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공동체에 활력 주고 받는 시니어아카데미[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접어드는 동안 교회는 이미 ‘초고령교회’라는 현실을 먼저 마주했다. 2019년 한국 교회는 전체 신자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5%를 넘기며 ‘초고령사회’ 기준을 충족했고, 2021년에는 수원교구가 이 기준에 도달하면서 전국 교구가 모두 초고령화 상태에 들어섰다. 2024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50세 이상은 45.2%인데 반해, 천주교 신자 중 50세 이상은 54.4%에 달한다. 본당 활동의 중심이 50대 이상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령화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사목 방향과 공동체 구성·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핵심 과제가 됐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서울 신수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어르신들이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은빛학교 발표회’를 열고 있다. 교회의 초고령화 고령화와 젊은층 이탈은 세계적 추세 독일 등 시니어 사목팀 구성 이탈리아, 지역 내에서 노인 모임 강화 성당 시니어아카데미 맞춤형 신앙 교육과 교류의 장 제공 세대간 소통에도 기여 영시니어와 올드시니어 서로 도와 세계 교회의 고령화 교회의 초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교회 역시 고령화와 젊은 세대의 이탈이라는 이중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자의 58%가 50세 이상이며, 이 중 51~65세가 전체 신자의 30%를 차지한다. 유럽 교회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본당별로 ‘시니어 사목팀’을 구성했고, 독일 울리히 붐 주교는 “노인 사목의 초점을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지역 기반 공동체 안에서 노인을 위한 기도 모임과 돌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는 오는 10월 로마에서 제2차 노인 사목 국제회의를 열고,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돌봄 사목의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서울 성산2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어르신이 직접 만든 선물과 과자를 미사 후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응답, 시니어아카데미 한국 교회 역시 노인 사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사목적 실천을 모색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시니어아카데미’(노인대학)가 있다. 각 교구는 노인사목부를 중심으로 지구와 본당 차원에서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신앙 교육과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은 월례교육을 통해 성경과 레크리에이션, 만들기 등 노인 사목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강사 뱅크’도 마련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 강사를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로 파견하고 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들에 맞는 ‘방문 피정’과 ‘방문 교리’를 실시하면서,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 복음적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동반하고 있다.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노인사목부는 팬데믹 시기 노인 돌봄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제안해 어르신들에게 매일 아침 문자를 발송하도록 각 본당에 안내하기도 했다. 서울 노인사목팀 담당 나종진 신부는 “노인대학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신앙 정체성을 중심에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신수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는 성경 공부를 주축으로 미술·만들기 등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활동을 병행하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고연정(헬레나) 학장은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성경 공부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통합’이다. 가정사목부와 노인사목부 담당을 역임한 김청렴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국 부국장)는 “전 연령층과 만나다 보니,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생애를 거쳐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며 “배움과 활동의 욕구, 신앙에 대한 갈망 등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세대 간 특성에 맞는 통합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교회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제안했다. 서울 성산2동본당 시니어아카데미는 세대 간 소통에 나섰다. 과자와 키링 등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선물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미사 후 전해주는 등 일상 속 소소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윤주(글로리아) 부학장은 “어르신들은 성당에서 손주 만나는 기분도 느끼고 있고, 학생들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좋아 성당 가는 게 기다려진다는 말까지 할 정도”라고 전했다. 세대가 연결되는 교회 하지만 모든 본당이 같은 수준의 사목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노인사목팀과 의정부 노인사목부가 2023년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본당 시니어아카데미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봉사자의 절반 이상이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을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았다. 강사 섭외 문제가 뒤를 이었으며, 교육 자료 부족 또한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본당 내 봉사 대부분이 무보수 자원 활동으로 이뤄지기에 봉사자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교회 봉사자의 일면을 보면, 소위 ‘일당백’이다. 이윤주 부학장은 “어르신들 웃음 한 번 보는 걸로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간다”며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봉사자도 시니어라는 사실이다. 50·60대가 주축이 돼 70·80대 어르신을 섬기며, 세대 간 고리를 이어간다. 고연정 학장은 “어르신들은 50·60대인 우리에게 볼 때마다 예쁘다는 말을 해주신다”며 “서로를 향한 사랑의 힘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영’시니어가 ‘올드’시니어를 위해 봉사하면서 함께 살아나는 셈이다. 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성가정대학(노인대학) 어르신들이 본당 교우 배정국 관장의 재능기부로 태권도 수업을 하고 있다. 다시 주인공 “하나둘!” “셋 넷!” 70·80대 어르신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태권도장에 울려 퍼진다. 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성가정대학(노인대학) 학생들의 모습이다. 자세는 완벽하지 않지만, 열정만큼은 선수급이다. 태권도장을 시작한 지 36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만 21년을 운영해온 배정국(대건 안드레아) 관장은 “지금껏 분에 넘치게 받았으니 돌려주자는 차원에서 2년 전부터 본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건강이 좋아진 건 물론이고 자녀들이 본당에 고맙다고 인사할 정도로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됐다. 김영호(야고보, 79)씨는 “우리 나이에 운동이라야 걷기 정도고, 체력이 좋으면 등산을 하지, 태권도는 상상도 못 해봤다”며 “다시 인생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사회에서 은퇴하고, 교회에서도 중심 역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이들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또 본당에서 인사 정도 하던 사이가 함께 운동하고 대화도 하면서 도장은 친교의 장이 되고 있다. 입소문이 나 타본당에서 오는 이들도 여럿 생겼다. 올해 64세로 시니어에 접어든 배 관장은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을 하면서 이분들과 평생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재능기부지만, 받는 사랑이 더 많아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밝혔다. 다시 주인공이 된 ‘올드’ 시니어와 주인공을 만들어주면서 의미를 찾은 ‘영’ 시니어,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존재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건전한 가치관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시니어들이 사회에 있다면, 교회는 나이를 초월한 신앙 공동체 자체로 그 모범을 보여준다.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여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쇠퇴를 의미하진 않는다. 삶의 지혜와 신앙의 깊이를 지닌 이들이 교회 안에서 빛날 수 있도록, 교회는 이들과 함께 걷는 여정이 돼야 한다. 신앙 공동체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이자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이 말은 슬로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박민규2025.05.06

정화된 이스라엘, 하느님과 새로운 혼인관계를 맺을지어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9)호세아서 호세아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간의 계약 관계를 혼인 관계로 설명한 첫 번째 예언서이다. 주님의 명에 따라 창녀 고메르와 혼인하는 호세아. 출처=구글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호세아서를 예언서로 분류해 에제키엘서 다음으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호세아는 우리말로 ‘야훼께서는 구원이시다’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히브리어 ‘호세아’를 음차해 ‘Ωσηε’, ‘Osee’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호세아서’라 표기합니다. 구약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드보라를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또 열왕기에는 엘리야, 엘리사, 나탄, 가드 등이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행적과 그들이 선포한 말들이 기록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세기부터입니다. 이들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의 ‘후기 예언서’에 속하는 예언자들로 ‘저술 예언자’라 불립니다. 첫 저술 예언자는 아모스입니다. 저술 예언자를 시대별로 분류하면 기원전 8세기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아모스와 호세아가, 남 왕국 유다에서 이사야(이사 1─39장)와 미카가 활동합니다. 기원전 7세기부터 바빌론 유배 직전까지 스바니야, 나훔, 하바쿡, 예레미야, 오바드야가 등장합니다. 기원전 587~538년 바빌론 유배 시기에는 에제키엘과 제2이사야(이사 40─55장)가 활약하죠. 귀향 후 기원전 2세기까지 하까이, 즈카르야, 제3이사야(56─66장), 말라키, 요나, 요엘, 제2이사야(9 ─14장), 다니엘이 나타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750~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 사마리아와 베텔, 길갈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같은 시기 남 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했습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사회 불의를 비판했다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종교 타락과 우상 숭배를 고발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암투와 암살이 만연했습니다. 즈카르야 임금은 6개월 만에 살룸에게, 살룸은 한 달이 못 돼 므나햄에게, 므나햄의 아들 프카흐야는 2년이 채 못 돼 페카에게, 페카는 호세아에게 왕위를 빼앗깁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불과 10년 동안 5명의 왕이 정변으로 교체되고 결국 아시리아군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정치 못지 않게 종교적으로도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대중화됐고, 물질주의에 빠져 쾌락을 즐겼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망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이스라엘의 종교ㆍ윤리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성경학자들은 호세아서를 호세아가 직접 작성했거나, 제자들이 그의 전승 자료를 남 왕국 유다로 가져와 편집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호세아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계약 관계를 ‘혼인’에 비유한 첫 번째 책입니다. 