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해 피해 신앙 일군 교우촌, ‘가난한 이들’과의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7. 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 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1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0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박해 피해 숨어 살다 신앙 자유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한 유서 깊은 공소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 신축, 2001년 축복식 거행 사랑촌 가족·신자 구분 없이 함께 신앙 키워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는 복자 최해성(요한)·최 비르지타와 함께 원주 부론면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덕가산 자락에 숨어 살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하면서 생긴 유서 깊은 공소다. ‘술미’의 ‘술’은 순우리말로 높고 신성하다는 뜻으로, ‘수리’의 준말이다. ‘미’는 ‘뫼’가 변형된 말이다. 따라서 술미는 높고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교우들이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켜왔는지 웅변해준다. 신해박해 고초 후 교우촌 일궈낸 최해성 일가 최해성(1811~1839)과 그의 고모 최 비르지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친척이다. 최경환 성인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아버지다. 최양업 신부의 증조부 최한일과 그의 동생 최한기가 1787년 한양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얼마 안 가 최한일은 선종했다. 1791년 신해박해의 고초를 겪은 후 최 신부의 증조모는 12살 외아들 인주와 함께 충청도 홍주 누곡(樓谷), 곧 청양 다락골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최한기의 가족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피신했다가 지금의 풍수원에 자리 잡았다. 최해성과 최 비르지타는 최한기 가족의 후손이다. 최해성 일가는 풍수원에서 원주 서지로 이주해 교우촌을 일궜다. 최해성은 1839년 박해가 몰아치자 부모와 가족을 배론으로 피신시키고 교회 서적을 가져오려고 집으로 갔다가 체포됐다. 그는 강원 감영으로 끌려가 쇠도리깨질을 당하면서도 배교하지 않았다. 그는 배교할 것과 교우들을 밀고할 것을 강요하는 관장에게 “원주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해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최해성에게 매질을 했다. 최해성은 1839년 9월 6일 참수형을 받고 28세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최 비르지타는 최해성과 함께 체포됐다. 그 역시 최해성과 같이 관장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가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배교를 거부했다. 최 비르지타는 4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교수형으로 56세 나이에 순교했다. 원주 순례길 중 순교 구간에 위치 서지마을은 19세기 말까지 교우촌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기해박해를 계기로 몇몇 교우는 덕가산으로 숨어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술미공소와 대안리공소, 후리사공소를 이루었다. 또 일부는 부론면 장뜰, 숯가마골, 왜가마골, 두둑골로 이주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원주교구는 2022년 총 234㎞에 달하는 순례길 ‘님의 길’을 조성, 개통했다. 박해·순교·세상의 빛을 주제로 한 3개 노선의 ‘님의 길’ 중 순교를 주제로 한 37.8㎞ 구간이 ‘최해성 요한님의 길’이다. 서지마을(교우촌)에서 시작해 원동성당까지 가는 이 순례길에 술미·대안리·후리사 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술미에 교회 인가를 받아 공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57년이다. 대안리공소에서 분리돼 ‘대수리공소’라 했다. 처음에는 공소 건물이 없어 교우 가정에서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다. 1960년대 대수리 마을에 있는 초가 한 채를 매입해 ‘술미공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소 건물이 너무 낡고 술미와 대수리가 떨어져 있어서 1983년부터는 두 곳에서 각각 공소 예절을 했다. 술미공소는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마냥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술미공소는 미사와 공소 예절, 성경 읽기,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행한다다. 술미공소 벽면에 장식된 십자가의 길 14처. 장애인복지시설에 공소 건물 봉헌 현재 술미공소는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738 갈거리사랑촌에 자리하고 있다. 1990년 원주에서 부부의원을 운영하던 곽병은(안토니오)씨가 술미 마을 건너편 갈거리에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이 술미공소에서 공소 예절을 함께하다 10여 년 후 아예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고 2001년 김지석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했다. 시설이 너무 낡아 폐가로 방치되어 있던 옛 술미공소는 2013년 일부 수리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갈거리는 대안3리 술미 마을 앞 동쪽 덕가산 지류와 명봉산 지류가 합류해 대안리와 매지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갈거리 또한 순우리말로 가르다에서 나온 ‘갈’과 장소, 터를 가리키는 ‘거리’가 합쳐진 말이다. 도로에서 다리를 건너야만 술미공소가 있는 갈거리사랑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갈거리사랑촌은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처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을 갈라놓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세상과 만나게 하고 공존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갈거리사랑촌 안에 있는 술미공소가 그 만남의 현장이다. 갈거리사랑촌 가족과 술미 신자들, 그리고 이곳을 찾는 누구나 함께 구분 없이 전례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한다. 술미공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에 있는 ‘바뇌의 성모상’이다. 바뇌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밝히셨다. 성경은 가난한 이들이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라고 한다.(루카 1,17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이 지상에서 누리는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마태 5장 ‘참행복 선언’ 참조) 술미공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을 뵙는 참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주님의 선언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샌드위치 패널로 소박하게 지어졌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미사가 봉헌되고, 매 주일 오전 8시 30분에 공소 예절이 있다. 장애를 안고 있는 어르신이 대부분인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은 공소에서 성경 읽기를 하면서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1.21

믿음·희망·사랑에 의지해 살아가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94) 유다 서간 유다서는 인간 본성만 따라 사는 영지주의적 삶을 경고하고 믿음과 희망, 사랑의 향주삼덕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한다. 미카엘 대천사상, 몬트제 성 미카엘 대성당, 오스트리아. 유다 서간(이하 유다서)은 베드로의 둘째 서간에 많은 영향을 준 정경입니다. 그래서 유다서의 중심 내용은 베드로의 둘째 서간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그릇된 교리를 퍼뜨리고 문란한 생활을 조장해 교회에 분란과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통 교회에 적대적인 자들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천사들을 모독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서는 이들을 ‘불경한 자들’이라고 단죄하고, ‘육욕에 빠진 자’, ‘꿈꾸는 자’, ‘본성만 따르는 짐승 같은 자’, ‘자신만 돌보는 이기주의자’, ‘불평불만꾼’, ‘아첨꾼’이라고 비난합니다. 이들 거짓 교사들은 아마도 당시 교회 안에서 골칫거리였던 ‘영지주의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하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지식과 완전한 자유를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자부해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하고 참된 영적 지혜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육체를 업신여겨 그리스도의 강생도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다서는 이들을 성령이 아니라 자기 본능에 따라 방탕한 생활을 하는 ‘현세적 인간’(19절)으로 규정했습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라고 밝힙니다.(1절)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두 명이 있습니다. 바로 타대오(마르 3,18; 마태 10,3)라고도 불리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카 6,16; 사도 1,13)와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하지만 유다서의 저자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과 야고보, 요세(요셉), 시몬과 형제인 유다입니다.(마르 6,3; 마태 13,55 참조) 오늘날 근동도 마찬가지이지만 성경에서 ‘형제’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뿐 아니라 가까운 친척도 가리킵니다.