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현 신부 사제의 눈] 다시, cpbc](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3/04/tZ71741079913784.jpg)
[조승현 신부 사제의 눈] 다시, cpbc조승현 베드로 신부(cpbc 주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NYT)의 변화는 기적에 가깝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종이신문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대신, 신문을 넘어선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며 혁신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기존 미디어 문법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 문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라는 핵심 가치를 지키면서도 제품 리뷰, 요리 레시피, 게임과 같은 정보를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독자들이 뉴스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뉴욕타임스를 찾게 만든 전략이다. 뉴욕타임스 구독자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뉴욕타임스 앱을 켜고, 점심에 게임을 하며, 저녁에 레시피를 본다. 뉴욕타임스는 ‘뉴스(정보)’가 아니라 ‘라이프(시간)’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결과는 놀랍다. 미국 전체 뉴스 구독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절대 강자가 되었다. 그럼 우리 가톨릭 미디어도 이런 ‘라이프(시간)’를 제공하는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가톨릭 기도 앱 ‘할로우(Hallow)’의 성공은 우리에게 더욱 구체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할로우를 개발한 알렉스 존스는 가톨릭 신앙을 잃었다가 기도를 통해 다시 신앙으로 돌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의 기술과 영적 전통을 잇기 위해 앱을 만들었다. 알렉스 존스는 ‘할로우’를 통해 종교 콘텐츠가 테크놀로지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강력한 선교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할로우도 뉴욕타임스처럼 ‘라이프(시간)’를 제공한다. 할로우는 신앙은 성당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켜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는 ‘거룩한 습관(라이프)’이라고 말한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주일날 성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교에 있어도 회사에 있어도 가정에 있어도,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과거 TV나 라디오가 하루종일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했던 것처럼, 이제는 똑똑한 가톨릭 앱이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한다. 할로우는 단순히 그날 전례문이나 기도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다. 할로우는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영적 코칭을 제공한다. 할로우가 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묵주기도·관상기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유명한 가톨릭 연예인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주는 목소리 가이드를 한다. 여기에 게임화(gamification) 요소를 도입해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에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기도 챌린지를 한다. 결과는 폭발적이다. 북미 기준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종교 앱 최초다. 미국 미식축구 슈퍼볼 광고도 했다. 지금은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 8개 언어로 150개국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히 가톨릭의 ‘넷플릭스’가 되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이 창립 38주년을 맞았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던 1988년의 설렘은 어느덧 서른여덟 해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 cpbc가 마주한 미디어 지형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다. 종이 매체의 위기와 디지털 플랫폼의 범람, 그리고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cpbc와 같은 종교 미디어에도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준엄한 명령을 내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할로우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cpbc도 혁신해야 한다. 기술은 도구로 삼고, 사랑은 본질로 품으며, 혁신은 우리의 일상이 돼야 한다.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은 3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cpbc가 걸어가는 혁신의 길 끝에서 주님의 평화가 우리 cpbc를 통해 온 세상에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cpbc2026.05.13

성경 입문 (2) 신약성경 개요[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02) Q. 신약성경에는 몇 권의 책이 있습니까? A. 신약성경에는 27권의 책을 포함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① 복음서 :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서 ② 사도행전 ③ 13개의 바오로 서간들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 코 린 토 1·2 서 )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갈라티아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페소 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서),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테살로니카 1·2 서) ,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티모테오 1·2 서) , 티토에게 보낸 서간(티토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필레몬서). ④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히브리서) ⑤ 7개의 가톨릭 서간들 : 야고보 서간(야고보서),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베드로 1·2 서) ,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요한 1·2·3 서) , 유다 서간(유다서). ⑥ 요한 묵시록 Q. 지금의 신약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정경으로 확정되었습니까? A. 지금의 27권으로 된 신약성경이 1세기 말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책을 정경에 포함시킬지 고민하였습니다. 처음 정경 범위를 규정한 사람은 영지주의 이단(異端) 마르키온(Marcion, ?~160년경)으로서, 그는 그리스도교 성경에 루카 복음과 바오로의 열 서간-히브리서, 1·2베드, 3요한, 야고보서 제외-만을 포함시키고, 그 밖의 다른 사도 시대 작품과 구약성경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최초의 신약 정경 목록은 18세기에 이 문서를 발견한 이탈리아 학자 무라토리(L.A. Muratori)의 이름을 딴 ‘무라토리 정경’(Canon Muratori)입니다. 라틴어로 기록된 이 목록의 필사본이 단편으로 남아있으며 200년경 로마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목록은 현 신약 성경 27권 중 22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1·2서 요한3서 제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27권 정경을 주창한 그리스도인의 저서 가운데 최초 문서는 367년 알렉산드리아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의 제39차 부활축일 서간에 정경 목록이 담겨있습니다. 이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최초로 27권 신약성경을 공식적으로 승인, 선포하였습니다. Q. 성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경은 무엇입니까? A. 신약성경을 포함한 모든 성경 가운데서 4복음서가 가장 뛰어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4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 사람이 되신 말씀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18항) Q. 복음서란 어떤 책입니까? A. 복음서는 신약성경의 첫 번째 부분으로 4권의 책으로구성되어 있으며, 상세하게 묘사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4권의 복음서들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책들입니다. Q. 복음서들은 어떤 형성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책이 되었습니까? A.복음서의 형성과정은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째, 하느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한 나자렛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케리그마’, 곧 짧은 형태의 설교로 전하기 시작하고, 이와 동시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모아 전례와 교리교육과 호교론과 선교에 이용하였습니다. 이 둘째 단계에서 교회가 모은 전승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구두 전승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전승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복음서 저자들이 초대 교회가 간직해온 다양한 예수님 관련 전승들을 입수해서 저마다 그분의 가르침을 자기네 공동체의 상황에 적용할 목적으로 고유한 복음을 썼습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2.05

