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우수상오늘도 나는 행복을 선택합니다<3> 병원에서 절망적인 말만 들었던 저는 마음이 조급해져 한시라도 빨리 남편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마음만 앞섰던 저는 남편과 아이에게 성경 공부하기를 강요하며 남편의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를 참견하고 있었습니다. 휴가를 나온 아이에게도 저의 하느님 체험을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저에게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의 병이 치유된 것은 감사하나 사람들이 아프면 왜 종교에 빠져드는지 알아요?" 엄마가 병이 치유돼 기쁘지만 신앙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깨달아야 진정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십여 년 동안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며 하느님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자 결심한 후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절대로 원망하지 않기, 판단하지 않기, 칭찬해 주기, 부정적 생각 하지 않기,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 인정하기, 하루를 시작할 땐 반드시 행복을 선택하기 등. 그리고 실천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줬습니다. 그렇게 하니 먼저 저의 자존감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며 마음 뿌듯해지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그렇게 지내기를 한 달여, 예전과 다른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힘들게만 느껴졌던 남편의 병간호도 남편으로 인해 제가 사람이 되어가니 그저 감사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남편 건강이 조금 나아지면 주일에는 본당 미사에 참석하고 평일에는 성지를 다녀 왔습니다. 그러던 중, 미리내성지 전례 봉사하시는 자매님 권유로 매주 월요일엔 미리내성지로 미사를 가게 됐습니다. 미사 중 독서를 봉독하게 됐는데 그때 그 말씀이 저를 재창조했습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이사 65,17-18). 당신은 제 육신을 창조하심에 육신의 병을 치유시켜 주시더니 새로운 창조로(즐거움과 기쁨으로) 마음의 병까지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남편의 변화를 바라며 마음 졸이는 시간들을 안타깝게 여기셨던 하느님께서는 저를 새로이 창조하시어 새 사람을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저보다 더 간절했을 남편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부디 남편도 하느님 체험을 통해 긍정적 생각으로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나날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제가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소서. 남편과 아이를 당신께 맡깁니다. 저는 그저 보호자일 뿐이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7월에 군대에 간 아이도 아픈 엄마 아빠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느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훈련하는 도중에 "하느님 저에게 그늘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어느새 구름이 해를 가려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시원한 바람을 원하면 산들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더라고 하느님 현존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하느님을 50년 동안 모르고 살아왔는데 '스무살에 하느님을 체험한 아이는 30년을 먼저 행복을 선택할 줄 알게 됐구나'라고 생각하니 아이에 대한 걱정과 근심, 집착도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로 내가 잘 키워 보겠다고 나의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아이를 학대한 것은 아닌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후에도 남편은 병의 재발로 수술, 입원, 퇴원,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절망적인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절망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계속) 조인숙 아가타(수원교구 대천동본당)백영민2014.04.09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당신은 왜 성당에 오게 됐나요? 아마 모두 성당에 다니며 한 번쯤 혹은 수십 번은 받아본 질문일 것입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누군가의 전도로, 모태신앙이라, 삶이 너무 힘들어서, 어떤 유명인을 따라 하고 싶어서,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며칠 전 한 신부님이 성당에 다니게 된 이유가 햄버거 때문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주일마다 교리 선생님이 사 주는 패스트푸드 때문에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계기로 사제까지 됐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 신자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러나 저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제 머릿속에 떠오른 성경 구절 때문입니다.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함께 있습니다"(공동번역 골로 2,5). 제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는 이 말씀은 제가 성당에서 ‘말씀 사탕’으로 뽑은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긴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정말 ‘말씀’으로 하느님이 저를 성당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벌써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6년 여름. 무더운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작은 볕조차 저에게 비추지 않았던 해였습니다.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아빠를 떠난 보냈던지라 제 마음과 몸은 서늘할 정도로 추웠으니까요. 여기서 제가 그 말씀 사탕을 뽑기까지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제가 성당에 왜 나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 아빠는 젊었을 때부터 당뇨병이 있었습니다. 가끔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요양을 위해 집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생활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기에 사회생활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병원에 있는 날이 늘어갔고 점점 몸은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2002년부터는 거의 병원에 있는 날이 많아졌고 아빠의 활동 공간은 병원과 집 두 군데로 한정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나름 그 변화에 잘 적응했습니다. 아빠의 병이 더 깊어지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걱정이 늘어났지만 가족 중 누구 하나 불평을 한 이도 없었고, 우리 앞에 불행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 단정 짓는 이도 없었습니다. 아빠가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누구 하나 의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족들이 긍정적인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나빠지는 아빠의 몸에 우리가 적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 끝이 아빠의 죽음이라고는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아침도 다른 날과 별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녁은 전과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빠의 호흡이 힘들어졌고 금세 혼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겨지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마음을 졸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돼 불안하고 걱정됐습니다. 아빠가 받고 있을 고통이 느껴져 힘겹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의 고비를 잘 넘겼기에 이번에도 그리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나갔지만 아빠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희미한 호흡이 남아 있을 때 의사는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참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발이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음에도 누워 있는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빠,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 봐.’ 