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 광암학원 신임 교장 및 교사 임명장 수여 이용훈 주교와 신임 광학학원 교장과 교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학교법인 광암학원 이사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는 2월 20일 수원교구청에서 안법고등학교와 효명고등학교 교장 등 신임 교장과 교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신임 안법고등학교 교장 박현창 신부와 효명고등학교 교장 이석재 신부, 소화초등학교 교사 이송이씨, 효명고등학교 교사 이승경씨, 안법고등학교 교사 조현봉·이태림씨다. 이들은 3월 1일 부임한다. 이날 행사는 신임 교장 파견 예식 및 임명장 수여, 신임 교원 선서 및 임명장 수여’ 순으로 이뤄졌다. 신임 교장들은 사도신경으로 시작하는 ‘신앙 선서’를 통해 ‘믿을 교리로 가르치는 모든 진리를 굳게 믿고, 모든 교리를 받아들이며, 교황과 주교단에 순종하겠다’고 선서했다. 또 ‘교회의 이름으로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며, 교회의 규율과 교회법전의 준수를 약속한다’고 서약한 후 성경에 손을 얹고 서명했다. 신임 교사들은 ‘광암학원 교사로서 가톨릭 교육헌장을 준수하고 건학 이념을 구현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동료 교직원과 학생들의 모범이 되겠다’고 선서하고, 서약서에 서명한 후 이사장 주교에게 전달했다. 광암학원 신임 교사들이 이용훈 주교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수원교구 제공) 이용훈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류애를 본받아 사회와 국가, 세계 복음화에 기여하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교 이념을 잘 숙지해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며 “이사야 예언자와 같이 어떤 처지와 조건에서도 하느님이 원하는 때와 장소에 순명해 파견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돼야 한다. 행복하고 활기찬 학교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5.02.24

라오디케이아,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교회[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1) 라오디케이아 대성당 세례 터 라오디케이아(λαοδικεια) ‘에파프라스.’(επαφρας)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마지막 부분에서 비중 있게 언급한 인물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 의하면 에파프라스는 콜로새 출신으로, 에페소에서 도보로 약 9~10일 정도 걸리는 거리(약 180km)에 있는 라오디케이아의 신앙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콜로 4,12-13 참조) 에파프라스의 노력으로 라오디케이아 공동체는 점점 그 규모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부자였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했다.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7)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함이었을까. 바오로 사도는 라오디케이아에 편지를 쓴다.(콜로 4,16 참조) ‘로마서’ ‘에페소서’ ‘코린토서’처럼 ‘라오디케이아서’도 있을 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바오로 사도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예상컨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과 관련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요한 묵시록이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향해 바로 그 미지근한 신앙을 언급하고 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 바오로 사도와 에파프라스, 요한 사도, 그리고 요한 사도 제자들의 노력으로 라오디케이아는 각성한다. 라오디케이아는 이후 100년대 중반에 성당을 세웠고 주교님(사르기스 주교)까지 모시는 큰 교회로 성장한다. 300년대 중반에는 대형 성당이 건축됐는데, 2010년에 발굴되었다. 규모가 대단하다. 성당 전체 규모만 세로 약 70m 가로 30m에 이른다. 성당에는 세례 경당과 대형 제대, 화려한 모자이크 작품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세례 터가 눈길을 끄는데, 아마도 세례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유적이 아닐까 싶다. 십자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사람 몸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서기 494년 지진으로 성당이 파괴되었을 때도 이 세례 터는 멀쩡했다고 한다. 또 라오디케이아 대성당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경당과 정원을 갖춘 2층 대저택(신자 귀족 개인 가정집, 혹은 고위 성직자 저택으로 추정)까지 발굴되었다. 과거의 화려함과 영화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도시는 무너졌고, 대성당은 기둥과 세례 경당, 모자이크만 파편적으로 남았다. 그 2000년 세월을 담은 폐허가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에 대한 경고’였다. 사르디스 교회 유적 사르디스(σαρδισ) 희랍어에 ‘체력 단련장’을 의미하는 ‘긴나시온’(γυμνασιον)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긴나시온은 단순히 근육만 키우는 헬스클럽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체력 단련장에서 학문도 배우고, 인성도 함양했다.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인간을 길러내는 종합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독일의 중등교육기관 ‘김나지움’ (Gymnasium)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요한 묵시록에 언급되는 초기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사르디스에서 로마 시대 대형 체력장(김나지움, 서기 200년경 설립)이 미국 고고학 팀에 의해 1960년대 후반 발굴됐다.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선 대형 유대교 회당도 발굴됐다. 대형 체력장과 유대교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사르디스가 제법 큰 도시 규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큰 도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파되지 않았을리 없고, 당연히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지금도 사르디스 유적 곳곳에서 대형 십자가 문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르디스 신자들은 어떤 신앙생활을 이어갔을까. 요한 묵시록에는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시에, 그 유명한 흰옷 입은 사람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도는 당시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묵시 3,3-5) 필라델피아 성 요한 대성당 유적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εια) 미국에 있는 필라델피아가 아니다. 알라셰히르(Alasehir)로 불리는 튀르키예의 작은 중소도시. 셰히르가 ‘마을, 도시, 동네’라는 뜻이니까 알라셰히르는 알라의 마을, 즉 신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신의 마을 옛 이름이 필라델피아다.(묵시 3,7-13 참조)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필라델피아의 인상은 ‘열심한 신앙’이다. 필라델피아는 유아세례 받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세례 1년차 신자를 떠올리게 한다. 필라델피아는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늦게 신앙을 받아들였고 교세도 작았지만 다른 어떤 교회보다 신앙에 충실했다. 주위 도시들이 오스만 투르크에 줄줄이 점령당할 때도 필라델피아만은 신앙의 힘으로 똘똘 뭉쳐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유지했다. 그래서일까.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혼나지 않은 교회는 스미르나와 필라델피아 둘 뿐이다. 심지어 필라델피아 교회는 칭찬까지 받는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묵시 3,8) 그 칭찬에 뒤따르는 보상은 크다.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묵시 3,10-11)화관은 승리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승리를 보장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필라델피아에 가면 6세기에 세워진 성 요한 대성당의 거대한 기둥을 만날 수 있다. 기둥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바닥에 뒹굴고 있는 많은 비석을 볼 수 있다.(그리스도교 국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성당 안, 비석의 주인들. 그들은 약속받은 사람들이었다. 화관을 빼앗기지 않고 승리한, 천상행복을 누리고 있을 사람들이었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2025.10.23

아브라함, 문명을 등지다![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2) 1922년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 경(Sir Leonard Woolley)은 이라크 남부에서 호화로운 유물들과 함께 고대도시 우르(Ur, 현재의 지명은 텔 엘 무카이야르)를 발굴해냈다. 이로써 우르가 실존한 도시였으며, 게다가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우르’는 구약성경을 읽은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우르라는 도시는 성경의 「창세기」, 「역대기 상권」, 「느헤미야기」 등에 총 다섯 번 기록되어 있다. 우르는 유대인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이다.(창세 11, 31 ; 느헤 9,7 참조) 또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면서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끌어낸 이다”(창세 15, 7)라고 말한 그 우르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 문명의 중심부, 우르에서 거주하며 그 문명의 혜택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다. 따라서 유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고향 우르의 생활방식(수메르 문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르 사람들은 인류 최초의 문자인 설형문자(cuneiform, 라틴어 cuneus는 ‘쐐기’라는 뜻)를 사용했다. 아브라함도 이 문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르 사람들은 곱셈과 나눗셈은 물론이고, 심지어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숫자 체계와 도량형법은 12진법을 사용했다. 