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로 우로, 우왕좌왕, 이제 미래로![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7) 우리말 사전에 ‘갈팡질팡’이란 말은 순우리말로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자성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입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심리적 상태를 들여다보면 불안하기 때문이며, 윤리적 상태로 보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갈지 확실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책임 앞에서 스스로, 그리고 아무도 불안한 상태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이에 자신도 사회도 더 불안에 떨며 멍들어가게 됩니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일어나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극복되어집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백성을 보살필 책임을 짊어진 제나라 왕에게 맹자가 말합니다. “왕의 신하가 벗에게 처자식을 맡기고 초나라에 갔습니다. 그가 돌아와 보니 처자식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왕이 말하길 “절교해야 하지요.” 다시 맹자가 말했습니다. “만약 감옥에서 죄수 관리를 관장하는 관리가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이 말하길 “그를 면직시켜야 합니다.” 맹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은 좌우로 고개를 돌아보고 딴소리를 합니다.(왕고좌우이언타, 王顧左右而言他) 「맹자, 양혜왕 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나 몰라라 하는, 제나라 왕을 일깨우기 위해 맹자가 유도한 말입니다. 제나라 왕은 남의 허물은 잘 판단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일이 많습니다. 좌로 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할 때 주변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 갈팡질팡,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얼굴은 항상 ‘좌로 갔다’ ‘우로 갔다’ 역할분담하며 역사를 반복하지만, 딴소리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회가 진정 바라는 것은 좌와 우가 목적이 아니라 좌우가 화(和)해 길을 선택하고 책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입니다. 그것을 위해 남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자기방어가 아니라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책임감 있게 헌신해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진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상식적 진리보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여 얻은 진리가 참된 의미로 주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이 아닌 헌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주관적 진리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 그것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짐을 진 사람만이 참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과 세상의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책임을 미루고 우왕좌왕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불안에서 벗어나 미래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11.27

예수님 사랑 안에 매일 기도 다짐한 ‘예수 성심 수호대’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분원서 12일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봉헌된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 중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이 진행되고 있다. 17세기 ‘성 알라코크’, 환시 중 체험 예수 성심 전파·공적 신심으로 자리 19세기 ‘예수 성심 성월’ 정식 인가 예수 성심 성월을 맞아 예수 성심의 발원지인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과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원장 율리안나 수녀)은 12일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예수회 신부들을 비롯해 신자 100여 명이 함께하며 예수 성심의 사랑을 기념했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전대사도 받았다. 한현배(예수회) 신부는 강론에서 “성녀 알라코크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결국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예수님의 크고 자비로운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어떤 죄인이라도 하느님께서는 품어 안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예수 성심께 감사드리는 이유도 바로 그 사랑 때문”이라며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 하느님께 마음을 내어놓고,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으로 변화되도록 의탁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예수 성심을 전파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소속 수녀회인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12일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예수 성심은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소속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 프랑스)가 예수 성심의 메시지를 받으면서 교회의 공적 신심으로 자리 잡았다. 성녀는 1673년 12월 27일부터 1675년 6월 16일까지 네 차례 환시 중 예수 성심 발현을 체험했다. 예수님은 환시에서 심장 모양의 불길을 꺼내 성녀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예수 성심의 전파 사명을 맡겼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사랑을 부어줄 것을 약속하며, 축일 제정과 매월 첫 금요일 신심, 성시간 장려를 당부했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1856년 예수 성심 축일을 전 세계 축일로 확대했고, 1873년 예수 성심 성월을 정식 인가했다. 성녀는 1920년 5월 13일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이 신심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데서 나아가 그 사랑에 응답하는 차원까지 이른다. 응답하다 보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12일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봉헌된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 중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이 진행되고 있다. 방문수녀회는 성녀에게 전해진 메시지를 이어받아 전 세계 수녀들이 매월 첫 금요일에 성체조배를 하고,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 외 1시간 30분씩 묵상한다. 창에 찔린 예수님 마음을 위로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지향을 둔다. 콜롬비아에 모원을 두고 있는 방문수녀회는 한국에 2005년 진출해 현재 2명의 한국 유기서원자 포함 8명이 함께 살고 있다. 수녀원 담장 안에서는 봉쇄 수녀들의 기도로, 밖에서는 예수회원들의 활동으로 신심이 전파되고 있다. 1863년에는 ‘예수 성심 수호대’가 결성됐고, 이듬해 비오 9세 교황은 이 단체를 공식 인준하면서 자신을 첫 번째 회원으로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서도 신자 8명이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을 통해 새 회원이 됐다. 회원들은 하루 중 자신이 정한 한 시간 동안 예수 성심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창에 찔린 예수님의 아픔을 위로한다. 현재 한국에는 250명 넘는 수호대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분원장 율리안나 수녀는 “예수 성심께서 여러분 마음에 넘치는 사랑을 가득히 내려주시길 기도하고, 그 사랑 안에서 기쁘고 힘찬 하루하루 보내길 바란다”며 “저희도 각자 지닌 기도 지향을 열심히 봉헌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6.17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상>](//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61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후스전 종결, 동방교회와 재일치 등 위해 1511년 에 발행된 「바젤 공의회 교령집」 속표지 그림. **배경 차기 공의회는 5년 후에 열어야 한다는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결정에 따라, 교황 마르티노 5세(재위 1417~1431)는 1423년 4월 23일 파비아에서 공의회를 개최키로 하고, 자신을 대리해 회의를 주재할 사절을 현지에 파견합니다. 하지만 개회식 참석자는 대수도원장 2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사람이 더 도착했지만 그 수가 25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페스트가 파비아를 덮쳤습니다. 그러자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장소를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로 옮깁니다. 