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6>“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897_1.1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하느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믿음렘브란트, ‘아브라함의 제사’, 1635, 캔버스 유화,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떠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창세 11,27-32에는 테라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가득 채워진 모습이 아닌 텅 빈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고 되어 있고(창세 11,30),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지만 하란에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창세 11,31).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땅도 없고 후손도 없는 처지입니다. 빈손인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떠나라고,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 12,1-2). 사라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일 바에야, 무슨 희망을 가지고 땅을 찾아 떠납니까? 그런데 하느님은 후손을 먼저 주시고 그 후손에게 땅이 필요하니 다른 땅을 찾아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던 곳을 떠나면 그곳에서 많은 후손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 이후의 역사가 펼쳐지지 않습니다. 창세 12-50장에서 계속되는 성조사의 핵심은 그 약속이고, 약속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곧 길을 떠나 가나안까지 갔지만 약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에 벌어집니다(창세 22장). 약속이 성취되려면 이사악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악이 태어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가르의 아들 이스마엘이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를 바랐었고 그에게라도 희망을 걸려고 했지만 굳이 하느님께서 사라에게서 태어난 아들에게서 그의 후손들이 이어지리라고 다짐하셨었습니다(창세 17장).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외아들을 바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더 큰 문제는 이사악에게 약속이 걸려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입니다. 이사악을 죽이면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사악을 죽이라고 하신다면 당신 스스로 약속을 위험에 처하게 하시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로마 4,21).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믿습니다. 후손의 약속은 꼭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악을 꼭 살려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것은 하느님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면, 아무리 약속을 위협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따릅니다. 어떤 길을 통해서든 하느님께서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야훼 이레’, 주님께서 마련하신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듯이, 야곱도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요셉도 이집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대로 반복되어 온 떠돌이 삶, 그것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였고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그 떠돌이 삶 속에서 성조들은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들도 겪습니다. 나중에는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에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온 형들을 만나게 되고, 이스라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창세 37-50장). 그런데 그 마지막에 이르러,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요셉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50,19-20). 인간들의 손으로 엮어진 사건들 안에서 요셉은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이집트에 내려오게 된 것도, 지금 이스라엘 집안이 같이 내려오게 된 것도 이 백성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집안을 찾아오시어 그들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라고 믿으며 그때에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이 유언은 성경의 중요한 단락들에서 기억됩니다. 탈출 13,19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는 순간 모세는 그 유언을 기억하며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 24,32에서는 영토 정복과 영토 분배가 모두 끝나고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것을 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요셉의 유골을 스켐에 묻었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요셉 이야기는 거기서 비로소 끝나게 됩니다. 빈손으로 약속을 붙잡고 살았던 이들, 그들이 성조들이었고 이스라엘은 이러한 성조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기원과 신앙의 기원을 설명했습니다. 조상들의 믿음에 대해 말하는 히브리서 11장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히브 11,13.16). cpbc2015.01.07
![[생활성가를 만나다] 장환진 요한 사도](//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54_1.0_titleImage_1.jpg)
