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선착장에서 만난 인연이승아 마리아?(부산교구 중앙주교좌본당) 26살 처녀가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운명 아닌 운명을 마주해야 했다. 친정 부모를 뒤로하고 선택한 남자와 아이 셋.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 채 눈에 콩깍지가 씌어 살았다. 사랑은 식는 것이란 걸, 다정한 말도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다. 따뜻하고 다정한 말은 꿈속에서나 들어본 추억이 돼 버렸다. 부산 선착장에서 만난 인연이 25년이라는 세월 속에 녹아 버렸다. 그제서야 아버지, 어머니의 가슴을 멍들인 대가를 톡톡히 받으며 비로소 삶의 진실을 봤다. 면목이 없어 아버지, 어머니를 뵈올 용기도 내지 못하고 홀로 눈물만 흘리며 속으로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죽음으로 하직 인사를 올리러 길을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도 죄 많은 나를, 그리고 우리 부부를 하느님께서는 기억해 주셨다. 물론 친했던 자매님의 인도였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부부를 성당으로 이끄셨고, 세례성사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셨다. 최재선 주교님은 견진성사를 받은 우리 부부에게 묵주를 선물로 주셨다. 세상에 그 어떤 선물이 그 묵주보다 값지고 소중할까. 눈시울이 뜨거웠다. 최재선 주교님께서는 특히 부족한 우리 부부 초대에도 흔쾌히 승낙하시고 두 번이나 찾아주셨다. 선물 받은 성경을 세 번 필사한 기적은 좁디좁은 내 마음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성경 필사를 통해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치유가 됐다. 게다가 남편도 술과 담배를 끊고 봉사하는 삶을 살게되는 은총을 하느님께서 주셨다. 무의탁 양로원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한편 무릎 꿇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게 남편의 일상이 됐다. 출ㆍ퇴근 때면 성상 앞에서 정성되이 성호를 긋고 "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주님,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일을 한 번도 빠짐없이 한다. "우리 주님, 우리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이 이제는 우리 집에서 노래처럼 나온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아름다운 노래가 우리집에서 계속되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주님, 사랑합니다."cpbc2013.11.26
![[르포/성서주간 특집]'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학습관'을 가다](//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853_1.0_titleImage_1.jpg)
[르포/성서주간 특집]'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학습관'을 가다"이! 그게 이거구나"... 성경 궁금중 단박에 해결한국 가톨릭 교회 첫 성경 학습관지도,사진,유물모형 시기별로 전시하느님 말씀 이해하는 데 큰 도움 '성경을 알려면, 이스라엘과 근동 지도와 지형, 모형, 사진을 봐라.' 지난 6월 서울 정릉3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본원 이세의 집 2층에 문을 연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소장 최안나 수녀) 학습관에 가면, 이같은 조언에 맞갖은 성경 보조자료를 다 만날 수 있다. 성서주간을 앞두고 찾아간 학습관은 성경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알차다. 지도와 사진, 지형ㆍ유물 모형 및 복제품, 컬러도판, 국내외 성경, 태블릿PC까지 망라했다. 공간은 168.59㎡(51평)에 불과하지만 3개관으로 나눠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성서를 읽는'(요한 2,1-12, 19,25-27)데 부족함이 없다. 1관은 입문(入門)관으로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후 4세기까지 이스라엘과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주변 패권국 역사와 고고학 기록을 정리한 연표와 고대근동지도, 노아민족분포도, 예수님시대 총독들 인명록 등을 담았다. '팔레스티나관'으로 명명된 2관은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과 지형에 토대를 두고 팔레스타인과 인근 지역, 특히 산맥과 계곡, 호수, 도시, 내륙도로ㆍ해안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3관 '예루살렘관'은 예루살렘 지형 모형과 성막 모형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눈으로 보며 체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영적 힘을 얻도록 이끄는 성경교육의 장이다.노아 민족 분포도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이렇게 세 아들을 두었다"(창세 6,10)는 성경 기록에 근거한 이 분포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똑같은 크기로 그렸다. 세세히 살피다보면, 성경을 많이 읽은 이들일수록 '아! 그게 이거구나'하는 감흥에 젖지 않을 수 없다. '낯설고 물선' 땅 이름이 어찌나 친근하게 다가오는지 신기하게 느껴지는 체험도 하게 된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과 유사한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도 지도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성지를 순례해도 보지 못하는 걸 학습관에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과 현지에서 입수해온 유물 모형도 빼놓을 수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성막과 계약의 궤 모형, 제1성전(솔로몬성전)ㆍ제2성전(헤로데성전)ㆍ현대 성전 산과 그 부근 모형, 종 기물, 그릇 등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다인 율법ㆍ관습ㆍ의식의 총체인 토라, 포도주 암포라, 석류 모양 제대용 그릇, 용골형 그릇, 사해 문헌 복제품, 필리스티아 여신상 아스도라, 라틴어ㆍ히브리어ㆍ그리스어 성경 등도 망라했다. 학습관을 찾기에 앞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가 엮고 쓴 「성경지도」(성서와함께)를 읽고 나면 훨씬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학습관을 볼 수 있다. 관람은 매주 금요일 오후 2~5시. 소장 최 수녀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려면 매달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가면 된다. 문의 : 02-941-4626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11.20
![[제2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 주님은 왜 지구를 둥글게 빚으셨을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22/ziz1711086369105.jpg)