기도생활 어떻게 하면 잘할까성경·교부 전통 따라 기도 방식·장소·시간 등 안내 수행 / 가브리엘 붕게 신부 / 분도출판사 “거룩한 교부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주일의 의무를 어느 정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동안 날마다 수차례 기도드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식사와 수면, 숨쉬기 등 삶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규칙적으로 수행하듯이 자신의 신앙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영적 활동’은 오직 끊임없는 실천(수행)을 통해서만, 방금 언급한 기능들처럼, 자명하게 보이는 자연스러움에 이를 수 있다.”(84쪽) 신앙인에게 ‘기도’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베네딕도나 이냐시오 성인이 가르쳐 준 기도 방법을 비롯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무수히 많다. 그러나 성경과 교부 전통에 충실하면서 개인이 기도드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은 흔치 않다. 「수행 : 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 생활」은 성경과 교부 전통에 따라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 및 기도하는 방식과 자세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질그릇 : 거룩한 교부들의 전통에 따른 개인 기도의 실천」으로, 저자는 교부들과 사막의 사부들이 기도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방식으로 생활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상에서 개개인이 기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보고서는 아무도 새 포도주를 원치 않는다’에서는 전통의 중요성, 영성과 영성 생활, 활동과 관상, 시편 기도와 묵상을 소개한다. 둘째 부분 ‘장소와 시간’에서는 개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적합한 장소와 환경 및 기도하는 방향 등을 다루며, 셋째 부분 ‘기도하는 방식’에서는 분노나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수행적 방식의 기도에서 나오는 열매임을 지적하며 여러 유형의 수행적 기도 방식을 설명한다. 마지막 ‘기도하는 자세’에서는 몸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일어서서 드리는 기도, 손을 들어 올려서 드리는 기도, 시선을 하늘로 향해 드리는 기도,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서 드리는 기도 등을 소개한다. 부록으로 실은 ‘실천적 조언’은 기도를 드리기에 올바른 장소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 기도를 드리는 시간, 시편 기도, 기도하는 방법과 자세 등을 요약했다. 저자는 기도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성경과 전승의 근거도 함께 제시한다. “외적인 자세는 내적 태도를 육체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내적 태도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다. 하느님 앞에서 서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경외심도 커진다. 서 있으려고 애쓰지 않고 다른 기도 자세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결코 합당한 열정을 얻지 못할 것이며, 요셉 부스나야가 말한 것처럼 ‘대개 차갑고 얕은’ 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167쪽) 저자 가브리엘 붕게(1940~) 신부는 독일 출신의 러시아 정교회 수도승 사제로, 독일 본에서 철학·역사·신학을 공부했고, 스위스 베른대학교에서 고대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벨기에 셰브토뉴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 입회했고, 1980년 이후 스위스에서 은수자로 지내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수행(실천)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 오는 소중하고 썩지 않는 보물이며,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보화’”라며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기도하며,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올바르게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하정 기자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0.02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란다/ 정신적 가치에 정책 주심 두기를 투명 공정하며 도덕성에 흠 없는 정부가 되길 바라 대한민국은 1988년부터 대통령 취임식을 2월 25일 거행해왔다. 전례력으로 이 시기는 사순시기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나가는 사순시기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은 우연이긴 하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맞아 한국교회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에게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달라",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달라", "교회 가르침을 정책에 반영해달라"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 대통령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과 종교ㆍ신앙적 가치관을 담은 정책을 펴주기를 희망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가톨릭교회 정신적 가치, 정책에 접목해야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경제부흥과 창조경제,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취임사를 분석해보면, 경제부흥을 통한 국민행복 추구가 새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국민이 모두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잘 산다''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32위(2012년)로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은 한 마디로 "종교ㆍ신앙적 가치를 정책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사람은 물질적 가치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교육, 정신교육 등 정신적 가치에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에 대한 행복을 추구한다"며 "정신적 가치관 즉, 혼(魂)을 담은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 요한 23세가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1963)의 핵심은 진리ㆍ정의ㆍ자유ㆍ사랑"이라며 "이것이 정책에 반영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0-21)는 성경 말씀처럼, 물질적 행복만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울러 새 정부가 투명하고 공정하며, 도덕성에 흠집이 없기를 바랐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도 드러났듯이 도덕적 흠결이 있는 인물은 국민의 일꾼으로 내세우지 말아달라는 당부이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김영미 수녀는 "더 이상 자격 미달인 사람이 나라를 맡아서는 안 되며, 공직자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혜안을 겸비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 최우선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가난한 이웃에 대한 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정권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사회 양극화가 더 극심해졌다. 사회적 약자 계층인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이며,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노인 복지지출 비중이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도 최근 발표됐다. 노인 및 최저 빈곤층율과 자살률 역시 부끄러운 1위다. 가톨릭교회는 재화와 부에 대해 "경제활동과 물질적 진보는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 부는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28~329항)고 말한다. 또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82항)고 강조한다.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양기석 신부는 "대통령이 진정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면, 넉넉해서 지금도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이정준 신부는 "박 대통령이 아파하는 자식을 최우선으로 보듬는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을 대한다면 모든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교회,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교회 내부적으로는 행복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국교회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등을 필두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목소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크다.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를 비롯해 4대강 사업과 밀양 송전탑 건립문제, 용산 철거민 사건과 쌍용차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오긴 했지만,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의 여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톨릭 신자 수가 국민의 10%를 넘어섰고, 사회 각계각층에 신자가 포진해 있지만 복음화율이 낮았던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회의원은 30%가량이 신자이지만,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일부 가톨릭 의원들 부패와 비리, 다툼과 분열 모습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 오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경성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천주교계 학교(성심여고와 서강대)를 졸업한 신자임에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회의 의장과 교구장 주교님들이 기회가 닿는대로 새 정부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조은일2013.03.05

