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3089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2> 구약 시대의 역사이집트 탈출, 이스라엘 민족에 결정적 사건 외세 침입에 왕정 요구하지만 혼란 지속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함락되는 아픔 겪어이스라엘의 역사 오늘은 나무가 아닌 숲만을 보는 날입니다. 두 주에 나누면 앞부분을 잊어버리실까봐, 무리가 가더라도 한 회에 끝내겠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살펴보게 될 구약 시대 전체의 역사를 한번 맛보기로 훑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천히, 자세히 다시 다룰 것이므로 이번에는 흐름만 보시면 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확인할 내용들이 아닙니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기원전 2000년대에 떠돌이 유목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그려진 성조 시대의 모습은 대략 기원전 1800년 정도의 생활상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역사적으로 연대를 따질 수 있는 것은 이집트 탈출에서부터입니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기원전 1200년대에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서부터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형성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탈출기에서는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맺어진 것도 이 때부터라고 전해 줍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요르단 강 동쪽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을 건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고 열두 지파에게 분배합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때부터 왕정이 설립되던 때까지의 판관 시대는(기원전 1200~1030년쯤), 왕정으로 넘어가기 이전의 과도기였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나뉘어 있어서, 아주 견고한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판관은 일시적인 지도자로서, 세습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판관기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판관을 일으키시어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고 전하지만, 필리스티아와 같이 계속 이스라엘을 침범하는 세력들에 맞서기 위해서 백성은 다른 민족들과 같은 왕정을 요구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정은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왕정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처음에는 벤야민 지파의 사울이 임금으로 뽑힙니다. 하지만 그의 왕국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기원전 1010년쯤 유다 지파의 다윗이 왕위에 올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일 왕국을 이루고 수도도 예루살렘으로 정합니다. 이어서 970년쯤에는 그의 아들 솔로몬이 임금이 되어, 왕국이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번성했던 그 왕국은 분열의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933년에는 왕국이 둘로 분열됩니다. 솔로몬의 신하였던 예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은 남왕국 유다만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로 남왕국 유다에서는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다윗 왕조가 이어졌지만, 반란으로 시작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차례 반란이 거듭되고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실 때 복잡한 부분입니다. 도표를 보시기 바랍니다. 왕정이 설립된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온통 외세에 시달려온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기원전 8세기 이래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했던 큰 세력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시면 됩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아시리아가 패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시리아가 기원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아시리아의 뒤를 이어 큰 세력이 되었던 것은 바빌론이었습니다. 기원전 587년에는 바빌론이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불에 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뒤흔드는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무너뜨리자,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바빌론에 끌려와 있던 유다인들을 팔레스티나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시기의 중요한 인물은 에즈라와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들의 활동에 힘입어 성전이 재건되었고, 이스라엘은 미약하나마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기원전 333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즉위하여 짧은 시간에 페르시아도 꺾고 광대한 제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기원전 160년대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던 이들은 유다교를 금지시켰고, 이에 저항하여 일어난 마카베오 형제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몬 왕조를 세웁니다. 그러나 이 하스몬 왕조의 내분으로 기원전 63년에 로마군을 끌어들이게 되어 결국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기원후 66년에는 독립을 위한 항쟁이 일어났지만 로마군에 진압되고, 기원후 70년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최소한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성경의 하느님은 전쟁 한번 겪지 않은 평화와 번영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죽음을 체험한 역사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당신을 알게 하십니다. 이 역사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당신 백성에 대한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시편 106,4). 백영민2014.12.03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2>구약 시대의 역사 이집트 탈출, 이스라엘 민족에 결정적 사건외세 침입에 왕정 요구하지만 혼란 지속기원후 70년, 예루살렘 함락되는 아픔 겪어오늘은 나무가 아닌 숲만을 보는 날입니다. 두 주에 나누면 앞부분을 잊어버리실까봐, 무리가 가더라도 한 회에 끝내겠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살펴보게 될 구약 시대 전체의 역사를 한번 맛보기로 훑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천히, 자세히 다시 다룰 것이므로 이번에는 흐름만 보시면 됩니다.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확인할 내용들이 아닙니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기원전 2000년대에 떠돌이 유목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그려진 성조 시대의 모습은 대략 기원전 1800년 정도의 생활상에 해당하는 듯합니다.역사적으로 연대를 따질 수 있는 것은 이집트 탈출에서부터입니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기원전 1200년대에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서부터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형성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탈출기에서는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맺어진 것도 이 때부터라고 전해 줍니다.그러나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요르단 강 동쪽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을 건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고 열두 지파에게 분배합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때부터 왕정이 설립되던 때까지의 판관 시대는(기원전 1200~1030년쯤), 왕정으로 넘어가기 이전의 과도기였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나뉘어 있어서, 아주 견고한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판관은 일시적인 지도자로서, 세습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판관기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판관을 일으키시어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고 전하지만, 필리스티아와 같이 계속 이스라엘을 침범하는 세력들에 맞서기 위해서 백성은 다른 민족들과 같은 왕정을 요구합니다.이스라엘에서 왕정은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왕정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처음에는 벤야민 지파의 사울이 임금으로 뽑힙니다. 하지만 그의 왕국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기원전 1010년쯤 유다 지파의 다윗이 왕위에 올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일 왕국을 이루고 수도도 예루살렘으로 정합니다. 