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4/09/rc/530674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하느님연중 제26주일(마태 21,28-32)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예전에 서서울 지역 교육 담당을 했을 때, 모범 구역장 반장에게 상패를 드렸습니다. 각 본당에서 2명씩 추천을 받아 주교님께서 시상하셨습니다. 상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하였거나, 공동체 발전에 공헌을 하였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했을 때 주어집니다. 또는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겼을 때 주어집니다. 저는 평범한 삶을 살아서인지 상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상은 주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상을 받는 사람도 상을 주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명예와 기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누구에게 상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방법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업적을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를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비록 잘못했다 해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열등감과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을 포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돌아와서 뉘우치면 상을 주십니다. ‘난 안 돼!’ 이 생각과 말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악의 큰 유혹입니다. 예전에 일제가 우리에게 심어주었던 ‘패배의식’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아픈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든 하느님께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부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비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십니다. 맏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은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고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비록 죄인으로 여겨지지만 ‘세리와 창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하느님께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많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대림과 사순 시기에 특강이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 성령기도회에서 피정을 준비합니다. 각 구역과 레지오에 성당 청소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봉사활동을 할 기회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조금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상을 받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가끔 감사 헌금을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 뒤에서 경적을 울리면서 비키라고 하는 차량에 기쁜 마음으로 차선을 바꿔주면서 살짝 웃는 형제님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성적이 떨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에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을 하면서 보듬어 주는 어머니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는 상을 받는 길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은 우리가 생각만 바꾸면, 바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오늘 제2독서는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살지 않으며 겸손하게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삶입니다. cpbc2014.09.24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3>](//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6935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법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 김홍섭은 1915년 8월 28일 전북 김제군 수류면 금산리에서 아버지 김재운과 어머니 강재순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선대부터 임실에 터를 잡고 살았으나 집안 중에 세금징수직을 맡아 일하던 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바람에 일가친족 전부가 가산을 몰수당하게 되었다. 그 후 온 집안이 금산으로 옮겨왔지만 농사지을 땅이 없어 부친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금산리 원평 마을, 그중에도 홍섭의 집은 바로 큰길가에 있었다. 전주로 나가는 네거리 옆으로 마방이 있어 옛날에는 말과 마차들로 붐볐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는 화목차 같은 것도 자주 보이게 되었다. 금이 나는 곳이라 하여 김제라는 지명이 붙은 이 지역은 또한 손꼽히는 곡창지대 김제평야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홍섭이 태어나던 시절 그 넓은 들에서 거두어들이는 볏섬은 나라 잃은 농민들의 몫이 될 수 없었다. 일제의 수탈과 압박으로 숨 막히던 시절이었다.김홍섭은 부모가 혼인한 지 여덟 해 만에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지극하였다. 김홍섭이 아파서 결석하게 될 것 같으면 십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줄 정도였다. 자신은 가난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아들에게는 그 설움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1940년 8월 조선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과. 가운데줄 왼쪽 끝이 김홍섭. 보통학교 입학 전부터 개신교 신앙을 접했던 김홍섭에게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한학과 자연의 세계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김홍섭은 조부 김광언의 가르침을 아주 잘 받아들였다. 원릉 참봉을 지낸 분으로 학문이 깊었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한학은 물론 천지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까지 두루 넓게 알게 해주었다. 조부의 가르침에 대해 김홍섭은 나중에 이렇게 기억했다.“나의 조부는 정심성의, 즉 사람의 가죽을 쓰고서 거짓을 따를 수 없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어서도 안 된다는 내 윤리관의 기초를 닦아준 분이다.”여름밤이면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북두칠성과 삼형제 별자리 등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무궁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때부터 김홍섭은 천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천체도와 망원경은 그가 평생 성경책과 더불어 필수로 지니고 다니던 물품이 되었다.별과 더불어 어린 김홍섭의 마음을 키우는 데는 풀이나 꽃이 있었다. 봄마다 또래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꽃싸움이나 풀놀이를 하였는데 꽃이나 풀을 가짓수대로 뜯어와 겨루는 놀이였다. 김홍섭은 아이들과 놀이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시든 꽃잎이나 풀들을 모아가다 꽃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한낱 작은 것들이라도 생명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김홍섭의 고향 마을 어귀에는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 거목의 그늘은 동네 사람들이 흥겨운 잔치를 벌이는 마당이 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모여 돼지 오줌보로 공놀이를 하는 동네 운동장이 되기도 했다. 때로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김홍섭은 언제나 저만치 떨어져 앉아 책을 보는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김홍섭은 공부 잘하고 책 많이 읽는 아이, 착하고 성실한 아이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김홍섭이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형편이 조금만 되었어도 가까운 지역의 농림학교로 자식들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었다. 졸업 후 1년 정도 김홍섭은 나뭇단을 지고 아버지를 도와 일했다. 그런 어느 날 김홍섭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오수에서 사는 고모부의 도움으로 집안이 그곳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부친에게는 물레방앗간 일자리가 생겼고 홍섭에게는 일본인 송기(마쯔야끼)가 운영하는 약방의 점원 자리가 났다. 김홍섭은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가게 일은 물론이고 주인집의 허드렛일, 심지어 아기 보는 일까지 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싫은 내색 없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 대신 짬 날 때마다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둥에 기대선 채 책을 읽었고 밥을 먹을 때라도 읽었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구, 저기 홍섭이 좀 봐라. 