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족보 (하)](//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666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41) 예수님 족보 (하)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림은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와 아기 예수, 16세기, 유화 캔버스, 페슈 미술관, 이탈리아. 예수. 메시아이신 주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잉태하기 전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루카 2,2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천사가 알려준 주님의 이름 예수는 우리말로 “야훼는 구원이시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신앙고백과 같은 말뜻을 지닌 이 이름을 많은 유다인들이 사랑했다. 이 이름은 가나안 정복 때 아모리족을 물리치기 위해 해와 달을 멈추게 한(여호 10,12) 여호수아뿐 아니라 집회서의 저자로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와 시라의 아들이(집회 50,27), 그리고 서기 37년부터 70년 사이 4명의 이스라엘 대사제가 사용했다. 또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도 엘리에제르의 아들이 이미 이 이름을 갖고 있었다(루카 2,29).주님이신 예수님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표현처럼 ‘단지 영 속에서가 아니라 육 속에서 당신의 역사와 당신이 걸으셔야 할 길을 이룩하셨다.’ 그 영원한 시작과 ‘시간 안에 육체로 있음’ 사이에는 육화의 신비가 있다(과르디니, 「주님」, 바오로딸 참조). 그래서 마태오와 루카는 복음서에 ‘예수님의 족보’를 서술해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증언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다윗과 일련의 유다 왕을 거쳐 요셉까지 42명의 이름이 이어진다(마태 1,1-17).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기점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열거해 다윗과 유다, 야곱, 이사악, 아브라함뿐 아니라 태고 시대 노아, 라멕, 에녹을 거쳐 아담까지 77명의 인물을 나열하고 있다(루카 3, 23-38). 두 족보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마태오는 다윗 왕조의 이름이 족보로 내려오지만, 루카는 나탄에서부터 스알티엘까지 다윗의 아들이지만 왕조가 아닌 다른 아들을 통해 족보가 내려온다. 아울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후대가 또 갈라진다. 마태오 복음에는 즈루빠벨이 아비훗을 낳고 그 후손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까지 내려가고 있으나, 루카 복음에는 즈루빠벨의 아들 레사에서 요셉의 아버지 엘리까지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은 법률상 요셉의 족보를, 루카는 혈통상 마리아의 족보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장남이 대를 잇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형제 중 미혼인 한 사람이 형수와 결혼해 첫 아들을 낳아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했던 이스라엘의 대를 잇는 전통 방식인 ‘레비라식 결혼법’(신명 25,5-10 ‘후손에 관한 규정’)에 따라 친부와 법적 아버지의 이름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서 내려온 마탄이 에스파 사이에서 야곱을 낳았고(마태오 복음), 다윗의 아들 나탄에서 내려온 후손 마탓이 형 마탄이 죽은 후 에스파와 결혼해 아들 엘리를 낳아(루카 복음), 야곱과 엘리는 아버지는 다르나 어머니가 같은 동복형제고, 엘리가 아들이 없이 죽어 야곱이 엘리의 부인을 아내로 삼아 요셉을 낳았기에 친부인 야곱과 법적 아버지인 엘리의 아름이 족보에 등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오와 루카의 족보를 서로 틀리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족보에는 타마르(창세 38장)와 라합(여호 2장), 룻(룻 1-4장),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2사무 11장) 등 4명의 여인이 나온다. 타마르와 라합은 가나안 사람, 룻은 모압인, 밧 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으로 4명 모두 이방인이다. 이들은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이스라엘 율법을 깨고 유다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이 네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 것은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이어져 내려오는 이름들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어 당신께 주어진 길을 걸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내 준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구세주 강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웅변했다. “그분은 인류의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위대한 것, 강성한 것, 혼란된 것, 가련한 것, 어두운 것 그리고 악한 것들 위에 현존하시면서 그분께 들이닥칠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의 성심 안에 받아들이시어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해내고자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이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5.01.06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4> 저와 아빠는 늘 함께였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밥을 같이 먹고, 아빠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고, 산책하러 나갈 때 팔을 잡아주고, 부은 발을 씻겨 드리고….