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주님 손 꼬~옥 잡은 가족 보기 참 좋다!](//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6711_1.0_titleImage_1.jpg)
[신년 특집] 주님 손 꼬~옥 잡은 가족 보기 참 좋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걷는 박성락·문아로 부부와 시끌벅적한 다섯 아이의 신앙 이야기 새해, 새 아침. 전국의 각 교구장은 하느님 말씀과 기도, 가정 복음화,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복음의 기쁨」이 전해주는 가르침과 방법론에 따라 복음 선포의 주역이 될 것을 주문한다. 이에 하느님 말씀과 전례, 공동체라는 세 다리, 곧 정족(鼎足)과도 같은 균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박성락(시몬, 40)ㆍ문아로(리타, 39)씨 부부와 다섯 자녀를 만났다. 초대 교회 공동체 운동으로 불리는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안에서 신앙의 여정을 걷는, 마치 ‘도반’(道伴)과도 같은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말씀과 기도, 공동체 생활을 빼놓고 박성락·문아로씨 가정을 설명할 수 없다. 박성락ㆍ문아로씨 부부와 다섯 자녀가 성탄 트리와 구유를 장식하고 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걷는 부부는 ‘예뻤다’. 질투가 날 정도였다. 살아가는 일상이나 직장 생활, 본당 공동체와 함께하는 신앙 생활은 더 예뻐 보였다. 일터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 모두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시간은 저녁나절.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 아차산역 인근에 자리한 단독 주택 2층 보금자리에 들어서니 아이들로 야단법석이다. 손님이 왔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다들 거실로, 부엌으로 뛰어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답다. 손님이 오셨으니 인사하라고 엄마가 큰소리를 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현관으로 달려와 건성으로 인사를 한 뒤 거실로, 부엌으로 조르르 달려간다. 엄마가 저녁마다 해주던 목욕 준비를 하느라 다들 바쁘다. 여느 집과 다른 건 아이들이 하나둘이 아니라 다섯이나 된다는 점. 새해로 10살이 된 초등생 희언(이사야)이를 시작으로 다음 해 12월 31일에 태어난 9살 주안(아기 예수의 데레사)이, 한 해 걸러 태어난 7살 준언(그레고리오)이, 한참 있다가 태어난 4살 첼리나, 이제 6개월밖에 안 된 막내 이레네까지 2남 3녀다.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다섯 자녀를 낳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다. 부부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하나 혹은 둘만 낳으려 했다. 그런데 셋째를 낳고 나니 이 아이들을 언제, 어떻게 키우나 싶어 그만 낳으려고 했다. 그래서 셋째와 넷째는 터울이 3년이나 난다. 그런데 부부는 그때 “자녀를 낳는 건 하느님 몫”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생명의 주관자가 되려 했다는 자성에 넷째를 낳게 됐고, 넷째가 태어나니 하도 예뻐서 다섯째를 받아들였다.그렇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건 역시 쉽지 않다. 특히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하기 위한 가정 전례가 가장 어렵다. 아침, 저녁기도가 이 가정에선 일상이다. 특히 주일 아침은 시간전례(성무일도)로 바치는 아침기도를 통해 자녀들을 축복하고 믿음을 물려주는 데 힘을 쏟는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려면 ‘한없는’ 인내가 필요하다. 주모경에 영광송, 개별 자유기도에 이어 복음이 각자의 삶을 어떻게 비추는지 서로 나누는 ‘메아리’ 시간까지 가지려면, 아빠든 엄마든 큰 소리가 날 수밖에 없고 때론 회초리까지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믿음을 전할 수 없고, 또 성경이 현재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나아가 매주 수, 토요일이면 성당(서울대교구 구의동성당)에서 공동체와 함께 말씀의 전례, 혹은 미사를 거행한다. 또 한 달에 한 번씩은 공동체별로 월 피정, 곧 꼰비벤자를 갖는다. “가장이 아는 만큼, 배운 만큼 복음 해설과 함께 권고하고 자녀들도 이 말씀에 대해 한마디씩 해보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사실 통제가 되지 않기는 하지만, 자녀들을 위해 복음을 나누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아침기도는 믿음을 물려주는 핵심이자 아이들과 부모의 대화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메아리 시간은 사춘기로 엇나갔던 자녀들도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메아리를 통해 부모들과 화해하고 부모 또한 자녀들을 받아주며 축복을 해주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날마다 기도하려 하지만, 때로 기도를 빼먹을 때도 있다. 수도자들처럼 기도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촛불 하나 켜놓고 마음을 모으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 청하고 그 은총의 의미를 깨달으며 기도의 여정을 걸어가는 일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이렇게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안에서 가정기도에 열심이었던 건 아니다. 다 구교우 가정 출신에 모태 신앙이었지만, 혼인 전에는 학생회나 청년회, 성가대 활동을 하며 평범하게 신앙 생활을 했다. 물론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신앙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2년께 이제는 아내가 된 리타 씨의 초대로 둘이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걷게 되면서 신앙에 새롭게 눈을 떴다. 그 덕에 믿음 안에서 혼인했고,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받아들여 신앙으로 키워나갔다.고비가 없을 리 없다.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부부 싸움도 당연히 한다. 하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서로 먼저 화해와 용서를 청한다. 삶 안에서,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신앙과의 괴리도 당연히 있다. 그래서 직장을 비롯해 그 어디에서든 당당히 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고 세속과 일정한 선을 긋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던 것도, 접대의 유혹도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준비 모임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했다.2년 전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것도 공동체 안에서 기도로 결정했다. 다니던 지점이 폐쇄되면서 명예 퇴직을 할지, 아니면 서울로 올라올지 고민이 컸는데, 기도 속에서 서울에 올라왔다. ‘주님께서 어디로 이끄시는지 가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울산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집 크기를 줄여 전셋집을 구하고 구의동성당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요리 강사로 활동하던 부인은 잠시 일을 접고 다섯 아이를 돌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결국은 기도하는 삶을 통한 체험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안에서 세 다리, 곧 하느님 말씀과 전례, 공동체가 주는 체험이 개인의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겸손되이 기다리며 기도하는 체험 말입니다.”글·사진=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4.12.24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가진 바를 나눈 참 교육자 김익진 프란치스코 <10>](//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2556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가진 바를 나눈 참 교육자 김익진 프란치스코 장님이 된 프란치스코내심낙원 출간.수입이 거의 없어서 가재도구와 아내의 패물들이 팔려 나갔다. 자식들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할 지경이었다. 간간이 글을 써서 받는 고료가 수입의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초근목피라는 말이 연상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반가운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 영어판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한국어로 번역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료로 500달러를 미리 보내드립니다. … 1955년 3월 15일. 광주교구장 현 하롤드 주교.’ 작년까지 광주교구장 서리로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사목했던 주교였다. 1953년 5월 31일에 현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로 산정동본당에 레지오 마리애 남성, 여성, 혼성 쁘레시디움을 세웠다. 말하자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산파역이었다. 번역 의뢰는 모든 걸 나눠주고 떠난 나를 위한 배려였다. 아니, 하느님이 베풀어준 은혜였다. 나는 곧바로 번역에 착수해 이듬해 유월에 「레지오 마리애 직무 수첩」을 냈다. 그것이 한국 교회에 레지오 마리애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그 무렵 나는 미국 예수회의 주간지 「아카데미」에 실린 서평을 보고 꼭 번역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우징숑(吳經熊)의 「동서의 피안」이었다. 저자는 사상 편력 끝에 느지막이 가톨릭에 귀의한 중국의 법리학자였다. 그 책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을 비교하며 진리를 찾고 있었다. 동서양의 종교 사상을 비교 분석하여 동서를 초월한 피안의 세계가 바로 그리스도교임을 제시했다. 일종의 자기 신앙고백서였다. 나는 당시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던 우징숑 박사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 저는 일본과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불교 등을 섭렵하다 가톨릭에 귀의했습니다. 선생님도 저와 비슷한 길을 걷다 가톨릭에 입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귀중한 책을 번역해 한국의 지식인들이 영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 형이 영세하신 것이 저와 같은 해이기는 하지만, 주님께 나아가기를 저보다 두 달이나 먼저 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뜻이기에 마땅히 형으로 모시겠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저자였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위인 그는 나를 영적인 형으로 불렀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는 그 책을 번역하는 데 꼬박 7년이란 세월을 들였다. 