(창세 13,8; 14,16; 29,15; 레위 10,4; 1역대 23,22)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주님의 동생 유다가 유다서를 직접 쓰진 않았으리라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서간의 여러 내용이 사도 시대 이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다서 17절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교회 지도자 중 한 명이 유다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려 이 서간을 썼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80~90년께 유다서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다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카르타고 교회에서 일찍부터 성경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시리아 교회에서는 4세기까지 성경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를 선보인 예로니모 성인은 유다서가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문헌들을 이용했기에 사람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됐다고 전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Ιουδα’(유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Iudae’,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유다 서간’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모두 25절로 구성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공동 구원’에 관해 쓰려했으나 교회에 잠입해 참신앙을 거스르는 내용을 가르치는 불경한 자들에 관한 소식을 듣고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고 이들과 맞서기 위한 내용으로 고쳐 씁니다.(3-4절) 영지주의는 오늘날에도 교회의 큰 적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하느님 은총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오로지 자유 의지에 따라 구원될 수 있다며 극단적인 금욕을 실천했던 펠라지우스주의와 함께 영지주의를 ‘성덕의 교묘한 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교황은 영지주의는 하느님과 하느님 은총의 신비든, 하느님의 초월성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 결국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에 이르게 한다고 경계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를 세 가지 형태로 식별합니다.(1-4절) 첫째, 이들은 불경합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주님께서 드러내 주신 진리와 참된 생활양식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둘째, 이들은 방탕합니다. 불륜을 저지르고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자들입니다. 셋째,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기본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이 심판을 받고 세 가지 벌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5-8절) 첫째, 이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하느님의 수많은 표징과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자들처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둘째, 이들은 자기 영역을 이탈해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은 천사들처럼 감옥에 갇힐 것입니다. 셋째,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유황불에 멸망할 것입니다. 유다서는 ‘미카엘 대천사’를 진정 본받으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자신이 판결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겸손한 하느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음 세 가지를 당부합니다.(20-25절)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라.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고 자비를 베풀어라. 이 세 가지 당부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기본 덕인 ‘믿음·희망·사랑’과 일치합니다.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는 이 향주삼덕은 모든 윤리의 기초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주신 은총입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10.23

평화·순교·생태 영성, 전 세계 청년들과 함께 나누자의정부교구 2027 WYD 발대식 진행 의정부교구 청년들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와 의정부교구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의정부교구는 23일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2027 WYD 의정부 교구대회 발대식과 발대미사’를 거행하고, 평화· 순교·생태를 중심으로 한 교구의 신앙 가치를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과 나눌 것을 다짐했다. 2027 세계청년대회 의정부교구 1기 봉사자 청년들은 발대식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청년들로서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전하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며 △민족 화해와 일치,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고 △순교자의 신앙과 용기를 이어받아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며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생명의 문화를 확산하는데 힘쓰겠다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청년들은 대회 주제 성구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를 참가자들과 세 번 외치며 대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나눴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며, 그 기쁨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전 세계 청년들과 신앙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서 나누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손 주교는 이날 2027 WYD 의정부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이정훈(교구 총대리) 신부와 사무국장 박재범(청소년사목국장) 신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고, 조직위원회 사무국과 세 개 지역 사무국(중부·서부·동부) 현판을 담당 사제들에게 전달했다. 박재범 신부는 WYD 의정부 교구대회 영성 운동을 소개하며 “의정부교구는 다른 무엇보다 생태·평화·순교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청년들과 함께, 주님과 함께 신앙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발대식 후 참가자들은 주교좌 의정부성당 마당에 2027 WYD 의정부 교구대회를 기념하는 나무를 심은 뒤 발대미사에 참여했다. 미사 중 청년들은 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각자의 바람을 담은 기도를 봉헌하며, 세계청년대회가 모든 청년에게 희망과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교구 청년대표 황지형(세라피나)씨는 “발대식을 하고 나니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기대되고 기다려진다”면서 “의정부교구에 온 전 세계 청년들이 언어가 달라도 서로가 하나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특별히 기도 생활과 성경 읽기를 강조한 손 주교는 “세계청년대회가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평소 자주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고, 성경 말씀을 통해 그분과 가까워져야 한다”면서 “주님을 인생 동반자로 삼고 힘차게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발대식에는 교구 청년과 조직위원회 위원 사제 및 교구 사제단, WYD 수원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현정수 신부, 교구 평협 고진철(라우렌시오) 회장을 비롯해 이기헌(베드로, 고양시 병) 국회의원, 심홍순(젬마) 경기도의회 의원, 김동근 의정부시장, 박희성(토마스) 의정부 문화재단 대표, 유은혜(아녜스) 김근태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2027 WYD 의정부교구대회 발대식 후 내외빈들이 대회 기념 나무에 흙을 덮고 있다. 발대식에 앞서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선 본당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희망과 화합의 80년, 의정부 시민과 함께하는 희년 음악회’가 열렸다. 교구 청년성서모임, 파로스 찬양팀, 밴드 나마스테, 클래식 앙상블 가일플레이어즈가 무대를 장식했고, 마당에선 2027 서울 WYD 체험 부스와 가톨릭 플리마켓이 열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박수정2025.11.26

주님과 함께 최광희 주교 사목 표어 확정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된 최광희 주교의 문장과 사목 표어가 확정됐다. 최 주교의 문장은 사목 표어인 ‘주님과 함께(Cum Domino)’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과 복음 선포의 사명을 상징하는 다양한 도안 요소로 구성됐다. 성경에 기반한 사목, 한국 순교자에 대한 깊은 신심, 그리스도 중심의 목자로서의 삶을 시각적으로 조화롭게 표현했다. 문장의 핵심이 되는 표어 라틴어 ‘Cum Domino’는 ‘주님과 함께’라는 뜻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는 최 주교의 사제수품 성구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님과의 친밀한 일치 안에서 주교직 사명을 수행하겠다는 신앙 고백이 담겨 있다. 문장 상단의 물고기(ΙΧΘΥΣ) 상징은 초대 교회 신자들이 사용하던 표지로, ‘예수 그리스도·하느님의 아들·구세주’를 뜻하는 희랍어 약자다. 이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루카 5,10)는 복음 말씀처럼 신자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사명을 드러낸다. 중앙에 물결 형태로 펼쳐진 성경은 하느님 말씀과 세례의 은총, 신앙 여정을 상징한다. 성서 사도직에 헌신해온 최 주교의 사목 방향을 반영했다. 말씀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걸어가려는 의지가 담겼다. 하단의 성지 가지 모양 잎사귀는 한국 순교자들의 신앙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상징이다. 순교 선열의 삶을 본받아 오늘날에도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목자의 사명을 담고 있다. 성경 옆 알파(Α)와 오메가(Ω)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신 그리스도께서 주교직의 주체임을 고백하는 표지다. 문장에 사용된 진청색은 깊은 믿음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황금색은 주님의 영광과 신성을, 회색은 겸손과 절제, 내면의 성찰을 상징한다. 전체 문장은 종과 횡의 교차를 통해 십자가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주교직의 여정이 곧 주님과의 동행임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에서 인도하려는 사명을 상징한다. 최광희 신임 보좌 주교의 주교 서품 미사는 8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7.23
![[생활속의 복음]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7/wIv1775544825758.jpg)
