한 풍모를 지닌 한국적인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124위 복자가 서 있다. 도포 자락, 손 모양, 표정은 선명하다. 멀리서 봐도 복자 한 분 한 분 개별적으로 보이듯 입체적이다. 이콘에 쓰이는 특유의 섬세한 표현기법 덕분이다. 작가들은 124위의 나이와 업적 등을 일일이 찾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신기하게도 124위 순교 복자 기념일인 5월 29일을 앞두고 이콘이 완성됐다.최 작가는 “천상 승리의 복자인 이분들은 들뜬 모습이라기보다 결연하고 초연한 달관의 표정이었을 것이라 여기고 표현했다”면서 “마음을 비우고 주님께 잠시 손을 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이 작가는 “양반, 중인, 궁녀 등 복자의 신분과 나이를 고려하고, 신주를 태우고 교회 가르침을 따른 윤지충 바오로는 상복을 입히는 등 다양한 의미들을 담았다”며 “첫 복자 이콘 제작에 함께한 것이 무척 뿌듯하고 기쁘다”고 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이콘은 장긍선 신부와 5명 작가가 함께했다. 전형적인 이콘 기법으로 표현한 금빛 옷자락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좌측엔 검은 수단을 입은 성 김대건 신부가, 우측엔 갓을 쓴 최양업 신부가 서 있다. 하단 중앙엔 신학교 모태인 초가의 배론 신학교가 있다. 무지개 위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의 왼손 복음서에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란 구절이 적혀 있다. 앞으로 신학생들이 보고 되새길 사목자의 참된 소명을 적은 것이다. 240x174㎝에 이르는 이 작품은 대신학교 성당에 설치돼 25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축복한다. 장 신부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신기하게 124위 복자 기념일에 맞춰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에는 복자들의 이끄심이 있었던 것 같다”며 감사해 했다.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이콘은 27일~6월 2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리는 제8회 이콘연구소 회원전 ‘영혼의 빛을 따라서’에서 회원 30여 명의 작품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이정훈 기자cpbc2015.05.15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4>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835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아담이 선악과를 먹고도 죽지 않은 이유는? 죄지은 아담과 카인도 보호하신 하느님 세상 어떤 피조물도 그분의 자비 꺾지 못해 창조주의 축복과 자비 믿으며 희망 키워야 다니엘 매클라이즈 작, 노아의 제사(창세 8,20─9,17 참조)“세상 소풍 끝나는 날 / 아름다웠더라고 / 가서 조용히 말하리라.” 세상 소풍이 끝나고 귀천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추한 것뿐이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창세기의 첫 부분은 우리에게 그 대답을 알려 줍니다. 창세기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12장을 기점으로, 1-11장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닌 온 인류의 기원에 관한 내용이기에 태고사 또는 원역사라고 불립니다. 12-50장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성조들에 관한 전승을 담고 있습니다. 1-11장에는 두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모습과 추한 모습, 선과 악,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죄입니다. 여기서 다시 분기점이 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는 3장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세상을 특징짓는 말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 등)입니다. 1장의 창조 이야기와 2-3장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 다른 전승들이지만, 공통적으로 1-2장은 하느님께서 처음에 생각하신 그대로의 ‘좋은’ 세상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는 3장 이후로 인간의 죄가 거듭되고 그 아름다운 세상이 망가지게 됩니다. 이 세상의 현실은 선과 악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있고, 추하고 악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명확하게, 본래의 세상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었다고 단언합니다. 비록 죄가 세상에 들어와 그 ‘좋음’이 손상되기는 했어도, 세상은 그 자체가 선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첫 페이지에서 이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하는 구약 성경의 세계관은, 창조의 선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요약됩니다. 구약 성경의 세계관은 영과 육을 구별하면서 물질을 악한 것이라고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정면으로 대립됩니다. 물질은 선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세상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3장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4장에서는 카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6장에서는 사람들의 악이 온 땅에 가득 차서 하느님께서 창조를 후회하시고 홍수로 모든 것을 없애기로 작정하시는 데에 이릅니다. 창조 이전과 같은 혼돈 상태로 되돌리시려는 것입니다. 마지막 11장에는 인간이 하느님께 도전하는 바벨탑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3-11장은 인간의 죄가 점점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1-2장과 대조를 이룹니다. 