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51. 성경에서 예언자는 어떤 사람들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7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1. 성경에서 예언자는 어떤 사람들인가?하느님 부르심 받아 파견된 이 주님 말씀 직·간접적으로 선포'예언자 예레미아' (미켈란젤로 작, 1510년). 성경에는 예언자가 많이 등장한다. 성경의 예언자는 인간의 길흉을 점치는 역술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언자는 하느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선견자'(1사무 9,9) 또는 '하느님의 사람' 등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의 사람이 말하였다. '나는 어르신과 함께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르신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곳에서는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실 수 없습니다'"(1열왕 13,16). 성경의 예언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 뜻을 담은 메시지를 설명하면서 현실비판적 원칙과 규범을 외친다. 예언자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했다. 구약성경의 예언직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지파나 가문에 의해 세습된 왕이나 사제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예언자들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직업이나 가문 또는 특정 지파를 초월해 개별적으로 하느님 부르심을 받았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했기 때문에(1사무 10,6) 영을 받은 사람(호세 9,7)이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예언직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려하거나 예언자적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예언의 소재로 삼았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또한 예언의 내용은 신학적인 것만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을 하고 보수를 받거나, 진리보다도 보수를 위해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다. 하느님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거짓으로 예언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거짓 환시를 보고 속임수 예언을 하며, 주님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주님의 말이라고 하면서, 그 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에제 13,6). 예언자는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선포했을까?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예언자 입에 직접 담아 주신다.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예레 1,9). 하느님 말씀은 보통 예언자 입을 통해 말로 선포됐지만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선포됐다(에제 4-5장). 때로 하느님 말씀은 예언자의 삶 자체를 통해 선포됐다. 이처럼 하느님은 예언자를 선택해 부르시고,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를 사람들에게로 파견하시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 신약성경에는 초기 교회 예언자들 활동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지 않지만, 신약시대 예언자들 역시 구약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공동체를 훈계하는 직무를 수행했다. 퇴사자22012.10.23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어떻게 해야 주님 말씀에 맛들일 수 있을까성경읽기 작심삼일 되지 않으려면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성경통독 도전'을 선언하고 창세기부터 펼친 사람치고 이 사자성어에 굴욕(?)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두께에 지치고, 깨알 같은 글씨에 금세 지루함을 느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맛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인옥(체칠리아, 수원가톨릭대 성경연구실) 실장에게 성경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이 실장은 "성경을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읽으라"며 "성경읽기를 목표로 하지 말고, 말씀 안에 머무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경은 재미있다 성경을 딱딱하고 경건한 책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의무감으로 읽으려 하지 말고 재미를 발견해야 한다. 성경을 도덕적 기준, 반성과 성찰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읽을수록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만 늘어난다. 성경을 '재미있는 책'으로 생각하라. 동화책이나 역사책을 읽듯이 읽으면 굉장히 재밌을 것이다. ▶'~낳고'에 지지치 마라 굳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나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씀부터 먼저 읽는 게 좋다. 창세기부터 읽다보면 "누구는 누구를 낳고"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족보'에 지치는 경우가 많다. 구약에서는 요나서, 잠언, 지혜서, 토빗기가 말씀에 맛들이는 데 좋다. 신약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 사도행전을 초보 통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성경을 이론적 잣대로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문을 갖지 말고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즐겁게 읽어라. 인물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다. ▶멈추고 묵상하라 모든 작심삼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흥미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까지 읽고, 얼마만큼 옮겨 적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하면 쉽게 지친다. 필사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다만 '필사를 위한 필사'는 좋지 않다. 필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얼마나 빨리 했는지, 축복장을 받았는지에 집착하면 글씨쓰기 연습밖에 안 된다. 필사를 하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멈추고 묵상을 해보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완독, 완필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씀에 깊이 빠졌느냐는 것이다. 