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27) 바리사이](//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7633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27) 바리사이율법 제일주의로 똘똘 뭉쳐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은 현세를 중시한 사두가이와 달리 부활과 메시아 대망 사상을 믿었다. 사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음서 필사본 중 라자로의 부활 장면을 묘사한 세밀화. 출처 = 「성경역사지도」(분도출판사)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에세네, 젤롯(열혈당) 파다. 이 집단들은 정치적 견해 차이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종교적 이해 차이가 뚜렷해 서로 대립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리사이는 우리말로 ‘분리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으로 율법을 더욱 엄격히 해석해 이방인을 비롯해 비율법적인 유다인과 자신들을 구별했다. 사실 바리사이는 대립 관계에 있던 상대 측에서 경멸조로 불렀던 명칭이다. 바리사이들은 에세네파 사람들과 같이 스스로 ‘경건한 자’ 즉 ‘하시딤’이라 불렀다. 하시딤은 기원전 2세기 유다교를 없애려 했던 셀레우코스 왕조에 저항해 조상의 관습을 지키며 마카베오 형제들을 따라 독립 전쟁을 치렀던 무리다. 이들은 레위기의 정결 예법과 사제의 의무 조항을 엄격하게 지키며 유다인 속에서 순수 유다인으로 살며 비종교적인 삶을 철저히 배제해 이방인과 사소한 교류조차 하지 않았다. ‘이방인 세계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하느냐’라는 명제에 대해 바리사이의 입장은 사두가이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사두가이는 지혜롭고 신중해야 하며 성문화된 613가지 율법 외에 율법이 침묵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선 시대의 요구에 따라 처신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인간 삶 모두가 율법에 따라 규정돼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바리사이는 율법에 따라 선을 행하고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또 율법의 정확한 해석과 엄격한 실천을 늘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언제나 바리사이로 살아왔음을 자랑하기도 했다(사도 22,3; 갈라 1,14; 필리 3,5-6).바리사이는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들은 연장자를 존경하며 서로를 존중해 여성들과 빈민층과 노동자 계급 등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중시해 모세의 이를 율법과 같은 권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성문화된 율법만을 지키려는 사두가이와 달리 영혼 불멸을 믿었고, 선한 삶을 산 사람과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현세에서 보상과 징벌을 받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의인은 마지막 날에 부활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악인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 주장했다. 또 이들은 자신들을 해방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사상을 열렬히 믿어 예수께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 묻기도 했다(루카 17,20 참조). 그들은 또한 운명론자였다. 바리사이들은 세상만사가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탈무드는 일곱 유형의 바리사이가 있다고 적고 있다. 1. “내 이익은 어디 있는가”하는 바리사이 2. “나는 잘났다”는 바리사이 3. 길에서 여자를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숙이고 다니다 벽에 부딪혀 “내 머리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바리사이 4. 늘 몸을 구부리고 걸어 “절굿공이”라는 바리사이 5. “내 의무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떠드는 바리사이 6. “나는 매일 선행을 하고 있다”고 외치는 바리사이 7. 하느님을 경외하고 애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진실한 바리사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바리사이가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샴마이파와 관용의 정신에 따라 율법을 좀더 자유롭게 적용한 힐렐파로 양분이 돼 있었다. 네 복음서는 예수님과 바리사이를 적극적 대립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하고(마르 12,13; 마태 12,14; 요한 11,46-52), 끊임없이 하느님 권위에 대한 표징을 요구하며(마태 12,38; 마르 8,11),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고(루카 6,7;요한 11,46), 예수님을 죽이려 논의하고(마태 12,14; 마르 3,6 ; 요한 11,47) 체포하려 했다(마태 21,46; 요한 7,32). 예수님도 바리사이를 독사의 자식들(마태 3,7), 위선자들(마태 15,7), 소경 같고(요한 9,40-41) 회칠한 무덤(마태 23,27)이며, 하느님을 믿지 않고(요한 8,45) 성경에 무지하며(요한 4,22)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다(루카 7,30)고 비난하셨다. 예수님은 또 바리사이들이 탐욕적이고(마태 23,25) 돈을 좋아하며(루카 16,14) 남에게 보이기를 좋아하고(마태 23, 5 이하) 의로운 척하며(루카 18,10 이하) 거드름 피우고 대접받기를 좋아한다(마태 23,6-7)고 했다.하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바리사이 출신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오로 사도와 니코데모(요한 3,1-21)’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9.02
![[신년 특집] 2015년 한국 교회를 전망한다](//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6702_1.0_titleImage_1.jpg)
[신년 특집] 2015년 한국 교회를 전망한다가정 성화를 토대로 복음의 기쁨 나누고 복음화 이루자 한국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 미사에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기념일을 5월 29일로 선포함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이들을 기리는 기념일을 지낸다. 사진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장면. 평화신문 자료사진 2015년 한국 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그리고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전국 교구장 주교들이 지난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한 사목교서는 올해 한국 교회의 흐름을 가늠케 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사목교서는 성경 공부와 기도를 통해 맛본 복음의 기쁨으로 먼저 가정을 성화하고, 이를 토대로 본당 공동체는 물론 교회 안팎의 모든 이와 복음의 기쁨을 나누자는 것이 큰 틀을 이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과 교황이 지난 8월 방한 당시 한국교회에 전한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것이다. 따라서 2015년은 무엇보다 교황이 남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쏟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2015년은 또 지난해 12월 1일 개막한 봉헌 생활의 해를 보내는 해다. 한국 교회는 7월에 ‘봉헌 생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10월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수도자와 함께하는 갈릴래아 청년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교회 봉헌 생활의 해 폐막 미사는 11월 20일 교황청 수도회성 장관 아비스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다.한국 교회에서 올해 처음 지내는 것도 두 가지나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 미사에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기념일을 5월 29일로 선포함으로써 올해 처음으로 이들을 기리는 기념일을 지내게 됐다. 또 주교회의가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절 담화의 정례화를 승인함에 따라 5월 1일 한국교회 차원의 첫 노동절 담화가 나온다.보편 교회와 관련해서는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 방문이 2007년 이후 8년 만인 3월 10∼13일 바티칸에서 이뤄진다. 지난해 방한 이후 교황과 주교단의 첫 만남이어서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9월 22∼27일 미국 필라델피아교구에서 제8차 세계가정대회가 열리며, 지난해 임시총회에 이어 10월 4∼25일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4차 정기총회가 바티칸에서 개최된다. 교회사에 새로운 장을 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12월 8일)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어떤 형태로든 공의회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한국 교회에 큰 의미를 지니는 생일도 많다. 원주교구가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5월 31일 감사미사를 봉헌한다. 복음화의 기수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을 맞는 교구도 청주ㆍ원주ㆍ전주 등 3개 교구나 된다. 뜻깊은 봉헌 생활의 해 기간에 뜻깊은 생일을 보내는 수도회도 적지 않다. 한국외방선교회가 설립 40주년을, 프라도수녀회ㆍ프라도사제회가 40주년(이하 한국 진출),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ㆍ예수성심전교수녀회가 50주년,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ㆍ예수회ㆍ예수의작은자매들의우애회가 60주년, 예수성심시녀회가 설립 80주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가 90주년을 맞는다.