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어떻게 해야 주님 말씀에 맛들일 수 있을까성경공부를 하려면 어디로 ▨성경공부 유형 ▶가톨릭성서모임 성서 40주간 및 심화반 교육/02-824-4363/www.biblemove.com ▶바오로성서모임/02-752-7894/www. spcseoul.or.kr ▶베네딕도 성서학교/02-920-9667/cafe. naver.com/bbs3004 ▶성서못자리(정기강좌, 나눔터 그룹공부, 35살이하 청년성서못자리)/02-775-5789/cafe. daum.net/BibleMot ▶성서백주간/02-730-4410/cafe.daum.net/bible100weeks ▶'여정' 성경 공부/02-525-7869 ▶시청각 통신성서교육원(우편ㆍ인터넷 학습, 이러닝(e-learning) 학습,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 나는 성경공부' 전문 봉사자교육/02-944-0819, 02-944-0840/uus.pauline.or.kr ▨교구별 성경사목 담당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02-775-5789 ▶광주대교구 성서사도직/062-380-2260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위원회/053-250-30 82/cafe.daum.net/biap ▶수원교구 복음화국 성경사목부/031-241-7966 ▶부산교구 성서사도직/051-465-8162, 울산대리구(052-287-7737) ▶인천교구 성서사도직/032-762-9717 ▶대전교구 성서사도직/042-630-7721 ▶청주교구 성서사도직/043-210-1730 ▶전주교구 성서사도직/063-230-1004 ▶의정부교구 성서 담당/031-850-1446 ▶춘천교구 사목국 성경사목부/033-240-6020 ▶원주교구 사목국 성서부/033-765-4224 ▶안동교구 성서사도직/054-858-3114 ▶마산교구 성경부/055-249-7025 ▶제주교구 성서사도직/064-751-0143 ▨평화방송 TV(www.pbc.co.kr) ▶김혜윤 수녀의 구약노트/본방송=화 오전 9시(본방송), 재방송=목 오후 9시, 금 오전 4시, 주일 오후 6시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본방송=월 오전 9시, 재방송 화 오후 9시, 목 오전 4시, 오후 3시, 주일 밤 10시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본방송=수 오전 9시, 재방송 금ㆍ주일 오후 9시, 월 오전 4시, 오후 3시 ▶성경인물과의 만남(구약편)/본방송=화 오전 8시, 재방송=수 오후 9시, 금 오후 4시, 토 오전 4시, 주일 오전 7시 ▶장재봉 신부의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본방송=수ㆍ목 오후 2시, 재방송=토ㆍ주일 오전 3시, 화ㆍ수 밤 12시 ▶최승정 신부의 성서백주간/본방송=금ㆍ토 낮 12시, 재방송 화ㆍ수 오전 1시 ▶정인준 신부의 생활 속 성경찾기/본방송=금ㆍ토 낮 12시, 재방송=화ㆍ수 오전 1시 ▨평화방송 라디오(www.pbc.co.kr) ▶PBC 성서 못자리(강사 : 안병철 신부)/월~토 오전 6시 5분 ▶강신모 신부의 성경 강독/주일 오전 8시 5분퇴사자22013.01.29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4) 강- 삶의 무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24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4) 강- 삶의 무대신성 있다고 믿어 강의 범람까지도 인격화 지금까지 하늘신ㆍ달신ㆍ바람신에 대해 배웠다. 고대 근동에서 하늘은 최초의 신이자, 최고의 신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야훼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받아들였고 하늘을 하느님이 만든 장소로 생각했다. 또 고대 근동에서 달신은 왕권의 상징으로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달신 숭배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들은 문화로 받아들였을 뿐 신으로 숭배하지는 않았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자 하느님 현현의 전조이다. 창세기 1장은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원대한 계획을 갖고 기술한 용기있는 텍스트다. 강(江)은 히브리어로 '나하르'다. 구약성경에 120번 이상 나오는 무척 친숙한 낱말이다. 이 말은 지리적 강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화적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강'은 '바다'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강은 물을 제공한다. 인류의 4대 문명인 황하ㆍ인더스ㆍ나일ㆍ메소포타미아 모두 강에서 비롯됐다. 물이 흐르는 곳에 초목이 자라고, 문명도 자란다. 대부분 종교에서 강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볼 수 있다. #강에 대한 경외심 고대 근동인들은 강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다. 다시 말해 강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현대의 합리적 세계관과는 다른 마음으로 자연을 섬겼다. 그들은 강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백이 축적된 심원한 '의미의 세계'에서 살았다. 고대 근동인들은 구체적인 강들, 이를테면 나일 강이나 유프라테스 강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일 강은 이집트의 젖줄이다. 이 강을 히브리어로는 '예오르'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네일로스'라고 한다. 두 낱말 모두 '기간' 또는 '계절'을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어에 뿌리를 둔다. 곧 나일 강의 이름은 '한 계절' 또는 '(돌아오는) 기간'이라는 뜻으로, 일 년에 한 번 나일 강이 범람하는 기간과 관련 있다. 나일 강의 본질은 범람이다. 고대 근동의 신은 대부분 자연 현상에 기반을 둔 인격신이다. 흥미롭게도 나일 강의 경우 강 자체는 인격화되지 않고 강의 범람만 인격화됐다. 나일 강의 범람의 신 이름이 '하피(Hapi)'다. 이 신은 배가 불룩 나온 남신이지만 여신처럼 젖가슴이 크다. 머리에는 파피루스 덤불이 자라고 손에도 식물을 들었다. 하피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19왕조(람세스 2세가 속한다) 시대부터 상(上)나일과 하(下)나일의 한 쌍으로 묘사됐다. 나일 강의 범람의 신 '하피'는 태초의 심연과 관련된 생명력의 신이자 풍요의 신이다. 이집트 종살이를 오래 겪은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문화에 익숙했다. 히브리인들은 나일 강의 종교적 의미와 하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오직 이 하피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침묵의 탈신화' 현상을 보인다. 오히려 나일 강의 범람을 하피가 아닌,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일로 묘사한다. 성경에는 주님께서는 나일 강이 부풀었다 잦아드는 일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나온다.(아모 8,7-8 참조) #강이 지닌 신성 인류 4대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두 곳이 바로 고대 근동지역에 있다. 그 중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그리스인들은 셈족의 전통을 따라 이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라고 번역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은 수메르 시대 이전부터 이미 신성을 지닌 존재였다. 두 강은 모두 고대 근동 세계에서 신성을 지녔다. 두 강의 이름 자체가 신의 이름이었다. 고대 바빌론어 이름에는 '마르-푸랏팀'(유프라테스의 아들)이나 '움미-이디클라트'(티그리스는 나의 어머니) 등이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 두 강의 신성은 세월에 따라 점점 약화된다. 후대 문헌일수록 두 강이 신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저 지명으로만 쓰인다. 엔키(Enki)신이 있기 때문이다. 엔키는 수메르 시대부터 일곱 주신(主神) 가운데 하나였고, 최고신 아누(하늘신)의 아들이자 풍요의 신 두무지의 아버지였다. 엔키는 선하고 좋은 신이다. 엔키의 어깨너머로 물고기가 노니는 강물이 흐르고 그의 모자에는 식물(생명의 나무)이 자란다. 수염이 긴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인상이다. 엔키는 고대 근동지역에 정기적으로 홍수를 일으켜 비옥하게 만드는 풍요의 지하수신이요,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 문제를 해결해주는 선한 신이었다. 엔키는 대표적인 선신이기에 대중에게 무척 사랑받았다. 이렇게 영향력 있는 엔키가 강물의 신성을 대표했기 때문에 두 강의 신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대 근동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엔키의 흔적을 구약성경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30
