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28) 사두가이](//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9477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28) 사두가이보수적 성향의 오만한 상류층 집단 사두가이는 대사제 등 이스라엘 고위 성직과 관료직을 독점한 유다교 정파이다. 사진은 조토가 그린 ‘가야파 앞에 서신 예수’ 프레스코화 오늘날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다인 지구는 예수님 시대 당시 사두가이가 주류를 이루던 상류층 거주 지역이었다. 이들은 주로 고급 관료와 고위직 사제, 대상, 지주들이었다. 사두가이는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활동하던 유다교 유력 당파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 때 대사제였던 사독(2사무 8,17; 1열왕 1,34)을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인뿐 아니라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유다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분리된 자’로 스스로 칭했던 바리사이처럼, ‘정의를 따르는 사람’ ‘의로운 사람’이란 뜻의 ‘사두가이’라 자랑했다. 사두가이는 마카베오 가문이 세운 하스모네아 왕조의 후원을 받으며 귀족 정치집단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기원전 109년 사마리아를 정복한 하스모네아 왕조 요한 히르카노스 1세(기원전 134~104년)와 손을 잡은 후 서기 70년 아브월(7~8월) 9일 예루살렘 성전 멸망 때까지 부와 상류층 특권을 누렸다. 자연히 그들은 사회 변화보다 현상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나타냈으며, 정치적으로는 항상 힘있는 외세에 협력했다.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 사회의 두 주류였던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는 ‘이방인 세계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할 것이냐’는 질문에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시각차를 보여 원수처럼 냉랭했다. 사두가이는 모세 오경에 나오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바리사이와 달리 모세 오경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구전 전승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해석도 바리사이와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보상법’을 다룬 레위기 24장 19-20절 규정(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에 대해 바리사이는 눈이면 눈에 대한 가치를 계산해 가해자에게 형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사두가이는 문자 그대로 가해자의 눈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두가이는 또 안식년 규정을 엄격히 지켜 노예 해방이나 부채 면제 등을 엄격히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상류층이 주류를 이룬 사두가이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지만 바리사이는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또 바리사이들은 서로 우의가 있으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뤘지만 사두가이는 서로 간에도 야비한 행동을 하며 마치 이방인 대하듯 무례했고,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는 오만하고 냉엄했다. 사두가이는 율법에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 영혼의 존재 등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내세의 보상이나 형벌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현세의 삶을 중시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상응하는 보상과 징벌을 현세에서 받는다고 믿은 사두가이들은 현 사회에서 자기들이 누리는 지위와 부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표지라고 여겼다.복음서에서 사두가이에 대한 언급은 그리 많지 않다. 마르코(12,18)와 루카(20,27) 복음서에서 각각 한 번, 마태오 복음서에서 세 번(3,7; 16,1-12; 22,23-33) 나온다. 또 사도행전에는 사두가이가 예수님과 사도들의 적대자, 핍박자, 예수님과 사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사제의 추종세력으로 등장하며 그리스도교 교리를 반박하는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사도 4,1; 5,17; 23,6-8 참조).예수님 시대 사두가이들은 성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성전에서 제사를 담당했던 고위 성직자들이요 귀족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유다인들에게 십일조를 거둬 성전 재정을 관장했다. 사두가이는 예수님께 대해서만은 바리사이와 같은 노선을 취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불변의 율법을 파괴한다고 여겼을 뿐 아니라 메시아 사상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의 활동은 로마인과 그들의 관계를 곤란하게 만들 우려가 있어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을 철저하게 반대했다. 사두가이는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자연히 그 정체성도 함께 사라졌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9.17
![[아! 어쩌나] 265. 프란치스코 교황의 덕목](//cpbc.co.kr/CMS/newspaper/2014/09/rc/527737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65. 프란치스코 교황의 덕목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열린 마음 열린 생각’입니다. 교황께서 「라 레푸불리카」(이탈리아 일간 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열린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선을 행한다면 천국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됩니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죄가 됩니다.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지키는 것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늘 판단하게 합니다. 남을 개종시키려 드는 것은 실로 허황한 짓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서로를 알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의 반경을 넓히는 것.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보수적인 신자들이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종교계이건 일반사회이건 수많은 사회적 해를 끼친 사람들은 대부분이 생각이 닫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내 종교만, 내 이념만…. 다른 사람들의 것은 다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과 신앙만이 올바르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온갖 야만적인 범죄행각이 벌어졌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끊임없이 숙청이란 이름으로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행위, 독재자가 끊임없이 언론을 탄압하는 것, 종교가 선교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말살하는 야만적 행위를 하는 것 등등- 이들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든다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독선으로 인한 만행은 자본주의 국가이건 공산주의 국가이건 상관없이 저질러졌습니다. 미국의 매카시즘, 중국의 홍위병, 스페인의 남미 침탈, 소련의 스탈린,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등등 - 이들이 세상을 그렇게 망가뜨리는 것은 입으로는 평화를 부르짖지만, 마음 안은 독선과 분노가 가득해서입니다. 교황께서는 역사상 수많은 범죄행위가 때로는 이념의 포장을 하고,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외침 속에서 저질러져 왔음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의 범죄를 막으려면 열린 생각 열린 마음이 절실히 필요함을 아시고 이를 설파하십니다. 두 번째로 돋보이는 덕목은 ‘연민’입니다. 교황께서는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들을 챙기시고 유족들의 십자가를 바티칸으로 가져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황께서 정치인들처럼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양새만 취하신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하시겠다는 당신의 깊은 연민을 보이신 것입니다. 교황의 이런 연민은 여러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동성애자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말씀, 요르단 국왕의 만찬 초청에는 응하지 않으시고 시리아 난민수용소를 찾으신 일 등. 