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8) 아브라함도 알고 있던 달신 숭배](//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538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8) 아브라함도 알고 있던 달신 숭배달신 관련된 인명과 지명이 성경에? 기원전 7세기께 신바빌론 제국은 신아시리아 제국을 누르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잡고 새로운 왕권 신학을 세웠다. 이후 바빌론의 주신이 된 '마르둑'은 왕권의 상징이 됐다. 마르둑은 본래 하위신 무리인 '이구구'에 속했지만, 새 시대가 열리자 모든 신의 주인이자 창조신으로 등극했다. 신바빌론 제국 말기 '나부-나이드'라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이른바 '개혁파'를 이끌었다. 그는 제국의 종교와 사상을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지하에서 숨죽이며 유지되던 달신 숭배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달신 숭배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그는 부패한 보수파 마르둑 종교를 버리고 고대 왕권 전승, 달신 숭배를 부활시켜 제국을 개혁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대 정통파이자 보수파였던 마르둑 사제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나부-나이드 재임 기간에 그의 행위를 마르둑이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은 벨사차르는 부왕의 달신 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그 결과 제국은 더욱 분열되고 약화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기원전 539년 바빌론으로 진격해 왔을 때, 정통 보수파였던 마르둑 사제들은 놀랍게도 외적 페르시아 군대를 도왔다.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영리하게도 자신을 마르둑이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선택한 구원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부-나이드의 개혁도, 마르둑 사제들의 나라 신바빌론 제국도 점점 사라지고 곧 페르시아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바빌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달신 숭배 고대 근동은 하나의 큰 세계였다. 동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늘신이 최고신이었지만, 서부에서는 그저 장소로 쓰였다. 달신도 마찬가지다. 동부에서 달신은 왕권의 상징이요, 오랜 세월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지만, 북서셈어 지역에서는 그저 '신들'중 하나였다. 하지만 북서셈어 지역에서 달신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고대 근동에서는 이름에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넣었다. '신적 요소'를 지닌 이름은 이스라엘에서도 흔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는 '~야'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데 이 이름은 야훼 하느님께 귀의했다는 뜻이다. 그 이름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요시야, 히즈키야 등이 있다. '하느님'을 뜻하는 '~엘'로 끝나는 이름도 많다. 에제키엘, 하나니엘, 미카엘, 이스라엘, 임마누엘 등이다. 이처럼 고대 근동의 인명을 분류하면 당시 사람들이 믿던 신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밤하늘의 달을 히브리어로 '야레아흐'라고 한다. 우가릿어로 달신은 '야리후'였다. 이처럼 두 말의 발음은 비슷하다. 이 단어의 어근은 '일정한 길을 가다'는 뜻으로, 달의 규칙적 변화와 궤도를 지칭한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낱말로 시간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곧 일 년의 열두 달을 가리킬 때는 모음을 변형시켜 '예라흐'라 했다. 우리말도 밤하늘의 '달'과 일 년 열두 달의 '달'이 같은 낱말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우르(수메르의 도시국가)와 하란(메소포타미아 지역 문화ㆍ상업 도시)이었다. 우르는 수메르 시대부터 달신 숭배의 중심지로 이름 높았고, 후대에는 하란이 우세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큰할아버지이자 그리스도교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바로 우르 출신이다. #고대 이스라엘인과 달신 그가 나이 일흔다섯에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떠난 이야기는 '순명의 모범'으로 널리 알려졌다.(창세 12,1-9 참조) 그런데 그는 길을 가던 도중 하필 하란에 이르러 꽤 오랫동안 '자리 잡고' 살았다. 이는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님의 명령으로 움직인 것이다.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퍼졌던 달신 숭배는 고대 이스라엘의 시작부터 간접적이면서 아주 깊숙이 관여했다. 고대 이스라엘인의 인명 가운데 달신숭배가 간접적 또는 정황적으로 관련된 것이 있다. 노아의 자손들 족보에 등장하는 '예라'(창세 10,26; 1역대 1,20)와 가드 지파의 자손인 '야로아'(1역대 5,14), 벤야민 지파의 며느리 '호데스'(1역대 8,9) 등은 달신과 관련 있는 이름이다. 이들은 이민족이 아니라 모두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다. 앞서 신 이름을 사람 이름에 넣는 문화를 보았다. 그러므로 이런 이름을 쓰는 이스라엘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달신 숭배 문화가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신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큰 승리를 거둔 도시 '예리코'(여호 2-6)의 이름은 '그의 달'이란 뜻이다. 이 도시도 원래 달신을 섬기던 곳으로 짐작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도 달신과 관련된 장소다. 이 산의 이름과 의미에 대해 유력한 가설에 따르면 '시나이'는 '나의 신'(Sin-ai)이라는 뜻으로, 본디 달신을 모시던 의례와 관련 있는 산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이 달신 숭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맺은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고대 근동 세계는 구약성경의 배경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론, 이스라엘과 가까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달신은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고대 근동에서 달신 숭배와 관련된 초하루나 보름 같은 날들은 일반적으로 중요한 절기로 취급됐다. 고대 이스라엘도 이웃 민족의 이 같은 관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시편은 '우리의 축제 날'인 초승과 보름에 기뻐하며 나팔을 불라고 권한다.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3.12
![[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복자 그들의 삶과 신앙](//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5135_1.0_titleImage_1.jpg)