아빠는 듣고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의사들 말은 거짓말이지, 언제나 그랬듯 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갈 거지, 그렇지?’ 하고…. 끊임없이 속말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엄마가 어떤 분을 소개해줬습니다. “엄마 대모님이셔.” 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엄마의 대모님에게. 그 몇 달 전, 엄마는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냉담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 모태신앙이었던 엄마는 서울에서 객지생활을 하며 점점 성당에 가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그러다 삶에서 신앙을 떼어놓은 것입니다. 저도 10년 넘게 안 나가고 있었기에 엄마가 성당에서 다시 나가겠다고 했을 때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뿐이었습니다. 누구도 같이 성당에 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말리는 이도 없었고. 모두의 관심 밖이라 엄마가 견진을 받았다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계속) 이진아 율리안나 서울 미아동본당 백영민2014.05.1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5)장 르클레르크(상)](//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2766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5)장 르클레르크(상)그리스도인 영적 여정 연구하는 영성신학 기틀 다져 베네딕도회 수도자인 장 르클레르크는 중세기의 유명한 신비신학자 시토회 수도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연구자가 됐다. 사진은 바티칸 정원에 있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석상. 【CNS】 영성신학 분야에서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를 추천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신학 분야에 비해 독립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학문으로서의 영성신학을 접하고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기에 어느 학자를 추천하더라도 모두 낯설고 관심 갖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18~19세기에는 주로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20세기에 와서 서서히 ‘영성신학’이라 불리며 그리스도교인의 영적 여정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이뤄진다. 다만 공교롭게도 대부분 프랑스 출신의 다양한 수도회 소속 신학자들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신비신학과 수덕신학을 연구하면서 학문으로서 영성신학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에 필자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출신 베네딕도회 영성신학자인 장 르클레르크(Jean Leclercq, 1911~1993)를 소개하고자 한다.평수사 원했으나 사제로 서품 르클레르크는 1911년 1월 31일 프랑스 북부 아베느(Avesnes)에서 태어났다.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발발하면서 그는 어린 시절에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게 지냈다. 만 16세가 되던 1927년 그는 수도자가 되길 바라면서 룩셈부르크 북부 클레르보(Clervaux)에 위치한 생-모리스(Saint-Maurice) 수도원에 입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르클레르크는 그냥 평수사로 살기를 원했는데, 이와 같은 원의가 수도원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수도원 의향에 순명하기로 하여 이듬해인 1928년에 수도원에 입회할 수 있었고, 1930년에 수도서원을 하였으며 193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1933~1937년에 르클레르크는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그는 ‘신비신학’이라는 주제로 활발하게 연구를 하던 베네딕도회 신학자 안셀름 슈톨츠(Amselm Stolz, 1900~1942)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됐고, 훗날 그와 같은 주제로 저술 활동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1937년 박사 학위 논문 작성을 시작하게 되었을 즈음에, 르클레르크는 파리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40년에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자신의 학위 논문을 마칠 수 있었고 1942년에 출판했다. 르클레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1939~45) 기간 중 파리와 프랑스 서부 리구게(Ligug)에 소재한 수도원에서 지냈다.스승 질송의 영향과 베르나르도 연구 이 시기에 르클레르크는 자신의 앞날에 또 다른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에티엔느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을 파리에서 만나 중요한 조언을 듣게 됐다.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사를 연구하던 질송은 르클레르크에게 11~12세기의 수도원운동(Monasticism)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제안했다. 결국 질송의 제안이 계기가 되어 그는 이후 중세 그리스도교 수도원운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가 됐다.1946년에 르클레르크는 먼저 중세 베네딕도회 쎌르의 베드로(Peter of Celle, 1115~1183), 가경자 베드로(Peter the Venerable, 1092~1156), 패캉의 요한(John of Fcamp, ?~1079)에 대한 저서들을 발표하였다. 또 1948년에는 완덕의 삶에 대한 주제와 수도원의 용어를 다룬 저서를 비롯하여 시토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에 관한 저서 「신비체험가 성 베르나르도」(S. Bernard Mystique)를 발표하였다.이 연구가 계기가 돼 르클레르크는 자신의 생애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 중의 하나를 맞게 되었다. 즉 1948년에 시토회 총장은 베네딕도회 젊은 수도자인 르클레르크에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저서들에 대한 비판본 작업을 의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르클레르크는 샤를 탈보(Charles H. Talbot)와 앙리 로쉐(Henri Rochais)의 도움을 받아 공동 작업으로 약 30년에 걸쳐 베르나르도 저서의 비판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1957~1977년에 총 8권으로 구성된 「성 베르나르도 작품」(Sancti Bernardi Opera)이 출간되면서 마무리되었다.르클레르크는 비판본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베르나르도에 관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히 1962~1992년에 베르나르도에 관한 연구를 모은 총 5권으로 구성된 「성 베르나르도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모음집」(Recueil d’tudes sur S. Bernard et ses crits)을 발간하였다. 결국 르클레르크는 베네딕도회 수도자이면서도 오늘날 시토회 수도자였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수도신학 연구 한편, 르클레르크는 모교인 안셀모 대학교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자신의 생애의 또 다른 중요한 연구 주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는 1955~1956년에 가르쳤던 강의 내용을 1957년에 「학문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갈망」(Amour des lettres et le dsir de Dieu)이라는 제목으로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러한 연구가 계기가 되어 르클레르크는 중세 ‘스콜라 신학’과 대조가 되는 ‘수도 신학’(Monastic Theology)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10월 28일에 있었던 일반 알현 강론에서 르클레르크가 정한 이 저서 제목은 ‘수도 신학’의 특징을 지혜롭게 잘 정의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이후에도 르클레르크는 수도원운동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면서, 1968년에 「수도원운동의 모습, 어제와 오늘」(Aspects du monachisme, hier et aujourd’hui)과 1969년에 「수도의 삶과 관상의 삶」(Vie religieuse et vie contemplative)을 출간하였다.활동하는 학자 르클레르크는 학자로만 머무르지 않고, 1960~1980년대에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베네딕도회와 시토회가 전 세계에 수도원을 설립할 때, 르클레르크는 ‘수도원 연맹’(AIM: Alliance Inter Monastres)을 도와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강의와 수도원 설립에 관한 조언을 하였다. 