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사회복지 현실과 문제, 그리고 대안은?]<상> 봉사 활동에 대한 불감증, 본당 사회복지 발전 걸림돌](//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79_1.2_titleImage_1.jpg)
[본당 사회복지 현실과 문제, 그리고 대안은?] 봉사 활동에 대한 불감증, 본당 사회복지 발전 걸림돌재원뿐 아니라 봉사자 부족으로 본당 봉사활동 점차 위축 너도나도 사는 게 팍팍해졌다고 난리다.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모두가 체감한다. 교회는 이럴 때일수록 이웃을 더 돌봐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교회의 뿌리인 본당의 사회복지 활동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본당에서 사회복지 활동을 담당하는 사회복지분과장들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미사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던 모습은 옛일이 됐다. 활동보다 봉사자 모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회의에는 늘 나오는 얼굴만 보인다. 서울 한 본당의 사회복지분과장은 "봉사하려는 신자들이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단체가 해오던 봉사활동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재정 지원 부족 역시 큰 어려움이다. 2회에 걸쳐 안개 속에 놓인 본당 사회복지 활동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활성화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본다. 2011년 서울 사회사목 시범본당으로 지정된 한남동본당 이창준 주임신부(가운데)와 본당 사회사목 전담 이정희 수녀가 추석을 맞아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부족한 봉사자 ㄱ본당은 연중 봉사자를 모집한다. 사회복지분과 소속 활동회원은 몇 년째 4명뿐이다. 주보공지와 미사 후 홍보로 봉사자를 모집하지만,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각자 삶으로 돌아가 버리는 신자들 뒤로 찬바람만 분다. ㄱ본당 사회복지분과장은 "활동회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가정 방문이라도 수월하게 하는데, 발로 뛸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 매달 40여 가정에 지원금만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본당 사회복지 활동은 그야말로 '봉사직' 사명이 투철한 이들만의 활동처럼 여겨지고 있다. 본당 사회복지분과와 레지오 마리애, 빈첸시오회, 나눔의 묵상회 등 봉사단체들이 '소수정예'를 이뤄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돌보고 있다. 팍팍해진 생활 탓에 주변을 돌아보는 넉넉함이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현대사회가 발전하고 복지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향상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공공복지시설이 확충됐다. 그러면서 사회복지 활동을 각종 복지 기관과 시설만의 활동으로 여기고,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구분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본당 사회복지는 '하는 이들만 하는' 전문 활동이 된 것이다. 본당 전체가 관심을 두는 선교 활동과는 비교가 된다. 교회가 사회복지시설도 아닌데 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열심인 이들은 "이야기만 들어줘도 고마워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더 큰 주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봉사 불감증 ㄴ본당은 본당 사목자가 바뀐 후 사회복지 활동을 대폭 축소했다.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가 본당 복지사업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여 사회복지분과는 새로 계획 중이던 사업마저 철회해야 했다. ㄴ본당 사회복지분과장은 "사회복지 활동이 크게 침체되면서 과거 활동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라며 "지원이 줄어 지금까지 해오던 활동마저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회의 근본 사명이 본당 사제 관심에 따라 요동을 치는 셈이다. 본당 사목자나 단체장이 임기를 마치면 사회복지 활동은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한 사회복지분과장은 "적은 수의 봉사자로 활동하다 보니 막상 사회복지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렵다"며 "신자 인식 부족과 봉사활동에 대한 불감증은 수년째 본당 사회복지 활동 발전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교회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본당 사회복지 활동이 부진한 이유로 △본당 사회복지에 대한 사목자와 신자의 인식 부족 △본당 지원 부족 △기도와 성경말씀 등 개인신앙에 치중한 사목 △전문가 부족 △사회복지 교육 부족 △사목자 및 단체장 교체에 따른 업무 연속성 부재 등을 꼽았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주현우(마르코) 계장은 "사회복지 활동이 활발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편차가 두드러질뿐더러 그렇다고 각기 사정이 다른 본당에 복지 활동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며 "본당에 사회복지 활동을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역이 건강해지려면 본당이 '작은 복지관' 돼야 최근 의정부교구에서 열린 '나눔문화 활성화 방안' 심포지엄에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박문수(프란치스코) 부원장은 "교회 사회복지 임무를 종사자들만의 과제로 보는 게 문제"라며 "동ㆍ리 단위까지 아우르는 우수한 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는 본당이 교회 사회복지 활동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사회사목 시범본당 협약을 맺은 서울 한남동본당 이창준 주임신부는 "신자들이 사회복지 활동을 사회복지분과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고 깨닫는 것이 본당 사회복지 활동의 출발점"이라며 "본당 전체 예산의 10%만 사회복지 활동에 배정해도 본당이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침체된 본당 사회복지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에는 사목자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교구와 본당, 본당과 시설 간 유기적인 협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사목자 의지에서 출발한다. 전국 각지에 그물망처럼 뻗어있는 1600여 개 본당이 지역을 위한 '작은 복지관'이 된다면 우리 사회 복지지수는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조은일2012.12.31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31ㆍ끝) 영원한 삶](//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2492_1.2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31ㆍ끝) 영원한 삶죽음 이후 영원한 삶 위해 오늘도 아름답게 심판은 죽음을 맞이한 후 하느님 앞에서 잘못을 판결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만남을 통해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진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미켈란젤로 작, 1535~1541년).▶죽음을 넘어선 희망 인간은 죽음을 통해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면서 자기 완성의 정점에 다다른다. 죽음에 직면하는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고통이나 두려움만큼 죽음을 극복하려는 희망도 갖는다. 교회는 인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서 죽음을 넘어 희망할 수 있는 최종적 근거를 갖게 된다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영원불멸하는 신적 생명의 친교 안에서 전 존재로 당신을 따르도록 인간을 부르셨고 또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거두신 것이다. 따라서 확고한 논증에 바탕을 둔 신앙은 깊이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래의 운명에 대한 그의 불안에 해답을 준다."(「사목헌장」 18항)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삶 죽음을 단순히 죄의 결과로 이해하기보다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겪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이제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맏물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가능하며, 그분께서 모든 이들을 구원의 삶으로 초대하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가능해진 인간 구원의 결정적이고 최종적 상황을 말한다. 이 영원한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죽음 이후의 실재 1)심판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해 심판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심판이란 하느님과 천사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 낱낱이 밝혀지고 하느님 판결을 받는 그런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을 뵈옵고 하느님과 인격적이고 실제적으로 만나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에서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심판이란 이생의 삶을 살면서 고대했던 하느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만남인 것이다. 2)천국ㆍ연옥ㆍ지옥 교회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하느님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을 받고, 그 심판 결과에 따라 천국ㆍ연옥ㆍ지옥 판결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천국은 죄벌이 없는 영혼이 누리고, 연옥은 소죄를 지었거나 보속할 죄벌이 남아 있는 영혼이 겪으며, 지옥은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이 겪는다. 