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숙 평화칼럼] 미션과 편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27/RAj1748327700638.jpg)
[송향숙 평화칼럼] 미션과 편견송향숙 그레고리아(생활성서사 교재연구팀 팀장) 생활성서사는 지난해만도 브뤼기에르 주교 관련 책을 세 권 펴냈다.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아무리 ‘하느님의 종’이고 서울대교구에서 시복을 추진 중이라고는 하나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분 관련 책을 몇 개월 사이에 세 권이나 펴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이하 「~살기」) 원고 작성이라는 미션이 내게 왔을 때 “이 미션은 패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분의 전기나 평전을 내는 건 알림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보다 더 내면화하는 「~살기」는 책 성격상 지나쳐 보였다. 「~살기」는 그분의 삶을 반년 동안 매주 읽고 명상하고, 그분 삶을 성경과 연결해 묵상하며, 그 묵상에 비추어 오늘날 자기 상황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기도와 실천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따지는 편인 내게 그 일은 아무래도 낭비 같았다. 미션에 착수하기 전, 이런 생각으로 거부할 핑계가 계속 나의 뇌리를 맴돌았다. 5년여 전 펴냈던 같은 성격의 「성 김대건 신부 바로 살기」와는 관심도에서 비교가 안 됐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은 늘 우리 모두가 알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브뤼기에르 주교의 경우에는 ‘뭐, 그렇게까지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브뤼기에르 소 주교님이 좀처럼 내 관심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와 생각하니, 내가 그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조선대목구 초대 감목, 조선 입국 실패.’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땅에 발도 딛지 않았던 분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직접 쓰신 서간과 일기, 한수산 선생님의 「내가 떠난 새벽길」 등을 읽으면서 목자 없는 양의 처지였던 당시 조선 교우들을 그분이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했는지,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견디시며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오시다가 결국 조선 입국을 눈앞에 두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안타까운 사연 등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분이 견디신 어려움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박해 시대였던 당시의 조선 입국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고, 이미 맡은 전교 지역만도 버거우니 조선 선교는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회원들의 반대와 무관심, 심지어 조선 교우들로부터도 소 주교님의 입국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받게 된 외사랑의 아픔까지, 그분의 애끓는 여정은 결코 여느 순교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분 삶이 나의 선입견과 얼마나 다른가. 문득 소설과 영화의 동명 제목인 「오만과 편견」이 내 마음을 스쳤다. 주인공 다아시는 첫 만남에서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였고,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오해와 갈등을 겪으며 차츰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그 유명한 경구가 태어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겸허하셨으나 나는 그분에 대한 편견으로 애써 그분을 외면했다. 만일 「~살기」 작성이라는 미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그 편견에 갇혀 있을 것 같다. 힘겨웠지만 그 미션으로 인해 나는 마침내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전구를 청하게 되었다. 모든 이가 편견 없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cpbc2025.07.02

온 마을이 별천지… 불교 국가 태국의 ‘성탄 퍼레이드’[해외 르포] 태국의 특별한 성탄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에서 카퍼레이드 중 가톨릭 미션스쿨의 브라스 밴드가 행진하고 있다. 브라스밴드와 화려한 카 퍼레이드 불교 신자도 행사 기획에 참가 종교 상관없이 지구촌 축제로 성장 태국관광청, 올해의 3대 축제 선정 가톨릭 행사 넘어 지역 구심점 역할 태국 동북부 싸컨나콘(Sakon Nakhon)은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가량, 그중에서도 더 깊숙한 타래(Tha Rae)는 공항에서 차로 1시간을 내달려야 닿는다. 태국 동북부의 낯선 땅인 이곳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1884년 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낯선 땅이었다. 박해를 피해 뗏목을 타고 넘어온 태국 가톨릭 선조들은 타래에 교우촌을 형성했다. 작은 공동체는 140년이 지난 현재 태국 최대의 가톨릭 공동체를 일구어냈다. 이곳에서 주님 성탄 대축일마다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대나무와 종이로 별을 만들어 불을 밝히며 마치 동방 박사가 별을 따라간 것처럼 자신들의 이주 역사의 정체성을 지켰던 축제다. 이제는 태국만이 아니라 지구촌에서도 이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타래와 싸컨나콘을 찾을 만큼 유명해졌다. 태국정부관광청이 선정한 ‘올해의 타이 시그니처’ 3대 축제에도 이름을 올렸다. 방콕에서 왔다는 찰리씨는 “불교 신자이지만 성탄 때마다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모하메드씨는 “스웨덴보다 성탄 분위기가 물씬 난다”며 “놀랍고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지는 태국정부관광청과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과 싸컨나콘 시내에서 벌어지는 빛의 축제,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를 동행 취재했다. 박해를 피해 이주한 베트남계 신자 타래 마을에 들어서면 거대한 방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 모양의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모습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독특한 성당의 외관은 신앙 선조들의 탈출 역사와 무관치 않다. 1884년 싸컨나콘 시내에서 차별과 박해로 고통받던 베트남계 신자 150여 명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하비에르 게고(Oliver-Jean Xavier Guego) 신부는 종교 박해를 피해 태국 북동부의 최대 호수인 농한 호수를 건넜다. 나무 판자로 만든 뗏목에만 의지해서다. 이들은 호수를 건널 당시 거친 풍랑을 만났고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기도하며 보호를 청했다. 고생 끝에 무사히 타래에 도착한 신자들은 이곳에 정착해 선교를 이어나갔다. 타래-농생대교구는 정착기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주교좌 성당 기념관 안쪽에는 신자들의 정착했던 시절부터 당시 주교의 모습과 게고 신부의 동상·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태국은 불교 국가임에도 타래 지역에만 약 1만 5000명의 신자가 있을 만큼 교세가 성장했다. 과거 방콕대목구 소속이었지만 현재는 싸컨나콘·나컨파놈·칼라신·묵다한 등 4개 지역을 관할하는 대교구로 거듭나 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1950년대부터는 외국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 주교와 신부가 교구를 맡아 사목하고 있다. 타래 토박이 성 미카엘 대성당 주임 찰름 신짤라 신부는 “태국에서 단일 지역으로는 신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며 “불교 신자들도 함께 살지만 갈등 없이 아주 평화롭게 지낸다”고 말했다. 동방 박사의 별 성경에서 별은 동방 박사 세 사람을 아기 예수가 있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인도했던 상징이다. 이곳 신자들은 동방 박사를 이끌어 준 별처럼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신앙 고백을 한다. 타래에 처음 발을 들여놨던 신자들의 여정은 별 하나만 보고 낯선 길을 나선 동방 박사의 여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별은 타래 신자들의 역사적 정체성이기도 하다. 싸컨나콘과 성 미카엘 대성당을 찬란히 밝히는 별 퍼레이드는 소박하게 시작됐다. 신짤라 신부는 “별 예식은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작은 별을 손에 들고 성당 주변을 돌며 기도를 바친 것에서 시작됐다”면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적극 참여하며 성당 주변을 행진하는 예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의 축제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별 퍼레이드는 신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타래 파티마 학교 담당 존 차차이 신부는 “이곳을 찾는 이들 중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다”며 “그들에게 별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생의 길잡이’이자 ‘행운’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별을 들고 함께 기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이 핑크빛 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에서 열린 카퍼레이드 중 부스에서 어린 아이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본당 축제에서 시민들의 축제로 교구 신자 공동체의 작은 행사가 싸컨나콘 시민들의 축제로 거듭난 지는 40여 년이 됐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 교구장을 지낸 카이 샌폰-온 대주교는 1982년 성탄의 기쁨을 모든 시민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별 퍼레이드를 싸컨나콘 시내 중심가까지 확장했다. 이때부터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별을 가지고 거리를 행진하는 게 싸컨나콘만의 지역 축제가 됐다. 2025년 12월 23~24일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 25일 싸컨나콘 시내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동원된 차량은 각각 50여 대. 모든 차량이 행진을 마치기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카 퍼레이드의 출발점에 서서 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면 끝 지점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근 가톨릭 학교 브라스 밴드 단원들의 행렬을 기점으로 시작된 카 퍼레이드는 본당 복사단, 나자렛회 등이 네온사인 별을 휘감은 트럭을 타고 타래와 싸컨나콘 시내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과 주님 성탄의 기쁨을 함께했다. 인근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케이트 겁키엔 양은 “이 축제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래와 싸컨나콘에서는 곳곳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이들이 퍼레이드 차량에 올랐으며, 길가의 아이들은 차에서 뿌려지는 사탕을 얻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 면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관광객과 현지인 가릴 것 없이 휴대전화로 퍼레이드 분위기를 담기에 바빴다. 