우리는 지금도 이 12진법을 시계에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또 물시계와 태음력을 고안해냈으며, 다리 건설에 필수적인 아치와 볼트도 만들어 사용했다. 수메르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지구라트(ziggurat)가 있다. 높은 땅 위에 계단이 딸린 탑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올린 피라미드형 건축물인데, 지금까지도 그 유적이 남아 있어 웅장함을 자랑한다. 많은 성경학자가 이 지구라트를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이 밖에도 이름과 개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문학 「길가메시 서사시」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인류가 어떻게 갑작스레, 이렇게 폭발적으로 지적 능력을 향상시켰는지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 세상사가 그렇듯 수메르 문명도 1500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차례 북방민족(셈족)의 습격을 받고 다시 일어섰지만, 결국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졌고, 이들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수메르인들의 종교다. 놀라운 사실은 수메르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수메르인들의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신은 당시 수메르인들이 믿었던 신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수메르인들은 농업과 전쟁 등을 위한 현세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영적인 평화’, ‘삶의 위안’, ‘삶의 의미’, ‘영혼의 행복’, ‘최고신과의 합일’ 등과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열정을 동시에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믿었던 신은 인간의 영혼과 대화한 절대신이었으며, 삶의 위안과 영적 평화를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당시 인류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그런 신앙을 아브라함 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바빌로니아에게 무너진 것은 대략 기원전 2000년경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브라함 가족은 우르를 떠난다. 우르 지역에 거주하던 아브라함 가족의 집단 이주는 어쩌면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침공에서 촉발되었는지도 모른다. 부럽다. 기원전 2000년경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당시 인류 최초, 최고의 문명을 접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문명세계에서 살았고, 그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 하나만 믿고, 그 문명을 등진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시인이 화장실과 샤워 시설 없는, 먹을거리조차 변변치 않은 아프리카 미지의 땅으로 가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문명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간다. 유일신이 가라는 곳으로 간다. 글 _ 편집부 cpbc2023.09.18

성령의 은총 속에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끄는 견진[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3) 견진성사 손희송 주교가 견진성사를 집전하면서 학생들 이마에 성유를 바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이 신앙을 견고히 해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성령의 은총을 베푸는 예식이 ‘견진성사’입니다. 세례성사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시킨다면, 견진성사는 성령 강림의 은혜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된 신분을 공적으로 드러내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견진성사의 성경적 근거 견진성사는 주교의 안수와 성유(올리브 기름)를 바르는 예절로 이뤄집니다. 이는 구약시대부터 행해지던 축복 예절 관습에서 유래합니다. 이 안수는 하느님의 약속을 실천하거나 성사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베풀던 것으로, 그 유래는 성경(창세 12,3) 말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사악의 안수로 하느님의 약속을 계승하게 되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안수로 후계자가 됩니다. 성유를 바르는(도유) 행위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도유함으로써 사제로 축성한 데서 시초를 찾고 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 의해 도유돼 왕으로 축성되거나 다윗이 도유돼 성령이 그를 덮게 됩니다.(1사무 16,13) 이처럼 구약에서 견진성사의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세례소, 즉 십자가 성당이나 성당 세례대에서 알몸으로 나온 새 영세자가 흰옷을 입은 다음 성유를 도유받음으로써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① 견진성사의 특별한 은총 견진성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총(恩寵)을 베풀어주는 ‘성령의 성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께서 내려주시는 일곱 가지 은혜, 곧 성령칠은은 지혜(슬기)·통달(깨달음)·의견(깨우침)·용기(굳셈)·지식(앎)·공경(받듦)·경외(두려워함)입니다.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을 더욱 풍부하고 충만하게 맺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친절)·선의(착함)·성실·온유·절제입니다. ② 견진성사는 일반적으로 만 12세가 넘고 교리교육을 충분히 받아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자세를 갖춘 사람이 받게 됩니다. 견진성사 때에도 대부모가 있어야 하는데, 세례성사 때의 대부모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③ 교회는 견진성사를 집전하면서 안수와 함께 향유를 바르는 예식을 거행했고, 이 예식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 성사를 ‘도유성사’ 또는 ‘축성 성유 도유’라 부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89항 참조) ④ 견진성사 집전은 주교 또는 주교의 위임을 받은 사제가 합니다. 주교가 전체 견진자들 위에 두 손을 펴는 안수는 사도 시대부터 ‘성령’을 준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부여를 더 잘 드러내고자 안수에 축성 성유를 바르는 예식을 추가했습니다. 주교는 안수한 후 견진자의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바르면서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라는 말로 견진성사를 수여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00항 참조)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4.12.31

“하느님 말씀 선포 위해 성경 읽고 기도하자” 당부주교회의 성서위원장 신호철 주교, 제39회 성서 주간 담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신호철 주교는 제39회 성서 주간(11월 26일∼12월 2일) 담화를 발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말씀 안에서 기도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신 주교는 ‘생명의 선물로써 희망을 간직하게 하시는 하느님 말씀(로마 5,5; 8,20 참조)을 선포하며’란 주제 담화에서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은 사람을 거룩한 생명과 이어 주는 생명의 통로”라고 강조했다. 신 주교는 지난 4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제10차 ‘가톨릭 성서 연합’ 총회를 언급했다. 신 주교는 총회 참석자들은 이 세상과 인류 공동체가 겪는 취약함을 △생태 위기에서 드러나는 창조 세계의 취약성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드러난 인류 공동체의 취약성 △이기적인 지배와 통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교회의 취약성 등 세 가지를 꼽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취약함을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허무의 지배 아래’(로마 8,20) 있는 상태로 인식했다”고 밝혔다. 신 주교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 온 참석자들은 거룩한 말씀으로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어 나약한 인류의 세계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을 찾게 되었다”면서 “하느님께서는 취약한 세상 안에서 인류와 함께 계시고, 나약함 속에서 ‘탄식’하는 인간의 조건을 성령을 통하여 공유하신다”고 밝혔다. 신 주교는 “이 세상과 인류 공동체의 보편적이고 뿌리 깊은 취약함으로 ‘다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로마 8,22)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탄식’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는 은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 있고 힘이 있어 헛되어 돌아오지 않고 뜻한 바를 반드시 이루어 그 사명을 완수하시는 하느님 말씀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원천이요 성령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신 주교는 “말씀께서 주시는 생명의 선물로써 우리는 허무의 지배 아래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면서 “이 희망 안에서, 우리의 취약함에 대한 ‘탄식’은 새로운 창조의 새벽을 염원하는 희망찬 안도의 ‘한숨’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지혜2023.11.13

