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수위권 재확인[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4. 베드로 수위권 성당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이곳을 순례해 '그리스도의 식탁'에 입맞춤하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재현해 놓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과 베드로 수위권 갈릴래아 호숫가 타브가 '빵의 기적 기념 성당'에서 오른쪽으로 500여 m를 걸어가면 '부활하신 그리스도 발현 기념 성당'이 나온다. 이 성당은 요한복음 21장과 관련된 장소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셨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본업이었던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생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탕만 쳤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그물을 옮겨 던지니 자그마치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가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어 예수께 달려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직접 음식을 준비하시어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셨다(요한 21,1-14). 이 성당 제단 한가운데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직접 아침을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셨던 바위가 보존돼 있다. 바로 '주님의 식탁'(Mensa Christi)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발현 기념 성당은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사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의 으뜸으로 재확인받은 장소이기 때문이다(요한 21,15-19).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으로부터 수위권을 받은 곳은 헤로몬산 아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역으로 오늘날 '바니아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바르요나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3-20) 하시며 수위권을 부여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신 후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다. 성경에서 '3'이란 수는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가운데 마침을 가리킨다. 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키는 귀중한 수이다. 예수께서 세 번 유혹받으셨고 사흘 동안 무덤에 묻혀 계셨다. 구약 성조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세 명이고, 전례에서도 자비송, 감사송, 거룩하시도다 등을 모두 세 번 외친다. '사랑하다'는 동사는 우리말론 하나뿐이지만 헬라(그리스)어로는 3개가 있다. 연인 간의 사랑인 '에로스', 우정 같은 사랑의 '필레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무조건으로 헌신하는 사랑 '아가페'가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이 장면은 라틴어 불가타 역본이나 우리말 역본보다 헬라어 성경으로 읽는 것이 더 극적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나를 아가페 하느냐"(αγαπαs με)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이 물음에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οτι φιλω σε)고 대답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그로서는 '아가페'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아가페 하느냐"고 물으신 다음 베드로의 똑같은 대답을 듣자,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필레오 하느냐"(φιλειs με) 하셨다. 베드로에게서 "제가 주님을 필레오 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고 당부하심으로 그의 수위권을 재확인해주셨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부활하신 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면, 베드로를 특별한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은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 되라는 사명에 대한 확증이다. 전체 교회의 믿음을 위한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베드로의 이 계속되는 파견 사명은 교회를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가 설명했다(「나자렛 예수」 1권 302~328쪽 참조). ▨ 기념 성당 지금까지 설명한 요한복음 21장의 장면이 나오는 장소에 세워진 기념 성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발현 기념 성당'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성경고고학자들에 따르면, 4세기부터 이곳에 기념 성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1263년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돼 폐허로 방치됐다고 한다. 그 후 700년이 지나 성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에 의해 1934년 지금의 성당이 세워졌다. 성당 안에는 '그리스도의 식탁'이라 불리는 바위가 잘 보존돼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11.05

"죄의식 벗고 복음의 기쁨 누리자"주교회의,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승인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28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공개적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있다. 【CNS】부득이하게 주일 미사 빠질 경우 묵주기도로 대신 판공,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 받으면 인정 교황 방한 계기 복음적 나눔 실천에 적극 나서기로 주일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 △묵주기도 5단 △성경(해당 주일 미사 독서와 복음) 봉독 △선행(희생과 봉사활동) 등으로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면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또 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으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주교회의 3월 24~27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춘계 정기총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을 승인했다. 공동 사목 방안은 주일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를 다룬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기존 조항 내용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 주일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에 대한 신자들의 불필요한 죄의식을 줄이고 복음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려는 사목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득이한 경우'는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 미사에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한국교회 전체가 실천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복음적 나눔 정신에 따라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일에 더욱 적극 나서기로 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와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함께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교구 차원에서도 「복음의 기쁨」 내용을 나누면서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주교회의는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를 승인했으며, 교황 방한과 124위 시복식을 위한 특별 헌금을 6월 8일(성령 강림 대축일)에 전국적으로 실시키로 했다. 