영어판 책을 적당히 의역하고 싶지 않았다. 한문으로 쓰인 원문을 꼼꼼히 대조하며 번역해나갔다. 미심쩍은 대목이 있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신부와 교수들을 찾아가 의견을 들었다. 마침내 1961년 12월에 가톨릭출판사에서 번역판이 나왔다. 지식인들은 동서고금을 아우른 걸작에 환호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 우징숑의 또 다른 신심 서적인 「내심낙원」 번역에 착수했다. 저자는 그 책에서도 동양 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 사상을 탐구했다. 극기, 온유, 박애, 평화, 기쁨을 통해 사랑의 발아, 개화, 결실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저자의 삶과 견해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수록 더욱 신중하게 번역에 임했다. 1966년 4월,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드디어 「내심낙원」 번역본이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소포를 뜯는 순간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눈알이 쏟아질 것 같이 흔들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안과 의사의 목소리가 근엄했다. “왼쪽 눈은 완전 실명! 오른쪽 눈은 망탈(網脫), 안저생혈(眼底生血)입니다.” 신경과로로 인한 고혈압 때문이었다. 번역을 위해 일 년 동안 객지에서 주야로 과로한 탓이었다. 나는 이미 「동서의 피안」 번역에 몰두하던 6년 전에 왼쪽 눈을 실명한 처지였다. 그때도 신경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쪽 눈마저 그리되었다니…….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눈이 아파 글을 통 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하느님을 원망하며 따지기도 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그러나 그때 어두움 속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게 있었다. 시력을 잃어 고생하고 있는 건 회심에 필요한 주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게 진정한 통회의 생활을 하라는 계시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묵상 기도 중에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세속에서 멀리 떠나 내심의 낙원을 더욱 절실히 맛보아라!”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는 고통의 은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내 통회와 보속이 끝나는 날 건강을 되돌려 줄 것이라 믿었다. 그날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문서 전교에 힘을 쏟으리라 다짐했다. 내 영적 지도자이자 동반자인 오기선 신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셋째 딸 화영이를 지팡이 삼아 사제관을 방문하자 오 신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어허! 큰일 났군요. 두 눈이 저렇게 어두워서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내 주보이신 오상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도 봉사가 돼 세상을 마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눈을 잘 못 보는 것까지도 그분을 닮으렵니다.” 1967년 초겨울, 아내와 나는 대구 대명동에 있는 대지 40평에 건평 15평의 시멘트블록 집으로 이사했다. 가르멜 수도원 근처였다. 나는 매일 2㎞를 걸어가 수도원 성당에서 성체조배와 묵상을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하느님에게 의탁하는 시간이었다. 텅 빈 껍데기에 밝은 빛이 넘치도록 가득 차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하루에 한 시간씩 노인들에게 시조창을 배웠다. 목소리를 길게 빼기도 하고 떨기도 하며 천천히 시조를 읊조렸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마음이 유쾌해졌다. 뿐만 아니라 심호흡을 하면서 내장 운동을 하게 돼 소화에도 도움이 됐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여백의 미를 즐겼다. 날이 갈수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지나온 날을 성찰하며 지복직관의 희망을 꿈꾸었다. “아버지!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세요?” 화영이의 목소리에 빛바랜 사진첩이 스르르 닫힌다. 애련한 음성이 찻집 분위기와 어울린다. 은은한 차향이 감미롭다. 비발디의 ‘사계’가 대미로 치닫고 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내 선종 준비로 눈병을 허락하신 게 틀림없구나. 난 삼왕이 아기 예수를 찾아오신 날 떠나고 싶어.” 수녀가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친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오래 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나는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약속한다. “우리 수녀님이 원하면 그러지 뭐.” 난 그날 화영이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 달 뒤인 1969년 12월 29일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64세 되던 1970년 1월 6일에 눈을 감았다. 삼왕내조축일(지금의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다. 인자한 주님이 내 소원을 들어준 모양이었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일본과 중국 유학을 하며 진리를 찾아 방황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나 가톨릭을 알게 됐다.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 그 뒤 가진 걸 나누고 봉사하며 빛과 소금처럼 살고자 애썼다. 평생 지니고 다녔던 곰방대와 만년필만 남겼다. 나를 인도한 맨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긴 한 건가. 후세의 우리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나와 같은 평신도가 이 땅에 살다갔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길까. 아니, 기억이나 해줄까. 내 장례 미사는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됐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덕분에 범물동 성당묘지의 묘비명이 참 길다. ‘天主公敎會友方濟各安東金公益鎭之墓(천주공교회우방제각안동김공익진지묘)’ <끝> 다음 호부터는 김홍섭(바오로) 판사 편이 소개됩니다. 백영민2015.01.28
![[복음 이야기]<14> 이스라엘 도량형](//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5487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이스라엘 도량형 짧은 길이는 인체 일부분을 표준으로 측정 성경 속 유다인이 사용한 도량형은 대단히 복잡하다. 길이와 부피의 단위가 지방에 따라 달랐다. 또 전통 이스라엘 도량형에 바빌론 유배 후 도입된 바빌로니아 계량법과 알렉산더와 로마의 지배로 헬라와 로마식 도량형이 혼용됐다. 유다인들은 헬라(그리스)와 로마인처럼 비교적 짧은 길이를 재는 데는 인체 일부분을 표준으로 삼았다. 길이의 기본 단위인 '암마'(한 자, 창세 6,15; 탈출 25,10)는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 길이로 통상 46~54㎝ 정도였다. 1암마는 '2제레스'(두 뼘)로, 1제레스는 잔뜩 벌린 손의 엄지손가락 끝에서 새끼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평균 약 23㎝이다. 그리고 1제레스는 '3토파'(tofah)로, 1토파는 네 손가락 너비 즉 네 손가락을 합친 것(예레 52,21)을 가리켰다. 또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상을 만들 때 사용된 '손바닥 너비'(탈출 25,25)는 약 7.5㎝이다. 긴 길이를 잴 땐 유다인들은 일상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방법,즉 '화살 한바탕 거리'(화살 사정거리, 창세 21,16)나 '하룻길'(민수 11,31; 1열왕 19,4; 루카 2,44), '안식일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사도 1,12, 약 1㎞)로 단위를 계산했다. 긴 길이를 잴 때 기준이 되는 '한 걸음'(2사무 6,13; 마태 5,41)은 약 90㎝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 후 '스타디온'(루카 24,13; 요한 6,19. 11,18; 사도 14,20 등)이란 길이 단위가 도입됐다. 1스타디온은 600보 정도로 400암마 약 185m이다. 랍비들은 '안식일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6스타디온'이라 규정했다. 또 로마인들의 상용단위인 '밀레'도 예수 시대 때 사용됐는데 1밀레는 1000걸음 약 1478m였다. 물 깊이를 재는 데는 주로 '오르귀아'(한 길, 약 1.85m) 단위를 사용했다. 사도행전 27장 28절에는 로마로 압송 중이던 바오로 사도가 탄 배의 선원이 물의 깊이를 재는데 '스무 길''열다섯 길'이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헬라어 본문에는 '20오르귀아' '15오르귀아'로 나온다. 면적을 재는 방법은 오늘날 우리가 '평방미터'(㎡), '평방 킬로미터'(㎢)를 말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쟀다. 작은 면적을 재는 데는 '까네'(에제 40,3)라는 측량 장대를 사용했다. 까네는 3m보다 좀 더 길었으므로 잰 단위 면적은 약 10㎡이다. 이보다 넓은 면적을 측량할 때는 '아마 줄'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토지를 말할 때 '측량줄'(시편 15,6)이라고 했다. 보통 농부들이 토지 면적을 말할 때 두 마리의 황소가 하루에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을 단위로 썼다. 고대 유다인들은 고체와 액체의 용량을 재는 방법은 전혀 몰랐다. 제일 흔히 쓰는 계량 단위는 복음서에서 '함지'(「공동번역」은 '됫박'. 마태 5,15; 마르 4,21)라 번역되고 있는 단위다. 이는 헬라인과 로마인이 사용한 '모디오스'를 말하며, 1모디오스는 약 8.65리터다. '세스테스'는 1모디오스의 6분의 1로 1세스테스는 약 1.4리터다. 또 '섹스타리온'은 우리 말 '되'를 뜻하며, 1섹스타리온은 약 1.1리터다. 또 예수님 시대에는 밀이나 보리의 양을 재기 위해 토기나 나무 그릇, 놋그릇 등을 사용했는데 이를 '세아'라 불렀다. 1세아는 13리터가 넘었다. 카나의 혼인 잔치 때 예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실 때 독 크기는 '두세 동이'였다(요한 2,6). '동이'는 헬라인들이 사용한 '메트레타스'로, 1메트레타스는 약 400리터다. 로마인이 사용한 1 우르네(urnae)는 130리터다. 예수님 시대엔 중량 단위도 유다인과 이방인의 것이 혼용됐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바르기 위해 향유 한 리트라를(요한 12,3),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유 100리트라(요한 19,39)를 가져왔다. 이 '리트라'(라틴어 '리브라')는 로마인이 사용한 단위로 1리트라는 약 327.5g 또는 327.5리터다. 성경에는 '탈렌트'(탈출 25,39; 마태 18,24; 묵시 16,25), '미나'(1열왕 10,17; 느헤 7,70; 루카 19,11), '세켈'(창세 23,15; 탈출 30,13) 등이 자주 나온다. 이것들은 바빌로니아 단위로 1탈렌트(약 34㎏)는 60미나(약 570g)고, 1미나는 60세켈(11.4g)이다. 1미나는 4~5리트라와 비례했다. 예수님 시대 때 '탈렌트'는 중량 단위로 사용하지 않고 은이나 금의 액수를 계산하는 데 사용했다. 유다인들은 동물 모양을 나타내는 것은 율법으로 금했기에 무게를 다는 저울추(잠언 16,11)는 단단한 돌이나 청동, 납덩어리로 사용했다. 이 추에는 검인이 찍혀 있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4.04.16