이후 예레미야, 에제키엘, 제2이사야가 계승 발전시킵니다. 이러한 혼인 관계는 신약 성경에도 도입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발전합니다.(마르 2,19-20; 에페 5,22-25) 호세아서는 전반부(1─3장)와 후반부(4─14장)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반부는 호세아의 혼인과 자녀들에 대한 진술이고, 후반부는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이 정화된 후 새로운 삶의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호세아는 브에리의 아들로 주님의 명에 따라 창녀인 고메르를 아내로 맞아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습니다. 큰아들 ‘이즈르엘’은 이스라엘의 땅과 역사를 상징하고, 둘째 아들 ‘로 루하마’와 딸 ‘로 암미’는 하느님의 징벌을 받게 될 이스라엘의 미래를 암시합니다. 아내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호세아를 버리고 떠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그녀를 찾아 다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3장) 이처럼 호세아의 가정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 관계를 대변해 줍니다. 호세아서는 하느님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경건한 제례가 화려한 형식에 치우쳐 더는 정화와 생명의 장이 되지 못함을 고발합니다. 또 저주와 속임수, 살인, 도둑질, 간음, 서로를 죽이는 참극의 결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민족의 추방을 선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신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징벌하기로 했습니다.(5,2.9) 모든 신당이 파괴되고(10,2-8), 예루살렘 도성과 모든 성읍이 적에게 약탈당할 것입니다. 주민들은 그들의 칼에 쓰러지고, 살아남은 자들은 유배지로 끌려갈 것입니다.(9,11-14.16) 추방은 ‘광야로의 복귀’입니다.(2,16) 그래서 그곳에서 다시 단련된 이스라엘은 본래의 모습으로 재창조될 것이라고 호세아서는 예언합니다. 아울러 호세아서는 하느님께서 다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을 통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11,2)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헤셋’이라고 표현합니다.(2,21) 바로 ‘신의’입니다. 하느님의 헤셋은 백성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사랑과 자비, 변함없이 충실한 마음, 질투심, 연민, 용서 등을 함축합니다. 바람난 고메르를 찾아가 용서해 주고 처음의 혼인 관계를 회복하는 호세아의 사랑(3장)은 하느님의 헤셋을 암시합니다. 하느님과 새로운 혼인관계를 맺기 위해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알아야’(호세 2,22)하고, 하느님께 받은 헤셋을 그분께 돌려드려야 합니다.(호세 4,1; 10,12; 12,7) 곧 그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1.25
![[신간] 네 복음서 대조 1. 마태오 복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9/03/RlH1725350554807.jpg)
[신간] 네 복음서 대조 1. 마태오 복음네 복음서 대조하며 한눈에 본다 네 복음서 대조 1. 마태오 복음 / 정태현 신부·송혜경·이효임 엮음 / 한님성서연구소 「네 복음서 대조」는 제목대로 네 복음서, 즉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복음서를 대조하며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4,23)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9)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중략)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8-19) 책의 도입부에 언급한 것처럼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왔지만 그 말씀을 담은 책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았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방대하고 다양한 문헌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온 다양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이 문헌들 가운데 신앙 공동체의 전통적 믿음과 종교 관습을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문헌을 ‘정경(canon)’, 정경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헌을 ‘외경(apocrypha)’이라고 부른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정경의 확정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유다교 경전인 구약성경의 정경 확정은 기원후 1세기로 추정되지만, 그리스도교 경전인 신구약 성경의 최종 정경 확정은 가톨릭의 경우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그리스 정교회의 경우 1672년 예루살렘 시노드에서, 개신교의 경우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외경은 종종 정경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그 내용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난해함이나 의혹을 설명해주는 구실을 한다. 예를 들어 구약 외경에서는 구약성경에서 미진하게 다룬 천사와 악마의 기원과 역할·사후생과 종말·메시아의 역할 등을 상세히 다루고, 신약 외경에서는 신약성경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공생활 이전 예수님의 나자렛 생활이나 성모님의 가계와 생애를 폭넓게 다룬다. 「네 복음서 대조」의 중심은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복음서가 차지한다. 기준 복음서가 가장 왼쪽에 위치하고, 나머지 세 복음서에서 병행하는 본문을 차례로 실었다. 없을 경우 공백으로 남겼다. 책의 가장자리에는 복음서와 병행하는 구약성경 구약 외경, 신약 외경 본문도 실었다. 모든 문헌이 동일한 유다-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에서 생겨나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책을 펴낸 한님성서연구소(소장 정태현 신부) 측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가장 아쉽게 여겨지는 도구가 바로 네 복음서 대조”라며 “네 복음서 상호 간의 대조는 물론 각 복음서와 관련된 구약 외경과 신약 외경, 구약성경 본문 등을 통해 믿음의 오랜 역사와 연속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출간된 제1권은 마태오 복음서를 기준으로 한 대조다. 향후 마르코 복음서를 기준으로 한 제2권, 각각 루카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 기준의 제3권과 제4권도 출간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9.04

군자의 길 in 필부[월간 꿈 CUM] 철학의 길_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1)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가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그 불이 큰불이 되어 온 산을 삼켜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세상을 온통 태워버릴 화마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씨와 큰 불씨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먼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가장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이 큰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공자의 하루도 오줌 누고 똥 싸는 비루한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고원한 군자의 길도 필부의 길 안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중용」은 이렇게 말합니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군자의 길은 비유컨대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같고, 비유컨대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같다. 위 구절은 일상의 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까울 ‘邇’(이)자는 고운 비단(爾)을 가까이(辶) 두고자 하는 데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리고 낮고 비천한 ‘卑’(비)는 하인이 부채를 들고 주인을 시중들고 있는 글자입니다. 땀을 식힐 바람도 비천한 하인이 손에 든 부채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일상의 도란 가까울수록 더 값지고 낮을수록 더 근본이 됩니다. 일상의 도는 너무 평범해 우리는 그 가치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있을 수도 없을 수도한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기에 ‘必’(반드시)이 문장을 수식해 주고 있습니다. ‘必’은 무기의 손잡이를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아무리 천하를 지켜주는 무기라 할지라도 손잡이가 없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천하의 대장군 손에 칼날을 쥐여줘도 제 손만 베일뿐입니다. 소소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 일상은 우리에게 그런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옛날 어느 나라의 한 왕이 신하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고자 했습니다. 왕은 초대받은 모든 신하들에게 포도주를 한 병씩 연회에 가져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가져온 포도주는 큰 항아리에 모아 연회 때 제공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신하가 꾀를 내었습니다. “포도주 한 병 정도 없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어? 대신 나는 물을 담아가야겠다. 한 병쯤은 물을 섞어도 티가 나지 않겠지.” 한 병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그는 포도주 대신 물병을 가져가 항아리에 부었습니다. 드디어 연회가 열리고 왕은 참석한 신하들을 환영하며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신하들에게 따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의 잔에 담긴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모두 물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신하들이 한 병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물을 담아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포도주를 마신 신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 한 병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의 결과였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이지만 그것을 소홀히 하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잃고 맙니다. 언제나 술이 아닌 물만 마시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용」의 다른 구절에서도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道不遠人)라고 합니다. 따라서 도는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저 멀리 원대하고, 저 높이 고상한 것에만 시선을 두고 있어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할 뿐입니다. 성경의 하느님도 ‘임마누엘’이시듯 일상을 벗어나 따로 계시지 않습니다. 야곱이 형 에사오를 피해 도망자 신세였을 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꿈을 꿉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층계)를 천사가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꿈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항상 함께 계신다는 체험이었습니다. 야곱이 말하길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창세 28,17) “이곳이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세 28,16) 이처럼 하느님께 가는 하늘의 문은 멀리 있지 않고 가장 가까이 내가 있는 이곳에 있습니다. 사다리가 땅으로부터 하늘로 맞닿아 있듯 나의 삶 가까이로부터 길(道)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 역시 「논어」에서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칠갑산 기슭, 똥자루 들고 거름 주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합니다. “좋은 인생이란 말이지~ 마지막에 웃는 놈이 아니라 자주 웃는 놈이구먼~.” 인간의 길을 저 먼 곳, 저 높은 곳에서 찾는 사람, 가정의 행복을 큰 부와 성공에서 찾는 사람, 나라의 행복을 대단한 성장률에서 찾는 사람, 그들은 마지막에 웃으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가까운 이들과 일상으로부터 찾는 사람은 지금 그리고 자주 웃게 됩니다. 자식 생각에 땀 흘려 밭 갈다 방귀 뀌며 깔깔대는 시골 할매들처럼, 방귀 소리에도 우리 사회는 왜 자주 웃지 못할까요. 항문을 틀어막아서라도 방귀 소리를 막아 웃음을 저축하니 말입니다. 웃음엔 저축 이자가 없습니다. 그냥 필부로 삽시다. 오늘의 필부 속에 군자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1.22

