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과 삶의 조화 이끄는 영적 나눔 도우미 '성년' 바오로딸 「야곱의 우물」 창간 20주년, 진리와 사랑의 수로 역할에 충실1994년 3월호 창간호를 시작으로 올해 20주년을 맞는 「야곱의 우물」 이지혜 기자"「야곱의 우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작고 소박한 성경묵상 잡지로서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성경을 알아들을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왔습니다." 바오로딸이 성경을 삶과 사회 안에서 묵상,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 창간한 성경잡지 「야곱의 우물」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초대 편집장 홍순흥(아우구스타,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는 2월 1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바오로딸서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990년대, '더 재미있게 더 대중적으로' 만드는 게 잡지사들의 구호였던 시절, '누가 성경잡지를 보겠느냐'고 우려했다"면서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영적으로 굶주린 이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기로 하고 창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함께한 초대 편집위원 김수복(요셉, 일과 놀이 출판사 대표)씨는 "올바른 앎이 있어야 올바른 삶이 있고 신앙생활이 있다"면서 "잡지는 '매일 성경묵상'을 중심으로, 전례에 따른 매일의 복음을 날마다 묵상하며 가정과 사회 안에서 복음을 살도록 이끌어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성바오로딸수도회에 처음 잡지 창간을 제안했던 평신도 신학자다. 1994년 3월호를 창간호로 첫발을 내디딘 「야곱의 우물」은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고, 교회 가르침에 비추어 사회 문제를 식별하는 눈을 기를 수 있는 글을 싣는 데 주력했다. 남북한 화해를 담은 연작 동화(고 권정생 작)를 비롯해 사회교리 만화, 시사만화가 박재동의 '사는 이야기' 등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상 안에서 성경을 실천하는 숨겨진 얼굴들을 찾은 것도 하나의 성과다. 재정난에 허덕이면서도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기업광고 대신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캠페인성 광고를 게재한 것도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 김수복 편집위원은 "환경, 생명, 인권, 부와 가난 등 사회 현실을 성경과 교회 정신 안에서 비춰주는 다양한 주제의 칼럼을 실어왔다"고 설명했다. 홍 수녀는 "아름답고 좋은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야곱의 우물」이 소박한 형태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의탁했기 때문"이라며 "「야곱의 우물」은 더 멋있게 (보이게 하기 위해) 진일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잡지를 잘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성경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거룩하고 겸손된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 진리와 사랑의 수로 역할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우리 과제"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백영민2014.02.25

신약의 비유 나무와 열매의 비유... 집 짓는 사람의 비유의롭고 슬기로운 사람은 가르침을 듣고 실천한다 신약의 위대한 예언자 요한 세례자 초상. 마태 7,15-20.24-27; 루카 6,43-49)마태오 복음 7장에 담긴 ‘나무와 열매의 비유’(마태 7,15-20)는 ‘산상설교’로 구분할 수 있는 단락에 속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마태오 복음의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제에 따라 한데 묶어 전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5─7장 산상설교 - 군중과 제자들10장 파견에 대한 가르침 - 제자들13장 비유에 대한 가르침 - 군중과 제자들18장 공동체에 대한 가르침 - 군중들23-25장 재림과 심판에 대한 가르침-군중과 제자들이처럼 5─7장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가르침 부분으로 그 대상은 군중과 제자들이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이 산상설교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거짓 예언자를 가려낼 수 있는 지혜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여라”는 경구로 시작한다. 신약성경에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마르 9,38-40; 13,21-23; 1요한 2,18-27; 4,1-6; 묵시 2,20). 비교적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거짓 예언자’는 그만큼 초대 교회 안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던 문제였으리라. 성경은 아니지만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일컫는 「디다케」에서도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만일 그가(예언자가) 금전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이다”(11,6).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이 표현에서 강조되는 것은 비유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조’이다. 양의 옷차림과 게걸스런 또는 탐욕스런 실제 모습을 통해 그들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마치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공동체에 커다란 위험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 ‘양’은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됐다. “당신 백성을 양떼처럼 이끌어 내시어…”(시편 78,52; 100,3). 탈출을 언급하는 이 시편 구절은 하느님을 목자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양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의미는 신약성경에서도 ‘교회’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자리하게 된다.“제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사도 20,29-30). 사도행전의 표현을 빌리면, 거짓 예언자는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초대 교회 안에서도 이들에 의한 폐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열매’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를, 다른 한 편으로는 행동 그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 말하는 ‘열매’는 행동에 따른 결과를 일컫는 것이기보다는 ‘행동 그 자체’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앞의 표현을 풀어본다면, “너희는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슷한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사용된 구절을 마태오 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도 열매는 행동 자체를 강조한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사실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마태 12,33-35).비유에 등장하는 다음 표현 역시 마태오 복음 12장의 내용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게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어 들이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된 이 표현은 어떤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학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원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어들일 수 없다”고 읽을 수도 있다. 비유의 내용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표현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의 차이를 강조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예언자들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행동은 다르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같은 형식과 용어를 반복하여 표현한 이 구절은 당연함과 불가능, 그리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대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용된 ‘좋다’ ‘나쁘다’는 감정이나 취향에 따른 구분이기보다는 윤리적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바꾸어 말한다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분이라 하겠다.“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비유는 종말의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문맥으로 볼 때, 심판의 기준은 사람들의 행동이다. 그 의미는 뒤이어 나오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마태 7,21-23)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또한 이 종말의 심판에 대한 표현은 세례자 요한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말했던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8-10). 회개를 위한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두 ‘열매’라는 표현을 통해 구체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것이 종말의 심판에서 기준이 될 것임을 드러낸다.이 비유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고 끝맺지만, 내용은 이 비유를 듣거나 읽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한다. 거짓 예언자들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 ‘좋은 열매’,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동은 심판 때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심판을 준비하는 지혜집 짓는 사람의 비유(마태 7,24-27)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슬기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은 지은 사람과 비교된다. 그리고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을 나누는 구분은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다. 