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10> “이집트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3884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이집트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모압 평야에 이르는 과정 보여주는 민수기,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불신, 믿음 강한 칼렘과 여호수아만 안식처 들어가 광야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향한 불신을 드러냈고, 결국 그들의 대부분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았다. 사진은 시나이 광야 체험을 하는 순례객들. ‘광야에서’. 이것이 민수기의 히브리어 제목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의 전부는두 명만 제외하고 모두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민수기에서는 아직 시나이에 머물던 이스라엘이 준비를 갖춘 다음 광야를 거쳐 모압 평야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의 불평이 반복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없고 외적에 맞서 싸워야 하고 앞길도 불확실하며 언제 가나안 땅에 도착할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백성은 그저 모세에게 찾아가 불평할 뿐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때로는 힘이 겨워 모세 자신도 하느님께 탄원하고,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응답하십니다.시나이 산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시나이 산까지 광야를 거쳐 왔습니다(탈출 16─18장).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탈출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석 달 만 시나이 산에 도착했다고 되어 말합니다(탈출 19,1). 그때에도 어려움은 적지 않았고, 그때에도 백성은 불평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의 이스라엘은 이미 탈출기의 이스라엘과 다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탈출 19─24장)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게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의 불평은 단순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불신의 표지로 나타납니다. 탈출기에서와 달리 불평에 대하여 하느님의 처벌도 뒤따릅니다.불신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민수 13─14장의 가나안 정탐입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한 것 자체는 하느님의 명으로 이루어진 일로 나타납니다(민수 13,1-2). 그 열두 명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과 주민들을 살펴봅니다.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열 명은, 그 땅의 주민이 우리보다 강하여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민수 13,31). 칼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으로 가자고 하지만, 백성들은 주저앉아 아우성치고 통곡합니다(민수 14,1).그들은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면,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로마 4,21)하였다면, 그 땅 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러 모리야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었다면, 아브라함처럼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6) 오히려 그 좋은 땅을 보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 믿음이 없었기에 군사력을 비교하고는 절망에 빠집니다. 약속을 신뢰하기보다, 우리의 힘으로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민수 14,2). 그들은 광야에서 칼에 맞아 죽느니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민수 14,3). 하느님의 약속은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갖게 하지 못합니다.결과를 놓고 보면, 이 말을 한 사람들은 실제로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바라지 않던 결과를 맞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믿지 못했으므로, 약속을 믿었던 칼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광야에서 죽고 그 다음 세대가 비로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의 말대로,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은 아닐까요?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계속 종살이를 할 것인가 아니면 광야에 나가서 죽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종살이를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능한 선택은 오직 두 가지였습니다. 이집트를 떠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그 도중에서 죽거나. 이집트 땅의 종살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계획을 벗어나 있는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기차가 선로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선로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돌려 놓으려고 애쓰다가 끝까지 실패하거나 옆으로 넘어갈지언정,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가야 합니다.끝까지 가거나, 도중에 죽거나. 끝까지 갈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민수기에 따르면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광야는 그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움 없이 드러냅니다. 안정된 정착 생활이라면 불안을 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자신의 불신을 감출 수 없는 장소입니다. 순간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피나는 노력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입니다.성경은 우리에게도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은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광야가 이집트와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 중간의 장소였듯이 우리도 완성된 세상을 향한 여정의 순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95,7-8에서는“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이라고 일깨웁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한다면 우리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4,11). 백영민2015.02.04
