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여라](//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755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27)이렇게 기도하여라하느님과 소통하고 일치하는 길우리는 기도로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향하고, 그분을 흠숭하며,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에 감사드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용서를 간구하며,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청원한다.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 '하느님과 인간의 통교',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라고 표현한다. 기도는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그 말씀에 응답하고자 하는 인간 사이의 대화로 이뤄지고, 이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통교와 친교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 업적을 돌아보고 이에 감사드리면서 그들이 지금 겪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도우심을 간청했다. 이스라엘의 성조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느님께 기도드렸고, 모세는 이집트 탈출, 시나이 계약, 광야 생활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중재자로 늘 기도했다.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께서도 지상생활을 하시는 동안 항상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마르 14,36)라고 부르면서 기도드렸고, 하느님과 깊고 친밀한 일치와 친교 속에서 살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고, 직접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도할 때는 반감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고, 위선자들처럼 남에게 보이려 기도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처럼 빈 말로 기도하지도 말라고 당부하셨으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올바른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 동안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셨고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셨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기도의 형태와 종류 1)전례 기도와 비전례 기도 전례 기도는 교회의 공식적 기도이며 예수님과 그분 지체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 함께 드리는 기도로 성사, 준성사, 성무일도를 할 때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비전례 기도는 전례 중에 이뤄지는 기도가 아닌 다른 모든 기도를 가리킨다. 2)개인 기도와 공동 기도 개인 기도는 개인이 혼자 사적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 기도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모든 이를 위한 기도에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과 원의에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 기도는 여러 명이 다 함께 드리는 기도로, 대부분 전례 기도에 속한다. 대표적으로 미사나 성무일도 중에 드리는 기도를 들 수 있고, 그중에서도 '보편지향기도'를 떠올릴 수 있다. 3)소리 기도와 마음 기도 소리 기도는 기도서에 제시된 기도나 마음 속으로 생각한 기도를 소리 내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개인이 혼자 바칠 수도, 공동체와 함께 바칠 수도 있다. 마음 기도는 하느님 말씀과 뜻을 자신의 삶에 비춰 생각ㆍ침묵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4)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 하느님과 일치돼 가는 정도에 따라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로 나누기도 한다. 묵상 기도는 의지적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과 대화하며 일치를 이루는 기도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 지성과 의지, 상상력 등을 이용하고, 성경, 성화상 등을 묵상 자료로 활용한다. 관상 기도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 등과 같은 자연적 능력이나 의지적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을 느끼고 인식하며 사랑하는 기도를 말한다. 관상 기도 체험은 하느님 은총으로 주어지며, 인간은 침묵 중에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맡기고 바라보며,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그분 사랑을 충만히 느끼는 가운데 이뤄진다. 5) 감사ㆍ찬양ㆍ통회ㆍ청원 기도 기도는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날마다 보호해주시며 무수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데 대한 감사, 하느님을 흠숭하면서 그분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노래하는 찬양,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통회, 자신과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간구하는 청원으로 이뤄진다. ▶기도의 방법과 자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 공동체 모범을 따라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를 하느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그분을 느끼고 뵈오며, 그분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 말씀을 건네는 것이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셨듯이, 더 바른 마음과 자세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사람은 먼저 하느님 구원 업적과 사랑을 믿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기도해야 한다. 또 자신의 소망과 필요와 청원을 말씀드리면서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한다. 나아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 말씀을 알아듣고자 온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분 말씀을 행하고자 전 삶의 방향을 그분께 돌려야 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12.13

회개와 절제의 40일, 죽음 너머 생명의 길사순 시기 추천 도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며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회개와 절제의 시간, 길잡이가 될 책들을 골라봤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 쿠르트 코흐 추기경 / 황미하 옮김 / 바오로딸 사순과 부활 시기에 관한 영적 안내서다.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 전반의 의미를 다루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르는 파스카 성삼일, 주님 승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동반한다. 그야말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장별로 각 전례 시기의 주제 및 의식과 관련된 교리적 내용을 전례·성경·신학·영성적 바탕 위에서 폭넓게 조명해 사순과 부활 시기의 의미에 깊이 머물도록 안내한다. “예수님은 인간이 겪는 무력함과 고통과 죽음, 그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알지 못하신다. 예수님은 이 길을 택하신다. 그 길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원한 길이기 때문이다.”(67쪽)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장관인 저자는 앞서 스위스 루체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및 전례학 교수로 재직했다. 사순 시기란 / 미셸 존스 슈뢰더 / 서영필 신부 옮김 / 성바오로 “재의 수요일 몇 주 전부터 우리는 보속을 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중략) 무엇을 ‘포기할지’, 더 정확히 말해 사순 시기 보속으로 무엇을 봉헌할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가로막는 삶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종종 사순 시기 희생을 새해 결심의 두 번째 기회처럼 취급합니다.”(42쪽) 사순 시기의 진정한 의미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한 책이다. 책은 사순 시기가 지극한 슬픔을 느끼는 때이지만, 동시에 영적으로 더욱 깊게 성장할 수 있고 그 슬픔을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평신도인 저자는 기도·단식(희생)·자선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피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수년 동안 무심코 한 일들이 어떻게 천국의 길로, 부활로 이끄는지 깨닫게 한다. 죽음의 신비 /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신비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가 ‘죽음’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죽음을 ‘인간 실존의 가장 두려운 한계’이자 동시에 ‘하느님 섭리가 가장 깊이 드러나는 자리’로 설명한다. 신앙의 전통 안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로 인한 처벌이지만, 하느님께서 그 처벌마저 은총으로 바꾸셨음을 성경 말씀과 그리스도론·죄론·구원론·종말론·삼위일체론의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풀이한다. 