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73. 성경에서 종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421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73. 성경에서 종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나요?하느님께 대한 헌신과 온전한 순종 의미성모 마리아는 주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에게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수태고지'(산드로 보티첼리 작, 1490년). 종은 일반적으로 남의 집에서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종은 하느님의 '노예'를 가리키기 위해 흔히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래서 종은 주인에게 예속되고 법적 권리가 제한돼 있던 사람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경에서 종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종이라는 말은 하느님께 대한 헌신이나 그분을 위한 복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종' 또는 '하느님의 종'이라 불린다(로마 1,1). 여기에는 주님 뜻에 순종하고 그분 뜻을 실천하며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들고 하느님 뜻에 자신을 종속시키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 12,11).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는 그들 자신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영원한 구원으로 이끌어 준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2).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도들과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종'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친 사람들은 그분의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쓸모없는 종'이라고까지 부르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이처럼 섬기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27). 결국 가장 큰 사람은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참으로 남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응답이 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13).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은 항상 정의, 평화, 기쁨의 삶을 살게 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로마 14,17-18). 그리스도의 종으로 봉사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느님 말씀과 새 계약에 봉사하는 일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2.4). 성모님은 천사가 주님 탄생을 예고할 때 자신을 '종'이라고 불렀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이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자신에게서 이뤄지도록 자신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종이라는 칭호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다.cpbc2013.05.21
![[문희종 주교] 본당 신자들, 기뻐하면서도 아쉬움에 눈물 흘려](//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4433_1.0_titleImage_1.jpg)
[문희종 주교] 본당 신자들, 기뻐하면서도 아쉬움에 눈물 흘려문희종 주교 임명 발표 7월 24일 수원교구청을 찾은 신임 문희종 주교(가운데)가 교구장 이용훈(오른쪽) 주교와 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는 문 주교 임명으로 한국교회에서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2명의 보좌 주교 시대를 열게 됐다. 주교 임명이 발표된 7월 23일 저녁부터 본당 신부로서 마지막 주일 미사를 주례한 26일까지 3박 4일 동안 문희종 주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섬기는 목자가 되겠다”였다. 그의 사제수품 성구는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7)이다.O…“오늘 저녁 7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문희종 요한 세례자 신부님을 수원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하셨습니다. 새로 서임되신 주교님을 큰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23일 저녁 8시께 안산 본오동성당. 7시 30분에 봉헌된 본당 평일 미사 영성체 예식 후 교구 사무처장 김상순 신부가 신자들에게 주교 임명 사실을 깜짝 발표했다. 신자들 표정에는 놀라움과 기쁨, 슬픔이 교차했다.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와 교구청 신부들이 참석해 주교 목걸이와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하했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이복자(필로메나, 72) 할머니는 임명 소식을 듣고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70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문 주교님처럼 인품이 좋고, 신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은 처음이었다”면서 “기쁘면서도 아쉬워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문 주교의 사제 수품 동기 이상선(수원교구 사제평생교육실장)ㆍ이병문(산본본당 주임)ㆍ이근덕(교구 복음화국장) 신부는 이날 저녁 성당으로 문 주교를 찾아와 조용히 주교 임명 발표를 기다렸다. O…이튿날 아침 수원교구청을 찾은 문 주교는 교구청 성당에서 교구장 이용훈ㆍ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교구청 사제, 직원들과 인사하고 함께 기도를 바쳤다. 이용훈 주교는 “오랫동안 새 주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큰 선물을 주셨다”면서 “수원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새 주교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성효 주교는 “교구에 사목적 과제가 많이 있는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교님이 한 명 더 생겨서 정말 큰 위로가 된다”며 “주교가 한 명 늘어난 만큼 신자들이 더 자주 주교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오후에는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머물고 있는 여주 산북공소를 방문. 최 주교는 “‘(보좌주교가) 곧 나온다. 나온다’는 이야기만 있고, 발표되지 않아 많이 기다렸다”며 “문 주교님은 모든 일에 철저하시고, 교회에 대해 잘 아시는 ‘준비된 주교님’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 주교는 이날 저녁 본오동성당에서 열린 ‘청소년을 위한 일일 호프’에 참석해 신자들과 함께했다. O…25일에는 이용훈ㆍ이성효 주교와 함께 염수정(서울대교구장)ㆍ정진석(전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을 잇달아 예방했다. 또 주한 교황대사관을 찾아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앙 선서를 하고 사도좌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염수정 추기경과 만남 자리에는 서울대교구 총대리 조규만 주교를 비롯해 유경촌ㆍ정순택(서울대교구 보좌) 주교가 함께해 축하를 전했다.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가 신자가 많은데 하느님께서 더 잘 사목하라고 보좌주교님을 한 분씩 더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며 기쁘게 살아가면 어려움은 사라질 것”이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염 추기경은 성경을 선물했다.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 문 주교를 맞이한 정 추기경은 “하느님 은총을 많이 받아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수원교구는 축복받은 교구”라며 “이제 문 주교님까지 났으니 교구가 더욱 알차게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 추기경은 문 주교에게 저서 「행복 수업」을 선물했다.O…26일은 문 주교가 본당 신부로서 마지막으로 주일 미사를 집전한 날이었다. 미사 끝에 송별 예식이 열리자 성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현창수(대건 안드레아) 총회장이 송별사를 읽다가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자 신자들의 훌쩍이는 소리는 더 커졌다. 현 총회장은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해주셔서 신부님이 오신 뒤부터 늘 성당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면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을 특별히 챙겨주시고 사랑해주셨다”고 말했다.문 주교는 “1년여 동안 제가 혹시라도 섭섭하게 해드린 일이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달라”고 청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이튿날 새벽 평일 미사를 집전한 후 문 주교는 신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날 새벽 미사에는 첫 영성체반 아이들이 참례해 준비한 축가를 선물했다.글=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 평화신문2015.07.29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3>](//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8350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역사서를 왜 읽을까? 