이번에는 공의회 우위설을 내세우는 다수파와 교황권을 옹호하는 소수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의가 흐지부지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파비아-시에나 공의회는 '프레쿠엔스' 규정에 따라 다음 공의회를 7년 후인 1431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기로 하고 11개월 만에 해산합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우위설을 지지하는 쪽이 아니어서 바젤 공의회 개최에 대해서도 마뜩잖았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소집일이 다가오면서 규정대로 공의회를 개최하라는 압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하는 수 없이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을 공의회 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조치를 취합니다만 공의회가 열리기 직전에 선종합니다.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 4세(재위 1431~1447)도 공의회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예정보다 4개월이나 늦은 7월 23일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라고 부르는 17번째 세계 공의회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교회 개혁, 얀 후스 추종자들인 후스파가 일으킨 후스 전쟁의 종결, 유럽 각국 간 평화 정착, 동방 교회와 재일치 등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공의회 개최와 경과 바젤 주교좌성당에서 개막한 공의회는 처음에는 주교가 한 사람도 없었을 정도로 참석자가 적었습니다. 게다가 개회식 당시 체사리니 추기경은 후스 전쟁에 참가하느라 바젤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대리가 개회식을 주재했습니다. 체사리니 추기경이 두어 달 늦은 1431년 9월 바젤에 도착했을 때도 참석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그해 12월 바젤 공의회를 해산하고 18개월 후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칙령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바젤에서는 체사리니 추기경 주재로 공의회 첫 회기가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교황 칙령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회의를 속개한 교부들은 1432년 2월 2차 회기에서 공의회 우위설을 재확인하면서 교황이 회기 중에 있는 공의회에 대해 공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회의 장소를 옮기거나 해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독일 왕 지기스문트를 비롯해 부르군디와 영국, 밀라노 등 유럽 여러 나라 군주들도 공의회를 지지했습니다. 힘을 얻은 공의회 교부들은 그해 4월 제3차 회기에서 교황에게 공의회 해산 칙령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3개월 이내에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바젤로 출두하라고 통보합니다. 이런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공의회 교부들은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성사시킵니다. 후스 전쟁으로 10여 년간 중부 유럽을 위험에 빠뜨렸던 후스파와 1433년 11월 프라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입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후스파가 요구한 사항들 중 평신도에게도 성혈을 영할 수 있게 해주는 등 몇 가지 조건에 합의함으로써 타협을 이뤄냈습니다.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는 15세기 초 보헤미아 지방에서 널리 이뤄지던 관습이었는데 콘스탄츠 공의회가 1415년 보헤미아 지도자 얀 후스를 단죄하면서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켰습니다. 이 조치는 후스의 화형과 함께 후스파가 봉기한 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츠 공의회가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킨 것은 양형 영성체가 단지 교회 전통과 관습에 어긋나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양형 영성체 관습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구원된다'는 성경 말씀(요한 6,56 참조)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데서 비롯한 것이어서, 성체만 모셔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다 모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교회 가르침을 거부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양형 영성체를 허용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바젤 공의회가 난제였던 후스 전쟁을 종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자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자신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황은 1433년 12월 바젤 공의회에 대한 해산 명령을 철회하고 공의회 속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칙서를 발표합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제 공의회 우위설을 바탕으로 개혁안들을 계속 마련합니다. 교구 및 관구 회의의 정례적 개최, 성직자의 축첩 및 성직 매매 금지, 성무집행 정지의 난발 금지 등 같은 주목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교황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들이 더 많았습니다. 교황 선거법을 일부 개정하고 추기경 수도 24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에 앞서 공의회 교부들은 이미 1432년에 공의회 의사 규정을 바꿔 종전에는 주교들과 대수도원장들에게만 주던 투표권을 신학자, 대학교수, 수도자와 본당 신부들에게도 허용했습니다. 한편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1434년 여름부터는 로마 소요 사태를 피해 피렌체에 와 있었습니다. 교황은 바젤 공의회가 못마땅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계기가 왔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던 동로마 황제 요한 8세 팔레올로구스가 동ㆍ서 교회의 재일치를 바탕으로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자 교회 일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사절을 보낸 것입니다. 문제는 회의 개최지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와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각기 서로 다른 장소를 제안했습니다. 동방 교회쪽에서는 교황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에서 이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공의회는 기존 장소를 고수하는 다수파와 교황의 제안을 지지하는 소수파로 갈라졌습니다. 교황은 소수파의 입장을 승인합니다. 바젤 공의회의 다수파가 책임을 묻고자 교황을 소환하려 하자 교황은 이에 맞서 공의회를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로 옮길 것을 선언합니다. 1437년 9월이었습니다. 소수파는 교황 뜻을 따라 페라라로 옮겨 이듬해 1월 페라라에서 공의회를 속개합니다. 다수파는 바젤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10.18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1472_1.1_titleImage_1.jpg)
[조규만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7)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섬기는 메시아, 십자가의 메시아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일도 어렵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했던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내는 방법은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복음서는 역사서도 아니요, 예수님 전기나 자서전도 아니다. 제자들 신앙이 깃든 진술서다. 4복음서를 토대로 예수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가 선언한 하느님 나라 메시지와 세례 운동을 이어 받아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 속에 살며 공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처신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셨다. 죄인들,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들과 사귀며 유다교 안식일 계명을 위반하고 정결례법을 폐기했다. '보라, 이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좋아하고,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웃음과 조롱의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하느님, 곧 모든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세리들과도 함께하셨다. 율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초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율법 실천 문제와 관련해 당대 율법학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다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데 '인간의 완고함'이나 오해가 있다면 이를 가차 없이 문제 삼을 만큼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다. 예수님의 기적과 구마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의 영육 모두에 해당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인적 구원행위였다. 예수님의 이런 공적활동은 처음부터 사람들 감탄을 자아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거부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로 보았다. 예수님은 특히 유다교 지배계급에게서 적대감과 미움을 샀고, 이로 말미암아 거짓 예언자로 몰려 사형에까지 이르렀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에 내재하는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과연 누구였는지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메시아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독자, 거짓 예언자, 반란자로 이해했다. 