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성경의 노래주님 찬미 노래가 끊이지 않아, 성경에 나오는 28곡 노래의 배경 구조 의미 등 짚어 (민남현 지음/바오로딸/1만 원) 성경 인물들이 노래한 찬미와 감사, 비탄과 애원, 영광과 고난. 하느님 백성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로 부르며 하느님 안에서 구원이 이뤄진다는 진리를 고백했다. 성경은 노래나 음악을 600번 이상 언급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구약을 배경으로 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노래는 절대자인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주제가 주를 이룬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모든 삶을 하느님께 집중했다. 그렇기에 성경의 노래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형은 하느님 업적에 관한 기쁨과 감사의 찬가다. 한나의 노래(1사무 2,1-10), 토빗의 찬미가(토빗 13,1-18), 다윗의 승전가(2사무 22,2-51) 등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탄의 함성이다. 이밖에도 애도의 노래, 애틋한 사랑 노래도 빠지지 않는다. 책은 성경에 담긴 28개 주요 노래를 다루면서 노래가 불린 배경과 노래 구조, 의미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또 우리 일상에 관한 성찰을 곁들여 성경의 노래들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숨쉬는 노래임을 깨닫게 한다. 저자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성서신학 박사) 수녀는 "노래를 부르는 동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하느님은 선하고 자애롭고 사랑이시다는 것"이라면서 "구원사 안에서 하느님 사랑이 그친 적이 없기에 그분을 찬미하는 노래가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6.19
![[오늘을 사는 사람들] 송영화 베네딕토, 중학교 배움터 지킴이](//cpbc.co.kr/CMS/newspaper/2014/07/rc/518432_1.0_titleImage_1.jpg)
[오늘을 사는 사람들] 송영화 베네딕토, 중학교 배움터 지킴이“올바른 삶으로 가톨릭의 향기 퍼트려” 6년이 넘도록 주보를 모아온 송영화씨. 매주 모아온 주보의 일부를 책상에 펼쳐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해줘서 아침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전교생 이름도 다 외워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장현지, 중3). 서울시 동작구의 한 중학교. 이곳에서 8년째 배움터 지킴이로 일하는 송영화(베네딕토, 66, 대방동본당)씨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자한 어르신이다. 배움터 지킴이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되는 인력으로, 송씨는 30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아요. 가끔 가톨릭에 관심을 보이거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모아놓은 주보를 하나 슬쩍 건네주죠.”관심 보이는 이들에게 주보 건네그가 하는 일은 바로 생활 속 선교. 학교에 있다 보니 종교색을 드러내기는 힘들지만, 기회가 될 때면 신자에게든 미신자에게든 가톨릭을 더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서울주보는 교구의 소식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과 연관 지어 풀어낸 글이 많아 미신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또한 학생이 송씨 손가락의 묵주반지를 보고 “아저씨, 이거 묵주반지죠? 저 성당은 안 다니지만 알아요”라고 말할 때면 “묵주반지를 안단 말이야? 세례받으면 아저씨가 묵주 반지 하나 사주마” 하고 대답한다. 학생을 어떻게 해서든 성당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에 호감을 느끼고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띠 두르고 밖에 나가는 것만 선교인가요. 천주교인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사는 게 진정한 선교죠.” 송씨는 성경을 끼고 다니며 ‘예수님 믿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닮고 싶은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의 종교까지 닮고 싶어진다고 말한다.지금은 신앙을 빼놓고는 그의 삶을 말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대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냉담하게 됐고, 주님을 향한 믿음도 마음속 깊은 곳에 갇혀 고개를 내밀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례미사를 앞두고 고해성사를 본 송씨는 사제에게 “지금까지 주님을 잊고 살았던 만큼, 앞으로 남은 삶은 좋은 일을 하며 지내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작은 행동으로 생활 속 선교 그 이후 송씨는 생활 속 선교를 시작했다. 거부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터에도 성모상이나 십자가를 가져다 놓는 대신 그가 듣는 평화방송 라디오 FM이나 책상 위 「벗어야 산다」(홍성남 신부 저) 책을 누군가 알아보면 그제야 하나둘 이야깃거리를 꺼낸다. 성당에 가본 적이 있는지, 이번 주 주보는 봤는지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이에게 슬쩍 하나를 쥐여준다. 그래서 학부모나 선생님도 그를 편한 마음으로 찾아온다.지금까지 본인이 하는 일이 선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송씨. 평범한 늙은이의 이야기가 기사가 되겠느냐고 묻는 그에게서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바로 ‘오늘을 사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평화신문2014.07.09
![[커버스토리-이땅의 평화] 교회 내 발달장애인 현주소](//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925_1.1_titleImage_1.jpg)
[커버스토리-이땅의 평화] 교회 내 발달장애인 현주소 교회는 장애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사진은 2012년 3월 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장애아 주일학교 '푸른누리'반 학생들이 개학 미사를 봉헌하며 평화의 인사를 하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교회 속 발달장애인“저희 본당엔 장애인이 없어요.” 많은 신자가 ‘성당에 장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갸우뚱하며 이같이 대답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장애아 주일학교가 있는 성당을 가보면 사정은 다르다. 서울대교구(11곳), 수원교구(8곳) 등 교구 내 일부 본당이 운영하는 장애아 주일학교를 가보면 장애인들이 가장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간만큼은 어떤 따가운 시선도, 제약도 따르지 않는다.19살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유복녀(마리아, 49)씨는 장애아 주일학교 덕분에 성가정을 이루게 됐다. 그는 “아이가 장애아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덕분에 네 식구 모두가 성당 단체활동을 열심히 하게 됐다”면서 “교회 안에 여전히 편견 어린 시선이 많지만, 신앙에서 얻는 힘이 크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라도 해야 가족과 주변 사람 모두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유씨야말로 행복한 ‘예외’인 경우다. 현재 서울대교구 내 장애아 주일학교는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고, 11곳에서 더 늘어나지도 않는 실정이다. 아이를 장애아 주일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교적 본당은 물론 인근 본당에도 장애아 주일학교가 없다. 그나마 있는 장애아 주일학교도 연령 구분도 없이 10대부터 40대까지 함께해 어려움도 많다. 부모들은 “장애아 주일학교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본당 신자들의 장애인 인식 격차가 여전히 크다”고 했다. 또 “기도와 복음이 더욱 필요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장애아 주일학교가 없고, 신자들의 냉대로 ‘냉담 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입을 모았다.교회 내 희망의 현장들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사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목자들이 있기에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희망을 발견한다. 서울가톨릭발달장애인부모회장을 지낸 김교순(데레사)씨는 “신앙인들은 그래도 위로받을 곳이 성당”이라면서 “교회 안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담당 사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대방동성당에는 조만간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주일학교가 개설될 전망이다. 본당 주임 주수욱 신부가 지난해 초부터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위한 기도 모임인 ‘라파엘라 기도회’를 만든 게 단초가 돼 이후 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주일학교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대방동성당에서 모이는 라파엘라 기도회 부모들은 성경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면서 위안을 얻고, 발달장애에 관한 정보도 공유한다. 