기쁨으로 가득한 신앙의 뿌리 찾기 50년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식 및 기념전·설립자 최석우 몬시뇰 추모의 장 마련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을 인가한 라틴어 설립 공문. 교회사 연구 50주년, ‘기쁨의 희년’이다. 17일로 희년을 맞는 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이사장 조규만 주교)는 20일 오후 5시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실증적 사료 비판과 연구에 터 잡아 걸어온 외길 교회사 연구 50년을 기념한다. 연구소는 이날 기념식에 전임 이사장인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해 현 이사장 조규만 주교 등 주교단과 교회사 연구에 함께해 준 교구 원로 사제, 수도자, 교회사학자, 교회사연구동인회원과 후원회원 등 450여 명을 초대해 기쁨을 함께한다. 이날 기념식은 1964년 8월 17일 가톨릭대 부설연구소로 출범, 한국 교회사 연구를 심화하고 순교정신을 드높임으로써 한국 근대사 연구와 한국 문화 발전에 기여해온 지난 50년을 경축하는 자리다. 또 ‘움직이는 연구소’로 불린 초대 소장 고 최석우 신부와 2대 소장 김성태 신부를 축으로 연구원들이 흘린 땀과 노고, 기도를 기억하는 자리다. 아울러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이라는 기념비적 연구업적을 이루는 데 함께한 은인을 감사하며, 앞으로의 연구에도 함께해 줄 것을 당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이날을 기념해「성년광익」 영인본과 50주년 기념 논총「한국천주교사 연구의 성찰과 전망」을 펴냈다. 아울러 연구소의 어제와 오늘을 정리한 「한국교회사연구소 50년사」를 발간한다. 또 1975년 9월호부터 올해 8월호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역사 총목차」를 호수별, 주제별, 필자별로 정리했고, 「도서목록」도 펴내 그간 연구소에서 간행한 도서 간행 연혁과 도서 내용을 표지와 함께 소개한다. 이밖에 지난 4월 시성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축일인 10월 22일에 맞춰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을 소개하는 「오.늘.성.인.」을 펴낸다. 연구소는 또 20일 기념식에 앞서 당일 오후 4시 평화화랑 제1,2전시실에서 연구소 설립 50주년 전을 개막하고, 26일까지 전시를 가진다. 전시장은 네 마당으로 구성, 첫 마당 ‘사진으로 보다’는 연구소의 발자취와 영상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둘째 마당 ‘역사의 층 겹겹이 쌓이다’는 연구소가 출판한 잡지 및 간행도서를, 셋째 마당 ‘기억을 불러내고 역사를 불러내다’는 연구소 자체 소장 자료를 선보인다. 끝으로 넷째 마당 ‘최석우 몬시뇰을 기억하며’는 연구소 설립자인 최석우(안드레아, 1922∼2009) 몬시뇰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영상으로 꾸민다. 전시 자료도 △한글교리서와 성인전, 성경 등 고서류 △연구소 간행도서 △서울교구 보좌 드브레 주교의 주교서품식과 순종황제 즉위식, 철도개통식,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 낙성식 등 초대장 △신학생과 아버지의 서약서,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천묘 자료, 안명근(야보고)의 옥중 서한 △교민조약문 등 100여 점에 이른다. 문의 : 02-756-1691(내선 1번)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한국교회사연구소 약사 ▲1964년 8월 17일 가톨릭대 부설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서울 혜화동) ▲1967년 절두산성지 한국순교자기념관으로 이전 ▲1975년 합정동으로 이전 ▲1986년 명동 가톨릭회관으로 이전 ▲1996년 12월 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허가 ▲2002년 저동 평화빌딩 이전 ▲2006년 5월 한국가톨릭대사전 전 12권 완간 ▲「교회와역사」총 471호 발간 ▲「교회사연구」 총 44집 발간 ▲‘한국교회사연구자료집’ 28집, 한국교회사연구총서 8집, 한국천주교회사 통사 5권 등 24종 803권(단행본 포함) 발간 ▲교회사연구발표회 총 182회 개최 ▲2014년 8월 20일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 설립 50주년 기념식 오세택 기자 백영민2014.08.13
![[생활 속의 복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4/09/rc/530674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하느님연중 제26주일(마태 21,28-32) 조재형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예전에 서서울 지역 교육 담당을 했을 때, 모범 구역장 반장에게 상패를 드렸습니다. 각 본당에서 2명씩 추천을 받아 주교님께서 시상하셨습니다. 상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하였거나, 공동체 발전에 공헌을 하였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했을 때 주어집니다. 또는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겼을 때 주어집니다. 저는 평범한 삶을 살아서인지 상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상은 주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상을 받는 사람도 상을 주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명예와 기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누구에게 상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방법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과 업적을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를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비록 잘못했다 해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열등감과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을 포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돌아와서 뉘우치면 상을 주십니다. ‘난 안 돼!’ 이 생각과 말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악의 큰 유혹입니다. 예전에 일제가 우리에게 심어주었던 ‘패배의식’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아픈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든 하느님께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부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비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십니다. 맏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은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고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비록 죄인으로 여겨지지만 ‘세리와 창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하느님께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많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대림과 사순 시기에 특강이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 성령기도회에서 피정을 준비합니다. 각 구역과 레지오에 성당 청소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봉사활동을 할 기회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조금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상을 받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가끔 감사 헌금을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 뒤에서 경적을 울리면서 비키라고 하는 차량에 기쁜 마음으로 차선을 바꿔주면서 살짝 웃는 형제님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성적이 떨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에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을 하면서 보듬어 주는 어머니도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는 상을 받는 길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은 우리가 생각만 바꾸면, 바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오늘 제2독서는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살지 않으며 겸손하게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삶입니다. cpbc2014.09.24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3>](//cpbc.co.kr/CMS/newspaper/2015/02/rc/556935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사도법관 김홍섭 바오로 법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 김홍섭은 1915년 8월 28일 전북 김제군 수류면 금산리에서 아버지 김재운과 어머니 강재순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선대부터 임실에 터를 잡고 살았으나 집안 중에 세금징수직을 맡아 일하던 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바람에 일가친족 전부가 가산을 몰수당하게 되었다. 그 후 온 집안이 금산으로 옮겨왔지만 농사지을 땅이 없어 부친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금산리 원평 마을, 그중에도 홍섭의 집은 바로 큰길가에 있었다. 전주로 나가는 네거리 옆으로 마방이 있어 옛날에는 말과 마차들로 붐볐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는 화목차 같은 것도 자주 보이게 되었다. 금이 나는 곳이라 하여 김제라는 지명이 붙은 이 지역은 또한 손꼽히는 곡창지대 김제평야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홍섭이 태어나던 시절 그 넓은 들에서 거두어들이는 볏섬은 나라 잃은 농민들의 몫이 될 수 없었다. 일제의 수탈과 압박으로 숨 막히던 시절이었다.김홍섭은 부모가 혼인한 지 여덟 해 만에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지극하였다. 김홍섭이 아파서 결석하게 될 것 같으면 십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줄 정도였다. 자신은 가난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아들에게는 그 설움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1940년 8월 조선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과. 