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313. 기도가 무슨 소용?](//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670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313. 기도가 무슨 소용?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사석에서 대화 중 요즈음은 종교가 필요 없다. 특히 기도가 무슨 소용이냐는 힐난을 들었습니다. 기도해도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이런 비난에 대하여 영성심리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요?답: 아무리 기도를 해도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은 자주 듣는 말입니다. 또 일부 사이비 종교들로 인하여 종교가 사람들의 일상과 가정을 파괴하고 마약 같은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서 코끼리를 다 안다는 것처럼 무지한 짓입니다. 우선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더라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진화 과정의 흔적 즉, 파충류 같은 지층, 포유류의 지층, 영장류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같은 마음으로 거룩하고 넓은 마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마음이 우리 안에 혼재해 있어서 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건강 관리를 잘못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듯이 마음의 병이 생기게 됩니다.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짐승만도 못한 놈, 사람 구실 못하는 놈이라고 욕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그런 지층으로 되어 있음에 선지식이 있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욕을 먹지 않으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하느님의 눈이 나를 보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을 절제하고 다듬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벌레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사람 구실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마르크스가 말한 아편의 기능 때문입니다. 아편은 아주 통증이 심한 사람에게는 한시적으로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아편처럼 부작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에 잠시의 휴식을 주는 기능을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믿음을 갖고 희망을 품으면 찌들어가는 마음,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오랫동안 군부 독재로 인하여 피폐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은 그래도 행복지수가 높은데 그 이유는 국민들의 신심, 불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병들어가지 않는 것은 불교 신심이 준 선물인 것입니다. 종교를 단순히 아편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산 증거입니다. 또한 미얀마 국민들은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나누고 서로 위해주고 서로 배려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곳 교민들 이야기에 의하면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누가 탈이 나면 그 사람이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주고, 음식을 먹을 때는 낯선 이에게도 권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복음적 나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계 최빈곤국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미얀마 국민들은 종교적 심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과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가지게 합니다. 진정한 종교적 심성이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전 안에서만 사용되는 종교적인 책이 아니라 바람직한 이상적 사회를 구현하는 방법을 알려준 지침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소득 수준과 경제지표로 선진국 후진국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복음지수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5.10.07

평화방송TV와 함께...신앙생활에 활력을! 녹음이 우거진 6월, 평화방송TV(SKY 평화 174)가 신앙에 활력을 더하는 새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전삼용 신부의 교리를 위한 교리전삼용(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신부가 성경과 예화를 바탕으로 가톨릭 신앙의 근본을 흥미롭게 전한다.▶방송 일시: 월요일 오전 8시ㆍ오후 8시, 주일 오후 10시장하다 순교자, 신앙의 용사여한국 교회가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중 40여 명의 신앙과 행적을 돌아보며 순교 영성을 되새긴다. ▶방송 일시: 월요일 오전 9시ㆍ오후 10시, 토요일 오후 4시파파 프란치스코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든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엄하게 교회와 신자의 소명을 알리는 그의 모습을 전한다. ▶방송 일시: 월요일 오후 7시 20분, 수요일 오후 3시 20분, 주일 오후 11시마음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정연정(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주임)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반 알현과 삼종 기도, 산타 마르타 숙소 미사 강론 속 메시지를 신학적으로 풀어낸다. ▶방송 일시: 목요일 오전 9시ㆍ오후 10시, 토요일 오전 7시 20분이콘을 통해 본 전례주년과 성인 축일동방 교회에서 발달한 이콘은 초기 교회의 영성을 잘 품고 있다. 장긍선(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신부가 이콘을 통해 가톨릭 주요 전례력과 성인 이야기를 전한다. ▶방송 일시: 토요일 오후 7시 20분, 주일 오전 7시 20분PBC 현장 중계교회 안에서 열리는 강연회와 심포지엄 등 유익한 강좌를 시청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방송 일시: 목요일 오전 8시, 금요일 자정, 월요일 오후 4시나의 삶, 나의 노래 생활성가 가수를 초대해 작곡 과정과 그 안에서 느끼는 신앙 체험에 귀를 기울여 본다. ▶방송 일시: 월요일 낮 12시 30분, 수요일 오후 9시 10분, 주일 오전 10시 5분이 밖에도 현대 사회 이슈를 가톨릭 신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살펴보는 ‘교회와 세상’, 가톨릭 의료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주 특별한 만남-생명 그리고 사랑’, 전국 저명 사제와 수도자에게 신앙의 지혜를 청해 듣는 ‘신앙강좌-길’, 영국 BBC 인기 드라마 ‘명탐정 브라운 신부’를 7월부터 차례로 방영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문의: 02-2270-2609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문채현2015.06.17
