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0)토마스 베리(중)](//cpbc.co.kr/CMS/newspaper/2014/06/rc/516122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0)토마스 베리(중)인류 생존 위해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 제시 토마스 베리는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 문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대표적인 열대 우림인 아마존 삼림 생태계를 황폐화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벌목과 목탄 제조 산업 현장. 【CNS】 문명의 발전단계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생태계 파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문명 형태로 생태문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부족/샤머니즘 시대, 종교/문화 시대, 과학/기계 기술 시대, 그리고 생태 시대로 분류한다. 인류 역사의 각 단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부족/샤머니즘 시대는 우주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발달한 시기이며, 이러한 경험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베리는 설명한다. 종교/문화 시대는 소위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명이 발전한 시기로 사회의 계층화, 세련된 종교의식, 논리 정연한 이론들과 영성을 수련하는 방법들이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주된 특징은 인간의 관심이 우주의 현상세계보다는 초월적 절대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세기 말기에 서양을 중심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관심은 절대자에서 우주의 물리 세계로 전환하였고 그 결과로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는 발달한 과학과 기계 기술을 통하여 인류 생활을 향상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구 생태계를 대규모적이고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로써 인간과 지구 공동체와의 신비로운 유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 시대 이후에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로 베리는 생태문명을 제시한다. 생태문명은 인류 역사의 네 번째 단계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간의 갈등지구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 앞에서 인류에게 현재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최첨단 기술문명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인간의 산업기술에 근거한 문명인 반면에, 생태문명은 지구의 자기 조직 과정인 지구 기술에 근거한 문명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조작하는 문명 형태이고, 생태문명은 지역 공동체가 자연과 함께 존재하면서 함께 진화하는 문명 형태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은 그 사고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양자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주도했던 문제가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정치 사회적 갈등이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문제는 자연을 계속 착취하려는 자본주의자들과 자연을 보전하려는 생태주의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다. 4대강 사업, 도롱뇽 소송, 밀양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등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지구 생태계가 미래에도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문명이 아니라 생태문명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생태문명 실현의 전제 조건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 의식의 근본적 변화와 지구적 차원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인간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사회 체제, 즉 정치ㆍ경제ㆍ교육ㆍ종교가 그 기본 원리를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바꿔야 한다. 인간중심주의로는 생태문명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문명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는 인간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다른 존재들의 가치와 권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인류 문명과 지구 상의 생명을 보전하는 데 실패하였다. 따라서 네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첫째, 현대의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베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가 국가나 인간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새로운 정치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구는 지구 전체 기능 안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부분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라들의 연합(The United Nations) 정도가 아니라 종들의 연합(The United Species)이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democracy)에서 생명주의(bio-cracy)로 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82년 유엔 총회에서 통과한 ‘자연을 위한 세계 헌장’은 새로운 정치적 법적 체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장은 모든 형태의 생명은 유일하며 인간에게 유용함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은 지구의 기능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기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특별히 필요하다.둘째, 현대의 경제 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현대의 경제 체제는 자연 세계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사고방식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 세계의 엔트로피는 그 한계에 이를 것이고 현재의 경제 체제는 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류는 지구 경제학이 우선적이고 인간 경제학은 부차적이라는 새로운 경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구 경제학은 인간 경제학의 전제 조건이다. 지구 경제의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인간 경제 프로그램에서도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구 경제가 건강하다면 인간 경제도 건강할 수 있지만, 지구 경제가 부도에 이른다면 인간의 경제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셋째, 현대의 교육 체제도 근본 원리가 변해야 한다. 사회의 지성적 체계인 대학은 새로운 세대에게 미래지향적 전망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적 내용은 인간과 자연 세계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양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세계가 지닌 어려움의 깊은 요인이다. 현재 대학의 교육 내용은 학생들에게 자연 세계와 친밀히 지내도록 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고 베리는 비판한다. 생태문명 실현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우주 이야기에 근거한 통합적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넷째, 종교도 그 가르침의 강조점이 변해야 한다. 그동안 종교들은 자연 세계가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계시적 경험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소홀하였다고 비판한다. 특별히 그리스도교는 창조 세계에 깃든 계시를 소홀히 한 채 성경을 통한 계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생태위기에 대하여 책임이 적지 않다고 베리는 지적한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종교는 자연이 단순히 경제적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이 깃든 신성한 창조 세계임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종교는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자살ㆍ살인ㆍ종족살해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 지구 파괴를 절대적 악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인간은 그 힘과 같은 정도로 책임감과 윤리 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핵심이다. 인류가 자연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적절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며, 그에 근거하여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종교의 근본적 원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변해야 한다. 생태문명은 인류의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진화된 문명 형태이다. 이런 이유로 베리는 현재의 생태계 파괴를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위한 호기로 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호기이기도 하다. 베리는 생태문명을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이라고 선언한다. 평화신문2014.06.25