세상은 점점 추하게 변해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3-11장은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매번, 인간의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축복이 죄를 지은 인간을 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봅시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는 날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지만(창세 2,17), 아담을 죽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 아담을 죽이셨다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역사는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쫓아내시면서도 오히려 가죽 옷을 입혀 주시어 그를 보호해 주십니다. 카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 해서 다른 사람이 카인을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카인에게 표를 해주시어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십니다. 오히려, 카인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은 카인을 죽이려는 자에게 일곱 배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죄인을 죽이는 인간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하느님은 방주를 마련하게 하시어 인간과 모든 동물들이 보존되게 하십니다. 홍수가 끝난 다음에는 노아가 바치는 제사의 향기를 맡으시고,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창세 8,21)고 말씀하십니다. 진흙으로 빚어져 죄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아시고, 그런 인간의 죄 때문에 세상을 멸망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경우도, 하느님은 인간의 죄가 하늘까지 이르기 전에 그 교만을 먼저 꺾어 흩으심으로써 인간이 멸망을 피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보면, 3-11장의 이야기들은 죄의 증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매번 그 인간의 죄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 축복의 힘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죄에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더라면 인류 역사는 아담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본래부터 선하게 만드신 세상과 그 세상을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죄보다 더 강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 세상을 망가뜨려도,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자비를 꺾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선합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면 성경의 신앙을 지니고 있지 않고 이 세상의 세계관과 타협한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세상은 타락했고 말세이고 이러다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창세기의 신앙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손상되어 있는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후에 지혜서 저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지혜 1,14).백영민2014.12.18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7)구약성경의 이모저모](//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5675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7)구약성경의 이모저모구약과 신약, 대립 아닌 서로 밝혀주는 열쇠 유다인들은 지금도 3000년 전, 4000년 전 언어로 성경을 외운다.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 이야기를 외우는 것이다. 이는 유다인 힘의 원천이다. 몸과 머리로 외운 것은 오래 간다. 그런 면에서 성경 필사는 참 좋은 방법이다. 몸으로 성경을 경험한다는 면에서 좋다. 성경 본문을 베끼며 가장 완벽한 책을 한자 한자 경험하는 것이다. 또 성경 필사를 하면 성경이 한 부 늘어난다. 그저 '성경 필사'라고만 하지 말고, 정성 들여 사본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하면 어떨까? #마르키온주의 고대 이단주의자로 여겨지는 마르키온은 기원후 85년경 소아시아의 시노페(Sinope)에서 태어나 160년경에 죽은 구약성경 학자다. 그는 일찍이 '유다인의 성경'(구약성경) 연구로 이름을 얻어 그에게 구약성경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 등 총 73권으로 된 성경을 읽는다. 그런데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렇게 성경 목록이 확정돼 있지 않아 현재 외경으로 분류된 책들도 성경으로 읽는 신자들이 있었다. 이에 마르키온은 '정경(正經)의 목록'을 만들었다. 확실한 기준으로 성경과 성경이 아닌 책의 목록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마르키온은 이단이었지만 '정경'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정경이 되려면 경전의 '자기 완전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책 본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책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그는 '유다인의 성경'인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수'라는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구약의 '야훼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 곧 '예수님의 하느님'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두 신이 다른 신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는 구약의 하느님은 전쟁의 신, 율법의 신, 유다인의 신이요, 예수님의 하느님은 평화의 신, 말씀의 신, 만인의 보편적인 신이라고 여기며 신약과 구약을 대립시켜 보았다. 이 부분이야말로 명백한 오류요,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신약과 구약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이 하나이자 서로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관계다. 마르키온은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문제가 유다인의 성경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구약성경을 뺀 무척 얄팍한 성경 목록을 만들었다. 