[생활성가를 만나다] 장환진 요한 사도끼와 재능 넘치는 15년차 전천후 노래꾼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씨가 자신의 앨범을 들어보이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이정훈 기자 “새 앨범은 중ㆍ고등학생들이 직접 작사한 특별한 음반이에요. 함께 만든 음반이라 더욱 뜻깊은 작품이죠. 너무 행복해요.”까만 선글라스에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흩날리는 옷, 게다가 한순간도 미소 짓지 않는 때가 없는 ‘행복지기 요한’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요한 사도)씨가 오랜만에 새 앨범을 들고 나왔다. 앨범명 「행복을 찾는 젊은이의 희망 이야기」. 자신이 진행한 피정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종이에 빼곡히 적어 낸 꿈과 희망을 모아 그가 곡을 입힌 색다른 앨범이다. 청소년들이 썼으니 또래에겐 더욱 와 닿을 곡들이다.“노래를 부른 지 벌써 15년째입니다.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가끔은 지칠 때가 있었는데, 올해 어느 때보다 큰 힘을 얻었어요. 대전 솔뫼성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미사 전 공연에서 저를 향한 수많은 이들의 외침을 들었거든요. 군부대와 여러 성당에서 만났던 청년들이 ‘환진이 형!’하고 부르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자고 다시 다짐한 순간이었죠.”그는 2001년 춘천교구 철원본당 청년들이 꾸린 성가 그룹 ‘꿈(Cum)’으로 PBC창작생활성가제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의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상경한 깡촌 시골뜨기들이 벼락처럼 나타나 상을 탄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2003년부터 10년간 PBC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사랑의 노래 찬미의 노래’를 진행하며 전국의 수많은 청취자를 생활성가의 매력으로 끌어들였다. 특유의 입담, 재치와 함께 즐겁게 성가도 불러주고, 수많은 애청자의 고민까지 들어주니 유머와 성가에 목말랐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함께한 것이다. 그는 밝고 맑은 음성이 담긴 1ㆍ2집 음반 외에도 여러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라디오 진행에, 군부대, 훈련소까지 전국을 다니다 보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저를 알아보는 이들을 만납니다. 오래전 군부대에서 만났던 훈련병을 최근 우연히 지방 공연에서 만났는데, 저 덕분에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다고 고맙다며 글쎄 봉투까지 내미는 거예요. 자기 마음이라며…. 곳곳에 이처럼 숨은 인연들을 만날 때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그의 스케줄은 고정된 것만 11개다. 육군 제6사단 청성본당, 춘천2군단 등 군부대를 비롯해 부산과 인천 등 지역과 장소를 불문하고 ‘장환진’의 이름을 내건 공연과 피정이 이어진다. 전날 저녁 공연을 끝내고 다음 날 아침 스케줄이 이어지는 날이면 잠도 못 자고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다. 5년 전부터는 PBC창작생활성가제 출신 후배들을 불러 모아 결성한 그룹 ‘J-Fam(Jesus Family)’과 함께하고 있다.그는 “음악이 흐르는 전례, 즐겁게 찬양하며 미사 드리기, 형도 오빠도 아닌 친구가 돼주기를 늘 염두에 둔다”면서 “그러려면 성경도 익히고, 진행력도 키우고, 물론 노래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 전천후가 돼야 한다”고 했다.“제겐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일상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예수가 돼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가를 노래하는 저희는 가톨릭 이념으로 사는 선교사입니다. 희망을 노래해 주고, 같이 아파해주러 또 다녀야죠. 저와 주님, 사람들과의 약속이니까요.”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4.10.14

성서주간/ 1790년, 하느님이 우리말을 시작하시다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위쪽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한글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성경직해」, 「성경광익」, 「사사성경」, 한국교회 공식 성경인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공동번역 성서」. 성경 없는 그리스도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성경이 한글이라는 우리말 옷을 입은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성서주간(25일)을 맞아 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를 짚어본다. 변변한 성경 없이도 신앙만큼은 더 없이 철저했던 선조들을 함께 떠올리면 좋겠다. ▨ 「성경직해광익」과 「성경직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처럼 성경 역시 중국을 통해 전해졌다. 다시 말해 초창기 한국교회 한글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신ㆍ구약 성경이 한꺼번에 번역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한글 성경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미미한 분량이었고, 그나마 온전한 성경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우리나라 최초 한글 성경은 1790년대 초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펴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성경직해광익」은 디아즈(예수회)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마이야(예수회) 신부가 1740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취합해서 한글로 옮긴 책이다. 중국에서 한문으로 쓰인 두 책은 주일ㆍ축일의 성경 본문, 본문 주해, 묵상, 실천 덕목 등을 종합적으로 담았다. 한글 신약성경의 효시가 되는 「성경직해광익」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거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다. 수록된 성경 본문은 신약성경 4복음서의 30% 분량이었다. 1890년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성경직해광익」을 「성경직해」로 이름을 바꿔 서울 성서활판소(가톨릭출판사 전신)에서 9권으로 간행했다. 「성경직해」는 1930년대까지 판을 거듭하면서 신자 애독서로 자리 잡았다. ▨ 「사사성경」과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 4복음서의 완전한 번역은 1910년에 이뤄졌다. 