주교회의는 제4회 한국청년대회를 2017년 서울대교구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며, 교회 미래인 청년들을 위한 사목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가 교회일치 증진을 위해 한국정교회ㆍ성공회ㆍ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칭) 정관(안)을 승인했다. 주교회의는 의장이 당연직으로 참가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 제3차 임시총회(2014년 10월 5~19일, 로마)가 2014년 추계 정기총회 기간과 겹침에 따라 가을 정기총회 일정을 2014년 10월 27~31일로 변경했다. 강우일 주교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소장(임기 3년)에 연임됐다. 주교회의는 이와 함께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회칙 개정안과 생명운동본부 회칙(안)을 승인했으며, 주교회의가 제주도에 건립하고 있는 엠마오 연수원의 안식년 사제들을 위한 2014년 하반기 프로그램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4.04.01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57>십계명 : 여덟째 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거짓말, 인간과 이웃 관계를 손상하는 죄
거짓 증언 곧 위증은 여덟째 계명을 거스른다. 사진은 바티칸 법정의 재판 모습. 【CNS】 여덟째 계명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금합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말이나 행실로써 도덕적 정직을 지키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기본적인 불성실입니다. 여덟째 계명에 대해 알아봅니다(2464~2503항)진리 안에서 살아라 (2465~2470항)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진리의 근원이심을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진실하시기에, 하느님 백성의 지체들은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하느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모두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가르치십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진리를 찾는 존재입니다. 또 진리를 높이 평가하고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써 참된 것을 드러내고 거짓과 위선을 피해야 합니다. 진실은 정직과 신중을 내포합니다. 진리를 증언하여라(2471~2474항)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것은 바로 진리를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말과 행실로 신앙을 전달함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돼야 합니다. 순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거이자 증언입니다.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리의 진리를 증언합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죄(2475~2487항)진실에 어긋나는 말을 공공연하는 것은 여덟째 계명에 크게 위배됩니다. 거짓 증언(위증)이나 거짓 맹세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나 말도 여덟째 계명을 거스릅니다. 다른 사람의 도덕적 결점을 충분한 근거 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경솔한 판단의 죄를, 타인의 결점이나 과실을 제3자에게 타당한 이유 없이 알리는 것은 비방의 죄를, 허위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해치고 그 사람을 잘못 판단하게 하는 계기를 주는 것을 중상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나친 찬사나 아부나 아첨으로 다른 사람의 악행과 나쁜 품행을 부추기고 북돋는 말이나 태도도 여덟째 계명을 거스릅니다. 특히 중대한 악습이나 죄를 칭찬하면서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중죄가 됩니다.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또는 우정에서라 할지라도 위선적인 말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랑이나 허풍, 빈정거림 등도 진실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인간과 진실의 관계 또는 인간과 이웃의 관계를 손상하는 죄입니다. 이 거짓말의 죄는 왜곡되는 진실의 성격에 따라,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속마음에 따라, 또 거짓말로 손해를 입은 사람의 손해 정도에 따라 경중이 달라집니다. 거짓말 자체는 소죄이지만 정의와 사랑의 덕을 심각하게 해칠 때는 죽을죄가 됩니다. 거짓말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며 사회관계의 구조를 파괴합니다.정의와 진실을 거슬러 지은 모든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배상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배상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비밀리에라도 배상해야 하고, 끼친 손해에 대한 직접 배상이 어려우면 상대가 정신적 만족을 얻도록 해줘야 합니다. 진실의 존중(2488~2492항)정보를 제공하고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사랑을 지키고 진실을 존중하면서 대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선익과 안전, 사생활의 존중, 공동선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진실을 알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고해성사 비밀은 신성하고 불가침한 것입니다. 고해사제는 말이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라도, 또 어떤 이유로라도 고해성사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직업상의 비밀, 예컨대 정치가, 군인, 의사, 법률가 등이 간직한 비밀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비밀을 지키는 것이 그 비밀과 관련되는 사람에게 대단히 중대한 손해를 끼치게 되고, 진실을 누설함으로써만 손해를 피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정보 전달의 책임자들은 공동선의 요구와 개인의 권리 존중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대중 전달 수단의 사용(2493~2499항)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 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뉴스의 취재와 보도에서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존엄성 그리고 도덕률을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대중 매체의 이용자들은 대중 매체를 대할 때 절제와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매체 종사자들은 진실을 전달하는 데 이바지하고 사랑을 해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국가 권위는 진실하고 공정한 정보의 자유를 보장하고 옹호해야 합니다.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서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진리, 아름다움, 성예술(2500~2503항)진리는 영적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기쁨과 찬란함을 동반합니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은 창조주가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그 피조물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아름다움의 주인입니다. 인간은 또한 예술 작품을 통해 진실을 표현합니다. 성예술이 그 표현 형태를 통해 제 본래의 사명을 다 할 때 참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예술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기도와 사랑으로 인간을 이끕니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4.07.09