이어서 970년쯤에는 그의 아들 솔로몬이 임금이 되어, 왕국이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번성했던 그 왕국은 분열의 요인들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933년에는 왕국이 둘로 분열됩니다. 솔로몬의 신하였던 예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은 남왕국 유다만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로 남왕국 유다에서는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다윗 왕조가 이어졌지만, 반란으로 시작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차례 반란이 거듭되고 왕조가 바뀌었습니다.이제부터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실 때 복잡한 부분입니다. 도표를 보시기 바랍니다. 왕정이 설립된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온통 외세에 시달려온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기원전 8세기 이래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했던 큰 세력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시면 됩니다. 기원전 8세기에는 아시리아가 패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시리아가 기원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아시리아의 뒤를 이어 큰 세력이 되었던 것은 바빌론이었습니다. 기원전 587년에는 바빌론이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불에 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뒤흔드는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무너뜨리자,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바빌론에 끌려와 있던 유다인들을 팔레스티나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시기의 중요한 인물은 에즈라와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들의 활동에 힘입어 성전이 재건되었고, 이스라엘은 미약하나마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기원전 333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즉위하여 짧은 시간에 페르시아도 꺾고 광대한 제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기원전 160년대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던 이들은 유다교를 금지시켰고, 이에 저항하여 일어난 마카베오 형제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몬 왕조를 세웁니다. 그러나 이 하스몬 왕조의 내분으로 기원전 63년에 로마군을 끌어들이게 되어 결국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기원후 66년에는 독립을 위한 항쟁이 일어났지만 로마군에 진압되고, 기원후 70년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됩니다.이스라엘의 역사를 최소한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성경의 하느님은 전쟁 한번 겪지 않은 평화와 번영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죽음을 체험한 역사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당신을 알게 하십니다. 이 역사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주님, 당신 백성에 대한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시편 106,4). 평화신문2014.12.03
![[복음이야기]<9> 이스라엘의 절기- 유다력](//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0208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이스라엘의 절기- 유다력하느님 자비 빌고 관용 드러내는 '축제' 이스라엘의 한 해 절기는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처럼 율법으로 정해진 축제일을 지키는 '유다 종교력'에 따라 규정됐다. 유다인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구실을 한 이 축제들은 파종제와 추수제 등과 같은 계절적 풍속에 구세사의 위대한 사건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제를 연계시킨 것이 특징이다. 또 유다인의 축제 대부분은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회개'의 성격이 강한 것이 다른 민족의 여느 축제와 다른 점이다. 이는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탈출 19,17)이라는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호소이다. 유다인의 축제는 종교력에 따라 대축제와 소축제로 구분된다. 대축제는 가장 중요한 축제로 △과월절(파스카, 무교절, 유월절) △오순절(추수절, 주간절) △초막절(장막절)이 있다. 신명기 16장 16-17절에 따르면 유다인 가운데 모든 남자는 해마다 세 번씩, 곧 무교절과 주간절과 초막절에 주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곳(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느님께 예물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 대축제를 '순례축제'라 불렀다. 소축제는 역사적 사건이나 관습에 기원을 둔 기념일로 초여름 양털을 깎는 행사(창세 31,19; 38,12)와 아다르 달(2월 중순~3월 중순) 14~15일 이틀간 유다인 왕비 에스테르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를 움직여 유다인의 원수를 제거하고 동족을 구한 사건을 기념해 지내는 '푸림절'(에스 9,17-32) 등이 있다. 또 마카베오 형제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해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해 키슬레우 달(11월 중순~12월 중순) 25일부터 8일 동안 지낸 '제단 봉헌 축일(하누카)'(1마카 4,36-59)이 있다. 마카베오 형제들이 니카노르 장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한 아다르 달 13일은 '승전 기념일'(1마카 7,49)로 지냈다. 이외에 유다인은 율법에 따라 '정한 때'라 불리는 안식일과 관련된 축제를 지냈다. 이 공식 축제는 △안식일(탈출 16,23) △매달 초하룻날(민수 28,11) △첫째 달 초하룻날(탈출 40,2-16) △칠월 초하룻날(레위 23,24-25) △안식년(레위 25,1-7) △희년(레위 25,8-22) 등이 그것이다. 유다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숫자 '7'과 연관된 이 축제들은 하느님의 무한한 관용과 자비를 드러내는 축제로 종교적, 사회적, 인도적, 경제적 사면이 시행됐다. 율법은 안식년에 유다인 노예들, 특히 부채 때문에 팔려온 사람들을 해방시킬 것을 명했다. 동시에 이 해에는 모든 부채도 면제됐다. 또한 이 해에는 토지도 한 해 동안 완전히 휴식을 줘야 했다.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내고 난 50년째인 희년에는 모든 노예는 예외 없이 해방됐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 부채를 갚기 위해 부자에게 팔았던 토지는 율법이 엄격하게 정한 가격으로 반환됐다. 유다인은 또 율법에 따라 '금식일'을 정해 지켰다. '정한 때'에 지내는 금식일은 재앙을 막기 위해 회개와 속죄의 뜻으로 금식하는 티쉬리 달(9월 중순~10월 중순) 10일의 '속죄일'(욤 키푸르, 레위 16장, 민수 29,7-11)이 있다. 또 관습에 따라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파괴된 것(2열왕 25,9; 예레 52,12-13)을 애도해 다섯째 달(7월 중순~8월 중순) 7일을 금식일로 지키고 있다. 유다인은 달 이름을 두고 3가지 체계를 따랐다. 첫째 가나안식 달 이름으로 바빌론 유배 이전까지 사용했다. 구약성경은 그 가운데 과월절과 관련된 '아빕 달'(탈출 13,4; 탈출 23,15; 신명 16,1)과 솔로몬 성전 봉헌과 연관된 '지우 달'(1열왕 6,1),'에타님 달'(1열왕 8,2),'불 달'(1열왕 6,38)'을 전하고 있다. 이 네 달 이름 뜻은 모두 농사 절기와 관련되는데 봄의 첫 달 아빕은 '푸른 밀 싹'을, 지우는 봄의 화려한 색을 가리키는 '찬란함' 또는 '밝음'을, 가을의 에타님은 '흐르는 개울'을, 불은 '소출' 또는 '가축'을 뜻한다. 하지만 가나안식 달 이름은 왕정시대 초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고 첫째 달, 둘째 달 등 숫자로 달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숫자로 달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바빌론 유배 이후에도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 사용됐고, 구약성경은 이 체계를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숫자 달 이름은 춘분을 기점으로 정한다. 구약 성경은 가나안식 네 달이 어느 달인지 숫자로 밝히는데 아빕은 '첫째 달'(춘분이 낀 달), 지우는 '둘째 달'(춘분 다음 달), 에타님은 '일곱째 달'(추분이 낀 달), 불은 '여덟째 달'(추분 다음 달)이다. 마지막 달 이름은 바빌론식으로 바빌론 유배 이후 이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랍비 시대에 와서 완전히 정착됐다. 바빌론식 달 이름은 △니산 △이야르 △시반 △탐무즈 △압 △엘룰 △티쉬리 △마르케쉬반 △키슬레우 △테벳 △스밧 △아다르 순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4.03.11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4>"집어라, 읽어라!" (끝)](//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2682_1.2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집어라, 읽어라!" (끝)힐링 원하는 시대, 사랑의 치유 '성경'에 귀 기울여야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시다. 성경을 읽어야만 예수님을 알 수 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강아지 언어 인간은 인간의 언어를 쓰고, 강아지는 강아지 말을 쓴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 자꾸 정이 쌓인다. 