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베드로와 바오로’를 특집으로, △베드로와 바오로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베드로, 바오로 신부의 치열한(?) 대리전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상 대화 등을 다뤘다. 로마통신에서는 제4회 세계 이민과 난민의 날 교황 메시지를 게재했고, 교리 도움 자료로 교리 퍼즐과 예수성심성월 교안을 소개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가톨릭 비타꼰‘교황님 환영합니다’에 △안명옥 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교황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 △이야기 성 프란치스코 등을 실었다. 비타꼰 인간극장에서는 한국에 온 지 14년 된 아프리카 앙골라 출신 에밀리아 수녀를 소개하며, 앙골라와 한국에서 수도자로 살며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경향잡지세월호 참사에 대한 강우일 주교의 특별기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을 게재했다. 경향 돋보기에서는 ‘보통사람’을 주제로 △‘보통사람’이란 말을 애용하는 사회 △지자체 선거와 보통사람 △진짜 보통사람을 위한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등을 다뤘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그물‘북한이탈주민’을 특집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삶을 소개하고 각 지역 공동체 신자들이 북한이탈주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담았다. 책머리에서는 예수성심성월을 맞아 우리를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삶을 되짚어보고, 이것이 주는 의미를 실었다. (마리아사업회/3000원)▨레지오 마리애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약은 집사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모님 묵상 △레지오의 영성은 ‘순명’ 등이다. ‘우리는 지금’에서 △중국 천진한인성당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대전교구 장애인사목부 천사들의 모후ㆍ사랑의 샘 쁘레시디움 △수원교구 율전동성당 성모 성심 꾸리아 등을 소개했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말씀지기매일 복음 말씀을 영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싣고, 복음과 관련해 묵상할 수 있는 이야기도 영어와 한국어로 게재한다. 영성에세이에서 △그리스도, 우리 믿음의 중심 △그리스도는 당신 마음속에 계십니다 등을 다뤘다. (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를 특집 주제로 △사제란? 그 본질과 존귀함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삶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삶과 신앙 △평신도들은 사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사제의 완덕과 복음 말씀 등을 실었다. 사목현장으로 ‘청소년을 돕는 착한 사마리아 청소년-대구대교구 YHY’를 소개했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생활성서‘우상, 신앙의 걸림돌’을 주제로 △누구를 위한 신앙인가 △불이익을 각오할 수 있는 믿음 △SNS에 갇힌 사회 △내가 만든 하느님, 이데올로기 △우상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법 등을 다뤘다. ‘꿈이 있는 세상’에서 상처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며 참교육을 실천하는 광주광역시 돈보스코학교를 소개했다. (생활성서사/3900원)▨성서와함께전례 속 성경 한 말씀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를,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에서는 ‘대홍수와 노아의 계약’을 다뤘다. ‘프란치의 영화 피정’이 소개한 영화는 ‘한나 아렌트’(2012)이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기도로 성 암브로시오의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안겨 주소서’를 실었다. (성서와함께/3000원)▨소년세계 가톨릭교회 소식으로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시성식과 두 교황의 삶과 신앙을 소개했다. 한국 가톨릭교회 소식으로는 27~29일까지 김포 한국가톨릭문화원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1회 가톨릭 어린이 영화제를 다뤘다. (가톨릭출판사/4000원)▨야곱의 우물표지 이야기로 비폭력대화 전문가 이윤정(요안나)씨를, 교회와 사회 주제로 ‘부활보다 십자가’를 다뤘다. 신앙생활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사연을 소개하는 ‘지팡이’에서 신앙의 힘으로 지독한 알코올 중독을 이겨낸 우주정(베라노)씨의 일화를 담았다. (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신앙의 프런티어’로 하느님 사랑 안에서 방송과 사업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이기상(야고보)씨를 만났다. 5대째 천주교 신자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당시에 생소했던 방송 VJ분야를 개척하고, 지금은 레스토랑 CEO로 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영화에 비친 세상’에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인사이드 르윈’(2013)을 소개했다. (미션3000/3500원)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백영민2014.06.05

안동교구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이야기해요」인기 비결은?성경 말씀과 놀며 하느님 체험 이끌어'오병이어 모임' 회원들과 남상우(오른쪽) 신부가 최근 펴낸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이변이다.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이라고 해봐야 한 본당에 20명 안팎인 안동교구가 펴낸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얘기해요」 시리즈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사목국이 교구 내 초등부 학생용으로 만든 교재인데, '쉽고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난 1년 동안 전국 15개 교구 100여 개 본당에서 구입 주문이 쇄도했다. 일본ㆍ미국ㆍ남미 등 한인본당에서 들어온 주문까지 합하면 약 2500권이 나갔다. 시리즈는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2013), 「…신약 속 인물 이야기」(2012), 「…구약 속 인물 이야기」(2011), 「…말씀 속 동물과 식물」(2010) 등이다. 이 교재는 주일학교 담당 신부와 수녀, 대학 교수, 주일학교 교사, 유치원 원장 등으로 결성된 주일학교 교재 연구단체 '오병이어 모임'(담당 남상우 신부)에서 내놓았다. 오병이어 모임은 2002년부터 '내수용'으로 교재를 만들어오다 2012년 발간한 「신약 속 인물 이야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수출용'으로 전환, 해외 한인본당 어린이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교재 인기 비결을 알아본다. ▶재미있고 쉽다 교재 그림과 내용이 흥미롭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림을 크게 썼다.