[일어나 비추어라] 124위 시복, ...복자 그들의 삶과 신앙성령의 힘으로 신앙 일궈 ‘순교의 꽃’ 피워 초창기 신자들은 교우촌을 이뤄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격려하는 천상의 삶을 살았다. 사진은 옹기를 구워 생계를 잇던 교우촌 모습. 빛을 찾아서 : 참 하늘 우러른 구도(求道) 영성신앙 선조들은 스스로 빛을 찾은 진리의 구도자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이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로 평신도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복음을 수용한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하는 평신도사도직 운동의 선구자가 아닌가! 신앙 선조들이 진리를 향해 깨어 있음이 우리 민족을 빛의 세계로, 구원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제삼천년기를 살고 있는 순교자의 후손인 우리는 어디를 향하여 깨어 있는가? 신앙 선조는 일상에서도 하느님을 삶의 가장 가운데 모시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 하느님은 절대적이었다. 가족ㆍ건강ㆍ재물ㆍ명예ㆍ생명도 소중했지만 하느님 위에 있지는 않았다. 빛을 전하며 : 온 누리에 빛을 전한 선교 영성신앙 선조들은 자발적으로 찾은 빛을 적극적으로 전한 진리의 전파자였다.성사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신앙 선조들은 성직자 영입을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교황청에 성직자 청원의 서한을 보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교황청에까지 성직자 청원의 편지를 보낸 신앙 선조들이 세계에 또 있는가? 또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 신앙 선조들은 한문으로 된 교회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 열정과 신분 질서가 엄격한 시대를 뛰어넘은 만민평등 사상과 인간 사랑에 감탄하게 된다. 성경ㆍ교리서ㆍ신심서ㆍ묵상서ㆍ기도서ㆍ순교자전 등 다양한 책들이 번역되었고, 또 필사되었다.신앙 선조들은 세속적인 배움은 짧았지만 성령의 학교에서 덕행과 사랑을 배웠기에 가는 곳마다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가난한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곤경에 처한 이를 남몰래 돕고, 배 고픈 이와 양식을 나누었다. 천주 신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앙 선조들이 이렇게 삶으로 풀어내는 천주교에 입교했다. 신앙 선조들은 삶의 나눔과 섬김, 사랑을 통하여 빛을 전하였다. 또한 주님을 만나 전 삶이 변한 기쁨이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아무리 말을 하려 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어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온 세상에 외친 것이다. 선교는 이렇게 삶의 나눔이며 삶 속에 젖어드는 사랑의 육화임을 배우게 된다. 빛 속에서 : 온 삶으로 빛을 현양한 증거 영성신앙 선조들은 빛을 찾고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 삶을 빛으로 현양한 진리의 증거자였다. 일상에서 철저하게 복음적인 삶을 살았고, 마침내는 생명마저 주님께 봉헌한 순교로써 진리를 증거한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순교할 수 없다. 신앙 선조들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했으면 순교하였을까? 도대체 그 힘을 어떻게 얻었을까? 신앙 선조들의 영적 양식은 기도였으며, 기도를 일상화하였다. 기도로 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애원하며, 힘을 얻고, 하느님과 일치하였다.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은 온갖 고난에도 성경 말씀을 봉독하고, 필사하며, 묵상하였다. 즉 말씀으로 살고, 말씀만 섬겼으며, 말씀을 시험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전기ㆍ서간문과 교회 서적 등을 가보처럼 여기며,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또 가혹한 박해에도 오늘의 한국 교회를 있게 한 깊은 뿌리가 바로 ‘교우촌 영성’이다. 신앙 선조들의 하늘을 지붕 삼아, 산을 울타리 삼아, 기도와 나눔의 생활을 하였다. 그들의 삶은 외적으로는 비참하였지만,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격려하는 신앙 공동체이었기에 지상에서부터 천상의 삶을 산 것이다.신앙으로 인한 직접적인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을 천편일률적으로 생각하며, 순교의 최후 순간만을 중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순교를 가능하게 한, 곧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피보다 더 진한 인생의 전 여정을 깊게 만나야 할 것이다.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진리의 구도자, 전파자, 증거자로 온 누리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있는 124위 복자! 이슬처럼 스러질 인생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빛ㆍ길ㆍ꿈으로 부활하여, 생명과 희망이 넘실대는 푸른 세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 2,5) 제공=교황방한준비위원회 영성신심분과 평화신문2014.06.18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7>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9961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여행]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 탈출기를 읽으면 주님이 보인다모세와 떨기나무, 비잔틴 모자이크 탈출.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단어를 보면서 마음 안에 간절한 염원을 느낄까요? 탈출기라는 책은 그 염원에 응답합니다. 탈출기는 출애굽기라고 하다가 성경 번역을 새로 하면서 제목도 다시 붙게 된 책입니다. 그래서 전에 낱권으로 번역되어 나왔던 탈출기에는 어떤 의미로 이 책을 ‘탈출기’라고 부르기로 했는지 설명이 있었습니다. 아주 짧게 말하면, ‘출애굽’은 한 번 있었던 사건이지만 ‘탈출’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애굽’은 아마도 기원전 13세기,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온 사건입니다. 그러나 탈출은 속박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불의로부터,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한 번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반복되어 왔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되는 사건입니다. 탈출기에 기록된 이 과거의 사건은 그러한 탈출들의 원형이 됩니다.이집트 탈출이 과연 얼마나 규모가 큰 사건이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60만 명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불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특정 집단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험은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얼굴을 보여 주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기에 60만이, 우리 모두가 이집트에서 나왔다고 말하게 됩니다.탈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18장은 이집트 탈출에 관한 설화를 들려주고, 19─40장은 주로 법률 부분입니다. 처음에 이집트 땅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을 거친 다음 14─15장에서 갈대 바다를 건너고 16─18장에서 광야를 지나 시나이 산에 도착합니다. 19─40장에서는 움직임이 없이 시나이 산에 머뭅니다. 레위기 전부와 민수기 10장까지도 시나이 산을 배경으로 할 것입니다.탈출기의 전반부, 1─18장에 기록된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도, 이스라엘도, 파라오도 주님이 누구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탈출 3,13 참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보내신 분이 누구신지를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낼 것을 요구했을 때 파라오는 주님이 누구이기에 나에게 이스라엘을 내보내라고 명령하느냐고 되묻습니다(탈출 5,2 참조). 아직 아무도 그분을 모릅니다.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대답하십니다. 