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4>이브 콩가르(상)](//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7081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이브 콩가르(상)조명받지 못했던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이끈 선구자 많은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세 번째 위격인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기껏해야 비둘기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베드로좌 위 비둘기 모양의 성령을 형상화한 유리화. CNS 자료사진'성령론의 재발견' 많은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그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으로 고백되는 성부,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성자와 달리, 성령에 관해서는 그 어떤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비둘기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성령은 과연 누구인신가? 성령이란 성령의 위격적 특성은, 그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 현존의 고귀한 선물과 은총이라는 데에 있다. 성부 하느님의 영이며 또한 성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신비로이 주관하며, 인간의 내면에 거주해 우리의 성화(聖化)를 이끌어 가신다. 미사 안에서 '사도신경'과 함께 선택적으로 고백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位格)이신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영광을 받으신다"고 선포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부 안에 근원을 두고 성자 안에서 주어진 '생명'은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내밀하게 전달됨"(「가톨릭교회교리서」, 683항)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통로인 동시에 그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자신이시다. 이처럼 성령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 안에서 명백하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위격적 존재로 고백된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의 역사적 전통 안에서 오랜 기간 성령에 대한 관심과 인식과 성찰이 충분치 못한 채 간과돼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무엇일까? 동방 교회의 신비주의적 신학 경향과는 달리 모든 것을 논리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했던 이성주의적 신학의 대두와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관점의 지나친 강조, 그리고 법률주의적 교회관의 성립 등을 거론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신학적 문제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의 위격적 실상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 시기 동안에, 성령은 주로 비둘기라는 종교미술적 상징에 의해서만 묘사돼 왔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으로 분명히 표현되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은 그 위격적 실상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얼굴 없는 존재'로 머물게 된다. 카파도키아의 교부인 대 바실리우스(329/330-379) 성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힘으로서 이 세상 안에 실제적으로 작용하시는 분이시다. 즉,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써 도저히 파악할 수도 없고 인간의 능력으로 감히 접근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무한한 실재(實在)요 신비이지만, 이러한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실재를 우리가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사랑의 표지요 선물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런데 이 사랑의 선물이란 하느님 밖의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본질 자체이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있어서, 그 전달 행위의 직접적 원리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체가 되신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러한 자기 전달 행위의 극치는 바로 성령의 인도에 따른 성자의 강생 신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 역사를 통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시고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바로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을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온 세상 안에 충만하여 활동하시는 성령을 가리켜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the universal presence and activity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신학적 용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이는 성령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이다. 이미 구약성경의 지혜서 1장 7절은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요엘 예언서 3장 1절에서는 선택된 이들 위에 내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시던 주님의 영께서 이제는 온 세상 만민 위에 임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던 구약성경의 예언이 드디어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됐음을 선포한다(사도 2,16-21 참조). 성령론의 현대적 흐름 1897년에 이르러,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성령에 대한 첫 회칙인 「그 신적 책무」(Divinum Illud Munus)를 발표했고,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강조했다. 또한 성령강림대축일 전 9일기도를 바칠 것을 결정하여 온 교회에 선포했다. 1962-1965년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성령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공의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을 통해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했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교회 역사 안에서 간과돼 왔던 성령론적 통찰의 재발견을 위한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했다. 물론 공의회 전체는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지만,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성령론적 전망이 다시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내부는 물론이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 밖에서까지 활동하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작용에 대한 자각이 이뤄졌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새로이 이뤄진 성령론적 성찰과 전망은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개, 발전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를 뒤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임무를 승계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심화와 신심의 계발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승과 보완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오로 6세는 1975년에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를 발표했는데, 이 교황 권고는 성령론적 관점에서 복음화의 사명을 설명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문헌이다. 문헌은 성령을 통해 복음이 세상 깊은 곳까지 침투해들어감을 역설한다. 이후 1982년 로마에서는,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의(dogma) 정립 과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381년) 개최 1600주년과 에페소공의회(431년) 개최 1550주년을 기념하는,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의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동안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에 대해,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신학자들의 주장을 교회 전체적 차원에서 통합하고자 시도했던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성령론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가 총망라되어 많은 발표들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론의 발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통해 보다 명시적으로 구체화돼 드러나게 됐다. 이는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유일하게 성령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이브 콩가르의 공헌 이러한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과정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 추기경이다. 그는 도미니코회 소속 사제로서, 예수회원 앙리 드뤼박(Henri de Lubac, 1896-1991)과 함께 프랑스의 20세기 '신(新)신학'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공의회 문헌 작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교회론과 교회 일치(ecu menism), 그리고 성령론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다. 콩가르는 서거 1년 전인 1994년에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콩가르는 위에서 언급한 1982년의 로마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이 회의 직전인 1979-1980년에 그가 총3권으로 이루어진 성령론에 관한 명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를 출간함으로써 성령론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을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권의 책은 아직까지도 현대 성령론의 교과서로 간주되는 불후의 명저이다. 국내에서는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의 번역으로 2004년에 그 1권이 번역, 출간됐다(가톨릭출판사). 다음호에서는 이 세권의 책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cpbc2014.02.18

신앙의 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 '평신도의 산앙의 해 삶의 성찰과 쇄신'8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영성원에서 열린 '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 종합토론 시간에 토론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힘 기자 신앙의 해 폐막을 보름여 앞두고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와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개최한 '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은 신앙의 해를 평가하고, 신앙의 해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심포지엄은 한국평협 차원에서 제시한 실천사항에 대한 발표, 평신도 설문조사 발표와 더불어 한국 평신도사도직의 새 진로를 엿보는 시간이 됐다. 심포지엄 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기조강연- 신앙의 해 의의와 신앙의 해 이후 평신도의 소명 /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신앙의 해가 그리스도왕 대축일(24일)로 끝난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신앙의 해를 시작하는 사목교서에서 "오늘날 유럽교회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과도한 과학적 사고방식과 개인주의"라고 지적하셨다. 이것은 유럽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우리 문제이다. 교도권은 신자들의 신앙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과학주의와 세속주의, 신영성운동, 개인주의 등 신앙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의 맹점과 폐해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경고해야 하며, 대처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톨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예비신자가 꾸준히 있다. 하지만 그만큼 냉담교우가 생겨난다. 