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44)예수님이 쓰신 문자](//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4876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44)예수님이 쓰신 문자히브리어와 아람어 쓰고 말해 쿰란 유적지에서 발굴된 구약 성경 사본. 이 쿰란 사본에 쓰인 글이 성경 히브리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지역에 따라 히브리말과 아람말 두 가지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이 글 쓰는 것과 쓰인 글을 해석하는 것을 주 임무로 했고, 회당에서 어린아이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성경 시대에도 많은 유다인들이 글을 쓰고 읽었을 것이라는 게 성경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러한 증거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글판에 ‘요한’이라고 쓰는 장면이 나온다(루카 1,63). 또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약은 집사가 쫓겨나기 전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문서를 조작하게 하는 비유(루카 16,1-8)에서도 글을 쓰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 자신도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당신께 끌고 왔을 때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요한 8,1-11). 예수님과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 비유 속에 나오는 채무자가 쓴 글은 분명 히브리어나 아람어였을 것이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알고 계셨다는 증거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서 한 부분을 읽으시고 희년을 선포하신 것(루카 4,16-30)과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마태 5,18)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제시한다.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주석성경」에 따르면 ‘자’에 해당하는 말은 헬라어 ‘이요타’(Ι)로서 여기에서는 본디 히브리말이나 아람말 알파벳에서 가장 작은 글자를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글자는 ‘요드’다. 구약성경은 기원전 1200년께부터 기원전 200년께까지 거의 1000여 년에 걸쳐서 기록된 책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구약성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였다. 다니엘서 일부(2,4‘─7,28)와 에즈라기 일부(4,8-6,18; 7,12-26), 예레미야서 한 절(10,11)이 아람어로 쓰였다. 그리고 지혜서와 집회서, 마카베오기 하권은 헬라어로 쓰였다. 아울러 토빗기와 유딧기, 바룩서와 마카베오기 상권은 그리스어로 전해졌지만 원래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에서 번역됐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통설이다. 또 기원전 3~2세기께 이집트에서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됐는데 이 번역본을 ‘칠십인역본’이라 한다. 성경의 문자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는 모두 페니키아 문자에서 나왔다. 성경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모두 자음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자음 알레프, 바브, 요드, 아인을 경우에 따라 모음처럼 반자음으로 사용했다. 현대 히브리어도 성경 히브리어와 같아 별반 다름이 없어 예수님께서 오늘날 히브리어 신문, 잡지, 책을 읽고 해독하실 수 있다. 성경 시대 유다인들은 동물 뼈나 구리로 만든 첨필로 초를 바른 목판에 글을 쓰거나 갈대 펜으로 잉크를 찍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글을 썼다. 양피지는 소아시아 페르가몬에서 생산된 것이 제일 질이 좋았다. 그래서 양피지를 뜻하는 라틴말 ‘페르가메나’도 이 도시에서 유래됐다. 양피지는 값이 비쌌다. 그래서 양피지를 쓰는 사람들은 통상 외피와 내피를 분리해 사용했다. 그리고 얇고 깨끗한 내피 양피지보다 그렇지 못한 외피 양피지가 싸게 거래됐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양피지가 쉽게 찢어지지 않게 통가죽으로 된 양피지를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도 양피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티모테오에게 로마 감옥에 갇힌 자신에게 올 때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2티모 4,13).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는 양피지에 비해 가격은 쌌지만 쉽게 구해 쓸 만큼 결코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예수님 시대 때에는 로마가 이집트산 파피루스에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유다인들은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또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서간이 파피루스에 쓰였다고 하고 초대교회 신자들도 성경 본문을 주로 파피루스에 필사했다고 설명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5.02.11
![[발칸에서 평화를 찾다] ⑤ 스르프스카 학살의 진실, 화해와 용서](//cpbc.co.kr/CMS/newspaper/2016/06/rc/640466_1.0_titleImage_1.jpg)
[발칸에서 평화를 찾다] ⑤ 스르프스카 학살의 진실, 화해와 용서도움·나눔의 손길로 분쟁의 땅을 평화의 땅으로 일궈 바냐루카교구의 성 보나벤투라주교좌성당 앞 예수성심상 기단석에는 “Mir Vama!”, 곧 “너희에게 평화를!”(요한 14,27)이라는 뜻의 성경 구절이 씌어 있다. “용서요? 날마다 기도를 통해 용서를 청하고 또 용서합니다.” 바냐루카교구청에서 만난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의 한 수도자는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공화국 비밀경찰이 자행한 학살을 용서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1996년 3월 20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과 스르프스카공화국 간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보스니아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데이튼 평화협정 덕이었다. 양쪽의 포로는 석방됐고, 진실 규명과 함께 전범 재판도 시작됐다. 그 마지막 재판은 취재진이 지난 4월 중순 바냐루카를 찾아가기 20여 일 전에야 결말이 났다. ‘보스니아의 학살자’로 불린 라도반 카라지치(71)가 네덜란드 헤이그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40년 형을 선고받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학살과 성당 파괴가 끝나자 바냐루카교구는 재건을 시작했다. 그런데 재건 방향이 특별했다. 교구장 프란요 코마리차 주교는 교회 재건에 앞서 ‘주교관’을 카리타스 보건소로 내놓았다. 주교관을 개축한 보건소를 통해 교구는 18년 동안 20만 명의 난민과 환자들을 치료하고 공중보건 혜택을 제공했다. 오갈 데 없는 노인과 가족, 학생들을 위해서는 요양원과 기숙사, 사회교육센터, 협동조합 등을 설립, 운영했고 어려운 형편에 놓인 소녀들을 위한 가정과 생명 센터와 미혼모의 집도 열었다. 난민 사목과 함께 교구는 외국의 지원을 받아 파괴된 2500여 채의 집과 아파트를 보수했다. 그 뒤에야 파괴된 성당과 사제관, 수도원, 오라토리오(청소년 기도의 집 겸 교회 학교)를 다시 짓고 있다. 그간 15개 성당을 새로 지었고, 59채의 교회 건축물을 보수했으며, 지금은 25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바냐루카교구 카리타스 담당 밀렌코 아니치치 몬시뇰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에게 똑같이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는 게 저희 교구 카리타스의 원칙입니다. 그 결과는 평화로 돌아왔습니다. 코마리차 주교님은 인종과 종교 간 갈등으로 얼룩진 비극을 씻어내고자 사회복지 활동과 함께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평화포럼을 열어 분쟁의 땅 보스니아에 평화를 정착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코마리차 주교님께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보편 교회도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평화 증진에 힘을 보탰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6월 ‘전격적으로’ 바냐루카를 찾았다. 중화기로 무장한 보스니아 군경의 삼엄한 경계 속에 사목 방문한 교황은 2차 세계대전 중 가톨릭 수사가 포함된 크로아티아 민병대 우스타샤가 세르비아인 2500여 명을 학살한 데 대해 용서를 청하고 발칸의 화해와 평화를 촉구했다. 또 1차 세계대전 참전 뒤 가톨릭 전례 운동과 평신도 운동을 펼친 바냐루카 출신 이반 메르츠(Ivan Merz, 1896∼1928)를 복자품에 올렸다. 복자의 유해를 담은 관과 복자화, 시복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앉았던 의자 등이 성 보나벤투라 주교좌성당 내 안치실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교좌성당 정문 앞엔 예수 성심상이 세워져 카리타스 보건소를 찾는 모든 이를 반긴다. 기단석에는 큰 글씨로 “Mir Vama!”라고 씌어 있다. 보스니아 말로 “너희에게 평화를!”(요한 14,27)이라는 뜻이다. 그동안에는 수없이 들으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이 말씀이 이제야 평범하지만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하는 의문이 취재 내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인터뷰; 바냐루카교구 마르코 셈렌 보좌주교“용서는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웠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바냐루카교구 총대리 마르코 셈렌 주교는 “비밀경찰의 학살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면서도 “학살은 비극이었지만, 우리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게 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인종·종교 상관없이 도움의 손길 뻗어 셈렌 주교는 “교구 카리타스와 함께 인종이나 종교의 장벽을 두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교구 신자들과 사제들, 수도자들을 처형했던 세르비아 정교회 신자들은 물론 무슬림과 유다교 신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돌봤다”며 “그 힘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셈렌 주교는 내전 당시 동료 사제들이 당한 수난도 그대로 전했다. “당시 교구 사제가 6명이나 살해당했는데, 살아남은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스티포 쇼시치 신부님이셨죠. 