![[성경 속 도시] <4>아브람이 나그네살이 한 땅 이집트](//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1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아브람이 나그네살이 한 땅 이집트 이스라엘인이 탈출한 곳, 아기 예수의 피신처 고대 문명 발상지로 비옥한 땅을 가진 이집트는 가뭄과 기근이 닥칠 때마다 유목민들의 피난처가 됐다. 사진은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 때 건립한 필레 대신전 모습. 사진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아브람 일행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스켐에서 길을 떠나 차츰차츰 헤브론 남쪽지역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고대 유목민들이 그랬듯이 반유목민으로 살아가던 아브람도 가뭄이 닥치자 비옥한 땅 이집트로 갔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그네살이를 시작했다. 창세기는 아브람이 파라오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전한다. 아브람은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내 사라이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과연 사라이를 본 파라오는 그녀에게 반했다. 그래서 그는 아브람에게 잘해 줬다. 아브람은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됐다"(창세 12,9-20). 이집트에서 아브람은 다시 발길을 돌려 네겝으로 돌아온 다음 북쪽으로 향했고, 그 전에 자신이 천막을 쳤던 베델 근처에 이르렀다(창세 13,4). 여기서 아브람과 롯은 재산 문제로 더는 한 지역에 같이 살 수 없게 돼 헤어지기로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있다. 고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이집트는 구세사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고대에 유복했던 이 땅은 굶주린 이스라엘 성조들이 몸 붙여 살던 곳이다. 또한 이집트는 패전한 이스라엘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예레 42장 참조). 더불어 이곳은 아기 예수님께서 피신한 곳이기도 하다.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이집트는 히브리인들을 억압했던 곳이고,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탈출한 곳이다(탈출 1―13장).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고역과 노예 생활에서 탈출할 때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건과 그들의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해방절 축제를 대대로 지내고 있다(탈출 12,1-14). 신약에서는 성령강림 때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이집트인도 포함돼 있었다고 기술한다.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사도 2,10). 2세기 말엽 이집트교회는 이미 굳건한 조직을 갖춘 모습으로 역사에 나타나며 이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오스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이집트는 642년 이후 아랍의 지배를, 1517년 이후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그동안 혹독한 박해를 받았으며 3000여 개의 교회가 파괴됐다. 신앙의 자유는 1882년부터 비로소 보장됐다. 요셉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난하는(마태 2,14-15 참조) 부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아기 예수의 가족이 사막과 광야를 가로질러서 이집트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어느 날 종려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때마침 탐스럽게 익은 열매가 달려 있었다. 마리아가 갈증이 나서 힘들어하자 아기 예수는 종려나무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나무는 허리를 구부려 달콤한 열매로 가족의 갈증을 씻어줬다. 아기 예수는 고마운 종려나무에게 상을 줬다. 천사를 불러 나뭇가지 하나를 에덴동산에 옮겨 심게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바로 그 종려나무의 가지를 하나씩 손에 들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대부터 종려나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식물이었다. 종려나무는 '왕이신 하느님'을 기념하는 초막절에도 사용됐고(느헤 8,15), 예수님께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던 것은 비슷한 상징성을 띤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cpbc2014.01.21
![[2013 결산-출판] 프란치스코 교황에 주목, 성경,교리 열공!](//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8213_1.1_titleImage_1.jpg)
[2013 결산-출판] 프란치스코 교황에 주목, 성경,교리 열공!새 교황 관련 책자 봇물, 신학 대가들의 예수 관련 책자도 줄이어 2013년 국내 가톨릭 출판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 책 출간이 잇따랐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교황 프란치스코」(성바오로)는 교황 생애와 더불어 교황 앞에 놓인 가톨릭교회 문제를 살펴봤고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하양인)는 교황 행보를 주목하며 그의 강론을 소개했다. 「세상 끝에서 온 교황 프란치스코」(생활성서)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을 지낸 마리오 호르헤 베르골료 추기경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추기경 시절 그의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천국과 지상」(율리시즈) 역시 교황의 추기경 시절 대담집으로 종교 문제부터 다양한 사회 문제까지 교황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예수회에서는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을 축하하며 「예수회 역사」(이냐시오영성연구소)를 발간했고, 작은형제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탄생을 기념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생애를 담은 「당신을 위한 성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출판사)를 펴냈다. 올 한 해 신자들 사이에선 신앙의 해를 선포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권고대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껍고 딱딱한 교리서와 씨름하는 신자들을 위해 대구관구 대신학원장 김정우 신부가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해설」 번역 개정판을 선보였고, 서울대교구 김귀웅 신부는 1000쪽이 넘는 교리서를 60쪽으로 요약한 「핵심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펴냈다. 신앙의 근본을 돌아본 신앙의 해를 보내며 책 중의 책인 성경을 빠트릴 수 없는 일. 다양한 성경 해설서들이 신자들 신앙생활을 도왔다. 김혜윤(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수녀는 「예언서」(생활성서)를 발간, 10년에 걸쳐 펴낸 '쉽게 풀어쓴 구약성경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고 수원가톨릭대 성경연구회 역시 '요한복음 맛들이기' 편을 끝으로 「소공동체를 위한 성경공부」 시리즈 4복음서 맛들이기를 완결했다. 성경입문서로는 「안셀름 그륀의 성경 이야기」(분도출판사)와 「바이블 가이드」(생활성서) 등이 나왔고, 복음말씀 해설과 묵상서로는 「하느님 말씀」(바오로딸), 「주일ㆍ대축일 성경 묵상」(나이테미디어), 신은근 신부의 「만남」(바오로딸), 전원 신부의 「말씀으로 아침을 열다」, 「말씀의 빛 속을 걷다」 (가톨릭출판사)등이 출간됐다. 신학 대가들의 예수에 관한 책이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나자렛 예수」 3권(유년기, 바오로딸)이 발간돼 「나자렛 예수」 시리즈가 완결됐고, 신약학의 대가 클라우스 베르거 교수의 「예수」(성바오로)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의 「예수 그리스도」(수원가톨릭대출판부)가 국내에 소개됐다. 교계출판사 성서와함께, 생활성서사는 각각 창립 40돌과 30돌이라는 경사를 맞았고, 지난 10월에는 최인호(베드로) 소설가가 세상을 떠나 슬픔을 남겼다. 한편 6개 교계 출판사 협의체인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해 일반인에게도 가톨릭 서적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2.17
![[일치 주간] 형제 교회 찾아가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아서](//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0009_1.0_titleImage_1.jpg)
