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시네요”캐릭터 ‘깔깔수녀님’ 만든 정민영 작가 정민영 작가가 10여 년간 동행한 깔깔수녀님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공소 재건한 부친 영향으로 순례·작업 “가톨릭 콘텐츠 창작 원동력은 ‘성지의 위로’… 예수님 늘 동행” 2027 서울 WYD 맞춰 무명 순교자 애니메이션 공개 계획 깔깔수녀님. 수도자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의성어지만, ‘깔깔’ 웃고 있는 수녀님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래서 쉽게 연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번 보면 귀엽고 유쾌한 이미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캐릭터 ‘깔깔수녀님’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을 방문했다. 전시는 5일 끝나지만, 이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궁금해서 갤러리를 찾았다. “오래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과 성경 테마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고 새롭게 만든 캐릭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하게 들려줄 수 있는 친근한 수녀님 이미지로 다듬었죠. 우여곡절 끝에 애니메이션은 방영되지 않고 깔깔수녀님만 살아남았어요.(웃음)”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을 전공한 정민영(요한) 작가는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깔깔수녀님은 2016년 초대전으로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다수의 전시와 아트페어, 뮤지컬 ‘시스터 액트’와의 콜라보 등으로 신자 여부를 떠나 꾸준히 대중과 호흡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사그라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장수한 셈이다. 2023~2025년 인천교구 주보에 실린 깔깔수녀님은 2년 전부터 성지 순례기를 올린 정 작가의 SNS에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희년을 맞아 작년에는 로마 4대 대성전도 방문했다. 애니메이션이든 캐릭터든 어찌 보면 상업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수익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모태 신앙이고,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다치셨는데, 병원에서 수녀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래도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수녀님과 같이 기도하고 계시더래요. 제게 언젠가부터 가톨릭 콘텐츠 관련 일이 이어지는데, 과제나 숙명 같다고 할까요. 가진 재능으로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극구 신앙을 외면하던 그의 아버지는 추후 대전교구 죽림리공소(충남 홍성)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아내와 함께 성지를 순례 중인 그는 자신의 탈렌트를 결집해 순교자들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성지에 가면 그냥 좋아요, 숙연해지고요. 고향 집이 내포, 홍성 쪽인데, 어릴 때는 그 지역에 그렇게 많은 순교자가 계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순교자분들을 알리고 기억하게끔 애니메이션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어요. 누구나 쉽게, 편하게 볼 수 있게요.” 러닝 타임은 대략 10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리는 내년 무명 순교자부터 시리즈로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깔깔수녀님을 실물로 제작할 때, 의도하지 않았는데 업계 분들이 독실한 신자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부터는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예수님도 동행하고 계시고요. 신앙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바쁠 때면 주일 미사도 빠지지만, 아버지의 어떤 울림이 있어요.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 봐!’”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7.01

시작 예식 (03)[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8) 출처: 월간 꿈CUM 참회(懺悔, Penitential Rite) 대부분의 종교에는 예식을 시작하기 전이나 예식 중에 모든 이들이 경건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정화예식이 있다. 미사는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구원을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잔치이자 제사이기 때문에, 그 어느 종교의 예식보다도 더욱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미 초 세기부터 미사 직전이나 미사 중에 여러 차례, 여러 형태로 참회 예식을 거행하였다. (1) 의미 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의 화해를 요청한다. ② 이러한 화해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대리자이며 동시에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와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바치는 봉헌이다.결국 참회예절의 의미는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한 공동체의 회개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의 신비가 거룩한 말과 가슴을 치는(루카 18,13 참조) 행위로써 표현되고 체험된다. (2) 성경적 근거 :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깨끗한 재물을 바칠 수있도록 서로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도 제단에 제물을 바치려 할 때 먼저 서로가 용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마태 5,23-24 참조) (3) 초대 (우리 죄를 고백하자) : 사제는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죄고백을 위한 권고를 한다. (4) 반성 (우리 자신을 반성하자) : 죄 고백의 권고 후에 잠시 침묵을 하여 우리 스스로의 ‘과거지사를 성찰케 하고’ 우리 생활을 ‘반성케’ 하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5) 고백 : 모두 뉘우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며 주님의 자비를 간청한다.고백 양식은 세 가지인데,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이가 지은 죄를 공동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1양식 : “전능하신 하느님과….” 고백문의 전반부는 공동체가 하느님께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지은 죄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단지 하느님만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있는 신비체인 공동체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 내용은 생각, 말, 행위, 의무 소홀 등 인간이 짓는 죄를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전반부가 끝나면 모두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를 세 번 반복한다. 이 동작은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의 표시이다.(루카 18,13 참조) 고백문의 후반부는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가 성모마리아, 천사, 성인 및 형제 등 천상과 지상 가족에게 공동체를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비는 청원기도이다. ② 제2양식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고백문의 주제는 요엘서 2장 17절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와 시편 85장 8절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이시고 저희에게 당신 구원을 베푸소서”에서 발췌하였다.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훌륭한 기도로 연중 주일이나 평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제3양식 :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 이 양식은 ‘자비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부분인 ‘자비송’은 외우지 않는다.