한마디로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는 앞으로 5년간 순차적으로 신앙의 해 다섯 주제(표어)에 초점을 맞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필로니 추기경도 "신앙은 한 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지속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성숙한 신앙인이 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 물신숭배와 경제적 양극화, 생명경시, 거짓, 폭력 등의 어둠이 짙게 깔린 것은 하느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핵심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이 어둠의 세력을 거슬러 나눔과 정의, 생명, 정직,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정은 신앙 전달과 훈련에 매우 중요한 평신도 고유 영역이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이 자연스레 기도를 배우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신앙 안에서 헤쳐나갈 때 자녀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성모님처럼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산다면, 그 가정은 제2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자라는 요람이 될 것이다. ▨주제발표1- 한국평협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다짐 실천 결과 보고 / 최홍준(한국평협 회장) 한국평협은 지난해 11월 제4차 상임위원회의에서 신앙의 해를 더 잘 살기 위한 다섯 개 항목의 '다짐문'을 발표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다짐'은 △우리는 교회의 기초 공동체인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성화 소명에 응답하며 신앙 선조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생명문화 건설에 힘쓰겠습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직하게 이웃과 함께 친교의 삶을 살겠습니다 등이다. 한국평협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신앙의 해 신앙생활 의식조사와 신앙 체험수기 공모 △신앙의 해 묵주기도 밤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각 교구 평협도 도보 성지순례와 심포지엄, 특강, 체험사례 발표, 미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쳐왔다. 각 교구 평협과 사도직 단체들이 신앙의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백서」 형식의 문건을 제작해 자료로 남겼으면 한다. 아울러 각 교구 평협과 한국평협의 운영 실태를 좀 더 깊이 알아보고 평협이 자리매김을 했으면 한다. ▨주제발표2- 신앙의 해를 사는 평신도 신앙의 모습 / 선한승(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는 신앙의 해에 신자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대상자는 주로 수도권에 사는 신자 1384명(남성 500명, 여성 884명)으로, 1960년대 이전 출생자가 전체의 54%였다. 기혼자가 88%로 다수이며, 대졸자가 47%로 가장 많았다. 미사참례 횟수는 일주일에 2~3번이 46%로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82%가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미사에 참례했다. 고해성사는 1년에 4~5번이 가장 많았고(44%), 한 달에 한 번 이상도 41%에 달했다. 하지만 매일 기도한다는 응답자는 21%에 그쳤다. 성경도 가끔 생각날 때 읽는다는 응답이 3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성경을 매일 읽는 신자는 19%에 그쳤다. 신앙의 해 인지 조사에서는 전체 26%만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어렴풋이 안다'는 응답은 48%로, 전체 71%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모른다는 응답도 약 30%에 달했다. 또 응답자 33%만이 신앙의 해 프로그램 등에 참가했다고 응답했다. 신앙의 해를 맞아 본당 차원에서 여러 활동이 펼쳐지고 있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 본당의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해가 일회적 행사가 아니고, 서울대교구가 제시하는 5가지 표어를 일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일상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의식을 내면화하고 생활한다는 응답자는 88%나 되는 반면 사형폐지와 낙태, 인공수정, 안락사 문제 등에서 교회 가르침에 부합하게 생각하는 신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참다운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읽기와 미사참례 등 적극 권장 △신앙의 해 취지 계승 발전 △공동체 활동 참가와 선교활동 강화 △교회 정책 순응하는 생활 △신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와 신자의 공동노력 등이 필요하다. ▨주제발표3- 신앙의 해 자기 쇄신을 통한 평신도 사도직의 새 진로 / 최혜영 수녀(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 위원) 한국평협은 2010년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평신도를 교회 공동 책임자로 키워내야 한다. 평신도 영성은 현세 질서의 복음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정신의 성숙과 발전을 이뤄낼 사회참여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평협이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인재양성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에 계속 힘쓰면 교구 차원의 평신도 사목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평신도사도직이 본당 중심이었다면, 앞으로 새 복음화 활동은 넓은 사회연계망 안에서 펼쳐질 것이므로 직장과 전문직, 동호회 등 다양한 모임을 포괄할 수 있도록 외연을 넓혀야 한다.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여성소위원회 활성화와 여성사목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교회가 여성 신자를 육성하는 것이 활기 있는 교회를 만드는 데 지름길이 되고, 여성사목이 가정과 청소년, 노인, 사회복지 등 다른 여러 사목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특색이 있는 평신도 단체들이 스스로 잘 성장하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평협은 각 단체가 세상 안에서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무신론적 문화를 극복하고 보다 복음적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신도사도직을 삶의 현장에서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와 타 종교 단체 등 시민사회와 연계도 필요하다. 사제성소와 수도성소 계발에 힘써야 하는 것도 평신도 몫이다. ▨종합토론 △서철(청주교구 사목국장) 신부 : "도보 성지순례 열풍이다. 그런데 걷기에만 집중한다. 순교자 한 분 한 분 행적이나 영성을 자기 것으로 채우는 데는 부족하다. 순교자가 하느님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여긴 것처럼 내 선택 기준이 하느님이 되도록 평협 운동 차원에서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서정권(베드로, 광주대교구 평협) 회장 : "신앙의 해는 우리 모두 신앙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자 아닌 이들이 '천주교' 하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이름을 떠올릴 정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임경수(아우구스티노, 대구대교구 평협) 회장 : "선한승 박사 연구결과를 보면, 신앙생활은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미흡하다. 우리가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다. 사제, 수도자가 평신도에게서 태어나는데, 우리가 모범을 못 보여 성소자가 줄고 있는 점은 반성해야 한다. 신앙의 해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변진흥(야고보) 박사 : "신앙의 해는 신앙의 위기가 전제다. 그런데 위기의식이 있는가? 위기는 위기의식마저 무너졌을 때가 진짜 위기다. 사회가 좌익으로 갈 때나 우익으로 갈 때 어디까지가 가톨릭교회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인지를 설정해 줘야 한다. 그 범위 안에서 대화하고 풀면 한국 사회가 한국교회를 따를 것으로 본다." cpbc2013.11.12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24> 발터 카스퍼(하)](//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2773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 발터 카스퍼(하)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와 쇄신 강조 지난 3월 독일에서 열린 발터 카스퍼 추기경 80세 생일 기념 행사에서 카스퍼 추기경(가운데)과 함께한 심상태 몬시뇰. 심 몬시뇰은 카스퍼 추기경 제자다. 카스퍼 신학의 중요사상 카스퍼를 포함한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위시한 신앙의 핵심 진리를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인 본성, 본질, 실체와 위격 개념 등을 사용해 의미를 밝힌 형이상학적 신학 경향을 탈피하고, 역사 안에서 만물과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마침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의 실상을 구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구세사적 신학을 공통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교회를 불완전한 사회나 종교 집단과 구별되는 교계제도로 구성된 초자연적 완전 사회로 파악하던 개선주의 경향을 벗어나 구세사적 지평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구원의 성사적 표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신앙의 주요 진리에 대한 공통된 신학 사상이 형성돼 있지만, 튀빙겐 신학의 인식 원리와 방법에 입각한 카스퍼의 주요 신학사상 안에는 특유의 구별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약된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내용보다는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요 통찰만을 간략히 소묘하고자 한다. 신앙이해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객관적 구원 사실을 진리라고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퍼에게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외부인 눈에는 숨겨진 역사로서 신앙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기적과 예수 부활 등을 이해하는 데에서 성경 본문이나, 교회 가르침을 진리 근거로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이 결정적 주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구세사는 인간에게 숙명론적으로 발생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 일상의 비루함과 현실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의탁하는 역사적 신앙 감행을 통해 발생한다. 신앙생활을 위해 구세사의 객관적 성격이 주요하더라도,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카스퍼의 입장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이해 카스퍼의 하느님 신학사상은 그분을 '절대적 자유로서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는 성부로서의 하느님이 절대적 자유의 선물이고 성자는 성부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 절대적 인정이며, 성령은 절대적 단일성과 절대적 상위성의 동일원천성이라고 이해한다. 하느님, 성령, 절대적 사랑은 하나의 관계이며 그것이 자유의 선물이고 시간 내지 가능성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서 자유의 선물이신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타자적인 것 즉 창조를 원하시는 데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유를 지닌 어떤 것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느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실제적인 무조건적 자유의 선물이다. 그리고 카스퍼는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아드님이자 로고스의 성령 역사로 이뤄진 육화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는 상위성을 단일성과 함께 성령적으로 시야에 담을 때에만 적절히 이해된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 칼케돈공의회 교의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로서 '인격' 개념 설명을 통해 밝힌다. 그는 인격이 구체적으로 '오직 관계 안에서'만 자신을 실현하는 사랑을 본질로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이 내용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그분을 신적 인격으로 특징짓는 정체성은 성부께 대한 그의 사랑의 관계, 곧 성부를 향한 사랑에서 발하는 그의 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간적 순명이 천주 성자의 순명인 한, 순명이 그를 성부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성부와의 일치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스퍼는 성자의 위격이 현실적으로 인간 예수로 존재하기에 성자는 인간으로서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적 위격이기도 하다고 논증한다. 성자가 자신의 신적 위격성을 이제 인간적 유형 양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 안에서 신적 '누구'의 인간적 '나', 천주 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성령과 긴밀한 연계 안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세계 안에서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 성령의 새로 마련된 현존과 실재의 목표이자 정점"이면서, 또한 "성령 파견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거를 찾는다. 그 다음 논거로는 예수와 그의 성령을 통해 종말시대가 이끌려졌다는 점을 꼽는다. 교회 이해 카스퍼의 교회론 역시 성령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충실하듯이 '시대의 물음'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열려 있고 은사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연계하면서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아울러 역설한다. 