천국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이들이 누리는 하느님과 완전한 합일 상태를 가리킨다. 언제나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은총과 완전하고 충만한 사랑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천국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지만 이 은총에 응답하는 인간 자세 또한 필요하다. 연옥은 하느님 은총 속에 죽었으나 천국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지는 못한 영혼들이 천국을 누리기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는 것을 가리킨다. 연옥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 죽음 후 거룩한 하느님을 뵙는 것, 그 자체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정화될 수밖에 없는 그분과의 만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지옥은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로이 하느님과 영원히 결별하겠다고 선택한 이들이 겪는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 이들이 하느님을 뵈올 수 없고 사랑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랑의 결핍, 증오와 절망만을 겪는 것이다. 3)영혼 불멸과 육신 부활 영혼과 육신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이는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죽음으로 영혼과 육체가 서로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육체와는 관계없이 영혼만이 불멸해 하느님과 함께하지도 않는다. 성경은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는 그런 날, 영혼이 불멸하고 육체가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전한다. ▶현재에 내재된 천국과 지옥 영원한 삶은 죽음 이후에 이뤄질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가능해진 영원한 삶은 미래에 충만히 완성되고 성취되는 삶이면서 동시에 현재에서도 이미 구현되고 실현되는 삶인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도 알게 된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고 신앙인들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매일의 삶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으로 성화시켜가야 할 것이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2.01.17
이렇게 기도하여라](//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755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27)이렇게 기도하여라하느님과 소통하고 일치하는 길우리는 기도로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향하고, 그분을 흠숭하며,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에 감사드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간구하며,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청원한다.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라고 표현한다. 기도는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그 말씀에 응답하고자 하는 인간 사이의 대화로 이뤄지고, 이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통교와 친교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 업적을 돌아보고 이에 감사드리면서 그들이 지금 겪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도우심을 간청했다. 이스라엘의 성조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느님께 기도드렸고, 모세는 이집트 탈출, 시나이 계약, 광야 생활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중재자로 늘 기도했다.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께서도 지상생활을 하시는 동안 항상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마르 14,36)라고 부르면서 기도드렸고, 하느님과 깊고 친밀한 일치와 친교 속에서 살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고, 직접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도할 때는 반감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고, 위선자들처럼 남에게 보이려 기도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처럼 빈 말로 기도하지도 말라고 당부하셨으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올바른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 동안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셨고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셨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기도의 형태와 종류 1)전례 기도와 비전례 기도 전례 기도는 교회의 공식적 기도이며 예수님과 그분 지체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 함께 드리는 기도로 성사, 준성사, 성무일도를 할 때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비전례 기도는 전례 중에 이뤄지는 기도가 아닌 다른 모든 기도를 가리킨다. 2)개인 기도와 공동 기도 개인 기도는 개인이 혼자 사적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 기도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모든 이를 위한 기도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과 원의에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 기도는 여러 명이 다 함께 드리는 기도로, 대부분 전례 기도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미사나 성무일도 중에 드리는 기도를 들 수 있고, 그중에서도 '보편지향기도'를 떠올릴 수 있다. 3)소리 기도와 마음 기도 소리 기도는 기도서에 제시된 기도나 마음 속으로 생각한 기도를 소리 내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개인이 혼자 바칠 수도, 공동체와 함께 바칠 수도 있다. 마음 기도는 하느님 말씀과 뜻을 자신의 삶에 비춰 생각ㆍ침묵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4)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 하느님과 일치돼 가는 정도에 따라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로 나누기도 한다. 묵상 기도는 의지적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과 대화하며 일치를 이루는 기도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 지성과 의지, 상상력 등을 이용하고, 성경, 성화상 등을 묵상 자료로 활용한다. 관상 기도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 등과 같은 자연적 능력이나 의지적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을 느끼고 인식하며 사랑하는 기도를 말한다. 관상 기도 체험은 하느님 은총으로 주어지며, 인간은 침묵 중에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맡기고 바라보며,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그분 사랑을 충만히 느끼는 가운데 이뤄진다. 5) 감사ㆍ찬양ㆍ통회ㆍ청원 기도 기도는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날마다 보호해주시며 무수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데 대한 감사, 하느님을 흠숭하면서 그분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노래하는 찬양,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통회, 자신과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간구하는 청원으로 이뤄진다. ▶기도의 방법과 자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 공동체 모범을 따라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를 하느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그분을 느끼고 뵈오며, 그분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 말씀을 건네는 것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셨듯이, 더 바른 마음과 자세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사람은 먼저 하느님 구원 업적과 사랑을 믿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기도해야 한다. 또 자신의 소망과 필요와 청원을 말씀드리면서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한다. 나아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 말씀을 알아듣고자 온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분 말씀을 행하고자 전 삶의 방향을 그분께 돌려야 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12.13