성경의 역사서들은 사실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사진은 '사해문서' 사본이 발결된 쿰란 유적지. 12월 초에 구약 시대의 역사를 훑어 보았지만, 많이 잊어버리셨을 것입니다. 그 역사는 몇 번 반복하지 않으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여다볼수록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도 많고, 등장 인물도 많고,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을까요?역사서를 읽는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역사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탈출기에서 보았습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다음에는 교리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역사를 겪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은, 말하자면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라는 식의 추상적인 개념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체험한 역사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그 역사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로 들려주던 것이 나중에는 문서로 기록되고, 그렇게 해서 역사서들이 시작됩니다. 그 책을 통해서 후손들이,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역사서를 읽는 두 번째 이유는, 역사서들이 사실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서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역사 기록은, 진공 상태처럼 중립적인 사실들의 열거일 수 없습니다. 일간 신문을 쓴다 해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은 일들을 기록할 수는 없고, 따라서 선택이 필요합니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 가운데 어떤 일들을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느냐, 여기에는 이미 역사 해석의 문제가 연관됩니다.질문. 역사책을 읽을 때에 기록자의 해석이나 판단은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찾아내려고 해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멸망한 것이 기원전 587년인지 586년인지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그저 그 사실을 알아서 무엇합니까? 오히려 우리는 그 사건이 지금의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찾아야 하고, 역사 기록자는 그 작업을 도와줍니다. 우리보다 앞서 그가 그 사건들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역사서가 작성된 시기라는 문제는 역대기를 읽을 때에 다시 생각하게 되겠지만, 지금부터 역사서들을 읽을 때 늘 염두에 둘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탈출기를 읽는다면, 이집트 탈출 시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탈출기가 기록된 시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은 대개 국가적 위기를 겪을 때에 작성되었습니다.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 기원전 6세기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바빌론 유배를 겪게 되었을 때,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시대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이스라엘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역사서들은, 위기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저런 인간적 요인들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시편 77,20-21에서는 “당신의 길이 바다를, 당신의 행로가 큰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고, 이끄셨을 것이라고 믿지만, 물속을 걸어가셨으니 발자국이 남지 않지요. 그냥 맨눈으로 역사를 보아서는 하느님께서 지나가신 흔적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사서들은 그 발자국을 짚어 줍니다. 여기,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다고 가리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그렇게 가리켜 보여 주는 역사서들이 필요했습니다.앞으로 읽을 역사서들의 분류에 대해서만 미리 언급해 두겠습니다.먼저 형성된 것은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기에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속합니다. 이 책들은 특히 남 왕국 유다가 멸망했을 때, 그 멸망을 배경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명기 다음에 이어지는 이 책들은, 신명기의 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이미 신명기계 역사서가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다시 작성된 역사서가 역대 기계 역사서들입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를 보통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이 책들은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 작성되었습니다.그 밖의 역사서들은 “기타 역사서”라고 하는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입니다. 마카베오기는 그래도 다른 역사서들과 비슷한 역사서이지만, 다른 책 네 권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의 역사서는 아닙니다.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역사서들을 읽으면서, 물속에 새겨져 있는 하느님의 발자국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하느님, 저희 귀로 들었습니다.저희 조상들이 저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그들 시대에 당신께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시편 44,2). 백영민2015.03.04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6)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시편 137,1)](//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8076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6)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시편 137,1)유배지에서 시온을 떠올리며 눈물 흘려 바빌론 모형. 유배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기원전 587년, 바빌론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타 없어지며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유다 주민들이 바빌론으로 유배 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유배는 철저한 실패를 의미했고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상황을 파악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50년간의 유배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그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과 바빌론에 가서 살고 있던 이들의 처지를 각각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 부류로서 이집트로 내려간 유다인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기원전 6세기에는 아직 생존에 급급했고 더 늦은 시기에 이르러서야 중요한 유다인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먼저는 유다 땅에 남아있던 이들이 있습니다. 유배를 간다고 해서 유다 땅에 있던 이들이 남김없이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이 텅 비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유배를 간 사람의 수는 2만 명가량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인구 대부분은 유다 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또, 아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다음 식민 정책으로 이민족을 이스라엘 땅에 살게 하여 사마리아인들의 피가 섞이게 하였지만,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바빌론은 유다 땅에 다른 민족들을 옮겨 살게 하지는 않았습니다.그래도 피해는 적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고, 농경에도 엄청난 피해가 있었습니다.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는 사이, 에사우의 후손 에돔은 영토를 확장시켜 헤브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 21절로 된 오바드야서는 그래서 에돔을 고발합니다. “너는 네 아우의 날을, 그 재난의 날을 흐뭇하게 바라보지 말아야 했다. 유다의 자손들이 멸망하던 날 너는 그를 두고 기뻐하지 말아야 했다”(오바 12).다른 한편으로, 바빌론인들은 백성들에게 충성을 받아내기 위해 유배 간 이들의 땅을 유다에 머물러 있던 가난한 이들에게 분배했습니다. 유다를 통치하기 위해 바빌론은 그달야를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그는 미츠파에 자리를 잡고 재건을 시작하려 했으나, 다윗 왕실에 속한 이스마엘의 지휘 하에 유다인들이 3개월 만에 그를 암살합니다. 