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2321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사순 제4주일(요한 9,1-41)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순시기를 잘 지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50년을 함께 살았던 노부부가 '스피드 퀴즈'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맞춰야 할 문제는 '천생연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멈, 우리들의 만남은 무엇이지?"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네 글자로 하면 뭘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평생웬수."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웬수'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평생 할머니 속을 썩였던 할아버지가 목에 사레가 들려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구급차를 불렀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약간의 기운이 남아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평생 말을 듣지 않더니, 의사 말도 듣질 않네! 의사 선생님이 죽었다고 하잖아!" 눈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보려 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조상의 탓도 아니고, 본인의 탓도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사람이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되는 것도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가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신학적으로 합당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와 같습니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으면 먼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왜 화살을 쏘았는지를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에 맞은 사람은 독이 온몸에 퍼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너희는 사람들의 외모와 능력,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지만, 야훼께서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신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성에 갇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보지 못하고, 편견과 독단과 아집과 이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나 자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몸이 있어도 참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요구하십니다. 참으로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십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봅니다. 참으로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듣지 못해서 눈과 귀가 있으면서도 그릇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 욕하고 비난하며 침을 뱉고 인격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려고 왔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거짓과 가식과 허영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보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참된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희망과 평화, 진실과 사랑이 한데 어울려 참된 빛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전에 저 땅속에서 쉼 없이 양분과 물을 찾고 있는 뿌리를 볼 수 있다면, 깨끗한 거리를 보기 전에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볼 수 있다면, 일등에게 찬사와 축하를 보내기 전에 꼴등에게 위로와 격려를 먼저 할 수 있다면, 용서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이미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참회와 절제, 자선의 사순시기도 벌써 반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난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보기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남은 사순시기를 지냈으면 합니다. cpbc2014.03.25
![[사람들/인터뷰]프로스페로 그렉 추기경, "평신도들, 성경 곁에 두고 가까이 하길"](//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531_1.0_titleImage_1.jpg)
[사람들/인터뷰]프로스페로 그렉 추기경, "평신도들, 성경 곁에 두고 가까이 하길"수도회 연천 수도원 및 성당 축복식, 수도회 사제서품식 참석차 방한신약과 4세기 교부학 연구에 몰두...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성경은 결코 사제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시대 언어로 씌어진 주석서나 해설서 등을 참고하며 평신도들이 성경을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읽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삶에 내면화하고 실천하는데 힘쓰기 바랍니다." 우리 시대의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교부학자로 꼽히는 프로스페로 그렉(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몰타관구) 추기경이 6일 내한,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한국지부 사제서품식과 연천 수도원 및 성당 축복식 등에 참석했다.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터라 사제서품식과 축복식에 참석하면서 '사목'을 체험하게 됐다는 그렉 추기경은 "사목자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했다"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그렉 추기경은 1953년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이듬해 교황청 성서대학(Pontificium Institutum Biblicum)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신학원과 라떼라노대학, 그레고리오대학, 성서대학 등에서 교수로 살았다. 또 1970년에는 같은 수도회 트라페 신부와 함께 대학원 과정인 교부학 대학(Instituto Patristico Augustinianum)을 설립, 9년간 학장으로 지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자문위원, 교황 신학 아카데미 비서로도 활동했다. 유흥식(대전교구장) 주교, 노성기(광주가톨릭대 총장) 신부, 정승익(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 등 국내 성서학자나 교부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제자다. 이처럼 성서학과 교부학 연구에 몰두한 공로로 그는 지난 1월 87살 고령의 나이에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됐다. "평생을 신약성경 해석을 위주로 한 성경해석학(Hermeneutics)과 사도시대 이후 2~4세기 교부들을 중심으로 한 교부학(Patristics) 연구에만 묻혀 살았습니다. 이를 테면 평생을 성서학과 교부학 분야 제자들을 길러내느라 '간접선교'만 하면서 산 셈입니다." 그는 "1971년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교부학 대학인 아우구스티니아눔을 설립해 지금까지 석ㆍ박사만 300여 명을 배출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도 아우구스티니아눔에서 1주일에 두 과목씩 강의를 하는 그렉 추기경은 "아우구스티니아눔은 가톨릭뿐 아니라 성공회, 개신교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에게도 문호를 개방,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최고의 교부학 연구 및 교육의 전당으로서 자리매김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또 "우리는 4년에 한 번씩 연구결과물을 제시하고 있는데 최근엔 「성경과 도덕」을 출판했고, 2년 뒤에는 「성경의 영감과 진실」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가톨릭대 총장 박영식 신부님이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함께 활동 중이다"고 귀띔했다. 