그는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일종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성령을 교회 제도에 연계하는 경향이 점증하며 '교계적 교회의 영혼'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삼 위격들의 외부로의 공동 역사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적 신학 명제가 강조되는 나머지 신자들의 개별 인격이 독자적 존재가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에 대해서 공언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성자 시대 이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서 언급한 중세 피오레의 요셉 수도원장을 거슬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는 구세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카스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는 죽은 문자의 양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유의 양식 안에서 발생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반복해 그 새로움 안에서 이 새로운 것을 자유에 맡긴다. 성령은 늘 새로운 것의 하느님으로부터 열린 공간이며 새로운 존재의 늘 새로운 힘이다." 카스퍼는 교회를 "성령의 성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령의 성사로서 교회 이해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비해 본질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견지한다. "교회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돌입할 때까지 와 있는 실재이다.… 교회는 한 번은 전체 실체를 포괄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어디서나 숨겨진 가운데 돌입하고 있는 하느님 다스림의 선취적인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일치 교령」이, 성령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다른 교회적 공동체를 사용하신다고 말할 때, 그로써 우리의 학교 교의학에서는 전혀 해서는 안 됐어야 할 양식으로 성령이 작용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또한 '성령'과 '성사' 개념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령 작용이 항상 구체적인 가시적 일치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분열을 극복하려는 교회는 가시적 다양성의 가시적 단일성에로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령의 성사인 교회 안에서 단일성이 다양성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사이의 관계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안에서 드러난 라칭거와 카스퍼 사이의 입장 차이의 핵심이 있다. 그는 다양성에 앞선 단일성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라칭거와는 달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성령의 성사'로서 이해된 교회의 삼위일체적 성격에 따른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상호침투성을 말한다. 즉 많은 지역교회들이 단지 하나인 교회의 한 부분이나 구역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카스퍼는 성령의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의 장점으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조할 수 없는 것" 등이 속하는 사실을 꼽는다.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새로움 안에서 항상 되풀이해 새롭게 현재화하는 데에서 이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죽이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의 성령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현상 유지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잠금장치가 아니라 지속적 쇄신의 성령이다."한국교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 끝으로 카스퍼가 한국교회에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한, 며칠간 머물면서 자신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같이 '아시아 복음화'가 제3천년기 보편교회의 최대 도전이자 과업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실패한 서구교회를 대체하고 이 과업을 수행할 여건을 제대로 구비한 지역교회로 한국교회를 꼽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에 앞서 50년 동안 복음을 신앙진리로 스스로 수용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하고자 진력한 창설 주역들에 대해 찬탄 어린 경의를 나타냈다. 그는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큰 신학자이기도 하다.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cpbc2013.11.12

124위 순교지를 가다 죽산성지 잡혀가면 돌아오지 못한 박해시절 처형터… 박경진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 순교1868년 9월, 절골(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이 요란스럽다. 이곳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는 ‘천주쟁이’들을 잡기 위해 죽산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포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한 가족은 필요한 것만 챙겨 필사적으로 산에 몸을 숨겼다. 얼마나 달렸을까. 급하게 도망치다 보니 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만큼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 스스로 뛰지 못하는 막내를 업고 산을 오른 아내 오 마르가리타(?~1868)는 보채는 아이를 달랠 겸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런데 누군가 오 마르가리타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포졸이었다. 포졸은 그 자리에서 그에게 온갖 쌍욕과 매질을 퍼부었다. 그는 매 맞으면서도 혹시 어린아이에게 생채기 날까 막내를 세게 끌어안았다. 아내와 아들 넷이 걱정된 남편 박경진(프란치스코, 1835~1868)은 결국 해가 질 때쯤 조심스레 산에서 내려왔다. 동네에 도착해 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그는 일단 동네 사람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집주인은 방까지 달궈줬다. 잠에 빠지려는 찰나, 포졸 대여섯이 작은 문을 비집고 들어와 그에게 쉼 없이 몽둥이질했다. 열린 문틈으로 포졸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집주인이 보였다.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 부부는 포박된 채 재회했다. 머리채가 산발이 된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남편이 피투성이가 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부부가 끌려간 곳은 죽산도호부. 경기와 강원, 충북의 교우촌을 몰살시킨 악명 높은 곳이다. 모진 고초를 겪은 부부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피폐해졌다. 하지만 신앙은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에게 사형명이 내려졌다. 형 집행일 전날 박경진은 동생 박 필립보와 아들 박 안토니오에게 짧은 편지를 남겼다.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다음날, 부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10리를 걸어 도착한 형장에서 나란히 죽음을 맞이했다. 1868년 9월 28일이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참조대나무 형상의 순교자 현양탑 옆으로 죽산 순교자 25위 묘가 줄지어 있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일죽나들목을 나와 안성 방향으로 300m. ‘죽산성지’라 쓰인 커다란 돌비석이 보인다. 이곳의 옛 이름은 ‘이진 터’. 고려 때 오랑캐(몽골)들이 진을 친 곳이라는 설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병인박해 때 새 이름이 붙었다. ‘잊은 터’, 이곳은 본래 박해 시절 처형지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곳으로 누군가 끌려가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그만큼 죽산은 순교의 피가 서려 있는 곳이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서 이름을 확인한 순교자만 25위나 된다. 이 중 2차 시복 대상자인 여기중과 문 막달레나, 정덕구(야고보), 조치명(타대오), 김 우브로시나, 최제근 안드레아, 방 데레사, 유 베드로 등 8위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오는 8월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124위 중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 부부가 바로 이곳에서 순교했다. #성스러운 눈물이 깃든 곳 성지에 발을 들여 놓으려면 먼저 널따란 기와 대문을 지나야 한다. 대문 현판에는 ‘성역’(聖域)이라 쓰여 있다. 그 글은 마치 성스러운 곳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바로하라는 듯 순례객을 기다리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성지의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낮은 기와 담장을 따라 줄지어 장미도 피었다. 소낙비 때문에 떨어진 빨간 꽃잎들이 이곳에서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떠올리게 한다. 장미 덩굴 따라 동그란 돌이 놓여 있다. 묵주알이다. 하늘에서 성지를 바라보면 담장을 따라 큰 묵주가 완성된다. 묵주알 굴리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주의 길’을 걷고 나면 피에타상에 적힌 성경 말씀으로 기도를 마무리 짓게 된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시편 126,5) #순교의 향기 묵주의 길을 지나면 순교자 묘역이 나온다. 죽산 순교자 25위의 무덤과 무명순교자 봉분이 있다. 바로 이곳에 신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하느님의 종 박경진·오 마르가리타 부부가 나란히 묻혀 있다. 묘역 양 끝에는 순교자 현양탑이 있다. 현양탑은 하늘을 향해 길고 높게 뻗어 있다. 대나무 형상을 한 이 현양탑은 고통 속에서도 믿음의 끝을 놓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의 절개를 의미한다. 현양탑을 끼고 돌아 묘역 뒤편으로 오르면 작은 언덕 위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처마다 흰 대리석으로 묵상을 돕는 조각품이 놓여 있다. 조각가 최영철(바오로)씨의 작품으로 2012년 봉헌됐다. 1처, 2처, …14처.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는 예수님 말씀과 함께 순교자 신심을 묵상한다. #기억해야 하는 터 박해 시절 사람들은 이곳을 ‘잊은 터’라 불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을 잊자는 의미에서였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순교자 124위 순교자 시복 전대사 순례지로 지정돼 ‘기억해야 하는 터’가 됐다. 성지 방문해(또는 방문 전)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와 영성체, 묵주기도 5단, 시복시성기도문,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문, 주모경 1회를 봉헌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문의: 031-676-6701 기억해야 할 곳이 한 곳 더 있다. 죽산면 사무소 입구 덤불에 쌓인 작은 공간. 바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옥사 또는 장사했던 죽산도호부 터다. 이곳에 현양비를 세우고 죽산순교성지까지 약 1시간 거리의 순례길을 조성하는 것이 성지 관계자의 계획이다. 글·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죽산도호부 관아 자리 순교자 현양비 건립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사무소 입구에 죽산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비가 세워진다. 이곳은 박해 시절 죽산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로 순교자들이 문초를 당하며 피흘린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양비가 들어설 곳은 사무소 입구 좌측 약 82.6㎡ 정도의 시유지. 안성시의 사용 허가를 받은 죽산 순교성지(담당 이철수 신부)는 이 공간을 작은 성지로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이철수 신부는 “도호부에서 고문을 받고 옥사에서 순교하거나 형벌 때문에 장사한 순교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인 만큼 이곳에 현양비를 세우는 일이 역사적 사명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시유지 사용을 허가받기 위해 안성시 관계자들과 수없이 만나며 순교자 현양비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전했다. 그 결과 5월 12일 시에서 시유지 사용을 허가받았다. 현재는 오는 8월에 진행될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 전에 현양비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이 신부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며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미신자들에게도 한국교회 순교자 영성을 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양비는 죄인을 가두기 위해 목에 씌우던 형구인 ‘칼’의 모양을 본떠 제작된다. 높이는 약 2m이며 비석에 박경진(프란치스코)이 동생 박 필립보와 아들 박 안토니오에게 남긴 편지글이 문구로 새겨진다. 백슬기 기자 백영민2014.06.25
![[사목교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9182_1.0_titleImage_1.jpg)