비밀경찰에 끌려가신 뒤로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었는데, 우연히 그분이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해서 적십자사를 통해 석방을 요구하니까, 한밤중에 다른 수용소로 빼돌리려다가 발각돼 결국은 석방되셨지요. 그 신부님이 석방되던 날, 수용소에 가보니 갇힌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오시는 게 아니겠어요? 갇혀 있는 동안 두 손이 묶인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훗날 그 신부님이 「어둠까지」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스웨덴에서 난민 사목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이 얘기를 전한 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셈렌 주교는 “중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주님, 제 상처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주님 앞에 모든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주님께서 그 상처를 모두 짊어지실 수 있고, 가해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요즘도 교구 신자들의 기도는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님이 주신 희망을 안고셈렌 주교는 이어 “지금도 교구 상황이나 선교 여건은 열악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희망을 주셨고 우리는 그 희망을 안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기에’(히브 7,19 참조) 카리타스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그렇게 살아가는 힘은 바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cpbc2016.06.14
![[성경 속 생명이야기] 22. 생명의 어머니 마리아 Ⅱ- 마리아의 모성애](//cpbc.co.kr/CMS/newspaper/2014/07/rc/52075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이야기] 22. 생명의 어머니 마리아 Ⅱ- 마리아의 모성애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묵시 12,1-4). 교회와 마리아의 신비 사이의 상호 연관성은 묵시록에서 묘사된 ‘큰 표징’ 속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늘에는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습니다”(12,1). 교회는 이 표징 속에서 자기 자신이 지닌 신비의 모상을 발견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교회는 지상에 하느님 왕국의 ‘시작과 싹’을 심는다는 의미에서 역사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신비가 마리아 안에서 완전하고도 전형적으로 완성됨을 봅니다. 마리아는 영광을 입으신 여성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그분 안에서 지고한 완전성을 가지고 수행될 수 있었습니다. 묵시록은 그 ‘태양을 입은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12,2)고 말해 줍니다. 교회는 자신 안에 세상의 구세주이신 주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남녀들을 하느님의 새 생명 안에 새롭게 태어나도록 함으로써 세상에 그리스도를 제공하도록 부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사명이 마리아의 모성애 때문에 가능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참된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된 하느님’을 잉태하고 낳으신 분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천주의 모친(Theotokos)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여성에게 주신 모성애의 소명은 그분의 모성애 안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전형이시며, ‘새로운 하와’, 믿는 이들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창세 3,20 참조)라고 불립니다. 교회의 영적 모성애는 오직 해산의 고통과 ‘진통’(묵시 12,2 참조), 다시 말해서 여전히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그리스도에게 저항하는 악의 세력과의 끊임없는 긴장을 통해서 성취되며, 교회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요한 1,4-5).교회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고통 속에서 모성애를 실천해야만 했습니다.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루카 2,34-35). 구세주께서 지상생활을 시작하실 바로 그때 시메온이 마리아에게 하는 이 말은 예수에 대한 거부를 요약하여 예시합니다. 갈바리아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 이 거부는 예수와 더불어 마리아에 대한 거부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밑에 서 계신’(요한 19,25 참조)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그 헌신에 참여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봉헌하시고, 그분을 내어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위해서 그분을 낳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 받은 그날의 “예”라는 대답은 십자가의 날에 그 충만한 완성에 다다릅니다. 그날은 마리아께서 제자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여 당신의 자녀로 낳아주시며, 그들 위에 당신 아드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그러므로 두려움과 고통 안에서도 모든 이들을 위해 생명을 받아들이시고 그 생명을 사랑에 차 보살피신 그 모성애를 통해 마리아는 교회와 생명을 향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어머니, 곧 생명의 어머니,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cpbc2014.07.23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0. 생명의 원천](//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70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0. 생명의 원천민남현 수녀(엠마, 성바오로 딸 수도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한 원천에서 생겨났습니다. 성경은 첫 책부터 마지막 책까지 하느님을 영원히 살아계신 분으로 증언하면서 생명의 원천으로 제시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었음'(창세 1,2)을 밝히고 하느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1,4)으로 선포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존재의 원천이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창세 1장) 하느님의 창조활동이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육화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됐음을 요한복음서는 매우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1.3-4). 하느님의 무상적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이 선을 거부하고 악을 선택해 죽음의 나락에 떨어지자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새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최고 방식인 아드님의 육화로 당신의 큰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전해짐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음을 요한 1서의 저자는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1요한 1,1-2). 예수님의 공생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실제로 체험한 감동에서 나온 이 증언은 우리가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깊이 느끼게 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인간을 살리는 구원의 도구로 내어주실 만큼(요한 10,10) 우리는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들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구약시대에 매우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도한 이사야 예언자의 글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이사야 예언자가 어머니와 갓난아기의 관계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로 비교한 것은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논리를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앎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명이 소중함을 깨닫고 타인의 생명 또한 존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체험한 고통을 기억해 훗날 자유인으로 살아갈 때 다른 이를 자비롭게 대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매우 큰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탈출 22,22). 주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공생활 중에 육체적, 윤리적, 영적 차원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병자들에게 언제나 연민으로 다가가 치유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4). 예수님께서 사람이 돼 세상에 오신 목적은 여러 죽음의 상황으로 인해 자유를 잃고 고통의 어둠속에 있는 인간에게 생명을 되찾아주시려는 것입니다. 곧 모두가 골고루 충만하게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때,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떠올리면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cpbc2014.04.10