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다는 평가다. 단원을 △말씀을 공부해요 △말씀을 생각해요 △말씀과 놀아요 등 3단계로 단순하게 구성한 점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감각적 매체를 자주 접하는 터라 설명이 길면 금세 싫증을 낸다.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를 예로 들면 첫 번째 이야기(단원)에서는 루카복음(14,16-23)을 읽는다. 그 다음은 말씀에 관한 퀴즈를 푸는 단계(말씀을 공부해요)다. 그리고 그 구절이 무슨 뜻인지, 미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말씀을 생각해요)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미사 참례 스타일을 찾는 보드게임(말씀을 놀아요)을 즐긴다. ▶학년 통합형 교재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학년 통합형' 교재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전학년생이 사용할 수 있다. 대도시 본당 주일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학년 별로 반이 편성된다. 학년별 교리교재는 세분된 만큼 특화된 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일학교 학생이 20명 남짓한 시골 본당에서는 학년별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안동교구가 직접 주일학교 교재를 펴낸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분량을 '확' 줄였다 「하느님과 얘기해요」는 주일학교 현장의 요구를 발 빠르게 반영해 단원 수를 줄였다. 일반 교재가 1년에 25개 과로 구성돼있는 반면, 이 책은 12개 과로 절반 이상 줄였다. 사목국 정미영(마리아 막달레나) 수녀는 "입학과 졸업, 방학, 첫 영성체 등으로 교리수업을 못할 때가 많다"며 "일반 교재를 사용하면 책을 다 못 배우거나, 1주에 몇 과씩 배워야 하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잃는다는 의견이 많아 분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가르치기 쉽다 교리교사들 부담을 덜어준 점도 인기 비결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복음을 읽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놀 수 있게 지도하면 된다. 교안은 인터넷 다음 카페(http://cafe.d aum.net/FiveTwo)를 통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고, 교사들끼리 교안을 공유할 수도 있다. 교구 사목국 주일학교 담당 남상우 신부는 "주일학교 교재를 자체 발행하는 교구는 서울ㆍ대구ㆍ의정부 등 4개 교구인데, 매년 새 교재를 발행하는 교구는 안동교구뿐"이라며 "주일학교 교사를 찾기 어려운 농촌지역에서는 통합교육이 가능한 이 교재의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이어 모임 회원이자 주일학교 교사인 한경애(데레사, 상주 자연어린이집 교사)씨는 "아이들이 교재를 읽으면서도 '어서 놀아요(3단계) 하자'고 말할 정도로 좋아한다"며 "성경 안에서 대화하고 웃는 동안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교재"라고 말했다. 문의: 054-858-3114, 교구 사목국 이힘 기자 lensman@pbc.co.kr퇴사자22013.02.05

신앙의 해, 교육ㆍ신심운동 활발서울 송천동본당, 성경ㆍ교리서ㆍ문헌 공부에 주력송천동본당 신자들이 미사에 앞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고 있다. 평일인 15일 오전 10시 미사를 15분 앞둔 서울 송천동본당(주임 이찬일 신부) 대성전. 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이 하나 둘 성전에 들어설 시간이지만, 성전에는 이미 100여 명의 신자가 앉아 「가톨릭교회 교리서」 읽기에 여념이 없다. 사순 기간 계속되는 교리서 읽기는 독서봉사자가 교리서를 소리 내어 읽고 신자들이 눈으로 따라 읽는 방식이다. 교리서를 눈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제가 그날 읽은 교리서 내용을 강론과 미사 후에 신자들에게 쉽게 풀어 전달하고 있다. 예비신자도 아닌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공부하는 이유는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주님께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다. 2013년 사목목표를 '신앙으로 함께 나아갑시다'로 정한 본당은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을 목표로 다양한 교육과 신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당은 성경 이어쓰기 봉헌(1월)을 시작으로 올 한해 △교황 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 읽기(2월) △「가톨릭교회 교리서」 읽기 (2~3월) △기도학교(3월) △성경 그룹공부(3월) △가톨릭 사회교리학교(6~7월) △참생명학교(11월)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본당은 지난 1월 「성경 매일 쓰고 묵상하기」 수첩을 제작해 신자들에게 나눠줬다. 신자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기억에 남는 구절을 수첩에 적어 묵상한 뒤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서해석(클라라, 65)씨는 "1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예비신자 시절 배웠던 교리를 다시 익히며 교회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다"면서 "본당에서 실시하는 여러 교육과 기도ㆍ묵상 운동이 신앙의 해를 뜻깊게 보낼 수 있는 데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이범석(요셉, 21)씨는 "매일미사 참례와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신앙과 생활을 이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찬일 신부는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성경을 읽는 것은 물론 교회 전승이 담긴 교리서와 문헌을 익혀야 한다"며 "성경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만나고, 교회와 함께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은총의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cpbc2013.02.19