말씀에 머무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매일 읽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된다. ▶말씀 안에 머물러라 통독이 부담스러우면 「매일미사」에 있는 그날의 복음 말씀부터 거르지 말고 읽어보라. 복음을 읽고 묵상한 후 노트에 묵상 내용을 짧게라도 옮겨 적는 게 중요하다. 평생 동안 전권(73권)을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 성경읽기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퇴사자22013.01.29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97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 특집 주제로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를 선정 △우리들만의 특별한 여정 △새봄, 가슴 따뜻한 피정을 떠나요! △나를 아시는 하느님을 실었다. 똑똑 교리 해설에서는 '사제들의 정치 참여, 정당한가요?'를 다뤘고, 끄덕이의 전례전례에서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에 관해 알아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 ▨가톨릭 비타꼰 말씀에서는 △민영기 신부의 구약성경 특강 △이창욱 펠릭스의 신약성경 특강 △토미 레인 신부의 주일복음 해설 △최민순 신부의 시편 △아빠의 기도 등을 실었다. 함께하는 여정에서는 카이스트 무신론 동아리 '프리싱커스' 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경향잡지 경향돋보기에서는 '불평등 사회와 복지'를 다루며 △한국사회의 불평등 현상: 원인과 대책 △올바른 복지정책을 위해 시선을 바꿔라를 실었다. 염수정 추기경 탄생과 서울대교구 유경촌ㆍ정순택 주교 탄생 소식을 담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나의 신앙과 삶'에서는 하성래 선생이 1989년부터 10년 동안 진행한 '한일 가톨릭 문화교류 사업'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결실을 담았다. '역사 속의 사진첩'에서는 1964년 8월 20일~9월 3일 열린 한국교회사 사료 전시회를 소개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특집 '일치의 영성을 살아가는 사제들'에서는 로마 사제 솔선자 본부 책임자 토니노 간돌포(이탈리아) 신부와 로마 사제 포콜라리노 본부 책임자 후베르투스 블라우마이저(독일) 신부가 지난해 11월 방한해 한국 사제들과 나눈 이야기를 실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저 여인은 누구실까?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의 영혼 △십자가 등을 게재했다. 선교사례에서는 해체 위기의 쁘레시디움을 증원으로 정상화한 사례를 소개했고, 세상 속 교회읽기에서는 '아가타 빵을 아시나요?'를 실었다.(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 ▨말씀지기 매일의 복음 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아침뜨락에는 김유정(대전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를 썼고, 영성에세이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요셉성인과 함께하는 기도를 게재했다.(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 특별기고로 '염수정 추기경 서임에 거는 한국 교회의 7대 기대'를 실었다. 특집으로 '성당을 꽉 채우는 미사의 은총'을 다루며 △미사의 은총 △미사를 삶으로, 삶을 미사로 △주일 미사 전례 활성화를 위한 원리와 제언 △창조적 발상으로 미사를 풍요롭게 한 사례들 등을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김수환 추기경 선종 5주기를 맞아 '오늘 더욱 그리운 사람 김수환 추기경'을 특집 주제로 △양심의 소리로 시대의 등불이 되다 △인간 김수환을 만나다 △감동의 삶을 추억하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 등을 통해 교회의 큰 어른이었던 고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새로봄에서는 '봉헌, 완전한 사랑'을 주제로 △제 삶의 원천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거룩해지는 길을 실었다. '말씀과 함께 걷는다'에서는 '지혜서'를 살펴봤고,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에서는 '에덴 동산과 제주도'를 다뤘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인기 만화 '혜화동 할아버지' '어진 목자 요한 23세 교황님'을 연재한 서현승 신부를 만나 만화를 그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름다운 성지에서는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소개했고, 부모님과 함께보는 영화로는 '타잔 3D'를 추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독서 치유 프로그램 '행복한 책 읽기'를 진행해 온 김경희(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와 참가자들을 만나 행복한 책 읽기를 통해 변화된 삶을 들어봤다. 성경의 언어를 두드리다에서는 '죄'를 뜻하는 그리스어 '하마르티아'의 어원과 그 뜻을 알아봤다.(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 표지인물로 배우 이윤지(마리아, 서울 목5동본당)씨를 인터뷰하고 배우생활과 신앙생활 모두를 충실히 하는 그의 삶을 소개했다. 설 연휴를 맞아 특집주제로 '그리운 가족'을 다루며 가족에 얽힌 애틋한 사연을 실었다.(미션3000/3500원) 박수정 기자백영민2014.02.04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3)살리는 바람 그리고 한숨](//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9922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3)살리는 바람 그리고 한숨생명을 살리는 하느님의 종 '바람' 하느님은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리신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바람, 하느님의 영인 '루아흐'를 시켜 예언자를 들어 올리시고 여기저기 데려가 환영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마치 바람이 엘리베이터나 헬리콥터처럼 사람을 태우고 높이 올라가 여기저기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표상은 에제키엘서에 네 차례나 나온다. "주님의 영(루아흐)이 나를 들어 올리시어, 주님의 집 동쪽 대문으로 데려가셨다"(에제 11,1). "그때에 하느님의 영(루아흐)이 보여주시는 환시 속에서, 그 영이 나를 들어 올리셔서 칼데아에 있는 유배자들에게 데려가셨다"(에제 11,24). 신약성경에도 주님의 성령이 사람을 잡아채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성령이 사람을 잡아채서 하늘로 데려갔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언어와 신화에 익숙했던 사도행전의 저자와 독자에겐 전혀 어렵지 않은 말씀이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프네우마)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사도 8,39). #바람, 살리는 숨결 이어서 주목해야 할 바람의 역할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종인 바람이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람 신의 이런 역할은 고대 근동 신화와 구약성경의 공통점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람'과 '성령'을 분리해 바람 그 자체에 신화적 요소가 더는 들어갈 여지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셈어인 히브리어에 남아 있는 고대 근동 '바람 신'의 흔적을 되도록 지운 것이다. 