![[복음 이야기] (17) 유다인의 교육과 성년식](//cpbc.co.kr/CMS/newspaper/2014/05/rc/511392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17) 유다인의 교육과 성년식역사·지리 등 모든 교육의 근본은 성경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성년식을 치르고 있는 한 유다인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토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리길재 기자 유다인의 아동 교육은 참으로 탁월하다. 특히 ‘종교와 도덕’ 교육을 중시했다. 성경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잠언 22,6)고 일깨우고 있다. 아버지들이 나서서 교육성경 시대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자녀에게 십계명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적 의무였다. 유다인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이 계명을 아침ㆍ저녁 기도 때마다 되풀이해 외웠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업적을 들려줘야 했다. 이스라엘 사회는 종교와 도덕이 하나이며, 민족의 역사도 종교 계명과 함께 율법 일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또 자녀에게 성경 말씀대로 대축제와 여러 관례의 신성한 의미를 가르쳤다. 그래서 성경은 늘 부모들에게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주어라”(신명 6,4-7)고 일깨우고 있다. ‘소를 살찌게 하듯 아이들을 토라(율법)로 살찌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속담대로 유다인들은 성경을 교재로 언어ㆍ문법ㆍ역사ㆍ지리 등을 가르쳤다. 그래서 저명한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성경 안에 가장 뛰어난 학문이 있고 행복의 원천이 있다”며 “나는 이미 4살 때 완전히 성경을 이해했다”고 자랑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익혀 왔다고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고백한 바 있다(2티모 3,15). 여아들도 사내아이들처럼 성경 공부를 한 것 같다. 그 대표적 증거가 바로 성모 마리아시다.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에는 30곳 이상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회당에서 ‘하느님의 사자’라 불린 교사들이 가르치면 땅바닥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선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 외웠다. 이 같은 반복과 응답이 유다인의 일상적 학습 방법이었다.성경 속 유다인 아이들은 공부만 강요받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과 달리 놀기도 잘했다. 예언자 즈카르야는 예루살렘 도성 광장마다 뛰노는 소년소녀들을 이야기하고 있고(즈카 8,5), 마태오 복음서는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어 결혼식이나 장례식 놀이를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마태 11,16-17).「탈무드」 ‘조상의 격언’ 편에는 “5살이 되면 교리 공부를 시작해야 하며, 10살이면 전승을 공부하고, 13살이면 하느님의 모든 율법을 알고, 그 계명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또 15살이면 지식의 완성에로 나아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이와 달리 예수님의 성장기를 ‘갓난아기’ (2,16), ‘아기’(2,40), ‘소년 예수’(2,43)로 나누고 그 후는 그저 ‘예수’라 말하고 있다(200주년 신약성서 참조). 유다인의 성년식유다인 소년들은 13살이 되면 법률적으로 ‘성인’이 된다. 13살 생일에 유다인 소년은 성년식(바르 미츠바)을 하고 토라에 손을 얹고 ‘율법의 아들’로 선포된다. 13살이 성인의 기준이 된 것은 야곱이 형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 이사악에게서 장자권을 받고 하란으로 도망칠 때 나이가 13살이었다는 게 유력설이다. 12살이던 소년 예수가 성전 앞뜰에 자리 잡은 율법학자들과 토론한 것은 특별한 경우이지만, 이스라엘 소년들은 13살이 되면 성인으로서 그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 신명 6,4-9) 기도를 하루 3번 되풀이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또 13살이 되면 ‘정해진 날’ 특히 ‘대속죄일’에 율법 규정대로 단식하고 예루살렘 순례에 참가해야 하며, 성전에 도착하면 ‘남자들의 앞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성년이 된 후 성경과 율법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고등교육을 받으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저명한 율법교사들이 강의하는 학교에 등록해야 했다. 바오로 사도도 저명한 율법교사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했었다. 여느 사회처럼 이스라엘의 가정도 사회의 기초요 모퉁잇돌이다. 예수님 시대 역시 구약 시대만큼 은 아니지만 집안끼리 강한 ‘골육’(창세 29,14) 의식을 보였다. 유다인들은 ‘같은 피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같은 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가문의 영속성과 순수성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형제간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 자는 카인과 같은 자’라며 멸시했다. ‘가족’을 뜻하는 히브리말 ‘아하’는 부모 형제뿐 아니라 이부모 형제, 종형제, 친척까지도 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우리는 한 혈육”(창세 13,8)이라고 말했고, 예수께서 나자렛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고향 사람들이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마태 13, 54-58)라고 말한 까닭도 이 같은 관습 때문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5.27

배려심 많고 경청과 화합의 탈렌트 지닌 착한 목자장신호 주교 삶과 신앙 1971년 첫 영성체날 찍은 장 주교 사진. “아이고, 잘하셨네! 이제 주교님이 되셨으니 더 잘해야겠네.”아들 신부의 보좌주교 임명 소식을 들은 장신호 주교의 아버지 장진휘(베드로, 78, 대구 계산본당)씨는 곧바로 성당으로 달려가 기도했다. “성경 말씀대로 살면 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아버지의 꿈은 사제. 장 주교는 매일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성령쇄신봉사회와 연령회에서 봉사를 해온 아버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장 주교의 어머니 김현순(안나, 77)씨는 “아버지가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뤘다”면서 꿈 이야기를 하나 해줘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에 따르면, 4남매 중 장남인 장 주교가 8살 때 동생들과 다투자 매를 들었는데 그날 밤 어머니는 장 주교가 그 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다.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는데, 어느 멋진 집에서 사람들이 아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꿈에서 깨어나 ‘하늘에서 이렇게 대접을 받는 아들인데, 내 아들이라고 너무 내 마음대로 했다’ 싶어 매를 꺾어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았다.교리 교사 하며 신앙 더 깊어져어머니는 “3살 때 유치원에 갔다가 길을 잃어 밤 8시에 파출소에서 찾은 일을 빼고는 아들 때문에 신경 쓸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손해 보는 것을 못 보는 착한 아들”이라고 말했다. 장 주교는 고등학생 때까지 본당 복사단으로, 대학(영남대) 진학 후에도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했을 때 그는 주일학교 학생들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사제 서품식에 참여했다. “그때 많은 신자와 함께 교황님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교리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교리를 더욱 열심히 가르치고, 신앙이 깊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당시 학생들에게 ‘날으는 돈가스’라고 불린 그는 주일학교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서 신임이 두터웠다. 늦게까지 성당에 남을 때는 동료 교사들을 택시에 태워 귀가시켰고, 돈이 없을 땐 집까지 데려가 택시비를 쥐여줬다. 교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다른 교사들을 탓하지 않고, 혼자 묵묵히 책임을 떠안았다.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시간은 그를 신학교로 이끌었고, 사제 생활을 꿈꾸게 한 터전이 됐다. 계산본당 주일학교에서 많은 성소자가 배출됐고, 장 주교도 선배들을 따라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1993년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신학생 신분으로 로마 유학길에 올랐다. 1998년 사제품을 받고 1년간 봉덕본당 보좌로 사목했던 시간을 빼면 2002년까지 8년간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유학 생활에서 오는 향수병은 대구 토박이인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그러나 2년마다 재유럽 대구대교구 사제 신학생 모임이 열렸고 여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신부들과 모여 모처럼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음식을 먹었던 순간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당시 교구장이었던 이문희 대주교가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직접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향수병을 달래곤 했다. 온화한 성품에 대인관계 원만 장 주교에 대한 지인들의 평은 한결같다. 온화하고 성실하며, 특별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 장 주교의 사제 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김명현(비산본당 주임) 신부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남들이 어려우면 차분하게 배려하고 도와주는 성품을 지녔다”면서 “일을 하나 부탁하면 두 번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해 무척 성실한 분”이라고 말했다. 장 주교와 로마에서 함께 생활한 김 신부는 장 주교가 2006년 대구가톨릭대 신문방송사 부주간을 맡았을 때 주간으로 함께 일했다. 신자들이 전례에 쉽게 다가가도록 2009년부터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주교회의 전례서 편찬을 담당해온 장 주교는 가톨릭 전례학회 총서 시리즈 1권 「교회의 전례」 등을 번역했다. 전례서를 번역하면서 신앙생활에서 전례를 어렵게 느끼는 신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전례 관련 질문도 외면하지 않고 친절히 답글을 달아줬다. 그가 전례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계산성당에서 주교가 주례하는 미사에서 복사를 서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전례로 옮겨가면서다. 