비, 강물, 바람은 폭풍우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에제 13,10-15; 이사 28,14-19). “주 우리 하느님이 말한다.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일으키고 진노하여 비를 쏟으며, 분노하여 큰 우박을 내려 그 벽을 허물어 뜨리겠다”(에제 13,13). 이와 같은 심판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무너져 버린다.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집 짓는 사람의 비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데, 전체 문맥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5─7장 산상설교의 시작 부분에 표현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의로움이고, 그것은 새로운 가르침으로 모세의 가르침과 대별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마태 5,17-20).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의롭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종말의 심판에서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예수님이 전하는 비유의 의미라 할 수 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와 집 짓는 사람의 비유는 하나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비유는 모두 종말에 있을 심판을 배경으로 이야기된다. 또한 이 두 비유 사이에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집 짓는 사람의 비유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보편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에서 거짓 예언자들이 행동을 통해 구분되듯이, 우리 모두는 행동을 통해, 곧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심판받을 것임을 강조한다.“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태 7,24). 백영민2014.07.09
![[교황 방한 1주년] 특별 좌담](//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5575_1.2_titleImage_1.jpg)
[교황 방한 1주년] 특별 좌담말씀과 행동으로 한국 교회에 뿌려주신 쇄신의 씨앗, 이제는 복음의 빛·순교자의 빛으로 열매 맺을 때 조규만(왼쪽 세 번째) 주교 등 좌담회 참석자와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평화신문 주간 박규덕 신부, 이정주 신부, 조 주교, 민남현 수녀, 정치우 교장, 평화신문 리길재 차장, 박수정 기자. 이힘 기자 지난해 8월, 한국 가톨릭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순교자 124위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특유의 겸손함과 소탈함으로, 또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가장 먼저 챙기는 행보로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교황은 한국 교회와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만나며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청년들에겐 희망을 심어줬고, 정부 지도자들에겐 소통과 대화를 강조했다. 한국 주교단에겐 물질의 유혹을 경고하며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기를 당부했다. 교황 방한 이후 냉담자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가톨릭에 입교하기 위해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한 이들이 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톨릭에 관한 일반 국민들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교황 방한의 반짝 효과일 뿐 가톨릭 교회가 교황이 남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교황 방한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본지는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교황 방한 1주년을 평가하는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 참석자는 교황방한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홍보분과 부위원장 이정주(주교회의 홍보국장) 신부, 영성신심분과 간사 정치우(복음화학교) 교장과 교황 방한 당시 평화방송TV 교황 방한 프로그램 해설자로 활약한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다. 좌담은 본지 리길재 차장이 진행했다. ▨교황 방한의 소회를 듣고 싶다. 더불어 교황 방한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이정주 신부 : 교황님께선 자연스럽고 소탈한 모습, 지도자면서도 어느 누구와도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이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도대체 지도자란 누구인지, 종교인이란 누구인지를 성찰하게 해주셨다. 또한 이웃에게 이웃이 돼주고 형제가 돼주는 게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방한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하신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라는 말씀이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다가가고 그들을 우선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던져준 첫 번째이고 중요한 메시지다. ▲정치우 교장 : 개신교나 불교계에서는 교황 방한과 관련해 여러 논평을 냈다. 교황 방한은 각 종교에서 자기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면에서 교황 방한이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분은 말씀과 행동으로 한국 교회에 쇄신의 씨앗을 뿌려주고 가셨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고 당신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에 비해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할 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여러 신자들과 교황 방한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가에 관해 얘기를 나눠봤지만 좋은 반응은 없었다. 교황 방한이 이벤트성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싶다. 대신 교황님께선 많은 숙제만 남기고 가셨다. ▲민남현 수녀 : 지난해 종교와 관계없이 온 나라가 축제를 지낸 느낌이다. 신앙의 신비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같은 경우 실제 교황님을 뵌 적도 없지만 주님 안에서 친밀함을 느끼는 게 신앙의 신비로 여겨진다.지금 우리 교회는 세속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정체된 걸음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우리에게 교황님께선 변방으로 나가라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해주셨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갖도록 자극을 주셨다. ▲조규만 주교 : 교황님을 뵈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도 그 시대에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추구했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교황을 알리고 예수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가장 낮은 곳, 어려운 곳, 가난한 곳, 힘든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과 행동으로 알려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교황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남들 보고 교황님처럼 살라고 지적하고 비난하는 자세는 고쳐야 한다. ▨교황은 한국 방문의 의미를 ‘기억, 희망, 증언’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했다. 순교자들이 물려준 신앙 유산을 기억하고 증언함으로써 희망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기억, 희망, 증언 측면에서 볼 때 지난 1년간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나. ▲이 신부 : 이 단어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키워드다. 기억은 과거고 증언은 현재이며 희망은 미래를 얘기한다. 기억은 기념과 연결된다. 주님께선 성체성사를 설립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 복음을 늘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기념해야 하고 또 늘 현재화해야 한다. 희망은 증언해야 할 하늘나라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억, 희망, 증언은 세 단어지만, 하나로 포괄된다. 신앙을 꿰뚫는 핵심 단어다. 교황 방한과 세월호 사건이 맞물린 시점에서 교황님은 신자들이 순교 성인들 신앙을 본받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투신하고 순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해주셨다. 한국 교회는 세월호, 강정마을, 밀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은 사제 수도자가 함께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교황 방한 이후 시작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미사는 교황님 뜻을 실천하려는 작지만 큰 노력이다. 교황님께서 남긴 메시지를 곱씹으며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정 교장 : 현재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 분포를 보면, 1970년 이후에 세례받은 분들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구교우 신자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초기 교회 신자나 순교자들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요즘 신자들에겐 전달이 안 된 상태다. 신자들에게 순교 영성을 교육하면, 자신들의 삶에 전혀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신자들 피부에 와 닿는 교육과 구체적 순교 영성 프로그램이 연구돼야 할 필요가 있다. 교황 방한을 계기로 순교자 신앙 유산이 신자들 삶 안에서 피어날 수 있는 교육과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길 바란다. ▲민 수녀 : 교황님이 다녀가고 6개월이 지났는데 다시 냉담자가 늘어나고, 입교자 비율도 원상태로 복귀했다는 기사를 보고 문제점을 느꼈다. 교회가 최선을 다해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신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반성하게 된다. 