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과 두 번째 기도 “죄인을 부르러 오신…”은 뉘우치는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 번째 기도는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시는…”은 요한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신 이름으로 청하면 아버지께 전달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6) 사죄 : 고백이 끝나면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자들에게 사죄를선언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죄를 사해주신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자비의 찬가를 노래하게 된다. (7) 실천 : 소죄는 참회예절을 통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대죄는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8.12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18/qhM1763438107719.jpg)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나눔’에 대해 대부분 사람은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나눔은 물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해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더 의미한다. 이러한 나눔은 주로 성당의 어떤 단체활동 전후, 또는 특정 모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눔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누구와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해설단은 한 달에 한번 회합을 하며 독서와 복음에 대해 묵상하고 단원들과 나눔하는 시간이 있다. 같은 독서, 같은 복음이지만 묵상 내용은 단원마다 다르며, 서로 다른 묵상 나눔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을 느끼게 되고, 그 배움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교우들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캠핑을 무척 좋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캠핑을 간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각자 일정 때문에 아내와 둘이 ‘부부 캠핑’을 하게 된 지 벌써 오래됐다. 아내와 둘이 캠핑 가는 것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물어본다. “아내랑 둘이 무슨 재미로 캠핑을 가?” 나의 대답은 늘 이렇다. “캠핑을 가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가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캠핑을 가면 아내와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지고, 주제도 다양하다. 나와 아내의 생각을 꺼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뜻이겠지. 계획이 있으시겠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은 다르지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게서 배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끔 지인 부부들과 함께 캠핑하는 경우도 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술 한잔 하다 보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자녀 이야기, 주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지인이 비신자라도 나와 아내는 그런 생각들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을 맛보게 된다. 비단 캠핑이 아니라 퇴근 후 동료·선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소한 토론을 하게 된다. 이때 나누는 이야기들 역시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고, 나눔을 통한 배움을 경험한다. 나눔은 성당이나 어떤 단체 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눔을 위해서는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듣는 것, 내 생각을 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 묵상과 성찰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묵상과 성찰은 미사 참여를 통해 독서와 복음을 새기는 것이며, 성경을 읽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직접적·간접적 경험을 쌓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크고 작은 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의 묵상과 성찰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며 나를 성장시키는 배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음속으로 지혜의 길을 찾고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공동번역 「성서」 집회 14,21)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애가 3,40) 김기형(요셉)cpbc2025.11.19

전 세계 청년이 만든 ‘WYD 40년’, 서울이 이어간다제2차 국제준비회의 4일간 열려, 100여개 국 280여 명 관계자 참석... 준비 상황·참가 방법 등 공유·점검 14~17일 인천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27 서울 WYD 제2차 국제준비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14일 회의 시작에 앞서 전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제공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제2차 국제준비회의가 14~17일 인천 네스트호텔에서 열렸다. 세계 각국 주교회의와 교구, 수도회·신심단체의 청년사목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울 WYD 준비 상황과 참가 방법을 공유하고, 청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동행할지 논의했다. 참가자들은 서울 WYD가 한국의 문화와 역사뿐 아니라 청년들의 신앙과 희망, 실패와 상처까지도 아우르는 대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회의에는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과 2023 리스본 WYD 총괄코디네이터를 지낸 아메리코 아귀아르(포르투갈 세투발교구장) 추기경, 서울 WYD 조직위원장 정순택(서울대교구장) 대주교,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 등 세계 각 대륙 100여 개 나라에서 280여 명이 참석했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와 대구대교구 장신호 보좌 주교, 조직위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 조직위 사제단과 교구대회 담당자, 봉사자들도 함께했다. 2027 서울 WYD 제2차 국제준비회의가 14~17일 인천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2027 서울 WYD 조직위원장 정순택 대주교가 14일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정 대주교는 14일 개회식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준비의 중심에는 언제나 청년들이 있었다”며 “청년들이 서로 만나 신앙 안에서 용기를 얻으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교회와 사회가 세계 청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집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참가자들을 환영했다. 패럴 추기경은 축사에서 WYD가 청년들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 중요한 여정임을 강조하며 “WYD는 하느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생생한 경험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WYD는 순례이며, 그 순례는 오늘부터 시작된다”며 2027 서울 WYD를 앞두고 열린 이번 회의에 기대를 나타냈다. 첫 세션은 ‘세계청년대회 40년-사목적 결실: 유산, 도전,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주제로 열렸다. 1986년 첫 WYD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초대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지 40년을 맞아 그 결실과 과제를 돌아보는 자리였다. 아귀아르 추기경과 전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청년부 책임자 주앙 샤가스 신부, 2019 파나마 WYD 조직위 빅터 창 사무총장이 발표자로 나섰다. 아귀아르 추기경은 “자원봉사자는 세계청년대회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며 “그들의 말을 듣고 양성하며 신뢰하고 동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귀아르 추기경은 최고의 무대와 시스템도 “우리를 맞아주는 얼굴”을 대신할 수 없다며 “WYD 봉사는 대규모 행사를 돕는 일이 아니라 교회 사명에 참여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대회의 결실을 숫자로만 헤아릴 수 없다”면서 인내와 겸손을 거듭 강조했다. 