설립 50주년 이상을 맞는 본당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무려 120주년을 맞는 본당도 대전교구 아산 공세리본당과 대구대교구 왜관 가실본당 두 곳이다. 전주교구 창인동ㆍ쌍교동ㆍ요촌본당과 마산교구 거제ㆍ진영본당은 80주년이다. 청주교구 교현동본당과 대구대교구 신암본당은 70번째 생일을 맞는다.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 사제로는 이문희 대주교, 박원출ㆍ유승열ㆍ이판석 신부(이상 대구대교구), 경덕수ㆍ김광혁 신부(청주교구), 오현택ㆍ서용복 신부(전주교구), 왕영수ㆍ한영일 신부(부산교구), 김병열ㆍ임충승 신부(수원교구), 송주석 신부(인천교구), 김순호 신부(대전교구), 이천수 신부(광주대교구), 이학근 신부(원주교구) 등이 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설립 20주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20주년이 되는 해도 2015년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4.12.24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6)정의가 강물처럼](//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4224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6)정의가 강물처럼강에 깃든 심판자의 권능은 하느님께 한국교회는 선교 300년대를 향해 가고 있다. 외형을 넓히고, 신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신자들이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성경을 더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이 탄생한 고대 근동세계와 그 시대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고대 근동에서 강은 경외감을 지닌 존재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요르단 강이 큰 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중 정의를 판결하는 강의 신 '에드'가 있었다. 우리말 성경에서도 '에드'란 말은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구약성경에서 '멸망의 날', '환난의 날', '재앙의 날', '재난의 날' 등으로 다양하게 옮긴 낱말이 모두 '에드의 날'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앞으로 닥쳐올 환난을 보았다. 그는 눈앞에 놓인 예루살렘 함락만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 닥칠 재앙도 경고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모압의 환난, 모압의 멸망(에드)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 재앙이 재빨리 닥쳐온다고 말했다(예레 48,16 참조). 번역본은 대개 '환난'으로 그 뜻을 옮겼지만, 멸망과 재앙 등으로도 옮겨 자연스러운 문맥을 살리고 있다. #정의는 강물처럼 강에 담긴 종교심으로 돌아오자. 수메르 시대부터 신성 재판의 최종 판결자로서 막강한 권위를 지니는 강에 대한 종교심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원전 1200년께 고대 우가릿(오늘날 시리아와 터키에 있었던 도시국가)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신 '얌무'에도 이런 종교심이 깃들어 있다. 구약성경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다양한 성경 인용문에서 강이 심판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이 정의를 심판한다는 에드의 개념은 고대 근동 종교의 껍질을 벗고 탈신화해 '최후의 직접 심판'이란 개념으로 정착됐다. 그리고 그 심판의 주체는 야훼 하느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에드의 날을 정하는 것도 하느님이시고, 그날에 심판하는 것도 그분이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에드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고대 근동 종교의 전통은 이었지만, 강에 깃든 '심판자의 권능'은 고스란히 하느님께 돌렸다. 야훼 신앙으로 재신화된 에드는 구약성경에서 환난 또는 재앙의 뜻으로 쓰이다가 욥기, 시편, 잠언, 지혜서 등에 해당하는 지혜문학에 이르러서는 '개인적 불행'의 뜻으로 쓰였다. 야훼 신앙 안으로 재신화된 개념이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성찰을 통해 신학적 발전을 이룬 것이다. 강과 정의가 연결되는 구약성경의 종교심은 이렇게 탄생한 것 같다. 고대 근동 지역은 물이 귀했다.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등 큰 강의 하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메마른 땅이어서 농사가 무척 힘들다. 다행히 이슬비나 안개가 축축이 땅을 적시는 독특한 기후 덕분에 그나마 식물을 키우며 살 수 있다.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사막 식물이라도 이슬비가 없었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잎사귀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은 풍요의 전조였다. 만일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이었을 것이다. #이슬은 풍요의 상징 구약성경에 '하늘의 이슬'이란 표현이 있다.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이슬이니 귀하고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 말씀이 이슬과 같다고 표현하는 구절도 있다. 모세는 유언으로 남긴 아름다운 시에서 하느님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표현한다. 메마른 팔레스티나 땅에서 비는 풍요의 상징이다. 이슬은 금방 증발돼 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비나 소나기처럼 풍요의 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이슬은 풍요의 근원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늘의 이슬'은 하느님이 내려주신다고 언급하는 구절이 꽤 많다. 그 뜻은 야훼 하느님이 이슬을 내려주신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창세 27,28). 이처럼 창세기 말씀은 이슬을 내려주시는 분은 분명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요가 이뤄진다고 전한다. 고대 근동은 한반도와 자연환경이 무척 다르다. 다른 환경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이들은 우리와 몸이 마음에 차이 나는 부분이 있음은 당연하다. 구약성경은 이렇게 우리와는 다른 배경에서 생겨난 문헌이다. '이슬'같이 작고 연약한 물방울에 얽힌 종교심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까닭이다. 척박한 곳에서는 작은 이슬방울도 풍요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또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방울의 이슬에도 오랜 세월 축적된 신학적 성찰이 영롱하게 들어 있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퇴사자22013.05.21
 김인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서광하이테크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5754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6) 김인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서광하이테크 대표이사정(正)·성(誠)·협(協)으로 공유하는 꿈과 비전 반도체를 만드는 주요부품들의 세정 과정을 설명하는 김인수 대표. 경상도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꿈. 돈을 벌면 서울역 앞에 안내소를 차리자. 그래서 나처럼 서울역에 내려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이들을 도와주자. 20대 청년의 꿈은 4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자신이 일군 회사에서, 그리고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에게서…. 김인수(프란치스코 하비에르, 68, 서울 서초동본당) (주)서광하이테크 대표이사 이야기다. 김 대표가 서광하이테크를 세운 것은 1987년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 직장에서는 매출을 10배나 올렸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회사가 세금 폭탄을 맞았고, 책임은 임원이었던 김 대표가 떠안아야 했다. “그때 몇 가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는 기업을 할 때 절대로 친인척이 관련되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인척뿐 아니라 학연이나 지연에 매여서도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투명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정도(正道)를 걷고 정직하게 산다는 정(正)은 이후 김 대표에게 회사 경영 이념의 핵심축이자 바탕이 되는 가치가 됐다.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 소개로 자동차나 의자 등에 들어가는 완충기(쇼크 업쇼버)를 미국에서 들여와 공급하는 회사를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는 데는 이미 이력이 나 있었지만 새로 시작한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더 열심히 뛰고, 더 성실하게 임하고 더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성(誠)은 김 대표 경영 이념의 또 다른 핵심축이다. 정성으로 노력하니 삼성ㆍLGㆍ현대 같은 대기업과도 연결됐다. 일본 도시바 회사의 업무 자동화 로봇을 공급하고, 독일 일렉트로닉스사와도 계약을 체결해 산업용 진공청소기도 들여와 공급했다. 모두 세계 굴지의 제품들이었다. 1995년에는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부품들을 세정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회사법인을 설립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나중에는 세정뿐 아니라 수리 및 유지 관리 분야까지 확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표 혼자서 운영할 수가 없다. 