측은지심으로 차린 ‘밥상의 문학’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위로가 되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5·끝)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박완서·김홍신 작가가 1993년 12월 27일 본지가 주최한 제1회 신춘평화문학상 응모작을 심사하며 대화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작품 속 음식 통해 삶의 고단함 위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목소리 내고 유니세프·성 라자로 마을 등 후원 “부의금 받지 말라”던 평소 유언 따라 문학인장 대신 소박하게 가족장례식 ‘한국인은 밥심이다.’ 이 말을 문학 작품 안에서 가장 잘 그려낸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박완서다. 그의 작품에는 서민 가정의 밥상에 오르는 나물 반찬, 된장국 같은 소박한 음식부터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양반가의 음식까지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제육을 몇 점 썰어 넣어 뚝배기에 끓인 호박김치찌개(대하소설 「미망」), 배불뚝이가 뒷짐을 진 것 같은 모습이 유머러스한 개성식 만두(등단 단편 「나목」), 비 오는 날 먹었던 메밀칼싹두기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수수팥떡(자전 수필 「호미」) 등 음식들은 각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시대적 배경을 긴밀히 묘사하는 장치로 쓰였을 뿐 아니라, 밥상을 대하는 것 자체가 삶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위로의 행위로 표현된다. 「대범한 밥상」이라든가 「후남아, 밥 먹어라」처럼 제목에 밥이 등장하는 소설 작품도 있다. 박완서에게 밥은 어릴 적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는 그리움의 이름이자 푸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처마를 맞댄 이웃 간에 나누는 정(情)이며 따뜻한 위로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내 안에 오신 주님을 느낀 것이 바로 ‘밥’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엄마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 맏딸 호원숙(비아)은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고 썼다. 생전 어느 강연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박완서는 ‘밥’이라 대답했다. 또 그는 성경 가운데 음식에 관한 예수님의 일화를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행한 마지막 의식도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 최후의 만찬이 가장 슬프고 숙연한 식사라면 가장 장엄한 대만찬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인 기적의 만찬이라는 것이다. 기적에 앞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에 가장 큰 배고픈 서러움을 마음속 깊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져야 하는 마땅한 태도로 가르쳐 온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는 또 만약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다면 으리으리한 성찬이 아닌 소박한 집밥 한 상을 차려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분은 화려한 식탁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음식이면 좋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993년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의 일환으로 방문한 에티오피아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박완서 작가(뒷줄 서 있는 이).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생전의 박완서는 문인들 사이에서도 소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면서도 문단 행사에는 잘 나서지 않았다. 학연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따르는 후배 문인이 많았다. 소질이 있어 보이는 후배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였으며 스스럼없이 후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일에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섰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가 어려울 때마다 수백만 원씩 사비를 털어 재정을 도왔다. 출판사 ‘창비’가 정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을 때에는 지식인 2853명이 서명한 문서를 소설가 황순원·이호철 등과 함께 당시 문화공보부에 내기도 했다. 생전에 “내가 죽으면 찾아올 후배 문인 중에 가난한 이들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해 2011년 1월 그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세워졌다. 애초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려던 장례식은 주위에 폐를 끼치지 말고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고인의 바람대로 생전에 신앙생활을 하던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성당에서 가족장으로 거행되었다. “천주교는 유명한 사람도 보통의 신자들과 똑같이 대하고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 좋았다”는 그의 말처럼 평생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감싸안았던 그의 모습 그대로 조용하면서도 남을 돕는 따뜻한 신앙인이었다. 1993년부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했고, 한센인 자활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을 20년 넘게 후원하였으며 2006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중 일부를 이곳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또 ‘성 라자로 마을’로 인연을 맺은 고(故) 이경재 신부를 도와 은퇴 사제들을 위한 거주 시설인 ‘사제마을’의 초대 후원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며 신자들을 위해 봉사한 은퇴 사제들이 말년에는 편안한 시설에서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지내며 마지막까지 사목 봉사를 하는 데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2005년 4월 8일 바티칸에서 거행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후 로마에서. 박완서 작가(가운데) 왼쪽이 한승수 전 국무총리, 오른쪽이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오른쪽 두 번째에 봉두완 전 앵커도 보인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지난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장례미사에 대한민국 민관합동조문단의 일원으로 로마 바티칸에 다녀온 박완서는 소회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교황을 애도하는 몇백만 조문객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비통하기만 한 것도 경건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성가는 영혼을 속세에서 해방시켜 들어 올리듯 황홀했고, 교황의 업적을 낭독하는 동안 광장에서 터져 나온 십여 차례의 박수와 환호성, (⋯) 그건 애도라기보다는 환호에 가까웠다. 슬픔과 환희가 이렇게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본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 저녁 명상하듯 기도 시간을 갖는다던 박완서는 2011년 1월 22일 평소처럼 명상을 하듯이 편안한 모습으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장례미사에는 여러 문인 후배와 성직자, 수도자, 동료 신자와 유족들이 함께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 가운데 생전에 깊은 교분을 나눈 이해인 수녀도 있었다. ‘수녀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는 박완서와 자매처럼 지내며 정을 나누었고 1988년 그가 가족을 연이어 잃는 고통을 겪을 때 수녀원으로 초대해 슬픔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 직후부터 장례일까지 내내 빈소를 지켰으며 ‘꽃이 된 기도’라는 송별시로 추모했다. ‘갑자기 오느라 작별인사 못했어요 / 너무 슬퍼하면 제가 미안하죠 / 거기도 좋지만 여기도 좋아요 / 항상 기도 안에 만납시다, 우리’(이해인 수녀의 ‘꽃이 된 기도’ 중) 2011년 1월 22일 선종한 박완서 작가. 한국가톨릭문인회 담당 조광호 신부가 장례미사에서 고인의 관에 성수를 뿌리며 고별예식을 주례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생전에 ‘내가 죽었을 때 받고 싶은 대접은 천주교식의 장례미사’라고 했던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절망보다, 큰 평화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40살이라는, 당시로써는 다소 늦은 나이에 등단했지만 ‘머릿속에 늘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며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다면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는 것보다 더 비참할 것’이라던 박완서. 죽는 날까지 작가로서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어 했던 그는 이제 주님의 품에서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2.10

성령 강림 대축일, 부활시기 끝내고 연중시기 돌입주님 부활 후 50일째 되는날 8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지 만 50일째 되는 날이다. 가톨릭교회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사도 2,1-13)을 기념해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주님은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완성하신다.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 시기’를 끝내고 다음날부터 ‘연중 시기’에 들어간다. 부활 후 50일의 의미는 희년과 죄의 용서라는 개념과 관련된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매 7년 주기 다음, 곧 50년째 되는 해를 희년으로 지내는데, 이때 모든 죄가 사해지고 노예들은 해방됐다. 따라서 50이라는 숫자는 죄의 용서를 의미하며, 성령 강림 대축일은 죄의 용서와 부활로 인한 새 생명의 의미를 지닌다. 성령이 강림한 날은 오순절이다. 보리를 추수하고 거행되는 과월절을 기점으로 50일 후에 열리는 축제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때 성령이 내렸다고 전하고 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2-4)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했음에도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성령을 받은 후 곧바로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교회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처럼 성령 강림 대축일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을 기념하면서 교회가 설립되고 선교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날이다. 사도들에게 내려온 성령은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와 함께한다. 세례성사로 신자가 된 사람은 다른 성사들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고 성령의 은총과 은사를 받아 자신의 생활을 성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자 생활을 성숙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7가지 은총과 9가지 열매다. 성령 칠은은 △지혜 △통찰 △지식 △식견 △공경 △용기 △경외이며, 9가지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다. “성령은 사랑 그 자체다.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왔고, 하느님의 것이며, 곧 하느님이시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중에서)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5.06.05