전례의 ABC[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2) 출처: 전례와 신심행위 전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전례와 신심행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전례(Liturgy) :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근본 바탕을 둔 “거룩한 전례는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하늘에 계시는 성부께 드리시는 공적인 경신 예배인 동시에 또한 신자 단체가 그의 창시자와 또한 그를 통하여 영원하신 성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다.”(교황 비오 12세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 따라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의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전한 공적 경배이다. 전례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행해야 한다. ②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성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어야한다. ③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사람(성직자)이 전례를 거행하여야 한다. ④ 교황청으로부터 인준된 전례서를 따라서 거행되어야 한다.(미사경본, 성무일도서, 성사예식서) 신심행위(devotional practices) : 전례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거행되는 단체적 경배행위를 신심행위라고 한다. 신심행위는 교회 권위로부터 임명된 성직자가 있든 없든 간에 관계없이 거행될 수 있다. 이러한 신심행위는 신자들이 전례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기도회 등은 여러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지만 전례가 아니라 신심행위이다. 이러한 신심단체나 신심행위의 내용과 기도는 교구장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전례헌장」 13항) 전례의 능동적 참여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받아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헌장」 10항) 그러므로 “신자들은 천상 은총을 풍부히 받도록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전례에 참여해야 하며,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적절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과 강론은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해설로서 전례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봉사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모든 이가 올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선포하여야 하며, 신자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40-41조) 전례와 신자 생활과의 조화 “애덕과 신심과 사도직의 모든 활동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한 활동으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세상에 매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의 빛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전례헌장」 9항) 그러므로 신앙인은 ‘예수님 공경’만이 아니라 ‘예수님 모방’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말하는 전례 전례는 교회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 :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전례헌장」 10항) 전례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 :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친히 그때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마태 18,20 참조)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분께서 현존하신다.(「전례헌장」 7항)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 : “참으로 하느님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이 위대한 행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인 교회를 언제나 당신과 결합시키시며, 교회는 자기 주님을 부르며 또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전례헌장」 7항)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2.14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깊이 읽기세속적 쾌락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간 여정 안내하는 책 두 권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고백록」(Confessiones)은 루소·톨스토이의 고백과 함께 세계 3대 참회록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진리와 행복을 찾아 각종 철학과 종교를 접하고, 육체적 쾌락과 야망, 학문과 명예를 좇았던 성인의 「고백록」은 교회 안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전적 고백 문학의 효시이자 그리스도교 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자. 고백록 / 아우구스티누스 / 성염 역주 / 한길사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번역하고 주석 더해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욕정에 호리고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공개적으로는 자유학예라고 부르는 학문을 내세워, 은밀하게는 종교라는 허울을 내세워 그리했습니다.”(157쪽) “저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떤 인간입니까?”(389쪽) 「고백록」은 33세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43세에 쓴 책이다. 지난 삶의 사상적·도덕적 방랑을 글로 옮긴 책으로,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10권은 어린 시절의 방황과 회심의 과정, 수도자이자 사제로 살아가던 심경을 기록했고, 11~13권은 창조와 시간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주교황청 대사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더한 「고백록」은 성인이 절대 진리를 찾아 나아간 여정을 꼼꼼하게 뒤따른다. 라틴어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성인에 대한 오랜 연구로 역사적·사상적·신학적 맥락을 짚은 설명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책에는 ‘밀라노 정원에서의 회심’ 등 이탈리아 산지미냐노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 재단에 있는 성인의 생애를 담은 베노초 고촐리가 그린 벽화들도 실려 있다.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 / 로마노 과르디니 / 김형수 신부 옮김 / 최대환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성인의 영성 현대적으로 계승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상가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이다. 저자는 성인이 겪은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여정을 도덕적 회고나 심리분석, 단순한 철학적 전환으로 치부하는 모든 해석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저자는 「고백록」이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실존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진리 안에 자신을 놓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수치심과 자기주장의 저항 속에서도 하느님의 인식에 결합하는 것이다. “「고백록」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것을 제거해 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우구스티노가 겨우 그 외에 남아 있는 것들 때문에 그토록 고뇌했다고 믿지 못한다. (중략) 회심의 과정은 그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서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로 향한다. 아우구스티노가 회심하고 자신의 고백록을 기록해 바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께서는 철학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증언하는 거룩하시고 살아 계신 분이시다.”(10쪽) 책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내면적 투쟁을 통하여 저자의 핵심 개념인 ‘마음’과 ‘인격’을 설명한다. 청년 아우구스티노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통해 지혜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랐을 때에도,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결국 뒤로 물러났던 것처럼, 철학적 진리가 하느님 계시와 은총 없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과르디니 신부는 베를린·튀빙엔·뮌헨 대학교 등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쳤고, 청년들의 신앙을 길러주는 가톨릭 청년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0.29