저렇게 책을 열심히 읽고 있네. 길을 걸어가면서 읽고 있잖아. 도랑을 건널 때도 책을 보네!” 진학하지 못한 김홍섭에게 책은 가장 확실한 길잡이며 가장 훌륭한 스승이기도 했다. 책 속에서 홍섭은 자신의 미래를 꿈꾸었다. 특히 링컨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보았다. 켄터키 시골에 살던 가난한 링컨이 통나무를 베면서도 틈틈이 법전을 꺼내 보며 공부했다는 대목에서 김홍섭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보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조선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선망의 직업이었다.김홍섭과 같은 해에 태어난 미당 서정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성적이 좋은 것을 보자 나의 아버지는 일본 사람의 세상에서도 그저 무던히 살게 하려면 판사나 검사 같은 것이 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꼭 법과를 가라고 하셨다.’ 당시 어른들의 생각이 일반적으로 그러했지만 김홍섭은 남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 결심하고 결정했다. 10대 청소년 김홍섭은 중고 법전을 구해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던 그가 어느 날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수를 벗어나 대처인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서는 마침 같은 고향 사람 조남석 변호사가 사무실을 열고 있었다. 그의 소개로 김홍섭은 일본인 구영(히사나가) 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홍섭은 일본인 변호사에게 정중히 절을 한 후 청을 했다. “급료를 받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법률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제게 일자리를 주십시오.”조선인이라면 쉽게 경멸하고 능력을 의심하는 일본인들이었지만 김홍섭의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구영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김홍섭은 성실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탐색했다. 그 시기에 난 공고를 보고 군산 지방법원 서기 시험에 응시하여 어렵지 않게 합격할 정도의 실력을 닦았다. 그 후 법원에 들어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근무도 해 보았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김홍섭은 결코 자신의 꿈을 낮추지 않았다. 변호사에 자신의 목표를 이미 정하고 있었던 그는 일본에 가서 본격적으로 법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경제적인 형편이 가로놓여 있었지만, 전주에서 알게 된 친구 오평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화순에서 가까운 지역인 동복 출신인 만석꾼의 아들 오평기는 이 시절부터 김홍섭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어가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1939년 봄 김홍섭과 오평기는 동경의 니혼 대학에 함께 입학하였다. 둘은 같은 하숙집에서 서로 격려해 가며 변호사 공부를 했지만, 김홍섭이 언제나 더 열심히 했다. 오평기가 이런 불평을 할 정도였다. “홍섭이, 자네는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가? 내가 오늘은 기어코 자네보다 늦도록 공부해야지 하면서 지켜보았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잠을 자고 말게 되더구먼. 아무리 해도 자네한텐 못 당하겠어. 정말 대단한 친구야, 존경하네!”김홍섭은 불기도 없는 차가운 다다미방에서 주전자에 떠다 놓은 물을 들이키며 공부에 일로 매진했다. 그리고 법과대학 1년 만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당시 경성에서 치러진 법관 시험의 경쟁률은 대단히 높았다. 1940년 조선에서 있었던 마지막 사법시험이라고 알려진 이 시험에 무려 600여 명이 응시하여 단 18명만이 통과하였다. 합격자 명단에는 김홍섭과 오평기, 그리고 해방 후 함께 검사로 일하게 된 조재천도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 시험 합격 후 김홍섭은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그를 일본에 잡아두었다. 김홍섭은 와세다 대학 문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였다. 그 공부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조국이지만 그 속에서 변호사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김홍섭은 그리운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법률가로서의 삶이 펼쳐질 순간이었다. <계속> 백영민2015.02.25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52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사순 로드맵'을 특집으로, △사순시기 복음 해설 △사순 나눔 기도 △성화로 묵상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클래식으로 만나는 사순 등을 다뤘다. '신앙의 뼈대 공의회 바로 맞추기'에서는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를 실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 ▨가톨릭 비타꼰 이승환 기자의 함께 떠나는 신앙여행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낳은 땅, 수원교구 안성성당'을 찾아 소개했다. 비타꼰 화랑에서는 '수난과 부활'을 주제로 장효민 교수의 컴퓨터그래픽 작품들을 선보였다. 영성생활에서는 정영식 신부가 영적 성장의 장애물과 조건들에 대해 알아봤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돋보기에서는 '상식이 통용하는 사회'를 주제로 △법, 윤리, 양심이 요구하는 것 △정부가 주장하는 '법대로 원칙대로' 그리고 한계 △신앙인은 법보다 양심 등을 게재했다.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에서는 생명운동가 이광호씨가 청소년을 노리는 피임산업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특별기고로 103위 시성식 30주년을 기념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과 조광 교수의 '103위 시성 30주년과 한국교회'를 게재했다. '자료를 찾아서'에서는 심욱 신부가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보인대학교 신학대학 도서관을 소개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박상운 신부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영성에세이'에서는 용서의 은총을 향한 여정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용서의 길을 게재했다. 매일의 복음 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흔들리며 피는 복음의 꽃'을 특집으로 △복음적 삶과 회심 △개인이냐? 공동체냐?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 평화적 공존으로 등을 게재했다. '미래사목대안'에서는 이민자를 위한 사고의 새로운 전환과 가톨릭 사회복지에 대한 반성적 잔소리를 담았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해밀학교를 설립한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씨를 만났다. '김상용 신부의 시네마 천국'에서는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타임'을 소개했다. '양승국 신부의 기도레슨'에서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위한 기도를 다뤘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전례 속 성경 한 말씀에서는 '성호경과 십자성호'를, 생태신학으로 성경읽기에서는 '에덴 동산과 제주도'를 실었다. '말씀과 함께 걷는다'에서는 지혜서를, '그림으로 읽는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다뤘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유경촌ㆍ정순택 서울대교구 새 보좌주교를 만나 주교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는 디노탸샤; 공룡대탐험을 소개했다. '바다 건너 소식'에서는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미 수녀의 이야기를 실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 송봉모 신부가 하느님을 빼앗아가는 교만을, '교회와 사회'에서는 김형태 변호사가 '구원이나 해탈이 아닌 사랑과 자비'에 대해 썼다. 표지이야기에서는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 집에서 배식봉사를 하는 서정기씨를 소개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표지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싣고,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차동엽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몰고 온 희망에 대해 썼다. 특집으로 '학교폭력, 따돌림 그게 뭐예요?'를 다뤘다. '문화의 숨결'에서는 박문수 박사가 '유혹 과잉의 시대에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다뤘다.(미션3000/35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백영민2014.02.25