샤가스 신부는 “성경에서 40년은 도착점이면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면서 WYD 40주년의 의미를 짚었다. 또 국제대회뿐 아니라 각 지역 교회와 교구에서 열리는 청년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창 사무총장은 파나마 대회를 “시노달리타스를 배우는 학교”라고 회고했다. 더불어 “청년들은 수혜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돼야 한다”며 청년들에게 책임을 맡기고 청년들 제안에 귀를 기울이기를 당부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서울에 오지 못하는 청년들의 참여 방안, 재활용과 쓰레기 감축 실천, 봉사자 선발 기준과 언어 소통 방법 등이 논의됐다. 2027 서울 WYD 제2차 국제준비회의가 14~17일 인천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온 참가자 280여 명이 14일 개최식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한편 교황청 국제청년자문기구(IYAB, 아이압) 청년들도 회의에 함께했다. 20개국 청년 20명으로 구성된 IYAB은 청년의 관점을 교황청에 전하는 자문·참여 기구다. 이들은 “청년은 교회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라며 “청년을 위해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청년과 함께 무엇을 할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박 4일간 이어진 회의에서는 △2027 서울 WYD의 사목적 의미 △순례자 모집 및 참가자를 위한 준비 △등록 시스템과 순례자 애플리케이션 △교구대회와 본대회 운영 등에 관한 소개와 토론이 이어졌다. 14일에는 한국 전통 공연과 놀이, K팝 등을 선보이는 ‘K-컬처 나이트’가 15일에는 교구대회를 소개하는 ‘DID 엑스포’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16일 절두산 순교성지를 순례하고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 뒤 17일 환송미사를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2027 서울 WYD는 내년 7월 29~8월 2일 전국 교구에서 교구대회가 열린 뒤 8월 3~8일 서울에서 본대회가 개최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박수정2026.09.17
![[출판] 일상에서 마음속 '황금' 찾는 혜안 가르쳐줘](//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1379_1.2_titleImage_1.jpg)
[출판] 일상에서 마음속 '황금' 찾는 혜안 가르쳐줘안셀름 그륀 신부가 들려주는 기쁨과 행복 이야기 2권 출간 숨어 있는 기쁨ㆍ숨어 있는 행복 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조규홍 옮김/가톨릭출판사/각 1만 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성가 안셀름 그륀(독일 성베네딕도회) 신부가 들려주는 기쁨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예로 들며 그 속에서 성경 속 하느님 말씀, 옛 성인들의 지혜와 교훈을 찾아내 알려준다. 기쁨과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길라잡이다. ▨숨어 있는 기쁨 누구에게나 매일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기쁨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화창한 날씨, 출퇴근 시간 버스에 비어 있는 한 자리, 동료의 밝은 인사 등 우리 주변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하다. 이에 관해 그륀 신부는 매일같이 다가오는 수많은 기쁨을 의식하고 받아들일 것을 당부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내면에는 적극적인 태도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점점 증폭되고 확고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내면적 태도가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 것입니다."(22쪽) 실제로 기쁨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 집회서는 "마음의 기쁨은 곧 사람의 생명이며, 즐거움은 곧 인간의 장수이다. 질투와 분노는 수명을 줄이고 걱정은 노년을 앞당긴다"고 했다(집회 30,22.24-25). 기쁨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기뻐할 일은 조용히 지나가면서도, 화가 나거나 못마땅한 일은 크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륀 신부는 이러한 태도에서도 긍정을 찾아낸다. "불만은 기쁨에 대한 커다란 열망의 표시"라면서 "슬픔 이면에 감춰져 있는 기쁨에 대한 열망도 지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곁눈질하며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기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갑니다. 그것이 그가 기뻐하는 근거입니다."(58~9쪽) 그륀 신부는 이어 △자연에 △순간순간에 △좋은 음식에 △기도할 수 있음에 △작은 것들에서 발견되는 행복에 △친구가 있음에 기뻐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중에서도 하느님 앞에서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라고 강조한다. ▨숨어 있는 행복 그륀 신부는 행복을 황금 찾기에 비유했다. 여기서 황금은 물질적 황금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신적 의미의 황금이다. 내면 혹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 빛을 발하는 진리와 지혜를 가리킨다. 그륀 신부는 이 책에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다양한 생활 속에서 마음속 황금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며 일상을 '잠겨 있는 보물 창고'에 비유했다. "이 보물 창고는 말 그대로 값지고 귀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따라서 보물 창고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면, 다시 말해 일상과 친해지는 법을 알게 된다면, 그 값지고 귀한 것은 우리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열쇠를 갖는다는 것은 '자명(自明)함, 곧 그 자체로 분명함'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65쪽) 일상에서 황금을 찾으려면 '분명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지혜와 사랑이 바탕이 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잘것없고 겉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에도 사랑 어린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륀 신부는 또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억하기 싫은 괴로운 경험에서도 "가슴 아픈 상처들이 발하는 황금빛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처를 받고 나면 우리는 종종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 순간 자기 부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것을, 또 자기처럼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보호해줄 것을 스스로 다짐합니다."(96쪽) 그륀 신부는 "이기적인 욕심이나 아픔들, 소극적인 감정이나 쓸데없는 생각들, 스스로 쌓아 올린 열등감을 헤집어 볼 수 있다면 내면에 자리하는 그 모든 것에서 황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책이 삶을 흔들어 놓은 모든 것들을 가만히 살펴서, 감춰져 있던 황금을 발견할 수 있는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2.19