오빠로부터 배운 신앙, 순교로 열매 맺은 동정녀[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2) 복자 심아기 복자 심아기는 혼인을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며 신앙을 증거한 18살 청년 순교자다. 심아기 바르바라 복자화. 유교 경전 「예기」(禮記)는 “여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혼인해 출가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여자가 평생 지켜야 할 세 도리라 해 ‘삼종지의’(三從之義)라 했다. 조선 사회에서 혼인은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낳고 제사를 이어가는 중대한 의례였다. 특히 양반 계층의 혼인은 이러한 의미를 뛰어넘어 두 가문의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학맥과 정치 인맥을 연결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조선 사회가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며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느냐면 양반이 딸의 나이 30이 넘도록 출가시키지 않으면 그 아버지가 중한 벌을 받았다. 또 양반이 가난해 딸을 시집 보내지 못하면 나라에서 그 결혼 비용을 대줬다. 나아가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으면 같은 처지의 적당한 망자를 물색해 그 영혼들을 부부로 맺어주는 ‘영혼 결혼식’까지 치렀다. 이처럼 조선 사회는 죽은 사람조차도 혼례를 치러야 할 만큼 혼인은 반드시 해야 하는 유교 사회였다.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 사회에서 삼종지의의 굴레를 깬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동정녀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동정녀들은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체포된 여느 그리스도인들보다 더욱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수난당하실 때 주님처럼 옷이 전부 벗겨진 채 맨몸으로 매달려져 심하게 매질을 당하고 갖은 조롱을 들었다. 잔혹한 포졸들은 이런 고문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동정녀들을 알몸으로 남자 죄인들의 옥에 던져 넣기도 했다. 또 몇몇 관장은 포졸들이 여교우들을 성폭행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여교우들, 특히 동정녀들은 법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갖은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초기 동정녀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 이번 호의 주인공은 복자 심아기(바르바라, 1783~1801) 동정녀다.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여교우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 정결한 삶을 선택한 동정녀들이 적지 않았다. 정광수(바르나바) 여동생 정순매(바르바라), 윤운혜(루치아) 언니 윤점혜(아가타), 강완숙(골룸바) 딸 홍순희(루치아), 궁녀 문영인(비비안나), 이합규 누이 이득임, 조섭(예로니모) 누이 조도애(아나타시아), 강완숙의 여종 소명·복임·정임 그리고 김달님, 이어린아기의 딸 김경애, 박성염, 심낙훈의 동생 심아기(바르바라) 등이 강완숙의 집에서 동정녀 공동체를 꾸려 생활했다. 이처럼 심아기는 초기 동정녀 공동체의 첫 번째 구성원이었다. 심아기는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오빠 심낙훈에게서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후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살았다. 특히 성인들의 모범에 감동해 하느님께 자신의 동정을 봉헌하기로 하고 집 안에서만 조용히 머물면서 기도에 몰입했다. ‘요산’이라고도 불린 오빠 심낙훈은 복자 윤유일(바오로)의 숙부 윤현과 사돈 간이었다. 윤현의 셋째 딸이 심낙훈의 며느리이다. 심낙훈은 한양으로 이주해와 사돈인 윤현의 안국동 집에서 살았다. 윤현은 명도회원으로 자신의 집에서 초기 교우들을 지도했다. 심낙훈이 한양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친분이 깊던 여주 출신 교우들이 조직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서울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심낙훈이 자주 어울렸던 교우들은 윤현과 정광수, 조섭,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최창현(요한), 황사영(알렉시오), 이희영(루카), 이희영의 조카 이현(안토니오) 등이었다. 앞글에서 설명했듯이 강완숙의 집에 꾸려진 동정녀 공동체의 첫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낙훈과 교분이 깊던 교우들의 누이들이다. 심낙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됐으나 배교하고 전라도 무안으로 유배됐다. 숱하게 매 맞고 18세에 순교 배교한 오빠 심낙훈과 달리 동정녀 심아기는 순교의 길을 걸었다. 심아기를 비롯한 초기 조선 교회 동정녀들의 삶은 사도 시대 여교우들의 활동과 흡사했다. 우선 그들은 여성들을 교육하고 돌보았다. 그리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자선을 했다. 또 교회 집회 장소로 자신의 집을 기꺼이 제공했고, 선교 활동에도 협력했다. 더불어 교회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헌신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심아기는 주문모 신부와 여회장 강완숙의 지도 아래 동정녀 공동체의 책임자로 임명된 복자 윤점혜(아가타)의 지도로 교회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을 즐겼다. 그는 신유박해 때 체포돼 포도청으로 끌려가 모진 형벌을 받았다. 딸의 비참한 처지에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심아기는 “저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기꺼이 어머니도 저의 길을 따르십시오”라고 위로했다. 그는 20일 동안 숱하게 매 맞으며 배교를 강요받았다. 심아기는 1801년 4월 초 18세 나이로 ‘순교’와 ‘동정’이라는 두 영광스러운 화관을 차지했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에는 심아기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하지만 「사학징의」의 심낙훈 진술에는 “동생 심아기가 포도청에서 매 맞아 순교했다”고 나온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8.19

작심삼일 뒤 다시 신앙의 끈을 묶으며새해 마음가짐 다잡는 책 구글 제미나이 제작 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새해 다짐도 이미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남은 1년을 대충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일상에서 또 신앙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도록 돕는 책들을 소개한다.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 / 조 켐프 신부 / 서영필 신부 옮김 / 성바오로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 하셨지만… “당시에는 용서를 생각한다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 고통의 일부는 언제나 제 삶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상처들은 제게 거의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저는 훨씬 더 생기 있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용서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9쪽)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뼈아픈 배신·거짓·상처 등을 경험해 본 사람은 사랑보다 힘든 감정이 용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지난해 묵은 부정적인 감정에 신앙인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져 힘들다면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가 실질적인 위로를 건넬 것이다. 조 켐프(미국 미주리주 유레카 거룩한 성신본당 주임) 신부는 ‘지금 당장 용서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증오·복수·원한 등 고통의 감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치유가 깃들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동행한다. 성경 속 이야기를 예수님이 전하는 용서의 관점에서 되새기며 빛과 평화의 길로 안내한다. 시기심으로 죽을 것인가 사랑으로 살 것인가 / 카트린 오방 수녀 / 안영주 옮김 / 바오로딸 시기심은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망가뜨린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책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감정인 시기심과 질투심을 신앙의 차원에서 극복하도록 돕는다. 책은 시기심과 질투심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잘 다스리지 못할 경우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뒤흔들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시기는 다른 영적 병폐와는 다르다. 탐식은 음식의 맛이라도 주고, 탐욕은 재물을 소유하는 기쁨이라도 주며, 음욕도 그 나름의 쾌락을 준다. 그런데 시기는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시기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 감각적인 즐거움도, 겉으로 드러나는 기쁨도 없다. 시기는 아무것도 보태거나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32쪽) 카트린 오방(도미니코회) 수녀는 카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아들, 자캐오 등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닫아야 할 내면의 문과 열어야 할 내면의 문을 제시한다. 감사와 찬미 안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미헬 레메리 신부 / 최정훈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사회교리란 무엇입니까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신부가 집필한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가 출간됐다. 사회교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 및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현대적으로 해석한 가르침이다. 