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란다/ 정신적 가치에 정책 주심 두기를 투명 공정하며 도덕성에 흠 없는 정부가 되길 바라 대한민국은 1988년부터 대통령 취임식을 2월 25일 거행해왔다. 전례력으로 이 시기는 사순시기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나가는 사순시기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은 우연이긴 하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맞아 한국교회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에게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달라",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달라", "교회 가르침을 정책에 반영해달라"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 대통령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과 종교ㆍ신앙적 가치관을 담은 정책을 펴주기를 희망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가톨릭교회 정신적 가치, 정책에 접목해야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경제부흥과 창조경제,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취임사를 분석해보면, 경제부흥을 통한 국민행복 추구가 새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국민이 모두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잘 산다''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32위(2012년)로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은 한 마디로 "종교ㆍ신앙적 가치를 정책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사람은 물질적 가치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교육, 정신교육 등 정신적 가치에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에 대한 행복을 추구한다"며 "정신적 가치관 즉, 혼(魂)을 담은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 요한 23세가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1963)의 핵심은 진리ㆍ정의ㆍ자유ㆍ사랑"이라며 "이것이 정책에 반영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0-21)는 성경 말씀처럼, 물질적 행복만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울러 새 정부가 투명하고 공정하며, 도덕성에 흠집이 없기를 바랐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도 드러났듯이 도덕적 흠결이 있는 인물은 국민의 일꾼으로 내세우지 말아달라는 당부이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김영미 수녀는 "더 이상 자격 미달인 사람이 나라를 맡아서는 안 되며, 공직자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혜안을 겸비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 최우선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가난한 이웃에 대한 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정권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사회 양극화가 더 극심해졌다. 사회적 약자 계층인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이며,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노인 복지지출 비중이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도 최근 발표됐다. 노인 및 최저 빈곤층율과 자살률 역시 부끄러운 1위다. 가톨릭교회는 재화와 부에 대해 "경제활동과 물질적 진보는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 부는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28~329항)고 말한다. 또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82항)고 강조한다.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양기석 신부는 "대통령이 진정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면, 넉넉해서 지금도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정준 신부는 "박 대통령이 아파하는 자식을 최우선으로 보듬는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을 대한다면 모든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교회,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교회 내부적으로는 행복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국교회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등을 필두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목소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크다.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해 4대강 사업과 밀양 송전탑 건립문제, 용산 철거민 사건과 쌍용차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오긴 했지만,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의 여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톨릭 신자 수가 국민의 10%를 넘어섰고, 사회 각계각층에 신자가 포진해 있지만 복음화율이 낮았던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회의원은 30%가량이 신자이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일부 가톨릭 의원들 부패와 비리, 다툼과 분열 모습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 오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경성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천주교계 학교(성심여고와 서강대)를 졸업한 신자임에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회의 의장과 교구장 주교님들이 기회가 닿는대로 새 정부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조은일2013.03.05

자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관계자 방담나쁜 생각 들때 주위에 도움 청하라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자살로 자살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왜 그토록 허망하게 내던지는지, 또 어떻게 해야 OECD 국가 자살률 1위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과 '싸우는' 센터장 김보미 수녀와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 담당자들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업무를 제쳐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자살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태도를 질타하는가 하면, 우리사회의 자살문제 원인을 영적 결핍에서 찾았다. 또 누구나 '자살 고위험군'에 속할 수 있기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들이 자살문제를 놓고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희 사회복지사, 센터장 김보미 수녀, 이인희 상담심리사, 서지영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방담 참가자 : -센터장 김보미 수녀 -류정희(에밀리아나) 사회복지사 -서지영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이인희(막시마) 상담심리사 ▶자살예방센터 종사자로서 조성민씨 자살소식을 접했을 때 심정은. -김보미 수녀(이하 김):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매스컴이 조씨 자살사건을 여과 없이 대서특필하는 것이다. 모방자살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인데도, 시시각각 상세하게 보도한다. 화가 날 정도였다. 자살 관련 보도는 사람이 아니라 '자살문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살 원인은 워낙 복잡해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경제적 어려움' '이성 친구와의 이별' '성적 비관' 식으로 단정 짓는다. 그런 보도는 '자살하면 그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하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류정희(이하 류): 공감한다. 자살 수단과 방법이 소설처럼 묘사돼 있는 자극적 기사를 반복해서 내보내면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모방 자살자가 증가하는 소위 '베르테르 효과'는. -서지영(이하 서): 영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언론의 그릇된 보도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ㆍ한국기자협회ㆍ보건복지부가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언론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살 보도의 좋은 예는 1994년 그룹 너바나(Nirvana)의 가수 커트 코베인 자살을 다룬 미국 언론들이다. 당시 언론은 그의 자살을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난함으로써 모방자살을 막았다. 반면 자살을 미화한 대표적 보도가 2003년 영화배우 장국영 사례다.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쉽게 접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처럼 나도….'하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류: 유명인 자살은 일반 대중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부와 명예 등 겉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도 자살하는데 그렇지 않은 국민 대부분은 어떤 심정이겠나. ▶우리나라는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8년 연속 자살률 1위인가. -류: 삶의 중심과 철학이 허약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겨내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 -김: 우리나라 국민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것과도 관계가 있다. 필리핀에 선교하는 한 수녀님이 "이곳은 자살률이 높지 않다"고 전해왔다. 수도자로서 영적 풍요로움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자살한 이가 있으면 주변인이 '고위험군'이 된다는데. -서: 외국에서는 자살자 가족과 친구 등을 '주변 생존자'(Suicide Survivor)라 부른다. 예를 들어 학생 1명이 자살하면 부모는 물론, 같은 반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고위험군 혹은 주변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이인희(이하 이): 자살자 유가족은 이중고를 겪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한 번, 위로받지 못하는 것에 또 한 번 고통받는다. 주변 사람들조차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일반 유가족과 똑같이 위로해줘야 한다. ▶센터의 상담활동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김: 최근에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이가 1시간 넘게 우리와 통화한 후 마음을 돌렸다. -서: 사회 일각에서 상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자살하려던 이가 상담 한 번 받은 것으로 평생 자살 결심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상담은 큰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촉즉발의 위기 순간에 그 시간을 지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센터는 해바라기 자조모임(가칭)과 같은 자살 유가족 대화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갖기를 기대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성경구절로 대신하겠다. 무조건 나눠라. 이야기하라. -서: 자살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자살 생각은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아픈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는? 2010년 콜센터 운영과 함께 개소한 센터는 생명문화축제ㆍ연구조사사업ㆍ자살예방 네트워크 구축ㆍ상담(전화ㆍ인터넷) 등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벌인다. 