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5)하늘의 신격화](//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0245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5)하늘의 신격화유배 후 다른 종교 새 호칭의 수용 고대 근동 사람들은 현대의 합리주의와 과학, 대량 소비주의 의식이 아닌 신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살았다. 구약성경은 그런 고대 근동 세계를 배경으로 탄생한 책이다. 고대 인류는 하늘을 최초, 최고의 신으로 여겼지만 구약성경은 하늘을 신으로 여기기보다 일종의 장소로만 여겼다. 이는 최고신인 하느님이 다른 이들에게 잘못 이해되지 않을까 하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우려와 더불어 애초부터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강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과 이스라엘의 귀환 고대 근동 패권은 신아시리아부터 신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를 거쳐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으로 옮아갔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신바빌론 제국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국으로 끌고 갔다. 이때 신바빌론 제국은 이스라엘 백성을 유배시키는 등 잔인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기원전 538년 새로운 시대를 연 페르시아 제국은 종교적 관용정책을 폈다. 총칼이 아닌 문화로 다스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적 관용정책에 따라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유배 이후 이 시기는 구약성경의 전체적 모습이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완성되는 때이다. 이때 고대 근동의 공용어가 바뀐다. 신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의 언어는 아카드어였다. 그런데 이미 신바빌론 제국 말기부터 고대 근동 사회에는 아람어가 실질적 표준어로 쓰였다. 페르시아 제국은 자신의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를 강제하지 않고 널리 쓰이는 아람어를 표준어로 삼았다. 이때부터 국제공용어(lingua franca)는 아람어가 됐다. 교역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인에게도 아람어는 일상 언어가 됐다. #'하늘의 하느님'이라는 새 호칭 바빌론 유배가 끝난 뒤 페르시아 시대에 들어서면서 구약성경 본문에 주목할 만한 현상이 발생한다. '하늘의 하느님'이란 호칭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유배 이후 역사를 전하는 에즈라서와 느헤미야기에는 이런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늘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뜻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오(느헤 2,20), 하늘의 하느님께서 내리신 법의학자인 에즈라 사제(에즈 7,12) 등이 그것이다. 하늘을 하느님이 사시는 곳이라고만 여겼던 고대 이스라엘인은 이때까지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만 써왔다. 그런데 '하늘의 하느님'이라니? 이런 표현은 함부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신의 호칭, 곧 우리 하느님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신의 호칭은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정 시대에 왜 하느님을 이런 호칭으로 갑자기 바꿔 부른 것일까? 하늘관이 급변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 유배 이후 이어진 종교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적 관용정책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누리며 살았다. 이때 이스라엘은 혼란스럽지만, 역동적 시대를 맞이했다. 이때 유다인들은 자연스럽게 페르시아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후 히브리어는 종교적 언어로 축소되고, 아람어는 이스라엘 일상어로 사용되는 이중 언어생활이 확산했다. 아람어가 유다인 일상에 깊이 침투한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구약성경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아람어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일상 언어의 급변은 문화적 변화를 동반했다. #페르시아 종교의 확산 이 시기 페르시아 제국의 공식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는 주변 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로아스터교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는 다양한 호칭을 지녔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 호칭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늘의 하느님'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이 호칭을 과감히 수용해 야훼 하느님에 적용했다. 따라서 유배 이후 본문에 '하늘의 하느님'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새 호칭을 수용했지만, 그 의미는 매우 다르게 사용됐다. '참된 하늘의 하느님'은 대제국 페르시아의 신이 아니라 '오직 우리 야훼 하느님뿐이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호칭의 수용은 '신학적 반론'의 성격을 띤다. 이는 대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산하는 데 대한 적극적 대응이었다. 아마 이 호칭을 주도한 세력은 유배 이후 활약했던 사제들로 보인다. 새로운 호칭은 고대 근동 패권을 새롭게 거머쥔 막강한 문화 제국인 페르시아의 종교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야훼 신앙을 지키려는 신학적 노력의 결과다. 또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은 주변 종교의 영향력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려고만 하지 않고, 때로는 적절히 흡수해 야훼 신앙을 더욱 두텁고 튼튼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하느님에 대한 올곧은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명기에 잘 드러나는 이런 믿음의 태도야말로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다. 그들은 이런 태도로 다른 종교에 대해 적절히 대응했던 것이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2.05

어린 시절 '주님의 기도'로 예수님과 첫 만남[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1.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①순교하러 가는 어린 데레사와 오빠. 아빌라 생가 성당의 색유리화. 성경과 교리서만으로도 성인(聖人)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일 미사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핵심 중의 핵심을 이룹니다. 신ㆍ구약 성경을 비롯해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가르치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역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인ㆍ성녀가 되는 데는 사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전해주는 성경 한 권과 그 진리를 풀어서 설명해 주는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이 담긴 교리서 한 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신심 깊은 겸손한 촌부(村夫)가 신학자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세 당시 사회 내에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 성녀는 부모님 덕분에 글을 깨치고 어려서부터 적지 않은 신심 서적들을 읽고 실천하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불태워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열정이 구체적으로는 강생하신 하느님, 즉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점점 깊어 갔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성인이 된 것은 이러한 '초심'(初心)에 끝까지 충실했고 그렇게 그분과의 관계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녀의 일생을 '예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훑어보는 것은 성녀의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틀입니다.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다 어린 시절 성녀가 처음 만난 대상은 예수님이라는 구체적인 한 인격이라기보다 조금은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추상적인 하느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데레사가 접한 하느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훨씬 너머 저 세상에 계시며 광대무변하시고 모든 것에 침투해 계시며 전능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하느님은 아직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하느님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성녀는 부모님과 미사에 참례하면서 들은 신부님들의 강론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벗이며 신랑으로서 무엇보다 강생을 통해 우리 곁에 오셨다는 진리를 들어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느님 개념을 전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묵주기도 드리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즐겨 읊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완덕의 길」 후반부에 보면 주님의 기도 해설이 있는데, 거기서 우리는 성녀가 그 기도의 매 구절을 예수님과 연관지어 설명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묵주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기도에 익숙해졌고 이를 통해 그 기도를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조금씩 맛 들여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데레사는 이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강생하셔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신 하느님의 현존을 자신 안에 각인시켜 갔습니다. 이렇듯 어린 시절에 아직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관념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통한 예수님과의 만남은 훗날 성녀의 영적 성장에 토대가 됐습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여정에서 성녀에게 도움이 된 또 다른 것으로 성모님 신심을 들 수 있습니다. 성녀의 어머니는 성녀가 어렸을 때부터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갖도록 자주 가르쳤습니다. 성모님 신심은 모든 그리스도교 영성에 중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강생 교리로 인도해 주실 뿐 아니라 사실 강생 교의 자체이십니다. 