또 타종교와 수도생활에 관한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수도원 타종교 대화’(DIM: Dialogue Interreligieux Monastique)라는 기구를 창설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1980년대 중반에 르클레르크는 정교회 신학자 존 메이엔도르프(John Meyendorff, 1926~1992)와 함께 공동 편집자가 되어 그리스도교 영성역사에 관한 작품을 기획하여 1985년에 「그리스도교 영성 제1권: 초세기에서 12세기까지」(Christian Spirituality I. Origins to the Twelfth Century)를 편찬하여 발간하였다.르클레르크는 1990년 로마에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탄생 9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한 이후 은퇴해 자신이 입회하였던 생-모리스 수도원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3년 10월 27일에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평신도 신학자 버나드 맥긴(Bernard Mc-Ginn)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수도자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과 함께 장 르클레르크를 꼽았다. 머튼은 영어권에서 활동한 영성작가라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면, 르클레르크는 불어권에서 활동한 영성신학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가 장 르클레르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영준 신부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8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퇴계원본당(1999~2002)과 가양동본당(2204~2008) 주임을 역임했으며,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영성신학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성경에서 시작하는 영성생활」(가톨릭대학교 출판부) 등이 있다. 평화신문2014.08.05
![[가톨릭 문화산책]<29> 문학(6) 여름휴가, 예수 생애 다룬 책과 함께](//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71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문학(6) 여름휴가, 예수 생애 다룬 책과 함께혁명가, 희생자, 구원자.... 예수는 '사랑'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 나자렛에서 목공 요셉의 아들로 자라난 예수. 2년 3개월 동안 하느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전도 활동을 했던 예수.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했다고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은 예수.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한 뒤 하늘에 올라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성자 예수. 가장 짧게 요약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여름 휴가기간을 맞이해 여행지에서 한두 권 꼭 읽어보기를 권하며, 예수의 생애를 다룬 13권의 책을 한꺼번에 소개한다. 조르주 루오 작, '예수 그리스도'. 소설가에게 상상력 불러일으킨 예수 예수의 생애는 지극히 짧았지만 그 생애는 불꽃보다 찬란했고 태양만큼 뜨거웠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예수의 생애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스의 세계적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를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한 혁명가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열심 당원의 일원인 유다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의 대표적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에서 고통받는 인간과 함께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예수를 그리고 있다. 이타적인 삶을 살다 자기 구원조차 못 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그럼으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외유내강형 인물로 예수를 이해하고 있다. 김동리는 「사반의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범죄자 중 한 사람인 사반에게 초점을 맞춰, 하늘나라(영원의 세계)를 향한 구원과 지상(실존의 세계)에서의 구원이라는 대립적인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했다. 정찬의 「빌라도의 예수」는 예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배경이 어떤 작용을 했고, 특히 정치권력이 왜 예수를 죽이게 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예수를 시대 상황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고만 인물로 보고 있다. 예수를 누가, 왜 죽였을까? 프랑스 소설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현대에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예수의 죽음과 이스라엘 쿰란 사해문서와 연결시켜 「쿰란」이라는 추리소설을 썼다. '성경에 근거해서 예수의 재림을 다룬 소설'이라는 부제를 붙인 어니스트 앵그리의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길, 휴거」도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성경 속 예수 이야기가 아니어서 필자를 당혹하게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으나 곧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탈출해 비밀리에 결혼한 뒤 프랑스 남부 해안까지 배를 타고 도피했으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사라가 프랑스의 귀족과 결혼해 그 후손이 지금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예수의 생애를 연구한 여섯 사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863년에 나온 에르네스뜨 르낭의 「예수의 생애」일 것이다. 르낭은 성직자의 길을 걷는 대신 예수의 생애를 과학적인 엄밀성을 갖고 사실적이고 총체적으로 연구해 이 책을 썼다. 복음서들 간의 차이와 성경 저자들의 착오를 바로잡은 것은 르낭의 집요한 분석적 연구 자세 덕분이다. 전에는 성경의 내용을 무조건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르낭은 당시 시대상황의 전후 맥락을 퍼즐 맞추기처럼 맞춰 성경을 신화 차원에서 비종교인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이것은 오히려 비신앙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고, 르낭 자신 또한 신앙심을 버린 적이 없었다. 르낭의 전기를 읽은 독일 신학자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신부는 철저하게 네 복음서에 근거해서 예수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역사적 인물인 예수와 하느님이 약속한 구원의 사도로서의 예수를 잘 조화시켜 우리 가슴에 살아 있는 예수를 각인케 한다. 이 책이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다.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괴테, 링컨, 클레오파트라, 루스벨트 등의 전기를 쓴 독일의 전기 작가 에밀 루드비히는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이고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요한복음을 배제했다. 그는 인간 예수를 살펴보자는 관점에서 「사람의 아들」을 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의 같은 제목 소설이 있어서 「예수의 전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세계 역사 전개에 있어서 로마제국과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다와 시리아, 그리고 기원전 44년부터 서기 70년까지 유럽과 중동,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세계 정치상황과 지리, 그 시대의 풍습 등을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결국은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살펴본 책은 미국 작가 콜린 듀리에즈가 쓴 「AD 33」이다. 영국 BBC 방송국에서는 예수 행적을 더듬어 이스라엘과 인근 몇 나라를 취재했다. 톰 라이트는 영국 성공회 주교이자 신학자인데,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낄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한 뒤 책 「예수」를 엮어 발간했다. 산상수훈, 하느님의 얼굴, 복음서 시대의 유다사회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담은 흥미로운 책이다. 예수의 최후에 대한 상세한 기록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 짐 비숍은 「예수 최후의 날」이란 책을 냈는데 부제가 '기원 30년 4월 6일과 7일의 기록'이다. 예수의 공적 행적을 잘 추적해 면밀히 다룬 전기 작가로 르낭, 슈나켄부르크, 루드비히 등이 있었지만 극적인 재미와 함께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선물한 책이 바로 「예수 최후의 날」이다. 