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가사’ 용어 도입한 하성래 선생 팔순 기념 논총 발간천주가사, 고전문학의 한 장르로 정립시켜 우리 학계에 ‘천주가사’라는 용어를 도입한 원로 국문학자이자 교회사연구자인 하성래(아우구스티노) 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이 20일로 팔순을 맞았다. 이에 서종태(스테파노)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등 후진들은 최근 「규운 하성래 선생 팔순 기념논총」을 발간하고, 17일 서울 화양동 무스쿠스 건대점에서 기념 논총 봉정식을 가졌다. 봉정식에는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수원교회사연구소장 정종득 신부 등 성직자와 교회사학자 30여 명이 함께했다.하 박사는 “별로 업적도 없는 사람인데 후학들의 권유에 못이겨 기념논총까지 내게 돼 부끄럽기만 하다”고 겸양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1971년 「한국언어문학」에 국내 첫 천주가사 연구 논문을 발표한 데 이어 1985년 고려대에서 「천주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논문을 낼 정도로 천주가사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남겼다. “가사문학을 연구하다가 천주가사 연구에만 매달리게 됐는데, 그야말로 맨땅을 파는 일이었지요. 선행 연구자가 단 한 사람도 없어 정말 외로웠습니다. 언젠가 지인이 왜 하필 천주가사를 했느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아무도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고 말았지요.”하 박사는 천주가사도 불교가사나 동학가사 같은 다른 종교가사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결속력 △강한 포교성(선교성) △작자 자신의 신앙고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며 “천주가사의 백미이자 결정판, 원형(archetype)은 천주가사의 모든 것이 집약된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이며, 나머지는 다 사향가의 아류다”고 잘라 말했다. 하 박사는 이어 “천주가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천주교 용어 문제였는데, 이를 학술적으로 정리해준 분이 윤형중 신부님이셨다”며 “윤 신부님께서는 당신이 쓴 「천주교 요리 상해」전 3권 중 2ㆍ3권을 헌 책방에서 구했는데 1권을 못 구했다고 말씀드리자 선뜻 당신 서가에서 1권을 빼주셨고, 이 책을 바탕으로 연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당시 연구에 활용된 천주가사 자료수집에는 윤형중 신부는 물론 오기선 신부, 최석우 신부 등 교회사학자들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성경에 시편이나 아가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천주가사’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중국에도 성인을 꿈꾸는 노래라고 해서 성몽가(聖夢歌)’라는 게 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천주가사를 고전문학의 한 장르로 정립시킨 건 보람으로 남습니다. 이제는 젊은 후배학자들이 계속 연구해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하 박사는 교회사연구에도 몰입, 지난해엔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를 통해 「영혼의 횃불」,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시복재판록」을 펴냈으며, 곧 나올 「병인박해 시복재판록」 연구에도 관여했다. 요즘엔 연구보다는 잡문만 쓰고 있다는 하 박사는 “전남 화순의 규남박물관을 선조들이 남긴 지도와 간찰로만 채울만큼 훌륭한 조상의 후순으로 태어났음에도 학문적으로 깊이, 폭 넓게 정진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오세택 기자 평화신문2014.05.21
![[성경 속 궁금증] 58. 메시아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어떤 곳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22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8. 메시아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어떤 곳인가구약시대부터 예고된 '성스러운 땅' 콘크리트 장벽에 가로막힌 분쟁지역'동방박사의 경배' (지오토 작, 1306년) 미카 예언자는 현세 죄악을 경멸하면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다(미카 4-5장).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줄 메시아가 장차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미카 5,1).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메시아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어떤 곳일까? 예수님 탄생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진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베이트람'이라 불리는 베들레헴은 구약시대에는 '에프라타'라 불리기도 했다. 베들레헴은 구약시대 때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마을이었다. 히브리어로 베들레헴은 '빵의 집', 아랍어로는 '푸줏간'을 뜻한다. 이곳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었다.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창세 35,19). 또 다윗 왕의 고향으로 구약시대 때부터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졌다(1사무 16,1-13 참조). 오늘날 베들레헴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베들레헴은 팔레스티나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땅인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이곳이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지역은 콘크리트 장벽을 지나서 가야 한다. 베들레헴에는 '예수 탄생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베들레헴을 순례한 어머니 성녀 헬레나의 청을 받아들여 예수님 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 위에 339년 건축했다. 이 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예수 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 아르메니아정교회가 각각 소유권을 갖고 있다. 제대 왼쪽은 아르메니아정교회, 오른쪽은 그리스정교회 소유이다. 예수 탄생 동굴은 그리스정교회 소유이지만, '베들레헴의 별'이라 불리는 동굴 바닥의 은색 별은 가톨릭에서 설치한 것이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6세기 초반 화재로 소실된 성당을 개축했다. 지금의 요새형 성당 외형은 12세기 초 십자군이 베들레헴을 탈환한 후 재보수한 것이다. 바닥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당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성당이 전쟁 통에도 이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1500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성당 정면에 있는 모자이크의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군은 이 모자이크를 보고 매우 감동해 성당을 허물지 않고 참배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쿠란」에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종려나무 아래에서 낳았다고 하는데, 이 종려나무가 바로 베들레헴에 있다는 이슬람의 전설 때문이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예루살렘 이슬람 황금사원과 헤브론 성조사원을 순례한 후 베들레헴 예수 탄생 성당을 참배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퇴사자22012.12.18