셋이 하나 되는 신비, 삼위는 한분이신 하느님[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40) 신비의 계시- 삼위일체 알브레히트 뒤러 작 ‘성 삼위일체의 경배’, 1511년.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삼위일체 신비는 우리 신앙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聖父) 하느님과 세상을 구원하신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聖靈)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 존재하심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 분이 아니라 세 위격(다른 모든 것을 있게 하는 기본이 되고 근원이 되는 실체)이신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세 위격은 서로 실제적으로 구분되지만, 오직 하나의 본성이자 하나의 실체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은 서로 다르지만, 천주성은 하나이며 그 영광은 동일하고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합니다. 삼위의 관계는 누가 먼저 계시는 것도 나중에 계시는 것도, 높고 낮음도 없습니다. 온전히 같은 한 분의 하느님이실 따름입니다. 성경에서의 삼위일체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말이 직접 표현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 구별되는 위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거나 계시를 준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 구약 : 유일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했다는 점에서 하느님께 구별되는 위격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거나 계시를 준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교부들은 하느님을 지칭하는 복수 명사 ‘엘로힘’을 자주 썼다는 사실과 한 분이신 하느님께 복수 인칭대명사를 사용해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말씀하신 것, 하느님의 이름과 속성을 세 번 거듭 부르는 일(신명 6,4) 등이 삼위일체 신비를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지혜서(7장)와 잠언서(8장)에서는 신성 안에 어떤 구분이 있다고 시사하는 특정한 이름이나 칭호, 즉 말씀·영·지혜라는 말로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신약 :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실제로 계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 때(루카 1,35) 삼위의 신비가 잘 나타납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루카 3,22)에도 삼위께서 동시에 현존하심이 드러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실 때(마태 28,19)·(요한 14장)·(요한 17장) 아버지(성부)와 예수 그리스도(성자)와 성령의 관계가 잘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사람들과 함께 계심으로써,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심으로써, 그리고 또 다른 가르침으로써 삼위일체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참 아들이시며 참 하느님이시고, 성부와 구분되는 성부께 보냄 받으신 신적 위격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이시오, 신자들을 위로하고 비춰주시도록 성부와 성자께 보냄 받으신 신적 위격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 역사에서 드러난 삼위일체 영원하신 성삼위께서는 당신의 신비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모든 행위로 보여주셨습니다. 성부 하느님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창조 사업)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구원 사업)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알고 깨닫게 해주고, 삼위께서 이루시는 친교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성화 사업) 전례·기도 안에서 표현되는 삼위일체 - 세례받을 때와 십자 성호를 그을 때, 미사 시작 때, 영광송·사도신경·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외울 때. 삼위일체 교리는 교회인 신앙 공동체가 체험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으로서 신앙의 신비라고 봐야 합니다. cpbc2025.02.25

이사악의 우울증?[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5)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이사악의 희생’ (The Sacrifice of Isaac), 1603,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창세 22,12) 천사가 조금만 늦었다면 이사악의 목이 날아갈 뻔했다. 아브라함은 그제야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긴 숨을 토해냈다. 아들을 죽이려던 섬뜩한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아들 이사악도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숨을 ‘하악하악’ 내쉬고 있었다. 목에는 아직도 서늘한 칼날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세계 어느 민족의 문학도 이렇게 인간과 신의 사랑을 극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신이 만약 아브라함에게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라고 명령하고, 아브라함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순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 이야기는 훗날 흔한 순교자 이야기들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아들을 요구했고, 아브라함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그것도 늘그막에 얻어 애지중지 키우던 그 아들을 죽이려 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극적 효과는 훗날 수많은 철학자 및 종교인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유대교의 위대한 랍비 나흐마니데스는 인간 자유 의지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극찬했고,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을 둘러싼 신앙의 여러 문제에 대해 성찰한 연구서 「공포와 전율」(Fear and Trembling)에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윤리적 이상뿐 아니라 아들과도 결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의문이 남는다. 성경은 오직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관계에 대해서만 서술할 뿐이다. 정작 제물이 되었던 당사자 이사악의 입장은 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사악의 심정은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이사악은 평생 동안 오늘날의 ‘명절 증후군’ 비슷한, 이른바 ‘제사 증후군’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제사 때 번제물로 바치는 양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자신이 양처럼 목이 잘린 채 제단에 올려지고, 불에 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아버지의 서늘한 눈빛도 영원히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가득 품은 채 성장했을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충격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윤리성에 상당한 의심을 갖게 한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서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가. 하느님은 과연 살인을 원하는가. 하느님의 의지는 인간 윤리와 배치되는가. 최고의 윤리 그 자체인 하느님이 왜 인간에게 비윤리적인 것을 명령하는가. 이에 대해 대부분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자들은 하느님 의지와 보편 윤리의 갈등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신앙의 절대성만 강조하는 일부 해석들을 경계하고 있다. 이사악이 제물로 선택된 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가장 귀중한 소유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선물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물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에서 이사악이 자기 번제에 사용될 나무를 지고 걸어간 사실을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끌려간 사건과 연결시킨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희생(경배)의 완전한 목적, 즉 인간이 소유한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며, 그렇기에 마땅히 온 곳으로 되돌려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실제로 죽였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결국, 그 희생은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이사악의 희생은 후세대를 위한 진정한 경배의 모델로 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순명에 대한 보답으로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선택과 약속이 단순히 유대 민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은 단지 아브라함 자손들만의 번성을 약속한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들만의 번성을 약속한 것이 아니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7-18) 하느님은 유대인만의 하느님이 아니다. 미국인, 유럽인,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에게도 복을 내리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약속은 훗날 우울증을 겪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사악에게도 계속 이어진다.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불어나게 하고,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겠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6,4) 글 _ 편집부 cpbc2023.10.30

조선 박해 시기 조운로 따라 이어진 신앙의 길, 초락도공소[리길재 기자의 공소(公所)를 가다] 6. 대전교구 당진본당 초락도공소 대전교구 당진본당 초락도공소는 1985년 설립됐다. 초락도공소 전경. 조선 시대 때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을 운송하는 뱃길을 ‘조운로(漕運路)’라 일컫는다. 조선의 조운로는 경상도 남해의 여러 고을에서 출발해 전라도-충청도-경기도 해역을 따라 한양에 이른다. 조선 지리지 「여지도서」에는 충청도 조운로를 ‘당진 원산도-해미 안흥정상구미포-태안 서근포-보령 난지도’로 표기하고 있다. 오늘날 당진 원산도는 충남 보령 오천면 원산도, 안흥정상구미포는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옛 안흥항, 서근포는 태안군 소근진성, 난지도는 당진군 난지도이다. 조운로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양 선교사들의 밀입국로로, 또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난로로, 교우촌 간의 긴급 연락로로 이용됐다. 서해안의 여러 곶 안 마을에 은신처와 교우촌이 들어선 것도 같은 이유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의 마지막 은신처였던 ‘상괴’와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최후 근거지 ‘신리’가 작은 섬들을 끼고 곶 안 깊숙이 들어와 하천 인근에 자리한 까닭도 이와 같다. 서울 명동과 혜화동본당 등 많은 신자의 도움으로 지어진 초락도공소 내부. 벽돌로 마감해 회중석과 구분해 놓은 초락도공소 제단. 박해 시기 선교사들 밀입국로이자 피난로 앵베르 주교의 은신처를 제공한 하느님의 종 손경서(안드레아)와 다블뤼 주교를 자신의 집에 모신 손자선(토마스) 성인이 모두 밀양 손씨 명천공파 일족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경서는 손자선의 당숙이고, 1868년 한양에서 순교한 손자중(바오로)과 손여회(필립보)·손여일(필립보)은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신리 출신이다. 밀양 손씨 명천공파 조상(파조-派祖)이자 당진 땅에 맨 먼저 정착한 조상(입향조-入鄕祖) 명천공이 당진군 고대면 당진포리에 삶의 자리를 이룬 후 6세손이 신리로 이주해 정착했다. 이들은 대대로 당진 땅에 살면서 어느 누구보다 조운로를 따라 나룻배 한 척으로 서양 선교사들이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또 중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지리적 입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한 부분을 인용한다. “앵베르 주교는 자기가 서울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너그러운 몇몇 신입 교우들이 그를 위하여 마련한 집에 숨었다. 이 탈출을 꾸민 사람은 손경서 안드레아였는데 (⋯) 1839년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 주교를 위하여 자기 비용으로 안전한 피난처를 마련할 생각을 하였다.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묘하게 자리 잡은 장소를 하나 발견하여 이내 그 집을 샀다. 이 작은 마을은 (⋯) 바다 쪽으로 꽤 깊숙이 뻗어 나간 가느다란 반도의 끝에 있다. 집들은 해안을 끼고 항해하는 배에서 보이지 않았다. 북쪽으로는 골짜기 하나만이 그리로 나 있었지만, 다른 동네에서 하도 멀리 떨어진 곳인 까닭에 말하자면 그리로 해서는 내륙 지방과 아무 연락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안드레아는 또한 주교가 필요한 경우에 도피할 수 있게 하려고 마을 근처에 배 한 척을 매어두는 신중한 조치를 취하였다.”(중권, 423~424쪽) 초락도공소 마당에 있는 성모상. 1956년 17세 소녀 홍순교가 초락도 첫 신자 손자선 성인 일가가 살았던 당진포리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대호만으로 가다 보면 푸레기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충남 당진시 석문면 초락1로 143(석문면 초락도리 463-5)에 대전교구 당진본당 초락도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푸레기’는 풀이 무성한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초락도(草落島)’는 풀잎 하나가 떨어져 섬을 이루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옛사람들은 이곳에 풀과 물이 많다해서 ‘초호리(艸湖里)’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락도는 이름 그대로 섬이었다. 