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예수, 프란치스코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정진하 매임 데레사(서울 시흥4동본당) 홍기는 위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병이 악화할 거라고 했습니다. 6개월 미만일지도 모른다고 수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마음이 괴로울 거고, 남의 위로 따위 싫다고 꼬여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웃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제대를 만들어야겠어, 홍기야.” 내 말을 홍기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제대 말이야. 작은 상 있니? 거기에 십자가, 초, 성경, 묵주 챙겨 와 봐.” 홍기는 거실과 안방 구석구석 뒤져서 찻상과 십자가, 성경을 챙겨왔습니다. “초랑 묵주가 없구나. 내가 내일 챙겨올게. 매일 이 시간 괜찮니? 10시부터 12시.” 홍기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넌 어린 왕자고 난 여우가 되는 거야. 아닌가, 내가 어린 왕자고 니가 여운가? 책을 하도 오래전에 봐서 헷갈린다. 여하간 특별한 일 있을 땐 연락주고, 연락 없을 땐 난 10시에 올 거야.” 그날은 기도 없이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두 시간을 채웠습니다. 일종의 워밍업인 거죠. 하지만 집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오락 대신 홍기가 성경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가방에 초와 제대보, 9일기도책과 묵주를 챙겨서 집을 나오는 기분은 묘하게 설레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또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무언가 깨닫게 해주실 거란 기대, 어쩜 홍기를 낫게 해주실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마음이 기뻐졌습니다. 홍기의 집 앞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조용하니 오락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방 창문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컴퓨터는 꺼져 있었습니다. 띵똥 띵똥.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홍기는 문을 열었습니다.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홍기, 안녕?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저는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홍기의 대답에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누나. 제 오락 아이템이 갑자기 없어져 버렸어요. 칼도 없고, 무기가 아무것도 없어요. 오락할 의욕이 완전 상실됐어요.” 오, 하느님. 저는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즉각적인 기도의 응답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상을 차리고, 초를 켜고 한 기도가 아니라 그냥 잠깐 지나가는 생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생각만 하여도 주님은 알고 계신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집에 들어섰을 때 거실엔 성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고 있었어?” 홍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습니다. “누나가 한번 읽어보라면서요. 마땅히 다른 할 일도 없고요.”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곁에 계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날부터 홍기와 묵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지향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몰라 홍기에게 기도해보라 했더니 “난 기도 잘 못해요. 누나가 해봐요”라고 떠넘기기에 ‘홍기의 건강 회복’이라는 지향으로 기도를 함께 시작했습니다. 어색하고 낯설 텐데 홍기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10시, 둘이 모여 기도하는 그곳엔, 성모님과 주님이 함께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2주 정도가 지나자 분심도 덜 생기고 기도에 집중하게 되면서 저희 둘은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계속〉 백영민2014.07.16

가정 제례보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가 우선신앙인들의 차례 지내는 법-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8일)가 다가왔다. 올 추석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천주교를 알릴 좋은 기회이다. 아울러 친지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며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을 드러낼 수 있는 때이다. 주교회의가 편찬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바탕으로 신앙인들의 올바른 차례 지내는 법을 소개한다.천주교에서 허용한 제례 의미제사의 근본정신은 선조에 대한 효 실천과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해 선조 유지에 따라 진실한 삶을 살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주교회의는 제례에 대한 몇 가지 유의할 점을 명시했다. 천주교가 허용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 제사의 답습이 아니고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 계승 차원이며 △나이 들어 입교한 다종교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조상 기일이나 명절에 가정이나 묘지에서의 제례를 허용하고 있다.가정 제례와 미사, 제례의 준비신자 가정에서는 가정 제례보다 우선하는 것이 죽은 이를 위한 미사다. 하지만 기일 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내야 하는 가정은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기준으로 제례를 지낼 수 있다. 우선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복장도 단정히 갖춘다. 제례 상은 단순히 추모 예절만을 위한 상을 차릴 수 있다. 상 위에는 십자가와 조상(고인)의 사진과 이름을 올리고, 촛불과 향을 피운다. 