특히 성인과 성사,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통해 부활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사랑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은 잊고 오직 정의의 하느님만을 마주하였다. 낙원에 관한 생각은 일찌감치 사라졌고, 그들 앞에는 외면할 수 없는 죽음이 위협적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곳에는 그들을 위해 마련된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56쪽) 십자가의 길 / 조재형 신부 / 생활성서 사순 시기하면 ‘십자가의 길 기도’가 바로 떠오른다. 예수님의 골고타 여정을 담은 14처를 돌며 바치는 기도다. 그 십자가의 길을 기도와 함께 색을 칠하며 묵상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수원교구 조재형(궁리본당 주임) 신부가 작업한 컬러링북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나누고 그 안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묵상 글도 수록했다. “청하오니 주님, 당신의 십자가의 걸음을 따를 용기를 주소서. 나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이웃의 짐도 함께 져 주며 마침내 세상의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낼 용기를 허락하소서.”(14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2.25

“대회마다 주제 성구가 있는 것 같아요”[신부님, WYD가 뭐예요?] 교황이 직접 선택한 구절 대회 정신과 방향성 제시 서울 WYD “용기를 내어라~” 오늘날 도전 맞선 믿음 요청 일반적으로 문화·체육뿐 아니라 종교 등이 주최하는 대회는 하나의 슬로건과 공식 로고를 통해 대회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과 가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올림픽의 주제와 로고·마스코트 등이 좋은 예입니다.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역시 대회의 본질적 정신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대회마다 주제 성구를 정하고 이를 구현해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7 서울 WYD를 위해 선택하신 주제 성구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입니다. 이는 한국의 순교 성인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보여준 용기를 본받아 젊은이들이 온갖 형태의 불의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되길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제 성구는 성경에서 발췌한 구절 가운데 짧고 기억하기 쉬운 것이 선택됩니다. 그런데 이 주제 성구는 교황님께서 직접 결정하신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세계적 상황과 청년들의 현실, 교회의 사목적 방향을 고려해 성경의 한 구절을 주제 성구로 정하시어 청년들이 이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을 새롭게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발견하도록 촉구하십니다. 매 대회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도전에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르침을 압축한 것이 바로 주제 성구입니다. 제1회 대회는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습니다. WYD를 제정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정한 주제성구는 “너희 안에 있는 희망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1베드 3,15)였습니다. 다음해 198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회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였습니다. 이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젊은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드러내 주신 진리를 토대로 한 여러분 삶의 증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증언에 감사드리며 여러분이 언제나 하느님 사랑의 증거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이 되길 격려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제 성구들은 기본적으로 청년들이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배우고 키워나가도록 이끌어줍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의 붕괴가 임박한 격동의 시기에 열린 1991 폴란드 쳉스토호바 WYD때는 “여러분은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로마 8,15)였습니다. 이는 혼란한 국제정세 속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간직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2000년 대희년에 개최된 로마 WYD에서는 새천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더욱 그리스도께 의탁하고 그분을 따르도록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가 선택됐습니다. 2016년 자비의 희년에는 자비의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땅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렸는데, 이때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로 정해졌습니다. 아울러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 WYD는 “마리아는 서둘러 떠났다”(루카 1,39)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모 발현지인 파티마를 중심으로 성모님의 굳건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젊은이들이 닮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이처럼 청년들이 직면한 다양한 형태의 도전 앞에 신앙을 굳건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주는 주제로 성구가 결정됐습니다. 이준태 2026.02.25

돌로 지은 작은 교회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함께 찾아온다성모님 생애 마지막 지낸 곳으로 알려진 튀르키예 셀축에 위치한 성모님의 집. 성모님께서 요한 사도와 함께 이 터에 머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7세기 집터에 지은 경당 1951년 복원 그리스 정교회 8월 15일마다 순례행사 성 바오로 6세 등 세 교황 사목방문 성모 관련 쿠란 전시된 무슬림 순례지 교회 안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 교회 밖에는 광복절을 지내며 사흘간의 연휴가 시작됐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성모님의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불려 올라가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승천하시기 전 생애 마지막을 어디에서 보내셨을까. 무더운 올여름 이렇다 할 휴가를 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해 튀르키예 셀축으로 떠나본다. 튀르키예 서남쪽에 위치한 셀축 외곽. 고대 도시 에페소 유적지와 함께 성모님이 생애 마지막을 지낸 곳으로 알려진 집터와 그 위에 세워진 경당으로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거대한 에페소 유적지와 달리 ‘성모 마리아의 집(House of Virgin Mary)’은 아담한 석조 건물이다. 십자형 구조에 돔 모양의 지붕을 얹었고, 현관에서 바로 경당과 제대 뒤 반 원형 공간인 앱스(apse)로 연결된다. 7세기에 지어진 교회로, 1951년 복원됐다. 튀르키예 셀축 성모님의 집 입구에 세워진 성모상. 성모 마리아의 집 입구 세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 그 요한 사도가 말년을 에페소에서 보냈다는 전승에 따라 성모님도 같은 지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허가 된 이 장소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1878년 독일의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Anna Katharina Emmerick, 1774-1824) 수녀의 환시를 엮어 펴낸 「성모 마리아의 생애」가 출간되면서다. 단 한 번도 독일 밖으로 떠난 적이 없는 카타리나 수녀는 성모님이 생애 마지막을 보낸 집의 위치와 주변 풍경을 기록했고, 이후 사제와 수도자들에 의해 발견된 장소는 수녀가 기록한 모습과 일치했다고 한다. 성모님의 집 밖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제대가 마련돼 있다. 과거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해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이 터에서 순례행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1967년 성 바오로 6세 교황, 197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등이 방문하며 가톨릭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2006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튀르키예 사목방문 중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고 사실상 확인할 길이 없는 성모님의 선종 장소로 에페소와 함께 ‘마리아의 무덤 성당’이 있는 예루살렘도 언급된다. 에페소의 경우 요한 사도 대성당 유적과 무덤, 세계 최초로 성모님에게 봉헌된 교회(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열렸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유적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수많은 순례자의 기도와 소망이 적힌 쪽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튀르키예 셀축 성모 마리아의 집은 무슬림에게도 순례지다. 성모님을 언급하는 쿠란 구절들의 번역본이 전시되어 있다. 고즈넉한 산 속에 위치해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는 역부족이다. 내부는 매우 협소해 방문객이 많으면 기도는 차치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세세히 살펴보기도 힘들다. 반면 외부에는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제대, 세례터, 성수를 받을 수 있는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 여느 성지에서나 볼 수 있는 기도와 소망을 적어 매단 수많은 종잇조각에서 민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하늘에 닿길 바라는 인간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08.12