[일치 주간] 형제 교회 찾아가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아서형제 교회에선 무릎 꿇고 양형 영성체 하네요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는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이혼 문제 때문에 교황청과 대립하다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성공회를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공회는 유럽 종교개혁 시절 영국에서 시작된 갈라진 교회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을 맞아 8일 대한성공회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았다. 서울주교좌성당 감사성찬례오전 7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지하 성당인 요한 세례자 성당에서 감사성찬례 시작을 알리는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주교좌성당은 광화문 세종대로 빌딩 숲 안쪽 화려한 도시 분위기에서 한 발짝 벗어나 덕수궁 돌담길처럼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이날 감사성찬례에는 신자 20여 명이 참례했다. 출근 전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부지런한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50~70대가 대부분이다.입당 성가와 함께 본당 보좌 이진식 신부가 붉은색 제의를 입고 입당했다. 가톨릭 교회력으로는 주님 공현 후 주간은 백색 제의를 입는데 적색 제의를 입어 의아해 하고 있던 차에 안내해 주던 정창진(요한, 70) 종신부제가 “오늘은 성공회 루치아노 성인 축일이어서 붉은색을 입었다”고 귀띔했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결별하기 이전 교회력만을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력을 개정했다. 감사성찬례는 우리 미사처럼 말씀 전례와 설교(강론), 성찬 전례로 순으로 이어졌다. 성공회는 가톨릭 교회가 일곱 성사를 거행하고 지키는 것과 달리 세례와 성체성사만 성사로 인정한다. 나머지 견진ㆍ고해ㆍ성품ㆍ혼인ㆍ병자성사는 성사가 아닌 ‘예식’으로 간주한다. 성공회는 또 가톨릭과 달리 ‘양형 영성체’를 의무적으로 한다. 성체를 모시러 제단 앞에 나아간 신자들은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껏 양형 영성체를 했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지성소 앞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입으로 영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전례 간소화로 인해 가톨릭 교회 에선 옛 예식이 보기 힘들어졌지만, 성공회에선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성공회는 공동번역 「성서」를 전례와 일상에서 사용한다. 공동번역 성경은 한국 교회 일치 운동의 기념비적 첫 작업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함께 번역해 1977년에 출간한 성서다. 이 공동번역 성서는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일부 개신교단에서 사용해 왔다. 그러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경 본문에 충실한 번역본을 2005년 간행해 한국 가톨릭 공용 「성경」으로 채택 사용하고 있다. 일치 운동의 금자탑인 공동 번역 성서를 성공회에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층 친밀하게 다가왔다. 서울주교좌성당과 그 주변감사 성찬례를 마치고 유시경(대한성공회 교무원 총무국장) 신부와 정 부제의 안내로 성당과 주변을 둘러봤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봉헌된 서울주교좌성당은 내년이면 90주년을 맞는다. 원래는 작은 규모의 성당이었으나 1993년 영국에서 대성당 설계도 원본을 찾게 돼 확장 공사에 들어가 1996년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이 성당은 현재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이다. 서울주교좌성당은 한옥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한 양식으로 건축미가 빼어날 뿐 아니라 ‘신앙의 토착화’를 중시하는 정신을 짙게 풍기고 있다. 주교관은 경운궁(덕수궁)의 소학원으로 쓰던 건물을 1920년에 매입해 그대로 옮겨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성당 제대 뒤에는 그리스도 모자이크화가 있다. 그리스도 모자이크 옆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라틴어 글귀(EGO SUM LUX MUNDI)가 있다. 아래에는 스테파노와 요한 사도, 성모 마리아, 이사야, 니콜라오 성화 모자이크가 있다.지하 요한 세례자 성당 중앙 통로 바닥에는 이 성당 건축을 추진했던 성공회 3대 교구장 조마가(마크 트롤로프, 재임 1911~1930) 주교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 성당 뒷마당에는 6ㆍ25전쟁 순교자 기념 조형물이 있다. 성공회 성직자 수도자들도 인민군이 자행한 ‘죽음의 행진’에서 순교자를 냈다는 점에서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졌다.주교관 집무실에서 만난 서울교구장 김근상 주교는 “천주교 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지난해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를 창립했고, 곧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아카데미가 열린다”며 “천주교와 성공회가 세례에 이어 성찬례까지는 뜨겁게 안을 수 있도록 천주교가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 신부도 “일본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는 주님의 기도를 같은 기도문으로 바치고 성경도 같은 것을 쓰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며 “그리스도 교회의 큰집인 가톨릭 교회가 일치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대한성공회는?대한성공회는 영국 에드워드 벤슨 대주교가 1889년 코프(1843~1921, 한국명 고요한) 신부를 한국교구장 주교로 서품하면서 시작됐다. 코프 주교는 이듬해 선교사 랜디스와 함께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뎠다.대한성공회는 우리나라 개화기에 신교육 보급을 위해 전국 각지에 학교와 병원, 보육원 등을 설립했다. 강화읍과 진천, 청주 등에는 우리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성당이 많이 남아 있다. 선교 초창기 인쇄소를 설립해 한글 성경 번역작업을 시작했으며, YMCA 창설에 공헌했다.대한성공회는 1990년 9월에는 한국 선교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92년 한국 관구로 승격, 이듬해인 1993년 초대 관구장 주교로 김성수 주교 취임했다.서울ㆍ대전ㆍ부산교구 등 3개 교구에 130여 개 성당(교회)이 있으며, 전ㆍ현직 주교 수는 8명, 사제는 220명이며, 신자 수는 5만 5000여 명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2015.01.14
![[성경속 궁금증] 84. 성경에서 나팔은 어떤 의미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8/rc/470831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4. 성경에서 나팔은 어떤 의미인가?전쟁 승리 선포나 예배 시작 알리는 신호… 신약성경에서는 부활을 상징적으로 알려'미디안족의 야영지에 불을 지른 기드온', 제르미 르 필뢰르, 17세기경, 유화, 루브르박물관, 파리. 나팔은 고대 악기 중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그래서 무엇을 선포하거나 신호를 주는 목적으로 나팔을 자주 사용했다. 나팔은 공기관의 길이가 짧아 소리 낼 수 있는 음정 수가 매우 제한돼 있다. 나팔은 산양이나 소의 활 모양으로 굽은 뿔로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2)고 하셨다. 보통 유다인들은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갈 때 입구에 모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 자선을 베풀었다.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사도 3,2-3). 유다인들은 자비를 베풀 때 나팔을 불었다. 