![[출판]예수, 탄생과 어린시절- 예수님 생애 '쉽고 깊이 있게' 알려주는 해설서](//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2361_1.1_titleImage_1.jpg)
[출판]예수, 탄생과 어린시절- 예수님 생애 '쉽고 깊이 있게' 알려주는 해설서 송몽보 신부, '예수' 시리즈 5부작 중 1편 '탄생과 어린시절' 출간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송봉모 지음/바오로딸/1만 4000원 인류 역사는 예수님 탄생을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기원전(BC, Before Christ), 기원후(AD, Anno Domini)로 구분 짓는 연도 기술 방식의 기준은 예수님 탄생이다. 예수님 등장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 사건이었고,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이 됐다. 예수님은 또한 한 인간 삶의 중심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 또한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처럼 인류 역사, 한 개인의 삶에 중심에 서 있는 예수님에 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면 신약성경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막상 신약성경 첫 장 마태오 복음서를 펼치면 발음하기도, 정리하기도 어려운 이름들로 가득한 예수님 족보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인내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2000년 전 문화와 사회, 정치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성경이 전하려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신약성서학 박사이면서 인기 작가이기도 한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예수님에 관한 집필을 시작한 이유다. 신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을 위해 예수님 삶을 '쉽고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예수' 시리즈(5부작)를 기획했다. 그리고 최근 탄생과 어린 시절을 다룬 1권을 펴냈다. 송 신부는 정말로 '쉽고 깊이 있는' 해설로 예수님 생애를 그려냈다. 성경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화와 사진 자료를 풍부히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다양한 문학작품과 예화를 통해 예수님이 말하고 보여주려 했던 의미를 정확히 짚어줬다. 요셉과 마리아 등 예수님 주변 인물과 당시 풍습과 사회상,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실었다. 루카복음서와 마태오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왜 차이가 나는지, 복음서는 예수님 공생활 이전의 삶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는지, 예수님 형제와 누이들은 누구인지 등 성경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 법한 내용들 역시 빼놓지 않고 다뤘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를 어떤 식으로 대했을까?…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화들을 주의 깊게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성모님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성모님이 아기를 안고 있지만 꼭 껴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봉헌하듯이 안고 있다. 이는 성모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혼연일체된 사랑으로 양육하셨지만 그 아들을 당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하셨다는 것과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본문 중에서). 송 신부는 또 예수님 생애를 설명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 생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묵상하도록 이끈다. 딱딱한 해설서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래서 책장이 잘 넘어가면서도 어느 대목에 이르러선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예수님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을 내적 고뇌와 슬픔의 깊이를 헤아려볼 때, 우리는 인간 예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며 그분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솟아오를 것이다. 또한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로 상처와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셨을 예수님이기에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결코 모른 체할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자"(본문 중에서). 송 신부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그분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분을 우리 인생의 중심으로 삼고 더욱 열렬히 그분을 사랑하고, 더욱 충실히 섬길 수 있다"고 했다. 송 신부의 예수 시리즈가 예수님을 깊이 알게 해주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4.01.14
![[복음 이야기]<1>복음서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12/rc/490213_1.2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복음서란 무엇인가'예수는 그리스도' 고백의 집약체, 복음 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예수님 당시 삶의 자리의 시대상과 풍속, 언어, 지리, 사상 등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성경의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성경을 통해 허약한 신앙을 회복하고 새복음화의 기초를 다져나가려는 한국교회의 사목 방침에 따라 성경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중 기획 '복음 이야기'를 연재한다.복음서는 서기 70~90년 사이에 구전 복음을 기초로 기록됐다. 사진은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필사본 오트하인리히 성경. 이 성경은 원래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에 있었으나 하이델베르크가 함락된 후 바티칸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현재 뮌헨 바이에른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차윤석 베드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복음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역사적 인물인 나자렛 사람 예수가 믿음의 그리스도 바로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돼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5-6). 