![[출판]성바오로딸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어르신 위한 '마태오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출간](//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807_1.1_titleImage_1.jpg)
[출판]성바오로딸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어르신 위한 '마태오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출간 '새로 나는 성경 공부 '덕에 새로워지는 어르신들 신앙 인생 어르신 성경공부 인기강사 윤영란(일마, 바오로딸수도회) 수녀는 벌써 새해 시간표가 빡빡하다. 월요일은 대전, 화요일은 인천, 수요일엔 전주…. 어르신 성경공부 강의와 봉사자 교육으로 전국을 누비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최근 '새로 나는 성경공부' 새 교재 「마태오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가 출간돼 더 바빠졌다. 새 교재는 마태오복음서를 일주일에 1장씩 묵상하고 필사하도록 구성됐다. 또 성경말씀에 비춰 어르신들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알찬 내용(만들기, 노래부르기, 편지쓰기 등)으로 채워져 있다.(바오로딸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학생용 1만 4000원ㆍ교사용 1만 8000원) "바쁘지만 힘이 나요. 어르신들 만나고 오면 늘 감동이고요, 교육받을 때마다 달라지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서울 미아동 바오로딸수도회 알베리오센터에서 만난 윤 수녀는 "새로 나는 성경공부 교재는 어르신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지만, 봉사자들과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은 책"이라며 "봉사자 역할이 중요하기에 봉사자 양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8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5시간씩 이뤄지는 봉사자 교육과정은 녹록지 않다. 봉사자들이 매시간 제출해야 하는 과제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봉사자들은 교재 내용을 단순히 숙지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어르신들이 성경 말씀에 맛들이도록 이끌어주려면 봉사자 자신도 성경말씀을 가슴으로 체득해야 한다. "봉사자들에게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강조해요.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성경공부를 통해 남은 삶을 더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윤 수녀는 "봉사자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오히려 본인들이 성경에 새롭게 맛들이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어르신들과 만나면서 얻는 남다른 감동과 보람에 어르신들보다 (어르신 성경공부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윤 수녀는 "새로 나는 성경공부 교재는 어르신들이 직접 성경을 써보도록 하기도 하고, 색칠하기, 만들기, 기도하기 등 말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것이 장점"이라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어르신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노인사목이 중요해지잖아요. 어르신들은 신앙심은 그 누구보다 깊지만, 성경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 대다수에요. 글을 못 읽으시는 분들도 있고요. 하느님 말씀의 참뜻과 참맛을 알려드리고 남은 삶을 하느님과 함께 더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새로 나는 성경 공부를 강력 추천합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2.12.25
[가톨릭 신앙의 보물]사순시기와 부활시기-정의철 신부(전례학 박사) 서울 중앙동본당 주임낡은 인간성 버리고 하느님 사람으로 거듭나야전례주년(교회 달력)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교회의 전례주년 안에는 성탄 축일과 부활 축일이 양대 큰 축일이다. 그러나 이 부활 축일은 성탄 축일보다 전례주년 안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활 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시기와 이 부활 축일을 더 연장하고 싶어 이루어진 부활시기에 관해 이야기하자. 주님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시기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로 마감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사순 제6주일부터 한 주간을 성주간으로 지내는데 이 시기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다. 이 사순시기에서 40이라는 숫자는 구원의 의미를 상징하는 성경에서 유래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십계를 받기 위해 40일간 시나이 산에서 준비한 일이나(신명 9,18) 엘리야가 야훼의 계시를 받기 위해 40일 동안 걸어서 호렙산으로 간 이야기(1열왕 19,4-8)가 있고, 신약의 경우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하신 것(루카 4,1-13)과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사도들과 함께 계신 것(사도1,1-3)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성경의 40이라는 숫자가 가진 의미가 사순시기에 드러나는 것이다. 사순시기는 장차 이루어질 사건(부활)을 준비하고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합당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옛 성삼일(성 금요일~부활)부터 역산해서 40일간의 준비기간(사순시기)을 지켰다. 오늘날의 성삼일은 주님 만찬미사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였지만, 예전에 성삼일은 금ㆍ토ㆍ일요일이었다. 옛 성삼일일인 금요일부터 5일을 거슬러 올라가고, 그 전 5주를 합쳐 40일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재(齋)를 지키는 사상이 강해지며 사순시기도 늘어나게 됐다. 주일을 빼고(6일×5주=30일) 옛 성삼일 전까지(월~목, 4일) 34일간 사순시기를 지내기도 했다. 주일은 작은 부활, 기쁨의 날이라 재를 지키지 않았다. 또 34일에 이전부터 재(齋)를 지켜온 성 금요일과 성토요일 이틀을 더해 36일의 준비기간을 지내기도 했는데 36일의 준비기간(사순시기)은 1년의 11조를 지내는 의미로 재를 지켰다. 하지만 사순 기간 전부 재를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현재는 36일에 4일을 더해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40일간의 사순시기를 지낸다. 