가운데줄 왼쪽 끝이 김홍섭. 보통학교 입학 전부터 개신교 신앙을 접했던 김홍섭에게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한학과 자연의 세계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김홍섭은 조부 김광언의 가르침을 아주 잘 받아들였다. 원릉 참봉을 지낸 분으로 학문이 깊었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한학은 물론 천지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까지 두루 넓게 알게 해주었다. 조부의 가르침에 대해 김홍섭은 나중에 이렇게 기억했다.“나의 조부는 정심성의, 즉 사람의 가죽을 쓰고서 거짓을 따를 수 없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어서도 안 된다는 내 윤리관의 기초를 닦아준 분이다.”여름밤이면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북두칠성과 삼형제 별자리 등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무궁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이때부터 김홍섭은 천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천체도와 망원경은 그가 평생 성경책과 더불어 필수로 지니고 다니던 물품이 되었다.별과 더불어 어린 김홍섭의 마음을 키우는 데는 풀이나 꽃이 있었다. 봄마다 또래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꽃싸움이나 풀놀이를 하였는데 꽃이나 풀을 가짓수대로 뜯어와 겨루는 놀이였다. 김홍섭은 아이들과 놀이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시든 꽃잎이나 풀들을 모아가다 꽃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한낱 작은 것들이라도 생명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김홍섭의 고향 마을 어귀에는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 거목의 그늘은 동네 사람들이 흥겨운 잔치를 벌이는 마당이 되기도 했고, 아이들이 모여 돼지 오줌보로 공놀이를 하는 동네 운동장이 되기도 했다. 때로 어울려 놀기도 했지만 김홍섭은 언제나 저만치 떨어져 앉아 책을 보는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김홍섭은 공부 잘하고 책 많이 읽는 아이, 착하고 성실한 아이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김홍섭이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형편이 조금만 되었어도 가까운 지역의 농림학교로 자식들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었다. 졸업 후 1년 정도 김홍섭은 나뭇단을 지고 아버지를 도와 일했다. 그런 어느 날 김홍섭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오수에서 사는 고모부의 도움으로 집안이 그곳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부친에게는 물레방앗간 일자리가 생겼고 홍섭에게는 일본인 송기(마쯔야끼)가 운영하는 약방의 점원 자리가 났다. 김홍섭은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가게 일은 물론이고 주인집의 허드렛일, 심지어 아기 보는 일까지 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싫은 내색 없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 대신 짬 날 때마다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둥에 기대선 채 책을 읽었고 밥을 먹을 때라도 읽었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구, 저기 홍섭이 좀 봐라. 저렇게 책을 열심히 읽고 있네. 길을 걸어가면서 읽고 있잖아. 도랑을 건널 때도 책을 보네!” 진학하지 못한 김홍섭에게 책은 가장 확실한 길잡이며 가장 훌륭한 스승이기도 했다. 책 속에서 홍섭은 자신의 미래를 꿈꾸었다. 특히 링컨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보았다. 켄터키 시골에 살던 가난한 링컨이 통나무를 베면서도 틈틈이 법전을 꺼내 보며 공부했다는 대목에서 김홍섭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보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조선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선망의 직업이었다.김홍섭과 같은 해에 태어난 미당 서정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성적이 좋은 것을 보자 나의 아버지는 일본 사람의 세상에서도 그저 무던히 살게 하려면 판사나 검사 같은 것이 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꼭 법과를 가라고 하셨다.’ 당시 어른들의 생각이 일반적으로 그러했지만 김홍섭은 남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 결심하고 결정했다. 10대 청소년 김홍섭은 중고 법전을 구해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던 그가 어느 날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수를 벗어나 대처인 전주로 향했다. 전주에서는 마침 같은 고향 사람 조남석 변호사가 사무실을 열고 있었다. 그의 소개로 김홍섭은 일본인 구영(히사나가) 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홍섭은 일본인 변호사에게 정중히 절을 한 후 청을 했다. “급료를 받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법률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제게 일자리를 주십시오.”조선인이라면 쉽게 경멸하고 능력을 의심하는 일본인들이었지만 김홍섭의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구영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김홍섭은 성실하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탐색했다. 그 시기에 난 공고를 보고 군산 지방법원 서기 시험에 응시하여 어렵지 않게 합격할 정도의 실력을 닦았다. 그 후 법원에 들어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근무도 해 보았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김홍섭은 결코 자신의 꿈을 낮추지 않았다. 변호사에 자신의 목표를 이미 정하고 있었던 그는 일본에 가서 본격적으로 법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경제적인 형편이 가로놓여 있었지만, 전주에서 알게 된 친구 오평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화순에서 가까운 지역인 동복 출신인 만석꾼의 아들 오평기는 이 시절부터 김홍섭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어가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1939년 봄 김홍섭과 오평기는 동경의 니혼 대학에 함께 입학하였다. 둘은 같은 하숙집에서 서로 격려해 가며 변호사 공부를 했지만, 김홍섭이 언제나 더 열심히 했다. 오평기가 이런 불평을 할 정도였다. “홍섭이, 자네는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가? 내가 오늘은 기어코 자네보다 늦도록 공부해야지 하면서 지켜보았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잠을 자고 말게 되더구먼. 아무리 해도 자네한텐 못 당하겠어. 정말 대단한 친구야, 존경하네!”김홍섭은 불기도 없는 차가운 다다미방에서 주전자에 떠다 놓은 물을 들이키며 공부에 일로 매진했다. 그리고 법과대학 1년 만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당시 경성에서 치러진 법관 시험의 경쟁률은 대단히 높았다. 1940년 조선에서 있었던 마지막 사법시험이라고 알려진 이 시험에 무려 600여 명이 응시하여 단 18명만이 통과하였다. 합격자 명단에는 김홍섭과 오평기, 그리고 해방 후 함께 검사로 일하게 된 조재천도 있었다. 그러나 변호사 시험 합격 후 김홍섭은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그를 일본에 잡아두었다. 김홍섭은 와세다 대학 문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였다. 그 공부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조국이지만 그 속에서 변호사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김홍섭은 그리운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법률가로서의 삶이 펼쳐질 순간이었다. <계속> 백영민2015.02.25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52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사순 로드맵'을 특집으로, △사순시기 복음 해설 △사순 나눔 기도 △성화로 묵상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클래식으로 만나는 사순 등을 다뤘다. '신앙의 뼈대 공의회 바로 맞추기'에서는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를 실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4500원) ▨가톨릭 비타꼰 이승환 기자의 함께 떠나는 신앙여행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낳은 땅, 수원교구 안성성당'을 찾아 소개했다. 비타꼰 화랑에서는 '수난과 부활'을 주제로 장효민 교수의 컴퓨터그래픽 작품들을 선보였다. 영성생활에서는 정영식 신부가 영적 성장의 장애물과 조건들에 대해 알아봤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돋보기에서는 '상식이 통용하는 사회'를 주제로 △법, 윤리, 양심이 요구하는 것 △정부가 주장하는 '법대로 원칙대로' 그리고 한계 △신앙인은 법보다 양심 등을 게재했다.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에서는 생명운동가 이광호씨가 청소년을 노리는 피임산업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특별기고로 103위 시성식 30주년을 기념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과 조광 교수의 '103위 시성 30주년과 한국교회'를 게재했다. '자료를 찾아서'에서는 심욱 신부가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보인대학교 신학대학 도서관을 소개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박상운 신부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영성에세이'에서는 용서의 은총을 향한 여정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용서의 길을 게재했다. 매일의 복음 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흔들리며 피는 복음의 꽃'을 특집으로 △복음적 삶과 회심 △개인이냐? 공동체냐?