[생활속의 복음]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요한 20,19-31 ‘마음의 평화’라는 압도적인 입교 동기가 시사하듯 신앙인은 교회 안에서 평화를 갈망한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보다 폭넓은 의미를 함축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건강·성공·복지의 총체적 결실이 평화로 귀결된다. 우리 문화의 인사말은 평화의 유의어인 ‘안녕’을 확인하거나 염원한다. 평화는 구원과 상통한다. 구약 성경은 ‘샬롬’(평화)을 기원하는 인사(탈출 4,18 참조), 축복(민수 6,24-26 참조), 망자와 유가족을 향한 위로(창세 15,15 참조)를 보도한다. “평화의 하느님”(1코린 14,33)은 수난과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와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선사했다. 평화의 상실인 불안의 요인은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자기 밖’의 불안은 대외 여건과 주변 정세(전쟁·폭력·재앙)가 직간접적 공포를 조성하는 국면이다. ‘자기 안’의 불안은 질병·사고, 근심·걱정이 정서를 자극하여 과거의 상처나 좌절, 현재의 실패나 갈등, 미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받는 상태다. ‘자기 옆’의 불안은 관계 형성의 미숙함과 타인으로부터 받은 배신감이 깨진 그릇처럼 회복 불가능한 불화를 초래한 경우다. 이 셋의 상호작용은 불안을 극도로 조장한다. 스승의 십자가형 이후 제자들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로마인 지배층과 유다교 지도자의 감시 대상(자기 밖)인 제자들은 체포될 위기에 놓였다. 스승의 죽음으로 인한 제자들의 탄식(자기 안)은 과거를 부정하게 하고 암울한 미래를 두려워하게 하였다.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으로부터 촉발된 제자단의 분열(자기 옆)은 동료 사이의 불신을 고착하였다. 이 정황을 여실히 묘사한 문구가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요한 20,19)이다. 스승의 부재(不在)는 불안의 핵심 사유였다. 수난의 상처를 간직한 스승이 잠긴 문을 뚫고 나타나 제자들에게 인사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불안에 떨던 제자들은 스승을 ‘다시 만남’(부활)으로써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이런 맥락에서 자기 밖·안·옆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마태 5,9)은 ‘부활의 증인’(하느님의 자녀)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토마스에게 부활 신앙의 의미를 밝힌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신앙은 ‘만남에 대한 확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보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만남’은 ‘대면의 만남’(자기 옆)을 넘어선 ‘비대면의 만남’(자기 밖, 자기 안)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확약이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이다. 제자들 ‘안에 머무르는 성령’(갈라 4,6 참조)의 열매 중 하나는 “평화”(갈라 5,22)다. 부활 신앙은 제자들이 스승을 ‘다시 만난 체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원상 망자의 극적 소생으로 정의되는 부활은 내용상 ‘다시 만남’(재회)이며, 이 ‘다시 만남’을 통해 ‘새롭고 영원한(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만남’의 문이 열렸다. 이 만남은 우리 밖/안/옆에서 “세상이 주는 평화”(요한 14,27 : 힘에 의한 평화)와 구별되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기반한 평화를 준다. 활짝 핀 봄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몸짓으로 우리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앞으로도 만날게요.’ cpbc2026.04.08
![[성모 성월 특강-1강] 성모님이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이유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15/NVt1778804357919.jpg)
[성모 성월 특강-1강] 성모님이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이유는[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 (1) 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특강을 기획했다.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강사로 나서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강의한다. 본지를 이를 요약 정리해 과달루페 성모 발현 이야기와 의미를 전한다. 과달루페 성모. OSV 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1강) ▶다시 보기 인류 역사를 바꾼 발현,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 1500년이 넘도록 성모 마리아의 공식 발현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런데 1531년 12월 9일, 그 발현이 예루살렘도 로마도 아닌, 전혀 뜻밖의 땅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일어났다. 왜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였을까. 이 강의는 그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과달루페(Guadalupe)는 '돌 뱀을 쳐부수는 여인'을 뜻한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테페약 언덕은 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자리한 곳이었고, 해마다 수만 명의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치던 피의 의식이 행해지던 장소였다.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이 1500년의 시간을 넘어 그 언덕 위에서 현실이 되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부수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물 것이다." (창세기 3,15) 성경은 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1531년 과달루페 발현은 아예 돌 뱀을 모시는 언덕 자체에서 이루어졌다. 성모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아즈텍의 우상 숭배를 걷어내시고, 사람을 죽여 바치는 인신 공양을 끊으시며, 생명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살리셨다. 1531년, 성모님이 오실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이유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성모님께서 굳이 1500여 년 만에 그 시골 테페약 언덕에 발현하신 데에도 '때가 찬' 이유가 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럽 가톨릭 교회의 심각한 분열과,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참혹한 수난이 그것이다. 첫 번째 이유: 교회의 분열과 개혁의 위기 16세기 초 가톨릭 교회는 극도의 타락을 겪고 있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 증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벌부(免罰符)를 판매했다. 성직자의 직위가 돈으로 거래되고, 구원이 믿음이 아니라 헌금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신앙이 왜곡되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과 교회의 전통이 우선시되었고, 고위 성직자들의 호화로운 생활과 부조리가 교회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이에 맞서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게시하며 면벌부 판매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초기 복음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결국 그리스도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지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하늘에서 이 분열을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는가. 루터의 반발로부터 꼭 14년 뒤인 1531년, 성모님은 지구 반대편에 발현하셨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 아메리카 원주민의 참혹한 수난 같은 시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1519년 배 11척, 병사 500여 명을 이끌고 아즈텍 문명을 침략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단 168명의 병사로 8만 명의 잉카 군대를 무너뜨렸다. 총과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었다. 히스파니올라 섬(오늘날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의 인구 800만 명은 콜럼버스 도착 후 불과 30여 년 만에 거의 전멸했고, 아즈텍과 잉카 문명에도 천연두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정복자들의 목적은 오직 황금이었다. 1503년부터 1660년 사이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약탈해 간 은만 해도 1만 6000톤, 금은 200톤에 이른다.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는 가로 7m, 세로 5m, 높이 2.4m의 방을 가득 채울 황금과 그 두 배에 달하는 은을 몸값으로 바쳤지만, 피사로는 몸값을 받고도 그를 처형해 버렸다. 위로가 절실했던 이 대륙에 성모님은 발현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아즈텍 문명의 인신 공양, 그 참혹한 실상 성모님 발현 당시 멕시코를 지배하던 아즈텍 문명에는 충격적인 악습이 존재했다. 바로 인신 공양(人身供養)이었다. 아즈텍인들은 태양신·달신·전쟁신 등의 우상에게 사람의 심장을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흑요석 칼로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즈텍 문명에서 한 해 동안 희생된 사람의 수는 무려 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를 환산하면 하루에 약 150명, 10분에 한 명꼴이다. 아즈텍 제국의 신전을 처음 세운 것을 기념하는 의식에서는 한꺼번에 2만 명이 희생되었다. 이는 단순한 종교의식을 넘어, 고원 지대에서 가축을 기르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단백질을 얻기 위한 식인 풍습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성모님은 이 참혹한 현실을 눈 뜨고 보실 수 없으셨다. 결국 성모님께서 1531년 발현하신 뒤 100년, 200년에 걸쳐 사람의 심장을 꺼내 알지도 못하는 태양신에게 바쳤던 악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후안 디에고에게 전하신 말씀 1531년 12월 9일 새벽, 테페약 언덕을 넘어 아침 미사를 드리러 가던 평범한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 앞에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이다. 나는 그들의 비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나의 사랑과 연민, 구원 그리고 보호를 증거로 제시하는 표시로 내가 발현한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라고 있다. 그러니 너는 멕시코 주교관에 가서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는 것이 내 소망임을 전하도록 하여라." 