그분의 '피앗'(fiat: 예)을 통해 오랫동안 인류가 고대해 오던 구세주께서 인간이 돼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느 현대 신학자는, 성모님이야말로 예수님과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들을 보호하는 최고 수호자라고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은 어린 데레사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 좋은 환경이 돼줬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묵주기도, 더 나아가 성모님과 성인들에 대한 깊은 신심, 다양한 성인전에 대한 독서, 16세기 당시 스페인에 널리 퍼져 있던 예수님과 관련된 여러 성화들은 어린 데레사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의 강생을 중심으로 하는 영성을 형성하게 해줬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 데레사는 인간과는 먼 상당히 추상적인 하느님, 심판관이신 하느님에서 인간과 가까이 계신 하느님, 그래서 인간의 육(肉)을 취해 오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겟세마니의 예수님'을 사랑한 소녀 데레사 그러나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 인간적 애정에 대한 관심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성녀는 그만 냉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태를 극복하게 해준 것은 아버지로 인해 들어가게 된 아우구스티노 수녀원 기숙사에서의 신앙 체험이었습니다. 당시 그곳 사감 수녀님들의 모범적 신앙생활을 보면서 성녀는 점차 어린 시절의 거룩한 열정을 다시 키워가기 시작했고 막연하게나마 수녀가 되겠다는 원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성녀는 점점 기도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특히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에 깊이 빠졌다고 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마셔야 할 고통의 잔 앞에서 고뇌하며 피땀을 흘리시는 예수님, 그러나 성부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으며 그 잔을 받아 마신 예수님. 사춘기 소녀 데레사의 마음은 그렇게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잦아들어 갔습니다. 성녀는 그렇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맡긴 채 늘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을 묵상하며 잠들었다고 합니다(자서전 9,4). 그래서 성녀는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예수님의 수난 사화를 읽곤 했습니다(자서전 3,1). 이렇게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성녀에게는 추상적이고 멀리 계시던 하느님이 인격적인 하느님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인간 예수님께서 내면에서부터 자신을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점차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소녀 데레사가 관계를 맺기 시작한 하느님은 예수님으로서 그분은 데레사에게서 모든 실존을 건 전인적 응답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당시까지 성녀의 삶에서 예수님이 신앙으로 받아들인 사실로서 객관적인 존재론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체험되는 신앙이자 의미 충만한 신앙으로서 심리적인 차원에서도 성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입니다. cpbc2014.04.10
![[전교주일]‘프란치스코 효과’ 서서히](//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538_1.1_titleImage_1.jpg)
[전교주일]‘프란치스코 효과’ 서서히명동본당 9월 교리반 예비신자 두 배 이상 늘어나 교황 방한 60여 일이 지난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프란치스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천주교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는가 하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시사저널 9월호) 조사에서 염수정 추기경과 고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이 각각 1ㆍ2ㆍ4위에 올랐다. 전교주일(19일)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가져온 선교 효과’를 살폈다. 교황 방한은 결론적으로 한국교회 성장에 자양분이 됐다는 평가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신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효과’ 가운데 하나는 “미사 때 신자들이 늘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은 교황 방한 이후 지난 9월 예비신자 교리반에 문을 두드린 이들이 예년보다 평균 2배 이상 늘었다. 2012년 9월 165명, 2013년 9월 102명이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 신청했으나 올해 9월에는 300명이 넘는 이들이 몰렸다.명동대성당의 연도별 세례자 추세도 ‘프란치스코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2004년 771명이던 세례자 수는 200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선종 뒤 951명으로 급증했고, 2006년에는 1351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1200~1300명 선을 유지하다가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세례자가 다시 1489명으로 늘었다. 명동대성당 세례자 수는 이후 다시 줄기 시작해 2010년부터 현재까지 1100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표 참조>.냉담자들, 고해성사 보러 성당으로 명동본당 우연호(선교ㆍ교육 담당) 신부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 예비신자와 세례자 수가 증가했듯이 이번 예비신자가 배로 늘어난 데에는 분명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효과가 선교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분석했다.프란치스코 효과는 예비신자 입교 증가뿐 아니라 냉담 교우를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전국에서 보이고 있다. 광주대교구 사목국장 우원주 신부는 “알고 있는 냉담 교우들로부터 교황 방한 기간 동안 교황님 때문에 다시 성당에 나가겠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말했다. 한국평협 권길중(바오로) 회장은 “만나는 신부님마다 미사 참례자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성당에 나오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대전평협 이명수(아벨) 회장 역시 “탄방동본당만 하더라도 교황 방한이 계기가 돼 냉담했던 신자들이 성당을 찾아오는 경우가 늘었다”며 “요즘은 교중미사 때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또 “수년에서 수십 년 냉담했던 이들이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려고 미사 전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요즘 자주 본다”며 확실한 교황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선교에 적극 나서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대교구 포이동ㆍ고덕동본당은 교황 방한을 전후로 새 가족 찾기 운동에 나섰고, 잠실3동본당(주임 박성칠 신부)은 외짝교우를 대상으로 ‘속성 예비신자 교리반’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신자들의 선교 열의도 커져 올해 ‘선교의 해’로 지내고 있는 안동교구는 사제와 평협 회장단이 11월부터 6주간 안동ㆍ동해ㆍ북부 등 6개 지구장좌성당을 돌며 선교운동을 펼친다. 안동 평협 이한양(그레고리오) 회장은 “전에는 사목자가 신자들에게 선교하자고 권해도 미온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행동에 옮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우리도 선교하자’는 의지가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대전교구도 내년 사목목표를 ‘선교’로 정할 기세다. 지난 6일 개최한 교구 사목평의회는 교황 방한의 큰 은총을 받은 교구가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며, 교구 설정 70주년(2018년)을 준비하면서 2015년을 선교의 해로 정할 것을 논의했다.프란치스코 효과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장 이근덕 신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사제들과 신자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며 “더 가난해져야 함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서울대교구 선교전례사목부 이영제 신부도 “교황님이 만나고 체험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만날 때 전할 수 있다. 교황 방한을 계기로 지금 내 신앙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권했다. 그러면서 “성경 말씀과 전례, 봉사 등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체험할 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다”며 “기쁘게 사는 사람은 말씨와 표현, 행동이 달라지며,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선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신문2014.10.16

국내 첫 성모순례지, 풍요로운 성체신심 행렬로 물들다청주교구 감곡매괴본당 ‘감곡 성체현양대회’ 100주년 감사 미사 흰옷을 입은 소녀들이 오색 꽃잎을 뿌리는 가운데 형형색색의 톱밥길을 밟으며 장봉훈 주교가 성체를 모시고 감곡성당에 들어서고 있다. 9일 감곡 매괴성모 순례지는 막 수확을 앞둔 가을 들녘만큼이나 풍요로운 ‘성체 신심’의 행렬로 물들었다. 이 날은 1914년 감곡본당 주임이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 신부 주도로 서울ㆍ대구대목구 사제 25명 중 12명이 감곡에 모여 국내 첫 성체현양대회를 거행한 지 꼭 100주년이 된 날이었다.국내 첫 성모 순례지로서 ‘성모 신심’의 못자리인 청주교구 감곡매괴성모순례지본당(주임 반영억 신부)은 이날 감곡성당과 매괴성모동산 일원에서 교구장 장봉훈 주교와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감곡 성체현양대회 10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 공경의 의미를 새겼다. 1941년 일제 강점기와 1950년 한국 전쟁 때 다섯 차례 중단됐기에 100차를 채우지는 못하고 96차였지만 그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았다. 만국기가 성당 경내에 휘날리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5000여 명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하고 신앙생활을 더욱 알차게 만듦으로써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바칠 수 있게 돕는 성체 신심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되새겼다. 올해로 성체현양대회 거행 100주년을 맞는 본당공동체는 특히 이번 성체현양대회를 앞두고 전 신자가 함께한 가운데 성경쓰기와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성체현시 및 성체강복, 성시간을 통해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 공동체가 하나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전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모은 5000만 원을 이날 감사미사 중에 물적 예물로 봉헌함으로써 애덕 실천을 드러냈다. 장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감곡 성체현양대회는 성체 신심에 대한 전 공동체의 장엄한 신앙고백”이라며 “하느님의 전능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때 성체 신심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찬 전례 직후 감곡매괴성모순례지본당은 장 주교 주례로 프랑스 루르드성지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을 그대로 재현해 세울 성모동굴 부지 축복식을 갖고 내년 5월 성모성월에 완공해 봉헌키로 했다. 이에 앞서 본당 측은 루르드성지 측의 허락을 받고 (주)네이쳐 아키 건축사사무소(대표 권태석)에서 이틀간 현지 마사비엘 동굴을 실측해 3차원 입체영상 기법(3D)으로 설계했으며, 문화재 심의를 거쳐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지난 7일 건축 허가를 받았다. 이로써 감곡 매괴성모순례지는 ‘성모신심의 못자리’로서 본래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어 장 주교와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 등 참가자들은 흰옷을 입은 소녀들이 오색 꽃잎을 뿌리는 가운데 성당 뒤 ‘장미의 언덕’ 매괴성모동산을 돌며 우리나라의 복음화와 평화 통일을 이루도록 매괴 성모께 전구를 청했다. 또 성체 현시대에 성체를 모시고 매산 정상에 오른 장 주교와 교구 사제단은 산상 성체강복을 통해 신자들을 축복했다. 이날 성체현양대회는 성체거동을 마친 뒤 장 주교와 사제단이 본당 연령회(회장 장사일)와 매괴고(교장 박영봉 신부) 미술반 학생들이 조성한 솔가지 성문과 톱밥길 등을 지나 대성당에 들어가 마지막 성체강복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성당 왼쪽엔 본당 신자들이 닷새에 걸쳐 성체와 장미 꽃다발, 포도, 보리 등을 형상화한 톱밥 조형물이 성체현양대회 100주년을 자축했다.한편 성당 구내 가밀로 영성의 집 정원에선 성체현양대회 거행 100주년을 맞아 올해로 설립 118주년을 맞는 본당 공동체의 발자취와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전이 열렸으며, 성당 내 박물관에선 전통 소재와 기법, 문양으로 제의를 만들어 온 이지영(로사리아)씨의 전통 제의전도 함께 열렸다. 반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임 가밀로 신부님께서 외교인들이 주님께서 부르시는 손길을 느끼고 믿는 이들은 주님을 더욱더 흠숭하고 찬미할 수 있도록 하고자 거행하신 성체현양대회가 100주년을 맞게 돼 기쁘기 그지없다”며 “100주년을 맞아 임 가밀로 신부님의 유지를 받들어 세우게 된 성모동굴이 매괴 성모님의 전구로 은총과 치유의 자리, 희망의 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cpbc2014.10.15