이 책은 특별히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청년 사목과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한 사목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온 저자는 ‘하느님과 트윗을’ 시리즈를 통해 신앙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청년들과 세계청년대회와 성지 순례를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과 직접 소통했다.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은 세계 청년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음식 낭비라는 죄와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행동입니다. (중략) 오늘 밤 여기에서 내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다고, 저 멀리 사는 사람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속뜻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많이 낭비할수록, 세계의 다른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듭니다.”(45쪽) 책에 실린 질문은 구체적이다.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 왜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는지, 그리스도인은 채식을 해야 하는지, 왜 성경은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쳤는지, 교회와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지⋯. 저자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이웃이라면 어떨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되묻는다. 또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가능한 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성챙김 / 채정호 / 선율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명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가 집필한 책이다. 「영성챙김」이라는 익숙한 제목에서 채 교수가 가톨릭 신자라 예상했으나 개신교 장로란다. 40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병원급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정규적인 명상과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많은 치유 사례를 확인했으나,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사탄에게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라는 신앙적 두려움으로 참여를 망설이는 많은 개신교 신자를 만났다. 불교의 좌선, 뉴에이지의 환상, 이단 종교, 무분별한 영성운동과 연결해 마음챙김과 명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신의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 및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정의한 명상을 언급하고, 교회사에 드러나는 영성챙김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삶과 기도, 십자가의 성 요한 및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 수련, 렉시오 디비나와 향심기도,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 등 초대 교회부터 이어진 관상적 전통이 영성챙김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기독교의 풍성한 영성 전통은 모두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무는 존재적 기도’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갖고 있다. 영성챙김은 이러한 전통을 현대의 심리학적 언어와 훈련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기독교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깨어 있음’으로 구체화한다.”(90쪽) 저자는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심리학자 등이 등장하는 가상 토론을 통해 마음챙김과 명상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는가 하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견해 차이도 짚는다. ‘영성챙김’이라는 신학적 토대 위에 그리스도교적 명상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오랜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명상을 통한 ‘종교 간 일치’의 시도인 셈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14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6/CET1778044953421.jpg)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 “제 이름은 유은총입니다. 두 살 터울 남동생 이름은 충만입니다.” 자기소개를 마치면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참 좋은 이름이네요. 누가 지어주셨어요?” ‘은총’과 ‘충만’.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이름입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입니다. 작명소도, 항렬 돌림자도 아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골라 두 아들의 이름에 담아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밤샘 기도를 다니시던 말 그대로 ‘열혈 신자’셨던 아버지는 세상에 곧 나올 자녀들을 하느님께서 굽어 돌봐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다고 훗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 이름에 가려졌지만, 사실 아버지 성함도 범상치 않습니다. ‘경사로울 경(慶)’에 ‘북돋울 배(培)’, 이름 하여 ‘경배’. 어쩌면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던 걸까요. 어릴 적 온 가족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면, 아버지는 미사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괜히 엉덩이를 들썩이곤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뜨거운 신앙은 이름 속으로, 그리고 우리 형제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 역시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신 어머니는 일상 속에서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익숙했던 풍경은 방 한 켠 작은 기도 공간에서 촛불을 밝히고 고요히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일까요. 저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색하거나 주저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새 신앙을 삶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방 안에는 기사를 작성할 때 쓰는 노트북과 취재수첩 사이에 5단 나무 묵주가 늘 함께합니다. 취재 현장으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 조용히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잘못이 없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부모님은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 같은 특별한 분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성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녀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고, 충분한 양분과 물을 주며 싹이 트길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의 기도 안에서 자라며, 저 역시 복사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자녀의 얼굴에서 부모의 얼굴이 보이듯, 신앙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요즘 저는 황혼을 바라보는 주름진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기도드립니다.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 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부모를 위한 기도」 중) 그러면 어머니는 혼기를 넘긴 아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오늘도 아들을 대신해 주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을 간직하여 새로운 만남이 당신의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중) 그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저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읍니다. “주님, 모두 이뤄지게 하소서. 아멘” cpbc2026.05.06