임직원이 서로 소통하며 협력하고, 거래하는 기업과도 협력하고 협동할 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협(協)은 김 대표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핵심 가치다. 170명 전 직원 사진·직책 등 현황판 걸어둬 (주)서광하이테크에는 정(正)ㆍ성(誠)ㆍ협(協)의 가치들이 살아 있음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분당 테크노파크에 있는 본사 김 대표의 집무실은 직원들의 사무실 한쪽 끝에 있다. 별도 출입구가 없이 직원 사무실을 거쳐야 CEO 집무실에 갈 수 있다. 대표 집무실과 직원 사무실을 구분하는 것은 유리벽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직원들은 CEO의, CEO는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로 볼 수 있다. 유리벽만큼이나 투명하다는 방증이다. 김 대표 책상 뒤 벽면에는 인원 현황판이 있다. 170명이 넘는 직원의 직책ㆍ담당 업무ㆍ성명ㆍ입사일이 증명사진과 함께 붙어 있다. 그만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친근하게 다가서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식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농아 사원과는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동일 계열의 한 회사가 노사 갈등으로 문제가 생겨 김 대표가 그 공장을 인수하게 됐다. 지방에 있는 그 공장은 야근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거의 새벽마다 지방에 내려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직원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때로는 술까지 곁들이며 대화를 나눴다. 직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열심히 일하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렇게 해서 갈등을 상생과 협력으로 바꿨다. “저는 새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과도 거래하고 중소기업과도 거래하니, 우리 회사에서 2년만 잘 배우면 어디에서나 부끄럽지 않게 일할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배우자.’”그뿐 아니다. 김 대표는 정말 잘하는 직원이 이직을 희망하면 대기업에 직접 추천해 주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잘하는 직원입니다’ 하고 추천서를 써준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비전을 갖고 희망을 키우는 자극이 된다. 김 대표는 지방 공장 직원들과 틈나는 대로 가까운 산으로 등산한다. 직원들에게 등산화를 챙겨주는 것도 김 대표 몫이다. 지금까지 인근의 산 수십 곳을 함께 다녔다. 또 해마다 5㎞ 단축 마라톤 행사도 연다.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기록을 관리해 주고 전년도보다 기록이 단축된 직원들에게는 상도 준다. 김 대표는 ‘(사)천주교석문복지재단’을 통해 강원도 오지의 아이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서초동본당 주보 현석문 가롤로 성인의 이름을 딴 재단은 서초동본당이 1980년대 말 성당을 신축한 후 소년소녀 가장과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돕고자 시작한 후원회에서 비롯했다. 성당 신축 당시 거의 성당에 살다시피 했던 김 대표가 후원회와 관련을 맺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후원회는 1991년 석문복지재단으로 새롭게 출발했고, 현재 강원도 태백ㆍ고한ㆍ정선 등 오지 지역 40여 명을 포함해 70여 명의 초중고생에게 매달 10만 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방학 때는 1박 2일의 가정 방문이나 캠프를 개최한다. 재단 설립 후 지금까지 모두 460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김 대표는 재단의 이사장이다. 서광하이테크 직원들도 10여 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울타리봉사회’를 만들어 매달 3000원씩 후원회비를 내서 아이들을 돕고 있다. 현재 울타리봉사회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40~50명에 이른다.군 복무 중 영세, 가족들도 차례로 1947년 경주의 엄격한 유교 집안 출신인 김 대표는 군 복무 중이던 1969년에 세례를 받았다. 동료가 신학생(현재 미국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손경수 신부)인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군 신자들을 위한 주보를 뜻도 잘 모르면서 1년 이상 만들어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휴가를 나와 아버지에게 천주교 신앙을 갖겠다고 말씀드리자 부모에게 강요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김 대표를 따라 결국에는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됐다. 누나의 외동아들도 그중 하나였는데 중3 때 외삼촌인 김 대표를 대부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나중에 사제가 됐다. 정홍규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라는 김 대표는 스스로를 “세들어 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성경구절 시편 27장 4절을 읽고 나서야 그 뜻을 알았다.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 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글ㆍ사진=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5.04.14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8) 치유하는 피의 신](//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91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8) 치유하는 피의 신생명 지키는 피의 능력도 하느님에게서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구약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아보자. 히브리어로 피는 '담'이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카드어로 피는 '다무'다. 아람어와 아랍어로도 피는 '담'이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고대 셈어의 공통적인 낱말인 담을 통역 없이도 서로 이해하고, 단어에 스며있는 종교적 심성을 자연스레 공유했을 것이다. 히브리어 '에돔'은 이웃 민족 에돔족의 이름인데 '붉다'라는 뜻이다. 이 지역 땅이 붉은색을 띠어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애증의 관계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에돔의 조상 에사우는 형제이므로 두 민족은 형제지간이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며 지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뒤바뀌기도 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에돔인을 그리스어로 '이두매아'라고 불렀다. 에돔인은 로마 시대에 번성해 유다 땅까지 다스렸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하지만 해묵은 감정 탓인지 이들은 형제 유다인을 곱게 통치하지는 않았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이 이두매아의 임금 헤로데의 통치를 늘 탐탁지 않게 여긴 배경에는 이런 뿌리 깊은 민족 감정이 있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펼쳐진 고대 수메르 문명 도시국가인 우르와 라르사이신, 기르수의 신들 가운데 피의 신 '다무'가 있었다. 이 피의 신은 악령을 내쫓는 능력과 찢긴 힘줄을 붙여 주는 능력이 있었다. 고대 근동인은 질병이 사악한 귀신을 통해 침입한다고 믿었기에 이 두 능력은 사실상 하나다. 한마디로 '치유하는 신'이다. 다무가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신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무 신은 왕가의 고결한 혈통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었다. 이렇듯 다무는 이롭고 좋은 신이다. 담이라는 어근과 이 신의 이름을 사용한 인명이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사용됐다. #구약성경의 피는 생명력 그 자체 피의 신은 고대 근동에서 꽤 널리 섬겨진 신이지만 구약성경에서 피를 신으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구약성경에 약 360차례 '담'이 등장하지만, 이는 피의 신이 아닌 사람이나 짐승의 혈액을 의미한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피에 대한 고대 근동 종교의 심성은 공유했다. 구약성경에서도 피는 신령한 생명력을 상징했다. 인간은 피를 먹으면 안 된다. 피는 신성한 것이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신명기 12장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세 번이나 강조한다. 피는 치유하는 생명력 그 자체다. 인간이 손을 대지 말아야 할 생명의 기(氣) 또는 에너지라 바닥에 쏟아 땅에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러면 그 생명력을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나서 이 땅에 생명력이 끊이지 않는다. 무척 생태적인 이 계명의 배경에는 고대 유목민의 경험과 지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율법에 따르면 짐승을 잡아 목을 꺾어 거꾸로 매달아 피를 바닥에 충분히 쏟아 버린 고기는 정결한 고기요, 피를 쏟지 않은 고기는 불결한 고기다.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백성은 모든 규정을 잘 지켜 생산된 정결한 식품만 먹어야 한다'는 계명을 지킨다. 유다인들은 계명에 따라 생산된 식품을 '코셰르'(깨끗한)라고 부르며 따로 유통하고 보통 식품보다 비싼 값을 매긴다. 물론 모든 유다인이 늘 정결한 음식만 먹고 살지는 않지만, 코셰르 음식 산업은 현대 세계 유다인 문화와 경제 일부를 이룬다. #사악함을 물리치는 피 피는 잡신이나 악령 등 부정한 것을 쫓았다.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황소와 숫염소의 피를 받아 뿌리는 것은 '속죄 예식'의 일부다. 