특히 연령별 '게이트 키퍼'를 양성해 주변 자살 고위험군 발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11년 (사)한국자살예방협회가 수여하는 생명사랑대상(네트워크 부문)을 수상했다. 상담 문의 : 1599-3079, 누리방(www.3079.or.kr) 조은일2013.01.15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58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이야기](19)-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인의 희망우리는 하느님이 선하시고, 정의로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신 까닭에 하느님을 희망한다. 오늘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은 무엇을 의미하며, 과연 가능한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원한 생명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탱해주는 희망이다. 영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생명이다. 우리가 일상 언어로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다운 생명이 아니다. 영원이란 하느님이 존재하는 초월적 세계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도 하루 같아 지나간 어제나 깨어 있는 밤과도 같을 수 있다"(시편 90,4 참조). 성경에 따르면 생명이란 현대 의학 용어와 달리 질적ㆍ양적으로 충만함을 의미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영원한 생명은 삶 이후의 또 하나의 삶이 아니라 삶의 질을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그것은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때부터 마련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 바로 영원한 생명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갖는지 모른다. 2005년 한국갤럽에서 신앙인들 의식을 조사한 결과 "왜 성당에 다니는가?"하는 질문에 가톨릭 신자 78%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을 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 사고방식이 현세중심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추구하는 웰빙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깊에 반영돼 있다. 천당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71.5%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느님 나라야말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다 쉽게 알려줄 수 있다. 구원이라는 포괄적 개념은 시대마다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됐다. 예수님 시대에는 메시아 탄생과 메시아 왕국을 구원 개념의 열쇠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이 모든 희망과 구원을 하느님 나라로 표현한다. 오늘날 천당, 천국으로도 표현되는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구원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으로서 하느님 나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늘 나라는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고, 이 땅에 도래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마르코복음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구원 메시지는 예수님 말씀과 행적 안에서 하나의 실제적 사실이 되고 있다. 공관복음의 구절들을 비교하면, 하느님 나라 도래의 긴급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간절히 기다려 온 미래였지만, 우리에게는 현재 사건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긴박하게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는 이미 지금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루카 4,21)하고 선포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인격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 그분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즉 메시아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그분의 고유한 사명이며, 백성들은 그분을 믿어야 하고 그분을 통해 회개해야 한다. △신비로서 하느님 나라, 비유로 설명되는 하느님 나라 예수님 가르침에서 비유는 매우 특징적이며, 가르침의 기반을 이룬다. 예수님의 비유는 어린 아이조차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단순하다. 공관복음에는 씨뿌리는 사람ㆍ자라나는 씨ㆍ겨자씨ㆍ포도원 소작인ㆍ무화과나무의 교훈ㆍ깨어 있는 종 등 40여 개의 비유가 있다. 이처럼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소중함, 풍성함, 기쁨, 그리고 현재적 측면을 암시적으로 가르쳐준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비유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분 자신이 하느님 나라 자체이심을 알려준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 뜻이 온전히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사명이자 우리 사명인 하느님 나라 예수님 사명으로서의 하느님 나라는, 이어서 제자들 사명이 됐다.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루카 10,9). 하느님 나라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듣는 모든 청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가 됐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4 참조).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사명이었으며, 제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희망이자 사명이 됐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10.18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7481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2)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종교와 과학은 상호 협력 관계환경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 창조론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든 화학제품은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고, 과학기술은 치유 목적이라는 미명으로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과연 누구이고 또 자연은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서 왔는가'와 같이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해 왔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제시하는 인간과 자연의 기원은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성경에 근거해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답변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계몽주의자와 자연과학자는 창조론을 공격했고, 이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단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잦아들고 있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을 연구하는 반면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차이를 교회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신학과 과학을 상호의존적ㆍ협력적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창조론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한다.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이론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화다. 신화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얘기해주고 열거한다. 그렇기에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조건 옳다는 정언적 성격을 띈다. 또 시간이나 논리를 떠나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닌다. 신화에서는 대부분 시초에 혼돈이 등장한다. 이 혼돈으로부터 만물이 분출되고, 창조는 이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는 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인 신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서술된다. 몇 가지 신화를 살펴보자. 바빌론의 신화 「에누마 엘리쉬」는 신이 귀찮은 것을 떠맡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여기서는 인간창조가 매우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페메테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를 '남자를 못살게 하려고 만들어진 존재'로 묘사한다. 신화뿐 아니라 고대 희랍철학 역시 세상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학파 또는 이오니아학파라고 한다. 이들은 신들을 언급하지 않고도 우주를 다스리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규제하는 어떤 비인간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이 어떻게 창조됐는가보다는 사물의 근원에만 관심을 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연보다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리고 인간을 최고의 학문 대상으로 여겼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다. 인간 영혼의 이성적 부분은 세계 조물주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비이성적 부분은 육신을 만든 신들에 의해 창조됐다고 생각했다. 플라톤 사상은 여러 세기 후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새롭게 발전됐다. 플로티누스는 고대 희랍철학과 여러 종교를 혼합해 창조를 하나의 유출로 설명했고, 2~3세기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의 유일성을 고수하면서 모든 사물은 스스로의 창조 행위가 아닌 신의 창조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이 신으로부터 유출돼 흘러나온다고 본 것이다. 그 예로 태양을 들었다. 태양은 절대 고갈되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드러낸다. 또 그는 악을 세계질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악은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어두운 그림자 부분과 같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우주 기원을 빅뱅이론으로, 인간 기원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에 대해 질문하지만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서로 다르다.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신학자 프랑수아 바리용 역시 "물리적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학자 소임이고, 물리학자는 창조주라는 가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번개, 바람, 지진 생물의 진화 등 세상 현상들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과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의미는 물론 그것들의 근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의 신비에 다가가는 길을 찾을 곳은 과학이 아니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과학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과 소임을 갖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며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주의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양자는 각기 타자를 보다 넓은 세계로, 양자가 그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또 생명의 기원과 진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8.23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11) 예언자들의 하느님끊임없이 사랑 고백하는 하느님 예언자들이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점쟁이나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예언자(Prophetes)는 하느님 대변인이다. 