남녀의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을 보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0)아가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이다.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사진은 뉴욕의 한 신혼부부가 교회 안에서 혼인성사를 받고 있다. OSV 아가의 히브리어 타낙 성경 명칭은 ‘쉬르 핫쉬림’입니다. 쉬르 핫쉬림은 우리말로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아가를 성문서로 분류해 ‘룻기’와 ‘코헬렛’ 사이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쉬르 핫쉬림을 직역해 ‘Ασμα Ασματων’(아스마 아스마톤)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Canticum Canticorum’(칸티쿰 칸티코룸)으로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아가’(雅歌)라고 부릅니다. ‘지고한 노래’, 곧 최고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성경」은 가톨릭교회의 성경 분류법에 따라 아가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코헬렛과 지혜서 사이에 편집해 놓았습니다. 아가는 8개 장으로 이루어진 ‘사랑 노래 선집’ 곧 연가집(戀歌集)입니다. 아가 표제는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아가 1,1)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가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합니다. 아가에는 ‘티르차’(아가 6,4)라는 고대 도시가 등장할 뿐 아니라,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아가 1,6.7.11.17; 2,9.11.13; 3,2.8; 7,3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아가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최종 편집 시기인 기원전 3세기까지 유다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사랑의 노래를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입니다. 하느님과 율법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오로지 남녀의 관능적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가 구약 성경 정경으로 선정된 것은 표제에 언급된 솔로몬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가의 저술 편집 장소는 팔레스티나 입니다. 아가는 사랑의 배경 장소로 예루살렘(1,5; 2,7; 3,5.10; 5,8.16; 8,4), 시온산(3,11), 다윗 탑(4,4), 엔 게디 포도원(1,14), 사론 평야 (2,1), 길앗 비탈(4,1; 6,5), 티르차(6,4) 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는 약속의 땅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이상적인 사랑의 장소로 제시합니다. 아가는 유다교 축제 때 읽히는 다섯 두루마리 ‘멜길롯’(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 중의 한 권입니다. 아가는 서기 6세기께부터 유다인들의 가장 중요한 축제인 파스카 축제 때에 읽도록 선정됐습니다. 아가가 파스카 축제 때 읽히게 된 이유는 아마도 아가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와 파스카 때 기억하는 하느님 사랑이 유사하며, 아가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파스카 계절인 ‘봄’이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가는 성경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크게 우의(寓意)ㆍ제의(祭儀)ㆍ자의(字義)ㆍ극(劇)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의적 해석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까지 즐겨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해석 방법으로 신랑인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제의적 해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의식의 찬미가로 보는 관점입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남신과 여신의 성혼을 통해 새해의 풍요와 다산을 촉진한다고 믿었습니다. 농경 사회의 축제였던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파스카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재해석됐듯이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이교의 풍요 다산을 비는 제의가 이스라엘 신앙에 적용됐다고 봅니다. 자의적 해석은 말 그대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근래의 해석 관점으로 남녀의 깊은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극적 해석은 아가를 일종의 연애극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아가는 성 그 자체보다는 사랑에 대한 충실성과 성실성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을 솔직 담백한 사랑의 묘사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아가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구체적으로 누가 불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아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으로서 성적이며 동시에 거룩한 것일 수 있다. … 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선한 창조 사업 안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서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 아가는 완전히 탈신성화한 사랑 곧 극히 인간적인 현상으로서 성과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성의 신성화, 또는 신을 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구약 성경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갈구하던 자연의 풍요 역시 인간들이 대행한 신적인 성의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신 주 하느님, 그분 홀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주석 성경」 1850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22

독일·폴란드 국경에서 평화 가꾸는 장크트 마리엔탈 수녀원[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54. 독일 장크트 마리엔탈 시토회 수녀원 장크트 마리엔탈 시토회 수녀원과 포도밭. 독일·폴란드 국경인 나이세강 중상류 좁은 범람원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1234년 설립 이후 전쟁·화재·홍수를 견디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독일 최고(最古)의 시토회 아빠티사좌 대수도원이다. 중세에 나이세강 일대의 큰 영지와 해당 마을의 본당 사제 서임권(Jus patronatus)을 가지고 있는 영적 중심지였다. 현재 국제 영성센터와 만남의 집으로 순례자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국경 없는 유럽’이란 말을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 덕분에 이웃 도시를 가듯 옆 나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에 생긴 말입니다. 유학 시절 알프스 쪽에 갈 때면, 독일보다 20% 저렴했던 오스트리아 주유소에서 기름을 잔뜩 채우고 오곤 했죠. 국경에 파란 유럽연합(EU) 깃발과 표지판 하나뿐이었으니, 어떤 때는 국경을 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국경은 지도 위의 선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EU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수십만 명의 난민·이주민과 안보를 이유로 회원국마다 국경 검문과 임시 통제가 잦아졌습니다. 자유로운 왕래를 꿈꾸던 EU의 정신이 빛 바래져 가는 상황에서도 여러 나라의 학생과 교사·가족·신자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고 평화와 환경을 꿈꾸는 곳이 있습니다. 1234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장크트 마리엔탈 시토회 수녀원입니다. 장크트 마리엔탈 수녀원 안뜰과 삼위일체 기둥 분수. 왼쪽으로 아빠티사의 관저와 수녀원·성당이 있고, 오른쪽에 옛 마차 보관소를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수도원 성물방이 보인다. 성경에 언급된 약 110종의 식물 중 40종 이상을 재배하는 약 1030m² 규모의 수녀원 정원도 딸려 있다. 수녀원 성당 주 제단과 가대석. 1897년 홍수 후 성당 내부를 19세기 초 독일어권에 일어난 낭만주의·그리스도교 미술 운동인 나자렛 화파의 종교화로 새롭게 단장했다. 주 제단과 제대는 2010년 홍수 후 개축하여 2014년 10월에 새롭게 축복했다. 독일 최고(最古) 시토회 아빠티사좌 수녀원 드레스덴에서 동쪽으로 달리면 지형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을 이루는 나이세강이 나타납니다. 장크트 마리엔탈 수녀원은 이 강이 지나는 오스트리츠 남쪽 강 둔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 쪽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폴란드의 작은 역에 내리게 되는데, 여기서 폭 20m 남짓한 나이세강을 걸어서 건너오면 바로 오스트리츠입니다. 유럽 난민·국경 정책의 현실이 드러나는 곳 중 하나지요. 강변 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붉은 지붕 건물 단지인 장크트 마리엔탈 수녀원이 보입니다. 이곳은 독일에서 단 한 번도 공동체가 끊어진 적이 없는 가장 오래된 시토회 아빠티사(abbatissa)좌 대수녀원입니다. ‘아빠티사좌’ 수녀원은 수도회나 교구장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수도원이나 분원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수도원으로 인정받는 대수도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회 수녀원이 아빠티사좌로 승격됐습니다. 나이세강의 수녀원 옛 돌다리(위)와 현재 모습(아래). 건너편 마을이 폴란드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나치 친위대가 수도원을 폭파하려는 걸 수도자들이 막았고, 다리만 폭파되었다. 국경이 생기면서 폴란드 쪽 수녀원 영지도 사라졌다. 보헤미아 왕비가 뿌린 겨자씨 전승에 따르면 수녀원은 1234년 10월 14일 보헤미아 왕 벤첼 1세의 왕비인 쿠니군데가 속죄의 봉헌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이듬해 수녀원은 공식적으로 시토회 보헤미아 관구에 편입되었고, 라우지츠 지역 귀족의 딸들이 입회하고 토지 기부 등 후원이 늘며 크게 성장합니다. 14세기 중반에는 중요한 경제·영적 중심지로 자리 잡지요. 시토회는 중세에 성 베네딕토가 말하는 ‘기도와 노동’의 이상을 더 엄격하게 준수하며 살려는 개혁 수도회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클뤼니 계열의 일부 베네딕도회가 풍요와 특권에 익숙해지면서 전례는 화려해졌지만, 검소한 생활과 노동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에 시토회원들은 외딴 숲과 습지·강변의 황무지를 선택해 스스로 땅을 일구며 기도하며 사는 길을 택했지요. 개간과 수리에 능한 기도 공동체라는 평판이 서자, 교회와 세속 권력은 새로 일군 토지에 세금과 십일조를 깎아주고, 수도자가 직접 경작한 땅에는 십일조를 면제하는 등의 특혜를 주었습니다. 귀족들로서도 변두리 황무지를 시토회에 맡기면 개간으로 새로운 마을이 생겼기에 점점 시토회 쪽으로 토지 봉헌이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장크트 마리엔탈 같은 수녀원도 주변의 직영지뿐 아니라 나이세강을 따라 오늘날 폴란드 땅까지 꽤 넓은 지역의 마을과 십일조 권리를 지닌 큰 수도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장크트 마리엔탈 수녀원 성당. 