교회가 이 시대를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지 않는다면, 교회는 안일주의에 빠진 배타적인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나눔과 소통의 문화를 직접 살아내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신심 단체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많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조 주교 : 교황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닮아 살아가려면 하루아침에 안 된다. 1년 만에 평가할 일이 아니다. 자칫 성과주의에 빠질 수 있다. 교황님께서 무엇을 희망하라고 하셨는지 살펴야 한다. 교황님은 하느님을 희망하라고 하셨다. 복음에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행복한가. 하느님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부자들은 돈을,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재주를 희망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권력도 돈도 재주도 없다. 오직 하느님만이 희망이 될 수 있다. 교회는 교황님이 희망하라고 한 희망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신자들은 삶 안에서 이를 증거해야 한다. ▨교황이 남긴 공통된 메시지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라는 요청이다. 한국 교회는 이 요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이 신부 : 가난은 예수님 복음의 핵심 메시지다. 가난한 사람을 우선해야 한다. 신학생 때 그런 고민을 했다. 왜 가난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나. 그때 동창 신부가 한 말을 기억한다.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면 그들을 포함한 모두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면 실제 우리가 가난해져야 한다. 하느님만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많은 사목자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지만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가난을 선포하는 예수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정 교장 : 세속적 가난, 물질적 가난만 얘기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다. 희망의 끈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더 고통받고 힘들게 살아간다.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보다 더 많다. 교회가 물질적 가난을 해소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정치가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을 복음화시켜 그 사람들이 국민 삶의 질을 높게 할 수 있는 신앙의 성숙함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민 수녀 :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진정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가다. 소외된 이웃들의 삶의 문제를 우리가 과연 똑같이 느끼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진정한 연민으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지난 3월 주교님들께서 교황님을 만나셨을 때, 교황님께서 하신 첫 번째 질문이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굉장히 감동했다. 교황님께서 우리와 함께 연대하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 주교 : 교황님이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는 얘기는 이미 성경에서 하신 예수님 말씀을 확인한 것이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 가난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람, 힘없는 사람, 사회적 약자를 집합한 개념이다. 교회는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사목할 때 하느님 중심, 인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줘야 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란 그런 것이다. 부자라고 해서 더 잘해주고, 가난하다고 해서 차별해선 안 된다. ▨교황은 청년들을 만나 희망의 메시지를 줬지만,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들을 위해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 ▲이 신부 :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가난을 해결해줄 수 없듯, 청년들의 취업과 학점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그럼 교회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교황님께선 청년들이 순교자들의 빛을 받아 인생을 다시 생각하고,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셨다. 행복을 돈으로 사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강조하셨다. 교회는 무한경쟁 속에 살고있는 청년들이 한 번쯤 쉬어가면서 인생과 사랑, 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교황님 말씀처럼 청년들이 복음의 빛, 순교자의 빛으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 교장 :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 세대’가 요즘 청년들이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관계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완화해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청년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한 결과다. 교회는 그들에게 신앙과 인간적 가치관을 심어줘야 한다. 특별히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하느님 안에서 자존감을 올바로 세워 주는 신앙 교육이 필요한 시대다. ▲민 수녀 : 요즘 젊은이들은 굉장히 외로운 세대다. 또 불안감 때문에 조금만 관심 가지고 이름만 불러줘도 감동하는 약한 이들이기도 하다. 청년에겐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영화, 책, 스포츠,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소비나 향락 문화로 자아를 채우지 않아도 대안적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또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보게 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시대 흐름을 거슬러 살아가는 용기 있는 이들을 발굴해 그들의 체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소외감을 극복하도록 용기를 줘야 한다. ▲조 주교 :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상 세계에 빠진 청년들이 많다. 인간관계가 단절돼 있고 결여돼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총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학교 교육도 정상이 아니다. 전부 취직을 위한 공부뿐이다. 공교육 회복이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을 살리려면 가정을 살려야 한다.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면역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이 다 망가졌다. 부모가 자식에게만 기대하고, 자식들만 위하다 보면 건강한 가족이 될 수 없다. 교회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사회와 함께 공존하면서 가정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교황 방한은 한국 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아시아 교회 복음화와 연대라는 책무를 돌아보게 했다. 아시아 교회 복음화와 일치를 위한 한국 교회 역할은 무엇일까. ▲이 신부 : 한국 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앞서 있으니 가난한 교회와 나누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선교사를 파견하고, 성금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나라가 얼마만큼 어렵게 사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관심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남수단이 가난한 나라라는 것밖에 몰랐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남수단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됐다. 이처럼 실제로 아시아 사람들 삶에 깊이 다가가 그 사람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 ▲정 교장 : 한국 교회가 아시아 교회 관문 역할을 하려면, 한국 신자들이 먼저 훈련돼야 한다. 특별히 아시아 복음화에 투신할 인력을 뽑아 양성하고 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현지에 파견해 현지인들과 지내며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아시아 복음화는 탈북자, 이주민, 해외 직접 선교 이렇게 3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를 대비해 북한과 중국 선교를 준비해야 한다. 아시아 복음화 시대엔 평신도 역할이 굉장히 클 것이다. 평신도를 양성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아시아 복음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 ▲민 수녀 : 아시아 교회에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아시아인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환경과 인권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제작할 수 없는 영상과 교육 자료 등을 그들 언어로 번역해 나눠준다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나라 언어로 된 성경 보급에도 도움을 주면 좋겠다. ▲조 주교 : 하느님이 원하는 선교는 모든 민족이 하느님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인류가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친구처럼 지내길 원하신다는 뜻이다. 나라와 민족에 상관없이 서로 친교를 나누는 것이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이며 그것을 위해 선교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한국 교회만큼 모든 사목이 활발한 나라는 없다. 한국 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시아 선교는 하느님 안에서 한형제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방향이 돼야 한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5.08.04