손성재 신부와 한기근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복음서를 번역한 것으로, 「사사성경」(四史聖經)이라 불린다. 번역 대본은 당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라틴어(불가타 역본) 성경으로, 한국교회 첫 번째 한글 4복음서다. 한기근 신부는 1911년 사도행전을 우리말로 옮겼고, 조선교구는 1922년 이를 「사사성경」과 합쳐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으로 발간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1935년 신약성경 나머지 부분 번역을 덕원 성분도수도원에 맡겼다. 수도원 소속 슐라이허 신부는 라틴어ㆍ그리스어 성서를 토대로 바오로 서간 14편, 기타 서간 7편, 요한묵시록을 번역한 뒤 이를 묶어 1941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으로 발행했다. 이로써 신약성경 전 권이 완역된 것이다.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과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은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교회(가톨릭) 유일한 신약성경으로 사용됐다. ▨ 구약성경 번역 구약성경 번역은 신약성경에 비해 매우 늦게 진행됐다. 구약성경 번역에 처음 손을 댄 이는 선종완 신부다. 가톨릭대 성서학 교수였던 선 신부는 히브리 성서에서 번역한 구약 낱권 14권을 1958~1963년에 펴냈다. 한국교회 첫 구약성경 번역이다. 이어 최민순 신부가 시의 운율을 살린 「성경의 시편」을 1968년 냈고, 서인석 신부는 「호세아ㆍ미카」(1977년) 등 소예언서 11권을 번역, 출간했다. 구약 전체가 번역된 것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온 1977년의 일이다. ▨ 「공동번역 성서」 196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성서 공동번역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듬해인 1969년 1월 가톨릭ㆍ개신교 성서학자들이 공동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를, 1977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서」(개정판)와 구약은 물론 구약의 외경까지 포함한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하게 됐다. 한국교회가 성경 전서(全書)를 갖기는 「공동번역 성서」가 처음이다. 「공동번역 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추진한 교회일치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지닌다. 공동번역의 가장 큰 장점은 직역보다 의역에 초점을 맞춰 이전의 어떤 한글 성경보다 읽기가 편한 현대문이라는 점이다. 반면 의역에 치중한 까닭에 직역이 필요한 성서 공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번역 성서」는 개신교 측으로부터 외면을 받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했다. ▨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한계를 느낀 가톨릭 측 성서학자들은 1974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지원을 받아 '200주년 신약성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리스어 원전에 충실한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1991년 「200주년 신약성서」 보급판을 낸 데 이어 1998년에는 이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은 개정 보급판을 냈다. 2001년에는 자세한 해제와 주석을 곁들인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를 발간했다. ▨ 「성경」과 「주석 성경」 주교회의는 1988년 성경 본문에 충실한 「성경」을 출간키로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 작업에 들어갔다. 임승필 신부가 주축이 된 번역팀은 1992년 「시편」을 시작으로 1999년 「마카베오 상ㆍ하」까지 구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8권을 출간했다. 또 2001~2002년 신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0권을 간행했다. 2003년 6월 '새번역 성서 합본위원회'를 구성한 주교회의는 윤문과 용어통일 작업 등을 거쳐 2005년 10월 출판 기념회를 갖고 「성경」을 한국교회 공식 성경으로 선포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가톨릭이 신ㆍ구약 성경 73권 전체를 독자적으로 번역하기로는 처음인 성경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번역된 모든 한글 성경 중 본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1년 「성경」 각 권마다 입문과 각주를 붙인 「주석 성경」을 출간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12.11.20
![[성경 속 궁금증] 53.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8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3.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이스라엘은 본래 야곱의 별명이었다. 그림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렘브란트 작, 1656년).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대략 2600번, 신약성경에 80번 정도 언급된다. 성경에서의 사용 횟수를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평범한 이름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싸우다' 혹은 '하느님은 강하다'라는 뜻으로, 계약을 통해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스라엘은 본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사악의 아들인 야곱의 별명이다. 오랜 타향살이를 마친 야곱은 아직도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형 에사오를 만나기 전, 긴장된 마음으로 혼자 밤을 지낸다. 그는 어떤 신비한 존재와 밤새 씨름을 한 끝에 그분, 곧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는다. 그리고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는 말씀과 함께 새 이름을 받는다(창세 32,2-33). 이처럼 이스라엘은 성조 야곱에게서 유래되고,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리신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창세 37,3). 이스라엘은 야곱의 가족을 가리키기도 한다(창세 34,7).