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교구 성경경시대회서 '은빛상' 수상한 92세 조양순 할머니"성경은 나의 힘이자 모든 것" 성경경시대회에서 은빛상을 받은 조양순 할머니. "성경경시대회는 젊은 사람들만 참여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경시대회에 참가해 주교님이 주시는 상까지 받게 되니 기쁘고 떨립니다." 10일 경남 창원시 성지여고에서 열린 마산교구 제2회 성경잔치 시상식. 성경경시대회 부문 '은빛상' 수상자로 조양순(안나, 92, 마산교구 양덕동본당) 할머니가 호명되자, 허리를 펴지 못하는 조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안명옥(마산교구장) 주교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은빛상은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 어르신에게 주는 상. 장내에는 할머니를 향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조 할머니는 지난해 교구가 마련한 첫 성경잔치에서 성경경시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 할머니는 경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예상 문제집도 풀어보고, 별도로 문제를 내준 본당 수녀와 전화로 채점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조 할머니는 "평소에 읽고 사귀어온 하느님 말씀을 문제로 푸는 일이 재미있고, 꼭 하느님이 내게 시키시는 일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할머니는 10년 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 교리공부를 하던 중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세례를 받은 후에는 손자와 남편이 2~3개월 차이로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갓 세례받고 가족들을 떠나보낸 조 할머니는 "하느님은 없다"고 부정하며 성당에 등을 돌렸다.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지옥 같은 날을 보냈다. 5년 동안 냉담했던 조 할머니는 교회에 다니는 개신교 신자들은 위로도 해주고 교회에 나오라고 손짓도 하는데, 왜 가톨릭 신자들은 쉬고 있는 나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한 교우의 도움을 받아 성당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은 조 할머니는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해 기도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이때부터 조 할머니는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씻은 후 꼬박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 조 할머니는 "이제는 그동안 냉담했던 시간이 후회스럽다"면서 "그저 빨리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하느님 말씀은 내 아들이자, 손자이자, 남편과 다름없습니다. 나의 힘이자 모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성경과 함께 살다가 성경과 함께 죽고 싶습니다." 조 할머니는 "하느님께 자랑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녀가 두 명 있다는 것과 나를 돌봐주러 오는 요양보호사가 예비신자 교리를 받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흐뭇해했다. 손춘복 명예기자cpbc2013.11.19
![[성 요셉 대축일]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과 그 신심](//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9310_1.0_titleImage_1.jpg)
[성 요셉 대축일]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과 그 신심자기 희생·봉헌으로 성가정을 수호한 ‘아버지’ 19일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 공동 수호자인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복음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불리는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실한 도구로 선택돼 성가정을 돌봤다. 가정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가장인 아버지 역할이 부각되면서 새롭게 조명되는 이가 요셉 성인이다. 요셉은 가장으로,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서 그리스도인 남자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영원한 모범이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경 구절은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그에 대한 언급이나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 묵상해 보면 요셉은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했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했고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도록 하고 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예수,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아들이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요셉은 먼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보호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끝까지 지켜줬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셉은 또 예수의 양부로서 성실한 아버지 역할을 다했다.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 동안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성경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예수의 지혜와 키를 자라게 한 아버지가 요셉이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은 16세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에 의해 보편화했다. 데레사 성녀는 요셉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나는 성 요셉을 나의 변호자이며 보호자로서 존경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 요셉께서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도와주신 일을 나 자신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성 요셉에게 언제나 순종하셨으므로 지금도 천국에서 성 요셉의 소원은 모두 기쁘게 들어주십니다. 나는 할 수 있다면 전 세계를 성 요셉에 대한 신심에 투입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나는 성 요셉이 얼마만큼 하느님 앞에 신뢰가 있느냐는 것을 나 자신의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 요셉에 대하여 참으로 신심을 가진 사람으로 신덕에 진보하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성 요셉은 자기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영성 진보를 특별히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자서전」 6).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했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5.03.10