장 주교가 생각하는 전례의 핵심은 사랑에 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웃에게도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 그 힘은 전례에서 나온다”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가톨릭 전례학회 회장 윤종식(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신부는 “장 주교님은 사람을 이해해 주려는 측면이 강하신 분이고,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특히 “학문적인 탐구에 있어 끈질긴 면이 있어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장 주교와 신학교 동기인 이성호(교구 성소 담당) 신부는 “평소에 늘 웃는 얼굴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기보다 경청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면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불평, 불만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교구가 커서 교구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다양한데, 경청과 화합의 탈렌트가 있으신 만큼 교구장님을 잘 보필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장신호 주교 약력1966년 5월 25일 대구 출생1984년~1988년 영남대학교 1988년~1993년 대구가톨릭대학교 1993년~1996년 교황청립 사도들의 모후대학1996년~1998년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교 전례학 석사1998년 8월 25일 사제 수품1998년~1999년 대구대교구 봉덕본당 보좌1999년~2002년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교 전례학 박사2002년~2009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2009년~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주교회의 전례서 편찬 담당 2016년 5월 31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 임명 백영민2016.06.0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육신의 재계란?믿음으로 행하는 재계, 하느님께 이르는 방법 필자는 그리스도인 수덕 생활이 나쁜 악습을 끊어 버리려는 방향과 좋은 덕행을 습득해 증진시키려는 방향에서 실천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수덕 생활을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덕의 본성이라는 범주에서 구분하는 경우와 다르게 실천 방법의 범주에서 또 다른 구분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인간 육신의 행위에 강조점을 두는 경우와 인간 정신의 행위에 강조점을 두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육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간 육신의 행위를 통한 수덕 생활 실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재계, 부정함을 멀리 한다는 의미오늘날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가 되면 종종 ‘재계’(齋戒)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이 단어의 의미를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해 ‘종교적 예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재계를 실천한다고 설명합니다. 가장 이해하기 좋은 예문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폭넓게 사용하는 ‘목욕재계’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부정 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려는 측면이 나타날 뿐이지 인간 육신에 해를 끼치는 듯한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지 않습니다.그런데 이 단어의 준말인 ‘재’라는 말 하나만 사용하는 경우에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드러냅니다. 한국 가톨릭 신앙인은 교회에서 우리말 ‘금육재’, ‘단식재’라는 용어를 통해 이 단어를 접하게 되는데, 외형적으로는 ‘재’가 사용됐지만, 내용적으로는 규정을 지키라는 의미가 더욱 포함된 ‘계’라는 의미로 더 알아듣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교회 안에서는 비슷한 말로 금욕, 고행, 고신극기(苦身克己) 등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단어에는 인간 육신에 다소 불편함을 제공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고통, 하느님께 다다르는 역설적 방법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사상을 살펴보면, 사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포함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나서 보시니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 1장 참조). 이러한 좋은 세상에 고통이 들어온 것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였습니다(창세 3장 참조). 그러나 인간에게 벌로 주어진 고통은 인간이 회개를 통해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신 하느님의 마음이었고, 인간이 짊어질 수덕 생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그런데, 가나안 정착 이후에 유다인들은 인간이 수확한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다시 하느님을 저버리게 됐습니다. 이에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께 다시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잠시 인간에게서 지상의 재물을 빼앗을 뿐 아니라(호세 2,10-11 참조), 재물을 저주의 징표로 여겨야 한다(이사 5,8-24 참조)고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육신의 고통은 고통받는 욥(욥 42,1-6 참조)과 예언자 예레미야(예레 11,18-12,6; 15,10-21; 17,12-18; 18,18-23; 20,7-18 참조), 그리고 고난받는 하느님의 종(이사 52,13-53,12 참조)에 이르러서 하느님께 다다르는 역설적인 방법이 됐습니다.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수덕 생활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 가르침에서도 어려운 여정이 요청됩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도 비좁습니다(마태 7,14).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있다면 비록 몸의 일부이더라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마르 9,42-48). 나아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포기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루카 9,33).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탓할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하며(1코린 6,1-7; 콜로 3,13; 에페 4,26) 남의 짐을 져 주고(갈라 6,2), 형제를 심판하지 말며(로마 4,4.10) 박해자들마저 축복해 주어야 한다(로마 12,14)는 것입니다.결국 성경의 가르침은 자신을 해치는 고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고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믿음에 일치시키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수덕 생활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5.10.07

외계 생명체 존재한다면 그들도 하느님 피조물우주에서 ‘또 하나의 지구’ 발견 - 바티칸 천문대장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에게 묻다 지난 7월 23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에서 ‘또 하나의 지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평화방송·평화신문은 이를 계기로 바티칸 천문대장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Fr. Jose G. Funes, S.J.) 신부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며 바티칸 천문대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진화론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최근 교황들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보도국=김소일 기자 우주에서 '또 하나의 지구' 발견 -바티칸 천문대장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에게 묻다 지구와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바티칸 천문대장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Fr. Jose G. Funes, S.J. 사진) 신부가 말했다. 그는 평화방송·평화신문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설사 그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회 소속 사제이면서 천문학 박사인 그는 2006년부터 10년째 바티칸 천문대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질문과 답변 내용의 요약이다.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최근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모든 항성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외계 생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해도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도 하느님이 창조하셨나?하느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다. 우주 속에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도 하느님의 피조물이다.▶그러한 존재가 우리 신앙을 위협하지는 않는가?그들이 설사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 해도 창조, 육화, 구원의 믿음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생명의 다양성이 존재하듯이 하느님이 창조한 다른 지적 존재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를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오늘날 구약 성경의 창세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천문학자로서 나는 하느님의 우주 창조를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기본적으로 과학책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책이며, 2~3천 년 전의 언어로 쓰였다. 그때는 ‘빅뱅’ 같은 개념이 없었다. 때문에 성경에서 과학적 답변을 찾을 수는 없다.▶ 빅뱅이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현재로서는 빅뱅이론이 우주에 관한 가장 훌륭한 이론이다. 우리의 신앙과 모순되지 않으며, 합리적이다.