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는데, 이들의 이름에 따라 열두 지파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을 전체적으로 부를 때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쓰인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흔한 표현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백성의 이름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 사는 땅을 특별히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1사무 13,19; 마태 2,20 등). 이스라엘은 또 다윗이 세운 왕국의 이름도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야곱의 별명인 동시에 그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 혹은 국가를 가리키기는 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는 북쪽 왕국의 이름이 됐고, 북쪽 왕국이 망한 후에는 남쪽 유다 왕국을 지칭했다. 그 뒤에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레위족 사제들과 구별해 평민들만 이스라엘 백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민족이나 나라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신약성경에 와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인들, 곧 하느님의 새 백성까지 가리키게 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란 말은 선택된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역적 범위를 넘어선 용어로 자리 잡는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동참하는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있다.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갈라 6,16).퇴사자22012.11.06
![[복음 이야기] (20) 종교적 평등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5115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20) 종교적 평등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신앙·율법 통해 지파간 평화·단합 이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5월 중동지역 사목방문 때 이스라엘 랍비들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메노라(촛대)를 선물받고 있다. 【CNS】 성경시대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의 혈맹 공동체였다. 열두 지파의 분할은 야곱이 마지막으로 열두 아들을 축복했을 때에 기원한다. (창세 49,1-28) 야곱은 첫 부인 레아에서 맏아들 르우벤과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을, 라헬에게서 요셉과 벤야민을 낳았다. 또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단과 납탈리를,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가드와 아세르를 낳았다.(창세 35,23-26) 열두 명의 아들을 낳은 야곱은 또 이집트 피난살이 때 요셉이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에게서 낳은 므나쎄와 에프라임(창세 46,20)을 자기 아들로 삼아 상속재산을 받게 했다.(창세 48,5-7)야곱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종살이 처지로 몰락한 후 모세의 인도로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40년간 광야생활 끝에 가나안 땅 팔레스티나 지역을 점령하고 정착해 한 민족을 이루게 된다. 이 시기를 기원전 13세기 말로 추정한다. 민수기에 따르면 가나안 정착과 함께 지파별로 땅을 나눌 때 사제 가문인 레위 지파는 영토 할당에서 빠지고, 요셉의 몫은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으로 분할돼 열두 지파의 땅을 나눴다.(민수 1,5-15. 20-43) 이후 이스라엘은 왕정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지파 체계를 유지했다. 열두 지파의 장로들은 하느님 신앙과 율법을 통해 지파 간의 평화와 단합을 이뤘고, 기원전 12세기 말경 실로에 ‘계약의 궤’가 안치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지파 간의 문제를 조정, 해결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왕정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으로 나뉘었다. 이스라엘은 북부 열개 지파로 왕국을 이뤘으나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점령된 후 완전히 멸망했다. 유다 왕국도 신흥국가인 바빌로니아의 공격으로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멸망했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9년)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전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할 때까지 2000년 넘게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의 혈통과 가문을 중시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윗 가문 출신임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고대 다른 민족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은 확고한 율법으로 민족 공동체를 운영한 사실이다. 성전에 봉사하는 사제들을 제외하고는 세속의 모든 유다인들이 평등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2코린 11,22)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도 바로 모든 유다인은 평등하다는 대원리에 입각한 고백이다. 유다인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성전 앞뜰에서 하느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의 눈에 자기나 헤로데나 평등하게 비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평등 정신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학자들은 이것을 ‘초자연적 계획에 따라 지상의 계급 제도를 전복하려는 혁명적 흐름’이라고 풀이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 어느 성에서 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손을 활짝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신명 15,7-8) “억울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불쌍한 이를 거름에서 들어 올리시는 분. 그를 귀족들과 당신 백성의 귀족들과 한자리에 앉히시기 위함이다.”(시편 113,7-8) 신약 시대에도 이 종교적 평등주의 원리는 유다 사회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에게 “통치자들을 왕자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루카 1,52) 고 노래했다.예수님은 산상 설교(마태 5-7장)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선언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다 사회의 뿌리인 하느님 앞에서의 평등 사상을 갈파하셨다. 예수님은 부유한 자와 권세 있는 자는 실상 불행한 자들이며 가난한 사람은 땅의 상속자요 영원히 축복받을 것이라 가르치고 계신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6.18