![[복음 이야기]<8>팔레스티나 기후](//cpbc.co.kr/CMS/newspaper/2014/03/rc/499152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팔레스티나 기후일교차 최대 40도, 날씨 기복 심해 성경의 땅 팔레스티나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대이다. 사진은 3월 늦은 비가 내린 봄날,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이스라엘 평원. 평화신문 자료사진 성경의 땅 팔레스티나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 지대다. 다니엘 예언서 3장에 나오는 '세 젊은이의 노래'에서 처럼 '추위와 더위, 이슬과 서리, 비와 바람, 얼음과 눈' 등 대조가 심한 기후대이다. 성서학자 다니엘 롭스는 팔레스타인 지대의 하루 일기를 "새벽의 갖가지 색조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황혼은 짧고 거의 순간적이다. 왜냐하면 태양이 지평선 저쪽으로 떨어지자마자 암흑이 대지를 뒤덮기 때문이다. 밤은 놀라울 만큼 장엄한 기운에 싸이고, 칠흑의 하늘에는 별이 가득해 산상에는 마치 빛의 안개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했다. 이 지역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있으나 통상 두 계절로 나눈다. 긴 여름과 겨울이다. 그 중간 시기는 극히 짧다. 3월이면 온갖 식물이 일시에 자란다. 아주 메마른 땅이라도 몇 주간은 푸른 주단으로 뒤덮인다. 대지는 튜울립과 야생 당창포(글라디올러스), 붉은 바람꽃(아네모네) 등으로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봄의 비옥한 대지는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여온다오.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아가 2,11-13)라고 노래한 표현 그대로다. 하지만 대지의 일교차는 엄청 심하다. 정오와 한밤중의 기온차가 40℃까지 차이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유다인 율법은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은 외투를 저녁에는 채무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자연의 기복으로 인한 계절 차이도 크다. 겨울철 예루살렘 성전 앞뜰에 무릎 꿇은 경건한 예배자들이 계절풍으로 얼음처럼 찬 비를 맞을 때, 불과 40㎞ 떨어진 예리코의 부자는 아마포 옷을 입고 지낸다. 예루살렘과 예리코는 무려 1000m가 넘는 고도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에도 4월의 어느 날 밤 베드로가 예수님의 소식을 알기 위해 대사제 카아파의 집 안뜰에 들어가 불을 쬐고 있었다(마르 14,67)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바람도 이스라엘의 기후 변화에 큰 작용을 했다. 가을에는 서풍과 남서풍이 불어 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산들바람인 이 바람을 유다인들은 '주님의 입김'이라 불렀다. 겨울에는 차고 건조한 동풍 '카딤'이 불어 기온을 일시에 10℃나 떨어뜨린다. 이 바람이 헤르몬 산에서 갈릴래아 호수로 불어 내릴 때는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해 무서운 풍랑을 일으킨다(마태 8,23-27 참조). 이보다 더 나쁜 바람이 봄에 이집트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캄신'이다. 우리나라의 황사같은 이 바람은 하늘을 잿빛으로 변하게 하고 모든 밭이 머금고 있던 수분을 일시에 앗아간다. 강수량은 연평균 420㎜. 갈릴래아 산지는 600㎜가 내려 지중해 다른 지역들보다 많은 비가 내린다. 하지만 이 대부분이 우기인 10월부터 3월 사이에 내린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마태 7,27)는 복음서의 서술처럼 우기 때 내리는 비는 마구 쏟아지는 폭우이며,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을 떠내려 보낼 만큼 순식간에 홍수를 이룬다. 비 중에 가장 달가운 비는 봄에 내리는 '늦은 비'이다. 이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끝이다.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초막절 축제 마지막 저녁에 언덕 또는 지붕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의 연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관찰했다. 그 방향에 따라 그 해에 비가 많이 내릴지 그렇지 않을지를 점쳤다. 서풍이 불지 않는 협곡 저지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이용할 수 있는 물은 요르단 강물이나 샘물뿐이었다. 성경에 물에 관한 시가 유독 많은 것처럼 유다인에게 '물'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생수'에 비유하셨다(요한 4,10-14). 건조한 기후라 물이 귀해 유다인들은 사람과 가축을 위해 또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우물을 파고, 또 샘물이나 강물을 마을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됐다. 마을마다 '샘의 주인'을 정해 관리했고, 그들이 정해진 시각에 우물 뚜껑을 열면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급히 달려가곤 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3.04
![[수품성구와 나]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669_1.0_titleImage_1.jpg)
[수품성구와 나]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시편 42,2) "끊임없이 기도하며"(1테살 5,17) 나의 사제수품 성구는 시편 42편에서 인용한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이고, 주교수품 성구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5장 17절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를 약간 변경시킨 "끊임없이 기도하며"이다. 나는 사제품 받는 이들이 상본을 만든다는 것을 사제품 받기 한 달 전에야 알았다. 상본에 성구를 넣는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나는 '성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건 주로 성경구절을 의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늘 생각했고, 거기다가 여러모로 부족함을 지닌 나에 대해 걱정해 왔기에, 그 부족함들을 극복하는 길은 기도와 하느님 말씀이라고 보고, 즉시 기도와 관계된 성경구절을 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도원에 입회하자마자 체험하게 된 새로운 것은 수도원에서 매일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고, 하루에 네 차례 바치는 시간경(성무일도), 곧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그리고 끝기도에 참여하고, 아침과 저녁 묵상시간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시간경을 바치기 시작하면서 성무일도에는 시편기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시편 가운데 몇 개 구절이 매우 좋았고 그 구절들은 내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이며, 내가 사제품 받은 후 첫 미사를 위해 만든 상본에 실은 성구도 바로 그 구절 중 하나였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 사제들을 위한 성령쇄신묵상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묵상회에 함께 참석하신 서울대교구의 김 모 신부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 신부님은 대뜸 나에게 "신부님은 사제품을 받을 때 만든 상본에 무슨 성구를 적어 넣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시편 40편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가 좋아 그 구절을 성구로 삼았습니다" 하니, 그 신부님은 "아이고, 그런 구절을 택하셨으니 수도원에 들어가셨지. 