[사목교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친애하는 군종교구 사제와 수도자, 교구민 여러분! 올해는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라는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I.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가 지녀야 할 최대의 의무이자 최대의 관심사가 돼야 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행위입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외아들을 이 세상에 탄생시킨 것만이 아니고, 이 지상에서 나를 위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또 나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희생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충만히, 구체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하느님께 대한 나의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감사는 자연히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인생 자세를 갖게 해줍니다. II.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7)라는 말대로 이웃 사랑, 곧 형제애를 추구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항구한 사랑과 겸손한 섬김 및 희생이 담긴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로마 5,5), 비록 많은 내적 갈등과 고뇌를 겪게 된다 해도 형제애의 실천이 가능해집니다. III. 금년 사목목표인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1. 하느님께 대한 사랑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듣고, 쓰고, 외우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어디서든 개인으로 혹은 공동으로 기도하는 삶에 힘쓰되, 특히 성당에서 성체조배와 성시간과 미사 전후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힘씁시다. -각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며, 서로 하느님의 사랑 체험에 대해 나누도록 합시다. 2. 이웃 사랑(형제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의 주요 요소인 친절과 겸손과 예의의 자세를 실천하도록 합시다. -가족들 간에, 교회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 간에, 그리고 이웃 간에 친교와 나눔을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특히 미사 때만이 아니고 미사 전후에 서로 기쁘게 인사를 나누고, 주일미사 후에는 친교의 식사나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도와주려는 마음을 지니며, 특히 기쁜 일과 슬픈 일에 함께하도록 합시다. -어려운 이웃을, 특히 우리 주님께서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이라고 일컬은 이들을 기꺼이 희생으로 도와주도록 합시다.cpbc2013.12.24
![[출판]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커온 성서와 함께 마흔 잔치](//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363_1.1_titleImage_1.jpg)
[출판]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커온 성서와 함께 마흔 잔치 월간 '성서와 함께' 40돌 기념미사, 19일 성경을 접하는 이들이 하느님 말씀에 맛 들이도록 이끌어 준 월간 '성서와 함께'(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발행)가 창간 40돌을 맞았다. 40돌 기념 로고. 1973년 3월 '가톨릭 성서모임' 성서가족을 위한 소식지로 출발한 '성서와 함께'는 1984년 10월 '103위 순교성인' 탄생을 기리며 일반 정기 간행물로 혁신 창간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번 3월호(통권 444호)는 '내 나이 마흔'을 주제로 창간 40주년 특집호로 꾸며졌다. 특집호에서는 가톨릭 성서모임 기반을 다지고, '성서와 함께' 창간을 이끈 조화선(미주 가톨릭 성서모임 책임) 수녀와 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인터뷰가 실렸다. 또 '성서와 함께'가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했다. 조 수녀는 1973년 창간호를 떠올리며 특히 원고를 일일이 손으로 쓰고, 복사해서 만들었던 기억을 돌이켰다. 또 40주년을 이어온 원동력은 "하느님 말씀의 힘"이라며 지금껏 '성서와 함께'를 도와준 모든 이들의 기도와 격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성서와 함께'는 성경 공부 과정을 끝냈더라도 계속해서 말씀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성서모임 가족들 의견이 모여 제작됐다. 성서모임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면서, 말씀을 서로 나누는 성격의 회지가 필요하다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월간지 이름은 하느님 말씀과 '함께' 살자는 의미를 담았다. 조 수녀는 "하느님 말씀에 붙들린 사람, 그 말씀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마음과 힘을 다해 '함께' 꾸려 나가는 간행물이라는 의미"라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한 갈라진 교회와 일치, 타 종교와 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의 대화를 위해 선의의 사람들이 모두 '성서'와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최 대주교는 "창간호가 나올 때 '성서와 함께'가 40년이나 이어질지 몰랐다"며 "인간이 계획한 것이 아니고 누가 소유한 것도 아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고, 모두 성령께서 이끄신 덕분이다"고 말했다. 무가지로 발행했던 '성서와 함께'는 1984년 정부 인가를 받은 정기 간행물로 혁신 창간하면서 유가지로 전환했다. 발행부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원고료와 인쇄비, 발송비 등 제작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소식지 발행을 맡은 편집부원들에게 언제까지 재능기부와 봉사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혁신 창간호를 시작으로 '성서와 함께'는 성서모임 가족을 넘어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준(準) 성경전문지로 발돋움했다. 이 때부터 개신교 사목자 글도 실었고, 신자가 아닌 이들의 글도 배제하지 않았다. '성경을 통해 교회 일치와 민족 복음화를 이룬다'는 지향에 더욱 충실했다. 이와 더불어 1989년 1월호부터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 나눔 꼭지 '여기 사마리아 사람이'를 만들어 맛 들인 하느님 말씀을 삶에서 직접 실천하도록 했다. 최 대주교는 "'성서와 함께'가 고급스러운 성경 해설서가 되지 말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색깔을 지우고, 하느님 말씀을 체험케 하는 생동감 있는 월간지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해인 수녀는 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시 '성서예찬'과 함께 "성서를 깊이 읽고 묵상하고 되새기고 생활 속에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준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에 감사드린다"는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창간 40주년 감사미사는 1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흑석동 성모교육원 강당에서 봉헌된다. 문의 : 02-822-0125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3.12

교황님은 작은 것을 좋아해‘가장 작은 한국 차를 타고 싶다’는 말씀에 담긴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장 작은 한국 차를 타고 싶다.” 지난 6월 30일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전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마디가 언론매체를 들썩이게 했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인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취임 직후부터 ‘작은 것’들을 택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교황. 한국 방문에서도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어 소박하면서도 방문국을 최대한 배려하는 선택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황이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말 그대로 규모와 크기가 작고 어린 것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 신약성경 복음서에 언급되는 ‘작은 이들’ 곧 불우하고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과 소박하고 견실한 삶에 대한 사랑을 포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작은 것 사랑’에 숨어있는 가치들을 살펴보자.?교황궁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즉위 직후, 교황관저 대신 교황 선거(콘클라베)를 위해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을 거처로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교황들이 교황 관저(apostolic palace: 교황궁)에 머물던 110년 바티칸 관행을 깬 것으로, 추기경 시절의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같은 해 6월 7일, 교황은 이탈리아의 예수회 학교 학생들의 만난 자리에서 “왜 마르타의 집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사는 것은 내게 좋지 않다.” ? 결국 신자들과 직접 만나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 신앙을 전파하려는 의지가 교황관저 대신 소박한 게스트하우스 숙소를 선택한 배경인 셈이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1891년 바티칸 인근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당시 레오 13세 교황이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설치한 건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엔 전쟁을 피해 온 망명자와 유대인, 이탈리아와 외교관계가 끊어진 나라 외교관들의 피신처로 이용됐으며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기 위해 개축됐다. ?주행거리 30만km 중고 소형차를 운전하다? 2013년 9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의 한 신부에게서 출고된 뒤 20년이 지난 소형차를 선물 받았다. 영국 BBC는 교황의 검소함에 감동한 렌초 초카 신부가 교황에게 자신이 몰던 흰색 르노4를 선물했다고 전했다. 르노4는 교황이 아르헨티나에 머물던 시절 몰고 다닌 모델로 현재는 단종된 차종. 선물 받은 차의 주행거리는 30만 km로 알려졌다.? 초카 신부는 이탈리아 잡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낮은 데로 임하겠다’는 교황을 존경해왔다”며 “마땅한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20년간 함께한 ‘르노4’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교황은 초카 신부에게서 자동차 열쇠를 넘겨받고 그 자리에서 직접 운전을 하며 즐거워했다. BBC는 “근처에 있던 경호원들이 직접 운전하는 교황을 보고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해 7월 바티칸을 순례하러 온 신부들과 가진 세미나에서 "사제나 수녀들이 새 차를 가진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제 여러분은 더 많이 봉사하고 많이 움직이되 검소한 차를 갖기 바란다"고 밝힌 적도 있었다.? 낡은 십자가와 재활용 반지, 바티칸을 바꾸다? 2013년 3월 13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강복을 위해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났을 때, 그의 목에 걸린 십자가(pectorial cross)는 새 교황을 위해 만든 금 십자가가 아닌 낡은 철제 십자가였다. 주교 시절부터 쓰던 철제 십자가를 교황은 지금까지 쓰고 있다. ? 교황의 옥새로 불리는 어부의 반지(Fisherman's Ring)는 새 교황이 즉위하면 금으로 새로 제작된다. 이후 선종하거나 사임할 때까지 공식 문서에 서명 날인할 때 사용하거나 수많은 신도의 입맞춤을 받으며 교황과 함께한다. 교황이 어부의 반지를 받는 것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부의 반지를 새로 만들지 않고, 바오로 6세(1963-1978 재임)를 위해 디자인됐으나 채택되지 않은 주조틀을 재활용해 만든 반지를 선택했다. 그것도 관례에 따른 금반지가 아니라, 금으로 도금한 은반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선수범은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와 주교들의 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2013년 10월 25일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주교들이 목에 걸어 착용하는 가슴 십자가(pectorial cross)를 황금 재질에서 은이나 다른 금속 재질로 바꾸고, 각종 비용도 줄여나가기 시작한 데 이어 사치스런 대형 차량도 평범한 것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은 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촉구해왔다. 2013년 12월 17일 아침 교황 즉위 후 맞은 첫 생일 아침상에 동유럽 출신 노숙인 세 명을 초청해 생일상을 함께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 그보다 앞서 2013년 7월 8일, 교황은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의 아프리카 불법이주자 수용소를 사목방문해 “우리의 풍족한 문화가 우리를 다른 이들의 울음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요청했다. 난민들을 위한 메시지는 두 달 뒤에도 이어졌다. 9월 10일 교황은 로마에 있는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를 방문, 수십 명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눈 뒤 “교회는 돈을 벌려고 비어있는 수도원을 굳이 호텔로 바꿀 이유가 없다. 이 시설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난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가톨릭 수도원들은 수도생활 지망자 수가 줄어들면서 방치되었다가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개조되는 사례가 많아 논란거리가 돼왔다. 가난(청빈)은 가톨릭 수도생활의 3대 덕목(청빈, 정결, 순명) 중에서도 으뜸인 만큼, 교황의 발언은 가난을 실천하는 수도자들의 집인 수도원을 가난한 이에게 내어주라는 권고로 읽힌다.? 