성모님께서 스스로를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라 칭하신 것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리스어로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위에서, 마리아는 그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로 공경받는다. 성모님의 발현을 증명하는 기적으로, 후안 디에고의 틸마(겉옷)에 성모님의 형상이 새겨졌다. 지금도 과달루페 대성당에 보존된 이 이미지는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으로 남아 있으며, 매년 수천만 명의 순례객이 이곳을 찾는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성 후안 디에고와 과달루페 성모를 그린 그림. OSV 발현의 역사적 의미와 이후의 흐름 성모님은 과달루페 발현 이후에도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꾸준히 나타나셨다.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는 14세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시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 라고 밝히시고 치유의 샘을 솟아나게 하셨다. 하루 12만 리터가 솟아나는 이 샘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기적을 이루고 있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는 세 어린이에게 발현하시어 죄인들의 회개와 묵주기도, 러시아의 봉헌을 요청하셨고, 이 청원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이루어졌다.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의 기운으로 1500년을 이어온 교회가, 이제는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 지난 500년간 새롭게 쇄신돼 왔다. 과달루페 발현은 그 대장정의 시작점이었다. 순례자의 눈으로 바라본 과달루페 2026년 2월, 200명의 순례단과 함께 네 번째로 멕시코 과달루페를 순례하며 이 발현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 태양신과 달신의 피라미드를 오르고, 아즈텍 문명의 시장 흔적과 고추·카카오의 원산지를 탐방하며, 발현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느님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온몸으로 느꼈다. 성모님의 과달루페 발현은 단순히 멕시코 원주민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었다. 교회의 분열로 신음하던 유럽, 정복과 전염병으로 쓰러져 가던 아메리카 원주민, 피의 제사로 얼룩진 문명 속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기 위해 반드시 오셔야만 했다. 그 발현은 2000년 인류 구원 역사의 큰 그림 속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섭리였다. 📍 방송일시 : 첫 방송 5월 2일(토) 오전 7시 50분, 매주 토 오전 7시 50분 / 일 오후 3시·오후 10시 10분 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관장 황창연 신부가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cpbc 5월 성모특강 화면 캡처 cpbc2026.05.15

농부망서[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5) 중국 우언(寓言, 풍자적이거나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짧은 길이의 이야기)에 ‘농부망서’(農夫亡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농부가 호미를 잃어버리다’는 말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마친 후 빈손으로 돌아오자 남편을 본 아내가 호미는 어디에 두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주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잃어버린 게 아니고 밭에 두고 왔소(田裏).” 화가 난 아내가 팔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합니다. “작은 소리로 말해요. 누가 듣고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아내는 남편에게 어서 돌아가 호미를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밭으로 간 농부는 호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달려와 농부가 아주 작은 소리로 아내의 귀에 대고 말합니다. “없어졌소.”(不見了) - 「雅俗同觀」 농부가 밭일을 하다 호미를 잃어버리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처신이 문제입니다. 위 이야기는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할 때 큰 소리로 말하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할 때 작은 소리로 말하는, 사리분별을 못하는 농부의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관찰자 입장으로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면 멍청한 농부가 보입니다. 나는 그 정도 멍청함을 눈치채는 현명한 사람 같아 피식 웃고 맙니다. 그런데 내가 농부가 되어 들어가면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한심해 보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없어진 호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희망도 잃어버렸습니다. 일어날 힘도 잃어버렸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자살자가 늘어나고, 직장을 잃어가고, 자존감도 잃어가고, 배려도 잃어버렸습니다. 빈부차는 더욱 심해져 주머니도 비어가고, 집도 잃어갑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호미를 두고 우리의 목소리는 어떤가요? 귓속말로 작은 소리를 내야 할 때 큰소리로 내리지르고, 큰소리로 외쳐야 할 때 귀에 대고 작은 소리를 내는 사이 호미가 없어졌습니다. 언론도, 종교도, 지식인도, 예술인도, 시인도, 노동자도, 학생도 지금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우선 나부터도 귀에 대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없어졌소”(不見了) 하고 있어 한심한 농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조용해야 할 사람은 큰소리로 “밭에 두고 왔소”라고 동네방네 잘났다며 고성을 내고, 크게 세상에 외쳐야 할 이는 입술을 물고 소심하게 벽 뒤에서 “없어졌소”라고 역할 분담하는 사이 누군가 훔쳐 가 우리 사회는 호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우선 나 자신이 현명한 관찰자가 되려 할뿐, 멍청한 당사자라는 것에 부끄럽습니다. 중국 당나라 2대 황제였던 태종의 이름은 이세민이었습니다. 이름의 뜻은 제세안민(濟世安民), 즉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라’는 의미로 지어졌습니다. 이름에 걸맞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는 3개의 거울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외모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청동거울’이요, 둘째는 역사의 흥망사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역사의 거울’이며, 셋째는 옆에서 직언해줄 ‘충신 거울’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거울’과 ‘충신 거울’이 없어진 채 ‘청동거울’만 남아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큰소리치는 그 자신의 외모를 위한 청동거울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아진 ‘역사의 거울’과 ‘충신 거울’이 다시 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없 어 졌 소!!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10.14
![[성모 성월 특강 -4강] 성모님과 함께하는 은총이 가득한 삶이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21/1O61779328604440.jpg)
[성모 성월 특강 -4강] 성모님과 함께하는 은총이 가득한 삶이란 [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 (4, 끝)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특강을 기획했다.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강사로 나서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강의한다. 본지를 이를 요약 정리해 과달루페 성모 발현 이야기와 의미를 전한다. 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관장 황창연 신부가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cpbc 5월 성모특강 화면 캡처 황창연 신부의 신앙 특강(4강) ▶ 다시 보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 그 뜻을 되새기며 우리는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은총이란 아름다움의 눈부신 매력, 내적인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광휘(빛)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모님은 그 최고의 은총을 받으신 분이다. 그렇다면 성모님이 은총을 받으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 이유를 제대로 안다면 우리도 은총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다. 4강은 성모님의 삶 안에서 은총의 조건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작 '주님 탄생 예고', 1489~1490년경 . 첫 번째 조건: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열여섯 살 처녀 마리아의 반응은 흥분도 들뜸도 아니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한다. "그 말뜻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우리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다면 어떻겠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두방정을 떨고, 온 세상에 알릴 소식이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려가 자신이 특별히 선택된 사람인 양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주 차분했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용히, 깊이 생각했다.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분명 기회를 주시고 때로는 채찍질을 치실 때도 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고 계신가. 어떻게 살아야 은총 안에서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허송세월하는 삶은 1년을 100년처럼 살아내는 삶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조건: 긍정적인 말과 생각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열여섯 살 처녀에게 임신을 고하는 이 말씀은 어처구니없어도 한참 어처구니없는 선언이었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당시 유다법으로 돌로 쳐 죽이는 중죄였다. 육체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요구였다. 