비숍은 예수를 신격화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서 언급한 작가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최후의 날을 앞둔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간대별로 나눠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에서 이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은 소설처럼,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들은 끝나가는 여행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처럼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들 열한 사람은 몸에 흰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의 샌들은 길바닥에 널려 있는 분필 같은 푸석돌로 말미암아 보얀 가루를 뒤집어썼으며, 옷자락은 먼지와 때에 절어 거무스름하고, 얼굴에는 어딘가 근심스러운 빛이 감돌고 있다. 그들은 과월절 축제를 위해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으로 길을 재촉하는 인파 속의 마지막 한 무리였다." 특히 최후의 만찬에 대한 자세한 묘사나 유다가 배신하는 과정에 따른 내면 묘사, 대사제 카야파의 계략, 빌라도의 예수 심문, 헤로데 왕의 예수 조롱, 골고타 언덕에서의 일, 십자가에 매달리는 과정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는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비숍은 기자 정신을 발휘, 네 복음서에 조금씩 다르게 설명되고 있는 마지막 이틀의 상황을 주도면밀한 현장분석 능력과 감식안으로 재현해낸다. 이 책을 쓰기 위한 자료가 장장 1200쪽에 달했다고 하니, 얼마나 열심히 역사적 자료와 신학적 자료를 모아 분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쓰게 한 힘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예수가 삼위일체의 두 번째라는 사실과 진실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그것을 입증했다는 데 대한 신념이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비숍이 세 살 때부터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의 전능하심과 타인을 용서하는 힘, 사랑의 정신을 말이다. 책을 쓰는 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던 어머니가 이 책을 완성할 무렵 실명하고 만 일은 독자인 필자를 안타깝게 했다.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cpbc2013.08.06
![[가톨릭 신앙의 보물]<5> 성화로 본 예수님의 탄생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8200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성화로 본 예수님의 탄생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참된 선물은? 성화와 성상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 즉 성경의 내용과 교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자 생겨났다. 가시적인 형태로 성경과 교리를 더 생생하게 내 안에 각인시켜 신앙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성탄 이콘과 그 안에 상징을 통해 '강생구속'의 참된 의미와 정신을 살펴보자.강생구속의 교리가 담겨 있는 이콘 '예수 탄생'. 성화에 담긴 성탄의 의미 예수 탄생 성화<그림>를 보면 붉은 천 위에 누운 성모를 볼 수 있다. 붉은 천은 자궁을 뜻하며 이는 성모가 교회의 어머니 되심을 드러낸다. 검은 동굴은 마구간을 묘사한다. 해마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 정서에 맞게 초가를 얹은 말구유를 꾸미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시대 마구간은 마을 인근에 있는 천연 동굴이었다. 예수님은 동굴로 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림에서 검게 묘사된 동굴 입구에 예수님이 놓여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드러낸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말구유의 모양 역시 나무 구유라기보다는 돌로 만든 관에 가깝다. 아기 예수를 감싼 천 역시 흔히 보는 포대기보다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이를 염하는 천을 떠올린다. 이는 예수님이 훗날 죽음을 맞이하고 돌관에 묻히는 예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동굴 위 오른쪽에는 천사가 보인다. 천사들은 중앙 부분에 있는 목자를 향해 주님의 성탄을 알리고 있다. 왼쪽 위를 보면 목자들과 반대로 동방의 세 박사가 별을 보고 주님을 찾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동방박사는 두 가지 상징을 담고 있다. 교회에서는 성탄 구유를 꾸밀 때 이들 중 한 명은 꼭 흑인으로 하는데 이는 흑인, 황인, 백인 세 인종을 나타낸다. 주님께서 온 세상 만민을 위해 오셨고 또 온 세상 만민이 그분께 경배함을 드러낸다. 두 번째는 이들이 가지고 온 예물인 황금과 유향, 몰약이다. 황금은 고귀한 왕을 상징하고 유향은 하느님께 살라 바치는 향이며 몰약은 죽은 이를 염할 때 사용한다.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며,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성화 오른쪽 구석에는 여인 둘이 아기 예수를 씻으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예수가 진정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준다. 전승에 의하면 이 여인 중 살로메라고 불리는 이는 베들레헴 지역의 산파였다고 한다. 마을로 가 산파를 구한 요셉은 아기 예수가 성령으로 나온 거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산파 살로메는 이를 비웃었다. 순간 살로메의 팔이 말라 비틀어졌고 그 손에 아기 예수의 손이 닿자 회복됐다고 한다. 살로메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신자라고 전해지고 있다. 아기 예수께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성탄 되기를 성화 왼쪽 아래 금색 옷을 입고 턱을 괴고 고민하는 이는 요셉이다. 요셉의 번민 앞에 지팡이를 든 이는 요셉을 유혹하는 이다. 요셉이 그랬듯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역시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생 교리는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일 것이다. 성화 중앙의 또 다른 상징을 살펴보자. 아기 예수 주위를 보면 예수님을 향한 소와 나귀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성탄의 장소가 마구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동시에 말 못하는 짐승인 소와 나귀도 먹이를 주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우리는 생명을 주신 주인이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우매함을 꼬집는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수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 잉태를 예언했고 온갖 시련 속에서도 그분이 오신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가 눈앞에 왔음에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메시아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인간의 욕심으로 그분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깨닫지 못했다. 2000년 전이나 오늘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투르(tour)지방에서는 매년 11월 11일, 성 마르티노의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준비했다. 마르티노는 미신자로 평범한 군인이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성문 앞을 지나갈 때 헐벗은 걸인을 보고 돕고 싶었지만 그는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걸친 망토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 망토 반을 걸치신 예수님이 나타나 그를 칭찬했다. 그는 신앙을 받아들였고 투르 지방의 주교가 됐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지나치는 어려운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뜻인 강생을 몸으로 실천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 만나고 또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안에 이미 계심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때문이다.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주님이 그분의 참된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분이 다시 세상에 오셔도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우려를 범할지 모른다. 성탄이다. 이제는 반짝 선행과 선물로 기억되는 이미지를 벗고 성탄의 참된 정신과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슨 선물을 받을까"가 아니라 "어떡하면 주님께 참된 선물을 드릴까" 고민해야 한다. 성당에 꾸며진 성탄 구유를 보고 단순히 2000년 전 오신 예수님을 떠올리는데 그치지 말고 진정한 신앙을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방송은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3.12.17