나는 병과 관련된 성구를 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병에 잘 걸립니다. 이상하게도 성구에 적어 넣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 신부들에게도 무슨 성구를 썼는지 물어보는데, 그 성구대로 그들 삶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나는 가끔 혼자 "그래, 그 신부님이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나보고 기도 더 많이 하라고 수도원으로 보내셨다" 하고 중얼거렸다. 2010년 7월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받았을 때,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주교 문장을 만들어야 하고 그 문장에다 역시 성구를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훌륭한 화가이자 고등학교 선배인 이종상 화백께서 내 기대에 흡족한 주교 문장을 디자인해주셨다. 문제는 어떤 성구를 넣느냐였다.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성경말씀을 하나 택해 약간 변형을 시켜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는 나의 전임이신 이기헌 주교님께 갖다 보여드렸다. 주교님이 읽으시더니, 잠시 침묵하신 후 "성구 문장이 좀 긴 것 같습니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구절을 포기하고 이틀 정도 고민하며 새 성구를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평소에 가끔씩 되새기는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5장 17절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가 떠올랐다. 우선 짧아서 좋았다. 그런데 '이 구절이 마치 내가 기도를 대단히 많이 하는 사람인 척하는 인상을 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 여유도 없고 또 다른 성구도 떠오르지 않아, 이 구절을 약간 변형해 "끊임없이 기도하며"로 정했다. 그러던 어느날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사제품 때의 성구인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워하나이다"를 읽게 됐을 때, 문득 내 마음 안에서 '아, 나의 사제품 성구도, 주교품 성구도 모두 기도에 관계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기도의 삶에 더 충실하자. 기도로써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기도로써 더 변화되는 삶을 살자'는 희망 어린 결심을 하게 됐다. cpbc2014.04.10
"예물을 바치기에 앞서 형제와 화해하라"서울평협, '천주교 화해중재원' 발족 추진… 대화ㆍ타협 통해 분쟁 해결 심각한 분쟁을 겪고 있는 신자들이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중재에 나서 화해하도록 돕는 기관이 교회 내에 설립된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이달 말쯤 설립하는 '천주교 화해중재원'(가칭)은 신자들 사이에 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으로 해결하기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에 앞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마태 5,24), 또 '교우끼리의 송사는 성도들에 가서 해결하라'(1코린 5,1-11 참조)는 성경 말씀을 실제 생활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지않은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툼과 갈등으로 민사소송이 벌어지면 원고와 피고 모두 힘들고 지루한 싸움(재판)을 해야 된다. 특히 패소자는 심각한 정신적ㆍ물질적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천주교 화해중재원의 중재로 판사의 판결 전에 화해가 이뤄지면 갈등 당사자들이 불필요한 소송 비용을 쓰지 않고 정신적 피해도 최소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평협은 권길중(바오로) 회장을 이사장으로, 법조계와 교육계, 언론계 등 각계 인사 50여 명을 조정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위원 인선을 마무리하는 대로 천주교 화해중재원을 사단법인으로 대법원에 등록, 법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화해중재원은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업무협약을 맺어 천주교 신자가 관련된 사건을 넘겨받아 화해 중재 활동을 펴게 된다. 화해중재원은 화해 중재 업무 외에도 법률문제 상담, 갈등 중재기법 연구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현재 종교계에서는 개신교에서 기독교화해중재원을 운영하고 있다. 화해중재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선한승(바실리오, 한국사회노동연구원장) 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 연구위원은 "천주교 화해중재원 설립은 교우들간 송사를 법정으로 갖고 가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우리 평신도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법적 판결 전에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화해와 용서라는 복음 정신을 확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평협은 24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가톨릭센터 1층 대회의실에서 '천주교 화해중재원 발족 기념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날 토론회는 '법원 조정제도의 의의와 성과'를 주제로 한 이영진(야고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기조강연과 선한승 위원의 주제발표, 종합토론으로 이어진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4.04.10

순교 원천적 힘으로서의 ‘믿음과 사랑’ 유수일 주교(군종교구장)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순교자 현양 특강 유수일 주교 제 삶을 돌이켜볼 때, 가장 고맙고 가장 중요한 추억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됐고, 이 믿음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당신께 대한 믿음을 얼마나 많이 자주 요구하시는지를 발견합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주님이 카파르나움에 계실 때, 동네 사람 넷이 한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실어 주님을 찾아갑니다. 동네 사람들은 힘들게 주님이 계신 곳에 왔지만,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내 이 중풍 병자를 내려보내 주님으로부터 병치유와 구원이라는 두 은혜를 얻게 됩니다. 아마 주님도 이들의 믿음의 정도를 알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그들의 마음 자세를 ‘믿음의 자세’로 고마워하시며 죄의 용서, 곧 구원을 은혜로 베푸시고 치유의 은혜도 베푸셨습니다.