조선 인조 임금이 반정을 주도한 홍서봉에게 하사한 땅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엔 남양 홍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초락도의 3분의 2나 되는 토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삼봉 제1·2 제방이 쌓이고, 1980년대 대호방조제가 건설돼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 간척돼 논으로 변하면서 육지가 됐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나무배로 섬들과 육지를 오갔는데 이제는 자동차로 어려움 없이 왕래한다. 자연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큰 저수지와 습지, 논과 밭이 생겼다. 「천주교 당진본당사-70주년 기념집」에 따르면, 1956년 당시 17세 소녀였던 홍순교(막달레나)가 초락도 주민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녀는 배를 타고 섬에서 빠져나와 4㎞를 걸어 삼봉에 도착한 후 차를 타고 당진성당에 가서 가톨릭 교리를 배웠다고 한다. 홍서봉 영의정의 후손인 만큼 뿌리 깊은 유교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가톨릭 신앙을 갖는 데 있어 가족의 반대가 매우 컸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세례를 받은 그녀는 집집이 찾아다니며 선교를 했다고 한다. 홍순교는 고향을 떠났다가 1985년 초 교리신학원을 마치고 선교사로 다시 초락도로 돌아왔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해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에 초락도공소가 설립됐다. 성경 이야기를 주제로 꾸며진 초락도공소 창문. 단체 성지 순례는 초락도공소 신자들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벽면 한쪽에 장식된 성지 순례 사진들. 설립 1년 만인 1986년 공소 건물 봉헌 1986년 1월부터 초대 공소 회장 홍성직(바오로)의 집에서 공소 예절과 레지오 마리애를 시작했다. 이때 공소 신자가 성인 16명에 어린이 8명이었다. 홍순교 선교사는 공소 마련을 위해 서울대교구 명동본당 사회복지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명동본당에서 200만 원을 지원받아 공소 회장 집 앞마을 공동작업장 건물을 매입했다. 또 서울 혜화동본당과 당진본당 삼봉공소의 지원을 받아 공소를 꾸몄다. 부족한 건축 기금은 초락도공소 신자들이 모금했다. 이런 중에도 당시 100만 원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공소에 지원하기도 했다. 공소 설립 1년 만에 많은 신자의 도움으로 지은 초락도공소는 1986년 9월 7일 봉헌식을 했다. 초락도공소는 설립 3년 만에 세례자 46명·예비신자 20명 등 선교사 포함 67명의 신자 공동체로 성장했다. 초락도공소는 간척 농지 한가운데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초락도라는 지명이 아니라면 이곳이 밀물과 썰물이 오가고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 드나들던 섬이었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없다. 초락도공소의 외관은 샌드위치 패널로 다소 차가워 보이나 실내는 온화한 분위기다. 나무 회중석과 색깔을 맞춘 바닥재를 깔아 통일감을 이뤘다. 제단은 벽돌로 마감해 회중석과 자연스럽게 분리해 놓았다. 나무 제대 바로 뒷벽에 십자가상을 두었고, 그 옆으로 예수성심상과 성모상, 성요셉상이 모셔져 있다. 창문은 ‘주님 탄생 예고’ ‘성령 강림’ 등을 주제로 한 색유리 시트지로 꾸며져 있고, 양측 벽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장식돼 있다. 공소 벽면 한쪽에 장식된 ‘성지 순례 사진 액자’는 공소 신자들의 신심을 잔잔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단체 성지 순례는 초락도공소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1.07

진정한 참회 통해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6)바룩서 바룩서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생긴 단절을 공인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둘 사이의 화해로 끝난다. 바룩서는 파스카 성야 미사 제6독서로 봉독된다. 루틸리오 디 로렌초 마네티, ‘예레미야 예언자와 바룩’, 유화, 로마 국립 고전 회화관. 바룩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 수록돼 있지 않은 제2경전에 속한 예언서입니다. 따라서 바룩서는 헬라어 「칠십인역」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작품입니다. 「칠십인역」은 바룩서를 ‘Βαρουχ’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Baruch’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바룩서’로 음역해 표기하고 있습니다. 바룩은 우리말로 ‘축복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히브리인들이 바룩서를 읽지도 않고 지니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바룩서를 라틴말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가타」에 수록된 바룩서는 예로니모 성인이 옮긴 것이 아니라 고대 라틴어 역본입니다. 「칠십인역」은 예레미야서-바룩서-애가-예레미야의 편지-에제키엘 순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불가타」 바룩서는 ‘바룩서 본문’(1─5장)과 ‘예레미야의 편지’(6장)을 합쳐놓았습니다. 그리고 「불가타」는 예레미야서-애가-바룩서-에제키엘서로 배치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의 전통을 따라 바룩서를 애가와 에제키엘서 사이에 놓고,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의 마지막 장인 6장으로 싣고 있습니다. 바룩서는 현재 헬라어 사본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바룩서의 1장 1절에서 3장 8절까지는 본래 히브리어로 저술됐고, 나중에 헬라어로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편지도 바빌로니아 유배 지역에서 본토인들이 숭배하는 우상을 경계하기 위해 본래 히브리어로 작성됐으나 후대 헬레니즘 셀레오코스 왕조 시대에 헬라어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룩은 힐키야의 현손이며 하사디아의 증손이고, 마흐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입니다.(바룩 1,1)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이고 친구이며 유다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지시로 하느님의 신탁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고 백성에게 읽어 주었습니다.(예레 36,1-8) 유다 왕국 여호야킴 임금이 이를 칼로 조각내 불태워 버리자 “비슷한 내용의 많은 말씀을 더 적어 넣어”(예레 36,32) 두루마리를 새로 엮어낸 자입니다. 아울러 그는 친바빌론파로 몰려 예레미야와 함께 이집트로 끌려간 후 행적이 묘연해진 인물입니다.(예레 43,1-7) 바룩은 이 책을 갈데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해 불태운 지 5년째 되던 해인 기원전 582년 다섯째 달 7일에 바빌론에서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바룩 1,1-2 참조)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보다 훨씬 후대인 기원전 4세기 말에서 기원전 2세기 후반 사이에 바룩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저자가 이 책을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바빌로니아의 예루살렘 점령과 유다인 유배에 관한 당시 문헌의 정보와 바룩서에 실려있는 내용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룩서는 바빌론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남은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동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위로하고 구원의 희망을 주기 위해 쓰인 작품입니다. 바룩서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생긴 단절을 공인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둘 사이의 화해로 끝납니다. 바룩서는 ‘역사적 서문’(1,1-14), ‘참회 기도’(1,15─3,8), ‘지혜에 관한 명상’(3,9─4,4),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4,5─5,9), ‘예레미야의 편지’(6장)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룩서의 역사 배경을 전하는 ‘첫째 부분’에는 저술 시기와 낭독, 예배,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 성전 기물 반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를 나열한 후 고백하고 하느님께로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는 참회 기도를 전합니다. ‘셋째 부분’은 이스라엘에 지혜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넷째 부분’은 예루살렘 재건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권고와 위로 말씀을 시로 전해줍니다. ‘다섯째 부분’은 예레미야의 편지로 우상 숭배에 대한 철저한 배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방 우상들은 신이 아니며 무용하고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며 유다인들의 하느님이야말로 참된 신이시다고 선포합니다. 바룩서는 이스라엘의 주님만이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며(바룩 3,36) 전지전능하시고 창조주로서 온 세상에 대한 절대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바룩서는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기보다 그분을 거역하고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일어난 징벌이라고 규정합니다.(바룩 1─2장) 이러한 징벌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한 참회를 통해 하느님께로 되돌아와야 하며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간구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바룩 4─5장) 아울러 바룩서는 ‘지혜’를 생명의 근원(바룩 3,12)이라고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율법과 동일시합니다.(바룩 4,1-4) 가톨릭교회 전례에도 바룩서 내용이 봉독 됩니다. 특히 3장 9-15절, 3장 32─4장 4절은 파스카 성야 미사 제6 독서로 봉독 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1.04

영원한 나라 세우실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내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8)다니엘서 다니엘서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한 묵시문학 작품이다.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를 통해 이교인들에게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이 정화되고 하느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죽은 의인들도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다니엘’. 출처=pixabay 히브리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다니엘서를 지혜문학에 가까운 성문서로 분류해 에스트라기와 에즈라기 사이에 배치합니다. 다니엘은 우리말로 ‘하느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다니엘서를 음차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Δανιηλ’,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Daniel’,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다니엘서’로 표기하지만, 예언서로 분류해 에제키엘서 다음으로 놓았습니다. 아울러 가톨릭교회는 다니엘서를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와 함께 4대 예언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타낙 성경의 다니엘서는 총 12장으로 히브리어(1,1─2,4; 8,1─12,13)와 아람어(2,4─7,28)로 쓰여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람어 작품(2─7장)에 히브리어로 쓰인 시작 글과 마지막 부분을 덧붙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가 이 자료들을 다시 다니엘과 하난야ㆍ미사엘ㆍ아자르야 네 유다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첫째 단원(1─6장)과 다니엘이 혼자서 보는 환시들을 소개한 둘째 단원(7─12장)으로 구분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헬라어 다니엘서에는 타낙 성경의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인 내용뿐 아니라 헬라어로 쓰인 고유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헬라어로 쓰인 내용은 다니엘서 3장 24-90절의 기도문 곧 ‘아자르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13장 수산나 이야기와 14장 벨 신상과 큰 뱀의 일화 내용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헬라어로 쓰인 이 부분들을 제2 경전으로 인정해 제1 경전인 타낙 성경의 다니엘서와 함께 편집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이 제2 경전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기원전 587~538년)에 활동하던 다니엘 예언자의 작품으로 제시됩니다. 