대성당 일대와 싸컨나콘 시내에서는 야시장도 열려 다양한 먹거리와 장식품으로 사람들 입과 눈을 즐겁게 하며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행사를 기획하는 이들 중엔 불교 신자도 있을 만큼, 별 퍼레이드는 가톨릭 교회 행사를 넘어 타래와 싸컨나콘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싸컨나콘에서 사는 노르웨이 출신 아르넨씨는 “수년 간 이곳에서 축제에 참여했는데, 이 축제가 마을 공동체를 묶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사제들은 한국 청년들과 함께 이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국 신자들의 깊은 신심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곳 타래의 별 축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특별한 경험입니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와서 빛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차차이 신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태국 청년들도 많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신자들도 타래에 오셔서 기쁨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신짤라 신부)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이준태 2025.12.30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27/saQ1748328027802.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윤웅렬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 벤베누토 티시 작 ‘그리스도의 승천’, 1510~1520년. 저마다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았던가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 아주 유명한 무협 만화를 재밌게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고전 소설 「서유기」의 내용에서 따온 ‘근두운’이라는 구름이 나왔는데,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만이 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만화를 보면서 괜스레 저 스스로를 가늠해 보곤 하였습니다. ‘나도 근두운을 탈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승천. 말 그대로 ‘하늘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승천이라는 말에는 우리 신앙인의 ‘갈급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날아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 곁으로 빨리 간다는 것. 구약성경에 승천하여 하느님 곁으로 간 인물이 두 사람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4) 고작 한 구절에 불과한 에녹의 이야기와 달리, 엘리야에 대해서는 열왕기에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1열왕 17,1-2 ; 열왕 2,18 참조) 한평생을 주님 말씀의 선포를 위한 예언자로 살았던 사람.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사는 이를, 매우 드물게, 직접 빨리 데려가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일에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언제나 성령 안에서 사셨던 분. 그럼에도 가장 사람답게 사셨던 분. 보통의 경우라면 매우 드물었어야만 할 일이, 이 하느님의 아드님에게는 마땅히 일어나야만 할 일이라고, 제자들은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승천의 사건은 하느님과 인간을 급격히 만나게 합니다. 그렇기에 신심 깊은 신앙인일수록,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얼른 날아가 주님 곁에 머물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승천이, 염원이 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제자들도 그 뜻을 깨닫고, 하늘을 바라보듯 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루카 24,52) 돌아가는 제자들의 발걸음이 구름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복음을 싣고 기쁨 속에 파견되는 이들은 이제 땅 위를 하늘처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들을 통해 하늘과 땅이 급격히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윤웅렬 하상 바오로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cpbc2025.05.27

오리게네스의 편지 :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에 대해서[월간 꿈 CUM] 영성의 길 (01) 출처: 월간 꿈CUM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에게! 저는 오리게네스( , 185년 경~253년 경)라고 합니다.1)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10살 경에 로마의 박해로 저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순교하였고, 저희 집안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여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알렉산드리아에 학교를 설립하여 남은 식구들을 봉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데메트리우스 주교님이 세례지원자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셔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그리스도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뿐만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동안 또한 제 삶에서, 하느님은 저에게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과 하느님과 영적인 합일에 도달하는 ‘영적여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깨닫도록 이끄셨습니다. 우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한 이집트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또한, 이집트 땅을 뒤로 한 지점에 도착했더라도 홍해를 건너야만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탈출 15장 참조)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때부터 우리는 「아가」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영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유혹받고 이를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광야를 지나 영적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우물에 도착해야 합니다.(민수 21,17-20) 그런 연후 거룩한 땅의 문턱에 이르러서(요르단 강둑) 우리들은 모세가 불렀던 것처럼, ‘하늘아 귀를 기울여라. 내가 말하리라. 땅아 들어라. 내가 입을 열리라’ (신명 32장 참조)라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후 우리들은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싸우며 거룩한 땅(하느님 나라)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또 열왕기로 올라가면서 ‘다윗의 노래’에 다다라야 합니다. 즉 다윗이 원수들과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달아났을 때 ‘야훼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구원하시는 이’ 하고 불렀던 노래입니다.(2사무 22,2-51 참조) 다음으로 우리들은 이사야에 다다라야 합니다. 그곳에서 이사야와 더불어 ‘임의 포도밭을 노래한 사랑의 노래를 내가 임에게 불러드리리라’ 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사 5장 참조) 이 모든 노래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더한층 높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곳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의 신랑과 더불어 아름다운 영혼으로 노래 중의 노래인 「아가」를 부를 수 있어야 됩니다.(오리게네스, 아가강론 1. 참조) 이 이야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느님께로 향한 영적인 삶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감’과 같은 것입니다. 탈출한다는 것은 ‘회개함’을, 홍해를 건너감은 ‘세례를 받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영적인 삶은 진실로 회개하는 영혼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태어나게(세례) 하면서 시작됩니다. 움터로 보내집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사막으로 보내시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과 세상의 다양한 유혹에 대항하는 영적인 투쟁을 하게 하시며, 결국에는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생명의 우물에서 영적인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친 이들은 드디어 하느님 나라 앞에 서게 되는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헌신했던 다윗과 같이하느님을 사랑했던 이사야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가오는데, 이 모든 것은 위와 같은 영적인 삶에 필요한 동반자들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은 기쁨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벗어난 이들이 기쁨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듯이, 어려운 사막을 지나거나, 요르단 강둑에 서서나,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가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나오는 「아가」의 노래와 같이, 영성 생활은 최종적으로 늘 우리를 하느님과의 친밀한 사랑을 나누게 하는 것이므로, 찬미와 기쁨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여러분의 시대에서는 저를 그리스도교 신비신학의 첫걸음을 시작한 교부로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교 신비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신비신학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여 기쁘고 행복하게 살면서, 이 사랑의 기쁨 때문에 우리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모두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빕니다. 아멘. 글 _ 이수완 교수 (로마노, 수원가톨릭대학교 하상신학원 영성신학)2025.08.26

남편과 아들 잃은 박완서의 절규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1)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린 시절의 아들 호원태와 함께 보문동 집에서. 아들 원태는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아 생전에 연극 ‘세일럼의 마녀’에서 주연을 맡았고, ‘코뿔소’를 연출하기도 했다.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묘비명 ‘평생 인간과 의학과 연극을 사랑하다 간 젊고 아름다운 영혼 여기 잠들다’를 손수 썼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느닷없이 찾아온 참척의 고통 소설가로 성공 가도 달리던 1988년 폐암으로 남편 떠나고 스물여섯 살 아들 갑작스러운 죽음 죽고 싶다던 절규 끝에 움켜쥔 생 하느님 원망하며 종교 버릴 결심 기차역 계단서 죽음의 공포 느끼고 간사하고 위선적인 자신과 조우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 밤낮으로 기도를 해도 하늘에 가 닿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무력감을 넘어선 절망에 빠지고 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기도에 절실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반성에 이어 종국에는 원망의 화살을 내가 아닌 하늘로 돌려버린다. ‘내가 아는 주님은 힘없고 아픈 이들 가운데 계시는 분이다. 약한 자의 편에 계시는 주님이라면 이렇게 불쌍한 나의 기도를 모른 척 지나치실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주님은 계시지 않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온 나라가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의 환희에 휩싸여있던 1988년, 박완서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맞닥뜨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연달아 잃었기 때문이다. 