그렇게 암살을 해 놓고서는 바빌론의 보복이 두려워 많은 이들이 베들레헴 근처로 피신했다가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그달야 곁에 머물러 있고자 했던 예레미야도, 그달야가 암살된 후 강제로 이집트로 끌려가게 됩니다.종교적인 측면에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 터에 모여 어떤 경신례를 거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예루살렘 파괴는 종교적으로 큰 위기를 가져왔는데, 유배의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신명기계 역사가 편집되었습니다. 예언서들의 편집 과정도 진행되고 있었을 것입니다.바빌론에 유배 간 이들의 처지를 잘 보여주는 것은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시편 137,1)라는 시편 구절입니다.열왕기 하권 24장 14-16절은 첫 번째 유배에 끌려간 사람들의 수를 전해 주고, 예레 52,28-30은 세 차례에 걸친 유배로 끌려간 이들의 수를 전해 줍니다. 그 두 번째 본문에 따르면 기원전 597년에 3023명, 586년에 832명, 582년에 745명, 총 4600명이 유배를 갔다고 되어 있는데, 이 숫자가 가장들만을 헤아린 것이라면 유배자의 수는 약 2만 명이 될 것입니다.숫자상으로만 본다면 유배를 가지 않은 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말하면 귀족, 관료, 사제, 율법학자, 기술자, 토지 소유주 등이 모두 유배를 간 것이기에 그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바빌론인들은 유배 간 이들을 바빌론 남부의 마을들에서 한데 모여 살게 했고, 그들은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면서 토지를 구입하고 집을 짓는 등 삶을 조직해 갔습니다. 물질적으로 말한다면 이들은 과거에 유다 땅에서 누리던 것과는 비교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빌론에 정착했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가상으로 작성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다니엘서에서는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빌론 조정에서 임금을 섬겼다고 말하지요. 바빌론이 멸망한 후에도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헌작 시종으로서 임금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기원전 538년에 키루스가 칙령을 내려 유배 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했을 때에도, 많은 이들은 그대로 머물러 살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살 만했기 때문이겠지요.그들의 더 깊은 위기는 종교적인 것이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다윗 왕조의 임금이 유배를 가게 되며, 약속의 땅이 바빌론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보존할 수 있습니까? 많은 이스라엘인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 틀로는, 성전 파괴와 유배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은 시온을 선택하신 분,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분,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에제키엘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 제2 이사야는 바빌론의 종교에 접하게 되는 상황에서 유일신 사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하며 귀환의 기쁜 소식을 알릴 것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08.18
![[성경 속 궁금증] 74. 성경에서 뿔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566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74. 성경에서 뿔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하느님의 능력과 도움ㆍ승리의 영광 상징머리에 뿔이 나 있는 '모세 조각상'(미켈란젤로 작, 1515년). 일반적으로 뿔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을 가진 자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예부터 황소 뿔에 기름을 담아 그 기름을 왕이나 예언자, 사제에게 붓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기름 부음을 받는 자에게 하느님의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네 모서리 장식으로 뿔이 달려 있었다. 성경에서도 뿔에 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한다. 구약성경에서 들소의 뿔은 하느님의 힘, 우리를 지켜주는 표징으로 왕이 백성을 보호하거나 원수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종종 사용됐다. "그는 맏이로 난 소, 그에게 영예가 있어라. 그의 뿔은 들소의 뿔. 그 뿔로 민족들을 땅 끝까지 모두 들이받으리라. 에프라임의 수만 명이 그러하고 므나쎄의 수천 명이 그러하리라"(신명 33,17). 뿔을 든다는 것은 힘과 기쁨과 건강과 우월함을 나타낸다. "주님이신 그분께 맞서는 자들은 깨어진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천둥으로 호령하신다"(1사무 2,10). 뿔은 힘의 상징, 특히 왕적인 힘의 상징이 된다. 따라서 뿔을 베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압의 뿔이 잘리고 그의 팔이 부러졌다. 주님의 말씀이다"(예레 48,25).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보면 모세에게 뿔이 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중세 교회의 모세에 대한 그림을 보면, 머리에 뿔이 난 모세를 그리거나 조각한 것이 많다. 모세 머리에 뿔이 나도록 조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그 원인이 라틴어 성경의 번역 오류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어 흥미롭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증언판 두 개를 들고 내려왔다. 그런데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쳐다보니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서 모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탈출 34,29-35 참조). 이때 모세의 빛나는 얼굴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얼굴 살결이 빛나다'와 '뿔이 나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예로니모 성인은 구약성경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에서 이 대목을 그의 얼굴에 뿔이 돋은 것이라고 번역했다. 미켈란젤로는 이 성경 구절에 근거해 모세상을 조각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후대 주석가들은 이 번역이 본래 의미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모세 얼굴이 빛이 났는데 그 형태가 뿔 모양이었다'라고 해석하게 됐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고 하느님 영광이 모세 위에 머물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도 하느님의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을 상징하는 일곱 뿔을 갖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묵시 5,6). 성경에서 뿔은 하느님의 능력과 도움, 승리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cpbc2013.05.29
![[성경속 궁금증] 78. 성경에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생활했나?](//cpbc.co.kr/CMS/newspaper/2013/06/rc/460171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78. 성경에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생활했나?주로 긴 띠처럼 생긴 옷감으로 만든 외투 입어… 의복에 술 만들어 하느님 명령 기억하고 실천푸생, '룻과 보아스',1660~166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참석하는 자리에 따라 옷을 맞춰 입는다. 특히 여성이 외출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옷이다. 오늘날에도 공적으로 입는 옷은 보통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구약의 제사장 의복은 황금을 사용할 정도로 화려했다(탈출기 28장 참조). 이 제의는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 하느님을 섬기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표징이 된다. 그래서 제사장이 이 제의를 갖춰 입지 않고는 성막에 들어가지 못했고 제사도 드리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속옷과 겉옷을 입고 허리띠를 띠고 샌들을 신고 살았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대체로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 한여름에는 낮에 40℃를 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고 밤이나 겨울이 되면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두툼한 옷을 입어야 했다. 기후의 특이성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겉옷인 외투가 필수였다. 겨울이 되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기도 했다. 예수님이 겉옷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 참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입은 것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긴 띠처럼 생긴 옷감으로 만든 외투였다. 