자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관계자 방담나쁜 생각 들때 주위에 도움 청하라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자살로 자살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왜 그토록 허망하게 내던지는지, 또 어떻게 해야 OECD 국가 자살률 1위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에서 자살과 '싸우는' 센터장 김보미 수녀와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 담당자들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업무를 제쳐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자살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태도를 질타하는가 하면, 우리사회의 자살문제 원인을 영적 결핍에서 찾았다. 또 누구나 '자살 고위험군'에 속할 수 있기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들이 자살문제를 놓고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희 사회복지사, 센터장 김보미 수녀, 이인희 상담심리사, 서지영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방담 참가자 : -센터장 김보미 수녀 -류정희(에밀리아나) 사회복지사 -서지영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이인희(막시마) 상담심리사 ▶자살예방센터 종사자로서 조성민씨 자살소식을 접했을 때 심정은. -김보미 수녀(이하 김):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매스컴이 조씨 자살사건을 여과 없이 대서특필하는 것이다. 모방자살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인데도, 시시각각 상세하게 보도한다. 화가 날 정도였다. 자살 관련 보도는 사람이 아니라 '자살문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살 원인은 워낙 복잡해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경제적 어려움' '이성 친구와의 이별' '성적 비관' 식으로 단정 짓는다. 그런 보도는 '자살하면 그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하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류정희(이하 류): 공감한다. 자살 수단과 방법이 소설처럼 묘사돼 있는 자극적 기사를 반복해서 내보내면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모방 자살자가 증가하는 소위 '베르테르 효과'는. -서지영(이하 서): 영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언론의 그릇된 보도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ㆍ한국기자협회ㆍ보건복지부가 '언론의 자살 보도 권고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언론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살 보도의 좋은 예는 1994년 그룹 너바나(Nirvana)의 가수 커트 코베인 자살을 다룬 미국 언론들이다. 당시 언론은 그의 자살을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난함으로써 모방자살을 막았다. 반면 자살을 미화한 대표적 보도가 2003년 영화배우 장국영 사례다.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쉽게 접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처럼 나도….'하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류: 유명인 자살은 일반 대중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부와 명예 등 겉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도 자살하는데 그렇지 않은 국민 대부분은 어떤 심정이겠나. ▶우리나라는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8년 연속 자살률 1위인가. -류: 삶의 중심과 철학이 허약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겨내는 힘이 많이 부족하다. -김: 우리나라 국민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것과도 관계가 있다. 필리핀에 선교하는 한 수녀님이 "이곳은 자살률이 높지 않다"고 전해왔다. 수도자로서 영적 풍요로움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자살한 이가 있으면 주변인이 '고위험군'이 된다는데. -서: 외국에서는 자살자 가족과 친구 등을 '주변 생존자'(Suicide Survivor)라 부른다. 예를 들어 학생 1명이 자살하면 부모는 물론, 같은 반 학생들과 담임교사가 고위험군 혹은 주변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이인희(이하 이): 자살자 유가족은 이중고를 겪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한 번, 위로받지 못하는 것에 또 한 번 고통받는다. 주변 사람들조차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일반 유가족과 똑같이 위로해줘야 한다. ▶센터의 상담활동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김: 최근에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이가 1시간 넘게 우리와 통화한 후 마음을 돌렸다. -서: 사회 일각에서 상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자살하려던 이가 상담 한 번 받은 것으로 평생 자살 결심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상담은 큰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촉즉발의 위기 순간에 그 시간을 지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센터는 해바라기 자조모임(가칭)과 같은 자살 유가족 대화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갖기를 기대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는 성경구절로 대신하겠다. 무조건 나눠라. 이야기하라. -서: 자살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자살 생각은 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아픈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는? 2010년 콜센터 운영과 함께 개소한 센터는 생명문화축제ㆍ연구조사사업ㆍ자살예방 네트워크 구축ㆍ상담(전화ㆍ인터넷) 등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벌인다. 특히 연령별 '게이트 키퍼'를 양성해 주변 자살 고위험군 발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11년 (사)한국자살예방협회가 수여하는 생명사랑대상(네트워크 부문)을 수상했다. 상담 문의 : 1599-3079, 누리방(www.3079.or.kr) 조은일2013.01.15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58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이야기](19)-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인의 희망우리는 하느님이 선하시고, 정의로우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신 까닭에 하느님을 희망한다. 오늘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은 무엇을 의미하며, 과연 가능한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영원한 생명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탱해주는 희망이다. 영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생명이다. 우리가 일상 언어로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다운 생명이 아니다. 영원이란 하느님이 존재하는 초월적 세계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도 하루 같아 지나간 어제나 깨어 있는 밤과도 같을 수 있다"(시편 90,4 참조). 성경에 따르면 생명이란 현대 의학 용어와 달리 질적ㆍ양적으로 충만함을 의미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영원한 생명은 삶 이후의 또 하나의 삶이 아니라 삶의 질을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그것은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때부터 마련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 바로 영원한 생명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신앙을 갖는지 모른다. 2005년 한국갤럽에서 신앙인들 의식을 조사한 결과 "왜 성당에 다니는가?"하는 질문에 가톨릭 신자 78%가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을 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 사고방식이 현세중심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추구하는 웰빙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깊에 반영돼 있다. 천당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71.5%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느님 나라야말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다 쉽게 알려줄 수 있다. 구원이라는 포괄적 개념은 시대마다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됐다. 예수님 시대에는 메시아 탄생과 메시아 왕국을 구원 개념의 열쇠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이 모든 희망과 구원을 하느님 나라로 표현한다. 오늘날 천당, 천국으로도 표현되는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구원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으로서 하느님 나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늘 나라는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고, 이 땅에 도래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마르코복음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구원 메시지는 예수님 말씀과 행적 안에서 하나의 실제적 사실이 되고 있다. 