![[가톨릭 신앙의 보물]<7>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1253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생활과 결부된 기도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 신자들이 가장 즐겨 바치는 기도 몇 가지와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기도를 잘 바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많은 분이 "가장 좋은 기도 방법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각자에게 잘 맞는 기도가 가장 좋은 기도 방법이며,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들이 가장 즐겨 바치는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을 소개한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소통할 수 있는 기도 성독, 묵주기도, 9일기도, 성령기도 등 다양한 기도들은 하느님 체험,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향한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다. 교회가 제공하는 그 어떤 기도든 다 좋지만, 그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기도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기도는 기도문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것이다. 기도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없고 삶과 동떨어졌다면 반쪽짜리 기도일 뿐이다. 시편을 보면 구약시대 사람들이 즐겨 바쳤던 훌륭한 기도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시편 작가들이 시를 통해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고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고 때로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 하느님께 부르짖었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다. 그 기도 안에 찬미기도, 감사기도, 탄원기도, 청원기도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시편기도는 기도와 관련해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다. 시편은 시대를 초월해 어떤 상황에서든 바칠 수 있는 기도다. 시편기도는 오늘날 모든 사제, 수도자들이 바치는 시간전례(성무일도)에도 많이 포함돼 있다. 시편을 묵상하는 것도 좋다. 성경을 잘 읽는 것도 좋은 기도 방법이다. 성경은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는 맑은 샘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경에는 기도의 길잡이가 되어줄 스승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다.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깊은 묵상과 진심이 담겨야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풍부하고 의미 있는 기도다. 기도문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 생활지표라 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유일한 기도인 까닭이다. 그러기에 극진한 존경심과 정성으로 기도를 바쳐야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그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런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묵상한다면 다른 책이 아쉽지 않을 것"(「완덕의 길」 중)이라는 말씀을 전했다.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며 바쳐보기 바란다. 오늘 비록 우리가 보잘것없고 부족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 자리에서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로 변화되기를 갈망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겠다. 한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묵주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모님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라 부른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성모님이 '길'이 아니라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것이다. 성모님의 기도 방식을 따라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묵주기도는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가 아니다.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잡념 가운데 설렁설렁 바쳐도 되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잡다한 이기심을 바치며 성모께 조르기 위한 기도 역시 아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관조하는 진정한 묵상기도이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는 복음서 전체와 예수님의 일생 전체를 묵상하는 기도이며, 하느님 구원 사업 전체를 관상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다. 복음에서 출발해서 복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복음을 실제 안에서 실천하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묵주기도다.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 정겨웠던 나자렛 성가정에서의 생활, 희망에 찬 출가, 활기찼던 공생활, 연민과 사랑이 가득했던 착한 목자로서의 삶, 처절한 십자가 죽음, 영광스러운 부활,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내적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묵주기도 안에서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 정성껏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다 보면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염경기도는 교회 공동체가 제정한 기도문을 입으로 소리 내어 바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등을 바치는 것이다. 염경기도는 어떻해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에게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염경기도의 장점은 어려울 게 없다는 것이다. 신앙의 선배들과 교회 공동체가 정해준 이 기도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잘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생각 없이 외우면 소용이 없다. 비록 짧고 정형화된 기도문이지만 하느님과 대화하듯이 정성을 다해 바치길 바란다. 정성을 다하는 염경기도는 우리를 보다 깊은 하느님 체험과 만남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입술로 바치는 염경기도가 공허한 빈말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마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염경기도를 바쳐야 한다. 더 나아가 염경기도에만 머물지 말고 염경기도라는 사다리를 건너 침묵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행복한 기도체험, 충만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넘어가는 노력을 계속하길 바란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방송은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1.07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2>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거행하는가?잔 밴 헤메션 '치유 받은 중풍 병자', 유화,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74. 구약 성경에서는 '질병'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구약 성경에서는 질병을 종종 사람들이 받아들이길 거부하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채기도 하는 혹독한 시련으로 이해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02항). 175. 교회가 병자들을 특별히 보살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을 때 하늘도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마태 25,40)에서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제자들의 주요 임무로 삼으셨습니다(1506-1510항). 176. 병자성사는 어떤 이들을 위한 것인가요? 건강이 위급한 상태에 있는 신자라면 누구나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1514-1515항, 1528-1529항). 일생 우리는 병자성사를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일지라도 큰 수술을 앞뒀다면 이 성사를 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경우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총고해를 하고 병자성사를 받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177. 병자성사는 어떤 방식으로 받나요? 병자성사의 본질적인 예식은 기도와 더불어 축성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름으로써 이루어집니다(1517-1519항, 1531항). 178. 병자성사는 어떤 효력을 발휘하나요? 위로와 평화와 힘을 주며,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친 고통받는 병자를 심오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합니다. 많은 사람이 병자성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병자를 데려가고자 하시는 경우, 병자가 마지막 길에서 모든 영육 간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통해 힘을 주십니다. 또한 병자성사는 죄를 용서하는 효력도 발휘합니다(1520-1523항, 1532항). 179. 노자성체란 무엇인가요? 임종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아 모시는 성체를 말합니다(1524-1525항).사람이 현세의 삶을 마감하는 길을 떠날 때에는 영성체가 꼭 필요합니다.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뤄야만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cpbc2013.12.24