그들의 부정과 허물 등을 씻으려는 것이다. 숫양의 피를 몸에 바르는 것도 그것이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라오에게 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 갖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지만, 파라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느님은 결국 이집트의 맏배를 모조리 치시며 가장 강력한 표징을 보여주셨다.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하룻밤에 모두 죽어나갔다. 이집트에서 초상이 나지 않은 집이 없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이 히브리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께서 바로 전날 문설주에 피를 발라 놓으면 파괴자가 그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피가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가 악령을 쫓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란 것이다. 피를 바르도록 명령하신 분도, 악령이 그 피를 알아보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느님이시다. 곧 생명을 지켜주는 피의 역할은 고대 근동 신화와 같지만, 피가 신은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피의 능력의 근원은 하느님이다. 구약성경은 피를 탈신화하고 야훼 신앙으로 재신화했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퇴사자22013.06.04
![[시사진단]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631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안미란 마리아 도미니카(독일문화원 교육협력부) 성탄이 오고 한 해가 간다. 전례력은 12월에, 음력은 2월에, 고대 로마에서는 3월에, 또 다른 달력에서는 또 다른 계절에 한 해가 시작하니, 사실 한 해가 시작하는 때는 정하기 나름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한쪽으로는 11월쯤이 되면 새로운 무언가가 오고 있다는 기대가 되고,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한다. 밤에도 불이 켜지고 들뜨는 도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잘 때에도 수첩이 손 닿는 거리에 있어야 하는 나로서는 1년 내내 쓸 수첩을 고르는 것이 11월 초부터 연말까지 걸리는 중대 과제가 되어 버렸다. 문구점에 휘리릭 가서 사오면 된다고 하시면 뭘 모르시는 말씀. 일 년 내내 끼고 살 물건이니 첫째는 내구성이 문제가 되고 둘째는 마음에 들어야 한다. 플라스틱 스프링이 달린 수첩을 써 봤더니 스프링이 뚝뚝 끊어져 버렸고 두꺼운 종이로 된 수첩을 써 봤더니 10월의 어느 날 표지가 찢어져 나가고 말았다, 365일간 그 고생을 감당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칸이 나뉘어 있고, 너무 무겁지도 않지만 쓰고 싶은 건 다 쓸 수 있고, 종이 두께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마음에 맞는 수첩을 고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만큼이나 오래 고심하고 고심하는 일이 하나 더 있는데, 해마다 “그 해의 문장”을 고르는 일이다. 처음에는 불규칙적으로 문장 하나를 구호처럼 삼다가, 언젠가부터는 해가 끝나갈 때마다 문장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해마다 사자성어를 고르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경우에는 그런 자격 조건은 없이 아무 문장이나 다 된다. 지금도 종종 인용하는 문장은 “인생은 고해니까 설탕을 뿌려야 한다”인데, 15년쯤 전에 그냥 만들어 본 말이다. 물론 비유적인 말이지만, 그런 정신으로 사탕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 밖에 성경의 한 문장이나 노래 가사, 속담, 무엇이나 좋다. 하지만 역시 최소한 열두 달은 버텨 주어야 하고, 담고 싶은 뜻을 마음에 맞게 표현해 주어야 한다.2014년의 문장은 2013년 말 어느 날의 미사에서 영성체송을 그대로 분홍색 형광펜으로 (당연히 수첩에) 옮겨 적었다.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오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이는 엄청난 소식, 세상이라는 장소의 가치를 바꾸어 놓는 사건이 아닌가. 그 말을 곰곰 새기면, 이 땅에서 하느님의 숨결이 느껴진다.사실 지난 한 해 동안 가깝고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그 숨결이 황사 잔뜩 마신 기침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싶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 생활 터전을 잃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끊일 날이 없고, 평화를 따라가다가 감옥에 간 친구도, 이 세상을 견디다 못해 가족이 함께 손잡고 미리 스스로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앞에서 인용한 문장보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배스커빌 사람 윌리엄이 던졌던 질문, “하느님 거하시기에 편할 곳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가 지난 한 해를 더 잘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 보이는” 것이 사실의 전부는 아니다. 보이는 것에 낙심하고 끝내기에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발자국이 너무나 깊이 찍혀 있고, 또한 이 엄청난 소식은 나만 알고 좋아서 히죽히죽 웃다가 끝낼 일도 아니다. 대림 시기의 독서에서 예언자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이사 40, 1)하고 외친다. 하느님이 이사야 예언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언어에서 보니 동사가 2인칭 복수다. 너희가 위로하라고 너희의 하느님이 임무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은 이런 세상에서 너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듯이 우리와 함께 다니시는 이런 엄청난 하느님께 기대어, 새해에는 겁도 없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를 1년 내내 품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나누어 주면 어떨까. 평화신문2014.12.17

신약의 비유 장터 아이들의 비유갖은 핑계 대며 손 놓고 있는 이들을 향한 일깨움 (마태 11,16-19; 루카 7,31-35)‘장터 아이들의 비유’(마태 11,16-19)를 이해하려면 11장 전체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마태오 복음 11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11,2-6)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11,7-15)를 전해주며 그 후에 장터 아이들의 비유가 자리한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곧 코라진과 벳사이다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전한다. 문맥을 보면 장터 아이들의 비유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며, 그 의미는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타라고 생각할 수 있다.복음 선포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여기에서 표현되는 ‘이 세대’는 마태오 복음 안에서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의미하기도 한다(마태 23,36 참조). 하지만 이 비유 안에서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살고 있던 시기에 살아가던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11,2)는 예수님의 언급을 참조한다면 이스라엘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기보다는 실제적인 표현으로 보인다.“(이 세대는)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비교되는 것은 이 세대의 사람들과 장터에 앉아있는 아이들이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이것이 아이들이 하던 놀이의 일종인지 밝히기는 어렵지만 그 내용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춘다는 것은 혼인 잔치의 이미지이다. 혼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다인들에게 가장 큰 잔치였다. 혼인 잔치는 성경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비유이기도 하다(마태 22,1-13; 요한 2,1-2). 유다인들은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 정도 신랑, 신부와 함께 머물면서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장소로 함께 갔다고 한다. 주로 저녁 시간에 혼인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마태오 복음에서 전하는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터 아이들의 비유에서도 역시 긴 기간 동안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는 유다인들의 풍습을 배경으로 한다.‘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것은 장례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마태 9,23-24). 또한 요셉푸스의 「유다 전쟁사」 중 “수 많은 피리 부는 이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연주하며…”(3437)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가슴을 치다’는 동사는 슬픔을 표출하는 행동을 나타내는데, 성경 안에서 이 행동은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에 사용됐고(창세 23,2), 참회를 나타내는 것에도 사용됐다(마태 24,30). 이 노랫말 같은 표현에서 강조되는 것은 혼인과 장례, 곧 피리를 불며 춤춘다는 것과 곡을 하며 가슴을 친다는 것 사이의 대조이다. 많은 학자는 장례의 이미지는 줄곧 회개를 선포하던 세례자 요한에 대한 것으로, 그리고 혼인의 이미지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던 예수님에 대한 것으로 잘 이해한다.