가난한 이들은 이 겉옷을 잠잘 때 이불로 사용했다. 그래서 율법에 따르면 겉옷을 담보로 잡아도 해질 때까지는 반드시 돌려줘야 했다(탈출 22,26-27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행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복은 주변 여러 나라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남성들의 복장은 대대로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내복은 가벼운 옷감으로 만들고 겉옷은 무겁고 따뜻한 옷감으로 만들었다. 당시 유다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외투를 입고 예를 갖췄다. 돈이 있는 사람은 외투를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여러 벌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다. 실제로 근동지역에서는 여러 벌의 겉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자라고 인식됐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복에 술을 만들어 그것을 볼 때마다 하느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스스로 일깨웠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민수 15,38-39).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 하나에도 신앙적인 의미가 있게 했다. 그래서 자신을 내세우기를 좋아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옷 술을 크게 해 자신들이 주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랑하려 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의복보다는 마음의 관계이다. 베드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거룩한 사제들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영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1베드 2,5).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 어떤 마음의 옷을 입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cpbc2013.06.25
![[신앙단상] 유다와 은화(1)](//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1890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유다와 은화(1)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마리아가 잔치의 식탁에 앉아계신 예수님께 향유를 쏟아부은 사건은 성경의 유명한 일화이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는 이 사건 바로 다음에 유다의 배신을 기록하고 있다(마태 26,6-16; 마르 14,3-11).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 면전에서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마리아를 비난했다. 왜냐하면 향유값이 당시 은화 300데나리온이 넘는데,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 정도의 가치가 있었기에 현재로 치면 대체로 1년치 평균 근로소득에 해당하는 고가였기 때문이다. 한편 유다는 ‘은돈 서른 닢’을 예수님 몸값으로 받았다(마태 26,15). 이때의 은돈은 향유값을 계산한 데나리온과는 달리 세켈이라는 단위를 썼다. 1세켈은 나흘 치 품삯에 해당하기에 계산해보면, 유다가 받은 돈은 향유값에 훨씬 못 미친다. 은 서른 세켈은 소가 남의 종을 들이받았을 경우 배상금에 해당한다(탈출 21,32). 또한 즈카르야가 한 달 사이에 도살될 양 떼를 돌보고 받은 품삯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값어치를 매겨놓은 품삯(즈카 11,12-13)이라고 한다. 결국 유다가 받은 은돈 서른 닢은 그다지 크지 않은 금액이며 예수님을 종에 비교할 만큼 하찮게 여겼음을 상징하고 있다.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거액을 챙긴 것이 아니라면, 배신의 동기는 금전적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다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된 사도였고(마태 10,1-5), 특히 회계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다(요한 12,6). 유다가 상당한 비중을 지닌 제자였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유다의 배신은 단순히 일시적인 우발적 충동이나, 평소 사려 깊지 못한 경솔함에서 비롯된 행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다 자신에게도 존재의 명운을 걸고 선택할 만큼 중대한 결단이었기에 사후 잘못을 뉘우쳤을 때 자살(마태오 27, 3-10)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유다가 예수님과 상당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언제 배신을 결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행위로 나간 그 시점에는 단호한 결단이 있었고, 그러기까지 유다의 내면에서 회의와 갈등이 고조되다가 한순간 격렬한 확신에 휩싸이는 절정에 이르러 극단적 행위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제자로서의 신뢰관계를 내던지는 행위였으므로 예수님께 대한 확신에 이를 만큼의 혐오와 반감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만일 유다가 단순히 실망한 것이라면 그냥 떠나면 되었을 텐데 적극적인 밀고행위로 나아간 것은 그의 내면이 그만큼 반감으로 가득 찼음을 보여준다. 나는 향유 사건이 그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짐작해본다. 성경이 향유 사건 바로 다음에 유다의 배신을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다가 평소에 돈을 탐내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기에 더더욱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데 격렬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하늘나라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스승 예수와 세속의 삶의 가치관을 가진 제자들 사이의 인식 차이와 몰이해는 성경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특히 이 향유 사건은 예수가 복음선포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루카 4,18)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서 서로 엇갈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재물을 써야 한다는 분배적 정의를 내세웠고 이것은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마리아를 두둔했다. 그리해서 유다가 배신에 이르게 되었을 때 다른 제자들 또한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고, 그 분위기 속에서 배신하는 제자마저 나왔을 것이다. 평화신문2014.10.01
![[복음 이야기] (34) 성전 (1)](//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652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34) 성전 (1)‘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표징 하느님께서는 집을 짓고 특정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을 금하셨다. 사진은 판관이나 왕이 사용했던 천개를 재건한 모습.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만군의 주님,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주님의 앞뜰을 그리워하며 이 몸은 여위어 갑니다.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늘 당신을 찬양하리니. 셀라.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 84,1-11).이와 같이 시편은 20회 이상이나 성전의 아름다움과 신심 깊은 모든 유다인의 성전에 대한 애착을 노래하고 있다. 유다인에게 성전은 삶의 핵이며 중심이었다.이스라엘에 있어 성전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유다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일신에게는 오직 하나의 성전, 즉 하느님께서 그렇듯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인 오직 하나의 성전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세운 성전을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이단자의 것”이라고 유다인들은 경멸했다.유다인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늘 함께하신다는 ‘현존의 표징’이었다. 이 성전을 구약성경에선 히브리말로 ‘미케다쉬’와 ‘헤칼’로, 신약성경에선 헬라말로 ‘이에론’ ‘나오스’ ‘오이코스’라고 표현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성전을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족장 시대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위한 특별한 성전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나타나시고 족장들은 하느님께서 현시하신 곳에 희생 제단이나 돌기둥으로 기념하는 것으로 족했다(창세 28,22). 그러나 이스라엘이 민족 단위로 성장하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민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게 됐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간의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 이후 판관 시대에는 계약의 궤를 모신 ‘성막’이 그 역할을 했다(탈출 25장 참조). 