성경에서 하느님 체험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시대별로 찾아보자. 1) 엘리야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린다.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아합이 역겨운 죄를 거듭 짓는 가운데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등장한다. 엘리야 예언자의 가장 큰 활약은 바알 예언자 450명과 대결이다(1열왕 18장). 이 대결의 승리로 엘리야는 하느님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린다. 바알 예언자의 후원자였던 이제벨 왕비로부터 도망 다니던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어서 우리가 묵상할 것이 많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날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과 불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 지진, 불은 하느님의 부정적ㆍ파괴적 활동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하느님의 창조적ㆍ구원적 활동을 뜻한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하느님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2) 엘리사 밭을 갈고 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는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낸 다음 엘리야를 따른다(1열왕 19,19-21).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어느 청년을 부른다. 한 청년은 아버지 장례 핑계를 댄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 그리고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핑계 대는 청년에게 말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엘리사는 또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아람 임금의 군인들 눈을 멀게 하여 사로잡은 다음 대접해 보내서 다시는 침략하지 않도록 했다(2열왕 6,8-23). 이는 오직 사랑만이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3) 아모스 남쪽 유다 왕국 백성인 아모스는 북쪽 이스라엘로 가서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가 이스라엘로 간 것은 일치의 표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민족이 하느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불굴의 사랑과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다. 아모스를 통해, 벌을 내리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기 원하며 회개를 호소하는 하느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4) 호세아 호세아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보여준 예언자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창녀 고메르와 결혼한다. 창녀와 결혼하고 또 그가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호세아는 그런 행동을 통해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 사랑 역시 그런 놀라온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바보 같은 사랑의 대명사다. 호세아의 사랑은 끊임없이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또 끊임없이 용서하는 하느님 사랑을 대변한다. 5) 이사야 엄청난 사건들을 계획하고 주재하는 주인공은 바로 주님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한 예언자가 이사야다. 이사야는 모든 민족에 대한 주권을 지닌 하느님은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유일신 사상을 주창한 것이다. 이사야는 야훼 하느님이 모든 민족은 물론 역사와 창조를 지배하는 분이라고 했다. 또 주님은 과거의 하느님인 동시에 현재의 하느님이며, 또 앞으로 올 모든 세대의 하느님임을 선언했다. 6) 예레미야 모든 민족들 움직임 속에서 주님 손길을 볼 수 있다는 사상은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인에게 바빌론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라고 권고한 것은 야훼가 바빌론에도 현존하고 계심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는 사람들이 야훼를 진심으로 찾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에 의해 하느님이 온 세상에 한 분뿐인 유일신임을 이해하게 된다. 7) 요나 '하느님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느님이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요나는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달아난다. 요나는 물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을 통해 니네베에 도착하고도 하느님께서 니네베 사람들을 향한 재앙을 거둔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요나서의 절정은 시들어버린 아주까리 나무를 놓고 벌어진 하느님과 대화다. 하느님은 요나를 설득하신다. "너는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보기 좋게' 창조한 저 많은 니네베 사람들을 어찌 동정하지 않겠느냐?" 이 말을 들은 요나는 비로소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도 자애로운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 사랑을 전하셨다. 또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당신 사랑을 전하신다. 하느님은 사도를 통해 교회를 세웠고, 사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교회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여전히 자애로우시다. 예언자 요나를 설득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리=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8.16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5326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용서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여호수아가 죽고난 뒤 사무엘이 사울을 임금(왕)으로 세우기까지 판관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기가 판관기다. 이민족과 계속 투쟁하는 시기로, 겉으로 보기엔 전쟁사지만 그 속에는 종교적 갈등이 내재돼 있다. 판관기는 일정한 양식으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진행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다→②하느님께서 이에 분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민족에게 넘기신다→③갖은 고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④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하고 판관을 세워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민족 손에서 구해주신다→⑤하느님께서 세운 판관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평화롭게 다스린다→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악한 짓을 저지른다→이하 반복. 이렇듯 판관이 바뀔 때마다 ①~⑤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판관기를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잘못을 되풀이하는지 답답하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들 잘못을 매번 용서해주신다. 판관기는 언제나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보여준다. 판관기에 나온 판관들을 살펴보자. 1. 판관 오트니엘(판관 3,7-11) ①이스라엘 자손들은 주 저희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겨, 주님 눈을 거스르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진노하시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덟 해 동안 쿠산 리스아타임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시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그가 곧 칼렙의 아우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다. ④주님 영이 오트니엘에게 내리니, 그는 이스라엘 판관이 돼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그의 세력이 쿠산 리스아타임을 억눌렀다. ⑤그리하여 이 땅은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 죽기까지 마흔 해 동안 평온했다. 2. 판관 에훗(판관 3,12-30)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임금 에글론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 ④그날 이렇게 모압은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했다 ⑤그 뒤 이 땅은 여든 해 동안 평온했다. 판관에 따라 서술 내용과 분량에 차이가 나지만 판관기는 대체로 이와 같은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으로는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톨라, 야이르, 입타, 입찬, 엘론손, 압돈, 삼손 등이 있다. 많이 들어 본 익숙한 판관들도 있지만 생소한 판관들도 있다. 판관 드보라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 판관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보라 판관 시대에는 여성 활약이 두드러졌다. 드보라에겐 바락이라는 장군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적장 시스라를 무찌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야엘이라는 여인이었다. 성경은 야엘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다.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 천막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판관 5,24). 판관 기드온은 여루빠알로도 불렸는데 이는 그가 '바알제단을 허물었다'는 뜻이다(판관 6,31-32). 이와 함께 판관기에 나타나지 않은 판관도 있는데 이는 엘리와 사무엘이다. 사무엘기에 등장하는 두 판관은 지금까지 설명했던 판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전 판관들은 적을 무찌르는 공헌을 세운 무사로서의 판관이었지만 엘리와 사무엘은 예언자, 사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와 사무엘은 판관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그들 뒤를 이은 아들들이 모두 잘못을 저질러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우리는 판관기에서 3가지를 묵상할 수 있다. 첫째, 똑같은 죄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 모습과 그럼에도 매번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죄를 지은 형제를 7번 용서해주면 되겠냐는 베드로 질문에 77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8,21-22). 용서하시는 하느님 모습은 판관기에 잘 드러나 있다. 둘째, 사무엘 판관 때 생긴 이스라엘 왕정제다. 사무엘 뒤를 이을 아들들이 사무엘의 모범을 따르지 않자 이스라엘 원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가 새로운 왕을 세울 것을 청한다. 사무엘은 왕정제 폐단을 설명하며 이들을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지시했고 이때부터 이스라엘 판관 시대는 막을 내렸다. 셋째, 남성과 여성처럼 어떤 성(性)에도 속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판관기에 나타나는 이방인들 신은 바알과 바알의 아내 아스다롯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바알신과 달리 배우자가 없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성(性)은 하느님께서 창조한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성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8.02