"신앙에 대한 확신과 기쁨 얻었다"서울 시흥동본당 신앙의 해 폐막미사, 모범신자 표창시흥동본당 신앙의 해 폐막미사에서 본당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본과 묵주기도함을 봉헌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 제2차 바티칸공의회 특강, 성경 완독, 신앙체험 발표, 묵주기도…. 서울대교구 시흥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 신자들은 공부와 교육, 기도의 삼박자를 갖춘 특별한 신앙의 해를 보냈다. 본당 신자들은 지난해 10월 신앙의 해가 시작되기 전인 7월부터 주임 신부의 요한복음 특강을 시작으로 10월부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특강을 들었다. 3개월에 한번씩 평일 저녁에 모여 '신앙의 밤'을 보내며 함께 기도하고, 신자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체험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4월부터는 전 신자가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구역별로 나눠 필사하고, 5월부터는 전 신자가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해 폐막 때까지 40만 7723단을 봉헌했다. 1년간 신앙의 내실을 다진 본당 신자들은 11월 24일 신앙의 해 폐막미사를 봉헌하고, 신앙의 해 결실로 사랑 실천에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폐막미사에서는 지금까지 신앙의 해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영상을 상영하고, 각종 교육과 행사에 열심히 참여한 11명의 신자에게 모범 신자상을 수여했다. 대상 수상자 강말순(마리아)씨는 제주도 왕복항공권(2인)을 상품으로 받았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 신ㆍ구약 완독, 모든 특강 참석 등으로 모범 신자상을 받은 곽도실(리드비나, 51)씨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가정과 환경을 주셔서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하느님 말씀에 빠져 지낸 기쁜 해였다"고 말했다. 주수욱 신부는 "교황님과 일치한 가운데 본당 공동체가 성숙해지고, 하느님의 선물인 신앙을 충분히 맛보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이 모든 것은 선교와 사랑 실천으로 표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본당 기획분과장 음영소(프란치스코)씨는 "청년부터 어른 신자까지 모두 신앙에 대한 확신과 기쁨을 얻은 한 해였다"며 "내년도는 '사랑의 해'로 정해 개인과 가정, 본당 공동체 차원에서 사랑 실천에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3.11.26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우수상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5>끝 '결과에 관계없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사랑!'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을 위한 강생 구속 과정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신학원 강의를 비롯한 수많은 공부를 통해 터득하고, 교리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교리를 가르쳐 오기도 했지만 막상 나 자신은 이제야 피부로 조금 느끼는 것 같으니…!! 그러면서도 '이러한 마음을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아직도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은연중 나를 드러내려는 영적 교만이 수시로 밀려오고 있으나, 그때마다 화살기도를 통해 주님께 마음의 흔들림을 봉헌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과거 진급이라는 세속적 명예 때문에 엄청나게 방황했던 이 죄인이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와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 특수사목 현장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얄팍한 인간적 갈등에 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운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해외 선교사들, 국내 산간벽지에서 어려운 생활여건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공소 선교사들, 병들고 외로운 불우 이웃을 찾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수많은 봉사자들을 생각하면 현재 겪고 있는 나 자신의 자그마한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를 통해 은총을 충만히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신앙의 해가 끝나고 그 연장 선상에서 지속적인 성경 공부 등 후속 조치를 취하고는 있으나, 현재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이미 통계수치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신자 증가율 감소, 냉담교우 증가, 주일미사 참례율 저하 등 각 분야에서 교회 성장의 적신호가 피부로 와 닿는 수준까지 강하게 깜박거리고 있다. 어느 본당이나 젊은 층은 찾아보기 어렵고 이미 신자들의 고령화는 진행되고 있어 불과 몇 년 후가 걱정되는 실정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한국교회의 약화 현상을 거의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이 취해온 삶의 현장에서의 복음화는 시대를 거듭해오면서 강조되고 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새롭게 부임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몸소 스스로 가난한 모습으로 사시면서 "교회의 역할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며 앞장서고 있어 새로운 가톨릭의 희망과 비전을 보는 것 같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모든 사목 일꾼들이 2013년에 겪었던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을 사랑과 화합으로 소화하고, 2014년 갑오년에는 '말'처럼 한 단계 도약해 한국 천주교회의 밝은 미래가 수놓아지기를 바라본다. 각 본당을 비롯한 모든 사목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적 변화상을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길처럼 일어나, 현재의 적신호를 청신호로 바꾸는 하나의 큰 물줄기가 돼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한 이정표가 세워지기를 빌어본다. 230년 전 아시아 변방의 동쪽 하늘에 떠올라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한국 천주교회의 저 붉은 신앙의 태양이 2014년에는 새로운 정기를 받아 더욱 밝게 타오르기를 바라면서, 한없이 미약한 제가 그동안 받았던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하느님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앞으로 남은 저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데 온 정성을 쏟을 것을 다짐해 본다. 이계상 분도(서울 명일동본당) <끝>백영민2014.03.18
![[수품성구와 나]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186_1.0_titleImage_1.jpg)
[수품성구와 나]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사제는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바로 사제는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아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가축들의 밥그릇인 구유에서 탄생하셨고, 양부이신 성 요셉을 도와 노동자로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세상 희로애락을 체험하십니다. 그렇게 30년을 나자렛 고을에서 기도와 묵상, 노동을 통해 아주 평범하게 공생활을 준비하셨고, 그 후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3년간 치열하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온갖 병자를 고쳐주시고, 밤낮으로 몰려드는 군중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시며 영원한 삶, 평화와 행복의 삶, 참 삶의 가치와 이정표를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강행군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전도여행을 끊임없이 펼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몸을 눕힐 편안하고 안락한 거처도 휴식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깊은 밤과 이른 새벽을 이용해 하느님 아버지와 깊이 일치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천주성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다른 이의 선익을 위해서만 기적을 행하시는 이타적 삶을 온전히 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력을 다해 피땀을 흘리며 선한 일만을 하셨지만, 비리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직한 모습의 예수님을 세상의 세력은 그대로 두지 않고 위험인물로 낙인찍어 제거하기로 작당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사칭했다는 이유, 국민을 선동해 정치질서를 교란하고 국가안보를 그르쳤다는 이유, 죄인과 어울리고 가난한 이를 변호했다는 이유, 신앙인의 본분을 저버리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 등을 들어 종교의 최고 권위와 국가 최고 법정은 사형언도를 내렸고, 결국 