판테온 꽃비, 성령의 불꽃[‘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2. 작약 작약(Peony). 성서와함께 제공 성당 회중석에 서서 ‘오소서 성령이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성가가 절정에 이른 순간 성령의 불꽃을 상징하는 붉은 작약 꽃잎이 공중에 흩날리고, 성령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날은 주님 승천 대축일(지난 주일), 그로부터 10일 뒤는 주님의 성령이 지상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오늘)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영어로 ‘펜테코스트(Pentecost)’라고 하는데, 이는 ‘50번째’라는 뜻의 그리스어 ‘πεντηκοστή(펜테코스테)’에서 유래했다. 부활 시기를 마무리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 거룩하고 특별한 대축일날 로마 판테온에서는 돔 한가운데 뚫린 거대한 천창(天窓)에서 꽃비를 내리는 전통이 10세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때 흩뿌려지던 꽃이 작약이다. 오늘날에는 주로 붉은 장미 꽃잎을(때로 흰색 꽃잎을 섞어) 뿌리는데, 이 꽃비는 사도행전 2장에서 언급되는 불꽃 모양의 혀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약이 이같이 사용된 데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있는 5월에 만개하는 개화 습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권 국가에서는 작약을 ‘성령 강림절 장미(Pentecost rose)’라고 부른다. 또 5월은 성모 성월이므로 ‘성모 마리아의 장미(Our Lady’s rose)’로도 불린다. 작약의 라틴어 속명 ‘페오니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치유의 신 ‘페온(Paeon)’이 어원으로, 작약의 씨앗과 뿌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약재로 널리 쓰였다. 서양의 경우 작약이 약초로서 재배된 기록은 무려 1세기부터 존재하지만, 화려한 외형의 겹꽃 품종을 앞세워 관상용으로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18~19세기의 일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작약이 약용으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악령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약은 하느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므로 흰색·붉은색·분홍색 등 색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성경 정원이나 기도 공간에 잘 어울린다. 꽃은 분홍색이 향기가 가장 진하고, 색깔이 진할수록 향기가 약해진다. 제철인 5월에는 성전 안 꽃꽂이에도 자주 활용하는데, 겹겹이 풍성하고 소담하게 피는 작약의 모습은 늘 ‘충만함’을 상기시킨다. 화려한 작약의 풍성한 모습에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cpbc2026.05.20
![[사도직 현장에서] 내 안에 계신 아버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29/JgK1777441609546.jpg)
[사도직 현장에서] 내 안에 계신 아버지어렸을 때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정을 잘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어머니는 부지런하셨고, 자식들 남 부럽지 않게 살게 하려고, 밤늦게까지 평생 일만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퇴직할 즈음에 나는 서울 수녀원에 입회하게 되었고, 나중에 청원자 휴가 때 가보니, 아버지께서 목포 경동성당에서 성 이레네오를 주보로 세례를 받으셨다. 엄마도 뒤따라 신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계속 성경공부 등을 하시다가 아예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에 등록해 큰오빠 집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며 2년을 다니셨다. 그리고 2002년경 선교사가 되어 영월 상동공소에 파견되어 열악했던 공소 건물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받으셨고, 비가 샜던 지붕과 먼지로 뒤덮인 성전을 깨끗하게 보수하셨다. 아버지는 주일이면 공소예절도 하고, 밥도 짓고, 커피도 끓여 신자들과 드시곤 하셨다. 그땐 요즘처럼 성가 반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수원 유치원에 근무하던 시절, 수녀원에 전화해 음을 잡기 어렵다고 성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불러보라고 하셔서 불러드리면 어설픈 음을 따라 부르셨다. 그 상황에 대해 함께 살던 수녀님들이 두고두고 배꼽을 잡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영월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휴가를 가면 버스가 어디서 정차하는지 모르셔서, 엄마는 공소 근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버지는 밤 운전을 해가며 태백터미널까지 마중을 나갔다 돌아오신 적도 있다. 밤늦게까지 딸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이쪽저쪽에서 기다리는 두 분을 보고서야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후 고향 근처 전라도 압해도 신장공소로 옮겨 1~2년 신자들과 함께하며 선교사로 지내셨다. 건강이 안 좋아져 은퇴하신 후엔 목포 옥암동에서 사셨다. 옥암동성당 성전 신축 땐 음식을 만들어 수익을 봉헌하고, 폐휴지와 빈 병을 수거해 보태셨다. 요즘 거울을 보면 이마에는 냇물처럼 잔주름이 흐르고, 얼굴에는 북두칠성처럼 큰 점들이 또렷하게 박혀있는 내 모습을 본다. 눈도 작아져 아버지 나이 드셨을 때 눈과 똑 닮았다. ‘세월은 못 막는구나’를 깨닫고 언제라도 주님이 부르실 때 “네, 여기 있습니다” 하며 하늘나라로 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천천히 행동으로 옮기며 지낸다. ‘비움의 미학’을 살기 위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32) cpbc2026.05.20

필리피 (01) : 유럽 대륙의 첫 그리스도교인, 리디아[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3) 그리스 필리피 순례객들이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난 냇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줌마가 좋다. ‘아줌마’라는 말에선 힘과 활력이 넘친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이 느껴진다. 가식이나 숨김이 없다. 삶에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소망하고, 스스로의 욕구를 땀을 통해 충족시켜 나간다. 이렇게 아줌마가 좋은 것은, 자주 만나는 신앙 아줌마들의 해맑은 ‘까르르’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교회의 각종 교육과 세미나, 연수회가 열릴 때마다 자리를 가득 메워 강사들을 뿌듯하게 하는 것은 어김없이 아줌마들이다. 본당 사목회 간부들은 대부분 아저씨지만, 정작 낮은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언제나 아줌마들이다. 그러면서도 십자가 아래서 낮은 자세로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한다. 아줌마들은 영성 생활의 달인들이다. 산전수전 겪다 보니 참고 사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러다 보니 인내, 끈기, 절제, 겸손, 희생 등의 덕(德)에 별다른 영신 수련 없이 쉽게 다다른다. 성체조배실에서 4~5시간씩 기도하지 않아도 죄를 쉽게 성찰하고, 이웃의 죄를 쉽게 잊는다. 그리고 늘 남을 위해 산다. 섬김을 받지 않는다. 남편, 시부모, 아이들, 본당 신부님을 위해 산다. 아줌마에게선 공동체를 돌보는 땀 냄새가 난다. 성경에는 이런 아줌마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시리아의 위협 속에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것은 유딧 아줌마였다.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 아줌마였다. 예수 체포 후 제자 아저씨들이 두려움에 떨며 숨었을 때, 겁 없이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이들은 예루살렘 아줌마들이었다. 여기 또 한 명의 위대한 아줌마, 유럽 대륙 첫 그리스도교 신자 리디아(Lydia Purpuraria, 축일 8월 3일)가 있다. 유럽 대륙에 건너간 바오로 사도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리디아 아줌마다. 성경은 이 만남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필리피에 도착해)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다.”(사도 16,13-14) 앞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디아 아줌마의 고향인 티아티라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자색 옷감은 고가에 거래되었고, 리디아 아줌마는 고향인 티아티라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해 필리피 일대에 유통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사람이 신심도 깊었다. 