주 신부는 “교회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안아주고 사랑해야 한다”며 “교회가 먼저 장애인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때 이 사회를 ‘생명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 등촌1동본당(주임 김효석 신부) 장애아 주일학교 해오름반 학생과 어머니 22명은 지난해 12월 태국으로 4박 5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연예인들의 해외 여행기를 다룬 TV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을 본 한 장애인이 “나도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말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김효석 주임 신부는 “못할 일도 아니다”며 본당 차원에서 특별 지원을 해줬고 해오름반 학생과 어머니들을 모두 비행기에 태워줬다. 해외 여행은 꿈도 못꿨던 어머니들은 “주임 신부님의 배려에 큰 위로를 받았다”면서 “이렇게 우리 마음을 알아주고 또 지원해 주시는 신부님을 만나 정말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원교구 성남동본당 장애아 주일학교인 ‘요한반’ 학생들은 지난 예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판공성사를 봤다. 그 중엔 세례를 받고 난 뒤 처음 고해성사를 한 학생도 있었다. 죄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고백하는 게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에게 고해성사는 또 하나의 어려운 신앙 생활이다. 이에 요한반 주일학교 교사들이 나섰다. 교사들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작은 종이에 간략한 죄목을 써서 고백하도록 가르쳐 달라고 조언해줬고, 그 결과 요한반 학생 10여 명은 무사히 판공성사를 볼 수 있었다.요한반 박은옥(라우렌시아) 교감은 “요한반이 생긴 이래 처음 한 고해성사를 통해 장애 학생들도 일반 신자들처럼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있었고, 신부님껜 장애인을 더욱 이해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2008년 경기도 화성에 문을 연 발달장애인 생활 거주시설인 ‘둘다섯해누리’는 발달장애인들이 걱정 없이 평생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살도록 돕는 시설이다. 주거공간은 물론, 치료 상담실, 극장, 카페, 승마장까지 갖춰 재활과 생활 전반을 돕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 복합공간으로 개관 때부터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주목을 받아 80명 정원을 순식간에 채웠다. 수원교구가 세운 곳이라 신자 발달장애인은 언제든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둘다섯해누리 조성숙(리디아) 사무국장은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이다 보니 부모님들의 신뢰와 만족도가 높다”며 “신자가 아니거나 전례 의미를 모르는 발달장애인들도 신부님이 좋아서 미사에 참례하고, 한데 모여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사목을 위한 조언 주교회의가 발행한 2013년도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동ㆍ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노숙인 등을 돌보는 가톨릭 교회 복지기관은 1176곳이다. 그 가운데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은 약 300여 군데에 이른다. 교구별로는 서울대교구(58곳), 수원교구(37곳), 대구대교구(33곳), 광주대교구(29곳) 순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장애인 복지 시설 가운데에도 장애 정도와 연령에 따라 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따르는 곳이 대부분이다. 부모들이 원하는 ‘평생 돌봄 시설’, 혹은 ‘생애 주기별 지원 센터’ 등과 같은 역할을 하기엔 힘든 것이다. 서울 햇빛자리 주간보호센터 박현숙(클라라) 원장은 “대형 복지관 운영에 치중된 교회 사회복지 구조에서 더 나아가 지역 사회 발달장애인들을 가까이서 세심히 돌봐줄 생활 보호 시설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며 “소규모 생활 시설이 ‘작은 가정’이 돼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장애인들을 더욱 촘촘히 돌봐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가톨릭발달장애인부모회 최경혜(막달레나) 회장은 “교적에 장애인 여부를 표시하는 제도를 둔다면 장애인 신자 기본 실태 파악과 장애인 사목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지보호작업장 허명옥(로사) 시설장은 “본당이 지역 보호 작업장과 연계해 판로를 확보해주고, 신앙생활도 돕는다면 이들의 교회 안팎의 삶이 함께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장 최성자 수녀는 “장애인 프로그램은 복지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각 본당이 복지관과 연계하는 등 노력을 통해 장애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하나만 마련해도 교회 문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정성환 신부는 “본당이 협동조합을 개설해 장애인 보호작업장 판매를 돕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필요한 시설 마련에 투입한다면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점차 확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cpbc2015.01.07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 왜 신들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7398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 왜 신들인가?잡신 믿는 이들 많았기 때문 평신도 신학자인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한님성서연구소) 박사는 현재 평화방송 TV에서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을 진행하고 있다. 주 박사 자신의 저서 「구약성경과 신들」을 바탕으로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크고 작은 이웃나라 사이에서 어떻게 유일신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를 구약성경 뿌리와 고대 근동 신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구약학ㆍ고대 근동어 박사학위를 받은 주 박사는 현재 서강대에서 구약성경 개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구약성경에 대한 올바를 이해를 돕고자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연출 류호찬 PD, 수요일 오전 9시)을 정리, 게재한다. 흔히 신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제만 공부하는 영역으로 여긴다. 실제로 신ㆍ구약성경, 사회교리, 신학 등 강의는 대부분 사제와 수도자가 한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고 사제 업무가 많아지면서 평신도가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평신도 또한 교회를 위해 언제든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소수이지만, 최근 평신도 신학자가 배출되고 있다. 평신도가 사제, 수도자와 조화롭게 교회 일을 나눠 신학을 전했으면 한다. 신학은 우리들의 삶과 함께 가는 학문이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라 우주 원리와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학문 자체가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그런 기쁨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 이 강의를 통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느꼈던 하느님 매력을 전하고자 한다. 구약성경을 집필했던 그 시대 신학자들의 마음을 느껴보자.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고대 근동 세계의 한 부분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주변국과 문물을 교류했던 나라다. 이스라엘인들은 장사를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남을 지속했고 신용을 쌓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작고 약한 나라였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지배하지도 못했다. 결국 나라는 없어졌지만 믿음은 전 세계를 지배했다. 하느님께서 그 작은 나라를 선택하셔서 큰일을 이루신 것이다. 이집트에서 발굴되던 유물이 이스라엘에서 나온다고 해서 이집트가 지배한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대 이스라엘이 마치 천상의 나라처럼 어떠한 교류나 믿음도 없이 하느님이 떠받쳐준 나라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고대 이스라엘은 신비의 나라가 아니라 지구 상에 있었던 평범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겪은 다양한 체험은 우주적 신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신들'이라니? 