바람은 성령의 전조일 뿐, 성령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이런 태도는 '바람'을 탈신화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신약성경의 탈신화'는 구약성경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런 면에서 신약은 구약의 전승을 충실히 잇는다고 볼 수 있다. 탈신화의 궁극적 목적은 성부 하느님에게서 불어오는 성령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은 성령이 몸을 살릴 뿐 아니라 우리 죄를 씻어주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성령이 죄를 씻어주시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모티프의 근원은, 루아흐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구약성경의 전승이다. 이후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고대 이스라엘이 속한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바람 신의 특징은 구약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루아흐를 탈신화했다. 한편 그리스어로는 루아흐를 숨, 영, 바람 등으로 다양하게 옮길 수 있다. 그리스어의 이런 언어적 특성을 사용해 「칠십인역」(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 중 가장 오래된 번역본)은 루아흐를 다양하게 옮겨 탈신화를 심화했고, 신약성경은 바람과 성령을 구분해 이런 탈신화를 가속했다. 이런 전체적 전승을 기반으로 후대에 성령론이 발전할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헛것 다신교 세계였던 고대 근동은 큰 신과 작은 신이 여럿 섞여 있다. 수천, 수만의 신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닌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하느님은 유일신이시므로 그 반대말은 다신(多神)이라 불러야 할까? 혹시 이런 '다신'들 전체를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 있을까? 혹자는 '우상'이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아닌 모든 신을 일컫는 독특한 낱말이 있다. 바로 '헛것'이다. 다윗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다른 민족이 믿는 가짜 신들을 모두 '헛것'이라 불렀다. 민족들의 신들은 모두 헛것이어도 주님께서는 하늘을 만드셨네'(1역대 16,26). 우리말 '헛것'은 '빈 것'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헛것'은 거짓된 신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헛것'으로 옮긴 말이 구약성경 원문에서는 무슨 말일까. 히브리어 성경에서 히브리어 '헤벨'은 '한숨'이란 뜻이다. 특이하게도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의 문헌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종교심을 표현하는 낱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을 성찰하게끔 한다. 이 낱말은 인간의 숨결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대개 헛된 신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하느님 백성이 믿으면 안 되는 '헛것' 또는 '한숨'은 신이 아니다. 하느님 백성이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만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24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8) 아브라함도 알고 있던 달신 숭배](//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538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8) 아브라함도 알고 있던 달신 숭배달신 관련된 인명과 지명이 성경에? 기원전 7세기께 신바빌론 제국은 신아시리아 제국을 누르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잡고 새로운 왕권 신학을 세웠다. 이후 바빌론의 주신이 된 '마르둑'은 왕권의 상징이 됐다. 마르둑은 본래 하위신 무리인 '이구구'에 속했지만, 새 시대가 열리자 모든 신의 주인이자 창조신으로 등극했다. 신바빌론 제국 말기 '나부-나이드'라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이른바 '개혁파'를 이끌었다. 그는 제국의 종교와 사상을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지하에서 숨죽이며 유지되던 달신 숭배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달신 숭배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그는 부패한 보수파 마르둑 종교를 버리고 고대 왕권 전승, 달신 숭배를 부활시켜 제국을 개혁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대 정통파이자 보수파였던 마르둑 사제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나부-나이드 재임 기간에 그의 행위를 마르둑이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은 벨사차르는 부왕의 달신 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그 결과 제국은 더욱 분열되고 약화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기원전 539년 바빌론으로 진격해 왔을 때, 정통 보수파였던 마르둑 사제들은 놀랍게도 외적 페르시아 군대를 도왔다.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영리하게도 자신을 마르둑이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선택한 구원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부-나이드의 개혁도, 마르둑 사제들의 나라 신바빌론 제국도 점점 사라지고 곧 페르시아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바빌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달신 숭배 고대 근동은 하나의 큰 세계였다. 동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늘신이 최고신이었지만, 서부에서는 그저 장소로 쓰였다. 달신도 마찬가지다. 동부에서 달신은 왕권의 상징이요, 오랜 세월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지만, 북서셈어 지역에서는 그저 '신들'중 하나였다. 하지만 북서셈어 지역에서 달신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고대 근동에서는 이름에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넣었다. '신적 요소'를 지닌 이름은 이스라엘에서도 흔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는 '~야'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데 이 이름은 야훼 하느님께 귀의했다는 뜻이다. 그 이름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요시야, 히즈키야 등이 있다. '하느님'을 뜻하는 '~엘'로 끝나는 이름도 많다. 