마리아는 조용히 물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천사는 답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결심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한 마디가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말씀이었다. 만약 마리아가 납득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늘나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이야말로 은총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성경은 말과 생각의 방향이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한 뒤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돌아보고 온 열 명의 보고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올라가지 못한다면서 자기들이 가서 정탐한 고장은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라는 소문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퍼뜨렸다. 우리가 정탐하고 온 땅에 들어가 살려다가는 도리어 잡혀먹힐 것이다. 거기에는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 회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 위에 들어가게 하시며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결국 부정적인 열 명의 말을 따랐던 60만 명은 광야에서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 땅에 입성했다. 은총이 있는 사람은 똑같은 장소와 시간에 있어도 밝은 면을 바라보고, 은총이 없는 사람은 어두운 면을 바라본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은 하느님이 기뻐 여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늘 함께하시는 역사(役事)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성모의 엘리사벳 방문', 1491년. 세 번째 조건: 하느님의 뜻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마리아는 그 어렵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갔다. 나이 들어 임신한 친척을 위로하기 위해 무려 석 달을 함께 머물렀다.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늙은 엘리사벳과,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어야 할 처녀 마리아. 이 두 분의 마음고생은 누구보다도 깊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처지에서 마리아는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화답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힘들 때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에게서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모님은 당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모두를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네 번째 조건: 찬미하는 삶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이다. 임신한 처녀의 불안한 처지에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우리는 찬양보다 바람이 훨씬 많다.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 주세요 — 하느님께 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마음이 설렌다는 표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생명을 부여받은 것, 푸른 산과 하얀 눈, 빗소리와 폭포 소리와 단풍,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릴 줄 아는 재능, 공짜로 내려주시는 공기와 하늘과 비와 햇빛 —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을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설레지 않겠는가. 찬미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찬미하는 사람만이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맨날 달라고 청하는 사람은 찬미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은총도 덜 받는 것이다. 다섯 번째 조건: 이웃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삶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의 모습이 빛난다. 잔치를 즐기던 성모님은 가만히 살펴보다가 술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주인의 마음으로 그 어려운 처지를 걱정하며 아들 예수님께 조용히 고했다. 새침하게 차려 놓은 음식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성모님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걱정해 주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신 분이었다. 남의 일을 걱정해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삶이야말로 축복된 삶, 천당에 갈 수밖에 없는 삶이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는 군중 앞에서 어느 누구도 질책하지 않으시고 서로를 뒤돌아보게 하셨다. 여인을 고발하던 이들이 모두 사라진 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들이 네 죄를 묻지 않았다면,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예수님은 승승승(勝勝勝)의 사랑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성모님도 마찬가지이셨다. 당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이를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었다. 은총 가득한 삶이란 성모님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은총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곰곰이 생각하고 사색하는 사람. 둘째, 긍정적인 말과 생각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셋째, 하느님의 뜻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위로가 되는 사람. 넷째, 청하기에 앞서 찬미하는 사람. 다섯째,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걱정하고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 가브리엘 천사의 고지에 마리아가 드렸던 그 한 마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이 말씀이야말로 은총 가득한 삶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삶이란, 결국 성모님처럼 생각하고 성모님처럼 말하며 성모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그렇게 살 때 우리도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cpbc2026.05.25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상>](//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61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후스전 종결, 동방교회와 재일치 등 위해 1511년 에 발행된 「바젤 공의회 교령집」 속표지 그림. **배경 차기 공의회는 5년 후에 열어야 한다는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결정에 따라, 교황 마르티노 5세(재위 1417~1431)는 1423년 4월 23일 파비아에서 공의회를 개최키로 하고, 자신을 대리해 회의를 주재할 사절을 현지에 파견합니다. 하지만 개회식 참석자는 대수도원장 2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사람이 더 도착했지만 그 수가 25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페스트가 파비아를 덮쳤습니다. 그러자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장소를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로 옮깁니다. 이번에는 공의회 우위설을 내세우는 다수파와 교황권을 옹호하는 소수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의가 흐지부지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파비아-시에나 공의회는 '프레쿠엔스' 규정에 따라 다음 공의회를 7년 후인 1431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기로 하고 11개월 만에 해산합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우위설을 지지하는 쪽이 아니어서 바젤 공의회 개최에 대해서도 마뜩잖았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소집일이 다가오면서 규정대로 공의회를 개최하라는 압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하는 수 없이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을 공의회 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조치를 취합니다만 공의회가 열리기 직전에 선종합니다.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 4세(재위 1431~1447)도 공의회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예정보다 4개월이나 늦은 7월 23일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라고 부르는 17번째 세계 공의회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교회 개혁, 얀 후스 추종자들인 후스파가 일으킨 후스 전쟁의 종결, 유럽 각국 간 평화 정착, 동방 교회와 재일치 등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공의회 개최와 경과 바젤 주교좌성당에서 개막한 공의회는 처음에는 주교가 한 사람도 없었을 정도로 참석자가 적었습니다. 게다가 개회식 당시 체사리니 추기경은 후스 전쟁에 참가하느라 바젤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대리가 개회식을 주재했습니다. 체사리니 추기경이 두어 달 늦은 1431년 9월 바젤에 도착했을 때도 참석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그해 12월 바젤 공의회를 해산하고 18개월 후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칙령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바젤에서는 체사리니 추기경 주재로 공의회 첫 회기가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교황 칙령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회의를 속개한 교부들은 1432년 2월 2차 회기에서 공의회 우위설을 재확인하면서 교황이 회기 중에 있는 공의회에 대해 공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회의 장소를 옮기거나 해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독일 왕 지기스문트를 비롯해 부르군디와 영국, 밀라노 등 유럽 여러 나라 군주들도 공의회를 지지했습니다. 힘을 얻은 공의회 교부들은 그해 4월 제3차 회기에서 교황에게 공의회 해산 칙령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3개월 이내에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바젤로 출두하라고 통보합니다. 