믿음이 주님을 감동하게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마태 15,21-28) 이야기에서 여인이 더러운 영으로 고통받는 딸의 치유를 위해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변은 의외로 부정적이고 심지어 모욕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 말에 주님은 여인의 믿음과 겸손에 감동하시며, 큰 소리로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저는 네 복음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토록 칭찬하시는 것은 처음이라고 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하는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해 우리 순교자들을 바라보시면서 같은 감동의 말씀을 하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아, 한국의 순교자들아! 너희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믿음은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해줍니다. 내가 누구를 믿기 시작할 때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지요. 사랑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믿음이 올 수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는 먼저 믿음을 가지면서 사랑을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자연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주 창조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드러났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저지르는 죄를 꾸짖으시고 때로는 벌을 내리면서도, 인간을 변함없이 그리고 무한히 사랑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마침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지상에 보내심으로써 더욱 분명히 그리고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활과 수난 및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 순교자들에겐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백영민2014.10.0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6>“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897_1.1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하느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믿음렘브란트, ‘아브라함의 제사’, 1635, 캔버스 유화,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떠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창세 11,27-32에는 테라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가득 채워진 모습이 아닌 텅 빈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고 되어 있고(창세 11,30),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지만 하란에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창세 11,31).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땅도 없고 후손도 없는 처지입니다. 빈손인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떠나라고,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 12,1-2). 사라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일 바에야, 무슨 희망을 가지고 땅을 찾아 떠납니까? 그런데 하느님은 후손을 먼저 주시고 그 후손에게 땅이 필요하니 다른 땅을 찾아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던 곳을 떠나면 그곳에서 많은 후손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 이후의 역사가 펼쳐지지 않습니다. 창세 12-50장에서 계속되는 성조사의 핵심은 그 약속이고, 약속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곧 길을 떠나 가나안까지 갔지만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에 벌어집니다(창세 22장). 약속이 성취되려면 이사악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악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가르의 아들 이스마엘이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를 바랐었고 그에게라도 희망을 걸려고 했지만 굳이 하느님께서 사라에게서 태어난 아들에게서 그의 후손들이 이어지리라고 다짐하셨었습니다(창세 17장).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외아들을 바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더 큰 문제는 이사악에게 약속이 걸려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입니다. 이사악을 죽이면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사악을 죽이라고 하신다면 당신 스스로 약속을 위험에 처하게 하시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로마 4,21).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믿습니다. 후손의 약속은 꼭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악을 꼭 살려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것은 하느님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면, 아무리 약속을 위협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따릅니다. 어떤 길을 통해서든 하느님께서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야훼 이레’, 주님께서 마련하신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듯이, 야곱도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요셉도 이집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대로 반복되어 온 떠돌이 삶, 그것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였고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그 떠돌이 삶 속에서 성조들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들도 겪습니다. 나중에는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에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온 형들을 만나게 되고, 이스라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창세 37-50장). 그런데 그 마지막에 이르러,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요셉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50,19-20). 