이 기간이 40일이냐 아니냐보다는 이 시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고 이에 따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40일이라는 사순시기의 상징적 의미는 속죄로서 우리 생활을 혁신하기를 촉구하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장차 이루어질 큰 사건(부활)을 합당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시기 동안 신자들의 삶을 성화시키고 하느님께 다가서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사순시기를 맞는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제, 자선행위 등 외적 준비와 함께 매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며 기도를 통해 예수님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는 내적 준비를 한다. 은총의 시기인 사순시기 동안 신자들은 40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를 묵상하고 그 의미처럼 살려 노력해야 한다.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부활시기 부활 대축일은 구약의 전승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축일로 이동이다. 유다인들의 전승을 따라 니산달 14일에 지내자는 동방교회의 주장과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초점을 맞춰 니산(NISAN)달 14일인 만월 이후 처음 맞는 주일을 부활 축일로 지내자는 서방교회의 의견이 엇갈렸다. 니케아공의회에서 오늘날처럼 춘분이 지나고 그 다음 첫 번째 만월(니산달 14일) 후 첫 주일을 부활축일로 지낼 것을 결정했다. 동방교회에서는 8주간의 사순 시기를 지내지만 서방교회에서는 성주간을 포함한 7주간의 사순시기를 보낸다. 사순시기는 우리의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정화시키고 성화시키기 위해 부르시는 은총의 시기다. 참회와 속죄로 은총에 감사하며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고 준비하면서 이 시기를 보내야 한다. 부활의 기쁨을 더 연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 50일간 이어지는 부활시기이다. 부활시기는 부활 팔일 축제와 주님 승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의 기쁨을 50일간 연장하며 기념하는 시기이다. 예수님의 구원 사업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부활 이후 4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해서 지내는 것이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또 구약시대 밀과 보리의 수확을 기념하던 오순절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날 이루어진 성령 강림 사건과 연결해 예수님의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날을 성령 강림 대축일로 지냈다. 사도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창립일이다. 정리=백영민 기자]※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4.03.11
![[성경 속 궁금증] 60. 예수님은 왜 율법학자들을 질책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4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60. 예수님은 왜 율법학자들을 질책했을까모세 율법 필사하며 백성 교육 담당하던 계층, 율법 근본정신 하느님 사랑 잊고 형식에 매몰'예수와 간음한 여인'(렘브란트 작, 1644년, 부분). 율법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려고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돌로 쳐 죽일지를 울었다. 성경에는 율법학자가 자주 등장한다. 율법은 '지침, 규정, 법령, 명령, 계명'의 의미를 지닌다. 율법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토라'는 본래 가르침이란 뜻이다. 율법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 명령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모든 이가 하느님 뜻을 따르게 하고자 하느님께서 내리신 도덕적ㆍ종교적ㆍ법률적 명령을 말한다. 율법학자란 대개 모세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하며 율법학자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마태 23,1-36). 율법학자들은 법조문에 너무 얽매여 예수님과 항상 적대관계를 이뤄왔다(마태 15,1-20). 율법학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율법학자는 원래 율법을 필사하는 직분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현존하는 구약성경 대부분도 이들이 필사로 남겼기에 보존이 가능했다. 외세 지배 속에서도 율법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 역시 이들 공로다. 이들이 율법을 가르치게 된 것은 바빌론 포로시대 이후다. 당시 사제 에즈라는 해이해진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이들을 교사로 활용했다. "에즈라가 바빌론에서 올라왔는데,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다. 주 그의 하느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펴 주셨으므로, 임금은 그의 청을 다 들어주었다"(에즈 7,6). 에즈라 이후 율법 연구가 활발해졌고, 기록과 구전으로 전해오던 계율들을 모아 '613조항'의 규정을 확정 짓게 된다. 이처럼 율법학자들이 전문계층으로 등장한 것은 바빌론 유배 이후다. 유배를 거치면서 율법이 삶의 중심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율법학자라 불리는 집단이 탄생하게 됐다. 본래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추구했다. 후에 율법학자들은 랍비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 대부분 가내 수공업을 하고 있었다. 간혹 제사장을 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대제사장과 원로들을 만나는 위치에 있었다.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사도 4,5). 후대 들어 율법학자들은 오히려 율법의 노예가 됐다. 모세가 전해준 기존 율법은 변질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이 지시하는 것들을 연구했고, 그 모든 규정을 빈틈없이 일상생활에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은 사람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구속이 돼버렸다. 율법의 준수와 형식만 강조됐을 뿐 본래 율법이 지니고 있는 하느님 사랑이 율법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됐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질책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형식적 율법주의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중심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고 생명이므로 그분이 곧 율법의 완성이 된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고 완성하셨다(마태 5,38-48).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cpbc2012.12.31