![[복음이야기]<12> 오순절- 주님께 감사와 충실함 약속하는 봄의 대축제](//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76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오순절- 주님께 감사와 충실함 약속하는 봄의 대축제3대 순례축제 중 하나 오순절은 초막절ㆍ과월절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3대 순례축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시가 모습. CNS오순절은 초막절ㆍ과월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순례축제다. 유다인 남자는 성인이 되는 13살부터 과월절과 오순절, 초막절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곳(예루살렘)을 방문해 제물을 바쳐야 했다(신명 16,16). 유다인들은 그래서 이 3대 축제를 순례축제라 부른다. 오순절은 히브리말로 '하그 하샤부오트', 그리스말로 '펜테코스테'라 발음하고, 우리말로 '쉰째'를 뜻한다. 유다인 축제일은 예루살렘에서 초승달이 뜨기 시작하는 때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그 날짜가 달라지지만 '오순절'은 성경이 명시한 대로 과월절 첫날인 니산 달(3~4월) 15일부터 시작해 칠주간을 보내고 50일째 되는 날인 시반 달(5~6월) 6일에 하루 동안 축제를 지낸다(레위 23,15).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축제를 '주간절'(신명 16,9-10)이라고도 불렀다. 오순절은 봄의 대축제이다. 오순절은 본래 농경사회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이 첫 보릿단을 수확할 때 지냈던 추수제에서 비롯됐다. 유다인들은 이날 하루 동안 하느님께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한편,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이 축제를 지내야 했다. 유다인들은 이날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께 봉헌했다. 성경에 따르면 이날 유다인들은 새 밀로 빻은 고운 밀가루 '십 분의 이 에파'(약 4.4리터)에 누룩을 넣어 구운 빵 2개와 일 년 된 흠없는 어린 숫양 7마리, 황소 1마리, 숫양 2마리를 번제물로 바쳤다. 번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느님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를 실제로 표현하는 것이자,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 관계를 마음을 다해 실천하려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또 숫염소 1마리를 속죄 제물로, 1년 된 어린 숫양 2마리를 친교 제물로 올렸다(레위 23,15-21). 이 속죄 제물은 유다인에게 그들의 죄를 생각나게 해 주고, 하느님께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청하는 행위다. 아울러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해 수확한 밭에 이삭을 남겨놓았다(레위 23, 22). 오늘날 유다인들은 오순절에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촛불을 밝히고 만찬을 즐긴다. 구약성경 룻기를 읽으며 룻과 보아즈의 사랑 이야기를 나눈다. 또 유다인 회당에서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이라 해서 마음을 정결히 하고 밤을 지새우며 토라나 예언서를 읽으며 묵상을 한다. 신약의 오순절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예수님 부활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성령 강림 사건으로 교회가 탄생했음을 증언하고 있다(사도 2장).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머무시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모든 민족에게 선포할 것을 명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당부하시고 승천하셨다(루카 24장, 사도 1, 3-14 참조). 오순절이 되자 약속한 성령이 내려왔고, 성령으로 가득한 모든 제자는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독실한 유다인들에게 자기 언어로 하느님의 위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라며 오순절 설교를 해 30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사도 2,1-41). 초대교회부터 교부들은 교회 탄생일인 오순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부활절부터 오순절까지를 긴 축제 기간으로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맞춰 재림하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인 오순절을 '하느님 나라'의 상징으로 보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4.01