뜻을 알기 어려운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대략 세 가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첫째는, 나는 그냥 나이지 더 이상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름을 붙인다면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 안에 하느님이 갇히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나’라는 것 외에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둘째는, ‘있는’ 분,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을 거치면서 그러한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고 이는 철학의 하느님 이해와도 깊이 연관되었습니다.셋째는, 내가 누구인지는 이제부터 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보게 될 나, 그것이 나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내가 이집트 위로 내 손을 뻗어 그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7,5).세 번째 의미를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끌어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탈출 3장에서 아직 이스라엘은 그 사건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천 마디 말로 설명을 해도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파라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열 가지 재앙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는 아홉 가지 재앙을 거치고도 하느님을 알지 못했으니 그가 하느님을 알게 한 것은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죽었던 열 번째 재앙에서였습니다(탈출 11장). 이스라엘에게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갈대바다를 건널 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가로막고 있던 죽음의 순간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시는 구원을 보았습니다(탈출 14,13).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았다는 표지가 15장에 나오는 바다의 노래입니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이분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탈출 15,2).여기에 이르면 파라오도 하느님을 알고 이스라엘도 하느님을 압니다. 더 이상은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묻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분으로 일컬어지실 것입니다. 탈출은 반복되는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억압과 불의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은 해방하시는 하느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을 때, 인간의 모습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모습이 아닐 때,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이 억눌려 일그러져 있을 때 하느님은 다시 개입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런 분이시라고 말해 주는 책이 탈출기입니다.“원수에게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36,24). 백영민2015.01.14

사람이 되신 하느님 아들의 인성(人性)에 매료[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16.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⑥ 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모두를 깊이 사랑했으며, 특히 그분의 인성에 관심을 가졌다. 사진은 예수 탄생에 관한 이콘화. 평화신문 자료사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지난 호까지 성녀 데레사가 일생을 통해 어떻게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성숙시켜 갔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부터는 성녀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살펴봐야 할 점은 성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깊은 관계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예수님 모습에 매료됐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녀가 쓴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관련해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이란 말이 그것입니다. ‘인성’이란 표현은 신학적인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두 가지 본성(本性)을 일컫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후,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그분에 대한 기억을 간직했던 세대가 사라져가고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자 그분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일 뿐 실은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예수님은 지고지순한 하느님이지 우리처럼 천박한 피조물은 절대 아니라며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神性)만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생겨나 교회에 큰 물의를 빚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초대 교회는 수백 년 동안 홍역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여러 보편 공의회를 통해 이 문제를 정리하고 ‘신경(信經)’에 담아 불변의 신앙교리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형태가 소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골자(骨子)가 담겨 있습니다.예수님과 관련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담겨 있는 고백 중에는 “성부와 한 본체”라는 표현과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말에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똑같은 인간이시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본성(本性)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는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강생(降生)의 신비, 성부 하느님과 인류를 이어주는 중개자(仲介者)이신 그리스도 인격의 신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중개자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자 동시에 인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올바른 영성의 기초인 인간 예수님에 대한 사랑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두 가지 본성,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모두를 깊이 사랑했으며, 특히 그분의 인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영성생활에서 왜 중요할까? 영성생활은 우리가 믿는 바를 실생활로 이어주는 장(場)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영성생활 이전에 선행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잘못된 영성생활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은 부인한다든지 그 반대로 인성만 받아들이고 신성을 부인하게 되면 왜곡된 영성생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믿고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영성생활의 바탕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명한 신앙생활의 진리를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의혹의 눈길로 바라봤던 사람들이 늘 있어 왔습니다. 