이런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공의회 교부들은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성사시킵니다. 후스 전쟁으로 10여 년간 중부 유럽을 위험에 빠뜨렸던 후스파와 1433년 11월 프라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입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후스파가 요구한 사항들 중 평신도에게도 성혈을 영할 수 있게 해주는 등 몇 가지 조건에 합의함으로써 타협을 이뤄냈습니다.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는 15세기 초 보헤미아 지방에서 널리 이뤄지던 관습이었는데 콘스탄츠 공의회가 1415년 보헤미아 지도자 얀 후스를 단죄하면서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켰습니다. 이 조치는 후스의 화형과 함께 후스파가 봉기한 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츠 공의회가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킨 것은 양형 영성체가 단지 교회 전통과 관습에 어긋나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양형 영성체 관습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구원된다'는 성경 말씀(요한 6,56 참조)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데서 비롯한 것이어서, 성체만 모셔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다 모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교회 가르침을 거부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양형 영성체를 허용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바젤 공의회가 난제였던 후스 전쟁을 종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자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자신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황은 1433년 12월 바젤 공의회에 대한 해산 명령을 철회하고 공의회 속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칙서를 발표합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제 공의회 우위설을 바탕으로 개혁안들을 계속 마련합니다. 교구 및 관구 회의의 정례적 개최, 성직자의 축첩 및 성직 매매 금지, 성무집행 정지의 난발 금지 등 같은 주목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교황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들이 더 많았습니다. 교황 선거법을 일부 개정하고 추기경 수도 24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에 앞서 공의회 교부들은 이미 1432년에 공의회 의사 규정을 바꿔 종전에는 주교들과 대수도원장들에게만 주던 투표권을 신학자, 대학교수, 수도자와 본당 신부들에게도 허용했습니다. 한편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1434년 여름부터는 로마 소요 사태를 피해 피렌체에 와 있었습니다. 교황은 바젤 공의회가 못마땅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계기가 왔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던 동로마 황제 요한 8세 팔레올로구스가 동ㆍ서 교회의 재일치를 바탕으로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자 교회 일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사절을 보낸 것입니다. 문제는 회의 개최지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와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각기 서로 다른 장소를 제안했습니다. 동방 교회쪽에서는 교황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에서 이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공의회는 기존 장소를 고수하는 다수파와 교황의 제안을 지지하는 소수파로 갈라졌습니다. 교황은 소수파의 입장을 승인합니다. 바젤 공의회의 다수파가 책임을 묻고자 교황을 소환하려 하자 교황은 이에 맞서 공의회를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로 옮길 것을 선언합니다. 1437년 9월이었습니다. 소수파는 교황 뜻을 따라 페라라로 옮겨 이듬해 1월 페라라에서 공의회를 속개합니다. 다수파는 바젤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10.18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1472_1.1_titleImage_1.jpg)
[조규만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7)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섬기는 메시아, 십자가의 메시아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일도 어렵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했던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내는 방법은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복음서는 역사서도 아니요, 예수님 전기나 자서전도 아니다. 제자들 신앙이 깃든 진술서다. 4복음서를 토대로 예수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가 선언한 하느님 나라 메시지와 세례 운동을 이어 받아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 속에 살며 공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처신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셨다. 죄인들,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들과 사귀며 유다교 안식일 계명을 위반하고 정결례법을 폐기했다. '보라, 이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좋아하고,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웃음과 조롱의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하느님, 곧 모든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세리들과도 함께하셨다. 율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초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율법 실천 문제와 관련해 당대 율법학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다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데 '인간의 완고함'이나 오해가 있다면 이를 가차 없이 문제 삼을 만큼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다. 예수님의 기적과 구마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의 영육 모두에 해당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인적 구원행위였다. 예수님의 이런 공적활동은 처음부터 사람들 감탄을 자아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거부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로 보았다. 예수님은 특히 유다교 지배계급에게서 적대감과 미움을 샀고, 이로 말미암아 거짓 예언자로 몰려 사형에까지 이르렀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에 내재하는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과연 누구였는지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메시아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독자, 거짓 예언자, 반란자로 이해했다. 헤로데는 그를 바보로 취급했고(루카 23,6-12), 그의 친척들조차 한때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다(마르 3,21). 성경 작가들도 예수가 누구인가 규명하려 수많은 칭호를 사용했다. '하느님의 아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임마누엘',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 양', '예언자' 등 100여 가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묘사한다. '인도주의자', '방랑 설교가', '비타협주의자', '자유인'…. 이러한 여러 칭호들은 예수님을 어느 한 도식이나 틀에 맞춰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일까. ▨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란 '기름을 발리운 사람'이란 뜻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기름을 바르게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지상활동 중에 자신을 왕, 곧 메시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이에 대한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 칭호를 한 번도 자신에게 적용한 적이 없다. 예수님에게 이 칭호를 붙여준 사람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제3자들이다. 예수님은 제3자들이 붙여준 이 칭호의 의미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비판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메시아로서의 품위에 대해 침묵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치유의 기적을 행한 다음에 그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을 다짐시킨다. '선생님은 메시아입니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 대답은 이상하게도 엄중한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재판과정에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에게서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마태 27,11), 즉 메시아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한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것은 네 말이다"였다. 빌라도가 의미하는 메시아는 분명 정치적 인물로서 구세주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메시아와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답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한결같이 고백하는데, 그 메시아는 새로운 의미의 메시아다. 예수님이 거슬러 싸웠던 것은 어떤 정치세력도 아니고, 로마 통치자도, 헤로데도 아니었다. 그의 적수는 악이라고 하는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도 않았고, 폭력을 사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길 누누히 당부한 예수님은 메시아에게 지배권이 불가결의 요소라면, 그 지배권은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봉사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메시아였다. 이런 새로운 이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했고, 빌라도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제자들이나 치유를 받은 사람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당부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메시아일까. 