그렉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자국어 성경이 많이 보급됐는데도 평신도들에겐 아직도 성경이 전문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책으로 여겨지는 게 안타깝다"며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주석서나 해설서를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1925년 지중해 섬나라 몰타 태생인 그는 1943년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에 입회, 1950년 사제품을 받았다. 영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며 로마에서 성서학과 교부학을 가르치면서 「성서신학 연구 방법론」, 「성서신학 해석학」, 「신약성경 영성의 개요」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16일 출국.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9.18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5>이브 콩가르(중)](//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21_1.4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이브 콩가르(중)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1979~1980년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총 3권을 통해, 20세기 후반 성령론의 재발견 및 새로운 발전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책은 현대 성령론의 큰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며, 아직까지도 이 분야의 모범적 교과서로 손꼽히는 명저다. 성령론적 그리스도론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1982년 로마에서 개최된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발표에도 어느 정도 배경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발표된 교회 공식 문헌들은 성령에 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분리 불가능한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강조는 한편으로 성령론적 전망의 개진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주의' 관점을 보완해서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재확인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적 의미에서의 이른바 '성령 중심주의'의 출현을 경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대 신학의 흐름에서 성령론의 발전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나, 그 본질이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성령 중심주의'를 주창하는 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이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 '성령'에 관해서만 말하겠다는 식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성령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이루어진 성령론 발전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보다 더 넓은 성령의 구원 경륜을 말하는 일부 극단적 주장이 출현했고, 교회 교도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9항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존재가 아니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해 지적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0년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에서도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12항)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즉, 성령론이 그리스도론에 반대되거나 그리스도론을 대체하는 흐름에서 전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부터 이루어진 성령론의 재발견과 새로운 발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구원론적 의미를 삼위일체론적 차원에서 재숙고함에 있어 새로운 성령론적 성찰이 요청된다는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이 의도하듯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영으로서 보편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구원 사업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작용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보편적, 우주적 현존과 작용은 구원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유일회적 특수성과 맺게 되는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단일한 구원 경륜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옹의 이레네우스(130/140?~200/202?) 교부는 성자와 성령 곧 '하느님의 두 손'(the Two Hands of God)이라고 주된 저서 「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독일의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은 주된 저서 「예수 그리스도」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생명에 성령을 통하여 참여함"이라고 말함으로써 단일한 삼위일체적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불가분한 관계를 잘 설명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론은 반드시 그리스도론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론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이어야 한다고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이처럼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불가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는 현대 신학의 흐름과 분야를 가리켜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이라고 부른다. 성령 청원 기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총 3권은 '성령론'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은 저서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먼저 이 책의 제1권에서, 콩가르는 성령론의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개관을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한다. 즉, 구약성경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영에 대해, 또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님의 영에 대해 고찰하며, 이 '영' 개념이 신약성경을 거쳐 초대 교회에 이르러 어떻게 보다 분명한 위격적 차원의 '성령'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지를 잘 설명한다. 또한 중세의 전례 기도문 안에서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가 자리잡아가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2권과 제3권에서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제3권의 후반부는 성체성사에서의 '성령 청원 기도'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사실, 성령은 전례와 성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작용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해 '기념'(Anamnesis)하게 하며, 마침내 그분을 현존케 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는 거룩한 힘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성령 청원 기도'란, 성체성사의 전례 안에서 성령을 부르며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임하기를 청원하는 기도를 말한다. 견진성사에서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청하는 예식이 가장 핵심적이다. 