공관복음의 구절들을 비교하면, 하느님 나라 도래의 긴급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간절히 기다려 온 미래였지만, 우리에게는 현재 사건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긴박하게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는 이미 지금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루카 4,21)하고 선포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인격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 그분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즉 메시아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그분의 고유한 사명이며, 백성들은 그분을 믿어야 하고 그분을 통해 회개해야 한다. △신비로서 하느님 나라, 비유로 설명되는 하느님 나라 예수님 가르침에서 비유는 매우 특징적이며, 가르침의 기반을 이룬다. 예수님의 비유는 어린 아이조차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단순하다. 공관복음에는 씨뿌리는 사람ㆍ자라나는 씨ㆍ겨자씨ㆍ포도원 소작인ㆍ무화과나무의 교훈ㆍ깨어 있는 종 등 40여 개의 비유가 있다. 이처럼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소중함, 풍성함, 기쁨, 그리고 현재적 측면을 암시적으로 가르쳐준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비유다. 예수님의 비유는 그분 자신이 하느님 나라 자체이심을 알려준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 뜻이 온전히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사명이자 우리 사명인 하느님 나라 예수님 사명으로서의 하느님 나라는, 이어서 제자들 사명이 됐다.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루카 10,9). 하느님 나라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듣는 모든 청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가 됐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4 참조).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사명이었으며, 제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희망이자 사명이 됐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10.18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7481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2)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종교와 과학은 상호 협력 관계환경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 창조론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든 화학제품은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고, 과학기술은 치유 목적이라는 미명으로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과연 누구이고 또 자연은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서 왔는가'와 같이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해 왔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제시하는 인간과 자연의 기원은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성경에 근거해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답변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계몽주의자와 자연과학자는 창조론을 공격했고, 이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단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잦아들고 있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을 연구하는 반면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차이를 교회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신학과 과학을 상호의존적ㆍ협력적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창조론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한다.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이론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화다. 신화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얘기해주고 열거한다. 그렇기에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조건 옳다는 정언적 성격을 띈다. 또 시간이나 논리를 떠나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닌다. 신화에서는 대부분 시초에 혼돈이 등장한다. 이 혼돈으로부터 만물이 분출되고, 창조는 이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는 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인 신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서술된다. 몇 가지 신화를 살펴보자. 바빌론의 신화 「에누마 엘리쉬」는 신이 귀찮은 것을 떠맡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여기서는 인간창조가 매우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페메테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를 '남자를 못살게 하려고 만들어진 존재'로 묘사한다. 신화뿐 아니라 고대 희랍철학 역시 세상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학파 또는 이오니아학파라고 한다. 이들은 신들을 언급하지 않고도 우주를 다스리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규제하는 어떤 비인간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이 어떻게 창조됐는가보다는 사물의 근원에만 관심을 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연보다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리고 인간을 최고의 학문 대상으로 여겼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다. 인간 영혼의 이성적 부분은 세계 조물주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비이성적 부분은 육신을 만든 신들에 의해 창조됐다고 생각했다. 플라톤 사상은 여러 세기 후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새롭게 발전됐다. 플로티누스는 고대 희랍철학과 여러 종교를 혼합해 창조를 하나의 유출로 설명했고, 2~3세기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의 유일성을 고수하면서 모든 사물은 스스로의 창조 행위가 아닌 신의 창조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이 신으로부터 유출돼 흘러나온다고 본 것이다. 그 예로 태양을 들었다. 태양은 절대 고갈되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드러낸다. 또 그는 악을 세계질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악은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어두운 그림자 부분과 같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우주 기원을 빅뱅이론으로, 인간 기원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에 대해 질문하지만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서로 다르다.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신학자 프랑수아 바리용 역시 "물리적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학자 소임이고, 물리학자는 창조주라는 가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번개, 바람, 지진 생물의 진화 등 세상 현상들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과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의미는 물론 그것들의 근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의 신비에 다가가는 길을 찾을 곳은 과학이 아니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과학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과 소임을 갖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며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주의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양자는 각기 타자를 보다 넓은 세계로, 양자가 그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또 생명의 기원과 진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8.23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11) 예언자들의 하느님끊임없이 사랑 고백하는 하느님 예언자들이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점쟁이나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들이다. 예언자(Prophetes)는 하느님 대변인이다. 성경에서 하느님 체험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시대별로 찾아보자. 1) 엘리야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린다.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아합이 역겨운 죄를 거듭 짓는 가운데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등장한다. 엘리야 예언자의 가장 큰 활약은 바알 예언자 450명과 대결이다(1열왕 18장). 이 대결의 승리로 엘리야는 하느님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린다. 바알 예언자의 후원자였던 이제벨 왕비로부터 도망 다니던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어서 우리가 묵상할 것이 많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날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과 불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 지진, 불은 하느님의 부정적ㆍ파괴적 활동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하느님의 창조적ㆍ구원적 활동을 뜻한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하느님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2) 엘리사 밭을 갈고 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는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낸 다음 엘리야를 따른다(1열왕 19,19-21).