사제수품 50년 금경축 맞은 서울대교구 김대군 신부하느님 사랑의 섭리와 함께한 반세기 '감사' '한국 성령쇄신의 기둥', '특수사목 40년', '외유내강형 기도 사제'. 온화하고 여유 있는 미소로 특히 30년 넘게 함께해온 한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회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대군(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사제 생활 반세기 금경축을 맞았다. 성령쇄신봉사회 회원들은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빠짐없이 철야기도회에 함께하는 김 신부를 위해 12월 21일 새벽 2시 철야기도회 중인 서울 동성고 대강당에서 축하식을 열고 기쁨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신부는 "저는 여러분이 기도 잘하는지 감독하러 참석해온 것이 아니라, 제가 주님을 만나면 힘을 얻으니까 온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숙소인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 사제관에서 만난 김 신부는 "되돌아보면 모두 하느님 사랑의 섭리 안에 지내온 사제생활이었다"며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와 소명으로 주어진 자리를 지켰을 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신부는 8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를 따라 세례를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에 참례하며 복사를 서온 김 신부는 입버릇처럼 말해온 장래 희망 '장군(將軍)'이 아닌 사제의 길을 택했다. "신학교 안 갈래?"라는 누이의 질문에 고민없이 가겠다고 답한 뒤 곧장 소신학교에 입학해 누구보다 즐겁게 성소의 꿈을 키웠다. "하고 싶은 운동 마음껏하고, 단체생활하며 함께 성가 부르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개학이 기다려질 정도였으니까요." 1963년 사제품을 받은 김 신부는 서울 중림동약현ㆍ신당동본당 보좌, 이태원본당 주임을 제외하고는 군종, 소신학교, 성모병원 경리처장, 가톨릭중앙의료원장, 교구 관리국장, 성령쇄신봉사회 담당 등 40여 년을 특수사목 분야에서 사목했다. 김 신부는 1977년 성모병원 경리처장 시절 당시 교구가 2년 넘게 끌던 서울성모병원(옛 강남성모병원) 반포동 부지 매입 문제를 3개월 만에 해결하고 1980년 병원 설립을 이끌었다. 교구 관리국장 시절엔 그때까지 체계가 없던 본당의 교구 납부금 관련 지침을 처음 마련했다. 또 경기도 양주 한적한 곳 132만㎡(40만 평)에 이르는 부지를 매입해 한마음청소년수련원을 건립했다. 1978년 어느 날 김 신부는 한 동료사제에게서 성령묵상회를 소개받는다. 반신반의하며 묵상회와 기도회를 다녀온 김 신부는 사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때부터 김 신부는 매일 새벽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새벽 화장실 가는 시간에 일어나 바닥에 앉아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면 1시간이 후딱 갑니다. 그 시간만큼은 제가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이지요.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주님을 만나온 셈이죠.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시는 분,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지니신 분이란 걸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김 신부는 오래 전부터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왔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온 김 신부는 현재 바늘구멍만한 빛줄기만 감지할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바깥 출입이 어렵지만 미사를 주례하거나 고해성사를 주고, CD에 녹음된 성경을 들으며 지내는 데는 무리가 없다. "불편함은 따르지만 쓸데없는 것 안 봐도 되고, 더욱 고요함 속에 아무 방해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기는 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훗날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기 위해서는 잘 준비하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지요. 늘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세요." 글ㆍ사진=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cpbc2013.12.24
![[생활 속의 복음] 빛과 소금이 되려면](//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78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빛과 소금이 되려면연중 제5주일 (마태 5,13-16)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어릴 때 선생님들께서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유관순 누나 등을 말하곤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존경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으면 합니다. 존경받는 사람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그 사람의 직책이 있습니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그 직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그러한 직책이 일정한 부와 명예를 보장해주기도 합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판사, 의사… 등이 있겠습니다. 둘째는 한 분야에서 오랜 정진 끝에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동 분야에 이런 사람들이 있고, 학문을 연마하는 사람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으며, 요즘에는 예술과 컴퓨터 분야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 그러면서 일정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명예의 전당'에 추대되기도 합니다. 셋째로는 특정한 직책에 있지는 않고, 그렇다고 한 분야에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게 이런 사람들은 청렴하며, 희생과 봉사 정신이 뛰어나고, 남에 대한 배려가 크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겉으로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향기가 은은하면서도 멀리 퍼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들 때문에 때로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조건에서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신앙인들이 자신의 직분과 직책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이르러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세 번째 이유로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000년 역사를 지닌 교회는 오늘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합니다. 그 빛과 소금은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간 교회의 건물 때문에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웃에게 전하는 그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그 이름값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희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덕담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초는 자신의 것을 다 태워서 빛을 비추어 줍니다. 소금은 모든 것을 주고 녹아야 맛을 냅니다.' 