십자가를 진 고난의 행렬 끝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해 온 인류의 행복과 영원한 생명의 발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존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님의 생애 33년은 인간들을 위해 남김없이 봉헌된 삶이셨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재산과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성경 속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지만 소유물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교황궁에 사는 것을 포기하고 순례객이 머무는 '성 마르타의 집' 한 칸을 빌어 아주 작은 공간을 사용하며 교황직을 기쁘고 행복하게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황께서는 가난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지 않고, 곤궁한 처지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 가난한 교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저는 강산이 몇 번 바뀐다는 수십 년간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수품 성구의 진정한 주인공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신명나게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가난한 삶과는 너무 멀리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의 수품 성구를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길게 남아 있지 않은 저는 과감하게 군더더기처럼 얽혀있는 가시적, 비가시적 장식물을 모두 털어버리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꾸밈없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은총을 주님께 청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태양의 노래를 부르며 벌거벗은 몸으로 질주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cpbc2014.03.18
![[생활속의 복음] "돌을 치워라!"](//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9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돌을 치워라!"사순 제5주일(요한 11,1-45)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사순 제5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우리 신앙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우리는 죽어서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에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살면 우리는 어둠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성당 동산에 꽃씨를 뿌린 적이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꽃씨가 뿌려진 땅에서 작은 새싹이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땅은 방사능 물질이 섞인 비도 받아들이고, 황사가 섞인 비도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땅은 생명을 품어주고, 작은 싹이 나도록 해주는 것을 봤습니다. 방사능 물질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를 생각합니다. 문득, 그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에 우리 인간들만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방은 불을 보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불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숭이를 잡을 때 사람들은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입구가 작은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넣습니다. 원숭이는 항아리 속에 있는 과일을 잡습니다. 그런데 과일을 잡은 원숭이의 손은 항아리에서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원숭이는 사람에게 잡힌다고 합니다. 원숭이 또한 미련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그런데 나방과 원숭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욕망이라는 불꽃을 향해 불쌍하게 날아가곤 합니다. 사람들도 원숭이처럼 욕심과 탐욕을 잡고서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하고, 친구들을 배반하기도 합니다. 이런 욕망과 욕심을 비워버려야만 우리는 참된 진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바로 우리의 낡은 허물들을 벗어버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고, 우리의 생명수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거울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면서 온전히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셨고, 마귀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마시면 다시 목마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사순 제5주일은 생명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려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우리는 주변에서 부활 신앙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서 일생을 살기로 약속하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행려자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함께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은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부활의 삶을 몸으로 사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사는 분들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분들이고 세상 것에 복종하는 분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말씀에 복종하는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돌들이 있습니다. '욕심의 돌, 욕망의 돌, 시기의 돌, 분노의 돌, 원망의 돌을 치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된 자유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cpbc2014.04.01
![[시사진단] 무릎을 꿇고 하는 일](//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433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무릎을 꿇고 하는 일김혜경 세레나(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다시 선거철이 됐나 보다. 아침, 저녁 지하철 입구에는 몸에 띠를 두른 정치인들이 부쩍 눈에 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역 입구가 시끌시끌하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우리 정치인들의 '반짝 쇼'는 이제 하나의 행사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할 뿐 전혀 반갑지가 않다. 그들에게 거는 기대감은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고, 그것을 그들도 아는지 최근에는 선거운동인지, 신앙고백인지 모를 공약이 거리의 소음을 대신하는 것을 느낀다. 큰 소리로 '절대 도둑질하지 않겠다!' '직장인과 서민들 유리지갑 털어 짜낸 세금으로 딴짓 안 하겠다!'는 등의 고백이나 당치도 않을 허풍을 공약이라고 내세워 표만 얻겠다는 꼼수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가 힘들다. 후보자들의 전통시장 방문도 선거철을 전ㆍ후로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서민들은 매번 변함없이 속아주고 우리의 세금을 절도 당하고 있다. 서민들과 달리 후보자들은 참으로 훌륭한 위선자들이 아닐 수 없다. 복음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죄인들에게는 대단히 관대했으나 위선자들에게 그렇지 않았다. 죄인에게 죄를 탓하거나 그를 엄하게 단죄한 적은 없지만, 위선자들에게는 대접받기를 즐기고 높은 자리를 찾으며 거리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며 구체적으로 율법학자와 사제들을 들어 단죄하셨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따르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 겸손한 '척'하는 사람에게는 존경하는 '척'하고, 정말 겸손한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에게는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는 사람에게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엎드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율사와 사제들이 잘하는 '보여주기'식 겸손이나 공감을 얻기 위한 위선적 행위와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집권 1년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베들레헴의 그분, 나자렛의 그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분 모습을 새롭게 보여줬다. 