대형 참사에 대처하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점 '조목조목'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다' 에서 거론돼 가톨릭언론인협의회가 마련한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는다' 에서 발제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세월호 참사 1년을 넘긴 이 시기,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에 대처하는 국가와 사회 모습에 여전히 다양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이상요)가 주관해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는다’에서다. 포럼은 대형 참사에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세월호 참사의 사례를 들어 함께 고민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김문태(힐라리오,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와 답게 사는 길’이란 주제 발표에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고,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지는 가운데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이기주의와 무사안일,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최악의 인재였다”며 “물질 만능과 무한 경쟁시대에서 타인을 적대시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김 교수는 “나 자신부터 각자 자리에서 ‘답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을 베푼다면, 생명의 문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톨릭 신앙 공동체는 특히 이웃에 대한 편협함을 깨고 봉사와 헌신으로 공동선 증진과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가톨릭 교회 대응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김근수 가톨릭프레스 편집인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미사, 기도 등 보이지 않게 애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신자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면서 “사회교리와 성경 공부에 더욱 매진해 불의를 피하지 않는 교회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세월호 유가족과 팽목항 현장에서 아픔을 함께한 전문가의 발언도 이어졌다.고 박성호(단원고) 학생 어머니 정혜숙(체칠리아)씨는 “이번 참사는 수많은 개개인이 연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고, 그 연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가는 쉽게 변화하지 않고 제시되는 실천 덕목들도 개인의 성찰에 국한돼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최호선(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참사 당시 팽목항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수습해 정성스럽게 모시고 유가족에게 인도해드리는 작업에 함께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공무원 여럿이 시신의 사진과 영상을 마구 찍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면서 “합리성과 체계를 갖춘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유가족들의 내적인 치유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날 포럼에 참석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격려사에서 “1년 전 바닷속으로 침몰한 건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믿음의 가치 또한 침몰했다”며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 참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시대에 보여주시는 징표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cpbc2015.06.19

신앙 교육, 가정·본당·학교 삼박자 맞아야 생활과 신앙이 일치하는 삶으로 완성가톨릭 청소년 사목 포럼 - 세계적 종교 교육학자 토마스 그룸 교수 초청 강연 15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청소년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가톨릭 청소년 사목 포럼에서 부모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백슬기 기자 청소년 사목의 화두 중 하나는 ‘신앙 교육’이다. 신앙이 빠진 청소년 사목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신앙을 심어줄 수 있을까. 특히 종교에 무관심한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이에 대해 세계적 종교 교육학자이자 가톨릭 신학자인 토마스 그룸(70, 미국 보스턴칼리지 신학대학원) 교수는 “삶과 신앙을 통합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룸 교수에 따르면, 가정에서 먼저 신앙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이 신앙 교육을 본당(사목자ㆍ수도자)과 학교(교사)에서 반드시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래야 가정에서 배운 신앙을 일상과 사회생활에서도 실천하는 ‘삶에서 신앙으로,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신앙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통합적 신앙 교육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 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온 그룸 교수가 11~17일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국장 양장욱 신부)이 그룸 교수를 초청, 2015 가톨릭 청소년 사목 포럼을 열고 그룸 교수의 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룸 교수는 일정 중 한국 교회 사목자들과 부모, 교사들을 만나 신앙 교육에 대한 통합적 접근법을 설명하며 구체적이고 다양한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신앙은 당연히, 저절로 미래 세대에 전해지지 않는다”면서 “본당, 가정, 학교가 연계하는 통합적인 신앙 교육, 평생 신앙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은 일방적 강의에 