빛과 소금처럼 모든 것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내어주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삶이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지방자치 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공약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발전과 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의료, 교육, 육아, 주택'과 같은 부분에서 국민들을 위한 복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택적 복지이든 보편적 복지이든 우리 사회가 발전과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선진 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교회는 더더욱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합니다. 각 지역에 있는 본당과 교회 시설들은 세상의 등대가 돼야 합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사랑의 빛을, 희망의 빛을, 믿음의 빛을 밝혀줘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등대지기가 돼야 합니다. 그 삶이 비록 외롭고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소금이 되어 모든 것을 내주었던 제2의 이태석 신부가 돼야 합니다. 제2의 마더 데레사가 돼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복지, 희생이 없는 복지, 십자가 없는 복지는 포장은 예쁠지라도 알맹이가 없기 마련입니다. 구호는 멋질지라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마련입니다. cpbc2014.02.04
![[성경 속 궁금증] 44. 유다인들은 왜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았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339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4. 유다인들은 왜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았을까?거룩한 하느님 거룩한 백성 되고자 부정한 것들 피해 민족 정결 보존만나의 기적(파브리지오 보치 작, 1597년).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참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음식에 대한 율법이 무척 까다롭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음식은 먹을 수 있도록 정해진 음식과 먹지 못하는 부정한 음식으로 분명하게 구분돼 있었다. 우리 문화의 시선에서 보면 이렇게 음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아하고 낯선 광경이다. 그런데 현대를 살고 있는 열심한 유다인들은 여전히 이 규정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미 노아시대부터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동물에 대한 언급이 있다(창세 7장 참조). 이것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정결과 부정에 관한 가르침에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레위 11장 참조). 이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정결한 동물로 구분된 짐승과 물고기, 새 종류만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먹지 못하도록 구분된 부정한 것들은 무슨 이유로 먹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선 깨끗함과 더러움은 사물에 붙어있다는 유다인들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는 해석이 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음식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려놓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그것을 먹는 사람까지 더러워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음식에 관한 율법은 하느님 거룩하심의 관점, 즉 종교적 의미에서 이해돼야 하겠다. 정결과 부정의 문제는 중대한 신학적 관심사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특성과 성격을 그들의 공동체 생활에 반영해야 했다.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친교를 나누려면 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친교를 나누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유다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이어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그분이 거룩하시니 이스라엘도 거룩한 백성이 돼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 정결법의 골자다. 이들에게 정결은 삶과 죽음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정은 바로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유배와 파멸의 운명에 직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부정과 그들의 죄악에 따라 그들을 다루고,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에제 39,24). 또 이스라엘 민족은 삶의 여러 부분에서 부정을 피해 민족의 정결을 보존하고자 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부정을 경고하여서,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나의 성막을 부정하게 하여 그들이 부정 속에 죽는 일이 없게 하여라"(레위 15,31).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이러한 음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들과 어울리며 우상숭배에 빠질 것을 염려해 율법으로 음식에 대한 구분을 정한 것이다. 이렇게 음식을 구별함으로써 하느님이 거룩한 분이시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구별돼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람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다.퇴사자22012.08.16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34> 기도(3)](//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9537_1.1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기도(3)기도, 우리 삶에 생기와 생명 주는 근원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세리는 겸손하게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용서를 청함은 올바르고 순수한 기도의 전제조건입니다(2631항).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겸손하고 신뢰심을 갖고 바치는 기도여야 합니다. 이번 호부터 기도생활(2697~2758항)에 대해 두 차례로 나눠 알아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순간 기도에서 생기를 얻는다. 사진은 정성을 다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살펴봅시다기도는 새 마음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기도에서 생기를 얻어야 합니다. 일찍이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2697항) 하고 설파했습니다. 그만큼 기도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생활의 중요성 때문에 교회는 지속적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기적인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고합니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성무일도(시간전례) 같은 기도들은 날마다 바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성찬례(미사)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도 기도로써 거룩하게 지냅니다. 또 전례주년(교회 달력)에 따른 축일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기도합니다(2697~2698, 2720항). 기도에는 세 가지 중요한 표현 방식이 있습니다. 소리를 내어 바치는 소리기도, 침묵 중에 하는 묵상기도, 그리고 관상기도가 그것입니다. ㉠ 소리기도(2700~2704항) : 소리기도는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나 혹은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소리기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드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씀을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열성에 달린 것입니다"(2700항). 소리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소리기도는 우리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의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소리기도입니다. 