[제2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 주님은 왜 지구를 둥글게 빚으셨을까? 유지흔(발레리아, 수원교구 북수동본당) “죄송합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벌써 삼 년째였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도전한 임용 고시. 휴대폰까지 중지시키고 하루 12시간씩 꼬박 도서관에 앉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기에 실망은 더 컸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답을 찾지 못하자, 애꿎게 하느님께로 원망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10년 넘게 새벽 미사 오르간 반주 봉사도 해 왔고, 주일미사도 거르지 않았으며, 남에게 크게 해가 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 저는 우연히 이냐시오 성인의 묵상기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특별히 마음이 머무는 구절을 묵상하고 나 자신은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긴 시련에 대한 풀리지 않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1시간씩 성경 말씀으로 묵상을 했고 기도 중 성찰했던 것을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묵상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딴생각에 빠져 한 시간을 다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도 습관이었습니다. 두 달쯤 지나자 조금씩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둘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고통만 보이던 전과는 달리, 말씀 안에서 저는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지금 닥친 고통에도 주님의 사랑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말씀이 새삼 와 닿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세 번이나 시험에 떨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지요. 미워하셔서 떨어뜨리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셔서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 후 저의 기도는 바뀌었습니다. 다시는 시험에 합격시켜 달라고 떼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교직에서 저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 쓰시고자 한다면 붙여 주시고, 그 길이 당신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온전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곧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합격이었습니다. 기뻤습니다. 합격 자체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제가 바라는 삶과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삶이 일치했기에 더 기쁘고 신이 났습니다. 거친 세상으로 나가기 전 저의 영성을 굳건히 준비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빨리 합격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찔했습니다. 그저 내가 똑똑해 합격했다고 자만했겠지요. 교직에 들어와서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는 소명의식 없이 일했을 것입니다. 조금 힘들어지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 선택했기에 확신과 소명의식을 갖고 교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세 번의 실패는 제게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저처럼 임용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그 친구와는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기다리던 합격이었지만 어쩐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한데 결코 나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원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지구를 “둥글게” 만드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서로 손을 잡으면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이 됩니다. 원 위에서는 잘나고 못난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저 모두가 똑같이 사랑받아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둥근 지구를 만드신 거라면,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원을 만들어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행복만 좇을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도 적극적으로 함께 찾아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림으로써 그것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구의 중심에서 우리를 꼭 붙들어주고 계시는 분이 다름 아닌 바로 “주님”이시니까요. 이렇게 하느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하나둘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묵상 노트 맨 첫 페이지에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소망을 써나갔습니다. 둘러보니 제 주변에 한때는 천주교 신자였으나 냉담 중인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하느님의 품 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기도도 함께 적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늘 털어놓게 되는 지혜로운 대학원 선배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성당을 못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주님을 찾으면 더 큰 힘을 주실 텐데’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었기에 기도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또 아끼는 후배는 7년 넘게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함께 다니던 성당에 더이상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상처가 깊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주님의 이끄심으로 그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믿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8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그간 두 사람의 삶에 거센 풍랑이 일었습니다. 선배 언니의 첫째 아들에게 백혈병이라는 병마가 찾아와 언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쓰러뜨리는 분도 또한 살리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믿고 언니에게 주님의 힘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저의 체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언니를 포함한 제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을 적어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노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후 언니에게서 문자 하나를 받았습니다. “언니는 그 날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언니도 그 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 심지어 앞집 아주머니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에 꼭 덧붙인단다. 주님, 혹시 미처 제가 알지 못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돌보아 주시라고. 언니는 요즘 너를 통해서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내게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아.” 