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셀 수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소했던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5년이라는 세월. 누구에게는 짧고 누구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한 아빠의 딸인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도 짧다고 생각됐습니다.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치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항상 함께 있답니다. 항상 함께….수백 번도 더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왜 나만 두고 혼자 가 버렸느냐고.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말 좀 해보라고 투정도 부렸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도 나름 찾은 저였습니다. 그랬는데….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빠가 나한테 하는 말이야?저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존재하나요? 지금 저를 보고 있나요? 제 기도들을 들었나요? 죽으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다는데 그럼 아빠가 거기에 있나요? 여기서 받은 고통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한 채? 하늘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개 없는 별들도, 흐릿하게 보이는 구름도, 저 멀리 떠 있는 달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답이라고 오해조차 할 수 없도록.그러나 제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아빠의 곁으로 가기 전에 하는 일이었던 기도는 제가 아빠의 곁에 있기 위한 것이 됐습니다. 아빠를 이제는 눈과 손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아빠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해결의 책이었고, 아빠가 잘 있게 해 달라는 염원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귀에서 들리던 소리를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연히 성당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일주일은 길다 여겨지며 평일에도 갔습니다. 매일 성경의 구절이, 신부님의 말씀이 모두 저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아빠와 소통하는 창구와도 같았습니다. 아빠를 잃었던 제가 다시 아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또 한 명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느님 아버지. 저를 성당으로 부른 이 말입니다.하느님은 아빠의 죽음을 통해 저를 당신 옆으로 불렀습니다. 그리 달콤한 유혹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당에 온 이유를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 때문에.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평범한 부르심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사랑으로 시작하는 부르심이었으면 더 기뻤을걸.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부르심이었으면 더 행복했을걸. 그런데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됐습니다.“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저도 압니다. 그 시기에 제게 가장 적절히 필요했던 것이 성당과 기도였다는 것을. 저를 부르기 위해 아빠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에 이제는 성당에 어떻게 다니게 됐느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이보다 조금 아프지만 특별하게 성당에 오게 됐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리고 그 말 안에는 저 홀로 성당을 다니고 기도한 것만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계속〉 평화신문2014.06.18
![[복자 124위 열전] <42> 김화춘·김윤덕](//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827_1.0_titleImage_1.jpg)
[복자 124위 열전] 김화춘·김윤덕오랜 옥살이 끝 사형 받은 복자, 배교 후 다시 찾아가 순교한 복녀 ‘영남의 순교 1번지’ 하면, 역시 관덕정이다. 대구읍성 남문 밖 아미산 자락 신천변 관덕정에서만 17위가 피를 흘렸다. 대구 감영 밖 동ㆍ서옥에서도 7위가 순교했는데, 그 옥터는 현재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경북 청송에서 신앙생활 하던 김화춘(야고보, ?∼1816)과 김윤덕(아가타 막달레나, ?∼1815)은 1815년 을해박해로 체포돼 관덕정과 대구 감영 옥터에서 각각 순교했다. 이 중 김화춘 복자는 내포 청양 출신으로 보령 청라동(충남 보령 청라면 일대)을 거쳐 청송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순교했다. 반면 김윤덕 복녀는 대구대교구에서 시복을 추진해 복자가 된 순교자 20위(울산 병영 순교자 3위 포함) 중 유일하게 경상도 출신 복녀로 기록되고 있다. 복자 김화춘 을해박해 순교자 중 일부는 부모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이는 이미 신앙이 점차 뿌리를 내리고 ‘대물림’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화춘 복자 역시 아버지에게서 신앙을 배웠는데 1839년 전주에서 순교한 김대권(베드로)이 그의 형이다. 