![[제2회 신앙체험 수기- 가작 수상작] 해바라기](//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8792_1.3_titleImage_1.jpg)
[제2회 신앙체험 수기- 가작 수상작] 해바라기글=노중호 신부(수원교구 서부본당 주임) 그림=문채현 준비운동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4). 어떻게 하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해집니다. 인생의 산과 바다, 어떤 우여곡절을 지나야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호기심까지도 듭니다. 2000년 전에 혹시 기네스북이 있었다면 다니신 거리로만 따져도 바오로 사도가 기네스북의 원조가 되실 것 같습니다. 한순간도 쉴 틈 없이 사도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복음 선포의 길이었습니다. 지치지 않는 그 열정의 원천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를 통해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자에서 증거하는 자로 변신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본받은 모습이셨습니다. 이제는 저의 차례입니다. 이 시간, 이 글을 통해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끄셨는지, 섭리 안에 쫓아가며 달려야 할 길을 서투르지만 차근차근 달려가려고 합니다.전반전“한 처음에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제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의 어머니, 바로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머니께서는 몸이 약하셔서 예전부터 병을 많이 앓으셨습니다. 특별히 ‘속앓이’를 하셨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되고, 땅이 돌고 오장육부가 끊어진다고 말씀을 들었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고통입니다. 한해의 마무리가 될 즈음 연말이 되면 너무 아프셔서 쓰러질 지경이셨습니다. 어느 때는 젊은 새댁이 속병을 앓다가 죽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장사를 지낼 준비를 할 정도로 살아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묏자리와 관까지 맞추셨습니다. 그런데 무당을 불러 한 상 거하게 차리고 굿판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는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심지어는 다 죽어가던 할머니께서 일어나시어 굿을 구경 온 동네 사람들의 시중을 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생사를 오가며 굿을 하는 것도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집안의 형편까지 어려워 죽을 판에, 매년 반복되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 죽기 전에 성당이나 나가 보고 죽을래요.” 무속과 불교가 뿌리 깊은 동네에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천주교 성당을 다니는 분은 한 분이셨습니다. 그 할아버지 한 분의 도움으로 그 날로 바로 예비신자 교리를 다니셨고, 힘들고 어려운 모든 교리와 기도를 외우신 다음 참으로 어렵게 세례성사를 받으셨습니다. 미사와 첫영성체를 하신 할머니께서는 그다음은… 참으로 놀랍게도 할머니의 속앓이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아주 건강해지셨습니다. 아멘입니다. 할머니의 기적을 체험한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등 모든 가족이 악습을 끊고 천주교 신앙의 발걸음을 걷게 됩니다. 다른 가정은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또는 선교사나 봉사자분들의 도움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은 아버지께서 농담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마귀가 선교했어.” 그렇게 무속 집안에서 천주교 신앙의 꽃을 피웠습니다. 1784년, 이 황무지 땅에 지혜로운 조상들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임과 비슷한 길을 걸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시어머니의 배턴을 받은 며느리, 곧 저의 어머니의 특기 사항은 ‘담 넘기’였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너무 순하시고 선하셨는데, 딸이 주일마다 어디를 가는 것 같아 주일에는 특별히 많은 집안일을 시키셨습니다. 그렇게라도 집안에 묶어두시려고 하셨나 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더 정성껏 빨리빨리 다해 놓으시고 외할머니께서 대문을 지키면 뒤뜰의 담을 넘으셨습니다. 공세리성당….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달음질이었습니다. 제가 커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가 되어 외할머니댁인 둔포에서 공세리성당까지 가 보게 되었는데 자동차로도 거리가 꽤 멀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그 먼 길을 달리고 또 달리셨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하느님 사랑에 흠뻑 빠지십니다. 어머니께서는 학창 시절 수녀원 가실 준비도 하셨는데, 그때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를 기대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언젠가 여쭈어 봤는데, “응, 성당에서 교리 공부하다가 만났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재미없다 시시하다 생각했는데 “그럼 연애 편지는 어떻게 쓰셨어요?” 여쭈어 보았더니 천주교 교리 문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고 합니다. 못 말립니다. 그래서 그 신앙적 차원으로 볼 때도 어머니께서는 저와 형의 첫 번째 교리 선생님이셨습니다. 예전에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불었는데, 저희 형제는 교리 조기교육 열풍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려운 교리가 쉽게 다가왔습니다. 저와 형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저절로 자연스레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수 우리나라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이라는 뜻의 ‘시나브로’가 있습니다. 그 말처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성가정의 성모 마리아와 같으셨습니다. 그렇게 준비시키셨나 봅니다. 하느님께서는….너무나도 지혜로우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화목한 가정으로 이끄셨습니다. 싸움이 일어나고 마음이 닫히게 되어 서로 말하는 것도 꺼려질 때, 할아버지께서는 그날 밤 온 가족을 안방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농번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농사로 인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기 때문에 화목했던 가정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며,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저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께서 이끄시는 가족 대화 시간이 지나면 불같이 화났던 마음이 사그라지고, 힘들었던 마음도 위안이 되며 평안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29)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지 벌써 잘 아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멍에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럽고 하느님께 영광을 올리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일하는 소가 참된 주인을 만나고 주인과 만남의 연결고리인 멍에를 제대로 멜 때 세상의 밭을 잘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족 대화 시간이 끝나면 꼭 묵주기도를 봉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동그란 묵주를 보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기도하던 가족의 자리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행복함도 오래가지 않아, 할아버지께서는 간암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청천벽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 말하면 솔로몬과 같으셨고, 가장으로 말하면 나자렛 성가정의 요셉과 같으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처음에 간암이라는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습니다. 온몸이 앙상하게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배는 복수가 너무 차서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하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의 나날이셨는데 하루는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부르셔서 “중호야, 할아버지가 너무 아파. 할아버지를 위해서 성가 좀 불러 줄래?”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놀라고, 눈물이 눈을 가려서 도통 성가책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었습니다. 울먹이는 소리였지만 할아버지 위해서 가톨릭 성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성가 중에 할아버지께서는 50번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주님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주 나를 이끌어 주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이 성가를 부르면 신비롭게도 할아버지께서는 허덕이고 가빠졌던 숨이 평안해지고, 고통으로 짓눌렸던 얼굴과 온몸이 갓난아기처럼 순하게 변모되셨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하느님 품으로 보내드렸습니다.경기중할아버지께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시면서까지도 유언으로 “내가 하느님 품에 가서도 성호가 신부님이 되길 기도할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형은 이미 집안에서 준비된 신부님이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복사를 서면서 신부님의 하얀 제의를 보고는 ‘나도 신부님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표현하기 조심스러웠고, 제 안에서 저 스스로 종이 접듯 접어야 했습니다. 