무릎에 턱을 고이면 뭔가 주고 싶고, 혀 내밀고 꼬리를 흔들면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강아지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강아지의 언어를 이해하면 가능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심하게 어지른다면, 물건을 입에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면, 다가와서 주인 얼굴을 핥는다면, '아, 이런 뜻이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주지 않는 것이 좋고, 외출이나 귀가할 때 인사 안 하는 것이 좋다. 밥 시간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져 화가 나게 되고, 나갈 때 이별 예고를 알아들은 강아지는 초조해진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하느님은 거룩하고 순수한 영이시다. 하지만 썩을 육신을 취해 오셨다. 하느님은 말이 필요 없는 분이다. 하지만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왜 그랬을까? 좋아하니까, 예뻐 죽겠으니까 어떻게든 같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눈높이로 내려와 앉은 사랑. 인간이 알아들을 방법과 언어로 인간의 말로 표현된 하느님의 마음, 그것이 말씀이다. 인간의 글로 표현된 하느님 사랑, 그것이 성경이다. #말씀과 신앙 '신앙의 해'다. 굳은 믿음을 가지자는 것이다. 세속화와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자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고백한다. 마음에 와 닿지 않은 채 몸만 오간다고 고민한다. 믿음이 없다고 푸념한다. 왜 그럴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신앙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믿음은 약한 사람이나 찾는 위로라고 말한다. 종교가 없는 것이 지성인의 자격처럼 여겨진다.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시되는 사회. 실패보다 성공이 미화되는 세상.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압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하느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하느님에 대해 완전히 알려주신 분.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시다. 구약은 예수님을 약속한 책이고, 신약은 예수님을 증언한 책이다. 예수님을 알면 하느님을 아는 것과 같다. 결국, 성경을 읽지 않고 하느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하느님 사랑을 알고 보답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주인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분의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를 위해 영생을 얻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분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앉아!" 하면 앉고, "일어서!"하면 일어설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진리를 찾아 방황했다. 젊은 시절 수사학을 배워 출세하기를 원했다. 마니교에 심취해 어머니 속을 썩여드렸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도 목마름이 가시지 않았다.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헌신적 사랑. 스승 암브로시오의 자애로운 보살핌. 어느 날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가서 읽으면 된다. 집어 먹으면 된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에제 2,8). 신앙은 의무가 아니다. 진리를 따르는 인간의 보편적 선택이다. #말씀 씨앗과 세상이란 땅 말씀이 뿌려질 씨앗이라면, 세상은 씨앗이 움트는 토양이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교회가 존재하는 곳은 천상이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이 구사하는 언어를 익히고 소통해야 한다. 적극 경청하고 쉽게 말해야 한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가난한 과부와 배고픈 소작인도 알아듣는 말씀이었다. "교회는 이러한 인간 사회에 현존해야 한다. 교회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거나 그 사회에 파견된 자기 자녀들을 통해 현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존경과 사랑으로 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온갖 인간적 교류와 활동을 통해 사회 문화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또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전통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들 안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한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2항).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처한 환경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개인과 무관해진 신앙, 문화로 대체된 종교의 시대를 살고 있다. 모차르트나 바흐의 곡을 들으면서도 그들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우디의 건축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그의 종교와는 거리를 둔다. 그들 예술이 신앙 속에서 꽃피운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씀의 힐링 한때는 '웰빙'이 유행이었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다. 힐링 캠프, 힐링 트래블, 힐링 푸드. 붙이기만 하면 트렌드가 된다. 힐링은 치유와 회복이란 뜻이다. 힐링이 요즘 시대를 진단하는 상징 언어가 됐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다쳤기 때문에, 아프기 때문이다. 힐링(Healing)과 동음어로 'Heel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배가 기울어진 상태, 경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균형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간의 몸과 영혼은 연결돼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영육의 단일체'라 부른다. 몸과 영혼이 균형 잡히지 않으면 병이 난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힐링이며, 우리가 진단한 세계의 상태는 '병이 들었다'인 것이다. 문화로 대체된 종교, 세속화와 허약한 신앙. 우리의 영혼은 치유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2-23).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성자께서는 말씀 그 자체이시다. 성령께서는 말씀 안에 생생히 살아계신다. 말씀 안에서 활동하길 원하신다. 말씀은 우리 영혼에 힘을 불어 넣고, 벅차게 살아 숨 쉬게 하신다. 말씀은 힘이 있다. 깊고 내밀한 영혼의 언어를 다시 찾아야 한다. 말씀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서 읽고, 집어 먹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이석균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퇴사자22013.03.05
![[신앙단상] 노아의 비극](//cpbc.co.kr/CMS/newspaper/2014/09/rc/530729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노아의 비극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창세기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후 생명의 싹을 틔우는 창조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인류 종말을 초래하는 비극적 역할을 한 노아가 있으니, 작가 정용준의 장편소설 「바벨」의 주인공이 그 사람이다. 말더듬이에 외톨이던 소년 노아는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를 읽고 매혹된다. 아이라에서는 사람들이 말을 하면 사라지지 않고 얼음으로 변한다. 얼음이 녹으면 말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라의 봄은 말들이 녹아 되살아난 소리로 정신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아이라에 봄이 오면 얼음이 녹아서 누군가는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노래하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슬프게 울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수많은 말을 듣는다. 오래전 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도 듣는다. 아이라인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되살아난다. 소년 노아는 과학자로 성장해 동화를 현실화하는 상상력 가득 찬 실험에 도전한다. 노아의 실험은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펠릿’(pellet, 원래는 육식성 새가 토해내는 불소화 물질을 뜻하는 말)이라는 형체로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펠릿은 지독한 악취가 나고 뱀처럼 미끈거리거나 비늘에 뒤덮여 칙칙하고 흉측했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 펠릿이 입에서 끝없이 흘러나와 쌓였다. 펠릿은 ‘외부로 드러난 마음’이었고 ‘밝히기 싫은 비밀이자 추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쌓여가는 펠릿과 그 악취로 인해 질식해 죽고, 사회 전체가 악성 폐기물 같은 펠릿으로 뒤덮이는 전무후무한 재난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노아의 실험으로 형성된 시대를 ‘바벨’이라 부른다. 바벨은 인류에게 ‘말에 대한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하느님은 홍수로 이 세계를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창세 9,11)을 지켰으나, 그 대신 ‘느린 속도로 서서히 차오르는 말의 바다’를 만들었다. ‘인간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속에 잠겨 질식했고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해내지 못했다’.