사제로 서품되는 성품성사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성령의 임하심을 청하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안수 기도이며, 이 예식과 연결된 마지막 축성 기도를 통해 후보자는 비로소 사제로 서품되는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성령 청원 기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축성/기념과 더불어 가장 핵심 부분을 구성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처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체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성령의 이름을 부르며, 봉헌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해주시도록 기원하는 '축성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성체와 성혈의 축성과 거양 이후에, 다시 같은 성령을 부르며 교우들의 일치를 기원하는 '일치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을 우리 안에 직접 받아 모시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몸을 이룸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의 신비체'(the mystical body of Christ)인 '교회'를 비로소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비이며, 또한 그 신비를 청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한 신학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며, 특히 교회의 성사와 전례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신비로운 현존과 활동에 대해 상세히 고찰해 본격적인 연구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교회론과 성령론을 연결시킨 통합적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교회론적 공의회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그저 단절적, 배타적 관점에서만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을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관점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시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의 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성사와 전례 등과 같은 '안을 향한 교회'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활동하시지만, 그 신비로운 현존과 작용은 교회의 가시적, 제도적 경계를 넘어 '밖을 향한 교회'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도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cpbc2014.02.25

청소년 사목의 디딤돌, 액션송 3집 나와서울 청소년국 중고등부, 12년 만에 발매… 보급용으로 본당 배표 예정박범석 신부(가운데)와 액션송 연구부를 비롯한 제작부원들이 3집 앨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담당 박범석 신부)가 지난 5월 '액션송(Action Song)' 음반 3집을 내놨다. 2001년 2집 발매 이후 12년 만이다. 액션송은 운율과 몸짓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와 율동'으로 이뤄진 기도다. 이번에 나온 3집은 판매용(1,2집)이 아닌 보급용으로, 교구 각 본당에 배포된다. 앞으로 본당 미사와 행사, 교사학교, 청소년 대표자 연수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8)', '주님과 함께 꾸는 꿈' 등 13개 수록곡은 △남녀노소가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음역을 일정 영역으로 제한했고 △반주자가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쉬운 화성을 사용했으며 △청소년이 지닌 취향을 고려하되 미사 전례에도 어색함이 없게 편곡했고 △성경 내용이 반영된 가사를 먼저 제작한 뒤에 가사에 어울리는 선율을 찾았으며 △전체 연주 시간이 3분 미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중고등부는 2011년부터 액션송 제작 연구팀을 꾸려 3집 작업에 들어갔다. 제작 과정에서 성음악 지침에 따라 가사는 주로 성경과 전례서에서 인용했고, 전례성가로서 합당한지 검증 작업도 거쳤다. 작년 6월 중고등부 교사 월례교육 때 500여 명 앞에서 제작 곡을 시연해 검증한 시도가 그것이다. 냉정한 평가가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두 곡을 제외하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곡을 만들어야 했다. 액션송 연구부원과 음반 제작 참여자는 모두 30여 명. 주일학교 교사, 광고음악 감독, 영상 음악 작곡가, 성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이들은 기도와 소통으로 더 좋은 곡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특히 연구부원 8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2시간 이상 공식 제작 회의에 몰입했다.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길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성경 말씀과 연결짓기 위해 회의는 늘 복음 나누기로 시작했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 주실까'를 생각하며 몇 번이고 가사 내용을 고민했다. 같은 선율도 여러 악기로 여러 사람이 불러보며 입에 잘 붙는지 고려했다. 자비로 녹음실을 마련해 생활성가 가수와 외부 초빙 가수들과 함께 곡을 노래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액션송에 수록된 가사들은 적어도 10번 이상 수정을 거치면서 다듬어졌고, 가사는 대부분 우리의 물음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 대화구조로 이뤄졌다. 박범석 신부는 1년 6개월 동안 연구부원들이 심혈을 다해 작업한 3집 액션송이 "청소년들에게 영적 목마름을 채워줄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며 새 노래집이 청소년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알리는 디딤돌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 한편, 중고등부는 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청소년회관 경당에서 액션송 연구부원과 제작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액션송 제작팀 해단미사를 봉헌했다. 성가대와 밴드용 악보는 올해 안에 편곡해 만들 계획이고, 액션송에 맞춘 율동집도 추후 배포될 예정이다. 액션송은 누리방(www.foryouth.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MR 및 악보 문의 : foryouth@for youth.or.kr 강성화 기자 퇴사자22013.06.11
![[생활속의 복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711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연중 제7주일(마태 5,38-48)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말을 탤런트 김혜자씨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특히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며칠 전 발톱을 깎다가, 깊이 깎는 바람에 걸을 때 불편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어느 한 곳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온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오늘 특별히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지치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센 폭풍우 뒤에 따사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어둠을 뚫고서 새벽이 오듯이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들 모두의 시름과 고통을 씻어주는 한줄기 빛으로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러한 고통과 시련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인 레위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형제와 자매의 고통과 시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거룩하시니 여러분도 거룩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모두 하느님께 속해 있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언제나 바쁘다고 합니다. 