이탈리아에 람페두사란 섬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부 아프리카 사람들이 공포와 힘겨움으로부터 탈출해 피난처로 찾는 곳인데 이곳을 오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교황께서는 그곳에서 당신의 가슴에 가시가 박힌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토하듯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황님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세 번째 덕목은 ‘여유로운 마음, 유머’입니다. 교황께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낙수 이론을 비판하시자 미국의 우파 지식인들이 교황님을 좌파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황께서는 ‘좌파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기껏해야 200년 전의 생각을 따르지만 나는 2000년 전에 생긴 성경을 따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를 좌파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여유롭게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좌파가 아님을 이야기하시면서 좌파이론이 겨우 200년 정도밖에 안 된 설익은 이론이라고 은연중에 말씀하셔서 우파와 좌파 양쪽을 다 물 먹이신 일화입니다. 교황께서 얼마나 여유로운 지도자이신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들의 모범이 될만한 분이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이십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4.09.02

청년이여, 예수님 향해 마음을 열어라서울대교구 청년 사목자 모임 청년미사 봉헌, 청년 800여 명 한 마음으로 주님 찬양 청년들이 서로 안아주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성화 기자 신앙의 해를 맞아 지난해 5월 서울대교구 사목국 주최로 1000여 명의 청년이 명동대성당에 모여 봉헌한 청년미사는 청년 복음화를 위해 뿌려진 작은 씨앗이었다. 이 미사를 계기로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년국 청년부, 대학생 사목부,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청년성령쇄신봉사회, 가톨릭대 성심ㆍ성의교정 교목실 담당 사제들이 청년 복음화 지원을 위해 ‘청년 사목자 모임’을 만들었고 이후 모임을 지속했다.청년 사목자 모임이 주최한 교구 청년 미사가 1년 만인 5월 2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지난해 느꼈던 청년 신앙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함께하는 기도로써 하느님 사랑을 느끼자는 취지였다. 청년 사목자 모임이 가져온 큰 움직임이기도 했다. 미사에 참례한 청년 800여 명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 사랑을 더 많이 느낄 것을 다짐했다. 이날 미사는 정순택(청소년담당 교구장대리) 주교 주례로 손희송(교구 사목국장) 신부, 이태철(청년부 담당) 신부를 비롯한 청년 사목자 모임 사제, 본당 청년 담당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염수정(서울대교구장) 추기경도 함께해 청년들을 격려했다. 청년들은 율동과 함께 성가를 불렀고,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모은 채 진지하게 기도를 바쳤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땐 서로 부둥켜안으며 등을 토닥이거나 손을 모으고 깊이 맞절을 했다. 모르는 청년에게는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평화를 나눴다. 정 주교는 강론을 통해 “매일 매순간이 예수님 사랑 안에서 맞이하는 선물이고 또 다시 새롭게 출발할 기회라는 점을 잊지 말라”면서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이웃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자기 안에 만들자”고 당부했다. 염 추기경은 인사말을 통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일부로 여겨 내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면 하느님만이 주실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미사에 참례한 황해지(마리스텔라, 24, 도림동본당)씨는 “8월에 열릴 아시아 청년대회를 어떤 마음으로 참가해야 하는지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며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 백영민2014.05.27
![[덕원의 순교자들] (40, 끝)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에게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의미와 경과를 듣다](//cpbc.co.kr/CMS/newspaper/2014/07/rc/518365_1.0_titleImage_1.jpg)
[덕원의 순교자들] (40, 끝)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에게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의미와 경과를 듣다북녘에서 형제애와 신앙 증거한 ‘사랑의 순교자들’ 김형주 작 ‘하느님의 종 덕원의 순교자 38위’, 200×300㎝, 캔버스에 유채, 2014. 평화신문 2013년 5월 26일자 제1217호부터 시작한 ‘덕원의 순교자’의 연재를 끝맺는다. 이 기획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의 권고에 따라 한국교회 신자들이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를 널리 알리고 이들의 현양 운동을 교회 안에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했다. ‘덕원의 순교자’를 끝맺으면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를 통해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경과와 그 의미를 들어보았다. - 덕원의 순교자 시복 의미와 재판 경과가 궁금합니다.“‘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의 시복재판은 20세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첫 시복건이란 점에서 교회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첫 시복재판은 2009년 12월 28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에서 개정된 이후 12차례 예비심사 회기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회기 과정에서 16명에게서 목격자 증언을 청취했고, 시성성으로부터 시복재판에 ‘장애 없음’ 판정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역사위원회 최종 보고와 예비심사 보고서 작성에 관한 두 차례 회기가 남아 있으며, 이 회기가 마무리되면 가능한 한 올해 안으로 재판 기록을 시성성에 보고하려 합니다.이에 앞서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5월 1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덕원의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했습니다. 여기에는 2007년 2월에 열린 오틸리아 연합회 평의회 권고와 같은 해 봄에 열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회의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시대 최근 연도까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피 흘린 모든 이를 미래에도 기억하자고 호소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종 38위에 대해 그동안 신문에서 연재했습니다만, 이분들은 어떤 분들인지요.“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정치 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유만으로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순교자들입니다. 북녘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증거하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6·25전쟁을 전후해(1949~1952) 공산주의자 손에 적잖이 희생됐습니다. 이 가운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연길수도원·원산수녀원 소속 수도자들과 함흥대목구·연길대목구 소속 사제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분들이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입니다. 이 가운데는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이고,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입니다. 교계 직분으로 좀 더 세분하면 주교 1명, 성직수사 14명, 덕원·함흥교구 사제 4명, 평수사 13명, 수녀 3명, 평신도 1명으로 구성돼 있고 연길교구 사제 2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25명은 독일 7개 교구 출신 수도자들입니다. 또 이들 38위 순교자 중 23명은 평양인민교화소와 자강도 만포 관문리수용소 등지에서 총살 등으로 살해됐고, 13명은 옥사덕 수용소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윤승(필립보)·신윤철(베드로)신부는 해주인민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근처 바닷가에서 생매장됐습니다.