![[생활 속 복음]연중 제16주일-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1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 복음]연중 제16주일-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하느님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일과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을 모두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고 하셨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앞질러 먼저 그곳에 도착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 홀로 또는 제자들과 가셨던 '한적한 곳, 외딴곳'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사명의 비밀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떼의 착하신 목자가 되려고 외딴곳에서 기도하셨다. 기도 중에 당신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르고,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부 말씀을 옮기고, 자기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을 할 용기를 얻었다. 한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암보살…"이라고 염불을 외웠다. 다른 스님이 불당 앞을 지나가다 이 소리를 듣고는 "아니, '관세음보살'을 왜 '관세암보살'이라고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염불하던 스님은 "관세음보살이라니요? 관세암보살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스님은 서로가 옳다고 우기다가 결국 스승이신 큰스님께 판정을 받자고 했다. 얼마 후 관세암보살로 외웠던 스님이 호박범벅죽을 큰스님께 드리면서 관세암보살이 맞는다고 말해달라고 청했다. 조금 뒤에 관세음보살이라 주장했던 스님도 국수를 큰스님께 드리면서 자신이 맞다고 해주길 부탁했다. 날이 밝고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두 스님은 스승에게 갔다. 큰스님은 "호박범벅경에 보면 관세암보살이라 되어있고, 국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이라 적혀 있느니라"하는 말을 건네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원래 가시덤불에는 봉황이 깃들지 않으며,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틀고, 현명한 사람은 스승을 골라 섬긴다고 한다. 지도자는 단순히 대중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권위자와 구별된다. 사랑과 책임감을 지니고, 구멍 뚫린 배로 항해하듯이 항상 조심해야 한다. 겸손하게 집단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구성원에게 삶과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며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인류의 진정한 스승이며 착한 목자인 예수님의 전 생애는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르는 것이며, 성부의 창조 목적에 따라 양떼인 하느님 백성을 이끄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 삶의 핵은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는 성경 기록 그 자체이다. 이것이 또한 그분 기도다. 예수님께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 5,30)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에 따라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과 가르치심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삶과 기도의 지향이다. 지금 이 세상은 돈이 힘이며, 지조요, 대의명분이고, 사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신뢰할 수 있고 믿는 자에게 마음을 연다. 아무리 덕(德)으로 분을 바르고, 의(義)로 치장해도 숨은 뜻이 아름답지 못하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벼슬과 지위, 재물은 어쩌다 우리와 인연이 되어 잠깐 머물다 가는 것뿐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인 해와 자매인 달을 노래하듯, 창조에는 근본적으로 친밀성과 일체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탈렌트가 개인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가 어울려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역할을 나눠 서로에게 봉사하려고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삶을 통해서 명예는 정직한 수고에서 생성되고, 우리 자신이 우리 명예의 수호자가 된다. 비록 현실의 삶이 복잡하고 분주해도 우리는 마음의 '한적한 곳'을 찾아서 예수님 가르침을 묵상하자. 그리고 하느님 뜻만을 이루시려 한 생을 보내시며 기도하신 그분을 닮고 사랑하도록 은총을 구하자. ※서광석 신부님은 이번 주로 '생활 속의 복음'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 속에서 복음의 정수(精髓)를 건져올려 독자들에게 안겨준 서 신부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월 5일자(제1177호)부터 대전가톨릭대 교수 곽승룡(교의신학 박사) 신부님이 연재합니다.조은일2012.07.17
![[생활 속의 복음] 성령강림대축일-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cpbc.co.kr/CMS/newspaper/2011/06/rc/379301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성령강림대축일-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더 큰 행복을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물질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지식이나 힘, 명예나 쾌락 등에서 행복을 찾던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했고 건강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도 건강만으로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데 잘 안 됩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나약한 인간의 힘만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특히 기적 같은 독특한 신앙체험이 있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행복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한 명이 꿈에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답니다. 갓 영세한 신자 한 명은 꿈에 성모님을 보고는 확고한 신앙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을 딱 한 번만 보았으면,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예수님 목소리를 딱 한마디라도 들어본다면,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먼 발치에서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져보았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손으로 만져보고 예수님 얼굴을 두 눈으로 보고 예수님 목소리를 귀로 들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더 잘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자그마치 삼 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수없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무수히 만져보고, 수 천 번도 넘게 예수님 말씀을 똑똑히 들었지만 신앙심이 깊어졌던 것도 아니고 삶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지식이 풍부하고 신앙체험이 많으면 더 깊은 신앙심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자들만큼 많이 알고 많은 체험을 한 사람들도 없지만 그들처럼 형편없던 신앙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을 예수님한테 직접 듣고도, 그 놀라운 기적을 생생하게 체험하고도,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변치 않던 완고한 마음이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의심 없는 믿음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이 알고, 많이 체험한다고 해서 신앙심이 깊어지고 행복이 커지는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신앙심을 깊게 하거나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 가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지식과 체험, 노력이기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데는 별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태산같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자 제자들은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어서 다락방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불혀 모양의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뜨거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180도 변했습니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자로, 불안에 떨던 마음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지근한 믿음에서 확실한 믿음으로, 고통에 짓눌린 찌든 삶에서 기쁨에 넘치는 은총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려하고 더 행복해지려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 신앙심이 더 깊어지거나 행복이 더 커지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다면 틀림없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뿐이리라."