「성경」과 「가톨릭 성가」「상장예식」등을 준비한다. 가정 제례 예식<시작예식>가장이 “지금부터 한가위를 맞아 차례를 거행하겠습니다”하면, 참석한 모든 이가 십자성호를 긋는다. 시작성가는 가톨릭 성가 50번ㆍ227번 등이 좋다. 이어 가장 주례로 시작기도가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주인이신 주님께 조상님들과 우리 자신을 봉헌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이 예절에 참여합시다”하고 기도한다.잠시 침묵을 한 뒤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주님의 종 ‘(고인 이름과 세례명)’을 받아들이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서로 화목하여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하고 기도한다.<말씀 예절ㆍ추모 예절ㆍ마침 예식>이어 성경을 봉독한다. 마태 5,3-12(참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을 주로 읽지만, 다른 본문도 선택할 수 있다. 성경 봉독 뒤에 가장은 고인(조상)을 회고하면서 가훈과 가풍, 유훈 등을 가족들에게 설명한다.가장이 향을 피우고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큰 절을 두 번 하는 추모예절 뒤에는 위령기도를 바친다. 「상장예식」또는 「위령기도」를 참고해 연도처럼 노래할 수도 있다. 마침예식에는 성가(50번ㆍ54번ㆍ227번 등)를 부르고 성호경으로 마친다.이힘 기자 lensman@pbc.co.kr cpbc2014.09.02
![[성경 속 궁금증] 70. 성경에서 산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990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70. 성경에서 산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초월적ㆍ영적 경험의 장소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호렙(시나이) 산. 성경은 산을 여러 상징과 은유로 표현한다. 시편에서는 산과 언덕을 자주 의인화한다.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시편 98,8). 또한 산들이 뛰어놀기도 한다. "산들아, 너희가 숫양들처럼, 언덕들아, 너희가 어린 양들처럼 껑충껑충 뛰다니?"(시편114,6). 예로부터 산은 사람에게 친숙하면서도 중요한 자연 지형이다. 가파른 경사, 절벽 등으로 국가의 경계를 이루고 전략적 요새가 됐다. 세파에 지친 이들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산에서 휴식처를 찾기도 한다. 성경에서 산은 피난처와 안전의 상징이다.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산에 빗대기도 한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감싸고 계시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125,2).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족의 위협을 피해 산에다 은신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이들을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 산속의 동굴과 나무 틈새에 몸을 숨긴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아버지를 찾아 울부짖었다. 그러자 하느님은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시고 미디안을 물리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판관 6,1-7,20). 하느님의 백성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산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고 그분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산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실존의 기준이다.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나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시편 90,2). 거칠고 낯선 산이 가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함과 그 가시적 광대함은 인간 한계를 실감케 하는 경외의 표징이 된다. 산은 성경의 거의 처음부터 거룩한 장소로 등장한다. 창세기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초월적ㆍ영적 경험의 장소이다(창세 22,1-14). 하느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기도 하셨다.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탈출 3,1-2).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신약성경에서도 산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피해 홀로 계시는 곳이며, 기도를 하거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장소도 산이었다.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마태 4,8-9). 예수님은 산에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천상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곳도 산이었다(마태 17,1-8). 현재 예루살렘 올리브 산 정상에는 예수 승천기념 성당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승천하셨다.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올리브 산에서 부활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이곳에는 무덤이 많고 공동묘지가 산재해 있다. 이처럼 산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역사를 펼치신 거룩한 장소이다. 산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 cpbc2013.04.24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5> 제자 공동체의 기쁨은 선교의 기쁨](//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6926_1.0_titleImage_1.jpg)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제자 공동체의 기쁨은 선교의 기쁨 ‘복음의 기쁨’ 나누면 ‘선교의 기쁨’ 얻는다2014년 부활 성야 미사에서 초를 들고 입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교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우리의 사명이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작성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있어서 확실한 출발점이 있다. 