"영성서적으로 내면의 평화 다져요" 가톨릭출판사 독후감 공모, 6월 29일 마감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가 제3회 독후감 공모전을 실시한다. 공모전 대상 도서는 지난해 가톨릭출판사가 출간한 도서 중 24종이다. 일반 부문(성인과 청소년)은 「나를 살리는 말」 「괜찮아」 「별의 길」 「키릴 악셀로드 신부」 「단테의 신곡 (상)ㆍ(하)」 「미ㆍ사ㆍ일」 「미사의 역사」 「기도의 ABC」 「성자처럼 즐겨라!」 「알기 쉬운 사도신경」 「예비 신자 궁금증 105가지」 「내적인 삶의 발견」 「숨어 있는 기쁨」 「숨어 있는 행복」 「정의와 사랑」 「크리스토퍼 하루 3분 묵상」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ㆍ(하)」 「전원 신부 묵상 1ㆍ2권」 「안셀름 그륀 신부의 작은 선물 시리즈」(축복, 감사, 쾌유, 위로, 치유) 등 19권이며, 어린이 부문(초등학생 이하)은 「나는 곰 친구가 있어요!」 「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 「이솝 아저씨의 이야기 가게」 「사라진 은성작의 비밀」 「아빠와 함께 성인 교황님을 만나요!」 등 5권이다. 공모기간은 3월 5일부터 6월 29일(마감일 소인 유효)까지며 1인당 7편까지 응모할 수 있다.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30매 안팎, 어린이 부문은 20매 안팎이다. 전자우편(bookreport@catholi cbook. kr)이나 우편(서울시 중구 중림로 27번지 가톨릭출판사 본관 3층 편집국)으로 보내면 된다. 일반 부문 최우수상(1명)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만 원과 상패가, 우수상(2명)과 장려상(3명)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70만 원과 50만 원, 상패가 수여된다. 어린이 부문 최우수상(1명) 수상자에게는 상금 50만 원과 상패가, 우수상(3명)과 장려상(5명)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20만 원과 10만 원, 상장이 수여된다. 수상작은 8월 3일 출판사 누리집을 통해 발표하며, 시상식은 8월 28일 열린다. 홍성학 사장 신부는 "갈등과 가치 혼란에 휘둘리기 쉬운 이 시대에 온전한 내면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영성 서적을 읽어야 한다"면서 독후감 공모전이 신자들의 영성을 깊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문의 : 02-6365-1856, 가톨릭출판사 편집국 남정률 기자 백영민2014.02.18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2>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거행하는가?니콜라 푸생 '최후의 만찬', 1640년, 유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158. 미사에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요? 미사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이뤄져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46-1347항). 말씀 전례에서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독서들과 복음을 듣습니다. 그 밖에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도 말씀 전례에 속합니다. 이어서 거행되는 성찬 전례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봉헌되고 축성되며 영성체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어집니다. 159. 미사는 누가 집전할 수 있나요? 본래 미사 집전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지만, 주교나 사제가 그분을 대신해서 미사를 집전합니다(1348항). 사제는 그리스도의 명을 받아 그분을 그저 대신해 미사를 집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 자신이 성품성사에 근거해, 교회의 머리로서 그를 통해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가 됩니다. 160. 미사를 거행할 때 교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다시 말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모심'으로써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영혼과 육신을 지닌 우리에게 자신을 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 우리 삶 전체를 위한 자리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과 고통, 기쁨 등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봉헌할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즉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 마음에 들게 되며, 우리 이웃들을 위해 유익하고 영양이 풍부한 빵이 됩니다(1368-1372항, 1414항). 161. 성체를 내 안에 모시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가톨릭 신자만이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으며, 중대한 죄를 지은 경우에는 먼저 고해성사를 해야 합니다. 또한 제대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이웃과 화해해야 합니다(1389ㆍ1417항). 오늘날 교회는 적어도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공복재'를 지킬 것을 권고합니다. 미사 참례 시에 좋은 옷을 골라 입는 것도 경외심을 표현하는 또 다른 표징이 되는데, 세상의 주인이신 분과 우리가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162. 가톨릭 신자가 아닌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나요?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 지닌 단일성을 표현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공유하며 가톨릭교회와 일치하는 가운데 사는 사람은 가톨릭교회에 속한 사람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신앙과 삶을 아직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영성체에 초대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성체성사라는 표징이 지닌 신뢰성에 금이 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1398-1401항).cpbc2013.11.19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3>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코시모 로셀리 '산상설교', 1481년, 시스티나성당, 바티칸. 196.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인간은 누구나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닙니다. 하느님이 그를 영원토록 원하셨고 사랑으로 지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99-1715항). 하느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기울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197. 인간이 행복을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성경을 읽으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나요? 