"믿음으로 씽씽, 사랑으로 예예!"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초등부, 제9회 청소년 축제 '작은 마음 큰잔치' 교리경시대회 본선에 참가한 고학년 학생들이 체육관 중앙에서 문제를 푸는 곳으로 달려가기 직전 손을 들고 '믿음으로 씽씽 사랑으로 예예'를 외치고 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초등부(담당 손진석 신부)는 12일 서울 잠실 한강공원 일대와 잠실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제9회 청소년 축제 작은 마음 큰 잔치를 개최했다. 신앙의 해를 마무리하며 '믿음으로 씽씽 사랑으로 예예!'라는 주제로 마련한 잔치는 저학년(유치부~2학년)은 사생대회로, 고학년(3~6학년)은 교리경시대회로 그동안 닦은 기량들을 마음껏 발휘하며 주님 사랑을 드러냈다. ○…사생대회가 열린 잠실 한강공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높았다. 아이들 발걸음도 힘찼다. 한 손은 아빠 손, 또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부푼 마음으로 공원에 집결했다. 오전 10시 30분. 사생대회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친구들과 부모, 교리교사와 떠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림 그리는 것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흰 도화지에 또박또박 자기 이름과 본당 이름을 쓴 뒤 밑그림을 그렸고, 예수님, 수녀님, 하늘과 나무, 성당, 가족 그리고 스님의 모습까지 상상의 나래는 다채로웠다. 왼쪽 손가락 사이사이 크레파스를 끼고, 도화지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오른손으로는 색칠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78개 본당 주일학교 학생 1157명이 참가해 실력을 뽐낸 사생대회에서는 최현서(헬레나, 6, 대치동본당) 어린이가 주교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모두 200여 명이 수상했으며, 단체상으로 14지구가 지구상을, 청담동본당이 본당상을 각각 수상했다.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실시된 교리경시대회에는 지구 대표로 선발된 270명이 참가해 교리 실력을 겨뤘다. '선착순 승부'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치러진 교리경시대회는 학생들이 체육관 가운데 모여 있다가 30초 안에 체육관 가장자리에 있는 교리ㆍ성경ㆍ인물 등 15곳 영역 중 한 곳으로 가 90초 안에 문제를 풀고 채점을 마친 후 다시 30초 안에 중앙으로 모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한 영역당 18명밖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 안에 못 들어간 학생들은 문제를 못 풀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이렇게 '치열한' 본선을 거쳐 선발된 12명은 무대로 올라 문제 출제 영상을 보며 결선을 치렀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출제자로 영상에 등장해 서소문성지에 관한 문제를 냈다.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조규만 주교는 무대에 올라 마지막 문제를 출제했다. 마지막 동점자 2명이 재대결까지 펼친 교리경시대회에서는 결선에 오른 12명 가운데 가장 어린 김민진(로사리아, 초3, 방배동본당)양이 대상(우승)을 차지했다. 김양은 "따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면서 "정말 기분이 좋다"고 수줍게 소감을 밝혔다. ○…잠실 한강공원 한켠에서는 25개의 활동 부스가 마련돼 어린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가톨릭 스카우트, 유아부, 환경사목위원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구립서초유스센터 등 관계 기관 단체 부스에서는 자전거 페달로 팥빙수 만들기를 비롯해 묵주와 손수건 만들기, 생명ㆍ환경ㆍ사랑에 관한 다양한 이색 체험 활동이 펼쳐졌다. 송유진(초2, 가락2동본당)양은 "예 수님은 하늘에서 모든 사람을 지켜보시니까 굉장한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는 그림을 그린 것처럼 예수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허주은(레지나, 초4, 정릉4동본당)양은 "재밌는 체험 활동을 해보면서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 것 같다"며 "앞으로 미사를 열심히 다니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사생대회와 교리경시대회를 마친 초등부 어린이들은 실내체육관에서 조규만 주교 주례와 사제단 공동 집전의 파견미사에 참례하며 작은 마음 큰 잔치를 마무리했다. 미사 중에는 초등부 학생들이 힘을 모아 필사한 성경이 봉헌됐다. 조 주교는 강론을 통해 "우리는 부모님과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며 "부모님과 하느님께 얼마나 많이 받았고, 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자"고 당부했다. 손진석 신부는 "학생들이 열심히 교리를 공부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봤다"며 "한국교회를 이어갈 수 있는 큰 재목이 돼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cpbc2013.10.15
![[신앙단상] 위대한 신, 위대한 신호](//cpbc.co.kr/CMS/newspaper/2014/05/rc/507805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위대한 신, 위대한 신호민병훈 바오로(영화감독, 한서대 연극영화과 교수) 침묵! 그것은 소리가 있을 때 존재합니다. 침묵은 모든 소리를 일순간 삼키고 나아갈 수 있는 드높은 소리입니다.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시계 가는 소리, 성경 책자를 넘기는 소리, 곤충이 날아다니는 소리, 톱으로 장작나무를 켜는 소리,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소리가 대사가 되어 영화를 수놓습니다. 때론 별이 뜨고 지는 소리,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릴 것 같습니다. 일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수도자들의 침묵은 언어와 소리마저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훌쩍 수행자들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겠다'라는 절절함이 그들의 나이와 국적을 초월해 일탈 아닌 일탈을 감행하게 만듭니다. 수행자들은 묵언과 고행을 통해 어떤 진리에 달하는 동안 군더더기 살이 빠져나갑니다. 검게 그을려가는 얼굴과는 달리 정신은 한없이 투명해져 갑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이 마주한 것은 맑은 영혼이 깃든 자신의 얼굴과 깨달음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 「위대한 침묵」은 17세기에 지어진 알프스 산기슭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침묵 수행하는 수사들의 일상을 마치 고전 명화 같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다큐 영화입니다. 이 뛰어난 다큐를 찍은 감독 필립 그로닝의 렌즈는 가장 느린 속도로 눈부신 침묵을 수도원 밖으로 불러냅니다. 그로닝은 일주일에 한 번 야외에서만 대화할 수 있는 엄격한 침묵공양을 그곳의 수사들과 똑같이 수행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인공적인 소리는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은 이 영화 속에는 인간의 언어도 최소한의 것만 허락합니다. 소리를 듣는 수도사들의 신체 일부, 귀를 클로즈업하는 화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 순간 화면에 잡힌 수도사는 누군가와 대화 중이 아닙니다. 