그치지 않고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취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본당 청소년 사목에서 신앙 교육의 새로운 비전그룸 교수는 14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 청소년회관 소극장에서 만난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부모는 씨앗을 뿌리는 복음의 주체”라고 강조하며 “본당은 부모들이 신앙의 씨앗을 자녀들에게 심어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그룸 교수는 “유아 세례식에서 사제들은 부모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자녀를 기를 것을 당부하며 촛불을 밝혀 나눠주는데, 대부분 사제는 촛불을 나눠주는 것으로 끝내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제들은 그 촛불이 계속해서 잘 탈 수 있게 부모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부모 교육의 구체적 방법 연구해야황병철(서울 옥수동본당 보좌) 신부는 “실제로 첫 영성체를 받는 학생들은 대단히 많은데 반해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학생 수는 훨씬 적다”며 (그룸 교수의 설명대로) “청소년 교육에 앞서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부모의 작은 습관조차 자녀에겐 신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그룸 교수의 설명에 공감한 황 신부는 “본당에서 부모 교육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연구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단발성 교육으로 그치지 말아야 김영민(브리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도 “본당 9곳을 다녀봤지만 부모들은 대부분 신앙과 삶이 따로국밥이었다”며 그룸 교수의 말처럼 ‘삶에서 신앙으로, 다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재교육을 통해 부모들이 신앙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김 수녀는 또한 “재교육은 특강 등 단발성 교육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신자의 의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깨닫고 신앙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날 그룸 교수는 사제들에게 교리 교육자로서 좋은 강론을 준비하기를 당부했다. 그룸 교수는 “많은 사제가 ‘오늘의 복음 말씀은 ~입니다’라고 강론을 시작한다”면서 “이 경우 3분만 지나면 신자들은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신자들 실생활과 관련된 질문으로 강론을 시작한다면 신자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라며 “그 성경 내용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신앙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부모를 대상으로 열린 토마스 그룸 교수의 강연은 15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2시간가량 서울 혜화동 가톨릭 청소년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자녀 신앙 교육을 위해 그룸 교수를 찾아온 부모들의 관심과 열성은 뜨거웠다. 그룸 교수는 ‘자녀의 신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바로 가정’이라는 명백한 주제를 종교교육학자가 아닌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풀어내 부모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룸 교수는 “얼마 전부터 무신론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14살 된 막내아들을 키우고 있다”면서 “입양한 아들인데, 입양한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고, 항상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는데도 그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룸 교수는 “청소년 시기는 원래 그런 것이고, 그런 청소년들에게 신앙 교육을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웃었고 부모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주고 행동으로 보여줘야그룸 교수는 “그래도 부모는 늘 기다려 주고 행동으로 끊임없이 신앙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일상에서 예수님을 느끼게 해주는 작은 행동들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학교나 학원에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자녀와 함께 잠깐이라도 기도를 바치거나, 잠자기 전 “하느님께선 너를 사랑하신단다”라고 얘기를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잘못했다면 얼른 “미안하다”고 말하고 가정 안에서 용서와 화해가 자연스러운 일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집에 십자가를 걸어두고, 눈에 띄는 곳에 성경을 놔두고, 성가를 틀어 놓는 것도 신앙 교육엔 큰 도움이 된다.예수 성가정에 대해 자주 들려줘라그룸 교수는 또 “예수님의 성가정에 대해 자녀에게 자주 들려주라”면서 “성가정을 닮기 위해선 부모가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부모들은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신앙 교육법을 배워 유익했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역시 부모가 먼저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중3 아들을 키우는 오지연(베로니카, 46)씨는 “아이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게 됐다”고 했고 4살과 9살 된 두 딸을 키우는 진장욱(세바스티아노, 39)씨는 “평소 성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하며 자녀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신앙 교육자의 사명16일 서울 가톨릭대 신학대에서 교사들과 만난 그룸 교수는 신앙 교육에서 ‘청소년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룸 교수는 “청소년기는 신앙과 멀어질지 또는 확고하게 자리 잡을지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시기”라며 “그렇기에 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스마트폰, 초고속 인터넷, 텔레비전 등이 등장한 현시대의 청소년 문화는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며 “청소년들이 그들의 갈망을 신앙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서울 혜화동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교감 이은주(체칠리아)씨는 “그동안 교사 입장에서 알려주고 싶은 것을 가르치고 교육했는데 그것이 좋지 않은 방법임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이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신앙으로 해소할 수 있게끔 이끄는 것이 교사 역할인 것 같다. 