성경에 리디아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대 신앙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오로 사도의 열정이 리디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리디아는 하느님 말씀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런데 여기서 리디아가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 아줌마의 위대함은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열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마리아처럼, 그렇게 리디아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고집이 아주 셌다. 자신만 세례받은 것이 아니라 온 집안사람을 세례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고집을 피운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5) 리디아는 바오로 사도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가 모셨다. 어쩔 수 없이 바오로 사도는 리디아 집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유럽 대륙의 첫 선교 거점이 마련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리디아 덕분에 바오로 사도는 안정적으로 필리피에서 선교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테살로니카, 코린토, 아테네 등지로 선교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참고로, 성경에는 리디아와 같은 신앙 아줌마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아퀼라’와 ‘프리스카’(1코린 16,19 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오로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로마 16,4 참조) 콜로새에서는 ‘아피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1장 2절에서 아피아를 ‘자매’ (αδελφη)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녀가 초기 선교 활동에서 중요한 협력자였음을 의미한다. 소아시아 에페소 인근 라오디케아 교회에서는 ‘님파’가 그런 사람이었다. 님파는 리디아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자신의 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했다.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 선교 활동에 조력한 ‘성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직후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사도 12,12 참조)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은 마리아였다. 코린토 인근에 살았던 ‘포이베’(로마 16,1 참조)도 빼놓을 수 없다.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6장 1-2절에서 그녀를 ‘후원자’(프로스타티스, προστατις)라 부르면서 그녀의 공식 직함을 ‘디아코논’(διακονον), 즉 ‘일꾼’(협력자, 부제)으로 호칭한다. 바오로 사도가 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로마로 직접 배달한 사람이 포이베다. 필리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났던 냇가를 찾았다.(사도 16,13-15 참조) 냇가 바로 옆에는 성녀 리디아 기념 경당이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다. 2000년 넘게 흘러온 그 냇가에 발을 담갔다. 적막 속에서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가 다른 소리로 들렸다. 그것은 2000년 전 신앙 아줌마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였다. 2025.12.22

말씀을 일상에서 사는 복음화·소공동체 의미 되새겨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제24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제24차 전국 소공동체 모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말씀과 함께…’ 주제로 열려 소공동체 현실적 어려움 나눠 고령화·사제 무관심 등 지적 신자들이 주님 만나게 도와야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위원장 장신호 주교)가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6월 29일~7월 1일까지 2박 3일간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주제로 제24차 소공동체 전국모임을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평신도 봉사자와 사제·수도자들은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상호 경청하며, 일선 소공동체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나누고, 어려움 속에도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초청 강연을 맡은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한민택 신부는 ‘말씀을 품고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성경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초대장”이라며 말씀에 대한 신앙적 관점을 강조했다. 한 신부는 온유함과 겸손함, 경청, 환대의 마음으로 예수님 모습을 닮아갈 것을 당부했다. 참가자들은 조별 논의에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에서 소개된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체험했다. 모래시계를 놓고 발언 시간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성령과 서로에게 경청하며, 침묵과 묵상을 병행했다. 이들은 소공동체가 복음 말씀을 품고 살아가며 주님 뜻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길에 관해 논의했다. 한 참가자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말 안에 머물면서 성령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조별 나눔 시간에는 소공동체 모임 신자들의 고령화와 나눔 중 발생하는 언쟁, 사목자의 관심 부족 등 한계가 지적됐다. 한 참가자는 “본당의 고령화가 많이 진행돼 7단계 복음 나누기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곤 한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는 “본당 신부님이 관심이 없어 아예 모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제의 관심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제24차 전국 소공동체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고충 속에도 말씀을 일상 안에 잘 새기며 살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한 참가자는 “소공동체 모임 숫자에 매이지 말고 꾸준히 습관화하자”고 말했고, 다른 참가자는 “생명 말씀을 포스트잇에 적어 오고 가며 되새기자”고 제안했다. 제주교구 김기량본당 주임 황태종 신부는 ‘소공동체와 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한 종합 강의에서 “복음 나누기, 성령 안에서의 대화, 성체성사 등 우리가 체험한 모든 과정은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의 현존 체험’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돼 있다”며 “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영원한 새 복음화를 위해 구슬을 꿰는 작업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모든 방법은 결국 영원한 새 복음화를 주제로 하나로 꿰어진다”고 역설했다.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장 장신호(대구대교구) 주교는 파견미사 강론에서 “하느님 없이 대화하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성토대회가 되고 말지만, 기도하고 준비하여 성령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 내 옆 사람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서 “복음 나누기 7단계나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방법론에만 머물지 말고,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촉진자가 돼달라”고 격려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07.08

후기 비잔틴 미술의 정수 ‘코라 구세주 성당’ 성화레오 14세 교황 첫 해외 사목 방문지, 튀르키예에서 만나는 신앙 유산 <하> 1. 코라 구세주 성당의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성화. 레오 14세 교황이 교황 즉위 이후 첫 해외 사목 방문으로 27일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올해 니케아(현 튀르키예 이즈니크)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 및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본격적인 사목 일정에 나선 곳은 수도 앙카라가 아니라 이스탄불이다.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옮겨온 곳이다. 5세기 중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중세 그리스도교와 동방 교회의 중심이었고, 건축과 성화로 대표되는 비잔틴 예술의 보고였다. 지난호에 살펴본 성 소피아 성당이 비잔틴 건축의 걸작이라면 후기 비잔틴 미술의 정수는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사진1)돔 중앙에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그 주변을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3. (사진1) 돔 아래로 최후의 심판을 표현한 그림에 이어 지옥의 문을 부수고 중앙에 선 그리스도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고, 그들 뒤로 요한 세례자, 다윗 왕 등 구약의 의인들이 서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성경 속 180여 장면 관광 명소가 몰려 있는 술탄 아흐메트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코라(Chora)구세주 성당은 현지에서는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불린다. 