주요 인물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며 덕원 수도원장이었던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덕원 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그리고 고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등이 있습니다. 또 루치우스 로트 덕원수도원장 신부는 교황 비오 12세가 독일 주재 교황대사로 있을 때 대사 비서로 일했고,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는 한국어 신약성경을 번역 출간해 성경 보급에 앞장섰습니다. 백작 가문의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는 ‘두메 본당 신부’로 희생적 삶을 산 수도자였습니다. 또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는 한국인 첫 수련장 수사였고, 성 남종삼(요한)의 후손인 부산 출신 김동철(마르코) 신부는 월남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기 본당을 버리지 않고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체포돼 순교했습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이 조선 시대 순교자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20세기 순교자로서 덕원의 순교자들이 지니는 각별한 의미는 이들이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나누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대로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치·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분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 사건은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닙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순교 행적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가슴에 품고 공경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은 수도 공동체의 형제적 친교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조선 왕조시대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려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용덕’을 증거했다면, 덕원의 순교자들은 오랜 강제수용소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 즉 ‘애덕’과 ‘형제애’를 증거했습니다. 수용소 안팎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나누는 과정에서 한국인 독일인, 성직자 수도자를 떠나 형제애를 실천한 것이 더 중요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또 갇힌 형제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서로 돌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애쓴 면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전의 순교자들이 고신 극기와 영웅적 덕행으로 신앙을 증거했다면, 덕원의 순교자는 강제 노역의 일상에서도 형제애와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사랑의 순교’ 측면이 더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시성성 장관의 권고대로 시복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현양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38위는 남북한교회를 연결하는 촉매제요 고리입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와 현양은 이념보다는 사랑과 인도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모원인 상트 오틸리엔수도원과 순교자들의 출신 본당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복과 현양 운동이 있었습니다. 왜관수도원에서도 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이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수도원 성당 벽면에 이들을 위한 기도와 현양 공간도 꾸미고 있습니다. 또 8월 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릴 ‘동소문별곡’ 전에 덕원 순교자에 관한 자료를 전시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자들 특히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우리 수도회 형제들에게 전이되지 않고 그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는 점이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덕원의 순교자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북한과 북한 침묵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인도적 지원이 확대될수록 덕원 순교자들의 현양도 확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신문2014.07.09
![[출판] 최인호 유고집 눈물- 신앙인 '최 베드로'의 눈물 젖은 고백서](//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48_1.1_titleImage_1.jpg)
[출판] 최인호 유고집 눈물- 신앙인 '최 베드로'의 눈물 젖은 고백서 미공개 원고와 지인들 추도문, 두 손녀 편지 묶어 최인호 유고집 눈물최인호 지음/여백/1만 3800원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호(베드로) 작가가 편지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벗이여, 이 편지를 받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대는 이미 제가 만났던 사람인지, 친하였던 동무였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가에서 스쳤던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벗이 되어 생전 처음 그대에게 쓰는 이 편지를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인의 집필실에 있는 책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미공개 원고 200매가 바로 이 편지들이다. 편지를 책으로 엮은 유고집에는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인들이 보내온 추도의 글과 고인의 두 손녀가 남긴 편지도 함께 실렸다. 편지에는 고인이 생전 잘 밝히지 않았던 신앙 고백이 절절히 담겨 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 성경을 읽으면서 느꼈던 신비로운 체험 그리고 5년간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주님과 성모님께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던 심경 등 소설가 최인호가 아닌 신자 '베드로'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랑하는 벗이여, 저는 이제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우선 그대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제 육신은 마흔세 살의 나이로 죽었으며, 이제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한 달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말,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하루하루 샘솟아 오릅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오늘은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술 후유증으로 항상 목청이 불안하였고, 또한 구내염으로 입도 아파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기도했던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행을 하고 있음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고통은 수동적인 것이지만 고행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바로 의기소침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해 속삭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목청이 터져라 큰 소리로 기도할 것입니다." 고인은 성경 말씀은 물론 고전 문학 작품에서도,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서도 늘 아버지 하느님을 찾았고, 어머니 성모님을 묵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죄 많은 존재인지를 뉘우치고 고백하며 기도드렸다. 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어여삐 보아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며 "이 눈물만큼이라도 주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이렇게만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아아. 