한 비평가는 이 소설을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묵시록 이후의 묵시록)의 한 유형이라고 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최근에 와서 부쩍 늘어나고 있는 인류 종말에 관한 영상 서사들이 이전과는 달리 재앙을 더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전제하고 파멸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의 무대로 한다는 점을 가리켜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묵시록이 죄의 성찰을 촉구하고 예수 재림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반해서, 대체로 종말론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를 접해보면 요즘 와서는 인류가 자초하는 비극적 결말이 풍미한다는 실감을 한다. 이 소설은 더이상 개선의 방법이 없어 모든 노력이 중단되고 파국을 기다리는 상황을 설정해서 비극 그 자체를 묘사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아의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과학적 실험이 정부의 개입으로 응용방식에 실패해 펠릿을 출현시켰다. 과학의 진전에 개입된 정치적 의도와 자금의 힘, 그리고 인간의 육체성을 벗어난 말의 차원을 창조했으나 상호 소통은 더 어려워지는 언어 현실 그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데에 이 소설의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소설을 읽는 동안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태 15,18; 마르 7,23)고 한 성경 말씀이 거듭 떠올랐다. 과학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채 쏟아져나오는 말들이 그 자체로 인간을 질식시켜버릴 것이라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깊이 새겨볼 만하다. 평화신문2014.09.24
![[성경 속 궁금증] 48. 성경에서 사탄은 어떤 존재를 가리키나요](//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81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8. 성경에서 사탄은 어떤 존재를 가리키나요하느님 창조질서 파괴하는 존재, 인간을 타락으로 유혹하는 악마성 미카엘과 사탄(라파엘로 작, 1518년). '사탄'하면 마치 전설 속 이야기나 환상이나 비유, 허구나 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탄의 가장 은밀한 간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주교회의는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 사탄주의, 점성술, 마술, 마법 등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만연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섭리에 대해 불신하게 하고 하느님을 인간의 즉각적 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이탈리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성경을 보면 사탄의 존재가 자주 등장한다. '적대자'로 번역되는 사탄은 악마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과 반대되는 어떤 악한 세력에 의해 인간생활이 물들고 타락했음을 암시하고 있다(창세 3장). 그래서 악마는 하느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이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사탄은 하느님 명령을 받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와 타락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그때에 하느님께서 아비멜렉과 스켐의 지주들 사이에 악령을 보내시니, 스켐의 지주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되었다"(판관 9,23). 그리고 또 죽은 영들을 불러내는 자들은 악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속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자와 혼령이나 혼백을 불러 물어보는 자와 죽은 자들에게 문의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신명 18,11).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능력과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인식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1베드 5,6-9). 또한 성찬례와 이교 제사를 비교하면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사탄과 상종하지 않도록 권고한다(1고린 10,14-20).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사탄을 만나셨고 당신의 구마 능력으로 대항하셨다(마태 4,1-11). 성경에는 악령에 사로잡혀 겪는 고통이 육체적 병고는 물론 정신적 질병과도 구별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행사하던 구마 능력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시고 그들을 복음 전파에 파견하셨다. 교회는 오늘날도 사탄을 쫓아내는 구마 능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과거와 같이 오늘날에도 악령에 사로잡히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모든 피조물이 근본적으로 선한데, 그중 천사가 타락해 사탄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즉 타락한 인간이 있듯이 타락한 영, 곧 악마도 실제로 존재하며 이 세상 안에서 악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악마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안전한 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가 늘 악마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며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회 성인들도 악마의 존재를 증언하고 있다. 특히 "성인들은 악마에 굴복당하지 않았지만 악마로 인한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었다"는 성녀 테레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퇴사자22012.09.11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오월의 세 가지 키워드’를 특집 주제로 △성모님 관련 교리와 축일ㆍ기념일 △신학교 오솔길에서 나눈 ‘성소’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았다. ‘본격 조명 한국의 순교자’는 윤유일 바오로ㆍ최인길 마티아ㆍ지황 사바를, ‘향기로운 역사서 해설’은 사무엘기 상권을 다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 ▨가톨릭 비타꼰 ‘함께 느낌 : 짝짝짝!’에서는 △한 처음에… △5월의 주례사 △너의 그리움을 찾아가는데 여기가 끝이면 안 된다 △이달의 상본 등을 실었다. ‘신앙의 눈으로-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를, ‘신앙의 눈으로-한자’는 성모영보(聖母領報)를 해설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용서와 화해를 주제로 △용서와 화해의 징검다리인 과거사의 진실 △넬슨 만델라-자유와 화해를 위한 삶 △우리 사회 갈등 극복을 위하여 등을 다뤘다. ‘사제 & 선교사의 요람’은 대전가톨릭대를 탐방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 인물상에서는 성 베네딕도회 갈리스투스 히머(1884~1968) 신부를 소개한다. 1949년 북한군에 체포돼 옥살이했던 그는 1953년 극적으로 살아남아 독일로 귀국했다. 또 대감마을, 주어사 터, 천진암 5위 묘역 등을 돌아본 연구동인회 사적지 순례기를 실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4월 27일 성인품에 오른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현대 가톨릭교회사에서 지니는 의미와 두 교황이 포콜라레 운동과 맺었던 인연을 살펴본다. 청소년의 달을 맞아 청소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코너도 마련했다. (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 △레지오의 멘토 △레지오와 오늘날의 심각한 문제들 △어떻게 대대손손 축복받는 가문을 이룰 것인가? △부모 : 인간과 교회의 길 등이다. ‘신앙의 땅’은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성당과 부산교구 오륜대 순교자성지를 찾았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 ▨말씀지기 영한 대역 매일 묵상집. 5월호 아침 뜨락은 이진호(대구대교구) 신부가 ‘범사에 감사하십시오’를 썼고, 영성 에세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 △사랑이 전부입니다를 게재했다. (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성(性)교육을 성(聖)교육으로!’를 특집 주제로 △만인의 관심사, 성(性) △틴스타를 통해 본 교회 내 청소년 성교육 실태 △청소년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성 지식들 △본당에서의 청소년 성교육을 조명했다. 두봉(전 안동교구장) 주교가 ‘교황님 방한을 한국 교회의 봄으로’라는 시론을 썼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어머니의 기도’를 특집 주제로 △엄마, 그냥 주무세요! △저렇게 약해 빠져서야 원 △고맙습니다, 어머니 딸이게 해 주셔서 △농부인 어머니가 말하는 걸 쓰며 살다 △그 뒤에는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등을 실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의 주인공은 강금실(에스텔) 변호사다. (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새로봄에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가족’을 주제로 △가족은 사랑입니다 △입양, 생명을 살리고 길러 내는 사랑을 담았다. ‘프란치의 영화 피정’이 소개한 영화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년)이며,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주제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다. (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어린이날을 맞아 동생과 함께 보는 그림 동화 ‘쉿! 비밀이에요!’를 게재했고, 서현승 신부가 그리는 만화 ‘용감한 목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 연재를 시작했다. ‘성경 속 인물 이야기’ 주인공은 하느님을 굳게 믿었던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다. (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표지 이야기’에서 도서출판 서광사 공동대표 김신혁(야고보)ㆍ이숙(카리타스) 부부를 찾았다. ‘교회와 사회’ 이번 호 주제는 ‘다국적기업을 위한 꿀벌 퇴치’. 볼만한 책으로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안득수 지음)를 추천했다. (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신앙의 프런티어’에서 43년간 초등학교 교사와 30년간 교리교사로 참 스승의 길을 걸어온 방희자(가타리나) 선교사를 만났다. ‘영화에 비친 세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소개했다. (미션3000/3500원)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백영민2014.04.30