수도원의 부속 성당으로 4세기에 지어졌고,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성곽 밖에 위치해 ‘시골의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라 칭했다. ‘코라’는 ‘도시 밖’ ‘지방’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11세기에 재건된 성당은 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14세기 초반 지금의 돔 형태로 증·개축됐다. 규모면에서는 성 소피아 성당은 물론이고 여느 비잔틴 성당에 비해 상당히 소박한 편이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다. 이들 성화는 안드로니코스 2세 황제의 명에 따라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장식됐다. 메토키테스는 정치가이자 성미술 후원가로, 말년을 이곳 수도원에서 보내기도 했다. 성당 벽면에서 그가 예수님께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를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에는 전체적으로 주님의 탄생과 공생활, 부활과 승천, 최후의 심판, 성모 마리아의 모습 등 성경 속 180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돔 중앙에 판토크라토르 초기 교회에서는 성당 안에 어떤 성화나 성상도 두지 않았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후 전례나 교리 전달을 목적으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성화상 논쟁으로 대다수가 파괴됐다. 8세기부터 한 세기에 걸친 성상 논쟁이 종식되자 교회 내 이에 대한 방침이 강화됐다. 우선 돔의 중앙에 ‘전능하신 그리스도’라는 뜻의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예수의 상반신을 그린 성화를 두게 했다. 6세기부터 제작된 판토크라토르는 주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배치했다. 대다수 동방 교회의 돔이나 앱스(반원형 공간) 뒷면에서 판토크라토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림 속 예수님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대체로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전한다.(사진4 참조) 십자가 모양의 후광이 감싸고 있는 예수님 모습은 신성과 인성과 삼위일체 하느님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다. 세속적 권력을 가진 황제들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성당의 돔에 판토크라토르를 배치하게 했다. 돔 바로 아래 벽에는 보통 성모 마리아, 열두 사도와 성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두 개의 큰 돔이 있는데, 그 돔의 중앙에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과 그리스도가 만물의 통치자임을 표현한 그림이 각각 자리한다.(사진25 참조) 그 아래로 천사들의 모습, 최후의 심판과 부활, 예수님이 행한 기적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에는 성모님의 생애도 전개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당 건축 곳곳에 이렇듯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광범위하게 사용됐지만,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수차례 이어진 전쟁과 십자군의 약탈 등으로 대부분 없어지거나 훼손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 4.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전형적인 판토크라토르. 그 위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왼쪽)과 오병이어의 기적(오른쪽)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펼쳐진다. 메토키테스가 코라 성당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모습. 5. 또 다른 돔의 중앙에는 판토크라토르,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 아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왼쪽)과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오른쪽)이 그려져 있고,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그 아래 벽면을 채운다. 코라 구세주 성당, 모스크로 사용 코라 구세주 성당의 성화들 역시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며 회칠로 덮이고 성당은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됐으나, 1945년 박물관으로 전환되며 복원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성당은 2020년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고 유료 입장을 통해 성화를 공개하고 있다.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바라볼 때처럼 고개를 한껏 꺾어 올려다 봐야 하지만, 신비롭고 성스러운 모습에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또 별다른 해설 없이도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성경 내용을 그림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어 결국은 ‘하나인 그리스도교’를 생각하게 한다. 2025년 현재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은 모스크로 이용돼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남녀 모두 어깨나 다리가 드러나는 옷은 입장이 제한되고, 특히 여성은 스카프 등으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 신발도 벗어야 하지만, 두 성당의 경우 무슬림이 기도하는 곳이 아니면 신발을 벗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하루 몇 차례 정해진 무슬림 기도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는데, 대부분 1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방문 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1.26

‘교의’와 ‘삶’의 일치가 역사를 바꿨다세 공의회 통해 본 그리스도교 신학 그리스도인이 되다 / 미켈리나 테나체 / 전인걸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이 책의 저술 의도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도록 돕는 데 있다. 즉, 신앙의 내용인 ‘교의’와 특정 시대 속에서 믿고 살아가는 행위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탐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교의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맺는 살아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17쪽) 교의(dogma)는 성경과 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의미하는 용어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진리를 뜻한다. 즉 교의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정처럼 보인다. 둘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되다」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본질을 상기하는 책이다. ‘초세기 세 공의회 안에서 교의와 삶’이라는 부제처럼 교의와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신학을 통해 오늘날 교의신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저자는 니케아 공의회(325),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 에페소 공의회(431)를 거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론·삼위일체 교의·신학적 인간학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말한다. 이들 가르침은 3세기에 걸친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성숙했고, 공의회에서 교의 정립에 기여한 교부들은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했다. ‘언어(교의)’와 ‘체험(삶)’의 일치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고,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새로움의 씨앗을 뿌렸다. 동일한 교의를 ‘살아 내고 공식화’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비로소 참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복음이 시대 안에서 육화되고, 현재화되는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매 시대 안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움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히브 13,8 참조)” 저자는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교수로 신학적 인간학, 영성 신학, 동방 그리스도교 관련 과목을 강의했고, 현재 교황청 신앙교리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6.04.15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시네요”캐릭터 ‘깔깔수녀님’ 만든 정민영 작가 정민영 작가가 10여 년간 동행한 깔깔수녀님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공소 재건한 부친 영향으로 순례·작업 “가톨릭 콘텐츠 창작 원동력은 ‘성지의 위로’… 예수님 늘 동행” 2027 서울 WYD 맞춰 무명 순교자 애니메이션 공개 계획 깔깔수녀님. 수도자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의성어지만, ‘깔깔’ 웃고 있는 수녀님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래서 쉽게 연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번 보면 귀엽고 유쾌한 이미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캐릭터 ‘깔깔수녀님’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을 방문했다. 