![[복음이야기] (24) 대사제와 사제들(상)](//cpbc.co.kr/CMS/newspaper/2014/07/rc/520507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24) 대사제와 사제들(상)이스라엘 전통의 옹호자, 민족의 양심 역할 이스라엘 왕조시대 예루살렘 성전에는 2만여 명의 사제가 활동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데 꼭 필요한 중개자요 제례의식의 관리자인 사제의 지위는 존중되고 존경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제는 모세 시대에 탄생하고 왕정시대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면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사제의 역할은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후 더욱 커졌다. 사제는 이스라엘 전통의 옹호자로서 민족의 살아있는 양심의 역할을 했고, 유다교는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배경과 제도가 되고 또한 존재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제 집안이라 해서 모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제는 흠 없는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여야 했다. “너희 후손 대대로,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자기 하느님에게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못한다. …몸에 흠이 있기 때문에 그는 휘장으로 오거나 제단으로 다가와서 나의 이 거룩한 곳들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레위 21,16-23). 이 율법에 따라 하스모네아 왕조의 히르카노스는 귀를 베인 당일로 대사제직을 내놓아야 했다.사제로 선출되면 율법에 따라 세밀한 축성 예식을 거쳐 성별됐다. 성경은 사제 성별과 임직 예식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사제 임직자는 몸을 정결하게 물로 씻은 후 흰옷을 입고 머리에 성별 기름을 발랐다. 그런 다음 속죄 제물로 바칠 황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끌고 와 도살하기 전 안수를 하고 모두 번제물로 바쳤다. 주례 사제는 임직식에 쓸 두 번째 숫양의 피를 임직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바른다. 그러면 임직자는 굳기름과 떼낸 양의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누룩 없는 과자 하나와 기름을 섞어 만든 빵 과자 하나, 부꾸미 하나를 놓고 그것을 손으로 흔들어 바친 후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연기로 봉헌했다. 이것이 구약의 사제서품 예식이다(레위 8장). 대사제의 축성 의식은 일반 사제의 성별의식보다 훨씬 장엄하고 화려했다. 대사제에게 부어지는 기름은 최상의 올리브 열매에서 짜낸 것으로 값비싼 향료를 섞어 극히 향기로웠다. 율법에 따른 희생제는 7일간 바쳐졌다.대사제는 율법상 순결을 옹호하는 최고 책임자이므로 엄한 규율을 지켰고 과부나 이혼한 여인, 또 몸 파는 전력을 가진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죽은 짐승의 고기는 일체 먹을 수 없었고, 성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포도주를 마실 수 없었다. 그리고 시체를 멀리해야 했고, 수염은 한 오라기라도 깎아서는 안 됐다. 대사제의 옷은 화려했다. 일상복은 속옷을 입고 흰옷에 넓은 허리띠를 세 번 감고 삼각 모자를 쓴 간소한 차림새다. 성무를 집행할 때는 수놓아 뜬 속옷과 에폿, 가슴받이, 겉옷을 입고 두건과 띠를 했다. 가슴받이에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는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다(탈출 39장 참조). 대축제 때에는 두건 대신 ‘주님(야훼)께 영광’이란 글이 새겨진 삼중 금관을 썼으며 대속죄일 때에는 흰옷만 입었다. 호화로운 이 대사제의 옷은 로마인에게 빼앗겨 안토니아 요새에 보관했다가 대축제일 때만 허가를 받아 입을 수 있었다. 대사제는 온갖 특권을 누렸지만, 지위가 낮은 사제들은 성전에서 생활할 수 없었고 희생으로 바친 짐승의 고기나 빵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율법에 따라 부정을 범해 죄지은 사제에게는 특별한 형벌이 가해졌고, 사제의 아내나 딸로서 품행이 바르지 않는 이는 엄한 채찍을 받았다.모든 사제는 성소 안에서 맨발로 다녀야 했다. 성소 바닥은 정결례 목욕물이나 희생 제물의 피를 씻은 물로 항상 젖어 있어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늘 노출돼 있었다. 이스라엘의 사제들은 레위 지파에서 배출됐다. 그러나 최고 제관인 대사제의 직무는 모세의 형인 아론과 그 일족에게 맡겨졌다. 기원전 10세기 다윗왕 시절 아론의 후예로 엘아자르의 자손인 차독(공동번역 성경은 ‘사독’)이 대사제로 임명돼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위에 올린 후(1열왕 1,39) 그 일족은 기원전 2세기 초까지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 지위를 독차지했다. 이들은 차독(사독)의 후예들이라 해서 ‘사두가이’라 자칭하며 성전 대사제직을 누렸고, 레위인들은 이들의 복사 역할밖에 못 했다. 이처럼 소수 가문에서 사제들이 선출되면서 자기를 뽐내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 폐쇄적 특권의식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그들은 레위인들과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됐다.그러나 예수님 시대 사두가이파는 혈통과 역사로 볼 때 차독의 후예라고 볼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마카베오 가문의 유다 독립전쟁 승리 후 비 차독 가문에 속한 하스모네아 왕조가 대사제직을 차지했고, 이후에도 차독 일족은 대사제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사두가이파라는 말은 이후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과 사상적으로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변했다는 것이다. 로마 지배를 받던 예수님 시대 대사제는 유다인의 눈에는 위엄이 넘치는 중대한 인물이었지만 로마인들에겐 한낱 정치적 이용 수단에 불과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7.22
![[저자와의 만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펴낸 소프라노 김청자](//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8026_1.0_titleImage_1.jpg)
[저자와의 만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펴낸 소프라노 김청자아프리카 말라위 선교 봉사 생생히 담아 말라위 카롱가의 아이들과 함께 한 김청자씨. 에이즈로 사망한 부모가 많은 이곳에는 고아가 많다. 김씨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며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간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소프라노 김청자(아녜스, 70)씨가 책을 펴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지금, 여기’가 왜 아프리카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회고록이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 하느님 체험에 대한 고백록이다. 10월 28일 서울 명동 바오로딸서원에서 만난 그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처럼 뜨거웠고, 손주를 품에 안은 할머니처럼 따뜻했다. 일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책 이야기는 어느덧 신앙체험 나눔이 됐고, 인터뷰는 어느새 피정이 됐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서 6장 8절이 그를 아프리카로 이끌었다. 그는 “그 성경 구절이 마음에 꽂힌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2005년 남아공을 여행할 때였어요. 