헤로데는 그를 바보로 취급했고(루카 23,6-12), 그의 친척들조차 한때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다(마르 3,21). 성경 작가들도 예수가 누구인가 규명하려 수많은 칭호를 사용했다. '하느님의 아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임마누엘',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 양', '예언자' 등 100여 가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묘사한다. '인도주의자', '방랑 설교가', '비타협주의자', '자유인'…. 이러한 여러 칭호들은 예수님을 어느 한 도식이나 틀에 맞춰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일까. ▨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란 '기름을 발리운 사람'이란 뜻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기름을 바르게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지상활동 중에 자신을 왕, 곧 메시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이에 대한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 칭호를 한 번도 자신에게 적용한 적이 없다. 예수님에게 이 칭호를 붙여준 사람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제3자들이다. 예수님은 제3자들이 붙여준 이 칭호의 의미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비판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메시아로서의 품위에 대해 침묵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치유의 기적을 행한 다음에 그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을 다짐시킨다. '선생님은 메시아입니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 대답은 이상하게도 엄중한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재판과정에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에게서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마태 27,11), 즉 메시아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한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것은 네 말이다"였다. 빌라도가 의미하는 메시아는 분명 정치적 인물로서 구세주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메시아와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답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한결같이 고백하는데, 그 메시아는 새로운 의미의 메시아다. 예수님이 거슬러 싸웠던 것은 어떤 정치세력도 아니고, 로마 통치자도, 헤로데도 아니었다. 그의 적수는 악이라고 하는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도 않았고, 폭력을 사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길 누누히 당부한 예수님은 메시아에게 지배권이 불가결의 요소라면, 그 지배권은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봉사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메시아였다. 이런 새로운 이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했고, 빌라도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제자들이나 치유를 받은 사람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당부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메시아일까. 정리=박정연 기자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10.04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7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스스로 밝힌 당신의 이름, '야훼'가 의미하는 바가 몇 가지 더 있다. '나는 있는 나다'라는 하느님 이름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는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느님은 곧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은 '야훼' 하느님이 약속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의 하느님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ㆍ탄생하고 소멸ㆍ죽음을 맞는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보다 나은 희망의 목표와 의의를 제시하고 그것을 이룩해주시는 분으로서 하느님이다. 분명히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은 모세 이전이나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에게 와서 비로소 불릴 수 있었다. 이것은 모세가 이룩한 업적이다. 독창적으로 그 이전 신의 이해를 재구성하면서 고유한 하느님 칭호와 모습을 알려줬다. 모세가 하느님 이름을 계시로 알아낸 업적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업적은 파스카 전례다. 파스카는 이미 유목민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의식이었지만 모세에 의해 의미가 커졌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끌어다가 파스카 제물로 잡아 대야에 받은 피를 우슬초 묶음에 묻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시오. 야훼께서 이집트인을 치며 지나가시다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는 그 문을 그냥 지나가시고 파괴자가 당신들의 집에 들어가 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오. 당신들은 이것을 당신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가게 되거든 이 예식을 지키시오. 당신들의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예식이냐고 묻거든 이것은 야훼께 드리는 파스카 제사라고 일러주시오"하고 말했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풍습은 다른 유목민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성경이 전하는 바로는 이미 아브라함 시절, 더 나아가 카인과 아벨 시절에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사도 파스카와 연관이 있다.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하고 대답했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하고 대답했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22,1-14). 그로부터 유목민은 오랫동안 파스카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스카 제사는 자신의 가축들을 전염병이나 맹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길 청했던 제사 의식이었다. 요즘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등을 보면 유목민에게 돌림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사악 제사가 재산을 잃는 경제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제사였다면 모세에 의한 파스카는 한층 진화된 제사 의식이 됐다. 하루는 모세가 사막에서 목동을 만났다. 목동은 매일 저녁 가장 좋은 우유를 나무 그릇에 담아 하느님께 바쳤다. 모세는 불쌍한 목동을 깨우쳐주고 싶어서 하느님은 순수한 신이시기에 우유 같은 것은 드시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목동은 하느님께서 우유를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 실망했고, 모세는 목동을 "하느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았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고 위로했다. 며칠 후 모세가 외딴 곳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모세야, 사실 네가 틀렸다. 내가 순수한 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동이 나에게 바치는 우유를 그의 사랑의 표시로 항상 고맙게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느님은 신자들이 정성껏 바치는 예물을 다 받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그 예물을 다른 필요한 사람과 나눌 뿐이다. 삼라만상이 다 주님 것인데 우리가 내는 그 예물이 그분에게 얼마나 소용이 되겠는가? 하느님은 예물을 바치는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봉헌했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제물을 마다하시고 손수 제물로서 양을 마련해 주셨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축복해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마다하시면서, 하느님은 인류를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기꺼이 십자가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큰 사랑을 깨닫기에는 우리 가슴과 머리는 너무 좁다. 파스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의미가 격상된다.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를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도약하는 신앙의 파스카로 의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사가 바로 격상된 파스카 제사다. 오늘 우리가 하지 못한 좋은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히 하지 못한 것으로 남는다. 우리가 오늘 한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 진정한 모세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모세 이상의 예언자이심을 고백한다. 