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사제품을 받고, 2000년부터 바티칸 천문대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6년부터 천문대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 기관지와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과학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자주 대변한다.바티칸 천문대 유래와 역사 교황 여름 별장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바티칸 천문대. 오른쪽 돔형 지붕이 천문대다. 바티칸에 천문대가 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냥 아마추어 수준의 관측소가 아니다. 천문 관측의 역사에서 결코 잊힐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 기원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새 역법을 선포했다. 지금까지 쓰고 있는 그레고리오력이다. 이 역법 개정을 앞두고 천문 연구를 위해 바티칸에 관측소를 세웠다. 지금도 바티칸 박물관 건물에 남아 있는 ‘그레고리오 탑(바람의 탑)’이 그곳이다. 이곳에 1789년 대형 반사경(Specola)이 설치된다. 오늘날 바티칸 천문대를 뜻하는 ‘스페콜라 바티카나’(Specola Vaticana, 바티칸 반사경)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1774년에는 교황청 소속 로마대학(현재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도 천문대가 생겼다. 이 천문대 또한 과학사에 빛나는 성과를 남겼다. 특히 안젤로 세키(Pietro Angelo Secchi S.J.) 신부는 28년간 천문대장을 역임, 별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별의 특성을 알아내는 천체분광학을 개척했다. 태양이 여러 별 중 하나임을 권위 있게 선언한 최초의 과학자로도 꼽힌다.바티칸 천문대는 1935년 로마 시내의 밝은 불빛을 피해 장소를 옮긴다. 이때 교황 비오 11세가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에 있는 교황 여름 별장을 기꺼이 제공했다. 천문대 운영과 연구는 예수회에 맡겨졌다. 이 시기 바티칸 천문대의 관측 자료와 연구 성과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지금 달의 분화구에는 그 발견자인 예수회 신부의 이름이 35개나 붙어 있다.1981년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Tucson)에 제2연구소를 설립했다. 1993년에는 애리조나주 그레이엄 산(Mt. Graham)에 1.8m(71인치) 크기의 ‘바티칸 고급 기술 망원경’(VATT)을 설치했다. 지금 바티칸 천문대는 이런 시설과 연구소를 연결한 ‘바티칸 천문관측 그룹(VORG)’이다. 해마다 연구 성과를 집약한 보고서를 펴내고, 요약본을 교황에게 제출한다. 교황 회칙, 연설에 나타난 교회 입장 [[그림 4]]현대 과학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한 교황으로 비오 12세가 있다. 1950년 진화론에 대한 입장을 회칙(Humani generis)으로 발표했다. 이 회칙은 진화론을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진지한 가설’로 여긴다. 다만 인간 영혼의 문제에서는 단호하다. 즉 인간의 육체는 그 이전의 생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해도, 그 영혼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 점만 분명히 하면 진화론과 신앙 교리 사이에 아무런 대립도 없다고 선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바로잡은 교황이다. 그것은 과학과 종교, 신앙과 이성 사이에 전개된 비극적 오해와 불신의 시대를 마감한다는 상징적 조치였다. 그는 1996년 10월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연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진화론을 언급한다. 비오 12세 회칙 이후 반세기가 더 흐르면서, 진화론은 이제 ‘하나의 가설 이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간의 정신만은 여전히 진화의 산물일 수 없음을 강조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0월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현대 우주론의 총아인 빅뱅이론이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세상의 기원으로 제시되는 빅뱅(대폭발)은 창조주의 개입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창조주에 의존한다. 진화도 진화할 존재의 창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창조의 개념과 충돌하지 않는다.”빅뱅이론은 우주가 약 137억 년 전의 대폭발에서 비롯됐다는 이론이다. 교황은 그 태초의 폭발이 창조주의 몫임을 역설한 것이다. 또한 진화는 수십억 년 지구 위에 펼쳐진 생명의 향연이다. 그 생명은 탄생의 순간에 하느님의 숨결을 필요로 한다. 분명 교회는 과학 이론의 옳고 그름에 어떤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진화론과 빅뱅우주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두 이론 모두 창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우리의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cpbc2015.08.11
![[제4회 신앙체험수기] 행복한 사형수](//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056_1.1_titleImage_1.jpg)
[제4회 신앙체험수기] 행복한 사형수이석수(요아킴, 수원교구 북수동본당)그림= 문채현 흐르는 시간이 기적을 일으켜 현실의 반대 방향으로 역류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잃어버린 20년의 세월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 소중한 시간을 값진 알맹이로 채워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사색의 깊은 강물에 던져봅니다. 향긋한 꽃향기처럼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의 향기를 피워올릴 수가 있다면,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누구나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한 올의 어긋남과 이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마는 저는 아직도 끔찍한 그 큰 실수의 당위성을 말하기엔 너무나 큰 죄악을 저지른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교도소의 15척 큰 담 안의 세월을 20년 동안 묵묵히 참고 견디며 시간이 주는 잔혹한 부속물과 설움의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삶을 살아왔습니다. 날개가 꺾인 새는 하늘을 날 수가 없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를 빼앗긴 삶은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짐승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자유를 상실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단순히 철장 속에 갇힘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거침없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시간의 잔상이 현실의 벽에 막혀 단절되었을 때의 그 깊은 절망과 고통, 슬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갖가지 아픔과 눈물, 절망의 쓴 잔을 무수히 삼키고, 푸른 수의를 입고 작은 골방에서 철창으로 조각난 사각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설움의 뜨거운 눈물을 뿌렸던 나날들이 그 얼마인지 모릅니다. 담 안에서 살아갈 때 사소한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과 손이 가고, 담장 위를 자유롭게 비행하며 삶을 만끽하는 비둘기들의 정겨운 모습이 마냥 부럽기도 했었습니다. 정에 굶주린 사람은 한낱 미물에게도 진솔한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옛말이 헛된 말은 아님을 저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죄의 대가를 혹독하게 다 치렀고, 오래전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그리운 고향 산천으로 벅찬 감회의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못난 저를 위해서 똑같이 마음고생을 하며 징역살이를 같이 해야만 했던 사랑하는 저의 처 안나씨와 두 딸 노엘라와 마리아, 그리고 은인 천사분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의 땀방울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돌이킬 수 있을 때 과감하게 뉘우치고 반성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함을 저는 큰 담 안에서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을 땐 순간적인 잠깐의 실수에도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27년 전에 죽음의 늪지대인 그 두려움으로 떨던 사형수 시절을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갑을 두 손에 차고 어설픈 기도로 묵주 알을 굴리며 다시 한 번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피눈물로 매달리고 몸부림쳤던 아찔한 그 시간들과 밤낮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저를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생명이 붙어있을 때까지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할 것이며, 하느님의 크신 뜻과 계명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기꺼이 죽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사형수 시절에 주님께 드린 그 약속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필코 지킬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예전에 몰랐던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숨 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을 참 천주로 받아들이고, 또 그 존엄하신 분의 진리의 깊은 뜻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생명의 참 삶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의 말씀처럼 주님께 덤으로 받은 이 재생의 삶을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고수라고도 불리는 사형수! 그 이름만으로도 교도소에선 충분히 주위를 춥고 무겁고 두렵게 하는 최악의 절망적인 단어입니다. 우리 주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은총으로 말미암아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이 되었을 때, 환희의 기쁨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 가슴 벅찬 감동의 은혜로운 시간들…. 