![[성경 속 궁금증] 46. 성경에서 여자들은 왜 머리카락을 가렸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458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6. 성경에서 여자들은 왜 머리카락을 가렸을까?세속적 사치 상징하는 것 가려 소박함과 정숙한 몸가짐 표현미사 때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쓰는 미사보는 세례성사를 통해 얻게 된 부활의 새 생명을 상징한다. 오늘날 세례식에는 사제가 영세자에게 물로 세례를 준 후 성유를 바르고 흰옷을 입히는 예식이 있다. 보통은 신자들에게 흰 미사보를 씌워준다. 이 예식은 세례성사를 받은 후 영적 결백함을 잘 보존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미사 참례를 할 때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미사보를 쓰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전해오는 관습인데, 세례성사를 통해 얻게 된 부활의 새 생명을 상징한다. 여성이 머리를 베일로 가리는 관습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미 구약시대에 있었다. 이사악의 부인 리브가는 장래의 남편 앞에서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창세 24,65). 이런 경우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미혼임을 상징했다. 그리고 모세도 하느님을 만났을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남자 역시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음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 이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했다. 신약시대 바오로 사도는 긴 머리카락이 여인이나 남자에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교회 예절에 참여할 때 여성들 머리를 가리라고 단호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머리가 깎인 여자와 똑같습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머리를 밀거나 깎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1코린 11,5-6). 바오로 사도는 여인의 머리는 남편의 영광이며, 머리카락은 세속적 사치이므로 성소(聖所)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며 전통적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도 여인의 머리카락을 세속적 사치로 여겼기에 성전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소박한 생활과 정숙한 몸가짐의 표현으로 머리를 가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 풍습일뿐 신앙의 본질로 봐서는 곤란하다. 물론 여성이 머리를 너무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머리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외모에 치우친 세속적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3-4). 물론 이 가르침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내적 마음과 정신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도자들이 쓰는 다양한 형태의 베일은 교회와 영적 혼인의 상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속적 사치와 욕망, 허영 등을 끊어버리고 이 세상 가치에 대해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퇴사자22012.08.28
![[신약의 비유] <20>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49_1.0_titleImage_1.jpg)
[신약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이성근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독일 뉘렌베르크 박물관 소장. 루카 16,19-31루카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비유는 예화에 속하며, 다른 대부분의 비유처럼 예수의 여행기사(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 9,51─19,27) 안에 위치한다.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16,18)과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17,1-3) 사이에서 연속성 없이, 또 서론 없이 나온다. 따라서 이 비유의 청중이 누구였는지 분명하지 않은데, 내용상으로는 앞에서 언급된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을 상기시킨다.회개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경고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은 부자와 거지인데, 거지의 이름은 라자로다. 이렇게 비유 안에서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가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이 비유의 거지와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반면에 부자는 익명인데, 필사본에 따라 네우에스, 피니스 혹은 디베스라는 이름이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증언은 아니다.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특별히 악한 사람으로 나오지 않으며, 라자로도 특별히 선하거나 신심이 깊은 사람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두 계층으로 나뉘던 사회의 대표 자격으로 보인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데, 이는 왕의 신분이나 그에 해당하는 특권 그리고 부에 대한 상징이다. 라자로가 그 집 대문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담과 대문으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생활한 것 같다. 반면 라자로는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다. “누워 있다”는 동사의 시제로 보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또한 배고픔을 겪으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바란다. 이는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하고는 냅킨 대신 빵을 사용했던 관습을 반영하는데, 그것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한다. 또한 들개들은 라자로의 종기를 핥으며 그의 죽음을 기다린다.부자와 라자로가 죽고 난 후 두 사람의 운명은 역전된다. 라자로는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이는 에녹이나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브라함의 품은 죽음 이후의 은총 상태, 절대적 휴식의 장소이다. 반면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당하는데, 저승을 뜻하는 ‘하데스’는 일반적으로 죽은 이들의 나라로서 최후심판 이전에 잠시 머무는 장소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영원한 거처로 벌 받는 장소, 즉 지옥에 해당한다.부자는 고통 중에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브라함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아브라함 아버지”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부자는 첫 번째로 자신이 당하는 목마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자로를 보내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브라함은 그에게 이미 좋은 것을 다 누렸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렁이 놓여 있어서 왕래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구렁이 놓여 있다는 수동태 표현은 그 구렁이 하느님께서 설치하신 것을 의미하며, 부자가 살아생전에 담과 대문으로 바깥세계와 단절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부자의 두 번째 요청은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라자로를 보내 경고해달라는 것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 즉 성경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이야기하며 역시 거절한다. 세 번째 요청은 두 번째 요청의 반박이면서 반복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가야 회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한다. 이 마지막 내용은 우화적 요소로서 예수의 부활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용어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고 본다. 즉 모세와 엘리야로부터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앙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분이 부활했다는 선포를 통해서도 회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비유의 의문점이면서 핵심은 왜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라자로는 천국에 갔을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부자는 살아생전에 좋은 것들을 받았기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부자라는 이유로 지옥에 간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부자였기 때문이다. 부자의 잘못은 담과 대문으로 대표되는 바깥세계에 대한 단절과 무관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자가 라자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생전에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에 라자로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지만 그 이름의 히브리식 표현은 “엘르아잘”로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소외되고 가난한 계층으로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와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주님의 가난한 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이 비유의 메시지는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무관심한 부자들에 대한 경고이면서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와 가난한 이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리라는 진복선언의 말씀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적인 자선을 촉구할 뿐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적인 제도와 장애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일깨운다.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월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에 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4.10.14