모세는 하느님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돌봐 주셨던 부족의 수호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 주시는 민족의 하느님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구원이란 고통스러운 식민지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7.12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5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4)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인간 있는 곳 어디나 계신 하느님신학자 하센휘틀은 "현대신학의 위기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2000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지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져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때 삼중고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체험의 사전적 뜻은 '몸소 경험함, 특정한 인격이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한 뒤 「신학대전」 집필을 멈췄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니 그동안 자신이 이야기했던 하느님은 한낱 지푸라기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낫다고 고백했다. 요즘 하느님을 체험하고 종교적 성스러움을 체험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종종 사적계시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신비가이자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 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수녀는 하느님을 체험한 사실을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편지를 써서 자신의 체험을 전했다. 편지를 받은 성인은 수녀의 체험이 참된 영의 체험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겸손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이들, 특히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체험은 어떤 지식을 직접 만나고 부딪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체험을 통한 지식을 직접적 지식, 1차적 지식이라고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독서나 다른 이들의 설명 등을 통해 얻는 지식을 간접적 지식이라고 한다. 체험을 통한 지식은 직접적인 만큼 그 영향은 강하다. 체험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우리 안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체험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객관성이다. 체험이 객관적이라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수 부활을 예로 들겠다.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체험한 것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지 제자들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체험하는 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떤 실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체험의 주관성이다. 체험에는 체험자의 주관적 요소가 늘 작용한다. 셋째, 실천적 성격이다.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예전에 가졌던 이론과 지식을 수정하고 체험으로 얻은 지식으로 삶을 조정해 나간다. 넷째, 체험은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든 체험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 학교 교육, 종교, 경제, 문화 등을 바탕에 두고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체험은 긍정적 성격과 부정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체험은 우리에게 고통과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부 깊은 곳에서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유한하다는 한계성과 영원에 대한 갈망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은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오신경 등)이다. 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하고 고백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 믿음을 드러낸다. 이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하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은 이처럼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은 모두 끊어버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들, 유혹을 끊겠다는 것이다. 이 유혹은 돈에 대한 유혹, 성과 쾌락에 대한 유혹, 권력과 명예욕에 대한 유혹으로 압축된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가 가르쳐준 것은 이 유혹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만이 유혹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단식하고 자선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돼 이집트 탈출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스라엘 신앙도 체험에서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75살 나이에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강행한다. 성경은 이를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 조상으로 여겼고 이 조상의 하느님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엘 또는 엘로힘이라 불렸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복수형으로 쓴 것은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엘로힘은 하느님의 초월성, 위대함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특성은 토지의 신이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 있다. 당시 사람들은 신을 믿을 때 어떤 지역에 한정돼 있는 신을 믿었다. 하지만 유목민인 이스라엘 민족은 붙박이 신을 섬길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어느 한 곳에 한정돼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을 만나주는 인격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종교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일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에 이어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6.21

전례의 ABC[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2) 출처: 전례와 신심행위 전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전례와 신심행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전례(Liturgy) :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근본 바탕을 둔 “거룩한 전례는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하늘에 계시는 성부께 드리시는 공적인 경신 예배인 동시에 또한 신자 단체가 그의 창시자와 또한 그를 통하여 영원하신 성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다.”(교황 비오 12세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 따라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의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전한 공적 경배이다. 전례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행해야 한다. ②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성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어야한다. ③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사람(성직자)이 전례를 거행하여야 한다. ④ 교황청으로부터 인준된 전례서를 따라서 거행되어야 한다.(미사경본, 성무일도서, 성사예식서) 신심행위(devotional practices) : 전례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거행되는 단체적 경배행위를 신심행위라고 한다. 신심행위는 교회 권위로부터 임명된 성직자가 있든 없든 간에 관계없이 거행될 수 있다. 이러한 신심행위는 신자들이 전례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기도회 등은 여러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지만 전례가 아니라 신심행위이다. 이러한 신심단체나 신심행위의 내용과 기도는 교구장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전례헌장」 13항) 전례의 능동적 참여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받아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헌장」 10항) 그러므로 “신자들은 천상 은총을 풍부히 받도록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전례에 참여해야 하며,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적절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과 강론은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해설로서 전례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봉사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모든 이가 올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선포하여야 하며, 신자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40-41조) 전례와 신자 생활과의 조화 “애덕과 신심과 사도직의 모든 활동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한 활동으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세상에 매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의 빛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전례헌장」 9항) 그러므로 신앙인은 ‘예수님 공경’만이 아니라 ‘예수님 모방’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말하는 전례 전례는 교회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 :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전례헌장」 10항) 전례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 :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친히 그때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마태 18,20 참조)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분께서 현존하신다.