「구약성경과 신들」이란 책 제목을 보고 왜 '신들'이라고 했는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구약에는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하늘신, 땅신, 해신, 바알신 등 잡신을 믿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판관기 10장 9절을 보면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들이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정녕 저희는 저희 하느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하고 고백하고, 하느님께선 그런 그들을 꾸짖는 모습이 나온다. 열왕기 상권 18장에는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와 바알의 예언자들이 대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엘리야 예언자가 승리한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에는 잡신을 믿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꾸짖음과 회개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이 곧 나의 주인이심을 깨닫는다. 책에는 6개 신들이 나온다. 여러 신들 가운데 굳건한 믿음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던 고대 신학자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구약을 통해 살펴본다면 우리 신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퇴사자22013.01.08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특별 기획 신설 평화방송 라디오, 21일 봄 개편 단행… 평화 TV 요한 23세ㆍ요한 바오로 2세의 삶과 신앙 방영 라디오 105.3㎒(수도권) twitter.com/PBC_Radio 평화방송 라디오(105.3MHz)가 봄을 맞아 개편된다. 청취자와의 소통을 강화시킨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21일부터 방송된다. 또한 기존 프로그램에 다재다능한 외부 진행자를 투입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며 새로운 선교 프로그램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신설해 복음화에 힘쓸 예정이다. 신설 프로그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특별기획, 일어나 비추어라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특별기획, '일어나 비추어라' 진행자 김연범 신부와 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에 기초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간. 김연범(통합사목연구소 소장) 신부와 방송인 바다(최성희, 비비안나)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소개하며 온정을 함께 나눈다. ▶방송일시: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10분~8시 ▨복음의 시작, 마르코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 4대 복음서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본격 성경강좌 프로그램. 박기석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가 진행을 맡아 첫 복음서로 마르코 복음을 강의한다. ▶방송일시: 매주 월~토요일 오전 6시 5분~6시 50분 TV SKY 평화 413 복자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식을 맞아 두 성인의 삶과 신앙을 기념하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더불어 부활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하며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요한 23세·요한 바오로 2세 시성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집전하는 시성미사를 생중계한다. ▶방송 일시: 27일 오후 4시 50분 ▨다큐멘터리 '요한 23세' 소작농 출신으로 가톨릭교회에 획기적인 변화와 쇄신을 불러일으킨 요한 23세의 열정을 다양한 증언을 통해 듣는다. ▶방송 일시: 27일 낮 12시 ▨다큐멘터리 '요한 바오로 2세, 여러분을 찾았습니다' 전 세계를 방문하며 복음을 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리포터가 각국을 돌며 그 흔적을 되짚어본다. ▶방송 일시: 27일 오후 8시 30분 ▨영화 '요한 바오로 2세' ▶방송 일시: 1부 25일 오후 11시, 2부 26일 오후 11시 ▨영화 '요한 23세' ▶방송일시: 1부 26일 오후 3시, 2부 27일 오후 3시 ▨부활대축일 미사 생중계 안내 ▶방송 일시: 20일 낮 12시 (명동성당, 염수정 추기경 집전)/ 20일 오후 5시 10분 (바티칸,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백영민2014.04.16

신약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최광희 신부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담당 잔치에 초대된 종들을 붙잡으라고 명령하는 왕의 모습. 그림은 ‘혼인 잔치의 비유’. 카스파 루이켄 작. 혼인 잔치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서 나란히 전해지며 그 구조와 내용에서 많은 동일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형식과 세부적인 사항들에서는 매우 다르며, 사용되는 단어들도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이해하기 어려운 왕의 진노루카 복음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초대하라는 권고에 그 초점이 있다. 종이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온 이후에도 주인은 더 많은 손님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대의 일상적인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특별한 날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일반적인 예의였다. 루카는 이 예외적인 상황을 강조하며 이를 세 번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3단계 구성의 강조 용법은 사실 마르코(예: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 베드로의 세 차례 배반, 예수님의 세 가지 유혹, 세 가지 씨앗의 비유 등)가 즐겨 쓰는 강조 용법이기도 하다. 마태오와 루카 두 복음서 모두 왕의 진노를 전한다. 사실 잔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를 불태우고 끝장낸다는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장면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임금의 분노에 대한 묘사이다. 잔치에 초대한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는 초대된 이들의 반응도 당혹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준비된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기도 전에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여 살인자들을 죽음에 처하게 하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리게 하는 주인의 모습은 더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불태웠던 서기 70년도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또한 살인자들의 도시에 대한 임금의 복수는 많은 근동 설화들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기에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비유의 내용이었을 것이다.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비유의 맺음 부분(22,11-13)으로 이는 실로 주석가들에게도 오랫동안 어려움을 안겨주었던 부분이다. 길에서 전혀 준비도 없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온 사람이 혼인 예복을 입을 수 있는가? 또 설사 결혼식 예복을 입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질 만큼 큰 잘못인가? 물론, 창세기 45장 2절의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예복을 한 벌씩 주는 모습이나 판관기 14장 1절의 삼손이 혼인잔치의 예복에 관해 내기를 하는 모습 안에서 혼인잔치에 예복이 선사되는 모습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전통이 예수님 당시에도 지속되고 있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하느님 초대에 대한 응답마태오 복음서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강하게 우의화(알레고리화) 되어 있다. 여기서 이 혼인 예복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잠시 살펴보면, 이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이며, 의로움을 행함(3,15:5,20)이 된다. 또한, 사랑의 계명을 행함(22,34-40)이요 자비를 행함(25,31-46)이 된다. “사실 초대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 이 초대는 단지 도시 안에 있는 이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큰길과 울타리 밖까지 즉, 성밖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즉, 도시 내의 사람 중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던 이스라엘의 세리와 죄인들을 포함하여 성밖의 사람들 곧, 이방인들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열린 초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초대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세례는 “악한 자들이나 선한 자들이나” 모두에게 열려 있는 초대이나, 단순히 세례를 받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선택된 이들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초대에의 응답은 매일 매일 일상의 생활 안에서 새롭게 체험되고 또 성장하여야 할 부분이었기에 마태오 복음서는 선택된 이들의 표징인 예복 즉,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고 계신 바일 것이고, 바로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신앙의 쇄신과 당신 안에 머무름이 그 응답으로 요구되는 바일 것이다.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월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에 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4.09.02