인간들의 손으로 엮어진 사건들 안에서 요셉은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이집트에 내려오게 된 것도, 지금 이스라엘 집안이 같이 내려오게 된 것도 이 백성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집안을 찾아오시어 그들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라고 믿으며 그때에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이 유언은 성경의 중요한 단락들에서 기억됩니다. 탈출 13,19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는 순간 모세는 그 유언을 기억하며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 24,32에서는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가 모두 끝나고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것을 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요셉의 유골을 스켐에 묻었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요셉 이야기는 거기서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빈손으로 약속을 붙잡고 살았던 이들, 그들이 성조들이었고 이스라엘은 이러한 성조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기원과 신앙의 기원을 설명했습니다. 조상들의 믿음에 대해 말하는 히브리서 11장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히브 11,13.16). cpbc2015.01.07
![[생활성가를 만나다] 장환진 요한 사도](//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54_1.0_titleImage_1.jpg)
[생활성가를 만나다] 장환진 요한 사도끼와 재능 넘치는 15년차 전천후 노래꾼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씨가 자신의 앨범을 들어보이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이정훈 기자 “새 앨범은 중ㆍ고등학생들이 직접 작사한 특별한 음반이에요. 함께 만든 음반이라 더욱 뜻깊은 작품이죠. 너무 행복해요.”까만 선글라스에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흩날리는 옷, 게다가 한순간도 미소 짓지 않는 때가 없는 ‘행복지기 요한’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요한 사도)씨가 오랜만에 새 앨범을 들고 나왔다. 앨범명 「행복을 찾는 젊은이의 희망 이야기」. 자신이 진행한 피정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종이에 빼곡히 적어 낸 꿈과 희망을 모아 그가 곡을 입힌 색다른 앨범이다. 청소년들이 썼으니 또래에겐 더욱 와 닿을 곡들이다.“노래를 부른 지 벌써 15년째입니다.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가끔은 지칠 때가 있었는데, 올해 어느 때보다 큰 힘을 얻었어요. 대전 솔뫼성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미사 전 공연에서 저를 향한 수많은 이들의 외침을 들었거든요. 군부대와 여러 성당에서 만났던 청년들이 ‘환진이 형!’하고 부르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자고 다시 다짐한 순간이었죠.”그는 2001년 춘천교구 철원본당 청년들이 꾸린 성가 그룹 ‘꿈(Cum)’으로 PBC창작생활성가제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의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상경한 깡촌 시골뜨기들이 벼락처럼 나타나 상을 탄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2003년부터 10년간 PBC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사랑의 노래 찬미의 노래’를 진행하며 전국의 수많은 청취자를 생활성가의 매력으로 끌어들였다. 특유의 입담, 재치와 함께 즐겁게 성가도 불러주고, 수많은 애청자의 고민까지 들어주니 유머와 성가에 목말랐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함께한 것이다. 그는 밝고 맑은 음성이 담긴 1ㆍ2집 음반 외에도 여러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라디오 진행에, 군부대, 훈련소까지 전국을 다니다 보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저를 알아보는 이들을 만납니다. 오래전 군부대에서 만났던 훈련병을 최근 우연히 지방 공연에서 만났는데, 저 덕분에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다고 고맙다며 글쎄 봉투까지 내미는 거예요. 자기 마음이라며…. 곳곳에 이처럼 숨은 인연들을 만날 때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그의 스케줄은 고정된 것만 11개다. 육군 제6사단 청성본당, 춘천2군단 등 군부대를 비롯해 부산과 인천 등 지역과 장소를 불문하고 ‘장환진’의 이름을 내건 공연과 피정이 이어진다. 전날 저녁 공연을 끝내고 다음 날 아침 스케줄이 이어지는 날이면 잠도 못 자고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다. 5년 전부터는 PBC창작생활성가제 출신 후배들을 불러 모아 결성한 그룹 ‘J-Fam(Jesus Family)’과 함께하고 있다.그는 “음악이 흐르는 전례, 즐겁게 찬양하며 미사 드리기, 형도 오빠도 아닌 친구가 돼주기를 늘 염두에 둔다”면서 “그러려면 성경도 익히고, 진행력도 키우고, 물론 노래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 전천후가 돼야 한다”고 했다.“제겐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일상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예수가 돼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가를 노래하는 저희는 가톨릭 이념으로 사는 선교사입니다. 희망을 노래해 주고, 같이 아파해주러 또 다녀야죠. 저와 주님, 사람들과의 약속이니까요.”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4.10.14

성서주간/ 1790년, 하느님이 우리말을 시작하시다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위쪽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한글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성경직해」, 「성경광익」, 「사사성경」, 한국교회 공식 성경인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공동번역 성서」. 성경 없는 그리스도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성경이 한글이라는 우리말 옷을 입은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성서주간(25일)을 맞아 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를 짚어본다. 변변한 성경 없이도 신앙만큼은 더 없이 철저했던 선조들을 함께 떠올리면 좋겠다. ▨ 「성경직해광익」과 「성경직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처럼 성경 역시 중국을 통해 전해졌다. 다시 말해 초창기 한국교회 한글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신ㆍ구약 성경이 한꺼번에 번역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한글 성경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미미한 분량이었고, 그나마 온전한 성경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우리나라 최초 한글 성경은 1790년대 초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펴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성경직해광익」은 디아즈(예수회)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마이야(예수회) 신부가 1740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취합해서 한글로 옮긴 책이다. 