재난과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의 많은 구호 단체들은 자신의 일처럼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사고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한 가족이라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바람과 해님'이란 동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동화이지만 어릴 때 제게는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의 삶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오직 자신만을 아는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 17번째 결혼기념일 선물로 예비신자 교리 신청서를 적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런 불평 없이 17년 동안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시부모님을 극진히 섬기며, 아이들을 잘 키워주는 아내가 고마웠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신자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남편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뭉클했습니다. 17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했던 그 자매의 정성도 놀라웠지만, 완고한 남편을 부드러운 남자로 변화시켜 주신, 그래서 지금은 구역장 일도 열심히 하는 그 남편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힘에 놀랐습니다. 온갖 사건과 사고의 틈바구니에서, 마치 바위틈에 여린 꽃이 피는 것처럼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병들고 아픈 아이들을 입양해서 기르는 가족도 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장학기금으로 기부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30년 동안 참고 참아서 드디어 남편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린 분도 있습니다. 자칫 어둠에 가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논리에 가려서 아름다운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묻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결국 어둠을 이기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신앙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오른 뺨을 때리면 다른 쪽도 대 주십시오. 누군가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십시오. 누군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cpbc2014.02.18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설립자 기꼬 아르궤요씨 평화방송 TV 특별대담아시아 복음화, 성령 통해 하느님 사랑 현실화해야 기꼬 아르궤요씨가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대담하고 있다. 초대교회 공동체 운동으로 불리는 ‘네오까떼꾸메나도(Neo-catecumenato) 길’이 21세기 새로운 복음화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1968년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 알타스 판자촌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2008년 국제 사도직 단체로 교황청 승인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는 120여 개국에서 약 2만 개 공동체가 활동 중이며 한국에도 서울ㆍ인천ㆍ부산ㆍ마산교구 등 34개 공동체가 형제적 친교를 이루며 성숙한 신앙을 기르고 있다.40여 년 전 이 운동을 시작한 스페인 출신의 기꼬 아르궤요(75)씨가 최근 한국을 방문, 평화방송 TV와 특별 대담을 했다. 한홍순(토마스)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한 이 특별 대담을 정리, 소개한다. 평화방송 TV(Sky 평화 413)는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정신과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이 대담을 △9일 오전 8시 △16일 오전 8시 2회에 걸쳐 방영한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124개 나라에서 2만여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대학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뒤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유다인 학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세상의 불의한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릴 정도로 내적 갈등을 겪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가정부가 찾아와 도와달라고 제게 울며 사정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이 아이들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말려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를 돕기 위해 여러 차례 가정을 방문하면서, 주님께서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아들에게 매 맞는 여성, 강간피해자, 출소자 등을 보며 왜 하느님께서 이러한 처참한 일들을 허락하시는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습니다. 그분은 몸소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지요. 꼴찌들 안에 못 박혀 계시는 그리스도를 말입니다. 그 후로 가난한 집시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에서 지냈습니다. 가지고 간 것은 기타와 성경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들은 저를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판자촌에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하느님 말씀과 전례, 공동체에 기반을 둔 모임이었지요. 이것이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성직자들에게 비판도 받았지만, 조금씩 복음화 도구로 인정받으며 로마 본당을 중심으로 퍼졌고 지금은 이탈리아와 캐나다, 오스트리아, 영국 등 124개국에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함께하고 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현시대와 사회에 유효한 가톨릭 양성의 여정”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왜 교황님은 이렇게 정의하셨는지요. 현대에 이런 양성과정이 바람직한지요.“현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사사목에서 복음화사목으로 건너가는 일입니다. 본당 사제가 미사와 성체성사, 세례성사 등을 통해 신자들의 신앙을 돌보는 것이 성사사목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성체성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근본적 복음의 명령을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외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일은 성당 건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작년에 출간된 「케리그마」는 26개 언어로 번역돼 많은 이들이 읽고 있습니다. 책을 쓰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며 왜 ‘케리그마’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케리그마(kerygma)는 그리스말로 ‘복음, 기쁜 소식 선포’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케리그마를 통해 믿는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는 윤리, 철학이기에 앞서 하나의 소식입니다. 케리그마에는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매일 이 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 안토니오 카니사레스 요베라 추기경님은 제가 케리그마에 관한 책을 쓰길 바라셨고 저는 교회를 섬기고자 그 뜻을 따랐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제3천년기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시간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한국교회가 이 복음화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하느님께서는 아시아 복음화를 준비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제가 한국을 찾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로 무신론적 분위기를 겪고 있는 몇몇 나라들을 보면 아시아 복음화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그래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도 아시아를 위한 사제 양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모임에서는 젊은이 200여 명이 사제 성소를 지망했습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세례’를 통해서입니다. 