등단 이후 작품마다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인기 작가로 손꼽히고 있었으니 소설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화목한 가정에 4녀 1남의 자녀들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었고 외려 복이 너무 많아 불안할 정도의 삶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시련은 평탄한 일상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창문 너머 바깥세상은 올림픽 성화의 불길이 타오르는데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은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의 든든한 울타리 같았던 남편을 보내며 나도 함께 데려가라 통곡했다. 그로부터 고작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나를 데려가라니 왜 그 아이를 데려갔소? 아직 날개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우리 아들. 당신도 가고 그 아이마저 데려가다니, 나는 어찌 살란 말이오!” 아들은 이제 고작 스물여섯. 앞날 창창한 젊은 아들을 남편 곁에 묻고는 햇볕이나 잘 드는지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를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그런 어머니를 ‘자식 잡아먹은 사람’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게 했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조차 고깝게 들려 곧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이 메달을 딸 때마다 들리는 이웃들의 환호성이 죄 많은 어미를 야유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얼마 후 맞이한 생일을 박완서는 생애 가장 욕된 생일날이었노라 고백한다. 자기의 탄생마저 저주한 구약 성경 ‘욥기’의 욥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1985년 남편 호영진(하상 바오로)씨의 회갑 잔치에서.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욥기 3,3) 자식이 사랑스럽기야 누구인들 다르겠냐마는 5남매의 막내이자 하나뿐인 아들 ‘원태’는 어머니 박완서에게 보물이요 자랑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해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던 아들은 활달할 뿐 아니라 사려 깊은 젊은이였다. ‘원태’가 ‘마취과’를 선택했을 때 어머니 박완서는 못내 아쉬웠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과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 어미로서의 허영심에 영 흡족하지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한말씀만 하소서」 중) 부모를 잃으면 고아요,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라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사람을 이르는 말은 없다. 그만큼 인간의 언어로 그려내기 어려운 아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슬픔을 짐작게 하는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참혹할 참(慘)’과 ‘슬플 척(慽)’을 붙여 만든 것이다. 참척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박완서는 신앙에 강한 배신감마저 느낀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데 어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기도방 안에 모셔져 있던 십자고상도, 친구가 위로의 뜻으로 건네준 묵주도 내동댕이치며 종교를 버릴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당신의 거룩한 모상(模相)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한말씀만 하소서」 중)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뜨고 있어도 꿈속 같고, 꿈을 꾸어도 잠든 것 같지 않은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산에 살고 있는 큰딸이 그를 찾아온다. 아버지에 이어 남동생마저 떠나버린 집에 어머니 홀로 남은 것이 걱정되어 얼마간이라도 부산의 집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곡기를 끊는 심정으로 몇 날 며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부산행 열차 시간에 맞춰 급히 기차역의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두 다리가 휘청였다.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두 손이 계단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르르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발아래 계단이 활처럼 휘면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죽고 싶다고 내내 절규했던 나의 속마음은 얼마나 간사하고 위선적이었던가!’ 내 자식보다 못한 남의 자식을 보며 겉으로는 위로를 건넸지만 속으로는 잘난체했던 지난날. 잘난 이를 보면 입에 발린 축하를 건네며 실상으로는 ‘기껏 저 정도 일에 기뻐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하는 생각으로 혀를 찼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는데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그때 이해인 수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음도 추스를 겸 기간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으니 원하는 대로 수녀원에서 지내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완서는 광안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성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향한다. 작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1931~2011) 1931년 현재 개성 인근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하여 일곱 살에 서울로 이주.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하였다. 전쟁 중에 미8군 PX에서 일하며 화가 박수근을 만나게 되고 훗날 박수근을 소재로 한 소설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단하였다. 1970년 박완서 나이 40세 때의 일이다. 1984년 ‘정혜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따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때의 절망과 고통을 일기 형식으로 엮어낸 묵상집이 「한 말씀만 하소서」다. 등단 이후 40여 년간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660여 편의 에세이를 비롯해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집을 남겼다. 여러 작품에서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으며 솔직하고 깊이 있는 묵상집은 종교를 넘어 비종교인에게도 감동을 전했다. 전쟁과 삶, 억압받는 여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때로는 날카롭게 꼬집고 때로는 따스한 문체로 그려내어 사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생전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호암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1.1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빛의 성경’[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9-끝) 생트샤펠, 그리고 스콜라 철학 생트샤펠 내부. 출처=Wikimedia Commons 완벽한 레요낭 양식의 프랑스 왕실 경당 파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Chapelle)은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프랑스 왕들이 거주하던 팔레 드 라 시테(Palais de la Cit) 안에 있는 완벽한 레요낭(Rayonnant) 양식의 왕실 경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 더구나 그것을 모두 남기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이 경당은 후에 성인 된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한 마지막 라틴 황제 볼드윈 2세(Baldwin II)에게 2년간의 협상 끝에 1239년에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1241년에는 참 십자가 조각을 포함해 모두 22개의 다른 유해를 얻었다. 그 비용은 13만 5000 리브르였는데, 왕국 연간 수입의 절반이 넘었다. 그는 이 유해가 파리 외곽에 도착했을 때 그 유해와 함께 맨발로 길을 걸어 왕궁으로 모셔갔다. 생트샤펠은 이 유해를 모시고자 1239년에 계획되어 1243년부터 짓기 시작해 1248년에 헌당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전체를 포함한 경당을 짓는 데는 4만 리브르가 들었다. 그러나 이 유해를 보관하는 유해함에는 10만 리브르를 썼다. 경당은 위아래 두 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궁궐의 신하, 시종, 군인들이 사용했고, 거룩한 유해가 보관된 위층은 왕실과 측근만을 위한 것으로 왕의 거실과 직접 이어졌다. 동로마 황제가 궁전에서 하기아 소피아로 가듯이, 루이 9세도 궁전에서 생트샤펠로 직접 나갈 수 있었다. 참 십자가와 가시관 등 그리스도 수난의 유해를 담은 유해함은 대혁명에 녹았다. 따라서 지금은 경당에 성유물을 보관하고 있지는 않으며, 가시관은 1806년부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 경당의 건축가로 추정되는 피에르 드 몽트뢰유(Pierre de Montreuil)는 석조물을 최소화하고 1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거대한 개구부를 만들었다. 철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돌을 보강하고 가벼운 볼트 천장을 설계했다. 벽과 창문은 풍압에 견디도록 두 개의 철제 사슬 벨트로 밖에 고정했다. 그 결과 그 하중을 외부 버팀벽에 전달해 크고 거대한 베이 4개로 덮인 단랑식 경당을 지을 수 있었다. 이로써 벽은 사라지고 찬연히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의 벽이 내부 전체를 감쌌다. 2층의 경당은 길이 36m, 폭 17m, 높이 42.5m로 프랑스의 새 고딕 대성당과 크기가 비슷하다. 서쪽 끝의 장미창을 제외하고 동쪽 끝은 7개의 창을 포함하여 낮은 징두리 벽 위는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있다. 그 면적은 670㎡나 된다. 무거운 아케이드도, 어두운 트리포리움도, 고창층도 없다. 빛의 벽을 지지하는 모든 수직 구조는 7개의 가느다란 원기둥 다발로 만들어 기둥의 두께는 가늘게 ‘보이도록’ 했다. 또한 회중석의 창(15m)이 반원 제단의 창(13m)보다 약간 높아 경당은 실제보다는 더 길게 보인다.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 출처=Peter Nijenhuis 스테인드글라스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 생트샤펠 안은 천상의 예루살렘 건축 재료인 귀금속과 보석에 빗대어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색채로 물들어 있어 우리가 이미 그곳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는 1113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둥근 제단을 향해 오른쪽 측면에서 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수난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중 14개는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 수난과 대면하는 서쪽 장미창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려져 있는데, 15세기 말 플랑부아양(Flamboyant) 양식으로 바꾸었다. 그야말로 찬연하다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 저 공간은 한 권의 책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빛의 성경’이요,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이다. 생트샤펠의 공간과 형태는 한마디로 ‘입자적(粒子的)’이다. 천장, 낮은 벽, 천장,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모두가 심지어는 점으로 분해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많은 입자는 스테인드글라스다. 그래서 그 안을 계속 움직이면 마치 보석을 돌리듯이 고딕 공간은 다양한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무한히 변화한다. 고딕 대성당 정면은 랑스처럼 탑을 포함해 네 개의 층으로 나뉜다. 제일 아래층은 세 개의 포탈로 나뉜다. 중앙 포탈이 우월하지만, 세 포탈은 체계가 같다. 포탈 위의 아키볼트(archivolt)는 띠 모양으로 분할되면서 문을 향해 수렴한다. 아키볼트는 다시 작은 조각물로 나뉘지만, 그 띠도 작은 조각으로 동등하게 분할된다. 