저의 눈물이 주님을 위로하는 작은 땀방울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고 흐느꼈다. 성모님과 십자고상이 놓인 고인이 쓰던 탁상에는 그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흘렸던 눈물 자국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고인의 편지는 그가 눈물로 써내려간 고해성사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4.01.2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9) 이스라엘에도 널리 퍼진 달신 숭배](//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164_1.0_titleImage_1.jpg)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9) 이스라엘에도 널리 퍼진 달신 숭배안식일만큼 중요했던 '초하룻날' 고대 근동세계에서 달신은 최고신의 피가 흐르는 강한 남성신이었다. 달신은 왕권의 상징이었고, '해와 달과 별의 군대'라는 삼신론을 이뤘다. 고대 근동인들은 달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여겨진 초하룻날을 중요시했다.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선 달신이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지만, 북서셈어를 쓰는 지역에서 달신은 별 볼 일 없는 신이었다. 달신 숭배의 중심지는 우르(수메르의 도시 국가)와 하란(메소포타미아 지역 상업도시)이었다. 우르 출신이었던 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다 이스라엘로 갔다. 하느님을 섬긴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75년 넘게 살았다. 아브라함은 달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달신 문화를 이스라엘로 최초로 옮겨온 이도 아브라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엘리야 예언자의 수제자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행했다. 엘리사 예언자와 수넴 여인 이야기(2열왕 4장)는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 신앙에서 초하룻날이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을 잃은 수넴 여인이 어느날 엘리사 예언자를 찾아가려 하자 남편은 "왜 꼭 오늘 그분에게 가려 하오? 오늘은 초하룻날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니지 않소?"(2열왕 4,23)라고 묻는다. 이는 초하룻날이 안식일과 같이 중요하게 취급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스라엘과 초하룻날 다윗의 행적이 적힌 사무엘기에도 초하룻날과 관련된 기록들이 나온다. 다윗을 시기한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 했다. 사울왕에게 여러 차례 죽임을 당할 뻔한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탄 왕자를 찾아갔다. 요나탄은 다윗편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요나탄에게 "왕자님 아버님께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분께서 이렇게 제 목숨을 노리신단 말입니까?"(1사무 20,1)하고 묻는다. 이 대목에서 요나탄은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네"(1사무 20,4)하고 말한다. 이에 다윗은 "내일이 초하룻날입니다. 제가 임금님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모레 저녁때까지 들에 숨어 있도록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1사무 20,5)"하고 말한다. 이스라엘 왕실에서 '초하룻날'에 특별한 식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특별한 식사는 특별한 전례와 관련됐을 것이다. 초하룻날 임금과 신하가 모두 참석하는 전례와 식사의 기원은 고대 근동일 것이다. 초하룻날에 어떤 특별한 전례를 행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초하룻날은 이렇게 고대 근동의 일반적 문화로 이해해도 좋을 정도로 달신 숭배가 문화적으로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사실 초하룻날은 이스라엘 전례력에서 무척 중요한 날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종교적 절기를 엄밀히 지키며 성전에서 전례를 올리는 일을 담당했던 레위인에게도 초하룻날은 안식일과 함께 지켜야 할 기념일이었다. "안식일과 초하룻날과 축일에 주님께 번제물을 바칠 적마다 법규에 따라 정해진 때에 주님 앞에 바치는 일을 맡았다"(1역대 23,31)는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인 예언자들도 초하룻날을 매우 중요한 날로 보았다. 이사야 예언자가 거짓 경신례를 경고하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장면에서도 초하룻날이 언급된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이사 1,13). #달은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 초하룻날을 중히 여기는 관습은 유배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진다.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에 넘쳤다. 그들은 예루살렘 시온산에 정성 들여 새로운 주님의 성전을 지었다. 이후 마음껏 주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들은 매일 번제물을 바치며 '초하룻날'과 모든 거룩한 축일을 지켰다. 그들은 일일 번제물 외에 초하룻날과 주님의 모든 거룩한 축일에 드리는 제물과 주님께 자원 예물로 드리는 모든 이의 제물을 바쳤다(에즈 3,5 참조). 초하룻날뿐 아니라 그믐날도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였다. 마치 수넴 여자처럼 유딧도 초하룻날을 경건하게 보냈던 것 같다. 유딧은 성경에서 신앙심 깊은 경건한 사람으로 나온다. 두 여인은 시대가 무척 차이가 나지만, 달신 숭배에서 기원한 초하룻날을 잘 섬겼다는 점에서 같은 모습을 보인다. 유딧은 그믐날도 챙겼다. "그리고 과부 생활을 하는 동안 안식일 전날과 안식일, 그믐날과 초하룻날, 이스라엘 집안의 축제일과 경축일 말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단식하였다"(유딧 8,6). 그런데 과연 달신 숭배를 수용하기만 했을까.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은 고대 근동에 널리 퍼진 달신 숭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친다. 신명기계와 사제계(제관계) 학자들은 달은 신이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3.27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29>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중)](//cpbc.co.kr/CMS/newspaper/2013/12/rc/490211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중)우주적 진화의 시작과 끝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통합 샤르댕은 오메가 포인트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발전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지를 설명하며 창조와 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창조와 진화의 통합적 전망 제시 프랑스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전개한 보편적 차원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발전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가를 설명한다. 이는 우주의 전체적 진화 현상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해 수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물론 샤르댕의 사상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가 교차된다. 하지만 샤르댕의 가장 큰 공헌은 당시 도저히 양립 불가능하며 심지어 적대적으로까지 간주되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과학적 진화 사상을 통합하는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올바른 관계가 과연 무엇이고 교회가 진화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는데,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아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창세기의 신학적 의미 먼저 성경의 창조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적 진화론자의 창조론 비판, 혹은 창조론에 입각한 진화론 비판의 양쪽 모두에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즉, 유물론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극단적 진화론도 배척되어야 하겠지만, 성경을 글자 그대로 정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축자적(逐字的) 입장 역시 지양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내용은 세상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실재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사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원역사)는 다른 부분보다 더 