![[성경 속 궁금증] 72.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2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72.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나요?유다인, 민족 해방 가져올 정치적 메시아 고대 …예수,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구세주유다인들은 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했다. 그림은 '전능하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이탈리아 체팔루성당 모자이크, 1170년경). 성경에서 일컫는 '메시아'는 믿는 이들이 기다리는 구세주(救世主)를 뜻한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축성된 자'란 뜻이다. 그리스어로는 기름 부어 세운 영도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Christus)를 뜻한다. 유다인에게 메시아는 임금이나 대제관으로 뽑혀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직책을 수여받은 자이다(다니 9,2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은 초대교회 복음 선포자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기도 했다(사도 2,31-32; 로마 1,3-4 참조). 그래서 초대교회는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셨지를 보여줘야만 했다. 루카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공적인 직무를 시작하시며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이뤄졌음을 밝히고 있다(루카 4,18-2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라는 칭호와 메시아로서의 직무를 받아들이셨지만 공개적으로 메시아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마태16,16-17.20). 그 이유는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칭호)라는 용어를 자신에게 사용하도록 내버려 둘 경우 사람들이 당신을 정치적인 임금으로 오해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유다인들은 메시아라고 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기 민족을 억압이나 압제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대단한 영웅으로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행복에 대한 염원을 풀어주고, 어둠을 헤치고 광명을 주실 백성의 왕이었다. 결국 유다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 민족 해방을 가져오는 소위 정치적 메시아로서 만민을 정복하고 그들을 무릎 꿇게하는 이 세상에 속하는 메시아였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다윗 왕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정치적인 해방자로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의 아들로, 그리고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주님의 종으로 이해하고 계셨다(이사 52,13∼53,12).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들의 잘못된 메시아 개념을 올바로 잡아주셨다고 볼 수 있다(마르 8,30-33). 유다인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의 통치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셨던 예수님께 실망했고 급기야 예수님을 처형하라고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동일한 메시아가 아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기대를 뛰어넘는 분이셨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진정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cpbc2013.05.14
![[제2회 신앙체험 수기] 우수상 수상작](//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8332_1.0_titleImage_1.jpg)
[제2회 신앙체험 수기] 우수상 수상작저의 삶에 늘 함께하신 주님 (상) 글 황점순(카아린, 마산 하동본당)11월 위령성월이 되면 특별히 윤봉문 요셉 순교 복자님을 떠올리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사연으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되기 전 ‘여호와의 증인’들이 저를 찾아와 하느님 말씀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기에 저의 집 문을 열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7년 가까이 그들과의 만남과 공부가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공부한 지 6개월이 지나면 침례를 받고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데 저는 증인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계속되는 그들의 방문에 남편도 싫은 내색을 하면서 저에게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말고 신앙을 꼭 갖겠다면 천주교에 다니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저보다 먼저 가톨릭 신자가 된 여동생 내외도 “천주교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어떤 종교를 선택할지를 결정하자”면서 교리 공부를 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1985년 정흥식 마르코 신부님에게 교리를 받고 세례 준비를 하는데, 신부님께서는 남편이 비신자이니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남편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하니, 열심한 불자이신 시어머님 핑계를 대면서 어머님 돌아가신 후에나 성당에 나가라고 하면서 반대했습니다. 시어머님은 다음 해인 1986년 향년 95세로 돌아가셨고, 저는 다시 교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리 기간이 끝나고 남편에게 세례받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고, 남편은 “꼭 성당에 다니고 싶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나간다는 조건으로 승낙하겠다”라며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986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황봉철 베드로 신부님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의 감정이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이 태어난 순수한 아가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만 같았습니다. 세례 때 선물로 받은 십자고상, 성모상 등을 안방 장식장 위에 고이 모셔 두고, 처음으로 저희 가정을 축복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저녁 무렵 귀가한 남편이 낯선 십자가와 성모상을 보는 순간 화를 벌컥 내면서 “도대체 이것들이 뭐냐?”며 성물들을 문밖으로 집어 던져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습니다. 축복받기를 바랐던 저의 마음도 남편의 이런 모습 때문에 부서진 성물 파편들처럼 조각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용기를 내어 평일 미사, 주일 미사 그리고 레지오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물론 남편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이지요. 남편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집안일이며 남편 뒷바라지, 육아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세례받기 전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습니다. 새벽 미사가 있는 날은 남편 잠을 깨울까 싶어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와중에 건넌방에서 잠들어 있던 여섯 살배기 막내도 살그머니 나와서 함께 미사를 다녔습니다. 세례받은 그해 11월 어느 날 새벽 미사에 가서 보니, 신자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5시에 미사가 시작되는데, 4시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참을 혼자 성체조배하고 미사까지 마치고 성전을 나오니까 저의 삼 남매가 “엄마 큰일 났어요. 