에제키엘, 하나니엘, 미카엘, 이스라엘, 임마누엘 등이다. 이처럼 고대 근동의 인명을 분류하면 당시 사람들이 믿던 신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밤하늘의 달을 히브리어로 '야레아흐'라고 한다. 우가릿어로 달신은 '야리후'였다. 이처럼 두 말의 발음은 비슷하다. 이 단어의 어근은 '일정한 길을 가다'는 뜻으로, 달의 규칙적 변화와 궤도를 지칭한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낱말로 시간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곧 일 년의 열두 달을 가리킬 때는 모음을 변형시켜 '예라흐'라 했다. 우리말도 밤하늘의 '달'과 일 년 열두 달의 '달'이 같은 낱말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우르(수메르의 도시국가)와 하란(메소포타미아 지역 문화ㆍ상업 도시)이었다. 우르는 수메르 시대부터 달신 숭배의 중심지로 이름 높았고, 후대에는 하란이 우세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큰할아버지이자 그리스도교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바로 우르 출신이다. #고대 이스라엘인과 달신 그가 나이 일흔다섯에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떠난 이야기는 '순명의 모범'으로 널리 알려졌다.(창세 12,1-9 참조) 그런데 그는 길을 가던 도중 하필 하란에 이르러 꽤 오랫동안 '자리 잡고' 살았다. 이는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님의 명령으로 움직인 것이다.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퍼졌던 달신 숭배는 고대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간접적이면서 아주 깊숙이 관여했다. 고대 이스라엘인의 인명 가운데 달신숭배가 간접적 또는 정황적으로 관련된 것이 있다. 노아의 자손들 족보에 등장하는 '예라'(창세 10,26; 1역대 1,20)와 가드 지파의 자손인 '야로아'(1역대 5,14), 벤야민 지파의 며느리 '호데스'(1역대 8,9) 등은 달신과 관련 있는 이름이다. 이들은 이민족이 아니라 모두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다. 앞서 신 이름을 사람 이름에 넣는 문화를 보았다. 그러므로 이런 이름을 쓰는 이스라엘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달신 숭배 문화가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신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큰 승리를 거둔 도시 '예리코'(여호 2-6)의 이름은 '그의 달'이란 뜻이다. 이 도시도 원래 달신을 섬기던 곳으로 짐작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도 달신과 관련된 장소다. 이 산의 이름과 의미에 대해 유력한 가설에 따르면 '시나이'는 '나의 신'(Sin-ai)이라는 뜻으로, 본디 달신을 모시던 의례와 관련 있는 산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이 달신 숭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맺은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고대 근동 세계는 구약성경의 배경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론, 이스라엘과 가까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달신은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고대 근동에서 달신 숭배와 관련된 초하루나 보름 같은 날들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절기로 취급됐다. 고대 이스라엘도 이웃 민족의 이 같은 관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시편은 '우리의 축제 날'인 초승과 보름에 기뻐하며 나팔을 불라고 권한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3.12
![[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복자 그들의 삶과 신앙](//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5135_1.0_titleImage_1.jpg)
[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복자 그들의 삶과 신앙성령의 힘으로 신앙 일궈 ‘순교의 꽃’ 피워 초창기 신자들은 교우촌을 이뤄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격려하는 천상의 삶을 살았다. 사진은 옹기를 구워 생계를 잇던 교우촌 모습. 빛을 찾아서 : 참 하늘 우러른 구도(求道) 영성신앙 선조들은 스스로 빛을 찾은 진리의 구도자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이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로 평신도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복음을 수용한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하는 평신도사도직 운동의 선구자가 아닌가! 신앙 선조들이 진리를 향해 깨어 있음이 우리 민족을 빛의 세계로, 구원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제삼천년기를 살고 있는 순교자의 후손인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깨어 있는가? 신앙 선조는 일상에서도 하느님을 삶의 가장 가운데 모시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 하느님은 절대적이었다. 가족ㆍ건강ㆍ재물ㆍ명예ㆍ생명도 소중했지만 하느님 위에 있지는 않았다. 빛을 전하며 : 온 누리에 빛을 전한 선교 영성신앙 선조들은 자발적으로 찾은 빛을 적극적으로 전한 진리의 전파자였다.성사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신앙 선조들은 성직자 영입을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교황청에 성직자 청원의 서한을 보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교황청에까지 성직자 청원의 편지를 보낸 신앙 선조들이 세계에 또 있는가? 또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 신앙 선조들은 한문으로 된 교회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 열정과 신분 질서가 엄격한 시대를 뛰어넘은 만민평등 사상과 인간 사랑에 감탄하게 된다. 성경ㆍ교리서ㆍ신심서ㆍ묵상서ㆍ기도서ㆍ순교자전 등 다양한 책들이 번역되었고, 또 필사되었다.신앙 선조들은 세속적인 배움은 짧았지만 성령의 학교에서 덕행과 사랑을 배웠기에 가는 곳마다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가난한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곤경에 처한 이를 남몰래 돕고, 배 고픈 이와 양식을 나누었다. 천주 신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앙 선조들이 이렇게 삶으로 풀어내는 천주교에 입교했다. 신앙 선조들은 삶의 나눔과 섬김, 사랑을 통하여 빛을 전하였다. 또한 주님을 만나 전 삶이 변한 기쁨이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아무리 말을 하려 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어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온 세상에 외친 것이다. 선교는 이렇게 삶의 나눔이며 삶 속에 젖어드는 사랑의 육화임을 배우게 된다. 빛 속에서 : 온 삶으로 빛을 현양한 증거 영성신앙 선조들은 빛을 찾고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 삶을 빛으로 현양한 진리의 증거자였다. 