죽지 않고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살아있음”이 얼마나 주님의 큰 축복인가를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지금 저는 이렇게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저의 온몸에 기생하고 있는 작은 세포와 그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과 그 근육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핏줄과 그 핏줄 속을 힘차게 흐르고 있는 붉은 피와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튼튼한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는 주님께 향한 감사의 송가가 제 입에서 넘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가치가 있는지 모른답니다. 인생의 제일 밑바닥에서 자유를 잃고, 제한된 공간과 감시 속에서 처절하게 눈물로 겪어보지 않으면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라는 시편 27장 1절의 말씀은 저에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저를 위하여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하느님께서 천사로 보내주신 이대길(시메온) 신부님과 강귀연(후꼬) 수녀님, 사형수 때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무료 변론을 해주신 배기원(알폰소) 양아버님, 그리고 많은 은인 분들의 눈물 어린 기도와 사랑을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저에게 또 한 번 재생의 삶으로 응답해 주셨음을 저는 힘차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울분과 분노를 삭이지 못해 두 분의 고귀한 생명을 앗았습니다. 생명보다 더 고귀한 것이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다? 저는 그 고귀한 생명을 잃게 한 큰 죄인입니다. 20년 동안 징역살이한 것으로 저의 모든 죗값을 다 치렀다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두 생명을 잃게 한 큰 죄는 제가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제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갚아야 할 저의 의무이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리신 두 분과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하고 또 사죄를 드리며 그 어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뉘우침과 참회의 기도를 하느님께 수없이 바쳤습니다. 저는 이제 고인이 되신 그 두 분의 몫과 함께 하루 72시간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사랑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 사명감이 저의 두 어깨에 걸려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인이 되신 분들과 가슴 아픈 피해자 가족분들에게 깊이 사죄를 드립니다. 죄인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젠 그 혹독한 형기를 모두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또다시 세상에 맞서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저는 많은 것을 고민했습니다. 27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실로 엄청난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일상생활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지고 안락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돈과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 더욱더 인심이 강퍅해져 버리고 고약해진 것 같습니다. 인정과 인심이 후했고 예절이 흘러넘치며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던 그 옛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담 안에서 갇혀 살아갈 때 저는 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 탓에 불면의 밤을 많이 지새우기도 했었습니다. 저 자신이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이 사회와 우리 성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를 말입니다. 저의 탈렌트는 하느님께서 분명히 넘치도록 주셨음을 굳게 믿었기에 그 믿음의 끈을 희망으로 부여잡고 끊임없이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는 마태오 복음 7장 7-8절의 말씀처럼 저도 이른 새벽 미명의 시간에 일어나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정성 어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지혜를 청했습니다.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아둔한 머리를 돌려 신ㆍ구약 성경 입문과 중급 과정을 통신으로 6년 동안 공부하고 은혜롭게 수료했습니다. 한자 1급 자격증을 땄고 대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종교 서적과 시집, 가톨릭 월간지 등을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탐독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자동차 정비 1급 산업기사ㆍ이용사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큰 담장의 교정시설 안에서 몇 번에 걸쳐서 천주교 회장과 공장 반장과 자치회장(총반장)의 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또 매주 드리는 미사와 각종 행사, 생일자 모임 때에는 몇 년 동안 입술이 부르트도록 독학으로 익힌 하모니카로 감미롭고도 경쾌하게 아름다운 성가와 생활 성가, 가곡과 동요, 애창곡 등을 연주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와 그 시간을 같이하셨던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많은 형제자매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지만,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기뻐하셨을까요?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입증하는 일이라면 새롭게 주신 이 재생의 생명이 무엇이 그렇게 아깝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이석수(요아킴) 총반장”이라고 하면 직원분들과 재소자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제일의 모범수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보다도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께 참으로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죄가 뭔지도 모른 채 죄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크든 작든 사소하든 아니든 간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여서, 이제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돌 같은 마음으로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지금의 시국에서 더 많은 사람이 인생 한방을 쫓아 헤매는 것처럼 제 눈에는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약하고 부족한 저의 영혼이지만 제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주님을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저를 사랑으로 불사르고 싶습니다. 소박한 삶 속의 감사함과 아름다움의 참 의미를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두 번 다시는 저와 같은 어리석은 큰 죄인이 이 세상에서 암적으로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하며 헌신할 것입니다. 저의 이 처절한 삶의 신앙 체험 고백으로 인해서 무서운 죄의 본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길 잃은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와 주님을 참 천주로 고백하고 참 자유를 만끽하며 주님 안에서의 행복을 맛볼 수 있도록 저의 뜨거운 열정과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입니다. 제가 교도소 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바다였습니다. 더 넓은 수평선 위로 붉게 떠오르는 말간 아침 태양을 두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함께 말입니다. 저 수평선의 끝없는 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와 생명과 희망’의 의미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모든 오물을 정화하고 썩지 않도록 모든 생명을 한 아름에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이제는 제 삶도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해야 함을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남은 인생이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깨끗한 바다처럼 그렇게 투명해질 수는 없을까요? 수많은 생명이 사는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는 것이 염분이듯이 저도 짠맛을 내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 많은 사람이 세파에 변질되고 오염되어 가는 이들의 마음을 썩지 않게 하는 짠 소금과 밝은 빛이 되어서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하는 방법이 분명하게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큰 담 안에서 참회하고 회개하며 겸손의 삶을 배워갈 때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으시고 우리 천주교 공동체를 위하여 미사 집전을 오시는 자상하시고 자애로우신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형제자매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를 통해서 큰 죄인인 제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오늘날 변화되었듯이, 저 역시도 지금 이 시각에 죄악에서 허덕이고 절망하며 방황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선교하여 하느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는 마음의 큰 울림소리를 결단코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힘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존재하시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앞날을 심판하신다는 그 사실을 저는 힘차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믿은 것은 1984년 화창한 5월의 봄날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103위 시성식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 친히 오셔서 거룩하게 집전하고 기도하실 