신앙의 해 끝났지만 새로운 복음화는 이어진다서울대교구 사목교서, 신앙의 해 정신 이어서울대교구는 올해를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는 해'로 선포했다. 사진은 한 신자가 성경을 읽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신앙의 해는 끝났지만, 신앙의 해를 계속 이어가는 서울대교구 본당이 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014년도 사목교서 주제를 '하느님 말씀은 새로운 복음화의 원동력'으로 정하고, 올해를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는 해'로 선포한 것에 발맞춰 사목교서의 지침과 실천사항을 그대로 따르는 본당이 많아진 것이다. 대치2동본당(주임 홍기범 신부)은 본당 사목 방침을 '말씀으로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로 정하고, 1월부터 매 미사 10분 전 독서와 복음읽기,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번동본당(주임 강권수 신부)은 '말씀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를 주제로 1월부터 전 신자 성경읽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논현동본당(주임 정구현 신부)은 '매일 성경 읽기를 생활화합시다!'라는 표어로 3월부터 전 신자를 대상으로 성경 통독에 나선다. 성경필사도 눈에 띈다. 잠실3동본당(주임 박성칠 신부)은 1월 1일부터 마태오복음을 시작으로 매일 복음 필사와 묵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당은 매일 그날의 복음을 필사하는 신자들 가운데 상ㆍ하반기에 각각 10명을 선정, 국내 성지순례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거여동본당(주임 우대근 신부)은 1월 5일자 주보 본당면에 '2014년 거여동본당 공동체 실천사항'이라는 안내문을 게재, △신ㆍ구약 성경 이어쓰기 △복음 말씀 읽기 △한 주간 생활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성경말씀 게시 등 신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문정동본당(주임 염수완 신부)은 구약성경 필사 기본 일정표를 제작, 신자들이 창세기부터 말씀에 맛 들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직접 성경 교육에 나선 본당도 있다. 삼성동본당(주임 심흥보 신부)은 주보(본당면)를 신자 영성교육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1월 12일 자 주보는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 성경 내용을 소개하고, 장소와 시간, 자세에 대한 준비와 함께 성령청원과 복음낭독 등 순서를 밟아가며 관상과 묵상을 하도록 이끌고 있다. 수색본당(주임 이기헌 신부)은 영세 10년 이하인 신자와 신약성경을 통독하지 못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본당에서 실시하는 '성경학교'에 입학하도록 권했고, 고척동본당(주임 남학현 신부)은 1~12월(7~8월 제외) 매월 첫 화요일 최승정(가톨릭대 교수) 신부 성경특강을 계획했다. 대치동본당(주임 김철호 신부)은 1월 12일부터 11월 23일까지 '본당 설정 35주년 기념 성경 이어쓰기'에 돌입했고, 논현2동본당(주임 김세진 신부)은 1월 14일부터 화요일마다 '영어성경 공부 모임'을 마련했다. 장안동본당(주임 정웅모 신부)과 역삼동본당(주임 박성우 신부)는 신앙의 해 다섯 가지 표어를 구체화한 △전 신자 성경공부 △구역 반모임 참여 △견진성사 △전 신자 월 1회 평일미사 참례 △노인 복지 강화 등을 권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역삼동본당 김희대(빈첸시오) 사목회장은 "신앙의 해를 계기로 교구 정책이 구체화하다 보니 역삼동을 비롯한 많은 본당이 교구 사목교서와 지침에 대한 호응이 큰 것 같다"며 "올해는 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교구가 앞으로 신앙의 해 표어를 한 해 한 해 이어가겠다는 것은 신앙의 해를 5년 연장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본당들이 교구 정책에 잘 호응해주는 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백영민2014.02.04

가수 바다 (최성희 비비안나), “신앙 안에서 힘을 얻으세요”교황 방한 앞두고 바쁘고 설레 “기도는 마음을 씻는 행위입니다.”“하루하루 우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스케줄대로 살아야 해요.”“제가 묵주기도를 한 단 바치는 것은 그분께 한 걸음 다가가는 것과 같아요.”“예수님은 인생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세요. 하지만 우리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옳은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시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거예요.”모두 가수 바다(최성희, 비비안나)씨가 한 말들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가며 신앙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렇게 비유를 잘하느냐고 묻자 “성경에서 배운 것”이라고 답했다. 학창시절 성경과 시집을 끼고 살았다고 했다.그는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늘 우리에게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시잖아요. 그분께 배운 설명법이라고 할까요?”라며 웃어 보였다.힘 있는 가창력의 소유자이자 1세대 여성그룹 아이돌로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바다씨가 요즘 어느 때보다 활발히 신앙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동료 문화ㆍ예술인들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념 뮤직비디오 ‘코이노니아’에 출연해 특유의 밝은 미소와 노래를 선보였고, 지난 두 달 동안은 매주 PBC라디오 프로그램 ‘일어나 비추어라’에서 김연범(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신부와 공동진행을 맡아 교황을 맞는 들뜬 기분을 청취자들에게 꾸준히 전했다.“특히 ‘코이노니아’ 뮤직비디오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낸 것 같아 기뻐요. 교황님 방한을 앞두고 주님이 주신 탤런트를 도구로 쓸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리죠. 촬영할 때에도 말 그대로 한마음으로 모두가 친교를 이룬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자리에서 모두 함께 기도하자고 외친 기쁜 순간이었어요.”그는 “TV로만 보던 교황님의 따뜻한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에 무척 설렌다”며 “물질주의 속에 살아가는 저희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며, 가난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일깨우는 인생 가치를 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시골의 한 공소로 이사해 신앙에 더욱 기대어 살았다. 어머니와 함께 수호천사에게 꾸준히 기도한 결과,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아버지는 기적처럼 나았고, 자신 또한 일찍이 가수로 데뷔해 자신의 노래 제목 ‘Dreams Come True’처럼 꿈을 이뤄냈다. 그는 “단언하는데, 믿음은 기도가 키워주고, 커진 믿음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져온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어른이 되고 나서 무척 힘든 때가 많았어요. 일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래서 예수님께 여쭤보면 그것마저도 제 기도가 부족했던 탓인 거예요. 조금만 기도를 소홀히 하면 원하는 걸 보여주지 않으시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없이 다 이뤄주신다면 어떤 학생(신자)이 공부하겠어요? 점쟁이가 돈을 더 내면 더 많은 것을 일러주는 것처럼 기도해야 해요.”이처럼 늘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고 기도해온 바다씨는 “교황님 방한을 기다리는 요즘 스스로 얼마나 떳떳한 신앙인이었는지 돌아보고 있다”면서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런 준비로 최근 3박 4일간의 청년 꾸르실료 체험도 했다.“제가 늘 외치는 문장이 있어요. ‘How does it get better than this’(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힘들 때엔 긍정의 힘을 주고, 잘 될 때에도 차분함을 줄 수 있는 말이죠. 힘을 가져다주는 말과 기도로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 청소년들이 신앙 안에 힘내길 빌어요.”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4.07.15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13> 나 새롭게 발견하기 (마르 12,38-44)](//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7292_1.1_titleImage_1.jpg)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나 새롭게 발견하기 (마르 12,38-44)위선 교만으로 가득찬 신앙 멀리하라에기노 바이너트의 '과부의 헌금'. 독일 작가 소장.율법학자와 가난한 과부에 대해 살펴보자.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의로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배우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가르침을 주는 대표적인 사람은 율법학자였다. 이들은 율법서와 예언서를 해설하고, 백성에게 삶으로 적용시키도록 가르쳤으므로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에 있는 학식만으로는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하신다. 참된 신앙은 높은 학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깨달은 것으로 전할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고발하신다. 가난한 과부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계시다. 엄밀히 말하면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 전승에 따라 내려오는 전통을 연구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하신다. 율법학자들에게서 경계할 점은 명예욕과 탐욕, 과시욕, 위선적인 기도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율법학자의 자리에 나를 놓고, 예수님은 나의 어떤 삶을 보며 경계하실까 하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의 과시욕은 그들이 기도하고,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에서 드러난다. 겉옷 자락 네 곳에 긴 술을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내보인다. 또 이들은 장터에서 시민들이 자기에게 깍듯이 인사하기를 바란다. 대중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보십시오 여러분, 나를 좀 봐 주세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율법학자들은 회당이나 잔칫집에 가면 높은 자리에 앉길 원했다. 좋은 자리는 저명인사가 앉는 자리다. 회당에 가면 모세오경을 보관하는 자리 앞쪽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잔칫집에 가면 윗자리에 앉길 원했다. 윗자리는 주인 옆자리다. 통상적으로 주인 옆자리는 원로들에게 내어주는 자리다. 주인 옆에 있으면 사람들 눈에 금방 띄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은 과부들의 후한 대접을 너무 좋아했다. 과부들은 남편이 남긴 유언에 따라 재산을 관리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과부들에게 법적 자문을 해주며 수수료를 받고 때로는 과부의 가산을 착취하기도 했다. 