특히 판관 시대(기원전 1250~1050년께)에는 성막이 정치ㆍ종교ㆍ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었다. 이 성막이 있었던 ‘길갈’(여호 4,20)ㆍ‘스켐’(여호 24,1)ㆍ‘실로’(1사무 1,3)는 이스라엘의 중심이 됐다.왕정 시대로 통일 왕국을 건설한 다윗은(기원전 1010~970년) 성전을 건축(2사무 7,2)하려 했다. 그는 건축 자재를 구하고 보물을 모으며 성전 터를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 하느님께로부터 성전 건축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1역대 22,8; 2사무 24,18-25). 그래서 그의 아들 솔로몬이 기원전 968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해 7년 후에 완공했다(1열왕 6,37-38). 따라서 유다인이 봉헌한 하느님의 첫 성전은 예수님 탄생 1000년 전에 지어졌다.사실 율법은 집을 지어 우상 숭배하는 것을 금하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곳에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명하고 있다(신명 12장 참조).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했을 때 나탄 예언자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 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2사무 7,5-7)며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다. 또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지어 바칠 수 있는 집이 어디 있느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이사 66,1) 하고 하느님께 어떤 집을 지어 드릴 수 있는지 반문한다. 첫 그리스도교 순교자 스테파노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이는 예언자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늘이 나의 어좌요 땅이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냐? 또 나의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않았느냐”(사도 7,48-50)며 성전을 중시하지 않았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시면서 성전에 가서 유다인들과 같이 성부이신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10.29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2>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20)](//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6986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20)신명기 법전에 기록된 구원과 멸망의 역사 신명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신명기 법전이다. 사진은 신명기 법전을 기록한 토라 두루마리.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지난 주의 주제였습니다. 신명기는 그 한 분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겁니다. 신명기가 계명을 말하고 법전을 말한다면, 그것은 모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만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은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니(7장 참조), 이스라엘은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신명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12-26장의 신명기 법전입니다. 탈출기의 계약 법전, 레위기의 성결 법전에 이어 오경에서 세 번째로 나오는 법전입니다. 전체적인 짜임새 역시 다른 법전들과 비슷합니다. 신명기 전체의 틀을 본다면, 십계명이나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 등 아주 근본적인 내용들은 5-11장에서 이미 언급됩니다. 12-26장은 더 개별적인 문제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개별 규정들 다음으로는 27-28장에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다.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만을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신명기 법전의 첫머리에는 제사 장소에 관한 규정이 나오는데(12장), 우상 숭배만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도 예루살렘에서만 드리게 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교통도 불편하던 시대에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 이유는, 신명기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지역에 성전이 있게 되면 마치 서로 다른 신들을 섬기는 듯이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이 갈리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우려했던 것입니다.다음으로 법전에 흩어져 있는 사회적 계명들에서는 “고아, 과부, 이방인”을 보호하라고 명합니다. 그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입니다. “동족”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동족”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형제”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서로 형제들이므로, 땅이 없거나 가장이 없어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고아, 과부, 이방인”에 대해 함께 책임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점은 성경의 법전을 읽을 때에 주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인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고아, 과부, 이방인”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 역시 하느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돌보시는 분이 내가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나도 그분의 뜻에 따라 그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 밖에도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 있는 법전 본문 다음에는 축복과 저주가 뒤따릅니다. 주의해서 볼 부분입니다.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법전들에는 법률 조항들 다음에 축복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법률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온갖 종류의 축복이 약속되고, 법률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많은 저주들이 뒤따릅니다. 주변 다른 민족들의 경우 신들도 많다 보니 저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그런데 신명기 법전에서 축복과 저주의 내용은 땅에 집중됩니다. 이스라엘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여 그분의 율법을 지킨다면 하느님께서 주실 그 땅에서 오래오래 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고 나서 배가 불러 하느님을 잊는다면,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땅을 주신 그분을 잊어버린다면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로 너희를 흩으실 것”(28,64)이며 “이집트로 도로 데려가실 것”(28,68)입니다. 이집트로 도로 데려가신다는 것은 이집트 탈출을 취소함을 뜻합니다.법전만이 아니라 신명기 전체에서 땅은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땅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가 강도 높게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신명기의 형성 시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 안에서 법전 부분이 비교적 오래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전체가 완성된 것은 유배 후였고, 물론 법전에도 그 시기에 첨가된 부분들이 있습니다.이렇게 이스라엘이 땅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 신명기의 본문들이 완성되었습니다. 신명기의 마지막 편집자는 유배를 겪었고, 이스라엘이 그 땅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땅을 잃어버린 이유를 물었습니다(신명 29,23 참조). 그리고 그가 찾은 대답이,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 들어가서는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경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29,25-28 참조).그런데 신명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쫓겨난 후에라도, 유배 간 그곳에서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시 모아들이시며 번성하게 해주시리라고 말합니다. 이미 땅을 잃어버린 신명기의 독자에게 이러한 말씀은, 좌절하지 말고 다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됩니다.한 걸음 더 나가 봅시다. 신명기에 따르면, 약속된 땅에 들어간 다음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땅을 잃어버린 다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을 잃어버리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생명이신 하느님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멸망은 구원 역사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백영민2015.02.25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교황, 교회를 어머니에 비유… 성령에 의지 강조 【외신종합】 교회는 ‘기업가’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다. 