또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이 고백이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서 저술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역사의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가 복음 주제 복음은 헬라어(희랍어) '에우안겔리온'에서 나온 말이다. 에우안겔리온(ευανγγελιον)은 본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대가로 주던 선물을 뜻한다. 오늘날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모든 소식을 인편으로 직접 전달했다. 이들 중 특히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다. 성경에서 '에우안겔리온'은 과거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기쁜 소식에 관해 사용됐다(이사 61,1). 이 에우안겔리온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복음서는 하느님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라 한다. 그래서 첫 복음서의 저자 마르코는 복음서 서두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란 말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서기 70~90년께 헬라어로 저술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를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예수님 말씀과 행적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 저술됐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언행이 제자들과 목격자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구전 복음'이라 한다. 이 구전 복음이 제자들의 필요로 서기 50년부터 90년 사이에 글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첫 기록 전승은 서기 50~60년께 예수님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예수 어록(Q)'이 있었다. 그러다 예수님 말씀뿐 아니라 행적과 기적, 비유 등을 모아 70년께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됐다. 마르코 복음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에게 유다인 풍습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루살렘 함락 후 서기 80~90년께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결별이 마무리됐을 때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헬라어로 작성했다. 루카 복음서도 마태오 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했다. 마르코ㆍ 마태오ㆍ 루카 복음서는 같은 관점에서 쓰였는데 이를 '공관 복음'(synoptica)이라 한다. 라틴말 '시놉티카'는 '함께 바라보다'는 뜻이다. 공관 복음 세 복음서는 내용과 언어, 사건 순서들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둘의 공통 문헌이나 각자 고유한 자료를 첨가해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 서기 90년께 저술한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과 구성뿐 아니라 관점도 다르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로 기록됐다. 당시 지중해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으나 언어와 문화는 헬레니즘화 돼 헬라어가 공식 교양 언어였다. 네 복음서와 신약성경은 382년 로마회의와 397넌 카르타고 회의에서 정경(canon)으로 확정됐다. 네 복음서의 상징 리옹의 이레네오(202년 순교) 성인은 "네 복음서는 교회의 기둥이며 기반이고 생명의 혼"이라고 했다. 이 네 기둥은 사방으로부터 불사불멸의 빛을 발하며 인간에게 생명을 베푼다. 그는 예언자 에제키엘이 환시 속에 본 사람과 사자, 황소와 독수리 얼굴을 한 네 생물(에제 1,10)의 얼굴을 네 복음서 저자와 연관시켜 상징적 형상으로 삼았다. 요한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봄을 상징해 '독수리', 루카는 제사와 사제직과 관련해 '황소', 마태오는 구세주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셨음을 암시해 '사람', 마르코는 용맹하게 예수의 일생을 힘차게 표현해서 '사자'로 표현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12.31
![[신앙단상] 황량한 곳에 내렸던 무한한 은총](//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1780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황량한 곳에 내렸던 무한한 은총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일으키신 복음 말씀은 이렇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이곳은 동네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이므로, 이를 걱정한 열두 제자가 군중을 돌려보내고 수익자 부담으로 각자 마을로 돌아가 식사하고 잠자게 하자는 것,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데 어찌하오리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2-17).그런데도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라고 말한다. ‘장정’이라 함은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를 말한다. 사도행전 4장에도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단 장정만 세어 보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곳에 모였던 사람은 오천 명이 훨씬 넘는다. 그 안에는 당연히 늙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며 아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여자가 너무 많아 세기가 어려워서 일단 건장한 남자만 세어 보았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당시 사람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여자였고 남자는 사도 요한뿐이었다. 여자 : 남자는 4 : 1이었다. 그런데도 성경의 이 대목에는 “오천 명을 먹이시다”라는 제목을 붙여 두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 신자는 남자의 1.5배 정도 된다. 또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 중에서 여자가 남자의 한 서너 배쯤 되는 것 같다. 기적이 일어난 곳에 있던 사람 중 노인이 장정의 최소 30%였다고 보면 5000×1.3=6500명은 남자다. 여기에 우리나라 남녀 신자 비율을 적용하면 6500×1.5=9750명이 된다. 따라서 모두 그곳에는 1만 6250명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1 : 1이었다고 해도 당시 모였던 사람은 6500×2=1만 3000명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먹인 사람 수는 오천 명이 아니라, 1만 3000∼1만 6000명을 먹인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있는 서울대의 학부 재학생 수가 올해 1만 6496명인데, 그렇다면 그 기적의 장소에 있던 사람은 지금 서울대 학부 학생 수와 같았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좌석 수는 대략 3000석 남짓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모여들어 배불리 먹은 사람이 이 기적을 증언하러 이 땅에 모였다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개를 모아야 다 앉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라고 한다. 