이를 '마르키온 성경'이라 한다. 그의 두 번째 오류는 그가 자의적으로 성경 가운데 일부를 빼 자신만의 성경 목록을 만든 것이다. 거룩한 교회 전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경 목록을 편집하는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결국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갈라질 당시 144개나 되는 공동체가 그의 분파에 참여할 정도로 그들은 대규모 이단이었다. 이처럼 교회에서 분열돼 새 종교를 세운 것도 그의 큰 오류다. 이후 가톨릭 교회 신학자들은 성경을 이해할 때 '마르키온주의(Marcionism)'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키온주의란 신약과 구약을 이렇게 대립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다. #마르키온주의에서 벗어나자 마르키온주의는 현대에도 은연중에 퍼져 있다. 독일의 저명한 구약학자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신부는 오늘날의 '잠재적 마르키온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현대인도 자칫 잘못하면 마르키온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쳉어 신부는 현대에서 세 가지 형태로 잠재적 마르키온주의가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는 '대체 모델'이다. 신약이 구약을 대체한다고 여겨, 심한 경우 신약만 읽으면 되고 구약은 나중에 읽어도 된다거나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둘째는 '상대화 모델'이다. 구약성경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곧 신약성경만이 절대적이고 구약성경은 상대적인 것, 덜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며 신약성경을 준비하는 책이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약속을 실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집트 해방 사건이 덜 중요해졌는가? 예수님이 오셨더라도 하느님께서 구약시대 우리 인간에게 해주신 일은 절대 상대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셋째는 '선별 모델'이다. 구약성경의 일부 내용만 신약성경으로 흡수됐기 때문에 선별해서 보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약속은 얼핏 보면 비체계적이고 난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반영되지 않은 구약성경의 내용은 없다. 구약성경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구세사는 마치 씨앗이 발아해 자라나듯 신약의 예수님으로 열매를 맺는다. 우리 눈에 비체계적이고 난해하게 보이는 내용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임을 믿어야 한다. 어떠한 구절이라도 깊이 성찰하고 깨닫는 자에게는 참 구원의 빛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퇴사자22013.05.29
안식년 사제 맞춤 프로그램 첫 실시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 9일~5월 30일 강의·워크숍 등으로 진행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원장 김용운 신부)이 주관하는 제1기 안식년 프로그램이 9일부터 5월 30일까지 12주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연수원에서 실시된다. 사제와 사목 협력자를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 교회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설립한 엠마오 연수원은 특별히 안식년을 맞는 사제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체계적 교육을 통해 재충전하는 사제 평생교육기관이다. 안식년 사제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미비한 상황에서 마련된 연수원과 안식년 프로그램은 오랜 사목에 지친 안식년 사제들에게 새로운 영적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안식년 프로그램은 사제 양성의 4가지 측면인 인성ㆍ영성ㆍ지성ㆍ사목적 측면을 새롭게 하고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프로그램은 안식년 프로그램에 대한 사제 설문조사를 토대로 짰다. 5개 교구 8명의 사제가 참가하는 1기 프로그램은 △중년기의 통합적 영성(김영수 신부, 전주교구 총대리) △성경 영성(박찬용 신부, 인천교구 원로 사목자) △교부들의 사제 영성(하성수 박사, 교부학 전공) △교회 경영과 리더십 특강(이규석, 대구 카네기연구소 원장) △사목 상담을 통한 인간 이해와 치유 과정(신선미, 전진상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다양한 기도 안내와 영적 수련의 역동성(정제천 신부, 예수회) △사목의 발견-소공동체(전원 신부,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 등을 주제로 한 주간 단위 강의와 워크숍 등으로 진행된다.강의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측면보다는 충분한 휴식과 함께 사목자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목의 열정을 회복하며, 더욱 기쁘게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서로 다른 교구 사제들이 모여 교구 간 벽을 넘는 공동체 체험을 하며, 영성 나눔과 개별 영적 지도를 통해 기도와 영성 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자유 시간을 활용해 제주도 올레길 걷기, 한라산 등반, 낚시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도 있다. 김용운 신부는 “연수원이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개설한 첫 프로그램으로 안식년 사제들에게 덜 알려진 탓에 1기 참가 인원이 많지 않다”면서 안식년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관심을 요청했다. 프로그램 정원은 20명이며, 2기 프로그램은 9월 14일~12월 4일 진행된다. 문의 : 064-796-5227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3.03