교황은 또 "명목상 국제적 보호를 받는다는 난민들이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질 기회조차 없이 가난하고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며 "로마는 난민들이 인간의 영역을 되찾고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아울러 난민들이 다양한 인종, 종교, 국적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다양성은 선물’이라고 지적하면서 "풍부함은 환영할 일이지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라며 이민족에 대한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상메시지로 이웃돕기 거듭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12월 기아에 허덕이는 불우이웃 돕기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영상메시지 2편을 연달아 촬영했다.? 12월 5일, 교황은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재사용 물건들을 찾아내는 세계의 ‘카톤네로스(넝마주이)’를 격려하는 영상메시지를 촬영하며 “카톤네로스의 활동은 환경을 위해 고귀하고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회용 문화’를 비판하면서 “매일 버려지는 음식으로 전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산하 국제구호기구인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이 주도하는 지구촌 기아퇴치 운동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참여를 독려했다. 이 운동은 ‘인류는 한 가족, 모든 이에게 음식을’이라는 주제로 2025년까지 전개된다.? 새 추기경도 작은 나라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1월 12일 처음으로 임명한 추기경들의 명단은 ‘주변부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소국 부르키나파소, 중미 카리브해의 아이티가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한 것이다. 필리페 나켈렌투바 우에드라오고 와가두구 대주교, 치블리 랑글루아 레카이 주교가 그 주인공이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수준이 낮은 나라로 꼽힌다.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교와 토착 부족 종교를 믿는다. 아이티는 세계 최빈국이며, 다른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다. 아이티에서는 대주교가 아닌 주교를 발탁했다.? 작고 가난한 나라의 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교황의 결정은 극빈지역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황이 참가인원이 2천 명에 불과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결정한 것도 ‘작은’ 교회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면모를 엿보게 한다. 13일 대전교구에서 개막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는 대회 역사상 최초로 교황이 방문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역대 교황들은 세계청년대회에만 참석해 왔으며 2013년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는 300만 명이 참가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cpbc2014.08.08

"하느님께 많은 걸 받았기에 이미 행복"제16회 가톨릭 독서콘서트,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특강 '가장 멋진 삶' 두봉 주교가 11월 28일 가톨릭 독서콘서트 특강을 마치고 신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힘 기자 "'나는 귀염둥이다''나는 복이 있다''나는 멋쟁이다'하고 외쳐보세요. 주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세상살이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 영원히 멋지게 살아봅시다!"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가 11월 28일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며 우리가 얼마나 받은 것이 많은지 다시금 깨달으라고 말했다. 두봉 주교는 이날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회장 김정동)가 서울 불광동성당(주임 김민수 신부)에서 개최한 제16회 가톨릭 독서콘서트에서 강사로 나서 '가장 멋진 삶'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1929년 프랑스에서 출생해 85세인 두봉 주교는 고령에도 특강을 들으러 온 300명이 넘는 신자들에게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전했다. "우리가 왜 살까요? 저는 '멋지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 있나요? 부모님과 나라, 어느 시대를 선택한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주신 것도 참 묘합니다." 두봉 주교는 "구약성경에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예레 1,5)는 부분이 있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신다"고 말했다. "저는 위로 큰형님과 누님이 계시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10살 때 2차대전이 나서 먹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키가 160(㎝)밖에 안 돼요. 큰형님은 180인데 저와 막내아우는 못 먹어서 160이에요. 나는 왜 형보다 20㎝나 작을까 고민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50년 전 한국에 오니 한국사람 평균 키가 160이었어요. 주님은 저를 한국에 보낼 계획이셨나봐요." 두봉 주교는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장점은 물론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이미 잘 알고 계시기에 이것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받은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면 '참 잘했다'는 느낌이 들고, 나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바로 양심 때문이며, 우리 양심은 자동차 후방감지기가 '삐'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서 작동한다"고 말했다. 두봉 주교는 또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된 것도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덕분"이라며 "늘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사는지 생각하고 기쁘게 살자"고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2.03
![[성경 속 궁금증] (21) 성경에서 왜 뱀이 유혹자로 등장하는가](//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384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21) 성경에서 왜 뱀이 유혹자로 등장하는가죽음과 파괴, 유혹자의 상징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1). 성경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를 뱀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를 일반적으로 태고사(太古史)라고 한다. 태고사는 세상 창조, 아담과 하와 창조, 카인과 아벨, 노아 홍수, 바벨탑 등 재미있게 전개되는 설화(說話)형식으로 쓰여 있다. 어떤 이는 인류 가운데 배꼽이 없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출산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창조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설화를 글자 그대로 믿고 이해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태고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설화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옛날 이야기 중에는 허무맹랑한 것도 많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가정과 공동체 역사와 문화를 배우게 된다. 형식은 이야기지만 그 의미와 뜻은 그 안에 고스란히 보존돼 전승된다. 따라서 설화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의미와 뜻에 집중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뱀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해야 그 설화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뱀은 아주 복잡한 의미를 가진 상징적 동물이다. 죽음과 파괴, 지식, 힘, 간계, 음험, 교활, 암흑, 부패, 유혹자의 상징이며, 다리나 날개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서 모든 것에 침투하는 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눈은 인간의 내적 본성과 양심을 나타낸다. 뱀은 마녀나 마술사 같이 사악한 힘을 가진 존재가 변장한 모습으로 자연계의 사악한 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경에는 뱀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서 뱀은 50여 차례나 언급되는데, 물론 그 역할도 다양하다. 뱀은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창세기는 뱀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존재라고 소개한다(창세 3,1). 뱀은 하와를 죄에 빠뜨리는 유혹자로 온갖 달콤한 말로 하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며(창세 3,1-24 참조), 하와는 유혹에 빠져 먹음직한 열매를 따먹게 된다. 결국 하와뿐만 아니라 아담까지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게 됐고, 이 때문에 하느님 저주를 받은 뱀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어야 하는 가련한 존재가 됐다(창세 3,1-5). 신약성경은 뱀을 죽음의 세력, 하느님에 의해 짓부숴져 사도들 발 아래 밟히는 사탄으로 표현한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사탄을 짓부수시어 여러분의 발아래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로마 16,20). 이처럼 뱀은 전통적으로 사탄과 동일시되고 나쁜 성향을 갖고 있는 죽음의 천사로 이해됐다. 따라서 성경 저자들이 성경에 뱀을 유혹자로 묘사하고 등장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퇴사자22012.02.01
한국가톨릭출판사협, 가톨릭 정신 책으로 알린다 19~23일 서울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참가, 다양한 책 판매 및 체험공간 마련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회장 김수영 신부)는 19~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3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다. 가톨릭출판사, 바오로딸, 분도출판사, 생활성서, 성바오로, 성서와함께 등 협의회 회원 출판사 6곳과 서울ㆍ수원ㆍ인천 가톨릭대출판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함께한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가톨릭계 출판사가 협의회 이름으로 가톨릭도서 부스를 공동으로 차려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각 출판사가 개별 참가했다. 협의회는 가톨릭 도서 부스 주제를 '책, 사람 그리고 하느님-책을 통한 소통'으로 정했다. 출판사별로 부스 공간을 나누지 않고 영성ㆍ심리, 기도ㆍ묵상, 성경, 성인전, 문학, 아동 등 6개 분야로 나눠 관람객들이 각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분야별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6개 분야에 들지 않더라도 출판사를 대표하는 주요 도서들도 전시, 판매한다. 이 밖에도 미디어관을 운영해 가톨릭교회가 제작한 DVD, 음반 등 영상물을 소개하며 상담, 성경쓰기, 성화 퍼즐맞추기 등 체험 공간도 마련한다. 협의회는 이번 도서전 참가가 가톨릭교회 출판 현황과 성과를 일반인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의회 회장 김수영(분도출판사 사장) 신부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선교의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가톨릭 고유의 정신을 책을 통해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도서전에서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다문화 가정을 위해 쓸 예정이다. 수익금으로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광산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성빈센트다문화가정센터, 성가누리, 루이즈의 집에 한국어 교재와 책을 선물한다. 한편 협의회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로 홍성남(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신부를 초청했다. 속 시원한 상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홍 신부는 22일 오후 6시 행사장 이벤트B홀에서 '자기 마음 돌보기'를 주제로 강의한다. 도서전 관람을 원하는 이들은 10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 누리방(www.sibf.or.kr)을 통해 관람객 사전 등록을 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전 등록이 아닌 일반 입장료는 일반 3000원, 초ㆍ중ㆍ고ㆍ대학생 1000원이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6.04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1>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9057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교회 가르침, 구원의 길 안내하는 '신앙의 내비게이션' 나는 길눈이 무척 어둡다. 병자영성체를 주러 제 발로 걸어들어간 길인데도 나오면서 헤맬 정도다. 내가 기억한 주요 지점에 다른 건물이 생기면 그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인 양 헤맨다. 운전할 때는 더 그렇다. 많아야 1년에 몇 차례 운전하는 내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와 건물들이 나를 당혹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해야만 할 때는 지도를 꺼내놓고, 주요 도로와 교차로를 따로 적어 그대로 따라간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가장 큰 선물이 내비게이션이다.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목적지만 정해놓으면 알아서 길 안내를 해준다. 