동시에 여러 계기를 통해 베들레헴과 나자렛과 골고타의 그분처럼 살기 위한 그리스도인 삶의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하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표적인 그리스도인 삶의 자세에는 "무릎을 꿇는다"는 표현이 종종 들어 있다. 살아가면서 무릎을 꿇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는 것이고, 자기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는다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절대 순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개월 전쯤에도 "복음화는 무릎을 꿇고 하는 것"(신학생과 남녀 수도자 지원자들과 함께 한 미사 강론에서, 2013년 7월 7일)이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선포를 통한 겸허한 자세를 호소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피아를 향해 전혀 다른 차원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제발 부탁건대, 회개하여 생활을 바꾸십시오. 악행을 멈추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선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여러분에게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더러운 일과 마피아의 살인으로 지금 여러분이 얻은 많은 권력과 돈, 피 묻은 돈과 권력은 다음 생애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아직 회개할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십시오"(2014년 3월 21일 반(反)마피아 시민단체 '리베라(Libera)'와 함께 한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자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복음화도 무릎을 꿇고 해야 하고, 사고 치는 자식들에게 제발 정신 차리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다. 단 한 자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부모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오는 6월 4일 기초 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일을 앞두고, 이런 마음으로 국민들을 대해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무리한 바람일까? cpbc2014.04.0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14>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9699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신앙 진리, 고정된 교의 아닌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모든 역사를 하느님 구원 의지로 봤다.에드워드 스힐벡스가 신학에 몸담기 시작할 때, 서구에서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한창이었다. 신학자들은 '신앙과 경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다루기 시작했다. 신앙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데, 근대로 들어오면서 교회 안에서 이 관계를 극단적으로 다루는 성향들이 대립했다. 이에 스힐벡스는 '신앙과 경험'의 관계 핵심이 되는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의 대표 서적을 통해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전반기에는 '경험'이라는 개념이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았고 신학 방법론은 연역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교리 전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앙의 역사성에 주의함으로써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반기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사는 하느님이 인간 만나는 방법 그는 전반기 대표작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에서 주체와 객체의 '만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당시 이분화된 신학을 뛰어넘고자 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됐기에 인간은 하느님께로 갈 수는 있으나, 창조물로써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없고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인간의 원의는 하느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하실 때 인간의 특성인 육체성을 중재로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강생하셨고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당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의 인간 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인간의 가시성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강생의 논리로써 인간을 만나신다. 즉 성사로서 인간에게 오신다는 것이다. 스힐벡스는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육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만남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오시어 동시대인들을 만나고 구원의 현실을 인간이 알 수 있게 보여 주셨다. 승천하신 후에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다. 성사는 예수님 삶의 연장, 즉 강생 논리의 연장으로 그리스도와 인간을 인간적 차원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성사란 역사 안에 눈에 보이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다. 성사를 통해서 예수님 삶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강생 신비는 상실되기 때문이다. 특히 18~19세기 성사에 대한 이해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스힐벡스는 물리적 측면으로 이해하던 성체의 개념을 만남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도록 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리스도론 삼부작 스힐벡스는 1967년에 신학 방법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세속화된 사회에 속하는 현대인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이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언어에 적합하게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가톨릭 신학에 대두되기 시작한 해석학의 부족을 절감하고 이를 신학에 적용, 그리스도교 전통이 어떻게 변천됐는지를 보고 오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했다. 문화적 상황이 바뀌면 교회의 진리 또한 그 상황에 맞도록 표현돼야 하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독트린(doctrine)으로 고정화돼 상황에 따라 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세속화가 교리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상황에 맞는 신앙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봤다. 그에게 신학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계시와 교회의 전통'이고 다른 축은 '인간의 경험'이다. 이 두 축을 연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신학이 살아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그의 방대한 삼부작을 통해 잘 볼 수가 있다. 하느님 말씀은 인간이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말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느님 계시를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 말씀 전달의 매개체가 된다는 의미로, 하느님 계시는 다른 세계가 아닌 인간세계를 매개체로 한 경험을 통해 전달된다. 이는 하느님 계시가 역사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신앙 경험은 일반적인 경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에 이미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바로 예수를 근원으로 하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인간 예수께로 돌려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 작품 「예수 : 살아계신 분의 이야기」(1974)는 교의(dogma)를 통해서가 아닌, 인간 역사 안으로 오신 인간 나자렛 예수를 재발견하기 위해 복음에 나타난 그분의 삶을 가까이 살펴본 저서다. 또한 복음 메시지는 신앙 고백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분석한다. 역사 비판으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인간 예수와 그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재발견한 것이다.