회개와 구원, 실천 없이 요원해“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하고 말한다.” 먹고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세례자 요한의 금욕적인 생활 모습을 나타낸다. 마태오 복음은 이미 세례자 요한에 대해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마태 3,4)라고 전한 바 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됐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금욕적인 생활이 그 이유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예수님에 대한 표현은 세례자 요한과는 대조적이다. “사람의 아들이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금욕적인 생활이 세례자 요한을 거부한 이유라면 사람의 아들, 곧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는 누구와도 흥겹게 어울리는 지나친(?) 친교 때문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은 복음서에서 많이 표현된다. 예수님을 칭하는 표현에는 하느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이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예수님의 기원을, 곧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면, 사람의 아들은 온전한 인간이 되어 우리 안에 오신, 그리고 수난과 죽음을 겪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아들이 먹고 마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나타내는 표현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자들은 이 표현을 통해 마태오 복음이 ‘사람의 아들’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를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하지만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먹보와 술꾼은 벌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또 피해야 할 사람으로 표현된다. “우리 아들은 고집이 셀 뿐더러 반항만 하며 우리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방탕아이고 술꾼입니다”(신명 21,20). “술을 폭음하는 자들과 고기를 폭식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마라”(잠언 23,20). 예수님의 행동,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아들로서 당연하였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제다. 마태오 복음은 옳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지혜 문학의 주제인 지혜를 예수님에게 적용한다. 구약 성경에서 지혜는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충실히 따르는 것에서 얻게 되는 선물로 묘사된다. ‘지혜가 이룬 일’이라는 표현에서 지혜서에 나오는 한 대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7,27).마태오 복음은 하느님의 지혜가 예수님의 업적을 통해 “드러났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11장을 시작하는 대목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11,2). 예수님의 업적은 바로 유다인들이,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마태오 복음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람의 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거부하지만, 그가 메시아요 그리스도라는 것은 이미 그의 업적을 통해 증명됐음을 강조한다.이 비유의 주제는 ‘거부’다. 혼인과 장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통해 이 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이 회개와 구원을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에 거부하고, 사람의 아들은 그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기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상 이들은 회개와 구원에 관심도 없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다. 결국, 이 세대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코라진과 벳사이다가 회개하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마태오 복음 11장 20-24절은 장터 아이들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이 세대’의 사람들, 복음서의 말씀은 이제 더 이상 2000년 전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시대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미 알고 있는, 그분의 업적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사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혹시 여전히 당시의 사람들처럼 이러 저러한 핑계만을 찾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업적을 보여준다 해도 그저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회개와 구원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복음서에서 말하는 ‘이 세대’는 예수님께서 살던 당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의 사람들일 것이다.“지혜가 옳다는 것은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백영민2014.07.16
![[소공동체 특집] 말씀, 미지근한 신앙 뜨겁게 한 불쏘시개](//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68_1.1_titleImage_1.jpg)
[소공동체 특집] 말씀, 미지근한 신앙 뜨겁게 한 불쏘시개 모범사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탐방 매주 가정에 모여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족 말씀터 모습. 이지혜 기자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모범사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탐방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1월 22일 소공동체가 활성화된 서울 대방동본당(주임 박기주 신부)을 탐방, 본당 소공동체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복음화의 못자리인 소공동체를 통합사목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한국교회 현실에 적합한 본당 소공동체 모델을 모색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대방동본당을 대표하는 봉사자들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말씀과 소공동체 중심의 참여하는 교회'를 주제로 말씀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룬 추진 과정을 소개하고, 다양한 말씀터(반모임) 사례를 발표했다. 이날 소공동체 발표 시간에는 소공동체소위원회 위원 9명과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연구원, 15지구 사제들과 대방동본당 신자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대방동본당의 소공동체 이야기 2009년 2월, 박기주 신부가 부임한 당시 본당은 교육관과 사제관을 짓고 있었다. 본당 신자들은 영적으로 메말라 있고, 본당 공동체는 위축돼 있었다. 박 신부는 21개 구역의 남성구역장들을 불러 모았지만 6명만이 얼굴을 보였다. 구역장들은 "도와주는 신자들이 없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박 신부는 "남성구역장들이 패잔병 같았다"고 회상했다. 2014년 1월, 본당 신자들이 달라졌다. 본당 신자들은 말씀터 사례 발표 시간에 "성경 말씀을 통해 신앙의 참 기쁨을 맛봤다"며 소공동체 예찬론을 펼쳤다. "제 신앙은 미지근했는데 말씀터에서 성경 말씀을 읽으며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봉사는 많이 해왔지만 성경을 가까이 접하지 못해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김윤진 요아킴). "결혼한 지 10년이 됐지만 남편과 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가족 말씀터를 통해 하느님이 성가정의 씨앗을 심어주신 것 같아요"(조민채 가브리엘라). 박 신부는 말씀을 중심으로 한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먼저 성경공부를 한 신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공동체 교육 및 견진봉사자 교육을 했다. 견진성사 교리를 10개월로 대폭 늘려 교리시간에 성경공부를 포함시켰다. 전 신자를 대상으로 구역별 피정을 열었고, 2010년 4월부터 말씀터를 시작해 말씀에 맛 들이는 친교의 공동체로 발돋움했다. 137개 말씀터(신자 700여 명)로 시작한 말씀터는 현재 186개(신자 1100여 명)로 늘었다. 구역 말씀터뿐 아니라 30~40대 젊은 부부를 위한 말씀터, 청년 새영세자 말씀터, 가족 말씀터, 유치원 학부모들의 말씀터 등 다양한 말씀터가 생겨나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말씀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있다. 말씀터가 활성화되면서 본당의 젊은 신자가 늘어나 활기가 넘쳤다. 말씀을 접한 신자들의 신앙은 깊어지고, 신자들 사이의 관계도 한결 가까워졌다. 