후대에 기록됐지만 창세기의 맨 앞에 자리하게 됐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창세기 12-50장의 '성조사'(聖祖史), 즉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이야기 및 이어지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창세기 저자와 편집자들은 역사적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자이신 주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을 펼치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을 태초의 기원으로까지 끌어올리면서 창세기 1-11장의 창조 이야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특히 창세기 1-3장에서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며 문학적 긴장이 발견되는 것은, 창세기 1,1-2,4a(기원전 6~5세기의 사제계 문헌)과 2,4b-3,24(기원전 10~9세기의 야훼계 문헌)이 서로 다른 전승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이 두 전승이 결합돼 편집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400년쯤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창세기 도입부에 함께 모여 여러 편집 과정을 거치며 문학적 긴장을 자아내는 현재의 형태로 형성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바로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는 주 하느님에 대한 시각이 이스라엘의 민족신 개념을 벗어나 보편적 창조주의 차원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하느님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 전 인류를 지향하게 된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이처럼 신관(神觀)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 주 하느님의 권능과 약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보편적 차원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어둡고 부정적인 체험을 이겨내는 강력한 희망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므로 창조와 계약을 연결시키는 관점에서 편집된 창세기 도입부는 고통스러운 현재적 체험에서 출발해 태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신학적 성찰이며 반성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이처럼 창세기는 창조 역사에 대한 실제적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하느님 창조에 관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즉, 창세기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 작성된 신앙고백적 성격을 지니기에 우주의 생성 장면을 직접 목격한 누군가가 마치 구체적 사건 보도를 하듯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창세기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현대적 논쟁과 관련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회칙 「인류」(Humani Generis)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교회 교도권은 진화론적 주장이 이미 선재(先在)하는 생물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 육체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하는 한, 과학과 신학의 현재 상태에 따라 그 양쪽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진화론적 주장이 연구와 토론의 대상으로서 다뤄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가톨릭 신앙은 영혼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창조됐다고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의무로서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토론은, 진화론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편의 주장 모두가 마땅히 신중함과 중용에 의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숙고되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양편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성경 해석과 신앙교리 수호의 임무를 위탁하신 교회의 판단에 승복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인간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다는 관점은 진화론과의 대화와 토론에 있어 결코 가톨릭 신앙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논점임이 1966년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에 의해 재확인된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 역시 1996년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에서 이 원칙을 거듭 천명한다. "진화의 이론들에 영감을 준 철학들에 따라, 인간 정신이 생물체의 힘에서 나온다든지 또는 생물체의 단순한 부수 현상이라고 여기는 진화론들은 인간에 대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샤르댕의 통합적 전망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관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샤르댕 신학사상은 큰 도움이 된다. 샤르댕에게는 우주의 신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과학적 탐구의 목표였다. 그는 지질계로부터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하나의 통일체로 놓고 이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추구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생명체를 고찰하던 샤르댕은 '진화'라는 중요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샤르댕이 생각한 진화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을 비롯한 생물학적 진화론자들의 특정 주장에 갇히는 것이 아니었다. 샤르댕의 과학적 진화 현상론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만물이 어떤 성장 과정에 의해 존재하게 됨을 말하는 우주 전체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발전 단계 중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은 우주 진화의 결정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상승적 발전 과정이 종결되는 모든 우주적 진화의 최종 수렴점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제시되기에 이른다. 샤르댕은 이 오메가 포인트를 설명함에 있어 세상과 우주 안에 역동적인 사랑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인격적 중심이 존재함을 말하면서, 이를 그리스도교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이는 나자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강생이 우주적 신화(神化)를 위한 결정적 사건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성화된 우주를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최종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샤르댕은 육화하신 하느님 아드님의 사건, 즉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모든 '인간 현상'의 전체적 의미가 충만히 드러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샤르댕의 이러한 사상은 신약성경의 대표적 그리스도 찬가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5-20절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자 원동력이며, 중심이자 목표로서 드러난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창조부터 종말론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우주적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심이 드러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드러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향하여' 완성되어 갈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4-10절의 그리스도 찬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수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10). 샤르댕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는 종말론적인 '만물의 수렴과 충만' 사상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샤르댕은 우주의 진화를 과학적 차원에서 탐구한 후 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창조와 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주요 참고문헌 : 「창조론, 아름다운 세상의 회복을 꿈꾸며」(박준양 지음, 생활성서사, 2008)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cpbc2013.12.31