앞으론 아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자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근무하는 장보배(베로니카)씨는 그룸 교수에게 ‘부모들이 가라고 해야만 성당을 찾는 청소년들의 습관적 신앙생활의 해결 방법’에 대해 물었다.그룸 교수는 “10대 중반까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며 “어린이와 청소년은 ‘내 이웃을 사랑하라’와 같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시기이므로 ‘동생을 괴롭히지 말라’는 등 생활과 연관 지어 신앙을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 신앙을 이해할 수 없는 때이기에 부모를 통해 좋은 신앙 습관을 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그룸 교수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듯(루카 24,13-35) “청소년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신앙 이야기를 찾아 다시 자신의 삶에 적용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리 교육자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우리의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라고 했듯 청소년들 마음을 불탈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화신문2015.05.19

배론에서 혜화 성신교정까지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 160년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60주년 기념 미사 봉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5일 가톨릭대 성신교정 대성당에서 열린 개교 160주년 기념미사에 앞서 벽면에 걸린 기념 성화를 축복하고 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학장 백운철 신부)은 25일 서울 혜화동 성신교정 대성당에서 개교 16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서 발자취를 되새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미사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등을 비롯해 신학대 출신 사제, 수도자들과 신학생, 신자들이 참례했다.미사를 주례한 염 추기경은 “한국 교회는 신학교를 통해 혹독한 박해시기,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 혼란스러웠던 6ㆍ25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사제를 배출한 놀라운 은총을 체험했다”면서 개교 160주년을 맞도록 신학교를 돌봐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염 추기경은 또 “신학교 출신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하느님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신학교 졸업생들이 새로운 복음화에 힘을 모으기를 당부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축사에서 “올해는 신학교 개교 160주년이면서 한국의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사제 수품 170주년이 되는 해”라고 설명하면서 “신학생들은 우리 각자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착실하게 사제서품을 준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신학생들이 신학교에서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루고 복음의 기쁨을 체험해 우리 교회의 튼튼한 대들보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파딜랴 대주교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신해 축하 인사와 교황 축복을 전했고,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도 축사를 보내왔다. 한편 이날 미사 시작 전 염 추기경은 교구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가 제작한 신학교 160주년 기념 성화를 축복했다. 신학대 대성당에 걸린 성화는 성경을 들고 있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성 김대건 신부, 오른쪽에는 최양업 신부가 그려져 있으며 두 신부 사이로 1855년 초가집으로 지어진 신학교 모습이 담겨 있다.가톨릭대 신학대학은 185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육을 시작한 배론의 성요셉신학교를 모태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1885~1942), 경성천주공교신학교(1945~1947), 성신대학(1947~1959), 가톨릭대학(1959~ 1992)을 거쳐 현재의 가톨릭대 성신교정으로 발전했다.글·사진=박수정 기자 catherine@ 평화신문2015.05.27

하느님 일 열심히 하는데 마음은 왜 허전할까추교윤 신부, 신앙생활 핵심인 하느님과 관계 맺기로 신자들 안내 내적인 삶으로 초대추교윤 지음/가톨릭출판사/1만 2000원A씨는 주일 미사에 빠진 적이 없다. 손엔 늘 묵주를 달고 살며 본당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흔히들 말하는 ‘열심한 신자’의 대표상이다. 하지만 추교윤(의정부교구) 신부는 자신의 책 「내적인 삶으로 초대」에서 이렇게 되묻는다.“미사에 열심히 참례하고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 봉사 활동에 충실하다고 해서 열심인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이건 또 무슨 말씀인지. A씨 같은 사람이 열심인 신자가 아니면 누가 열심인 신자란 말인가. 추 신부는 설명을 덧붙인다.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 보면, 열심히 활동하는 신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조금 허전합니다. 미사 참례는 물론 기도와 봉사 활동에도 성심을 다하는 분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하느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추 신부는 베트남 우엔 반 투안 추기경(1928~2002)의 말을 빌려 신앙생활을 할 땐 ‘하느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 투안 추기경은 베트남 공산 정권 탄압을 받아 1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가 옥중에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가 바로 ‘하느님 일’과 ‘하느님’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학생과 수도자를 양성하는 일, 신자들을 방문하는 일 등은 모두 훌륭한 하느님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느님이 될 수 없다는 통찰이었다. 이처럼 저자는 신앙생활에서 외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보다 하느님과 관계 맺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의 핵심인 하느님과 관계 맺기로 신자들을 안내한다. 