다니엘은 남 왕국 유다 여호야킴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606년부터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536년까지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에제키엘 예언서 14장 20절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실제 저술된 시기는 다니엘이 활동하던 때보다 400년 후인 기원전 2세기 셀레오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때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다니엘서 내용이 무엇보다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한 사건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10─12장의 정치, 사회 상황이 기원전 2세기 중반 근동과 유다 지역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원전 134~63년 사이에 저술된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가 다니엘서를 알고 있습니다. 덧붙여 예로니모 성인도 저서 「다니엘서 주석」에서 포르피리의 증언을 인용, 다니엘서는 기원전 6세기의 작품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서는 다니엘 예언자가 아닌 권위 있는 그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하시딤(경건주의자)이 저술했고,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죽기 직전인 기원전 164년께 최종 편집됐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봅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유다교와 히브리인들의 전통이 자신의 통치와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해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했습니다. 이에 하스모네아 가문의 마타티아스 사제가 저항 운동을 시작합니다. 이 저항 운동에 유다교 전통을 고집하던 경건주의자들, 곧 하시딤이 동참했고,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을 벌입니다. 마카베오 가문과 유다인들은 기원전 164년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군대를 몰아내고 성전을 정화해 봉헌합니다. 다니엘서도 이러한 역사 배경 속에서 쓰인 작품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한 묵시문학 작품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유다인들이 ‘학가다’라고 부르는 교훈적 이야기와 묵시문학이 독창적으로 결합한 작품입니다. 다니엘서 둘째 단원이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첫째 단원에서 다니엘은 뛰어난 현자로서 꿈을 해석하지만, 둘째 단원에서 다니엘은 환시만 볼 뿐 그 의미는 해석하지 못하고 천사가 뜻풀이를 해줍니다. 다니엘서는 여러 이교 문화 앞에서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으로 세상의 정치권력 역시 그분의 절대 통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정치 권위도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4,22; 5,18-19) 이에 다니엘서는 하느님의 위대성을 고백하는 이교도 임금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2,46-47; 3,31-33)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한 시대는 악이 가득해 온 세상이 캄캄하던 때였습니다. 다니엘서는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이제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으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인간들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하느님이시기에 누구도 흔들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십니다.(2,44) 그러면서 다니엘서는 ‘죽은 이의 부활’을 예고합니다.(12,2-3) 하지만 아직 ‘죽은 모든 이의 부활’을 선포하는 신약 사상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다니엘서는 죽은 이의 전부가 아닌 ‘의인의 부활’만을 선포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1.18

에로스와 아가페는 사랑의 서로 다른 측면[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5) 신혼부부들이 2022년 5월 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을 마치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찾아 축복을 청하고 있다. 연인들은 에로스와 아가페가 통합된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참사랑을 체험하는 참된 부부로 성장하게 된다. OSV ‘가지려는 사랑’과 ‘내어 주는 사랑’으로 대비 ‘아가페’ 없는 ‘에로스’는 결국 타락하게 되고 ‘아가페’만으로는 인간적일 수 없기 때문 제2장 사랑이란 무엇일까? 전개 1. 교회 가르침 안에서 인간적인 사랑의 의미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에로스와 아가페는 같은 사랑의 서로 다른 측면이며, 하느님의 사랑도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페적 사랑’을 말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에로스적 사랑’을 부정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계몽주의 이후, 독일 철학자 니체가 “그리스도교가 에로스를 독살하였다”라고 비판하였듯이, 마치 교회가 계명과 금지를 가르치면서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구심과, 창조주의 선물인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이러한 비난은 오해이며, 신을 향해서 오르는 힘으로서의 에로스를 과거 고대 종교가 그릇되게 신격화하고 왜곡시켜 타락으로 이끄는 것을 구약 성경이 맞서 왔고, 신약 성경과 그리스도교도 에로스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진정한 위대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에로스의 절제와 정화를 추구해 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로서 육체적 쾌락만으로는 인격적 존재인 인간 전체를 생생하게 드러낼 수 없으며, 육체와 영혼이 긴밀히 일치될 때 비로소 참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동력인 에로스가 단순히 육체를 통한 ‘성적 쾌락’으로 전락하고 상품화된 점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이런 경향은 정화되고 상승한 에로스가 영적 충만함 속에서 정신과 육체의 통합을 이루는 ‘새로운 고귀함’에 이르는 길을 차단합니다. 에로스가 타인을 위한 사랑인 아가페로 성숙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타락하여 고유한 본성조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로스’가 정화되고 성숙하여 ‘아가페’로 나아가듯이, 남녀의 사랑도 처음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상대방을 갈망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사랑하는 이를 염려하고 배려하며 그의 행복을 추구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성장합니다.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중략)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라는 복음 내용 또한 에로스가 성숙하여 아가페적 사랑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사랑은 ‘결정적인 사랑’이 되고, ‘영원’을 만나며, ‘최고의 경지’(extasis)에 다다릅니다. 이 사랑은 자신만을 추구하는 닫힌 자아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자아를 해방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하느님을 만나 일치하는 ‘최고의 경지’를 체험합니다. ‘에로스’와 ‘아가페’는 ‘가지려는 사랑’(자신을 위한 관심)과 ‘내어 주는 사랑’(타인을 위한 헌신)으로 대비하여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랑은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에 서로 다른 차원을 지닌 하나의 실재입니다. ‘아가페’가 없는 ‘에로스’는 결국 타락하게 되고, ‘에로스’가 없는 ‘아가페’만으로는 인간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 차원이 완전히 분리될 때 ‘기이한 모습이 되거나 가장 빈약한 형태의 사랑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드러나는 신앙은 인간을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 이끌어 줍니다. 교회는 젊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성적 매력으로서의 ‘에로스’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추구하고 배려하며 자기를 내어 주는 가운데 두 인격의 온전한 일치를 추구하는 ‘아가페’로 성장함으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최고의 경지를 체험하도록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에로스와 아가페가 통합된 사랑에서 연인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관계에서 벗어나 둘이 하나가 되고자 헌신하고 증여하는 관계로 나아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에로스이며 동시에 아가페이신, 하느님의 참사랑을 체험하는 참된 부부로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cpbc2025.01.22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 확립[저는 믿나이다] (47)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정통 신앙 고백을 확립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스타브로폴레오스 수도원 프레스코화, 18세기. 379년 1월 19일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제50대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합니다. ‘하느님께서 내린 사람’(Θεοδοσιοξ-테오도시오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즉위 1년 만인 380년 2월 28일 칙령 ‘모든 백성에게’(Cunctos Populos)를 반포,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박해받는 교회에서 잘된 것이든 못된 것이든 명실상부한 제국 교회로 거듭납니다. 그리스도교 제국의 황제가 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 논쟁을 종식하기 위해 대담하게 381년 5월 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는 첫 번째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성부와 성자가 한 본체(동일 본질)로서 같은 신성을 지닌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자의 신성을 부정해 피조물로 성부께 종속돼 있다는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또 동일 본질이 아닌 유사 본질을 주장한 반(半)아리우스주의, 성령 역시 피조물이라는 마케도니우스파 등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 분열을 조장해 교회 일치를 위해서라도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입장은 이미 ‘모든 백성에게’ 칙령에 잘 드러납니다. “우리의 관대하고 신중한 통치를 받는 모든 백성이 하느님의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전해 준 신앙이 지금까지 알려진 그 자체로 선언하였고, 로마의 대사제(교황) 다마소와 사도적 성성(聖性)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의 페트루스 주교가 그것을 따르도록 밝혀준 그 신앙에 머물러 있기를 우리는 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도적인 가르침과 복음적인 교리에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의 신성이 같은 영광과 거룩한 삼위일체 안에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법령을 따르는 이들이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반겨 맞이하도록 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쳤으며 정신 나간 사람이라 생각하는 다른 이들은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른다는 모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의 집회 장소는 교회라 불릴 수 없다. 그들은 먼저 하느님의 벌을 받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하늘의 뜻에 따라 처벌받아야 할 복수로 생각한 우리의 징벌을 받아야 한다.”(「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233쪽, 황치헌 신부 옮김) 두 번째 보편 공의회이자 첫 번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381년 5월부터 7월 30일까지 두 달간 진행됐습니다. 