언니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이웃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하기에는 무거워 보였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를 올리는 것만큼이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는 일” 또한 중요함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참례해 주님의 말씀에 귀를 열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갔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성당에 나갈 것을 권했을 때 언니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정말 하느님이 내 머리 위로 은총을 쏟아 부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런데도 이상하게 성당으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정작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어떻게든 언니의 마음을 주님께로 다시 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말이 언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머리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날 언니를 위해 기도해오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분명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순간 머리에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반드시 이 순간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벅찬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 성령께서 제 마음에 오셔서 풀어놓고 가신듯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언니, 내 얘기 좀 한 번 들어봐. 어떤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급 담임교사를 하면서 심성이 곱고 재능도 출중해서 크게 될 것 같은 제자 하나를 만났어.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았지. 덕분에 그 아이는 좋은 대학에 입학도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어. 그런데 있지 그 아이가 더이상 선생님을 찾아오지 않는 거야. 언니, 그때 그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실까?” 언니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언니는 품고 있던 의문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렴풋이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저의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끄심이 분명 있었습니다. 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언니에게 지금 닥친 시련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축복이었음을 고백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임을 말입니다. 대학원 후배도 교사 임용 고시에 몇 번 실패하자, 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시험을 변경하였으나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시련 속에서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더욱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한 번 성당에 나갈 것을 권했을 때 보였던 완강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 잠시 화살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제 입술을 통해 당신의 지혜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멘.’ 용기를 내어 저의 체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후배를 위해 오래전부터 기도해 왔다는 말도 함께 전했습니다.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후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언니는 대체 내가 뭐라고 날 위해 그렇게 기도를 하고 애를 써?”라고 물어왔습니다. “언니가 하느님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야.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의 뜻을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언니 혼자만 이 행복을 느끼면 안 될 것 같아 너에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은 거야.”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는 사는 게 참 재밌겠다. 나도 한 번 하느님을 만나고 싶네.” 곧바로 저는 후배를 성당으로 안내했고 12년간의 냉담을 깨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을 위한 기도를 올렸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일하시기를 원하는 때가 있음을, 또 그때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기도해야 함을 두 사람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저에게 최고의 선교지는 학교였습니다. 신자인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손을 잡고 함께 학교 운동장을 돌며 묵주기도를 바쳤고, 수능을 앞두고는 묵주 고리 기도를 바치자고 제안하면서 신앙을 키워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는 교사로서 훈육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전달되도록 애썼습니다. 복음전파는 다름 아닌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느님은 형편이 어렵거나 사랑이 결핍된 학생들에게 저의 눈을 돌리셨습니다. 그러던 중 수원의 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한 아이와 특별한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범상치 않은 안경을 쓴 모습에서 영락없이 예술가의 기질이 묻어나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였습니다. 계산하지 않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유머와 인격까지 갖춰 ‘저 녀석 정말 커서 뭐하나 크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픔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싶었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서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어느덧 고3이 된 아이는 대입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 쓰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제자의 몫이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제가 보고 느낀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습니다. “수지(가명)야, 선생님은 디자이너를 꿈꾸던 네가 1학년 때, 불가능해 보였던 ‘수학·과학 영재학교’에 도전해서 결국 당당히 선발되었을 때, 편견과 두려움을 깨고 뛰어든 너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냈었어. 그리고 지난여름 밤 공원에서 우리가 나누던 대화 기억나니? 부족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그 ‘결핍’이 널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던 너의 말. 선생님은 그런 모습에서 너의 희망을 본단다.” 며칠 뒤 자기소개서를 나름대로 잘 완성해 제출했다는 말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비밀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저의 내면 깊이 있는 생각들을 쉽게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밖에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통찰력과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 주시는 선생님의 관심은 자신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한 번 더 그 아이를 만나며 마음에 품지 못했던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사실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지만 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천주교 신자랍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제가 만난 것도, 또 이렇게 가까이에 살면서 자주 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주부터 당장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저도 성당에 나가야겠어요.”