(성령송가 중에서) 조은일2011.06.07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1주일- 예수님 흉내내기로 예수님 태어나실 분위기를 만듭시다](//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8157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1주일- 예수님 흉내내기로 예수님 태어나실 분위기를 만듭시다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오늘부터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인간은 한번 태어난 후 또 다시 태어날 수 없지만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2000년 전 12월 25일에 태어나셨지만 또 다시 태어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성탄에 예수님이 또 태어나실 것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내 안에 다시 태어나시어 나를 구원해 주십사고 청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학자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이신 주님이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탄생하시지만 만일 내 마음에 태어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고 질문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태어나시지 않으면 성탄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어떤 사람 안에 태어나시는가? 어떻게 해야 내 안에 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나실 수 있을까? 내 안에 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려면 내 안에 예수님 태어나실 풍토와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집안 분위기를 예수님께서 태어나고 싶은 분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가 태어날 만한 집안분위기에서 태어나서 자랐기에 사제가 된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자란 환경과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사제를 탄생시킬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순교하시고 아버지마저 순교하실 만큼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집안의 모든 분위기가 신앙 중심이었고 신앙이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레 신앙심이 몸에 배였던 풍토였습니다. 신학생으로 마카오에 뽑혀갔을 때 마카오의 세 신학생들을 맞이한 조선신학교 책임자 칼르리 신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에게 전적으로 맡긴 세 명의 조선 소년들은 훌륭한 사제에게 바람직스러운 신심, 겸손, 면학심, 선생에 대한 존경 등 모든 면에서 완전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신부되는 데 손색이 없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우리의 집안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방마다 중심에 십자가가 걸려있고 성모상, 성인들의 상본, 성경책, 묵주 등 신앙적인 분위기입니까? 아니면 방의 중심에는 사진이나 장식물이 걸려 있고 십자가는 구석으로 몰려 있어 그 위에는 걸레나 옷가지들이 걸려있거나 덮여있지는 않습니까? 아침ㆍ저녁기도, 식사전ㆍ후기도, 묵주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등을 자연스럽게 바치고 있습니까? 평일미사에까지 참여하며 성당에서 봉사하고 성서를 읽는 등 신앙적 분위기입니까? 아니면 일주일에 겨우 한번 마지못해 성당에 나오고 그 밖에는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볼 수 없는 그런 환경입니까? 애들은 학교교육, 과외, 외모에만 신경을 쓰고, 연예인들이나 흉내내고 어른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 잘 벌고 세속의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는 데만 중점을 두는 집안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분위기입니까? 환경과 풍토가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 집안 분위기를 신앙 분위기로, 집안 환경을 기도하는 환경으로 만듭시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세속적으로 출세한 사람을 따라하고 흉내내는 분위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하며 예수님을 흉내내는 분위기로 만듭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흉내 내고, 예수님을 따라하고,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하면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집안 분위기를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로, 우리의 풍토와 환경을 예수님을 탄생시킬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면 우리 안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또 다시 기다리는 것은 이번 성탄에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셔야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에 예수께서 우리 안에 다시 태어나셔야 우리가 안고 있는 그 많은 문제들까지 해결하거나 또는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에 우리 안에 예수님을 탄생시킬 분위기를 만들어 봅시다. 평소에 안 하던 기도를 하든가, 성당봉사나 청소를 하든가, 전에 안 하던 구역반 모임에 참가하든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좋은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은 많습니다. 이번 성탄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예수님을 흉내냄으로써 예수님을 탄생시킵시다. ▲박용식(시몬) 신부는 1979년 사제품을 받고 원주교구 풍수원본당 주임, 미국 버지니아 성바오로 정하상본당 주임, 황지ㆍ봉산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예수님 흉내내기」와 「예수님 따라하기」 등이 있다.조은일2010.11.23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성숙한 신앙인의 복음 선포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오늘 복음은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께서 하신 첫 연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선포하신 주님을 향해 사람들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루카 4,23).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이런 반응은 그들이 주님에게 원하는 바가 다름 아닌 기적과 같은 표징이라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차별화된 무엇인가를 보여 달라는 뜻입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내면에는 자신만을 우선시하는 마음, 더 나아가 자신만을 위해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편협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곧 자신의 구미에 당기는 바람들을 들어줄 수 있다면 믿어 보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나타나엘이 처음 주님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과도 같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사람들의 이런 부정적 반응은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께서 하신 첫 복음 선포 연설이 실패한 듯이 보이게 합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나, 이방인이었던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 관한 주님 말씀은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을 극에 달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나서 주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 합니다. 주님의 공생활 시작과 같은 첫 데뷔 연설이 실패하고 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더욱이 주님은 왜 이런 방법으로 첫 데뷔 연설을 시작하셨는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바를 주님께서 반드시 만족시켜주고 채워주셔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주님을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잘못된 바람과 기대는 자신의 생각 속에 주님을 설정하고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게 합니다. 자신 감성에 맞는 하느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유혹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은 실패를 무릅쓰고 복음 선포자가 진정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다고 봅니다. 