때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십자가가 약 10초가량 나타나는 기적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저의 큰딸 노엘라도 아기 예수님께서 오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최고수라고도 불리는 사형수 꼬리표를 떼던 날 새벽에 무지개를 만지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되어 재생의 삶을 주님께 또 한 번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큰 담 안에 갇혀서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제가 하는 모든 일에 큰 축복을 내려 주셨기에 각종 문예작품 공모전에서 큰 상들과 많은 자격증을 취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온갖 나쁜 일들과 악한 기운을 막아주시어 아무런 작은 사고도 없이 영육간 건강한 몸으로 날마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큰 행복도 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과 자비와 기적의 은총은 말로 다 형용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한때 과분하지만 ‘수사’라는 별칭으로 행복하게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무기수에서 또다시 20년수라는 유기징역으로 몇 차례 감형의 큰 은혜를 입기까지 하느님의 크나큰 그 모든 은총은 결단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죄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주신 아가페적 큰 사랑이었습니다. “어떻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하는 무책임한 결과일 수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저의 마음에 차고 넘치는 이 큰 죄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담 안에서 진정으로 우리 하느님을 만났고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연과 눈물겨운 설움과 아픔이 들어 있습니다. 큰 담 안에서 2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저에게는 헛된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은혜로운 큰 희망과 생명의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작은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큰 담 안이라는 ‘시련의 용광로’에 집어넣어 단련과 연단을 시키셨습니다. 이제는 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습니다.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는 집회서 2장 5절의 거룩한 말씀이 저의 마음과 뇌리에 불같이 타오릅니다. 단지, 저는 그분의 도구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방향대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해드렸고 또 그분께서 저의 앞날을 인도해주시는 대로 마음만 열고 따라가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전능하신 우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불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자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또다시 골고타산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진홍빛 같은 고귀한 보혈을 흘리게 해 드릴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죄를 지을 땐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그 크신 사랑과 은총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저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시며 보호해주실 것을 굳게 믿기에 저의 온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 바쳐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찬미와 찬양과 감사의 아름다운 노래도 이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끝없이 부르고 증언할 것입니다. 2010년 3ㆍ1절 특사로 자유의 땅에 첫발을 내딛고 사랑하는 가족과 포옹하며 가슴이 설레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6개월쯤에 그토록 많은 고생을 감내하며 못난 남편을 기다리던 저의 반쪽 안나씨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2년간 병간호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주님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20년 동안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를 겪으며 가정을 지키고 옥바라지를 해온 아내의 그 아름다운 사랑에 그저 미안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난 안나씨에게 미안한 저의 마음은 제가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랑의 삶을 힘차게 펼쳐가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저로 말미암아 유명을 달리하신 피해자 두 분의 영혼이 주님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시기를 매일 기도드린답니다. 이 큰 죄인과 늘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제가 두 딸과 함께 저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좋은 직장과 일을 주시고 쉬는 날에는 우리 성교회와 가톨릭교육관에서 신앙 체험 특강을 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법무부 교정기관인 교도소와 청소년수련원에서 교육 및 특강을 할 수 있도록 제 입을 열어주시고 또한 수원시 장안공원 등에서 색소폰과 하모니카 연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더 기쁜 일은 저의 자서전 「행복한 사형수」가 많은 독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분에 넘치게도 서울대교구 주보와 신문에서 저에 대한 기사가 실리는 영광과 함께 가톨릭평화방송에서 2015년 성탄 특집에 방영되는 큰 기쁨을 우리 주님께서 제게 주셨습니다. 또한,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에 ‘선교’라는 주제로 생방송에 인터뷰할 수 있는 영광도 주셨습니다. 제 삶의 잔에 넘치도록 사랑과 자비를 부어주시는 우리 하느님께 “감사”라는 말밖에 저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형수입니다.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고 믿는 이들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시는 만민의 주님이신 우리 주 하느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이 큰 죄인을 사형이라는 죽음의 늪에서 다시 한 번 살려주셨습니다. 15척의 큰 담 안에서 온갖 시련이 도사린 정글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저를 주님의 독특한 법과 방법으로 삶의 깊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도록 지혜를 배우게 하셨으니 그 크나큰 탈렌트로 삼위일체이시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우리 주 하느님을 힘차게 증거하다가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죽도록 제 삶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젠, 이 큰 죄인은 삶에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오롯이 저의 희망이시고 기쁨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하느님의 깊으신 뜻대로 이 사형수를 당신의 작은 도구로 사용하소서!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당신의 보잘것없는 천한 종의 가슴 아픈 고백입니다. 영원토록 이 큰 죄인에게서 찬미와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주님께 큰 영광을 드리고 주님을 증언하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마다치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이 큰 죄인인 요아킴과 항상 같이 하시는 우리 주 하느님을 영원토록 흠숭하고 사랑합니다. 저의 삶에 모든 기쁨과 영광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우리 주 하느님만을 위하여 올립니다. 영원히 아멘.” 문채현2017.03.16
![[원주교구 조규만 주교 착좌] 양 냄새 풍기는 착한 목자 맞아 박수 소리 우렁차게](//cpbc.co.kr/CMS/newspaper/2016/06/rc/638155_1.0_titleImage_1.jpg)
[원주교구 조규만 주교 착좌] 양 냄새 풍기는 착한 목자 맞아 박수 소리 우렁차게착좌식 현장 조규만 주교(오른쪽)가 목장을 전해받은 후 주교좌에 착좌했다. 23년 만에 새 교구장을 맞은 원주교구는 축제 분위기였다. 더없이 좋은 날씨 속에서 착좌식이 거행된 원주 원동주교좌성당 안팎에서 사제, 수도자, 신자 1500여 명이 한마음으로 조규만 주교의 착좌를 축하했다. 조 주교는 전임 교구장 김지석 주교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현하며 “늘 원주교구를 위해 기도하는 교구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조규만 주교를 원주교구장으로 임명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령을 높이 들어 보이고, 교구 총대리 박순신 신부가 교령 선포문을 대독하자 원동주교좌성당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김지석 주교는 조 주교에게 목장을 전달하고 손을 잡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조 주교는 김 주교와 파딜랴 대주교의 안내를 받아 주교좌에 앉았다. 차분한 표정으로 미사를 집전하던 조 주교는 교구 사제단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조 주교는 축하식 때 꽃다발을 전달하러 나온 원동주교좌본당 아이들을 보고 또 한 번 활짝 웃었다. 원주교구 치명자의 모후 레지아 박덕구(안셀모) 단장은 교구민을 대표해 묵주기도, 주교를 위한 기도 등이 담긴 영적 예물을 봉헌했다.재치있는 입담과 공연에 축하식은 웃음 만발 ○…축하식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로 웃음을 선사한 이는 교구 사제단을 대표해 환영사를 한 한상용(무실동본당 주임) 신부였다. 한 신부는 ‘부활 찬송’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환영사를 시작해 다소 엄숙했던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다. “용약하라 원주교구 사람들, 모두 환호하라 새 교구장 착좌. 외쳐라 우렁찬 함성소리, 찬미하라 구원의 섭리!”한 신부는 “조 주교님은 축구를 워낙 좋아하셔서 물찬 제비처럼 드리블하시고 벌같이 쏘는 슈팅으로 상대편을 지옥으로 몰아넣으셨다”는 재치 있는 말로 조 주교의 ‘축구 사랑’을 소개하기도 했다.교구 신학생 20여 명이 축하 공연을 하러 제대 앞으로 나오자 즐거운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신학생들은 깜찍한 율동과 함께 ‘참 아름다운 그대’를 불러 조 주교와 착좌식 참석자에게 큰 웃음을 선물했다. 