![[위령성월 이야기]-죽은 이들을 위해 언제부터 기도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914_1.0_titleImage_1.jpg)
[위령성월 이야기]-죽은 이들을 위해 언제부터 기도했을까?2세기부터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널리 퍼져 연혹 영혼 기억하며 자신의 삶·신앙 돌아봐야 그리스도인은 위령성월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사진은 신자들이 서울 용산 성직자묘역에서 세상을 떠난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위령성월을 맞아 위령성월의 유래와 함께 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살펴본다. 위령성월 유래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관련된 기록은 구약성경 마카베오기에 나온다. 기원전 2세기 유다 지도자 마카베오는 전쟁터에서 죽은 유다인들의 장사를 지내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기도와 헌금을 바쳤다.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 서기 2세기부터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널리 퍼졌다. 초대 교회 로마 카타콤바(지하묘지) 안에 새겨진 기도문에는 죽은 이들이 죄를 용서받고 천상 행복에 들게 해달라는 내용이 많았다.교회는 이러한 관행을 연옥 교리로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천국에 들기 전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는 상태를 뜻하는 연옥은 13세기 리용공의회와 15세기 피렌체공의회를 거쳐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에서 공식 가르침으로 선포됐다.이에 앞서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은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정하고 이날에 교회력에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을 기억하도록 했다. 이후 998년 프랑스 클뤼니수도원 오딜로 원장은 모든 성일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했고, 이런 관습이 확산하면서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게 됐다.죽음에 관한 교회 가르침가톨릭교회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죽음은 이 세상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관문이기에 적극적 자세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죽음관이다.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죽은 후에 세 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에 처하게 된다.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거나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 (천국) △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 (연옥) △죽을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거부한 사람은 영원한 벌을 받는다. (지옥) 이처럼 개별 심판(사심판)을 받은 인간은 세상 종말이 오면,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모두 부활해 최후 심판(공심판)을 받는다. 이때 육체와 영혼이 영광스럽게 된 의인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단죄를 받게 된다. 종말의 시기와 방법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이러한 교회 가르침을 다시 쉽게 푼다면, 인간은 죽어서 하느님과 만난다.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가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것을 체험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노라마처럼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심판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연옥은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후회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대면하는 정화의 과정이다. 생전에 죄를 지은 것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가 바로 연옥이다. 연옥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고 정화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기대어 하느님과의 일치, 즉 천국을 희망한다. 교회는 연옥 영혼이 최후 심판 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바쳐온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이다. 연옥 영혼들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의 기도와 미사, 선행 등으로 도움을 받는다. 이른바 ‘통공’ (通功) 신앙이다. 천국, 곧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 복락을 누리는 어떤 곳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다. 이를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 부른다. 반면 지옥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이웃을 거부한 인간이 절망과 악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현세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지옥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최후 심판, 즉 종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기에 인간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종말 때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천국과 지옥이 내세의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라고 한다면 천국과 지옥은 이미 현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종말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하느님을 만날 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끈다.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성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연스럽게 하느님 나라에 대해 묵상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아야겠다.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평화신문2014.10.29
![[위령성월/주교회의 편찬「죽음, 심판, 지옥, 천국」] (4, 끝)천국](//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82_1.1_titleImage_1.jpg)
[위령성월/주교회의 편찬「죽음, 심판, 지옥, 천국」] (4, 끝)천국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 행복, 죽음도 넘어서 그리스도인에게 천국은 희망이다. 그림은 천국에 있는 103위 한국 순교성인을 그린 103위 순교성인화(문학진 작, 1977년). 평화신문 자료사진1. 천국은 하느님과의 궁극적인 만남 천국(天國)은 성경의 '하늘 나라'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심판, 연옥과 지옥이 하느님과 우리 관계 안에서 이해되듯, 천국도 같은 맥락이다. 하느님 없는 천국은 없다. 가톨릭교회가 죽음 이후 삶을 말할 때 쓰는 '천국'이라는 개념은 하느님과의 친교가 죽음을 넘어서까지 지속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연인들은 늘 함께 있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기쁨과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도 비슷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 친교가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마카베오기 하권 등에는 좀 더 분명하게 내세의 영원한 행복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 저자들이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내세의 영원한 행복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세상에서 믿고 사랑하던 바로 그 하느님께서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도 다스리는 주님이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 천국에서 우리는 완전한 행복 누려 하느님과의 친교는 큰 행복과 기쁨을 준다. 하느님과의 친교는 죽음으로 중단되지 않는다. 그 친교가 주는 행복과 기쁨도 죽음을 넘어서 계속된다. 