주일에 케이프타운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그날 독서 말씀 중에 그 구절이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 저를 보내십시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죠. 미사 내내 울었어요. 그러면서 확신이 생겼죠. 내가 있을 곳이 이곳 아프리카라는 걸요. 주님께서 부르시는 곳이 이곳이라고요.”이후 그는 아프리카와 한국을 오가며 아프리카 선교지를 돕기 시작했다. 그가 한 번씩 아프리카를 드나들 때마다 병원엔 침대가 마련됐고, 마을엔 우물이 생겼다. 눈이 맑은 아프리카 아이들과 살을 맞대고 부대끼는 생활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은 그를 엄마로 불렀다. “2010년 집을 팔고 한국생활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 마을로 이사했죠. 집을 판 돈 2억 원으론 후원회를 만들었고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진 것을 다 내놓고 나니 홀가분했어요.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알기에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고요. 단 한 번도 아프리카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그가 사는 말라위는 인구가 1300만 명으로 그중 70%가 청소년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평균 수명이 마흔밖에 되지 않아 어른은 적고 아이들이 많은 나라다. 그는 말라위에서 청소년센터를 짓고 아이들 교육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음악을 가르친다.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말라위 전국 음악콩쿠르에서 깜짝 1등을 하면서, 그가 세운 음악학교는 단숨에 말라위 명문으로 떠올랐다. “사실 아프리카에선 음악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어요. 고아들을 돌보는 데 더 힘을 쏟고 싶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음대 교수를 지낸 선교사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음악을 가르쳐 달라며 2시간을 걸어온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 그 절실함이 어떤 건지 제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도 했고요.”현재 그가 세운 음악학교 출신 학생 3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성악과 색소폰, 트럼펫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내일 하느님께서 날 데려가신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타는 듯한 더위, 믿었던 이들의 배신,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 인간적 외로움 등 아프리카 생활이 늘 행복하고 감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좌절과 아픔도 모두 하느님 뜻이고 결국엔 은총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어쩔 땐 다 접고 다시 한국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하느님께선 용서와 이해를 알려주시고, 제가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아왔는지를 깨우쳐 주시죠. 이곳에서의 생활은 끝나지 않는 피정이랄까요. 아프리카는 내가 스스로 들어간 좁은 문이에요.”그에게 아직 더 할 일이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앞으로 음악대학, 기숙사, 도서관, 초등학교, 성당, 병원을 지을 계획이라며 원대한 포부를 꺼냈다.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보니 어쩐지 불가능해 보이지가 않는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4.11.05
![[성경 속 궁금증] 54. 성경에 나오는 눈물을 담는 병은 무엇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25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4. 성경에 나오는 눈물을 담는 병은 무엇인가요?각자 눈물병에 눈물 모아 소중히 간직, 사람이 죽으면 그 눈물병도 함께 매장이란 에스파한 박물관에 전시된 눈물병."주님, 어디로 가십니까?(Quo Vadis Domine)"라는 베드로의 질문을 제목으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 폭군 네로가 눈물을 억지로 짜내 병에 담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네로의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났던 베드로 사도는 도망치던 중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다.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교인을 탄압하려고 로마 시가지에 불을 놓고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네로는 눈물단지를 가져오게 한 뒤 긴 대롱에 억지로 짜내듯 눈물을 받아 담는다. 페르시아에서는 장례식을 주례하는 사제가 손에 면 헝겊을 들고 있다가 가족과 친지들이 눈물을 흘리면 바닥에 떨어진 눈물을 정성껏 닦은 후 병에다 짜넣고 아주 조심스럽게 보관하는 관습이 있었다. 또 죽음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장례식에서 모은 눈물을 입 속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죽어가던 사람이 소생하는 것으로 믿기도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눈물을 받아두는 병이 있었다. 이 눈물단지들은 유리나 질그릇 같은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눈물단지 대부분은 밑 부분이 넓은 대신 목이 호리호리하고 깔때기 모양의 주둥이를 갖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한 토기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이 눈물단지는 가정에 어떤 재난이 생겼거나 마음이 상해 눈물을 흘리게 될 때, 흐르는 눈물을 모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식구들은 제각기 눈물병을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슬픈 일로 눈물을 흘리는 동안 눈 아래에 병을 대고 흐르는 눈물을 병에 담았다. 그리고는 병을 밀봉해 집안의 잘 보이는 곳에 보관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재난이 생기면 그 눈물병을 챙겨서 그 재난이 일어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물병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성스럽게 여겼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눈물병을 함께 매장했다. 이 눈물단지를 깨뜨리거나 그 안의 눈물을 쏟아 풍습대로 함께 매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다. 시편에 눈물단지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저는 뜨내기, 당신께서 적어 두셨습니다. 제 눈물을 당신 부대에 담으소서. 