하느님이 우리 마음속에 행복을 향한 무한한 갈망을 심어주셨기 때문에 그 갈망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로지 그분밖에 없습니다(1718-1719항). 우리는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하신 '행복선언'(마태 5,3-12 참조)의 내용을 신뢰함으로써 행복해집니다(1716-1717항). 198.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영원한 행복이란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기쁨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1720-1724항). 그분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무한한 행복입니다. 그 행복은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런 행복을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그 고귀함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199. 자유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진정한 자유란 악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요? 자유란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온전히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1730-1733항, 1743-1744항). 악은 그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거나 그것을 선택하면 자유로워질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악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며, 참된 선을 빼앗아 갑니다(1730-1733항). 120.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악한 짓을 해도 되나요? 선한 결과를 얻으려고 악한 일을 하거나 그 일을 용인해서도 안 됩니다. 더 큰 악을 피하려고 그보다 작은 악을 용인해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1755-1756항, 1759-1761항). 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줄기세포를 연구하려고 배아를 사용하는 것은 그릇된 일입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낙태수술을 해서 그를 돕겠다는 것도 그릇된 일입니다. cpbc2014.03.18
![[성경 속 궁금증] 39. 성경에서 과부는 왜 가장 불쌍한 사람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07/rc/41958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9. 성경에서 과부는 왜 가장 불쌍한 사람인가?경제·사회적 보호자 없는 여인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포드 매독스 브라운 작, 1868년). 성경에서 과부는 고아와 함께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성경에서 과부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남편이 죽어 혼자가 된 여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과부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여자, 남편이나 장성한 아들 같이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는 이가 없는 여자, 사회적ㆍ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 등도 함께 일컫는다(루카 18,1-8 참조).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남자에 비해 여자가 절대적으로 지위가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없는 과부는 생활의 어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보호자가 없는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호소할 데가 마땅히 없었다. 그렇기에 과부를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했을 것이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그 부인은 소박한 과부 옷을 입어야 했다. "그는 자기 집 옥상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허리에 자루옷을 두르고 과부 옷을 입었던 것이다"(유딧 8,5).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과부가 평생 혼자 살아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이 없으면 남편의 형제와 수숙혼(嫂叔婚)을 할 수도 있었고, 친정으로 돌아가서 살거나 아직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도 할 수 있었다. 아들이 있으며 남편이 남긴 재산이 많은 경우에는 재가하지 않고, 아들과 함께 그 재산을 관리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과부는 대부분 재산 없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있거나,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을 의미한다(1열왕 17,8-16 참조). 이러한 과부는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하층 계급, 빈곤층을 이뤘다. 그래서 과부는 공동체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먼저 임금은 과부를 비롯한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주요 직무로 삼았다. 물론 구약성경에서 임금은 과부를 돌봐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곳은 없다. 그러나 과부를 보살피는 일이 이스라엘에서 통치자의 본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시편 72장 참조). 이스라엘에서 과부를 돌보는 것은 하느님 뜻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런 점에서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과 이민족들의 신들이 다르다고 인식했다. "또한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신명 10,18). 또 항상 과부들을 잘 대해줘야 하며, 그들 재산을 더 잘 지켜줘야 한다고 여겼다(탈출 22,21-23). 그래서 과부들을 괴롭히거나 학대하고, 금전적 손해를 입히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들을 비난하는 대목에서 과부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셨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2,40). 또한 초대교회 공동체도 과부들을 특별히 돌봤고, 고통 중에 있는 과부들과 고아들을 찾아보는 일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퇴사자22012.07.03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9. 연중 제3주일- 성경](//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78_1.1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9. 연중 제3주일- 성경말씀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구원 섭리예수님께서 방문하신 나자렛 회당 자리의 기념 경당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있는 순례객들."