전시는 5일 끝나지만, 이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궁금해서 갤러리를 찾았다. “오래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과 성경 테마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고 새롭게 만든 캐릭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하게 들려줄 수 있는 친근한 수녀님 이미지로 다듬었죠. 우여곡절 끝에 애니메이션은 방영되지 않고 깔깔수녀님만 살아남았어요.(웃음)”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을 전공한 정민영(요한) 작가는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깔깔수녀님은 2016년 초대전으로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다수의 전시와 아트페어, 뮤지컬 ‘시스터 액트’와의 콜라보 등으로 신자 여부를 떠나 꾸준히 대중과 호흡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사그라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장수한 셈이다. 2023~2025년 인천교구 주보에 실린 깔깔수녀님은 2년 전부터 성지 순례기를 올린 정 작가의 SNS에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희년을 맞아 작년에는 로마 4대 대성전도 방문했다. 애니메이션이든 캐릭터든 어찌 보면 상업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수익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모태 신앙이고,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다치셨는데, 병원에서 수녀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래도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수녀님과 같이 기도하고 계시더래요. 제게 언젠가부터 가톨릭 콘텐츠 관련 일이 이어지는데, 과제나 숙명 같다고 할까요. 가진 재능으로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극구 신앙을 외면하던 그의 아버지는 추후 대전교구 죽림리공소(충남 홍성)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아내와 함께 성지를 순례 중인 그는 자신의 탈렌트를 결집해 순교자들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성지에 가면 그냥 좋아요, 숙연해지고요. 고향 집이 내포, 홍성 쪽인데, 어릴 때는 그 지역에 그렇게 많은 순교자가 계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순교자분들을 알리고 기억하게끔 애니메이션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어요. 누구나 쉽게, 편하게 볼 수 있게요.” 러닝 타임은 대략 10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리는 내년 무명 순교자부터 시리즈로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깔깔수녀님을 실물로 제작할 때, 의도하지 않았는데 업계 분들이 독실한 신자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부터는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예수님도 동행하고 계시고요. 신앙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바쁠 때면 주일 미사도 빠지지만, 아버지의 어떤 울림이 있어요.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 봐!’”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7.01

시작 예식 (03)[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8) 출처: 월간 꿈CUM 참회(懺悔, Penitential Rite) 대부분의 종교에는 예식을 시작하기 전이나 예식 중에 모든 이들이 경건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정화예식이 있다. 미사는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구원을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잔치이자 제사이기 때문에, 그 어느 종교의 예식보다도 더욱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미 초 세기부터 미사 직전이나 미사 중에 여러 차례, 여러 형태로 참회 예식을 거행하였다. (1) 의미 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의 화해를 요청한다. ② 이러한 화해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대리자이며 동시에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와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바치는 봉헌이다.결국 참회예절의 의미는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한 공동체의 회개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의 신비가 거룩한 말과 가슴을 치는(루카 18,13 참조) 행위로써 표현되고 체험된다. (2) 성경적 근거 :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깨끗한 재물을 바칠 수있도록 서로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도 제단에 제물을 바치려 할 때 먼저 서로가 용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마태 5,23-24 참조) (3) 초대 (우리 죄를 고백하자) : 사제는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죄고백을 위한 권고를 한다. (4) 반성 (우리 자신을 반성하자) : 죄 고백의 권고 후에 잠시 침묵을 하여 우리 스스로의 ‘과거지사를 성찰케 하고’ 우리 생활을 ‘반성케’ 하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5) 고백 : 모두 뉘우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며 주님의 자비를 간청한다.고백 양식은 세 가지인데,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이가 지은 죄를 공동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1양식 : “전능하신 하느님과….” 고백문의 전반부는 공동체가 하느님께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지은 죄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단지 하느님만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있는 신비체인 공동체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 내용은 생각, 말, 행위, 의무 소홀 등 인간이 짓는 죄를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전반부가 끝나면 모두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를 세 번 반복한다. 이 동작은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의 표시이다.(루카 18,13 참조) 고백문의 후반부는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가 성모마리아, 천사, 성인 및 형제 등 천상과 지상 가족에게 공동체를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비는 청원기도이다. ② 제2양식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고백문의 주제는 요엘서 2장 17절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와 시편 85장 8절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이시고 저희에게 당신 구원을 베푸소서”에서 발췌하였다.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훌륭한 기도로 연중 주일이나 평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제3양식 :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는 ….” 이 양식은 ‘자비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부분인 ‘자비송’은 외우지 않는다.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과 두 번째 기도 “죄인을 부르러 오신…”은 뉘우치는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 번째 기도는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시는…”은 요한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신 이름으로 청하면 아버지께 전달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6) 사죄 : 고백이 끝나면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자들에게 사죄를선언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죄를 사해주신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자비의 찬가를 노래하게 된다. (7) 실천 : 소죄는 참회예절을 통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대죄는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8.12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18/qhM1763438107719.jpg)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나눔’에 대해 대부분 사람은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나눔은 물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해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더 의미한다. 이러한 나눔은 주로 성당의 어떤 단체활동 전후, 또는 특정 모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눔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누구와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해설단은 한 달에 한번 회합을 하며 독서와 복음에 대해 묵상하고 단원들과 나눔하는 시간이 있다. 