성화 속 복숭아에 담긴 구원의 비밀[‘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1. 복숭아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복숭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희망을 상징하는 과일로 자주 그려졌다. 성서와함께 제공 복숭아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프루누스 페르시카(Prunus persica)라는 학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래전 페르시아(현재 이란 지역)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과일이다. 이후 이탈리아·스페인 등 일조량이 많고 건조한 기후를 가진 유럽 국가에도 전파되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가 1세기경 남긴 「박물지」에는 ‘부드러운 과육과 단단한 핵, 핵 안에 든 씨앗으로 구성된 열매’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요소들이 세 위격을 표현한다고 생각해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겼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 ‘성가정과 마리아 막달레나’에는 과일 그릇을 들고 있는 요셉, 그릇에 담긴 과일을 꺼내 아기 예수님에게 건네는 마리아, 마리아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기 예수님이 등장한다. 투명한 유리 그릇에 들어있는 사과·체리·복숭아 등 형형색색의 과일은 마치 정물화처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사과는 인간의 타락, 체리는 그리스도의 성혈, 복숭아는 구원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마리아가 과일을 집으려고 손을 뻗거나 어린 예수님에게 과일을 건네는 장면은 아들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마리아의 깊은 인식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충실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아기 예수님이 손에 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성모 마리아의 뒤편에 복숭아가 그려진 성모자 성화도 있는데, 이들 그림에서도 복숭아는 구원의 열매를 뜻한다. 복숭아는 종교화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인물화나 정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16세기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하느님의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듯, 우리도 말한 바는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늘 말과 행동을 같이해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의인을 복숭아와 복숭아 꼭지에 달린 잎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복숭아는 심장, 복숭아 잎은 혀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은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만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을 반영하듯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의로운 사람을 표현할 때 복숭아와 복숭아 잎을 함께 그려 넣었다. 그런데 그림 속 복숭아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때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누군가 반쯤 먹다 남긴 상한 복숭아는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의 부도덕함을 나타내고, 특히 정물화에 그려진 벌레 먹은 복숭아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읽힌다. 복숭아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집트로 피난 가던 중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꿈에서 천사로부터 피신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길을 떠났으니 당연히 고단하고 시장할 터. 탐스러운 복숭아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본 마리아가 열매를 따려고 했지만, 복숭아는 요셉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아기 예수님이 나무에 말을 걸자 나뭇가지는 순순히 아래로 구부러졌고, 요셉은 복숭아를 따 마리아에게 주었다. 이와 조금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서는 천사들이 나타나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지에서 복숭아를 따 마리아와 요셉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구전을 거치며 복숭아 대신 무화과나 대추야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과거 동양권에서도 복숭아와 복사나무는 천상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졌다. 무릉도원은 복사나무가 숲을 이루는 곳, 복사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이상적인 장소를 말하며, 천도복숭아는 신선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다(도원·천도의 ‘도’는 모두 복숭아나무 도(桃)). 구원과 천상을 꿈꾸는 인간의 오랜 소망이 담긴 복숭아. 세상에 이처럼 감미로운 과일이 또 있을까. cpbc2026.07.22

엄마랑 성경 공부한 어린이, 성경 골든벨 1등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 38개 본당 1100여 어린이 참석복음 전하는 어린이 될 것 다짐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서 문희종(가운데) 주교와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1000여 명의 어린이가 주님 말씀 안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원교구는 19일 경기도 평택시 효명중학교에서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가치와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일깨웠다. 38개 본당 1100여 명의 어린이를 비롯해 주일학교 교사 300여 명, 봉사자 200여 명 등 1600여 명이 함께했다. 교구 청소년국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신앙과 사랑을 체험하도록 곳곳에 노인 체험·말씀 체험·장애공감·미니 골든벨·네트로 감성놀이·기도체험·김대건 카드·흡연 예방 카드·생태환경 체험 등 체험 학습장을 마련했다. 다양한 놀이시설과 먹거리 차량도 설치해 즐거움을 더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행사는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전 경시대회를 열어 444명을 추렸고, 이날 각 본당 어린이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말씀으로 경합을 벌이는 성경골든벨 본선이 열렸다. 대회 결과 이윤호(유스티노, 초4, 영통영덕본당)군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다. 이어 윤채령(에스텔, 초6, 동탄반송동본당)양이 2등, 이준성(요한 사도, 초6, 매탄동본당)군이 3등을 차지했다. 어린이들은 교구 청소년국이 미리 배부한 예상 문제와 범위를 공부하며 준비했다.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은 “엄마와 둘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며 “골든벨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엑스(OX) 문제가 어려워 쉽진 않았지만 뜻깊었다”고 말했다. 문희종 주교는 파견 미사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용기있게 전했듯이 어린이들도 예수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들이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방법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친절한 사람, 배려 깊은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행사를 주관한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조성경 신부는 “축제를 통해 어린이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즐기는 하느님 자녀가 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이 축제가 수원교구 어린이들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어린이들이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며 성경에 맛들이고, 주님 말씀대로 살도록 독려하기 위한 행사다. 2019년 6월 첫 행사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 지난해 재개돼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4.05.22

“당신이 나에게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일치 꿈꾸는 수도자들[일치주간 특집 이탈리아 보세 수도원] 보세 수도원의 특징은 서로 다른 교파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수도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 수도자들이 시간 전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남녀 수도자 모여 ‘교회 일치’ 지향하는 공동체1965년 설립, 60년째 이어져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비엘라 지방 마냐노에 자리한 ‘보세 수도원(Bose Monastic Community)’은 교회 일치의 오랜 전통을 살아가는 매우 특별한 공동체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을 맞아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존중하며 하나 된 삶을 살아가는 일치의 모범 보세 수도원 공동체를 소개한다.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마냐노는 중세 마을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알프스의 만년설, 부르치나 자연 보호 구역과 비베로네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외곽 11세기 초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지은 산 세콘도 성당 근처에 바로 보세 수도원이 있다. 보세 수도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 수도회와 완전히 다르다. 남녀 수도자들이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각자 믿음에 따라 가톨릭·정교회·개신교·콥트 교회에 속해 있다. 한마디로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수도생활의 모습으로 살려는 ‘초교파 수도 공동체’다. 보세 수도원은 서방 교회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과 동방 교회 대 바실리오 주교의 수도 규칙의 전통을 공유하며 오늘날 수도생활에 맡겨진 소명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 수도자의 삶을 지탱하는 네 기둥은 기도와 노동,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그리고 환대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삶의 방식 중심에는 ‘성경’, 구체적으로 ‘복음 말씀’이 자리한다. 수도생활의 일상이 성경 말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하는 실천의 삶이 되도록 묵상에 힘쓴다. 철저히 복음 정신대로 살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이 그러했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공동체 안에서 순명과 청빈, 정결의 삶을 사는 건 기본이다. 보세 수도원의 독창성은 ‘교회 일치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례’에 기초한 생활방식 속에서 수도자들은 교회 일치를 열망한다. 그래서 보세 수도원에선 매일 성찬례가 거행되지 않는다. 성체를 모셔둔 감실도 없기에 성체조배 역시 보세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또 가톨릭교회의 ‘원죄’ 교리를 가르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설립된 보세 수도원에서 여자 수도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세 공동체는 교회 일치를 위한 길을 여는데 헌신하며,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하신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랑의 친교를 위해 기도와 만남, 대화의 장소가 돼왔다”고 평가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1965년 12월 8일 시작, 꼭 60년 됐다. 토리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가톨릭 평신도 엔조 비앙키가 보세 마을 외곽 농가를 빌려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전기도 상·하수 시설도 없는 단칸집에서 3년 동안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가끔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환대했다. 