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나자렛 회당을 방문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살펴봅시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105~108항):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글로 담겨지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105항)이 성경입니다. 이로부터 성경의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직접 성경을 쓰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저술한 이들은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그들 안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다"(106항). 이렇게 본다면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적인 표현 방법과 기술을 이용해서 기록한 것이지만 그 기록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기에 성경의 저자를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렇게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되기를 원하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없이 가르친다고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107항). 셋째,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도움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한다"(108항)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성경 해석(109~119항): 성경의 원 저자인 하느님께서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성경 해석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내려면 그 시대와 문화의 상황을 비롯해서 당시 일반적 문학 유형과 이해, 표현, 서술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 진리가 표현되는 방식은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비롯해 표현 양식과 화법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죽은 문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의 도우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교회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1) 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특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의 책들이 다양하지만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이 지향하는 그 단일한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성경을 읽을 때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聖傳)에 비춰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글로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라면 성전은 교회의 공식 권위 즉 교도권에 위탁된 하느님 말씀입니다. 3) 성경을 읽을 때는 '신앙의 유비'에 유의해야 합니다. 신앙의 유비란 성경에 제시되는 신앙 진리들이 서로 모순되거나 배타적이지 않고 일관성을 지닌다는 것을 뜻합니다. ㉢정경(正經): 성경은 한 권으로 된 책이 아닙니다. 여러 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크게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옛 계약의 성경이라는 뜻을 지닌 구약성경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준비합니다. 구약성경은 모두 46권인데, 유형에 따라 오경(五經,모세 오경) 5권, 역사서 16권, 시서(詩書)와 지혜서 7권, 예언서 18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새 계약의 책이라는 뜻을 지닌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는 복음서 4권과 사도들의 복음선포 행적을 담은 사도행전, 바오로 사도를 비롯한 사도들의 서간 21권, 그리고 요한 묵시록 등 모두 27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알아둡시다㉠성전(聖傳)(74~79항):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려 주시고 드러내시는 계시(啓示)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났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되고 당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명령에 따라 복음은 두 가지로 전해졌습니다. 한편으로,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은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문서로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문서로 기록된 것들 가운데서 교회가 정경(正經)으로 인정한 것이 성경 곧 네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경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일깨우심으로 배운 것들을 입으로, 곧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습니다. 사실, 복음은 문서로 기록되기 전에 구두(口頭)로 먼저 전달됐습니다. 사도들은 이 복음이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전달되고 보존되도록 후계자들 곧 주교들을 세워 계승하게 했는데, 이를 사도(적) 계승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사도 계승을 통해 구두로 전달된 것들은 성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성경과는 구별되는데, 이를 성전, 혹은 사도 전승(傳承)이라고 부릅니다. ㉡성경과 성전 그리고 교도권의 관계(80~86항): 교회는 "성전과 성경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서로 통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과 성전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80항)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82항)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된 하느님 말씀(성경)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성전)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敎導權),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교도권이 하느님 말씀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도권은 하느님 말씀에 종속돼 봉사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1.22