같은 독서, 같은 복음이지만 묵상 내용은 단원마다 다르며, 서로 다른 묵상 나눔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을 느끼게 되고, 그 배움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교우들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캠핑을 무척 좋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캠핑을 간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각자 일정 때문에 아내와 둘이 ‘부부 캠핑’을 하게 된 지 벌써 오래됐다. 아내와 둘이 캠핑 가는 것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물어본다. “아내랑 둘이 무슨 재미로 캠핑을 가?” 나의 대답은 늘 이렇다. “캠핑을 가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가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캠핑을 가면 아내와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지고, 주제도 다양하다. 나와 아내의 생각을 꺼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뜻이겠지. 계획이 있으시겠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은 다르지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게서 배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끔 지인 부부들과 함께 캠핑하는 경우도 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술 한잔 하다 보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자녀 이야기, 주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지인이 비신자라도 나와 아내는 그런 생각들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을 맛보게 된다. 비단 캠핑이 아니라 퇴근 후 동료·선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소한 토론을 하게 된다. 이때 나누는 이야기들 역시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고, 나눔을 통한 배움을 경험한다. 나눔은 성당이나 어떤 단체 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눔을 위해서는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듣는 것, 내 생각을 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 묵상과 성찰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묵상과 성찰은 미사 참여를 통해 독서와 복음을 새기는 것이며, 성경을 읽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직접적·간접적 경험을 쌓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크고 작은 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의 묵상과 성찰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며 나를 성장시키는 배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음속으로 지혜의 길을 찾고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공동번역 「성서」 집회 14,21)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애가 3,40) 김기형(요셉)cpbc2025.11.1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9)샤를르 페로 (하)](//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1507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9)샤를르 페로 (하)신약 연구 통해 예수 운동의 기원·전개 집약 3부작 중 2부 「초대 교회의…」 샤를르 페로 신부는 1부작 「예수와 역사」(1979년) 이후 2부작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에서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마르 8,38)라는 예수의 질문에 대해 초대 교회가 저마다 표명한 그리스도론적 진술을 주석학적으로 살펴봤다. 그는 먼저 각 공동체가 처한 사목적 신학적 배경에서 유다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자신의 신원을 이해하였는지를 사회-종교적인 독서 방식으로 그려본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페로는 예수에게 부여된 각각의 호칭들을 고찰하되 예수의 이름을 찾아가는 초대 교회의 역동적 흐름 안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어록 전승은 예수를 ‘지혜의 스승’으로 보는 동시에 다니엘의 ‘종말론적 인자’(人子)와 관련된 존재로 지칭한다. 마르코는 세례와 거룩한 변모 그리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 어떻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인지를 보여주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마태오는 새로운 모세 유형론 안에서 예수를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이자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하는 ‘임마누엘’로 설명한다. 루카는 예언자 유형론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현재를 선포하고 이를 치유와 구마 그리고 식탁의 친교로 구체화하는 ‘예언자’ 예수를 그려낸다. 한편 바오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전승을 받아들이되(로마 1,3-4) 신성의 언어들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느님 지혜(1코린 2,7)를 강조한다. 그는 신성의 언어보다는 신성의 동작으로 예수를 묘사한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러 시나이 산 위로 내려오셨듯이 예수 또한 당신의 사람들을 만나러 구름을 타고 내려와 공중에서 상봉할 것이다(1테살 4,16-17). 유다교의 일신 사상의 범위 안에서 예수의 신성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물론 요한은 직접적인 신성의 언어로 부활하신 예수의 신원을 고백한다(요한 20,28).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구원의 동작을 예수가 대신하는 모습으로 그려줌으로써 유일신주의의 한계 안에서 유일신주의의 범주를 넘는 ‘이야기 그리스도론’의 방식을 취한다. “모든 이름 위의 이름을 주셨다”(필리2, 8)는 고백에서 드러나듯 예수의 면모는 언제나 다가갈 수 없는 신비라는 공통된 인식이 처음부터 존재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은 살아 계신 분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바탕으로 저마다 그분에게 적절한 이름을 찾아 나서는 그리스도론적 고백의 다양성을 증언하고 있다. 3부 「 …초대 교회의 직무」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는 샤를르 페로 신부가 1994년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은퇴한 뒤 수년간의 준비를 거쳐 2000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예수와 역사」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에 이어지는 일종의 삼부작에 해당한다. 페로 신부가 「예수와 역사」에서 역사적인 예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에서는 하나의 주석학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면 「예수 이후-초대교회의 직무」에서는 초대 교회의 직무를 종합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페로 신부는 평생에 걸친 신약성경 연구 결과를 ‘예수 운동의 기원과 그 전개’라고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세 권의 저작 안에 집약해 놓은 것이다.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는 오늘날 요청되는 그리스도인 직무의 핵심을 말씀의 봉사로 보고 있다. 성사와 말씀의 선포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그릇된 시각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말씀으로 선포되고 성사적인 동작 역시 말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말씀과 실천을 구별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말씀은 구원을 선포하고 새로운 현실을 일으키는 창조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과 침묵을 대립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느님 말씀은 광야의 침묵 가운데 솟아 나오는 예언자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씀은 성사와 실천 그리고 침묵을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자기 표현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직무는 하느님을 전달하는 말씀에 봉사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사제들에게 주어진 삼대 직무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 중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직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말씀의 봉사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그리스도인 직무는 시대의 징표에 따라 말씀과 실천, 성사와 봉사를 창조적으로 전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로마서 페로 신부는 1988년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 대한 간단한 주석과 소개의 책을 펴냈다(「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 그는 1세기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로마서를 신학적으로만 해석하는 방식을 경계하고 종교-사회적인 관점에서 이 서간에 접근하고자 했다. 1세기의 그리스도 교회에는 율법의 해석과 실천을 둘러싸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는 모세의 율법과 무관하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원의 새로운 원리 안에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도모했다. 로마서의 중심적인 주제로 인식되는 의화 논쟁은 하느님 은총의 무상성이라는 신학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율법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로마 교회의 구성원들을 그리스도 신앙 안에 통합하려는 바오로 사도의 교회일치운동 전망에서 이해돼야 한다. 페로 신부는 세상을 떠나는 해에도 「나자렛 마리아」(2013년)를 출간할 만큼 하느님 말씀의 참된 봉사자로 살았다. 작년 11월 11일 불현듯 세상을 떠난 페로 신부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킨”(2티모 4,7)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고 이다. 이 자리를 빌어 20세기의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였던 페로 신부의 높은 인격과 학문에 경의를 표한다. 백운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평화신문2026.02.12