그러면 광주리 한 개는 대략 1100명에서 1300명이 먹고 남은 조각을 담을 정도로 큰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 12개 광주리를 들고 다녔을 리 없고, 열두 제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 줄 알고 큰 광주리를 12개를 들고 다녔을 리 없다. 게다가 그 장소는 마을에서 떨어진 ‘황량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을 아무리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 마음에 남는 것은 매우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엄청난 기적이라는 사실뿐이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내리신 한없는 은총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부속가에서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라고 노래하듯이,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은총이 이 기적 속에 담겨 있었다. 그것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에서. 평화신문2014.11.26
 예수님 족보 (하)](//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666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41) 예수님 족보 (하)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림은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와 아기 예수, 16세기, 유화 캔버스, 페슈 미술관, 이탈리아. 예수. 메시아이신 주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잉태하기 전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루카 2,2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천사가 알려준 주님의 이름 예수는 우리말로 “야훼는 구원이시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신앙고백과 같은 말뜻을 지닌 이 이름을 많은 유다인들이 사랑했다. 이 이름은 가나안 정복 때 아모리족을 물리치기 위해 해와 달을 멈추게 한(여호 10,12) 여호수아뿐 아니라 집회서의 저자로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와 시라의 아들이(집회 50,27), 그리고 서기 37년부터 70년 사이 4명의 이스라엘 대사제가 사용했다. 또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도 엘리에제르의 아들이 이미 이 이름을 갖고 있었다(루카 2,29).주님이신 예수님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표현처럼 ‘단지 영 속에서가 아니라 육 속에서 당신의 역사와 당신이 걸으셔야 할 길을 이룩하셨다.’ 그 영원한 시작과 ‘시간 안에 육체로 있음’ 사이에는 육화의 신비가 있다(과르디니, 「주님」, 바오로딸 참조). 그래서 마태오와 루카는 복음서에 ‘예수님의 족보’를 서술해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증언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다윗과 일련의 유다 왕을 거쳐 요셉까지 42명의 이름이 이어진다(마태 1,1-17).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기점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열거해 다윗과 유다, 야곱, 이사악, 아브라함뿐 아니라 태고 시대 노아, 라멕, 에녹을 거쳐 아담까지 77명의 인물을 나열하고 있다(루카 3, 23-38). 두 족보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마태오는 다윗 왕조의 이름이 족보로 내려오지만, 루카는 나탄에서부터 스알티엘까지 다윗의 아들이지만 왕조가 아닌 다른 아들을 통해 족보가 내려온다. 아울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후대가 또 갈라진다. 마태오 복음에는 즈루빠벨이 아비훗을 낳고 그 후손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까지 내려가고 있으나, 루카 복음에는 즈루빠벨의 아들 레사에서 요셉의 아버지 엘리까지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은 법률상 요셉의 족보를, 루카는 혈통상 마리아의 족보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장남이 대를 잇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형제 중 미혼인 한 사람이 형수와 결혼해 첫 아들을 낳아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했던 이스라엘의 대를 잇는 전통 방식인 ‘레비라식 결혼법’(신명 25,5-10 ‘후손에 관한 규정’)에 따라 친부와 법적 아버지의 이름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서 내려온 마탄이 에스파 사이에서 야곱을 낳았고(마태오 복음), 다윗의 아들 나탄에서 내려온 후손 마탓이 형 마탄이 죽은 후 에스파와 결혼해 아들 엘리를 낳아(루카 복음), 야곱과 엘리는 아버지는 다르나 어머니가 같은 동복형제고, 엘리가 아들이 없이 죽어 야곱이 엘리의 부인을 아내로 삼아 요셉을 낳았기에 친부인 야곱과 법적 아버지인 엘리의 아름이 족보에 등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오와 루카의 족보를 서로 틀리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족보에는 타마르(창세 38장)와 라합(여호 2장), 룻(룻 1-4장),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2사무 11장) 등 4명의 여인이 나온다. 타마르와 라합은 가나안 사람, 룻은 모압인, 밧 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으로 4명 모두 이방인이다. 이들은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이스라엘 율법을 깨고 유다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이 네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 것은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이어져 내려오는 이름들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어 당신께 주어진 길을 걸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내 준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구세주 강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웅변했다. “그분은 인류의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위대한 것, 강성한 것, 혼란된 것, 가련한 것, 어두운 것 그리고 악한 것들 위에 현존하시면서 그분께 들이닥칠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의 성심 안에 받아들이시어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해내고자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이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5.01.06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4> 저와 아빠는 늘 함께였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밥을 같이 먹고, 아빠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고, 산책하러 나갈 때 팔을 잡아주고, 부은 발을 씻겨 드리고….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셀 수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소했던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5년이라는 세월. 