이 시기 비앙키는 서방 교회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 수도원, 동방 교회 그리스 아토스 수도원, 그리고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떼제를 체험하면서 수도생활에 대한 소명을 키워갔다. 보세 공동체가 처음부터 환영받는 공동체는 아니었다. 지역 교회 주교는 공개적인 전례를 금지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이 전례에 참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1968년 6월 29일 토리노대교구 미켈레 펠레그리노 추기경이 방문해 전례 금지를 해제하고 공동체를 축복함으로써 교회 일치 수도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세 수도원 성당.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의 영향을 받아 특별한 장식이 없이 단순하다. 이와 함께 1968년 8월 스위스 개혁 교회 목사 1명과 스위스 그랑샹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개신교 수녀 1명, 가톨릭 신자 1명 등 3명이 보세에 합류했다. 이로써 교회 일치를 지향하는 남녀 수도 공동체의 조건을 갖추게 됐다. 보세 수도원은 2023년 7월 비엘라교구장 인가로 교구 소속 자치 수도원이 됐다.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을 따르겠다는 소박한 시작은 60년이 지난 오늘,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남녀 수도자 80여 명이 함께 사는 큰 수도회로 성장했다. 또 현대 사회의 도전에 직면해 ‘복음적 사랑의 증인’이 된 보세 수도원은 이탈리아 아시시, 오스투니아, 시비텔라 산 파올로에도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중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박재찬 신부 지도 아래 ‘토마스 머튼 영성 배우기’ 피정자로 2025년 7월 보세 수도원을 방문했다. 보세 수도자들의 삶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단순함 자체였다. 새벽 5시 30분에 깨어 오전 6시, 낮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매일 3번 30분간 ‘시간 전례’를 한다. 남녀 수도자들은 모두 ‘관상 수도자’를 상징하는 흰색 수도복을 입고 전례에 참여한다. 성당 안 제대를 중심으로 남자 수도자들은 왼편, 여자 수도자들은 오른편에 자리한다. 찬미가와 시편 노래로 이어지는 성무일도로 시간 전례를 한다. 미사는 목요일과 주일 매주 두 번 거행된다. 커피와 빵 몇 조각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수도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수도원 작업장에서 노동한다. 올리브 농장과 포도원, 과수원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공방에서 십자가와 각종 성상, 초, 도자기, 이콘 그림을 제작한다. 또 출판사와 손님방에서 일하고, 어떤 이는 성경과 교부학, 히브리어와 아람어 등을 연구하고, 수련자들을 교육한다. 보세 수도원은 여느 수도원처럼 자급자족한다. 일터에서 생산한 모든 것을 무인 판매소에서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이와 함께 여러 수입원으로 얻은 재화는 수도원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손님, 곧 방문자 ‘환대’는 이곳 수도생활의 주요한 실천 활동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고 말씀하신 예수님 최후의 심판 장면을 상기하면서 방문자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모신다. 특히 교회와 세상의 문제로 기도 안에 머물 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환대는 매일 낮 1시와 저녁 7시에 12명이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 함께하는 식사에서 잘 드러난다. 음식은 영양가 높은 친환경 재료로 신선하고 푸짐하다. 방마다 2명의 수도자가 손님을 안내해 함께 식사한다. 한 명은 식사 준비를 돕고, 다른 한 명은 손님들이 서로를 더 잘 알아가도록 대화를 이끈다.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거룩한 독서’를 한다. 영적 사막 한가운데에서 복음의 샘물로 영원한 생명을 지탱하기 위함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마태오 수사는 “규칙적인 수도생활은 우리가 소명에 충실하도록 해준다”며 “수도생활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설립돼 시대 흐름에 맞춰 동·서방 수도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해왔다. 보세 수도원은 서로 다른 신앙과 전통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노동, 환대와 섬김을 통해 조화롭게 화합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리길재 전문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1.14

윤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으로 답하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2권 특수 도덕신학 / 칼 H. 페쉬케 신부 / 이동호·김성수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그리스도교 윤리학 또는 도덕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에 비추어 그리스도인이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라야 할 지침들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로 정의된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2권 특수 도덕신학」은 지난 2022년에 출간된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 기초 도덕신학」에 이은 개정판이다. 특수 도덕신학은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과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을 다룬다. 기초 도덕신학의 원리를 전제하고 그 기초 위에 수립되며, 인간 행동을 특정 분야에 적용한다. 전체적으로 타인 존중과 과학적 진보를 이룩한 인간의 성과들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남용은 비판하고 있다. 개정판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세밀하게 반영하고 성경 말씀을 보강하였다. 1000쪽이 넘는 책은 크게 ‘종교 권역에서 인간의 책임성’과 ‘창조된 세상을 향한 인간의 책임성’을 다룬다. 종교 영역을 설명한 제1부에서는 대신덕(對神德, theological virtues)으로서 신·망·애, 즉 믿음·소망·사랑을 고찰하며, 신적 예배의 본성 및 신적 예배의 특수한 형태와 의무를 논한다. 창조 세계에 관한 제2부에서는 이웃 사랑과 정의의 덕목을 고찰하되, 세부적으로 ‘개인적 윤리’로 정의되는 육체적 생명과 건강, 명예·성실·진실, 성(性)을 살펴본다. 이 성은 다른 큰 영역인 ‘사회 윤리’로 가는 전환점이다. 결국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 결혼·가족·국가·교회 등과 같은 큰 공동체로 나아가며, 노동·소유·경제·세계 등으로 확대해 피조물에 대한 책임 있는 돌봄으로 이어진다. 책은 단순히 계명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금지 사항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하느님 사랑과 그 은총으로부터 주어진 대신 덕이 어떻게 인간적인 덕을 완성하는지, 모든 계명과 율법의 완성인 덕스러운 삶을 그리스도인의 일상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특히 현대사회의 정신적·심리적 이해, 공동선과 인권·생태환경에 대한 이해가 강화되었고, 생명공학·생식의학·약물남용·핵전쟁 등의 문제점도 다룬다. 또 여성 존중·비혼·부모 역할 및 부부애 관련 주제가 보강되었다. 노동과 자본의 협력적 관계와 기업가의 명예, 국제 연대의 중요성 등에 대한 논의도 심화되었다.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시아눔에서 교황청립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칼 H. 페쉬케(말씀의 선교 수도회) 신부는 도덕신학 교수로 브라질·독일·필리핀·이탈리아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6.04.08

변상호 가롤로의 감사 생활[월간 꿈CUM] 경청 프랑스 루르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 군종신부로 살던 1981년의 일이었다. 어느 주일 미사 시작 조금 후, 성당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 한 대가 들어와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온 사람 같았기에, 미사를 마치고 그에게 다가가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하고 약을 썼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결국 뇌성마비로 판정받아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는 장애자로 살게 되었다. 그러는 중 15세가 된 어느 날, 옆집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출해 여러 곳을 떠돌아 지내다가 부산의 한 재활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에게는 라디오가 유일한 친구요 스승이었으며, 그의 모든 상식과 지식은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 터득된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 방송은 그에게 성경과 하느님을 알게 해주었고,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부산 구포 본당의 레지오 단원 김양숙 클로틸다가 그곳을 방문하여 활동하다가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러한 변상호와 평생을 같이 살기로 한 일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지인(知人)의 소개를 받아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의 ‘순복음 금식 기도원’으로 가서 살았다. 그래서 그날은 인근에 있던 육군 제1사단의 전진성당(前進聖堂)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특별히 네 가지 일에 감사한다고 했다. 첫째는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인생의 동반자인 아가씨를 만나게 된 것이며, 셋째는 장애로 살아가나 시각장애인이 안 된 것이고, 넷째는 언젠가 다른 장애인들을 돌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자기가 세례를 받게 해주고, 다른 하나는 두 사람에게 혼인성사를 집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감동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해 듣기는 했으나,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세례를 받고 결혼하여 30년 동안 왕래하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런데 주인공 변상호 가롤로 형제는 안타깝게도 간경화로 고생하다가 2010년 11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까지도 경기도 평택에서, ‘요한의 집’을 운영해 자신과 비슷한 장애인 20여 명을 돌보며 같이 살았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라고 말했다. 변상호 가롤로는 그렇게 살았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미소 지으며, 주님 안에서 기뻐했다.(이사 61,10 참조) 또 틈만 나면 녹음된 성가와 성경을 들으며 묵상하고 기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 감사드렸다. 전신 장애인이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보다 행복하다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十一條)를 봉헌했다. 교도소에 초대를 받아 가서는 수감자들에게 감명을 주는 훌륭한 강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장애인 부부보다 낫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많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드려야 하지 않는가? 또 하느님의 사랑과 부모의은혜에, 배우자의 헌신과 이웃의 도움에 진정으로 더 많이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cpbc2026.02.10