[출판] 가톨릭 고전 쓰기, 한번 도전해 볼까가톨릭출판사, 고전 시리즈와 함께 '쓰기고전' 노트 출시 십독불여일사(十讀不如一寫). 열 번 읽기보다 한 번 써보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손으로 읽는' 필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인들의 주요 공부법이었다. 한 번 써보는 것이 이해도 잘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필사한다. 주님 말씀을 정성 들여 옮겨 적으며 머리는 물론 마음에도 새기는 것이다. 새해엔 성경 필사와 함께 그리스도교 고전 필사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준주성범」, 「신심 생활 입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단테의 신곡」 등 '꼭 읽어야 할 그리스도교 고전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가 새해를 맞아 '쓰기고전' 노트(5500원, 사진)를 선보였다.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고전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필사해, 수백 년에 걸쳐 이어져 온 고전 속 지혜를 새롭게 맛들이기를 독려한다는 취지다. 가톨릭출판사는 「준주성범」과 함께 '준주성범 쓰기노트'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준주성범을 필사한 정진화(레오, 서울 서원동본당)씨는 "「준주성범」은 이미 읽어본 책인데, 필사를 하니 내가 알고 있던 책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책이 나타났다"면서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읽는 것은 달랐고, 책을 통해 내 삶을 고백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출판사는 「준주성범」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고전 시리즈를 필사할 수 있는 노트를 만들었다. 스프링으로 제본된 '쓰기고전' 노트는 성경 필사노트와 동일한 구성으로 돼 있다. 또 '쓰기고전' 노트 뒤편에는 「준주성범」과 「신심 생활 입문」,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40일간 완필할 수 있는 일람표를 첨부했다. 상ㆍ하권으로 나뉜 「단테의 신곡」은 하루에 한 곡씩 쓰면 100일 만에 완필할 수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2.31
![[성경 속 궁금증] 51. 성경에서 예언자는 어떤 사람들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7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1. 성경에서 예언자는 어떤 사람들인가?하느님 부르심 받아 파견된 이 주님 말씀 직·간접적으로 선포'예언자 예레미아' (미켈란젤로 작, 1510년). 성경에는 예언자가 많이 등장한다. 성경의 예언자는 인간의 길흉을 점치는 역술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언자는 하느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선견자'(1사무 9,9) 또는 '하느님의 사람' 등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의 사람이 말하였다. '나는 어르신과 함께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르신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곳에서는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실 수 없습니다'"(1열왕 13,16). 성경의 예언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 뜻을 담은 메시지를 설명하면서 현실비판적 원칙과 규범을 외친다. 예언자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했다. 구약성경의 예언직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지파나 가문에 의해 세습된 왕이나 사제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예언자들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직업이나 가문 또는 특정 지파를 초월해 개별적으로 하느님 부르심을 받았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했기 때문에(1사무 10,6) 영을 받은 사람(호세 9,7)이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예언직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려하거나 예언자적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예언의 소재로 삼았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또한 예언의 내용은 신학적인 것만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을 하고 보수를 받거나, 진리보다도 보수를 위해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다. 하느님 부름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거짓으로 예언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거짓 환시를 보고 속임수 예언을 하며, 주님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주님의 말이라고 하면서, 그 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에제 13,6). 예언자는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선포했을까?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예언자 입에 직접 담아 주신다.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예레 1,9). 하느님 말씀은 보통 예언자 입을 통해 말로 선포됐지만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선포됐다(에제 4-5장). 때로 하느님 말씀은 예언자의 삶 자체를 통해 선포됐다. 이처럼 하느님은 예언자를 선택해 부르시고,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를 사람들에게로 파견하시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 신약성경에는 초기 교회 예언자들 활동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지 않지만, 신약시대 예언자들 역시 구약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공동체를 훈계하는 직무를 수행했다. 퇴사자22012.10.23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97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 특집 주제로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를 선정 △우리들만의 특별한 여정 △새봄, 가슴 따뜻한 피정을 떠나요! △나를 아시는 하느님을 실었다. 똑똑 교리 해설에서는 '사제들의 정치 참여, 정당한가요?'를 다뤘고, 끄덕이의 전례전례에서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에 관해 알아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 ▨가톨릭 비타꼰 말씀에서는 △민영기 신부의 구약성경 특강 △이창욱 펠릭스의 신약성경 특강 △토미 레인 신부의 주일복음 해설 △최민순 신부의 시편 △아빠의 기도 등을 실었다. 함께하는 여정에서는 카이스트 무신론 동아리 '프리싱커스' 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경향잡지 경향돋보기에서는 '불평등 사회와 복지'를 다루며 △한국사회의 불평등 현상: 원인과 대책 △올바른 복지정책을 위해 시선을 바꿔라를 실었다. 