누구에게는 짧고 누구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한 아빠의 딸인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도 짧다고 생각됐습니다.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치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항상 함께 있답니다. 항상 함께….수백 번도 더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왜 나만 두고 혼자 가 버렸느냐고.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말 좀 해보라고 투정도 부렸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도 나름 찾은 저였습니다. 그랬는데….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빠가 나한테 하는 말이야?저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존재하나요? 지금 저를 보고 있나요? 제 기도들을 들었나요? 죽으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다는데 그럼 아빠가 거기에 있나요? 여기서 받은 고통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 채? 하늘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개 없는 별들도, 흐릿하게 보이는 구름도, 저 멀리 떠 있는 달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답이라고 오해조차 할 수 없도록.그러나 제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아빠의 곁으로 가기 전에 하는 일이었던 기도는 제가 아빠의 곁에 있기 위한 것이 됐습니다. 아빠를 이제는 눈과 손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아빠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해결의 책이었고, 아빠가 잘 있게 해 달라는 염원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귀에서 들리던 소리를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연히 성당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일주일은 길다 여겨지며 평일에도 갔습니다. 매일 성경의 구절이, 신부님의 말씀이 모두 저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아빠와 소통하는 창구와도 같았습니다. 아빠를 잃었던 제가 다시 아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또 한 명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느님 아버지. 저를 성당으로 부른 이 말입니다.하느님은 아빠의 죽음을 통해 저를 당신 옆으로 불렀습니다. 그리 달콤한 유혹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당에 온 이유를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 때문에.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평범한 부르심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사랑으로 시작하는 부르심이었으면 더 기뻤을걸.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부르심이었으면 더 행복했을걸.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됐습니다.“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저도 압니다. 그 시기에 제게 가장 적절히 필요했던 것이 성당과 기도였다는 것을. 저를 부르기 위해 아빠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에 이제는 성당에 어떻게 다니게 됐느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이보다 조금 아프지만 특별하게 성당에 오게 됐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리고 그 말 안에는 저 홀로 성당을 다니고 기도한 것만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계속〉 평화신문2014.06.18
![[출판]성경의 대중화 말씀의 생활화 30년, 생활성서사 창립 30돌](//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49_1.1_titleImage_1.jpg)
[출판]성경의 대중화 말씀의 생활화 30년, 생활성서사 창립 30돌 17일 청담동성당에서 기념행사 월간 '생활성서'를 발간하는 생활성서사(대표 박연례 수녀)가 설립 30주년을 맞아 17일 오후 1시 서울 청담동성당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섭리, 축복 그리고 말씀에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는 생활성서 6월호 표지인물이자 '한비야의 종이비행기'를 연재하고 있는 한비야(비아)씨 특강과 수도자와 함께하는 찬양으로 꾸며진다. 파견미사는 생활성서에 '양승국 신부의 기도레슨'을 쓰고 있는 양승국(살레시오회) 신부가 집전한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며 설립한 생활성서사는 1983년 9월 1일 월간 '생활성서'를 발행하면서 출발했다. 언론이 통제당하고 각종 간행물이 폐간을 강요받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 생활성서의 창간은 더욱 의미가 깊다. 생활성서 창간 배경에는 광주대교구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광주대교구 사목국장이던 이영수 신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수감됐을 때 감옥에서 성경을 통독했다. 이후 신자들 눈높이에 맞게 성경을 해설해주는 잡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광주대교구장이던 윤공희 대주교 역시 이 같은 뜻에 공감하며 성경잡지 발행을 수녀회에 요청했다. 성경의 대중화와 말씀의 생활화에 헌신해 온 생활성서사는 지금까지 월간지 통권 358호를 발행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40여 개국에도 월간지를 보내고 있다. '쓸모있는 잡지, 기다려지는 잡지'를 지향하며 신자들이 성경과 친숙해지고, 하느님 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잡지 발행 초창기부터 이웃 종교를 소개하는 기획물을 연재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의 글도 꾸준히 게재하며 이웃 종교와 늘 함께했는데, 이현주 목사가 대표적이다. 생활성서사는 월간지와 함께 500여 종이 넘는 단행본을 출간하며 신자들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성경, 영성, 전례, 교리 관련 서적 발행에도 노력해왔다. 성경공부교재 「여정 첫걸음」(전 4권), 「여정」(전 11권), 어르신 성경공부교재 「은빛여정」(전 12권) 등은 성경사도직에 힘써 온 수녀회의 풍부한 경험이 빚어낸 작품이다. 어린이 교리교재 「신난다 첫영성체교리」, 「신난다 가정교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박준양 신부의 '신학여행시리즈'(전 6권)로 신학 대중화에 문을 열었고, 이태석 신부가 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이 신부 선종 후 생활성서사의 대표작이 됐다. 출판사 대표 박연례(솔라) 수녀는 "생활성서사가 30년 간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라면서 "하느님 말씀과 사랑을 전하는 교회 선교사명에 적극 참여해 성경 생활화와 세상 복음화에 더 힘쓰겠다"고 말했다. 문의 : 02-945-3300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6.04
![[복자 124위 열전] <42> 김화춘·김윤덕](//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827_1.0_titleImage_1.jpg)