참가 교부도 150명에 불과하고 모두 동방의 주교들이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니사의 그레고리오·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가 대표 인물이었습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가장 큰 업적은 성자가 성부와 한 본체로서 동일한 신적 본질(또는 본성)을 지닌다는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고, 성령의 신성을 명시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정통 신앙 고백을 확립했다는 것입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채택했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이를 믿을 교리로 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아리우스주의, 반아리우스주의, 마케도니우스파, 성부 수난설을 주장한 사벨리우스주의 모두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헬라어 본문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셨으며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과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으며,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주님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 성부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을 믿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저희는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한 세례를 고백하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256~257쪽, 덴칭거 –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150 참조) 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17세기 후반부터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신경은 동방 교회의 기본 신경으로 승인돼 6세기 동방 교회 대부분에서 ‘세례 고백’으로 사용됐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589년 제3차 스페인 톨레도 지역 공의회(교회회의)에서 처음으로 미사 때 사용했다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 제3차 톨레도 지역 공의회에서 ‘성부에게서 발하시고’에 ‘성자에게서’(Filioque)를 첨부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서방 가톨릭교회가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내용이지요. ‘성자에게서’라는 이 한 단어는 동·서방 교회가 갈라지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0.14

주님 승천 대축일의 의미교회와 신자에게 새로운 사명의 시작 알리는 날 주님 승천은 교회를 향한 새로운 시작, 곧 ‘파견’을 의미한다. 리히텐슈타인 마우렌 지역에 있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에 그려진 주님 승천 작품. OSV 가톨릭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로부터 40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을 ‘주님 승천 대축일’로 지낸다. 선교지인 한국 교회는 부활 제7주일에 지내고 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을 함께하시며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신 끝에 하늘로 오르신 사건을 기리는 날이다. 단순히 ‘하늘로 올라가신 날’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 모두에게 새로운 사명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주님 승천 대축일은 5세기 이후부터 교회 문헌에 등장하지만,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미 사도 시대부터 주님의 승천일을 대축일로 기념해왔다고 하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역시 이를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주님 승천에 대한 기념은 교회사 안에서 매우 오랜 전통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 교회 신앙고백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승천은 ‘물리적 승천’보다 ‘성부 오른편에 앉는다’는 의미가 강했다. 이후 이런 믿음의 내용을 더 구체적이고 자세히 설명하는 과정에서 승천을 신학적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실로 여기게 됐다. 성경에서 주님 승천에 대한 묘사는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다.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1-53)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9-11) 주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위’를 바라보라고 초대하는 동시에 천사의 말처럼 “왜 하늘만 바라보느냐?”(사도 1,11)는 질문도 함께 준다. 이날 전례에서도 입당송은 재림을, 영성체송은 공동체 안의 현존을, 기도문은 천상을 지향한다. 예수님 승천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다. 교회를 향한 새로운 시작, 곧 ‘파견’의 순간이다. 승천 이후 이어진 성령 강림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물리적 현존 대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세상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주님 승천 대축일은 초월적 사건을 넘어 섬김과 책임,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구체적 여정의 시작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5.06.01

희년의 핵심은 거룩함의 본성 회복서울 사목국장 김연범 신부, 본당 수도자 연수서 희년 의미 전해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할 때 ‘앞으로 잘 될 거야, 희망하면 돼!’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희망, 예수는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다는 것을 고백했던 그 신앙 고백이 참된 희망임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0일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 회관 3층 강당.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김연범 신부는 ‘희년’을 주제로 열린 본당 수도자 연수에서 “우리는 희년이 되면 ‘기쁘고 재밌게 지내면 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희년에 무슨 행사를 할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즐길지를 먼저 떠올린다”고 지적했다. “친교라는 단어도 의미를 잃어가고 있죠. 코이노니아를 뜻하는 ‘친교’라는 신학적 단어도 본당에서 먹고 마시는 데 쓰이죠. 여기서 친교는 삼위일체의 친교, 즉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친교를 뜻하는데, 어쩌다 보니 삼위일체의 하느님이 ‘치맥’ 정도로 변한 느낌이에요.”(웃음) 김 신부는 “구약 성경에서 희년은 ‘해방의 해’를 의미하며, 종이 된 유다인들을 해방해주고 땅을 원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희년은 세상 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기억하고, 거룩함의 본성을 회복하는 해”라고 설명했다. 이어 “희년은 가톨릭교회가 25년마다 맞이하는 은총의 해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선포되는 ‘성년’”이라며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처음 선포했고, 1475년 바오로 2세 교황이 희년을 25년 주기로 거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정기 희년의 주기를 50년에서 25년으로 단축한 것은 평생 한 번이라도 희년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교황의 특별 지향에 따른 ‘특별 희년’이 자주 선포되면서 희년의 의미가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고도 아쉬움을 전했다. 김 신부는 희년을 잘 살기 위한 일곱 가지 키워드로 ‘순례·성문·화해·기도·전례·신앙고백·대사’를 제시했다. 이어 “우리는 희년하면 ‘전대사’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희년은 전대사를 받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거룩함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며, 하느님의 선물인 대사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또 “희년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오히려 희년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때에 본당에 계신 수녀님들이 다시 희년의 의미를 묵상하고, 그 기쁨을 신자들에게 나눠주시면 좋겠다”며 “희년은 우리가 은총을 받아야 하는 해이자 구원의 해이며, 거룩해져야 할 기쁨의 해라는 점을 수녀님들이 삶으로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목국은 11월 18일에는 ‘2026년 사목교서 및 WYD’를 주제로 본당 수도자 연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6.17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4) 야콥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의 ‘이사악의 희생 ’(The sacrifice of Isaac), 1625,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025 늘그막에 얻은 아들 이사악은 험난한 삶의 여정 끝에 다가온 행복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하느님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나를 데려가시겠다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 그 어떤 형벌도 달게 받을 것이다. 하느님 명령이라면 마른 짚을 등에 지고 불에 뛰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들 이사악을 요구하셨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심각하게 고민했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생 나를 이끄신 하느님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하신 일이 없으신 분이었다. 하느님은 분명 내가 모르는 계획이 있으실 것이다. 아침 일찍 아들을 불렀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따라나섰다. 마치 소풍을 가듯 흥겨운 모습이었다. 아들은 번제물을 태울 장작을 등에 지고 함께 산에 올랐다. 잠시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아들이 환하고 흥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창세 22,7) 마음이 찢어졌다. 하지만 슬픔을 드러낼 순 없었다. 만약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도망칠 수도 있었다. 나는 늙었다. 이사악이 그 빠른 발로 도망간다면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제사를 드릴 장소에 도착했다.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었다. 그런 후, 재빨리 아들을 묶어 장작 위에 올렸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번제물로 바쳐질 운명이었다. 칼을 빼 들었다. 아들이 새파랗게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럴수록 꽁꽁 묶인 밧줄은 아들을 더욱 옥죌 뿐이었다. 나는 의외로 차분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아들의 눈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한쪽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칼을 아들의 하얀 목에 가져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다급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세 22,11)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창세 22,12) 천사가 조금만 늦었다면 이사악의 목이 날아갈 뻔했다. 아브라함은 그제야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긴 숨을 토해냈다. 아들을 죽이려던 섬뜩한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아들 이사악도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쥔 채 숨을 ‘하악하악’ 내쉬고 있었다. 목에는 아직도 서늘한 칼날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양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브라함은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양은 아들 이사악 대신 번제물로 바쳐졌다. 글 _ 편집부 cpbc2023.10.23