본시 성품이 온순하고 온화하며 인내심이 깊었던 김화춘은 장성한 뒤로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교회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고, 기도 생활과 성경 읽기에 부지런해 교우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러던 중 좀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경상도 청송으로 이주한다.하지만 을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체포된 그는 경주를 거쳐 동료들과 함께 대구로 압송돼 옥에 갇힌다. 여러 달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여러 차례 감사 앞으로 끌려나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굳게 신앙을 지켰다. 감사도 마침내 그의 신앙에 굴복해 사형을 선고한다. 당시 결안, 곧 사형선고문에는 “죽기를 맹세하고 뉘우치지 않으니 그 요사하고 사악함이 아주 지극하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옥중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는 임금의 사형 윤허가 내려지면서 1816년 12월 19일 대구 형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의 화관을 쓴다. 순교 뒤 그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됐다가 이듬해 3월 2일 친척과 교우들에 의해 거둬져 안장됐다.김윤덕 복녀는 내포 교회 출신이 아니라 경상도 상주 은재(현 경북 문경시 가은읍 저음리) 출신이다. 장성한 뒤 고향 인근에 전해진 복음을 듣고 입교한 그는 언제부터인가 청송 노래산 교우촌으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 역시 1815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지내던 중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으며, 여러 차례 문초에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문초하던 관헌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리 비천하고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조물주이신 천주님의 은혜를 몰라보고 그분을 배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며 굳은 신앙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뒤 그녀는 배반의 고비를 넘긴다. 형벌을 받던 중 마음이 약해져 신앙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곧바로 석방돼 막 감영 문을 나서던 그녀는 안동에서 이송돼 온 김종한(안드레아)를 만나 신앙적 권면을 받고 마음을 되돌린다. 다시 감영으로 들어선 그녀는 포졸들을 밀치고 서슴없이 관장 앞으로 나아가 배교의 죄를 뉘우치며 죽여줄 것을 요청한다.화가 난 관장이 그녀를 미치광이로 몰아 내쫓게 했지만, 그녀는 돌아와 배교를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취소한다. 거듭된 배교 취소에 관장은 그녀에게 심한 매질을 하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살점이 하나둘 떨어나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뼈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내 의식을 잃고 감옥으로 실려간 그녀는 옥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거뒀다. 이때가 1815년 4월 말, 혹은 5월 초로 추정되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50세가량이었다고 전해진다.유혹을 이겨낸 김윤덕 복녀의 신앙은 야고보 서간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4.12.18
 김강희 비오 (주)가치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5/03/rc/559307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4) 김강희 비오 (주)가치 대표이사 가장 가치 있는 보석은 가슴 속 진주인 ‘믿음’ 입점했는데, 그게 전화위복이었다. “당시 돌이켜보면 어떤 이끄심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런 경험을 저는 평생을 살면서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루카 11,19 공동번역) 하신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그래서 자녀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도 기도다. 첫째는 ‘매사를 감사히 여겨라’는 감사 기도이고, 그 다음에는 늘 기도하는 삶,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도 한결같이 기도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김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사와 간구, 이 두 기도가 어쩌면 김 회장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회장은 28살의 젊은 나이인 1971년에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다(서울대교구 14차). 30살 아래는 꾸르실료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이계중 신부(2013년 선종)가 ‘비오는 나이는 30이 안 됐지만 신앙의 나이는 그 정도를 넘는다’며 적극 추천해서 가능했다. 교육을 받은 후에는 본당의 최연소 사목위원으로 활동했다. 혜화동본당에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청소년 시절의 종로본당, 청년 시절의 혜화동본당을 거쳐 33살 때인 1976년에 반포본당으로 교적을 옮겼다. 반포본당이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하던 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반포본당 신자로 살고 있으니 본당의 산 증인인 셈이다. 