한가위 무르익은 곡식처럼 연륜 깊은 신앙 공동체설립 10주년 맞은 전주교구 팔복본당 전주교구 팔복본당 모습. 화창한 햇볕이 내리쬔 8월 31일 주일. 전주교구 팔복성당(주임 나궁열 신부)에서 모처럼 웃음소리가 골목 가득 울려 퍼졌다.본당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날 성전을 메운 어르신 신자들이 미사 후 삼삼오오 모여 삼계탕 잔치를 벌였기 때문. 마당 천막 밑에 모인 어르신들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더운 기색도 없다.이날 잔치는 교구 카리타스봉사단 도움으로 진행됐다. 지역 어르신 100여 명도 함께 초대됐다.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고, 냉담 어르신을 향한 막간 선교도 이어졌다. 소박하지만 평소에 비하면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가득해선지 어르신들은 “본당 생일마다 함께 덕을 본다”고 웃음 지었다. 전주교구에서 가장 작지만, 하나 된 팔복본당을 찾았다.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2004년 덕진본당에서 분가한 팔복본당의 교적 신자 수는 720여 명. 주일 미사 참례자는 120여 명에 그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우스갯소리로 50대를 청소년, 60대를 청년이라 일컫는다. 10명 남짓한 학생들은 토요일 특전 미사 후 모여 교사 없는 작은 주일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이런 본당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작은 어르신 본당’이란 우려도 잠시, 본당의 날 만난 어르신들은 미사 전 성가 연습에 열심히 동참하고, 강론 말씀에도 매우 집중하는 모습이다. 고운 미사보를 쓴 어르신들은 주님의 기도를 부를 때엔 가족처럼 손을 맞잡고 노래했다. 특히 성가 소리는 젊은이들이 와서 들어도 놀랄 정도로 크고 또랑또랑했다. 말씀에 맛 들인 성서백주간 어르신들은 새로 꾸민 아늑한 교리실에서 꾸준히 성경 읽는 소리를 들려준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성당에 오면 그저 좋다”고 했다. 이귀례(안나, 81) 어르신은 “나이가 들어 다니는 게 힘들지만,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노래하면 늘 기쁘다”면서 “가장 작고 열악한 본당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주님 안에 아름답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본당엔 어려움이 많다. 새 신자가 늘어나기는커녕 본당 신자 수는 늘 10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공장과 산업 시설들이 뒤섞인 산업단지 한가운데에 성당이 세워진 탓이다. 기자를 태운 택시 기사도 “이런 곳에 성당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성당을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입해 온 신자들은 성당 모습을 처음 보고선 다른 큰 본당으로 발길을 돌려버리거나, 교적만 옮겨놓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르신들은 매달 교무금으로 평균 2~3만 원가량을 낸다. 혼자 살거나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 많다. 본당은 교구에서 유일하게 지원금을 받는 곳이다.무엇보다 성전 건물이 오로지 컨테이너와 판자로 이뤄져 있어 기초적인 신앙생활에도 어려움이 많다. 공장 근로자들의 숙소로 쓰던 건물을 10년째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성당 반대편 사무실과 식당, 회합실 등은 여러 개의 컨테이너를 연결한 구조 안에 붙어서 자리하고 있다. 남는 창문을 가져다 붙여서인지 유리창 형태도 제각각이다. 여름엔 찜질방, 겨울엔 냉동실이 되기 일쑤다. 각종 자재를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창고에는 천막 지붕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온통 얇은 판자로 덮인 이곳에서 비가 오면 물이 줄줄 새는 것은 그냥 감수해야 하는 등 본당이 가진 고민은 산더미다.작지만 가장 일치된 공동체본당은 얼마 전 1000만 원이란 큰돈을 들여 제의실과 화장실을 새로 지었다. 인부 없이 사목위원들이 두 달 동안 매달려 만들었다. 대로변 쪽으로 정문도 새로 텄다. 덕분에 어르신들 통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미사 후 한 어르신은 기자에게 “웬 청년이 우리 성당에 새로 온 줄 알았다”며 “기쁜 날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반겼다. 김일례(안나, 81) 어르신은 “신부님의 좋은 말씀 들어서 좋고, 전부 우리 가족 같아서 좋다”고 했다.임석빈(프란치스코) 사목회장은 “본당 설립 10주년에 이르렀으니 더 좋은 성전에서 주님께 기도드리고 싶다”며 “어떻게든 어르신들의 신앙생활을 지켜드리고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나궁열 주임신부는 “신앙에도 연륜이 있듯이 우리 본당 어르신들의 믿음은 어디 내놔도 굳건하고 일치돼 있다”면서 “비록 빈약한 성전 모습을 갖췄다 해도 늘 하느님 뜻 새기며 참으로 일치한다면 전 세계 어느 교회보다 주님 마음에 드는 곳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4.09.02
![[출판]예수의 길- 예수의 삶, 가르침 통해 참된 신앙의 길 안내](//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1780_1.1_titleImage_1.jpg)
[출판]예수의 길- 예수의 삶, 가르침 통해 참된 신앙의 길 안내 일본 동경교구가 펴낸 「그리스도인의 입문」을 장익 주교가 편역예수의 길(옮겨 엮은이 장익/분도출판사/8000원) 사람들에게 끌려 온 예수님에게 총독 빌라도가 물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겼는데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25-38 참조) 2000년 전 빌라도의 물음은 오늘에도 계속된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어떻게 사셨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분이 말씀하신 복음은 또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장익(전 춘천교구장) 주교는 「예수의 길」로 이 물음에 답한다. 일본 동경교구가 발간한 「그리스도의 입문」을 장 주교가 편역한 이 책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의 길'이기도 한 참된 신앙의 길을 이야기한다. 책은 어린 손주가 먹기 쉽게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 식히고, 큰 반찬을 잘게 쪼개 숟가락에 얹어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히 설명해 준다. "예수는 언제나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설교는 예수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 그리고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만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 깊게 사물을 보살피시는가를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11쪽). 책은 '하느님은 아버지'라는 가르침으로 시작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주는 '요한 묵시록'으로 끝을 맺으며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을 한 흐름으로 엮었다. 이와 함께 신앙생활에 관한 조언도 챙겨 담았다. 기도생활에 관해선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죽음이 닥친 상황에서도 기도를 바치셨던 예수님 모습을 모범으로 제시한다. "아버지의 아드님이시며 우리의 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기도한다면 어줍은 기도도 틀림없이 아버지 마음에 가 닿으리라고 우리는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111쪽). 일을 할 때는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어떤 일을 막론하고 '주님 안에서' 하는 것이지, 일을 위한 일로 하거나 교만하게 자랑거리로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장 주교는 절판됐던 책을 개정해 다시 펴냈다. 신앙 앞에서 주저하는 이들,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하는 신자들, 냉담하는 이들을 위해서다.특히 삶의 길을 묻는 모든 젊은이에게 이 책이 친절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정판을 썼다. 책 마지막 장엔 그의 바람이 담겨 있다. "「예수의 길」은 첫인사나 다름없습니다. 더 깊은 사귐에 마음이 있으면 성경을 조용히 펴 보시고, 말씀을 나누고 싶으면 가까운 성당을 찾아 주십시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1.05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4966_1.1_titleImage_1.jpg)