독방에서 홀로 기도서를 읽거나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와 대화 중일까요. '내면의 거룩함'과 조응하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홀로 돼 자신을 독방에 가두고 기도하며 신께 나아갑니다. "주께서 나를 이끄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세속에 속한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한 채 하느님 품에 자신을 맡겨 평생을 하루같이 수행에 수행을 쌓고 있는 수도사들이 신조로 삼고 있는 말들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삶의 감사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가장 조용한 곳, 가장 외로운 곳, 가장 가난하고 검소한 그곳에 수도자들의 기도와 보속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있고, 희생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절제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쁨의 찬미가 있었습니다. 눈이 먼 한 늙으신 수도자가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내 눈을 멀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그것이 내 영혼에 유익이 되기에 주님이 좋은 것을 마련하신 것이라고. 모든 것을 최선의 것으로 이끄시는 주님이 계신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기뻐할 수밖에 없다고. 그런 주님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깝다고. 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고 나오면서 가슴이 멍해져 왔습니다. 누군가의 기도와 보속이 쓰러져가는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고, 지금의 나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반대쪽 스위스 산속에선 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파란 눈의 수도자들의 찬미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도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그들의 기쁜 삶이 세상 속으로 번져나가길 기도드려 봅니다. 위대한 침묵이란 마음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안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cpbc2014.05.01
![[성경 속 궁금증] 56. 유다인들은 왜 장례를 신속하게 치렀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6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6. 유다인들은 왜 장례를 신속하게 치렀을까죽어도 영혼은 육체적 느낌 있다 여겨 시신 소중히, 방치하면 가장 큰 저주제14처 '예수 그리스도 무덤에 묻히심'(지거쾨더 작, 20세기). 유다인들은 묘지를 참배한 후 무덤 위에 돌을 얹어 놓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무덤을 방문한 증표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시공을 초월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일은 가장 인간적 행위이다. 유다인들은 죽은 뒤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인접한 기드론 골짜기의 경사진 지역에 묻히고 싶어한다.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올리브산에 내려와 공동묘지 중앙의 길을 통과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후 세계를 신성시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인간이 죽게 되면 일정 기간 땅 밑에 거처하다 종말이 되면 하느님 앞으로 불려나와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처럼 유다인들에게 죽음은 결코 멸망이나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육체가 현존하고 최소한 뼈들이 아직도 현존하는 동안 영혼은 극도의 허약한 상태에 있을 뿐이었다고 믿었다. "그림자들이 몸서리치네, 물 밑에서 그 주민들과 함께. 그분 앞에서는 저승도 벌거숭이 멸망의 나라도 가릴 것이 없네"(욥 26,5-6).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지만 자신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느낀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으로 유다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시신을 소중히 다뤘고, 예를 갖춰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미덕이자 선행으로 받아들였다. 만일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들에 방치돼 공중의 새나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도록 버려지는 것을 가장 큰 저주로 생각했다(1열왕 14,10-11 참조).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반드시 24시간 안에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신명 21,23 참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었다(창세 3,19). 그래서 시신이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기 위해 시신을 무덤에 안치할 때 세마포로 싸거나 나무 관을 사용했다. 물론 이런 조기 매장 풍습은 팔레스티나 지역의 무더운 기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장의 예식 중 시신을 떠나 보내기 전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요셉이 자기 시의들에게 아버지의 몸을 방부 처리하도록 명령하자, 시의들이 이스라엘의 몸을 방부 처리하였다"(창세 50,1-2). 눈을 감기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껏 물로 깨끗이 닦아주고, 냄새나는 것을 막기 위해 향료를 발랐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루카 24,1). 시신은 땅에 매장하거나 동굴에 안치했다. 동굴 묘지는 입구 바닥에 홈을 파고 둥근 돌로 가로막아서 사람들이나 짐승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장례식은 무덤 입구를 닫고 무덤에 회칠을 하는 것으로 모두 끝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30일 동안 곡을 하며 고인을 기렸고 유족들은 사흘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사후 사흘이 돼서야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흘째부터 시신이 부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사자22012.11.27
![[생활속의 복음] 친교와 소통의 삶](//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3992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친교와 소통의 삶삼위일체 대축일(요한 3,16-18)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삼위이신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체험하신 하느님은 물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정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했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모든 박해를 받아들이는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차원의 하느님이신 성령과 성부를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는 제자들의 삶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두려움의 순간에, 박해의 칼 아래, 절망의 시기에 제자들은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언, 가르침, 치유, 심령언어, 지혜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해서 두려움 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성부이신 하느님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핵심은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였고 수난과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십자가와 골고타의 언덕을 올라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를 아시고 부활의 영광을 함께 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친교와 소통’을 말씀해 주십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의 역할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친교와 소통, 격려와 협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는 기도할 때, 모임을 가질 때, 복음을 전할 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라는 기도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늘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3가지 차원에서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모세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분노와 원망을 버리고 서로를 서로의 입장에서 진실하게 대한다면 경색된 분위기는 좀 더 밝아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심판하기보다는 우리의 미래를 보고, 우리의 후손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반드시 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오늘 말씀은 긴장과 갈등, 대립과 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갈등 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3차원의 해결 방법입니다. 