교황은 12월 19일 바티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아침 미사 강론을 통해 “어떤 곳들에서는 교회가 어머니가 아니라 기업가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며 이것이 교회를 불임의 상태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두 여인 마노아의 아내와 엘리사벳이 성령의 능력으로 삼손과 요한 세례자를 낳았다는 내용의 이날 독서와 복음을 인용, 교회 안에는 이기심에서 빚어지는 불임이 많다면서, 성경에서 불임은 더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님은 불임의 상태에서 새 생명을 다시 시작하실 수 있다”고 밝힌 교황은 “인간이 쇠진해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에 은총이 오고, 구원이 온다”고 말했다. 삼손의 어머니와 요한 세례자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께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고 교황은 지적했다. 교황은 “교회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사람들의 양심을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길 때, 바리사이의 길, 사두가이들의 길, 위선의 길을 걸을 때, 그 교회는 불임 상태”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교회가 ‘나는 온갖 것을 다 했지만 이제는 끝났고, 더 나아갈 수 없다’고 고백할 때, 성령께서 오신다”면서 교회는 어머니이지만 하느님의 새로움에, 성령 능력에 열려 있을 때에만 어머니가 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2014.12.24
![[일치 주간]가톨릭·정교회·성공회 평신도에게 듣다, 일치 운동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9994_1.0_titleImage_1.jpg)
[일치 주간]가톨릭·정교회·성공회 평신도에게 듣다, 일치 운동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형제교회 평신도들끼리 만남과 대화로 간극 좁혀야 지난해 10월 수도교회에서 ‘떼제기도와 함께하는 하루 피정’에 참석해 함께 떼제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가톨릭과 개신교, 성공회 젊은이들. 평화신문 자료사진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되는 삼위일체’(「일치교령」 3항) 신비는 그리스도인이 왜 일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1968년부터 교황청과 세계교회협의회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을 지내왔지만 일치의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특히 ‘아래에서의 일치’는 아직 기대하기가 어렵다. ‘교회 분열’이라는 부끄러운 현실을 자각할 뿐이다.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 위원회 한미숙(코린, 포콜라레 한국지부 종교 간 대화 담당) 위원과 한국 정교회 출판사에서 번역을 맡고 있는 박노양(그레고리우스)씨, 월간 「종교와 평화」 이계우(안드레, 대한성공회) 편집장 등을 만나 ‘아래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들었다.한미숙 위원은 우선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일치에 이르는 길로 ‘대화’를 꼽았다. 일치 기도회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다 돼 가는데도 교회 공동체 전반에 교회 일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에서다. 나아가 일회성 행사를 지양하고 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형제들 간 ‘공유의 장’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계우 편집장도 “평신도 차원의 일치 운동이 확산되려면 무엇보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현실 문제나 사회 현안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갈라진 형제들 간에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먼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회가 같은 성경을 갖고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고 그다음에 구체적인 사랑의 만남과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신학적 논쟁’보다는 평신도들 간 풀뿌리 차원의 만남과 교류를 선행하고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됐다. 그러나 신앙적 일치를 추구하지 않는 일치 운동의 기반은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궁극적으로는 신학적, 교리적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노양씨는 “신앙의 일치를 가장 완성된 형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적어도 일치의 차원에서 신앙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며 “교리가 우리 신앙의 표현이라고 볼 때 가장 궁극적인 일치는 신학적, 신앙적 일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치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뭘까. 한미숙 위원은 근거 없는 ‘선입견’과 뿌리 깊은 ‘적대감’을 꼽았다. 천주교회는 마리아 교회라는 편견, 개신교는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데서 일치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위원은 “몇 해 전에 로마에서 포콜라레의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평의회 관계자들과 한국 여성신학자들 간 만남이 성사된 적이 있는데, 그 모임에 다녀온 한 개신교 여성 신학자가 ‘내가 알던 가톨릭 교회가 아니었다. 평신도 중심의 복음 생활이 살아 있었다. 너무나도 새롭고, 너무나도 놀라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며 “결국은 만남이 이들 여성 신학자들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전했다.이 편집장은 반면 ‘기복적 경향’이 팽배한 한국 신자들의 절름발이 신앙생활을 꼽았다. 이 때문에 성경에서 강조하는 이웃과의 사랑이나 나눔보다는 나와 주위 사람들 복을 비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회들과 해마다 한두 차례씩 ‘교환 예배’를 하면서 교류하고 있다”고 전하고 “일치를 이루려면 다른 교파에 대한 배타적인 마음을 버리고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어 차이 문제도 나왔다. 서로 쓰는 단어가 다르거나 부정적 의미를 담은 말에서부터 막히면서 일치운동이 답보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일례로 ‘갈라진 형제들’이라는 표현도 되도록 ‘타 교파 형제들’ 혹은 ‘다른 그리스도교회 형제들’이라고 쓰는 것도 형제들의 반감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래에서의 일치’는 그리스도인은 한 형제라는 인식을 갖는 데서 출발해 서로 만나고 대화하며 사회를 향한 봉사에 협력하고 궁극적으로는 신학적 대화와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5.01.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6)장 르클레르크(중)](//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3863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6)장 르클레르크(중)신학은 신앙에 수반하는 ‘거룩한 학문’ 장 르클레르크는 영성신학 분야 안에서도 특히 수도신학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집대성하는 업적을 남긴 신학자다. 사진은 독일 남부 에탈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당 전경. 【CNS】 신앙인이든 아니든 일반인이 ‘신학’(神學, Theology)이라는 학문 분야를 접하게 되면 하느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신학은 주제별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류된 한 분야 안에서도 더 자세히 세분될 수 있다. 필자가 영성신학자로 소개하고 있는 장 르클레르크는 영성신학 분야 안에서도 특히 수도신학에 대해서 심혈을 기울여 집대성하는 업적을 남긴 신학자이다. 르클레르크가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질송의 제안을 받고 중세 수도원운동에 대한 주제를 연구한 것과 큰 연관이 있다.‘신학’이라는 학문고대는 아직 신학이 다양한 분야로 구분되지 않은 때였다. 그 당시 교회학자, 즉 교부들은 교회의 선교사명에 부응하면서 기본적인 교리교육을 정립하는 데 매진하였다. 