![[복음 이야기] (36) 성전 (3)](//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9063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36) 성전 (3)소박했지만 민족 부흥의 표지 즈루빠벨 솔로몬 성전은 오늘날 예루살렘 구시가 동쪽 ‘하람 에슈 셰리프’ 지역에 터했다. 이후 즈루빠벨과 헤로데가 지은 성전도 이 솔로몬 성전 터 위에 재건됐다. 유다인들은 성전 터가 오늘날 ‘황금 돔’으로 유명한 이슬람 엘 악사 모스크 자리이며 안에 있는 너른 바위 위에 계약의 궤를 모신 지성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성전 터 위에 세워져 있는 엘 악사 모스크. 솔로몬이 지어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께 처음으로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신바빌로니아 왕국)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파괴됐다(2열왕 25,1-21). 예루살렘을 함락한 친위대장 느부자르아단은 성전과 솔로몬 궁,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었다. 아울러 성전의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든 성물을 약탈하고 스라야 수석 사제를 비롯한 성전 사제들과 대신들을 바빌론으로 압송해 하맛 땅 리블라에서 처형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해방되어 유배생활 50년 만인 이듬해부터 세스바차르의 지도로 성전 기물과 함께 본국으로 귀환했다(에즈 1-2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은 옛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고 저마다 예물을 바치며 성전 재건에 힘썼다. 하지만 이 재건 공사는 사마리아 귀족들의 방해로 키루스 임금과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까지 16년간 중단해야 했다(에즈 4장). 이방인들과 섞여 이스라엘 땅에 살던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재건 공사에 동참하려 하자 이스라엘 원로들이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사마리아 귀족들이 성전 건축을 ‘반역 행위’로 몰아 페르시아 당국에 고발했기 때문이다.다리우스 임금 통치 2년째 기원전 520년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촉구로 대사제 예수아와 지방 장관 즈루빠벨은 다리우스 임금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해 달라는 장계를 올렸다. 장계에는 ‘키루스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라고 허락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장계를 읽은 다리우스 임금은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 칙령을 발견하고 성전 재건 공사를 그 해 허락했다. 성전 재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다리우스 재위 6년째인 기원전 515년 아다르달(2월 중순~3월 중순) 초사흗날에 완공해 봉헌식을 올렸다. 이날 봉헌식에는 황소 200마리와 숫양 200마리, 어린양 400마리를 제물로 바쳤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숫염소 12마리를 봉헌했다(에즈 6,1-22). 이 성전은 약 500년간 유지됐다. ‘즈루빠벨 성전’이라 불린 이 성전은 성경에 상세한 내용이 없어 그 규모와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대략 가로세로 길이와 높이가 각각 60암마(28~32m)로 전해지며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소박했다. 즈루빠벨 성전이 솔로몬 성전에 비해 얼마나 소박했는지 성경은 “옛 성전을 보았던 많은 노인이 목 놓아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에즈 3,12).계약의 궤는 이미 바빌론 포로 시절에 없어졌고, 이후 다시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즈루빠벨 성전의 성소에는 솔로몬 성전의 10개의 등잔대 대신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1개의 등잔대만 놓였고 제사상과 분향 제단이 마련됐다(1마카 1,21. 4, 49-51). 기원전 333년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적의를 품고 예루살렘을 쳐들어갔으나 야두아 대사제의 환대를 받은 후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유다인의 특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1마카 1,1-7).이후 셀레우코스 왕조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통치하게 됐고 안티오코스 4세(기원전 175~164)가 왕위에 오르면서 유다인을 박해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67년 이집트를 침략하고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을 약탈하고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마구 살육을 저질렀다. 성경은 이날을 “이스라엘 곳곳에는 큰 슬픔이 일어 지도자들과 원로들은 탄식하고 처녀 총각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땅도 그 주민들 때문에 떨고 야곱의 온 집안은 수치로 뒤덮였다”(1마카 1,25-28)고 증언하고 있다.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예루살렘 성채를 회복한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즈루빠벨 성전에 놓인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부수고 새 제단을 쌓아 성전을 정화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하누카’ 축제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그 규모와 화려함이 훨씬 뒤떨어졌지만 즈루빠벨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 부흥의 표지였으며, 이교도에 대한 저항의 중심으로 유다인들이 충심으로 아끼던 성전이었다. 즈루빠벨 성전은 이두메와 출신의 유다 왕 헤로데가 기원전 19년 유다인을 회유하기 위해 새 성전을 지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11.11