![[2014 교회사목 결산] ‘위로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599_1.0_titleImage_1.jpg)
[2014 교회사목 결산] ‘위로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124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14년 한국 교회 최대 뉴스는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다. 교황 방한 이전은 차질 없는 방문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방문 이후는 교황이 남긴 과제를 놓고 실천 방안을 모색하느라 분주한 한해였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경사를 맞은 것도 올해다. 그것 말고도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올 한 해를 돌아본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를 주제로 8월 14∼18일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그리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서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한국 천주교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과 1989년(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방문에 이은 세 번째로, 두 번째 방한 이후로는 25년 만이다. 3월 10일 교황 방한이 공식 발표되자 한국 교회는 곧바로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준비 체제에 돌입했다. 준비 기간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교황이 참석하는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교황 방한 기도문과 자료집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이 집약된 권고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여는 등 신자들이 마음으로부터 교황을 맞을 채비를 갖추도록 했다. 한국에 머무는 98시간 동안 그 이상일 수 없는 빡빡한 일정을 보낸 교황은 모든 이의 아픔을 끌어안는 위로의 아버지였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유족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장애인, 새터민, 이주노동자 등 사회 약자들을 만나 아픔을 어루만졌다.교황은 또 경제적 풍요로움이 주는 유혹을 경계하며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청년들에게는 주님을 믿고 세상으로 나가 주님을 힘차게 증언하기를 요청했다. 한국 주교단엔 순교자들이 보여준 희망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일깨웠다.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던 소탈함, 큰 의자는 한사코 사양하며 눈높이를 맞추며 마주 서 있던 겸손함, 함박웃음으로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교황의 평화와 치유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황 방한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게 하지 않고 교황이 방한 기간 남긴 메시지를 한국 교회의 새로운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국 교회 주교단은 교황 방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교황의 가르침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길 것을 다짐했다. 주교단은 교황이 방한 기간 남긴 메시지와 「복음의 기쁨」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구 차원에서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 모두 교황의 뜻을 되새기고 성찰하는 여정을 시작할 것을 권고했다.주교들의 이 같은 의지는 대림 제1주일을 맞아 펴낸 사목교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교들은 성경 공부와 기도를 통해 맛본 복음의 기쁨으로 먼저 가정을 성화하고, 이를 토대로 본당 공동체는 물론 교회 안팎의 모든 이와 복음의 기쁨을 나누자고 했다. 이는 「복음의 기쁨」과 교황 방한 당시 메시지에 뿌리를 둔 것이다. 124위 시복은 103위 성인의 선조인 초기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올랐다는 점, 또 파리외방전교회가 중심이 됐던 103위 시복과 달리 한국 교회가 주체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8월 13일 솔뫼성지에서 막을 올려 4박 5일간 진행된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는 교황이 참가한 최초의 아시아 청년 대회로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주교단 움직임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1월 12일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을 갖게 됐다. 또 2009년 김 추기경 선종 이후 5년 만에 다시 추기경 2인 시대를 열게 됐다. 염 추기경 서임식은 2월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거행됐다. 염 추기경은 5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성직자성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30일 유경촌ㆍ정순택 신부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돼 2월 5일 주교 서품식을 거행했다. 서울대교구가 지난 2006년 조규만 주교 임명 이래 7년 만에 맞은 보좌주교로,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사목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올해 한국 교회의 새 주교 탄생은 유경촌ㆍ정순택 주교가 전부다.한편 지난 10월 열린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가 주교회의 새 의장(임기 3년)으로 선출됐다. 기타수도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봉헌 생활의 해 개막 미사가 12월 1일 서울 명동대성당과 대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광주 임동주교좌성당에서 동시에 거행됐다. 한국 교회는 2015년 7월 ‘봉헌 생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심포지엄, 10월 ‘수도자와 함께하는 갈릴래아 청년 축제’, 단계별 성찰과 쇄신 프로그램 등으로 봉헌 생활의 해를 뜻있게 보낼 예정이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젊은 의정부교구가 6월 24일 교구 설정 10주년을 맞았다.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된 의정부교구는 교구 설립 당시 신자 수 15만 6000명에서 2013년 말 기준 27만 8000명으로, 본당은 55개소에서 74개소로 늘어나는 괄목한 성장을 이뤘다. 한국 교회 1번지 명동대성당 일대가 새 단장을 마친 것도 올해의 일이다. 명동성당 종합 계획(1단계) 공사가 9월 16일 마무리됨으로써 서울대교구청 신청사와 파밀리아 채플, ‘1898 myeongdong cathedral’이 들어섰고, 명동대성당 진입로는 성당 봉헌 당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한국과 일본 주교들은 11월 13일 제20회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마치면서 양국 고유의 역사와 과제를 직시하고 화해와 일치에 더욱 힘쓰기로 뜻을 모았다. 올해 모임은 특별히 양국의 이해가 서로 다른 역사의 인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안중근(토마스) 의사 기념관을 직접 찾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천주교와 한국 정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중심이 된 교회일치운동 전담 기구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5월 22일 창립함에 따라 지금까지 별도의 기구 없이 사안에 따라 임의 조직 형태로 전개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cpbc2014.12.17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3)고대 근동의 하늘신](//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83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3)고대 근동의 하늘신신과 동격으로 한르 섬겨온 인류 구약성경에는 하느님 외에도 다양한 신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신으로 등장하지 않고, 고대 근동 문화의 흔적으로 등장한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살았다. 성경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언어로 쓰였다. #하늘과 하늘신 우리나라 정서에서 하늘은 곧 하느님을 의미했다. 