또 과부들을 위해 긴 시간 동안 기도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율법학자들이 경건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신심 깊은 체하기 위해 길게 기도하는 모습을 비난하셨다. 예수님이 남에게 보이는 위선적 신심행위, 사기행각에 집착하는 율법학자들을 단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태오 복음서 23장을 보면,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선언을 하셨다. 겉으로는 고상하게 열심히 기도하면서 속내는 하느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과부를 비교하시면서 신앙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삶의 본보기를 제시한 이는 율법학자가 아닌 가난한 과부였다. 사람들에게 참 신앙인의 길을 보여준 사람은 율법학자가 아닌 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태오 복음서에 더 분명하게 제시돼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2-3).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삶을 본받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마태 12,38-40). 예수님이 지적하신 율법학자의 위선은 교만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인간적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당시 사람들은 거리에서 율법학자를 만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모아 "선생님" 혹은 "아버지" 하며 깍듯이 인사했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장터에 가서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을 즐겼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그 마음에 교만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위선적인 율법학자와 달리 과부는 가난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 당시 여성들은 공개적으로 율법을 배울 수 없었고 결혼하기 전까지 어머니 밑에서 살림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과부가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000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궁핍한 가운데 가진 생활비를 모두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전부를 바친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돈의 액수에 달려 있지 않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지녀야 한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ㆍ오후 1시 40분, 금 오후 8시, 토 오후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ine. or.kr, 02-944-0945 cpbc2013.10.08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하느님의 나라 거울(마르 10,17-27))가진 것 내어주고 얻는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와 부자 청년'(하인리히 호프만 작, 1889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소장).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하신 말씀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한다. '하느님 나라'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122번 나온다. 그중 공관복음서에서 99번이다. 공관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부분에 '하느님 나라'가 나온다. 그 정도로 예수님이 처음 선포하고 초대하신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해준다. 하느님 나라는 지도의 한 구석에 있는 곳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다르다. 예수님이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자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뭔가를 했구나 하며 예수님을 자신 있게 바라봤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족한 면을 깨우쳐 주신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가진 것을 파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도 쉽지 않다. 예수님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자신의 것을 움켜쥐고 있을 때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없다. 예수님은 움켜쥔 것을 펴라고 하신다. 당신의 삶과 생명까지 다 내어주는 삶을 사셨기에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아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2)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마르 10,23)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재물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축복과 재산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지만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재물은 탐욕으로 변한다. 탐욕으로 변하면 우리가 그 올가미에 걸려들게 된다. 곧 하느님을 떠난 삶을 살게 된다. 구약에 보면 삼촌과 조카 사이인 아브라함과 롯이 부자가 되자 갈등이 생겨 서로 헤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정말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자,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부유함이라는 축복 자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 하느님 계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 내 삶 안에서 하느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활동이 나에게서 이뤄진다. 우리가 모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느님을 뵙고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가 재물을 포기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다. 진정한 포기가 있을 때 하느님은 내 안에서 활동하시고, 당신의 계획을 나를 통해 실현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이 하느님이 채워주신다. 우리가 현재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공로만으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고 말씀하셨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ㆍ오후 1시 40분, 금 오후 8시, 토 오후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ine. or.kr, 02-944-0945 cpbc2013.09.24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10>가장 큰 사람(마르 9,33-37))](//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3170_1.2_titleImage_1.jpg)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가장 큰 사람(마르 9,33-37))스스로 낮추고 섬기는 위대한 삶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 포스터. 예수님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코 복음 9장에는 제자들의 무능력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했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지에 너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하면서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마음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따라다니는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예수님 옆에는 누가 앉을까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과 생각이 너무 달랐다. 그 제자들 모습이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신앙생할을 열심히 하면서도 예수님 생각 따로, 우리 생각 따로인 것처럼 행동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수난을 당하려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 길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제자들의 알아듣지 못함이 내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보자. 세속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현세적 축복을 기대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아무리 당신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셔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은 당신의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통치자가 되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기들은 마땅히 그 다음가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마르 9,33-34) 그러나 제자들은 거리낌이 있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다. 삶을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나눔의 삶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신 다음, 어린이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어린이들은 서슴없이 예수님에게 간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예수님께 곧장 갈 수 있는 마음은 우리 안에도 있다.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천진무구하다.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미소한 이의 상징이 어린이라고 말씀하신다.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을 보면, 주인공 마르첼리노가 수도원 앞에 버려져 있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를 데려다 키웠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에게 다락방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올라간다. 다락방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고 마르첼리노는 놀란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예수님에게 마르첼리노는 "예수님 춥죠? 예수님 배고프죠?"하고 묻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어 마르첼리노가 가지고 온 빵을 같이 잡수신다. 우리 마음에도 분명히 예수님을 직면할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 눈에서 의심 없이 순수한 믿음을 보셨다.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갖고 살 때 누구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고, 하느님의 종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해주셨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ㆍ오후 1시 40분, 금 오후 8시, 토 오후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ine. or.kr, 02-944-0945 cpbc2013.09.10