박기주 신부는 "견진교리를 10개월로 늘렸을 때 신자들 반발이 있었다"면서 "말씀 자체에 힘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이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본당은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대방동본당 기자단으로 활동하는 이인숙(클라라)씨는 "3년 동안 말씀터를 취재하면서 처음 기복신앙에 치우쳤던 신앙이 사회적 문제도 함께 생각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소공동체,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 대방동본당 소공동체를 체험한 소공동체소위원회 위원들은 1월 23일 열린 평가회의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 모습을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전원(서울대교구) 신부는 "한국교회의 본당이 대방동본당 수준으로만 쇄신이 되면 복음의 기쁨이 한국교회에 스며들 것"이라며 "특히 말씀을 읽고 나누는 청년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강영옥(서강대) 교수는 "개인이 파편화되고 연대감이 떨어지는 시대에 삶과 말씀이 일치돼 신앙 안에서 위로를 받으며 사는 신자들 모습을 봤다"며 "소공동체가 활성화되면 인간다운 사회로 발전하는 데에도 좋은 도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평가했다. 소공동체소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다"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다는 증거는 기쁨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이어 "대방동본당의 소공동체는 세계교회 어디에 내놔도 모범이 될 만하다"며 "이 모습이야말로 교회의 본래 모습이자 미래의 교회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공동체소위원회는 대방동본당 사례 발표를 녹화해 소공동체 시청각 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서울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3구역 5반 1월 22일 저녁 8시. 대방동본당 3구역 5반 신자들이 둘러앉아 말씀을 읽는다. 가사와 직장일 등 바쁜 일과를 마치고 반장 전순려(아가타)씨 집으로 모인 신자 13명이 손으로 성경구절을 한 줄씩 짚으며 읽어내려 간다. 3구역 5반 신자들의 말씀터(반모임) 시간. 신자들은 본당 복음화연구실이 '렉시오 디비나'를 응용해 만든 「말씀여행」을 교재로, 성경을 읽고 묵상한 후 나눔시간을 가진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실천할 성경 구절을 찾아 발표한다. 말씀터 8단계는 △시작기도 △말씀 읽기 △새김 △나눔 △되새김 △보충 △말씀 살기 △마침 기도 순으로 진행된다. 3년 전 2명으로 시작한 말씀터는 15명으로 늘었다. 처음 말씀터를 시작할 때는 각자 생활이 바쁘고 서로 어색하고 서먹했지만 지금은 매주 안 만나면 서운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서로 대부모도 서 주는 등 신앙적으로 친밀한 관계도 맺었다. 냉담을 하다가 자신의 집에서 말씀터가 열릴 때마다 공원으로 피신했던 반장 남편 정석주(요셉)씨는 "공원에서 늘 배회하다가 용기를 내어 말씀터를 같이 하게 됐다"며 "말씀터를 함께한 지 1년 만에 견진성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성경을 읽으면서 신자라면 누구나 소공동체 모임에 소속돼 있어야 냉담을 안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말씀을 접하면서 내 삶에 큰 변화가 왔다"고 말했다. 전덕순(가타리나)씨는 "처음 말씀터를 하기 위해 집집이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 난감한 적도 많았다"며 "말씀터를 하지 않았다면 말씀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서로 소통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박기주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본당 사제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말씀만 들고 들어가면 됩니다. 가르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말씀 자체에 힘이 있기 때문에 신자들 스스로 말씀만 만나게 해주면 소공동체는 꽃을 피우게 됩니다." 1월 22일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위원들에게 소공동체 활성화 사례로 대방동본당을 소개한 본당 주임 박기주 신부는 "학력이 없는 할머니들에게도 복음의 힘이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만나게 해주면 지식이 아닌 그 말씀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며 "본당 공동체가 말씀 안에서 꽃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사목자로서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1992년 서울대교구 2000년대 복음화사무국장을 지낸 박 신부는 소공동체 운동 확산에 불을 지폈다. 한국교회는 당시 신자들이 급격히 증가해 '수확의 호황기'를 맞았지만 사제들의 성무가 가중되면서 '친교의 공동체'와는 멀어져 갔다. 이에 새로운 교회상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서울대교구는 1990년대부터 소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사목을 시도했다. 대방동본당 소공동체 '말씀터'를 통해 친교의 공동체를 실현한 박 신부는 "소공동체를 활성화해 나가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다만 (주임 신부로서) 독단해 본 적 없고, 본당 신자들과 항상 합의를 이뤄 함께해 나갔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하느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하느님 말씀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신앙인으로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예비자 교리 이후로는 성경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신부는 '기다리는 리더십'으로 신자들을 신뢰하고 묵묵히 기다려줬다. 박 신부는 "이 소공동체의 기쁨을 대방동본당뿐 아니라 다른 본당의 신자들과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이지혜 기자cpbc2014.02.04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어떻게 해야 주님 말씀에 맛들일 수 있을까성경공부를 하려면 어디로 ▨성경공부 유형 ▶가톨릭성서모임 성서 40주간 및 심화반 교육/02-824-4363/www.biblemove.com ▶바오로성서모임/02-752-7894/www. spcseoul.or.kr ▶베네딕도 성서학교/02-920-9667/cafe. naver.com/bbs3004 ▶성서못자리(정기강좌, 나눔터 그룹공부, 35살이하 청년성서못자리)/02-775-5789/cafe. daum.net/BibleMot ▶성서백주간/02-730-4410/cafe.daum.net/bible100weeks ▶'여정' 성경 공부/02-525-7869 ▶시청각 통신성서교육원(우편ㆍ인터넷 학습, 이러닝(e-learning) 학습,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 나는 성경공부' 전문 봉사자교육/02-944-0819, 02-944-0840/uus.pauline.or.kr ▨교구별 성경사목 담당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02-775-5789 ▶광주대교구 성서사도직/062-380-2260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위원회/053-250-30 82/cafe.daum.net/biap ▶수원교구 복음화국 성경사목부/031-241-7966 ▶부산교구 성서사도직/051-465-8162, 울산대리구(052-287-7737) ▶인천교구 성서사도직/032-762-9717 ▶대전교구 성서사도직/042-630-7721 ▶청주교구 성서사도직/043-210-1730 ▶전주교구 성서사도직/063-230-1004 ▶의정부교구 성서 담당/031-850-1446 ▶춘천교구 사목국 성경사목부/033-240-6020 ▶원주교구 사목국 성서부/033-765-4224 ▶안동교구 성서사도직/054-858-3114 ▶마산교구 성경부/055-249-7025 ▶제주교구 성서사도직/064-751-0143 ▨평화방송 TV(www.pbc.co.kr) ▶김혜윤 수녀의 구약노트/본방송=화 오전 9시(본방송), 재방송=목 오후 9시, 금 오전 4시, 주일 오후 6시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본방송=월 오전 9시, 재방송 화 오후 9시, 목 오전 4시, 오후 3시, 주일 밤 10시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본방송=수 오전 9시, 재방송 금ㆍ주일 오후 9시, 월 오전 4시, 오후 3시 ▶성경인물과의 만남(구약편)/본방송=화 오전 8시, 재방송=수 오후 9시, 금 오후 4시, 토 오전 4시, 주일 오전 7시 ▶장재봉 신부의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본방송=수ㆍ목 오후 2시, 재방송=토ㆍ주일 오전 3시, 화ㆍ수 밤 12시 ▶최승정 신부의 성서백주간/본방송=금ㆍ토 낮 12시, 재방송 화ㆍ수 오전 1시 ▶정인준 신부의 생활 속 성경찾기/본방송=금ㆍ토 낮 12시, 재방송=화ㆍ수 오전 1시 ▨평화방송 라디오(www.pbc.co.kr) ▶PBC 성서 못자리(강사 : 안병철 신부)/월~토 오전 6시 5분 ▶강신모 신부의 성경 강독/주일 오전 8시 5분퇴사자22013.01.29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4) 강- 삶의 무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24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4) 강- 삶의 무대신성 있다고 믿어 강의 범람까지도 인격화 지금까지 하늘신ㆍ달신ㆍ바람신에 대해 배웠다. 고대 근동에서 하늘은 최초의 신이자, 최고의 신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야훼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받아들였고 하늘을 하느님이 만든 장소로 생각했다. 또 고대 근동에서 달신은 왕권의 상징으로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달신 숭배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들은 문화로 받아들였을 뿐 신으로 숭배하지는 않았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자 하느님 현현의 전조이다. 창세기 1장은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이 원대한 계획을 갖고 기술한 용기있는 텍스트다. 강(江)은 히브리어로 '나하르'다. 구약성경에 120번 이상 나오는 무척 친숙한 낱말이다. 이 말은 지리적 강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화적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강'은 '바다'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강은 물을 제공한다. 인류의 4대 문명인 황하ㆍ인더스ㆍ나일ㆍ메소포타미아 모두 강에서 비롯됐다. 물이 흐르는 곳에 초목이 자라고, 문명도 자란다. 대부분 종교에서 강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볼 수 있다. #강에 대한 경외심 고대 근동인들은 강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다. 