우리가 "하늘의 뜻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란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하늘 사상은 동아시아 원시 유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왜 북경까지 가서 천주교 신앙이 담긴 책을 찾았을까? 「천주실의」를 쓴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천주(天主)라고 했다. 우리 민족이 본래 갖고 있던 하늘 사상과 접목했기에 가톨릭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번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하늘의 참된 뜻을 적은 「천주실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하늘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인류 최초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하늘신은 모든 신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하늘 개념을 독특한 야훼 신앙으로 소화해 재해석했다. 기원전 5000년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살던 수메르인들은 인류 최초의 글자인 쐐기문자를 만들었다. 수메르인들은 하늘을 형상화한 쐐기문자로 '안(An)'을 썼다. 안은 딩기르라고 읽을 수도 있는데, 딩기르로 읽으면 '신(神)'을 의미한다. 두 개를 겹쳐 쓰면 '신들'이란 복수가 된다. 이는 하늘을 뜻하는 최초의 문자다. 이 글자를 보면 인류는 이미 이때부터 하늘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기원전 19세기 고(古)바빌론 제국 시대가 열린다. 고바빌론 제국을 건설한 아무르인들은 아카드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이때부터 고대인들은 두 가지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고바빌론인들은 행정과 상업 등 문서에는 아카드어를 썼지만, 학문 등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는 수메르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중 언어를 쓴 것이다. 한문을 공용어로 쓰는 우리와 비슷한 셈이다. 아카드어로 '아누(Anu)'는 하늘이다. 수메르 시대와 아카드 시대 모두 '하늘은 신'이라는 사상을 공유한 것이다. '아누'는 최고신이었다. 선과 악을 모두 관장하는 신이었다. 기원전 28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번성했던 우크르의 왕 길가메시에 대해 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아누가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아누에게 달려가 억울한 일을 풀어달라며 성난 황소를 청한다. 황소는 당시 권력의 상징이다. 황소가 우르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젊은이 수백 명을 죽였다. 길가메시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 이처럼 아누는 악을 관장하는 역할도 했다. 아누는 또 왕권을 확정해주기도 했다. 최고신으로서 왕을 임명한 것이다. #최고의 신 인류 종교사에서 첫 번째 최고신은 아누였다. 그런데 하나의 최고신이 계속 존재한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었다. 시대가 변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이 바뀜에 따라 아누는 최고신의 지위를 다른 신들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아누는 인류 종교사 최초의 신이자 '물러난 신'이기도 했다. 수메르 시대에 존재했던 3600명의 신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50명의 귀족신과 나머지 하급신이다. 귀족 50신은 수메르에서 가장 높은 신들의 모임인 '아눈나키'라고 불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일곱을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이라고 불렀다. 귀족 중의 귀족신이다. 이 일곱 신 중에서도 가장 높은 4명의 신은 안, 엔릴, 에아, 대지의 신이며, 그 중 첫째인 안(아누)은 모든 신의 아버지였다. 아누는 모든 신의 우두머리요, 아눈나키의 수장이자 운명을 결정하는 최고신이었다. 이후 최고신인 아누는 하늘로 올라가고, 엔릴과 에아가 뒤를 잇는다. 물러난 최고신은 궁극적 권위가 필요할 때면 다시 나타나곤 했다. 고대 근동의 가장 중요한 법률문서인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도 아누, 엔릴, 에아가 등장한다. 물러난 신인 아누가 정의와 왕권을 정하는 역할을 했다. 고대 근동의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최고의 신이었다. 동부 셈어 지역을 벗어나면 하늘신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북서 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하늘신은 제물을 바칠 때나 무언가 맹세를 할 때 거론되는 정도다. 북서 셈어 지역에서 나온 구약성경에서도 하늘신은 큰 역할이 없다. 대신 바알신이 하늘을 다스렸다고 나온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퇴사자22013.01.22

“작은 교회 가정, 세상의 빛과 소금 되겠습니다”광주대교구 가정의 해 폐막
광주대교구 가정의 해 폐막 미사에 앞서 신자들이 성경 및 성가정상 봉헌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힘 기자 가정 복음화를 최우선 사목 과제로 선정하고 2012년부터 3년간 ‘가정의 해’를 지속해온 광주대교구는 1일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집전의 폐막 미사와 함께 평신도대회를 열고 가정 사도직을 더욱 활성화 해나가기로 결의했다.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성당에서 열린 폐막미사와 평신도대회에는 5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활기 넘치는 본당,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도했다. 교구는 특히 폐막 미사 중 가정의 해 결실로 ‘광주카리타스재난재해봉사단’을 발족했다. 142명의 봉사단원은 결의문을 통해 하느님의 도구로 일하며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교회와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일할 것을 다짐했다.이에 앞서 광주대교구가 개최한 가정의 해 실천 사례 공모에서 단체 우수상을 받은 호남동본당 가정봉사단(단장 배동일 요한 보스코)은 15가정 가족 52명이 매달 장애인 시설과 공동체를 찾아 청소, 목욕, 식사 봉사를 해온 사례를 발표했다. 또 개인 우수상 수상자 유태규(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중2)군은 가족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 한센병 환우에게 봉사한 경험을 소개해 박수를 받았다. 광주대교구는 2012년을 ‘기도하는 가정교회’, 2013년을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교회’로 지낸 데 이어 올해를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교회’로 지내왔다. 한편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평화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정은 작은 교회”라 정의하고 “교회는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가정을 최우선 순위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가정 복음화를 위해 우선 ‘기도하는 가정’(사제직)ㆍ‘자녀에게 신앙을 전하고 신앙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는 가정’(예언직)ㆍ‘자기 가정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벗어나 세상 복음화의 누룩이 되는 가정’(왕직)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주교는 이를 위해 “가족끼리 서로 아껴주고 위해 주며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는 속담처럼 가정을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신자들은 교회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과 봉사의 기회를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광주대교구가 1일 교구 가정의 해(2012~2014년) 폐막 평신도대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가정의 해 신자 의식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31.5%가 교회가 다양한 가족 단위 활동과 봉사의 기회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가족 단위 신앙 증진 프로그램’(20.9%), ‘소공동체를 통한 가족 단위 활동 지원’(17%), ‘가족 단위의 상담 프로그램’(14.7%), ‘사제ㆍ수도자와 잦은 만남’(9.9%)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6월23일부터 7월31일까지 교구 131개 본당 20~60대 신자 97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가정사목 프로그램이 마련 시 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가족이 함께하는 미사’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가족 피정ㆍ캠프’, ‘가족 단위 복지시설 봉사’, ‘부모ㆍ자녀 관계 프로그램ㆍ교육’, ‘가족 피정ㆍ캠프 프로그램’이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는 ‘가족 단위 봉사’, 30대는 ‘가족이 함께 참례하는 미사’, 40대는 ‘부모ㆍ자녀 관계 프로그램ㆍ교육’을 가장 선호했다.자녀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유아 세례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67.6%만이 반드시 시키겠다고 했고,30.4%가 자녀가 커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자녀 유아 세례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모르는 신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20대의 60.4%가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응답해 젊은 층의 신앙 의식 약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자녀의 주일학교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46.5%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자녀 중 일부만 출석한다는 신자가 27.2%였다. 