문의 옆 벽도 원기둥으로 나뉘고, 원기둥은 다시 문설주 상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할 방식은 내부 평면에서도 중랑 벽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고전건축에서 부분은 전체의 통제를 받지만, 고딕은 돌로 만든 요소를 체계 안에서 계속 나뉘며 분절된다. 그러나 체계 안에서는 동등하다. 기둥은 가는 기둥 여러 개가 묶여 있는 듯이 보이며, 위로는 제각기 볼트의 리브로 이어진다. 이리하여 고딕 대성당의 공간과 벽체는 계속 분할되고 물질은 작은 입자로 분해된다. 중량감은 사라져 비물질적이고 가벼운 공간이 되어 나타난다. 왜 그랬을까? 하느님은 결코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 공간 안에 한정될 수 없는 분이시고, 여러모로 나타나시되 사람에게 제각기 동등하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생트샤펠 천장. 출처=Javi Masa 하늘과 땅을 조화시킨 돌로 지어진 신학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 sky)는 역저 「고딕 건축과 스콜라 철학」(1957)에서 당대의 스콜라 철학과 고딕 대성당과 동시에 평행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고딕 대성당이 스콜라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되고 지었다고 건너짚어서는 안 된다. 스콜라 철학과 고딕 건축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평행하다. 스콜라 철학의 기술 형식과 대성당의 건축 방식은 같다. 스콜라 철학의 모든 기술(記述)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전개된다. 전체는 ‘책’으로, ‘책’은 숫자가 붙은 ‘장’으로 분할하고, ‘장’의 순서는 논리적 종속 체계를 따른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전체가 ‘부(部, partes)’로, ‘부’는 더 작은 ‘부’로 분할된다. 부는 ‘부분’, ‘문제’, ‘구분’으로, 이들은 각각 다시 ‘항(項, articuli)’으로 나뉘며 세부를 향해 계속 계층적으로 분해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카를로 크리벨리 그림, 15세기. 출처=Wikimedia Commons 로마네스크에는 이런 계층성이 없고 구성하는 부분도 더 이상 분할되지 않으니, 부분은 등가(等價)가 아니다. 그러나 고딕 대성당에서는 전체가 회중석, 횡랑, 슈베(제단부)라는 세 부분으로, 각 부분은 ‘랑(廊)’으로 분해된다. 슈베도 또 같은 방식으로 제단과 주보랑으로 분할된다. 지주는 피어로 분할되고, 피어는 다시 작은 기둥(샤프트)으로 분할되며, 작은 기둥은 다시 가는 작은 기둥으로 다시 분할된다. 이와 같은 계층성은 고딕 대성당 전체를 덮고 있다. 이러한 분할의 극한이 바로 생트샤펠이다. 「신학대전」이 신학과 인간 철학을 조화시켰듯이, 고딕 대성당은 새 예루살렘을 그리며 하늘과 땅을 조화시켰다. 바로 그래서 「신학대전」은 신학의 고딕 대성당이며, 고딕 대성당은 돌로 지어진 신학이라 말하는 것이다. 고딕 대성당은 그런 존재였다. ※ 지난 1년 동안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를 연재해주신 김광현 안드레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pbc2023.12.15

주님이 주신 의로움으로 ‘거짓’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저는 믿나이다] (6)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은 의로움 이탈리아 로마 산탄젤로 요새에 굳건히 서 있는 성 바오로 사도 성상. OSV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처럼 사도들이 이끌던 초대 교회 때부터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차 깊어 갔습니다. 특히 거짓 설교자들과 교리교사들, 영지주의자들, 지나친 금욕주의자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완전히 갈라 세우듯 자기주장만 해댔습니다. 만일 인간 예수가 복음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그분, 사도들과 교회가 복음서에 기반을 두고 선포하는 그 예수와 다르다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 곧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믿음은 바로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성경적 믿음을 위해 다른 것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징적 암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근거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실제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1」 13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 후 부활하신 역사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20여 년 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놀라운 그리스도 찬가를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그리스도교 탄생 이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런 그리스도론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느님의 신비’에서만, 곧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이해 가능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교 믿음은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공적 계시는 ‘성경’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성경 특히 신약 성경을 읽어나가면 그 안의 모든 말씀과 글에서 주님의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려는 자들과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려 분열시키려 한 자들에 대해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0-12)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세상의 유일한 참된 주님이신 분과 일치와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무기’를 선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무장을 갖추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모든 지체와 함께 일치와 친교를 나누면서 악의 권세들에 대항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의 권세를 물리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 열두 제자들에게 악마를 추방하라는 임무와 치유의 사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태 10,1 참조) 이는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악마를 몰아내고 인간을 치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가르침에 대항해 ‘의롭게’ 살았습니다. 이 의로움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생겨납니다. 의로움은 구원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4-26)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율법의 유다인보다 복음의 그리스도인으로 더 의롭게 됐고, 철학의 그리스인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됐음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은총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저주신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은총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애와 공정, 의로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의로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화의 길로 나아갑니다.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지금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토마스 할리크, 「그리스도교의 오후」 196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12.10

주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따르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2)집회서 집회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에 충실하면 축복이 따를 것이라고 가르치는 삶의 지침서이다. 귀도 레니, ‘십계명을 든 모세’, 유화, 1624, 보르게제미술관, 로마. 집회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입니다.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에 포함된 제2경전이지요.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집회서를 ‘Σοφια Σιραχ’(소피아 시락스)라고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시라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이 책을 ‘Ecclesiasticus’(에클레시아스티쿠스)라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교회(집회, 모임)의 책’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은 라틴어 대중 성경의 표기에 따라 ‘집회서’라 표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신앙 윤리의 여러 지침을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이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가르치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어서 ‘교회의 책’, 곧 ‘집회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한편, 유다 문학에서는 이 책을 ‘벤 시라의 잠언’ ‘벤 시라의 책’이라 불렀습니다. 벤 시라는 ‘시라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헬라어 수사본들은 이 책을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 또는 ‘시라의 지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집회서 저자는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 예수’(50,27)입니다. 집회서는 구약 성경 정경 가운데 저자 자신이 이름을 밝힌 유일한 책입니다. 시라의 아들 예수는 기원전 200년께 예루살렘에서 살던 율법학자로 학교를 열어 자신의 오랜 명상의 결실과 삶의 체험을 도성의 귀족 청년들에게 전해주고자 고심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지혜의 열렬한 탐구자(51,13-30)로 잦은 해외여행(34,9-12)을 통해 귀중한 교훈들을 깨닫습니다. 그는 여행 중 수차례 고비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주님께서 구해 주십니다.(34,13; 51,1-12) 저자 예수 벤 시라는 현명한 아내(36,26-31)와 엄격하게 교육을 받은 자녀들(30,7-13; 42,5)과 함께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고위 관직에 올라(33,4) 대사제의 감독 아래 공무를 수행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그는 성전과 사제직, 경신례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나 사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50,5-21) 집회서는 본디 히브리어로 작성됐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수사본들은 두 시대의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하나는 벤 시라의 손자가 이집트에서 헬라어로 번역할 때 대본으로 삼았던 것(성경학자들은 이를 G-Ⅰ이라 표기함)이고, 다른 하나는 서기 50년에서 150년 사이에 바리사이 사상을 바탕으로 개정된 수사본으로서 130년에서 215년 사이에 헬라어 번역본을 수정할 때 사용된 수사본(G-Ⅱ)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 집회서는 G-Ⅱ의 내용을 G-Ⅰ내용과 구별하기 위해 ‘기울어진 글씨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예수 벤 시라가 기원전 180년께 집회서를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가 에우에르게테스 임금(프톨레마이오스 7세, 기원전 170~기원전 116년) 통치 38년 곧 기원전 132년 이후 집회서 히브리어 본문을 헬라어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밝힙니다.(머리글 참조) 이 글을 근거로 성경학자들은 헬라어 번역 작업 시작 때부터 약 50년 앞서서 예수 벤 시라가 집회서를 저술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입니다. 집회서는 크게 전반부(1,1─23,28)와 후반부(24,1─50,29)로 구분합니다. 