정리=박정연 기자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10.04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7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스스로 밝힌 당신의 이름, '야훼'가 의미하는 바가 몇 가지 더 있다. '나는 있는 나다'라는 하느님 이름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는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느님은 곧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은 '야훼' 하느님이 약속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의 하느님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ㆍ탄생하고 소멸ㆍ죽음을 맞는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보다 나은 희망의 목표와 의의를 제시하고 그것을 이룩해주시는 분으로서 하느님이다. 분명히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은 모세 이전이나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에게 와서 비로소 불릴 수 있었다. 이것은 모세가 이룩한 업적이다. 독창적으로 그 이전 신의 이해를 재구성하면서 고유한 하느님 칭호와 모습을 알려줬다. 모세가 하느님 이름을 계시로 알아낸 업적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업적은 파스카 전례다. 파스카는 이미 유목민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의식이었지만 모세에 의해 의미가 커졌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끌어다가 파스카 제물로 잡아 대야에 받은 피를 우슬초 묶음에 묻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시오. 야훼께서 이집트인을 치며 지나가시다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는 그 문을 그냥 지나가시고 파괴자가 당신들의 집에 들어가 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오. 당신들은 이것을 당신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가게 되거든 이 예식을 지키시오. 당신들의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예식이냐고 묻거든 이것은 야훼께 드리는 파스카 제사라고 일러주시오"하고 말했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풍습은 다른 유목민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성경이 전하는 바로는 이미 아브라함 시절, 더 나아가 카인과 아벨 시절에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사도 파스카와 연관이 있다.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하고 대답했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하고 대답했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22,1-14). 그로부터 유목민은 오랫동안 파스카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스카 제사는 자신의 가축들을 전염병이나 맹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길 청했던 제사 의식이었다. 요즘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등을 보면 유목민에게 돌림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사악 제사가 재산을 잃는 경제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제사였다면 모세에 의한 파스카는 한층 진화된 제사 의식이 됐다. 하루는 모세가 사막에서 목동을 만났다. 목동은 매일 저녁 가장 좋은 우유를 나무 그릇에 담아 하느님께 바쳤다. 모세는 불쌍한 목동을 깨우쳐주고 싶어서 하느님은 순수한 신이시기에 우유 같은 것은 드시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목동은 하느님께서 우유를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 실망했고, 모세는 목동을 "하느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았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고 위로했다. 며칠 후 모세가 외딴 곳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모세야, 사실 네가 틀렸다. 내가 순수한 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동이 나에게 바치는 우유를 그의 사랑의 표시로 항상 고맙게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느님은 신자들이 정성껏 바치는 예물을 다 받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그 예물을 다른 필요한 사람과 나눌 뿐이다. 삼라만상이 다 주님 것인데 우리가 내는 그 예물이 그분에게 얼마나 소용이 되겠는가? 하느님은 예물을 바치는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봉헌했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제물을 마다하시고 손수 제물로서 양을 마련해 주셨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축복해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마다하시면서, 하느님은 인류를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기꺼이 십자가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큰 사랑을 깨닫기에는 우리 가슴과 머리는 너무 좁다. 파스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의미가 격상된다.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를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도약하는 신앙의 파스카로 의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사가 바로 격상된 파스카 제사다. 오늘 우리가 하지 못한 좋은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히 하지 못한 것으로 남는다. 우리가 오늘 한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 진정한 모세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모세 이상의 예언자이심을 고백한다. 모세는 하느님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돌봐 주셨던 부족의 수호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 주시는 민족의 하느님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구원이란 고통스러운 식민지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7.12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5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4)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인간 있는 곳 어디나 계신 하느님신학자 하센휘틀은 "현대신학의 위기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2000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지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져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때 삼중고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체험의 사전적 뜻은 '몸소 경험함, 특정한 인격이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한 뒤 「신학대전」 집필을 멈췄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니 그동안 자신이 이야기했던 하느님은 한낱 지푸라기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낫다고 고백했다. 요즘 하느님을 체험하고 종교적 성스러움을 체험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종종 사적계시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신비가이자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 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수녀는 하느님을 체험한 사실을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편지를 써서 자신의 체험을 전했다. 편지를 받은 성인은 수녀의 체험이 참된 영의 체험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겸손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이들, 특히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체험은 어떤 지식을 직접 만나고 부딪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체험을 통한 지식을 직접적 지식, 1차적 지식이라고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독서나 다른 이들의 설명 등을 통해 얻는 지식을 간접적 지식이라고 한다. 체험을 통한 지식은 직접적인 만큼 그 영향은 강하다. 체험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우리 안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체험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객관성이다. 체험이 객관적이라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수 부활을 예로 들겠다.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체험한 것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지 제자들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체험하는 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떤 실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체험의 주관성이다. 체험에는 체험자의 주관적 요소가 늘 작용한다. 셋째, 실천적 성격이다.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예전에 가졌던 이론과 지식을 수정하고 체험으로 얻은 지식으로 삶을 조정해 나간다. 넷째, 체험은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든 체험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 학교 교육, 종교, 경제, 문화 등을 바탕에 두고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체험은 긍정적 성격과 부정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체험은 우리에게 고통과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부 깊은 곳에서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유한하다는 한계성과 영원에 대한 갈망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은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오신경 등)이다. 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하고 고백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 믿음을 드러낸다. 