순교한 형·누나 따라 조선 교회의 모범이 된 묵상가[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7) 복자 이경언 바오로 복자 이경언(바오로)은 형 이경도(가롤로)와 누나 이순이(루갈다)의 모범을 따라 순교의 길을 기꺼이 걸어간 참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명하라고 가르친 묵상가다. 이경언 복자화. 조선 왕조 치하 박해기 날마다 묵상과 삶의 모범으로 세상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르치는 이가 있었다. 그는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간직하고 형제자매 그리고 친·인척이 걸어간 순교의 길을 기꺼이 따랐다. 이번 호에는 묵상가이자 교회 재건을 위한 성직자 영입 운동을 지원한 복자 이경언(바오로, 1792~1827)을 소개한다. 박해로 몰락한 집안에서 신앙생활에 전념 이경언은 복자 이경도(가롤로)와 이순이(루갈다)의 동생이다. 신유박해로 형과 누나가 순교할 때 그의 나이 9살(또는 10살)이었다. 이경언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서장자 경녕군의 15대손이다. 아버지 이윤하(마태오)는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설립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고, 어머니 권씨는 권철신(암브로시오)와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여동생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집안이 몰락한 이경언은 어머니 권씨와 형수(이경도의 부인) 오씨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왕족의 후손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아무도 그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그는 22살에 중인 집안의 한 여인과 혼인했으나 아내의 성질이 고약해 평생 크나큰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와 형수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1815년 충청도 연풍으로 이주했고, 이경언 홀로 남아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오직 그리스도인 삶의 본분에만 전념한 그는 외교인들을 신앙으로 권면하여 가르치고, 냉담자들을 고무하고, 이교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정성을 기울이면서 교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자주 병약했던 그는 그의 고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고, 가르치고 권면하면서 종종 밤을 새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결점들을 그에게 알려줄 것을 청했고, 그에게 이러한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다블뤼 주교,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63~67쪽 참조) 그는 교회 서적을 필사하고 성화를 제작 판매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나눠줬다. 무엇보다 그는 신유박해로 산산이 무너진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가난 속에서도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을 오가는 정하상(바오로)의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묵상에 힘쓰며 교우들에게 순교 권면 이경언은 묵상가였다. 그는 늘 성경을 읽고, 깊은 묵상에 빠졌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왕래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다. 그를 만난 모든 이가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어느 누구라도 그의 말을 무심하게 듣지 않았다. 그의 묵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할 때마다 그는 순교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교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선 전역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순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만나는 교우들에게 늘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를 하라고 권고했다. 1827년 전라도에서 정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체포된 한 교우가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교회 서적과 상본을 이경언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로 인해 그해 4월 21일 이경언은 한양 집에서 체포돼 전주로 압송됐다. 그는 쇠사슬에 묶이고 칼이 씌워진 채 투옥됐다. 다음날 그는 전주 관장 앞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25년 전 누나 이순이가 수차례 문초를 받고 숱한 매질을 당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는 보름 이상 반복되는 형벌을 초주검이 될 때까지 받으면서도 형과 누나를 생각하며 그들의 순교 발자취를 따르겠다고 마음을 거듭해서 다잡았다. 신앙의 길 당부하는 편지 남겨 이경언은 전주 감영 옥에서 어머니와 가족, 아내, 명도회 회원에게 보내는 3편의 편지를 썼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어머니와 형수 그리고 아내와 자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몇 발자국 따라가게 해주고, 또 제 형님과 누님의 전구로 그분들의 뒤를 따라가게 해주시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이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라며 청했다. 더불어 그는 “매사에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며, 남아있는 날들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느님 앞에, 성교회 앞에 영광스럽게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이경언은 명도회원들에게도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 이 세상의 불행을 두려워 말고 모든 힘을 써서 하느님의 집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오 확장하도록 애쓰십시오. 교우들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천주교가 꽃피우도록 일하십시오”라고 권고했다. 이경언은 형벌로 인한 몸의 상처가 너무 깊어 며칠 동안 의식이 없었다. 1827년 6월 27일(음력 윤 5월 4일) 겨우 의식이 돌아온 그는 함께 옥에 갇힌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기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이 제 몸보다 틀림없이 더 강하지 못했을 터인데 올리브 동산에 피땀을 흘리셨고,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당신 십자가를 지고 산꼭대기까지 천 걸음도 더 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분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어떤 교인도 그를 도우러 오지 않았는데, 저 같은 큰 죄인에게 사람들이 도우러 오고 또한 제게 의식이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9.30

성모님 품에서 묵주기도가 된 장미[‘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 장미 장미. 성서와함께 제공 성모 성월, 가장 고운 꽃 모아 성전을 꾸밀 수 있는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 고운 꽃들 중 ‘기도의 정원’ 연재의 문을 여는 꽃으로 장미를 소개한다. 5월에 찬란하게 만발하는 ‘꽃의 여왕’.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장미만큼 잘 어울리는 꽃이 또 있을까. 장미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 언급된 이래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교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꽃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되었다.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장미 줄기에 가시가 없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줄기에서 가시가 돋았다고 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존재이므로 ‘가시 없는 장미’라고 불렸고, 이에 화가들 사이에서는 ‘장미와 성모 마리아’나 ‘장미 덩굴 아래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한때 크게 유행했다. 장미는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 천상 모후의 관을 받는 마리아를 그린 성화에도 많이 등장했으며, 특히 성모 승천을 묘사한 작품에서는 마리아의 빈 무덤 앞에 백합과 함께 그려지곤 했다. 인류는 약 2500~3000년 전부터 장미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미는 야생 덩굴장미의 일종인 개장미(Rosa canina)다. 이 장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풍성한 화형의 현대 품종 장미와 달리 꽃잎이 다섯 장뿐인 수수한 외모의 홑꽃으로, 지금도 독일 힐데스하임 대성당 뒷벽에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성당이 연합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했을 때도 이 장미 뿌리는 잔해 속에서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종·교배종·품종이 탄생한 만큼 장미는 색감이나 화형, 크기가 다양해 절화로서의 활용도가 높다.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한 꽃 중 하나이기에, 장미 없이는 제대를 비롯한 성전 장식이나 꽃 봉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리적인 봉헌은 물론 영적인 봉헌도 마찬가지다. 수줍게 오므린 꽃봉오리처럼 동글동글한 묵주 알을 손으로 굴리며 성모님께 장미를 한 송이씩 바치는 것이 로사리오(rosario) 기도, 즉 묵주기도로, 로사리오는 ‘장미 정원’‘장미 화환’을 뜻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에서 유래한 단어다. 장미는 꽃 색깔마다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붉은색은 열정과 사랑, 흰색은 순수함 또는 죽음, 복숭아색은 겸손과 순결, 분홍색은 은총과 행복, 인공적인 염색으로 만들어낸 파란색 장미는 기적을 상징한다. 물론 성전 장식에 활용하는 경우에는 전례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결국 모든 꽃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그 꽃을 하느님께 드리는 나의 진심과 그 순간의 맥락 속에서 의미가 완성된다. cpbc2026.05.13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8) 「예기」, 「단궁하(下)편」에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 처자가 무덤에서 서글피 곡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를 시켜 그 사연을 알아보라고 합니다. 그 처자가 자로에게 하는 말이 “옛적에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 역시 호랑이에게 죽었으며, 이제 아들 또한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일이 반복해 일어났음에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의아해 물으니 여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혹한 정치가 없어서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공자가 살던 시대는 주나라의 사회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춘추시대였습니다. 왕실은 점차 힘을 잃고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각 제후국들은 부국강병을 위해 더 많은 세금과 병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피해 보는 것은 일반 민중들이었습니다. 그런 가혹함을 피해 사람들은 외진 곳으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세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사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 인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주나라는 대체로 읍제 국가였습니다. 그 읍은 다시 ‘국’(國), ‘도’(都), ‘비’(鄙)로 구분되었습니다. 국(國)은 제후가 다스리는 곳이며, 도(都)는 제후가 파견한 대부가 다스리는 곳이었고, 비(鄙)는 국이나 도로부터 직접 통치받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성곽 밖 가장 천한 사람들로 취급되어 ‘야인’(野人)이라 불렸습니다. 물론 이곳도 더 혼란한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징병을 목적으로 직접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공자는 정치를 피해, 들로 산으로 흩어져 숨어 살던 사람의 처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 비참한 현실을 말한 것이 바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였습니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말하길 “정치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다(政者正也)”(「논어」 안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르게 하는 것(正)’이란 무엇일까요? 공자에게 바르게 하는 것이란 ‘정명’(正名), 즉 이름 혹은 명칭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함의는 이름(名)과 그 안에 담고 있는 실제 내용(實)을 일치시켜 자기 이름에 맞게 행실하라는 것입니다. ‘~답게 살라’는 것이죠. 