교회는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선포해야 하는가? 교회 밖의 모든 이에게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일갈하신다.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이 ‘기쁨’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권과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이 기쁨을 누려야한다는 것이다. 이 풍진 세상의 모든 고뇌를 극복하게 만들어 주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복음의 기쁨이 어떻게 전달되는가? 전달 방식을 묻는 질문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전달된다. 이 기쁨은 예수님과 만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과의 만남을 주선해야 할 책무는 교회에 있다. 교황은 권고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1항). 만남을 통해 전하는 복음의 기쁨 교황은 권고문 전체를 통해 이 ‘기쁨’을 여러 가지 형용사로 표현하며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새로운 기쁨, 창조적 기쁨, 영적인 기쁨, 심오한 기쁨, 내밀한 기쁨, 광대한 기쁨,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영원한 기쁨, 가득한 기쁨, 신앙의 기쁨, 종말론적 기쁨….”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의 추기경 시절에 ‘신앙의 해’를 개막했는데, 그때에 이렇게 말했다. “빛의 표시로, 그리고 우정과 기쁨과 자유와 신뢰의 표시로 교회의 모든 문을 개방합시다.” 이제 그분이 교황이 되어 그 ‘신앙의 해’를 폐막하며 온 세계에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른 표현으로 호소하고 있다. “장벽을 높이 세워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교회가 아니라, 경계를 없애고 문을 개방하여 모든 이가 예수그리스도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만남’이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통로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선교는 복음의 열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여 형성된 공동체가 제자단이다. 사랑 가득한 그분의 자비의 눈길을 의식하고 주체할 수 없는 내적 기쁨을 느낀 사람들의 공동체다. 마냥 기쁨에 겨워 죽는 날까지 용약하며 자신들만을 위한 삶을 사는 공동체가 아니다. 이 기쁨은 더욱 확장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부르고 그에게 같은 기쁨을 누리도록 만드는 내적 추진력을 지닌 기쁨이다. 우리는 이를 ‘선교의 기쁨’이라 부른다. “제자들의 공동체의 삶을 가득 채우는 복음의 기쁨은 선교의 기쁨입니다”(21항). 교황은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일흔 두 제자들의 선교여행의 결과로 발생한 기쁨(루카 10,17)이었고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고 철부지들로 대변되는 가난한 이들과 작은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아버지를 찬미하며 예수께서 느끼셨던 기쁨(루카 10,21)이다. 이와 같은 기쁨을 선교의 기쁨이라 한다. 사도들의 설교로 오순절에 개종한 사람들의 첫 반응 역시 이 기쁨(사도 2,6)이었다.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기쁨이다. 하느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다는 기쁨이다. 함께 하는 이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살아가는 기쁨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신장되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선포된 복음이 지금 열매 맺고 있다는 표지입니다”(21). 이 선교의 기쁨은 세상의 논리를 초월한다. 선한 사람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욱 기뻐하는 하느님의 논리다. 우리들 마음속에도 이 이상한 논리를 수용하는 곳이 있다. 성경에도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은전 열 닢을 가진 여인이 한 닢을 잃은 뒤,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 노력하여 은전을 되찾자,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인다(루카 15,9). 잔치 비용이 은전 열 닢을 초과하는 낭비를 초래해도 수용하는 것이다. 한 닢을 되찾았을 때의 기쁨이 은전 열 닢의 가치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은 이성이 모르는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백영민2014.12.24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3>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십계명은 인간 삶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마르크 샤갈(1887~1985), 십계명을 받는 모세, 1960~1966, 캔버스에 유화, 샤갈 미술관, 프랑스 니스. 156.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나요?” (마태 19,16)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라고 말씀하시며,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덧붙이셨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52~2054항, 2075~2076항).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깊이 하나가 되며, 참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그분과 함께 걷습니다. 157. 십계명은 무작위로 만든 목록인가요?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전체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는 통일성이 있으며, 하나의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1~3계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4~10계명)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십계명의 본문은 두 가지 성경 원전에 근거합니다. 하나는 탈출기(20,2-17)이고 다른 하나는 신명기(5,6-21) 내용입니다. 예로부터 이 두 원전에서 십계명이 교훈적 목적으로 요약됐고, 전통적인 교리 문답의 형태로 신자들에게 제시됐습니다.158. 십계명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가요?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결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고 변함없는 인간의 기본 의무들을 담고 있습니다(2070~2072항).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간 행위에 관한 기본 법규들의 핵심적 요약입니다.십계명은 하느님의 계시의 한 부분이며, 근본적인 구속력을 지니므로, 누구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십계명은 결코 임의로 부과된 의무가 아니며, 이기주의와 증오와 거짓의 파괴적 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준다”고 말했습니다.<평화신문ㆍ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cpbc2014.09.17