당신 책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시편 56,9). 신약성경에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 발을 씻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자신의 눈물단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8). 눈물은 인간의 격한 감정과 슬픔을 표현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탄, 애도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눈물은 겸손, 좌절, 실망의 상징으로 이런 인간적 감정과 연관돼 나타난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라자로의 죽음에 몹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신다. 그리고 그를 다시 살리시는데, 예수님 눈물은 사랑의 표현과 인간적 면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요한 11,1-44). 바오로 사도도 사목자로서 신자들을 향한 걱정과 연민 때문에 자주 눈물을 흘렸다(2코린 2,4).퇴사자22012.11.13
![[신앙단상] 카인의 분노](//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9681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카인의 분노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성경은 오직 온유와 겸손, 인내로 마음 안을 가득 채우고 넘쳐서 세상의 관계 속에 드러내고 실천하는 수준이라야 ‘사랑’이라고 했다(1코린 13).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신명 6,5) 사랑해야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멜의 산길」에서 ‘의지’를 무질서한 집착에서 말끔히 씻어내어 영혼의 기능과 감정과 욕구를 하느님과 합일에 써야 한다고 했다. 무질서한 집착과 감정은 기쁨과 바람과 슬픔과 무서움이다. 하느님과 합일을 향해 영혼을 ‘의지’로 단련시켜야만 온전한 사랑의 에너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경계가 없고 막힘이 없는 것이어서 그 본질에서는 비교나 경중이 없다. 사랑의 에너지로 존재를 가득 채운 수준에 이르러야, 사심이 비워져 투명하므로 진리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도 진리를 온전히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1코린 13,11-12). ‘사랑’은 정신의 궁극적 성숙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인데(1코린 13,4-5). 사람의 몸을 통해 태어난 첫 번째 사람 카인은 시기와 분노로 살인을 저질렀다. 하느님은 아담을 내쫓되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었듯이,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도 벌을 내리되, 표징을 찍어 그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창세 4,15). 그러니 하느님 사랑을 닮으려면 악에 대해 응징은 하되, 악인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마태 5,44). 카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아벨과 비교했고, 분노와 시기로 아벨을 죽이고도 죄책감이 없었다. 하느님이 카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카인은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하고 말대꾸를 한다. 이것은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반발적 언사이기도 하다. 인정 욕구는 죄책감을 무디게 할 정도로 강렬한 추동력이고, 그만큼 죄악이 문앞에 도사리고 앉아(창세 4,7) 쉽사리 틈을 비집고 들어오게 하는 유혹에 노출된다. 카인의 분노는 우리 생활 속에서 통상적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양태다. 인정 욕구에서 비롯하는 분노와 시기는 그 정도를 달리할 뿐이며 쉽사리 사랑으로 착각된다. 다만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만큼은 절제하는 성숙함을 갖춰야 타인과의 관계 형성, 심지어 적대적 관계에서도 공존이 원활해진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사랑과 악의 통로로서의 분노에 대한 성찰이 없고서는 올바른 가치기준과 행위 윤리를 갖추기 어렵다.하느님의 명령을 위반한 아담의 행위를 노아가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해서(창세 6,22) 만회했다면, 카인의 말대꾸는 아브라함에 이르러 수정된다. 아브라함은 그를 시험하고자 부르는 하느님에게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창세 22,1). 아무리 시험이라 해도 자식을 죽이라고 한 하느님이나, 또 실제로 칼을 뽑아든 아브라함이나 너무 잔혹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태어난 첫 번째 사람 카인이 살인을 저질렀으니, 아브라함이 뽑아든 칼로서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을 정도의 의지 속에서 죄를 범함과 죄 사함이 대칭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가르침에 의지를 내어 노력함으로써 시기와 분노가 살아 움직이는 카인으로부터 아브라함에게로 옮겨가기를 소망해 본다. 평화신문2014.09.17

거짓 종말론 빠진 신자, 교회가 구해야 가톨릭대 사목연구소·신학과사상학회, ‘묵시록과 종말론’ 학술 심포지엄 가톨릭대 사목연구소와 신학과사상학회는 8일 묵시록과 종말록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열고, 교회와 사회 안팎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 문제를 신학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왼쪽부터 백운철 신부, 이성근(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 허규 신부, 이혜정(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수녀, 김준철·한민택·박준양 신부. “신자들이 사이비, 이단과 같은 신흥종교에 빠지는 것은 신흥종교의 교리에 매혹됐다기보다, 기성 교회에선 느낄 수 없던 공동체 의식, 사목적 관심과 배려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기성 교회가 잊거나 도외시한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적 측면을 신흥종교가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한민택(수원가톨릭대) 신부는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말하며 “신천지에 가입한 가톨릭 신자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 자신의 민낯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신부는 “신흥종교 연구는 우리의 지금 모습이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지 살펴보게 한다”면서 “신천지뿐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신흥종교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사목연구소와 신학과사상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학술심포지엄은 교회와 사회 안팎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교리와 실태를 신학적, 학술적 측면에서 분석, 성찰한 자리였다. 