지난해부터는 본당 총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성당 신축 기금을 비롯해 크고 작은 교회 일에, 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문제여서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는 김 회장. 그는 그보다 자신이 묵상하는 신앙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참 신앙을 가진 이는 늘 평화롭다’는 것이다. “평화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전혀 없고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제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이뤄지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이야말로 참 신앙인이라고 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다이아몬드와 진주 등 보석을 비롯한 귀금속류, 반지와 목걸이 등 고급 장신구류 판매업체인 (주)가치 대표이사인 김강희(비오, 71) 회장은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를 신조로 삼아 살아왔다. 이는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생을 통해 체득한 경험의 결실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은 속셈이 없습니다. 남을 속이려고 하지도 않고 욕먹는 일도 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욕먹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사는 ‘평범’ 그 자체가 실은 ‘비범’이라고 생각합니다.”김 회장이 중시하는 평범은 그의 호 ‘중산’(中山)에서도 잘 드러난다. 두드러지거나 치우치지 않고 매사에 중용을 지키는 것, 그 길은 또한 김 회장이 살아온 삶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 회장의 삶은 겉보기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 종로의 한 귀금속상에서 1년 동안 직원으로 일하다가 ‘정보당’이라는 보석상을 차려 독립했다. 1970년대 초였다. ‘값어치’라는 뜻을 지닌 (주)가치의 전신이다. 자기 가게를 차린 청년 김강희는 열심히 일했고,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가게는 번창했다.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보석상 매장으로서는 초대형인 약 100㎡(30평) 크기의 본점을 비롯해 강남, 일산 등지에 5개 매장을 뒀다. 사업을 하면서 김 회장은 ‘일은 즐겁게 하라’를 신조로 삼았다. 일 자체가 판매업이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어서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으면 고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 회장이 즐겁게 하라는 것은 사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삶을 위해서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 그러나 일이 의무가 되면 인생은 지옥이다.’김 회장은 서울 명동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벽에 직접 쓴 이 글을 걸어놓고 늘 되새길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당부한다. ‘일을 즐겨라. 그러면 인생이 즐겁다.’ 김 회장은 신앙인으로서도 마찬가지로 외적으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김 회장은 서울 토박이다. 이북 출신의 부모 슬하에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먼저 세례를 받은 어머니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인 1958년에 종로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바로 복사단에서 활동했고 이어서 ‘바다의 별’이라는 학생 쁘레시디움에서 레지오 활동을 했다. “요즈음엔 학생 레지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본당 레지오 하면 중고등학생들의 학생 쁘레시디움 아니면 노인 쁘레시디움이 거의 전부였습니다.”고등학생 때는 학교(중앙고교)에 학생 레지오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는데,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사제가 됐다. 서울대교구 원로사제 박용일 신부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성당 활동은 이후 김 회장의 신앙생활에 든든한 기초가 됐다. 신앙생활에 있어 김 회장은 특히 기도의 힘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이에게 반드시 주십니다. 주시지 않는다면, 구하는 것이 본인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A’라는 길을 가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당연히 간절히 기도도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실망하게 되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보면 그때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오히려 잘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1979년 을지로 입구에 롯데1번가 아케이드를 열었을 때였다. 당시 바로 옆 미도파백화점(현재 롯데 영플라자)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김 회장은 목이 좋은 1번가 아케이드에 입점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어 나중에 롯데백화점 본점에 평화신문2015.03.10