[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 특집으로 '성가정 따스한 내 영혼의 보금자리'를 다루며 △세례만 받으면 성가정일까? △특별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성가정의 향기에 취하다를 게재했다. '백점짜리 교사 만점짜리 엄마'에서는 '아들의 야동 폴더,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요?'를 다뤘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송년 르포로 연하장과 새해 달력으로 대목을 맞은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을 찾아가 올 한해를 돌아봤다. 가톨릭 신앙유산 기행 '이탈리아 로마(4)'편에서는 500년을 한결같이 교황청을 지켜 온 바티칸 스위스 근위대를 소개했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돋보기에서는 '한 해를 돌아보며'를 주제로 △경향 돋보기로 바라본 2013년 △성령 안에서 느끼는 기쁨 △밀양 그리고 우리, 또 새로운 한 해를 실었다. 그리스도교 철학자에서는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에 관해 알아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 사적지 순례에서는 국내 자체 교육을 통해 최초의 한국인 성직자를 배출한 근대식 신학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소개했다. 연재 중인 '타벨라 부록'에서는 다블뤼 주교와 갈매못 순교자 3명이 매장됐던 '서짓골' 순례기를 실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를 주제로 세계 각국 4젠(포콜라레운동에 참여하는 만 5세~초등 3학년 어린이)들의 성탄맞이를 특집으로 꾸몄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가 남긴 의미를 짚어봤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도란도란에서는 '성탄절의 추억'을 주제로 성탄절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레지오 영성으로는 △증언의 삶 △보편적 사도직 소명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평신도 사도직에 있어서 사제의 의미를 실었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한 달간 복음 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김종오(예수성심전교수도회) 신부가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를 기고했고, 영성에세이로는 △구유에 누운 아기는 어떤 아기입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빈방이 있습니까 등이 게재됐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집으로 '리뷰(review) 2013년'을 다루며 △신앙의 해를 마치며 △한국경제의 특징과 문제점, 해법 △한국사회 갈등,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언을 실었다. 미래사목 대안에서는 '30대 사목,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알아봤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농아인 사제 박민서 신부를 인터뷰했다. 특집 '낮은 곳, 거기서 그분을 만나다'에서는 가출 청소년 쉼터, 서울 중림동 쪽방촌, 대한문 거리미사, 카쿠만 난민캠프를 찾아갔고, 이주노동자와 구치소에 있는 청소년을 만났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새로봄에서는 '여기에 머무르십시오'라는 주제로 배타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했다. 장재봉 신부의 '성경의 숨은 이야기'는 이번 호를 끝으로 6년간 연재를 마무리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성탄특집으로 동화 '성탄이야기', 성탄카드 만들기를 실었고, 이달의 성인에서는 원조 산타클로스 니콜라오 성인에 관해 알아봤다. 부모님과 함께보는 영화에서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교회와 사회에선 '라삐들에게 들려주려던 노래'를 게재했고, 성경에 담긴 하느님 생각에서는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를 실었다. 정제천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주일 복음 묵상, 매일 성경묵상을 담았다.(바오로딸/2800원) 박수정 기자cpbc2013.11.26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1>](//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3905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절대자를 찾아서판사의 삶에 그리스도 신앙인의 모습을 새겨 넣듯이 살다 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그가 간절하게 절대자를 찾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푸르르!’ 이른 아침 공기를 뚫고 모악산 줄기를 따라 내려간 원평 마을 산 어귀에서 꿩이 날아오른다. 동네는 아직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 중턱 솔숲에서 인기척이 난다. 한 아이가 엎드린 채 두 손을 모아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 제발 제 꼬마 친구를 다시 살려주세요!” 열두 살 김홍섭이 눈을 꼭 감은 채 산중의 추위를 견디며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옆집에 살던 꼬마를 위한 것이었다. 바로 전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가 어두운 낯빛으로 말하였다. “홍섭아, 전씨네 꼬맹이 아들이 죽었다는구나.” 옆집에 달려가 보니 어른들이 포대기에 싼 무언가를 작은 관에 넣고 있었다. 형제가 없이 자란 그에게 친동생 같은 아이였다. 홍섭은 그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보자, 고모가 늘 해준 말이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야. 우리는 열심히 기도로 청하기만 하면 된다. 그분 힘으론 안 되는 게 없단다.” 김홍섭은 한 달 내내 산에 올라가 기도로 청했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일까?’ 신을 원망하지 않았어도 가슴 한 켠에 의문 부호를 품게 되었다. ‘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은 그 전에도 있었다. 여섯 살쯤이었을 때 외삼촌이 병으로 오래 앓다가 죽었을 때였다. 자신을 귀여워해주던 외삼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어린 홍섭은 안타까웠다. 일제 강점기에 유년기를 보낸 김홍섭은 보통학교 입학 전 이른 나이에 개신교 신앙을 접하기 시작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집과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었던 금산교회는 인근에서 널리 알려진 예배당이었다. 지역 유지인 조덕삼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1905년 자신의 과수원에 터를 잡아 지어올린 이 교회는 일명 ‘ㄱ’자 교회로 유명했다. 김홍섭의 고모는 이 교회 장로 집안에 출가한 후 친정 식구들을 교회로 전도하는 데 열심이었다. 특히 어린 조카 홍섭의 손을 잡고 새벽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신앙 분위기와 진지한 성격이 합해져 김홍섭은 자라면서 인간 본질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다. 열심히 탐구하다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어느 날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반대로 의혹은 깊어만 갔다.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죽는다,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혼불멸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유한한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면서 영원을 향한 김홍섭의 갈망은 뜨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신교 신앙에서 적절한 대답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홍섭은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열심히 믿지도 못하지만 그냥 내치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상태의 신앙생활 속에 청년 김홍섭의 암중모색이 시작되었다. ‘새 신을 얻기까지 옛 신발을 버리지 말자’는 격언을 변명 삼아 좌고우면했다. 하지만 스무 살 언저리에 결국 김홍섭은 개신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것을 김홍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신교 전반에 걸친 자의적인 성경 해석이나 목사의 무책임한 설교, 그리고 신도들의 자기 편의에 따른 기도 내용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믿으면 구원이라는 개신교의 주장은 무엇 하나라도 불합리하고 타당성이 결여된 것에는 마음을 두지 못하는 김홍섭에게 위안을 안겨주지 못했던 것이다. 개신교를 떠난 후 김홍섭은 불교를 향했다.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사찰을 드나들면서 숨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이 시절 그는 스스로에게 ‘자유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불교는 김홍섭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인간의 구제에 대한 불교의 염원은 높고 거룩해 보였고, 중생 모두의 성불을 도모하고자 하는 교의는 참으로 평등한 것이라 여겨졌다. 