신앙의 위기, 직접 나서 조사하고 헤쳐간다서울 갈현동본당, 공동체 직면한 문제 등 주제로 포럼 열고 신앙 다져 10일 열린 갈현동본당 사목포럼에서 토론자들이 본당 전례 활성화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저희 본당은 20~40대 남성의 주일 미사 참례율이 가장 낮습니다. 이들을 성당으로 이끄는 한편, 전체 신자의 평일 미사 참례율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겠습니다.”주일인 10일 오후 서울 갈현동본당(주임 장희동 신부) 지하 소성당. 본당 사제와 사목위원, 단체장을 비롯한 신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사뭇 진지하게 본당 사목에 대해 토의했다. 이 모임은 매달 한 차례 열리는 ‘본당 사목포럼’. 이날 주제는 ‘갈현동성당 신자들의 전례 참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었다. ‘우리 본당은 내 손으로 가꾼다’는 취지로 본당 전 신자가 나서서 포럼을 준비하고 해결방안을 나누는 자리로, 지난 7월 ‘성가정 및 소속 단체 활성화 방안’ 주제 포럼 이후 두 번째다.포럼은 전례분과에서 주일미사 참례자 91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조사 결과 본당에는 50~70대 신자의 미사 참례율이 가장 높고, 20~40대 남성의 미사 참례율은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평일미사에 적극 참례하는 이들이 성시간, 십자가의 길과 같은 기타 전례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 중 와 닿는 시간으로는 영성체, 강론, 참회예절, 성가, 평화의 인사 순으로 나타난 것도 흥미를 끌었다. 평일미사에 참례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에는 직장이나 집안일 이유 다음으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답변이 많아 시사하는 바가 컸다.설문조사를 담당한 홍선경(체칠리아) 전례분과장은 “조사 결과 신자들이 스스로 전례교육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있으며, 본당은 각종 전례 참여와 교육 방안을 모색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이어 학부모, 단체장, 평신도 등으로 구성된 지정 토론자 10여 명이 나와 앞서 발표된 결과를 토대로 토론을 했다. 이들은 각자 5분 발언을 통해 △새 신자 성경공부 △청년 맞춤형 본당 프로그램 개설 △전례 의미에 맞춘 성경강좌 및 전례학교 개설 △미사 전 평화방송 강좌 상영 △젊은 아빠 모임 마련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전 설문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토론 등 밀도있게 준비된 포럼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여기서 나온 결과는 앞으로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후속 작업으로 이어질 계획이다.양근우(스테파노) 총회장은 “신자들이 포럼을 통해 본당 현주소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더욱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선교 △전례 △청소년 △청년을 주제로 4차례 사목포럼 후 도출되는 방안을 한데 모아 갈현동본당만의 사목 안내서 등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장희동 주임신부는 “말로만 신앙의 위기라고 외치지 않고, 직접 나서서 의식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찾는 가운데 허약했던 신앙을 굳건히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4.08.13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20>](//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8374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2열왕 2,12) ‘엘리야의 승천’. 작자 미상. 임금들은 옳은 길을 벗어나기가 쉬운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무엘기와 열왕기에서 임금들이 있는 곳에는 예언자들도 있습니다. 특히 임금이 잘못할 때에 예언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임금들이 하느님 위에 올라서지 못하도록 옆에서 찌르는 것이 예언자들입니다. 그러니 임금들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이 달갑지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합과 엘리야, 히즈키야와 이사야, 치드키야와 예레미야.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나 남 왕국 유다에서나, 임금과 예언자 사이의 갈등은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됩니다.성경에 예언서들을 남긴 문서 예언자들 이전에 활동한 가장 중요한 예언자 두 사람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임금들의 역사를 이어가던 열왕기에서는, 상권 17장부터 하권 8장까지에 걸쳐 이 두 예언자에 대해 전해줍니다.엘리야 시대의 임금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었습니다. 임금에 대한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 기준은 여기서도 문제가 됩니다. 처음부터 다윗 왕조를 거슬러 일어난 예로보암이 세운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이백 년 사이에 아홉 왕조가 일어서고 무너지고 했는데, 그 가운데 오므리 왕조는 상당히 강성했습니다. 그래서 아시리아의 문서들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가리켜 “오므리의 집안”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므리 집안은 솔로몬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오므리는 수도를 티르차에서 사마리아로 옮겨 왔고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했습니다. 특히 친 페니키아 정책을 써서 지중해 무역을 위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는 별로 바다로 진출한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므리는 친 페니키아 정책의 일환으로 아들 아합을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교 신들에 대한 숭배가 이스라엘에 퍼지고 사마리아에 그 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지기에 이릅니다. 오므리와 아합에 대한 신명기계 역사가의 평가는 이제 설명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물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임금들이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합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위태롭게 한 임금이었습니다.엘리야는 이렇게 우상 숭배에 물든 이스라엘에 가뭄을 선포합니다. 가뭄이 시작되고 3년이 지난 다음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자 아합은 “당신이 바로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자요?”(1열왕 18,17)라고 말합니다. 심판을 선고한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버린 아합 임금과 그의 집안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카르멜 산 위에서 홀로 바알의 수많은 예언자와 대결하여, 주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모든 이들 앞에서 드러냅니다. 그는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라고 요구했습니다. 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이름대로 그는 하느님은 오직 한 분, 야훼이심을 주장한 것입니다.엘리야와 관련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은 나봇의 포도밭 사건입니다(1열왕 21장). 아합은 자신의 왕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고 싶지만 집안의 상속 재산을 파는 것은 하느님께서 금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나봇은 그 포도밭을 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임금은 하느님 아래, 율법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 여러 차례 나타났던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제벨은 이스라엘 여자가 아니기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이 폭력으로 그 포도밭을 빼앗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1열왕 21,7). 임금은 무엇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입니다.이제벨이 나봇을 죽인 다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심판을 선고하는 이 사건은,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를 차지했을 때에 나탄이 나타나 개입했던 경우와 유사합니다(2사무 11─12장 참조). 두 경우 모두 임금이 이웃 주민의 소유를 탐내고, 그를 죽이도록 편지를 보내며, 죽인 다음에는 그의 아내 또는 포도밭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때에 예언자가 나타나 임금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임금은 잘못을 뉘우칩니다. 임금과 하느님, 임금과 예언자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그 후 엘리야는 모세처럼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만난 다음 예후를 이스라엘 임금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우고, 그 밖에도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엘리사는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2열왕 2,12)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엘리야가 했던 역할을 한마디로 말해 줍니다. 일찍이 여호수아가 통수권을 받을 때에 하느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여호 1,7-8 참조) 이스라엘이 죽고 사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들이 한 분이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여 이스라엘을 위험으로 몰고 갈 때에, 이스라엘을 지킨 것은 군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병거이며 기병인 예언자들이었습니다.이어서 열왕기에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의 역사와 그 후 남 왕국 유다가 기울어간 역사를 전해 줍니다. 그 역사는 예언자들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백영민2015.04.29