성모 승천에 봉헌된 후기 고딕 성당 위에 바로크 시대의 지붕과 창이 더해져, 시토회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수녀원 슈츠베르크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를 하며 정상의 십자가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통해 시토회 오름의 영성을 체험하게 할 목적으로 1728년 수녀원 서쪽 언덕에 조성됐다. ‘오름’의 영성이 살아 있는 수도자의 마을 넓은 안뜰에 서면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전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모습은 1683년의 화재 후 1740년대까지 재건한 것입니다. 아빠티사의 관저와 수녀원·사제관·성당·빵집·제분소·양조장·피정의 집 등이 마치 마을을 이루듯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덕 위로는 독일 최동단(最東端)의 작은 포도밭이 보입니다. 수녀원 성당은 밖과 달리 바로크의 화려함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1897년 나이세강의 대홍수로 성당이 크게 손상되어 19세기 교회 미술인 나자렛 화파의 고딕·초기 르네상스풍 회화와 조각으로 다시 채웠기 때문입니다. 제대 뒤 그림 속의 성모님과 성인들이 조용히 제대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데, 높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뒤를 돌아보면 회중석 뒤로 수도자들을 위한 별도의 층이 있습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난간 위에 기도하는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지요. 수도원 서쪽 언덕을 따라 중세 시토회 영성이 사랑하던 ‘오름의 은유’를 품은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14처가 끝나는 곳에서 나이세강과 수녀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수녀원 강 건너편으로 폴란드 마을이 보입니다. 1945년까지 돌다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수녀원의 연대기를 넘겨 보면 ‘홍수’와 ‘화재’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띕니다. 1427년에는 후스파와 십자군의 전투 속에서 완전히 불탔고, 종교개혁기에는 가톨릭 수녀원이면서도 관할 영지에 사제가 아닌 루터교 목사를 임명해야 하는 현실을 견뎌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친위대에 의해 폭파될 뻔했죠. 전후 공산 체제 아래의 국유화 압박도 버텨냈으며, 2010년에는 나이세강의 큰 홍수로 다시 성당과 건물들이 물에 잠기곤 했습니다. 이런 굴곡진 역사를 견뎌낸 수녀원이 오늘 국경과 장벽을 넘어 사람들을 맞이하는 국제 영성센터로 거듭난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뒤에서 조용히 일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자연스레 묵상하게 됩니다. <순례 팁> ※ 드레스덴/노이슈타트역 → 치타우역 → 폴란드 크셰비나 즈고젤레츠카역. 강 건너 도보 이동.(2시간 소요) 수녀원 입구에 주차장(500m) ※ 수녀원 전례: 주일 및 대축일 미사 09:00, 평일 07:15, 매일 다섯 번 시간 기도와 매주 목요일 성체 조배, 수녀원/국제센터 피정의 집 운영.(1인실~가족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cpbc2025.12.10

강우일 주교, ‘첫 사랑 본당’ 난곡동 신자들과 감동의 재회강우일 주교, 난곡동본당 방문 서울대교구 난곡동본당은 설립 50주년과 정기 희년을 맞아 제3대 주임인 강우일 주교를 초청해 환우와 가족들을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난곡동본당 제공 39년 전 젊은 사제로 본당 공동체와 희로애락을 나눴던 주임 신부가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찾아왔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축하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성당을 찾은 환우 27명은 옛 주임 신부에게 안수를 받고 신앙 안에서 깊은 위로를 받았다. 제3대 주임으로 사목했던 강우일(전 제주교구장) 주교는 8일 서울대교구 난곡동본당(주임 이요섭 신부) 신자들과 다시 만났다. 본당이 설립 50주년과 정기 희년의 겹경사를 맞아 환우와 가족들을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한 것. 각 구역 봉사자들이 환우 가정을 직접 방문해 환우들을 성당으로 모셔왔다. 강 주교는 영성체 시간에 환우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안수를 하며 하느님 은총을 청했다. 환우들은 대성전 맨 앞자리에 앉아 미사를 봉헌했다. 안수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도 있었다. 2년 만에 성당에 온 김정숙(마리안나, 89)씨는 “주교님의 안수를 받으니 감격스러웠다”면서 “나도 신앙생활하며 나이 들어 가고 있는데, 오랜만에 뵌 주교님의 나이 드신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글썽였다. 강 주교는 1985년 8월 난곡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이듬해 2월 본당을 떠났다. 1985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면서 약 5개월간의 주임 사제로서 사목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첫 주임 신부로 사목한 본당이었기에 제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주일 미사 5대를 혼자 집전하고 사제관에 돌아가면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신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은총이었습니다.” 강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한겨울 빙판길에 환자 가정을 방문했던 일, 외짝 교우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던 일 등을 회고하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난곡동본당은 저의 첫 사랑이자 고통스러운 이별이었다”고 전했다. 23년째 제주에 머물고 있는 강 주교는 주교품을 받은 뒤 서울대교구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했고, 이후 소공동체 사목에 힘을 쏟았다.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오랫동안 차별과 핍박 속에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삶과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게 됐다. 강 주교는 은퇴 후에도 제주 4·3을 알리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본당 협력사목 사제 김세훈 신부는 환영사에서 강 주교가 성직자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50주년을 맞은 난곡동본당 공동체에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모회장 이영순(데레사)씨는 환영사에서 “가정방문과 전 신자 성지순례 등 단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시던 중 주교로 임명되시어 본당 신자들은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며 “당시 주교님은 아주 핸섬하신 청년 같으셨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본당은 50주년을 맞아 전 신자 성경 필사, 헌혈 및 장기기증 등 생명나눔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50주년 기념미사는 9월 14일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봉헌할 예정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6.10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카라바조와 만난다‘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개막 카라바조 등 '성 토마스의 의심,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1602년. 출처=우피치미술관 카라바조 작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 1602년. 출처=우피치미술관 부활한 예수님 상처 찔러보는 성 토마스 빌라도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예수님 모습 등 성경에 등장하는 장면 사실적 묘사 극적인 명암 대비로 연극 무대 보는 듯 가톨릭 주보 가져가면 관람권 30% 할인 예수님이 빌라도의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모습, 토마스 성인이 부활한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에 검지를 깊게 찔러보는 모습 등 성경에 묘사되거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을 장면을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개막했다. 바로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시작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작품 10점을 포함해 동시대 거장들의 그림 총 57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및 유럽 주요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으로, 모두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 본명인 미켈란젤로 메리시를 제치고 어린 시절 지냈던 카라바조라는 지역명으로 불리는 그는 30대에는 살인 사건에 연루돼 도망자로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38세에 짧은 생을 마감하며 남긴 작품 역시 지금까지 백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화풍과는 달리 역동적인 구도와 극적으로 생생한 표현은 당시 종교개혁에 맞서 쇄신을 시도한 가톨릭교회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구축한 화풍은 이후 바로크 예술의 거장인 루벤스·렘브란트·벨라스케스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액츠매니지먼트 김민희 대표는 “카라바조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로, 그가 구사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는 빛과 어둠을 사용해서 그림을 매우 사실적으로,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카라바조 작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_St. Francis in Meditation’, 1603년. 출처=Aion.art 전시장에는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반출되는 ‘그리스도의 체포’ ‘성 토마스의 의심’ ‘이 뽑는 사람’을 포함해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묵상하는 성 프란치스코’ ‘성 세바스티아노’ ‘성 야누아리우스의 참수’ ‘황홀경의 막달라 마리아’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등 카라바조의 그림 10점이 소개되고 있다. ‘성 토마스의 의심’은 카라바조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으로, 이번 작품의 경우 카라바조가 스케치하고 여러 작가가 채색했다는 것이 우피치미술관의 입장이다. 대부분 ‘테네브리즘(Tenebrism)’으로도 불리는 극적인 명암 대비로 어두운 배경 속에서 강한 조명을 받는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한다. 