당시 이 행위는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지만, 회당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예배의식을 방해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한 관습이 시행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대개는 전령들이 어떤 일을 공개적으로 알릴 때나 배우 혹은 투사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갈 때 나팔을 불었다. 그들이 들어가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자선을 베풀 때 나팔을 불지 말라는 표현은 비유로 이해해야 한다. 안식일에 회당지기가 지붕에 올라가 안식일임을 알릴 때도 나팔을 여섯 번 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나팔을 분다는 말은 단순히 허식과 과장을 동반한 자선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성경에서는 나팔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나팔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주로 전쟁 때였다. 전쟁을 소집하거나 공격의 개시, 마침을 알리기 위해 사용했다. 혹은 적들의 공격을 경고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전쟁의 승리를 선포할 때도 사용했다. 이처럼 나팔소리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유다인들은 나팔로 예배 시작 시각을 알렸고, 이를 자신들의 찬양에 반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팔이 예배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경우는 속죄일이었다. 옛날에는 나팔에 속죄의 기능과 하느님을 달래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은 시나이산에 오를 수 있었다(탈출 19,13). 신약성경에서 나팔은 부활을 상징적으로 알린다. 그래서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리면 죽은 자들은 부활해서 영원히 살게 된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52-53).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최종적 승리를 거두고 확고히 세워진 당신 왕국에 가시적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를 '나팔소리'와 함께 묘사했다.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소리와 하느님의 나팔소리가 들릴 때, 주님이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1테살 4,16).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저 예수께서는 여러분이 본 승천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오"(사도 1,11).cpbc2013.08.27
![[신앙단상] 까마귀가 나를 살리다](//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3678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까마귀가 나를 살리다신상옥 안드레아(생활성가 가수) 주중 나의 일과 중 하나가 아주 자그마한 인터넷 방송(생활성가 전문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20~40여 명이 듣는다. 방송 일이 아주 재미있고 보람되긴 하지만, 매주 수요일 오후 3~5시 진행 시간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또 올해까지 14개월가량 진행하다 보니 자료가 고갈되는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직접 나서서 기타 연주를 곁들여가며 라이브로 노래한다.듣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응답의 글도 없어서 어떨 때엔 허공에 대고 혼자 독백하는 느낌마저 든다. 늘 사람들 앞에서 환호받으며 “좋아요” “멋져요”라는 단어에 익숙한 나에게 응답 없는 메아리는 조금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그러다 바로 내게 주님이 준 선물 구약성경에서 ‘엘리야와 까마귀’ 이야기가 나오는 열왕기가 나를 다시 한 번 신앙의 즐거운 경지로 이끌었다.“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는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1열왕 17,2-7).이것은 즉석 독백 뮤지컬이다.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주님께 바치는 즉석 신앙 노래 고백인 셈이다. 기타를 치면서 성경을 읽다가 흥이 나면 성경 일부를 주님께 읽어 드리고, 나의 신앙고백을 노래한다.“나는 내 마음대로 살고, 주님도 주님 마음대로 산다. 내 마음대로 주님 마음대로, 난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주님은 주님 있고 싶은 곳에.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있고, 주님 가고 싶은 곳에 주님 있네. 얼쑤얼쑤~” 둘이서 주고받다가 이어서 다른 고백이 이어지곤 한다.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성실하게 잘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정과 너그러운 배려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각자는 잘 사는데, 왜 함께 잘 살지는 못할까. 참 소중한 그리스도인 가치인데 더불어 주님과 손잡고 형제자매를 아껴주면서 말이다.기타 코드에 A#(에이샵)과 Bb(비플랫) 이 있다. 글자는 다르지만 음은 기본적으로 같다. 무엇을 의미할까. 곰곰이 신앙의 마음에서 바라다본다. 좀 더 노력하고 기다려주는 것 아닐까. A#은 Bb을 향하여, Bb은 A#을 향하여 서로 같은 음이기에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음악이기에 훈련하고, 회개하여 노래하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것 아닐까. 주님이 하실 수 있도록 인간이 결정하지 말고, 엘리야를 먹여 살린 까마귀가 되어주는 것이 필요하다.서로 덮어주고 이해해주고, 신앙의 길을 먼저 간 은혜받고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우선 주님의 까마귀가 돼줬으면 좋겠다. 나의 사명은 ‘생활성가’다.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주님께 고백하고, 전례 안에서 미사 안에 울려 퍼지는 한국 가톨릭 신앙인들의 간절한 고백의 말을 전하는 일이다. 내 작은 방송 안에서 우리 사랑 예수님과 성령을 모시고, 모두가 신앙으로 거듭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주님 저 사랑하시죠? 주님 저 아직도 늦지 않았죠? 주님 제 아픔 함께하시죠? 주님 제 가족을 지켜주세요!” cpbc2015.02.03
![[성경 속 도시]<6>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한 브니엘](//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7087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한 브니엘주님 축복에 대한 야곱의 간절함 서려 야곱은 가족과 함께 야뽁강을 건넌다. 야곱은 한 '사람'과 씨름을 했고, 그는 야곱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줬다. '빈의 창세기'로 불리는 필사본의 세밀화.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형 에사우를 만나기 위해 야뽁 나루를 건넜다. 개울을 건넌 다음 자기가 가진 모든 것도 건너보냈다. 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결국,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치게 됐다. 그분은 동이 밝아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그리고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야곱은 '내가 여기서 하느님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그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떠올랐다"(창세 32,23-33 참조).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는 장면은 성경에서 유명한 대목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아침이 되자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고 떠난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느님께서 대신 싸우신다, 하느님께서 구해주신다' 라는 뜻이다. 야곱은 자신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목숨을 건졌다고 해서 '브니엘'이라 부르게 됐다. 