소리기도는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일반 대중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소리기도는 가장 깊은 내적인 기도인 관상기도로 가는 첫 형태입니다. ㉡ 묵상기도(2705~2709항) : 묵상기도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일종의 탐색 기도입니다. 묵상기도는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며 그래서 성경을 비롯해 교부들의 영성 저서와 흔히 신심서적이라고 부르는 책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묵상기도를 할 때는 성경이나 신심서적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자기 자신에 비추어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상기도에는 보통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또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물음이나 다짐이 이어집니다. 묵상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기에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과 의욕 등을 모두 활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신앙의 확신을 심화하고, 마음의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합니다"(2708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 관상기도(2709~2719항) :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관상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으로 하는 관상기도란…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마치 사랑하는 이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듯이 사랑이신 주님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관상기도에 들어가려면 마음을 모으고, 성령께서 움직여 주시도록 우리의 전 존재를 집중시키며,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거처인 우리 자신 안에 우리가 머물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이 되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게 하고, 정화되고 변화되어야 할 제물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관상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시선이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아르스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가 성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은 저를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관상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이가 부모를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고, 주님의 천사에게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 하신 마리아의 응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침묵입니다. 곧 침묵 속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관상기도 중에 하는 말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와 같다.…이 침묵 중에서 성부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강생하시고 고통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자녀가 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기도에 참여하게 하신다"(2717항).정리합시다 - 소리기도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몸을 마음의 내적인 기도에 일치하게 한다(2722항). - 묵상기도는 사고력, 상상력, 감정, 의욕을 동원하는 탐색적 기도이다. 묵상의 목적은 우리네 삶의 현실에 비추어 고찰한 주제를 신앙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2723항). - 관상기도는 기도의 신비를 단순하게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는 예수님께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 사랑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지게 된다(2724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3.10.22
![[가톨릭 신앙의 보물]<12>가톨릭교회교리서(상)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46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가톨릭교회교리서(상)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신부)교리서, 신앙생활의 영원한 동반자 교우들은 교리 하면 예비신자교리, 견진교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교리교육은 천주교 입문 단계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를 통해서 지속된다. 교리교육이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어떤 모습을 지녀왔는지 살펴보자.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공식 교리서 「성교 요리 문답」. 사진=「가톨릭대사전」 교리교육의 역사 예수님 승천 후 사도교회에서 교리교육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새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정문이 제시된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사도 15,28-29). 사도들의 교리서로 알려진 「디다케」에서는 덕행을 따르면 생명의 길을 걷는 것이며 악행을 고집하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윤리생활을 강조했다. 200년 쯤에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여러 곳에 교리교육학교가 설립됐다. 주교들이 직접 예비신자들의 세례를 준비시키면서 우상을 배격할 것을 가르쳤다. 313년 종교자유가 주어질 때까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예비신자 교리는 3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해 철저히 이뤄졌다. 세례는 부활절에 베풀어졌는데 사순절 주일은 그 준비를 마무리 짓는 기회기도 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우리 미사 전례 안에 남아 있다. 전례력으로 가해의 사순 3, 4, 5 주일에는 다른 주일과 달리 비교적 긴 복음을 읽는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태생 소경의 이야기 등이다. 당시 예비신자들은 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일 마지막 결심을 했다. 로마제국에서 박해가 끝난 후 예루살렘의 치릴로나 아프리카의 아우구스티노 성인 등은 귀중한 교리서들을 저술했고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은 성인들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신앙생활의 모범을 알기 쉽게 제시하며 신앙심을 고취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 교리서의 변천사 6세기 이후 그리스도교가 크게 성장하면서 성인 입교자는 급격하게 줄고 유아세례가 급증했다. 9세기에는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을 위한 문답교리서가 나왔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교리교육은 성인 예비신자가 아닌 유아세례를 받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관련됐다.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교 생활에 필요한 윤리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교리교육의 주된 내용을 이뤘다. 후에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종교개혁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사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무조건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첫째 관심사는 주관적이고 미신적인 잘못된 신심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끄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가톨릭교회 역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로 이끌기 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했다. 루터의 교리서 출판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신자들을 잘못된 관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교리서가 출판됐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 베드로 카니시오의 교리서이다. 