![[세계 병자의 날] 그리스도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3625_1.0_titleImage_1.jpg)
[세계 병자의 날] 그리스도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고통의 길 끝에는 ‘하느님과의 일치’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극한의 고통을 거쳐 부활이라는 새로운 빛을 받았다. 그림은 ‘십자가에 못박힘’(엘그레코 작, 16세기)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는 데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고통이다. 성경은 ‘하느님은 사랑’(1요한 4,16)이라고 했다. 그러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 앞에서는 그 말이 무색하다. 사랑의 하느님이 어째서 그토록 큰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고통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병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시키는 힘과 은혜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 병자는 구세주의 구속하시는 수난을 닮음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축성되는 것이다. 원죄의 결과인 고통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곧 고통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1항). 이 가르침을 풀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고 외친 후 숨을 거두셨다. 고통이 더 이상일 수 없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신을 놓칠 수는 없다’며 하느님께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감춰져 있던 하느님과의 일치를 드러냈다. 십자가에서 절정에 달한 고통은 새로운 빛을 받고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갔다. 십자가라는 어둠과 고통을 거쳐 부활이라는 사랑의 빛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통이 끝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고통 없이는 부활도 없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은 고통에 맞닥트려 끝까지 싸워나갈 때 앞으로 다가올 부활을 앞당겨 체험하며, 고통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통과 맞서 체험하는 부활의 빛 속에서 고통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특별한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과의 싸움은 자신의 영적 성숙을 드러내라는 하느님의 초대다. 말기 환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ㆍ영적 위대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환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엄청난 사랑과 인내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에게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알려주고 큰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볼 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견디기 힘든 고통,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존재한다. 무고한 어린아이가 겪는 고통이 그렇다. 하느님께서 왜 이런 고통을 허용하시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그 고통과 함께하면서 그 고통을 선으로 승화하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다.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전하는 요한 묵시록은 우리를 이렇게 위로한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2.03
![[주교들의 사목 현장 체험 프로그램]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말씀터’](//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5167_1.0_titleImage_1.jpg)
[주교들의 사목 현장 체험 프로그램]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말씀터’본당 활성화, 희망을 보다 강우일 주교가 11일 저녁 대방동본당 3구역 5반 말씀터를 체험하고 있다. 제공=대방동본당 전국 교구 14명의 주교가 웃고, 울었다. 주교회의가 주최한 ‘주교 현장체험’에서다. 11~12일 서울 대방동본당 말씀터(소공동체)를 참관한 강우일·이기헌·조규만·정순택 주교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삶이 변화한 신자들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면 12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방조제 건설현장을 방문해 파괴된 자연을 목격한 10명의 주교들은 하루종일 어두운 표정이었다. “교무금, 헌금을 많이 봉헌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하느님께 시간을 많이 봉헌해주시길 바랍니다.”2009년 2월 서울 대방동본당에 부임한 박기주 신부는 첫 미사 강론에서 신자들에게 “하느님께 시간을 봉헌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본당 공동체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소공동체 모임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었고,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는 대부분 어르신이었다. 5년 후 대방동본당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매주 한 번씩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하는 신자가 1500여 명에 달하고, 청년 예비신자는 30명에 이른다. 신자들은 “말씀터에 참여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즐거워졌다. 말씀터를 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입을 모았다. “말씀터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하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 ‘말씀터’(반모임)가 본당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본지 1251호 2014년 2월 9일자 참조) 박 신부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고자 성경공부를 한 신자들을 모집해 봉사자를 양성했고, 2010년 4월 말씀터를 시작했다.‘말씀’의 힘은 놀라웠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하는 모임을 부담스러워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 안에서 진정한 신앙의 기쁨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2010년 137개(신자 700여 명)로 첫걸음을 뗀 말씀터는 4년 만에 209개(1479명)로 늘어났다. 구역 말씀터뿐 아니라 젊은 부부, 청년 새영세자, 유치원 학부모 말씀터 등 다양한 말씀터가 생겼다. 현재 말씀터에 참여하는 청년, 젊은 부모들이 500명에 이르고 있다. 이틀에 걸친 현장 체험은 말씀터 사례와 추진 과정 발표, 주교들의 말씀터 체험, 종합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네 명의 주교는 각각 다른 말씀터를 찾아가 신자들을 만났다. 주교들은 “신자들끼리 친교를 이루며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강우일 주교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형식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던 신자들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에 오셨다’는 성경 말씀이 실현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남성 신자 말씀터를 체험한 조규만 주교는 “교회에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작은 모임으로 만나야 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 반모임을 가질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신부님들도 있는데 신자들이 일단 말씀에 맛들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말씀터’ 중심 사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 주교는 “서울대교구 본당 대부분이 ‘복음 나누기 7단계’를 활용해 소공동체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말씀터를 모르는 후임 신부님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염려했다. 이어 “가톨릭교회는 말씀과 성체가 중심이어야 하는데 대방동본당 신자들은 성체보다는 말씀으로만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말씀터로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신자들의 친교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들의 관심이 ‘우리 공동체’, ‘우리 본당’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진정한 그리스도 공동체가 되려면 ‘우리’의 담을 넘어서서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정순택 주교는 ‘소공동체 활성화 본당’을 제안했다. 제기동ㆍ대방동본당과 같이 소공동체 모임이 잘 이뤄지고 있는 본당을 ‘소공동체 활성화 본당’으로 지정하고, 소공동체 모임에 관심 있는 사제가 사목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안이다. 정 주교는 “소공동체 정신에 공감하는 사제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수 받은 사제를 소공동체 활성화 본당에 발령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소공동체 활성화 본당이 만들어진다면 주임신부가 바뀌더라도 큰 혼란 없이 소공동체 사목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4.06.18