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 평화적 공존으로 등을 게재했다. '미래사목대안'에서는 이민자를 위한 사고의 새로운 전환과 가톨릭 사회복지에 대한 반성적 잔소리를 담았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해밀학교를 설립한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씨를 만났다. '김상용 신부의 시네마 천국'에서는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타임'을 소개했다. '양승국 신부의 기도레슨'에서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위한 기도를 다뤘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 전례 속 성경 한 말씀에서는 '성호경과 십자성호'를, 생태신학으로 성경읽기에서는 '에덴 동산과 제주도'를 실었다. '말씀과 함께 걷는다'에서는 지혜서를, '그림으로 읽는 마르코 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다뤘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유경촌ㆍ정순택 서울대교구 새 보좌주교를 만나 주교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는 디노탸샤; 공룡대탐험을 소개했다. '바다 건너 소식'에서는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미 수녀의 이야기를 실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 송봉모 신부가 하느님을 빼앗아가는 교만을, '교회와 사회'에서는 김형태 변호사가 '구원이나 해탈이 아닌 사랑과 자비'에 대해 썼다. 표지이야기에서는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 집에서 배식봉사를 하는 서정기씨를 소개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표지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싣고,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차동엽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몰고 온 희망에 대해 썼다. 특집으로 '학교폭력, 따돌림 그게 뭐예요?'를 다뤘다. '문화의 숨결'에서는 박문수 박사가 '유혹 과잉의 시대에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다뤘다.(미션3000/35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백영민2014.02.25
![[가톨릭 신앙의 보물]<7>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1253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생활과 결부된 기도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 신자들이 가장 즐겨 바치는 기도 몇 가지와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기도를 잘 바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많은 분이 "가장 좋은 기도 방법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각자에게 잘 맞는 기도가 가장 좋은 기도 방법이며,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들이 가장 즐겨 바치는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등을 소개한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소통할 수 있는 기도 성독, 묵주기도, 9일기도, 성령기도 등 다양한 기도들은 하느님 체험,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향한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다. 교회가 제공하는 그 어떤 기도든 다 좋지만, 그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기도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와 관련해 기억해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기도는 기도문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것이다. 기도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없고 삶과 동떨어졌다면 반쪽짜리 기도일 뿐이다. 시편을 보면 구약시대 사람들이 즐겨 바쳤던 훌륭한 기도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시편 작가들이 시를 통해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고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고 때로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 하느님께 부르짖었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다. 그 기도 안에 찬미기도, 감사기도, 탄원기도, 청원기도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시편기도는 기도와 관련해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다. 시편은 시대를 초월해 어떤 상황에서든 바칠 수 있는 기도다. 시편기도는 오늘날 모든 사제, 수도자들이 바치는 시간전례(성무일도)에도 많이 포함돼 있다. 시편을 묵상하는 것도 좋다. 성경을 잘 읽는 것도 좋은 기도 방법이다. 성경은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는 맑은 샘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경에는 기도의 길잡이가 되어줄 스승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다. 주님의 기도, 묵주기도, 염경기도, 깊은 묵상과 진심이 담겨야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풍부하고 의미 있는 기도다. 기도문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 생활지표라 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유일한 기도인 까닭이다. 그러기에 극진한 존경심과 정성으로 기도를 바쳐야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는 "그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런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묵상한다면 다른 책이 아쉽지 않을 것"(「완덕의 길」 중)이라는 말씀을 전했다.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며 바쳐보기 바란다. 오늘 비록 우리가 보잘것없고 부족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 자리에서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로 변화되기를 갈망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겠다. 한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묵주기도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모님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르는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라 부른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성모님이 '길'이 아니라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것이다. 성모님의 기도 방식을 따라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묵주기도는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가 아니다.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잡념 가운데 설렁설렁 바쳐도 되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잡다한 이기심을 바치며 성모께 조르기 위한 기도 역시 아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관조하는 진정한 묵상기도이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는 복음서 전체와 예수님의 일생 전체를 묵상하는 기도이며, 하느님 구원 사업 전체를 관상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다. 복음에서 출발해서 복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복음을 실제 안에서 실천하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묵주기도다.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 정겨웠던 나자렛 성가정에서의 생활, 희망에 찬 출가, 활기찼던 공생활, 연민과 사랑이 가득했던 착한 목자로서의 삶, 처절한 십자가 죽음, 영광스러운 부활,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내적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묵주기도 안에서 또 다른 나자렛의 마리아가 되어 정성껏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다 보면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염경기도는 교회 공동체가 제정한 기도문을 입으로 소리 내어 바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등을 바치는 것이다. 염경기도는 어떻해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에게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염경기도의 장점은 어려울 게 없다는 것이다. 신앙의 선배들과 교회 공동체가 정해준 이 기도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잘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생각 없이 외우면 소용이 없다. 비록 짧고 정형화된 기도문이지만 하느님과 대화하듯이 정성을 다해 바치길 바란다. 정성을 다하는 염경기도는 우리를 보다 깊은 하느님 체험과 만남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입술로 바치는 염경기도가 공허한 빈말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마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염경기도를 바쳐야 한다. 더 나아가 염경기도에만 머물지 말고 염경기도라는 사다리를 건너 침묵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로 행복한 기도체험, 충만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넘어가는 노력을 계속하길 바란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방송은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1.07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2>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거행하는가?잔 밴 헤메션 '치유 받은 중풍 병자', 유화,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74. 구약 성경에서는 '질병'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구약 성경에서는 질병을 종종 사람들이 받아들이길 거부하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채기도 하는 혹독한 시련으로 이해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02항). 175. 교회가 병자들을 특별히 보살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을 때 하늘도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마태 25,40)에서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제자들의 주요 임무로 삼으셨습니다(1506-1510항). 176. 병자성사는 어떤 이들을 위한 것인가요? 건강이 위급한 상태에 있는 신자라면 누구나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1514-1515항, 1528-1529항). 일생 우리는 병자성사를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일지라도 큰 수술을 앞뒀다면 이 성사를 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경우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총고해를 하고 병자성사를 받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177. 병자성사는 어떤 방식으로 받나요? 병자성사의 본질적인 예식은 기도와 더불어 축성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름으로써 이루어집니다(1517-1519항, 1531항). 178. 병자성사는 어떤 효력을 발휘하나요? 위로와 평화와 힘을 주며,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친 고통받는 병자를 심오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합니다. 많은 사람이 병자성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병자를 데려가고자 하시는 경우, 병자가 마지막 길에서 모든 영육 간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통해 힘을 주십니다. 또한 병자성사는 죄를 용서하는 효력도 발휘합니다(1520-1523항, 1532항). 179. 노자성체란 무엇인가요? 임종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받아 모시는 성체를 말합니다(1524-1525항).사람이 현세의 삶을 마감하는 길을 떠날 때에는 영성체가 꼭 필요합니다.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뤄야만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cpbc2013.12.24