“좋은 봉사자, 뽑기 힘들면 양성해야죠”대전교구 ‘봉사자 학교’ 개설한 사목기획국장 김명현 신부 “본당마다 봉사자 뽑기가 힘들어졌어요. 평신도 인재가 부족하고 개인 중심 신심생활로 흐름이 바뀌는 데다 사회적으로도 맞벌이 가구 증가로 인재풀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이에 대전교구는 오는 8일 ‘봉사자 학교’를 개설, 평신도 인재 양성에 나선다. 이 학교를 기획한 주역은 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김명현 신부다. 교구 내 평신도 신앙 교육의 못자리인 정하상교육회관 관장 김석태 신부와 함께 봉사자 학교를 만들었다. 김 신부는 “지난해 8월 교황님 방한 이후 성경과 성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담긴 예수님과 교황님의 뜻을 계속 잇도록 하고자 봉사자 학교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문을 뗐다.“교구장 주교님께서 1990년대 초 교구 사목국장 재임 당시에 잠깐 개설했던 봉사자 학교의 수료생들이 지금 본당 사목회장이나 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요새는 사목위원 뽑기도 힘들어서 한번 뽑으면 6∼7년은 봉사하는 게 다반사예요. 그걸 보면서 이제라도 평신도 인재를 양성해 양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는 교회의 질적 성숙을 이뤄내고, 신앙 안에서 기쁘게 봉사할 수 있도록 평신도 인재 양성을 시도하게 됐습니다.”이를 위해 대전가톨릭대 총장 곽승룡 신부 등 교수 신부들과 본당 일선에서 사목하는 사제들이 힘을 합쳤다. 매달 한 차례씩 10회 교육을 통해 신앙의 기본을 망라하고, 나중에 교안을 묶어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김 신부는 “솔직히 말하면 그간 교회가 신자 재교육이나 봉사자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면서 “부끄럽지만 기본 교리도 모르는 분들이 있어서 더더욱 봉사자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평신도 시대가 개막됐다”고 밝힌 김 신부는 “평신도 역시 인간의 세상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 왕직에 부름을 받았고, 그래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교회 사명에 대한 평신도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최근 들어 교회 봉사 직무를 서로 떠맡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그러기에 교회 모습을 새롭게 하기 위해 복음화된 평신도, 깊은 봉사 정신과 신앙을 지닌 평신도,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 양성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화신문2015.02.03
찾아가고 동반하는 형태로 사목 전환을 수원교구 ‘소통과 사목’ 심포지엄, 본당 조직·성직자 중심에서 소공동체 중심으로 변화 바람직 현 시대는 교회가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들과 동반하는 사목으로 변화하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수원교구가 7일 수원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소통과 사목’을 주제로 연 제19회 교구 심포지엄에서 한민택(수원가톨릭대) 신부는 “이전의 사목이 본당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찾아가 동반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본당의 조직과 운영이 신자들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소통에 관한 신학적 이해’를 발표한 한 신부는 “소통을 위해 교회는 신자들 삶에서 일어나는 질적이며 문화적, 구조적인 변화를 잘 읽고, 시의적절한 응답을 해야 한다”면서 “기존 사목이 본당 조직 중심의 중앙집권적, 성직자 중심적이었다면 이제는 무게 중심이 친교와 체험 중심의 작은 공동체로 옮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한 신부는 또 “지금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성화와 외적 복음화에 능동적ㆍ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모든 신앙인이 복음화 주체가 돼 교회의 복음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체계화된 평신도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통의 눈으로 본 소공동체’를 발표한 전삼용(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신부는 “현재 소공동체에 큰 폭의 수정이 가해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신자들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며 “소공동체 모델이 초대 교회가 아니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신부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통해 본 소공동체의 본질은 함께 모여(친교) 말씀(성경)으로 뜨거워지고(신앙체험) 성체(미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사목 내에서의 소통 진단’을 발표한 정준교(다음세대살림연구소) 교수는 “50주년을 지낸 수원교구가 더욱 더 복음화되려면 복음화의 앞에 서서 나가고 있는 사회 복음화 분야를 일반 복음화 분야가 함께 따라가며 박자를 맞춰야 한다”며 “특히 우리 한국교회에 맡겨진 아시아 대륙의 버려진 자들에 대한 연민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정 교수는 이어 “교리ㆍ성경ㆍ가정ㆍ선교 등 일반복음화 분야의 발전이 있으려면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열정ㆍ방법ㆍ표현은 103위 성인, 124위 복자들이 담대하게 증거하며 살았던 삶과 선조들의 훌륭한 점을 본받고 기억하며 새로운 미래를 희망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이성효(수원교구 총대리) 주교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사목 분야별 ‘소통’을 주제로 한 한민택 신부, 전삼용ㆍ최병조(교구 이주사목위원장)ㆍ현정수(수원교구 비산동본당 주임) 신부, 정준교 교수 발제로 이어졌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cpbc2014.10.15