브니엘은 '하느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브니엘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프누엘(판관 8,8)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같은 지역으로 보고 있다. 브니엘은 요르단 동쪽 야뽁 강의 상류에 위치한 성읍이다. 야곱이 건넌 야뽁 강은 오늘날도 강폭이 아주 좁다. 또한 브니엘은 구약의 인물인 기드온과도 연관이 깊은 곳이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골짜기에서 미디안 사람들을 쳐부순 후에 그들을 뒤쫓았다. 그때 기드온은 배고픈 부하들을 위해 수콧과 프누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청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기에서 프누엘로 올라가 같은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프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수콧 사람들의 대답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프누엘 사람들에게도 '내가 무사히 돌아올 때에 이 탑을 헐어 버리겠소'하고 말하였다"(판관 8,8-9). 결국 기드온은 자신의 말대로 브니엘의 탑을 헐어버리고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이후 2세기 동안에 걸쳐 브니엘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폐허가 된 것 같다. 그러다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스켐을 세우고 거기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나와 프누엘을 세웠다(1열왕 12,25). 성경에서는 분열 왕국 시대 북이스라엘의 예로보암이 브니엘을 건설했다고 언급한다. 그것은 예로보암이 브니엘을 확장하고 요새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브니엘 지역은 토지가 매우 비옥하며, 농산물도 많이 나고, 목축업도 성행했다. 오늘날에도 야뽁 강을 따라 북쪽 지역에는 농사를 짓고 있다.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을 한 브니엘. 야곱처럼 하느님의 축복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도 성경 전체를 통틀어 찾기 어렵다. 야곱은 전적으로 하느님을 신뢰했고 하느님의 축복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원했다. 하느님의 사람과 싸움을 하면서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를 놓지 않겠다는 야곱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수석비서)cpbc2014.02.18
![[성경 속 도시]<14> 불신과 원망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산 곳, 카데스](//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548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불신과 원망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산 곳, 카데스불신의 대가는 40년간의 광야생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대한 불신의 결과로 카데스에서 40년간 광야생활을 해야만 했다. 사진은 카데스 지역의 오아시스. 출처=「성경 역사 지도」 카데스는 시나이산 북쪽에 위치해 있고, 브에르 세바 남서쪽으로 약 80㎞ 떨어진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에 있는 바네아 성읍이다. 이 지역에 네 개의 샘물이 있는데 그중에 '아인 케데이스'를 '카데스 바네아'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고대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카데스'란 이름은 '신성한 곳'이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이교도의 신성한 곳을 의미한다. 카데스는 네겝 시내(이스라엘의 남방지역) 경계에 있는 교차점으로 브에르 세바에서 시작해 세 갈래로 나뉘는데, 서쪽은 지중해로 이어지고, 가운데 길은 남쪽으로 이집트까지 계속되며, 동쪽 길은 남쪽으로 돌아 아카바만으로 이어져 있다. 현재 카데스는 이집트와의 경계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곳에서 약 40년간 체류했다. 이곳은 연중 물이 끊이지 않고 대추야자가 무성하고 목초가 풍부하다. 기원전 10세기부터 남왕국 유다는 이곳을 남방국경의 거점으로서 요새화했다. 그 폐허가 지금도 남아 있다. 1914년 최초의 탐사 이래 이곳에서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발굴됐다. 카데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자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카데스로 돌아왔다.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민수 13,25-26). 40일간 정탐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곳에 살고있는 민족이 너무 강해서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한다며 전진을 말렸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하느님의 능력과 보호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래서 모세와 지도부를 심하게 성토하면서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곳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온 공동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주님께서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우리는 칼에 맞아 쓰러지고, 우리 아내와 어린 것들은 노획물이 되게 하시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그러면서 서로 '우두머리를 하나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고 말하였다"(민수 14,2-4).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과 원망에 진노하셔서 그들이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며 고생할 것이라 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시체가 되어 이 광야에서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자식들은, 너희가 모두 주검으로 이 광야에 누울 때까지, 너희가 배신한 값을 지고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칠 것이다"(민수 14,32-33). 결국 20세 이하와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한 탈출기 1세대는 불신으로 모두 광야에서 죽고, 20세 이하 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와 여호수아와 칼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됐다. 이처럼 카데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에 대한 불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장소이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cpbc2014.04.16
![[완전한 사랑] (26)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5/12/rc/609270_1.0_titleImage_1.jpg)