제1발표에서는 신천지 교리의 핵심인 ‘요한묵시록’의 올바른 이해와 해석에 대해 살펴봤고, 제2발표에서는 신천지를 중심으로 국내 그리스도교계 신흥종교의 종말론을 신학적으로 분석했다. 심포지엄 시작 30분 전부터 300석이 넘는 대강당이 신자와 수도자, 신학생들로 꽉 들어찼다. 박준양(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신천지 운동은 치밀하고 강력한 조직적 성격을 띤 신흥종교 운동 범주에 속하면서도, 내용 면에선 신(新)영지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이단으로 분류된 사상으로 세상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이원론을 주장하며, 물질세계를 거부하고 비밀스러운 실천으로 얻어진 참된 인식을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박 신부는 “신흥종교의 거짓된 종말론적 주장에 담긴 오류와 위험성을 분명히 지적하는 예언자적 고발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리적 분석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신흥종교에 빠지지 않도록 영성적 사목적으로 돌볼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철(서울 돈암동본당 주임) 신부는 “신천지는 신천지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폐쇄적이며 자체 교리서와 출판물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지 않기에 그 교리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면서 신천지 연구에 어려움이 있음을 설명했다.한민택 신부는 “신천지는 종말론을 다룬 마태오 복음 24장과 요한묵시록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왜곡된 성경 지식을 주입하는데,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으면 때때마다 교리를 바꾸고 있어 신천지에서 주장하는 종말론의 정확한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요한묵시록과 그 해석’을 발표한 허규(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종말과 다양한 상징적 표현으로 가득찬 요한묵시록은 종말을 강조하는 신흥종교들에게 애용돼 왔고, 이들의 작위적 해석은 듣는 이들을 솔깃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허 신부는 “묵시록은 겉으로 보기엔 심판과 단죄, 재앙과 전쟁을 다룬 책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오히려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라면서 “종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단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줄 뿐, 이러한 결과는 묵시록이 전하고자 했던 희망이나 위로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한국 신흥종교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가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노 교수는 “신흥종교 단체에선 천주교 신자를 신흥종교의 예비군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사목자들이 신자들의 교리교육을 강화하고 사목적 돌봄과 배려에 더욱 힘쓸 것을 당부했다. 가톨릭대 신학대 학장이자 사목연구소 소장인 백운철 신부는 “신천지 문제를 다루면서 결국 우리 자신이 복음적으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면서 “신천지를 비롯한 신흥종교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4.11.13
![[성경 속 궁금증] 6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어떠한 의미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42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6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어떠한 의미인가?가나안 땅 허락은 신앙의 결과로 주어진 선물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이자 하느님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은 사해 근처 이스라엘 땅.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마디로 '땅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느님의 땅, 이스라엘인들이 치열하게 살고 전쟁하고 죽어간 땅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없던 시대에 가나안과 이집트 사이를 떠돌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나안 땅은 단순한 지리적ㆍ정치적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세 12,1)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세켐에 이르러 그 땅에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창세 12,6)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한다. 따라서 구원사적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준 것은 하느님의 구원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즉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한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은총이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결과로 주어진 특권이다(창세 22,17-1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 땅은 백성의 종교적 행동을 반영하는 일종의 증거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에서부터 이미 조건은 주어져 있다(창세 15장). 따라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을 상실한 것은 그들의 죄가 땅에서 그들을 추방하게 한 것이다(창세 15,16).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땅은 이스라엘 민족을 버릴 것이다(레위 18,28). 따라서 땅으로부터 백성들이 추방됐다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느님 신앙은 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세 12,1)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자신들의 것이 아닌 땅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 땅에 대한 처리 권한은 전적으로 하느님에게만 있다. 마치 중세시대 영주가 충성한 종에게 하사하는 일종의 봉토로 해석한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땅은 후손들에게 계속 유전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다(민수 36,7). 하느님에게 속한 땅을 얻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계약을 기억하고 계명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땅을 잃거나 얻지 못하는 것과 땅이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다(신명 4,26). 이러한 관점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이뤄진 유다 백성의 바빌론 유배는 백성이 하느님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 심판은 하느님이 주신 땅으로부터 쫓겨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이자 하느님 역사의 현장이다.황병훈2013.04.16