종교적인 주제를 일상적인 모습으로 치환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밖에 카라바조가 영향을 받은 알레산드로 본비치노(모레토)의 ‘아기 세례자 성 요한과 성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베르나르디노 캄피의 ‘회개하는 성 예로니모’ 등을 비롯해 시모네 페테르차노의 제단화 ‘예수의 성전 봉헌’, 조반니 암브로지오 피지노의 ‘성 카를로 보로메오의 초상’,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의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등 이른바 자연주의·사실주의적 회화 개혁을 통해 17세기 구상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신 라파엘로’라 불리며 같은 시기 카라바조와는 다른 고전주의를 추구한 안니발레 카라치의 ‘아기 성 요한과 함께 있는 성가족’, 조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구에르치노)의 ‘까마귀에게 식량을 받는 엘리야’ 등의 종교화도 감상할 수 있다. 김민희 대표는 “카라바조는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을 받아 그림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며 “성경의 당시 상황이나 인간의 나약함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통해 가톨릭 신자들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이어진다. 가톨릭 주보를 가져가면 3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의 02-909-4752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1.20

새해 주님 은총 충만하세요![월간 꿈 CUM] 삶과 영성 (7)음력 정월 초하루가 다가옵니다.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립니다. 차례를 올리는 것은 조상님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어떠한 재앙도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함으로써 복을 초대하는 제액초복(除厄招福)과 벽사초복(闢邪招福)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복을 내려주시는 분은 조상님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는 것은 조상님의 복을 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예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우리도 후손들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구해 줄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그들의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이르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 말씀으로 진정 복을 내리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모세나 아론이 후손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주님의 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조상님들을 위한 차례와 더불어 후손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청해 얻고자 하는 복은 어떤 복이어야 할까요? 성경에서는 한 해 동안 청해 얻고자 하는 복 중에 진정한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세속적인 가치인 건강과 돈 혹은 명예나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루카 12,36) “깨어있는”(루카 12,37), 그리고 “준비하는”(루카 12,40)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3-15) 야고보서 말씀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계획하고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한 해의 은총을 하느님께 청할 때, 우리의 계획보다는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잠언 16,9)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깨어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cpbc2025.01.20

이주민·난민 향한 ‘환대·화해 문화 증진’ 모색JCAP 8개국 회원, 한국 이주민·난민 실태 파악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개최된 ‘예수회 동아시아태평양지역구 이주민·난민 네트워크 회의’에 참가한 신부와 수녀, 예수회난민서비스 활동가들. 김주찬 신부 제공 예수회 동아시아태평양지역구(JCAP, Jesuit Conference of Asia Pacific) 이주민·난민 네트워크(MRN, Migrants and Refugees’ Network) 회의가 3월 28~31일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개최됐다. JCAP MRN은 8개국·30명 이상의 예수회 신부와 수녀·예수회난민서비스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단체로, 지역구 내 이주민·난민 문제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나가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30여 명의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모여 ‘환대와 화해의 문화 증진하기’라는 주제로 활동가 초빙 강연 및 이주노동자센터 이웃살이 방문을 통해 국내 이주민과 난민의 실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북아시아 화해 계획(North Asia Reconciliation Initiative) 대표 김종호 목사는 미국 이민생활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환대의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나눴다. 김 목사는 성경 속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을 예로 들면서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희생과 안전함을 위협받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함께 더 깊은 관계로 이끌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센터 이웃살이를 방문해 임금체불피해 이주노동자와 쉼터 이용자, 아프가니스탄 출신 특별기여자 및 미얀마 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지역구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이주민 사목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할 방안을 논의했다. 또 DMZ(비무장지대)를 방문해 화해의 의미를 성찰하고, 파주 파티마 평화의 성당에서 남북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동아시아태평양지역구 이주민·난민 네트워크 한국 담당자 김주찬(예수회) 신부는 “이주민과 난민을 사람 또는 이웃이 아니라 노동력 내지는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회적 시선과 국내이주민·난민 정책에 맞서, 더욱 복음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환대의 문화를 증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단지 환대에 그쳐선 안 된다”며 “이주민과 난민들 역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인격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존중받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회의는 참가자들이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환대와 화해의 사명’이라는 구체적인 소명을 확인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그 소명을 힘차게 선포하도록 파견받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2026년 회의는 동티모르에서 ‘환경 위기와 국내 실향민’을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4.16
![[금주의 성인] 마르첼리노 (4월 26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15/QH21744707953955.jpg)
[금주의 성인] 마르첼리노 (4월 26일)+304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교황 마르첼리노 교황. 굿뉴스 마르첼리노 성인은 296년 성 카이오 교황을 계승하여 사도좌에 올랐습니다. 그는 제29대 교황으로, 재임 기간은 296~304년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의 생애 등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연대 교황표」에 따르면 마르첼리노는 프로젝투스의 아들로 로마인이며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303년 로마에서 시작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받지 않고 선종한 뒤 마르첼루스 신부에 의해 로마의 살라리아 가도에 있는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묻혔습니다. 비문은 마르첼리노의 교황 재임 중 유일하게 기록된 활동이 세베루스라는 부제에게 칼리스투스 카타콤바 내의 특정한 구조를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 정도 후인 5세기 초 마르첼리노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일시적으로 배교했고, 박해자에게 성경을 넘겨주었다는 악의적 주장이 도나투스파 이단 신봉자들에 의해 퍼졌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런 주장이 잘못된 중상모략임을 강력히 피력했습니다.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 역시 마르첼리노를 ‘박해를 극복한 교황’이라 했고, 키프로스의 테오도레트 주교도 그가 박해 중에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르첼리노의 생애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오늘날 많은 학자가 마르첼리노의 배교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배교 주장이 사후 100년 뒤에 나왔고, 411년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서 도나투스주의에 대해 논의할 때에도 관련 언급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6일 목록에서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르첼리노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참수형을 선고받고 클라우디오 성인, 안토니노 성인 등과 함께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헌에서는 당시 박해가 너무 심해 한 달 만에 1만 7000명의 그리스도인이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연대 교황표」는 마르첼리노가 참수형을 당한 후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겁주기 위해 25일 동안 다른 순교자와 함께 전시되었다가 304년 4월 26일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리베리오 교황표」는 10월 25일을 선종일로 기록하고 있고, 순교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방 정교회는 6월 7일 마르첼리노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마르첼리노는 13세기, 4월 26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으나 자료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1969년 전례력 개정 때 삭제되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도 마르첼리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을 더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cpbc2025.04.16