첫 번째 예수회 회원 중 한 명으로 독일과 네덜란드, 스위스 등지에서 활동한 성인은 교리서를 통해 효과적으로 종교개혁에 대응했다. 특히, 1558년 발간된 소년ㆍ소녀를 위한 교리서는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문답식으로 썼다. 바로 이 책이 1566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실로 출판된 「로마 교리서」의 밑바탕이 됐다. 「로마 교리서」라고 불리는 표준 교리서는 믿을 교리와 성사 생활, 지킬 계명, 애덕 생활 등의 내용 등 1041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본당 성직자들이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방대한 규모의 교리책이었다. 이후 신자들을 위해 문답 형식을 갖춘 「로마 교리서」의 축약본이 벨라르미노 성인에 의해 나왔고, 이것이 중국을 거쳐 선교사에 의해 조선에 들어왔다. 이 요약된 「로마 교리서」를 최양업 신부님와 다블뤼 주교가 한국말로 편찬했고, 1864년 154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성교 요리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것이 계속 사용되다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3년 후인 1934년에 320문항의 「천주교 요리문답」이 나왔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로 시작하는 「천주교 요리문답」은 10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공의회 이전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들에게 매우 친숙했다. 옛날 신자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리문답을 모두 외워야만 했고 성탄과 부활 대축일을 앞둔 판공에서 본당 신부들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요리문답 내용을 묻고 확인했는데 이것을 '찰고'라고 하였다. 196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가톨릭교리서를 발행하였는데 이로써 「천주교 요리문답」은 신자들의 일상에서 점차 사라지게 됐다. 정리=백영민 기자cpbc2014.02.25

"젊은이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사목교서]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지난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뜻깊은 '신앙의 해'를 가졌습니다.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신앙의 해는 마쳤지만 우리의 걱정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새로운 복음화가 지속해서 이어져야 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특별히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신앙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바쁩니다. 초등학교부터 학원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왜 공부를 하는지조차 모른 채, 공부가 삶의 전부인 양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삶에서 하느님의 자리는 없어진 듯 보입니다. 갈수록 청소년미사, 청년미사 참여자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리교육에 참여하는 수는 절망적 수준입니다. 부모가 매일 자녀와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요? 자녀가 어려움이 닥칠 때 주님께, 성모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가르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첫째, 부모님들에게 당부합니다. 이 시대의 부모도 다른 것은 자녀에게 양보할 수 있으나, 신앙만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그를 영원한 생명으로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기러기 부부가 되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과연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 것들은 변하지만, 변치 않으시는 하느님께 의탁하고 그 길을 따를 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고,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면서, 하느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부모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들이 모범적인 삶을 통해 자녀들이 진정한 정의와 평화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도록 격려하기를 바랍니다. 신앙교육은 일상생활에서 이뤄지기에 밥상머리 교육이고, 어른들의 모범과 가르침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도제(徒弟)교육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정, 성경을 가까이하는 가정,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의 노력과 모범을 촉구합니다. 둘째, 젊은이들에게 당부합니다. 참 행복은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마십시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여러분은 사회를 위한 소중한 선물입니다.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하지 마십시오. 흔히 가장 쉬운 길로 보이는 그릇된 해결책에 기대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투신하십시오. 여러분의 젊음을 믿으십시오"라고 권고하십니다(2012년 제4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올해 우리 교구는 '가톨릭청소년성취포상제'를 시범 운영하는데, 이는 스스로 자기 신앙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많은 본당에서 참여하면 좋은 결실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청소년은 이 나라와 우리 교회의 미래이며 희망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지금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우리 모두가 올해에는 젊은이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을 다해야겠습니다. cpbc2013.12.03
![[성경 속 궁금증] 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느님께 맏배, 맏아들을 바쳤나](//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396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느님께 맏배, 맏아들을 바쳤나모든 맏물, 주님 소유의 거룩한 것 창조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표현마리아가 예수를 성전에 바치는 것을 그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침'(조토 작, 14세기). 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외아들을 포함해 맏아들은 물론 집에서 키우는 짐승의 맏배, 사람이 가꾸는 곡식과 과일나무의 맏물을 하느님께 바쳤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나의 것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던 날, 나는 그들을 나의 것으로 성별하였다"(민수 8,17). 이들은 왜 맏아들과 맏배, 맏이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스라엘 민족은 맏아들은 하느님 소유라고 여겼다. 하느님에게 속한 것은 거룩한 것이기에 인간이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 이외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과 짐승, 땅에서 나온 첫 열매를 바침으로써 모든 생명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를 표했다. 유다인들 삶은 모든 것이 하느님과 관계성을 갖는다. 그래서 성경의 사람들은 당시 인간 생존의 유일한 바탕이었던 농사의 첫 열매가 하느님께 속한다고 여겼다. 또한 맏아들은 물론 집에서 키우는 짐승의 맏배, 사람들이 가꾸는 곡식과 과일나무의 맏물이 하느님의 것이기에 당연히 그분께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삶과 죽음, 인간의 생산 활동과 그 활동의 터전까지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며 또 그분 손에 달렸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절대적 믿음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맏물과 맏배, 맏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은 그분께서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또한 이것은 주인으로서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풍요와 다산을 주시기를 청하는 의미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땅에서 거둬들인 맏물인 곡식, 포도나무의 첫 열매로 만든 햇포도주, 올리브나무의 첫 열매로 만든 햇기름, 그해에 처음 깎은 양털을 하느님께 봉헌했다(탈출 22,28-29 참조). 