이를 세분해 머리글, 지혜와 금언들(1─16,23), 하느님과 창조, 금언들(16,24─23,28), 지혜와 율법, 금언들(24,1─32,13), 하느님 경외와 처세(32,14─42,14), 하느님의 영광(42,15─50,29), 부록(51,1-30)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집회서는 모든 사람이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여 더욱 진보하게 하려고”(머리글 10) 고 쓰였습니다. 집회서는 우정, 자선, 자녀 교육, 여자, 의사와 질병, 부와 가난, 종, 연회와 예절, 이스라엘의 역사, 제사와 경신례, 하느님, 율법, 창조, 인간의 자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집회서의 중심 사상은 ‘주님께 대한 경외심’입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결국 율법에 대한 충실성으로 드러나며 넓은 의미에서 지혜 개념과 동일시됩니다. 이 경외심 안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일은 유다교 안에서 유일한 과업입니다. 집회서 저자는 유다교의 전통 신앙을 옹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분이시며(18,1; 36,4; 42,21) 완벽한 창조의 주인(42,21)이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라고 합니다.(2,11) 집회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에 충실하면 건강과 장수, 많은 후손, 안락과 명성이 보상으로 따르고, 율법을 거스르는 이는 단명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악인은 의인보다 훨씬 더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10,6-13) 이처럼 집회서는 유다교 전통에 충실한 히브리인들의 삶의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의 야고보서는 집회서와 관련된 병행구들이 나옵니다. 이는 집회서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음을 입증하며 이러한 평가는 초대 교회에서 구약 성경 정경으로 집회서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07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53) 삼위일체(Trinity)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중 하나이지만, 초대 교회 사도들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 후세의 신학자들과 교부들이 성부·성자·성령이 성경에 언급된 것을 숙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삼위일체론은 신의 본질을 다루는 영역에 속한다.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못하는 명제이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신비’로 인식되며,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범주라고 신학자들은 규정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쉽게 풀어 물·얼음·수증기는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전부 똑같은 ‘H2O’라는 물질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설명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이 세 형태가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기에 형태의 동존이 자유로운 삼위일체론과는 거리가 있다. 양자역학에서 입자 파동의 이중성이나 블랙홀의 특이점을 들어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당연히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많은 이가 음악에서 수리적인 구조와 논리성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는 음정의 어울림을 계산해 음계를 만들었고, 독일의 음악분석가 하인리히 쉥커(Heinrich Schenker)는 음악의 구조를 언어의 구조에 적용하고 도형화해 시각화했다. 하지만 임마누엘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을 예술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우리가 꽃을 볼 때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지, 식물학적인 지식이 미감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술의 ‘논리적’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감각적인 이해는 후대에 ‘미학’이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곡가의 입장에서 음악을 만들 때에는 큰 구조를 생각하고, 멋진 주제를 선택하며, 이 주제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보통 10분짜리 피아노곡일 경우 빠른 템포라면 2000~3000개의 음표가 필요한데, 이 모든 음이 제자리에 놓여있도록 고심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딱히 논리적으로 근거가 없지만 특정 자리에 결이 다른 음표를 넣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릴 때가 많다. 이 어색한 음이 잘 전개되면 음악의 매력이 되고 개성으로 변하지만, 잘못 운용하면 그대로 ‘실패작’이 된다. 음악의 논리성은 말과 비슷하기 때문에 반복할수록 명확해지지만 지루해지며, 같은 내용을 매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좋은 작곡가는 절묘한 균형을 본능적으로 찾아내곤 한다. 작곡할 때 쓰이는 재료는 크게 가락·리듬·화성이지만, 내부의 변형과 조합에는 셀 수 없을 만큼 각기 다른 방향성이 존재한다. 이 모든 요소가 음악이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음악이라고 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나름 신비로운 현상이다. 삼위일체의 위대한 신비를 고작 음악으로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지만, 주님이 인간에게 준 멋진 선물이기도 한 ‘음악’으로 주님의 신비를 엿보는 것이 그다지 무례한 일은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https://youtu.be/yLV8VH98pL0?si=stSkYKGCCZ7DmyO4 류재준cpbc2025.06.11

전례 기도문을 알면 일곱 성사의 의미가 보인다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 /주세페 페라로 신부 / 윤종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 /주세페 페라로 신부 / 윤종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각 성사의 예식 구조 간략하게 설명 중요한 전례 본문 살펴보고 교리 도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교리는 교도권의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해 성사들을 세 분야로 구분하는 항목에서 암시되고 소개되는데,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인 세례·견진·성체성사와 치유의 성사들인 고해·병자성사와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들인 성품·혼인성사가 그것이다.”(14쪽)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에서 “전 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라고 선언한다. 전례 거행은 구조와 전개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가르침이다. 그 전례의 중심은 성사로 구성되어 있다. 성사는 모든 그리스도인 존재의 정점이자 원천으로 복음화와 성화의 순간들에서 교회에 의해 실행되는 모든 구원 활동의 기초와 영감을 제공한다. 일곱 성사는 신자 개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단계에 따라 진행되며, 신자들은 성사들의 전례적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지식과 해석과 이해를 넓힌다. 「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는 일곱 성사의 전례 기도문에서 드러나는 성경과 교회 가르침인 교리를 밝혀내고,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성사별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성사의 예식 구조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중요한 전례 본문을 살펴본 뒤 그에 따른 교리를 도출한다. 전례가 성경을 어떻게 활용하고 해석하는지, 교도권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견진·성체·병자·성품성사 등과 관련해 현재 라틴 전례 체계에서 여러 서품 직무자의 공동집전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제시한다. “세례수 축복 기도는 세례성사와 세례받은 이의 정체성에 대한 풍부한 교리를 담고 있다. 세례는 새 창조와 새 생명, 새로운 자손의 탄생을 위한 죄의 멸망과 죄에 대한 죽음의 신비이며 예배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우주적 신비이다. (중략) 이 모든 것은 물의 표지로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통합하는 성령에 의해 실현된다.”(‘세례성사’ 중에서) “고해성사에 관한 교리와 화해의 교회적 차원을 설명하는 지침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인 이 두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또한 교회는 그 공동체에 죄인들을 포함한다. 교회가 거룩하기 때문에 교회는 죄의 성사적 용서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이며, 이 성사를 준비하고 성사를 거행하고 성사에 뒤따르는 모든 일을 위한 도구이다. 교회가 죄인을 품고 있는 한, 교회는 지속적인 회개와 참회를 통해 달성되는 정화가 필요하다.”(‘고해성사’ 중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저자 주세페 페라로(1932~2013, 예수회)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레고리안대학 등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오랫동안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31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로 이뤄지는 ‘새로운 계약’[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4)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남 왕국 유다 말기 다섯 명의 임금이 통치하던 혼란스러운 때에 40년간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강조합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미켈란젤로, ‘예레미야’,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예레미아서를 ‘이르메야후’라고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야훼께서 던지다” “야훼께서 급히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이에레미아스’(Ιερεμιαs)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예레미아스’(Jeremias)라고 음역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예레미아서’라고 표기합니다. 예레미야서는 기원전 627~587년 약 40년간 남왕국 유다를 무대로 펼친 예레미야 예언자의 활동과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므나쎄 임금(기원전 687~642) 통치 말기에 예루살렘 동북쪽 벤야민 지파 땅 아나톳에서 사제 가문의 에비야타르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40년을 앞두고 20세 청년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요시아 임금 13년(기원전 627년)에 부르심을 받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되던 치드키야 11년(기원전 587년)까지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하던 40년 동안 유다 왕국은 요시야,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다섯 임금이 바뀔 만큼 정국이 불안하고 멸망으로 치닫던 매우 혼란한 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처한 위기를 내다보며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고 주님께 의탁하지 않으면 백성이 기다리는 ‘하느님의 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와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라 불릴 만큼 고난과 고통, 고독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족과 동족, 사제, 예언자, 정치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외톨이’로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동포와 동료들의 살해 위협 속에서, 내적으로 본성에도 맞지 않는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끝없는 갈등 속에서 자기 사명을 완수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바빌론으로 가서 편하게 살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합니다. 