누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형과 저 둘뿐인 집안에서 형이 먼저 신학교에 입학해서 사제의 길을 걷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청개구리 심보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너무 의외로 어머니께서는 “형 때 보니깐 교구청에 가면 예비신학생 모임으로 학사님들과 신부님들께서 잘해 주시고, 맛있는 곰탕에 깍두기도 주시더라, 맛있게 먹고 와!” 도대체 이런 말씀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의 내공에 많은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안성에 있는 안법고등학교에서 일곱 명의 친구들과 예신 모임을 다녔습니다. 너무나도 신이 났습니다. 우리 다 같이 신학교 가자고 손을 맞대고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고3, 이제 신학교 입학 1년도 남지 않았던 봄, 예신 모임을 룰루랄라 다니던 7총사 중 한 명의 친구가 자꾸 다리가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반이었고 제 뒤에 앉았기에 저는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친구의 저린 다리를 주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자주 결석을 하더니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병문안을 친구들과 같이 갔는데,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퇴원해서 기도원에서 치료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병명은 골수암이었는데, 잘못된 기도원으로 가서 친구는 고통 속에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꼭 같이 신부님 되자고 약속했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친구를 보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이 소식을 아시게 되었고, 또한 제가 신학교에 가는 것을 원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셔서 할머니께서는 고모들, 작은아버지까지 5남매를 총출동시키셨습니다. 온 가족이 제 앞에 둘러앉으셔서 모두 반대의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형이 먼저 신학교에 갔고, 아버지 어머니는 누가 모시게 될 것이냐로 시작하여 모두 걱정의 소리이셨습니다. 온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비록 육적으로 효도를 못 해도, 영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지극한 마음으로 효도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더 이상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끝에 신학교에 입학했고, 2008년 8월 22일 주님의 제단 앞에 엎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사도, 가난한 이들의 벗,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800년 전, 1200년대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부푼 꿈을 간직하고 보좌 신부 3년, 오전동ㆍ하안ㆍ상대원 본당의 소임을 마치고 첫 주임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안산의 원곡본당입니다. 그렇게 동고동락을 하던 안산에서의 3년 차인 2014년은 유난히 아픔과 상처가 많은 해였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죽음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표현했지만, 소풍이라고는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 벌어졌습니다. 하물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야 하는 부활은 얼마나 더 깨지고, 아파하고, 희생하고, 우리가 수없이 변화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성주간 수요일 그날을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 다시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 아픔이고 죽음이어서 다시 꺼내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합니다. 아이들과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좌 신부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주임 신부의 소명을 받고 저는 오자마자 수원교구 사제 체육대회 때 농구를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서 생전 처음 휠체어와 목발 신세를 지며 불편하게 미사를 봉헌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망하거나 기분 상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옆의 복사 친구들이 “신부님 괜찮으세요? 휠체어 타는 것 재미있으시죠?” 너무나도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장난도 치며 잘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휠체어를 탈 때는 밀어주고, 목발을 짚을 때는 잡아주고, 저는 한순간도 불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이 팍팍 들었습니다. 이제는 실명을 거론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성주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십자가 행렬을 할 때도, 중고등부 학생 미사를 할 때도 늘 밝고 명랑한 ‘장준형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복사 단장이어서 동생들을 잘 챙기고, 복사 배정표를 잘 계획했으며, 빠지는 친구가 있으면 ‘제가 하면 되지요’ 하고 허허 웃으며 대신 복사를 섰던 학생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주일학교 임원으로서 학생회를 이끌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 말 그대로 인기쟁이었습니다. 특출나게 잘 생겼고, 본당의 모든 신자분에게 인사도 잘하여서 사랑을 너무나도 많이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또한 예비신학생이었기 때문에 훗날 거룩한 미사성제를 집전할 신부님이 되실 분이었습니다. 전례의 꽃이고, 1년 중 가장 중요한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복사단장만이 할 수 있는 향 복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연습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준형이가 안 옵니다. 축구도, 농구도, 배드민턴도, 장난도 하며 정말 잘 지냈기에 이번에도 장난스레 말하며 ‘왜 안 와? 왜 이렇게 늦어?’ 혼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안 옵니다. 중고등부 교감 선생님께 “준형이가 안 오네요”하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장난꾸러기 준형이는 평소에도 늦잠 자고 늦게 올 때가 있었다며, 그렇지만 늦어도 꼭 오는 아이이니 기다리면 온다고 하였습니다. 준형이와 가장 친한 친구는 “바닷물 차갑다. 그만 놀고 돌아와라”라는 카톡 프로필 글을 써서 눈물바다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본당 공동체가 눈물로서 기다림의 고리기도를 하였습니다. 준형이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드디어 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두 발로 껑충껑충 뛰어오며 “신부님 늦었어요, 늦어서 죄송해요”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올 줄 알았는데 들것에 실려 온몸에 따뜻함은 다 사라지고 싸늘하게 누워서 왔습니다. ‘왜 이러셔야 했습니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고려대 안산병원 장례예식장에 빈소가 차려지는데, 저에게는 눈물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치고 또 치고, 오열하고 싶은데 눈물까지 흘리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아 이를 악물었습니다. 학생증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만드는데, 도통 준형이와 영정사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일학교 모든 친구가 “이 나라에서는 못 살겠습니다. 이민 가려고 합니다.” 모든 것에 포기였고, 절망뿐이었습니다. 차가운 진도 바닷속에서 일주일 내내 추위 속에서 꽁꽁 지내 왔을 준형이인데, 정부의 장례 절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다른 실종자 가족들의 상황 때문에 장례 예식장에 와서도 6일이나 냉동고에 있어야 했습니다. 매 순간 연도와 미사와 많은 조문객이 오셨고, 7일째 되는 날 화장을 하여 하늘나라에 보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화장을 하여 장례를 지내야 하는 그때, 진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준형이로 알고 있었던 학생은 DNA 확인 결과 다른 반 친구였습니다. 헛구역질이 납니다. ‘두 번 죽이는 꼴’이라는 말도 표현조차 되지도 않습니다. “내 자식도 못 알아봤다….” 대성통곡을 하시며 아버지와 이모와 이모부는 일주일 내내 한숨 주무시지 못한 몰골로 바로 6시간 진도의 길로 다시 내려가셔야 했습니다. “찾아올게요. 내가 바다에 들어가서라도 우리 아들 찾아올게요.” 준형이 아버지의 울부짖음 속에 그렇게 보름이 지난 5월 1일 노동자의 성 요셉 축일에 준형이는 진짜 우리 곁에 왔습니다. 그날은 본당의 날이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십시오”(1테살 5,19-22). 신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특별히 가장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과 주일학교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민 가려는 생각이나, 욕하고 피하려는 것이나, 쓰러져서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하자, 그래야만 준형이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는 것이니….” 장례를 두 번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산의 장례 예식장 전체가 포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성당 대강당에 빈소를 차리고, 끊임없이 연도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하는 연도도 이제 곧잘 하였습니다. 다음날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하며 하느님 품 안에 잘 보내 주려고 제의방에서 제의를 갈아입고 미사 입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대에 오르기 전 보았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앞에 아른거려 한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아이들이 먼저 하고 있었습니다. 준형이가 사고 나기 전 주까지 주일 미사 때 학생회 밴드로 앉아 있던 빈 의자에 베이스 기타와 꽃바구니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장례 미사지만 여느 때와 같이 슬픔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는 교사들과 아이들의 의견으로 평소 청소년 미사처럼 경쾌하게 학생회 밴드 미사곡으로 하였습니다. 준형이는 전혀 악기 연주를 못 하였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아로 태어나 악기 하나는 해야 멋진 사람이지’라는 친구의 말에 독학을 하였습니다. 베이스 기타는 밴드 가운데 전자 기타나 드럼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낮은 음이지만 묵묵히 리듬과 박자를 맞추며 가장 기본이 되는, 밴드의 감초 역할을 합니다. 준형이의 삶이 베이스 기타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고별식 때 장준형 사무엘이 가장 좋아했던 ‘사랑한다는 말은’ 성가를 불렀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 어둠 속에서도 훤히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그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장례미사에서 육안으로 보기에 베이스 기타는 빈 의자에 그냥 올려져 있었지만, 영안으로 보기에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좋아했던 성가처럼 준형이는 우리 곁에서 베이스 기타를 멋지게 연주해주고 있었습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러 구원이 피어나게 하여라”(이사 45,8). 