비잔티움 미술부터 고딕 성당, 성경 속 식물 등 보고 배우고 그리는 즐거움다양한 이미지가 담긴 색다른 책들 ‘눈길’새해를 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음력설까지 지났다. 몸도 마음도 이래저래 분주한 연초였다면 다양한 이미지가 있는 책과 함께 잠시 색다른 산책에 나서보면 어떨까.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카파도키아 미술 조수정 아카넷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는 카파도키아의 수도자들은 사람의 형상 대신 식물이나 동물 문양, 기하학적이거나 장식적인 문양, 그리고 대표적으로 십자가라는 추상적 상징을 통해 비잔티움 교회미술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는 종교적 성찰을 떠나, 시각 이미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에 결부된 문제로, 인간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미지의 창조, 즉 회화적 표현이 인간 존재 조건의 근본 요소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느 종교도 이미지나 상징, 특히 시각적 상징 없이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지에 가장 적대적인 이슬람조차도 무한히 반복되는 아라베스크 양식을 통해 신의 영원성과 초월성을 말없이 전달한다.”(87쪽)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튀르키예 동쪽에 있는 고원의 옛 이름이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이 빚어낸 화산지대의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신이 내린 절경’으로도 불린다. 「카파도키아 미술」은 제목처럼 비잔티움 제국 시기 카파도키아에서 전개된 예술의 면모를 조명한다. 여러 차례 현지 조사와 학술 활동에 참여했고, 석사와 박사 논문 등을 모두 이 지역의 회화를 주제로 삼은 저자 조수정(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가 집필했다. 조 교수는 카파도키아 교회의 회화를 초기 발달단계, 성화상 논쟁과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위기의 시대 등으로 나누어 시기별 주요 도상의 기원과 의미, 역할을 살핀다. 특히 카파도키아의 비잔티움 교회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대상으로 각 도상의 해석, 조형적 요소의 기원과 의미, 그 변화의 양상, 교회 내부 장식에서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상황과의 관계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설명한다. 또 이슬람과의 문화 접변 과정에서 어떻게 비잔티움 미술이 변용 혹은 재창조되었는지 제시한다. 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 강한수 신부 파람북 유럽이 자랑하는 건축물을 이야기할 때 성당이 손꼽힌다면, 그 성당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 양식이 고딕이다. 로마네스크에서 이어지는 고딕 양식의 과도기부터 후기 고딕에 이르는 흐름을 정리한 「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이 출간됐다.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의 후속편이자 중세 유럽 성당을 아우르는 완결편이다. 사제가 되기 전 서울대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성직자가 된 이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사피엔자대학교에서 고대 및 중세 건축사를 공부한 강한수(의정부교구 민락동본당 주임) 신부가 교구 주보에 3년 넘게 연재한 ‘성당 이야기’를 보완하고 다듬은 책이다. 중세 유럽의 성당들은 당대의 역사적인 배경과 문화적 맥락, 그리스도교 교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저자는 ‘성당 구조의 완성’이라 표현했던 고딕 양식의 구조적인 설명뿐 아니라, 건축사의 전체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친 신학, 철학적인 관점까지 살펴본다. 생드니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캔터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성당,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쾰른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 등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딕 성당과 각 지역의 문화적인 특성을 강 신부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다. 독일의 대표적 고딕 성당인 쾰른 대성당 내부. 이탈리아 미술관 산책 한광우 시공아트 유럽 예술의 탄생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서양미술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내로라할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지원한 로마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그리고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을 배출한 피렌체를 비롯해 밀라노, 베네치아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미술관 산책」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미술관과 그곳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이다. 현지에서 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던 한광우씨가 9년 동안 생활하며 직접 경험한 이탈리아의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시작된 미술관 산책은 좀 더 깊은 감상을 위해 자연스레 탐구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덕분에 독자들은 관련된 사회 현상과 표현 기법 등 작품에 담긴 전체적인 의미를 다양한 이미지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역사는 가톨릭의 기록이기도 한 만큼 수많은 접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중앙대 조소과와 국민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한 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서 조각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현지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밀라노의 무세오 델라 페르마넨테에 작품이 소장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미켈란젤로 천장화. 성경 속 식물 컬러링 북 엄혜진 수녀 바오로딸 텍스트 자체가 부담스럽다면 컬러링 북이 제격이다. 사과나무,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등은 모두에게 익숙한 식물이다. 수선화, 아마포, 사프란, 겨자, 유향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또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식물이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7) “나르드와 사프란 향초와 육계향 온갖 향나무와 함께 몰약과 침향 온갖 최상의 향료도 있다오.”(아가 4,14) 성경 속에 등장하는 27가지 식물을 담은 「성경 속 식물 컬러링 북」이 출간됐다. ‘성경 속 식물 이야기’를 주제로 강원도 원주 가톨릭센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엄혜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작품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도록 단순하게 표현했고, 왼쪽에는 완성된 채색 그림을, 오른쪽에는 색을 칠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담았다. 특히 하느님이 어떻게 이 꽃들을 만드셨는지, 성경 속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더했다. 윤하정2024.02.02

완전한 멸망에서 일어설 용기·희망 주시는 주님[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7)에제키엘서 에제키엘서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상태에서 유다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을 건설할 것이라고 격려한다. 미켈란젤로, ‘에제키엘 예언자’, 프레스코화, 1512년께,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에제키엘서를 ‘예헤즈케엘’이라 표기합니다. 예헤즈케엘은 우리말로 ‘하느님은 강하시다’ ‘하느님께서 강하게 힘을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Ιεξεκιηλ’,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Ezechiel’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에제키엘서’로 음역해 표기합니다. 에제키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입니다. 에제키엘은 차독 계열 사제인 부즈의 아들로 기원전 597년 제1차 유다인 유배가 있을 당시 예루살렘에서 사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1차 바빌론 유배 때 유다의 여호야킨 임금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에제키엘이 임금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유다 사회의 유력한 지위에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에제키엘은 유배 중 기원전 593년께 바빌론의 크바르 강가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후 그는 기원전 571년까지 22년간 예언자로서 활동했습니다. 에제키엘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맥을 잇고, 제2이사야보다는 조금 앞선 시대의 인물입니다. 에제키엘의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됩니다. 전반부(에제 1─32장)는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기원전 597~587년)으로 아직은 유다가 완전히 패망하기 이전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 사제 시절 이미 치드키야 통치하의 유다를 위해 예언을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행되고 있던 우상 숭배를 신랄히 비난하면서(에제 8장) 하느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 멸망을 경고합니다. 후반부(에제 33─48장)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붕괴되고 제2차 유배가 단행된 이후(기원전 587~571년) 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지자 에제키엘은 하느님 구원에 대한 새롭고 희망적인 약속을 선포합니다. 아내의 죽음(에제 24장)이 그의 예언직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내의 죽음은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하느님께 변함없이 충실하도록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구원을 선포합니다. 에제키엘서는 에제키엘 당대에 대부분 기록되고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에 의해 편집돼 유배 시기가 끝날 무렵 최종 완성됐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짐작합니다. 에제키엘서는 당대까지의 신학, 곧 호세아, 아모스, 제1이사야, 예레미야 등 이전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의 신학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해 놓았습니다. 이는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의 신학이 균형 있게 종합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전기 예언서와 관련된 전통들도 발견됩니다. ‘주님의 손에 사로잡힘’, ‘영에 사로잡힘’ 등이 그것입니다. 에제키엘서는 ‘소명 사화와 주님의 현현’(1─3장),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린 심판 선포’(4─24장), ‘주변 민족들에 내린 심판 선포’(25─32장), ‘이스라엘에 내린 재건과 위로, 새로운 성전과 새 땅에 관한 환시’(33─48장)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에제키엘서는 두 개의 지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바빌론 니푸르 부근 크바르 강가의 텔 아비브(에제 1,1.3; 3,15.23)와 예루살렘(에제 8,3; 11,23; 40,1-2) 입니다. ‘소명 사화와 주님의 현현’ 부분에선 에제키엘이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는 환시가 소개됩니다.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는데 그 두루마리가 꿀처럼 달았습니다. 이후 에제키엘은 주님의 영과 손에 의해 유배지로 옮겨집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린 심판 선포’ 부분은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행해졌던 신탁이 수록돼 있습니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를 보게 되는데 성전이 더럽혀지고 우상이 세워지며 그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결국 크바르 강가에서 보았던 하느님의 영광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가게 됩니다. ‘주변 민족들에 내린 심판 선포’ 부분은 암몬, 모압, 에돔, 필리스티아, 티로, 이집트의 이민족들에게 내리는 신탁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에 내린 재건과 위로, 새로운 성전과 새 땅에 관한 환시’(33─48장) 부분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상황에서 에제키엘이 유다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미래의 회복을 전합니다. 이러한 미래에 있을 회복은 이스라엘의 내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돌같이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새 마음, 살처럼 부드러운 심장을 넣어 주실 것이라 선포합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이 서로 붙고 힘줄이 생기고 살아 올라오며 살갗이 덮인 후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자 모든 사람이 되살아납니다. 에제키엘은 마지막으로 재건된 새 성전을 중심으로 이제 이스라엘은 남북의 분단 없이 하나로 통일된 국가를 형성할 것이며, 떠나가셨던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신다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성전 문턱에서 솟아나오는 은총의 물로 비옥해진 새 이스라엘에서 하느님께 새로운 경신례가 바쳐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에제키엘서 18장에는 매우 독특한 내용 하나가 제시됩니다. 바로 ‘하느님과 개인’에 대한 문제입니다. 유다인 개인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 행동과 삶에 책임을 진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주제로 유다이즘 신학의 배경이 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