![[나의 묵주이야기] 105. 신혼여행 중 선물 받은 교황님 묵주](//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955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05. 신혼여행 중 선물 받은 교황님 묵주김미주 가브리엘라(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우리 집은 방마다 묵주가 걸려 있다. 나는 개신교회를 다니다 냉담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친구의 권유로 개종해 2003년 12월, 24살 때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개신교회를 오래 다녔던 터라 성모님과 성인들의 전구와 묵주기도보다는 예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중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고부터 성모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닌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묵주기도를 바로 알게 되었고, 성체조배를 하면서부터 예수님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에 맛 들이기 시작했다. 출퇴근 버스, 여행가는 차 안에서나 운동할 때마다 묵주기도를 했고, 그렇게 내 가방에는 묵주가 동행하였다. 묵주는 선물로는 으뜸인 성물 같다. 몇 개 있던 묵주를 다 나눠주고 지금은 배론성지에서 구입한 나무 묵주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직접 받은 묵주 두 개로 기도하고 있다. 교황님의 묵주를 받기까지 내게도 우여곡절의 시절이 있었지만 성모님과 예수님 덕분에 지금까지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가족 중에 나 혼자 성당을 다녔고, 성가대, 성경 통독, 레지오 마리애, 교리교사를 했다. 집에서는 ‘성당에 미쳤다, 성당 가면 돈이 나오냐, 적당히 믿어라’ 하셨다. 혼자서 신앙생활하는 게 외로웠고 결혼만큼은 제발 가톨릭 식구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혼인 미사 드리게 해달라고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바쳤다. 때가 되어 하나둘 친구들은 결혼하기 시작했고, 나는 조바심과 외로움에 힘들었다. ‘아직 때가 안 되어 짝이 안 나타난다, 기도가 부족하다, 내가 준비가 덜 됐나 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35살에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놀랍게도 아버지께서 혼인 미사를 허락하셨다. 시댁과 친척 모두가 가톨릭 집안이었고, 동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고모님들도 계셨다. 혼인 미사를 드리면서 세 분 신부님의 집전과 축복에 눈물이 났다. 이건 분명 성모님께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나의 바람을 주님께서 들어주신 거라고 믿는다.신혼여행으로 성지 순례를 하였고, 교황님을 알현하는 부부 100쌍 중에 우리 부부도 포함되어 축복을 받고 묵주를 선물 받았다. 믿기지 않는 일들이, 바라왔던 일들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 묵주기도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노산인지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혼 3개월 후 새 생명을 주님께서 뱃속에 보내주셨다. 감사 기도와 순산 기도로 묵주기도를 계속 바쳤다. 8개월 때부터는 자연 출산을 위해 밤마다 배드민턴장을 돌며 한 시간씩 묵주알을 굴렸다. 예비 엄마가 되어서일까? 환희의 신비가 보통 때와 다르게 묵상 되고, 성모님 또한 어머니로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예정일 일주일을 앞두고 무사히 자연 출산을 했다. 시간이 흘러 딸 바올라가 세상의 빛을 본 지 50일째다. 참 감사한 날이다! ‘엄마’라는 문턱에 들어선 요즘 낮과 밤이 뒤바뀌고 보채기가 심해져 30분이든 1시간이든 안아서 달래고 재울 때에 묵주알을 굴리며 이 힘겨움을 주님께 보속하는 마음으로 봉헌한다. 그러면 팔과 발바닥의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하다. 이젠 엄마 성모님이 벗이 되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벗이요 우리의 어머니 되신 성모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두 손 모아 아들 예수님께 전구하심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송구스러워 고개를 떨군다. 오늘도 우릴 위해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시고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부족한 이 죄인과 온 세상을 위해 빌어주소서!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cpbc2014.12.03
![[성서주간] 본당 성서못자리 나눔터회](//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59_1.2_titleImage_1.jpg)
[성서주간] 본당 성서못자리 나눔터회 가랑비에 옷 젖듯 신앙생활 풍요롭게 서울대교구는 내년을 '하느님 말씀'에 역점을 두는 해로 지내기로 했다. 신앙의 해 기간 쌓은 기초를 말씀을 통해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계시가 담긴 성경을 통해 하느님 뜻을 이해하고, 신앙을 풍요롭게 해야 할 때다. 성서주간(24~30일)을 맞아 말씀의 참맛을 알고, 그 안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서울 둔촌동본당 성서못자리 그룹원들이 교리실에 모여 말씀을 익히며 그룹 봉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정훈 기자13일 오전 서울 강동구 둔촌동성당(주임 임승철 신부) 지하 교리실. 평일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리실을 채웠다. 본당 성서못자리 그룹 공부를 수강 중인 그룹원들이다. "오늘은 코린토 2서 12장부터 13장까지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날입니다." 지난 3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실 불을 밝히고 코린토 2서를 익혀온 이들의 그룹 봉사자 이영숙(가브리엘라)씨가 운을 떼자 그룹원 8명이 시작기도와 함께 성경 구절을 나눠 읽기 시작했다. 