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어느 청년을 부른다. 한 청년은 아버지 장례 핑계를 댄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 그리고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핑계 대는 청년에게 말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엘리사는 또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아람 임금의 군인들 눈을 멀게 하여 사로잡은 다음 대접해 보내서 다시는 침략하지 않도록 했다(2열왕 6,8-23). 이는 오직 사랑만이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3) 아모스 남쪽 유다 왕국 백성인 아모스는 북쪽 이스라엘로 가서 설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가 이스라엘로 간 것은 일치의 표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민족이 하느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모스의 하느님은 불굴의 사랑과 정열을 지니신 하느님이다. 아모스를 통해, 벌을 내리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베풀기 원하며 회개를 호소하는 하느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4) 호세아 호세아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보여준 예언자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창녀 고메르와 결혼한다. 창녀와 결혼하고 또 그가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호세아는 그런 행동을 통해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 사랑 역시 그런 놀라온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바보 같은 사랑의 대명사다. 호세아의 사랑은 끊임없이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또 끊임없이 용서하는 하느님 사랑을 대변한다. 5) 이사야 엄청난 사건들을 계획하고 주재하는 주인공은 바로 주님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한 예언자가 이사야다. 이사야는 모든 민족에 대한 주권을 지닌 하느님은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유일신 사상을 주창한 것이다. 이사야는 야훼 하느님이 모든 민족은 물론 역사와 창조를 지배하는 분이라고 했다. 또 주님은 과거의 하느님인 동시에 현재의 하느님이며, 또 앞으로 올 모든 세대의 하느님임을 선언했다. 6) 예레미야 모든 민족들 움직임 속에서 주님 손길을 볼 수 있다는 사상은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인에게 바빌론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라고 권고한 것은 야훼가 바빌론에도 현존하고 계심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는 사람들이 야훼를 진심으로 찾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에 의해 하느님이 온 세상에 한 분뿐인 유일신임을 이해하게 된다. 7) 요나 '하느님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느님이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요나는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달아난다. 요나는 물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을 통해 니네베에 도착하고도 하느님께서 니네베 사람들을 향한 재앙을 거둔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요나서의 절정은 시들어버린 아주까리 나무를 놓고 벌어진 하느님과 대화다. 하느님은 요나를 설득하신다. "너는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보기 좋게' 창조한 저 많은 니네베 사람들을 어찌 동정하지 않겠느냐?" 이 말을 들은 요나는 비로소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에게도 자애로운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 사랑을 전하셨다. 또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 대한 당신 사랑을 전하신다. 하느님은 사도를 통해 교회를 세웠고, 사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다. 주님께서는 교회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여전히 자애로우시다. 예언자 요나를 설득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리=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8.16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5326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용서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여호수아가 죽고난 뒤 사무엘이 사울을 임금(왕)으로 세우기까지 판관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기가 판관기다. 이민족과 계속 투쟁하는 시기로, 겉으로 보기엔 전쟁사지만 그 속에는 종교적 갈등이 내재돼 있다. 판관기는 일정한 양식으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진행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다→②하느님께서 이에 분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민족에게 넘기신다→③갖은 고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④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하고 판관을 세워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민족 손에서 구해주신다→⑤하느님께서 세운 판관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평화롭게 다스린다→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악한 짓을 저지른다→이하 반복. 이렇듯 판관이 바뀔 때마다 ①~⑤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판관기를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잘못을 되풀이하는지 답답하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들 잘못을 매번 용서해주신다. 판관기는 언제나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보여준다. 판관기에 나온 판관들을 살펴보자. 1. 판관 오트니엘(판관 3,7-11) ①이스라엘 자손들은 주 저희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겨, 주님 눈을 거스르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진노하시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덟 해 동안 쿠산 리스아타임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시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그가 곧 칼렙의 아우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다. ④주님 영이 오트니엘에게 내리니, 그는 이스라엘 판관이 돼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그의 세력이 쿠산 리스아타임을 억눌렀다. ⑤그리하여 이 땅은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 죽기까지 마흔 해 동안 평온했다. 2. 판관 에훗(판관 3,12-30)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임금 에글론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 ④그날 이렇게 모압은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했다 ⑤그 뒤 이 땅은 여든 해 동안 평온했다. 판관에 따라 서술 내용과 분량에 차이가 나지만 판관기는 대체로 이와 같은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으로는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톨라, 야이르, 입타, 입찬, 엘론손, 압돈, 삼손 등이 있다. 많이 들어 본 익숙한 판관들도 있지만 생소한 판관들도 있다. 판관 드보라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 판관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보라 판관 시대에는 여성 활약이 두드러졌다. 드보라에겐 바락이라는 장군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적장 시스라를 무찌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야엘이라는 여인이었다. 성경은 야엘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다.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 천막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판관 5,24). 판관 기드온은 여루빠알로도 불렸는데 이는 그가 '바알제단을 허물었다'는 뜻이다(판관 6,31-32). 이와 함께 판관기에 나타나지 않은 판관도 있는데 이는 엘리와 사무엘이다. 사무엘기에 등장하는 두 판관은 지금까지 설명했던 판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전 판관들은 적을 무찌르는 공헌을 세운 무사로서의 판관이었지만 엘리와 사무엘은 예언자, 사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와 사무엘은 판관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그들 뒤를 이은 아들들이 모두 잘못을 저질러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우리는 판관기에서 3가지를 묵상할 수 있다. 첫째, 똑같은 죄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 모습과 그럼에도 매번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죄를 지은 형제를 7번 용서해주면 되겠냐는 베드로 질문에 77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8,21-22). 용서하시는 하느님 모습은 판관기에 잘 드러나 있다. 둘째, 사무엘 판관 때 생긴 이스라엘 왕정제다. 사무엘 뒤를 이을 아들들이 사무엘의 모범을 따르지 않자 이스라엘 원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가 새로운 왕을 세울 것을 청한다. 사무엘은 왕정제 폐단을 설명하며 이들을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지시했고 이때부터 이스라엘 판관 시대는 막을 내렸다. 셋째, 남성과 여성처럼 어떤 성(性)에도 속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판관기에 나타나는 이방인들 신은 바알과 바알의 아내 아스다롯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바알신과 달리 배우자가 없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성(性)은 하느님께서 창조한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성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8.02