(「전례헌장」 7항)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 : “참으로 하느님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이 위대한 행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인 교회를 언제나 당신과 결합시키시며, 교회는 자기 주님을 부르며 또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전례헌장」 7항)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2.14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깊이 읽기세속적 쾌락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간 여정 안내하는 책 두 권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고백록」(Confessiones)은 루소·톨스토이의 고백과 함께 세계 3대 참회록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진리와 행복을 찾아 각종 철학과 종교를 접하고, 육체적 쾌락과 야망, 학문과 명예를 좇았던 성인의 「고백록」은 교회 안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전적 고백 문학의 효시이자 그리스도교 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자. 고백록 / 아우구스티누스 / 성염 역주 / 한길사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번역하고 주석 더해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욕정에 호리고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공개적으로는 자유학예라고 부르는 학문을 내세워, 은밀하게는 종교라는 허울을 내세워 그리했습니다.”(157쪽) “저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떤 인간입니까?”(389쪽) 「고백록」은 33세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43세에 쓴 책이다. 지난 삶의 사상적·도덕적 방랑을 글로 옮긴 책으로,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10권은 어린 시절의 방황과 회심의 과정, 수도자이자 사제로 살아가던 심경을 기록했고, 11~13권은 창조와 시간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주교황청 대사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더한 「고백록」은 성인이 절대 진리를 찾아 나아간 여정을 꼼꼼하게 뒤따른다. 라틴어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성인에 대한 오랜 연구로 역사적·사상적·신학적 맥락을 짚은 설명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책에는 ‘밀라노 정원에서의 회심’ 등 이탈리아 산지미냐노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 재단에 있는 성인의 생애를 담은 베노초 고촐리가 그린 벽화들도 실려 있다.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 / 로마노 과르디니 / 김형수 신부 옮김 / 최대환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성인의 영성 현대적으로 계승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상가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이다. 저자는 성인이 겪은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여정을 도덕적 회고나 심리분석, 단순한 철학적 전환으로 치부하는 모든 해석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저자는 「고백록」이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실존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진리 안에 자신을 놓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수치심과 자기주장의 저항 속에서도 하느님의 인식에 결합하는 것이다. “「고백록」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것을 제거해 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우구스티노가 겨우 그 외에 남아 있는 것들 때문에 그토록 고뇌했다고 믿지 못한다. (중략) 회심의 과정은 그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서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로 향한다. 아우구스티노가 회심하고 자신의 고백록을 기록해 바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께서는 철학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증언하는 거룩하시고 살아 계신 분이시다.”(10쪽) 책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내면적 투쟁을 통하여 저자의 핵심 개념인 ‘마음’과 ‘인격’을 설명한다. 청년 아우구스티노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통해 지혜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랐을 때에도,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결국 뒤로 물러났던 것처럼, 철학적 진리가 하느님 계시와 은총 없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과르디니 신부는 베를린·튀빙엔·뮌헨 대학교 등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쳤고, 청년들의 신앙을 길러주는 가톨릭 청년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0.29

오빠로부터 배운 신앙, 순교로 열매 맺은 동정녀[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2) 복자 심아기 복자 심아기는 혼인을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며 신앙을 증거한 18살 청년 순교자다. 심아기 바르바라 복자화. 유교 경전 「예기」(禮記)는 “여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혼인해 출가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여자가 평생 지켜야 할 세 도리라 해 ‘삼종지의’(三從之義)라 했다. 조선 사회에서 혼인은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낳고 제사를 이어가는 중대한 의례였다. 특히 양반 계층의 혼인은 이러한 의미를 뛰어넘어 두 가문의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학맥과 정치 인맥을 연결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조선 사회가 혼례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며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느냐면 양반이 딸의 나이 30이 넘도록 출가시키지 않으면 그 아버지가 중한 벌을 받았다. 또 양반이 가난해 딸을 시집 보내지 못하면 나라에서 그 결혼 비용을 대줬다. 나아가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으면 같은 처지의 적당한 망자를 물색해 그 영혼들을 부부로 맺어주는 ‘영혼 결혼식’까지 치렀다. 이처럼 조선 사회는 죽은 사람조차도 혼례를 치러야 할 만큼 혼인은 반드시 해야 하는 유교 사회였다.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 사회에서 삼종지의의 굴레를 깬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동정녀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동정녀들은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체포된 여느 그리스도인들보다 더욱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수난당하실 때 주님처럼 옷이 전부 벗겨진 채 맨몸으로 매달려져 심하게 매질을 당하고 갖은 조롱을 들었다. 잔혹한 포졸들은 이런 고문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동정녀들을 알몸으로 남자 죄인들의 옥에 던져 넣기도 했다. 또 몇몇 관장은 포졸들이 여교우들을 성폭행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여교우들, 특히 동정녀들은 법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갖은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초기 동정녀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 이번 호의 주인공은 복자 심아기(바르바라, 1783~1801) 동정녀다.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여교우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 정결한 삶을 선택한 동정녀들이 적지 않았다. 정광수(바르나바) 여동생 정순매(바르바라), 윤운혜(루치아) 언니 윤점혜(아가타), 강완숙(골룸바) 딸 홍순희(루치아), 궁녀 문영인(비비안나), 이합규 누이 이득임, 조섭(예로니모) 누이 조도애(아나타시아), 강완숙의 여종 소명·복임·정임 그리고 김달님, 이어린아기의 딸 김경애, 박성염, 심낙훈의 동생 심아기(바르바라) 등이 강완숙의 집에서 동정녀 공동체를 꾸려 생활했다. 이처럼 심아기는 초기 동정녀 공동체의 첫 번째 구성원이었다. 심아기는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오빠 심낙훈에게서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후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살았다. 특히 성인들의 모범에 감동해 하느님께 자신의 동정을 봉헌하기로 하고 집 안에서만 조용히 머물면서 기도에 몰입했다. ‘요산’이라고도 불린 오빠 심낙훈은 복자 윤유일(바오로)의 숙부 윤현과 사돈 간이었다. 