그는 유다 지방관으로 임명된 그달야와 함께 황폐한 유다에 남습니다. 결국, 그는 친이집트 세력에 의해 그달야가 살해된 후 바룩과 함께 이집트로 끌려간 후 행방이 묘연해집니다. 예레미야서는 이사야서와 더불어 대예언서라 불립니다. 예레미야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 초기에 이미 여러 문서와 기록들로 흩어져 있었고, 신명기계 학파에 속하는 인물이 최종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레미야서는 52장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이를 도입부(1,1-3), 1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1,4─25장), 2부 예레미야 전기(26─45장), 3부 이민족에 대한 신탁(46─51장), 4부 역사, 부록(52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하느님을 두고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가 벌이는 첨예한 갈등입니다. 거짓 예언자 무리를 대표하는 하난야계 대부분은 관료와 사제, 제도권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후원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친이집트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원전 587년 8월 예루살렘 함락 후 바빌론으로 끌려가진 전에는 ‘예루살렘의 안정과 견고함을 위한다’는 내용의 신탁을, 유배 후에는 ‘왕과 추방된 지도자들이 신속히 돌아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참 예언자 예레미야를 따른 무리는 아히캄의 아들 그달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 신명기계 개혁에 적극 가담한 소수의 궁정 관리들, 키르얏 여아림 출신 우리야, 일부 사제들로 바빌론에 복종하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추구하는 친바빌론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유배 전 ‘거짓 예언자들은 스스로 조작해낸 환시와 그럴듯한 말로 유다의 부만 축내는 자들’이라고 고발합니다. 유배 후에는 ‘바빌론 유배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 것은 당신 백성을 무조건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뉘우치게 해 그들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3,14-18; 16,14-15; 24,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혼인’ 관계입니다.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시지만, 신부인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2,20-25) 따라서 악으로 기울어진 완고해진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죄를 벗기 위한 ‘마음의 할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새겨주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1,31-34)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이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풀이합니다.(히브 8,8-12; 10,16-17)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21
![[전문]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16/RBu1744803354953.jpg)
[전문]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부활 메시지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 찬미예수님,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제자들은 무덤을 향해 새벽길을 달렸습니다. 세상은 죄와 죽음의 어둠에서 동트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갔습니다. 무덤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헛소리로 여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에게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제자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1코린 15,12).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갑니다”(시편 19,5). 기쁨의 부활 소식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온 유다지방으로, 유다지방에서 유럽으로, 아시아로, 시간을 넘어, 세기를 넘어, 우리 시대 우리 귀에까지 퍼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4). 주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보시게 좋게 창조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완성하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인류는 오랜 옛적부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꿈을 꾸어 왔습니다. 아이들 동화 끝에 항상 빼놓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사람들은 오래 사는 법을 여러 가지로 찾았습니다. 자손을 낳아 대대로 족보를 이어가기를 희망했습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죽음을 건넜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장차 부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20).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그리고 장차 우리의 부활을!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장현민2025.04.14

성모 마리아의 집, 사도 성 요한의 무덤 에페소 (02)[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0) 성모 마리아의 집 출처: 월간 꿈CUM ‘사랑과 우정 사이.’ 남녀간 사랑이라는 좁은 의미의 사랑은 분명 우정과 다르다. 하지만 종교적 사랑, 인류애, 환경 사랑 등 큰 틀에서의 사랑은 그 안에 우정을 품는다. ‘전설과 역사 사이.’ 인간적 욕망을 표현한 좁은 의미의 전설은 분명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신앙적 전설은 그 안에 신앙 역사를 품는다. 전설의 시작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 ‘예수의 유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성경에는 예수가 사랑한 제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2000년 전부터 신앙인들은 그 제자가 사도 요한이라고 믿었다! 전설은 계속된다. 요한은 예수의 유언을 지킨다.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에 마리아를 잠시 모신 뒤, 3000km 떨어진 에페소로 거처를 옮긴다. 스테파노 순교 사건 등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서 마리아를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설은 에페소 야외극장에서 항구 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집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요한이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이 집에 살았던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세대에 세대를 거쳐 이어졌고, 대략 10세대 후 자손들이 그 집터 위에 마리아를 기억하는 성당을 지었다. 서기 431년 에페소 공의회 때 교부들이 이 성당에 모여 회의를 했다. 100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527~565 재위)는 마리아를 기억하기에 기존 성당이 소박하다고 생각했는지, 대규모 증축 공사를 했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가 전설인지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도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출처: 월간 꿈CUM 전설은 계속된다. 에페소의 붐비는 시장통(현 에페소 성모 대성당 자리)에서 마리아를 모시던 요한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한다. 그렇게 이사간 곳이 에페소 앞산이다. 지금도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에 마리아가 살던 집이 전설로 내려온다. 소아시아와 유럽의 신앙인들은 마리아가 이 집에서 노년까지 살다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전설을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 날 ‘마리아의 집’은 어떻게 발굴되었을까.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독일인 안나 카타리나 엠메리크 수녀(Emmerrick, 1774~1824, 아우구스티누스회)를 복자품에 올렸다. 이 수녀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후 12년 동안 침대에서 생활했는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이 수녀가 직접 본 환시 ‘예수 수난 사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다. 그런데 이 수녀가 본 환시는 예수 수난뿐이 아니었다. 수녀는 환시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모든 것을 생생히 보았다. 수녀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당대 최고의 시인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1778~1842)에게 말했고, 시인은 수녀의 증언을 바탕으로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1852년 펴냈다. 성 요한 대성당 유적 출처: 월간 꿈CUM 이 책에 마리아의 집과 주변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엠메리크 수녀는 독일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일이 없었다), 이를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1878년 앙리 융이라는 프랑스인 신부가 이 책을 들고 에페소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1891년 엠메리크 수녀가 묘사한 곳과 똑같은 장소를 찾아냈다. 이후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에페소 성모 마리아의 집’을 공식 성지로 선포했다. 이어 1967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1979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6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이 에페소 앞산에 있다면, 에페소 뒷산 쉬린제 마을에는 사도 성 요한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지어진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Of Saint John)이 있다. 신자들이 종교 자유를 얻은 직후 4세기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작은 목조 성당을 세웠는데, 200여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대성당을 건립했다. 이 대성당이 성 요한 대성당이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성 요한 대성당은 1500년 전 건물이라고는 그 규모가 믿기 힘들 정도다. 길이만 110m에 2층 구조인데, 세례당, 지하 경당 등을 갖추고 있었다. 서기 557년 지진으로 일부가 부서지고 그 뒤 654년 이슬람 침공에 의해 파괴됐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성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는 ‘추적의 문’(Pursuit Gate, 박해의 문)만 남아있다. 이후 1300년대에 찾아온 대규모 지진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성당과 성벽이 무너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 하에 들어가면서 재건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요한 대성당은 제대가 있었던 부분의 무덤과 기둥 일부, 대성당 터 일부만 남아있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오늘도 전 세계 수많은 신앙인이 에페소를 찾는다. 그들은 전설로 내려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모 마리아 대성당 유적,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대성당 유적을 찾아 무릎 꿇고 기도한다. 기도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그 현실의 행위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이렇게 전설은 역사가 됐다. 2025.09.15