세례는 우리에게 성령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새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는 내 제자가 될 것이다. 너희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세상이 믿을 것이다.’라는 복음 말씀이 이루어진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가정공동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젊은이들은 참된 것을, 진리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젊은이들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주는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정말로 악마가 공격하는 것은 가정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구원합니다. 물론 생명을 열고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가정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부행위는 생명을 향해 열고 있어야 한다’는 바오로 6세 교황님 뜻에 순종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유럽에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이슬람교도들보다 더 많은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세계 곳곳에 가족 단위로 선교사를 파견하며 복음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 초대 공동체처럼 사는 것은 정말 큰 선물입니다.”-한국교회는 순교자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올해 8월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피와 신앙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수많은 한국 순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바치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전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피 섞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셨던 것이지요.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어 순교자들을 시복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더불어 순교자 시복은 한국교회에도 쇄신의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정리=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평화신문2014.07.02
![[공동체]가톨릭교회 첫 성경 학습관 생겼다](//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007_1.0_titleImage_1.jpg)
[공동체]가톨릭교회 첫 성경 학습관 생겼다17일 서울 정릉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본원서 이세의 집 및 영원한도움의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 가져 이기락(오른쪽) 신부와 김영남 신부가 이세의 집ㆍ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을 마친 뒤 학습관에 들러 예루살렘 현지 지형을 복원한 모형을 보며 가톨릭성서모임 말씀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경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168.59㎡(51평) 규모 성경 학습관이 가톨릭교회에 생겼다. 성경의 배경을 이루는 팔레스티나와 주변 지역을 이스라엘 현지에서 확보한 지도와 사진ㆍ유물 모형ㆍ컬러 도판ㆍ아이패드 등을 통해 시기별로,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학습 전시관이다. 가톨릭성서모임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온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총원장 조현영 수녀)는 17일 서울 정릉3동 본원에서 조규만(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 주례로 이세의 집과 그 안에 마련한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을 가졌다. 이세의 집 이름은 올해 선종 25주기를 맞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설립자이자 제2대 평양지목구장인 존 에드워드 모리스(John E.Morris, 1889~1987) 몬시뇰 한국 이름인 '목이세'에서 따왔다. 지난해 4월 공사에 들어가 1년 2개월 만에 축복식을 가진 이세의 집은 지하 1층ㆍ지상 3층 건축연면적 2145.09㎡(650평) 규모로 지어졌다. 지하 1층은 그룹방과 식당ㆍ세탁실ㆍ기계실로, 1층은 피정자용 침실과 강당ㆍ사무실로, 2층은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와 학습관ㆍ경당으로, 3층은 수녀원으로 쓰인다. 냉ㆍ난방지열시스템을 채택,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설치비용의 2분의 1을 지원받아 친환경 건축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설계는 (주)디앤디건축사사무소(소장 김현주)에서, 시공은 (주)가가종합건설(대표이사 차선영)에서 맡았다. 특히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은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영적 힘을 얻는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경의 세계'를 주제로 한 학습관은 1관에서 기원전 3500년께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성경 전체를 개괄하는 지도와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2관에선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소개된다. 3관은 '하느님 현존관'으로 국내ㆍ외 성경을 전시, 성경의 세계를 돌아본 관람자들이 기도하는 분위기로 꾸몄다. 학습관은 하나를 이뤄 복음선포를 해온 가톨릭성서모임과 성서와함께ㆍ성서연구소 등 성경 사도직의 세 축을 이루는 단체들이 정성과 기도로 얻은 집이어서 더욱 뜻이 깊다. 조 주교는 축복식 강론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가톨릭성서모임을 통해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는지 모른다"면서 "하느님 말씀 안에서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도움의 성서 연구소에서 마련한 학습관이 큰 몫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축복식에는 조 주교를 비롯해 이기락(주교회의 사무처장)ㆍ김영남(가톨릭대 교수)ㆍ백운철(가톨릭대 교수) 신부, 총원장 조현영(데레사아마타) 수녀와 회원들, 가톨릭성서모임 말씀 봉사자들, 성서와함께 편집자들,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관계자 등 170여 명이 함께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6.19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7_1.1_titleImage_1.jpg)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사회교리, 지킬 교리로 그리스도인 실천할 교리 8일은 인권주일이고, 이날부터 한주간은 사회교리주간이다. 주교회의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게 살 수 있게 하려고 1982년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정했고, 2011년부터는 신자들이 '신앙인 사회생활의 지침'인 사회교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사회교리주간을 제정했다. 적극적으로 교회 가르침을 알고 사회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은 신앙인의 의무다. 사진은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신자. 백영민 기자 교회와 사회는 분리된 것인가 "왜 사제들이 정치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냐, 신자들 신앙에나 신경을 써야 하는 거 아니냐." 교회가 국정원 대선개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건설, 해고노동자 문제 등에 관해 목소리를 내면 적지 않은 신자들이 반대의 뜻을 밝힌다. 근래에는 자신들의 의견을 신문 광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사례도 늘었다. 