다시 말해 강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현대의 합리적 세계관과는 다른 마음으로 자연을 섬겼다. 그들은 강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백이 축적된 심원한 '의미의 세계'에서 살았다. 고대 근동인들은 구체적인 강들, 이를테면 나일 강이나 유프라테스 강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일 강은 이집트의 젖줄이다. 이 강을 히브리어로는 '예오르'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네일로스'라고 한다. 두 낱말 모두 '기간' 또는 '계절'을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어에 뿌리를 둔다. 곧 나일 강의 이름은 '한 계절' 또는 '(돌아오는) 기간'이라는 뜻으로, 일 년에 한 번 나일 강이 범람하는 기간과 관련 있다. 나일 강의 본질은 범람이다. 고대 근동의 신은 대부분 자연 현상에 기반을 둔 인격신이다. 흥미롭게도 나일 강의 경우 강 자체는 인격화되지 않고 강의 범람만 인격화됐다. 나일 강의 범람의 신 이름이 '하피(Hapi)'다. 이 신은 배가 불룩 나온 남신이지만 여신처럼 젖가슴이 크다. 머리에는 파피루스 덤불이 자라고 손에도 식물을 들었다. 하피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19왕조(람세스 2세가 속한다) 시대부터 상(上)나일과 하(下)나일의 한 쌍으로 묘사됐다. 나일 강의 범람의 신 '하피'는 태초의 심연과 관련된 생명력의 신이자 풍요의 신이다. 이집트 종살이를 오래 겪은 히브리인들은 이집트 문화에 익숙했다. 히브리인들은 나일 강의 종교적 의미와 하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오직 이 하피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침묵의 탈신화' 현상을 보인다. 오히려 나일 강의 범람을 하피가 아닌,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일로 묘사한다. 성경에는 주님께서는 나일 강이 부풀었다 잦아드는 일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나온다.(아모 8,7-8 참조) #강이 지닌 신성 인류 4대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두 곳이 바로 고대 근동지역에 있다. 그 중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그리스인들은 셈족의 전통을 따라 이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두 강 사이)'라고 번역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은 수메르 시대 이전부터 이미 신성을 지닌 존재였다. 두 강은 모두 고대 근동 세계에서 신성을 지녔다. 두 강의 이름 자체가 신의 이름이었다. 고대 바빌론어 이름에는 '마르-푸랏팀'(유프라테스의 아들)이나 '움미-이디클라트'(티그리스는 나의 어머니) 등이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 두 강의 신성은 세월에 따라 점점 약화된다. 후대 문헌일수록 두 강이 신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저 지명으로만 쓰인다. 엔키(Enki)신이 있기 때문이다. 엔키는 수메르 시대부터 일곱 주신(主神) 가운데 하나였고, 최고신 아누(하늘신)의 아들이자 풍요의 신 두무지의 아버지였다. 엔키는 선하고 좋은 신이다. 엔키의 어깨너머로 물고기가 노니는 강물이 흐르고 그의 모자에는 식물(생명의 나무)이 자란다. 수염이 긴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인상이다. 엔키는 고대 근동지역에 정기적으로 홍수를 일으켜 비옥하게 만드는 풍요의 지하수신이요,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 문제를 해결해주는 선한 신이었다. 엔키는 대표적인 선신이기에 대중에게 무척 사랑받았다. 이렇게 영향력 있는 엔키가 강물의 신성을 대표했기 때문에 두 강의 신성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대 근동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엔키의 흔적을 구약성경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30
![[출판]예수, 탄생과 어린시절- 예수님 생애 '쉽고 깊이 있게' 알려주는 해설서](//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2361_1.1_titleImage_1.jpg)
[출판]예수, 탄생과 어린시절- 예수님 생애 '쉽고 깊이 있게' 알려주는 해설서 송몽보 신부, '예수' 시리즈 5부작 중 1편 '탄생과 어린시절' 출간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송봉모 지음/바오로딸/1만 4000원 인류 역사는 예수님 탄생을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기원전(BC, Before Christ), 기원후(AD, Anno Domini)로 구분 짓는 연도 기술 방식의 기준은 예수님 탄생이다. 예수님 등장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 사건이었고,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이 됐다. 예수님은 또한 한 인간 삶의 중심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 또한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처럼 인류 역사, 한 개인의 삶에 중심에 서 있는 예수님에 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면 신약성경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막상 신약성경 첫 장 마태오 복음서를 펼치면 발음하기도, 정리하기도 어려운 이름들로 가득한 예수님 족보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인내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2000년 전 문화와 사회, 정치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성경이 전하려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신약성서학 박사이면서 인기 작가이기도 한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예수님에 관한 집필을 시작한 이유다. 신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을 위해 예수님 삶을 '쉽고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예수' 시리즈(5부작)를 기획했다. 그리고 최근 탄생과 어린 시절을 다룬 1권을 펴냈다. 송 신부는 정말로 '쉽고 깊이 있는' 해설로 예수님 생애를 그려냈다. 성경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화와 사진 자료를 풍부히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다양한 문학작품과 예화를 통해 예수님이 말하고 보여주려 했던 의미를 정확히 짚어줬다. 요셉과 마리아 등 예수님 주변 인물과 당시 풍습과 사회상,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실었다. 루카복음서와 마태오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왜 차이가 나는지, 복음서는 예수님 공생활 이전의 삶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는지, 예수님 형제와 누이들은 누구인지 등 성경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 법한 내용들 역시 빼놓지 않고 다뤘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를 어떤 식으로 대했을까?…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화들을 주의 깊게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성모님이 아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성모님이 아기를 안고 있지만 꼭 껴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봉헌하듯이 안고 있다. 이는 성모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혼연일체된 사랑으로 양육하셨지만 그 아들을 당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하셨다는 것과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본문 중에서). 송 신부는 또 예수님 생애를 설명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 생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묵상하도록 이끈다. 딱딱한 해설서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래서 책장이 잘 넘어가면서도 어느 대목에 이르러선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예수님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을 내적 고뇌와 슬픔의 깊이를 헤아려볼 때, 우리는 인간 예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며 그분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솟아오를 것이다. 또한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로 상처와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셨을 예수님이기에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결코 모른 체할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자"(본문 중에서). 송 신부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그분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분을 우리 인생의 중심으로 삼고 더욱 열렬히 그분을 사랑하고, 더욱 충실히 섬길 수 있다"고 했다. 송 신부의 예수 시리즈가 예수님을 깊이 알게 해주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4.01.14