그 중에서도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해석하는 일을 즐겨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꼭 믿어야 할 신앙 원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런 까닭에 교부들의 신학 활동은 오늘날 성서신학과 유사함을 지니면서도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부들은 성경을 연구할 때 지적 능력을 가지고 사변적으로만 연구하지 않고, 묵상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중세 초기 유럽 상황이 여러 모로 어려운 가운데 더 이상 출중한 신학자들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교부 시대는 일단락되었지만, 고대 교부들이 실천하던 신학 방법론은 수도원 안에서 수도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고대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어서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여 고대와 중세 초기의 신학을 구분하지 않다가 중세 중기에 들어와 새로운 학문 방법론이 나타나면서 함께 새로운 구분이 생겨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중세 중기 유럽 사회가 안정되자 그 동안 수도원에서 유지해 왔던 학문적 열정과 학교 제도를 일반 사회에서도 실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유럽 사회에는 대학들이 설립되고 기원전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지성적인 탐구의 분위기가 모든 학문 분야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교회 학자들도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여 철학적 방법으로 하느님을 설명하고자 시도하면서 스콜라 철학과 스콜라 신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신학자들은 스콜라 신학을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를 인간의 지성으로 헤아려 보고자 세상 학문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연구하였고,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공리(公理)를 만들었다. 심지어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경말씀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영적 묵상보다는 지성적 사색을 더 선호하였다. 이렇게 중세 중기를 기점으로 체계를 갖추게 된 스콜라 신학은 인간 지성으로 계시된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는 오늘날 교의신학의 기초가 되었다.교회 안에서 스콜라 신학이 자신의 성격을 분명히 하자, 베네딕토회와 시토회를 비롯하여 중세 중기까지 설립된 몇몇 수도회에서 보전하였던 교부들의 성경연구 방법론이 상대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분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수도자들은 실천적인 영성이 제외된 학문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신학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수도자들은 스콜라 신학자들이 소위 객관적이라는 학문 방법론의 권위에 의탁하여 성경말씀의 의미를 조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성경말씀 안에서 활동하시는 신적 계시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는 체험하기 위하여 믿는다”라는 공리를 만들었다. 수도자들이 교부신학을 근간으로 하여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학 방법론을 발전시킨 시점이 공교롭게도 중세 중기에 정점을 이루었다.오늘날 신학자들은 중세 수도자들의 이러한 활동들을 탐구하면서 그 당시 분위기와 주장을 ‘수도원운동’이나 ‘수도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연구하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수도신학이 수도자들의 수도원 생활을 단순히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신학은 수도자들이 성경말씀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묵상하며 기도하였는지에 관한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영적 여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규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원운동의 중심에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르클레르크의 중세 수도원운동 연구 장 르클레르크는 이러한 중세 수도원운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신앙인이 영적 발전을 도모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며 구원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는 ‘신학’을 마련하고자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였다. 즉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다른 여타 학문과 같은 단순한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거룩한 학문’이고 ‘경건한 교리’이며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분명한 직무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해 훈련하는 일이며,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여 오로지 단순한 개인의 만족만을 위해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유용한 직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초월성’내지 ‘탁월함’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철학적인 원전이나 인간 지성의 생산물보다는 그리스도가 계시해 준 것이나 교회 전승에 의해 보존된 것을 그 출발점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은 신앙의 신조에 관한 지성을 찾기에, 하느님 자신의 빛으로 비춰진 신학은 자신의 내적 생활 안에서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모든 것을 숙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실질적으로 하느님에게 일치시킨다. 신학은 이렇게 신앙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증거, 일반 신앙인들의 중요한 증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므로, 신학자는 신앙의 진리에 관해서 지적인 탐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학은 신앙에 수반하는 학문이고 이렇게 신앙에 관한 탐구를 동반하기 때문에, 신학은 때로는 부정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르클레르크에 따르면, 신학은 우리의 범위 안에서가 아니라 신학 자체의 범위 안에서 학문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에 따라 14세기 토마스주의자들도 신학은 정확하게 언급된 학문이지만 불완전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사로잡혔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중세 수도원운동에 대한 르클레르크는 연구는 중세 당시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고대 교부신학이 중세에 수도신학과 스콜라신학으로 분화되어 자리매김하는 과정과 특징을 알아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영성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포괄적인 개념에서의 영성신학 안에 세분화된 수도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이 수도신학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해 줌으로써 수도자들뿐 아니라,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그러므로 신학 탐구에는 영성생활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일반알현 강론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학이 지닌 기도의 차원을 사랑이 생생히 일깨울 때, 이성으로 얻은 지식은 넓혀집니다. 진리는 겸손을 가지고 탐구하며, 경이로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 마디로 지식은 진리를 사랑할 때만 성장합니다. 사랑은 지성이 되며, 진정한 신학은 마음의 지혜가 되어, 믿음과 믿는 이들의 삶을 이끌고 받쳐줍니다.”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평화신문2014.08.12
![[금주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cpbc.co.kr/CMS/newspaper/2015/03/rc/562010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4월 2일: 성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St. Francisco Coll Guitart)1812~1875년, 스페인 출생 및 선종, 도미니코수도회 신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미니코 수녀회 설립.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제들에게 강론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강론 준비를 위해 연구와 기도와 묵상에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한다”면서 “강론은 추상적 진리나 차가운 삼단논법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이 선물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2009년 시성된 프란치스코 콜 기타르트 신부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강론의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성인은 신자들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귀한 자녀임을 일깨워주는 강론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성인은 스페인 북동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이곳저곳을 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전해 ‘현대의 사도’로 불렸습니다. 성인은 강론 준비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자료를 찾고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합니다. 성인은 또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감옥에서 지내는 재소자 등 하느님 말씀을 자주 접할 수 없는 이들을 자주 찾았습니다. 