염수정 추기경 탄생과 서울대교구 유경촌ㆍ정순택 주교 탄생 소식을 담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나의 신앙과 삶'에서는 하성래 선생이 1989년부터 10년 동안 진행한 '한일 가톨릭 문화교류 사업'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결실을 담았다. '역사 속의 사진첩'에서는 1964년 8월 20일~9월 3일 열린 한국교회사 사료 전시회를 소개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특집 '일치의 영성을 살아가는 사제들'에서는 로마 사제 솔선자 본부 책임자 토니노 간돌포(이탈리아) 신부와 로마 사제 포콜라리노 본부 책임자 후베르투스 블라우마이저(독일) 신부가 지난해 11월 방한해 한국 사제들과 나눈 이야기를 실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저 여인은 누구실까?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의 영혼 △십자가 등을 게재했다. 선교사례에서는 해체 위기의 쁘레시디움을 증원으로 정상화한 사례를 소개했고, 세상 속 교회읽기에서는 '아가타 빵을 아시나요?'를 실었다.(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 ▨말씀지기 매일의 복음 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아침뜨락에는 김유정(대전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를 썼고, 영성에세이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요셉성인과 함께하는 기도를 게재했다.(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 특별기고로 '염수정 추기경 서임에 거는 한국 교회의 7대 기대'를 실었다. 특집으로 '성당을 꽉 채우는 미사의 은총'을 다루며 △미사의 은총 △미사를 삶으로, 삶을 미사로 △주일 미사 전례 활성화를 위한 원리와 제언 △창조적 발상으로 미사를 풍요롭게 한 사례들 등을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김수환 추기경 선종 5주기를 맞아 '오늘 더욱 그리운 사람 김수환 추기경'을 특집 주제로 △양심의 소리로 시대의 등불이 되다 △인간 김수환을 만나다 △감동의 삶을 추억하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 등을 통해 교회의 큰 어른이었던 고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새로봄에서는 '봉헌, 완전한 사랑'을 주제로 △제 삶의 원천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거룩해지는 길을 실었다. '말씀과 함께 걷는다'에서는 '지혜서'를 살펴봤고,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에서는 '에덴 동산과 제주도'를 다뤘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인기 만화 '혜화동 할아버지' '어진 목자 요한 23세 교황님'을 연재한 서현승 신부를 만나 만화를 그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름다운 성지에서는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소개했고, 부모님과 함께보는 영화로는 '타잔 3D'를 추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독서 치유 프로그램 '행복한 책 읽기'를 진행해 온 김경희(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와 참가자들을 만나 행복한 책 읽기를 통해 변화된 삶을 들어봤다. 성경의 언어를 두드리다에서는 '죄'를 뜻하는 그리스어 '하마르티아'의 어원과 그 뜻을 알아봤다.(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 표지인물로 배우 이윤지(마리아, 서울 목5동본당)씨를 인터뷰하고 배우생활과 신앙생활 모두를 충실히 하는 그의 삶을 소개했다. 설 연휴를 맞아 특집주제로 '그리운 가족'을 다루며 가족에 얽힌 애틋한 사연을 실었다.(미션3000/3500원) 박수정 기자백영민2014.02.04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1.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어떻게 해야 주님 말씀에 맛들일 수 있을까성경읽기 작심삼일 되지 않으려면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성경통독 도전'을 선언하고 창세기부터 펼친 사람치고 이 사자성어에 굴욕(?)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두께에 지치고, 깨알 같은 글씨에 금세 지루함을 느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맛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인옥(체칠리아, 수원가톨릭대 성경연구실) 실장에게 성경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이 실장은 "성경을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읽으라"며 "성경읽기를 목표로 하지 말고, 말씀 안에 머무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경은 재미있다 성경을 딱딱하고 경건한 책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의무감으로 읽으려 하지 말고 재미를 발견해야 한다. 성경을 도덕적 기준, 반성과 성찰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읽을수록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만 늘어난다. 성경을 '재미있는 책'으로 생각하라. 동화책이나 역사책을 읽듯이 읽으면 굉장히 재밌을 것이다. ▶'~낳고'에 지지치 마라 굳이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나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씀부터 먼저 읽는 게 좋다. 창세기부터 읽다보면 "누구는 누구를 낳고"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족보'에 지치는 경우가 많다. 구약에서는 요나서, 잠언, 지혜서, 토빗기가 말씀에 맛들이는 데 좋다. 신약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 사도행전을 초보 통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성경을 이론적 잣대로 분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문을 갖지 말고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즐겁게 읽어라. 인물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다. ▶멈추고 묵상하라 모든 작심삼일에는 공통점이 있다. 흥미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까지 읽고, 얼마만큼 옮겨 적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하면 쉽게 지친다. 필사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다만 '필사를 위한 필사'는 좋지 않다. 필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얼마나 빨리 했는지, 축복장을 받았는지에 집착하면 글씨쓰기 연습밖에 안 된다. 