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전교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다가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신자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이 아이와의 인연에도 하느님의 뜻이 숨어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정말 오묘하신 신비로 저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장 그 주에 아이의 손을 잡고 제가 다니는 성당에 가 고해성사를 보게 하고 신부님, 수녀님께도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주님의 도구로 쓰시려고 저를 교직에 보내셨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3주가 흐른 후 아이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지원한 대학에 1차 합격을 한 것입니다. 이제 면접 통과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을 잘 통과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아이와 조용한 찻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면접에 자주 등장하는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제 예상을 비껴갔습니다. 평소의 모습대로라면 당차고 개성 넘치는 답변을 해 저를 놀라게 했을 터인데 잔뜩 주눅이 들고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면 하느님의 기쁜 영이 충만했을 텐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선생님이랑 성당 간 이후로 주일미사 거르지 않고 잘 나가고 있지?” 아이는 쭈뼛쭈뼛 대답을 못 했습니다. 순간 아이에게 실망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을 보고 시작한 신앙생활이 단단하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욕심이었습니다. 일대일로 하느님을 만나고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체험담과 함께 묵상기도 하는 법을 아이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설명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미사 책을 꺼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 그 날의 복음 말씀을 펴고 찬찬히 함께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와 닿는 구절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치 않구나’라는 구절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지야, 선생님은 이 구절이 꼭 주님께서 너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구나. 주님께서는 너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주시고, 너의 재능을 발현시켜 너를 도구로 쓰시고자 밝은 앞날을 이미 다 마련해놓고 계신데, 그 잔치에 가지 않고 있는 너에게 하시는 말씀 말이야.” 아이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무릎에 떨구고는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일에도 미사를 하나요?”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성당에 갈 것임을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아이는 신앙생활을 잘 이어 나가고 있고, 대학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도 들려주었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부정적인 상황에도, 지나고 보면 모두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저는 다시금 체험했습니다. 저는 평소 아이들에게 점을 보러 가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점집에 가는 이유는 대체로 불안한 미래 때문이거나 혹여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굿이나 부적으로 액운을 막아볼 요량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살면서 매일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다고. 다만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받아들이는 자세,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본 시련 안에는 하느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분이 마련해 놓으신 영광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련을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마저도 기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 하느님은 진정 “기쁨”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이름을 한자 알 지(知)와 즐거울 흔(欣)을 써 지어주셨습니다. 알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 겸손하게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저는 제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주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지으신 이 둥근 세상 속에서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하나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신 주님, 이제와 영원히 사랑하겠나이다. cpbc2015.02.11

복음화된 신자들이 교회 쇄신·사회 복음화 앞장서야교황 방한 후속 심포지엄, 교황방한위원회 영성신심분과 주최 교황방한위원회 영성신심분과가 10월 25일 개최한 교황 방한 후속 심포지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남긴 메시지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토대로 한국 교회의 쇄신과 사회 복음화 방안을 찾는 자리로 주목을 받았다. 심포지엄은 조규만 주교 기조강연과 곽승룡·이재룡 신부 발표에 이어 박문수 박사·박동호 신부 논평으로 진행됐다. ▨ 조규만(교황방한위원회 집행위원장,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기조강연이 심포지엄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하나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커다란 은총의 효과로 지속하기를 바라는 하나의 몸짓이다.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보여준 행동에는 그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과 강론, 그리고 곳곳에서 남긴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복음의 기쁨」은 △핵심을 놓치지 않고 △교황의 사목적 체험이 녹아 있으며 △교황 특유의 유머 감각이 담겨 있고 △앞선 교황들 문헌과 달리 파격적 어투가 드러난다는 것이 특징이다.교황 방한으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교회, 이 시대 이 나라를 위한 희망의 지킴이, 순교 선조들의 애덕과 신앙에 관한 기억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하는 교회여야 한다. 「복음의 기쁨」이 말하는 선교는 ‘새로운 복음화’라는 이름으로 △성령의 불로 신자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 △세례는 받았지만 마음은 교회를 떠나 있는 이들이 회개를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 이웃을 복음의 기쁨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되자. ▨교황 방한의 메시지와 「복음의 기쁨」에 나타난 한국 교회의 쇄신과 변화 곽승룡(대전가톨릭대 총장) 신부는 발표에서 한국 교회의 쇄신과 변화에 앞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쇄신과 변화를 주문했다. 