영지주의 등 이단으로부터 정통 신앙 지켜[저는 믿나이다] (42)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는 영지주의를 비롯한 당대의 많은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사도 계승의 정통성을 지켜가는 데 공헌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이콘. 출처=정교회 온라인 매체 Pemptousia 성 유스티노가 교회 외부의 박해자들을 상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성과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제시해 우상 숭배와 다신교를 논박하면서 교회를 보호하는 데 공헌했다면, 교회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가속시키던 이단에 맞서 교회를 보호한 대표적인 호교 교부가 있습니다. 바로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130/140?~202년께)입니다. 물론 유스티노 역시 「호교론」을 통해 이단을 반박했습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는 당시 교회 내 깊숙이 들어와 있던 영지주의자들을 상대로 성경 정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정통 신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사도와 사도 교부 시대 이단에 관해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2세기 교회 안에서는 영지주의와 마르치온주의, 몬타누스주의 등 여러 이단이 성행했습니다. 간략히 상기하자면, 영지주의는 2~3세기 교회를 뒤흔들던 사상으로 영과 육의 철저한 이원론 위에 세워진 이단입니다. 그들은 죽은 이의 부활은 없으며,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지요. 더불어 십자가 죽음도 부활도 아무 의미 없고, 인간이 구원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획득한 ‘깨달음’ 덕분이라고 했지요.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느님과 주님의 은총, 초월성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에 이르게 했습니다. 또 인간은 악한 본성에 대해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며 방탕하게 살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마르치온주의는 구약의 하느님을 ‘복수의 하느님’, 신약의 그리스도를 ‘선한 하느님’으로 대립시켜 구약의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내용이 있으면 모두 삭제해 루카 복음서 일부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일부만을 신약 성경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해 강생의 신비를 거부하는 왜곡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영지주의와 반대로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강요해 혼인을 거부했으며, 금주(禁酒)를 지키기 위해 성찬례 포도주 사용조차 배제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자신들이 ‘성령의 대변인’이라 주장하며 곧 종말이 오니 페푸자에 새 예루살렘을 세워 천년왕국을 맞기 위해 깨어 준비해야 한다며 잦은 금식과 철저한 금욕, 순교를 강요했습니다. 이밖에 에비온파, 니콜라이파 등 각가지 이단이 성행했습니다. 성 이레네오는 5권으로 구성된 저서 「이단 논박」을 통해 거짓된 영지주의를 비롯한 여러 이단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고, 정통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땅 끝까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교회는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신앙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시편 145,6; 사도 4,24; 14,14) 전능하신 아버지이신 한 분 하느님과, 우리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미리 말씀하신 성령과, 주님의 재림과, 동정녀로부터의 그분의 탄생과, 수난과, 죽은 이들에게서의 부활과, 우리의 사랑하는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으로 승천하심과, 모든 것을 한데 묶어 ‘포괄’하여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하여(에페 1,10) 아버지의 영광 안에 하늘에서부터 그분의 재림과, 그리고 인류의 모든 육체를 부활시켜, 보이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시고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모두 그분을 고백한다는 것과(필리 2,10), 모든 것에 대해 정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것과, 악령들과(에페 6,12)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천사들과 배교자들, 불경한 자들, 불의한 자들, 부정한 자들과 하느님을 모독한 자들은 영원한 불 속으로 보내신다는 것과, 의로운 이들과 공정한 이들과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어떤 이는 참회에 의해 그분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선물로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찬란함으로 둘러싸 주실 것에 대한 신앙이다.”(「이단 논박」 1,10,1-신앙의 규범.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황치헌 신부 역, 181쪽) 이레네오 주교는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을 제외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요한의 서간들과 묵시록, 베드로의 첫째 서간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를 신약 성경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당시는 교회가 아직 신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 네 생물(사람·사자·독수리·황소)을 제시한 이도 바로 이레네오 주교입니다. 이레네오 주교는 무엇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쓰였으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사도들을 계승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더불어 그는 이단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아니기에 근본적으로 진리의 은사를 지닐 수 없다고 반박하며 보편 교회의 정통성을 보호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9.02

‘빨리빨리’ 빨리 없애기![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6)유학에서 하늘이 자연을 순환시키는 활동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단위로 설명을 합니다. 이것을 일 년 단위로 말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로 말할 수 있고, 한 생명의 성장 과정으로 말하면 생겨나고, 자라고, 이루어지고, 거두어짐의 과정입니다. 온전한 생명 활동은 이렇듯 기다려야 하는 다양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는 멈춤도 반드시 포함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4분의 1인 겨울은 활동을 멈추는 비움의 시간이며, 하루 24시간의 4분의 1인 6시간은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생명은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은 활동과 멈춤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닦달하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 생명을 닦달하여 기후위기가 왔다면 인류 사회가 닦달하여 인간 생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원, 형, 이, 정의 순환을 닦달하는 소리가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성질이 급한 한 사내가 국숫집에 들어서자마자 왜 아직 국수를 안 가져오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내가 엉덩이를 들이대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하는 사람이 서둘러 국수를 놓고 말합니다. “빨리 드세요. 그릇을 씻어야 해요.” 빨리 먹으라는 말에 화가 난 사내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길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야.”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보따리를 싸며 말하길 “당신이 죽었다니 재혼을 해야겠습니다.”《雅俗同觀》(아속동관) ‘빨리빨리’는 한국 사회에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힌 일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밀어붙이는 힘은 결국 나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돌아오게 되죠. 사회 전체가 빨리빨리 속에서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만들어 가는 시간과 멈추어 기다리는 시간이 있을 때 온전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닦달하면 결국 자기도 시달리게 됩니다. 기술 산업사회가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소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내놓으라 닦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생명이 아니라 소비 대상, 노동력으로만 취급되게 되었고, 멈춤은 익어가는 과정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공짜’, ‘게으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원하는 결과를 내놓으라 닦달만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 젊은 교사의 비보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선생님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었고, 내가 세금을 내어 돈으로 산 소비 대상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닦달한 이 역시 그 뒤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노동력, 소비상품으로 진열돼 있을 것입니다. 