소통과 친교, 나눔과 사랑은 우리 삶에 깃든 많은 갈등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우리의 원망은 용서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절망은 희망으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분열은 일치로 바꾸어 주소서! cpbc2014.06.11

"자캐오야,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7. 예리코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유다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마쳤을 때 마귀로부터 셋째 유혹을 받았던 장소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예리코 유혹산 산 정상에는 요새의 흔적이 남아있고 중턱에는 그리스정교회 수도회가 자리하고 있다. 공관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세례 장면 다음에 바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시는' 내용이 나온다. 이 유혹은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지속해서 반복된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치열한 유혹의 현장, 특히 '세상의 구세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맞서야 했던 셋째 유혹(마태 4,8-9)의 장소가 바로 '예리코'다. 베네딕토 16세는 예수님의 셋째 유혹에 관해 이렇게 묵상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도,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복지와 번영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도 가져다주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셨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셔왔다"(「나자렛 예수」 1권, 2장 '예수의 유혹' 참조).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오아시스 도시 예리코는 예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도시로 '풍요'와 '쾌락'의 상징이었다. 성경에서 '야자나무 성읍'(신명 34,3)이라 일컬을 만큼 예리코는 부유한 도시였다. 우리말로 '달의 도시'를 뜻하는 예리코는 달 신을 섬긴 우상의 땅이었다. 예리코는 다마스쿠스와 함께 지금부터 1만여 년전 신석기 시대가 도래한 무렵인 기원전 8000년께 세워져 내려온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또한 예리코는 해저 258m에 세워진 세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로 서쪽으로 40㎞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과 무려 1000m 넘는 고도차를 보인다. 기원전 1230년께 여호수아가 이끈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티나 지역을 정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예리코는 가나안 사람의 땅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과 풍성한 과일이 넘쳐났던 예리코는 예로부터 여행자의 휴식처이자 교통 요충지였다. 하지만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리코는 단지 가나안 정복의 첫 관문일 뿐이었다.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여호수아 군대가 주님의 계약 궤를 앞세우고 예리코 성읍 둘레를 하루 한 번씩 돌고 이렛날 숫양 뿔 나팔을 불며 일곱 번을 돈 다음 온 백성이 함성을 지르자 견고한 성벽이 무너졌고 예리코를 정복했다는 여호수아기 6장 내용은 장엄한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성경에 따르면 예리코가 무너진 뒤 "이 예리코 성읍을 다시 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기초를 놓다가 맏아들을 잃고 성문을 달다가 막내아들을 잃으리라"(여호 6,26)는 여호수아의 저주로 기원전 9세기에 베텔 사람 히엘이 이 도시를 재건할 때까지 약 330여 년간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1열왕 16,34)고 한다. ▨엘리사의 샘 예리코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 이후 벤야민 지파의 땅이 됐다(여호 18,21). 성읍 재건 후 기원전 880년께는 엘리야에 이어 엘리사 예언자가 이곳 예리코에서 활동했다. 예리코의 오아시스는 수량은 풍부하지만 수질이 나빴다. 그래서 성읍 사람들은 땅의 생산력이 떨어진다며 불평이 많았다. 주민들의 불평을 들은 엘리사 예언자는 샘에 소금을 뿌리며 정결례를 행했다. 그러자 엘리사의 기도대로 수질이 좋아졌고 그때부터 예리코의 오아시스를 '엘리사의 샘'(2열왕 2,4-24)이라 불렀다. 성당에서 성수를 축성할 때 물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바로 엘리사의 정결례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지금도 예리코를 풍요롭게 하는 엘리사의 샘은 1급수를 자랑하는 맑은 물을 쏟아내고 있다. 주민들은 이 물을 끌어들여 식수와 생활 및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눈먼 거지와 자캐오를 구원하신 곳 예수님 시대 예리코에는 헤로데 임금의 화려한 '겨울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헤로데는 이 겨울 궁전에서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 지리적으로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길목에 있는 예리코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리코를 찾았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를 고쳐주셨고(마르 10,46-52; 마태 20, 29-34; 루카 18, 35-43), 키 작은 세관장 자캐오의 집에 머무시며 그 가족을 구원하셨다(루카 19, 1-10). 오늘날 예리코 도심에는 '자캐오 나무'라고 불리는 커다란 돌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보존되고 있다.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올랐던 그 돌무화과 나무라고 전해지지만 이 나무의 수령은 700살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자캐오 가족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기리기 위해 이곳 주민들이 심은 나무일 것이다. 나무 밑동에는 예수님과 자캐오가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사도시대 예리코는 로마군 주둔지였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예리코는 쇠퇴하기 시작해 2세기에는 작은 고을로 전락했다. 로마군이 철군한 333년 이후 예리코는 폐허가 됐다. 비잔틴 제국은 구 예리코에서 1.6㎞ 떨어진 곳에 새 예리코를 세웠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예리코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유혹산 예리코에서 북서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예수님의 셋째 유혹 장소인 '유혹산'이 있다. 해발 350m 높이의 이 산 정상에는 유다를 정복한 셀레우코스 왕국의 요새가 지어졌다. 이후 하스모네오 왕조가 이곳을 정복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135년에 이곳 '독'요새에서 시몬과 그의 아들을 살해했다(1마카 16,11-17). 340년께 카리톤 성인은 유혹 산 정상에 있던 요새 폐허 위에 '도우카의 라우라'라는 수도회를 설립했다. 이곳 수도자들은 '콰란타나의 수도자'라 불렸는데, 라틴말 '콰란타나'(Quarantana)는 '40'을 뜻한다. 이곳 수도자들은 마른 빵과 물만 먹으며 예수님의 유혹과 수난을 묵상했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칼리프 오마르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에 의해 614년에 모두 파괴됐다. 이스라엘 성지를 탈환한 십자군은 1099년 유혹산 중턱과 정상에 각각 성당 하나씩을 지어 봉헌했다. 하지만 오스만튀르크군이 이스라엘을 재정복하면서 이 성당들도 무슬림에 의해 모두 부서졌다.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한 장소로 전승돼 내려온 동굴 위에 지어진 지금의 수도원은 그리스정교회가 1874년 부지를 사들여 세운 것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12.17