복음 선포자는 사람들의 무조건적 기대와 필요에 따라 주님을 끼워 맞추는 유혹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독한 유혹은 주님의 생명과 사랑이 우리 내면으로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방해물입니다. 외적 성공보다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복음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7.19). 우리는 스스로 반드시 무엇인가 이뤄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두려워하고 떨곤 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욕망이 실패하는 것을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께서 들려주신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마음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 사랑입니다. 복음 선포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며, 그 체험을 통해 주님 뜻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듯,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립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때의 것들을 그만둡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복음 선포입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한 복음 선포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신앙 성숙을 위해 실패한 듯이 비춰질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외적으로 무엇을 이루거나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주님 자유와 사랑에 함께 동참하기를 더 바라시기 때문입니다.조은일2010.01.26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주님 사랑에 새로운 영적 눈 떠야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오늘 우리는 루카 복음의 서문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공생활 시작의 첫 연설을 듣습니다. 서문에 나오는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상징적 이름입니다. 테오필로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 모두 진실임을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증언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는 일정한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도들의 복음 선포, 그리고 구두전승에서 기록단계라는 3가지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이 기록된 사이에는 30~60년이라는 긴 시차가 존재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직접 남기신 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체험한 일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기록하고 증언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역사적으로 입증할 만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단순히 역사적 검증으로만 찾으려 애쓴다면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안에서 검증되고 비춰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역사 자체를 창조하고 창조된 역사 안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데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찾으려 한다면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믿음의 영적인 성장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자렛 회당에서 일어난 일이 이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바로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용된 이사야서 61장 1-2절과는 다른 내용이 더 첨가돼 있습니다. 그것은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눈먼 이들이 다시 본다는 의미는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하느님과 인간과 관계를 고립시키는 눈먼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닌지 묵상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거기에 눈먼 이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입맛과 감성에 따라 설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 못하고, 오히려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선포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창조하시는 바로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로 되어 있듯이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한 성령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의 같은 몸을 이루는 지체들인 것입니다(1코린 12,12-14). 우리는 다양한 지체를 구성하지만 주님 안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 생각, 습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각 지체들이 서로 분열되지 않고 동등하게 돌보게 하십니다. 그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님은 가장 모자란 지체를 더 돌보시고 더 큰 영예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게 하신 것입니다(1코린 12,24-25).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사랑에 영적인 새로운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랑과 믿음을 갖고 옳은 방향을 바라보면, 의외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밤은 일하지 않기에 비생산적인 때가 아니라, 오히려 낮에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저축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이 눈먼 여정을 걸어왔다고 느낀다면, 이제 눈멀었던 인생의 밤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던 때라고 생각하고, 모자란 지체를 더 크게 돌보시고 새롭게 눈을 뜨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조은일2010.01.1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9)샤를르 페로 (하)](//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1507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9)샤를르 페로 (하)신약 연구 통해 예수 운동의 기원·전개 집약 3부작 중 2부 「초대 교회의…」 샤를르 페로 신부는 1부작 「예수와 역사」(1979년) 이후 2부작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에서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마르 8,38)라는 예수의 질문에 대해 초대 교회가 저마다 표명한 그리스도론적 진술을 주석학적으로 살펴봤다. 그는 먼저 각 공동체가 처한 사목적 신학적 배경에서 유다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자신의 신원을 이해하였는지를 사회-종교적인 독서 방식으로 그려본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페로는 예수에게 부여된 각각의 호칭들을 고찰하되 예수의 이름을 찾아가는 초대 교회의 역동적 흐름 안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어록 전승은 예수를 ‘지혜의 스승’으로 보는 동시에 다니엘의 ‘종말론적 인자’(人子)와 관련된 존재로 지칭한다. 마르코는 세례와 거룩한 변모 그리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 어떻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인지를 보여주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마태오는 새로운 모세 유형론 안에서 예수를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이자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하는 ‘임마누엘’로 설명한다. 루카는 예언자 유형론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현재를 선포하고 이를 치유와 구마 그리고 식탁의 친교로 구체화하는 ‘예언자’ 예수를 그려낸다. 한편 바오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전승을 받아들이되(로마 1,3-4) 신성의 언어들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느님 지혜(1코린 2,7)를 강조한다. 