지상에서 누리던 하느님과의 친교가 죽음을 넘어서 완성되면, 그 어떤 행복보다고 더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천국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천국의 모습은 인간의 모든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서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루카 20,36 참조). 성경은 천국의 이러한 새로움을 표현하고자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상을 사용한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묵시 21,1-4).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되는 천국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다.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고백한 대로,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느님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하느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다. 천국은 하느님과의 친교가 완성된 곳으로 우리는 거기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누리는 기쁨이다. 3.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천국에 초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께서 베푸시는 천국이라는 선물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신다는 것은 성경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진리다. 마태오 복음의 '혼인 잔치의 비유'와 마르코 복음의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 필요하다"(2,17)는 말씀 등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인간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참행복의 선언'(마태 5,3-12)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등 당신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어떤 이들의 것인지 알려 주신다. 또한 하느님 초대를 받은 이들은 선교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초대를 전해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마련하신 길이다. 교회를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고, 하느님께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며, 말씀과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고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4. 천국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 백정 출신 순교자 황일광(시몬)은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선포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시작됐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고, 병자들을 치유하면서 당신 통치를 힘차게 실현하시는 것처럼, 이렇게 지금 이 세상에서 아버지 뜻이 이뤄질 때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로 죄와 죽음은 그 기세가 꺾였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비로소 죄와 죽음, 모든 고통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 그분께서는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시고,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와 다른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며,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현존하신다"(「거룩한 공의회」 7항). 따라서 성경 말씀과 성사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자주 친교를 이룰 때 우리는 천국의 행복을 한 조각 미리 맛볼 수 있다. 5. 천국은 우리의 절대적 희망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것이다. 시편은 이러한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저를 위하여 누가 하늘에 계십니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제 몸과 제 마음이 스러질지라도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습니다"(시편 73,25-28).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을 간절히 희망하면서, 그 나라를 향해 가는 나그네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다, 내가 곧 간다"고 약속하셨고, 지상을 순례하는 교회는 이 말씀에 희망을 두면서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하고 기원한다.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에 대한 희망, 그때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행복을 희망하면서 우리는 지상의 나그넷길을 인내심을 갖고 걸어갈 수 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1.19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 [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3>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루카스 크라나흐 ‘간음한 여자와 예수’, 1532년, 예술 미술관, 부다페스트, 헝가리.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혀 끌려 온 여자를 일으켜 세우신 다음 사람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하고 말씀하셨다. 133. 죄란 무엇이고,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나요? 죄란 인간이 뚜렷한 의식 상태에서 의지를 지닌 채 하느님이 사랑으로 계획했던 일들의 참된 질서를 깨뜨리려는 의도나 말 또는 행동을 말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49-1851항, 1871-1872항). 죄란 결국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하느님을 경멸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자기애”라고 할 수 있으며, 극단에까지 이르면 이 죄짓는 피조물을 “나는 하느님처럼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창세 3,5 참조). 인간은 양심을 통해 자기의 죄를 깨닫습니다. 양심 덕분에 자신의 잘못을 비난하고, 이를 하느님 앞에서 시인합니다(1797ㆍ1848항). 134. 죄를 지은 사람이 하느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용서를 청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느님은 전적으로 선한 분이시며, 선의 근원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며, 그분과 맺는 관계를 통해 다시 원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1847항). 수많은 성경 구절이 하느님을 자비로운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잃었던 아들을 반갑게 맞이해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잔치를 열어 아들의 귀환과 화해의 기쁨을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루카 15장 참조, 1846ㆍ1870항). 그분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후에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 28) 하고 자기 죽음을 하느님의 자비로우며 주도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해석하셨습니다. 135. 대죄(죽을죄)와 소죄(용서받을 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대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신성한 힘을 파괴하는데, 그 힘이 없으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대죄를 사죄(죽을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죄는 그저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 해를 끼치는 데 그치지만, 대죄는 그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1852-1861항, 1874항). 대죄는 생명이나 하느님과 직접 관련된 매우 중요한 가치에 맞서는 죄, 즉 살인, 신성 모독, 간음 등입니다. 또한, 이를 온전한 의식 상태에서 완전한 동의로 행했을 경우에 대죄입니다. 소죄는 명예나 진실, 재산과 같은 하위 가치들과 관련한 것이든지, 죄의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거나 완전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지은 죄를 말합니다. 136. 우리에게 다른 이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개인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거나 그의 죄에 동참했다면, 또한 다른 사람이 죄를 짓도록 부추기거나 제때에 경고하지 않아 도와주는 일을 게을리했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1868항). 137. 대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다시 결합할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톨릭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로 끊긴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1856항). cpbc2014.07.14