요즘은 기술이 더욱 발전해 몇 번 차로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주유소까지도 알려주니, 이젠 지도책이 없어도 되고, 건물이 새로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모든 내비게이션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 같은 곳에서 빙빙 돌게 하거나,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어떤 회사 것이 좋다거나 어떤 소프트웨어가 좋다며 선호하는 제품이 있다. 그 제품을 쓰면 헤매지 않을 수 있고, 기름과 시간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교회의 가르침은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해준다.#교회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교회의 가르침이란 한 마디로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와 지명뿐 아니라 급커브 지역, 제한속도와 일방통행 같은 여러 가지 조건과 통행량, 낙석 지역 같은 환경도 자세히 조사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르침도 어느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내려온 가르침,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현 시대의 문화와 과학ㆍ경제ㆍ환경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해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왜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가?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 구원의 문이 열렸지만, 모든 인간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현재 세상을 사는 우리는 아직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충실하게 살아서 그 문으로 들어가겠지만, 그 문으로 가는 길을 아직 알지 못하거나 찾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전 인류가 그 구원의 길에 들어서고, 또한 충실히 그 길을 걸어서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사도시대 때부터 교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따라 하느님 나라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왔으며,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해왔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도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교회헌장」 16항)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내비게이션 없어도 운전자가 알아서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잘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느님 나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길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스스로 길을 찾았거나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께 올바로 나아가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권한으로 가르치는가? 세상에는 큰 목소리를 내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올바른 지식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 전체를 위해 말한다 하더라도 그 방식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울진대, 지식도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그릇된 판단을 하면서도 고집을 부린다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스승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행위의 바탕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칠 자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말과 행위에는 인간적 권위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신적 권위를 지니고 계셨다. 그 말씀과 행위는 보는 이들마다 경탄하게 했고,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가?'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런 권위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사도단에게 직무와 권한을 주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7-19).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교도권이란 사도들의 직무 가운데는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이 있고, 이 가운데 진리를 선포하는 직무를 예언직이라 하는데, 이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교회의 가르침 혹은 교도권이라고 한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들은 계시의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 성령의 빛을 비추어줌으로써 진리의 빛을 밝히고, 하느님 백성이 그 빛을 따라 구원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준다. 교회의 가르침은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 말씀에 종속돼 봉사하며, 전해지는 것만 가르친다. 하느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경건히 듣고 거룩하게 보존하고 성실히 해석함으로써 교회와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이 필요한데 이 권한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참된 스승인 주교들'(「교회헌장」 25항)에게만 유보된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의 우위성을 전제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교회법전」,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담겨 있다. #가르침의 형태 교회의 가르침에는 유권적 교시와 권고적 설교, 학문적 교수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유권적 교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위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서 주요한 교도권의 행사이다. 이는 장엄 교도권(보편공의회나 관구공의회를 통해 문서로 가르치거나, 교황이 성좌에서 선언하는 문서)과 통상 교도권(지역 주교들의 사목교서나 설교, 교리해설 혹은 시노드), 그리고 통상 보편 교도권(교황령, 교황회칙, 교령, 로마 대심법원의 판결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권고적 설교는 계시 진리의 이해와 실천을 돕기 위해 권고와 격려, 해설, 교정 등의 방법으로 수행되는데 사제의 강론과 훈화, 교리가 이에 해당한다. 수도자나 평신도의 설교 및 교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학문적 교수는 계시 진리의 학문적 연구와 교수를 통해 그 내용과 뜻을 밝히고 가르침으로써 교도권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도권의 중요성 개신교회가 여러 교파로 갈라진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판단과 해석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분열을 일으키게 됐다. 마르틴 루터도 처음에는 성경 해석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엉뚱한 해석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난립하자 성경 해석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주장했다. 해석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본인 스스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성경 해석에 있어 공식적 해석과 개인적 해석을 구별한다. 개인의 묵상, 체험 및 해석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할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엉뚱한 길에서 헤매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들까지 헤매게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진리의 길을 따라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통 교회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잘못된 길에 들어서 이단에 빠진 수많은 오류를 이미 겪어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이야말로 정통 교회의 '신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전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의 하느님 자녀를 불러 모으고 계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인 우리는 한 목자 아래서 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이형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퇴사자22013.06.18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1>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9952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교회 가르침, 구원의 길 안내하는 '신앙의 내비게이션' 나는 길눈이 무척 어둡다. 병자영성체를 주러 제 발로 걸어들어간 길인데도 나오면서 헤맬 정도다. 내가 기억한 주요 지점에 다른 건물이 생기면 그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인 양 헤맨다. 운전할 때는 더 그렇다. 많아야 1년에 몇 차례 운전하는 내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와 건물들이 나를 당혹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해야만 할 때는 지도를 꺼내놓고, 주요 도로와 교차로를 따로 적어 그대로 따라간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가장 큰 선물이 내비게이션이다.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목적지만 정해놓으면 알아서 길 안내를 해준다. 요즘은 기술이 더욱 발전해 몇 번 차로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주유소까지도 알려주니, 이젠 지도책이 없어도 되고, 건물이 새로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모든 내비게이션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 같은 곳에서 빙빙 돌게 하거나,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어떤 회사 것이 좋다거나 어떤 소프트웨어가 좋다며 선호하는 제품이 있다. 그 제품을 쓰면 헤매지 않을 수 있고, 기름과 시간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교회의 가르침은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해준다.#교회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교회의 가르침이란 한 마디로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와 지명뿐 아니라 급커브 지역, 제한속도와 일방통행 같은 여러 가지 조건과 통행량, 낙석 지역 같은 환경도 자세히 조사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르침도 어느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내려온 가르침,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현 시대의 문화와 과학ㆍ경제ㆍ환경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해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왜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가?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 구원의 문이 열렸지만, 모든 인간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현재 세상을 사는 우리는 아직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충실하게 살아서 그 문으로 들어가겠지만, 그 문으로 가는 길을 아직 알지 못하거나 찾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전 인류가 그 구원의 길에 들어서고, 또한 충실히 그 길을 걸어서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사도시대 때부터 교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따라 하느님 나라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왔으며,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해왔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도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교회헌장」 16항)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내비게이션 없어도 운전자가 알아서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잘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느님 나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길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스스로 길을 찾았거나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께 올바로 나아가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권한으로 가르치는가? 세상에는 큰 목소리를 내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올바른 지식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 전체를 위해 말한다 하더라도 그 방식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울진대, 지식도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그릇된 판단을 하면서도 고집을 부린다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스승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행위의 바탕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칠 자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말과 행위에는 인간적 권위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신적 권위를 지니고 계셨다. 