닦달하기 전에 자신의 뒤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빨리빨리 최고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빨리빨리 최고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되는 길임을 우리 사회는 깊은 반성과 함께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에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84,1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천막 안이라도 악인의 집에 있느니 천막 밖 문간이라도 하느님의 집이 낫다고 합니다. 천막 안에 있다는 것은 주인이라는 말과 같고, 집 문간에 있다는 것은 문지기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의 집에서 주인이 되느니 문지기라도 하느님의 집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 집이 주인이 살 수 있는 집인지는 우리가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천 날, 만 날, 영원히 지금 삶이 반복된다면 그 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라면 악인의 집 천 날, 만 날, 영원한 날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다시 만들어 가도록 합시다. ‘빨리빨리’가 싫지만 ‘빨리빨리’를 빨리 없애기를 원합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10.30

‘사제 부재’ 초기 교회, 미사·성사 집전한 지도자들[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10) 가성직제도 1 이승훈과 권일신, 정약용, 이존창, 유항검 등 교회 지도자들은 미사와 성사를 통해 신입 교우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1786년 가을부터 가성직제도를 시행한다. 탁희성 작, ‘가성직제도’, 지본채색, 1988. 1785년 3월 ‘명례방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있은 후 여러 양반 집안에서 가톨릭 신앙에 심취해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초기 조선 교회의 두 기둥이었던 이벽(요한 세례자)과 이승훈(베드로, 당시 29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아버지 이부만에 의해 집에 감금된 이벽은 그해 7월께 전염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이승훈도 사랑방으로 끌려가 아버지 이동욱에게 ‘벽이문’과 ‘벽이시’를 짓고 앞으로 영원히 이단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자신의 신앙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달레 신부는 이때 조선 교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 작은 양 떼의 신앙은 잠시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아주 꺼지지는 않았었다. 천주교인 집단이 그 교우 중의 몇몇이 배교함으로 말미암아 슬픔에 잠겨 있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대부분 신자가 흔히는 재판관과 형리들의 박해보다도 더 참아 받기 어려운 집안 박해 가운데에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 입교자 수는 늘어갔다.”(「한국천주교회사」 상권 321쪽) 피정 통해 하느님과 만난 권일신과 조동섬 한양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 박해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경기도 여주 한감개에 있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당시 43세)이 초기 조선 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마치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성령의 인도로 40일간 광야에서 머무셨던 것처럼 먼저 얼마 동안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조동섬(유스티노, 당시 46세)과 함께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적막한 절에서 예수회 선교사 드 마이야 신부가 쓴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년광익」(聖年廣益)에 적힌 대로 8일간 영신수련 피정을 했다. “그는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성령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고자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성화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 알았었다. 이를 위하여 그는 규칙적인 피정을 할 결심을 하고, 자기의 계획을 더 쉽게 실천하기 위하여 용문산에 있는 어떤 적막한 절로 들어갔다. 친구 중에서는 오직 한 사람 조동섬만이 그를 따라갔다. 절에 도착하여 그들은 피정 동안에는 내내 서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님과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원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에만 전심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 진정한 천주교 정신에 잘 맞는 이러한 실천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하였음이 확실하다.”(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상권 322쪽) 이승훈에게 위임된 미사·성사 집전 권한 이승훈은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히고 아버지의 단속도 점차 옅어지자 즉시 교회 품으로 돌아왔다. 권일신, 최창현(요한, 당시 26세), 홍낙민(루카,당시 34세), 유항검(아우구스티노, 당시 29세),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당시 26세), 정약전(당시 27세)·약용(요한 사도, 당시 23세) 형제가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아들였다. 교회 지도자들인 이들은 1786년 봄 한양 회현방 난동(오늘날 회현동) 정약용의 집에서 신앙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더욱 쉽게 선포하고 새 영세 교우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할 방안을 논의했다. 이승훈은 이 자리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성사를 받아야 하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할 사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북당에서 미사와 성사를 신부가 주례하며 자신도 사제로부터 직접 성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승훈의 말을 들은 교회 지도자들은 가톨릭 교리서 내용을 살펴보고 우선 ‘고해성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 교우가 다른 교우에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으나 서로 맞고해를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들은 1786년 가을에 다시 모였다. 미사와 세례·견진성사 집전을 주제로 논의했다. 아무리 교리서를 뒤져봐도 미사와 세례·견진성사 집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뜻을 같이해 이승훈에게 미사와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일을 위임했다. 자발적인 교회 설립, 불가피했던 가성직제도 이승훈은 경기도의 권일신, 충청도의 이존창, 전라도의 유항검, 한양에 사는 정약전과 홍낙민 등 10명을 신부로 뽑아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 집전 권한을 부여했다. 또 최창현을 비롯한 남녀 10여 명을 ‘부제’ 격인 ‘회장’으로 임명하고 교회 일을 돕도록 했다. 보편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기 조선 교회의 ‘가(假)성직제도’가 이렇게 1786년 가을에 수립됐다. 가성직제도에 대해 차기진(루카, 양업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박사는 이렇게 평한다. “지도층 신자들은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한 어린 교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새로 진리를 찾아 교회로 들어오는 예비 신자들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준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성직 제도를 수립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혹 이것이 잘못은 아닌가’하는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조선의 젊은 학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교회, 선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서적을 통해 진리를 찾은 신앙 선조들 이것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특징이자 한계성이었다.”(「고난의 밀사」 59쪽)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3.03