영성 생활, 즉 ‘내적인 삶’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를 받았는데, 무작정 갈 수는 없는 법. 준비가 필요하다. 내적인 삶을 위한 준비로는 ‘하느님 현존 의식의 일상화’가 우선이다. 쉬운 말로 풀자면 매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늘 의식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고독과 침묵과 친해져야 한다. 또한 향주덕 믿음(信), 희망(望), 사랑(愛)을 내적인 삶으로 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기도와 전례, 성사 역시 내적인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추 신부는 성경 말씀과 여러 성인들, 교회 영성가들의 체험과 증언을 펼쳐 보인다. 20세기 최고 영성가 토머스 머튼,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십자가의 성 요한 등 영성 생활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회 인물들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하느님께 좀더 쉽게 다가가는 길을 알고 싶어, 지난 몇 년 동안 교회 내 다양한 가르침을 탐독했다는 추 신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내적인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영성 생활의 정점이라 하는 ‘내맡기는 신앙’에 다다르게 된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만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요한 세례자의 고백과도 일맥상통한다. 추 신부는 “내맡기는 신앙에 이르게 되면 우리 신앙생활은 그분이 주시는 은총으로 가득하게 된다”면서 “신자들이 그러한 내적인 삶의 즐거움을 즐기며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07.16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3>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3346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억척 꼬마 심부름꾼서철순은 1859년 처가가 있는 대구로 두 아들을 데리고 이사했다. 정착한 곳은 대구성 남문 밖 뽕나무골 부근이었다. 남문 밖 앞밖거리(현재 계산동)라는 상설시장을 끼고 있으며 5일마다 성시되는 큰 장(현재 동산동 일대) 입구로 각처의 상인 출입이 빈번한 장소였다. 앞밖거리는 동네 사람 대부분이 봇짐장수 등짐장수를 해서 먹고 사는 동네였다. 서상돈은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뼈가 굵었다. 그는 쫄래쫄래 그들 뒤를 따라다니며 장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면서 자랐다. 고난을 딛고 점포 심부름꾼으로 상돈에게 첫 번째 불행이 찾아들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형제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1859년 서상돈은 그의 나이 9세 때 소년가장이 된 것이다. 대구는 조선 후기 이래 낙동강을 배경으로 경상도 내륙 지방의 상업 중심지 성격이 강했다. 이런 배경에서 대 상인층의 형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부잣집의 빨래며 찬모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손등은 거북이처럼 굳었고 싯누런 쇠못이 박혀 있었다. 여자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상돈은 언제까지나 어머니께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어서 돈을 벌어 고생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 상돈은 불과 13세에 외할아버지 김후상의 도움으로 한 가게에 취직했다. 일이 다 결정된 후 상돈은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어머니. 이제부터는 제가 돈을 벌어 올 테니 어머니는 그저 편하게 사세요.” “상돈아. 아직은 에미가 일 할 수 있느니라.” “아니어요. 이미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취직한 걸요.” “취직? 네가?” “네. 어떤 점포에 심부름꾼으로 들어갔어요.” 어머니는 상돈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실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년은 앞밖거리의 한 점포에 심부름꾼으로 취직했다. 그는 성실하고 진실한 심부름꾼이었다. 점포 주인들은 상돈을 “억척 꼬마 심부름꾼”이라 부르며 대견해 했다. 주인은 무척이나 그를 신뢰했으나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최동철은 늘 그를 시기했다. 사사건건 상돈을 눈엣가시처럼 미워하던 최동철은 기회를 보아 상돈을 모함했다. “일전에 수금한 돈을 슬쩍 빼돌리는 것 같아 요.” “동생에게 과자를 사주는 것을 보았어요.” 처음에 주인은 최동철의 거짓말에 반신반의했으나 모함이 계속되자 상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늘 보세요. 그놈은 틀림없이 수금을 떼먹고 도망갈 거예요” 끝내 상돈의 정직함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는 마음 깊이 상처를 입었다. 세상이 무서웠으나 어머니는 최동철을 용서하라고 그에게 일렀다. “네게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너의 스승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느냐?” 그는 이때부터 행상을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남의 심부름만을 해주면서 돈을 벌 수는 없었다. 장사를 시작하려고 해도 그에게는 밑천이 없었다. 하지만 상돈은 타고난 장사꾼이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 밑천이 없는 그는 동생 상정을 대신 가게에 맡겼다. “상정아. 형아 믿지? 형아가 후딱 이것들 팔고 우리 상정이 데리러 올게.” “알았어. 형. 걱정하지 마.” 점포 주인들은 억척 심부름꾼이던 서상돈에게 기꺼이 물건을 내주었다. 그는 동생 상정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물건을 팔았다. 그렇게 해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장사할 밑천도 벌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도 보부상으로서 클 기회가 왔다. 1868년경 그의 나이 18세쯤이었다. 이는 대구천주교회 원로회장 서용서(김수환 추기경의 외할아버지)의 후원과 보부상의 거두인 최철학의 지원, 그리고 외사촌형 김종학 등 천주교인들의 후원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취급 품목은 소금·건어물·일용잡화 등으로 아직은 재래시장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삽화 문채현 봇짐장수와 등짐장수 조선 시대 상인이라 하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보부상을 빼놓을 수 없다. 보부상은 장돌뱅이, 장도림, 장꾼, 항아장수, 봇짐장수, 등짐장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바빴다. 직업의 특성상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병들거나 죽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처지였다. 때문에 이들은 일찍부터 임방을 만들어 자신들끼리 힘을 합쳤고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의 상단을 형성했다. 