이것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고백이었다(신명 26,1-11 참조). 그렇다면 사람인 맏아들은 어떻게 하느님께 바쳤을까?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은 아이들을 직접 죽이거나 산채로 불살라 신에게 바치곤 했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으로 유다인들도 특히 큰 어려움에 직면하면 이방인들처럼 맏아들 또는 자식을 불살라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모압 임금은 자기 뒤를 이어 임금이 될 맏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번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무서운 분노가 이스라엘군에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그곳에서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2열왕 3,27). 하지만 이런 비도덕적 우상숭배 행위는 결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벤 힌놈 골짜기'에 토펫의 산당을 세우고 저희 아들딸들을 불에 살라 바쳤는데, 이는 내가 명령한 적도 없고 내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일이다"(예레 7,31).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께 무서운 벌을 받았다. 또 산 사람 목숨을 앗아서 바치는 행위는 율법으로 엄하게 금지됐고 단죄를 받았다(예레 7,30-34).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 맏아들을 바칠 때에는 작은 가축이나 돈으로 대속해 바칠 수 있었다(탈출 13,13). 특별히 가난한 이들은 비둘기 두 마리를 대신 바치곤 했다(루카 2,22-24).퇴사자22012.08.21

요한묵시록 '증거의 천막'이 '신천지교회' 주장[기획] 신천지교회의 실태와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1>- 신천지는 무엇인가 <연재순서> 1. 신천지는 무엇인가? 2. 신천지 포교전략, 예방과 대처 방법 3.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 4. 사목적 제언신천지 신도들이 집회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2010년 말 7만여 명이던 신도 수는 2년 만에 3만 명 이상 늘어났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라는 사이비 단체의 포교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개신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는 최근 들어 가톨릭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국 교구에 피해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고,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교구는 주보 공지와 강의 등을 통해 그들의 포교 행위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수원교구 복음화위원회 협조를 받아 신천지교회 실체를 밝히고 대처방법을 싣는다. 1980년 설립된 신천지는 사이비로 분류되며 교주는 이만희(83)다. 경기도 과천에 본부를 두고 있고 신도 수는 현재 10만3000여 명, 교회는 120개, 선교센터는 300개로 추정된다. 2010년 말 7만 122명이었던 신도 수는 2년 만에 3만 명 이상 늘어 지속적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신천지 교리 공부 목적은 교주 이만희를 믿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단어 비유풀이를 하며 1대1 복음방, 초등ㆍ중등과정 등 기본 5~6개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그 후 자신들 존재를 알린다. 1대1 복음방 과정은 12~16회 진행되며 과정이 끝나면 신천지 신학원으로 가게 된다. 신학원은 하루 3시간, 주 4회 수업으로 이뤄지며 각각 2개월 과정이다. 마지막 고등 과정(계시록)에서 실상과 그 핵심교리를 가르치고 교주를 믿도록 강요한다. 6개월 동안 성경 공부를 마치고 500문항으로 이뤄진 주관식 수료시험을 치러야 입교 자격이 주어진다. 시험에 통과하면 신천지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있는 아이디카드(영생 교적 카드)를 받게 된다. 신천지는 입교 조건으로 △2명 이상 전도 △수료시험 80점 이상 △신학원 예배출석 일수를 내걸고 있지만, 이는 심리적 압박감을 줄 뿐이고 사실상 어떻게든 입교시키기 위해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교 후에는 청년부ㆍ장년부ㆍ부녀부 등 각 지역별 소속을 갖게 되며 입교 후 새 신자 교육, 제사장 교육이 이뤄진다. 이 교육에서 노골적이고 맹렬한 교주 신격화가 이뤄진다. 이후 끊임없는 교육으로 침투 포교 활동을 준비한다. 신천지는 성경이 역사, 교훈, 예언, 성취로 이뤄졌고 비유로 내용을 감춰놓았기에 비유를 알지 못하면 천국복음을 깨달을 수 없고 구원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성경을 도식ㆍ도표로 만든 비유풀이로 재밌게 가르치고 영상물 등을 활용해 교육 효과를 높인다. 신천지는 요한묵시록 15장에 나오는 '증거의 천막'이 바로 신천지교회라고 주장한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예수에 관한 것이고, 신약의 모든 예언은 이만희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만희는 이 시대의 구원자로서 영생을 누릴 것이고, 요한묵시록에 언급된 14만 4000명을 신천지 신자로 채우면 '신천지'(新天地, 새 하늘 새 땅)가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신자 14만4000명 모두가 영생을 한다는 것이 신천지교회의 핵심 교리다. 이들은 정통교회란 구원이 없는 '바벨탑'에 불과하며 오직 신천지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정통교회는 자신들이 포교할 '추수밭'에 지나지 않는다. 신천지는 훈련된 '추수꾼'(위장 신자)을 교회에 잠입시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결국은 교회 분열을 초래한다. 과거에는 개신교 신자를 포섭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목표가 천주교 신자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신천지 예방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온 개신교 포교가 점점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이단 사이비에 대한 경계심이 약하고, 신천지에 대한 정보가 취약한 천주교 신자를 포교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3.03.27
![[출판] 아주 특별한 순간- 살아계신 하느님 만나는 '특별한 순간'으로 초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7141_1.2_titleImage_1.jpg)
[출판] 아주 특별한 순간- 살아계신 하느님 만나는 '특별한 순간'으로 초대 일상의 삶에서 피정하도록 도와주는 안내서 아주 특별한 순간 V.안토니오 지음/류해욱 옮김/바오로딸/1만 1000원침묵치유피정 강사로 유명한 요셉 빌(인도 빈첸시오회, 1928~2008) 신부가 선종한 뒤 후임으로 안토니오(인도 빈첸시오회, 37) 신부가 임명됐다. 당시 안토니오 신부는 갓 서른을 넘겼을 때였다. 빌 신부 뒤를 이어 치유피정을 이끌기엔 너무 어리고 경험 없는 신부가 후계자가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치유 은사를 받은 빌 신부는 전 세계를 다니며 '6일간의 침묵치유피정'을 지도했는데, 피정 중에 종종 치유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빌 신부는 마음을 움직이는 강론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빌 신부 후임이었기에 안토니오 신부에 대한 우려와 불신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선 신자들이 그를 보고 "손자보다 어린 신부가 왔다"며 피정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가 버려 피정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안토니오 신부에 대한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토니오 신부 피정에 참가한 이들은 한결같이 "성령께서 그분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6일간의 침묵치유피정'은 매일 4번의 강의와 성체조배, 묵상, 미사로 이뤄진다. 엿새 동안 스무 번이 넘는 강의를 해야 하지만 안토니오 신부는 늘 원고 없이 성경 한 권만 들고 강단에 선다. 그는 성경에 담긴 하느님 뜻을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에 빗대 설명한다. 신자들 눈높이에 맞춘 강의는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피정 참가자들은 "안토니오 신부님 강의를 들으면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고, 왜 성숙한 신앙인이 돼야 하는지 명확해진다"면서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안토니오 신부는 확실히 신자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신자들뿐만이 아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안토니오 신부님 피정에선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선 피정 '전문가'로 손꼽히는 류해욱(예수회) 신부는 2년 전 안토니오 신부 피정에 참가한 뒤부터 안토니오 신부를 영적 멘토로 모시고 있다. 나이로 따지면 류 신부는 안토니오 신부의 아버지뻘이다. 류 신부는 정통 가톨릭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으로 신앙을 일깨워주는 안토니오 신부 강의에 감동해, 피정기간 내내 강의를 받아 적었다. 안토니오 신부 피정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를 책으로 펴냈다. 류 신부는 "이 책은 일상 삶에서 피정을 하기 위한 안내서"라면서 "깊은 묵상과 관상을 통해 나온 내용이기에 독자 스스로 성경 안으로 깊이 들어가 묵상과 관상을 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안토니오 신부는 4년 전부터 매년 여름 한국을 방문해 피정지도를 해왔다. 올해에도 2차례 피정을 할 예정이다. 1차는 8월 5~10일 경기도 의왕시 아론의 집에서, 2차는 8월 11~16일 부산 성 분도 은혜의 집에서 열린다. 문의 : http://club.ca tholic.or.kr/frbill, 6일간의 침묵피유피정 누리방조은일2013.04.09