무엇보다 성심성의껏 계율을 지키며 수행해 나가는 불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높은 진리를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수행자, 곧 모든 종교의 신도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불교에서 진리의 그림자를 얼핏 찾아낸 듯한 김홍섭은 그 근원을 캐보고 싶었다. 전국의 고찰을 다니며 산중 거사들을 만나 법문을 듣고 불설을 나누었다. 잡다한 세속의 고뇌를 떨쳐버리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불도를 닦는 그들의 모습에 자기 모습을 겹쳐보기도 했다. 서른 살 되던 어느 날, 김홍섭은 노사(老師) 방한암을 찾아갔다. 석가가 세속을 떠나 출가한 시기가 서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산중출가’의 꿈을 가슴에 품어 보았다. 그러나 세속의 시간표는 그의 마음보다 속도가 더 빨랐다. 조국이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었고 그는 어느새 결혼하여 자식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출가’는 한때의 상념으로 밀쳐 버리고 보통 사람들이 가는 삶의 여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새롭게 태어난 나라의 사법부에서 모두가 선망하는 판사의 삶을 시작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자족한 삶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홍섭은 늘 목이 말랐다. ‘생이란 무엇이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었지만 그를 감돌던 고뇌의 핵심은 여전히 삶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었다. 김홍섭은 서른 중반에 6·25전쟁을 겪었다. 전쟁은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납북된 친구의 생사는 알 수 없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경험을 하며 김홍섭은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부산 피란지에서 판사 김홍섭은 자신이 걸어온 종교 순례의 과정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진짜 하느님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 무렵 그의 머릿속에는 ‘가톨릭’이란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이전에 가톨릭을 전혀 몰랐던 건 아니었다. 개신교 시절부터 알아왔지만 부정적인 의미였을 뿐이다. ‘마리아를 공경하고 교황의 지배를 받으며 유다교의 한 지파인 종교’가 그가 알고 있었던 가톨릭이었다. 어불성설처럼 들렸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불교에서도 완전한 답을 구하지 못하던 김홍섭은 이제 ‘천주의 존재’와 ‘영혼 불멸’을 전제하고 영혼 구원을 위한 실천을 강조하는 가톨릭에 끌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김홍섭의 정신을 자극한 지적 계기가 있었다. 영국의 문인 체스터턴(G.K. 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의 글이었다. 그의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수득을 통해서」는 김홍섭을 매료시켰다. 20세기 초 시인이자 수필가, 소설가로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체스터튼은 원래 철저한 회의론자로서 가톨릭을 비판하던 이였다. “천주교인이 될 바엔 차라리 식인종이 되겠다”고 극언했지만 마침내 가톨릭으로 귀의한 이였다. 하느님은 일상적이고 현상적인 곳에 계시는 분이며, 공동체 의식 속에서 신앙적 확신을 찾게 되었노라고 고백한 그에게 교황 비오 11세는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라는 칭호를 내리기까지 했다. 김홍섭은 타인의 설득이 아니라 홀로 깊은 사색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로써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가 나중에 암시한 바에 따르면 체스터튼의 개종에서 자신도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게 분명해 보인다. 가톨릭은 어째서 진실하다고 말하는가? 피란지 부산에서 영도 바닷가를 거닐며 끊임없이 자문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 빛처럼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톨릭에는 동(動)과 정(靜), 육(肉)과 영(靈)을 고루 달래주고 정화시켜주는 힘이 있다! 정녕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아다니던 참 종교가 아닌가! 전란을 피해 잠시 몸을 두던 곳 바닷가의 봄바람을 타고 날아온 신앙의 씨앗이 김홍섭의 품을 찾아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 바닥에 떨어진 그 씨앗이 언제 덤불을 헤치고 푸른 잎을 틔우게 될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계속> 필자의 말 존경받는 법률가는 있다. 양심적인 신앙인도 있다. 이 둘을 겸비한 이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특출한 법률가이면서 고결한 신앙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인물은 더더욱 적다. 김홍섭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법률의 잣대로 타인을 정죄하는 입장이면서도 절대자 앞에서는 법관이나 죄인이나 모두 작디작은 존재임을 고백했던 재판관이었다. 신앙의 숨을 법의 세상에 불어넣었던 법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법관의 직무 속에서 발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신앙인. 그런 모습을 세상은 사도법관이라고 불렀다. 그가 희구했던 신앙과 정의의 무게추가 오늘만큼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구된 적도 없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김홍섭 판사를 기억하고 흠모하고 따르게 하는지, 그 여정의 발걸음을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려 한다. 백영민2015.02.04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심아기 바르바라동정녀 삶 살며 기도와 묵상 모범 보이다 순교심아기 바르바라신약 성경에서 동정의 참뜻과 초자연적 성격을 완전히 보여준 사람은 요한 세례자와 성모 마리아(루카 1,27ㆍ34), 예수 그리스도다. 특히 성모의 동정생활로 예전에는 굴욕적으로 여기던 동정생활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자 부르심(1코린 7,7 ; 마태 19,11-12)이 됐다. 동정생활의 참뜻은 주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편단심으로 그분의 일에 몸바쳐 사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오직 주님을 섬기고자’(1코린 7,35) 하는 동정생활이 교회 공동체에서 권장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동정생활은 교회 설립기에서부터 비롯됐다. 그 유명한 동정녀 공동체다. 본격적인 수도ㆍ관상생활이야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가 한국에 진출, 일주일 만에 순교자들 후손 5명이 입회하면서 비롯됐지만 동정녀 공동체는 그보다 100년 가까이 먼저 시작된 셈이다. 초창기 한국 천주교회에서 동정녀 순교자로 살아간 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03위 성인 가운데서만 정정혜(엘리사벳, 1797∼1839)와 원귀임(마리아, 1819∼1839), 박희순(루치아, 1801∼1839) 등 12위(11.65%)가 동정 순교자였다. 124위 순교자 중에서도 한국 천주교회의 첫 동정녀공동체 회장으로 활동한 윤점혜(아가타, ?∼1801)와 정순매(바르바라, 1777∼1801), 심아기(바르바라, 1783∼1801) 등이 동정녀였다. 이번 호에선 심아기의 삶과 신앙, 순교 행적을 살핀다. 경기도 광주 태생인 심아기는 오빠 심낙훈(일명 요산)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입교한 뒤로는 ‘신자로서의 본분’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특히 성인들의 모범에 감동한 그는 하느님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로는 집안에만 있으면서 모범적으로 교회 법규를 지켜나가는 삶을 살았다. 대ㆍ소재, 곧 금식재와 금육재는 물론 기도와 묵상을 통해 수계생활에 전념했다. 오직 ‘사랑’ 때문에 죽기까지 순명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처럼 깨끗한 동정생활도 박해로 막을 내린다. 1801년 신유박해로 오빠가 체포되자 그는 포졸들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다렸다. 마침내 포졸들이 들이닥쳐 체포하려하자 그는 포졸들을 막는 어머니를 향해 “너무 슬퍼하지 말고 제가 천주님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라고 의연하게 말한 뒤 박해자들에게 분명히 신앙을 고백했다. 그런 다음 동요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고서 한양으로 끌려갔다. 포도청에서 그는 배교를 강요당하고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신앙에 항구한 그의 생애는 20일의 문초와 심문, 형벌, 시련 끝에 ‘장살(杖殺)’로 꺾였다. 하지만 순교와 동정이라는 두 영관을 차지한다. 그때가 1801년 4월 초(음력)로, 그의 나이 18세였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는 그가 참수됐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천주교 박해에 대한 조선 조정의 기록을 수집 정리한 「사학징의」에는 장살로 기록돼 있어 124위 약전은 이 기록을 따르고 있다. 그에게 교리를 가르쳤던 오빠는 그러나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 전남 무안으로 유배되는데, 동생에 대한 그의 증언이 「사학징의」권2를 통해 오늘까지 전해온다. “저는 제 누이 바르바라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죽게 했는데, 누이는 끝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받아들인 정결의 복음적 권고는 내세의 표지이고, 나뉘지 아니한 마음 안에 더욱 풍성한 풍요의 샘이며, 독신생활의 완전한 정절의 의무를 수반한다’(교회법 제599조). 심아기의 동정생활이 그러했다. 육체적 동정도 지켰지만, 이보다는 마음의 순결, 곧 깨끗한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기도와 묵상생활을 통해 닦아나갔다. 동정생활은 사랑의 신비 차원에서 해석돼야 하고, 심아기는 그러한 동정생활을 통해 순교에까지 이르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백영민2014.08.05