"교회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집"주교회의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해설단순 의무가 아니라 복된 은총의 계기 강조 미사 불참 '부득이한 경우' 확대 해석 경계 복음 중심 강론 등 사제의 태도ㆍ역할 중요한국교회 주교단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춘계 정기총회에서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남정률 기자 주교회의가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한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이하 공동 사목 방안)은 무엇보다 주일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를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불필요한 죄의식을 갖거나 냉담에 빠지기 쉬운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가 신자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주기 위한 것임에도 의무로서 의미만 부각되는 바람에 본연의 뜻을 살리지 못한 채 신자들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 참여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세속화된 현대사회에서 주일은 그저 휴일이며,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는 복된 은총의 계기가 아니라 단순한 의무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는 신자가 적지 않다. 갈수록 늘고 있는 냉담교우 문제 역시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주교회의는 지난 3년 동안 여러 차례 회의와 세미나, 교구별 토론회 등을 열어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 부심해왔다. 이번에 나온 공동 사목 방안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공동 사목 방안은 먼저 주일 미사 참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주일 미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권고하고 있다. 이어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에 대한 사목적 지침을 제시했다. 이 지침은 △주일 미사 참례 의무 △고해성사 의무 △고해성사 활성화를 위한 사목적 제안 등 크게 3부분으로 이뤄졌다. 주일 미사 참례 의무 주일 미사 참례 의무에 관한 공동 사목 방안의 지침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74조 4항은 이미 "미사나 공소 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는 세 가지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의가 끊이지 않았다. 주교회의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이 조항에 대한 유권 해석을 내린 것이다. 주교회의는 부득이하게 주일 미사를 참례하지 못한 신자들에게는 평일 미사에 참례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주교회의는 주일 미사 참례는 신자로서 최고의 의무이기에 '부득이한 경우'를 임의로 확대 해석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 본당 신부에게는 현 지침의 내용과 '부득이한 경우'의 해석 및 범위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문했다. 주일의 성찬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신자가 확신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고해성사 의무 고해성사 의무에 관한 공동 사목 방안의 지침 역시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유권 해석한 것이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은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이 조항을 "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고 해석했다.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단지 무거운 의무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영적 유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주교회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의 특별한 관행인 판공성사 제도가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의 형식화를 초래하고 냉담교우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는 기존 판공성사 제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해성사 활성화를 위한 사목적 제안 주교회의는 미사 직전 아주 짧은 시간에 집전하는 현재의 고해성사 관행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 아래 고해성사 집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했다. 첫째, 본당에서 지속적으로 고해성사의 올바른 의미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둘째, 주일 미사 참례에 대한 앞선 논의들을 공지한다. 셋째, 부활 판공성사는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으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됨을 공지한다. 넷째, 시간에 쫓겨 형식적으로 고해성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주일 미사 후나 주간의 특정한 날을 지정해 좀 더 여유롭게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섯째,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회예절과 함께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여섯째, 면담식 고해성사를 원하는 신자들을 위한 장소를 배려해야 한다. 일곱째, 지구ㆍ대리구ㆍ교구에 상설고해소를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주교회의는 "다른 성사 집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고해성사에서 사제의 태도는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고해소에서 신자에게 격려와 따뜻한 마음을 가질 것을 권고했다. 또 "아주 적게 배려되는 고해성사 시간, 형식적 훈화와 일사천리로 외우는 사죄경, 꾸짖거나 무안을 주는 태도에서 신자들은 죄 사함과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체감하기 어렵다"며 "고해성사를 위한 최대한의 시간적ㆍ장소적 배려, 정성을 깃들인 준비와 집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주일 미사 활성화를 위한 노력들 주일 미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동 사목 방안에서 제안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주일 미사 활성화의 관건은 사제, 특히 사제의 강론이라는 지적이다. 