후반전 세상은 폭우나 소나기를 좋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 명예, 빠름…. 우리가 최고로 여기는 것들은 수없이 많고, 감각적이고, 큰 성과를 얻어야 성공한 것으로 오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말해주듯,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의인을 이슬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안산에서 3년의 임기를 마치고 하남의 서부본당으로 소임지가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둥지에서 새로운 신자들과 함께 지내며,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끄시는지 그 섭리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신앙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아직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 더하기 기회’라고 하는데 고통이 있으면 은총이 더욱 크다는 진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배우는 중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성경의 맨 끝, 요한 묵시록에서 재미난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2,5). 이 진실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천사였습니다. 날개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려 추락했습니다. 날개는 가벼움, 깨끗함, 거룩함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삶의 무게에 너무 짓눌려서, 죄의 더러움으로 얼룩져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지’라는 세상과의 타협과 안주로 날개를 부러뜨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천상의 날개를 회복, 부활시켜야 함을 다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남의 서부본당은 아주 작고 아담한 공동체입니다. 오자마자 성당 벽면의 곰팡이가 먼저 보였습니다. 그래서 누구한테 시키지 않고 소수정예 아이들과 벽면에 하얀 페인트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해바라기가 햇빛을 보며 고개를 향하고 꽃을 피우듯이, 우리도 빛의 자녀들이기에 하느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성당 벽면에 표현하였습니다. 유치원 같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손수 그린 벽화이기에 모든 신자분이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는 합니다. 마무리로 성당 입구 돌판에 ‘천당 같은 우리 성당’이라고 썼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노중호 신부(수원교구 서구본당 주임)문채현2015.04.30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피보다 더 붉게 타오른 신앙’을 특집 주제로 △지도로 알아보는 124위 순교복자 △성지에서 만나는 124위 순교복자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을 중심으로 한 순교자성월 교리 등을 담았다. ‘본격 조명 한국의 순교자’는 주문모 신부와 강완숙 골룸바를 다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가톨릭 비타꼰‘함께 느낌 : 비바 파파!’에서는 △말씀으로 읽는 ‘Viva Papa’ △교황님보다 더 소중한 내 이웃 △천주교 신앙인인 것에 감사합니다 △미사 10분 전 등을 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특집으로 교황 방한 어록과 사진, 메시지까지 다채롭게 엮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경향잡지경향 돋보기에서는 ‘4대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를 주제로 △4대강 재자연화는 병든 사회의 치유입니다 △그들이 유린한 4대강, 지금은 △애물단지 4대강 사업, 철저한 청산이 필요하다 등을 다뤘다. 대구가톨릭대 평신도신학교육원을 탐방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교회와 역사‘시복식과 교황 방한’이 주제다. 노길명 고려대 명예교수의 ‘시복식과 교황 방한의 의의와 남은 과제’, 124위 시복미사 참관기를 수록했다. ‘지상중계’에서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식과 기념 전시회 이모저모를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그물△정약종 가족 순교사(1) △교황의 방한 기간 메시지들을 주제별 어록으로 다시 살펴보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한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AYD) 등으로 특집을 꾸몄다. (마리아사업회/3000원)▨레지오 마리애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 △순교, 지식과 삶의 거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레지오 △겸손과 순명의 덕을 기본으로 등이다. ‘신앙의 땅’은 수원교구 수원화성성지(북수동성당)를 찾았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말씀지기영한 대역 매일 묵상집. 9월호 영성 에세이는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새로운 순교-말하기보다 들어 주기를 게재했다. (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교황 방한의 열매, 어떻게 거둘 것인가?’를 주제로 △교황 방한 이후 본당 사목과 (자연) 증가 신자 대응 방안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에서 무엇을 배웠나? △124위 시복식은 순교자 현양 운동의 여정을 비추는 횃불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통한 선교 활성화 방안 등을 짚었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생활성서‘교회의 현실 참여’에 관한 11개의 질문과 대답이 이번 호 특집이다. 특집 부제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하나인 교회를 위한, 가톨릭 사회교리에 따른,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만나고 싶었습니다’의 주인공은 작가 신현림(로사)씨다. (생활성서사/3900원)▨성서와함께새로봄에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를 주제로 △평화를 희망하는 땅 예루살렘 △예루살렘 성도(聖都)의 어제와 오늘을 담았다. ‘프란치의 영화 피정’이 소개한 영화는 ‘신과 인간’(2010년)이며,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주제는 ‘콜카타, 고통과 사랑의 용광로’다. (성서와함께/3000원)▨소년특집으로 ‘여기는 라디오 방송 현장!’과 ‘「용감한 순교자 윤지충 복자」의 주인공을 만나다’를 게재했고, ‘만화로 보는 한국 순교 복자’(1)는 슬기로운 순교자 강완숙 복녀를 소개했다. ‘아름다운 성지’의 주인공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다. (가톨릭출판사/4000원)▨야곱의 우물‘표지 이야기’에서는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에서 첫선을 보인 124위 순교복자 걸개그림을 그린 김형주(이멜다)씨를 만났다. ‘교회와 사회’ 이번 호 주제는 ‘이윤보다 생명, 멈춰라 의료 민영화!’이며, ‘바오로의 선교여정’이 찾은 곳은 키프로스다. (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124위 복자 탄생을 특집으로 △124위 시복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24위 시복시성’ 추진 과정 △124위 복자님들의 고귀한 모습을 그리며 △124위 순교 복자 시복식에 부쳐 등을 게재했다. (미션3000/3500원) 남정률 기자 평화신문2014.09.02
![[복음 이야기] (32) 회당(상)](//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48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32) 회당(상)유배 시절 성전 대신 생겨난 공공장소 예수님과 사도들은 유다인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 주로 ‘회당’에서 하셨다. 회당은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던 기도의 집일 뿐 아니라 주민의 물질적 생활을 감독하고, 지방 재판관을 임명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유다인 사회의 중요한 공공장소였다.회당은 기원전 6세기 유다인의 바빌론 유배 시절에 성전의 역할을 대신해 생겨났다는 것이 통설이다. 유다인들은 3차례에 걸쳐 바빌론으로 유배됐다. 기원전 597년 신바빌로니아왕국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에제키엘 예언자를 비롯한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이집트군의 개입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티나의 몇몇 도시가 바빌로니아에 항거해 독립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하고 말았다. 바빌로니아 군은 기원전 587년 18개월간 항거하던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성전을 파괴하고 사제와 관리, 귀족들을 처형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바빌론으로 다시 강제이주시켰다. 이것이 제2차 바빌론 유배이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신바빌로니아왕국은 점령지인 팔레스티나 지역에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 땅을 나눠줬다(2열왕 25,12; 예레 39,10). 또 유다인을 다스릴 총독으로 그달야를 임명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달야는 매국노로 간주돼 이스마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기원전 582년 신바빌로니아왕국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반란자들을 처단하고 유다인들을 다시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켰다(예레 52,30). 이방인의 땅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다인들은 당장 부정한 곳에서 어떻게 하느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민족들 사이로 쫓아 버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지만,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얼마간 그들에게 성전이 되어 주겠다”(에제 11,16)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경신례를 바칠 ‘민가’(예레 39,8)를 정했다. 그리고 예언자들과 랍비들은 이 시기부터 ‘기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일부 랍비들은 성전이 없는 곳에서도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가 모든 희생 제사보다 더 중요하다”(「탄후마 레위」)고 가르치기까지 했다.신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기원전 538년 키루스 칙령을 통해 바빌론에서 유배 중이던 유다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시켰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제단을 다시 세우고 희생 제사를 바쳤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을 빨리 재건할 것을 유다인들에게 독촉했고, 기원전 446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복구를 마무리하고 종교ㆍ사회 개혁을 단행했다(느헤 1-6장 참조).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귀환했음에도 회당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수가 늘었다. 마을마다 회당이 있었고 도시에는 여러 개가 있었다. 유다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집을 회당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 서기 1세기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년) 시대 예루살렘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지역 밖으로 흩어져 있던 유다인 거주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는 1000개가 넘는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복음서에는 나자렛(루카 4,16)과 카파르나움(마르 1,21) 회당이, 사도행전에는 다마스쿠스(9,2)와 살라미스(13,5),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13,14), 이코니온(14,1), 테살로니카(17,1), 베로이아(사도 17,10), 아테네(17,17), 코린토(18,4), 에페소(18,19)의 회당이 등장한다.