필사를 하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멈추고 묵상을 해보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완독, 완필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씀에 깊이 빠졌느냐는 것이다. 말씀에 머무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매일 읽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된다. ▶말씀 안에 머물러라 통독이 부담스러우면 「매일미사」에 있는 그날의 복음 말씀부터 거르지 말고 읽어보라. 복음을 읽고 묵상한 후 노트에 묵상 내용을 짧게라도 옮겨 적는 게 중요하다. 평생 동안 전권(73권)을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 성경읽기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한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퇴사자22013.01.29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3)살리는 바람 그리고 한숨](//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9922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3)살리는 바람 그리고 한숨생명을 살리는 하느님의 종 '바람' 하느님은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리신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바람, 하느님의 영인 '루아흐'를 시켜 예언자를 들어 올리시고 여기저기 데려가 환영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마치 바람이 엘리베이터나 헬리콥터처럼 사람을 태우고 높이 올라가 여기저기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표상은 에제키엘서에 네 차례나 나온다. "주님의 영(루아흐)이 나를 들어 올리시어, 주님의 집 동쪽 대문으로 데려가셨다"(에제 11,1). "그때에 하느님의 영(루아흐)이 보여주시는 환시 속에서, 그 영이 나를 들어 올리셔서 칼데아에 있는 유배자들에게 데려가셨다"(에제 11,24). 신약성경에도 주님의 성령이 사람을 잡아채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합리주의와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성령이 사람을 잡아채서 하늘로 데려갔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언어와 신화에 익숙했던 사도행전의 저자와 독자에겐 전혀 어렵지 않은 말씀이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프네우마)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사도 8,39). #바람, 살리는 숨결 이어서 주목해야 할 바람의 역할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종인 바람이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람 신의 이런 역할은 고대 근동 신화와 구약성경의 공통점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람'과 '성령'을 분리해 바람 그 자체에 신화적 요소가 더는 들어갈 여지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셈어인 히브리어에 남아 있는 고대 근동 '바람 신'의 흔적을 되도록 지운 것이다. 바람은 성령의 전조일 뿐, 성령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이런 태도는 '바람'을 탈신화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신약성경의 탈신화'는 구약성경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런 면에서 신약은 구약의 전승을 충실히 잇는다고 볼 수 있다. 탈신화의 궁극적 목적은 성부 하느님에게서 불어오는 성령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은 성령이 몸을 살릴 뿐 아니라 우리 죄를 씻어주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성령이 죄를 씻어주시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모티프의 근원은, 루아흐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구약성경의 전승이다. 이후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고대 이스라엘이 속한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바람 신의 특징은 구약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루아흐를 탈신화했다. 한편 그리스어로는 루아흐를 숨, 영, 바람 등으로 다양하게 옮길 수 있다. 그리스어의 이런 언어적 특성을 사용해 「칠십인역」(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 중 가장 오래된 번역본)은 루아흐를 다양하게 옮겨 탈신화를 심화했고, 신약성경은 바람과 성령을 구분해 이런 탈신화를 가속했다. 이런 전체적 전승을 기반으로 후대에 성령론이 발전할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헛것 다신교 세계였던 고대 근동은 큰 신과 작은 신이 여럿 섞여 있다. 수천, 수만의 신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닌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하느님은 유일신이시므로 그 반대말은 다신(多神)이라 불러야 할까? 혹시 이런 '다신'들 전체를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 있을까? 혹자는 '우상'이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아닌 모든 신을 일컫는 독특한 낱말이 있다. 바로 '헛것'이다. 다윗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다른 민족이 믿는 가짜 신들을 모두 '헛것'이라 불렀다. 민족들의 신들은 모두 헛것이어도 주님께서는 하늘을 만드셨네'(1역대 16,26). 우리말 '헛것'은 '빈 것'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헛것'은 거짓된 신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헛것'으로 옮긴 말이 구약성경 원문에서는 무슨 말일까. 히브리어 성경에서 히브리어 '헤벨'은 '한숨'이란 뜻이다. 특이하게도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의 문헌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종교심을 표현하는 낱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을 성찰하게끔 한다. 이 낱말은 인간의 숨결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대개 헛된 신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하느님 백성이 믿으면 안 되는 '헛것' 또는 '한숨'은 신이 아니다. 하느님 백성이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만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