막내가 주무시는 아빠한테 엄마가 혼자만 성당 갔다고 울면서 얘기한 바람에 아빠가 화가 많이 나서 빨리 엄마 데려오랬어요”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면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 불안했던 폭탄이 터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대문은 못을 박아 열지 못하게 해 놓고, 현관이며 창문의 유리는 모두 박살 나 있었고, 성경, 십자가, 성모상 등 성물들을 밖에 모아 놓고 휘발유를 그 위에 뿌려 놓았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모두 태워 버리고 같이 죽자”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삽화=문채현이런 상황을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도망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막내만 데리고 가면 남아 있는 두 녀석이 너무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아이들의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으니 아이들을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연락을 드렸고, 집으로 달려온 아이들을 보고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너희 아빠가 무서워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으니까 엄마 따라갈래? 아니면 아빠랑 살래?” 그랬더니 세 아이 모두 엄마 따라가겠다며 저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 당시 첫째가 10살, 둘째는 8살, 막내가 6살이었습니다. 급히 서둘러 현금과 통장, 패물, 옷가지 등을 챙겨 마을 어귀에서 구례행 버스를 탔습니다. 구례역에 도착해서 자장면을 시켜 아이들을 먹이니 얼마나 맛있게 먹고 신 나 하는지 참 어이가 없고 앞이 깜깜했습니다. 서울행 기차를 탄 후 막상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즈음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주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주님! 저에게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하면서요. 이튿날 새벽 서울역에 도착해서 신림동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깜짝 놀란 동생 내외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우리의 행색을 본 제부는 ‘뭔가 큰일이 생겼구나’ 싶었는지 모르는 척해 주었고, 저는 민망해서 “아이들이 가정 실습을 해서 놀러 왔다”며 어설픈 변명을 했습니다. 여동생에게는 “형부에게서 나를 찾는 전화가 오면 절대로 모른다고 해라” 하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지만 난감하고 엄청난 사건이라 참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동생네에 도착한 다음 날 신림동성당에 가서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남편 때문에 신앙생활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삼 남매를 데리고 도망 나왔습니다”라며 경상도 여인의 고해를 다 들어주신 신부님께서 “미사 끝난 뒤 사제관으로 오십시오” 하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사제관에서 신부님께 자초지종을 모두 말씀 드렸고, 저의 사연을 들으신 신부님께서는 한참을 고심하시더니 “신앙 때문에 힘들게 하는 남편과는 이혼 사유가 됩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제가 수녀님들과 함께 카아린씨를 위해 기도해 드릴 테니 고향으로 내려가서 잘 참고 견뎌서 성가정을 이루게 되면 주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신부님의 그 말씀에 힘을 얻어 집으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정을 하고 난 후에는 불안하고 괴롭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여동생은 이왕 이렇게 서울 올라온 김에 성지순례도 하고 쉬었다 가라고 했습니다. 다음날부터 동생네 아이들과 우리 식구가 함께 절두산성지에 가서 남편을 위한 생미사도 봉헌하고, 아이들에게는 묵주 반지와 목걸이도 사주면서 겁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던 그 시간에 하동에 같이 살고 있는 큰집에서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 귀한 아들이 가출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저와 저의 아이들의 가출은 아무도 몰랐고, 남편과 큰집 식구들은 집 나간 조카 찾느라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제부에게 전화해서 큰집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너희 처형을 빨리 집으로 내려보내라”고 부탁하더랍니다. 일주일을 서울에서 보내고 하동에 내려와 집에 들어서니 남편은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제부터는 절대로 성당 다니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런 남편에게 저는 주일만은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 저와 아이들은 아빠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복사도 열심히 서고, 삼 남매 모두 주일학교도 빠지지 않고 잘 다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레 남편이 따돌림당한 느낌을 주었고, 심기가 편치 않아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마음도 또한 불안해져만 갔습니다. <계속> 백영민2015.03.04
![[가톨릭 문화산책]<44> 건축(9)-독서대와 강론대,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곳](//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79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9)-독서대와 강론대,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곳하느님 말씀의 식탁, 제대 가까이에 작더라도 위엄있게 이탈리아 로마의 산클레멘테 대성당의 복음 독서대(왼쪽)와 서간 독서대(오른쪽).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가시어 성경을 펴시고 이사야서를 봉독하셨으며, 이어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신 다음, 회당에 모인 이들에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6-21)고 말씀하셨다.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몸소 읽으시고 성경의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뤄졌음을 선포하셨다고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읽으신 자리가 독서대이며, 성경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뤄졌음을 선포하신 자리가 강론대다. 그러므로 독서대와 강론대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두 자리는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회당 전례가 시작됐을 때도 높은 곳에서 말씀을 읽었다.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느헤 8,4-5). 또한 이사야서에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이사 40, 9)라고 말한다. 이것이 독서대의 의미다. 그래서 독서대는 화려하거나 존엄하게 장식되며 요한복음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독서대를 받치고 있다. 그뿐인가.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향해 높은 곳에 오르신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마태 5,1-2).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친 자리가 강론대다. 독서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를 먹이는 주님의 두 식탁을 말한 바 있다. 주님께서 희생하시는 빵의 식탁인 제대와, 하느님 말씀의 식탁인 독서대가 그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다. 때문에 새 성당을 봉헌할 때 주교는 부제에게서 복음서를 건네받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집을 채우소서"라고 외친다. 성당 안에서 가장 고유한 시설은 제대, 독서대, 세례대 이 세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독서대다. 제대는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현존하시는 성찬 전례의 중심이고, 독서대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말씀 안에 계시는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 전례의 중심이다. 사제가 복음을 읽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사의 주요한 두 부분인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이뤄지는 주님의 두 식탁에는 각각 고유한 자리가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말씀 전례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독서자, 시편 독창자, 성가대에 의해 하느님 말씀이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됐다. 오늘날 독서대의 자리가 특별히 정해진 바는 없다. 그러나 독서대는 제대 가까이에 놓이되, 제대보다 작더라도 위엄 있게 마련돼야 한다. 또 높은 곳에 두어 모든 신자가 쉽게 볼 수 있게 하고, 그곳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초기 교회에서 복음은 사제가 읽었으며 주교는 그의 주교좌나 제단에 놓인 의자에서 강론했다. 교회가 커지자, 특히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존귀한 하느님의 말씀을 회중에게 말하기 위해 들어 올린 단을 사용하고 흔히 계단으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이를 '암보'(ambo, 독서대)라 불렀다. 'ambo'라는 말은 그리스어 '아나바이네인'(anabainein)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5~6세기부터 대부분 회중석의 중앙 통로 윗부분에 독서대가 있었고 이곳을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구약에 있는 한 형태를 참조했거나 같은 시대의 유다 회당에서 따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크고 돋보이며 화려해졌다. 한 시리아 교회에는 부제들이 앉는 벤치와 주교 의자가 있을 정도로 큰 말굽 모양의 독서대가 있었다. 예전에는 신자들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독서대를 회중석에 두는데, 이에는 계단이 두 개 붙었다. 