한 일간지 9월 24일자에는 "어쩌다가 양들이 목자들을 걱정하는 천주교회가 되었습니까"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전직 국회의원과 언론인은 물론 교회 내 평신도의 중심이라 불리는 전ㆍ현직 평협 회장단과 임원, 교회 내 단체장 112명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발기인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뜻을 함께한 것이다. 이들은 개별 사제들 모임인 정의구현사제단은 물론 주교회의 공식 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에 대해서도 "편향된 사회이념을 신앙교리인 양 퍼뜨리는 현실이 지겹지 않으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자신들 주장은 "평신도의 현세질서 바로 세우기 의무와 국가에 대한 사명을 명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2장과 제5장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일부 사제와 수도자들의 반교회적이며 반국가적 행동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교회가 정치ㆍ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릇됨을 넘어선 반국가적인 행위일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지난해 사회교리주간 세미나에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 구절을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해석이 맞다면 신앙인은 정치 참여 수단인 투표도 포기해야 하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사회교리라는 용어가 주는 낯섦과 선입견으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사회교리를 신앙교리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십계명에 바탕을 둔 사회교리는 그 자체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외 없이 실천해야 하는 가톨릭교회 교리"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사회교리는 역대 교황의 문헌과 회칙, 교서, 권고 등을 담은 것으로,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통해 정치와 경제ㆍ인권ㆍ노동ㆍ평화ㆍ환경ㆍ생명 등 사회생활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복음적 시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올해 인권주일과 사회교리주간에 발표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담화 역시 이를 바탕으로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건설 등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했다. 이는 교회가 인간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보호ㆍ증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장동훈 신부는 "국책사업은 사회적 공론화와 해당 지역주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걸쳐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불법을 저지르고 현지 주민을 탄압하는 행위는 일방적 폭력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교회가 국책사업에 반대한다"고 해석하고 비난하기 전에, 잘못된 진행 과정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선 교회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교회는 교리를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신자들 역시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제들의 정치ㆍ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반대한다. 교리를 두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회교리 가르침을 담은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를 펴낸 황창희(인천가톨릭대 교수, 윤리신학박사) 신부는 성경을 큰 틀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교리 역시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 신부는 "사회교리 일부만을 골라 특정 상황에 맞춰 해석한다면 그 뜻이 곡해될 수 있다"며 "사회교리 중 정치 참여 부분은 교회가 정치 제도권 안에 들어가 일정 역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신부는 "사회교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를 들으면, 단순히 교회가 정치문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교회 가르침을 정확히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를 사제와 신자들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우려했다. 사회교리는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교회의 대화와 협력의 언어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사회교리가 제시하는 공동선 원리, 연대성 원리, 그리고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 같은 가르침들은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성전은 물론 세상 한가운데서도 신앙과 성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에 비춰 성찰하고 행동함으로써 신앙은 생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당시 사회적 논란인 노동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담은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했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소수 자본가의 생산수단 독점에 기인한다는 인식 아래 빈부격차와 노동자의 현실 개선을 위한 지침을 담은 첫 사회회칙이었다. 일각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인식과 흡사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태」는 사회교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초석이 됐다. 지금 한국교회는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해지고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교회는 교리를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사회ㆍ정치적 성향을 잠시 뒤로 하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교회 가르침을 바라보고 세상에 빛을 전하는 것은 결국 신자들의 몫이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cpbc2013.12.03
![[복음 이야기]<13> 유다인의 시간과 때](//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540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유다인의 시간과 때오전 6시부터 12시간을 하루로 여겨 이스라엘 백성은 태음력을 사용했다. "달은 제때에 맞춰 자리를 잡고 시간과 시대의 표징을 알려 준다"(집회 43,6). 유다인의 태음력은 1년 354일로 태양력보다 11일이 짧았다. 따라서 달과 계절 간 부조화를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그래서 지중해를 정복한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부조화를 없애기 위해 연력을 개혁, 한 해를 365일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태양력을 사용한 이집트에선 30일씩 12개월에 5일의 윤날을 첨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태양력을 채용할 수 없었다. 11일의 윤날을 달력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봄의 2월 즉 아다르와 니산 달 사이에 윤달 '베아델'을 넣었다. 이스라엘의 윤년은 1년 400일이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서기 29년이 이스라엘의 윤년이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를 지배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로마력을, 헬라인들은 마케도니아력을, 이집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은 알렉산더력을, 요르단 강 건너편 데카폴리스 지역에선 시리아력을,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력을 사용해 매우 혼란했다. 또 사해의 에세네파는 구약 요벨의 「희년」서에 따라 1년을 364일로 지냈다. 