![[출판]슬픈 예수 - 예수님은 현재 교회 모습에 기뻐하실까?](//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5316_1.1_titleImage_1.jpg)
[출판]슬픈 예수 - 예수님은 현재 교회 모습에 기뻐하실까?평신도 신학자, 마르코복음 해설 통해 교회와 신자들 잘못된 의식 비판 슬픈 예수(김근수 지음/21세기 북스/1만 6000원) 독일에서 성서신학을,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한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요셉)씨가 쓴 마르코복음 해설서다. 마르코는 예수 역사의 핵심 부분을 최초로 기록한 복음서다. 요한 세례자 이야기에서 시작해 예수 십자가 처형까지 예수의 역사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마르코복음을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 창작품'이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 입으로 후대에 전해진 예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해설은 '역사'의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신학은 아직 신학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성경해설은 아직 성경해설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신학자다. 그가 보는 예수는 이웃 사랑을 외치다가 십자가에 처형 당한 게 아니라 사회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다가 처형 당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편들고 편애하신 분이다. 목숨 걸고 불의에 저항하며 세상 고통을 없애려 애쓰다가 겪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한 분이다. 그래서 예수는 슬프다. 저자는 "마르코는 영광의 신학이 아니라 고난과 희생의 신학을 강조했다"며 "신학자는 먼저 '십자가에 매달린 가난한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마르코복음 해설을 통해 현대 그리스도교가 보여주고 있는 잘못된 모습을 통렬히 비판한다. 예수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와 안락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와 성직자, 신자들의 의식에 일침을 가했다. "세례받는다는 것은 그 사상에 동조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마치 자본주의에 세례받은 모양이다. 건물 짓네, 국외 선교하네, 사회복지 시설 운영하네 하며 돈 내시란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다. 돈 이야기 제일 많이 하는 곳이 그리스도교인 듯하다. 가난한 사람은 교회에서 그저 안절부절못한다. 이것이 예수 탓인가? 예수가 기막힐 노릇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는데 정작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실상 밀어내는 형국이다"(23쪽). 유난히도 '멋지고 번듯한' 성전 건립에 전 신자가 동원되는 세태도 꼬집었다. 예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직접 찾아가 애환을 나눴다. 종교건물을 따로 건축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살면서 가르쳤다. 그는 "한국의 교회나 성당 건물 재산의 10분의 1만이라도 팔아서 아픈 사람을 무료로 치료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다시 볼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예수의 모습에서 사회 불의와 악에 저항하는 정의를 발견했다. 예수의 기적이 단순한 치유나 귀신 쫓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파문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귀신 이야기에 주목해야 할 의미는 악이 결코 스스로 사라지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귀신과의 투쟁에서 악과 싸우는 예수의 해방적인 투쟁을 볼 뿐 아니라 그 투쟁을 우리가 계승함을 깨달아야겠다. 귀신을 우리가 몰아내야겠다. 종교, 정치, 사회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집주인 베엘제불(돈 귀신, 권력 귀신, 이기주의)이라는 귀신을 몰아내자는 말이다.… 그리스도교가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저 '아멘, 옳소' 해서는 안 된다"(77쪽). 그는 또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남성 중심적 교회 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그는 "마르코는 세상을 정확하게, 교회를 날카롭게, 가난한 사람을 따스하게, 우리 자신을 침착하게 보라고 권고한다"고 했다. 또 교회 행태에 실망하거나 그리스도교 역사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마르코복음을 통해 위로받기를 희망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신학자인 저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냈다. 그의 페이스북에서는 현재 슬픈 예수Ⅱ 마태오복음 해설이 연재 중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7.23

한국교회사연구소 특별강좌,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과 한국교회 양적 성장의 30년 반성, 새 복음화 기약 103위 순교자 시성은 한국 천주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사진은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주례로 봉헌된 103위 성인 시성식. 출처=「평화의사도 요한 바오로 2세 화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는 여의도에서 103위 시성식을 거행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올해는 103위 시성 30주년의 해다.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15일 서울 삼일대로 평화빌딩 4층 연구소에서 조광(이냐시오) 연구소 고문 겸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2014년 첫 특별강좌를 개최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지난 30년간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과 함께 30년 전 시성이 갖는 의미가 오늘에 이르러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검토함으로써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 자리였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우선 조 교수는 1984년에서 2014년까지 지난 30년간 한국교회의 변화를 짚었다. 한국교회 교세 내지 신자 증가 비율에 주목한 조 교수는 1984년에서 2012년 사이 신자 수는 거의 3배에 육박할 만큼 늘었고, 성직자 수는 3.6배, 수사는 6.3배, 수녀는 2.7배나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성직자의 경우 외국은 교구사제가 반, 수도사제가 반 정도인데 비해 우리 교회는 교구 사제가 80%를 상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구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가 7개나 되는 것도 특색으로 꼽았다. 