[완전한 사랑] (26)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 “수녀님~ 저도 같이 있으면 안 돼요?”4일 서울 정릉로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원. 민지(가명, 18세)가 강명옥 수녀의 수도복 자락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안 돼, 민지야. 지금 수업 시간이잖아. 수녀님은 손님이랑 이야기 나눠야 하니까 올라가 있어. 알았지?”“치이….”입을 삐죽 내민 민지가 인사를 꾸벅 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낯선 손님의 방문에 엄마 옆에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민지는 수녀에게 투정을 부렸다.“아이고, 죄송해요. 내려오다가 민지를 만났는데 같이 있고 싶어 해서 1층까지 함께 왔어요.”강명옥 수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계단 쪽을 한번 쳐다봤다. 아이를 애써 떨어뜨려 놓고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수녀원 3층의 특별한 학교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원에는 7명의 청소년이 산다. 수녀원 3층이 아이들의 학교이자 기숙사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이 사실은 저마다 마음에 상처를 하나씩 간직하고 있단다. 말 못할 사정으로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나오게 된 청소년이다.“밖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위기 청소년’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이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위기 상황은 어른들이 만든 건데 왜 아이들이 위기 청소년이라고 불려야겠어요?”강명옥 수녀는 가정과 학교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자신에게로 돌리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수녀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아이들의 정서 안정과 자존감을 심어주는 교육이다.수녀회가 운영하는 자오나학교(교장 강명옥 수녀)는 학교 밖 청소년, 특히 미혼모 청소년을 위해 지난해 10월 수녀회가 설립한 기숙형 대안학교다. ‘자오나’는 ‘자캐오가 오른 나무’를 줄인 것으로, 성경 속에 등장하는 키 작은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 예수님을 만난 일화에서 따왔다.중ㆍ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은 수녀원에서 함께 먹고 자며 교육을 받는다. 책 속의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한 명의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이다. 강 수녀는 “비인가 학교여서 정식 졸업장을 주지는 못하지만,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이들 각자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춰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우리한테 왜 잘해줘요?”각자 다른 환경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한곳에 모이다 보니 처음에는 서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서나 보육시설을 통해서 이곳에 오게 된 아이들은 수녀들에게 반항도 많이 했다.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지난 8월 자오나학교에 들어온 정윤(가명, 18)이도 수녀들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복잡한 가정사를 겪다 보니 어른을 잘 믿지 못했어요. 천주교 신자도 아니어서 수녀님들과 함께 있는 게 어색했죠.”하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믿어주고 보살펴주는 수녀들의 모습에 정윤이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됐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자오나학교의 청소년 7명 중 2명은 아이를 키운다. 엄마가 수업 중일 때는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를 대신 봐준다. 기숙사의 군기반장은 사감 김지연 수녀. 공동체에 질서가 유지되도록 가끔은 악역도 담당한다.“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게 저희의 역할이잖아요. 잔소리하지 않아도 설거지와 청소, 육아를 제대로 해낼 수 있게 가르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가끔 소리도 지르고 혼도 낸답니다.” 김 수녀가 말했다.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웃고 지낼 수만은 없다. 때로는 울고, 떼쓰고, 화도 내며 아이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수녀들은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애정을 쏟는다.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수녀들은 든든한 울타리다.수녀들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거요? 단 한 가지예요. 바로 ‘사랑’입니다.” 김유리 기자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스페인의 까르멘 살레스(1848~1911, 사진) 성녀가 1892년 설립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방 빅에서 태어난 성녀는 산업혁명과 내란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성녀는 가난과 전염병으로 교육 시스템이 붕괴된 시기에 교육사도직에 투신하고자 1892년 원죄 없으신 마리아를 교육 모델로 수녀회를 세웠다.성녀는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며 일생 동안 13개의 학교를 세우고 1911년 7월 25일 선종했다. “교육은 사랑”이라고 말한 성녀의 가르침에 따라 수녀회는 ‘교육’뿐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우리나라에는 1984년 진출해 유치원과 여대생 기숙사를 운영해 왔으며, 2012년 까르멘 수녀의 시성을 계기로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심화시키기 위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사도직에 뛰어들었다. 청소년 중에서도 특히 미혼모 청소년을 이 시대 가장 소외된 이들로 식별하고, 지난해 10월 미혼모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개교해 운영하고 있다.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선교 수녀회는 국내에서 수녀 2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17개국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글ㆍ사진=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평화신문2015.12.15
![[성경속 궁금증] 85.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어떤 의미일까?](//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49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5.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어떤 의미일까?행복과 풍요 상징…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피에르 미냐르, '포도 송이를 들고 있는 성모',17세기, 유화, 파리 루브르박물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포도나무는 '생명의 풀'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수메르 지역에서 '생명'을 나타내는 문자는 원래 포도잎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많이 등장하는 포도밭과 포도나무는 일반적으로 '선택된 백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느님이 내리는 '행복과 풍요'를 상징하고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을 가리키기도 했다. 구약 성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포도에 비유하기도 했다. 구약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비유로도 많이 사용됐다(시편 80,8-13). 그래서 포도나무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끌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다. 이집트를 탈출해서 유목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상적 정착생활을 '모든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약속의 땅을 대표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포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경제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신명 8,8). 이스라엘의 멸망을 포도나무가 밟히고 파괴되는 것으로 비유했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군대 징병이 면제되기도 했다. 그리고 포도밭에서는 포도 이외의 다른 식물을 가꿀 수 없었다(신명 22,9). 