![[성경 속 궁금증] 68. 성경에서 광야의 의미는](//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729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68. 성경에서 광야의 의미는시험과 시련의 장소이자 정화ㆍ기도의 장소… 하느님 만나고 현존과 은총 체험하는 현장광야에서 유혹 받으시는 예수(두치오 디 부오닌세냐 작, 1311년). 성경에서 광야는 사막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됐다. '광야' 하면 제일 먼저 황량하고 척박한 땅, 음식과 물이 귀하고 자연환경도 열악한 불모의 사막을 생각하기 쉽다. 광야는 일반적으로 죽음과 쇠퇴, 파멸의 땅을 의미한다. 광야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기아와 갈증이 존재한다. 또 무서운 모래 바람, 위험한 뱀과 전갈 등이 인간의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는 의미가 깊다. 그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민수 14,33). 이 광야 체험에 대한 기억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적의 공격, 부족한 물과 음식, 빗발치는 백성의 불평을 무릅쓰고 민족 지도자 모세는 백성을 이끌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생활을 통해 강한 공동체 의식을 지닐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시험과 시련의 장소이기도 했다(탈출 15,22-26). 동시에 하느님과의 친교 장소로서 그분의 보호와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탈출 16,32). 성경은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또 백성이 궁핍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간청하는 소리를 듣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 은혜란 무엇보다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주는, 가장 기본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의 제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표징들을 보게 된다. 이처럼 구약에서 광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던 장소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해 주시는 곳으로 보호와 영적 쇄신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창세 16,7-13). 구약성경은 광야의 이미지를 사용해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표현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공적 직무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단식과 기도로 40일을 보내셨다(루카 4,1-13).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예수님께 광야는 기도의 장소로 아버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셨던 곳이었다(루카 4,42). 신약성경에서 광야는 고행이나 수련, 정화, 기도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극기 생활을 하면서 회개와 세례를 촉구했다. 이처럼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신명 32,10).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사는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고 불평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광야는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준 장소다. cpbc2013.04.09
![[일치 주간] 한국 일치 운동 발자취…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 설립과 의미](//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0011_1.0_titleImage_1.jpg)
[일치 주간] 한국 일치 운동 발자취…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 설립과 의미한국 교회 일치 운동, 직제 협의회로 한 단계 도약 2009년 1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일치 기도회에서 각 교단 관계자가 교단이 사용하는 십자가와 성경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갈라진 교회를 하나로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은 갈라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는 주간으로, 전통적으로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지낸다. 1월 25일은 사도 바오로의 회심 기념일이다.한국 교회는 매년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직제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기도 자료와 주제로 공동 기도회를 개최하며, 교파 간 대화와 사회 활동을 통해 일치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기도 자료는 브라질 교회에서 준비했다. 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의미 있는 일치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68년 일치 기도 주간을 함께 지내면서다. 1986년 한국정교회와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동참하고 이후 여러 교단이 더 참여하면서 일치 포럼, 신학 대화, 신학생 교류 등 활동을 펼쳤다. 1968년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해 성경 공동번역 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1977년 「공동번역성서」가 선을 보였고, 이는 일치 운동의 가장 큰 결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01년 교단 대표들은 그때까지 진행된 여러 가지 성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을 조직하기로 했다. 이후 주교회의와 NCCK는 공식적인 대화 운동을 전개했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그중 하나가 2009년 ‘네 손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라’(에제 37,17)라는 주제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자료집을 함께 만든 일이다. 자료집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교단이 일치 기도 주간에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한국 그리스도교를 세계 교회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고, 교황청 교회일치촉진평의회와 정교회 등이 함께한 총회는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기회가 됐다.직제 협의회로의 개편이 같은 흐름에서 일치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고, 2012년 12월 한국 그리스도교 교단 대표들은 일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의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로의 개편이다. 직제 협의회는 2014년 5월 설립됐다. 