중국에서 한문으로 쓰인 두 책은 주일ㆍ축일의 성경 본문, 본문 주해, 묵상, 실천 덕목 등을 종합적으로 담았다. 한글 신약성경의 효시가 되는 「성경직해광익」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거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다. 수록된 성경 본문은 신약성경 4복음서의 30% 분량이었다. 1890년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성경직해광익」을 「성경직해」로 이름을 바꿔 서울 성서활판소(가톨릭출판사 전신)에서 9권으로 간행했다. 「성경직해」는 1930년대까지 판을 거듭하면서 신자 애독서로 자리 잡았다. ▨ 「사사성경」과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 4복음서의 완전한 번역은 1910년에 이뤄졌다. 손성재 신부와 한기근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복음서를 번역한 것으로, 「사사성경」(四史聖經)이라 불린다. 번역 대본은 당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라틴어(불가타 역본) 성경으로, 한국교회 첫 번째 한글 4복음서다. 한기근 신부는 1911년 사도행전을 우리말로 옮겼고, 조선교구는 1922년 이를 「사사성경」과 합쳐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으로 발간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1935년 신약성경 나머지 부분 번역을 덕원 성분도수도원에 맡겼다. 수도원 소속 슐라이허 신부는 라틴어ㆍ그리스어 성서를 토대로 바오로 서간 14편, 기타 서간 7편, 요한묵시록을 번역한 뒤 이를 묶어 1941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으로 발행했다. 이로써 신약성경 전 권이 완역된 것이다.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과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은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교회(가톨릭) 유일한 신약성경으로 사용됐다. ▨ 구약성경 번역 구약성경 번역은 신약성경에 비해 매우 늦게 진행됐다. 구약성경 번역에 처음 손을 댄 이는 선종완 신부다. 가톨릭대 성서학 교수였던 선 신부는 히브리 성서에서 번역한 구약 낱권 14권을 1958~1963년에 펴냈다. 한국교회 첫 구약성경 번역이다. 이어 최민순 신부가 시의 운율을 살린 「성경의 시편」을 1968년 냈고, 서인석 신부는 「호세아ㆍ미카」(1977년) 등 소예언서 11권을 번역, 출간했다. 구약 전체가 번역된 것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온 1977년의 일이다. ▨ 「공동번역 성서」 196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성서 공동번역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듬해인 1969년 1월 가톨릭ㆍ개신교 성서학자들이 공동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를, 1977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서」(개정판)와 구약은 물론 구약의 외경까지 포함한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하게 됐다. 한국교회가 성경 전서(全書)를 갖기는 「공동번역 성서」가 처음이다. 「공동번역 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추진한 교회일치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지닌다. 공동번역의 가장 큰 장점은 직역보다 의역에 초점을 맞춰 이전의 어떤 한글 성경보다 읽기가 편한 현대문이라는 점이다. 반면 의역에 치중한 까닭에 직역이 필요한 성서 공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번역 성서」는 개신교 측으로부터 외면을 받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했다. ▨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한계를 느낀 가톨릭 측 성서학자들은 1974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지원을 받아 '200주년 신약성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리스어 원전에 충실한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1991년 「200주년 신약성서」 보급판을 낸 데 이어 1998년에는 이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은 개정 보급판을 냈다. 2001년에는 자세한 해제와 주석을 곁들인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를 발간했다. ▨ 「성경」과 「주석 성경」 주교회의는 1988년 성경 본문에 충실한 「성경」을 출간키로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 작업에 들어갔다. 임승필 신부가 주축이 된 번역팀은 1992년 「시편」을 시작으로 1999년 「마카베오 상ㆍ하」까지 구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8권을 출간했다. 또 2001~2002년 신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0권을 간행했다. 2003년 6월 '새번역 성서 합본위원회'를 구성한 주교회의는 윤문과 용어통일 작업 등을 거쳐 2005년 10월 출판 기념회를 갖고 「성경」을 한국교회 공식 성경으로 선포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가톨릭이 신ㆍ구약 성경 73권 전체를 독자적으로 번역하기로는 처음인 성경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번역된 모든 한글 성경 중 본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1년 「성경」 각 권마다 입문과 각주를 붙인 「주석 성경」을 출간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12.11.20
![[성경 속 궁금증] 53.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8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3.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이스라엘은 본래 야곱의 별명이었다. 그림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렘브란트 작, 1656년).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대략 2600번, 신약성경에 80번 정도 언급된다. 성경에서의 사용 횟수를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평범한 이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싸우다' 혹은 '하느님은 강하다'라는 뜻으로, 계약을 통해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스라엘은 본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사악의 아들인 야곱의 별명이다. 오랜 타향살이를 마친 야곱은 아직도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형 에사오를 만나기 전, 긴장된 마음으로 혼자 밤을 지낸다. 그는 어떤 신비한 존재와 밤새 씨름을 한 끝에 그분, 곧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는다. 그리고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는 말씀과 함께 새 이름을 받는다(창세 32,2-33). 이처럼 이스라엘은 성조 야곱에게서 유래되고,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리신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창세 37,3). 이스라엘은 야곱의 가족을 가리키기도 한다(창세 34,7).