하나는 동쪽의 제대 옆에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쪽에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동쪽 계단에서는 차부제가 제대를 향해 서간을 읽고, 서쪽 계단에서는 부제가 회중을 향해 복음서를 읽었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 272항을 따르면, 독서대에서는 독서 봉독, 화답송, 복음으로 말씀이 선포된다.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성경 봉독은 언제나 독서대에서 한다." 부활성야에는 부활찬송을 독서대에서 부르고 제3독서를 독서한 이가 독서대에 서서 화답송 선창을 부른다. 화답송과 보편지향기도도 독서대에서 행하기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독서대는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이지, 독서대라는 설비가 놓인 곳이 아니다. 또 독서대에서는 강론을 하기도 한다. 독서대와 강론대를 함께 '복음 선포대'라고도 하지만, '독서대'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다. 제대나 해설대에서는 성경을 봉독하지 않는다. 따라서 해설자, 성가대원, 성가대 지휘자 등의 봉사자가 독서대에 올라가는 것은 적합치 않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은 975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는데도 2층짜리 장대한 독서대의 흔적이 아직 제단 가까이 남아 있다. 아래에서는 서간을 읽고 위에서는 복음을 읽는다. 성당에는 독서대를 하나만 둔다. 그러나 독서대를 두 개 둔 로마의 산클레멘테 대성당에서는 제대를 향해 왼쪽인 성가대의 북쪽 변에는 더 크고 장식이 많은 복음 독서대를 두었고, 오른쪽의 남쪽 변에는 더 작고 단순한 서간 독서대를 두었다. 복음 독서대가 이렇게 큰 것은 독서자만이 아니라 좌우에서 초를 들고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서간 독서대가 위아래로 나뉘는데, 윗단은 서간을 노래로 할 때 쓰이고 아랫단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쓰였다.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성경을 노래로 읽을 때는 독서대가 널리 사용됐으나, 13세기부터는 사용하지 않게 됐다. 강론대 비잔틴이나 중세에서 말씀을 노래로 하던 것에서 말씀을 강론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자, 점차 강론대(pulpit)가 독서대를 대신하게 됐다. 현재 남아 있는 강론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의 것이다. 이것에는 간단한 단이 기둥에서 내쌓기를 하여 만들어졌고 이에는 난간이 붙어 있었다. 1000년 전에는 강론대가 독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요소보다 더 크고 높고 뚜렷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15세기나 16세기, 특히 개혁교회에서는 말씀이 크게 강조되어 강론대 위에 닷집을 두는 등 화려하게 만들었으며, 후에 생긴 강론대는 회중석에 가깝게 놓였다. 그러나 강론대는 오직 강론을 위해서만 사용됐다. 강론대에는 씨 뿌리러 나가는 사람을 새긴 것이 많다. 오늘날에는 음향설비가 발달해 가장 큰 성당을 제외하고는 강론대가 사용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독서대를 더욱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독서대인 'ambo'를 강론대로도 번역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서대는 말씀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제대와 독서대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당신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내시지만 그러나 하나이심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대와 독서대가 다툰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는 성체성사의 중심으로서 중심성이나 탁월성을 요구하며, 독서대는 제대와 적극적인 관계를 갖되 제대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만큼 독서대와 제대는 건축적으로도 강력한 공간적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독서대가 해설대와 짝을 이뤄 설계되는 예를 많이 본다. 독서대는 제대와 같이 존엄한 장소이므로 기품이 있게 만들어야 하며, 해설대와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독서대와 강론대와는 구별되는 'lectern'이라는 용어가 하나 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설자, 성가대 지휘자 등이 사용하는 흔히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말하며, 전례와 무관한 소식이나 내용을 설명할 때 쓰인다.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cpbc2013.12.10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주님의 기도(4) 일곱 가지 청원 ②... 기도 통해 하느님 뜻 분간할 수 있고, 그 뜻 이루기 위한 인내 얻을 수 있어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일곱 가지 청원 가운데 두 번째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이고 세 번째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입니다. 이 둘째와 셋째 청원에 대해 살펴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2816~2821항)신약성경에서 ‘나라’는 왕권, 왕국, 통치라는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이 아버지의 나라, 곧 하느님 나라는 사실 우리가 있기 이전에 먼저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주권과 그분의 다스림이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는 태초부터 영원히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하느님의 아들,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로써 결정적으로 도래했습니다. 또 성찬례 안에서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습니다. 치프리아노(200~258) 성인은 「주님의 기도 해설」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날마다 기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어서 빨리 우리에게 당신의 도래를 앞당겨 드러내 보이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렇게 밝힙니다. “하느님 나라는…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14,1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 곧 교회의 시기는 바로 성령께서 오시어 함께하시는 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충만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소서, 주 예수님”(마라나 타) 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충만한 도래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따른 분별력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화와 사회의 진보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별은 분리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창조주께 받은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합니다”(2820항).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2822~2827항)셋째 청원은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느님 아버지의 뜻,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1티모 2,4)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또한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은 또한 모든 계명의 요약이기도 합니다(2822항).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히브 10,7). 예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히브 10,1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일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 아버지 뜻, 곧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기도를 통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분간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인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 특별히 성찬례에서 드리는 기도의 힘도 그러합니다”(2827항).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4.09.02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2)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440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2)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하느님 나타나심의 징조 '바람' 우리는 바람이 공기의 흐름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과학적 시각으로 바람을 이해하기보다 신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대 근동 세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람 신은 큰 힘이 없었지만, 이집트에서는 강력한 바람 신 '슈'가 있었다. 구약성경에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을 지난호에서 말했다. 이런 상상의 동물이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비과학ㆍ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사람들은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 또한 우리 세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듯이 그 시대 사람들도 당시 생활 속 언어로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다. #완전 수 4와 10의 의미 고대 근동의 상징 숫자인 '4'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상징하는 완전한 수로 사용됐다. 