“기부는 행복한 중독”… 6000명의 아이 품은 배우[삶의 자리에서] 배우 김나운 베로니카 “네 명의 배우가 촬영을 하다 말고 빵집에 모여 빵을 먹고 있다. 과연 빵값은 누가 낼까?” 정답은 “지나가던 김나운.” 배우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 농담에는 김나운(베로니카, 56) 배우의 퍼주는 인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 늘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라는 것. 촬영장에서도 빈손인 김나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과일이든 간식이든, 누군가를 챙기기 위해 늘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 믿기 어렵지만, 그의 집에 냉장고가 10대인 시절도 있었다. 좋은 연기를 보여준 후배에게는 얼굴을 본 적이 없어도 주소를 수소문해 제철 음식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배우 김나운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혹시 몰라 자신의 사진도 전송한다. “스팸인 줄 알고 차단당한 적도 있어요.(웃음) 누군지 모를까 봐 사진까지 보냈죠. 100% 스팸 문자라고 생각했다더라고요. 그렇게 친해진 배우들이 많아요.” ‘국민배우’, ‘왕이모’, ‘집밥의 고수’, ‘홈쇼핑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의 삶의 온도를 가장 기쁘게 끌어올리는 활동은 ‘나눔과 기부’다. CJ도너스캠프 아카데미의 멘토로 참여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응원하고, 청년들의 주거비·의료비·생활비·교육비 등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도움을 준 아이들은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나눔재단에서 기부 금액 2억 5000만 원을 넘긴 최장기·최고액 기부자이기도 하다. 18년 동안 소외된 아이들을 꾸준히 도와온 그를 서울 중구 동호로 제일제당센터에서 만났다. 그에게 몇 명의 아동을 돕고 있는지 묻자, 미소를 머금었다. “정원에 들꽃이 만발했어요. 그 앞에 앉아 꽃송이를 하나하나 세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꽃과 같아요. 햇볕이 잘 들었으면 좋겠고, 물도 듬뿍 주고 싶죠. 저는 항상 그런 마음이에요.” 그는 16세에 데뷔해 소녀 가장으로 세 동생을 돌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힘겨운 시절을 겪었던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남 같지 않다. CJ도너스캠프와 CJ홈쇼핑이 공동 기획한 소외아동 돕기 모금 방송 ‘사랑을 주문하세요’ 패널로 출연하면서 알게 된 아이의 텅 빈 냉장고가 마음에 걸려 반찬을 가득 만들어 찾아간 적도 있다. 그가 식품 사업에 뛰어든 것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제가 밤새 반찬을 만들어도 세 집밖에 못 채워줬다면 이제는 식품 사업을 통해 100명의 아이들 집 냉장고도 채워줄 수 있는 거죠.”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한 친구의 집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었어요. 저희 집도 넉넉지 않았고요. 그런데 저보다 더 가난한 친구와 짝이 된 거죠. 좀 지저분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그 친구와 짝을 안 하겠다고 투정을 부렸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공책 세 권과 연필 세 자루를 사들고는 어딜 같이 가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도착한 곳은 짝꿍 친구의 집이었다. 판잣집에 연탄불을 때는 허름한 방에서 친구는 어린 동생을 업은 채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린 나운이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뚝뚝 흘렀다. “너 지금 왜 눈물이 나는지 알아? 마음이 아픈 거다. 저 친구가 조금 지저분해도 그건 절대 흉이 아니야. 가난은 조금 불편한 거지, 흉이 아니란다. 그런 걸로 사람을 갈라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이 말은 마음 깊숙이 각인됐고 평생의 유산이 됐다. 짝꿍 친구는 이후 오히려 ‘수호천사’가 되어 늘 곁을 지켜주었다. 김나운씨는 CJ나눔재단뿐 아니라 두 곳의 고액 기부자 모임에서도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2억 5000만 원 이상을 기부했고, 2021년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그린노블클럽’ 회원이 됐다. 2022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상’을 받았다. 그는 나눔의 DNA를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어, 아들과 함께 저축과 기부를 생활습관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불교 신자였던 김씨는 2012년 세례를 받았다. 대모였던 고 김지영(마리아 막달레나) 선배 배우의 오랜 기도 결실이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도 그가 신앙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김지영 원로 배우는 25년 전 처음 나운씨를 서울 여의도동성당에 데려갔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 김씨가 세례를 받던 날에는 직접 대모가 돼줬고, 세상을 떠나며 생전에 끼던 묵주반지와 묵주를 그에게 남기며 깊은 정을 나누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나눔과 기부와 맞닿을 때 “배우여서 참 좋다”고 했다. “오늘처럼 인터뷰하고 나서 누군가가 제 이야기에 공감해 기부에 동참해준다면, 그 순간 저는 배우라는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껴요.” 선후배들 사이에선 ‘봉사활동 내비게이션’으로도 통한다. 봉사나 기부를 하고 싶어하는 동료들에게 대상과 지역, 일정 등을 국내외를 넘나들며 소개해준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우물 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100개의 우물을 파주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그에게 기부는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쉽게 행복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보람있는 일이고, 내가 사는 이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기부하고 나서 아이들 소식을 들을 때, 우물이 생긴 아프리카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정말 눈물이 나요. 그 귀함, 보람, 행복, 그거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래서 기부를 안 해본 분들에게 항상 말해요. ‘어쩌려고 저렇게 안 하지? 한번 해보면 정말···!’ 뒷말은 차마 못 하겠어요.(웃음)”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달에 1만 원만 기부해보라”고 권한다. “그 보람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첫눈 내리는 날의 설렘이나 첫사랑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물론 첫사랑과 결혼은 했습니다. 하하.”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이십 대 때부터 봉사와 기부활동을 이어왔고, 덕분에 지금은 그 병원에서 평생 무료 주차 혜택을 받고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아들과 함께 교황을 만나는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당시 세 살이던 아들이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미사 일정 중 비를 맞고 있던 경호원에게 우산을 빌려주자, 경호원이 아들을 번쩍 안아 교황에게 축복받을 기회를 만들어줬다. 교황이 아들을 축복하던 순간은 사진으로 남았고, 이후 달력 이미지로도 활용됐다. 그는 성경에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관한 일화(루카 21,1-4)를 가장 좋아한다. “가난한 과부가 은화 몇 닢을 내놨지만 그것이 과부의 전 재산이었죠. 예수님은 그걸 굉장히 칭찬하셨어요. 얼마가 되었든 나누는 그 손 자체가 귀한 거예요.” 암환자 쉼터인 마뗄암재단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매달 마지막 주일마다 가톨릭 배우 모임 ‘광대승천 제네시오’ 후배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그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배우나 연예인이 아닌 가장 편안한 ‘이모’, 그냥 공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꿈을 묻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부 액수로 한 번 최고를 찍어보고 싶어요. 아시아 1위, 뭐 이런 거요. 정말 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걸 전부 다 기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로또를 사야 할까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12.23

나의 영적 아버지, 다이아몬드 신부님[월간 꿈CUM]꿈CUM 수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고(故) 안토니오 다이아몬드 신부 먼 기억에서 1960년대의 일을 떠올려 본다. 대학 졸업 후, 원하는 교사 채용 고시는 없고 공무원 시험이 있기에 응시하여 고향인 광양군청 공보실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갑자기 친구도 없고, 문화 시설도 없고, 오직 책만 읽으며 외로이 지낼 때, 교리 공부할 시간이 없어 미루던 천주교에 입교하리라 결심하였다. 당시 광양은 70여 명 신자가 다니는 공소만 있었다. 그곳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미사 예절을 배우고, 주일마다 순천 본당으로 다니며 교리 공부를 했다. 본당에는 성골롬반 선교회 소속 신부님이 두 분 계셨다. 주임 신부님은 아일랜드에서 오신 안토니 다이아몬드 신부님, 보좌 신부님은 멕시코에서 오신 알바 신부님, 두 분이 번갈아 공소에 나오셨다. 다이아몬드 신부님은 한국에 오신 지 5년째라 우리말을 제법 하셨고, 알바 신부님은 갓 오신 분이라 신자들과의 사이에서 내가 통역을 맡았다. 대학 졸업 직후라 별 무리는 없었다. 덕분에 즐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두 분 신부님은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살아 계신다. 특히 허허로운 내 영혼을 말씀으로 채워 주시고 세례를 주신 다이아몬드 신부님을 나는 지금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있다. 추운 겨울날 순천에 나가서 마지막 찰고를 할 때, 신부님께서는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준주성범」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아무 때나 펴보면 상황에 맞는 지혜를 얻고 위로도 받을 거라는 말씀과 함께. 1964년 12월 20일, 전날 밤 곱게 싸서 머리맡에 두었던 흰 치마, 흰 저고리, 흰 머리쓰개, 이름표, 초, 등이 담긴 보자기를 들고, 가슴 설레며 대모님과 함께 순천으로 갔다. 우리 공소에서 10여 명, 본당 신자까지 150여 명의 대가족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대축제였다. 예절은 마당에서부터 시작되어 실내로 옮겨갔다. 한 장면 한 장면 얼마나 거룩한 예식이었던가. 마침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갈망하던 천주교 신자가 되어 이름도 예쁜 ‘실비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날 신부님의 강론 중 한마디는 지금도 기억한다. 신부님은 조금 서툴지만, 우리말을 아주 귀엽게 잘 하셨다. “여러분의 영혼을 만일 지금 볼 수가 있다면 그것은 아주 깨끗하고 맑아서 황홀하며 눈이 부실 것입니다. 이로써 여러분은 모든 원죄와 본죄를 씻고 천주의 자녀가 되어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강론을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새롭다. 영세 후, 바로 교사 시험이 있어 응시했다. 준비가 부족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3월, 광주에 있는 전남여고 국어교사가 되어 순천을 떠났다. 신부님을 못 봬 섭섭해하다가 어느 주말, 고향 가는 길에 일부러 순천에 들렀다. 본당을 찾아가니 마침 저녁 미사 시간이라 참례하게 되었다. 고해소 앞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걸 보고, 나도 꺼림칙한 죄가 있어 차례를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은근히 다이아몬드 신부님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신부님이셨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말하세요, 어서 말하세요” 하고 채근하시던 신부님. 