윤현의 셋째 딸이 심낙훈의 며느리이다. 심낙훈은 한양으로 이주해와 사돈인 윤현의 안국동 집에서 살았다. 윤현은 명도회원으로 자신의 집에서 초기 교우들을 지도했다. 심낙훈이 한양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는 친분이 깊던 여주 출신 교우들이 조직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서울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심낙훈이 자주 어울렸던 교우들은 윤현과 정광수, 조섭, 정약종(아우구스티노), 최창현(요한), 황사영(알렉시오), 이희영(루카), 이희영의 조카 이현(안토니오) 등이었다. 앞글에서 설명했듯이 강완숙의 집에 꾸려진 동정녀 공동체의 첫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낙훈과 교분이 깊던 교우들의 누이들이다. 심낙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됐으나 배교하고 전라도 무안으로 유배됐다. 숱하게 매 맞고 18세에 순교 배교한 오빠 심낙훈과 달리 동정녀 심아기는 순교의 길을 걸었다. 심아기를 비롯한 초기 조선 교회 동정녀들의 삶은 사도 시대 여교우들의 활동과 흡사했다. 우선 그들은 여성들을 교육하고 돌보았다. 그리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자선을 했다. 또 교회 집회 장소로 자신의 집을 기꺼이 제공했고, 선교 활동에도 협력했다. 더불어 교회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헌신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심아기는 주문모 신부와 여회장 강완숙의 지도 아래 동정녀 공동체의 책임자로 임명된 복자 윤점혜(아가타)의 지도로 교회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을 즐겼다. 그는 신유박해 때 체포돼 포도청으로 끌려가 모진 형벌을 받았다. 딸의 비참한 처지에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심아기는 “저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기꺼이 어머니도 저의 길을 따르십시오”라고 위로했다. 그는 20일 동안 숱하게 매 맞으며 배교를 강요받았다. 심아기는 1801년 4월 초 18세 나이로 ‘순교’와 ‘동정’이라는 두 영광스러운 화관을 차지했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에는 심아기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하지만 「사학징의」의 심낙훈 진술에는 “동생 심아기가 포도청에서 매 맞아 순교했다”고 나온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8.19

작심삼일 뒤 다시 신앙의 끈을 묶으며새해 마음가짐 다잡는 책 구글 제미나이 제작 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새해 다짐도 이미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남은 1년을 대충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일상에서 또 신앙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도록 돕는 책들을 소개한다.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 / 조 켐프 신부 / 서영필 신부 옮김 / 성바오로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 하셨지만… “당시에는 용서를 생각한다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 고통의 일부는 언제나 제 삶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상처들은 제게 거의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저는 훨씬 더 생기 있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용서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9쪽)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뼈아픈 배신·거짓·상처 등을 경험해 본 사람은 사랑보다 힘든 감정이 용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지난해 묵은 부정적인 감정에 신앙인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져 힘들다면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가 실질적인 위로를 건넬 것이다. 조 켐프(미국 미주리주 유레카 거룩한 성신본당 주임) 신부는 ‘지금 당장 용서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증오·복수·원한 등 고통의 감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치유가 깃들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동행한다. 성경 속 이야기를 예수님이 전하는 용서의 관점에서 되새기며 빛과 평화의 길로 안내한다. 시기심으로 죽을 것인가 사랑으로 살 것인가 / 카트린 오방 수녀 / 안영주 옮김 / 바오로딸 시기심은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망가뜨린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책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감정인 시기심과 질투심을 신앙의 차원에서 극복하도록 돕는다. 책은 시기심과 질투심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잘 다스리지 못할 경우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뒤흔들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시기는 다른 영적 병폐와는 다르다. 탐식은 음식의 맛이라도 주고, 탐욕은 재물을 소유하는 기쁨이라도 주며, 음욕도 그 나름의 쾌락을 준다. 그런데 시기는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시기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 감각적인 즐거움도, 겉으로 드러나는 기쁨도 없다. 시기는 아무것도 보태거나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32쪽) 카트린 오방(도미니코회) 수녀는 카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아들, 자캐오 등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닫아야 할 내면의 문과 열어야 할 내면의 문을 제시한다. 감사와 찬미 안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미헬 레메리 신부 / 최정훈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사회교리란 무엇입니까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신부가 집필한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가 출간됐다. 사회교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 및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현대적으로 해석한 가르침이다. 이 책은 특별히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청년 사목과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한 사목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온 저자는 ‘하느님과 트윗을’ 시리즈를 통해 신앙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청년들과 세계청년대회와 성지 순례를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과 직접 소통했다.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은 세계 청년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음식 낭비라는 죄와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행동입니다. (중략) 오늘 밤 여기에서 내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다고, 저 멀리 사는 사람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속뜻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많이 낭비할수록, 세계의 다른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듭니다.”(45쪽) 책에 실린 질문은 구체적이다.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 왜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는지, 그리스도인은 채식을 해야 하는지, 왜 성경은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쳤는지, 교회와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지⋯. 저자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이웃이라면 어떨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되묻는다. 또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가능한 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성챙김 / 채정호 / 선율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명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가 집필한 책이다. 「영성챙김」이라는 익숙한 제목에서 채 교수가 가톨릭 신자라 예상했으나 개신교 장로란다. 40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병원급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정규적인 명상과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많은 치유 사례를 확인했으나,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사탄에게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라는 신앙적 두려움으로 참여를 망설이는 많은 개신교 신자를 만났다. 불교의 좌선, 뉴에이지의 환상, 이단 종교, 무분별한 영성운동과 연결해 마음챙김과 명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신의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 및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정의한 명상을 언급하고, 교회사에 드러나는 영성챙김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삶과 기도, 십자가의 성 요한 및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 수련, 렉시오 디비나와 향심기도,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 등 초대 교회부터 이어진 관상적 전통이 영성챙김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기독교의 풍성한 영성 전통은 모두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무는 존재적 기도’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갖고 있다. 