이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하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은 이처럼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은 모두 끊어버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들, 유혹을 끊겠다는 것이다. 이 유혹은 돈에 대한 유혹, 성과 쾌락에 대한 유혹, 권력과 명예욕에 대한 유혹으로 압축된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가 가르쳐준 것은 이 유혹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만이 유혹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단식하고 자선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돼 이집트 탈출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스라엘 신앙도 체험에서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75살 나이에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강행한다. 성경은 이를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 조상으로 여겼고 이 조상의 하느님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엘 또는 엘로힘이라 불렸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복수형으로 쓴 것은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엘로힘은 하느님의 초월성, 위대함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특성은 토지의 신이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 있다. 당시 사람들은 신을 믿을 때 어떤 지역에 한정돼 있는 신을 믿었다. 하지만 유목민인 이스라엘 민족은 붙박이 신을 섬길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어느 한 곳에 한정돼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을 만나주는 인격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종교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일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에 이어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6.21

바벨탑(The Tower of Babel)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월간 꿈CUM] 그리는 꿈CUM _ 미술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 1525~1569), 바벨탑, 유화, 참나무 패널, 114×155cm, 1563,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 11,4) 하늘 높이 탑을 쌓으려는 인류의 욕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9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세워진 ‘페트로나스트윈 타워’(452m)는 미국이 독점해온 세계 최고층 타이틀을 처음으로 빼앗아 왔다. 하지만 이 건물을 곧바로 2위로 밀어낸 건물이 2004년 대만에서 나왔다. 101층, 508m 높이인 ‘타이베이 101’이 그것이다. 이 기록을 깨고 현재까지 세계 최고층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829.84m)다. 2024년 9월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은 높이 679m의 말레이시아 ‘메르데카 118’ 빌딩이다.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바벨탑을 향한 인간 욕망에 대한 경고다. 그림 속 바벨탑의 중앙축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인간의 허영과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드러내고 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 이것이 화가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화가는 또 바벨탑이 지닌 이중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이 스스로를 억압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림 속 바벨탑은 그 아래 도시의 모든 생명을 눌러버릴 듯한 기세다. 하지만 바벨탑을 반드시 인간의 악이 초래한 절망적 사건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욕망의 꺾임 속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성경에 또한 녹아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바벨탑 이야기 바로 뒤에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다. 인간이 바벨탑을 지어 하느님께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결국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다. 선으로 이끄시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인간 : 그 인간을 위해 낮은 곳으로 오시는 하느님’이라는 ‘상승하강 구조’를 읽을 수 있다. 낮은 인간은 바벨탑을 지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높으신 하느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다. 우리를 인간적 욕망의 꼭대기가 아닌, 참 하늘로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다.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에페 4,9) 2025.09.21
창간 38돌, 새 필진 새 연재 가톨릭평화신문이 창간 38주년을 맞아 필진을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가톨릭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교회와 사회를 잇는 데 노력하고 있는 환경·생명·평화·교육·지역 공동체·의료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합니다. 시사진단을 통해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는 식견을 넓히고, 평화칼럼을 통해 신앙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성찰하는 시간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 시사진단 새 필진 문명희(체칠리아) (사)에코나우 이사 △세종대 환경정책학 박사 △전 세종대 기후환경융합센터 연구위원 △전 한국환경보건학회 이사 △한국녹색제품구매네트워크 이사 △환경부 화학물질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 △서울시 은평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도봉구 환경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사)에코나우 환경건강연구소 소장 김경아(마리아) 인천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이화여대 간호학 박사 △전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 책임간호사 △전 우송대학교 조교수 △인천가톨릭대 부교수 △여성건강간호학회 교육위원 △대한간호협회 간호조무사 교육훈련기관 지정평가 위원장 △인천가톨릭대 프로라이프대학생회 지도교수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한국본부장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 조은나(루치아) 박사 서강대학교 아루페인문사회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신학대학원 신학과 교의신학 박사 수료 △세명대·충남대·전남대·경성대학교·부산예술대학교·용인송담대학교 외래 교수 역임 △코리아오페라티브컴퍼니 대표·경기더이음오페라단 이사·극단 각인각색 음악감독 역임 김홍주 신부 계성고등학교 지도사제 △가톨릭 교육 전공 교육학 박사 △가톨릭학교교육포럼 회원 △전)동성고등학교 지도신부 황민호(다니엘) 옥천신문 대표 △(사)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 이사장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사 △충북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운영위원 △옥천FM공동체라디오 추진위원장 △옥천 농촌활력지원센터 자문위원 ▧ 평화칼럼 새 필진 조재선(베드로)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노곡중학교 교사 △도서출판 다시문학 편집 주간 △전)동성중학교 교사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디다케’ 편집 자문 위원 역임 △사회복지법인 ‘라쉬 친구들’ 이사 역임 △사회복지법인 ‘호스피스 코리아’ 이사 역임 박효실(힐데가르트) 기자 △스포츠서울 편집국 기자(부장급) 역임 △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 단독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제248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 출연 △BBC 탐사보도 다큐 ‘버닝썬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출연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의학칼럼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전문 의료진과 함께 독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건강칼럼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외과·산부인과·성형외과·정신건강의학과·가정의학과 등 각 분야 전문의 및 교수진 9명이 참여하는 이번 연재는 질환 예방과 치료, 올바른 건강상식은 물론, 생명 존중의 가치를 담아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 정보를 전할 예정입니다. ▧ 새 코너 연재 프란치스코의 향기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희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성인이 창설한 남자 수도회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카푸친 작은형제회’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세 수도회는 성인을 사부로 모시는 프란치스칸 1회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남긴 가난과 평화, 작음과 형제애의 향기는 프란치스칸들의 삶과 현존을 통해 8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 2026년 오늘을 살아가는 프란치스칸의 눈으로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을 다시 비춰보고자 합니다. 기후위기와 전쟁, 경쟁과 고립의 시대 속에서 프란치스코의 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되새겨봅니다. 프란치스칸을 통해 프란치스코의 향기를 전합니다. ‘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코너는 최근 동명의 책 「기도의 정원」을 출간한 도서출판 ‘성서와함께’와 동행합니다. 「기도의 정원」은 성 프란치스코 피정센터 명예 정원관리장을 지낸 원예가 마거릿 로즈 릴리가 정원을 가꾸며 체험한 영적 여정을 담은 책으로, 성경 및 그리스도교 예술과 건축에 자주 등장하는 꽃과 나무 등을 소개합니다. 새 코너에서는 책을 번역한 신지현(소피아)씨가 계절과 전례색에 맞춰 식물과 글을 발췌해 다듬고, 책에 실린 메리 스프레이그의 그림을 더할 예정입니다. 다수의 영미 도서를 우리글로 옮긴 신지현 통번역가는 국내외 기관에서 플로리스트 과정을 수료했고, 가톨릭 전례 꽃꽂이를 배우며 본당에서 꽃 봉사도 담당하고 있어 새 코너에 또 다른 싱그러움을 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장현민2026.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