완전 수이자 길한 숫자인 '4'에 '10'이란 또 다른 완전 수를 곱한 '40'은 더욱 완벽하고 충만한 시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냈고,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단식한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유혹을 받았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40이란 숫자는 이처럼 온전히 충만한 시간을 뜻했다. 40을 채웠다는 사실은 주님이 마련해주신 시간을 다 채웠다는 뜻도 된다. 솔로몬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훌륭한 임금이었다. 주님이 허락하고 마련해주신 시간을 꼭 채워 40년간 다스렸다. 구약성경에는 네 개의 바람이 등장한다. 이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온전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하늘 네 끝에서 오는 네 바람'을 하느님의 명령을 받는 존재로 묘사했다.(예레 49,35-36 참조) 네 가지 바람을 하느님이 쓰시는 무기로 표현한 것이다. 유배 이후에 나온 다니엘서에서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큰바람이 큰바다를 휘저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다니 7,2 참조) 사방의 바람은 하느님께서 조정하신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 이집트 탈출 사건에는 10개 재앙이 나온다. 이 중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 재앙은 바람(동풍)이 일으킨 것이다.(탈출 10,13 참조) 공포심을 느낀 파라오는 모세에게 메뚜기를 거둬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하느님은 바람(서풍)으로 메뚜기 떼를 없애셨다.(탈출 10,19 참조) 하느님은 이처럼 동풍, 서풍 등 바람을 마음대로 조정하셨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파라오와 싸웠다. 당시 신으로 여겨진 파라오는 하느님의 힘에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하느님은 우주에서 큰 분이시란 것을 알고 있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바람)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하느님의 영은 바람을 뜻한다. 하느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바람을 부리셨다.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바람으로 혼돈을 제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권능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하느님은 바람을 제어하셨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바람은 하느님이 나타나신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신의 자리를 잃고 그저 하느님 도구로 '탈신화화'했던 바람의 '재신화화'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이 엘리야 예언자에게 나타나실 때 몇 가지 징조 중 첫 번째가 루아흐(바람)이다. 루아흐는 주님 현현의 첫 번째 표징이었다.(1열왕 19,11-13 참조) 하지만 바람이 파괴의 도구가 될 때도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람으로 꾸짖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를 내몰고 내쫓으시어 벌하시고 샛바람이 부는 날 그를 거센 바람으로 몰아내셨다'(이사 27.8), '주님의 바람이 불어오리니 그의 샘은 마르고 우물은 메말라 버리리라'(호세 13,15). 구약성경에서 동풍, 샛바람은 이처럼 하느님 꾸짖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바람(소망)을 하느님 바람으로 가득 채워주시길 기도하자.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16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사회교리의 출발점인 가정 공동체 어린 시절 나의 공동체 생활은 가정에서 시작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4남매는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배우며 성장했다. 요즘처럼 핵가족화된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개인이 더 중요하게 생각될지 몰라도 당시 우리 가정의 중심에는 항상 나보다는 아버지 먼저, 형 먼저와 같은 보이지 않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우선이었다. ▨공동체 정신을 배운 가정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절약정신으로 서로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전기ㆍ물ㆍ물자 등 모든 것을 아끼고 나눈다는 것을 배운 곳이 가정이다. 집안의 큰일을 결정할 때도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물으시곤 하셨다. 명절 때는 사촌 형제들과 함께 정을 나눴고 함께 차례를 드리고 음식을 나눴다. 이런 생활로 개인보다는 가족이란 공동체를 더 우선하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 삶의 중심은 항상 가정이었고, 그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과 신앙심이 형성됐다. 신학생이 된 이후의 삶 역시,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갈등들을 해결해 나갔고, 동료 신학생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처음으로 동료 하나가 성소를 포기하고 신학원을 떠났을 때 우리는 가슴으로 아파하며 그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함께 사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 제목이 ‘Familia’(파밀리아)란 라틴어 제목이었는데,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신학원 공동체는 그 형태와 구성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Familia’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의 연장선이었다. 항상 신학원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했고, 남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어떠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제 수품 후 떠난 유학 생활에서도 이러한 공동체성은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초기 유학 시절을 제외한 기간 대부분을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수사들과 살았다. 처음 손님으로 들어갈 때, 원장 신부는 나를 수도원 공동체에 받아들이는데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수도원에서 공동으로 하는 모든 기도 시간과 미사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유학하는 사제들은 학업 때문에 기도 시간에 종종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원장 신부님은 그러한 생활이 수도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둘째 조건은 공동 식사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원장 신부님의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기숙사비로 얼마를 내야 할지 물어보았는데, 돌아온 답변은 그야말로 단순했다. “네가 결정해서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짧은 답변 속에서 원장 신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금전적인 것보다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수도원 안에서 모든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공동체 기도와 미사에 참여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거룩한 독서 시간, 그리고 복음 묵상 나누기가 이탈리아 말로 진행됐다. 초기에는 잘 알아듣지 못해 힘들었지만, 언어적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됐다. 그리고 방학 중에는 이탈리아 수사들의 개인 가정을 방문해 인간적 관계를 쌓았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얼마 가지 않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완전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최초의 사회 가정공동체가톨릭교회는 가정을 최초의 자연 사회로서 명확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가정이 개인과 사회에 지니는 중요성과 중심성은 성경에 거듭 강조돼 나타나고 있다.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가정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인간화의 첫 자리이며, 생명과 사랑의 요람임을 가톨릭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주님의 사랑과 충실성,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응답할 필요성을 배우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교회는 성경 메시지에 비추어서 가정을 고유한 근본 권리를 지닌 최초의 자연 사회로 여기며, 가정을 사회생활의 중심에 두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19-211항 참조). 사회교리의 출발점 역시 이 가정 공동체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 공동체가 파괴된다면 결국 사회 공동체 전반의 붕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점점 무너져 가는 가정을 다시 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사회 복음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너져 가는 가정 공동체를 먼저 살려야만 할 것이다. 문채현201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