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는데, 이들의 이름에 따라 열두 지파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을 전체적으로 부를 때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쓰인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흔한 표현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백성의 이름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 사는 땅을 특별히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1사무 13,19; 마태 2,20 등). 이스라엘은 또 다윗이 세운 왕국의 이름도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야곱의 별명인 동시에 그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 혹은 국가를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는 북쪽 왕국의 이름이 됐고, 북쪽 왕국이 망한 후에는 남쪽 유다 왕국을 지칭했다. 그 뒤에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레위족 사제들과 구별해 평민들만 이스라엘 백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민족이나 나라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신약성경에 와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인들, 곧 하느님의 새 백성까지 가리키게 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란 말은 선택된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역적 범위를 넘어선 용어로 자리 잡는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동참하는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있다.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갈라 6,16).퇴사자22012.11.06
![[복음 이야기] (20) 종교적 평등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5115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20) 종교적 평등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신앙·율법 통해 지파간 평화·단합 이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월 중동지역 사목방문 때 이스라엘 랍비들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메노라(촛대)를 선물받고 있다. 【CNS】 성경시대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의 혈맹 공동체였다. 열두 지파의 분할은 야곱이 마지막으로 열두 아들을 축복했을 때에 기원한다. (창세 49,1-28) 야곱은 첫 부인 레아에서 맏아들 르우벤과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을, 라헬에게서 요셉과 벤야민을 낳았다. 또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단과 납탈리를,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가드와 아세르를 낳았다.(창세 35,23-26) 열두 명의 아들을 낳은 야곱은 또 이집트 피난살이 때 요셉이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에게서 낳은 므나쎄와 에프라임(창세 46,20)을 자기 아들로 삼아 상속재산을 받게 했다.(창세 48,5-7)야곱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종살이 처지로 몰락한 후 모세의 인도로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40년간 광야생활 끝에 가나안 땅 팔레스티나 지역을 점령하고 정착해 한 민족을 이루게 된다. 이 시기를 기원전 13세기 말로 추정한다. 민수기에 따르면 가나안 정착과 함께 지파별로 땅을 나눌 때 사제 가문인 레위 지파는 영토 할당에서 빠지고, 요셉의 몫은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으로 분할돼 열두 지파의 땅을 나눴다.(민수 1,5-15. 20-43) 이후 이스라엘은 왕정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지파 체계를 유지했다. 열두 지파의 장로들은 하느님 신앙과 율법을 통해 지파 간의 평화와 단합을 이뤘고, 기원전 12세기 말경 실로에 ‘계약의 궤’가 안치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지파 간의 문제를 조정, 해결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왕정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으로 나뉘었다. 이스라엘은 북부 열개 지파로 왕국을 이뤘으나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점령된 후 완전히 멸망했다. 유다 왕국도 신흥국가인 바빌로니아의 공격으로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멸망했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9년)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전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할 때까지 2000년 넘게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의 혈통과 가문을 중시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윗 가문 출신임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고대 다른 민족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은 확고한 율법으로 민족 공동체를 운영한 사실이다. 성전에 봉사하는 사제들을 제외하고는 세속의 모든 유다인들이 평등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2코린 11,22)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도 바로 모든 유다인은 평등하다는 대원리에 입각한 고백이다. 유다인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성전 앞뜰에서 하느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의 눈에 자기나 헤로데나 평등하게 비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평등 정신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학자들은 이것을 ‘초자연적 계획에 따라 지상의 계급 제도를 전복하려는 혁명적 흐름’이라고 풀이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 어느 성에서 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손을 활짝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신명 15,7-8) “억울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거름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그를 귀족들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시기 위함이다.”(시편 113,7-8) 신약 시대에도 이 종교적 평등주의 원리는 유다 사회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에게 “통치자들을 왕자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루카 1,52) 고 노래했다.예수님은 산상 설교(마태 5-7장)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선언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다 사회의 뿌리인 하느님 앞에서의 평등 사상을 갈파하셨다. 예수님은 부유한 자와 권세 있는 자는 실상 불행한 자들이며 가난한 사람은 땅의 상속자요 영원히 축복받을 것이라 가르치고 계신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6.18