![[복음 이야기]<1>복음서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12/rc/490213_1.2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복음서란 무엇인가'예수는 그리스도' 고백의 집약체, 복음 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예수님 당시 삶의 자리의 시대상과 풍속, 언어, 지리, 사상 등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성경의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성경을 통해 허약한 신앙을 회복하고 새복음화의 기초를 다져나가려는 한국교회의 사목 방침에 따라 성경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연중 기획 '복음 이야기'를 연재한다.복음서는 서기 70~90년 사이에 구전 복음을 기초로 기록됐다. 사진은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필사본 오트하인리히 성경. 이 성경은 원래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에 있었으나 하이델베르크가 함락된 후 바티칸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현재 뮌헨 바이에른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차윤석 베드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복음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역사적 인물인 나자렛 사람 예수가 믿음의 그리스도 바로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돼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5-6). 또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이 고백이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서 저술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역사의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가 복음 주제 복음은 헬라어(희랍어) '에우안겔리온'에서 나온 말이다. 에우안겔리온(ευανγγελιον)은 본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대가로 주던 선물을 뜻한다. 오늘날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모든 소식을 인편으로 직접 전달했다. 이들 중 특히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다. 성경에서 '에우안겔리온'은 과거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기쁜 소식에 관해 사용됐다(이사 61,1). 이 에우안겔리온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복음서는 하느님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라 한다. 그래서 첫 복음서의 저자 마르코는 복음서 서두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란 말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서기 70~90년께 헬라어로 저술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와 믿음의 그리스도를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예수님 말씀과 행적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 저술됐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언행이 제자들과 목격자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구전 복음'이라 한다. 이 구전 복음이 제자들의 필요로 서기 50년부터 90년 사이에 글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첫 기록 전승은 서기 50~60년께 예수님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예수 어록(Q)'이 있었다. 그러다 예수님 말씀뿐 아니라 행적과 기적, 비유 등을 모아 70년께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됐다. 마르코 복음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에게 유다인 풍습을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루살렘 함락 후 서기 80~90년께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결별이 마무리됐을 때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헬라어로 작성했다. 루카 복음서도 마태오 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했다. 마르코ㆍ 마태오ㆍ 루카 복음서는 같은 관점에서 쓰였는데 이를 '공관 복음'(synoptica)이라 한다. 라틴말 '시놉티카'는 '함께 바라보다'는 뜻이다. 공관 복음 세 복음서는 내용과 언어, 사건 순서들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둘의 공통 문헌이나 각자 고유한 자료를 첨가해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 서기 90년께 저술한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과 구성뿐 아니라 관점도 다르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로 기록됐다. 당시 지중해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으나 언어와 문화는 헬레니즘화 돼 헬라어가 공식 교양 언어였다. 네 복음서와 신약성경은 382년 로마회의와 397넌 카르타고 회의에서 정경(canon)으로 확정됐다. 네 복음서의 상징 리옹의 이레네오(202년 순교) 성인은 "네 복음서는 교회의 기둥이며 기반이고 생명의 혼"이라고 했다. 이 네 기둥은 사방으로부터 불사불멸의 빛을 발하며 인간에게 생명을 베푼다. 그는 예언자 에제키엘이 환시 속에 본 사람과 사자, 황소와 독수리 얼굴을 한 네 생물(에제 1,10)의 얼굴을 네 복음서 저자와 연관시켜 상징적 형상으로 삼았다. 요한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봄을 상징해 '독수리', 루카는 제사와 사제직과 관련해 '황소', 마태오는 구세주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셨음을 암시해 '사람', 마르코는 용맹하게 예수의 일생을 힘차게 표현해서 '사자'로 표현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12.31
![[신앙단상] 황량한 곳에 내렸던 무한한 은총](//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1780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황량한 곳에 내렸던 무한한 은총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일으키신 복음 말씀은 이렇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이곳은 동네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이므로, 이를 걱정한 열두 제자가 군중을 돌려보내고 수익자 부담으로 각자 마을로 돌아가 식사하고 잠자게 하자는 것,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데 어찌하오리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2-17).그런데도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라고 말한다. ‘장정’이라 함은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를 말한다. 사도행전 4장에도 장정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단 장정만 세어 보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곳에 모였던 사람은 오천 명이 훨씬 넘는다. 그 안에는 당연히 늙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며 아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여자가 너무 많아 세기가 어려워서 일단 건장한 남자만 세어 보았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당시 사람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여자였고 남자는 사도 요한뿐이었다. 여자 : 남자는 4 : 1이었다. 그런데도 성경의 이 대목에는 “오천 명을 먹이시다”라는 제목을 붙여 두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 신자는 남자의 1.5배 정도 된다. 또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 중에서 여자가 남자의 한 서너 배쯤 되는 것 같다. 기적이 일어난 곳에 있던 사람 중 노인이 장정의 최소 30%였다고 보면 5000×1.3=6500명은 남자다. 여기에 우리나라 남녀 신자 비율을 적용하면 6500×1.5=9750명이 된다. 따라서 모두 그곳에는 1만 6250명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1 : 1이었다고 해도 당시 모였던 사람은 6500×2=1만 3000명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먹인 사람 수는 오천 명이 아니라, 1만 3000∼1만 6000명을 먹인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있는 서울대의 학부 재학생 수가 올해 1만 6496명인데, 그렇다면 그 기적의 장소에 있던 사람은 지금 서울대 학부 학생 수와 같았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좌석 수는 대략 3000석 남짓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모여들어 배불리 먹은 사람이 이 기적을 증언하러 이 땅에 모였다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개를 모아야 다 앉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라고 한다. 그러면 광주리 한 개는 대략 1100명에서 1300명이 먹고 남은 조각을 담을 정도로 큰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이 12개 광주리를 들고 다녔을 리 없고, 열두 제자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먹일 줄 알고 큰 광주리를 12개를 들고 다녔을 리 없다. 게다가 그 장소는 마을에서 떨어진 ‘황량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을 아무리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 마음에 남는 것은 매우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 내리신 엄청난 기적이라는 사실뿐이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내리신 한없는 은총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부속가에서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라고 노래하듯이,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은총이 이 기적 속에 담겨 있었다. 그것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에서. 평화신문201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