그는 신성의 언어보다는 신성의 동작으로 예수를 묘사한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러 시나이 산 위로 내려오셨듯이 예수 또한 당신의 사람들을 만나러 구름을 타고 내려와 공중에서 상봉할 것이다(1테살 4,16-17). 유다교의 일신 사상의 범위 안에서 예수의 신성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물론 요한은 직접적인 신성의 언어로 부활하신 예수의 신원을 고백한다(요한 20,28).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구원의 동작을 예수가 대신하는 모습으로 그려줌으로써 유일신주의의 한계 안에서 유일신주의의 범주를 넘는 ‘이야기 그리스도론’의 방식을 취한다. “모든 이름 위의 이름을 주셨다”(필리2, 8)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예수의 면모는 언제나 다가갈 수 없는 신비라는 공통된 인식이 처음부터 존재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은 살아 계신 분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바탕으로 저마다 그분에게 적절한 이름을 찾아 나서는 그리스도론적 고백의 다양성을 증언하고 있다. 3부 「 …초대 교회의 직무」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는 샤를르 페로 신부가 1994년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은퇴한 뒤 수년간의 준비를 거쳐 2000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예수와 역사」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에 이어지는 일종의 삼부작에 해당한다. 페로 신부가 「예수와 역사」에서 역사적인 예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에서는 하나의 주석학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면 「예수 이후-초대교회의 직무」에서는 초대 교회의 직무를 종합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페로 신부는 평생에 걸친 신약성경 연구 결과를 ‘예수 운동의 기원과 그 전개’라고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세 권의 저작 안에 집약해 놓은 것이다.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는 오늘날 요청되는 그리스도인 직무의 핵심을 말씀의 봉사로 보고 있다. 성사와 말씀의 선포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그릇된 시각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말씀으로 선포되고 성사적인 동작 역시 말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말씀과 실천을 구별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말씀은 구원을 선포하고 새로운 현실을 일으키는 창조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과 침묵을 대립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느님 말씀은 광야의 침묵 가운데 솟아 나오는 예언자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씀은 성사와 실천 그리고 침묵을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자기 표현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직무는 하느님을 전달하는 말씀에 봉사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사제들에게 주어진 삼대 직무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 중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직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말씀의 봉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그리스도인 직무는 시대의 징표에 따라 말씀과 실천, 성사와 봉사를 창조적으로 전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로마서 페로 신부는 1988년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 대한 간단한 주석과 소개의 책을 펴냈다(「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 그는 1세기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로마서를 신학적으로만 해석하는 방식을 경계하고 종교-사회적인 관점에서 이 서간에 접근하고자 했다. 1세기의 그리스도 교회에는 율법의 해석과 실천을 둘러싸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는 모세의 율법과 무관하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원의 새로운 원리 안에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도모했다. 로마서의 중심적인 주제로 인식되는 의화 논쟁은 하느님 은총의 무상성이라는 신학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율법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로마 교회의 구성원들을 그리스도 신앙 안에 통합하려는 바오로 사도의 교회일치운동 전망에서 이해돼야 한다. 페로 신부는 세상을 떠나는 해에도 「나자렛 마리아」(2013년)를 출간할 만큼 하느님 말씀의 참된 봉사자로 살았다. 작년 11월 11일 불현듯 세상을 떠난 페로 신부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2티모 4,7)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고 이다. 이 자리를 빌어 20세기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였던 페로 신부의 높은 인격과 학문에 경의를 표한다. 백운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평화신문2026.02.12

‘혈연보다 강한 신앙’ 친부모 빈자리 채운 ‘대부’ 아버지성 요셉 대축일 맞아 만난 박상수씨 박상수씨가 안드레아와 대부대자 관계를 넘어 부자지간으로 지낸 17년의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 19)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양부, 목수 등 성 요셉을 설명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그중 성경에서 요셉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수식어는 ‘의로운 사람’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순종의 길을 걸었다면, 요셉은 그 고백을 침묵 속에 행동으로 보여준 의로운 사람이다. 성 요셉 대축일(19일)을 맞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신앙 안에서 정성껏 키운 ‘의인’ 박상수(라우렌시오, 68)씨를 만났다. 그는 제13회 신앙체험수기 대상작 ‘엄마라는 이름으로’를 쓴 이경숙(로사리아)씨의 남편이다. 박씨는 17년 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4살 난 아이였다. 아이의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아버지는 아이가 18개월 때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 아이에게 유아세례라도 받게 하고 싶었던 할머니는 본당 신부를 찾아갔다. 그때 신부는 불현듯 박씨의 아내에게 “10년 동안 아이를 책임져 줄 수 있다면 세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침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신앙 깊은 아내는 곧장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박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아내가 하자면 무엇이든 하죠. 아이가 신앙 안에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부’로서 돕겠다는 마음이 컸다. 아이는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주말마다 성당에서 얼굴을 맞댔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안드레아가 갑자기 달려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부모와 헤어진 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박씨는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진짜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다시금 눈물로 그날을 떠올렸다. 박상수씨가 안드레아를 아들로 받아들이던 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딸만 둘이던 박씨는 아들이 생겼다는 든든함도 느꼈다. 하지만 안드레아에게는 친아버지가 있었다. 비록 1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 관계마저 단절될까 조심스러웠다. 박씨는 이후 수시로 안드레아를 만나면서도 상처받지 않도록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봤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함께 떠난 제부도 여행에서 환하게 웃는 안드레아를 보며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깊이 알게 됐다.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 자라길 바랐던 그는 안드레아가 복사를 서는 날이면 빠짐없이 미사에 참여했다. “혹시 제대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컸습니다. 