[복자 124위 열전] 김화춘·김윤덕오랜 옥살이 끝 사형 받은 복자, 배교 후 다시 찾아가 순교한 복녀 ‘영남의 순교 1번지’ 하면, 역시 관덕정이다. 대구읍성 남문 밖 아미산 자락 신천변 관덕정에서만 17위가 피를 흘렸다. 대구 감영 밖 동ㆍ서옥에서도 7위가 순교했는데, 그 옥터는 현재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경북 청송에서 신앙생활 하던 김화춘(야고보, ?∼1816)과 김윤덕(아가타 막달레나, ?∼1815)은 1815년 을해박해로 체포돼 관덕정과 대구 감영 옥터에서 각각 순교했다. 이 중 김화춘 복자는 내포 청양 출신으로 보령 청라동(충남 보령 청라면 일대)을 거쳐 청송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순교했다. 반면 김윤덕 복녀는 대구대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해 복자가 된 순교자 20위(울산 병영 순교자 3위 포함) 중 유일하게 경상도 출신 복녀로 기록되고 있다. 복자 김화춘 을해박해 순교자 중 일부는 부모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이는 이미 신앙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대물림’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화춘 복자 역시 아버지에게서 신앙을 배웠는데 1839년 전주에서 순교한 김대권(베드로)이 그의 형이다. 본시 성품이 온순하고 온화하며 인내심이 깊었던 김화춘은 장성한 뒤로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교회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고, 기도 생활과 성경 읽기에 부지런해 교우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던 중 좀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경상도 청송으로 이주한다.하지만 을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체포된 그는 경주를 거쳐 동료들과 함께 대구로 압송돼 옥에 갇힌다. 여러 달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여러 차례 감사 앞으로 끌려나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굳게 신앙을 지켰다. 감사도 마침내 그의 신앙에 굴복해 사형을 선고한다. 당시 결안, 곧 사형선고문에는 “죽기를 맹세하고 뉘우치지 않으니 그 요사하고 사악함이 아주 지극하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옥중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는 임금의 사형 윤허가 내려지면서 1816년 12월 19일 대구 형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의 화관을 쓴다. 순교 뒤 그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됐다가 이듬해 3월 2일 친척과 교우들에 의해 거둬져 안장됐다.김윤덕 복녀는 내포 교회 출신이 아니라 경상도 상주 은재(현 경북 문경시 가은읍 저음리) 출신이다. 장성한 뒤 고향 인근에 전해진 복음을 듣고 입교한 그는 언제부터인가 청송 노래산 교우촌으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 역시 1815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지내던 중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으며, 여러 차례 문초에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문초하던 관헌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리 비천하고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조물주이신 천주님의 은혜를 몰라보고 그분을 배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며 굳은 신앙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뒤 그녀는 배반의 고비를 넘긴다. 형벌을 받던 중 마음이 약해져 신앙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곧바로 석방돼 막 감영 문을 나서던 그녀는 안동에서 이송돼 온 김종한(안드레아)를 만나 신앙적 권면을 받고 마음을 되돌린다. 다시 감영으로 들어선 그녀는 포졸들을 밀치고 서슴없이 관장 앞으로 나아가 배교의 죄를 뉘우치며 죽여줄 것을 요청한다.화가 난 관장이 그녀를 미치광이로 몰아 내쫓게 했지만, 그녀는 돌아와 배교를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취소한다. 거듭된 배교 취소에 관장은 그녀에게 심한 매질을 하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살점이 하나둘 떨어나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뼈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내 의식을 잃고 감옥으로 실려간 그녀는 옥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거뒀다. 이때가 1815년 4월 말, 혹은 5월 초로 추정되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50세가량이었다고 전해진다.유혹을 이겨낸 김윤덕 복녀의 신앙은 야고보 서간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4.12.18
 김강희 비오 (주)가치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9307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4) 김강희 비오 (주)가치 대표이사 가장 가치 있는 보석은 가슴 속 진주인 ‘믿음’ 입점했는데, 그게 전화위복이었다. “당시 돌이켜보면 어떤 이끄심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런 경험을 저는 평생을 살면서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루카 11,19 공동번역) 하신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그래서 자녀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도 기도다. 첫째는 ‘매사를 감사히 여겨라’는 감사 기도이고, 그 다음에는 늘 기도하는 삶,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도 한결같이 기도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김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와 간구, 이 두 기도가 어쩌면 김 회장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회장은 28살의 젊은 나이인 1971년에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다(서울대교구 14차). 30살 아래는 꾸르실료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이계중 신부(2013년 선종)가 ‘비오는 나이는 30이 안 됐지만 신앙의 나이는 그 정도를 넘는다’며 적극 추천해서 가능했다. 교육을 받은 후에는 본당의 최연소 사목위원으로 활동했다. 혜화동본당에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청소년 시절의 종로본당, 청년 시절의 혜화동본당을 거쳐 33살 때인 1976년에 반포본당으로 교적을 옮겼다. 반포본당이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하던 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반포본당 신자로 살고 있으니 본당의 산 증인인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본당 총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성당 신축 기금을 비롯해 크고 작은 교회 일에, 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문제여서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는 김 회장. 그는 그보다 자신이 묵상하는 신앙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참 신앙을 가진 이는 늘 평화롭다’는 것이다. “평화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전혀 없고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제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이뤄지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이야말로 참 신앙인이라고 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다이아몬드와 진주 등 보석을 비롯한 귀금속류, 반지와 목걸이 등 고급 장신구류 판매업체인 (주)가치 대표이사인 김강희(비오, 71) 회장은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를 신조로 삼아 살아왔다. 