나의 고백을 들으시고 따뜻이 조언해 주시던 신부님. 게다가 자상하기도 하시지! 미사가 곧 시작되니 성체부터 영하고 보속은 나중에 하라고 말씀해 주시던 신부님. 미사 후, 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 나는 고백한 죄가 부끄러워 주춤거리는데, 신부님께서 깜짝 반기며 ‘실비아!’ 하고 부르신다. 순천에 언제 왔느냐, 교사 생활은 어떠냐, 이것저것 물어주시고 오늘 참 잘 왔다며 기뻐하셨다. 사실은 곧 본국으로 떠나 일 년 넘게 머무르실 계획이라 다음 주에 광주 주교관으로 옮기실 거라며 광주에서 한번 보자고 하셨다. 덕분에 부끄러움은 싹 가시고, 나는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당을 나왔었다. 며칠 뒤, 귀국 선물로 쓰시라고 자게 박힌 재떨이 하나를 사 들고 신부님을 찾아갔다. 영적 아버지 신부님이 멀리 고국으로 가신다니까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 그때 신부님이 하신 말씀. “실비아, 지금 좀 싱숭생숭해요? 나도 싱숭생숭해.” 뜬금없이 생뚱맞은 우리말을 쓰시는 바람에 얼마나 우스웠는지! 며칠 전에 배웠다며 이럴 때 써도 괜찮으냐고 물으셨다. 나는 “네, 좋아요. 딱 좋아요.” 대답하고 함께 웃었다. “나, 처음 한국말 못해 고생 많이 했어. 그래서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이제 귀국했다가 돌아오면 또 열심히 해야 해.” 신부님이 안 계시는 동안 마음이 스산할 때, 「준주성범」을 자주 펴보며 위로를 받곤 했다. 신부님은 일 년 넘게 귀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소식을 듣고 대모님과 함께 당신께서 주임신부로 부임하신 카리타스 수녀원을 방문했다. 나는 아버지를 만난 기쁨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지만 참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먼저 “자, 우리 악수!” 하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리고 한참 동안 즐거운 여행담을 들려주셨다. 당신의 본국 아일랜드를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필리핀, 일본. 그리고 내 전공에 맞춰 문학 이야기도 하셨다. 예츠, 키츠, 셰익스피어. 그래도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성경 말씀.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자꾸 질문하고, 신부님은 명쾌히 답해 주셨다. 그 뒤, 배우자를 고르느라 방황할 때마다 신부님께 편지를 드리고 많은 조언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에 있는 청년과 정혼했을 때, 맨 먼저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은 관면혼배를 권하셨다. 다행히 그는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광주로 내려와 나와 함께 카리타스 수녀원으로 갔다. 대모님이 와 주셨고, 마침 광주여고 동기동창이 그곳 수녀님으로 있어 두 분을 모시고 관면혼배를 잘 치렀다. 그때 하신 말씀. “실비아,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면 가정생활은 자연히 행복해질 겁니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 이럴 수가! 분명 내 쪽에 유리한 말씀을 해 주실 줄 알았더니 이럴 수가! 나는 몹시 당황했다. 은근히 약이 올라 입을 비쭉대며 조금 토라졌던 것도 같다. 1967년 결혼을 하고 서울로 왔다. 그런데 살면서 그 말씀이 자꾸만 떠오른 게 아닌가. 이것저것 의견이 달라 다투고 싶을 때도, 과음으로 밤늦게 들어와 미워 죽겠을 때도, 그 말씀이 떠올라 참고 또 참았다. 하여간 그 말씀이 내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으로부터 신뢰받는 아내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말씀은 나에게 유리한 말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젊은 여인들에게 말한다. “남편을 왕으로 모시면 당신은 왕비가 됩니다.” 제주 새미 은총의 동산 입구 그토록 고마운 신부님을 서울로 온 뒤에는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늘 소식을 궁금해하다가 수년 전 제주도 이시돌 피정을 갔을 때다. 그곳 임피제 신부님이 골롬반 선교회 소속인 것을 알고 여쭈어보았다. 어머나!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선종하셨다고 했다. 아아, 나의 영적 아버지 다이아몬드 신부님! 당신의 딸 실비아가 반세기도 더 지난 뒤에야 문안드립니다.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지금은 천상 영복을 누리고 계시지요? 하늘나라에 가서는 꼭 찾아뵙겠습니다.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만남, 그 신비」,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수필집 「아름다운 귀향」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시집 「한 송이 풀꽃으로」,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2023년 9월,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로 ‘황순원 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이다.2025.12.23

이스라엘에 구원과 평화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3)이사야서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 남 왕국 유다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입니다. 이사야서는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와 있으며 정의와 공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 ‘이사야’, 프레스코, 1510년께,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이사야서를 ‘예샤아야후’라고 표기합니다. 예샤아야후는 우리말로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와 ‘예수아’와 같은 어원을 가진 이름입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에사이아스’(Ησαιαs)로 표기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Esaias’와 ‘Isaias’로 음역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이사야서’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를 히브리말로 ‘나비’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이 건네진 사람’을 뜻합니다. 곧 예언자는 ‘하느님의 대변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서는 66장으로 엮은 ‘하느님의 말씀’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시대 배경에 따라 제1부 1─39장, 제2부 40─55장, 제3부 56─60장으로 나눕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아시리아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기원전 8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2부는 1부보다 2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시기’로 바뀝니다. 아시리아 대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등장하고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건을 옛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이사 40,2) 아울러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이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포로로 끌려온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하는 내용이 언급됩니다.(이사 41,2; 44,28; 45,1) 제3부는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부터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 이전까지를 배경으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이사야 예언자가 직접 등장합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740년 유다 왕국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부르심을 받아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임금 시대, 곧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760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모츠였고, 그는 느비야(여성 예언자, 예언자의 부인으로도 해석됨)와 혼인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적 수준이 높고 임금과 고위 관리들을 어렵지 않게 접촉하고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으로 여겨집니다. 이사야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경학자들은 열왕기 하권 21장 16절을 근거로 예언자들을 처형시킨 므나쎄 임금(기원전 687~642년)에게 죽임당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기원전 736~734년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을 알려줍니다. 시리아 르친 임금과 이스라엘 페카 임금이 동맹해 남 왕국 유다를 쳐들어와 아하즈 임금을 몰아냅니다. 이때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즈 임금에게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다”며 “하느님을 믿어야 굳게 서 있을 수 있다”고 독려합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또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산헤립 임금이 히즈키야 임금 시대 유다 왕국을 침공한 사건을 알려줍니다. 이 시기 유다 왕국의 영토는 예루살렘뿐일 만큼 쇠락했습니다. 하지만 히즈키야 임금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밤사이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군 18만 5000명을 죽여버립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느님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임금으로 오실 중개자의 개입으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을 예언합니다.(이사 8,23─9,6) 이사야서 제2부는 이사야 예언자가 쓴 것이 아닙니다. 성경학자들은 제2부의 저자를 편의상 ‘제2 이사야’라 부릅니다. 다윗 왕조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멸망했고, 유다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간 포로생활을 하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래서 제2부는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로 시작합니다. 제2 이사야는 고난을 겪는 ‘주님의 종’을 통한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주신 분은 주님이신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도 하느님과 평화의 계약을 맺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이사 52,13─55,6)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겪는 주님의 종(이사 50,4-9), 속죄의 죽임을 당하는 종(이사 52,13─53,12)이 실현됐다고 선포합니다. 이사야서 제3부 저자 역사 다른 사람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저자를 ‘제3 이사야’라고 편의상 부릅니다. 제3 이사야는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와 있으나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죄는 바로 부도덕한 삶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이런 죄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합니다.(이사 59,9-29) 그래서 제3 이사야는 ‘정의와 공정’을 호소합니다. 곧 제3 이사야는 정의와 공정을 실천할 때 구원이 실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3 이사야는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면 구원될 수 있다 합니다. 제3 이사야는 이 보편 구원 사상을 앞세워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역사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예루살렘은 만방으로 펼쳐질 구원의 중심이라고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