![[복음이야기]<12> 오순절- 주님께 감사와 충실함 약속하는 봄의 대축제](//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76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오순절- 주님께 감사와 충실함 약속하는 봄의 대축제3대 순례축제 중 하나 오순절은 초막절ㆍ과월절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3대 순례축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시가 모습. CNS오순절은 초막절ㆍ과월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순례축제다. 유다인 남자는 성인이 되는 13살부터 과월절과 오순절, 초막절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곳(예루살렘)을 방문해 제물을 바쳐야 했다(신명 16,16). 유다인들은 그래서 이 3대 축제를 순례축제라 부른다. 오순절은 히브리말로 '하그 하샤부오트', 그리스말로 '펜테코스테'라 발음하고, 우리말로 '쉰째'를 뜻한다. 유다인 축제일은 예루살렘에서 초승달이 뜨기 시작하는 때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그 날짜가 달라지지만 '오순절'은 성경이 명시한 대로 과월절 첫날인 니산 달(3~4월) 15일부터 시작해 칠주간을 보내고 50일째 되는 날인 시반 달(5~6월) 6일에 하루 동안 축제를 지낸다(레위 23,15).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축제를 '주간절'(신명 16,9-10)이라고도 불렀다. 오순절은 봄의 대축제이다. 오순절은 본래 농경사회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이 첫 보릿단을 수확할 때 지냈던 추수제에서 비롯됐다. 유다인들은 이날 하루 동안 하느님께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한편,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이 축제를 지내야 했다. 유다인들은 이날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께 봉헌했다. 성경에 따르면 이날 유다인들은 새 밀로 빻은 고운 밀가루 '십 분의 이 에파'(약 4.4리터)에 누룩을 넣어 구운 빵 2개와 일 년 된 흠없는 어린 숫양 7마리, 황소 1마리, 숫양 2마리를 번제물로 바쳤다. 번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느님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를 실제로 표현하는 것이자,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 관계를 마음을 다해 실천하려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 숫염소 1마리를 속죄 제물로, 1년 된 어린 숫양 2마리를 친교 제물로 올렸다(레위 23,15-21). 이 속죄 제물은 유다인에게 그들의 죄를 생각나게 해 주고, 하느님께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청하는 행위다. 아울러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해 수확한 밭에 이삭을 남겨놓았다(레위 23, 22). 오늘날 유다인들은 오순절에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촛불을 밝히고 만찬을 즐긴다. 구약성경 룻기를 읽으며 룻과 보아즈의 사랑 이야기를 나눈다. 또 유다인 회당에서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이라 해서 마음을 정결히 하고 밤을 지새우며 토라나 예언서를 읽으며 묵상을 한다. 신약의 오순절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예수님 부활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성령 강림 사건으로 교회가 탄생했음을 증언하고 있다(사도 2장).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머무시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모든 민족에게 선포할 것을 명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당부하시고 승천하셨다(루카 24장, 사도 1, 3-14 참조). 오순절이 되자 약속한 성령이 내려왔고, 성령으로 가득한 모든 제자는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독실한 유다인들에게 자기 언어로 하느님의 위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라며 오순절 설교를 해 30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사도 2,1-41). 초대교회부터 교부들은 교회 탄생일인 오순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부활절부터 오순절까지를 긴 축제 기간으로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맞춰 재림하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인 오순절을 '하느님 나라'의 상징으로 보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4.01
[출판] 가톨릭 고전 쓰기, 한번 도전해 볼까가톨릭출판사, 고전 시리즈와 함께 '쓰기고전' 노트 출시 십독불여일사(十讀不如一寫). 열 번 읽기보다 한 번 써보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손으로 읽는' 필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인들의 주요 공부법이었다. 한 번 써보는 것이 이해도 잘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필사한다. 주님 말씀을 정성 들여 옮겨 적으며 머리는 물론 마음에도 새기는 것이다. 새해엔 성경 필사와 함께 그리스도교 고전 필사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준주성범」, 「신심 생활 입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단테의 신곡」 등 '꼭 읽어야 할 그리스도교 고전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가 새해를 맞아 '쓰기고전' 노트(5500원, 사진)를 선보였다.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고전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필사해, 수백 년에 걸쳐 이어져 온 고전 속 지혜를 새롭게 맛들이기를 독려한다는 취지다. 가톨릭출판사는 「준주성범」과 함께 '준주성범 쓰기노트'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준주성범을 필사한 정진화(레오, 서울 서원동본당)씨는 "「준주성범」은 이미 읽어본 책인데, 필사를 하니 내가 알고 있던 책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책이 나타났다"면서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읽는 것은 달랐고, 책을 통해 내 삶을 고백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출판사는 「준주성범」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고전 시리즈를 필사할 수 있는 노트를 만들었다. 스프링으로 제본된 '쓰기고전' 노트는 성경 필사노트와 동일한 구성으로 돼 있다. 또 '쓰기고전' 노트 뒤편에는 「준주성범」과 「신심 생활 입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40일간 완필할 수 있는 일람표를 첨부했다. 상ㆍ하권으로 나뉜 「단테의 신곡」은 하루에 한 곡씩 쓰면 100일 만에 완필할 수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