![[성경 속 궁금증] 49. 성경에서 마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50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9. 성경에서 마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인간 참된 모습 존재하는 마음,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예수 성심(이남규 작, 1978년). 성경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정신적ㆍ내적 움직임을 몸의 어떤 특정 기관 활동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체 중심인 심장은 마음과 동일한 것이었다. 인간의 참된 모습은 외면의 아름다움이나 힘에 있지 않고 마음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진실을 외적 행동으로 보지 않으시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으로 살피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하느님은 인간에게 굳은 마음을 없애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 여기서 새 마음은 단순히 깨끗한 마음을 뜻하지 않고 하느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종의 마음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모든 인간 감정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된다.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레위인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하는 줄 안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 그는 너를 보면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다.'"(탈출 4,14). 따라서 성경에서 절망이나 슬픔, 신뢰나 분노 등도 모두 사람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들로 나타난다. 그래서 새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적으로 변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인간 마음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음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만 아니라 행동을 선택하기도 한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1-23). 이처럼 사람이 속으로 품는 부정적ㆍ긍정적 생각이나 의도나 자세만이 아니라 모든 구체적 행동까지 마음에서 흘러나온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자리가 마음이다. 즉, 지식을 얻는 곳, 지식이 저장되는 곳도 마음이라는 것이다(잠언 15,14). 재미있는 것은 사람 마음이 몸의 건강과도 직결된다고도 믿었다는 사실이다.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다"(잠언 14,30). 이처럼 성경에서는 마음을 감정과 이성, 의지 그리고 도덕과 신앙의 중심으로 여겼다. 그래서 마음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삶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도 바오로는 신앙은 사고나 감정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의 문제라고 가르쳤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결국 마음은 곧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가 된다. "거기에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찾게 될 것이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 뵐 것이다"(신명 4,29). 동시에 마음은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고린 1,22).퇴사자22012.09.18

사랑과 존경이 있는 이곳이 어르신 천국서울 서초구립노인요양센터, 입주 어르신 가족처럼 모시고 맞춤 서비스 제공서울 서초구립노인요양센터 어르신들이 문화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서초구립노인요양센터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이만한 시설은 없어요. 수녀님, 직원들이 진정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주니까요."(정성중 요셉, 91) "종일 마음껏 기도하지, 성경 공부하지, 미사 참례하지, 이런 곳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주님께서 이뤄주셨어요."(임귀임 마르타, 92)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340길 21 서초구립노인요양센터. 우면산 자락 한편 평온한 곳에 자리한 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센터에서의 생활에 더할나위 없이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술ㆍ원예ㆍ심리상담ㆍ종교활동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프로그램과 갖가지 문화활동을 하며 사는 어르신들은 365일 센터가 주는 즐거움에 산다. 복도 벽을 한가득 메운 사진 속에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휠체어를 타고 힘겨운 몸을 이끌고서 성지순례하며 기도하는 모습, 꽃단장하고 신바람 나는 공연을 즐기는 환한 얼굴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참여도가 높은 것은 종교활동이다. 센터는 미사, 예배, 법회 등 각 종교에 맞는 신앙생활을 배려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 어르신도 수녀가 가르치는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에 빠지지 않을 정도다. 치매 어르신이 70%, 한해 40여 명이 센터에서 주님 곁으로 떠나지만 대부분 보호자들은 병원 중환자실보다 이곳 센터에서 수도자들의 따뜻한 기도 안에서 임종을 맞길 원한다. 어르신들의 편안한 안식처인 센터가 설립 3주년을 맞았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최초 구립노인요양시설이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센터에는 입주 어르신 200명이 6개 마을로 나눠 살고 있다. 수녀 3명을 포함해 직원 130여 명은 어르신 각자 성향을 반영한 '케어 플랜'에 따라 어르신들이 평생 살아온 모습 그대로 생활하도록 돕는다. 쾌적한 입지 조건과 문화ㆍ케어 서비스, 나아가 영적 배려까지 심혈을 기울여온 센터는 3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교회가 운영하는 모범 노인요양시설로 손꼽히고 있다. 