이처럼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여러 달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복음서에도 파스카 축제와 예수께서 행한 최후의 만찬 일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성찬례(최후의 만찬)를 제정하신 날을 무교절 첫날 저녁 즉 니산 달 14일로 보고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니산 달 12일이며, 14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해는 달로 나누어졌는데 율법학자 세 사람이 증인들을 불러, 달을 본 장소, 하현달의 크기, 지평선부터의 높이 등 세밀히 물은 다음 29일째 저녁 하늘에 초승달이 뜨면 7인 위원회 법정에서 새달을 선포하고 산꼭대기에서 봉화를 올려 백성들에게 이를 알렸다. 7일을 1주일로 정해 사용한 것은 유다력이 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다(창세 1장). 유다인은 창조의 7일을 1주의 원형으로 사용했고 7일째를 '하느님의 안식일'(사바트,Sabbat)로 정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유다인들은 주간의 일곱째 날인 이 '안식일'(오늘의 토요일에 해당)을 가장 거룩한 날로 지냈다. 그래서 그 전날을 '안식일 전날'(마르 15,42), 그 다음 날을 '준비일 다음 날'(마태 27,62)이라 부르고, 다른 날에는 서수를 붙였다. 이에 마태오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마태 28,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날'은 유다인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밤에 대한 낮(주간)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고 있는 세계인들은 공식적으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지만, 유다인은 '해가 지는 순간'을 그 날의 끝과 다음 날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예루살렘에서는 하루의 끝을 나팔로, 대축일에는 숫양의 뿔나팔로 알렸다. 유다인은 하루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라 표현했고, 아침ㆍ저녁 제물을 바치는 시간이 표준시간이 됐다(민수 28,4; 1열왕 18,29-36).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하루는 12시간으로 나눴다. 아침 6시를 0시로, 저녁 6시를 12시로 보았다. 이른 아침은 아침 6시이고, 3시는 오전 9시, 6시는 낮 12시, 9시는 오후 3시, 11시는 오후 5시, 오후 6시 이후는 저녁, 오전 6시 이후는 낮이라 했다(마태 20,1-10 참조). 시간을 구분하는 이 시제는 본래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했다. 헬라와 로마 문명의 영향으로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후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이 시제를 채용했다. 구약성경은 유다인들이 '아하즈의 해시계'를 사용했다(2열왕 20,9-11; 이사 38,8)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군영의 보초나 양 떼를 지키는 목자가 망을 보는 시간을 길이(更)로 나눴다(시편 90,4 참조). 로마인들은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후 하룻밤을 넷으로 나눈 '4경제'(四更制)를 통용했다. 1경은 약 3시간이었다. 마르코 복음은 이 4경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새벽'(마르 14,35)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녁'은 등잔불이 누런 불빛을 뿜을 때이고, '한밤중'은 달이나 별이 있어도 안정이 안 돼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는'(시편 130,6) 때이며, '닭이 울 때'는 예수께서 대사제 관저에서 끌려 나와 불행한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시간(마태 26,75)이며, '새벽'은 지평선이 조금씩 아름답게 물들어가며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때다. 이 기록을 근거로 마태오복음서의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시간이 '밤 4경'(새벽 4시쯤)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태 14,25).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4.04.09

책, 영화로 복음의 씨앗 뿌린 임인덕 신부, 하늘나라로 책과 영화로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임인덕(독일명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성베네딕도회, 사진) 신부가 13일(한국시각) 독일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8세.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5년 성 베네딕도회에 입회, 1961년 종신서원을 한 뒤 1965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듬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교사로 파견돼 한국에 왔고 50년 가까이 한국에서 지냈다. 지난 8월 요양차 독일로 떠난 고인은 "병세가 나아지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안동교구 성주ㆍ점촌본당 주임을 지낸 고인은 왜관수도원 마오로기숙사 사감을 맡기도 했다. 또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뜻있는 젊은이들과 '우니타스' 모임을 만들어 야학교실을 열었다. 고인은 1972년 분도출판사 사장에 부임한 뒤 1993년까지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신학과 성경 관련 서적은 물론 독재 시대에도 사회정의와 환경문제를 다룬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 「정의에 목마른 소리」, 「해방신학」 등을 펴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밖에 순수한 감성을 자극하고 희망을 전해주는 분도 우화 시리즈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과 이해인 수녀 시집은 출판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1994년 출판사에서 베네딕도미디어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한국을 떠날 때까지 영상 매체를 제작, 번역, 보급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았다. 본당 주임 시절부터 시청각 교육의 중요성에 눈 뜬 고인은 작품성이 높고 정의, 평화, 사랑의 가치를 담은 주옥같은 영화를 국내에 소개했다. 본당 울타리를 넘어 대학, 공장 등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또 몇 해 전까지 베네딕도미디어에서 DVD가 출시되면 지팡이를 짚고 직접 방송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는 정성을 보였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31일 오전 10시 30분 경북 칠곡 왜관읍 수도원 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할 예정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0.15
![[가톨릭 문화산책]<32> 성음악(7) 교회의 분리와 교회음악의 분리](//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46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7) 교회의 분리와 교회음악의 분리신교는 대중적 '코랄' 발전, 가톨릭은 전통 전례 유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음악가인 요한 발터의 코랄의 한 예. 이때까지는 네 성부를 대보표에 적을 줄 몰라 따로따로 네 장으로 만들었다. 주 선율은 테너가 부른다.교회사에서 가장 큰 비극을 꼽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16세기 교회 분리를 든다. 하지만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비극을 통해서도 좋은 결과를 창조해 주셨다. 교회는 분리를 통해 다시 자신을 내적으로 정비하고 또 풍성하게까지 했던 것이다. 1516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저항으로 시작된 교회 분리는 스위스에서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와 그의 뒤를 이은 장 칼뱅(1509~1564)에 의해 보강됐다. 저항은 중앙집권적 신성로마제국에서 벗어나려는 지방 영주들의 지원을 받으며 급속히 세력을 형성했다. 결국에는 가톨릭교회를 옹호하는 황제 칼 5세와 이에 항거하는 지방 영주들이 교회분리파를 옹호하며 결성한 슈말칼텐 동맹세력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복잡한 정치적 술수들이 얽히며 전쟁이 끝나고 아우크스부르크협약에 따라 영주의 신앙에 따라 해당 영지의 신앙이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백성들은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다른 영지로 이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 30년 전쟁이 일어났고, 종내에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각자 신앙이 보장되면서 전쟁은 막을 내렸다. 