![[가톨릭 신앙의 보물]<19>교회법(1)-수원가톨릭대 최인각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7640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교회법(1)-수원가톨릭대 최인각 신부 법학자들 사이에서 "하늘나라에서도 교회법이 존재할까?"라는 논쟁이 벌어졌고, 교회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격언에서 보듯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는 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도 하나의 사회이기에 규범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교계제도와 조직의 구조가 가시적이기 위함이고, 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임무, 특히 거룩한 성사와 권한을 올바르게 집행하기 위함이다. 교회법 존재 이유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의 주인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법도 교회의 구성원인 하느님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와 신자들의 원활한 삶과 신앙을 위해 있는 것이다. 교회법은 좁은 의미에서 척도나 규범, 규율을 뜻하는 카논(canon)이라고 부른다. 교회의 직권에 의해 반포된 성문법과 그 조항, 즉 교회가 정한 신앙의 진리, 도덕률, 규율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물론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교회법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교회법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는 교회가 지금까지 교회법 자체에 대한 이해와 준수보다는 '교회법 정신'의 실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럼 '교회법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느님 백성을 이끄시는 하느님에게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거나 예언자나 다른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 내용이 교회법 내용이며 정신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 백성이 태어나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 성장해 공동체를 이루며, 하느님 자녀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모든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교회법 정신'이다. '교회법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를 알아야 한다. 공의회 문헌 「계시헌장」에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영적인 공동체인 동시에 교계 조직으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영적 존재인 동시에 가시적 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법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영적인 공동체'와 '보이는 조직'이 잘 결합해 운영하도록 보이는 법을 통해 '봉사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교회법은 하느님과 그 백성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법의 원천은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설정하시고 가르쳐 주신 내용,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가 나갈 방향을 정한 내용 등이 그 원천이다. 여기에 4세기 이후 교회가 공의회를 개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교리와 계명, 전례 및 조직에 관한 규정, 교회가 점차 국가교회로 자리매김하면서 등장한 개혁법령집들도 포함된다. 교회 공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교회법 12세기 들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신학교수였던 그라시아노 신부가 흩어져 있던 법령집들을 모아 집대성한다. 교회법이 법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이후 법들의 중복과 상치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체계적이면서 단순 명료한 법전이 요구됐다. 이렇게 편찬된 법전이 「비오-베네딕토 법전」(1917 교회법전)이다. 제1ㆍ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는 혼란에 빠졌고 교회 역시 내부적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1959년에 교회법 개정 의사를 발표했으나, 공의회 개최가 우선임을 인식하고 이에 전념한다. 이후 전임 교황의 정신을 이어받은 바오로 6세 교황이 교회법적 기초를 마련했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3년 1752조에 해당하는 개정된 「로마가톨릭 교회의 법전」을 반포했다. 이런 교회법은 교회의 공적 가르침을 근거로 한다. 성경과 성전 교부들의 공적 가르침에 법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이 교회법이다. 또한, 교회법은 교리서의 기초에 근거가 된다. 교회의 가장 훌륭한 공적 영적서적은 성경, 교부들의 가르침, 교회법, 교리서라고도 한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묵상하며 읽는다면 더없이 좋은 영성서적일 것이다. 교회법의 적용 대상은 누구일까? 교회법 제1조에 "이 교회법전의 조문들은 라틴(로마 가톨릭) 교회에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회법의 강제성이 세상의 법보다 훨씬 약하다고 이야기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국가법은 드러나지 않는 죄, 양심의 죄 등에 대해서는 법 집행의 강제성과 처벌 조항이 없다. 하지만 교회법은 일체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교회법의 작은 조항 하나라도 어기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조당(혼인장애)을 거는 건 그들의 신앙생활을 막기 위함이 아니다. 더 이상 죄를 양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긍정적 법적 제도다. 조당을 통해서 빨리 교회법 준수를 촉구하는 셈이다. 조당에 걸린 사람일수록 더 빨리 많이 주님의 은총과 자비를 청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는 조당에 걸린 이들에게도 성당에 가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럼 교회법은 왜 존재할까? 현행 교회법전 서두에 "하느님께 항상 충성하면서, 교회에 맡겨진 구원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교회법이 개정됐음을 명시하고 있다. 교회법 마지막 조항인 1752조에서는 "교회법적 공평을 지키며 영혼들의 구원이 교회에서 항상 최상의 법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영혼의 구원이 교회법 최고의 목적임을 천명하는 것이며 교회법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정리=백영민 기자 cpbc2014.04.30
![[복음이야기]<10> 이스라엘 절기- 가을축제](//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233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이스라엘 절기- 가을축제가을에 맞는 속죄와 기쁨의 새해축제 9월 말이면 이스라엘은 새해를 맞는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번째 달인 '타쉬리 달'인 이달에는 3가지 축제가 21일간 지속된다. 시대에 따라 축제 순서는 달랐으나 예수님 시대에는 △신년제(나팔제) △속죄일 △초막절 순으로 진행됐다. 신년제(나팔제)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정월 초하루를 맞아 열흘 동안 새해 축제 신년제를 지냈다. 이 기간에 새해를 알리는 뿔피리를 불어 '나팔제'(민수 29,1; 레위 23,24-25)라 했다. 이 축제는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왕이시며 세상 만물의 재판관임을 뜻하는 축제였다. 가을에 새해를 맞는 관습은 이스라엘만의 고유 풍습은 아니다. 고대 근동 가나안 사람과 메소포타미아 사람들도 가을에 새해를 맞았다. 여름 건기를 지나 가을비가 내리면서 우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대지에 새순이 돋고 온 세상이 푸르러져 고대인 눈에는 이것이 마치 새로운 창조의 과정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 축제일 동안 새해가 달고 풍요롭기를 기원해 꿀에 사과를 찍어 먹거나 석류를 쪼개 먹는다. 