자선 주일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29) 성경에서 자선은 신앙의 구체화이자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람을 대리하는 역할을 한다. 자선은 단순한 재원을 넘어 타인에 대한 친절·관대함·사랑의 행위를 포함한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고 한 성경 말씀처럼 자선은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자 신앙행위다. 요한 세례자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세리들은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군사들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쳤다.(루카 3,11-13 참조) 돌려 이야기하면 당시엔 나누는 행위도 부족했고, 세리들은 세금을 이유 없이 더 걷었으며, 군사들은 강탈·갈취가 일상적이었다는 뜻이다. 자선은 사랑의 행위일 뿐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이며 문명화의 열쇠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야만의 단계를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부자들의 잉여분은 가난한 자의 필요분이다. 잉여분을 소유하는 자는 남의 몫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생물의 본능인 소유욕을 뿌리칠 수 있는 신앙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이다. 자선에 대한 예술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스크루지 영감이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일 것이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하루 만에 초판이 매진됐으며, 현대에서 받아들여지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를 정립하였다. 디킨스가 살던 즈음인 빅토리아 시대에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다. 부유층과 중산층은 재산을 증식하는 데 열중했고, 서민층은 금전적 문제에 시달리면서 명절을 기념하고 가족끼리 모일 기회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디킨스는 행복에 많은 부가 필요하지 않고 나눔을 통한 행위가 축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줬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여러 행위를 정립해줬다. ‘모두가 즐기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든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 문가에 와서 노래를 부르는 캐럴 합창단,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 크리스마스 파티, 크리스마스 트리 모두 이 시대에 정립된 이미지다.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인해 유행하게 된 것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디킨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영국의 아이들이 “이제 크리스마스는 없는 건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당시 찰스 디킨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대변한다. 20년 전 TV 방영을 위해 제작된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서 자선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크리스마스 캐럴(2004) //youtu.be/mgRZERZ_mIk?si=OgZB5PnQT1ZpE2s5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12.11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와 물질주의를 단죄하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1)지혜서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그러면서 지혜서는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부패시키기 때문에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야콥 빌렘스 데 베트 1세,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솔로몬’, 1640년께, 유화, 릴미술관, 프랑스. 지혜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입니다. 지혜서 외에도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집회서, 바룩서, 에스테르기 일부와 다니엘서 일부가 제1경전에 없습니다. 제1경전에 없으나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에 포함된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교 구약 성경은 제1 경전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합니다. 토라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예언서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 등 전기 예언서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12 소예언서 등 후기 예언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토라와 예언서에 속하지 않는 모든 책(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다니엘서,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역대기)을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지혜서는 헬라어 구약성경에서 ‘Σοφια Σαλωμων’(소피아 살로몬)이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라는 뜻이지요. 서기 2세기부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혜서는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Sapientia’(사피엔시아)라고 표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신ㆍ구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고 지혜서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시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은 ‘지혜서’라고 표기하고, 교회 성경 분류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을 지혜서의 저자라고 합니다. 지혜서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 유다교에서 ‘현인’ 그 자체로 여겨졌던 이 임금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서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해 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태어날 때에는 일반인들과 똑같았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1열왕 3장 참조)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헬라어에 능통한 유다교 전통을 지닌 자라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성경학자들은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부터 시작되는 로마 제국 시대 때 알렉산드리아 유다인 공동체에서 지혜서가 저술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지혜서 저자가 유다교와 헬레니즘 문화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도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혜서 저자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 문학에도 정통했습니다.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기원전 282년께)가 통치하던 때부터 이집트 여러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해외 유다인 공동체인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율법과 유다교 전통을 지키면서 헬레니즘 문화에 적응해 사는 이방 민족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지역에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는 헬레니즘 사상에 빠져들지 않고 고유한 유다교 전통과 사상을 지켜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에게 유다교 신앙과 지혜를 전수하려 노력했습니다. 지혜서가 저술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운명’(1─5장), ‘지혜 찬가’(6,1─11,4), ‘이집트 탈출에 관한 숙고’(11,5─19,22)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지혜서 1─5장은 본디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지혜서의 다른 부분 저자가 이 내용을 헬라어로 번역해 합쳤습니다. 이 단원에서 인간의 운명은 의인과 악인으로 대조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순수한 영혼들을 위해 불사불멸을 준비해 놓으셨고, 지혜의 적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2,21─3,12) 그리고 의인들은 하느님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4,7─5,14), 의인들은 영원히 살면서 심판 뒤에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5,15-23) 지혜 찬가는 솔로몬이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임금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혜가 도움을 베푼다고 합니다. 지혜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찬양합니다.(9장 참조) 그리고 지혜는 창조 때부터 이집트 탈출에 이르기까지 창세기가 전하는 모든 일화를 통해 자기가 역사의 주인임을 드러냅니다.(10,1─11,4) 지혜서의 마지막 단원은 탈출기의 재앙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히브리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운명을 비교합니다. 지혜서 저자는 유다교의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더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부패시키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14장)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지혜서는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철학을 단죄합니다. 이처럼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와 콜로새서, 히브리서에 지혜서를 인용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로마 1,20-23; 콜로 1,12.15.17; 히브 1,2-3)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30