영성챙김은 이러한 전통을 현대의 심리학적 언어와 훈련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기독교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깨어 있음’으로 구체화한다.”(90쪽) 저자는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심리학자 등이 등장하는 가상 토론을 통해 마음챙김과 명상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는가 하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견해 차이도 짚는다. ‘영성챙김’이라는 신학적 토대 위에 그리스도교적 명상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오랜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명상을 통한 ‘종교 간 일치’의 시도인 셈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14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6/CET1778044953421.jpg)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 “제 이름은 유은총입니다. 두 살 터울 남동생 이름은 충만입니다.” 자기소개를 마치면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참 좋은 이름이네요. 누가 지어주셨어요?” ‘은총’과 ‘충만’.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이름입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입니다. 작명소도, 항렬 돌림자도 아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골라 두 아들의 이름에 담아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밤샘 기도를 다니시던 말 그대로 ‘열혈 신자’셨던 아버지는 세상에 곧 나올 자녀들을 하느님께서 굽어 돌봐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다고 훗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 이름에 가려졌지만, 사실 아버지 성함도 범상치 않습니다. ‘경사로울 경(慶)’에 ‘북돋울 배(培)’, 이름 하여 ‘경배’. 어쩌면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던 걸까요. 어릴 적 온 가족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면, 아버지는 미사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괜히 엉덩이를 들썩이곤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뜨거운 신앙은 이름 속으로, 그리고 우리 형제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 역시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신 어머니는 일상 속에서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익숙했던 풍경은 방 한 켠 작은 기도 공간에서 촛불을 밝히고 고요히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일까요. 저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색하거나 주저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새 신앙을 삶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방 안에는 기사를 작성할 때 쓰는 노트북과 취재수첩 사이에 5단 나무 묵주가 늘 함께합니다. 취재 현장으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 조용히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잘못이 없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부모님은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 같은 특별한 분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성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녀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고, 충분한 양분과 물을 주며 싹이 트길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의 기도 안에서 자라며, 저 역시 복사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자녀의 얼굴에서 부모의 얼굴이 보이듯, 신앙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요즘 저는 황혼을 바라보는 주름진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기도드립니다.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 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부모를 위한 기도」 중) 그러면 어머니는 혼기를 넘긴 아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오늘도 아들을 대신해 주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을 간직하여 새로운 만남이 당신의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중) 그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저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읍니다. “주님, 모두 이뤄지게 하소서. 아멘” cpbc2026.05.06

빌렘 신부 “나를 따라 독일로 가자” 안봉근에게 제안[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화 독립운동가, 안봉근 요한 세례자 - (1) 안봉근(요한 세례자). 어린 세 아들 둔 가장 안봉근 새 세상에 대한 갈망과 미안함 사이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아내 손 잡고 성경 구절 속으로 되뇌어 안봉근(安鳳根, 1887~1945?, 요한 세례자)은 안중근의 사촌 동생이다. 오늘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독일에서 동아시아 문화 전문가로서 문화 독립운동을 한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이미륵에게 독일 유학과 정착의 길을 열어주었고, 손기정에게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여주어 그를 민족주의자로 변화시킨 사람이다. 받고 싶은 도움을 타인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내준 안봉근을 삶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는” 역사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 1914년 1월, 4년 전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토마스에게 종부성사를 준 빌렘 신부가 안봉근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아, 나를 따라 독일로 가겠니? 가서 공부도 하고⋯. 토마스는⋯ 그렇게 죽었지만 헛된 죽음은 아니다. 토마스의 뜻은 살아 있고 조선은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거야. 그때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지.” 안중근의 사촌 동생 안봉근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빌렘 신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신부님, 제가요?” 빌렘 신부가 온화한 표정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요.” “너도 기억하지? 지난번 청계동에 왔던 베버 신부님과 포겔 신부님 말이다.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더니 수도원에 머물게 해주신다고 하는구나.”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네가 하고 싶다는 기계학 공부도 하고 교리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조선 선교를 희망하는 선교사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칠 수도 있고. 그럼 너도 덜 미안하지 않겠니?” 빌렘 신부는 봉근을 볼 때마다 안중근과의 마지막 3일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 토마스는 종부성사를 볼 수 있게 사제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뮈텔 주교에게 보냈었다. 주교는 거절했으나 빌렘 신부는 주교의 뜻을 거스르고 토마스를 찾아 뤼순 감옥을 찾아갔다.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은 특별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세례를 주었고 자신의 복사로 곁에 두었다. 감옥에서 마지막 미사를 할 때 안중근은 복사가 하는 라틴어 응답문을 한 구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빌렘 신부는 일부러 더 천천히 미사를 드렸다. 안중근이 가능한 한 오래 하느님을 느끼기를 바랐다. 안중근에게 성체성사와 노자성체를 주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제의를 벗고 미사를 마쳤다. 빌렘 신부는 스무 살의 안중근이 상해나 동경에 가서 몇 년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또 신앙을 잘 지키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니 보내도 되겠다”는 편지를 뮈텔 주교에게 직접 보냈었다. 그러나 그의 유학은 실현되지 않았다.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봉근에게 해주고 싶었다. 봉근 역시 사촌 형 안중근 토마스처럼 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복사를 했기에 가까운 사이였다. 안봉근·최 루갈다 부부와 세 자녀. 왼쪽부터 둘째 창순 에우세비오, 첫째 창익 프란치스코, 셋째 창준 라우렌시오. 안기명 제공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은 봉근은 가족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일견 새로운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쿵쿵거리는 심장을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봉근은 만주로 상해로 돌아다니는 형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러웠다. 안중근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경의 감시를 받는 것도, 이웃들이 예전과 다르게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것이 속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상했다. 