주교회의는 "미사의 준비와 거행에서 사제의 태도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신자들은 미사 전례에 집중해 정성을 다하고, 미사 때 신자들을 야단치지 않고 위로하며, 미사 전에 일찍 성전으로 나와 신자들을 환대하고,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또 사제들에게 마음에 와 닿는 강론, 복음 중심 강론을 주문하면서 신자들이 강론을 통해 복음을 더욱 잘 알아듣도록 하려면 신자들에게 맞는 쉬운 단어 사용과 함께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과 전달 매체들의 고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성의한 강론으로는 △동일한 표현과 내용이 거의 매주 반복되는 강론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이 똑같은 어조와 내용으로 이어지는 강론 △복음은 없고 예화만 잔뜩 늘어놓는 강론 등을 꼽았다. 아울러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법이라며 간결ㆍ명료ㆍ솔직ㆍ시기적절한 강론이 신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일 미사 전례를 위한 신자들의 준비도 빼놓지 않았다. 주님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집에서 성경을 읽고, 공복재를 지키며,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최소한 미사 10분 전에 성당에 도착할 것 등을 권했다. 이와 함께 신자들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사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례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4.04.0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하)](//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5453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하)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 밝혀 올해 2월 말 교황 직무에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가장 최근 저서인 「나자렛 예수」는 총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예수님의 세례부터 거룩한 변모까지 다룬 제1권은 2007년에,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까지 다룬 제2권은 2011년에, 그리고 유년기 사화를 다룬 제3권은 2012년에 각기 출간됐다. 「나자렛 예수」 제1권 서문에서 베네딕토 16세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책은 절대로 교도권 차원에 속하는 공식 문헌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얼굴'(시편 27,8 참조)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누구든 내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그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부탁할 뿐이다. 공감 없이는 이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4쪽). 따라서 교회 문헌적 차원이 아닌 학술적 맥락, 그리스도론적인 흐름 속에서 「나자렛 예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방대한 전체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 해석의 차원에서 어떤 방법론적 원리가 적용되는지, 특히 기존의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보완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자렛 예수」는 무엇보다도 현대 성경 주석학의 역사비평적 연구가 남용하면서, 역사의 예수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일치성에 균열이 생겨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950년대부터는 상황이 바뀌었다.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점 깊어만 갔고 이 둘은 완전히 서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만일 인간 예수가 복음사가들이 제시하는 그분, 교회가 복음서에 기반을 두고 선포하는 그 예수와 그렇게까지 다르다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권 8~9쪽). 이는 베네딕토 16세가 요제프 라칭거라는 신학자 이름으로 출간했던 1968년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이 책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설명하면서 현대 신학이 처한 그리스도론적 딜레마를 소개하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의 예수님과 믿음의 그리스도 사이에서 갈등이다. "이 두 갈래 길의 딜레마-한편에는 그리스도론을 사실(史實)의 관점에서만 보거나 사실로 국한시키려는 길과,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성을 전적으로 도외시하고 믿음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배제하는 길-는 바로 현대 신학이 갈피를 못 잡은 채 직면하고 있는 양자택일의 당혹으로 정확히 이렇게 집약된다. 예수냐 그리스도냐.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를 일단 제쳐 놓고 우선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예수를 찾다가, 이 동향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불트만을 통해 예수를 도피하고 정반대 방향을 취해 그리스도로 되돌아갔다. 현 단계에서는 이미 이 도피 현상이 또다시 방향 전환을 일으켜 그리스도를 떠나 다시 예수를 찾고 있다"(202쪽). 이 대목은 현대 신학이 겪고 있는 그리스도론적 난제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정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역사의 예수님에 대한 실증주의적 복원 작업을 시도하면서 신앙의 그리스도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 아니면 반대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같이 아예 역사의 예수님을 배제시키고 신앙의 그리스도만을 말하려는 극단을 비판한다. 이러한 양 극단적 시도로는 결코 신앙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자렛 예수」의 학술적 핵심 가치는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제기했던 그리스도론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를 직접 성경 해석의 차원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 독일의 가톨릭 성서신학자 루돌프 슈나켄부르크(1914~2002)가 바로 이러한 역사비평적 연구의 문제점에 입각해 1993년 마지막 작품 「네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저술했지만, 베네딕토 16세는 그 스스로가 역사비평적 방법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결정적 핵심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 즉 그분과의 연대성'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바로 이 구심점에서 출발해, 예수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있어 슈나켄부르크를 넘어서고자 시도함을 밝힌다. 베네딕토 16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조상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성경 전체를 하느님께 영감 받은 책으로 보고 단일성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기초적인 방법론적 원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오직 이를 통해서만 역사비평적 연구의 한계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기본 원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 12항에서 올바른 성경 해석의 첫째 원리로 제시된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 기초 원리는 16항에서 '신ㆍ구약 성경의 일관성'으로도 표현된다. "신ㆍ구약 성경에 영감을 주신 분이시고 그 저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신약이 구약에 숨어 있고 신약으로 구약이 드러나도록 지혜롭게 마련하셨다"(16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역시 이 원리를 재확인한다(112항 참조). 이런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개개의 본문을 읽을 때에도 성경 전체의 빛과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정경적 성경 주석'의 연구 방법론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추천한다. 