성녀 데레사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당시 소위 열심하다는 영성가들 중에는 특히 예수님의 인성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심지어 부인하기까지 하면서 오직 그분의 신성에만 집중해서 그분과 관계를 맺고 기도수련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은 순수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성화(聖化) 또는 신화(神化)되는 것은 그런 하느님을 닮아가기 위해 모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자 영혼을 악으로 인도하는 유혹자로 여기며 거부하고 폄하했으며 거기서 유래하는 모든 자연적인 욕구까지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죄악시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영혼이 천상을 향해 진보하는 것은 이 썩어 없어질 헛된 육신에서 벗어나 천사와 같은 순수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역시 그런 부정한 육체를 취하신 인간의 모습은 참된 예수님이 아니라고 여기며 그분의 신성에만 집착했습니다. 성녀 데레사를 영적으로 지도했던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관상기도는 순수 영적인 것이라 기도에 진보하려면 모든 물질적인 형상을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인성도 멀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잘못된 영성지도자들 때문에 한동안 헤매던 성녀는 그것이 뜬구름 잡는 잘못된 기도였다는 걸 깨달으면서 인간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와 그분을 많이 사랑해드리고 일상의 삶 속에, 자기 영혼 안에 깊이 현존해계신 인간 예수님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자서전 22장). 그래서 성녀는 특히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성상, 성화, 상본을 기도생활에서 자주 활용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 영혼 안에 각인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성부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되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성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셨고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시며 함께 음식을 드시고 병자를 치유하셨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분의 모습은 신약성경에 충만히 소개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예수님과의 사랑의 대화이자 교감(交感)이라 한다면 신약성경은 최고의 기도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신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금 바로 성경을 펼쳐 그분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cpbc2014.05.21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82>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1)](//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6_1.1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1)가톨릭 신앙의 골다공증 종교와 정치, 그 관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최근에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야 한다느니 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할 수도 있다느니…. 끝이 없을 것이며, 그 이유도 무수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경우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이 없으며, 일방적인 윽박지르기만 난무한다. 두세 마디 지나고 나면 화내기 일쑤다. 거의 '폭력' 수준이다. #믿음과 신앙은 분리될 수밖에 없는가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는 참담하다. 논쟁(?)에서 '신앙' 특히 '그리스도 신앙', 더 더욱 '가톨릭신앙'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종교(religion)는 영어식으로 하면 '일반명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 엄연히 고유명사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대문자로 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그 어떤 고유함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고, 유다교도 마찬가지고, 힌두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와 정치, 종교와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론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 신앙인은 (고유한) 그리스도교와 정치, 그리스도교와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그리스도교 가운데 가톨릭이 있고, 그 가톨릭 가운데 로마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이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라면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정치,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현실은, 적어도 필자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가톨릭 교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대중매체를 접했는지, 어느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 어느 경제적 이념을 따르는지, 그 기준과 잣대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주장할 뿐이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심각한 골다공증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도 뼈에서 칼슘 성분이 모조리 빠져나간 완전한 골다공증, 그래서 겉으로는 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질 위험이 있는 상태 말이다. 성경과 가톨릭 신앙과 교리와 제도와 가르침 같은 것이 철저하게 빠져나가고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교우들 가운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그리고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바탕으로 교회의 현실 참여의 찬반 입장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세상 앞에 하나가 된 교회 필자의 생각이 막연하고 근거 없는 억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의 말씀처럼 정치참여 문제 때문에 천주교회가 분열했다면 앞으로 경제 문제 때문에, 문화 문제 때문에, 국가 문제 등 무수히 많은 문제들 때문에 그렇게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분열로 그칠까? 상호 단죄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단죄하면 가톨릭 좌익교회, 가톨릭 우익교회, 가톨릭 보수교회, 가톨릭 진보교회, 그렇게 돼야 하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심각한 골다공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면 그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필자 개인으로는 몇 가지 원인을 꼽고 싶다. 