![[복음 이야기] (47) 가상칠언 (상)](//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3261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47) 가상칠언 (상)십자가 위 마지막 메시지는 자비와 희망 골고타 언덕의 ‘주님 무덤 성당’. 리길재 기자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형 죽음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맺은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은 ‘인간의 구원’이다. 구원은 인간의 영과 마음, 육신 모두를 궁극의 원래 자리. 즉 원죄 이전의 하느님과 하나 된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 계약인 ‘성체성사’를 통해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네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최후를 맞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 말씀을 하셨다. 이 ‘가상칠언’(架上七言)은 속죄와 구원으로서의 예수님의 죽음을 웅변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처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십자가형으로 이끈 이들의 용서를 하느님께 청하신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드러나는 말씀이다. 처형장에 있던 로마 백인대장이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로마인이던 유다인이던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예수님께서 청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무지에 대한 고백은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주랑에서 한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에서 잘 드러난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사도 3,14-17).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선포한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티모 1,13).그리스도의 용서는 교회의 삶으로 곧장 받아들여졌다. 스테파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라고 기도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주님께서 용서해 달라고 청했던 이유로 무지를 내세우신 것은, 그리고 무지가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보시는 것은, 모든 시대와 모든 이에게 위로의 원천이 된다”고 설명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함께 처형되는 오른편 강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낙원’을 뜻하는 성경 본문의 헬라어 ‘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는 원래 ‘페르시아 왕의 정원’을 뜻하는 말로 아름드리나무로 우거진 숲과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선망의 동산이었다. 이 낙원을 구약의 창세기는 ‘에덴동산’(창세 2,10)으로, 바오로 사도는 ‘셋째 하늘’(2코린 12,2)로 표현하는데 이는 새 하늘 새 땅이 열릴 때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묵시 21,2)을 뜻한다. 강도가 예수님께 이끌려 그분과 함께 바로 천국 낙원에 들어간 것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주님은 조롱 한가운데에서도 언제든지 당신께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희망과 위안을 준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간 오른편 강도에 대해 “그는 예수님의 신비를 알아차렸기에 곧바로 아버지와의 친교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마르 15,34).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모두 예수님께 9시께 십자가 위에서 큰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으셨다고 한다. 두 복음서는 예수님의 절규를 히브리어와 아람어가 섞인 그대로 전하고 다시 헬라말로 번역한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이 외침은 여느 버림받은 자의 탄신이 아닌 구원을 청하는 참된 메시아의 외침이다. 예수님의 수난사 전체를 관통하는 이 외침은 시편 22편에도 나오는 메시아 수난에 관한 모든 예언을 완성하는 주님의 기도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편 주해를 통해 이 부르짖음을 ‘새로운 기도’라며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며 동시에 몸으로서 기도하신다”고 풀이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5.04.01
![[사제 성화의 날] 양 냄새 나는 목자, 이런 사제 아닐까요](//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5499_1.0_titleImage_1.jpg)
[사제 성화의 날] 양 냄새 나는 목자, 이런 사제 아닐까요키워드로 정리한 ‘아름다운 사제, 이런 사목’ 신자들은 사제의 어떤 모습에 감동을 받을까.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소장 강우일 주교)는 최근 오늘의 사제들에게 요청되는 복음적 리더십을 발굴하기 위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사제, 이런 사목’이라는 주제로 양 냄새 나는 사제 이야기를 공모했다. 응모작 가운데 눈에 띄는 몇 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익명으로 소개한다. 신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 이야기들이 사제들에게 작은 귀감이 되면 좋겠다. 글=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그림=문채현▧ 섬김A 신부님은 언제나 웃으시며,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깍듯이 고개를 숙여 절을 하시고, 반드시 두 손으로 악수를 청하셔 때로는 미안할 정도다. 90세 이상 어르신 생일이 있는 달에 어르신에게 꽃다발을 드리는데, 어르신이 몸이 불편해 미사에 나오지 못하면 저녁에 신부님 혼자 찾아가 꽃다발을 전하고 인사를 드리는 모습에서 친자식 같은 느낌을 받는다. 대화 도중 가끔 어리광을 부리시는 듯한 모습이 친구 같기도 하고, 때론 형 같기도, 때론 동생 같기도 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본당에서 이임한 후 다른 데서 만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벌떡 일어나 90도로 절을 하시며 두 손을 꼭 잡고 오랜만이라며 앉지도 않고 계속 서 계셔서 친절이 몸에 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보좌 신부님과 형제같이 지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주임 신부님, 보좌 신부님이라 부르지 않는 것은 물론 주보에도 주임과 보좌 대신 바오로 신부, 베드로 신부라 표기하는 등 보좌 신부님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 배려 B 신부님은 몸이 아픈 이에게는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찾아가 기도해 주신다. 중풍의 불편한 몸으로 자궁암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자매가 있었다. 의식이 깨어나면서 뭔가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B 신부님이 오셔서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얼마나 놀라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B 신부님은 이렇게 그늘에 가려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다. 성탄 때는 본당 전 신자 세대에 성탄 카드를 보내신다. 그것도 1200세대 하나하나 손수 적어서 보내신다. 이 카드에 감화돼 성사를 보고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최근 설에는 모든 신자에게 세뱃돈을 주신다는 말을 들었다. 전 신자에게 세뱃돈을? 조금은 의아했다. 그 많은 신자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시나?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세배는 미사 중에 합동으로 드렸다. 미사를 마치고 내려가니 신자들이 모두 줄을 서서 세뱃돈을 받고 있다. 1000원짜리를 새 돈으로 준비해서 유아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세뱃돈을 주셨다. 생각지도 못할 놀라운 광경이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색다른 감동이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1000원이지만 그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보화를 손에 쥐는 것과 같았다.▧ 유머미사 중에 휴대폰을 울리는 것을 반가워하는 신부님은 한 분도 없을 것이다. 신부님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D 신부님은 D 신부님답게 대응하신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예뻐서 미사 중에 휴대폰이 울려도 예쁩니다. 무엇을 해도 예뻐 보입니다”고 하셨다.어떤 실수를 했을 때 야단을 쳐서 깨닫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신자는 그게 상처가 되면 그 일로 냉담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D 신부님의 말씀은 얼마나 재치 넘치는 꾸지람인가.▧ 경건한 성사 E 신부님이 부임한 후 주일 미사 참례자 수가 꾸준히 늘었다. 인근 본당 신자들도 많이 온다는 이야기다. 대영광송이나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살펴보는 신부님이 많은데, E 신부님은 신자들과 똑같이 기도하며, 너무나 정성스럽게 미사를 집전하기에 모두 미사에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인기영합식이 아니라 그날 성경 말씀에 충실하며 신심을 돋우고 영성을 함양시키는 강론을 하시기에 미사에 몰입되는 것이다. 성당에서 신자들과 같이 기도하고, 묵주기도 성월엔 성모상 앞에 모여 기도드리는 신자들 옆에서 항상 같이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신다. 장례 미사가 끝나면 상주들과 함께 서서 마치 상주인 양 애도하며, 예를 최대로 갖춰 끝까지 배웅하시는 모습에서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또 성당 현관 옆에 상담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근무하며, 누구나 드나들도록 배려하셨다. ▧ 가난F 신부님은 20년도 더 된 낡은 소형차를 타고 다니며, 신자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라고 하면 한사코 사양한다. 사제관 식복사는 일정 시간만 일하게 하고 직접 빨래하고 밥을 지어 드신다. 손님을 모시는 단골집이 오래된 작은 중국집일 만큼 소박하다.사제관이 너무 넓고 호화스럽다면서 칸막이 공사를 해 일부는 손님과 신학생들이 사용하도록 하셨다. 신부님 침실은 책장과 겨우 누울 공간 정도다. 겨울에는 난방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를 정도로 춥게 생활하신다. 사목회 등 단체 회식을 할 때는 인근 호프집을 가장 선호하며 비싼 곳은 절대 사양하시기에 신자들도 저절로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봉성체와 병자성사 때 수고비를 절대 받지 않고, 명절 때 과일 등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놨다가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주시는 모습에서 가난한 이웃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볼 수 있다.▧ 말보다 실천 C신부님은 본당에 부임한 후 청결을 강조하며 손수 정리정돈을 많이 하셨다. 추석 다음 날 성당 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대성당에 불이 켜져 있어 들어가 봤더니, 모두가 추석 명절을 지내는 동안 C 신부님 혼자 밀대를 밀며, 대청소하고 계셨다. 또 성당 관리인이 병원에 입원하게 돼 사목회에서 교대로 성당 경비를 서겠다고 자청했으나 C 신부님은 자신이 대신하겠다면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저녁 10시경에 손수 문단속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문을 열어주기를 보름 동안 하셨다. 평화신문201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