자녀 모두 출석한다는 신자는 26.3%에 그쳤다. 응답자 중 65%만이 신앙생활을 강조한다고 대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주1회 이상 미사에 참례(주일미사 포함)하는 비율은 74.7%로 한국 교회 미사참례율(21.2%)의 3.5배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자들도 자녀 신앙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냉담교우들은 자녀 신앙 교육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기도하는 가정 교회 △2013년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 교회 △2014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 교회 등 교구가 ‘가정의 해’에 제시한 실천 사항을 이행한 신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천한다”는 응답이 가족미사 46%,가정기도 26.9%,가족복음선포 46.4%, 봉사 29.9%에 그쳤다. 50~60대에 비해 젊은 층의 실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교회가 이혼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활동(2가지 선택)을 묻는 질문에 ‘교회 공동체가 이혼자들을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받아들이도록 교육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높았고,‘이혼에 대한 상처와 고통 치유 위한 상담ㆍ치료’(39%),‘이혼으로 고통받는 가족, 어린 자녀 돌봄’(34.1%), 성사생활을 위한 교회법적 절차 도움’(30.3%)이 뒤를 이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4.11.05
![[복음 이야기] (28) 사두가이](//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9477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28) 사두가이보수적 성향의 오만한 상류층 집단 사두가이는 대사제 등 이스라엘 고위 성직과 관료직을 독점한 유다교 정파이다. 사진은 조토가 그린 ‘가야파 앞에 서신 예수’ 프레스코화 오늘날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다인 지구는 예수님 시대 당시 사두가이가 주류를 이루던 상류층 거주 지역이었다. 이들은 주로 고급 관료와 고위직 사제, 대상, 지주들이었다. 사두가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활동하던 유다교 유력 당파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 때 대사제였던 사독(2사무 8,17; 1열왕 1,34)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인뿐 아니라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유다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분리된 자’로 스스로 칭했던 바리사이처럼, ‘정의를 따르는 사람’ ‘의로운 사람’이란 뜻의 ‘사두가이’라 자랑했다. 사두가이는 마카베오 가문이 세운 하스모네아 왕조의 후원을 받으며 귀족 정치집단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기원전 109년 사마리아를 정복한 하스모네아 왕조 요한 히르카노스 1세(기원전 134~104년)와 손을 잡은 후 서기 70년 아브월(7~8월) 9일 예루살렘 성전 멸망 때까지 부와 상류층 특권을 누렸다. 자연히 그들은 사회 변화보다 현상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나타냈으며, 정치적으로는 항상 힘있는 외세에 협력했다.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 사회의 두 주류였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는 ‘이방인 세계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할 것이냐’는 질문에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시각차를 보여 원수처럼 냉랭했다. 사두가이는 모세 오경에 나오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바리사이와 달리 모세 오경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구전 전승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해석도 바리사이와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보상법’을 다룬 레위기 24장 19-20절 규정(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에 대해 바리사이는 눈이면 눈에 대한 가치를 계산해 가해자에게 형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사두가이는 문자 그대로 가해자의 눈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두가이는 또 안식년 규정을 엄격히 지켜 노예 해방이나 부채 면제 등을 엄격히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상류층이 주류를 이룬 사두가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지만 바리사이는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또 바리사이들은 서로 우의가 있으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뤘지만 사두가이는 서로 간에도 야비한 행동을 하며 마치 이방인 대하듯 무례했고,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는 오만하고 냉엄했다. 사두가이는 율법에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 영혼의 존재 등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내세의 보상이나 형벌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현세의 삶을 중시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상응하는 보상과 징벌을 현세에서 받는다고 믿은 사두가이들은 현 사회에서 자기들이 누리는 지위와 부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표지라고 여겼다.복음서에서 사두가이에 대한 언급은 그리 많지 않다. 마르코(12,18)와 루카(20,27) 복음서에서 각각 한 번, 마태오 복음서에서 세 번(3,7; 16,1-12; 22,23-33) 나온다. 또 사도행전에는 사두가이가 예수님과 사도들의 적대자, 핍박자, 예수님과 사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사제의 추종세력으로 등장하며 그리스도교 교리를 반박하는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사도 4,1; 5,17; 23,6-8 참조).예수님 시대 사두가이들은 성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성전에서 제사를 담당했던 고위 성직자들이요 귀족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유다인들에게 십일조를 거둬 성전 재정을 관장했다. 사두가이는 예수님께 대해서만은 바리사이와 같은 노선을 취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불변의 율법을 파괴한다고 여겼을 뿐 아니라 메시아 사상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의 활동은 로마인과 그들의 관계를 곤란하게 만들 우려가 있어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을 철저하게 반대했다. 사두가이는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자연히 그 정체성도 함께 사라졌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9.17
![[아! 어쩌나] 265. 프란치스코 교황의 덕목](//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7737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65. 프란치스코 교황의 덕목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열린 마음 열린 생각’입니다. 교황께서 「라 레푸불리카」(이탈리아 일간 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열린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선을 행한다면 천국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됩니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죄가 됩니다.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지키는 것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늘 판단하게 합니다. 남을 개종시키려 드는 것은 실로 허황한 짓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서로를 알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의 반경을 넓히는 것.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보수적인 신자들이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종교계이건 일반사회이건 수많은 사회적 해를 끼친 사람들은 대부분이 생각이 닫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내 종교만, 내 이념만…. 다른 사람들의 것은 다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과 신앙만이 올바르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온갖 야만적인 범죄행각이 벌어졌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끊임없이 숙청이란 이름으로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행위, 독재자가 끊임없이 언론을 탄압하는 것, 종교가 선교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말살하는 야만적 행위를 하는 것 등등- 이들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든다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독선으로 인한 만행은 자본주의 국가이건 공산주의 국가이건 상관없이 저질러졌습니다. 