우선 성경의 철저한 사유(私有)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공동체, 첫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가 구체적인 역사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을 신앙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경을 공동체 대신 '나', 구체적인 역사 대신에 '마음'의 영역으로 환원시켰다. 둘째, '신앙'과 '삶'의 철저한 이질적 구별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 마음으로 믿고 성당에 가서 성사생활 하면 하느님께 은총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는 정도로 신앙을 제한하고, 가정과 문화, 경제와 정치, 사회와 환경, 곧 구체적인 삶을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그에 바탕을 둔 고유의 신앙체계와 교리와 교회제도에 대한 무관심이다. 신앙의 해를 기념했지만 고유의 신앙과 그에 따른 삶을 찾아보기 어렵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경제영역에서, 정치영역에서, 교육영역에서, 곧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톨릭 신앙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회의 책임, 특히 성직자의 책임이 크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그리스도인의 삶'(제3편)이,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가톨릭교회에는 사회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톨릭 신자는 얼마나 될까?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 가운데 그 내용을 아시는 분은 또 얼마나 될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cpbc2013.12.03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921_1.0_titleImage_1.jpg)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대림 교리 교안 끝판왕!’을 특집 주제로 △교사들이 꼭 알아야 할 대림 교리 △초등부ㆍ중고등부를 위한 대림 시기 교리 교안 △장애아부를 위한 대림 시기 교리 교안 등을 담았다. ‘본격 조명 한국의 순교자’는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동정 부부 유중철ㆍ이순이를 다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가톨릭 비타꼰‘함께 느낌 : 바스락’에서는 △상봉이와 종혁이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삶 등을 실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영화와 미술은 각각 ‘아무르’(2012년)와 ‘마릴린 먼로 두폭화’(앤디 워홀 작)를 소개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경향잡지경향 돋보기는 ‘탈핵,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를 주제로 △탈핵을 해야 하는 이유 △핵 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탈핵으로 가는 길 등을 다뤘다. ‘순례, 알고 가면 더 좋은 성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스탄불에서 만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교회와 역사‘나의 신앙과 삶’은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역사와 굴곡을 함께한 이문수 수녀의 구술을 정리했다. ‘연구동인회 사적지 순례’는 열 명이 순교한 제물진두에 세워진 순교 기념 경당과 최양업 신부 가족 거주지 등을 둘러본 순례기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그물소식은 ‘포콜라레 운동의 첫 번째 소도시 로피아노 설립 50주년’을, ‘거룩한 모험’은 마지막 순간까지 공동 성덕을 살았던 3명의 포콜라리노들의 삶을 소개했다. 포콜라레 영성으로는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제목으로 죽음과 사별에 대한 끼아라 루빅의 묵상 글들을 게재했다. (마리아사업회/3000원)▨레지오 마리애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 △아빠, 아버지 △레지오의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의 본질 등이다. ‘세상 속의 교회 읽기’는 성 체칠리아가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 된 사연을 소개했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말씀지기영한 대역 매일 묵상집.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 신부에 대해 설명하고, 영성 에세이는 △영적인 싸움과 성령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세 가지 방법을 게재했다. (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몰려드는 새 신자,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주제로 △교황님 방한 이후 새 신자 맞이하기 △일어나, 너 걸어라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신 교황님 △친교의 본당 공동체 구현, 소통에서 답을 찾다 등을 실었다. 원로 사제로 수품 50주년을 맞은 서공석(부산교구) 신부를 만났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생활성서‘샬롬, 팔레스타인!’을 특집으로 △이스라엘이 나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간추린 역사 등을 다뤘다. 소설가 ‘신경숙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때로 어떤 나쁜 일들도…’를, ‘양승국 신부의 기도 레슨’은 ‘착한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를 소개했다. (생활성서사/3900원)▨성서와함께새로봄에서는 ‘치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를 주제로 △치매와 동행하는 법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적 치매 등을 담았다.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주제는 ‘창조와 해방의 의미로 본 안식일’이다. (성서와함께/3000원)▨소년‘제19회 박홍근 아동문학상’을 특집으로 수상 소감(최명표)과 심사평(엄기원)을 실었다. 만화로 만나는 우리 시대 성인은 ‘용감한 목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이며, ‘아름다운 성지’가 찾아간 곳은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이다. (가톨릭출판사/4000원)▨야곱의 우물표지 이야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정년퇴임 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꿈과 희망을 전하는 김청자(아녜스)씨를 만났다. ‘교회와 사회’는 ‘철새 배려 없는 람사르 습지’를, ‘바오로의 선교 여정’은 ‘터키 중앙 고원 지역에서의 복음 선포’를 다뤘다. (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위령성월을 맞아 ‘죽음, 죽음 준비, 그리고 삶’을 특집으로 △나의 죽음을 마주 대하기 △진실로 진실로 △청소년 청빈 캠프에서 쓴 버킷리스트 등을 실었다. ‘우리 신부님 최고’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정대웅(서울 석관동본당 주임) 신부를 소개했다. (미션3000/3500원) 남정률 기자 cpbc2014.10.29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베드로와 바오로’를 특집으로, △베드로와 바오로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베드로, 바오로 신부의 치열한(?) 대리전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상 대화 등을 다뤘다. 로마통신에서는 제4회 세계 이민과 난민의 날 교황 메시지를 게재했고, 교리 도움 자료로 교리 퍼즐과 예수성심성월 교안을 소개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가톨릭 비타꼰‘교황님 환영합니다’에 △안명옥 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교황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 △이야기 성 프란치스코 등을 실었다. 