그리고 교황의 말씀을 빌려 쇄신과 변화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서 비롯되는 기쁨의 생활이라고 강조했다.곽 신부는 교황이 요구하는 교회의 쇄신과 변화를 △건실한 분권화와 개별 교회의 개혁 △사목자의 쇄신 △본당 사목구의 쇄신 등으로 나눠 짚었다.곽 신부는 “교황은 교회와 세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교황에게 결정적이거나 완벽한 답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교황은 중앙 집권에서 벗어나 건실한 ‘분권화’를 촉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곽 신부는 또 “교황이 요청하는 사목자의 쇄신은 사목자가 신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뒤에서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며 특별히 자기 공동체의 마음을 잘 아는 강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강론은 무엇보다 주제가 통일되고 문장이 명료하고 일관되어 사람들이 강론자의 말을 쉽게 따라가고 그 논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곽 신부는 “행정적 측면을 사목적 측면보다 우선시하는 교회 구조가 선교를 중심에 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생각”이라면서 본당 사목구의 선교 지향적 변화야말로 더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이라고 말했다. 곽 신부는 “교황이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예수님처럼 가난과 정의의 두 가지 수레바퀴를 몸소 실천하고 앞장서기 때문”이라며 교황 방한이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청년들이 세상에서 ‘일어나 비추어’ 하나 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논평박문수(프란치스코,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박사는 논평에서 가장 시급한 한국교회의 쇄신 과제는 ‘과연 누가 먼저 솔선하며 모범을 보이는가’라고 밝혔다. 박 박사는 또 “물질화되고 세속화된 신자들의 낮은 복음화 의식이 큰 문제”라며 사제 쇄신보다 더 필요한 것이 평신도 쇄신이라고 지적했다. 박 박사는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이해에 기초한 영성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면서 평신도가 먼저 나서 자신과 교회를 쇄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설 것을 요청했다.▨「복음의 기쁨」과 사회 복음화 과제이재룡(서울 혜화동본당 주임) 신부는 발표를 통해 「복음의 기쁨」이 사회 복음화와 관련해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주요 과제를 11개로 정리했다. 첫째 과제는 사회 복음화의 전제로서 신자 개인의 복음화다. 이 신부는 개인 복음화의 첫걸음으로 복음에 맛들이기 위한 성경공부를 꼽았다. 둘째는 역대 교도권의 풍부한 사회교리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간추린 사회교리」를 철저히 공부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재무장하는 것이다. 셋째는 온전한 선교 체제로 교회 구조 재편, 넷째는 지구와 본당으로의 대폭적인 권한 위임을 통한 탈중심화, 다섯째는 강력한 성직자 쇄신 프로그램의 실행이다.이 신부는 이 밖에도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사람 사는 곳으로 나가 함께 어울리며 고락을 함께하는 교회 되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일을 주력 사업으로 펼치기 △가난과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어 그것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려고 노력하기 △적극적으로 정의사회 구현 운동에 참여하기 △사회로부터 내처진 이들이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교회 되기 △가난한 이들이 모여 해방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교회 공동체 되기 등을 제안했다.이 신부는 “목표만 제시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들을 함께 찾지 않는다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도출해내고 그것들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논평박동호(서울 신정동본당 주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부는 논평을 통해 “한국 교회에서 ‘사회사목’은 기껏해야 교회의 사목 활동에 덧붙여진 부수적인 무엇쯤으로 간주된다”면서 사회 복음화에 대한 한국 교회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박 신부는 그 일차적 원인을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사목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보편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았다. 공의회 가르침을 포함해 교황의 회칙, 강론, 연설들과 교황청의 공식 문헌들이 보다 풍부하게 교회 홍보 기관을 통해 알려져야 하고, 이에 대한 사목자들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함에도 사목자들이 이 의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 박 신부의 지적이다. 박 신부는 따라서 “말씀의 봉사자인 사목자들이 사회사목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 복음화에 대한 사목자의 관심과 분발을 촉구했다. 글ㆍ사진=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4.10.29
![[가톨릭문화산책] <10>문학(2)-성경이 가르쳐준 인류 구원 방법-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026_1.0_titleImage_1.jpg)
[가톨릭문화산책] 문학(2)-성경이 가르쳐준 인류 구원 방법-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타락의 삶 가운데서 구원자 그리스도를 갈망하다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라 넵스키 수도원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도스토예프스키가 25살 때 쓴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중년의 하급관리 마까르와, 고아 신세로 갖은 고난을 겪으며 부유하고 탐욕스런 지주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하는 가엾은 처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들로 이뤄진 서간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섬세하고도 간절한 묘사에 감격한 당대의 유명 평론가 벨린스키가 그를 와락 껴안으며 "이 소설을 정말 당신이 썼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러시아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도스토예프스키는 2년 뒤 또 다른 러브스토리 「백야」를, 다음해엔 「첫사랑」을 발표한다. 모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성경과 만남'이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 소설문학사의 최고봉'이라는 별칭을 얻지 못하고 연애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빼앗아간 8년 세월 역사학자 E. 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 Dostoevsky 1821~1881」란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상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던 독서토론회 '페트라셰프스키'에 가입한 것이 죄가 돼, 총살형 선고를 받아 사형 집행장에 끌려갔다 황제 특사로 감형돼 8년 형을 받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투옥된 것은 1849년, 28살 때로 「첫사랑」을 발표한 직후였다. 