교회 일치를 위한 공식 전담 기구인 직제 협의회가 설립됨에 따라 별도의 기구 없이 사안에 따라 임의 조직 형태로 전개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직제 협의회에는 가톨릭과 한국정교회, NCCK를 비롯해 NCCK 회원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느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전까지 진행된 일치 운동이 일치에 대한 관심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직제 협의회를 통한 일치 운동은 신학적 대화를 포함한 본격적 일치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직제 협의회는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 위원회 모델을 따랐다.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세계교회협의회 탄생 이전부터 갈라진 교회들의 일치를 위한 신학과 직제에 관심을 뒀던 가장 중요한 전통 중 하나로, 신학적 대화를 바탕으로 한 선교적 과제를 다루고 있다. 직제 협의회의 설립 취지는 △가깝게 사귀기 △함께 공부하기 △함께 행동하기 △함께 기도하기를 통해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교파 간 신앙적 친교를 이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가 공식 기구를 통해 일치 증진은 물론 선교 협력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직제 협의회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일치 아카데미다. 각 종단 신학자들이 나서 쟁점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기본 교리와 제도 등을 강의하는 아카데미는 타 종단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신학적 차원에서 불식시킴으로써 일치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1.14
 이경도·순이·경언 후손 이순주씨](//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6561_1.0_titleImage_1.jpg)
[시복의 기쁨 안은 124위 후손들](5) 이경도·순이·경언 후손 이순주씨“남은 여생, 순교정신으로 살겠다” 복자 이경도ㆍ순이ㆍ경언의 후손인 이순주 할머니가 자신이 색칠하고 공부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새로나는 성경공부」(전3권) 인쇄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세택 기자 “아흔이 다 되도록 신앙으로 살아오니 이런 일도 있네요. 꿈인지, 생시인지 벅찬 기쁨뿐입니다.”순교 복자 이경도(가롤로, 1780∼1802)ㆍ순이(루갈다, 1782∼1802)ㆍ경언(바오로, 1792∼1827)의 후손인 이순주(아기 예수의 데레사, 89, 서울 잠원동본당) 할머니는 시종 감격스러워했다. 16일 광화문광장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맨 앞에 앉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예식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슬하 10남매 가운데 세 아들을 신학교에 보냈지만 15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맏아들 강덕행(전주교구) 신부만 사제로 살고 있는 터여서 아쉬움이 남던 차에 선조들이 시복의 기쁨을 안아 감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구순을 앞두고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 「새로나는 성경공부」(전 3권)에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림을 덧칠한 것을 자식들이 영인본으로 만들어 편지와 함께 교황에게 선물로 드려 더욱 감격스럽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외조부였던 이익의 학풍을 이은 이윤하(마태오)와 권철신(암브로시오)ㆍ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의 누이인 안동권씨 어머니의 슬하에서 태어난 3남 2녀 중 세 분이 한꺼번에 복자가 되셨으니 이런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온 집안이 다 감격에 젖어 있었지요. 그래서 시복 소식과 함께 교황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제 인생 희로애락 가운데서 중심이 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그동안 공부한 「새로나는 성경공부」를 교황님께 선물로 드리게 됐습니다.”내년으로 구순을 맞는 이 할머니는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손을 뻗었던 여인처럼 작은 정성을 드린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이 책은 평생 무지하게 살아온 제가 당신 말씀만이 살 길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생애의 뜨거운 감사가 담겨 있는 선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의 노구조차 무색하게 하실 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시복을 해주신 교황님께 특히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시복식에 가서 교황님을 직접 뵙고 오니 마치 예수님을 뵌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1968년 10월 로마 성 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24위 시복식에 가려다가 남편(강재희 베드로, 2012년 선종)이 병이 나는 바람에 가지 못한 한을 이번에 풀었다”는 할머니는 “시복예식에 만일 나쁜 일이 생기면 제가 거기서 대신 죽고 싶다는 순교정신으로 갔는데, 시복예식이 무사히 마무리돼 기쁘기 짝이 없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또 “1980년에 서울로 이사하기까지 전주에 살면서 본당 행사를 할 때마다 치명자산에도 갔는데, 그곳에 묻힌 순교자들이 제 선조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며 “몇 해 전 이분들이 저희 집안 선조라는 사실을 오빠에게서 들은 게 생각나 신청을 하고 시복예식에도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 영광을 위해 여생을 순교정신으로 살며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봉사라도 하겠다”고 다짐하고 “시복식을 보고 나니 마음만은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래서 요새 기도는 주님께 무언가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며 “육체적 순교는 하지 못하는 시대지만 정신적으로는 순교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화신문201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