비타꼰 인간극장에서는 한국에 온 지 14년 된 아프리카 앙골라 출신 에밀리아 수녀를 소개하며, 앙골라와 한국에서 수도자로 살며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경향잡지세월호 참사에 대한 강우일 주교의 특별기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을 게재했다. 경향 돋보기에서는 ‘보통사람’을 주제로 △‘보통사람’이란 말을 애용하는 사회 △지자체 선거와 보통사람 △진짜 보통사람을 위한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등을 다뤘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그물‘북한이탈주민’을 특집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삶을 소개하고 각 지역 공동체 신자들이 북한이탈주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담았다. 책머리에서는 예수성심성월을 맞아 우리를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삶을 되짚어보고, 이것이 주는 의미를 실었다. (마리아사업회/3000원)▨레지오 마리애레지오 영성으로 다룬 주제는△약은 집사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모님 묵상 △레지오의 영성은 ‘순명’ 등이다. ‘우리는 지금’에서 △중국 천진한인성당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대전교구 장애인사목부 천사들의 모후ㆍ사랑의 샘 쁘레시디움 △수원교구 율전동성당 성모 성심 꾸리아 등을 소개했다. (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말씀지기매일 복음 말씀을 영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싣고, 복음과 관련해 묵상할 수 있는 이야기도 영어와 한국어로 게재한다. 영성에세이에서 △그리스도, 우리 믿음의 중심 △그리스도는 당신 마음속에 계십니다 등을 다뤘다. (가톨릭출판사/3000원)▨사목정보‘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를 특집 주제로 △사제란? 그 본질과 존귀함 △다른 나라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삶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삶과 신앙 △평신도들은 사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사제의 완덕과 복음 말씀 등을 실었다. 사목현장으로 ‘청소년을 돕는 착한 사마리아 청소년-대구대교구 YHY’를 소개했다. (미래사목연구소/1만 원)▨생활성서‘우상, 신앙의 걸림돌’을 주제로 △누구를 위한 신앙인가 △불이익을 각오할 수 있는 믿음 △SNS에 갇힌 사회 △내가 만든 하느님, 이데올로기 △우상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법 등을 다뤘다. ‘꿈이 있는 세상’에서 상처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며 참교육을 실천하는 광주광역시 돈보스코학교를 소개했다. (생활성서사/3900원)▨성서와함께전례 속 성경 한 말씀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를,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에서는 ‘대홍수와 노아의 계약’을 다뤘다. ‘프란치의 영화 피정’이 소개한 영화는 ‘한나 아렌트’(2012)이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기도로 성 암브로시오의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안겨 주소서’를 실었다. (성서와함께/3000원)▨소년세계 가톨릭교회 소식으로 요한 23세,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시성식과 두 교황의 삶과 신앙을 소개했다. 한국 가톨릭교회 소식으로는 27~29일까지 김포 한국가톨릭문화원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1회 가톨릭 어린이 영화제를 다뤘다. (가톨릭출판사/4000원)▨야곱의 우물표지 이야기로 비폭력대화 전문가 이윤정(요안나)씨를, 교회와 사회 주제로 ‘부활보다 십자가’를 다뤘다. 신앙생활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사연을 소개하는 ‘지팡이’에서 신앙의 힘으로 지독한 알코올 중독을 이겨낸 우주정(베라노)씨의 일화를 담았다. (바오로딸/2800원)▨참 소중한 당신‘신앙의 프런티어’로 하느님 사랑 안에서 방송과 사업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이기상(야고보)씨를 만났다. 5대째 천주교 신자인 집안에서 자란 그는 당시에 생소했던 방송 VJ분야를 개척하고, 지금은 레스토랑 CEO로 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영화에 비친 세상’에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인사이드 르윈’(2013)을 소개했다. (미션3000/3500원)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백영민2014.06.05

안동교구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이야기해요」인기 비결은?성경 말씀과 놀며 하느님 체험 이끌어'오병이어 모임' 회원들과 남상우(오른쪽) 신부가 최근 펴낸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이변이다.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이라고 해봐야 한 본당에 20명 안팎인 안동교구가 펴낸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얘기해요」 시리즈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사목국이 교구 내 초등부 학생용으로 만든 교재인데, '쉽고 재미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난 1년 동안 전국 15개 교구 100여 개 본당에서 구입 주문이 쇄도했다. 일본ㆍ미국ㆍ남미 등 한인본당에서 들어온 주문까지 합하면 약 2500권이 나갔다. 시리즈는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2013), 「…신약 속 인물 이야기」(2012), 「…구약 속 인물 이야기」(2011), 「…말씀 속 동물과 식물」(2010) 등이다. 이 교재는 주일학교 담당 신부와 수녀, 대학 교수, 주일학교 교사, 유치원 원장 등으로 결성된 주일학교 교재 연구단체 '오병이어 모임'(담당 남상우 신부)에서 내놓았다. 오병이어 모임은 2002년부터 '내수용'으로 교재를 만들어오다 2012년 발간한 「신약 속 인물 이야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수출용'으로 전환, 해외 한인본당 어린이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교재 인기 비결을 알아본다. ▶재미있고 쉽다 교재 그림과 내용이 흥미롭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림을 크게 썼다.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다는 평가다. 단원을 △말씀을 공부해요 △말씀을 생각해요 △말씀과 놀아요 등 3단계로 단순하게 구성한 점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감각적 매체를 자주 접하는 터라 설명이 길면 금세 싫증을 낸다. 「하느님과 얘기해요-말씀 속 미사 이야기」를 예로 들면 첫 번째 이야기(단원)에서는 루카복음(14,16-23)을 읽는다. 그 다음은 말씀에 관한 퀴즈를 푸는 단계(말씀을 공부해요)다. 그리고 그 구절이 무슨 뜻인지, 미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말씀을 생각해요)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미사 참례 스타일을 찾는 보드게임(말씀을 놀아요)을 즐긴다. ▶학년 통합형 교재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학년 통합형' 교재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전학년생이 사용할 수 있다. 대도시 본당 주일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학년 별로 반이 편성된다. 학년별 교리교재는 세분된 만큼 특화된 교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일학교 학생이 20명 남짓한 시골 본당에서는 학년별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안동교구가 직접 주일학교 교재를 펴낸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분량을 '확' 줄였다 「하느님과 얘기해요」는 주일학교 현장의 요구를 발 빠르게 반영해 단원 수를 줄였다. 