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 없이는 역사의 예수는 없고, 또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사건 없이는 신앙 공동체가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며 성경과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로써 당시 신앙 공동체의 성경 메시지 접근과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채 학구적으로만 성경을 분석하는 성서학자들의 성경 접근과 엄청난 차이를 줄이고, 이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성서학자들은 교의적 문제를 멀리했고 교의신학자들은 현대 성서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랐는데, 스힐벡스는 교의신학과 성서학을 연결하는 노력을 했다. 두 번째 저서 「그리스도 : 주님으로서의 예수 경험」(1977)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만난 제자들 경험에서 시작됐기에 어떻게 이 구원의 은총이 세상을 매개체로 해 이들이 은총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바오로와 요한의 글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은총을 경험하고 그분이 그리스도시고 주님이심을 고백하는지, 어떻게 주님의 경험이 은총의 경험이자 해방을 위한 구체적 실천이 되는지를 봤다. 그리고 이 분석을 통해 교회의 권위와 전통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앙 경험이 정당성을 부여받는지 분석했다. 스힐벡스는 이 두 저서를 통해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면서 신성은 인간 밖의 것 혹은 인간 위의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인간 안에서 인간의 것으로 계시됨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스도교는 해석된 구원경험의 역사이지 교회의 관념화된 가르침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줬다.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세상의 경험에 교회가 열려있게 하려고 했다. 삼부작의 마지막 저서는 교회에 관한 것으로 「크리스천 경험의 실천 : 교회」(1989)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교회론은 마지막 장에 나온다. 구원과 계시의 역사, 일반 경험과 계시 경험, 전통과 상황과의 관계, 현대 사회 분석 등을 통해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론을 다룬 뒤 교회 목적과 위치를 보고자 했다. 타 종교와 관계, 생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창조론 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 저서에서 스힐벡스는 신앙의 진리는 고정된 교회 교의로서 신앙인들이 암기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한다. 따라서 신앙 고백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고백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오로 사도, 토마스 아퀴나스, 아빌라의 대 데레사, 로메로 주교 등의 수많은 신앙인이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신앙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다양한 신앙 고백에서 우리는 인간과 하느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세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근본주의자가 돼서 신앙을 마치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돼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구원의 메시지는 교리를 포함하지만 교리가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이 우선적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구원의 경험을 그 당시 문화를 통해서 해석한 말씀인 것처럼 오늘 우리의 현대 문화를 통해서 새로운 신앙 언어는 재창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저서에서 그의 넓게 열린 신학적 견지는 구체적인 실천과 연관 지어 고찰됨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와 전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후자 안에서 전자의 역사를 보고자 하였다. 왜냐면 모든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그 어떤 상황도 하느님의 의지 밖에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인류의 전체 역사를 염두에 두고 고찰한 신학자다. 김미정 수녀(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파리 예수회대 교수)약력 ▲2013년 논문 : 「타 종교와의 관계-바티칸공의회 : 한시작의 시작」(파리), 「한국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창조주 하느님 개념」(브뤼셀)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신학과 사상) 등 다수 ▲저서 : 「죄와 조화」(파리), 불어공동 저서 : 「평화와 폭력 가운데」, 「이냐시오 영성의 식별과 선교」, 「전통의 좋은 사용」 등 다수. ▲번역서 : 「말씀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 이냐시오 영성 수련에 따른 기도 지침서」 cpbc2013.08.20
![[성경 속 궁금증] 43. 팔리움은 왜 양털로 만들까?](//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5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3. 팔리움은 왜 양털로 만들까?양, 희생의 신앙적 의미 갖고 있어 교황과 대주교 임무 상징에 어울려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이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서 교황님께 팔리움을 받았다. 이후 일간지 등에 팔리움에 관한 사진과 기사 등이 실렸다. 팔리움은 우리 신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단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팔리움이 상위권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양털로 짜는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위와 권한을 상징한다. 팔리움(pallium)은 라틴어 단어인데, 우리말로는 쉽게 옮기기 어려워 발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팔리움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제의(祭衣) 위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좁은 고리 모양의 양털띠다. 그런데 왜 팔리움은 양털로 짜는 것일까? 물론 교회의 오랜 전통이지만 양이 갖는 성경적 특성도 한몫한다고 생각된다. 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양은 제사의 희생물로 애용됐다. 이스라엘에서 어린양은 가장 흔한 희생 제물이었다. 제단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희생의 어린양이 한 마리씩 바쳐졌다(탈출 29,38-39). 어린양은 고대 근동지역과 지중해 연안에서 제사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이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해 번제물로 하느님께 바쳤다. 그리고 유월절의 어린양은 대속물이었다(탈출 12,1-14). 하느님은 집 문설주에 칠해진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사람들 집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게 하셨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속죄 수단이었다. 신약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는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하고 말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은 희생과 속죄라는 신앙적 의미를 지닌 동물이었다. 양은 또한 유목민에게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동물이었다. 양은 고기와 젖을 사람에게 제공하고 털을 옷감 재료로 제공함으로써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한다.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명주나 면직물이 없어 거의 모직물만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밤에 잘 때 덮는 담요와 같은 것도 모직이었다. 숫양의 뿔은 액체를 넣는 그릇으로 사용됐다. 이처럼 양은 고기는 식용으로, 털과 가죽도 의복 등 다방면으로 사용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유용한 동물이었다. 성경에서도 양이 무려 500회 이상이나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은 양떼와 목자로 자주 비유됐다. 성경은 양털의 흰색을 하느님 자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위와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흰 양털로 짠다. 팔리움은 대주교의 경우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교황의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고, 교황과의 일치를 보여주는 외적 표시가 된다. 양털이야말로 팔리움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