소위 ‘이름값 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답게, 검찰은 검찰답게, 경찰은 경찰답게, 언론은 언론답게, 종교인은 종교인답게. 자기 본분에 맞게 행실하라는 사회고발입니다. 공자가 볼 때 정치가 무너진 것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 지위에 맞는 처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정명’ 사상을 바탕으로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정치에 관해 말합니다.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길 “먹는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력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논어」 안연) 공자가 말하고 있는 정치란 풍족한 식량, 풍족한 군대, 그리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 국방을 튼튼하게 하여 백성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 토대가 바로 ‘정명’, 자기 본분에 맞게 ‘~답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백성이 서 있을 수 없다고 공자는 말합니다(民無信不立). 지도자가 가혹한 수탈로 굶어 죽게 하고, 명분 없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게 하니 불안한 백성은 결국 흩어져 야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능한데 가혹하기까지 하면 호랑이보다 무섭습니다. 공자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당시 지도자들의 위선적 태도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무거운 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여기서 ‘작은 벌레’와 ‘낙타’는 부정한 동물을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포도주를 담글 때 부정한 초파리를 걸러 내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그런 작은 부정을 막기 위해 열심이면서 ‘낙타’라는 큰 부정은 삼키고 있다는 사회비평의 말씀입니다. 겉(名)은 그럴듯하나 속(實)은 탐욕과 부정으로 가득한 위선적 태도의 지도자를 비판한 예수님의 사회고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백성이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백성이 이 땅에 제대로 설 수 있나요? ‘잔혹한 통치를 두느니 차라리 통치가 없는 편이 낫다’라는 서양의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백성이 야인이 되지 않도록 믿음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백성을 볼 날이 올 것 같습니다. ‘正’은 글자의 뜻으로 보면 성(囗)을 바로 잡기 위해 성을 향해 발(止)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政’(정치)은 ‘正’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예루살렘 도성에 목숨 걸고 입성하셨습니다. 바로잡아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분노한 백성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도성으로 향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믿음을 주십시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cpbc2024.12.10

책꽂이 교황의 언어 / 이광재 / 시공사 「교황의 언어」는 제261대 성 요한 23세 교황부터 성 바오로 6세, 복자 요한 바오로 1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여섯 교황의 말씀을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경제·사랑·용서·정의·환경·평화 등 개인의 삶과 사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실천할 방향을 제시하는 교황의 메시지를 모았다. 2부에서는 여섯 교황의 궤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며 교황명에 녹인 결심과 짧은 사목 표어에 담긴 시대와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 신앙심, 인류를 향한 사랑과 연민을 들여다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국회사무총장 등을 지낸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면서 역대 교황들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향한 교황님들의 언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고 전했다.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가톨릭출판사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루카 복음서」가 나왔다. 가톨릭출판사가 펴낸 네 복음서 영어 필사 노트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루카 복음서는 하느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가닿는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웃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다. 장면 설명과 인물 묘사가 뚜렷해 말씀을 묵상하며 특히 문맥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휘를 익히는 데 적합하다. 영어 성경 본문은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New American Bible」(NAB)을 바탕으로 한국 신앙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됐다. 필사 노트는 하루 한 페이지 분량이며, 우리말 성경 구절과 주요 영어 단어에 대한 뜻풀이도 수록돼 있다. 신유년에 핀 꽃 / 황보윤(프란체스카) / 바오로딸 ‘조선 천주교의 짧은 봄날’을 배경으로 성직자 영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신해년(1791년)부터 신유년(1801년)까지 10년, 이존창(루도비코)과 주문모 신부를 중심으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최여겸(마티아)·이도기(바오로)·강완숙(골룸바)·황사영(알렉시오) 등 각 계층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세 번이나 배교한 이존창의 신앙 여정과 심리 변화, 사제품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조선에서 겪은 여러 박해를 편지 형식으로 전하는 주문모 신부를 만날 수 있다. 꽃 말씀을 만나다 / 신성근 신부 / 기쁜소식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성근(성사전담사제) 신부의 신간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뜰을 떠올리며 지난해 주마다 하나의 들꽃을 기록했다. 모두 직접 보았거나 돌보며 마음을 나누었던 꽃들이다. 꽃말에 따라 이야기를 적었고, 끝에는 꽃말과 어울리는 성경 말씀을 담았다. 낯선 꽃 이름과 달리 앙증맞은 사진들이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냥 살자 / 김홍신(리노) / 작가 김홍신 작가가 21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그냥 살면 되거늘’ ‘겪어보면 안다’ ‘인생 사용 설명서’ ‘왜 사냐고 물으면’ ‘흔들리며 살자’ 등 세상살이의 경험과 지혜가 60여 편의 시에 함축되어 있다. 누구나 고민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제목처럼 ‘그냥 살자’라고 가장 쉽고도 어려운 답을 제시한다. 비유와 압축이라는 시어의 특별함을 택했지만 소박하고 편안한 필치로 수필처럼 읽힌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8.20

성스러우면서 친숙하고, 거룩하면서도 한국적인.... 최봉자 수녀, 50년 영성의 여정최봉자 수녀 80대에 연 첫 개인전 ‘하늘 향한 그리움’ 전시장에서 만난 최봉자 수녀. 최봉자(레지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의 50년 작품 세계가 한자리에 펼쳐졌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개막한 ‘하늘 향한 그리움’ 전.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한 그림, 드로잉과 인터뷰 영상 등이 다채로운 형태와 빛깔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1942년생, 1960년대에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로마 국립미술대학에서 유학한 최 수녀는 1973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에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마음을 열어둔 채 4년여간 여러 수도원을 방문했으나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졸업하기 직전 독일에 있는 지금의 수도회에서 드디어 확고한 성소를 느꼈다. “한 수녀님이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도생활은 이렇게 사는 거다, 특별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귀국할 때는 입회를 결정하고 들어왔죠.”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최 수녀는 작은 체구에 미소 짓는 모습이 꾸준히 작업해 온 성상의 이미지들과 닮아있었다. 제1회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하고, 서울대교구청 성가정상, 가톨릭 의대 성모상 등 국내외 성당의 성상과 십자가, 십자가의 길 14처 등을 작업해 왔지만, 개인적인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고 개인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전’이라는 말에 최 수녀는 바로 난색을 표했다. “윤학(미카엘, 흰물결아트센터 대표) 변호사님이 예수님 그림 한 점을 보시고 전시회를 하자는 거예요. 계속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연말에 바자회 하면서 조그맣게 공간을 마련하자고,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웃음) 예수님, 2008(왼쪽에서 첫번째). 예수님, 2025. 50년 전 입국할 때에도 작품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서원하면서 주문이 자꾸 들어왔고, 작가가 아니라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경에 다윗왕이 백성이 몇 명인지 조사하라고 명했는데, 하느님이 크게 벌을 내리셨거든요. 사흘 동안 흑사병이 돌게 했는데, 그때는 그저 인구를 헤아리는 게 왜 안 될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임금의 힘이 세지잖아요. 저도 작품 수를 헤아리고 돈이 들어오는 걸 보게 되면 교만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느님께 작품하는 건 모두 바친다는 생각만 했어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함께하신다는 마음으로, 모두 주님의 은총이라는 마음으로 늘 감사드려요.” 최봉자 수녀 개인전 전경. 잃어버린 양을 찾아, 2025. 십자고상, 2014. 성모상, 2015. 갤러리 3개 층의 전시 공간에는 최 수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26점의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함축적으로 담아낸 ‘뜻 그림’ 700점 가운데 20여 점, 드로잉 등이 펼쳐진다. 50년 작품 세계를 총망라했지만, 대규모 돌조각은 대부분 성당이나 학교, 병원 등에 가야만 감상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품들로 구성된 셈이다. 그러나 성스러우면서 친숙하고, 거룩하면서도 한국적인 작품들에는 특유의 작가 정신이 배어 있다. “모두 성상이니까 기도의 매개체잖아요. 내 작품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데, 신앙생활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특히 성모님이나 성모자상을 많이 작업했는데, 그냥 아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팔을 연결하면 십자가가 돼요. 또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인데, 성모님이라고 하면 하늘에 계신, 나와는 먼 분처럼 느껴지니까 내 안의 어머니로 느낄 수 있도록 한국적인 이미지로 표현했죠. 기도의 매개체가 되도록, 도움이 되려고 작업했던 작품들을 내보이는 거니까 관람객들이 보시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기도할 수 있는 성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최 수녀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작품보다 아름답다. 그 다감한 표정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닮은 미소를 짓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주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토요일은 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536-8641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2.10