회당은 주택지대보다 높은 데 세워졌다. 랍비들은 “아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시에 정결례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시냇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그 좋은 예가 ‘성문 밖 강가’(사도 16,13)에 있던 필리피 회당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와 그의 온 집안 식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회당 건물은 소박했다. 양식은 지방에 따라 달랐으나 통상 3개의 입구가 있고 정면에 계단이 있었다. 카파르나움에서 발굴된 회당은 주랑에 둘러싸인 뜰이 있고 중앙에는 정결례용 수반이 있고, 바깥벽에 작은 방들이 딸려 있었다. 이 회당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셨던 회당(마르 1,21)을 기초로 200년 후에 증축된 건물이다. 이 회당의 맨 아랫단에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던 회당의 검정 현무암이 남아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10.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6> 이브 콩가르(하)](//cpbc.co.kr/CMS/newspaper/2014/03/rc/499147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이브 콩가르(하)성령,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 계획 완성하고자 활동 이브 콩가르는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인간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사진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표현한 색유리화. 미국 뉴욕 몬탁의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성당. 【CNS】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 프랑스의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3권의 저서를 통해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지혜 1,7)라는 성경 말씀처럼, 성령께서는 교회 내부에서뿐 아니라 세상 안에서도 우주적인 활동을 통해 신비로이 역사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음과 같이 성경적, 신학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시는 성령 콩가르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한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그 고귀하고 자비로운 선물의 원리가 바로 성령이다. 이처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안에서 결정적인 성취를 이루게 된다. 성령께서는 성모 마리아의 동정 잉태(참조: 마태 1,18-20; 루카 1,35)를 통해 그리스도 육화의 신비를 인도하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마르 1,10-11 참조).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공적 활동을 시작하며 기쁜 소식을 선포하실 때, 이사야 예언서 61장 1-2절을 인용해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루카 4,18)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루어짐을 기뻐하신다(루카 10,21 참조). 이처럼 성령께서는 나자렛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함께하시며 많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게 하셨다. 그런데 이처럼 나자렛 예수님과 함께하셨던 성령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과 다른 존재가 아닌, 항상 동일한 성령이시다. 이는 역사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안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성령의 종말론적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마침내 성령이 주어질 것임이 선포된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7-39). 그러므로 파스카 사건으로 나아가는 맥락에서, '파라클레토스', 즉 보호자이며 협조자, 또한 위로자이고 중개자이며 변호자인 "진리의 영"(요한 14,17; 15,26; 16,13), 곧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다. 예수님께서 청하면, 아버지께서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보내시어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참조).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처음 하셨던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라는 인사와 더불어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는 것이었다.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 성령 강림 사건(사도 2,1-13 참조)을 통한 사도들의 성령 체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보내겠다고 하신 약속의 실현이었다. 이는 또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실 것이라는 구약 성경의 예언(요엘 3,1-5 참조)이 성령 강림을 통해 성취됐음을 선포한다(사도 2,14-21 참조). 나자렛 예수님에 의해 정초된 교회가 이제 성령 강림을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 늘 함께하며 인도하신다. 오순절의 첫 세례 사건 때, 베드로 사도는 회개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군중들이 이에 응답해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다(사도 2,37-41 참조). 이러한 사도들의 복음 선포와 찬미 안에 성령이 가득 충만했다(사도 4,23-31 참조). 사도들은 성령의 힘에 의한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일으켰다(참조: 사도 5,12-16; 8,4-8). 사도들은 박해를 받는 중에도 성령에 가득 차 용기 있게 대답하였으며(사도 4,8 참조), 고난을 기쁨으로 여겨 굴하지 않고 복음 선포에 매진하였다(참조: 사도 5,40-42; 13,50-52). 스테파노의 경우,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다. 그래서 스테파노와 논쟁하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 때문에 그에게 대항할 수가 없었다(사도 6,8-15 참조). 심지어 죽기까지 박해를 받으면서도 스테파노는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도 7,54-60 참조). 베드로와 요한은 안수를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받게 했다(사도 8,14-17 참조). 베드로 사도의 복음 선포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인종과 민족의 장벽을 뛰어넘어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내렸다(사도 10,44-48 참조). 성령께서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선교 여행을 인도하시고 그들과 함께 동반하신다(사도 13,1-12 참조). 성령께서는 바오로의 선교 여행 중에 바오로와 그 일행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셨다(사도 16,6-7 참조).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의 제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사도 19,1-7 참조). 바오로 사도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예견하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한다(사도 21,10-16 참조). 이렇듯 성령은 참으로 교회를 이끄는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신다. 성령을 체험한 초대 교회의 공동생활 양식은 어떠했는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 4,32-33). 바로 이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가 성령의 힘으로 이루었던 놀라운 친교와 일치의 실상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하느님의 영은 그 백성과 늘 함께하시어,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복음 선포 사업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치 '교회의 영혼'과도 같이 생명력을 불어 넣으신다. 생명의 원리이신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신자들의 마음에 머무르시고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모아주신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 친교와 봉사로 일치시켜 주신다. 또한 교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 마침 영광송을 바치며 지상 여정 중에 있는 교회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순례하는 교회다. 교회의 첫 시작에서부터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 모든 과정 중에 성령께서는 교회와 함께 계시며, 교회를 끊임없이 쇄신하고 거룩하게 해 진리로 이끄신다. 성령의 재촉을 받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온 세상 구원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하느님 나라의 성장을 위해 교회를 인도하신다.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의 '가시적 경계선을 넘어' 온 세상 안에서도 충만하게 활동하신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 헌장」에서 이미 제시된 바와 같이, 성령께서는 교회의 가시적 경계 밖에서도 인간 구원을 위해 신비로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22항). 콩가르는 성령께서 이 세상 어디에서나 마치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처럼 활동하시며,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신비로이 보편적인 작용을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 하느님을 향해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마침내 하나로 결합시키실 것이라는 전망이야말로 콩가르가 제시하는 성령론의 마지막 결론이다. 바로 여기에서 성령론과 종말론이, 그리고 성령론과 삼위일체론이 서로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인간을 새롭게 하신다는 점이다. 오늘날 인간 세상의 어둠과 고통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는 시점에서, 콩가르가 제시하는 성령론은 우리에게 마치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던져준다. 이 세상 모든 죄악과 절망을 이기시고 마침내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드러나리란 희망을 간직하며, 이브 콩가르 추기경과 함께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마침 영광송'(doxology)을 통한 기도야말로 콩가르의 명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의 최종 결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cpbc2014.03.04