본문의 배경을 설명해 놓은 해설도 함께 읽으며 이해를 넓힌 이들은 각자 마음에 와 닿은 구절과 저마다 느낀 점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예습하면서 메모해 둔 궁금한 점도 질문하고, 각자 생각도 허심탄회하게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그룹 맏언니 박영수(리디아, 80) 어르신은 "오랫동안 해오던 성경공부를 잠시 쉬고 한동안 미사만 참례하다 보니 '발바닥 신자'로만 느껴져, 다시 본당 성서못자리에 참여해 말씀을 익히고 있다"며 "성경을 놓지 않는 제 모습을 하느님께서도 기쁘게 보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7년째 성경공부 중인 김정희(클라라, 61)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경 의미가 더 깊고 넓게 다가온다"면서 "성경공부 하는 시간은 미사 참례만큼이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신앙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서봉은(베로니카, 59)씨는 "잘 정리된 교재에 따라 말씀에 심취하다 보면 저절로 주님께 의탁하게 되고, 미사 중 강론과 복음도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무엇보다 그룹 봉사자가 공부가 아닌 말씀 안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눔도 이끌어준다"고 말했다. 1995년 명동성당이 아닌 곳에서는 처음 성서못자리 정기강좌가 열린 둔촌동본당에는 현재 15명의 봉사자가 요일과 시간별로 나뉘어 그룹원 100여 명에게 말씀의 싹을 심어주고 있다. 1989년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일군 성서못자리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말씀의 모(耗)를 뿌리내려 교구 대표 성경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사제들이 심은 모를 꾸준히 키우고 수확해 각 본당에 이모작해 온 이들이 있다. 3년 과정의 명동성당 정기강좌 수료 후 말씀으로 무장한 성서못자리 소속 '나눔터회 봉사자'들이다. 본당 그룹 봉사자들의 모임인 나눔터회 봉사자들은 자신이 몸소 느낀 말씀의 힘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발로 뛰는 말씀의 길잡이들이다. 교구장이 수여하는 봉사자 자격을 얻은 이들은 4복음서ㆍ코린토서ㆍ사도행전ㆍ요한묵시록 등 17권에 이르는 성서못자리 교재로 그룹원을 말씀의 세계로 이끈다. 봉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말씀의 모는 1998년 서울 둔촌동본당을 기점으로 인근 명일동ㆍ천호동ㆍ길동본당으로 전해졌다. 현재 서울ㆍ의정부ㆍ수원교구 등지의 23개 본당에서 250여 명이 활동 중이며, 이들이 관리하는 그룹원은 총 600여 명에 이른다. 본당마다 약 10명의 봉사자가 새로운 모를 심고 있는 셈이다. 그룹 봉사자들은 성경을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씀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올바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줄 뿐이다. 성경은 혼자 공부하기보다 함께 나눔으로써 의미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영숙 그룹 봉사자는 "봉사자는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주님의 기쁜 말씀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라며 "여럿이 말씀을 되새기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츰 각자 신앙생활이 풍요로워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회 내 공인된 성경 프로그램은 성서못자리 외에도 다양하다. 봉사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어떤 프로그램이든 참여해 말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클라라, 명일동본당) 봉사자는 "성경공부라고 하면 어렵게만 느끼고 주저하는 분들이 많은데, 막 영세한 분들도 마르코복음서나 코린토1서를 익히며 신앙의 의미를 알아간다"면서 "마음 깊이 지녔던 신앙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 상처에 대한 답을 얻는 데엔 말씀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전했다. 나눔터회 배외선(세라피나) 회장은 "본당마다 사정과 여건은 다르지만, 봉사자들은 말씀이 곧 힘이고 기쁨이란 확신을 갖고 더 많은 이들에게 그 맛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1년 동안 말씀 안에 살아보자'란 생각으로 어떤 성경 프로그램이든 몸담고 말씀의 힘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서못자리 담당 박기석(교구 성서사목부 차장) 신부는 "공인된 성경공부 프로그램 참여하기와 미사 전 복음 묵상하기 등 교구 사목 지침에 따른 실천사항을 잘 이행하는 말씀의 해가 됐으면 한다"며 "어떤 성경 프로그램이든 적극 참여해 편식없이 말씀의 참맛을 들여보자"고 당부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cpbc2013.11.19
![[시사진단] 교황과 브랜드](//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7031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교황과 브랜드김성제 베드로(한국브랜드경영협회 회장) 나는 이 글의 제목을 ‘교황과 브랜드’라고 붙였다. 의아해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브랜드는 사실 많은 성경 이야기 속에 소개되고 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창세 1,4)고, 또 “뭍을 ‘땅’이라, 물이 고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창세 1,10)고 나오는데, 이것이 하느님께서 직접 이름 지어 붙이신 브랜드가 아니고 무엇인가. 브랜딩의 역사가 실로 천지창조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브랜드는 인류 문명보다 훨씬 앞서 발달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는 비약을 해온 셈이다.