빌렘 신부 “나를 따라 독일로 가자” 안봉근에게 제안[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화 독립운동가, 안봉근 요한 세례자 - (1) 안봉근(요한 세례자). 어린 세 아들 둔 가장 안봉근 새 세상에 대한 갈망과 미안함 사이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아내 손 잡고 성경 구절 속으로 되뇌어 안봉근(安鳳根, 1887~1945?, 요한 세례자)은 안중근의 사촌 동생이다. 오늘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독일에서 동아시아 문화 전문가로서 문화 독립운동을 한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이미륵에게 독일 유학과 정착의 길을 열어주었고, 손기정에게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여주어 그를 민족주의자로 변화시킨 사람이다. 받고 싶은 도움을 타인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내준 안봉근을 삶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는” 역사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 1914년 1월, 4년 전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토마스에게 종부성사를 준 빌렘 신부가 안봉근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아, 나를 따라 독일로 가겠니? 가서 공부도 하고⋯. 토마스는⋯ 그렇게 죽었지만 헛된 죽음은 아니다. 토마스의 뜻은 살아 있고 조선은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거야. 그때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지.” 안중근의 사촌 동생 안봉근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빌렘 신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신부님, 제가요?” 빌렘 신부가 온화한 표정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요.” “너도 기억하지? 지난번 청계동에 왔던 베버 신부님과 포겔 신부님 말이다.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더니 수도원에 머물게 해주신다고 하는구나.”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네가 하고 싶다는 기계학 공부도 하고 교리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조선 선교를 희망하는 선교사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칠 수도 있고. 그럼 너도 덜 미안하지 않겠니?” 빌렘 신부는 봉근을 볼 때마다 안중근과의 마지막 3일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 토마스는 종부성사를 볼 수 있게 사제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뮈텔 주교에게 보냈었다. 주교는 거절했으나 빌렘 신부는 주교의 뜻을 거스르고 토마스를 찾아 뤼순 감옥을 찾아갔다.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은 특별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세례를 주었고 자신의 복사로 곁에 두었다. 감옥에서 마지막 미사를 할 때 안중근은 복사가 하는 라틴어 응답문을 한 구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빌렘 신부는 일부러 더 천천히 미사를 드렸다. 안중근이 가능한 한 오래 하느님을 느끼기를 바랐다. 안중근에게 성체성사와 노자성체를 주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제의를 벗고 미사를 마쳤다. 빌렘 신부는 스무 살의 안중근이 상해나 동경에 가서 몇 년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또 신앙을 잘 지키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니 보내도 되겠다”는 편지를 뮈텔 주교에게 직접 보냈었다. 그러나 그의 유학은 실현되지 않았다.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봉근에게 해주고 싶었다. 봉근 역시 사촌 형 안중근 토마스처럼 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복사를 했기에 가까운 사이였다. 안봉근·최 루갈다 부부와 세 자녀. 왼쪽부터 둘째 창순 에우세비오, 첫째 창익 프란치스코, 셋째 창준 라우렌시오. 안기명 제공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은 봉근은 가족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일견 새로운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쿵쿵거리는 심장을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봉근은 만주로 상해로 돌아다니는 형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러웠다. 안중근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경의 감시를 받는 것도, 이웃들이 예전과 다르게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것이 속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상했다. 봉근이 빌렘 신부와 헤어져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서 놀던 두 아들이 달려들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네 개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아버지 손에 든 신문 뭉치에 더 눈이 쏠렸다. “프란치스코야,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라.” 봉근의 허락이 떨어지자 큰아들 프란치스코가 수제비떡을 싼 신문 뭉치를 냉큼 받아들더니 동생 에우세비오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나갔다. 프란치스코는 청계동을 찾은 베네딕도회 베버 신부 일행에게 꽤 귀염성 있게 굴어 이쁨을 많이 받았다. 다섯 살 프란치스코가 쪼그리고 앉아 신부들의 담뱃대를 순서대로 받아들고 담뱃잎을 채워넣을 때면 평생 담배를 태운 누구보다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다. 아이들 뒷꼭지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돌아서던 봉근의 눈길이 부엌에서 젖은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며 나오던 루갈다와 마주쳤다. 12년 전, 빌렘 신부의 복사 열다섯 봉근은 일곱 살 많은 루갈다와 결혼했다. 그날 봉근은 솜을 넣은 바지와 소창의를 입고 상투를 틀고 머리에 정자관을 썼다. 루갈다는 황해도 여자들이 하는 얹은머리를 하고 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다. 치마는 풀 먹인 다듬이질을 너무 세게 했는지 햇살을 받을 때마다 번쩍거렸고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날 빌렘 신부는 봉근의 가족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뒷면에 “교황의 조선 선교사 니콜라스 조셉 빌렘”이라고 새겨진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사진 속 봉근은 어렸고 루갈다는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멋쩍게 서 있다. 본관(本貫)이 해주인 루갈다의 아버지 최형규 시몬 역시 빌렘 신부의 복사이고 전교회장도 했다. 한자에 조예가 깊은 장인은 사립 해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바쁜 와중에도 빌렘 신부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신부가 써준 편지를 들고 서울 종현 주교관을 찾아가곤 했다. 빌렘 신부는 2년 전 성모 성탄 축일(9월 8일)에 새 종 축복식을 하고 해주에 본당을 세웠다. 성당을 짓기도 전에 400원짜리 프랑스산(産) 종을 마련할 수 있었던 연유는 공소집 주인이었던 김 베네딕토의 유언 덕분이었다. ‘본당 종 구입비 300원을 반드시 본당 신부에게 기부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두 아들이 300원을 가져왔고 감동을 받은 빌렘 신부는 거기다 100원을 보태서 종을 주문했다. 초대 본당 회장을 맡은 장인은 더 바빠졌다. 신자들의 수가 늘었고 빌렘 신부는 성당을 지을 요량으로 해주 남문밖 서영정 땅을 구입했다. 그때부터 장인은 그 땅에 딸린 집에 들어가 살면서 본당 부동산도 관리했다. 안봉근의 장인 최형규 시몬. 빌렘 신부의 복사였으며 황해도 해주본당 초대 전교회장이었다. 안기명 제공 “막내 라우렌시오는 자우?” “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 형들이랑 신나게 놀더니 지도 부치는지 낮잠을 좀 오래 자네요. 그저께부터 콧물 바람이에요. 형들과 달리 약해서 걱정이에요. 그것보다 신부님이 갑자기 왜 부르셨어요? 또 무슨 일이 있나요?”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님뿐만 아니라 다른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과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아버지와 남편을 통해 들어 대충 알고 있던 루갈다도 걱정이 앞선 목소리였다. “신부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다시 오기는 힘드시겠지. 같이 가자고⋯. 독일 가서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네.” “아이고⋯ 신부님 떠나실까 걱정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요? 그런데 임자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셨단 거죠?” “신부님이 장인어른과 이미 말씀을 나누었나 봐. 큰물을 보고 문리도 더 틔워야 교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루갈다는 얼굴을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 집안 남자들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촌 아주버님들이 그동안 한 일들을 생각하면 남편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지만 애써 눌러두었을 뿐이었다. 지난해 부활 첨례날에 남편은 신자들 앞에서 예수 부활하신 후부터 그날 저녁까지 일어난 여러 가지 신묘한 기적을 구구절절 잘도 풀어냈다. 신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서 있던 빛나는 봉근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 루갈다는 어릴 때부터 품고 다니던 몸고상을 만지작거리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언제요? 얼마나 걸릴까요? 가시는 곳은 어디랍니까? 여비는 어떻게 마련하죠? 