[평화화랑] 유프라시아의 집 한지공예전 등 착한 목자 수녀회가 운영하는 유프라시아의 집과 한국화가 심홍(心弘) 이소영(수산나, 46, 서울 서교동본당)씨는 2월 5~11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평화화랑 제1ㆍ2전시실에서 각각 전시를 연다. 문의 : 02-727-2336 ▨유프라시아의 집 한지공예전 서울대교구 여성복지시설 유프라시아의 집(원장 김성수 수녀)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소녀들의 한지공예 작품전.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치유돼 가는 과정에서 제작한 작품<사진>을 선보이는 자리로, 중1에서 고3까지 아이들의 꿈과 자립심을 키워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출품작은 보석함이나 뒤주, 접시, 쟁반, 경대, 교자상, 소품 수납가구 등 생활소품 20여점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닥종이 공예가 이옥주(안나)씨에게 배워 익힌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다. ▨이소영 '투명의자' 주제 개인전 권력이나 경제력, 명예 등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자리다툼을 상징하는 '의자'를 소재로 삼은 개인전이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도 잊은 채 더 높이 오르려 경쟁하다가 길을 잃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투명 의자'라는 제목의 전시에 담았다. '투명 의자'는 각자의 마음자리에서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세상을 보고 느끼고 살아가게 됨을 형상화했다.작품 '닫을 수 없는 문'에서는 요한묵시록 3장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통해 신앙적 진리로 나아가는 문을 그리고 있다. 전통 문자도(文字圖)에 등장하는 전통적 문방구들을 다 빼고 비둘기나 성체, 성혈(포도주 형상), 성경, 종려나뭇가지, 물고기 등 형태로 '믿을 신(信)'자를 그려내기도 한다. 오세택 기자 cpbc2014.01.2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0) 달의 날과 해의 날 - 일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6052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0) 달의 날과 해의 날 - 일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창세기는 신화적 사고 극복의 헌장 달신은 고대 근동세계에서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이었다.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도시국가 우르와 하란이었다. 고대 이스라엘 등 북서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달신은 작은 신이었지만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달신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졌다. 유일신 신앙을 키워오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달신 숭배 문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첫째는 신명기계 신학자가 닦은 신명기의 길이고, 둘째는 사제계 신학자가 닦은 창세기의 길이다. 첫 번째 노력인 신명기의 길은 달신 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를 했다. 신명기계 학자들은 달신 숭배를 이스라엘 신앙에 위협이 되는 요소로 인식해 이스라엘에서 달신 숭배 자체를 뿌리 뽑고자 했다. 남유다의 요시야(기원전 640~609) 임금 또한 달신 숭배를 아예 없애려 했다. 신명기 개혁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야훼 신앙이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닫고 종교 개혁을 시도했다. 그의 개혁은 신명기계 신학자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달의 탈신화 요시야 임금은 외래 문물의 범람 속에서 신앙이 흐려지는 것을 우려하며 야훼 신앙과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나라의 기강을 다시 세우고자 했다. 그 가운데 일월성신(日月星辰), 즉 달신과 해신, 별신을 몰아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제들도 내쫓았다. 바알신과 해, 달, 별자리들과 하늘의 모든 군대에 분향하던 자들도 내쫓았다(2열왕 23,5 참조). 이후 그는 다윗 왕조의 영화를 새롭게 적는 신명기계 역사서를 만들어 그 내용을 전파했다. 구약성경에는 달신 숭배를 직접 경고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신' 아니라 그저 '피조물'일 뿐이라고 했다. 달을 탈신화(脫神話)해 달신 숭배를 극복한 것이다. 신이 아닌 한 물건으로 여겼다. 이 같은 새로운 신학적 고백은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의 신학적 성찰에 기반을 둔다. 그들은 가장 밝은 빛은 하느님 한 분뿐이라 믿었다.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였다. 큰 제국의 위협에 시달렸고 늘 조공을 바쳤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 일부가 유배 길에 나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 제국의 큰 신들에게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먼 옛날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야훼 하느님 한 분만이 유일한 신이고, 다른 제국의 신은 그저 그분 손으로 만든 것으로 여겼다. 이렇듯 구약성경은 크고 작은 신들을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탈신화한다. 이 같은 신학적 성찰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창세기 1장'이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야훼 하느님은 삼라만상을 모두 만드셨다. 그분은 또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우월하며, 세상 어떤 것도 그분 권능에 견줄 수 없다. 더구나 하느님이 첫 나흘 만에 만드신 하늘과 땅, 해와 달은 수메르 시대 주신들이었다. 수메르의 가장 중요한 일곱 신(하늘ㆍ바람ㆍ산ㆍ물ㆍ달ㆍ태양ㆍ금성)은 세상 운명을 결정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창세기 1장은 이런 신들을 한낱 피조물로 만들어 그 권위를 추락시켜 버렸다. 하늘신도, 달신도, 태양신도 없다. 야훼 하느님은 나흘 만에 대제국의 높은 신 대부분을 만드셨다. 아무리 다른 신의 권능이 대단해 보여도 그들은 피조물일 뿐이다. 이처럼 약소국 이스라엘의 사제계 신학자들은 대담했다. #일주일 체계의 의미 우리가 쓰고 있는 날짜 개념인 '일주일 체계'도 수메르에서 나왔다. 수메르 사람들은 일곱 신의 이름에 따라 각 날에 이름을 부여했다. '태양신의 날', '달신의 날'하는 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들은 일곱 날을 한 주기로 신들의 이름이 순환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일주일 체계는 로마 시대로 이어졌다. 로마인은 그들 방식으로 이를 토착화했다. 이들은 로마 신들의 이름을 붙여 '화금수목월일토'(MarsㆍVenusㆍ MercuryㆍJupiterㆍMoonㆍSunㆍSaturn)의 '로마식 일주일 체계'를 사용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 신들의 순서는 조금씩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근동 신들의 이름을 지칭한 일주일 체계 안에 살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은 일곱 날에서 신들의 이름을 모두 제외했다. 