감시자처럼 지켜봤는데, 그래도 참 대견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친부모의 빈자리는 드러났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의욕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게임에 빠져 지냈다. 아내가 온 정성으로 돌봤지만 공부에는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요셉 성인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마음이요.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안드레아를 설득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막상 입학한 뒤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1학년을 마친 안드레아는 오는 4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와 술잔도 나눌 만큼 성장했다. 박상수·이경숙씨 부부가 평일 미사에 참여해 기도하고 있다. 박씨 부부는 평일에도 저녁 미사가 있는 날이면 손 꼭 잡고 걸어가 함께 기도한다. “어느 날 안드레아가 그러더군요. ‘엄마 아빠가 아니었으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그동안 기다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게 하느님 계획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약속했던 10년은 훌쩍 지나 17년이 됐다. 그러나 박씨 부부에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죽는 순간까지 신앙 안에서 안드레아와 함께 걸어가야죠.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인생을 펼치겠지만, 그저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아들 안드레아와 함께 성지순례 한번 가보고 싶어요.”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른다”(시편 1, 6)이다.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성장 과정을 지켜봤던 의로운 사람 요셉처럼 박씨 역시 기도 속에서 의인의 길을 걸으며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3.11

성경 입문 (3)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03) Q. 왜 성경을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까? A.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있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성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참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자주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다. Q. 성경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알게 되는 유익한 점은 무엇입니까? A. ① 성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줍니다. :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② 모든 피조물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관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주 창조의 신비를 알려 줍니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 ③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④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⑤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7) ⑥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이타적(利他的)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⑦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려 줍니다.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Q. 성전(聖傳)은 무엇입니까? A.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감도를 받은 사도들의 말씀 중에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교회에 맡겨져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계시헌장 9항)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Q. 성전은 저술로 보존되어 왔습니까? A. 성전은 교부(敎父)들이라 불리는 거룩한 저술가들에 의해 특별히 보존되어왔습니다. 성전도 성경처럼 성령의 감도를 받았습니다 Q.. 성전은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전은 어떻게 전해져 왔습니까? A. 예, 성전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기에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단일 위탁물이다.”(계시헌장 10항) 또 성전은 구전(口傳) 형식의 계시로서 성전은 교회의 교의, 삶, 그리고 전례에 의해 전해져 왔습니다. Q. 성전은 성경과 대립 됩니까? A.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전도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같은 성령께서 두 계시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성전과 성경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상호공통되는 바가 있습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2.21

엄마랑 성경 공부한 어린이, 성경 골든벨 1등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 38개 본당 1100여 어린이 참석복음 전하는 어린이 될 것 다짐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서 문희종(가운데) 주교와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1000여 명의 어린이가 주님 말씀 안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원교구는 19일 경기도 평택시 효명중학교에서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가치와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일깨웠다. 38개 본당 1100여 명의 어린이를 비롯해 주일학교 교사 300여 명, 봉사자 200여 명 등 1600여 명이 함께했다. 교구 청소년국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신앙과 사랑을 체험하도록 곳곳에 노인 체험·말씀 체험·장애공감·미니 골든벨·네트로 감성놀이·기도체험·김대건 카드·흡연 예방 카드·생태환경 체험 등 체험 학습장을 마련했다. 다양한 놀이시설과 먹거리 차량도 설치해 즐거움을 더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행사는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전 경시대회를 열어 444명을 추렸고, 이날 각 본당 어린이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말씀으로 경합을 벌이는 성경골든벨 본선이 열렸다. 대회 결과 이윤호(유스티노, 초4, 영통영덕본당)군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다. 이어 윤채령(에스텔, 초6, 동탄반송동본당)양이 2등, 이준성(요한 사도, 초6, 매탄동본당)군이 3등을 차지했다. 어린이들은 교구 청소년국이 미리 배부한 예상 문제와 범위를 공부하며 준비했다.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은 “엄마와 둘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며 “골든벨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엑스(OX) 문제가 어려워 쉽진 않았지만 뜻깊었다”고 말했다. 문희종 주교는 파견 미사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용기있게 전했듯이 어린이들도 예수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들이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방법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친절한 사람, 배려 깊은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행사를 주관한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조성경 신부는 “축제를 통해 어린이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즐기는 하느님 자녀가 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이 축제가 수원교구 어린이들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어린이들이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며 성경에 맛들이고, 주님 말씀대로 살도록 독려하기 위한 행사다. 2019년 6월 첫 행사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 지난해 재개돼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