6년 동안 수확한 포도나무는 그 다음 해에는 놀려 쉬게 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너희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먹게 하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 너희 포도밭과 올리브밭도 그렇게 해야 한다"(탈출 23,11). 바빌론 유배 기간에도 땅이 완전히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남겨둬 포도밭을 가꾸게 했다.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2열왕 25,12). 포도는 가나안 땅에서 밀과 보리, 무화과와 석류, 올리브나무와 대추야자와 함께 축복받은 7가지 식물 중 하나였다(신명 8,7-10 참조). 따라서 포도나무는 신선한 과실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포도나무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가꾸어 왔고 재산으로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1열왕 21,1-16 참조) 포도나무는 포도주를 만드는 것 이외에 유다인들에게 철분과 필수 무기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포도는 '하느님 자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할 때 남김없이 따지 않고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줍지 못하도록 했다. 가지에 남은 포도와 땅에 떨어진 포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몸붙여 사는 외국인 몫이 되도록 했다. "너희 포도를 남김없이 따 들여서는 안 되고,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서도 안 된다. 그것들을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하여 남겨 두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10 참조).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1-2). cpbc2013.09.03
![[성경속 궁금증] 89.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왜 매매춘에 비유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8431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9.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왜 매매춘에 비유했을까?우상숭배는 배우자 배신하고 간음하는 것과 같아야콥 빌렘스 데 베트 1세,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솔로몬', 1640년께, 유화, 릴미술관, 프랑스. 성경에서 하느님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시고 광야 생활 동안 줄곧 함께 하셨으며 가나안 땅을 향해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원주민들의 문화에 종교적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 가운데 농경사회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 의식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퇴폐적 종교 의식에 강력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가나안 종교의 형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이 퇴폐적인 의식을 금지한다. "이스라엘의 딸은 신전 창녀가 되어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의 아들은 신전 남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창녀의 해웃값이나 남창의 몸값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에 어떤 서원 제물로도 가져와서는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둘 다 역겨워하신다"(신명 23,18-19). 특히 사람들이 다른 잡신들을 섬기느라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을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는 말씀이 뒤따른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신들 가운데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된다"(신명 6,13-1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을 적당히 사랑해서도 안 된다. 온 마음과 온 뜻과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사실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완전히 버리고 잊은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이교도의 신을 숭배하는 꼴이 돼버려 종교적 혼합주의가 됐다. 실제로 가나안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신앙적인 문제는 종교 혼합주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때에 따라서 하느님도 믿고 바알 신도 믿는 태도가 문제였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는 이러한 우상숭배적 의식을 강력하게 단죄하고 나선다. "나는 바알들의 축제일 때문에 그 여자를 벌하리라. 그 여자는 바알들에게 분향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로 단장한 채 애인들을 쫓아갔다. 그러면서 나를 잊어버렸다. 주님의 말씀이다"(호세 2,15 등). 이처럼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행위를 곧잘 창녀의 매매춘에 비유해서 사용했다. 곧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위, 배우자를 배신하고 간음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물러 있을 때, 백성이 모압의 여자들과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 여자들이 저희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에 백성을 부르자, 백성은 거기에서 함께 먹으며 그들의 신들에게 경배하였다"(민수 25,1-2). cpbc2013.10.15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15>](//cpbc.co.kr/CMS/newspaper/2015/03/rc/560907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땅을 나누는 일을 마쳤다”(여호 19,51)유혹의 산에서 내려다본 예리코 전경. 이번에는 좀 다른 주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기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고학이고 역사학이고 나는 관심 없다, 그저 성경에 나오는 말씀만 그대로 믿겠다 하신다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기와 판관기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면 무엇을 믿으시겠습니까? 여호수아기는 일사불란합니다. 열두 지파는 하나로 똘똘 뭉쳐 가나안 전체를 착착 정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판관기는 다릅니다. 지파들이 각각 산발적으로 조금씩 영토를 정복합니다. 정복하지 못한 지역도 여기저기에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판관 1,27-35). 또, 여호수아기 안에도 이스라엘이 남아 있는 가나안 주민들과 그냥 같이 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여호 23-24장, 스켐).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다 정복한 것 같은 땅을 다윗이나 솔로몬이 다시 정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호 12,10에서는 예루살렘도 이미 정복되는데, 2사무 5,6-9에서는 다윗이 여부스인들의 도성이던 예루살렘을 정복합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다음, 천문학. 성경과 자연과학의 문제에 있어 창조와 진화 문제 다음으로 유명한 갈릴레이 사건이 여호수아기와 관련됩니다. 여호 10,12-13에서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를 멈추셨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를 멈추려면 해가 움직이고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천동설이 옳고 지동설은 틀리고, 갈릴레이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돕니다. 