일반 교재가 1년에 25개 과로 구성돼있는 반면, 이 책은 12개 과로 절반 이상 줄였다. 사목국 정미영(마리아 막달레나) 수녀는 "입학과 졸업, 방학, 첫 영성체 등으로 교리수업을 못할 때가 많다"며 "일반 교재를 사용하면 책을 다 못 배우거나, 1주에 몇 과씩 배워야 하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잃는다는 의견이 많아 분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가르치기 쉽다 교리교사들 부담을 덜어준 점도 인기 비결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복음을 읽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놀 수 있게 지도하면 된다. 교안은 인터넷 다음 카페(http://cafe.d aum.net/FiveTwo)를 통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고, 교사들끼리 교안을 공유할 수도 있다. 교구 사목국 주일학교 담당 남상우 신부는 "주일학교 교재를 자체 발행하는 교구는 서울ㆍ대구ㆍ의정부 등 4개 교구인데, 매년 새 교재를 발행하는 교구는 안동교구뿐"이라며 "주일학교 교사를 찾기 어려운 농촌지역에서는 통합교육이 가능한 이 교재의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이어 모임 회원이자 주일학교 교사인 한경애(데레사, 상주 자연어린이집 교사)씨는 "아이들이 교재를 읽으면서도 '어서 놀아요(3단계) 하자'고 말할 정도로 좋아한다"며 "성경 안에서 대화하고 웃는 동안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교재"라고 말했다. 문의: 054-858-3114, 교구 사목국 이힘 기자 lensman@pbc.co.kr퇴사자22013.02.05

신앙의 해, 교육ㆍ신심운동 활발서울 송천동본당, 성경ㆍ교리서ㆍ문헌 공부에 주력송천동본당 신자들이 미사에 앞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고 있다. 평일인 15일 오전 10시 미사를 15분 앞둔 서울 송천동본당(주임 이찬일 신부) 대성전. 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이 하나 둘 성전에 들어설 시간이지만, 성전에는 이미 100여 명의 신자가 앉아 「가톨릭교회 교리서」 읽기에 여념이 없다. 사순 기간 계속되는 교리서 읽기는 독서봉사자가 교리서를 소리 내어 읽고 신자들이 눈으로 따라 읽는 방식이다. 교리서를 눈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제가 그날 읽은 교리서 내용을 강론과 미사 후에 신자들에게 쉽게 풀어 전달하고 있다. 예비신자도 아닌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공부하는 이유는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의 기초를 다지고 주님께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다. 2013년 사목목표를 '신앙으로 함께 나아갑시다'로 정한 본당은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을 목표로 다양한 교육과 신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당은 성경 이어쓰기 봉헌(1월)을 시작으로 올 한해 △교황 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 읽기(2월) △「가톨릭교회 교리서」 읽기 (2~3월) △기도학교(3월) △성경 그룹공부(3월) △가톨릭 사회교리학교(6~7월) △참생명학교(11월)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본당은 지난 1월 「성경 매일 쓰고 묵상하기」 수첩을 제작해 신자들에게 나눠줬다. 신자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기억에 남는 구절을 수첩에 적어 묵상한 뒤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서해석(클라라, 65)씨는 "15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예비신자 시절 배웠던 교리를 다시 익히며 교회 가르침을 되새기고 있다"면서 "본당에서 실시하는 여러 교육과 기도ㆍ묵상 운동이 신앙의 해를 뜻깊게 보낼 수 있는 데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이범석(요셉, 21)씨는 "매일미사 참례와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신앙과 생활을 이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찬일 신부는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성경을 읽는 것은 물론 교회 전승이 담긴 교리서와 문헌을 익혀야 한다"며 "성경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만나고, 교회와 함께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은총의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cpbc2013.02.19
![[복음이야기] (24) 대사제와 사제들(상)](//cpbc.co.kr/CMS/newspaper/2014/07/rc/520507_1.1_titleImage_1.jpg)
[복음이야기] (24) 대사제와 사제들(상)이스라엘 전통의 옹호자, 민족의 양심 역할 이스라엘 왕조시대 예루살렘 성전에는 2만여 명의 사제가 활동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데 꼭 필요한 중개자요 제례의식의 관리자인 사제의 지위는 존중되고 존경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제는 모세 시대에 탄생하고 왕정시대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면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사제의 역할은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후 더욱 커졌다. 사제는 이스라엘 전통의 옹호자로서 민족의 살아있는 양심의 역할을 했고, 유다교는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배경과 제도가 되고 또한 존재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제 집안이라 해서 모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제는 흠 없는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여야 했다. “너희 후손 대대로,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자기 하느님에게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오지 못한다. …몸에 흠이 있기 때문에 그는 휘장으로 오거나 제단으로 다가와서 나의 이 거룩한 곳들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레위 21,16-23). 이 율법에 따라 하스모네아 왕조의 히르카노스는 귀를 베인 당일로 대사제직을 내놓아야 했다.사제로 선출되면 율법에 따라 세밀한 축성 예식을 거쳐 성별됐다. 성경은 사제 성별과 임직 예식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사제 임직자는 몸을 정결하게 물로 씻은 후 흰옷을 입고 머리에 성별 기름을 발랐다. 그런 다음 속죄 제물로 바칠 황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끌고 와 도살하기 전 안수를 하고 모두 번제물로 바쳤다. 주례 사제는 임직식에 쓸 두 번째 숫양의 피를 임직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바른다. 그러면 임직자는 굳기름과 떼낸 양의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누룩 없는 과자 하나와 기름을 섞어 만든 빵 과자 하나, 부꾸미 하나를 놓고 그것을 손으로 흔들어 바친 후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연기로 봉헌했다. 이것이 구약의 사제서품 예식이다(레위 8장). 대사제의 축성 의식은 일반 사제의 성별의식보다 훨씬 장엄하고 화려했다. 대사제에게 부어지는 기름은 최상의 올리브 열매에서 짜낸 것으로 값비싼 향료를 섞어 극히 향기로웠다. 율법에 따른 희생제는 7일간 바쳐졌다.대사제는 율법상 순결을 옹호하는 최고 책임자이므로 엄한 규율을 지켰고 과부나 이혼한 여인, 또 몸 파는 전력을 가진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죽은 짐승의 고기는 일체 먹을 수 없었고, 성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포도주를 마실 수 없었다. 그리고 시체를 멀리해야 했고, 수염은 한 오라기라도 깎아서는 안 됐다. 대사제의 옷은 화려했다. 일상복은 속옷을 입고 흰옷에 넓은 허리띠를 세 번 감고 삼각 모자를 쓴 간소한 차림새다. 성무를 집행할 때는 수놓아 뜬 속옷과 에폿, 가슴받이, 겉옷을 입고 두건과 띠를 했다. 