요한의 첫째 서간 요한의 둘째 서간, 요한의 셋째 서간[월간 꿈 CUM] 신약이 내게 말을 건네다 사도 성 요한,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 출처: 월간 꿈CUM 요한의 첫째 서간 요한 1서의 저자는 누구이며 어떤 성경입니까? 요한 1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서의 저자이기도 한 사도 요한이라는 견해가 전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애제자의(요한 13,23-26) 제자들이 요한 서간집을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 1서의 머리말을 보면 발신인과 수신인, 발신지와 수신지도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첫째 서간은 애제자의 제자인 저자가 요한계 교회 교우들을 가르치고 타이르는 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 1서의 집필 동기는 교회 안에 나타난 예수님이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또한 자기 행동에 죄가 있음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의 적(2,18-19.26; 3,7)을 경고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적들의 유혹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올바로 지도하는 데 있습니다. 요한 1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4 : 서문 ② 1,5-2,29 :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함(참다운 신자 생활의 기준 제시) ③ 3,1-24 : 하느님 자녀의 표지로서의 사랑 ④ 4,1-5,12 : 사랑과 믿음에 대한 훈계 ⑤ 5,13-21 : 결문 요한 1서가 주는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요한 1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神人兩性)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이나 인성 중 하나만 가지셨거나 또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가 아닙니다. 요한 1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인자이셨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이신 성자 하느님으로서 절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느님과 친교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죄를 멀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빛 가운데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요한의 둘째 서간 요한 2서는 어떤 성경이고 집필 동기는 무엇입니까? 요한 1서는 일종의 교서이지만, 요한 2서는 진짜 서간입니다. 요한 2서는 인사(1-3절), 형제애 실천 충고(4-6절), 영지주의 이단사상 경고(7-11절), 맺음 인사(12-13절)로 짜여 있습니다. 발신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단지 원로로 자처합니다. ‘원로’라는 말은 ① 단순히 ‘연장자’를 말할 때 ② 성직자로서의 의미(사도 14,23) ③ ‘사도의 직제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원로가 예수님의 애제자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수신인인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은 특정 개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인 원로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 상당히 떨어진 다른 지역교회와 그 교우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요한 2서의 집필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부인하고 교우들을 도덕적 방종에로 미혹하는 등의 모든 이단 사상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정립하고 하느님의 계명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 2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이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단에 자주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보다는 자신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진보적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보다 교회와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의 셋째 서간 요한 3서는 어떤 성경이며 집필 동기는 무엇입니까? 요한 3서는 어느 원로가 ‘사랑하는 가이오스’에게 보낸 서간의 형태로, 다른 요한의 서간들이 ‘거짓 교사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 반해서 요한 3서는 ‘거짓 교사’가 아닌, 문제 있는 교회 지도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일체의 대가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을 대접하는 교우의 집에 머물면서 식사를 해결했고, 다음 선교지로 갈 수 있는 여비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회선교사로 가장하여 이단 사상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이 생겨나 진심으로 봉사하는 교우들을 현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선교사들을 박대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디오트레페스를 비교하여 제시함으로써 모든 교우들이 가이오스처럼 겸손함으로 선교사들을 마땅히 대접하고 환대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서간을 쓰게 됩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2025.09.16

베드로의 첫째 서간, 베드로의 둘째 서간[월간 꿈 CUM] 신약이 내게 말을 건네다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지하도시. 베드로 1서의 수신인은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등지에 흩어져 나그네 살아가는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이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 베드로 1서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저자는 1장 1절의 인사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로 자신을 밝히며, 5장 1절에서는 자신을 “원로”이며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이를 근거로 해서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1서의 저자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인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1서의 저자라고 하는 것은 편의상일 뿐이고, 사실은 누가 집필하였는지 모릅니다. 다만, 저자는 로마교회의 신자로서 사도 바오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난에 처한 교회들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베드로 1서를 집필하였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베드로 1서의 수신인은 누구입니까? 베드로 1서는 “폰토스와 갈라티아와 카파도키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 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1,1)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져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뜻하지만 이를 근거로 베드로 1서의 수신인들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단지 세상에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살 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1서의 독자는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1,14.18; 2,9.10) 베드로 1서의 집필 장소는 어디이며 집필연대는 언제입니까? 5장 13절에 보면 집필장소가 ‘바빌론’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빌론 하면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유명한 고대도시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활동하였다는 전승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는 「교회사」에서 베드로 1서의 ‘바빌론’을 로마시의 별칭으로 보았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1서는 로마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집필연대는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이라는 명칭이 서기 70년 이후에 사용되었고, 서기 90년 이후에 야기된 주님의 재림 지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서기 70~90년 사이에 집필되었다고 봅니다. 베드로 1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① 1,1-2 : 인사 ② 1.3-12 : 감사기도 ③ 1,13-2,10 : 거룩하게 살라는 권고의 말씀 ④ 2,11-3,12 : 그리스도인들의 생활태도 ⑤ 3,13-4,19 : 고난을 감수하라. ⑥ 5,1-11 :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직분을 다하라. ⑦ 5,12-14 : 끝맺는 인사 베드로의 둘째 서간 베드로 2서는 어떤 성경입니까? 베드로 2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고, 익명의 신자로서 자기가 아는 교회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이를 도와주려고 쓴 성경입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저자가 빌려 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가 그 성경에서 사도의 음성과 증언을 인정했고 그것을 교회의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보존하고 전수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베드로2서는 신약성경 중 제일 나중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베드로 2서의 집필동기는 무엇입니까? 베드로 2서의 저자는 3장 1-4절에서 집필 동기를 밝혔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웃으며 ‘조롱을 일삼는 자들’이 나타나 신자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재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주님의 계명을 다시 기억할 것을 일깨우고자 이 서간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2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2 : 인사 ② 1,3-21 : 훈계 ③ 2,1-22 : 이단자들의 악행과 심판 ④ 3,1-13 : 그리스도 재림 희망의 확증 ⑤ 3,14-18 : 마지막 권고와 찬양 베드로 2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그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삶속에서 실제로 실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② 우리 신앙인들이 종말에 대하여 진정으로 가져야 할 관심은 언제 종말이 올 것인가 하는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실로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아닌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신랑이신 주님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건의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마태 25,1-13 참조)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