당국은 페트라셰프스키 회원들을 사형시킬 의도는 애당초 없었고, 이들처럼 작당해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경고를 전 러시아에 하려는 의도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23명 중 사형수가 된 20명을 집총한 병사들 앞에 서 있게 한 뒤, 황제의 은전으로 갑작스레 감형해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낸다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페트라셰프스키 회원 사건으로 독서토론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 자유주의 사상을 흠모했다가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간다는 사실이 러시아 전역에 퍼졌다. 사람들은 '자유'와 '해방'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됐다. 카는 전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강도에 의해 죽게 될 사람, 이를테면 밤에 숲속에서 그의 목이 잘리게 될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형의 경우,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고 명확성만이 남는다. 명확한 선고가 있고 도망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온통 두렵기만 한 고통이 깃든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처럼 상상할 수 없고 아주 쓸모가 없는 굴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형 선고가 낭독되고 이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자, 너는 사면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그렇게 당해본 자는 아마 알 것이다. 이러한 고통, 이러한 공포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말했다. '인간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성경을 손에 쥐고 읽고 또 읽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8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됐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사형집행이 정지된 날부터 4년 동안 발목에 족쇄를 차고 살아가게 된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끌려가는 도중 후 토블스크란 도시에서 6일간 머무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중간 기착지인 이곳에서 인생 전환을 이룬 하나의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사형 선고와 집행 직전의 감형보다 더 극적인 일이었다. 2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 데카브리스트 난(12월의 난, 나폴레옹 시대에 자유사상을 접한 귀족출신 청년 장교들이 농노제 폐지와 전제 군주제를 반대하며 일으킨 반란)의 생존자들이 그때까지도 형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부인이 이곳에 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이 여인들은 동토요 오지인 시베리아로 떠나는 죄수들에게 돈과 음식과 옷가지를 선물하면서 책도 한 권씩 주었다. 바로 성경이었다. 죄수들이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인 성경을 받은 일행은 사흘을 더 여행한 뒤 옴스크의 감옥에서 4년을 살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서토론회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일도, 성경을 숙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름빚을 갚으려 소설을 쓰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성경만 수십 번 읽는 동안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온다. 그 덕에 그는 고통을 통해 영성을 얻고, 하느님께 대한 경배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행해야 구원이 이뤄진다는 그리스도 가르침을 문학적으로 구현하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군복무를 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술주정뱅이의 아내인 마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됐다. 술주정뱅이가 죽자 아들까지 있던 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자리보전을 한다. 그 무렵 그는 사면 복권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 어디를 가나 도박을 했고, 빚을 지면 형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썼다. 빚을 갚으려고 소설을 쓰다 간질이 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망나니 삶의 나날이었다. 사랑하던 여인에게 버림받고 다시 두 여인을 사랑했으나 차이고 만다. 세 여성 모두 처음에는 유명한 소설가라는 말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상습 도박꾼에다 간질병 환자임을 알고는 떠나가는 식이었다. 생활은 엉망이었지만 노름빚을 갚기 위해 「죽음의 집의 기록」(1862), 「지하 생활자의 수기」(1864), 「죄와 벌」(1866), 「백치」(1868) 등을 써나갔다. 작품의 주제는 궁극적으로 타락한 자의 신성 획득이었다. 죄를 짓고 반드시 뉘우쳐야 한다는 것을 작품으로 설파했으니 어찌 보면 자기구원의 방법이 소설쓰기였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리스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한 작품이 1879년부터 1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연재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카라마조프가의 둘째 아들 이반이 동생 알료사에게 얘기해주는 식으로 전개되는 '대심문관'편은 「백치」의 주인공 미시뀐 공작의 간질발작 장면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백미이다. 이반은 16세기 때 지상으로 내려와 기적을 행하는 예수를 옥에 가둬놓고, 아흔 살의 수도승 대심문관이 예수를 심문하는 장면을 설명해주며 그리스도교 본질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눈앞에 안 보이는 신을 사랑해야 하나, 헐벗은 이웃을 사랑해야 하나…. 도스토예프스키 전기를 쓴 또 한 사람인 콘스탄틴 모출스키는 소설의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신의 본성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 구원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놓은 신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는 구원자,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유일한 해방자였다. 대심문관은 어두운 생각과 불타는 열정으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를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폭로에 입맞춤으로 대답한다. 그는 굳이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분의 존재 자체로 그의 적의 주장은 위력을 잃고 만다." 타락한 삶 가운데서도 구원의 빛을 찾으려 했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문학으로 잘 승화시켰음을 모출스키는 밝히고 있다. #사랑의 승리 도스토예프스키는 마흔다섯살 때 악덕 출판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장편소설을 정해진 날까지 못 주면 위약금과 함께 앞으로 9년 동안 쓰는 작품의 저작권을 넘긴다는 내용에 서명한다. 그때 급히 구한 속기사 안나는 스무 살이었다. 쓸 시간이 없어 구술하면 받아 적는 식으로 소설을 완성시켜 나갔다. 안나는 천재작가의 위대한 소설에 감동해 그를 내심 사랑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자기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준 어린 처녀를 사랑해 새로운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는 수법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이렇게 험한 생을 살아온 사람의 사랑 고백에 그녀는 '네'라고 답했을까요?" 