전통적으로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기업의 정체성, 차별성, 연상성을 강화해 경쟁 우위력을 갖기 위하여 사용된 이름이나 상징을 의미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 대상이 병원, 학교, 장소, 사람, 국가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가 브랜드’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지 이미 수년이 지났고 올해에 들어와 ‘종교 브랜드’라는 새로운 개념의 용어가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브랜드 개념이 인물, 국가, 종교에 이르기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는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현 교황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자신의 교황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했다. 짧은 순간에 선택한 이름이었겠지만 본인의 정체성과 또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름이었다. 교황 스스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프란치스코는 제게 가난의 사람, 평화의 사람, 피조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피조물과 그리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이 평화의 영을 주는 가난의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제 가족의 뿌리가 있는 이 땅과 영적 관계를 강화해 줍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8월 방한 기간 중 자신이 이용할 자동차로 ‘쏘울(Soul)’ 브랜드를 선택하였다. 언론은 교황이 방한 중에 가장 서민적인 소형 승용차(1600cc)를 탄다는 사실에 뉴스의 무게를 실었다. 교황이 서민적인 선택을 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 하드웨어의 표피적인 뉴스 내용이었다. 오히려 교황이 자동차 소프트웨어인 브랜드 네임 ‘Soul’을 선택한 의미를 놓쳤다. 교황이 선택한 자동차 ‘쏘울’은 크기로는 서민적이라 하겠지만 브랜드 네임으로는 참으로 교황의 품위에 맞는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쏘울’(Soul)은 무형의 실존, 무형의 요체, 우주 만물의 영적 원칙, 극도로 선량하고 고상한 인품을 지닌 사람, 생기와 기백을 넣어주는 정신, 사물의 정수 등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강하게 브랜딩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를 최강 종교 브랜드로 이끌고 있다. 교황 취임 이후, 바티칸과 교회 쇄신을 위해 세계적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KPMG에 컨설팅을 의뢰함으로써 세속적인 도구로 성역의 잘못을 도려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교황은 「복음의 기쁨」이란 권고문에서 구조적 쇄신, 심지어 언어 쇄신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잘못을 바꿔야 함을 권고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추구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교황 자신이 세계 최강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톨릭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탄생시켰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평화신문2014.10.30
새해는 가톨릭 다이어리와 함께가족달력, 성화 특판달력, 말씀달력 등 다양 2014년 새해가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묵은 해를 마무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리며 교계 출판사에서 준비한 새해 달력과 다이어리로 알찬 한해 계획을 세워보자. ▨가톨릭출판사='세상에 하나뿐인 2014 우리 가족 달력'을 선보였다. 벽걸이 형식으로 가족 이름과 매달 중요 행사를 적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가족이 함께 한해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밖에도 세계의 아름다운 성당 사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명화, 평화를 구하는 기도 캘리그라피로 꾸며진 벽걸이 달력 3종과 탁상 메모용 다이어리도 만들었다. 구입 문의 : 02-6365-1888 ▨바오로딸=여러 나라 성지를 그린 그림과 365일 성경 통독 계획표를 담은 '말씀과 함께'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황금색, 남색, 청회색 등 7가지 색상이 있다. '주님과 함께' 탁상용 말씀 달력은 매일 묵상할 짧은 성경 구절을 담아 하루에 한 장씩 넘길 수 있도록 했다. 문의 : 02-944-0944 ▨분도출판사=산티아고 순례길 사진, 이콘, 김옥순(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성화가 담긴 벽걸이 달력 3종을 만들었다. 김옥순 수녀 성화가 크게 인쇄된 특판 달력은 선물하기에 좋다. 문의 : 02-2279-9581 ▨생활성서=속지를 리필해 쓸 수 있는 다이어리 'BIBLE and LIFE'를 제작했다. 매 주일 복음 묵상글과 성경 통독표, 가톨릭 주요 기도문 등을 담았고 카드와 신분증을 꽂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활용성을 높였다. 속지를 '성경쓰기노트'로 바꾸면 성경필사 다이어리로도 쓸 수 있다. 빨강, 연두, 군청 등 5가지 색상을 준비했다. 문의 : 02-945-5986 ▨성바오로=제병 사진과 성체 묵상글로 2014년 탁상용 달력과 내 영혼의 다이어리를 꾸몄다. 다이어리는 매일 메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넉넉히 마련해 뒀다. 하늘색과 분홍색 2종류가 있다. 