신학생들은 노래를 마치고 두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조 주교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고, 조 주교도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리며 화답했다. 조 주교는 답사에서 “상큼 발랄한 공연을 해준 신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전했다.이호용(스테파노) 부제는 “신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주교님의 따뜻한 성품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선택했다”면서 “열흘 전부터 자유시간 때마다 한자리에 모여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조 주교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도 많이 참석했다. 맨 앞자리에서 착좌식을 지켜본 조 주교의 가족과 친척들의 얼굴에는 감격과 기쁨이 교차했다.어머니 지복련(클라라, 84)씨는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하느님 뜻에 따라, 모든 이를 위해 살아가는 교구장이 되셨으면 한다”고 당부했고, 아버지 조시환(아우구스티노, 88)씨는 “착한 목자가 되시라고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주교의 첫 임지였던 서울 연희동본당 신자들도 찾아와 조 주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전했다. 1982년 9월부터 1년 8개월 동안 보좌신부로 사목한 연희동본당은 조 주교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목) 본당이었다. 10년 전 조 주교가 주교품을 받을 때는 연희동본당 신자 몇몇이 뜻을 모아 조 주교의 세례명을 딴 ‘바실리오회’를 만들기도 했다. 바실리오회 이효순(로사, 77) 회장은 “회원 16명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교님을 위해 고리 기도를 바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조 주교의 소신학교 은사와 동창, 안병철 신부를 비롯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관계자, 서울대교구 사제단도 착좌식을 찾았다. 조 주교와 소신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한 조규정(원주교구 성내동본당 주임) 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각자 다른 교구로 흩어졌는데, 34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면서 “물 맑고 인심 좋은 강원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조 주교가 어린 시절을 보낸 포천 백의리공소에서 가족처럼 지냈다는 염정분(마리아, 86, 서울 도봉동본당)씨는 “자꾸 눈물만 난다”면서 “서울에 계실 때는 조 주교님이 주례하는 미사에 종종 참례했는데, 이제 원주로 이사하셔서 자주 못 뵐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재단이사 최철수(스테파노) 코리아인스트루먼트 회장은 “새로 맡으신 교구장직이 쉽지 않겠지만, 주님 도우심으로 교구를 잘 이끌어나가실 것”이라고 덕담했다. ○…원동주교좌성당은 400여 명밖에 들어갈 수 없어, 많은 신자가 마당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착좌식을 지켜봤다. 마당에만 10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착좌식은 평화방송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미사 4시간 전인 오전 10시 가장 먼저 성당에 도착해 스크린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김명자(아녜스, 83, 원주 명륜동본당)씨는 “하느님 은총이 가득한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고,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조 주교가 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로 재임하던 시절 조 주교가 주례하는 미사에 복사를 섰다는 권민서(미카엘라, 중2, 서울 목5동본당)양은 “주교님께 드리려고 편지와 선물을 준비해 왔다”면서 “원주교구에서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조 주교는 착좌식에 온 손님들에게 자신의 문장이 새겨진 묵주와 신약 성경, 떡을 선물했다. 착좌식 후 신자들에게 둘러싸여○…착좌식을 마치고 성당을 나온 조 주교는 축하를 전하는 신자들에 둘러싸여 한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조 주교는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성당 맞은편 교구청 강당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건배사를 한 총대리 박순신 신부는 “멀리 한양(서울)에서 원주교구에 오신 조 주교님을 환영한다”면서 “원주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양 냄새를 풀풀 풍기는 착한 목자가 돼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남정률 기자 njyul@ 이힘 기자 lensman@ 임영선 기자 hellomrlim@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평화신문2016.05.3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3>](//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775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신비체험가들 신비체험가들이 애덕 실천을 통해 보여준 신앙인의 모습은 그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 은총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사진 왼쪽부터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시에나의 가타리나·아시시의 프란치스코·아빌라의 데레사·리지외의 데레사·토마스 머튼.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인 축일표를 살펴보면, 신비가 즉 신비체험가로 분류되는 성인을 무려 스무 분이 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축일표에 나와 있는 신비체험가들은 주로 12~19세기 인물입니다. 아마도 고대와 중세 초기 신비체험가는 순교자, 은수자 및 동정녀 등과 달리 훗날 그들의 삶을 채록하여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 등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힌다면 모든 시대에 걸쳐 신비체험가들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고대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할 때, 목숨까지 바쳐 가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언했던 순교자가 첫 번째 신비체험가일 것입니다. 아무나 쉽게 걸어갈 수 없는 순교의 길은 하느님 은총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따라서 박해를 받으며 순교의 형벌을 기다리던 순교자들은 이미 지상에서 하느님 품에 있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바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교회가 보증했습니다.로마 황제의 칙령에 따라 박해가 끝나고 자유롭게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자 몇몇 그리스도인이 개별적으로 사막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을 찾고자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단시간에 부쩍 수가 늘어난 은수자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하나 되는 관상생활을 했습니다. 고대 수도자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와 요한 카시아누스는 저서를 통해 수도생활을 통한 신비체험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중세에는 많은 여성 신비체험가들이 있었습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헬프타의 메히틸다, 헬프타의 제르트루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등이 여성 수도자임에도 자신의 생애를 통해 교회를 보존하고 신앙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과 깊이 일치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노르위치의 율리안나, 제노바의 가타리나 등이 평신도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애덕을 강조하며 실천한 것도 하느님과 깊이 일치했다는 증거입니다. 남성 수도자로는 오상을 받고 많은 기적 사건을 체험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하느님과 깊은 일치 안에 살아간 신비체험가라 할 수 있습니다.근세 들어 대표적인 신비체험가가 출현했습니다. 수도 생활 중에 자주 신비체험을 했던 아빌라의 데레사는 저서를 통해 인간 내면 안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영적 여정의 단계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개혁을 반대하던 수도자들에게 잠시 억류되어 있는 동안에 신비체험을 했던 십자가의 요한은 저서를 통해 앞선 신비신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하면서 내적 성찰을 통한 정화를 강조하는 영적 여정의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특히, 이 두 신비체험가들의 고백은 오늘날까지도 각자 자신의 신비체험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보는 시금석같이 여겨집니다.현대에는 비슷한 삶을 살았던 두 신비체험가가 주목받았습니다. 리지외의 데레사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은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자주 하느님과 합일하는 체험을 했을 뿐 아니라, 일찍이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하느님 은총을 나눠 주었습니다.한편, 아주 최근의 인물이라 아직도 평가 중에 있지만 충분히 신비체험가로 여길 수 있는 인물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나치의 유다인 학살 때 수용소에서 순교한 에디트 슈타인, 침묵의 관상생활을 현대인들에게 재해석해 보여주며 열심히 기도했던 토마스 머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봉헌하였던 콜카타의 복녀 마더 데레사 등도 분명 하느님과 깊은 일치 속에서 자신의 영적 여정을 묵묵히 걸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신비체험가들의 영적 여정은 일정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백도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덕 실천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당당한 신앙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마저 덩달아 하느님 은총을 느낄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비체험을 굳이 이론화해 소개한다면 ‘실천-신비사상’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