역병이 창궐했을 땐 더 자주 병원을 드나들며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성인이 있는 곳엔 언제나 미사와 말씀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미니코 수녀회를 설립해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수녀님들을 양성했습니다. 이 수녀회는 현재 세계 각국에 퍼져 있습니다. 성인은 1869년 강론하는 도중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건강 또한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쉬라고 권유했지만, 성인은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하며 신자들을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9년 성인을 복자품에 올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인은 신앙과 희망의 증거자이자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라며 성인의 삶을 칭송했습니다. ▨4월 3일: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St. Luigi Scrosoppi)1804~1884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신부. 성인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단 몇 푼이라도 생기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곤 했습니다. 그는 늘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가난한 여성들, 에이즈 환자, 거리의 아이들, 장애인들에게 그는 먼저 다가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성인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 머무르며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섬겼습니다. 신자들은 성인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곤 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5.03.25

110시간 성서 통독으로 신앙의 해 마무리대전교구 법동본당, 18~23일 전 신자 성경 이어읽기 참여대전교구 법동본당 주임 민병섭 신부가 18일 7시 독서대에서 창세기를 읽으며 110시간의 성경 통독을 시작하고 있다. 정완영 명예기자 대전교구 법동성당(주임 민병섭 신부)이 '신앙의 해'를 마감하면서 6일간 공동번역 성서를 통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카 17,5)라는 주제로 말씀을 통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말씀을 선포하는 데 자신감을 주고, 말씀의 은총을 신자 개개인이 체득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동번역 성서 통독은 18일 아침 7시에 시작해 23일 자정까지 성당 독서대(말씀의 식탁)에서 300여 명의 신자들이 혼자서, 혹은 부부나 가족이 한 번에 30분씩 총 110시간에 걸쳐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성경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성경 읽기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미리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기도하며 말씀 선포를 준비한다. 중간중간 미사가 봉헌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24시간 계속 연이어 독서대에서 말씀이 선포되는 셈이다. 이번에 법동본당 공동체에서 읽는 공동번역 성서는 지난 2001년 4월 성전 봉헌식 때 전 신자가 필사해 봉헌했던 성경으로, 이번에 신자들이 신ㆍ구약 성경을 모두 읽고 나면 재차 봉헌하게 된다. 이같은 이어달리기(릴레이) 방식의 성경 읽기는 원래 이탈리아의 한 본당에서 처음으로 시도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장익(전 춘천교구장) 주교가 소개, 인천교구의 한 본당에서 진행된 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종만(요한 사도) 사목회장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있고 또 전례 때 독서로 말씀 선포도 해봤지만, 여러 사람이 소리를 내 성경을 읽는 데서 또 다른 은총을 느낄 수 있었다"며 "해마다 성서주간에는 성경 통독을 통해 더 많은 신자들이 말씀과 가까워지고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민병섭 신부는 "성경을 법동성당에서 선포하지만, 나아가서는 법동 전체에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며 "우리 신자들이 말씀을 읽으며 묵상함으로써 성경을 더 가깝게 느끼고 또 읽는 데서 끝내지 말고 실행을 통해 말씀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되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정완영 명예기자 0espresso@pbc.co.krcpbc2013.11.19
![[생활 속의 복음] 사랑은 대화를 통해서](//cpbc.co.kr/CMS/newspaper/2015/05/rc/573089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사랑은 대화를 통해서삼위일체 대축일(마태 28,16-20) 박재식 신부(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우리 본당은 성모 성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성모의 밤 행사를 합니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봄 농사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교우들이 모처럼 맞이하는 달콤하고 짧은 휴식기입니다. 이번 성모의 밤에는 70년이 넘는 세월을 사시고 얼마 전 세례를 받은 어르신이 쓰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를 낭독하면서 ‘하느님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하늘이시여(어느 10세 소년의 사모곡)’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따금 알맞은 바람이 불어오는 새해 정월이 되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나지막한 뒷동산에 올라 소년은 가오리연을 하늘로 날린다.높이 높이 더 높이 멀리멀리 더 멀리 엄마 있는 곳까지 날아가 다오….”8살에 어머니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은 어르신은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온 정성과 생명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진정한 마음,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고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체험합니다. 저 역시 3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에 대한 아쉬움, 어려운 환경에서 당신의 생명으로 돌보아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어머니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다는 내용의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탈무드의 격언에 동의합니다.얼마 전 ‘솔로 강아지’라는 시집을 낸 초등학생 시인이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를 발표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논란이 일자 출판사는 시집을 전량 회수하고 폐기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그 시를 봤는데, 제가 보기에도 시의 내용과 삽화가 동시로 보기에는 너무나 잔혹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집을 “사탄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비난하고, “아이를 당장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 “부모가 미친 것 같다”는 등 자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우리 사회도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만을 주장하는 사회라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를 한 가지 생각으로만 향하게 했던 독일의 히틀러 시대가 생각납니다. 요즘 사회적인 이슈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합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면서 ‘친미’, ‘친일’, ‘종북’, ‘OO 지역 사람’, ‘노인네’, ‘요즘 젊은것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편을 가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거부하는 우리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신다면 이 명제 자체가 유일신이자 한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관계의 개념이기에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관계,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생명을 풍성히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에 반해 생명을 파괴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독선적인 행동과 생각을 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적 사랑’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창세 1,26-28)는 성경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시고 그 방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그리고 우리 사이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창조 사업과 삼위일체의 신비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하루라도 하느님과 어머니 그리고 이웃과 대화로 사랑을 멋지게 실천하는 날이길 바랍니다. cpbc201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