석류의 알갱이가 모두 613개라 여긴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613가지 율법을 상징해 석류를 먹었다. 회개를 중시하는 이스라엘 민족답게 유다인들은 이 기간에 지난 한 해 동안 지은 죄와 잘못에 대해 하느님과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속죄와 용서를 구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신의 죄를 씻어 버리는 의미로 강가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바치고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거나 옷을 흔들고 빵이나 돌멩이를 던져넣었다(미카 7,18-20). 이 의식을 히브리말로 '타실리프'라 한다. 또 유다인들은 황소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와 함께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쳤다(민수 29,2-5). 속죄일 나팔제의 마지막 날, 즉 '특별히 거룩한 날들'의 열흘째 되는 날에 유다인들은 '욤 하키푸림'이라 부르는 '속죄일'(레위 16장, 23,26-32)을 지낸다. 이날은 이스라엘 명절 가운데 가장 거룩한 날 가운데 하루로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와 부정을 정화하는 날이다. 구약시대에는 이 날에 일을 그만두고 단식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했다. 오늘날도 이 날이 되면 유다인들은 모든 생업을 그만두고 심지어 대중교통, 대중매체, 국경까지 닫고 종일 단식하고 회당에서 기도하며 하루를 보낸다. 사도행전에도 이 날을 '단식일'(27,9)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 날 대사제는 1년에 한 번 성전 성소에 들어가 황소의 피와 숫염소 피를 손가락에 찍어 속죄판과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리는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 속죄 예식을 마치면 제비로 뽑힌 숫염소 한 마리에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씌운 다음 광야로 내보낸다(레위 16,20-22). 그런 다음 대사제는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은 다음 본래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자기의 번제물과 백성의 번제물을 바쳐,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 예식을 거행했다. 이 속죄 예식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정화됐다. 초막절 속죄일이 끝나면 이스라엘 민족은 타쉬리 달 15일부터 이레 동안 기쁨의 '초막절'을 지낸다. 이 축제는 본래 올리브나 포도 수확제에서 기원한 '추수 감사제'(탈출 34,22)였다. 유다인들은 이 절기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에서 '지상의 나그네'로 유랑생활을 했을 때 하느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신 것을 함께 기념해 '초막' 축제를 지낸다(레위 23,39-43; 시편 42,2-5). 조상들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기에 지금도 유다인들은 10월 중순 초막절이 되면 초막과 천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기거하며 이 절기를 기념한다. 성경 시대 유다인들은 초막절 기간 동안 매일 성전에 올라가 희생을 바치고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그분의 사랑 우리 위에 굳건하고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알렐루야"(시편 117장)를 노래했다. 대사제는 초막절 동안 하느님께 모두 흠 없는 황소 열세 마리와 숫양 두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열네 마리를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와 함께 번제물로 바쳤다(민수 29,13-34).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3.18
![[시사진단] 우리의 반성문, 4·16 특별법](//cpbc.co.kr/CMS/newspaper/2014/07/rc/521848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우리의 반성문, 4·16 특별법오창익 루카(인권연대 사무국장)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지옥의 한 철을 보낸 사내. 하지만 스물 몇 해 전의 일이다. 나이 오십이 넘었고 사업을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이젠 예전의 상처는 다 아문 것처럼 보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폐쇄되었고 경찰청 남영동 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났다. 선배 김근태를 추모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5층 조사실 복도에 서자, 갑자기 몸이 떨렸다. 어깨는 흔들렸고 호흡이 가빠졌다. 말문은 닫혔고 그저 눈물만 흘렀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스물 몇 해 전의 고문을 기억하고 있던 것은 사내의 몸이었다. 고통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보다. 몸에 저장된 기억은 어김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고통을 제대로 잘 기억하는 게 사람의 정해진 몫인지도 모르겠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백 일이 훌쩍 지났다. 가족들은 백 년 같은 시간이었단다. 참혹한 고통의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단 한 명도 구출하지 못한 무능과 무책임을 지켜봐야 했다. ‘에어 포켓’ 어쩌고 하는 희망 고문도 당했다. 책임 피할 궁리만 할 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분통 터지는 시간이었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덧나기만 했다. 가족을 잃은 고통 말고도 숱한 새로운 고통이 몸에 새겨졌다. 가족들은 잊는 것 대신, 기억하기를 선택했다. 잊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기억하는 일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4·16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족들의 뜻은 새로운 법률의 제정으로 모아졌다. 바로 ‘4·16 참사 진실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4·16 특별법)이다. 4·16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고 희생자를 위로, 기억하자는 거다. 피해자를 돕고 재난 방지 대책을 수립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이 법의 목적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4·16 특별법’이 정국의 최대 현안이 되었다. 정부·여당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게는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없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치부하거나, ‘4ㆍ16 특별법’에 들어 있지도 않은 대학 특례입학이나 의사자 지정을 핑계로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 핑계가 부족하니 예산 타령도 해댄다. 유족들은 여당의 횡포에 맞서 단식까지 하고 있다. 비참은 이렇게 반복되고 지속되고 있다. 4·16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끔찍한 고통을 또 겪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직하게 그리고 제대로 기억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300여 명의 희생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4·16 특별법’ 제정은 우리 모두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종의 보속이다. 국가적 반성문이기도 하다. 가톨릭은 기억의 종교다. 그리스도인은 매일처럼, 주님의 말씀을,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미사는 그래서 기억의 향연이다. 당장의 고통은 아프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으로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되는 부활 신앙을 체험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인권의 성경이라 불리는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기억이 낳은 인류의 보배로운 자산이다. 최근 수원교구의 이용훈 주교와 제주교구의 강우일 주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을 찾았다.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유족들에게 힘을 보탰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과 의장의 소임을 맡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리했을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된다. 19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은 1994년 성수대교와 1995년의 삼풍백화점 참사로 이어졌다. 종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서해페리호 사건에서 교훈을 얻고, 제대로 기억했다면, 나라가 거덜 나는 사태는 겪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답은 명백하다. 지금 당장 ‘4·16 특별법’을 만드는 거다. 평화신문2014.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