이제 고고학입니다. 성서 고고학이 처음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 열심한 고고학자들은 성경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요. 그런데 증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기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예리코의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기원전 13세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고고학 연구 결과, 예리코는 그 시대에 성벽의 흔적이 없습니다. 아이는 기원전 3천년대에 파괴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예리코나 아이에 갔을 때에는 무너뜨릴 것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의 가나안 영토 정복에 대하여 새로운 가설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이라고 하지만 벌써 50년이 지나서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된 가설들입니다. 일단, 군사 정복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열두 지파의 통일된 군사행동이라는 것은 이 시대에 아직 어려웠을 듯합니다. 좀더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기는 하겠지만 인구의 이동과 정착은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올라온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요르단을 건너와서 팔레스티나 중부를 거쳐 스켐까지를 정복하는 데에서는 여호수아의 역할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평화적 침투 가설도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에 팔레스티나에서 유목민들이 농민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됩니다. 이를 근거로, 이스라엘이 작은 무리들로 이 땅에 침투해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토 정복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1960년대부터 한동안 많이 제기되었던 가설입니다. 당시의 가나안은 매우 계층화된 사회였는데, 거기에서 하층민들이 그 체제를 피하여 산간지대로 옮겨가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외부에서 온 다른 이들과 손을 잡았다고 보기도 합니다. 결론은 한 마디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과정은 여호수아기가 말하듯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군사 정복과 소규모의 평화적 이주 그리고 가나안 도시국가들 자체 내의 사회적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여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기는 그 과정을 단순화하여, 여호수아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묶어 이집트 탈출에 연결짓습니다.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 그 모든 것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여호 13,1-7에서 밝히듯이 여호수아기도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지역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영토를 열두 지파에게 분배한다는 것은, 그 땅을 주시겠다던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모든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 ” 이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집안에 하신 그 모든 좋은 말씀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여호 21,43.45). 어느 지파에게 어느 땅을 나누어 주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후손들은 여호 13-21장에서 자기 집안의 이름을 찾습니다. 우리에게 이 땅이 주어졌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처럼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라도 그 땅을 주실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기는 말하자면 그 약속의 보증과 같습니다.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옮기면 ‘예수’가 됩니다. 그런 여호수아에 대해, 후대인 기원전 2세기의 집회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용감하였고 예언자로서는 모세의 후계자였다. 그는 자기 이름이 뜻하는 대로 그분께서 뽑으신 이들 가운데 위대한 구원자가 되어… 이스라엘에게 상속의 땅을 차지하도록 해 주었다”(집회 46,1). 백영민2015.03.18
![[성경속 궁금증] 90.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9528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90.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십자가 죽음으로 복수 악순환 끊은 예수님렘브란트, '착한 사마리아인', 1630년, 유화, 윌리스 컬렉션, 영국. 고대 사회에 적용되던 형벌 원칙인 동태복수법은 피해자에게 입힌 손해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보복한다는 것이다. 구약 당시 사회에서도 동태복수법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의 원칙을 그대로 지켰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장 참조). 그런데 동태복수법은 실제 실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겼었다. 그 이후 동태복수법은 금전적 보상제도로 대치됐고, 예수님에 의해 완전히 폐기됐다. 예수님은 악행과 학대를 당할 때 보복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셨다(마태 5,38-48). 이웃 사랑에 대한 예수님 가르침의 특징은 당시 유다인들의 일반적인 이웃 개념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며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원수에 대한 사랑은 동태복수법이 당연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 22,39)는 말씀은 이웃 사랑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에 대한 한계를 완전히 초월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랑의 계명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실행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다(마태 5,43-48). 이처럼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이웃과 형제만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다. 세리들과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기 때문이다(마태 5,46-47). 특히 신약의 마태오 복음에서 언급하는 원수 개념은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다인들에게 이웃을 자기 민족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공동체로 그 의미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 큰 해를 입힌 원수는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수 사랑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이웃 사랑의 특별한 형태이다. 진정한 원수 사랑은 원수를 적극적으로 용서해 주며 그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적개심이나 증오를 소극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4-46). 예수님은 원수마저도 사랑해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선으로 악을 이겨내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cpbc20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