안나는 벅찬 가슴으로 이렇게 답했다. "나라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생명이 다하도록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할 겁니다." 청혼이었고 결혼 승낙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도스토예프스키 생애 최대의 도박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때 완성한 소설 제목이 '도박자'였다. 이 도박은 노름꾼 소설가를 구해준다. 안나는 어떠한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남편이 소설을 쓰게 뒷바라지해 결국 인류에게 구원의 빛을 전하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케 했다. 소설을 탈고한 3개월 뒤에 그는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이 소설의 첫 페이지는 헌정사다. "안나 그리고 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에게 바친다." 그는 생애 최후의 소설을 아내에게 바쳤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이 나온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는 또 생애 최고의 소설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이승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퇴사자22013.03.27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1>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왜 중요한가](//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66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왜 중요한가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신다성경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로 응답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사진은 한 본당 어르신들이 성경 통독을 마치고 환하게 웃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를 '신앙의 해'(2012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로 선포했다. 현대 교회가 처해 있는 심각한 신앙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허약한 신앙'으로 진단하고 "신앙의 해가 신앙의 기초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한 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이란 하느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느님 초대를 듣기 위해서는 말씀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 그 사람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친분을 계속 유지하든 관계를 끊든 결정하게 된다. 어떤 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불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알려주지 못한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 또 "신앙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자녀들 신앙은 본인이 성장한 후에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된 신앙인은 다른 이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 후 상대방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다. 하느님을 모르기에 설명도 해주지 못하고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참 좋은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참 좋으신 하느님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원의(願意)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을 믿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하느님 상(像)을 만들어 놓고 나만 챙겨주길 바란다. 이런 경우에 하느님은 재물만을 관장하는 신(神) 혹은 건강만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이런 믿음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고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부분만 담당하는 분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떠나는 일까지 생긴다. 하느님은 우리 소원을 다 이뤄주시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을 올바로 알아보고 올바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느님은 먼저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됐다. 이처럼 당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계시(啓示)'라고 하는데 하느님 계시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루신 업적들과 말씀들을 통해 밝혀진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에 관한 영원한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천상적 구원의 길을 터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원조들이 타락한 후에는 구속(救贖)을 약속하시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 주셨고, 선업에 항구하며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인류를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성조들을 통하여, 그 뒤에는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민족을 가르치시고 당신만이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이시요 섭리의 아버지이시며 정의의 판관이심을 알도록 하셨고,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계시헌장」 3항).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이 시대에 와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시헌장」 4항). 이처럼 구원의 역사 안에 드러난 하느님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특별히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명시적으로 계시가 전해진다. 성경은 하느님 계시가 성령의 감도(感導)로 글로 담겨 표현되고 보존된 것이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고 역사 안에 나타나신 그분의 현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인류 구원을 약속했다는 의미에서 '계약(契約)'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인 구약(舊約)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새로워진 계약인 신약(新約)으로 구분된다. 구약에는 구원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세심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시어, 언약을 맡기시려고 특별한 배려로 당신 백성을 뽑으셨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고(창세 15,18 참조)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셔서(탈출 24,8 참조), 몸소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백성에게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당신을 참되고 살아계신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시는지 그 방법을 이스라엘이 체험하게 하시고, 하느님께서 친히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그 방법을 날로 더 깊고 더 분명하게 깨달아 만백성에게 더욱 널리 알리게 하셨습니다"(시편 21[22],28-29: 95[96],1-3: 이사 2,1-4: 예레 3,17 참조). (「계시헌장」 14항) 신약 안에서 구약은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때가 찼을 때(갈라 4,4 참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고, 행적과 말씀으로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홀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요한 6,68 참조) 그분께서는 땅에서 높이 들리시어 모든 이를 당신 자신에게 이끄셨습니다(요한 12,32 참조). 