‘혈연보다 강한 신앙’ 친부모 빈자리 채운 ‘대부’ 아버지성 요셉 대축일 맞아 만난 박상수씨 박상수씨가 안드레아와 대부대자 관계를 넘어 부자지간으로 지낸 17년의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 19)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양부, 목수 등 성 요셉을 설명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그중 성경에서 요셉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수식어는 ‘의로운 사람’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순종의 길을 걸었다면, 요셉은 그 고백을 침묵 속에 행동으로 보여준 의로운 사람이다. 성 요셉 대축일(19일)을 맞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신앙 안에서 정성껏 키운 ‘의인’ 박상수(라우렌시오, 68)씨를 만났다. 그는 제13회 신앙체험수기 대상작 ‘엄마라는 이름으로’를 쓴 이경숙(로사리아)씨의 남편이다. 박씨는 17년 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4살 난 아이였다. 아이의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아버지는 아이가 18개월 때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 아이에게 유아세례라도 받게 하고 싶었던 할머니는 본당 신부를 찾아갔다. 그때 신부는 불현듯 박씨의 아내에게 “10년 동안 아이를 책임져 줄 수 있다면 세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침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신앙 깊은 아내는 곧장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박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아내가 하자면 무엇이든 하죠. 아이가 신앙 안에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부’로서 돕겠다는 마음이 컸다. 아이는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주말마다 성당에서 얼굴을 맞댔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안드레아가 갑자기 달려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부모와 헤어진 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박씨는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진짜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다시금 눈물로 그날을 떠올렸다. 박상수씨가 안드레아를 아들로 받아들이던 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딸만 둘이던 박씨는 아들이 생겼다는 든든함도 느꼈다. 하지만 안드레아에게는 친아버지가 있었다. 비록 1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 관계마저 단절될까 조심스러웠다. 박씨는 이후 수시로 안드레아를 만나면서도 상처받지 않도록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봤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함께 떠난 제부도 여행에서 환하게 웃는 안드레아를 보며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깊이 알게 됐다.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 자라길 바랐던 그는 안드레아가 복사를 서는 날이면 빠짐없이 미사에 참여했다. “혹시 제대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컸습니다. 감시자처럼 지켜봤는데, 그래도 참 대견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친부모의 빈자리는 드러났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의욕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게임에 빠져 지냈다. 아내가 온 정성으로 돌봤지만 공부에는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요셉 성인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마음이요.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안드레아를 설득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막상 입학한 뒤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1학년을 마친 안드레아는 오는 4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와 술잔도 나눌 만큼 성장했다. 박상수·이경숙씨 부부가 평일 미사에 참여해 기도하고 있다. 박씨 부부는 평일에도 저녁 미사가 있는 날이면 손 꼭 잡고 걸어가 함께 기도한다. “어느 날 안드레아가 그러더군요. ‘엄마 아빠가 아니었으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그동안 기다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게 하느님 계획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약속했던 10년은 훌쩍 지나 17년이 됐다. 그러나 박씨 부부에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죽는 순간까지 신앙 안에서 안드레아와 함께 걸어가야죠.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인생을 펼치겠지만, 그저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아들 안드레아와 함께 성지순례 한번 가보고 싶어요.”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른다”(시편 1, 6)이다.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성장 과정을 지켜봤던 의로운 사람 요셉처럼 박씨 역시 기도 속에서 의인의 길을 걸으며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3.11

성경 입문 (3)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03) Q. 왜 성경을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까? A.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있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성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참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자주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다. Q. 성경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알게 되는 유익한 점은 무엇입니까? A. ① 성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줍니다. :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② 모든 피조물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관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주 창조의 신비를 알려 줍니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 ③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④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⑤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7) ⑥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이타적(利他的)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⑦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려 줍니다.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Q. 성전(聖傳)은 무엇입니까? A.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감도를 받은 사도들의 말씀 중에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교회에 맡겨져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계시헌장 9항)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Q. 성전은 저술로 보존되어 왔습니까? A. 성전은 교부(敎父)들이라 불리는 거룩한 저술가들에 의해 특별히 보존되어왔습니다. 성전도 성경처럼 성령의 감도를 받았습니다 Q.. 성전은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전은 어떻게 전해져 왔습니까? A. 예, 성전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기에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단일 위탁물이다.”(계시헌장 10항) 또 성전은 구전(口傳) 형식의 계시로서 성전은 교회의 교의, 삶, 그리고 전례에 의해 전해져 왔습니다. Q. 성전은 성경과 대립 됩니까? A.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전도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같은 성령께서 두 계시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성전과 성경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상호공통되는 바가 있습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