일상에서 철저하게 복음적인 삶을 살았고, 마침내는 생명마저 주님께 봉헌한 순교로써 진리를 증거한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순교할 수 없다. 신앙 선조들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했으면 순교하였을까? 도대체 그 힘을 어떻게 얻었을까? 신앙 선조들의 영적 양식은 기도였으며, 기도를 일상화하였다. 기도로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애원하며, 힘을 얻고, 하느님과 일치하였다.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은 온갖 고난에도 성경 말씀을 봉독하고, 필사하며, 묵상하였다. 즉 말씀으로 살고, 말씀만 섬겼으며, 말씀을 시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전기ㆍ서간문과 교회 서적 등을 가보처럼 여기며,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또 가혹한 박해에도 오늘의 한국 교회를 있게 한 깊은 뿌리가 바로 ‘교우촌 영성’이다. 신앙 선조들의 하늘을 지붕 삼아, 산을 울타리 삼아, 기도와 나눔의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삶은 외적으로는 비참하였지만,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격려하는 신앙 공동체이었기에 지상에서부터 천상의 삶을 산 것이다.신앙으로 인한 직접적인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을 천편일률적으로 생각하며, 순교의 최후 순간만을 중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순교를 가능하게 한, 곧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피보다 더 진한 인생의 전 여정을 깊게 만나야 할 것이다.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진리의 구도자, 전파자, 증거자로 온 누리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있는 124위 복자! 이슬처럼 스러질 인생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빛ㆍ길ㆍ꿈으로 부활하여, 생명과 희망이 넘실대는 푸른 세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 2,5) 제공=교황방한준비위원회 영성신심분과 평화신문2014.06.18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7>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9961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 탈출기를 읽으면 주님이 보인다모세와 떨기나무, 비잔틴 모자이크 탈출.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단어를 보면서 마음 안에 간절한 염원을 느낄까요? 탈출기라는 책은 그 염원에 응답합니다. 탈출기는 출애굽기라고 하다가 성경 번역을 새로 하면서 제목도 다시 붙게 된 책입니다. 그래서 전에 낱권으로 번역되어 나왔던 탈출기에는 어떤 의미로 이 책을 ‘탈출기’라고 부르기로 했는지 설명이 있었습니다. 아주 짧게 말하면, ‘출애굽’은 한 번 있었던 사건이지만 ‘탈출’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애굽’은 아마도 기원전 13세기,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온 사건입니다. 그러나 탈출은 속박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불의로부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한 번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반복되어 왔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되는 사건입니다. 탈출기에 기록된 이 과거의 사건은 그러한 탈출들의 원형이 됩니다.이집트 탈출이 과연 얼마나 규모가 큰 사건이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60만 명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불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특정 집단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험은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얼굴을 보여 주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기에 60만이, 우리 모두가 이집트에서 나왔다고 말하게 됩니다.탈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18장은 이집트 탈출에 관한 설화를 들려주고, 19─40장은 주로 법률 부분입니다. 처음에 이집트 땅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을 거친 다음 14─15장에서 갈대 바다를 건너고 16─18장에서 광야를 지나 시나이 산에 도착합니다. 19─40장에서는 움직임이 없이 시나이 산에 머뭅니다. 레위기 전부와 민수기 10장까지도 시나이 산을 배경으로 할 것입니다.탈출기의 전반부, 1─18장에 기록된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도, 이스라엘도, 파라오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탈출 3,13 참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보내신 분이 누구신지를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낼 것을 요구했을 때 파라오는 주님이 누구이기에 나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내라고 명령하느냐고 되묻습니다(탈출 5,2 참조). 아직 아무도 그분을 모릅니다.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대답하십니다. 뜻을 알기 어려운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대략 세 가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첫째는, 나는 그냥 나이지 더 이상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름을 붙인다면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 안에 하느님이 갇히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나’라는 것 외에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둘째는, ‘있는’ 분,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을 거치면서 그러한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고 이는 철학의 하느님 이해와도 깊이 연관되었습니다.셋째는, 내가 누구인지는 이제부터 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보게 될 나, 그것이 나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내가 이집트 위로 내 손을 뻗어 그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세 번째 의미를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끌어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탈출 3장에서 아직 이스라엘은 그 사건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천 마디 말로 설명을 해도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파라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열 가지 재앙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는 아홉 가지 재앙을 거치고도 하느님을 알지 못했으니 그가 하느님을 알게 한 것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죽었던 열 번째 재앙에서였습니다(탈출 11장). 