그러나 이 신비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일으키고, 교회를 불러 모으도록 성령 안에서 계시되었습니다"(에페 3,4-6 참조). (「계시헌장」 17항)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주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로 응답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5-16).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적은 단순히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서 만족과 행복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충만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불행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 계명을 따르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면 손해보고 희생해야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남보다 더 희생하고 용서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스트레스가 많을까. 오히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좋아한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진 재물과 지위가 부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선하고 겸손하며 희생하는 사람, 바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치관의 혼란과 이기적 윤리관으로 문란해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 자기만 옳다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게 잘 살아가는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찾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욕심과 불완전함으로 얼룩지지 않은 참된 이치이자 참된 도리, 즉 '진리(眞理)'다. 진리는 불변한다. 완전하고 전능한 존재이신 하느님 뜻과 가르침이 바로 진리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재물과 지위,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하느님께 받게 될 영원한 생명만이 행복이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안 향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퇴사자22013.01.15
![[주님께 찬미 노래를]<7> 서울 국악성가합창단](//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106_1.1_titleImage_1.jpg)
[주님께 찬미 노래를] 서울 국악성가합창단우리말 말씀이 우리 선율로 불리는 감동 지난해 10월 수원 분당성요한성당에서 열린 제2회 정기연주회에서 강수근 신부가 서울 국악성가합창단을 지휘하다가 신자들이 화답송을 할 때면 신자석 쪽으로 돌아서서 지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 국악성가합창단 안 배웠지만 우리 뼈와 살에 녹아 있는 가락. 국악이다. 물론 호불호가 엇갈린다. 그렇지만 한번 우리 가락의 맛을 본 이들은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김용실(노엘라, 58)씨도 그랬다. 서양 선율로 성가를 부를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절절함 때문에 국악 성가에 푹 빠졌다.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대교구 국악성가합창단에 입단하면서 처음 국악 성가를 접했지만, 성가 자체가 기도가 되고 찬미가 되고 치유가 되는 체험을 했다. 이런 감동을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겨주는 서울 국악성가합창단은 요즘 성탄 음악회 연습으로 바쁘다. 평소엔 매주 월요일마다 왕십리성당에서 한차례 해오던 연습을 월ㆍ화ㆍ수요일 세 차례로 늘렸다. '국악 성가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예수 그리스도 고난수도회 강수근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레퍼토리는 15곡이다. 성탄성가 모음과 성모님 일생(국악 성가), 크리스마스 캐럴 모음, 성탄 국악 성가 등이다. 국악성가합창단이라고 해서 국악 성가만 부르는 건 아니다. 서양 선율에 기반하는 성가도 함께 부른다. 이는 국악성가합창단을 이끄는 강 신부의 열린 사고에서 비롯됐다. 국악은 단성부로만 가야 한다거나 국악과 서양음악을 섞어서는 안 된다, 혹은 국악에 서양음악의 화성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국악 또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여긴다. 합창단도 발성 자체는 서양식으로 하지만, 밀고 꺾고 당기면서 소리에 맛을 내는 정교한 시김새는 국악식으로 한다. 그래서 서울대 국악과(한국음악과) 출신에 국립국악단 대금연주자로 활약했음에도 강 신부는 다시 교황청 성음악대학에서 공부했고 성가 토착화에 힘을 쏟는다. "서양음악과 국악을 음식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양음식은 뜨겁거나 차지 않고 미지근하거나 부드럽습니다. 반면에 한국 음식은 뜨겁거나 차고 맵거나 짜고 아주 자극적이지요. 음악도 똑같습니다. 서양음악은 부드럽고 세련되고 정제돼 있으며 감미롭고 아름답습니다. 악기도 그에 맞게 개량돼 있고, 기법도 순화돼 있지요. 그렇지만 국악은 토속적 음악 그대로입니다. 투박한 느낌이지요. 그런데 그런 국악에 다들 감동합니다." 단원들은 연습을 하다가도 이처럼 투박한 국악 선율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훌쩍대기도 한다. 이는 성경 말씀, 특히 시편이 우리 가락에 풀려나오는 체험적 감동에서 기인한다. 라틴말 기도문을 가장 아름답게 전달하는 게 그레고리오 성가이듯, 우리말 기도문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건 역시 우리 국악 성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종순(아녜스, 61) 국악성가합창단장은 그 이유를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 말씀이 우리 선율에 실려 나오는 감동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어린이합창단을 포함해 25년간 합창단원으로 활동했을 때는 그저 흉내만 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국악 성가 합창을 한 뒤엔 성가를 제대로 알고 느끼며 부르는 맛이 들었다는 것이다. 4년째 국악성가합창단원으로 활동 중인 양경민(요한 에우데스, 33)씨도 "성경 말씀을 우리 가락, 우리 선율에 실어 부른다는데 국악 성가 합창의 매력이 있다"고 귀띔한다. 이런 매력이 있지만, 서울 국악성가합창단이 생긴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2010년 1월에 생겨났다. 이에 앞서 광주 한울림합창단, 의정부 가톨릭국악합창단, 수원 한울림합창단 등이 먼저 국악 성가 보급의 씨앗을 뿌렸다. 이렇듯 국악 성가 합창단은 몇 안 되지만 비전은 아주 밝다. 알게 모르게 연주회나 상업광고 등에서 국악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단원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는 일부 마니아층에 남겠지만 국악성가는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강 신부는 "아직도 교회음악계에선 국악 성가를 생소하게 느끼지만, 첫 국악 미사곡이 창작된 지 2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웬만한 성당에선 국악 미사곡을 다 따라부르는 걸 고려하면 국악 성가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내다봤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