그리스도교 윤리·보편성 설파한 호교 교부 유스티노[저는 믿나이다] (41) 성 유스티노 철학자이자 순교자이며 호교 교부인 성 유스티노는 ‘로고스’ 그리스도를 통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그리스도교의 윤리성 및 보편성을 드러냈다. 크레타의 테오파네스, ‘성 유스티노’, 이콘. 사도 교부 시대가 끝나고 2세기 중반부터 ‘호교 교부들’(Patres Apologetae)이 등장합니다. 당시 복음 선포와 선교를 통해 로마 제국 여러 지역으로 확산한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계층의 견제 대상이 되고, 박해도 심화됐습니다. 그 시절 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근친상간하고,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호교 교부들은 박해자들 특히 로마 제국 안에 퍼진 그리스도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그리스도인들의 결백을 제시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윤리 도덕적 삶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첫째 임무는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다신교 사회인 로마 제국 안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을 증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근거로 다신교의 우상 숭배를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둘째 임무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체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당시 헬레니즘 철학자를 비롯한 지성인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저술을 통해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 대부분은 철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교부들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투박하지만, 이론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면서 신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제일 잘 아는 철학 지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가 아닌 ‘철학의 그리스도교화’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호교 교부의 대표 인물이 성 유스티노(100?~165년)입니다. 130년께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로고스’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힘인 로고스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안에 세상을 위한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고 육화되신 로고스는 모든 실재와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게 해주는 원리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곧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창조·구원·종말에 이르기까지 전 구세사에 함께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로고스를 우주론적 원리이며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그는 후대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았습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9쪽 참조) 더불어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증명하기 위해 창세기와 예언서 등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알렸다며 그 예형들을 찾아 풀이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르는 신약이야말로 구약의 완성이며, 구약보다 우월하다고 합니다. 유스티노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가르침과 예식의 우월성을 강조해,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제시해 그리스도교를 선대 역사의 계승자이며 앞으로 오게 될 역사를 비추는 종교로 제시합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유다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배웠으며, 그분을 제2위에, 예언하시는 성령을 제3위로 모시면서 합당하게 공경한다는 것을 우리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세상의 창조주 하느님 다음 제2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인간을 놓는다고 거듭 말하면서 우리가 어리석다고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며, 성년에 이르러, 모든 질병과 질환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며, 그분이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갈 것이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려지며, 이 메시지를 전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파견될 것이고, 이방 민족의 사람들이 그를 더 믿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이 예언자들의 책에 미리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 담긴 기도로 축성되고 또한 우리의 피와 살에 자양분이 되어 주는 그 음식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배웠습니다.”(유스티노, 「첫째 호교론」 중에서, 안소근 역) 두 편의 「호교론」과 「트리폰과의 대화」를 저술한 유스티노는 165년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26

가난과 기도의 삶 마치고 아버지 품에 안겨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선종 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주례로 거행된 유수일 주교의 장례미사 중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가 고별식을 진행하고 있다. 가난과 겸손의 삶으로 교회에 헌신 군종교구와 작은형제회 발전 이끌어 주교단·작은형제회 사제·수도자 등 45년간 양떼와 함께했던 목자 배웅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군 복음화에 힘쓰고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가난과 겸손의 삶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한 작은형제회 수도자였던 유수일 주교가 5월 28일 오후 1시 16분 선종했다. 향년 80세. 군종교구와 작은형제회 발전을 이끌었던 유 주교의 장례미사는 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주교단과 작은형제회 사제·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거행됐다.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45년간 하느님 따르는 목자로 양 떼들과 함께했던 유 주교를 추모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유 주교님은 수도자로서 가난을 몸소 사셨고 늘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다”며 “한국 교회 군종교구 설립 이후 앞선 두 교구장 주교님이 기틀을 닦아놓으셨다면 유 주교님께서는 영적인 심화를 이루셨다”고 기렸다. 그러면서 “지상 삶을 복되게 마치고 천상에 드는 것은 현세에서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산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천상에서 부활의 삶을 누리시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194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주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후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1976년 첫 서원, 1979년 종신 서원을 하고 1980년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시편 42,2)를 수품 성구로 사제품을 받은 후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보좌·마산교구 칠암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이어 정동수도원장, 명도원장, 수도자신학원 원장,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과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로마 총평의원 등을 역임하며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 유 주교는 2010년 9월 15일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성당에서 제3대 군종교구장에 착좌한 후 10년 6개월여간 군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유 주교는 방패 밑에 뒤집어 놓은 방탄모를 주교 문장에 넣었다. 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홍수에 대비하고 있는 강한 ‘군종 방주’를 의미했다. 유 주교는 이러한 신념으로 국내외 군 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격려하고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특히 ‘끊임없이 기도하며’(1테살 5,17)라는 사목 표어 아래 군종교구장으로 봉직하는 동안 일관되게 성경 말씀을 중심에 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해왔다. 2014년 콜럼버스기사단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이후 한국 콜럼버스기사단 영성 담당 사제로도 사목했다. 2021년 4월 9일 제4대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났다. 유 주교는 장례미사에서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 주례 고별식 후 천안 성거산 작은형제회 관구 묘지에 안장됐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이상도 선임2025.06.03