이제는 버려진 말처럼 된 ‘동무’라는 말도 원래는 보부상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보상은 정교하고 비교적 값이 비싼 잡화 등속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혹은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시장 혹은 농촌 가옥 마루에 보자기를 끌러놓고 판매하였으므로 일명 ‘봇짐장수’라고도 하였다. 이에 비해 부상은 주로 조잡한 일용품을 취급하였는데, 재래의 농업 생산을 주로 하는 사회에서의 유치한 가내수공업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녔으므로 속칭 ‘등짐장수’라고 불렀다. 질을 걷네 질을 걷네/ 등금장사가 질을 걷네/ 날이 났네 날이 났네 등금등금 날이 났네/ 밭을 매네 밭을 매네/처녀 다섯이 밭을 매네/ 날난신을 다지나 팔아/ 처녀 다섯을 사가지고/ 삼으리라 삼으리라 예수님이 앞장서고 상돈이 뒤따르니 위 노래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서 밭을 맬 때 부르는 노동요의 일부다. 1994년 창원군에서 발행한 「창원군지」 1669~1670쪽에 실려 있는데, 최재남이 1994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에서 박경님(여, 85)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혜상공국서」에 의하면 세상 안에 지극히 미천하고 누추하여 살아서 이익 없고 죽어도 손해 없는 자가 보부상이다. 오죽하면 밭매는 사람이 종놈으로 삼겠다고 할까. 보부상이 되는 사람들은 살아서 이익 없고 죽어도 손해 없는 자들이다. 보부상이 되는 계층은 먼저 농민 중 생활고로 토지에서 이탈된 자들이다. 상돈이 등짐장사를 하면서 걸었던 그 길들. 그 길 어디에나 예수님이 앞서 걸으셨다. 봉놋방에서 눈을 뜨면 서상돈은 가장 먼저 어머니를 생각했다. 새벽이면 일어나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성스러운 모습을. 그 모습은 그의 뇌리에 각인되다시피 했다. 그 때문에 상돈은 어떤 유혹에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이면 항상 성경을 읽으셨다. 상돈은 어머니가 어디쯤을 읽는지 잘 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 상돈은 어렴풋이 어머니의 성경 읽는 소리를 새 소리와 함께 들으며 뒤척거렸다. 곧 뒤이어 어머니가 그들 형제를 잠에서 깨우신다. 아침기도 시간이었다. 상정은 투덜거리면서도 부엌으로 나가 “엇! 추워! 엇! 추워!” 하면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기도하기 위해 앉곤 했다. 아버지는 벌써 큰 집에 가서 할머니께 아침 문안을 드리고 돌아오신다. 상돈은 온 가족이 둘러앉는 아침의 이 기도 시간을 사랑했다. 매일 아침의 기도 시간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가슴이 무언가로 충만해지곤 했다. 예수님이 그의 길을 인도해주시리라는 것, 그 믿음은 평생 그를 지켜준 힘이었다. <계속> 백영민2015.07.22

나부터 ‘답게’ 살겠다는 정체성 확립 계기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는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가 마련한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는다’에서 발제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세월호 참사 1년을 넘긴 이 시기,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에 대처하는 국가와 사회 모습에 여전히 다양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이상요)가 주관해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5회 가톨릭 포럼 ‘세월호 참사 1년, 한국 사회 길을 묻는다’에서다. 포럼은 대형 참사에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세월호 참사의 사례를 들어 함께 고민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김문태(힐라리오,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와 답게 사는 길’이란 주제 발표에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고,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지는 가운데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이기주의와 무사안일,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최악의 인재였다”며 “물질 만능과 무한 경쟁시대에서 타인을 적대시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김 교수는 “나 자신부터 각자 자리에서 ‘답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을 베푼다면, 생명의 문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톨릭 신앙 공동체는 특히 이웃에 대한 편협함을 깨고 봉사와 헌신으로 공동선 증진과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가톨릭 교회 대응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김근수 가톨릭프레스 편집인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미사, 기도 등 보이지 않게 애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신자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면서 “사회교리와 성경 공부에 더욱 매진해 불의를 피하지 않는 교회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세월호 유가족, 팽목항 현장에서 아픔을 함께한 전문가의 발언도 이어졌다.고 박성호(단원고) 학생 어머니 정혜숙(체칠리아)씨는 “이번 참사는 수많은 개개인이 연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고, 그 연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가는 쉽게 변화하지 않고 제시되는 실천 덕목들도 개인의 성찰에 국한돼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최호선(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참사 당시 팽목항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수습해 정성스럽게 모시고 유가족에게 인도해드리는 작업에 함께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공무원 여럿이 시신의 사진과 영상을 마구 찍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면서 “합리성과 체계를 갖춘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유가족들의 내적인 치유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날 포럼에 참석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격려사에서 “1년 전 바닷속으로 침몰한 건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믿음의 가치 또한 침몰했다”며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 참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시대에 보여주시는 징표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