그 말씀과 행위는 보는 이들마다 경탄하게 했고,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가?'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런 권위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사도단에게 직무와 권한을 주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7-19).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교도권이란 사도들의 직무 가운데는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이 있고, 이 가운데 진리를 선포하는 직무를 예언직이라 하는데, 이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교회의 가르침 혹은 교도권이라고 한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들은 계시의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 성령의 빛을 비추어줌으로써 진리의 빛을 밝히고, 하느님 백성이 그 빛을 따라 구원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준다. 교회의 가르침은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 말씀에 종속돼 봉사하며, 전해지는 것만 가르친다. 하느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경건히 듣고 거룩하게 보존하고 성실히 해석함으로써 교회와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이 필요한데 이 권한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참된 스승인 주교들'(「교회헌장」 25항)에게만 유보된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의 우위성을 전제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교회법전」,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담겨 있다. #가르침의 형태 교회의 가르침에는 유권적 교시와 권고적 설교, 학문적 교수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유권적 교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위로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서 주요한 교도권의 행사이다. 이는 장엄 교도권(보편공의회나 관구공의회를 통해 문서로 가르치거나, 교황이 성좌에서 선언하는 문서)과 통상 교도권(지역 주교들의 사목교서나 설교, 교리해설 혹은 시노드), 그리고 통상 보편 교도권(교황령, 교황회칙, 교령, 로마 대심법원의 판결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권고적 설교는 계시 진리의 이해와 실천을 돕기 위해 권고와 격려, 해설, 교정 등의 방법으로 수행되는데 사제의 강론과 훈화, 교리가 이에 해당한다. 수도자나 평신도의 설교 및 교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학문적 교수는 계시 진리의 학문적 연구와 교수를 통해 그 내용과 뜻을 밝히고 가르침으로써 교도권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교도권의 중요성 개신교회가 여러 교파로 갈라진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판단과 해석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분열을 일으키게 됐다. 마르틴 루터도 처음에는 성경 해석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엉뚱한 해석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난립하자 성경 해석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주장했다. 해석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본인 스스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성경 해석에 있어 공식적 해석과 개인적 해석을 구별한다. 개인의 묵상, 체험 및 해석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할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엉뚱한 길에서 헤매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나 다른 사람들까지 헤매게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을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진리의 길을 따라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통 교회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잘못된 길에 들어서 이단에 빠진 수많은 오류를 이미 겪어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이야말로 정통 교회의 '신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전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의 하느님 자녀를 불러 모으고 계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인 우리는 한 목자 아래서 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이형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퇴사자22013.06.18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18>한스 큉(하)](//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4984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한스 큉(하)종교 간 대화와 세계 윤리 정립에 힘써 1978년에 발간된 「신은 존재하는가?」는 「그리스도인의 실존」보다 신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톨릭 철학자 에머리히 코레트(E.Coreth, 1919~2006) 신부는 책의 전반부, 곧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니체에 이르는 근대 사상과 겨루면서 화해와 극복을 추구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계속된 교회 교도권에 대한 큉의 비판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큉은 근대 무신론조차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유독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교도권에 대해서만 왜 그렇게 비판적인지 묻고 싶다." 큉과 교회 교도권과의 해묵은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1967년 「교회」로 시작된 교황청 신앙교리성과의 갈등은 1970년에 발간한 「무류라고?」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에 큉을 부르지만, 큉은 '대화'의 공정한 규정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그 후 협상은 지루하게 진행되다가 1975년 2월 조건부로 마무리된다. 큉이 앞으로 교황 무류권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신앙교리성에서도 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갈등은 수습됐다.교회 교도권과 마찰 하지만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직후, 큉은 다시 교황 무류권을 언급했다. 1979년 초 발간한 「진리 안에 보존된 교회?」라는 소책자에서 교황 무류권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새 교황에게 이 문제에 관한 대화를 요청했다. 신앙교리성은 이를 1975년에 맺은 합의를 깬 것으로 간주하고, 1979년 12월 18일 성명을 통해 "한스 큉 교수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가톨릭교회의 온전한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톨릭 신학자로 간주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큉은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사제직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큉은 튀빙겐대 측과의 조율을 거쳐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가톨릭 신학부 소속이 아닌 총장 직속의 교회일치 신학 교수로서, 그 직책과 연관된 교회일치연구소 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스 큉은 이렇게 특별한 조건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12월에 정년 퇴임했다.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했음에도 큉의 학문 활동은 왕성하게 계속됐는데, 연구 초점은 가톨릭교회와 신학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넓은 분야로 확장된다. 세계 종교의 기초 연구 우선 전통적 신학 주제를 대상으로 한 저서는 종말론을 다룬 「영원한 생명?」(1982), 교회일치를 지향하는 자신의 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신학」(1987), 사도신경 해설서 「믿나이다」(1992) 정도다. 이에 비해 종교와 문학, 특히 여러 종교에 대한 저작들을 다수 출판했다.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1984), 「문학과 종교」(1985), 「신학과 문학」(1986), 「그리스도교와 중국의 종교」(1988), 「인간성의 변호인들」(1989) 등이다. 1990년에 출간한 「세계 윤리 구상」(1992년 우리말 번역)에서 큉은 원대한 계획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인류 상황을 고찰해볼 때 생존을 위해선 인류 전체를 위한 윤리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측면에서 대 종교들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 바가 매우 큰데, 세계 윤리는 윤리 담지자인 세계 종교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협력을 위해선 종교 간 대화가 필수적이다. 큉은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계 윤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고, 종교의 대화 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큉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각 종교에 대한 기초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리고 긴장과 다툼이 많은 세 종교, 곧 아브라함에게 기원을 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기초 연구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실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간이 2000년대에 돌입하면서 대 종교들의 취지는 어떠한 것일까? 무엇이 지속돼야 하고, 무엇이 변화돼야 하는가? 영속적인 신앙의 요체는 무엇이며 변화하는 징후는 무엇인가? 종교 사이의 적대는 어디에 있으며, 병존과 분화, 수렴과 갈등의 진원지 그리고 대화의 씨앗은 어디에 있는가?" 큉은 세 종교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차례로 발표했다. 1991년에는 「유다교」, 1994년에는 「그리스도교」(2002년 우리말 번역), 2008년에는 「이슬람」(2012년 우리말 번역)을 썼다. 큉은 이 책에서 패러다임 분석을 통해 각 종교가 어떻게, 또 왜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를 고찰하고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제시했다. 큉은 자신이 주창한 세계 윤리 구상이 실현되도록 적극 활동했다.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협의회가 제정한 '세계 윤리를 위한 선언'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선언은 장차 세계 윤리의 기초가 되는 4가지 기본 원칙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비폭력의 문화 △정의로운 경제 질서와 연대성의 문화 △진실한 삶과 관용의 문화 △남녀의 평등과 동반의 문화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1995년 세계 윤리 구상의 구체적 실현을 돕는 '세계윤리재단'이 설립됐고, 큉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 4월에는 큉이 명예교수로 있는 튀빙겐대에 '세계윤리연구소'가 세워졌다. 큉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주의 큉은 가톨릭 교수 자격이 박탈된 후, 자신의 신학을 변호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철두철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논하는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표현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집중은 신학 연구 초기에서부터 일관성 있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그리스도 이해는 동일하게 머물지 않고 큰 변화를 겪는다. 칼케돈공의회의 교의 결정에 근거한 전통적 그리스도론, 이른바 '위로부터 그리스도론'에서 현대의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역사의 예수에 초점을 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큉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삶은 성경에 토대를 둬야 한다고 확신하는데, 그 성경의 중심은 역사의 예수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제하에 성경에서 출발해 교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성경의 중심인 역사의 예수를 신학의 근본 규범으로 삼아 교회 전통 요소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 의미를 축소하거나, 제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방법론은 큉의 대표작 「그리스도인의 실존」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큉은 이 책을 통해 목표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정확하면서도 오늘의 현실에 부응하고 최근의 연구 현황에 바탕을 두면서도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교 설계의 결정적 특징을, 그리스도교적 실천을 위해서 도출하는 것이다. 이 설계가 원래 2000년의 먼지와 쓰레기에 덮이기 전에 무엇을 뜻했었으며, 이 설계가 오늘 새로이 조명될 때 각자에게 뜻있고 보람찬 삶을 위해 무엇을 뜻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복음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유일한 옛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환영만이 아니라 교회와 전통을 소홀히 한다는 거센 비판도 받는다. 