가슴받이에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는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다(탈출 39장 참조). 대축제 때에는 두건 대신 ‘주님(야훼)께 영광’이란 글이 새겨진 삼중 금관을 썼으며 대속죄일 때에는 흰옷만 입었다. 호화로운 이 대사제의 옷은 로마인에게 빼앗겨 안토니아 요새에 보관했다가 대축제일 때만 허가를 받아 입을 수 있었다. 대사제는 온갖 특권을 누렸지만, 지위가 낮은 사제들은 성전에서 생활할 수 없었고 희생으로 바친 짐승의 고기나 빵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율법에 따라 부정을 범해 죄지은 사제에게는 특별한 형벌이 가해졌고, 사제의 아내나 딸로서 품행이 바르지 않는 이는 엄한 채찍을 받았다.모든 사제는 성소 안에서 맨발로 다녀야 했다. 성소 바닥은 정결례 목욕물이나 희생 제물의 피를 씻은 물로 항상 젖어 있어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늘 노출돼 있었다. 이스라엘의 사제들은 레위 지파에서 배출됐다. 그러나 최고 제관인 대사제의 직무는 모세의 형인 아론과 그 일족에게 맡겨졌다. 기원전 10세기 다윗왕 시절 아론의 후예로 엘아자르의 자손인 차독(공동번역 성경은 ‘사독’)이 대사제로 임명돼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위에 올린 후(1열왕 1,39) 그 일족은 기원전 2세기 초까지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 지위를 독차지했다. 이들은 차독(사독)의 후예들이라 해서 ‘사두가이’라 자칭하며 성전 대사제직을 누렸고, 레위인들은 이들의 복사 역할밖에 못 했다. 이처럼 소수 가문에서 사제들이 선출되면서 자기를 뽐내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 폐쇄적 특권의식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그들은 레위인들과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됐다.그러나 예수님 시대 사두가이파는 혈통과 역사로 볼 때 차독의 후예라고 볼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마카베오 가문의 유다 독립전쟁 승리 후 비 차독 가문에 속한 하스모네아 왕조가 대사제직을 차지했고, 이후에도 차독 일족은 대사제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사두가이파라는 말은 이후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과 사상적으로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변했다는 것이다. 로마 지배를 받던 예수님 시대 대사제는 유다인의 눈에는 위엄이 넘치는 중대한 인물이었지만 로마인들에겐 한낱 정치적 이용 수단에 불과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7.22
![[저자와의 만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펴낸 소프라노 김청자](//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8026_1.0_titleImage_1.jpg)
[저자와의 만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펴낸 소프라노 김청자아프리카 말라위 선교 봉사 생생히 담아 말라위 카롱가의 아이들과 함께 한 김청자씨. 에이즈로 사망한 부모가 많은 이곳에는 고아가 많다. 김씨는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며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간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소프라노 김청자(아녜스, 70)씨가 책을 펴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지금, 여기’가 왜 아프리카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회고록이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 하느님 체험에 대한 고백록이다. 10월 28일 서울 명동 바오로딸서원에서 만난 그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처럼 뜨거웠고, 손주를 품에 안은 할머니처럼 따뜻했다. 일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책 이야기는 어느덧 신앙체험 나눔이 됐고, 인터뷰는 어느새 피정이 됐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서 6장 8절이 그를 아프리카로 이끌었다. 그는 “그 성경 구절이 마음에 꽂힌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2005년 남아공을 여행할 때였어요. 주일에 케이프타운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그날 독서 말씀 중에 그 구절이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 저를 보내십시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죠. 미사 내내 울었어요. 그러면서 확신이 생겼죠. 내가 있을 곳이 이곳 아프리카라는 걸요. 주님께서 부르시는 곳이 이곳이라고요.”이후 그는 아프리카와 한국을 오가며 아프리카 선교지를 돕기 시작했다. 그가 한 번씩 아프리카를 드나들 때마다 병원엔 침대가 마련됐고, 마을엔 우물이 생겼다. 눈이 맑은 아프리카 아이들과 살을 맞대고 부대끼는 생활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은 그를 엄마로 불렀다. “2010년 집을 팔고 한국생활을 정리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 마을로 이사했죠. 집을 판 돈 2억 원으론 후원회를 만들었고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진 것을 다 내놓고 나니 홀가분했어요.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알기에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고요. 단 한 번도 아프리카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그가 사는 말라위는 인구가 1300만 명으로 그중 70%가 청소년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평균 수명이 마흔밖에 되지 않아 어른은 적고 아이들이 많은 나라다. 그는 말라위에서 청소년센터를 짓고 아이들 교육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음악을 가르친다.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말라위 전국 음악콩쿠르에서 깜짝 1등을 하면서, 그가 세운 음악학교는 단숨에 말라위 명문으로 떠올랐다. “사실 아프리카에선 음악을 가르칠 생각이 없었어요. 고아들을 돌보는 데 더 힘을 쏟고 싶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음대 교수를 지낸 선교사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음악을 가르쳐 달라며 2시간을 걸어온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 그 절실함이 어떤 건지 제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도 했고요.”현재 그가 세운 음악학교 출신 학생 3명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성악과 색소폰, 트럼펫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내일 하느님께서 날 데려가신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타는 듯한 더위, 믿었던 이들의 배신,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 인간적 외로움 등 아프리카 생활이 늘 행복하고 감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좌절과 아픔도 모두 하느님 뜻이고 결국엔 은총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어쩔 땐 다 접고 다시 한국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하느님께선 용서와 이해를 알려주시고, 제가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아왔는지를 깨우쳐 주시죠. 이곳에서의 생활은 끝나지 않는 피정이랄까요. 아프리카는 내가 스스로 들어간 좁은 문이에요.”그에게 아직 더 할 일이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앞으로 음악대학, 기숙사, 도서관, 초등학교, 성당, 병원을 지을 계획이라며 원대한 포부를 꺼냈다.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보니 어쩐지 불가능해 보이지가 않는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