이는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생을 통해 체득한 경험의 결실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은 속셈이 없습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지도 않고 욕먹는 일도 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욕먹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사는 ‘평범’ 그 자체가 실은 ‘비범’이라고 생각합니다.”김 회장이 중시하는 평범은 그의 호 ‘중산’(中山)에서도 잘 드러난다. 두드러지거나 치우치지 않고 매사에 중용을 지키는 것, 그 길은 또한 김 회장이 살아온 삶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 회장의 삶은 겉보기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 종로의 한 귀금속상에서 1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다가 ‘정보당’이라는 보석상을 차려 독립했다. 1970년대 초였다. ‘값어치’라는 뜻을 지닌 (주)가치의 전신이다. 자기 가게를 차린 청년 김강희는 열심히 일했고,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가게는 번창했다.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보석상 매장으로서는 초대형인 약 100㎡(30평) 크기의 본점을 비롯해 강남, 일산 등지에 5개 매장을 뒀다. 사업을 하면서 김 회장은 ‘일은 즐겁게 하라’를 신조로 삼았다. 일 자체가 판매업이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어서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으면 고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 회장이 즐겁게 하라는 것은 사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삶을 위해서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 그러나 일이 의무가 되면 인생은 지옥이다.’김 회장은 서울 명동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벽에 직접 쓴 이 글을 걸어놓고 늘 되새길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당부한다. ‘일을 즐겨라. 그러면 인생이 즐겁다.’ 김 회장은 신앙인으로서도 마찬가지로 외적으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김 회장은 서울 토박이다. 이북 출신의 부모 슬하에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먼저 세례를 받은 어머니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인 1958년에 종로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바로 복사단에서 활동했고 이어서 ‘바다의 별’이라는 학생 쁘레시디움에서 레지오 활동을 했다. “요즈음엔 학생 레지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본당 레지오 하면 중고등학생들의 학생 쁘레시디움 아니면 노인 쁘레시디움이 거의 전부였습니다.”고등학생 때는 학교(중앙고교)에 학생 레지오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사제가 됐다. 서울대교구 원로사제 박용일 신부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성당 활동은 이후 김 회장의 신앙생활에 든든한 기초가 됐다. 신앙생활에 있어 김 회장은 특히 기도의 힘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이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주시지 않는다면, 구하는 것이 본인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A’라는 길을 가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당연히 간절히 기도도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실망하게 되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보면 그때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오히려 잘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1979년 을지로 입구에 롯데1번가 아케이드를 열었을 때였다. 당시 바로 옆 미도파백화점(현재 롯데 영플라자)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김 회장은 목이 좋은 1번가 아케이드에 입점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어 나중에 롯데백화점 본점에 평화신문2015.03.10
![[나의 묵주이야기] 105. 신혼여행 중 선물 받은 교황님 묵주](//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955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05. 신혼여행 중 선물 받은 교황님 묵주김미주 가브리엘라(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우리 집은 방마다 묵주가 걸려 있다. 나는 개신교회를 다니다 냉담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친구의 권유로 개종해 2003년 12월, 24살 때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개신교회를 오래 다녔던 터라 성모님과 성인들의 전구와 묵주기도보다는 예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중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고부터 성모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닌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묵주기도를 바로 알게 되었고, 성체조배를 하면서부터 예수님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에 맛 들이기 시작했다. 출퇴근 버스, 여행가는 차 안에서나 운동할 때마다 묵주기도를 했고, 그렇게 내 가방에는 묵주가 동행하였다. 묵주는 선물로는 으뜸인 성물 같다. 몇 개 있던 묵주를 다 나눠주고 지금은 배론성지에서 구입한 나무 묵주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직접 받은 묵주 두 개로 기도하고 있다. 교황님의 묵주를 받기까지 내게도 우여곡절의 시절이 있었지만 성모님과 예수님 덕분에 지금까지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가족 중에 나 혼자 성당을 다녔고, 성가대, 성경 통독, 레지오 마리애, 교리교사를 했다. 집에서는 ‘성당에 미쳤다, 성당 가면 돈이 나오냐, 적당히 믿어라’ 하셨다. 혼자서 신앙생활하는 게 외로웠고 결혼만큼은 제발 가톨릭 식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혼인 미사 드리게 해달라고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바쳤다. 때가 되어 하나둘 친구들은 결혼하기 시작했고, 나는 조바심과 외로움에 힘들었다. ‘아직 때가 안 되어 짝이 안 나타난다, 기도가 부족하다, 내가 준비가 덜 됐나 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35살에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놀랍게도 아버지께서 혼인 미사를 허락하셨다. 시댁과 친척 모두가 가톨릭 집안이었고, 동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고모님들도 계셨다. 혼인 미사를 드리면서 세 분 신부님의 집전과 축복에 눈물이 났다. 이건 분명 성모님께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나의 바람을 주님께서 들어주신 거라고 믿는다.신혼여행으로 성지 순례를 하였고, 교황님을 알현하는 부부 100쌍 중에 우리 부부도 포함되어 축복을 받고 묵주를 선물 받았다. 믿기지 않는 일들이, 바라왔던 일들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 묵주기도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산인지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혼 3개월 후 새 생명을 주님께서 뱃속에 보내주셨다. 