![[교황 방한 결산] 교황이 주고 받은 선물](//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6592_1.0_titleImage_1.jpg)
[교황 방한 결산] 교황이 주고 받은 선물정성 선물하고, 그리스도의 따뜻한 온기 받아 ‘교황님 안전하게 모셔줘서 고맙다!’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 등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이 돼준 오픈카 2대가 교황방한위원회가 별도로 마련한 서울의 한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현대기아차는 교황 방한 때 사용한 오픈카 등을 최근 방한위에 기증했다. 방한위는 이들 차량을 전시하거나 내년 1월 교황이 스리랑카와 필리핀 사목방문 때 다시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서울 가톨릭 공동체 모든 분께, 이 도시에서 복음의 효소가 나날이 되어가시기 빕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성모님의 도우심을 빕니다. 프란치스코 2014년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서울대교구에 남긴 글이다. 교황은 성작과 성반, 124위 복자 동판이 새겨진 메달을 선물하고, 성당 머릿돌 글씨, 교구청 현판을 축성했다. 교황이 한국에서 주고받은 물적 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받은 선물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교구민을 대표해 18일 명동대성당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관과 파티마 성모상을 선물했다. 대전교구는 묵주기도 1500만 단 이상과 미사 200만 회, 교황을 위한 기도 328만 9179회 등 영적 선물을 적은 자기, 아르헨티나 루한 성모상과 김대건 신부상을 새긴 나전칠기를 전했다.서울가톨릭목공예 장재덕(바실리오) 회장은 16일 교황께 순교자 칼을 형상화한 나무 조각상을 선물했다. 이 조각상에는 복자 황일광(시몬)의 신앙고백인 ‘내가 천민임에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해주시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글이 이탈리아어로 새겨져 있다. 강희덕(가롤로) 교수도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성 요한 23세, 프란치스코 교황의 웃는 얼굴을 형상화한 청동 작품을 선물했다.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15일 배 그림과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와 노란 리본, 세월호 십자가를 받았다. 장애인들 선물도 빼놓을 수 없다. 16일 꽃동네 희망의 집을 찾은 교황은 장애인들로부터 자수로 짠 초상화를 받았다. 뇌성마비로 평생 두 손을 쓰지 못하는 김인자(체칠리아, 74)씨가 발가락으로 접은 학과 거북이를 선물해 교황과 수행단 일행을 감동케 했다. 꽃동네 수도자들은 자신이 제작한 음반 「복음의 기쁨」을, 아시아 청년들은 티셔츠와 수건 등을 선물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자신의 아픔을 표현한 고 김순덕 할머니 작품 ‘못다 핀 꽃’ 그림을 교황에게 전했고, 김복동(89) 할머니는 ‘희망 나비’ 배지를 선물했다. 소프라노 조수미(아기 예수의 데레사)씨는 자신의 음반 「온리 바흐」를 선물했다.박근혜 대통령은 14일 교황께 ‘화목문 자수 보자기’를 선물했고, 교황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프란치스코 교황 가면을 쓴 동영상을 제작해 화제를 모은 최종수(전주교구 진안본당 부귀공소) 신부는 18일 아침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자신의 저서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와 음반 「어느 신부의 사랑 고백」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교황의 선물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영상 주인공 최종수 신부에게 자신의 ‘얼굴’을 선물했다. 교황은 최 신부에게 “신부님은 책과 CD를 선물하고 나는 내 얼굴을 선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14일 한국 주교단에게 ‘팔리움 벽감의 그리스도상’을 선물했다. 이는 성 베드로 대성전 교황 제대 밑 베드로 성인 무덤의 벽감(壁龕, 조각 등을 안치하는 벽의 움푹 들어간 곳)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상을 본뜬 작품이다.또 17일에는 자신에게 세례받은 이호진(프란치스코)씨에게 교황 묵주와 성경, 양초 등을 선물했다.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로마대지도 동판화’를 선물했다. 로마대지도는 로마 지도를 구리에 새겨 인쇄한 것으로, 전 세계에 300장만 있는 한정판이다. 교황은 이외에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묵주를 선물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선물은 한국을 찾아온 것 그 자체이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손을 아낌없이 잡아준 따뜻한 그리스도의 온기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오세택ㆍ이힘ㆍ김유리 기자 평화신문2014.08.27
![[성경 속 궁금증] 43. 성경에서 돼지는 왜 부정한 동물일까?](//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269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3. 성경에서 돼지는 왜 부정한 동물일까?이방인들만이 먹고 키운 동물로 이방인 거부와 혐오의 상징으로돼지들과 함께 있는 집 나간 아들(알브레이트 뒤러작, 1497년). 성경을 읽다 보면 돼지에 대해 언급된 내용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심지어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2베드 2,22)는 속담까지 등장한다. 중동지방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돼지를 먹지 않는다. 음식에 돼지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다면 입에도 대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모세 율법에서도 돼지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레위 11,7-8). 성경에서는 왜 돼지를 부정한 짐승이라고 하는 것일까? 본래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돼지가 없었다.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유목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돼지는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처럼 냉장고가 없었으니 근동지방처럼 더운 지역에서 돼지고기는 부패하기 쉬운 음식이었다. 유다인들이 돼지를 접하게 된 것은 이방인들과 접촉을 하면서부터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는 쓰라린 경험을 한 후, 이방인인 바빌론의 정신적ㆍ문화적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방인의 것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혐오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만이 기르는 동물인 돼지에게서 이방인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을 정신적ㆍ문화적 차원에서 제압하고 있었다면 돼지를 그토록 혐오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추수하는 날에 흰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마카베오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이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당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2마카 6,18-20).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고 부정한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다인들은 돼지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꺼릴 정도로 돼지를 혐오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흰고기'라고 돌려서 불렀다. 또 유다인들은 돼지 기르는 것을 그리스의 학문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 체면을 구기는 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유다인들은 돼지와 이방인의 불결함을 상징적으로 연관시켰다. 그래서 후대에 돼지는 개와 함께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경멸적 용어가 됐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퇴사자2201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