이스라엘에게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갈대바다를 건널 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가로막고 있던 죽음의 순간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시는 구원을 보았습니다(탈출 14,13).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았다는 표지가 15장에 나오는 바다의 노래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이분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탈출 15,2).여기에 이르면 파라오도 하느님을 알고 이스라엘도 하느님을 압니다. 더 이상은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묻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분으로 일컬어지실 것입니다. 탈출은 반복되는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억압과 불의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은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을 때, 인간의 모습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모습이 아닐 때,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이 억눌려 일그러져 있을 때 하느님은 다시 개입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런 분이시라고 말해 주는 책이 탈출기입니다.“원수에게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36,24). 백영민2015.01.14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82>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1)](//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6_1.1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1)가톨릭 신앙의 골다공증 종교와 정치, 그 관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최근에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야 한다느니 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할 수도 있다느니…. 끝이 없을 것이며, 그 이유도 무수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경우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이 없으며, 일방적인 윽박지르기만 난무한다. 두세 마디 지나고 나면 화내기 일쑤다. 거의 '폭력' 수준이다. #믿음과 신앙은 분리될 수밖에 없는가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는 참담하다. 논쟁(?)에서 '신앙' 특히 '그리스도 신앙', 더 더욱 '가톨릭신앙'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종교(religion)는 영어식으로 하면 '일반명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 엄연히 고유명사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대문자로 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그 어떤 고유함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고, 유다교도 마찬가지고, 힌두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와 정치, 종교와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론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 신앙인은 (고유한) 그리스도교와 정치, 그리스도교와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그리스도교 가운데 가톨릭이 있고, 그 가톨릭 가운데 로마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이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라면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정치,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현실은, 적어도 필자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가톨릭 교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대중매체를 접했는지, 어느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 어느 경제적 이념을 따르는지, 그 기준과 잣대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주장할 뿐이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심각한 골다공증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도 뼈에서 칼슘 성분이 모조리 빠져나간 완전한 골다공증, 그래서 겉으로는 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질 위험이 있는 상태 말이다. 성경과 가톨릭 신앙과 교리와 제도와 가르침 같은 것이 철저하게 빠져나가고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교우들 가운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그리고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바탕으로 교회의 현실 참여의 찬반 입장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세상 앞에 하나가 된 교회 필자의 생각이 막연하고 근거 없는 억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의 말씀처럼 정치참여 문제 때문에 천주교회가 분열했다면 앞으로 경제 문제 때문에, 문화 문제 때문에, 국가 문제 등 무수히 많은 문제들 때문에 그렇게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분열로 그칠까? 상호 단죄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단죄하면 가톨릭 좌익교회, 가톨릭 우익교회, 가톨릭 보수교회, 가톨릭 진보교회, 그렇게 돼야 하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심각한 골다공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면 그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필자 개인으로는 몇 가지 원인을 꼽고 싶다. 우선 성경의 철저한 사유(私有)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공동체, 첫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가 구체적인 역사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을 신앙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경을 공동체 대신 '나', 구체적인 역사 대신에 '마음'의 영역으로 환원시켰다. 