![[복음이야기] (26) 율법학자](//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2769_1.0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26) 율법학자종교법 결정·전달하는 법학·편찬자 율법학자는 구약성경과 탈무드를 편집하는 데 큰 공헌을 세웠다. 사진은 통곡의 벽 앞에서 전통 복장을 하고 토라를 읽고 있는 유다인. 제공=평화방송여행사 김원창 바빌로니아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조가 멸망하고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생활을 하면서부터 사제들과 경쟁하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바로 ‘율법학자’다. 율법학자를 가리키는 히브리말 ‘소페르’는 본래 ‘기록자’(서기관)를 뜻했다. 구약 성경 시대 문맹률이 높았던 시절에 글을 기록하고 해독할 수 있는 이는 사회나 국가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서기관들이 왕국의 각종 문서와 조약뿐 아니라 율법을 기록하고 해독하는 일들을 했다. 이들 서기관 대부분은 왕국 멸망과 함께 사라지거나 율법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율법학자로 서서히 탈바꿈했다. 사제들도 유배기간 중에는 전해 내려오는 율법을 기록하고 보존해서 집대성하는 서기관의 일에 주로 종사했다. 이들 서기관은 셀레오코스왕 안티오코스 4세의 폭정에 대항해 마카베오 혁명(기원전 167~164년)이 일어날 무렵부터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강조돼 서기관보다는 ‘율법학자’란 호칭으로 불렸다. 이들은 ‘토라’(율법)가 이스라엘의 보호자이며,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희망이기에 이를 탐구하고 고취하고 그 모든 교훈을 생활에 반영시켜 민족의 영적 양식으로 삼으려 애썼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엘아자르(2마카 6,18)는 유다 젊은이들의 모범으로 제시됐다. 바빌론 유배 후 널리 알려진 학자 에즈라 율법학자들은 종교법을 결정하고 이를 전달하는 법학자와 편찬자의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했다. 그들의 임무는 “주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규정과 법을 가르치는 것”(에즈 7,11 참조)이었다.이들은 에제키엘 예언자와 요시야 임금 시대에, 그리고 유배생활 후 에즈라 예언자의 지도로 율법을 복구하고 성경을 조직화하는 대사업에 참가한 사람들로 오늘의 구약성경은 거의 이들 율법학자의 손으로 완성된 것이다. 에즈라는 바빌론 유배 이후 가장 널리 알려진 율법학자였다. 원래 사제 출신인 그는 페르시아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기원전 464~424년)에게 간청해 한 무리의 귀향민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왕은 에즈라에게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과 판사들을 임명할 권한을 줬다(에즈 7,25-26). 에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대사제 가문이면서도 제의를 집전하지 않고 율법을 백성들에게 읽어 줌으로써 교사와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에즈 8장).에즈라와 느헤미야기에 나오는 또 한 명의 서기관 즉 율법학자가 나오는 데 바로 ‘차독’이다. 그는 십일조로 바쳐진 곡식과 술과 기름을 보관할 창고 책임자로 사제와 레위인과 함께 임명됐다(느헤 13,12-13).백성에게 존경받은 율법학자들은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던 사제들과 점차 대립 위치에 서게 됐다. 바빌론 유배 이후 사제, 레위인, 서기관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은 서로 혼합됐고, 산헤드린(공회)의 의석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확고한 계급 기반을 구축했다.예수님 시대 시나고그는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고 성경을 해설하는 회당이었기에 여기서도 율법학자들이 사제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통상 ‘랍비’(선생님)로 불렸다(마태 26,25.40.; 요한 1,38).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랍비’ ‘랍부니’(요한 20,16)라 불렸다. 랍부니는 아람어로 랍비와 같은 의미이지만 높임말이다.율법학자들은 재판에도 관여했다. 왜냐하면 율법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어서 송사에 관한 율법적 판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학자들은 행정관이자 유다인의 삶에 정통한 전문가로, 예루살렘과 그 외 지방에 봉직하는 공직자와 재판관 역할을 했다. 율법학자들은 지방에도 거주했지만(루카 5,17 참조) 주로 예루살렘에 거주했다. 예수님, 본래 정신 망각한 학자들 비난 마르코와 마태오, 루카 등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율법학자를 예수님께 반대하는 집단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게 된 원인 중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 대사제들과 연관돼 예수님을 반대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율법학자의 출신 성분은 다양했다. 장인 출신이 제일 많았고, 상인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무슨 직업을 가졌건 같은 연구를 하고 같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로 상호 밀접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서로 치열한 공개 논쟁을 할 때에도 이 유대는 금이 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들의 학식을 인정하시고(마태 13,52), 그들과 논쟁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 하느님의 참된 부르심에 따르지 않고 부질없이 전통에 집착해 율법의 지엽적인 문제들에만 매달리고 그 본래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난하셨다.서기 70년 예루살렘 붕괴 후 율법학자들은 갈릴래아 호수 남쪽 얌 네 아예 집결해 거주하면서 이곳을 종교 중심지로 삼고 탈무드 대부분을 편집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