![[성경 속 궁금증] 46. 성경에서 여자들은 왜 머리카락을 가렸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458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6. 성경에서 여자들은 왜 머리카락을 가렸을까?세속적 사치 상징하는 것 가려 소박함과 정숙한 몸가짐 표현미사 때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쓰는 미사보는 세례성사를 통해 얻게 된 부활의 새 생명을 상징한다. 오늘날 세례식에는 사제가 영세자에게 물로 세례를 준 후 성유를 바르고 흰옷을 입히는 예식이 있다. 보통은 신자들에게 흰 미사보를 씌워준다. 이 예식은 세례성사를 받은 후 영적 결백함을 잘 보존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미사 참례를 할 때 여성 신자들이 머리에 미사보를 쓰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전해오는 관습인데, 세례성사를 통해 얻게 된 부활의 새 생명을 상징한다. 여성이 머리를 베일로 가리는 관습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미 구약시대에 있었다. 이사악의 부인 리브가는 장래의 남편 앞에서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창세 24,65). 이런 경우 여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은 미혼임을 상징했다. 그리고 모세도 하느님을 만났을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남자 역시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음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 이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했다. 신약시대 바오로 사도는 긴 머리카락이 여인이나 남자에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교회 예절에 참여할 때 여성들 머리를 가리라고 단호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머리가 깎인 여자와 똑같습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머리를 밀거나 깎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1코린 11,5-6). 바오로 사도는 여인의 머리는 남편의 영광이며, 머리카락은 세속적 사치이므로 성소(聖所)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며 전통적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도 여인의 머리카락을 세속적 사치로 여겼기에 성전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소박한 생활과 정숙한 몸가짐의 표현으로 머리를 가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 풍습일뿐 신앙의 본질로 봐서는 곤란하다. 물론 여성이 머리를 너무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머리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외모에 치우친 세속적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3-4). 물론 이 가르침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내적 마음과 정신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도자들이 쓰는 다양한 형태의 베일은 교회와 영적 혼인의 상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속적 사치와 욕망, 허영 등을 끊어버리고 이 세상 가치에 대해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퇴사자22012.08.28
![[신약의 비유] <20>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4149_1.0_titleImage_1.jpg)
[신약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이성근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독일 뉘렌베르크 박물관 소장. 루카 16,19-31루카복음서에만 나오는 이 비유는 예화에 속하며, 다른 대부분의 비유처럼 예수의 여행기사(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 9,51─19,27) 안에 위치한다.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16,18)과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17,1-3) 사이에서 연속성 없이, 또 서론 없이 나온다. 따라서 이 비유의 청중이 누구였는지 분명하지 않은데, 내용상으로는 앞에서 언급된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을 상기시킨다.회개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경고이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은 부자와 거지인데, 거지의 이름은 라자로다. 이렇게 비유 안에서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가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이 비유의 거지와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반면에 부자는 익명인데, 필사본에 따라 네우에스, 피니스 혹은 디베스라는 이름이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증언은 아니다.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특별히 악한 사람으로 나오지 않으며, 라자로도 특별히 선하거나 신심이 깊은 사람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두 계층으로 나뉘던 사회의 대표 자격으로 보인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데, 이는 왕의 신분이나 그에 해당하는 특권 그리고 부에 대한 상징이다. 라자로가 그 집 대문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담과 대문으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생활한 것 같다. 반면 라자로는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다. “누워 있다”는 동사의 시제로 보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또한 배고픔을 겪으며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바란다. 이는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하고는 냅킨 대신 빵을 사용했던 관습을 반영하는데, 그것으로도 배를 채우지 못한다. 또한 들개들은 라자로의 종기를 핥으며 그의 죽음을 기다린다.부자와 라자로가 죽고 난 후 두 사람의 운명은 역전된다. 라자로는 천사들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이는 에녹이나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브라함의 품은 죽음 이후의 은총 상태, 절대적 휴식의 장소이다. 반면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당하는데, 저승을 뜻하는 ‘하데스’는 일반적으로 죽은 이들의 나라로서 최후심판 이전에 잠시 머무는 장소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영원한 거처로 벌 받는 장소, 즉 지옥에 해당한다.부자는 고통 중에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브라함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아브라함 아버지”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부자는 첫 번째로 자신이 당하는 목마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자로를 보내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브라함은 그에게 이미 좋은 것을 다 누렸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렁이 놓여 있어서 왕래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구렁이 놓여 있다는 수동태 표현은 그 구렁이 하느님께서 설치하신 것을 의미하며, 부자가 살아생전에 담과 대문으로 바깥세계와 단절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부자의 두 번째 요청은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라자로를 보내 경고해달라는 것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 즉 성경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이야기하며 역시 거절한다. 세 번째 요청은 두 번째 요청의 반박이면서 반복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가야 회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거절한다. 이 마지막 내용은 우화적 요소로서 예수의 부활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용어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고 본다. 즉 모세와 엘리야로부터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앙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분이 부활했다는 선포를 통해서도 회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비유의 의문점이면서 핵심은 왜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라자로는 천국에 갔을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의 대화에서 부자는 살아생전에 좋은 것들을 받았기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부자라는 이유로 지옥에 간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부자였기 때문이다. 부자의 잘못은 담과 대문으로 대표되는 바깥세계에 대한 단절과 무관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자가 라자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생전에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에 라자로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지만 그 이름의 히브리식 표현은 “엘르아잘”로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소외되고 가난한 계층으로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와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주님의 가난한 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이 비유의 메시지는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무관심한 부자들에 대한 경고이면서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와 가난한 이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리라는 진복선언의 말씀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적인 자선을 촉구할 뿐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적인 제도와 장애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일깨운다.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월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에 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4.10.14