속(內) 천불(千佛)나시는 예수님 [월간 꿈CUM] 인생의 길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San Giovanni in Laterano,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 우리말에 “속이 천불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의 본뜻은 “속(內) 안에서 천불(千佛), 아주 많은 부처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토록 많은 부처님이 필요할 정도로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럴 때 우리는 속이 타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속 천불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예수님도 속(內)이 천불(千佛)난다고 하십니다. 왠지 아십니까? 신자들이 주일미사 밥 먹듯이 빠지고, 기도는 하루에 10분도 하지 않고, 성당에서는 걸핏하면 패를 갈라 싸우고, 만나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보시면, 더 나아가 신자들이 세속의 향락과 쾌락에 빠져 허덕이는 모습을 보시면 정말이지 예수님 속이 천불나지 않겠습니까? 아니 천불(千佛)이 아니라 만불(萬佛)도 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 언뜻 들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이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실 당시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는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선포되어 왔었고, 그래서 메시아는 바로 ‘평화의 사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평화의 왕’이며, 그분의 탄생은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당신 자신을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방화자로, 나아가 세상에 분열을 일으키러 온 전쟁 방조자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시는 불은, 미움 가득한 세상을 태워버리는 분노의 불이 결코 아닙니다. 복수와 증오의 불이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인간에게 고통과 비참함을 겪게 하는 그런 불 또한 아닙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불은 바로 세상을 정화하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이 불은 타락한 인간들의 오만함과 불손함을 불사르고,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드러내는 불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불을 세상에 가져오는 정의로운 불의 전달자이십니다. 예수님의 근본적인 사명은 바로 묵은 이스라엘 백성을 정화하고, 나아가 타락하고 썩어빠진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데 있습니다. 불은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쾌락과 물질로 타락한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정의와 심판의 불이시며, 온갖 유혹에 빠져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남김없이 태우시는 사랑과 정화의 불이십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태우는 이 정화의 불길 앞에서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정의의 불 앞에서,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설 것인가를 분명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족들 간에도, 이웃들 간에도 만남과 충돌의 분기점이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중대한 삶의 분기점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근본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엇갈릴 때, 분열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마지막 척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종류의 가치와 판단의 척도를 가진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우리는, 복음과 일치되지 않는 사상체계나 정치적, 사회적 관습, 그리고 쾌락과 물질적 타락에 빠진 이 세상의 악에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스스로 태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태웠고, 무엇을 태우고 있습니까? 진정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과 정의의 불입니까? 세속적인 쾌락과 욕망의 불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정의의 불로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움과 증오, 탐욕과 교만, 시기와 질투를 모두 태워버립시다! 하나도남김없이 재가 될 때까지 깨끗이 태워버립시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1991년 사제 서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을 지냈다.cpbc2026.08.29

고운 글귀 깃든책으로의 여행추석 연휴 추천 도서길게는 열흘간의 추석 연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니 쉼의 한 자락은 책과 함께하면 어떨까. 특별히 고운 글귀가 깃든 책들로 골라봤다. 시편에 설레다 / 임미숙 수녀 / 바오로딸 독일 본대학교에서 시편으로 구약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임미숙(툿찡 포교 베데닉도수녀회) 수녀가 시편의 주요 본문을 풀이한 책이다. 히브리어로 ‘찬양의 책’이라는 뜻의 ‘시편’은 율법서나 예언서처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형식이 아니라, 사람이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책 또는 사람이 하느님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임 수녀는 “시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신학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시편 1편은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시편 2편은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끝납니다. (중략) 시편 1편은 복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의로운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시편 2편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15쪽) “우리 마음이 헝클어져 한 품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략) 시편 22편의 시인처럼, 우리가 맞닥뜨리는 압도적인 절망의 순간마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역설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빕니다.”(110쪽) 성경 속 동물과 식물 / 허영엽 신부 / 가톨릭출판사 뱀·비둘기·낙타·어린양·말·무화과나무·포도·밀·올리브나무·가시나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앙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성경에 등장하는 동식물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모기·귀뚜라미·하이에나·달팽이·합환채·오이·수박·헤나·박하 등이 등장하는 말씀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까? 서울대교구 허영엽(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가 피조물 하나하나에 깃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한 권의 책에 실었다. 과거 가톨릭평화신문에 3년간 연재한 내용을 엮은 책의 개정판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동식물만 78종으로, 저자는 성지 순례를 거듭하며 축적한 현지 상황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 동식물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상황을 설명하고, 성경에서 어떤 비유와 의미로 등장하는지 소개해 말씀의 이해를 돕는다.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와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와 각종 귀뚜라미다.’(레위 11,22) 이 구절에서 귀뚜라미는 정결한 곤충으로 언급된다. (중략)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교도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시려는 것이었다.”(96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며 원망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민수 11,5) (중략) ‘이집트 멜론’이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카이로 주변 나일강 홍수로 비옥해진 평야 지역에서는 현재 털이 있는 오이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243쪽) 허 신부는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 해와 달, 동물과 식물 등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신 뒤,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고 전한다”며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꽃송이보다 달콤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가끔은 허당이어도 좋다 – 봉달이 신부의 행복 이야기 / 나봉균 신부 / 성바오로 「가끔은 미쳐도 좋다」에 이어 10년 만에 출간된 대전교구 나봉균(천안쌍용동본당 주임) 신부의 두 번째 에세이다. ‘봉달이’는 나 신부의 애착 별명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보이지 않게 품어 주고 위로를 담아내는 모습이 까만 봉다리(봉지)를 닮았다고 붙여졌다. 책에는 별명만큼 소박하고 일상적인, 하지만 꼭 품어야 할 소중한 성찰과 고백, 삶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자학’적이면서도 엉뚱한 유머감각은 책장을 넘기는 윤활유다. “세상 웬만큼 좀 살아봤다고 툭하면 지적질에다가 고집불통이다. 자기가 예수쯤 되는 줄 착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큰 병에 걸림 셈이다. 결코 사제는 예수가 아니다. 사제는 예수를 닮아야 할 평범한 또 하나의 신앙인일 뿐이다.”(24쪽) 나 신부는 “평범한 한 사제의 일상을 엿보면서 독자들이 한 번이라도 웃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 / 샘터 고 장영희(마리아) 교수의 마지막 산문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의 개정판이다. 저자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편지와 사진 등을 실어 유고집의 성격이 강했던 초판을 장 작가의 문장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1부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에는 저자가 생전 각종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 중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드러난 이야기를 모았고, 2부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는 평생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쳤던 영미문학에 대한 글들을 실었다. “10월입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함을 자랑하는 성취와 감사의 달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연이 또 한 번의 치열한 삶을 마감하며 순명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만족과 겸손이 공존하는 달입니다. (중략) 무엇보다 10월은 아쉬움의 달입니다. 올해만은 꼭 잘 살아봐야지, 굳게 마음먹었던 계획은 하루하루 버거운 살림살이에 이미 잊었는데, 인생 기차는 어느덧 또 하나의 정거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233쪽) 편의점에서 잠깐 / 정호승 / 창비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이 3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50여 년 시를 길러낸 시인의 15번째 신작 시집으로, 125편의 사유가 실려 있다. 제목 ‘편의점에서 잠깐’처럼 낙엽·연필·순댓국·담배꽁초·현관문·점심·기도·숟가락 등 일상의 낯익은 모습을 매개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생에 깃든 진실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더 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으나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며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이 시집이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