더불어 성령의 인도에 따라 본문이 지니고 있는 내면적 개방성을 찾아 읽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성경의 살아 있는 주체이기에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서 살아 있는 현재의 말씀이 된다는 것, 두 가지를 추가적인 해석 지침으로 제시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던 1988년 1월 27일 미국 뉴욕의 성 베드로 루터교회에서 열린 '에라스뮈스 강좌'에서도, 바로 이러한 기조 입장에 서서 현대의 성경 주석 방법론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현대의 역사비평 방법에 입각한 주석에서 발견되는 한계들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성경 해석에 있어 단순한 실증주의나 엄격한 교회주의라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주석학적 발견에 대한 통시적 접근과 더불어 해석 과정에 있어 함축된 철학적, 신학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역사적 해석학"이 "올바로 전개된 신앙의 해석학"과 함께할 때에만 전체적 시각을 형성하는 방법론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한다(2권 9쪽).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이뤄질 때, 비로소 역사의 예수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구약과 신약 성경의 관계에 대한 연속적이며 통일적인 전망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두 가지 다른 차원의 해석학을 연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에서 제시된 바 있는 통합적 해석 원칙이 그동안 실제로 잘 적용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통합적 해석 원리에 따라 이를 예수님 생애 주석에 적용하며 「나자렛 예수」를 집필한 것이다. 따라서 「나자렛 예수」는 역사적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연대기적이고 지형적인 묘사를 넘어서, 예수님 삶에서 드러나는 신비를 신학적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자 시도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이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야말로 「나자렛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적 메시지다. 이것은 베네딕토 16세 신학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되는 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하느님의 유일성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것, 즉 하느님 유일성의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 신비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오늘날 일부 급진적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한 속에서 무한을 암시하는 신적인 것의 여러 양식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인 것의 '현현'(顯現)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이 베네딕토 16세의 그리스도론 핵심을 구성한다. 이러한 그리스도론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역사적 예수님 삶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나자렛 예수」의 목적이자 핵심적 의미다. 유물론적 경향과 물질주의적 풍조, 실용주의와 실증주의, 현실주의와 행동주의 그리고 극단적인 역사주의와 다원주의가 거센 도전의 물결로 다가오는 이 시대에 '말씀'(Logos)을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구원과 희망의 진리를 선포하며 이를 향해 나아가려는 결단의 요청이야말로, 1968년의 명저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시작해 2012년 출간된 「나자렛 예수」 제3권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제시하는 베네딕토 16세의 핵심적인 신학적 메시지다. 그리스도 신앙이란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는 초시간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 가득 찬 전진이다. 이렇듯 신학자 시절 작업부터 드러나는 베네딕토 16세의 진리를 향한 신앙적 희망과 신학적 확신은 이후 오랫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거쳐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고 자진 사임하기까지, 교회 안팎의 이견과 비판 속에서도 교회적 투신과 직무적 결단을 통해 '진리의 협조자'로서 살아오고자 노력한 삶으로 구체화돼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진리의 협조자'란 표현은 베네딕토 16세가 주교로서 채택한 사목 표어인 동시에, 그 자신의 일생의 자취와 미래적 희망이 압축된 하나의 상징어이기도 하다.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퇴사자22013.05.28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3. '구세주 탄생지' 베들레헴베들레헴 주민은 예부터 바위동굴을 마구간으로 사용했다. 헬레나 성녀가 주님 탄생 동굴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은 2세기 로마 군인들이 이 동굴에서 유다인들을 추방하고 예배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 주님 탄생 동굴을 '탐무즈-아도니스'를 숭배하는 신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을 순례 온 헬레나 성녀는 동굴에 있는 우상의 잔재를 다 정리하고 주님 탄생 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사진은 주님 탄생 동굴 안 베들레헴 별자리 위에 마련된 동굴 제대.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0-14). 예수 탄생에 관한 성경 내용은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만 나온다. 두 복음서 모두 예수께서 유다 지파 다윗 집안 사람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뿐 아니라 지금의 유다인들은 구약의 예언에 따라 베들레헴 출신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한 7,42).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는 구약의 예언이 이뤄졌다. 유다인들이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나실 것이라고 믿는 까닭은 바로 다윗이 태어나 자란 고향(1사무 16,1-16)이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또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창세 35,19)이 있어 구약시대 때부터 성스러운 땅으로 여겼다. 구세주 탄생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해발 770m 언덕 위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베이트람'이라 불리는 이곳은 성경에선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이라 했다. "과일이 풍성한 빵집"이란 뜻이다. 이름으로만 본다면 구약시대 이곳은 과일과 밀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이었을 것이다. 이 축복의 땅에서 구세주께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콜로 1,16)되었지만 세상의 구원자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구세주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는 갓난아기를 구유에 뉘었다(루카 2,7). 성 아우구스티노는 '구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구유는 동물의 여물을 담는 통이다. 그런데 지금 그 구유에 자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참된 양식으로 드러내신 분이 누워 계신다. 그분은 인간에게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다. 이렇게 구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빵을 얻기 위해 초대된 하느님의 식탁을 암시한다." '빵집(베들레헴)에서 참 생명의 빵이 탄생했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