둘째, '신앙'과 '삶'의 철저한 이질적 구별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 마음으로 믿고 성당에 가서 성사생활 하면 하느님께 은총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는 정도로 신앙을 제한하고, 가정과 문화, 경제와 정치, 사회와 환경, 곧 구체적인 삶을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그에 바탕을 둔 고유의 신앙체계와 교리와 교회제도에 대한 무관심이다. 신앙의 해를 기념했지만 고유의 신앙과 그에 따른 삶을 찾아보기 어렵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경제영역에서, 정치영역에서, 교육영역에서, 곧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톨릭 신앙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회의 책임, 특히 성직자의 책임이 크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그리스도인의 삶'(제3편)이,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가톨릭교회에는 사회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톨릭 신자는 얼마나 될까?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 가운데 그 내용을 아시는 분은 또 얼마나 될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cpbc2013.12.03

사람이 되신 하느님 아들의 인성(人性)에 매료[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6.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⑥ 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모두를 깊이 사랑했으며, 특히 그분의 인성에 관심을 가졌다. 사진은 예수 탄생에 관한 이콘화. 평화신문 자료사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지난 호까지 성녀 데레사가 일생을 통해 어떻게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성숙시켜 갔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부터는 성녀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살펴봐야 할 점은 성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깊은 관계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예수님 모습에 매료됐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녀가 쓴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이란 말이 그것입니다. ‘인성’이란 표현은 신학적인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두 가지 본성(本性)을 일컫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후,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그분에 대한 기억을 간직했던 세대가 사라져가고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자 그분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일 뿐 실은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예수님은 지고지순한 하느님이지 우리처럼 천박한 피조물은 절대 아니라며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神性)만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생겨나 교회에 큰 물의를 빚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초대 교회는 수백 년 동안 홍역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여러 보편 공의회를 통해 이 문제를 정리하고 ‘신경(信經)’에 담아 불변의 신앙교리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형태가 소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골자(骨子)가 담겨 있습니다.예수님과 관련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담겨 있는 고백 중에는 “성부와 한 본체”라는 표현과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말에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똑같은 인간이시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본성(本性)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는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강생(降生)의 신비, 성부 하느님과 인류를 이어주는 중개자(仲介者)이신 그리스도 인격의 신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중개자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자 동시에 인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올바른 영성의 기초인 인간 예수님에 대한 사랑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두 가지 본성,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모두를 깊이 사랑했으며, 특히 그분의 인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영성생활에서 왜 중요할까? 영성생활은 우리가 믿는 바를 실생활로 이어주는 장(場)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영성생활 이전에 선행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잘못된 영성생활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은 부인한다든지 그 반대로 인성만 받아들이고 신성을 부인하게 되면 왜곡된 영성생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믿고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영성생활의 바탕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명한 신앙생활의 진리를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의혹의 눈길로 바라봤던 사람들이 늘 있어 왔습니다. 성녀 데레사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당시 소위 열심하다는 영성가들 중에는 특히 예수님의 인성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심지어 부인하기까지 하면서 오직 그분의 신성에만 집중해서 그분과 관계를 맺고 기도수련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은 순수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성화(聖化) 또는 신화(神化)되는 것은 그런 하느님을 닮아가기 위해 모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자 영혼을 악으로 인도하는 유혹자로 여기며 거부하고 폄하했으며 거기서 유래하는 모든 자연적인 욕구까지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죄악시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영혼이 천상을 향해 진보하는 것은 이 썩어 없어질 헛된 육신에서 벗어나 천사와 같은 순수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역시 그런 부정한 육체를 취하신 인간의 모습은 참된 예수님이 아니라고 여기며 그분의 신성에만 집착했습니다. 