바로 여기에 큉이 극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면서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이유가 있다. 교황 무류권에 대한 논쟁은 많은 물의를 빚었지만, 그가 이유 있는 질문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내재한 문제를 끄집어내 공론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큉이 시도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전통 그리스도론의 핵심 내용을 불충분하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질문과 시도는 정당하지만 해결책은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학자 하인리히 프리스(H.Fries, 1911~1998) 신부는 현대인들, 특히 의심과 물음이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설득력 있게 전하려는 큉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큉으로 인해서 불안을 느끼는 신자들 외에도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큉의 저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신은 존재하는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위해 진정한 도움을 발견하거나 신앙을 강화하고, 신앙 이해와 획득을 위해 새롭고 신뢰할만한 입구를 찾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목자와 교리교사, 설교자에게 위에 언급한 두 책은 진정 귀중한 보고(寶庫)가 됐다. 큉은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교회 변두리에 자리한 사람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신앙과 거리를 두고서 교회를 비판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도달한다." 교황 무류권 문제로 큉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칼 라너 신부도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 "나는 큉의 여러 입장을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를 밝혔고 나름대로 항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한스 큉의 긍정적 의미와 자유주의적이고 대중적이며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전해주려는 그의 성실한 노력을 존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1981년 12월 칼 라너는 다른 여러 신학자와 함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큉과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스 큉 신부가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결국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해서, 또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신학적 노력과 성과의 긍정적 측면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계속되는 세계 윤리 정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cpbc2013.09.24
![[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3.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4.끝>참된 신앙인이 되는 길](//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53_1.2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3.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참된 신앙인이 되는 길교회는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 가르치는 학교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성찰할 때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의 특수사목 신부들 24명이 함께 사는 공동 숙소인 성김대건관. 이곳 식당에서 주로 이용하는 두 개의 식탁 가운데에는 제법 큰 약상자가 있다. 그 약상자 안에는 여러 개의 약병이 들어 있는데, 어떤 질병에 대한 약이 아니라 비타민을 비롯한 건강보조 약품이 대부분이다. 40대와 50대 신부들이 주를 이루고, 몇몇 30대 신부들이 있는 곳에서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갖추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약상자 안에는 제법 많은 약병이 있다. 처음 그 약상자를 봤을 때에는 많은 가정에서 그렇듯 약을 사다 놓기만 하고 잘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병에 든 약도 비타민 하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잘 먹지 않았는데, 요즘은 식사 후에 약상자 안의 여러 약통에서 약들을 꺼내 한 움큼씩 먹으면서 이것이 무슨 대단한 보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챙겨준다. 현대인들이 가장 관심 있는 주제 중 하나는 건강이다. 본래 인간은 고래로 무병장수를 희망해왔으니 건강을 바라는 것이 현대인들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무병장수를 원하는 선조들은 호흡법이나 심신단련을 통해 건강도 지키고 장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므로 감정을 절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노력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숙면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폭식하고,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차 타고 다니며,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밤늦게까지 자기 취미 생활을 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든다. 이런 모습은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서도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거나 건강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찾는 것이 바로 약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기초적인 노력을 게을리하면서도 약을 통해 건강해지리라 기대하고 맹신하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기도를 바치거나, 어느 성지에 가거나, 기적의 패나 스카풀라 같은 성물을 소지함으로써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중심은 신앙생활에서 중심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며,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가르쳐 주셨고,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나눔(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중요성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부자 청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함을 깨우쳐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은 이 가르침에 따라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영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이 길을 충실히 걸어가기 어려우므로 기도 때마다, 미사 때마다 주님께 은총을 구하며, 그 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해야 한다. 건강해지고자 하는 사람이 매일 음식을 절제하고,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참된 신앙인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생활에서조차 약을 찾는다. 자신의 부족한 노력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 빠른 특효약을 찾는 것이다. 기본적인 신앙생활과 사랑의 실천을 게을리 하면서도 말로만 바치는 기도나 성물들을 통해 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수험생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십자고상을 끌어안고 자면서 시험을 잘 치르게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런 허황된 믿음과 허황된 기대가 자신을 망치고 만다.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해 준다. 우리가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느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소홀히 하면서 하느님께 대신 바쳤다는 의미로 '코르반'이라고 하면 된다고 믿었고, 이런 나쁜 관행에 대해서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이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본인만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느님 백성들까지도 진리의 길을 벗어나 오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로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비춰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둠과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하느님께 은총과 자비를 청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다른 이들의 허물을 들추어낼 자격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나 교회 봉사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닮았다. 율법교사와 바리사이들이야말로 성경 안에서 율법의 규정들만 따질 줄 알았지, 그 내면에 깔린 사랑의 정신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의인임을 자처하면서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며 살다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누구보다 작아지게 됐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해갈수록 이웃의 눈 속의 티보다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내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 찬양과 전례 교회는 흩어진 하느님 백성들을 불러 모아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며 일치시킨다. 사도행전을 통해 드러나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했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기도했음을 알 수 있다. 박해를 받을 때에도 변함없이 함께 모여 빵을 나누었으니, 이는 함께 모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빵을 나누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특성임을 드러내 준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하느님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불러 모은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백성들은 전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사와 제물을 봉헌하며 함께 빵을 나누면서 친교와 일치에 이른다. 일치를 이루는 것은 성령의 작용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악령의 유혹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공동체에서 내보내려 하는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며, 이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분열된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려는 사람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예수 수난에 동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함으로써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가르쳐주셨다. 이 말씀대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했고,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도록 초대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하며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영광의 그리스도 이전에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때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깊이 일치하게 되고, 더 큰 사랑을 발하게 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나눔의 실천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눔을 실천하며 일치에 이르도록 초대한다. 초대교회 공동체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저마다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고, 너희 가운데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신명기 15장의 말씀을 실천했으며,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갈라티아와 코린토의 신자들은 예루살렘 모교회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그들을 위해 기꺼이 나눔을 실천했다. 그들은 이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었으며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됐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가서 너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세상 안에서 세상을 배우며 성장하고 발전한다. 혼자 노력해서 배우는 것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학교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학교다. 하루빨리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 학교에서 구원의 길을 찾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이형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cpbc201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