![[2014 교회사목 결산] ‘위로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599_1.0_titleImage_1.jpg)
[2014 교회사목 결산] ‘위로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124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14년 한국 교회 최대 뉴스는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다. 교황 방한 이전은 차질 없는 방문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방문 이후는 교황이 남긴 과제를 놓고 실천 방안을 모색하느라 분주한 한해였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경사를 맞은 것도 올해다. 그것 말고도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올 한 해를 돌아본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를 주제로 8월 14∼18일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그리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서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한국 천주교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과 1989년(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방문에 이은 세 번째로, 두 번째 방한 이후로는 25년 만이다. 3월 10일 교황 방한이 공식 발표되자 한국 교회는 곧바로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준비 체제에 돌입했다. 준비 기간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교황이 참석하는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교황 방한 기도문과 자료집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이 집약된 권고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여는 등 신자들이 마음으로부터 교황을 맞을 채비를 갖추도록 했다. 한국에 머무는 98시간 동안 그 이상일 수 없는 빡빡한 일정을 보낸 교황은 모든 이의 아픔을 끌어안는 위로의 아버지였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유족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장애인, 새터민, 이주노동자 등 사회 약자들을 만나 아픔을 어루만졌다.교황은 또 경제적 풍요로움이 주는 유혹을 경계하며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청년들에게는 주님을 믿고 세상으로 나가 주님을 힘차게 증언하기를 요청했다. 한국 주교단엔 순교자들이 보여준 희망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일깨웠다.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던 소탈함, 큰 의자는 한사코 사양하며 눈높이를 맞추며 마주 서 있던 겸손함, 함박웃음으로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교황의 평화와 치유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황 방한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게 하지 않고 교황이 방한 기간 남긴 메시지를 한국 교회의 새로운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국 교회 주교단은 교황 방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교황의 가르침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길 것을 다짐했다. 주교단은 교황이 방한 기간 남긴 메시지와 「복음의 기쁨」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구 차원에서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 모두 교황의 뜻을 되새기고 성찰하는 여정을 시작할 것을 권고했다.주교들의 이 같은 의지는 대림 제1주일을 맞아 펴낸 사목교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교들은 성경 공부와 기도를 통해 맛본 복음의 기쁨으로 먼저 가정을 성화하고, 이를 토대로 본당 공동체는 물론 교회 안팎의 모든 이와 복음의 기쁨을 나누자고 했다. 이는 「복음의 기쁨」과 교황 방한 당시 메시지에 뿌리를 둔 것이다. 124위 시복은 103위 성인의 선조인 초기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올랐다는 점, 또 파리외방전교회가 중심이 됐던 103위 시복과 달리 한국 교회가 주체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8월 13일 솔뫼성지에서 막을 올려 4박 5일간 진행된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는 교황이 참가한 최초의 아시아 청년 대회로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주교단 움직임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1월 12일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을 갖게 됐다. 또 2009년 김 추기경 선종 이후 5년 만에 다시 추기경 2인 시대를 열게 됐다. 염 추기경 서임식은 2월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거행됐다. 염 추기경은 5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성직자성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30일 유경촌ㆍ정순택 신부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돼 2월 5일 주교 서품식을 거행했다. 서울대교구가 지난 2006년 조규만 주교 임명 이래 7년 만에 맞은 보좌주교로,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사목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올해 한국 교회의 새 주교 탄생은 유경촌ㆍ정순택 주교가 전부다.한편 지난 10월 열린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가 주교회의 새 의장(임기 3년)으로 선출됐다. 기타수도 생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봉헌 생활의 해 개막 미사가 12월 1일 서울 명동대성당과 대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광주 임동주교좌성당에서 동시에 거행됐다. 한국 교회는 2015년 7월 ‘봉헌 생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심포지엄, 10월 ‘수도자와 함께하는 갈릴래아 청년 축제’, 단계별 성찰과 쇄신 프로그램 등으로 봉헌 생활의 해를 뜻있게 보낼 예정이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젊은 의정부교구가 6월 24일 교구 설정 10주년을 맞았다.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된 의정부교구는 교구 설립 당시 신자 수 15만 6000명에서 2013년 말 기준 27만 8000명으로, 본당은 55개소에서 74개소로 늘어나는 괄목한 성장을 이뤘다. 한국 교회 1번지 명동대성당 일대가 새 단장을 마친 것도 올해의 일이다. 명동성당 종합 계획(1단계) 공사가 9월 16일 마무리됨으로써 서울대교구청 신청사와 파밀리아 채플, ‘1898 myeongdong cathedral’이 들어섰고, 명동대성당 진입로는 성당 봉헌 당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한국과 일본 주교들은 11월 13일 제20회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마치면서 양국 고유의 역사와 과제를 직시하고 화해와 일치에 더욱 힘쓰기로 뜻을 모았다. 올해 모임은 특별히 양국의 이해가 서로 다른 역사의 인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안중근(토마스) 의사 기념관을 직접 찾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천주교와 한국 정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중심이 된 교회일치운동 전담 기구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5월 22일 창립함에 따라 지금까지 별도의 기구 없이 사안에 따라 임의 조직 형태로 전개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cpbc2014.12.17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3)고대 근동의 하늘신](//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83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3)고대 근동의 하늘신신과 동격으로 한르 섬겨온 인류 구약성경에는 하느님 외에도 다양한 신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신으로 등장하지 않고, 고대 근동 문화의 흔적으로 등장한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살았다. 성경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언어로 쓰였다. #하늘과 하늘신 우리나라 정서에서 하늘은 곧 하느님을 의미했다. 우리가 "하늘의 뜻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란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하늘 사상은 동아시아 원시 유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왜 북경까지 가서 천주교 신앙이 담긴 책을 찾았을까? 「천주실의」를 쓴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천주(天主)라고 했다. 