문의 : 02-945-2972 박수정 기자 cpbc2013.11.26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5)기적의 강, 심판의 강](//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32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5)기적의 강, 심판의 강'강의 심판의 날'에서 유래한 '환난의 날' 고대 근동인들은 강을 온몸과 마음으로, 영혼으로 느끼며 마치 신을 대하듯 강에 대한 두려운 마음, 곧 경외심을 지니고 살았다. 고대 근동인들은 구체적인 강들, 이를테면 나일 강이나 유프라테스 강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은 수메르 시대 이전부터 이미 신성을 지닌 존재였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있었는데, 이 중 두 강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다(창세 2,11-14 참조). 창세기에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신화적 의미, 곧 태초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창조의 강'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을 신으로 언급하지 않고 지명으로만 사용했다. 구약성경에는 유프라테스 강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유프라테스는 지리적 경계의 의미로 사용돼 주로 이집트의 북쪽 경계를 의미했다. 요르단 강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강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에도 요르단 강이 신으로 나오는 적은 없다. 요르단 강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최종 목적지인 약속된 땅의 경계였다.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나아만의 치유에서 보이듯 구약성경에서 요르단 강은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였다. 기적의 장소로서 요르단 강의 의미는 신약성경으로 이어진다. 요르단 강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장소다. 예수님의 세례는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요르단 강은 하느님께 향하는 상승 운동과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하강 운동이 교차하는 곳이자 예수님의 신원이 드러난 기적의 장소로, 신은 아니지만 의미가 큰 강이다. 한편 고대 메소포타미아 법에는 강에게 정의를 물어보는 절차가 있었다. 흐르는 강물이 정의를 밝혀낸다고 믿은 것이다. 고 바빌론인들은 겸허히 강의 신에게 정의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지나칠 만큼 단순했다. 강 한복판에 피고인을 풍덩 빠뜨렸다. 물에 빠진 자가 죄인이라면 강의 신이 그를 처벌해 익사하게 된다. 만일 그에게 죄가 없다면 정의의 신인 강의 신이 그를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강가에서 산 채로 발견되면 그는 자유다. 그러면 그를 고소한 이는 무고죄에 걸린다. 죄 없는 사람에게 거짓으로 중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신을 모독한 사람은 목숨과 집(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 이 같은 규범이 고대인의 원시적이고 미개한 악습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정의는 인류 종교사에서 오랜 전승을 지닌 관행과 같다. 종교학에서는 이렇게 특정한 징표를 사용해 신의 뜻을 물어 죄의 유무를 가리는 고대의 재판을 '신성 재판'이라 한다. 신성 재판의 방법에는 강이나 바다에 빠뜨리거나 불 위를 걸어가게 하고, 독약을 소량 섭취하게 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런 위험을 이겨내 살아난 사람은 죄가 없다는 보증을 받은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이처럼 '정의를 판결하는 강'이 있다. 신성 재판에 사용되는 강을 수메르어로 '이드'라고 불렀고, 아카드어로는 '이두'라고 했다. 이 낱말은 히브리어 '에드'로 계승된다. 에드는 '최종적이고 분명한 심판'이라는 의미다. 이 의미에서 보듯 구약성경에서 '강의 신'은 사라졌지만, '심판'의 의미는 그대로 남았다. 히브리 성경을 적은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은 이 낱말에서 강의 신을 연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하지만 '신적 심판'이라는 뜻은 그대로 사용했다. 이런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표현이 바로 '에드의 날'이다. 글자 그대로 옮기자면 '강의 심판의 날'이란 뜻인데 문맥에 따라 '환난의 날' 또는 '재난의 날' 등으로 옮길 수 있다. 그들의 '에드의 날'(환난의 날, 재난의 날) 나는 그들에게 얼굴 대신 등을 보이리라(예레 18,17 참조). 한편 모세가 유언으로 남긴 노래에서도 비슷한 경고를 볼 수 있다. 주님이 심판하시는 날은 멸망의 날이요 재난의 날이다. 에드의 날(멸망의 날, 재난의 날)이 가까웠고 그들의 재난이 재빨리 다가온다(신명 32,35). 하느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유효하다. 이 심판의 날은 이민족들에게 '환난의 날'이 될 것이다. 이집트에 내릴 환난의 날을 경고하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에서는 '에강의 날과 징벌의 때가 그들에게 닥치면 그들도 견뎌 내지 못하고 등을 돌려 함께 달아나고 만다'란 구절이 나온다(예레 46,21 참조). 여기서 에드의 날은 '신적 심판' 그 자체보다는 '신적 심판의 날을 연상할 만큼의 큰 환난과 고통의 때'를 의미한다. 에드의 날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됐다. 이렇게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고대 근동 종교의 모티프를 사용해 자신들의 성찰을 표현했다. 고대 근동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구약성경의 표현을 깊이 이해할 수 없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