미국의 매카시즘, 중국의 홍위병, 스페인의 남미 침탈, 소련의 스탈린,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등등 - 이들이 세상을 그렇게 망가뜨리는 것은 입으로는 평화를 부르짖지만, 마음 안은 독선과 분노가 가득해서입니다. 교황께서는 역사상 수많은 범죄행위가 때로는 이념의 포장을 하고,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외침 속에서 저질러져 왔음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의 범죄를 막으려면 열린 생각 열린 마음이 절실히 필요함을 아시고 이를 설파하십니다. 두 번째로 돋보이는 덕목은 ‘연민’입니다. 교황께서는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들을 챙기시고 유족들의 십자가를 바티칸으로 가져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황께서 정치인들처럼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양새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하시겠다는 당신의 깊은 연민을 보이신 것입니다. 교황의 이런 연민은 여러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동성애자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말씀, 요르단 국왕의 만찬 초청에는 응하지 않으시고 시리아 난민수용소를 찾으신 일 등. 이탈리아에 람페두사란 섬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부 아프리카 사람들이 공포와 힘겨움으로부터 탈출해 피난처로 찾는 곳인데 이곳을 오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교황께서는 그곳에서 당신의 가슴에 가시가 박힌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토하듯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황님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세 번째 덕목은 ‘여유로운 마음, 유머’입니다. 교황께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낙수 이론을 비판하시자 미국의 우파 지식인들이 교황님을 좌파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황께서는 ‘좌파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기껏해야 200년 전의 생각을 따르지만 나는 2000년 전에 생긴 성경을 따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를 좌파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여유롭게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좌파가 아님을 이야기하시면서 좌파이론이 겨우 200년 정도밖에 안 된 설익은 이론이라고 은연중에 말씀하셔서 우파와 좌파 양쪽을 다 물 먹이신 일화입니다. 교황께서 얼마나 여유로운 지도자이신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들의 모범이 될만한 분이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4.09.02

청년이여, 예수님 향해 마음을 열어라서울대교구 청년 사목자 모임 청년미사 봉헌, 청년 800여 명 한 마음으로 주님 찬양 청년들이 서로 안아주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성화 기자 신앙의 해를 맞아 지난해 5월 서울대교구 사목국 주최로 1000여 명의 청년이 명동대성당에 모여 봉헌한 청년미사는 청년 복음화를 위해 뿌려진 작은 씨앗이었다. 이 미사를 계기로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년국 청년부, 대학생 사목부,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청년성령쇄신봉사회, 가톨릭대 성심ㆍ성의교정 교목실 담당 사제들이 청년 복음화 지원을 위해 ‘청년 사목자 모임’을 만들었고 이후 모임을 지속했다.청년 사목자 모임이 주최한 교구 청년 미사가 1년 만인 5월 2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지난해 느꼈던 청년 신앙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함께하는 기도로써 하느님 사랑을 느끼자는 취지였다. 청년 사목자 모임이 가져온 큰 움직임이기도 했다. 미사에 참례한 청년 800여 명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 사랑을 더 많이 느낄 것을 다짐했다. 이날 미사는 정순택(청소년담당 교구장대리) 주교 주례로 손희송(교구 사목국장) 신부, 이태철(청년부 담당) 신부를 비롯한 청년 사목자 모임 사제, 본당 청년 담당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염수정(서울대교구장) 추기경도 함께해 청년들을 격려했다. 청년들은 율동과 함께 성가를 불렀고,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모은 채 진지하게 기도를 바쳤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땐 서로 부둥켜안으며 등을 토닥이거나 손을 모으고 깊이 맞절을 했다. 모르는 청년에게는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평화를 나눴다. 정 주교는 강론을 통해 “매일 매순간이 예수님 사랑 안에서 맞이하는 선물이고 또 다시 새롭게 출발할 기회라는 점을 잊지 말라”면서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이웃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자기 안에 만들자”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은 인사말을 통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일부로 여겨 내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면 하느님만이 주실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미사에 참례한 황해지(마리스텔라, 24, 도림동본당)씨는 “8월에 열릴 아시아 청년대회를 어떤 마음으로 참가해야 하는지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며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 백영민2014.05.27
![[출판] 최인호 유고집 눈물- 신앙인 '최 베드로'의 눈물 젖은 고백서](//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48_1.1_titleImage_1.jpg)
[출판] 최인호 유고집 눈물- 신앙인 '최 베드로'의 눈물 젖은 고백서 미공개 원고와 지인들 추도문, 두 손녀 편지 묶어 최인호 유고집 눈물최인호 지음/여백/1만 3800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호(베드로) 작가가 편지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벗이여, 이 편지를 받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대는 이미 제가 만났던 사람인지, 친하였던 동무였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가에서 스쳤던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벗이 되어 생전 처음 그대에게 쓰는 이 편지를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인의 집필실에 있는 책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미공개 원고 200매가 바로 이 편지들이다. 편지를 책으로 엮은 유고집에는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인들이 보내온 추도의 글과 고인의 두 손녀가 남긴 편지도 함께 실렸다. 편지에는 고인이 생전 잘 밝히지 않았던 신앙 고백이 절절히 담겨 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 성경을 읽으면서 느꼈던 신비로운 체험 그리고 5년간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주님과 성모님께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던 심경 등 소설가 최인호가 아닌 신자 '베드로'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랑하는 벗이여, 저는 이제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우선 그대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제 육신은 마흔세 살의 나이로 죽었으며, 이제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말,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하루하루 샘솟아 오릅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오늘은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술 후유증으로 항상 목청이 불안하였고, 또한 구내염으로 입도 아파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기도했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행을 하고 있음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고통은 수동적인 것이지만 고행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바로 의기소침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해 속삭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목청이 터져라 큰 소리로 기도할 것입니다." 고인은 성경 말씀은 물론 고전 문학 작품에서도,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서도 늘 아버지 하느님을 찾았고, 어머니 성모님을 묵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죄 많은 존재인지를 뉘우치고 고백하며 기도드렸다. 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어여삐 보아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며 "이 눈물만큼이라도 주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이렇게만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아아. 저의 눈물이 주님을 위로하는 작은 땀방울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흐느꼈다. 성모님과 십자고상이 놓인 고인이 쓰던 탁상에는 그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흘렸던 눈물 자국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고인의 편지는 그가 눈물로 써내려간 고해성사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