우리 민족이 본래 갖고 있던 하늘 사상과 접목했기에 가톨릭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번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하늘의 참된 뜻을 적은 「천주실의」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하늘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인류 최초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하늘신은 모든 신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하늘 개념을 독특한 야훼 신앙으로 소화해 재해석했다. 기원전 5000년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살던 수메르인들은 인류 최초의 글자인 쐐기문자를 만들었다. 수메르인들은 하늘을 형상화한 쐐기문자로 '안(An)'을 썼다. 안은 딩기르라고 읽을 수도 있는데, 딩기르로 읽으면 '신(神)'을 의미한다. 두 개를 겹쳐 쓰면 '신들'이란 복수가 된다. 이는 하늘을 뜻하는 최초의 문자다. 이 글자를 보면 인류는 이미 이때부터 하늘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기원전 19세기 고(古)바빌론 제국 시대가 열린다. 고바빌론 제국을 건설한 아무르인들은 아카드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이때부터 고대인들은 두 가지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고바빌론인들은 행정과 상업 등 문서에는 아카드어를 썼지만, 학문 등에 사용되는 전문 용어는 수메르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중 언어를 쓴 것이다. 한문을 공용어로 쓰는 우리와 비슷한 셈이다. 아카드어로 '아누(Anu)'는 하늘이다. 수메르 시대와 아카드 시대 모두 '하늘은 신'이라는 사상을 공유한 것이다. '아누'는 최고신이었다. 선과 악을 모두 관장하는 신이었다. 기원전 28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번성했던 우크르의 왕 길가메시에 대해 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아누가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아누에게 달려가 억울한 일을 풀어달라며 성난 황소를 청한다. 황소는 당시 권력의 상징이다. 황소가 우르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젊은이 수백 명을 죽였다. 길가메시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 이처럼 아누는 악을 관장하는 역할도 했다. 아누는 또 왕권을 확정해주기도 했다. 최고신으로서 왕을 임명한 것이다. #최고의 신 인류 종교사에서 첫 번째 최고신은 아누였다. 그런데 하나의 최고신이 계속 존재한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었다. 시대가 변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이 바뀜에 따라 아누는 최고신의 지위를 다른 신들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아누는 인류 종교사 최초의 신이자 '물러난 신'이기도 했다. 수메르 시대에 존재했던 3600명의 신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50명의 귀족신과 나머지 하급신이다. 귀족 50신은 수메르에서 가장 높은 신들의 모임인 '아눈나키'라고 불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일곱을 '운명을 결정하는 일곱 신'이라고 불렀다. 귀족 중의 귀족신이다. 이 일곱 신 중에서도 가장 높은 4명의 신은 안, 엔릴, 에아, 대지의 신이며, 그 중 첫째인 안(아누)은 모든 신의 아버지였다. 아누는 모든 신의 우두머리요, 아눈나키의 수장이자 운명을 결정하는 최고신이었다. 이후 최고신인 아누는 하늘로 올라가고, 엔릴과 에아가 뒤를 잇는다. 물러난 최고신은 궁극적 권위가 필요할 때면 다시 나타나곤 했다. 고대 근동의 가장 중요한 법률문서인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도 아누, 엔릴, 에아가 등장한다. 물러난 신인 아누가 정의와 왕권을 정하는 역할을 했다. 고대 근동의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최고의 신이었다. 동부 셈어 지역을 벗어나면 하늘신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북서 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하늘신은 제물을 바칠 때나 무언가 맹세를 할 때 거론되는 정도다. 북서 셈어 지역에서 나온 구약성경에서도 하늘신은 큰 역할이 없다. 대신 바알신이 하늘을 다스렸다고 나온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퇴사자22013.01.22

“작은 교회 가정, 세상의 빛과 소금 되겠습니다”광주대교구 가정의 해 폐막
광주대교구 가정의 해 폐막 미사에 앞서 신자들이 성경 및 성가정상 봉헌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힘 기자 가정 복음화를 최우선 사목 과제로 선정하고 2012년부터 3년간 ‘가정의 해’를 지속해온 광주대교구는 1일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집전의 폐막 미사와 함께 평신도대회를 열고 가정 사도직을 더욱 활성화 해나가기로 결의했다.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성당에서 열린 폐막미사와 평신도대회에는 5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활기 넘치는 본당,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기도했다. 교구는 특히 폐막 미사 중 가정의 해 결실로 ‘광주카리타스재난재해봉사단’을 발족했다. 142명의 봉사단원은 결의문을 통해 하느님의 도구로 일하며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교회와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일할 것을 다짐했다.이에 앞서 광주대교구가 개최한 가정의 해 실천 사례 공모에서 단체 우수상을 받은 호남동본당 가정봉사단(단장 배동일 요한 보스코)은 15가정 가족 52명이 매달 장애인 시설과 공동체를 찾아 청소, 목욕, 식사 봉사를 해온 사례를 발표했다. 또 개인 우수상 수상자 유태규(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중2)군은 가족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 한센병 환우에게 봉사한 경험을 소개해 박수를 받았다. 광주대교구는 2012년을 ‘기도하는 가정교회’, 2013년을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교회’로 지낸 데 이어 올해를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교회’로 지내왔다. 한편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평화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정은 작은 교회”라 정의하고 “교회는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가정을 최우선 순위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가정 복음화를 위해 우선 ‘기도하는 가정’(사제직)ㆍ‘자녀에게 신앙을 전하고 신앙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는 가정’(예언직)ㆍ‘자기 가정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벗어나 세상 복음화의 누룩이 되는 가정’(왕직)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주교는 이를 위해 “가족끼리 서로 아껴주고 위해 주며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된다는 속담처럼 가정을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신자들은 교회가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과 봉사의 기회를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광주대교구가 1일 교구 가정의 해(2012~2014년) 폐막 평신도대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가정의 해 신자 의식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31.5%가 교회가 다양한 가족 단위 활동과 봉사의 기회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가족 단위 신앙 증진 프로그램’(20.9%), ‘소공동체를 통한 가족 단위 활동 지원’(17%), ‘가족 단위의 상담 프로그램’(14.7%), ‘사제ㆍ수도자와 잦은 만남’(9.9%)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6월23일부터 7월31일까지 교구 131개 본당 20~60대 신자 97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가정사목 프로그램이 마련 시 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가족이 함께하는 미사’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가족 피정ㆍ캠프’, ‘가족 단위 복지시설 봉사’, ‘부모ㆍ자녀 관계 프로그램ㆍ교육’, ‘가족 피정ㆍ캠프 프로그램’이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는 ‘가족 단위 봉사’, 30대는 ‘가족이 함께 참례하는 미사’, 40대는 ‘부모ㆍ자녀 관계 프로그램ㆍ교육’을 가장 선호했다.자녀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유아 세례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67.6%만이 반드시 시키겠다고 했고,30.4%가 자녀가 커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자녀 유아 세례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모르는 신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20대의 60.4%가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응답해 젊은 층의 신앙 의식 약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자녀의 주일학교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46.5%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자녀 중 일부만 출석한다는 신자가 27.2%였다. 자녀 모두 출석한다는 신자는 26.3%에 그쳤다. 응답자 중 65%만이 신앙생활을 강조한다고 대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주1회 이상 미사에 참례(주일미사 포함)하는 비율은 74.7%로 한국 교회 미사참례율(21.2%)의 3.5배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자들도 자녀 신앙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냉담교우들은 자녀 신앙 교육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기도하는 가정 교회 △2013년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 교회 △2014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 교회 등 교구가 ‘가정의 해’에 제시한 실천 사항을 이행한 신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천한다”는 응답이 가족미사 46%,가정기도 26.9%,가족복음선포 46.4%, 봉사 29.9%에 그쳤다. 50~60대에 비해 젊은 층의 실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교회가 이혼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활동(2가지 선택)을 묻는 질문에 ‘교회 공동체가 이혼자들을 이해하고 편견 없이 받아들이도록 교육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높았고,‘이혼에 대한 상처와 고통 치유 위한 상담ㆍ치료’(39%),‘이혼으로 고통받는 가족, 어린 자녀 돌봄’(34.1%), 성사생활을 위한 교회법적 절차 도움’(30.3%)이 뒤를 이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