감사 기도와 순산 기도로 묵주기도를 계속 바쳤다. 8개월 때부터는 자연 출산을 위해 밤마다 배드민턴장을 돌며 한 시간씩 묵주알을 굴렸다. 예비 엄마가 되어서일까? 환희의 신비가 보통 때와 다르게 묵상 되고, 성모님 또한 어머니로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예정일 일주일을 앞두고 무사히 자연 출산을 했다. 시간이 흘러 딸 바올라가 세상의 빛을 본 지 50일째다. 참 감사한 날이다! ‘엄마’라는 문턱에 들어선 요즘 낮과 밤이 뒤바뀌고 보채기가 심해져 30분이든 1시간이든 안아서 달래고 재울 때에 묵주알을 굴리며 이 힘겨움을 주님께 보속하는 마음으로 봉헌한다. 그러면 팔과 발바닥의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하다. 이젠 엄마 성모님이 벗이 되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벗이요 우리의 어머니 되신 성모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두 손 모아 아들 예수님께 전구하심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송구스러워 고개를 떨군다. 오늘도 우릴 위해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시고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이 죄인과 온 세상을 위해 빌어주소서!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cpbc2014.12.03
![[성서주간] 본당 성서못자리 나눔터회](//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59_1.2_titleImage_1.jpg)
[성서주간] 본당 성서못자리 나눔터회 가랑비에 옷 젖듯 신앙생활 풍요롭게 서울대교구는 내년을 '하느님 말씀'에 역점을 두는 해로 지내기로 했다. 신앙의 해 기간 쌓은 기초를 말씀을 통해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계시가 담긴 성경을 통해 하느님 뜻을 이해하고, 신앙을 풍요롭게 해야 할 때다. 성서주간(24~30일)을 맞아 말씀의 참맛을 알고, 그 안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서울 둔촌동본당 성서못자리 그룹원들이 교리실에 모여 말씀을 익히며 그룹 봉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정훈 기자13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동성당(주임 임승철 신부) 지하 교리실. 평일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리실을 채웠다. 본당 성서못자리 그룹 공부를 수강 중인 그룹원들이다. "오늘은 코린토 2서 12장부터 13장까지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날입니다." 지난 3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실 불을 밝히고 코린토 2서를 익혀온 이들의 그룹 봉사자 이영숙(가브리엘라)씨가 운을 떼자 그룹원 8명이 시작기도와 함께 성경 구절을 나눠 읽기 시작했다. 본문의 배경을 설명해 놓은 해설도 함께 읽으며 이해를 넓힌 이들은 각자 마음에 와 닿은 구절과 저마다 느낀 점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예습하면서 메모해 둔 궁금한 점도 질문하고, 각자 생각도 허심탄회하게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그룹 맏언니 박영수(리디아, 80) 어르신은 "오랫동안 해오던 성경공부를 잠시 쉬고 한동안 미사만 참례하다 보니 '발바닥 신자'로만 느껴져, 다시 본당 성서못자리에 참여해 말씀을 익히고 있다"며 "성경을 놓지 않는 제 모습을 하느님께서도 기쁘게 보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7년째 성경공부 중인 김정희(클라라, 61)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경 의미가 더 깊고 넓게 다가온다"면서 "성경공부 하는 시간은 미사 참례만큼이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신앙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서봉은(베로니카, 59)씨는 "잘 정리된 교재에 따라 말씀에 심취하다 보면 저절로 주님께 의탁하게 되고, 미사 중 강론과 복음도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무엇보다 그룹 봉사자가 공부가 아닌 말씀 안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눔도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1995년 명동성당이 아닌 곳에서는 처음 성서못자리 정기강좌가 열린 둔촌동본당에는 현재 15명의 봉사자가 요일과 시간별로 나뉘어 그룹원 100여 명에게 말씀의 싹을 심어주고 있다. 1989년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일군 성서못자리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말씀의 모(耗)를 뿌리내려 교구 대표 성경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사제들이 심은 모를 꾸준히 키우고 수확해 각 본당에 이모작해 온 이들이 있다. 3년 과정의 명동성당 정기강좌 수료 후 말씀으로 무장한 성서못자리 소속 '나눔터회 봉사자'들이다. 본당 그룹 봉사자들의 모임인 나눔터회 봉사자들은 자신이 몸소 느낀 말씀의 힘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발로 뛰는 말씀의 길잡이들이다. 교구장이 수여하는 봉사자 자격을 얻은 이들은 4복음서ㆍ코린토서ㆍ사도행전ㆍ요한묵시록 등 17권에 이르는 성서못자리 교재로 그룹원을 말씀의 세계로 이끈다. 봉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말씀의 모는 1998년 서울 둔촌동본당을 기점으로 인근 명일동ㆍ천호동ㆍ길동본당으로 전해졌다. 현재 서울ㆍ의정부ㆍ수원교구 등지의 23개 본당에서 250여 명이 활동 중이며, 이들이 관리하는 그룹원은 총 600여 명에 이른다. 본당마다 약 10명의 봉사자가 새로운 모를 심고 있는 셈이다. 그룹 봉사자들은 성경을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씀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올바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줄 뿐이다. 성경은 혼자 공부하기보다 함께 나눔으로써 의미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영숙 그룹 봉사자는 "봉사자는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주님의 기쁜 말씀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라며 "여럿이 말씀을 되새기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츰 각자 신앙생활이 풍요로워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회 내 공인된 성경 프로그램은 성서못자리 외에도 다양하다. 봉사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어떤 프로그램이든 참여해 말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클라라, 명일동본당) 봉사자는 "성경공부라고 하면 어렵게만 느끼고 주저하는 분들이 많은데, 막 영세한 분들도 마르코복음서나 코린토1서를 익히며 신앙의 의미를 알아간다"면서 "마음 깊이 지녔던 신앙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 상처에 대한 답을 얻는 데엔 말씀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전했다. 나눔터회 배외선(세라피나) 회장은 "본당마다 사정과 여건은 다르지만, 봉사자들은 말씀이 곧 힘이고 기쁨이란 확신을 갖고 더 많은 이들에게 그 맛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1년 동안 말씀 안에 살아보자'란 생각으로 어떤 성경 프로그램이든 몸담고 말씀의 힘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서못자리 담당 박기석(교구 성서사목부 차장) 신부는 "공인된 성경공부 프로그램 참여하기와 미사 전 복음 묵상하기 등 교구 사목 지침에 따른 실천사항을 잘 이행하는 말씀의 해가 됐으면 한다"며 "어떤 성경 프로그램이든 적극 참여해 편식없이 말씀의 참맛을 들여보자"고 당부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cpbc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