"성심당 빵에는 모든 이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기업] 성심당 대표 임영진 요셉, 김미진 아녜스 부부 성심당 대표 임영진(왼쪽)·김미진(오른쪽)씨 부부가 직원과 함께 성심당 대표 메뉴 튀김 소보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70년 전 해방 당시 함경도 함주에서 과수원을 하던 임길순(암브로시오)씨.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종교 탄압이 갈수록 심해졌다. 전쟁이 터졌다. 1ㆍ4후퇴 때 임씨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했다. 보따리를 꾸리고 아내와 어린 네 자녀를 데리고 나섰다. 도처에 미군들이 막고 있었지만 묵주를 보여주고 통과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흥남 부두에 도착해 배를 탈 수 있었다. 교우들만 탄 배였다. 임씨는 ‘가족과 함께 무사히 살아난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예수 성심께 봉헌했다. 전쟁 후 인근 진해에서 한동안 지내던 임씨는 먹고 살길을 찾아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서울에 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대전이었다. 임씨는 대전 역 앞에서 노점상처럼 천막을 치고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956년이었다. 임씨는 예수 성심(聖心)을 기린다는 뜻에서 빵집 이름을 ‘성심당’이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5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성심당은 대전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빵으로, 건강한 기업 문화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공유 경제로, 어려운 이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사랑과 나눔으로, 그리고…. -----------------------------------------------대전의 중심인 중구 은행동 로데오거리. 주교좌 대흥동성당이 길 건너 한 눈에 보이는 곳에 4층 건물 성심당(성심당 신관)이 있다. 1층은 케이크 전문 매장인 케익부띠끄, 2층은 이탈리아식 전문 레스토랑 플라잉팬이다. “성심당이 여기로 옮겨온 것은 1970년이었습니다. 성당 십자가가 보이고 성당 종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아버지께서는 이곳을 택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성당에는 먼저 갔다와야 한다고 여기신 거지요. 그런데 이곳 지번이 153이랍니다.”임길순(1997년 선종) 창업주에 이어 1980년부터 성심당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아들 임영진(요셉, 61) 대표의 말이다. 153이란,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대로 제자들이 그물을 치자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잡혔다는 요한복음 21장 11절에 나오는 숫자다. 마르타와 마리아“빵집을 열면서 아버지께서는 피란길에 결심하셨던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역 주변의 배고픈 이들을 찾아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신 거지요. 빵을 파는 것도 좋지만 많이 만들어서 굶주리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처음에는 빵을 나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당을 통해 나오는 옷가지 등 구호물품들도 함께 나눴다. 어머니(한순덕 마르가리타, 2012년 선종)는 빵을 만들어 팔고, 아버지는 빵과 옷가지를 싸들고 굶주린 이들과 입을 것 없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때로는 빵 재료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마저도 갖고 나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썼다. “아버지의 이런 삶을 보고 어머니는 ‘천당엔 혼자만 가려고 하느냐?’고 다투기도 하셨지요. 두 분은 마치 마르타와 마리아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빵을 만들어 파는 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예수 성심을 기리며 하는 일이었다. 봉사와 나눔은 계속됐고, 성심당은 번창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이런 나눔이 못마땅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베풀면 백 배으상을 받을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이해하게 됐습니다.”대학을 졸업하면서 아버지를 이어 성심당 경영에 뛰어든 임 대표는 아버지의 사랑 나눔을 이어가면서 빵을 만드는 재료에서 제조법, 포장, 서비스까지 새롭게 바꿨다. 성심당의 명물 ‘튀김 소보로’를 비롯해 포장 빙수, 판타롱 부추빵 같은 핵심 제품들이 속속 개발됐다. 아내와 함께 알게 된 ‘포콜라레’는 여기에 불을 지폈다. 지금까지는 부친의 뜻을 이어 나눔을 실천하면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포콜라레는 복음을 생활로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1980년대 중반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후원하는 것보다 그 과정마다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지요.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빵을 만들어 판매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것과 즐겁게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고객은 이를 느끼지요.” 임 대표의 아내 김미진(아녜스, 56) 이사의 말이다. 포콜라레 영성인 사랑과 일치의 정신을 성심당 경영에 접목시켜 나가면서 임 대표 부부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성심당 본관(은행동 145번지)에 1992년 국내 최초로 베이커리 레스토랑(테라스키친)을 연 것이다. 대성공이었다 외식업 진출은 플라잉팬, 피아토 개점으로 이어졌다. 성심당은 국내 제빵제과업의 아이콘이 됐다. 투명 경영과 공유 경제 2000년 부부가 함께 필리핀에서 열린 포콜라레 운동의 사회학교에 참석한 것은 새로운 전기가 됐다. 투명 경영, 공유 경제 같은 개념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부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귀국한 후 부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포콜라레 창시자 끼아라 루빅에게 편지를 썼고, 얼마 후 답신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17). 이때부터 부부는 이 말씀을 화두로 삼아 모든 것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고객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혹은 직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과 직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고민했다. 매장 인테리어 하나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모두 생각했다. 너무 화려해서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기를 꺼리지 않도록, 또 너무 초라해서 있는 이들이 외면하는 매장이 되지 않도록 했다. 회사 사훈도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 바꿨다. 투명 경영을 도입, 법인을 설립했다. 주식회사로 바꾸고 부부는 월급쟁이 사장과 이사가 됐다. 매출을 공개하고, 직원들과 함께 결산하고, 100% 정직한 납세를 했다. 공유 경제 기업 정신을 경영에 반영한 것도 이때부터다. 포콜라레 창시자 키아라 루빅(1920~2008)이 주창한 공유 경제 개념은 기업 수익의 3분의 1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3분의 1은 재투자에(회사와 직원을 위한 재투자뿐 아니라 사회 인력 양성을 위한 재투자도 포함),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임직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기업 문화를 소유 중심에서 나눔 중심으로, 경제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공유 경제를 실천하면서 회사는 직원 1명분의 임금을 매달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는 일도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이에게 좋은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희 부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화하고 나누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회사로서는 어려운 때였지요.”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상권이 옮겨갔다. 시내 중심의 생활은 주거지 중심의 생활로 바뀌고, 각종 프랜차이즈 사업이 생겨나면서 경쟁업체도 많아졌다. 회사 매출은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2005년 1월 본관에 불이 나 전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제 성심당은 끝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직원들이 먼저 달려와서 복구 작업에 앞장서더군요. 그해 말 결산을 해보았더니 전년도에 비해 매출이 30%나 올랐습니다.” 한가족 신문과 무지개 프로젝트 임 대표 부부는 기도하고 대화했다. 하느님께서 성심당을 일으켜 세워주셨으니 거기에는 분명 뜻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성심당의 정체성을, 존재 이유를 찾고자 했다.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이에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성심당은 단지 빵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빵으로 기업 분위기를 바꾸고 고객을 바꿀 뿐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성심당의 존재 이유였다. 이를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행에 옮겼다. 소통을 위한 ‘한가족 신문’이 그 하나였다. 매주 발행하는 한가족 신문은 각 부서마다 명예기자를 두어 부서 소식을 알리면서 회사의 사정을 공유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나누는 소중한 소통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통을 위해 직원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원하는 직원에 한해서 그 직원의 가정을 방문, 집안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임직원들이 서로 알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랑의 챔피언’도 시작했다. 사랑의 챔피언은 한 해 동안 사랑을 많이 실천한 직원을 승진시키는 것이다.2010년 성심당은 무지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개인과 회사와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일곱 가지를 설정, 실행에 옮겨 나갔다(표 참조).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성심당은 사랑의 무지개를 활짝 띄울 때까지 이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명과 사랑의 빵이 되고자 내년이면 60주년이 되는 성심당은 일반 기업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추진하는 두 가지를 여지껏 하지 않고 있다. 하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전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성심당의 존재 이유는 단지 돈을 벌고 이름을 얻고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끼아라 루빅이 주창하는 포콜라레 정신이기도 하지요.”그래서 대전을 떠나지 않는다. 2011년 대전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후 서울에서도 거듭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대전 시민의 사랑 속에 성장했으니, 대전의 기업으로 계속 머무르기 위해서다. “성심당 빵이 인기 있다고 서울에서 영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전에 오지 않습니다. 대전 성심당을 찾지 않지요. 성심당은 빵만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빵을 통해서 경영주와 직원이, 직원 서로가, 직원과 고객이, 회사와 지역 사회가 더불어 사랑의 문화,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입니다.”프랜차이즈를 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덕분인지, 한때는 신도시 상권에 밀려 공동화되어 가던 은행동 일대도 활기가 넘친다. 성심당 때문만은 아니지만 성심당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빵을 사러 오는 고객들 외에도 견학 오는 외부 손님들로 연일 붐비는 현장이 이를 말해준다. 성심당은 2012년에는 빵집을 시작한 대전역에 입점, 59년 전 예수 성심께 찬미를 드리며 시작한 자리를 감격스럽게 되찾았다. 성심당의 변화는 예수 성심의 사랑의 불이 지역 사회에 활활 타오르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임영진 김미진 부부는 이것이 성심당을 통해 자신들이 수행하는 또 수행해야 하는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여긴다. 성심당은 지금도 매월 4000만원 어치의 빵을 후원한다. 지난 4월 네팔 지진 사태 때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3일 만에 700만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 성심당 직원은 현재 정규직 290여 명을 포함 해 410여 명이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포콜라레(Focolare) : 1943년 이탈리아의 키아라 루빅이 창시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 영성 운동. 한국을 포함해 82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cpbc2015.05.27