한달 생활비 수백만 원에 이르는 대기업 시니어타운 관계자들이 10분의 1에 불과한 생활비로 운영하는 이곳 센터에 대기자만 700여 명에 이른다는 소문을 듣고 수시로 찾아와 비결을 캐물을 정도다. 센터는 14일 센터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정성환 신부 주례로 3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인터뷰 / 센터장 박지숙 수녀 "'어르신이 주체로서 행복한 삶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어르신 돌봄을 넘어 한분 한분이 매일 기쁘게 주체적 삶을 사시도록 힘쓰는 일은 꾸준히 이어져야죠." 센터장 박지숙(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는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웃으며 생활하실 수 있도록 직원들은 '오감(五感)'이 열린 생활로 존중하며 섬기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수녀는 "200명 어르신 뒤에 수백 명 보호자들의 기대가 있어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 저희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겨주신다"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어르신과 더불어 살도록 직원 영성교육 또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박 수녀는 "어르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사랑과 존경을 담고, 어르신 말씀에 늘 귀 기울이고, 그분들 동작 하나에도 기뻐하는 센터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며 "어르신들을 천국으로 배웅하는 데 저희를 도구로 써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백영민2014.04.16

복자 124위 열전 이경도·경언독실한 신앙의 부모 밑에서 자라, 형에 이어 동생도 순교 복자 이경도 이경도(가롤로, 1780∼1802)와 순이(루갈다, 1782∼1802), 경언(바오로, 1792∼1827) 3남매를 얘기하자면, 그의 부모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부친 이윤하(마태오)는 유명한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의 외손으로, 조선 교회 설립 직후인 1794년에 신앙을 받아들였고, 모친 안동 권씨는 조선 교회 설립 초기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누이로, 신앙에 열심이었다.이처럼 신앙적 가정환경을 만든 부모 슬하에서 자라난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교리 실천에 열심일 수밖에 없었고, 3남 2녀 중 세 남매가 신앙적 용덕을 보이며 순교의 길을 걸었다. 이들 중 이순이 복녀는 이미 남편 유중철(요한, 1779∼1801) 복자와 함께 소개한 바 있기에 이번에는 이경도ㆍ경언 형제만 소개한다.본래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러웠던 이경도는 장성해서도 학문에 재능을 보여 교회 서적을 연구하는 데 힘썼다. 어릴 때 병을 앓아 척추 장애인이 됐지만, 신앙으로 신체적 결함을 보완했다. 1793년 혼인을 한 지 석 달 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장남으로서 제사를 피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제사 참여에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다. ‘척추 장애’를 핑계로 제사에 참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며 아랫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동정 생활을 하고자 유중철과 혼인한 누이 이순이의 혼사 때 거센 폭풍과도 같은 반대를 감수해야 했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가문은 조선 사회에서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가통(家統)과 학통(學統), 대통(大統)이라는 3통, 곧 집안과 학문적 전수 계통, 왕통 계승 등 질서에서 보자면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 양반도 다 같은 양반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이경도는 모든 반대를 동요하지 않고 견뎌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필공(토마스)이나 홍재영(프로타시오) 등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교리를 익혔다. 그랬기에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마자 체포돼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며, 1802년 1월 29일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이경언은 그의 형이 순교한 지 25년 뒤에 순교한다. 부친이 선종할 때 2살밖에 되지 않아 그는 부친의 가르침은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와 형의 훈육 속에서 신앙 실천에 열심을 보였다. 신유박해 당시 형과 누나가 순교하면서 집안이 몹시 가난해졌지만, 그는 신앙으로 가난을 견디며 중인 집안의 딸과 혼인했다. 아내의 성품이 고약해 갖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범적 인내로 이를 극복했으며, 성경 봉독과 묵상에 빠지곤 했다. 그는 특히 냉담교우들에게 신앙을 권면하고 격려하며 미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열중했다. 또 자신보다 가난한 이들의 곤경을 덜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명도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교회서적을 필사하거나 상본을 모사해 교우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가난한 가운데서도 베이징을 왕래하는 정하상(바오로) 등 밀사들에게 필요한 경비를 대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늘 순교 원의를 품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며 자주 묵상을 했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난 뒤 자신이 나눠준 서적과 상본이 발각돼 전주 관아에 고발되면서 한양에 살고 있던 그는 포도청에 끌려갔다가 전주로 이송됐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혹형에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하며 순교를 위해 노력하던 그는 옥중에서 어머니와 가족, 아내, 그리고 명도회원들에게 보내는 서한 3통을 써서 보낸다. 그 서한에 당시 그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상처의 괴로움으로 말하자면 나의 너무나 연약한 육체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천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어찌 한시인들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신앙을 증거하는데 노력하던 그는 1827년 6월 27일 옥중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복자 124위 열전 <33> 이경도·경언 백영민201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