매주 재소자 얘기 들어주고 함께 기도해 온 26년 의정부교도소 명예의 전당에 오른 봉사자 장영숙(데레사)씨 의정부교도소 봉사 26년차인 장영숙씨가 교도소에 설치된 명예의 전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간 잠시 내어주는 게 전부 우선순위 교화가 아닙니다 하느님 자녀로서 동반하는 일” “하느님 보시기엔 다 죄인이지 않을까요. 같은 하느님 자녀로 동반하는 거죠.” 지난 5월 초 의정부교도소에 10년 이상 봉사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전당’이 세워졌다. 그 가운데 종교 단체로는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가, 개인으로는 장영숙(데레사)씨가 20년 이상 봉사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로 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지 26년 차인 장씨는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전혀 없다”며 “그저 시간을 잠시 내어준 것뿐”이라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수감자를 위해 26년간 매주 빠짐없이 교도소를 방문한 그의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도소를 향한 것도 “어떠한 보상이나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씨는 “금전적 여유가 있어 실질적으로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시간을 쪼개 함께하는 것”이라며 “하느님 자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먼저 봉사하던 자매를 따라 우연히 교도소에 발을 들인 장씨는 “첫 만남부터 위화감은 전혀 들지 않았고, 훈련소에 교육받으러 온 사람들처럼 느껴졌다”며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주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교도소 여자 접견실 앞에 놓인 성모상 관리도 장씨가 한다. 성모상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주변에 핀 장미를 전지하는 등 교도소 안팎에서 신앙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봉사는 교리반과 레지오 마리애반, 성경 공부반으로 나뉘어 있다. 장씨는 레지오반에서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며 수감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범하고 왔을지라도, 장씨는 죄를 뉘우치는 그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알게 하는 데 충실히 임했다. “‘어떻게 오게 됐느냐’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느냐’ 등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는 게 전부입니다. 편지도 주고받는데, 대부분 지난날의 반성과 가족 걱정입니다. 그렇게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행동도 활발해지더라고요. 출소해서 고맙다고 밥 사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의정부교도소 봉사 26년차인 장영숙씨가 여자 접견실 입구에 설치된 성모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장씨는 수감자와 동반 외에 성모상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장씨는 “봉사라 하면 위로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통해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며 “교도소 봉사를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긴 시간만큼 힘에 부치는 상황도 생겼다. 잘 살라고 작별 인사까지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이곳에서 다시 볼 때 가장 힘이 빠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면서 삭히는 거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해 오갈 곳 없는 상황을 보면 이해도 가지만 속상하죠.” 그럼에도 장씨의 우선순위는 그들을 교화시키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은 하느님 자녀로 그저 동반하는 일이다. “여긴 흉악범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는 거겠죠. 우리는 다를까요?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고 법에 저촉되지 않았을 뿐이지 저마다 죄를 짓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엔 똑같은 죄인일 겁니다. 누군가의 죄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그저 힘닿는 데까지 신앙 안에서 함께할 생각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6.18

구약 성경이 함축된 찬양가이자 탄원가[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7) 시편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어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정의한다. 한 유다교 랍비가 시편을 읽고 있다. osb 제공 시편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서 ‘세페르 테힐림’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우리말로 ‘찬양가들의 책’이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시편을 성문서의 첫 자리에 배치할 만큼 중시합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와 전례 안에서 읊은 찬가가 바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시편을 ‘프살모이’(Ψαλμοι)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현악기(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프살모이를 그대로 옮겨 ‘프살무스’(Psalmu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시편(詩篇)’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시편의 다른 이름으로 ‘성영(聖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시편마다 두 개의 번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시편 번호를 기본으로 헬라어 칠십인역 시편 번호를 괄호 안에 별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시편 9-10편, 114-115편을 9편과 113편으로 하나로 묶고, 116편을 114-115편으로, 147편을 146-147편으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시편 번호 표기가 차이 납니다. 시편은 고대 왕정 시기(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마카베오 시대(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150편으로 수집 편집돼 정착된 찬양가 모음집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이 예루살렘 제2성전 시기에 사용되던 전례 성가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결정체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종교 심성 전반이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을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 지혜, 예언 등 구약 성경을 형성하는 주요 구성 요소들을 녹여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다고 말하며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평가합니다. “시편은 유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억압의 상황과 부조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던 민족 정서의 총체였다. 그 안에는 고통과 기쁨, 불신과 신뢰, 탄원과 찬양, 불안과 평화, 거부와 다가감, 불평과 감사 등 인간 내면의 모순된 감정과 세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정서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24쪽) 시편 저자는 유다인의 전통 안에서 다윗 임금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윗 임금을 시편의 저자라고 간주하는 데는 150편의 시편 가운데 73편에 ‘레 다윗’이라고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 다윗’은 ‘다윗의’라는 뜻뿐 아니라 ‘다윗에게’ ‘다윗을 위한’ ‘다윗에 관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전치사 ‘레’를 번역하지 않고 ‘다윗’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74편에는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시편 137편은 바빌론 유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편 전체의 저자를 다윗 임금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시편 저자를 다윗 임금뿐 아니라 코라의 자손들, 아삼, 솔로몬, 제라 사람 헤만과 에단, 모세, 여두툰, 작가 미상도 있다고 봅니다. 코라의 자손들은 다윗 시대 용사로 활약했고(1역대 12,7),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1역대 9,19) 레위 지파에 속한 이들은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기에 시편의 많은 부분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삽과 제라 사람 헤만, 에탄은 다윗 시대 성가 책임자들이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편과 73─83편의 머리글에 이름이 나옵니다. 헤만은 1역대 2,5과 1열왕 5,11에 등장하는데 솔로몬 때 활동했던 유명한 현자로도 소개됩니다. 여두툰은 역대기와 느헤미야기에 등장합니다.(1역대 9,16; 25,1; 2역대 5,12; 느헤11,17) 그는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로 시편 39편과 62편, 77편 머리글에 나옵니다. 시편 150편을 집대성해 편집한 이들은 유다 히즈키야 임금의 명을 받은 레위인들로 추정됩니다. “히즈키야 임금과 대신들이 레위인들에게 다윗과 아삽 선견자가 지은 노랫말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이르니, 레위인들은 몹시 기뻐하며 찬양하고 무릎 꿇어 경배하였다.”(2역대 29,30) 총 150편의 시편은 모세 오경처럼 다섯 권의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다섯 권의 노래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 권의 책은 서로 구별하기 위해 각 권의 마지막에 ‘아멘’을 표기해 두었습니다. 1권(1─41편)ㆍ4권(90─106편)ㆍ5권(107─150편)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로, 2권(42─72편)ㆍ3권(73편─89편)은 ‘엘로힘’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크게 ‘찬양시’와 ‘탄원시’로 나뉩니다. 찬양시는 첫음절에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합니다. 탄원시는 기도자가 하느님을 부른 다음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 앞에 하소연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