일주일을 신들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야훼 하느님의 창조 행위 순서에 따라 '첫째 날', '둘째 날'하는 식으로 불러 다른 신들을 연상시킬 여지를 없앴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숫자로 이름을 붙였지만, 마지막 날은 하느님께서 쉬신 날, 곧 '안식일'로 불렀다. 이로써 창세기 1장의 탈신화화는 완성된다. 다시 말해 일주일 체계는 유지됐지만, 그 체계에 깃든 고대 근동의 신화는 완전히 탈색되고 야훼 신앙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 창세기 1장은 단편적으로 흩어진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 본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은 거대한 주변 민족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에 맞서 고유한 신앙을 지키려 한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적 프로젝트의 결론이다. 창세기 1장은 고대 이스라엘 탈신화화의 헌장(憲章)이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02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59>십계명 : 열째 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이웃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도 죄
열째 계명은 현제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애착이나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명한다. 사진은 노천시장에서 전을 펴고 과일이나 채소를 살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티의 여인들. 【CNS】 열째 계명은 아홉째 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를 해설하고 보충합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재물, 특히 남의 재물에 대한 탐욕이 생길 때는 일곱째 계명에서 금하는 도둑질이나 사기 또는 약탈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십계명의 마지막으로, 타인의 재물에 대한 탐욕을 금하고 있는 열째 계명에 대해 살펴봅니다(2534~2557항). 탐욕의 무질서(2535~2540항) 우리는 배가 고플 때 먹기를 원하고 추울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원의 또는 욕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욕망이 한계를 넘어설 때 문제가 생깁니다. 내 소유가 아닌 타인의 것을 혹은 마땅히 타인에게 줘야 할 것을 부당하게 탐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열째 계명은 이런 탐욕과 세상 재물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을 금합니다. 또 재물과 그 힘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발생하는 무절제한 욕망도 금합니다. 이웃의 현세 재물에 해를 끼치는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도 마찬가지로 금합니다. 그러나 이웃의 소유를 정당한 방법으로 손에 넣기를 바라는 것은 열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열째 계명을 주의해서 지켜야 하지만, 교회는 전통적으로 특별히 이 열째 계명을 잘 지키도록 권고받아야 할 유형의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물품의 품귀나 가격 상승을 바라는 상인들 △같은 종류의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물건값을 올리거나 내리지 못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사람들 △팔 때는 더 비싸게 팔고 살 때는 더 싸게 사서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동료 상인이 곤경에 빠지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병자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의사들 △중요하고 많은 소송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법조인들 등입니다. 열째 계명은 탐욕과 함께 시기심을 몰아낼 것을 요구합니다. 심각한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에 빠진 사람은 타인의 재산을 볼 때 침울한 마음을 갖고, 그 재산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절제한 욕망을 갖는 사람이다”(2539항). 시기심은 탐욕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증오와 비장과 모함을 낳습니다. 또 이웃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이웃의 성공에는 불쾌감을 갖게 합니다. 나아가 시기심은 사랑의 거부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자비심으로 시기심과 싸워야 합니다. 시기심은 또 교만에서 나오기에, 겸손하게 사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성령의 소망(2541~2543항)법과 은총의 섭리로, 인간의 마음은 탐욕과 시기심에서 해방됩니다. 법과 은총은 인간 마음속에 ‘최고선’에 대한 갈망을 일으켜 주고, 인간의 마음을 채워주는 성령의 소망에 귀 기울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온갖 유혹에 주의합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소망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가난(2544~2547항)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과 모든 사람 위에 당신을 더 사랑하라고 명하시면서 당신과 복음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버리라고 권고하십니다(루카 14,33 참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자기 마음을 바로 다스리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며, 복음적 청빈 정신에 어긋나는 현세 사물의 사용이나 재산에 대한 집착으로 완전한 사랑의 추구를 가로막지 않게 하여야 한다”(교회헌장 42항). 부자들은 풍부한 재산에서 위안을 얻으며, 교만한 사람은 지상의 나라를 찾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섭리에 온전히 맡겨드릴 때에 내일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난한 이들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뵈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뵙고 싶습니다(2548~2550항)진정한 행복에 대한 갈망은, 현세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애착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행복을 누리게 될 때 충족됩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332?~395?) 성인은 참행복에 관한 강론에서 이렇게 설파합니다. “하느님을 뵈오리라는 약속은 모든 행복을 초월합니다. 성경에서 본다고 말하는 것은 곧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사람은 이 보는 행위 안에서 좋은 것을 모두 얻을 것입니다.”하느님을 소유하고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죽이고,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쾌락과 권세에 대한 유혹을 물리칩니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