성녀 데레사를 영적으로 지도했던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관상기도는 순수 영적인 것이라 기도에 진보하려면 모든 물질적인 형상을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인성도 멀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잘못된 영성지도자들 때문에 한동안 헤매던 성녀는 그것이 뜬구름 잡는 잘못된 기도였다는 걸 깨달으면서 인간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와 그분을 많이 사랑해드리고 일상의 삶 속에, 자기 영혼 안에 깊이 현존해계신 인간 예수님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자서전 22장). 그래서 성녀는 특히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성상, 성화, 상본을 기도생활에서 자주 활용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 영혼 안에 각인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성부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성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셨고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시며 함께 음식을 드시고 병자를 치유하셨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분의 모습은 신약성경에 충만히 소개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예수님과의 사랑의 대화이자 교감(交感)이라 한다면 신약성경은 최고의 기도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신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금 바로 성경을 펼쳐 그분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cpbc2014.05.21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921_1.0_titleImage_1.jpg)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대림 교리 교안 끝판왕!’을 특집 주제로 △교사들이 꼭 알아야 할 대림 교리 △초등부ㆍ중고등부를 위한 대림 시기 교리 교안 △장애아부를 위한 대림 시기 교리 교안 등을 담았다. ‘본격 조명 한국의 순교자’는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동정 부부 유중철ㆍ이순이를 다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가톨릭 비타꼰‘함께 느낌 : 바스락’에서는 △상봉이와 종혁이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삶 등을 실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영화와 미술은 각각 ‘아무르’(2012년)와 ‘마릴린 먼로 두폭화’(앤디 워홀 작)를 소개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경향잡지경향 돋보기는 ‘탈핵,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를 주제로 △탈핵을 해야 하는 이유 △핵 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탈핵으로 가는 길 등을 다뤘다. ‘순례, 알고 가면 더 좋은 성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스탄불에서 만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교회와 역사‘나의 신앙과 삶’은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역사와 굴곡을 함께한 이문수 수녀의 구술을 정리했다. ‘연구동인회 사적지 순례’는 열 명이 순교한 제물진두에 세워진 순교 기념 경당과 최양업 신부 가족 거주지 등을 둘러본 순례기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그물소식은 ‘포콜라레 운동의 첫 번째 소도시 로피아노 설립 50주년’을, ‘거룩한 모험’은 마지막 순간까지 공동 성덕을 살았던 3명의 포콜라리노들의 삶을 소개했다. 포콜라레 영성으로는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제목으로 죽음과 사별에 대한 끼아라 루빅의 묵상 글들을 게재했다. (마리아사업회/3000원)▨레지오 마리애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 △아빠, 아버지 △레지오의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의 본질 등이다. ‘세상 속의 교회 읽기’는 성 체칠리아가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 된 사연을 소개했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말씀지기영한 대역 매일 묵상집.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 신부에 대해 설명하고, 영성 에세이는 △영적인 싸움과 성령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세 가지 방법을 게재했다. (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몰려드는 새 신자,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주제로 △교황님 방한 이후 새 신자 맞이하기 △일어나, 너 걸어라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신 교황님 △친교의 본당 공동체 구현, 소통에서 답을 찾다 등을 실었다. 원로 사제로 수품 50주년을 맞은 서공석(부산교구) 신부를 만났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생활성서‘샬롬, 팔레스타인!’을 특집으로 △이스라엘이 나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간추린 역사 등을 다뤘다. 소설가 ‘신경숙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때로 어떤 나쁜 일들도…’를, ‘양승국 신부의 기도 레슨’은 ‘착한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를 소개했다. (생활성서사/3900원)▨성서와함께새로봄에서는 ‘치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를 주제로 △치매와 동행하는 법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적 치매 등을 담았다.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주제는 ‘창조와 해방의 의미로 본 안식일’이다. (성서와함께/3000원)▨소년‘제19회 박홍근 아동문학상’을 특집으로 수상 소감(최명표)과 심사평(엄기원)을 실었다. 만화로 만나는 우리 시대 성인은 ‘용감한 목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이며, ‘아름다운 성지’가 찾아간 곳은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이다. (가톨릭출판사/4000원)▨야곱의 우물표지 이야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년퇴임 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꿈과 희망을 전하는 김청자(아녜스)씨를 만났다. ‘교회와 사회’는 ‘철새 배려 없는 람사르 습지’를, ‘바오로의 선교 여정’은 ‘터키 중앙 고원 지역에서의 복음 선포’를 다뤘다. (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위령성월을 맞아 ‘죽음, 죽음 준비, 그리고 삶’을 특집으로 △나의 죽음을 마주 대하기 △진실로 진실로 △청소년 청빈 캠프에서 쓴 버킷리스트 등을 실었다. ‘우리 신부님 최고’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정대웅(서울 석관동본당 주임) 신부를 소개했다. (미션3000/3500원) 남정률 기자 cpbc201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