옷 한 벌이라도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봉근은 루갈다의 거칠어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빌렘 신부가 독일로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머리에 떠올랐던 성경 구절을 속으로 되뇌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루카 19,34) <계속> 송란희(가밀라, 한국교회사연구소 학술이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6.10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17/0I21781671590291.jpg)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 최근 일본 도쿄로 나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덕에 가타카나와 히라가나 정도는 읽을 수 있고, 또 ‘한자 세대’라는 자부심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짧은 일본어를 더듬어 사용하고, 손짓 발짓에 표정까지 동원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긴장이 풀려 실수가 잦아진다는데, 그 말이 꼭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도쿄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쿄도청 전망대를 찾아 도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정작 입구를 찾지 못해 한 시간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초조함에 머릿속이 하얘질 무렵, 일흔 후반쯤 돼 보이는 경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분은 온화한 목소리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일본어로 ‘전망대’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던 저는 영어와 이른바 ‘만국 공용어’인 몸짓을 섞어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경비원은 직접 저를 데리고 전망대 대기열까지 안내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당혹스러운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숙소 객실 카드키를 방 안에 둔 채 문을 잠가버려 꼼짝없이 호텔 프런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서양인 직원은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점점 더 난처해졌습니다. 그때 한 동양인 직원이 다가와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동포세요?”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한국어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고, 직원은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혹시 한국 분이세요?”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일본인이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실수는 귀국하는 날 벌어졌습니다. 도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던 중 어찌 된 일인지 중간에 내려 공항과 정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목적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야 하는데 역까지는 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지만, 잃어버린 시간까지 되돌릴 순 없었습니다. 결국 역에 도착했을 때는 반드시 타야 할 시간대의 열차표가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 한 여행객이 자신의 표를 제게 양도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위기의 순간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천사, 곧 하느님의 사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와 노년에 얻을 아들 이사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토빗기에서는 천사 라파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토비아와 동행하며, 시력을 잃은 토빗을 치유하고 사라를 괴롭히던 악령을 물리쳐 줍니다. 세 천사도, 라파엘도, 평온한 시기가 아닌 어려움과 시련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이 다가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일상 속에 당신의 천사를 보내십니다. 길을 잃은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경비원일 수도 있고, 낯선 여행자를 돕는 호텔 직원일 수도 있으며, 곤경에 처한 이에게 선뜻 표 한 장을 내어주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실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때,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때, 주님께서는 당신 자녀를 구하고자 따스한 손길을 내미십니다. ‘신앙단상’을 쓰는 이 순간에도 주님의 천사가 제 손끝에 머물러 당신 말씀을 글 위에 내려주시길 기도해봅니다. cpbc2026.06.17

교황, 이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와 서울 WYD’ 논의 이 대통령, 교황과 30분간 단독면담… 교황 방북 등 거론된 듯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레오 14세 교뢍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레오 14세 교황이 15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전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깊이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내년 2027 서울 WYD를 계기로 방한해줄 것을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과 이 대통령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으로, 분단 80년이 넘은 남북 상황에 평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직접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과 이 대통령과의 면담은 30분가량 이뤄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이 대통령의 교황과의 만남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정부의 구상을 말했으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황청의 변함없는 지지와 관심을 재확인했다”며 “양 정상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과의 만남에서 남북관계 개선 방안 또한 폭넓게 논의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여러 남북관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됐던 교황 방북도 거론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교황과의 만남 이후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도 한반도 평화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통령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파롤린 추기경은 “인내뿐 아니라 희망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9일 유럽 순방길에 올라 17일까지 벨기에·EU·이탈리아·바티칸·프랑스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교황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과 만나 회담했다. 이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인 14~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고,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황과의 면담에 앞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는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봉헌됐다. 이 대통령은 미사 직후 특별연설에서 “저는 지금도 (남북 대화의)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는다”며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사에는 김혜경 여사를 비롯해 신형식(스테파노)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각국 외교관, 청와대 관계자, 로마 현지 사제·수도자·신자 3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2027 서울 WYD가 종교 행사만이 아니라 국가 행사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 대회가 평화와 연대를 향한 희망이 되고,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교황청과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함께한 자리에서 다시금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WYD가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드린다”고 피력했다. 우리 대통령이 교황청에서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미사에 함께한 것은 문재인(티모테오) 전 대통령이 2018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한 미사에 참여한 이후 7년 8개월 만이다. 앞서 12일에는 이 대통령과 함께 유럽을 방문 중인 김혜경 여사가 로마 한인신학원을 찾아 서울 WYD를 준비하는 성직자와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바티칸=김혜영 기자 justina81@cpbc.co.kr이준태 2026.06.17