또한 신학생은 같은 기간 1.7배 가량 늘었지만, 2010년 1674명까지 꾸준히 늘었던데 비하면 2년 뒤 134명이나 줄어 외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신학생 수가 급격히 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조 교수는 또 같은 기간 성직자 1인당 신자수가 1405명에서 1120명으로, 수사 1인당 신자 수가 7514명에서 3417명으로 줄었지만, 수녀 1인당 신자 수는 470명에서 527명으로, 1개 본당당 신자 수는 2747명에서 3222명으로, 신학생 1인당 신자 수는 1998명에서 3481명으로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이에 대해 "성직자나 수도자, 신학생 1인당 신자 비율은 아주 바람직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이나 남미에서 신학교가 텅텅 비는 현상을 감안할 때 한국교회도 이제는 미래교회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성소 계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본당 수가 늘었는데도 1개 본당당 신자 수가 늘어났다는 점은 본당이 오히려 대규모로 변해가고 있음을 뜻한다"면서 이는 "소공동체 운동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냉담문제에 주목한 조 교수는 "2010년 기준 판공성사 참여자 비율이 34%, 주일미사 참여율도 27.2%에 그치고 있다"며 "이는 한국교회도 점차 서유럽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걸어왔던 바람직하지 못한 길에 들어서고 있음을 말하는 자료"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1980년대 연평균 신자 증가율이 7.5%에서 1990년대 4.3%, 2008년에는 2.8%로 감소 추세에 있는데 이는 현대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에 비례해 내적 충실을 다지지 못한 결과였다"며 "이런 현상은 201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나아가 한국 교회의 중산층화와 관련해 "한국교회가 특정계층에 의해 주도된다면, 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구원은 결코 성취될 수 없을 것"이라며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조 교수는 이어 1984년과 1989년에 이뤄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교회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한국교회는 교황 방한을 통해 이뤄진 시성식과 성체대회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찾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103위 시성식 이후 한국교회의 흐름을 △시복시성운동 △성경 번역 및 성가집 편찬 △ 매스미디어를 통한 복음화 △토착화 신학 연구 진전 △대외 선교와 원조 강화 △2000년 대희년 준비 △창조질서 보존운동 △생산협동조합운동 △도시빈민운동 △민족화해운동 △해외 선교의 진전 등으로 나눠 개괄했다. 특별히 해외선교와 관련, 1957년에 반포된 회칙 「피데이 도눔(Fidei Donum, 신앙의 선물)」에 따른 교구 사제의 파견이 2011년 현재 88명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국교회 사제 수의 2%에 이르는 수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 교수는 끝으로 현대 한국교회의 과제로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 △인류 복음화를 위한 투신 △순교 정신의 현대적 적응 등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조 교수는 "시복시성 작업은 영성의 쇄신과 생활의 결단을 수반하는 작업이 돼야 한다"며 "순교자들 모범을 기리기 위해 시복운동을 전개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오늘의 교회가 직면한 현실의 도전을 의식하고 그들의 죽음을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따라서 "교회는 복음의 원점에 서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30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세워야 미래의 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cpbc2014.02.18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1> "주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온 제가 이렇게 억울하게 퇴직을 당하게 되다니요?" "공직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본당에서 총구역장으로 하느님 사업을 열심히 해온 제가 이와 같이 허무하게 무너져야 합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새로운 2000년 시대가 열렸던 그해 12월! 직급 정년에 걸려 50대 초반의 나이로 강제 퇴직을 당했던 그날은 아마도 제 일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가장 큰 아픈 사연으로 기억될 것 같다. 게다가 20년 전 해외 근무 당시 수술했던 허리 디스크가 재발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약해지다 보니 결국 정신적 강박증으로 연결돼 잠도 못자고,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게 됐고 급기야는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단골손님(?)이 되는 처지가 돼버렸다. "아, 이래서 사람이 죽게 되는가 보다." 극단적 생각마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던 그 시절! 강제 퇴직 전 나의 진급을 방해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극도로 깊은 마음에 사무치면서 내가 나 자신을 도무지 통제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외적인 갈등의 와중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나의 신앙적 마음이었다. 그동안 하느님 일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을 해온 내가 "어떻게 축복은 고사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으니…!! 1993년 8월 해외에서 귀국 후, 명일동본당에서 레지오와 함께 구역모임에 열심히 나가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 이후 레지오 서기를 거쳐 단장까지 하게 됐고, 명일동 한양아파트 소공동체 구역모임에서도 총무를 거쳐 구역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본당 신부님의 권유로 총구역장을 맡게 되면서 거의 흔적조차 없었던 남성 구역을 제대로 반석 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루게 됐다. 지금도 교중미사 중 신부님이 31개 전체 구역장 임명장을 주면서 전 신자들 앞에서 칭찬과 격려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직장에서는 아주 열심히 근무한다는 엘리트 대우를 받고, 성당에서는 총구역장으로서 보람을 쌓아가고 있던 그 시절! 진급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고 기도 중 묵상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영적 은총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진급을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밀려오는 심적 갈등과 배신감 비슷한 인간적 마음의 쇠사슬이 나를 억누르면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돛대도 삿대도 없이 흔들리는 부표처럼 한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나도 나려니와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 마틸다도 그렇게 열심히 하던 기도생활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완전 폐인이 돼 병원을 오가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저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새로운 태양의 빛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2001년 3월 지인의 권유로 서울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허리가 안 좋아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고, 마음 역시 갈피를 잡을 수도 없어 공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입학 후 허리에 좋다는 특수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강박증에 의한 정신적 압박감과 허리 통증으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얼었던 마음을 근본적으로 녹이는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4-5). 형들의 시기를 받고 이집트에 팔려간 야곱의 늦둥이 아들인 요셉이 이집트에서 고관이 됐다가 식량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만났으나, 원수를 갚지 않고 오히려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무언가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어왔다. 직장에서 진급을 방해하고 나를 내쫓다시피 했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동안 그들에게 품었던 원한이 눈이 녹듯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비록 조금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하긴 했으나 신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선교사로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의 섭리가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샘물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바로 눈앞의 진급만을 생각하고 하느님을 원망해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새로운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녘에 해가 떠오르듯 새로운 삶의 희망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서서히 건강도 회복돼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계속)이계상 분도(서울 명일동본당)백영민201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