본당 재탄생을 위한 새 복음화(2)-가정 복음화의 해[사목지침]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현대 세계의 주요한 징후 한 가지는 신앙의 약화 현상입니다. 신앙이 약화됐다는 것은 하느님께 가치와 기준을 두기보다는 인간의 지식, 기술, 물질에 더 큰 가치와 기준을 둔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리 교구 공동체는 2013년부터 신앙의 약화를 직시하며 강한 믿음의 공동체로 거듭나고자 5년간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입니다. 그 첫걸음으로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를 지냈습니다. 각 본당에서는 말이나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신심단체의 활성화, 신앙교육, 성경 통독 및 필사, 성지순례와 피정 등을 통해 영적 목마름을 채우며 신앙을 증진해 왔습니다. 신앙의 약화 현상은 가정에도 영향을 끼쳐 '하느님께 가치와 기준'을 두지 않는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그 결과 가정이 재물, 소유와 같은 세속적 가치에 과도한 무게를 두고, 사랑이나 희생과 같은 신앙적 가치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건강한 신앙 공동체의 기초가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 공동체는 본당 재탄생을 향한 두 번째 해인 2014년을 '가정 복음화의 해'로 지냅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문제, 가정폭력, 부부갈등,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 등은 우리 사회 가정에 적신호가 켜져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에 바탕을 두는 가정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타자를 이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여기에 그리스도인 가정의 깊은 본질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가정이 나아가는 길은 인간적 약점과 시대적 유혹의 무수한 난관 속에 있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은총을 간구해야 하는 삶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가정의 기도는 가정의 모든 생활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가정의 크고 작은 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이별과 만남, 출생과 죽음, 그 모든 삶에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가정을 맡기며 굳건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한결같은 믿음의 삶과 기도는 자녀에게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며 인생의 모범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가정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으로 새롭게 되어 '기도하는 가정,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 봉사하는 가정, 그리하여 진정으로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으로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합시다. ◇복음화의 원동력인 가정 복음화 실천지침 1.기도하는 가정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기도 △가족 성경 이어 쓰기 △성경가훈 만들기 2.본당 공동체의 신심 운동에 참여하는 가정 △본당 월 가정미사 설치와 가족 공동체 참여 △본당 혼인갱신식 마련 △아버지학교, ME 운동, 노인대학 △가족단위 성지순례 △가족 캠프 3.봉사하는 가정 △가족 봉사활동과 체험 △가족 공동체의 본당 봉사 활동 cpbc2013.12.10
![[성경 속 궁금증] 71.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나요?](//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1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71.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나요?부활, 물리적ㆍ역사적 차원 넘어선 초월적 사건… 라자로 소생과 본질 달라'부활하신 예수와 의심하는 토마스'(카라바조 작, 1602년). 성경에서 예수님 부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지인들이 정작 예수님께서 부활해 그들 앞에 나타나셨는데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0,15). 예수님 부활에 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시신이 다시 그 모습 그대로 소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요한 11,44 참조). 예수님 부활은 라자로의 소생과는 전혀 다르다. 라자로의 경우는 지상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니라 이승과는 전혀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심을 보여준다. 부활한 육신은 예수님이 확실히 부활하셨음을 증명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고 실제로 몸을 가진 분으로 나타나신다(요한 20,20.27-2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 24,39). 실제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도록 하시고(루카 24,36-40),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요한 21,9-13).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도들과 증인들의 증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부활이 물리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시공간을 초월해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에 마음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5-16). 부활하신 몸은 인간의 지상생활에서의 통상적 법칙에서 벗어난다(요한 20,19). 때문에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요한 20,9). 이런 제자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은 여러 날 동안 이뤄진다(사도 13,31). 신약성경은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성경의 '지진', '주님 천사의 발현'과 같은 전통적인 표현을 빌려 올 수밖에 없었다(마태 28,2-3). 물론 구약성경에 나오는 표현들로 부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표현들이 부활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부활은 초자연적 영역에 속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물리적ㆍ역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건이다. 초월적 사건이란 하느님께서 이루신 사건임을 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죽음과 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져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 부활은 신앙의 신비이다.cpbc2013.04.30

보고싶은 목자 김 추기경, 영화로 만난다 평화방송이 선종 마지막 1000일 모습을 담아 제작한 다큐 영화 「그 사람 추기경」 , 8월 7일 개봉 8월 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 사람 추기경」 포스터. 선종 5주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보고 싶은 참 사목자’로 남아있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영화가 개봉한다.가톨릭 종합 매스컴 평화방송이 김 추기경 선종 마지막 1000일간의 모습을 그의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그 사람 추기경」(감독 전성우)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8월 7일 전국에서 개봉하는 이 영화는 교황이 말한 양 냄새 나는 목자 김 추기경을 120분간 만나도록 이끈다.“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네.”영화는 생전 인터뷰 중 느닷없이 던지는 김 추기경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교회 어른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누구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늘 소외된 이들 곁을 지키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는 추기경의 이처럼 인간적인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배우 우기홍(미카엘)씨가 출연해 영화 내내 추기경을 만나도록 이끌어준다.영화는 김 추기경과 인연이 깊었던 교회 안팎 인사들 증언을 통해 그를 만나는 여정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김 추기경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아쉬움이 꾸밈없이 이어진다. 김 추기경이 사목했던 안동의 한 본당 신자들, 추기경의 친척, 많은 주교와 사제, 수도자, 주치의 등 가까이서 그를 봐왔던 이들의 기억 속 김 추기경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 사이사이 등장하는 김 추기경의 생전 모습들은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 없는 미공개분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무작정 혜화동 주교관에 들이닥친 방송 카메라 앞에서도 불평 없이 미소 지으며 반기고, 말 한마디 내뱉기 힘겨운 병환 중에도 나라와 이웃을 걱정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그가 곁에 와서 이야기하는 느낌마저 든다. 2008년 위독했던 순간, 침상 위에서 산소마스크를 한 채 입을 벌리고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추기경 모습, 병환 중에도 성경 읽기와 기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모습, 그를 기억하며 이야기하다 말을 잇지 못하는 지인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인간 김 추기경의 몰랐던 면모와 하늘에서 들려주는 듯한 그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주저할 필요 없다. 2시간 동안 그를 만날 수 있다.전성우(이냐시오, 평화방송 PD) 감독은 17일 시사회에서 “추기경님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 추기경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했다”면서 “오늘 무엇보다 (하늘의) 추기경님께서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다”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영화를 통해 추기경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뵙고, 그분이 강조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길 바란다”고 전했다.현재 CGV와 평화방송 누리방에는 영화 관련 시사회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문의 : 02-2270-2547, 평화방송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