“어서 오이소” 대구대교구, ‘착한 목자’ 김종강 대주교 환영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 대주교 임명 발표 현장 김종강 대주교(가운데)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악수하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총대리 장신호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의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임명은 5월 26일 오후 7시(로마시각 낮 12시)에 교황청 공식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공식 발표됐다. 대구대교구는 같은 시각 교구청 경당에서 새로운 부교구장 대주교를 맞이하는 임명 발표식을 마련하고 김 대주교를 환영했다. 임명 발표식에는 대구대교구 교구청 사제단과 대리구장, 평협 임원을 비롯해 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영민(대구대교구) 신부, 청주교구 사무처장 주영길·선교사목국장 박규선·교구장 비서 김인환 신부 등이 함께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가톨릭교회에서 주교는 교황 명에 따라 움직이며 사제는 교구장 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고, 이런 원칙을 지켜왔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이어져 왔다”면서 “이번에 명에 따라 오신 김종강 대주교님께선 정말 훌륭하신 분이고 4년 이상 교구장 경험을 하셨기에 우리 교구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신호 보좌 주교는 “우리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응원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축하인사를 전했고, 교구 평신도위원회 김성교(루카) 총회장은 “신자들을 대표해 대구대교구에 오심을 환영하며, 교구 일을 잘 해나가실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함께 대주교님을 위해 기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종강 대주교는 인사말에서 “그저 저의 바람이라면 빨리 이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며 부담스러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그나마 이 자리에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신부님들과 선배님들이 계셔서 조금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 뜻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은 항상 저를 앞서 가기에, 그 부르심에 따라가고자 이 자리에 왔다”면서 환영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어진 축하식에선 샴페인과 간단한 다과가 차려졌다. 참석자들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고 환영과 축하 인사를 건넸다. 건배사를 맡은 김준우(5대리구 교구장대리) 신부는 “사제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위로받는 성경 말씀이 요한 복음 13장 1절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라면서 “대주교님께서도 우리 대구대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을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항상 품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명 발표식 후 열린 축하식에서 대구대교구 평협 임원과 사제들이 박수를 치며 김종강 대주교를 환영하고 있다. 이튿날 오전 교구청 로비에선 직원들이 마련한 김 대주교 환영 행사가 짧게 진행됐다. 로비에는 김 대주교의 사진과 함께 ‘Deo Gratias 김종강 시몬 주교님의 천주교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임명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초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장신호 보좌 주교, 교구청 사제단도 함께한 가운데, 임수빈(헬레나) 관리국 직원이 김 대주교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박지현(프란체스카, 문화홍보국) 직원회 회장은 축하 인사를 하며 “교회를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이 새로운 사목 안에서 더욱 빛나시기를 기도드린다”고 전했다. 김 대주교는 “이곳에서 하루 지내면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는데, ‘사랑은 변하는 건가’라는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면서 “제가 이곳에 와서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머무르며 여러분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편집팀 조은일2026.06.01

신앙이 어우러진 색채의 향연, 샤갈의 세계 속으로신앙인 눈으로 본 ‘마르크 샤갈전’ ‘마르크 샤갈 특별전’ 전경 탈출기 등 성경 연작 눈길 사로잡아 스테인드글라스 미디어아트로 구현 원화 7점 첫 공개… 170여 점 한자리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작품 17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비욘드 타임)’. 샤갈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원화 7점을 포함해 회화·드로잉·석판화·유화·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비텝스크(지금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러시아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리·베를린·뉴욕·예루살렘 등을 오가면서 국경과 언어·시대를 초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장윤진 과장은 “샤갈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에 가족·유다인·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98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굴곡진 세상사를 겪었지만 시대사조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유년기 추억이 어린 러시아정교회 성당의 독특한 돔들이 어우러진 비텝스크와 유다인 공동체 마을, 생의 후반기를 중심으로 50년가량을 머문 프랑스의 파리와 니스 등 지중해의 다채로운 모습, 강렬한 존재감으로 일상의 덧없음과 삶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꽃다발 작품 등이 걸려 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열렸던 샤갈전과 비교해 작가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신앙인들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는 건 샤갈이 작업한 ‘성경’ 연작이다. 1923년 파리에서 샤갈은 저명한 미술상이자 출판인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로부터 고골의 「죽은 혼」과 라퐁텐의 「우화」, 「성경」 같은 작품의 삽화를 의뢰받아 뛰어난 판화 기법을 선보였다. 샤갈은 특히 성경의 땅을 직접 보고자 1931년 팔레스타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빛과 땅, 그리고 물질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 ‘홍해를 건넌 사람들’ 등으로 이어지는 성경 연작은 1931년부터 1939년 볼라르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고, 전쟁과 망명의 시기를 지나 1952년 다시 시작해 1956년 완성했다. 샤갈은 “어릴 적부터 성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성경은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처럼 느껴진다”며 “성경은 ‘자연의 울림’과 같고, 나는 그 비밀을 그림 속에 담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탈출기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다. 진열된 석판화 연작은 1966년 출판인 레옹 아미엘에 의해 출간됐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구약성경의 탈출기는 억압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혁명과 전쟁으로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샤갈은 한 시대의 종교적인 사건뿐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표현했다. 파리 위의 신부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 1948. 탈출기 이야기. 샤갈이 작업한 예루살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특히 1948년경 제작된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다인들이 겪은 고통과 추방의 현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난민들의 집단 이주 등을 생각하게 한다. 노란빛으로 떠오른 십자가 위의 인물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유다인의 고통을 상징하고 그림 전체적으로는 절망과 상실·어둠이 느껴지지만, 화폭 왼쪽 위에서 스며드는 희미한 백색의 빛은 꺼지지 않는 희망을 내포한다. 장윤진 큐레이터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샤갈은 망명과 전쟁 등을 거치며 종교에 많이 의지했던 작가이며, 성경 연작은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적 여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샤갈은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이나 믿음·사랑·희생처럼 우리 삶 속의 이야기를 같이 녹여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샤갈은 1958년 프랑스 랭스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후 1959~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에 설치한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했다. 각 창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주제로 삼고 있으며,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두고 색과 상징·시적 은유를 결합해 섬세하게 배치했다. 빛에 따라 색감과 깊이를 달리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샤갈의 걸작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서는 하다사 의료센터 스테인드글라스의 밑그림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로 실물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현해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파리 오페라하우스(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도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연출했다. ‘꿈의 꽃다발’로 불리는 이 천장화는 샤갈이 1964년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요청으로 제작했다. 220㎡에 달하는 오페라하우스 천장에 샤갈은 글루크·베토벤·베르디·비제·아당·차이콥스키·스트라빈스키·라벨·드뷔시·라모·베를리오즈·바그너·모차르트·무소륵스키 등 자신이 사랑한 음악가 14명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 비욘드 타임’ 전은 9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