중앙집권제가 지방분권제로 변화되는 전환점에 교회 분리 운동이 큰 에너지를 공급한 셈이다. 프로테스탄트, 전례와 성음악 변화 이렇게 교회를 분리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쪽에서는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향수를 털어내기 위해 당면 과제가 있었다. 바로 전례와 성음악이었다. 처음으로 손을 댄 건 라틴어 사용을 금지하고 자신들의 언어인 독일어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이었다. 라틴어가 이미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낯선 언어가 돼버린 당시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은 대단히 충격적이었고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거기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이때까지 가톨릭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했고, 이는 성경을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전용물로 만들었다. 또한 루터는 '코랄(Choral)'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쉽고 대중적인 성가 형식을 고안해 냈다. 평신도들이 쉽게 배우는 성가 가사에 새로운 교리를 이식해 부르도록 한 운동은 커다란 효과를 거뒀다. 코랄은 또 지금까지 그레고리오 성가가 모든 음악의 소재가 됐던 역할을 대신해 독일 교회음악의 소재가 됐다. 루터는 성음악에 관심이 깊은 사제였다. 현악기인 류트(Lute)와 최고 음역의관악기인 플루트(Flute) 연주를 즐겼고, 테너를 맡아 노래하기도 했으며, 조스깽 데 프레(1440~1521)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코랄을 개척하면서 자신도 몇 곡을 직접 지었는데,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깊은 고난에서(Aus tiefer Not)'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전문 음악가들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이 대목에서 요한 발터(1496~1570)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루터와 함께 활동한 발터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음악가다. 이는 당시 유럽 내에서 음악이 가장 빈곤했던 독일을 음악의 나라로 세우는 첫걸음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하인리히 이사악(1450께~1517)이나 오를란도 디 랏소(1532~1594) 같은 독일 출신 음악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플라망 악파의 음악가들이며 주로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했기에 독일의 음악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터는 1524년에 「작은 성가책(Geystliches gesangk Buchleyn)」을 출판했고, 1526년에는 「독일 미사곡(Deutsche Messe)」을 발간했다. 발터를 잇는 프로테스탄트 음악가로는 속칭 '3S'로 불리는 하인리히 쉬츠(1585~1672)와 헤르만 샤인(1586~1630), 하인리히 샤이데만(1596~1663) 등을 꼽을 수 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에 이르러서는 교회음악 분야에서뿐 아니라 세속음악에서도 유럽 음악을 선도하기 시작한다. 또한 영국 왕 헨리 8세는 1554년 자신의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 교황청에 항거해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세웠다. 그러고나서는 독일 프로테스탄트와 같은 고민 속에서 영어를 전례에 도입하고 영어를 가사로 하는 전례음악을 발전시켰다. 초기 기초를 닦은 음악가로 토마스 탈리스(1505~1585), 윌리엄 버드(1543~1623)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겉으로는 국교회를 위한 음악가로서 활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가톨릭신앙을 지켰다. 영국국교회 역시 자신들의 독창적 음악을 마련하는데, 가톨릭교회의 모테트에 대응하는 앤섬(Anthem) 형식이 그것이다. 또 전례도 미사에서 변형된 예배(Service)를 고안했는데, 이는 미사와 시간전례(성무일도)를 적당히 섞은 형태였다. 가톨릭, 라틴어 전례와 음악 그대로 반면 가톨릭교회는 교회 분리의 충격에서 벗어나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개최하는데, 여기서는 교리와 교회개혁뿐 아니라 전례와 전례음악에 대한 정비도 뒤따랐다. 이 공의회에 따라 전례 흐름과 잘 어울리며 가사 전달이 잘 되는 음악, 곧 팔레스트리나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악파 음악이 장려됐다. 교회 분리라는 몸살에도 가톨릭 신앙에 꿋꿋하게 남아 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의 교회에서는 당연히 라틴어 전례와 라틴어 전례음악이 그대로 유지, 발전됐다. 민족사적으로 보면 게르만족과 앵글로족은 북유럽에서 야만시기를 함께 보냈고, 영어와 독일어도 먼 친척 언어다. 네덜란드어는 이 두 언어의 중간 혼합언어다. 결국 이 친척들은 가톨릭교회를 떠났고, 자신들의 언어에 따른 전례음악을 개발했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옛 라틴어의 사투리에 속한다. 이들은 계속 가톨릭교회에 남아 라틴어 전례음악에 충실했다. 언어상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세계 각국 교회가 모국어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코랄(Choral) 가톨릭성가집에는 작곡자 이름을 쓰는 자리에 '코랄'이라고 돼 있는 곡들이 여럿 있다. 코랄(독 Choral, 영 Chorale)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독일의 표준적 음악 대사전인 「역사와 현대에 있어서의 음악(Die Musik in Ges -chichte und Gegen wart)」에서 코랄 항목을 찾아보면 "서방 가톨릭교회 전례에 사용되는 라틴어 전례문에다 단성부이고, 악기도 동반하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교회선법에 따른 온음음계식 음악의 옷을 입힌 작품들의 총체적 개념"이라고 긴 정의가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코랄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를 코랄 미사라고 하며, 이때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합창단을 '코랄 숄라(Choral Schola)'라고 한다. 이를 보면 코랄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선적 연관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의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미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중(Chorus)이 부르기에는 너무 어렵게 발전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찬미가(Hymnus)라는 곡이 언제부턴가 발견되기 시작하는데, 이 곡들은 여러 절의 가사를 단순한 한 선율에 붙여 반복해서 부르는 유절(有節) 형식을 갖고 있다. 현행 시간전례에 나타나는 찬미가들이 바로 전형적인 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부분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그래서 찬미가와 같이 여러 절로 이뤄진 가사를 만들고, 모든 절을 하나의 단순한 선율에 붙여 노래하게 했다. 이 코랄은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박자도 마디도 없는 자유로운 선율이었고, 아직도 독일 성가집에는 바로 이런 외형을 가진 코랄이 실려 있다. 결국 루터가 코랄을 발견했다는 표현보다는 코랄을 재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시작한 코랄은 곧 독일 가톨릭교회에서도 발전했다. 마치 그레고리오 성가가 정선율로서 모테트나 미사곡의 기본 소재로 사용됐듯이, 이젠 코랄이 독일 교회음악에서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양식의 기본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단순한 형식의 전례음악이 가톨릭교회에서도 신자 대중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 큰 공헌을 하는 성가(찬송가)의 기원이 됐다. 영어로는 이 코랄을 '힘(Hymn)'이라고 하는데, 코랄이 처음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찬미가(Hymnus)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명칭이다. 1967년에 반포된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에서도 "대중성가(Cantus popularis sacer), 곧 전례적(liturgicus)이며 종교적인(religiosus) 대중성가"를 성음악에 포함하는데(제4항), 이는 바로 코랄에서 기원한 현재의 성가를 지칭하는 것이다.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cpbc201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