봉근이 빌렘 신부와 헤어져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서 놀던 두 아들이 달려들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네 개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아버지 손에 든 신문 뭉치에 더 눈이 쏠렸다. “프란치스코야,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라.” 봉근의 허락이 떨어지자 큰아들 프란치스코가 수제비떡을 싼 신문 뭉치를 냉큼 받아들더니 동생 에우세비오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나갔다. 프란치스코는 청계동을 찾은 베네딕도회 베버 신부 일행에게 꽤 귀염성 있게 굴어 이쁨을 많이 받았다. 다섯 살 프란치스코가 쪼그리고 앉아 신부들의 담뱃대를 순서대로 받아들고 담뱃잎을 채워넣을 때면 평생 담배를 태운 누구보다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다. 아이들 뒷꼭지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돌아서던 봉근의 눈길이 부엌에서 젖은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며 나오던 루갈다와 마주쳤다. 12년 전, 빌렘 신부의 복사 열다섯 봉근은 일곱 살 많은 루갈다와 결혼했다. 그날 봉근은 솜을 넣은 바지와 소창의를 입고 상투를 틀고 머리에 정자관을 썼다. 루갈다는 황해도 여자들이 하는 얹은머리를 하고 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다. 치마는 풀 먹인 다듬이질을 너무 세게 했는지 햇살을 받을 때마다 번쩍거렸고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날 빌렘 신부는 봉근의 가족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뒷면에 “교황의 조선 선교사 니콜라스 조셉 빌렘”이라고 새겨진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사진 속 봉근은 어렸고 루갈다는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멋쩍게 서 있다. 본관(本貫)이 해주인 루갈다의 아버지 최형규 시몬 역시 빌렘 신부의 복사이고 전교회장도 했다. 한자에 조예가 깊은 장인은 사립 해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바쁜 와중에도 빌렘 신부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신부가 써준 편지를 들고 서울 종현 주교관을 찾아가곤 했다. 빌렘 신부는 2년 전 성모 성탄 축일(9월 8일)에 새 종 축복식을 하고 해주에 본당을 세웠다. 성당을 짓기도 전에 400원짜리 프랑스산(産) 종을 마련할 수 있었던 연유는 공소집 주인이었던 김 베네딕토의 유언 덕분이었다. ‘본당 종 구입비 300원을 반드시 본당 신부에게 기부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두 아들이 300원을 가져왔고 감동을 받은 빌렘 신부는 거기다 100원을 보태서 종을 주문했다. 초대 본당 회장을 맡은 장인은 더 바빠졌다. 신자들의 수가 늘었고 빌렘 신부는 성당을 지을 요량으로 해주 남문밖 서영정 땅을 구입했다. 그때부터 장인은 그 땅에 딸린 집에 들어가 살면서 본당 부동산도 관리했다. 안봉근의 장인 최형규 시몬. 빌렘 신부의 복사였으며 황해도 해주본당 초대 전교회장이었다. 안기명 제공 “막내 라우렌시오는 자우?” “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 형들이랑 신나게 놀더니 지도 부치는지 낮잠을 좀 오래 자네요. 그저께부터 콧물 바람이에요. 형들과 달리 약해서 걱정이에요. 그것보다 신부님이 갑자기 왜 부르셨어요? 또 무슨 일이 있나요?”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님뿐만 아니라 다른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과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아버지와 남편을 통해 들어 대충 알고 있던 루갈다도 걱정이 앞선 목소리였다. “신부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다시 오기는 힘드시겠지. 같이 가자고⋯. 독일 가서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네.” “아이고⋯ 신부님 떠나실까 걱정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요? 그런데 임자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셨단 거죠?” “신부님이 장인어른과 이미 말씀을 나누었나 봐. 큰물을 보고 문리도 더 틔워야 교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루갈다는 얼굴을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 집안 남자들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촌 아주버님들이 그동안 한 일들을 생각하면 남편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지만 애써 눌러두었을 뿐이었다. 지난해 부활 첨례날에 남편은 신자들 앞에서 예수 부활하신 후부터 그날 저녁까지 일어난 여러 가지 신묘한 기적을 구구절절 잘도 풀어냈다. 신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서 있던 빛나는 봉근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 루갈다는 어릴 때부터 품고 다니던 몸고상을 만지작거리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언제요? 얼마나 걸릴까요? 가시는 곳은 어디랍니까? 여비는 어떻게 마련하죠? 옷 한 벌이라도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봉근은 루갈다의 거칠어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빌렘 신부가 독일로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머리에 떠올랐던 성경 구절을 속으로 되뇌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루카 19,34) <계속> 송란희(가밀라, 한국교회사연구소 학술이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6.10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17/0I21781671590291.jpg)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 최근 일본 도쿄로 나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덕에 가타카나와 히라가나 정도는 읽을 수 있고, 또 ‘한자 세대’라는 자부심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짧은 일본어를 더듬어 사용하고, 손짓 발짓에 표정까지 동원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긴장이 풀려 실수가 잦아진다는데, 그 말이 꼭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도쿄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쿄도청 전망대를 찾아 도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정작 입구를 찾지 못해 한 시간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초조함에 머릿속이 하얘질 무렵, 일흔 후반쯤 돼 보이는 경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분은 온화한 목소리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일본어로 ‘전망대’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던 저는 영어와 이른바 ‘만국 공용어’인 몸짓을 섞어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경비원은 직접 저를 데리고 전망대 대기열까지 안내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당혹스러운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숙소 객실 카드키를 방 안에 둔 채 문을 잠가버려 꼼짝없이 호텔 프런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서양인 직원은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점점 더 난처해졌습니다. 그때 한 동양인 직원이 다가와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동포세요?”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한국어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고, 직원은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혹시 한국 분이세요?”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일본인이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실수는 귀국하는 날 벌어졌습니다. 도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던 중 어찌 된 일인지 중간에 내려 공항과 정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목적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야 하는데 역까지는 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지만, 잃어버린 시간까지 되돌릴 순 없었습니다. 결국 역에 도착했을 때는 반드시 타야 할 시간대의 열차표가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 한 여행객이 자신의 표를 제게 양도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위기의 순간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천사, 곧 하느님의 사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와 노년에 얻을 아들 이사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토빗기에서는 천사 라파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토비아와 동행하며, 시력을 잃은 토빗을 치유하고 사라를 괴롭히던 악령을 물리쳐 줍니다. 세 천사도, 라파엘도, 평온한 시기가 아닌 어려움과 시련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이 다가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일상 속에 당신의 천사를 보내십니다. 길을 잃은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경비원일 수도 있고, 낯선 여행자를 돕는 호텔 직원일 수도 있으며, 곤경에 처한 이에게 선뜻 표 한 장을 내어주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실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때,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때, 주님께서는 당신 자녀를 구하고자 따스한 손길을 내미십니다. ‘신앙단상’을 쓰는 이 순간에도 주님의 천사가 제 손끝에 머물러 당신 말씀을 글 위에 내려주시길 기도해봅니다. cpbc2026.06.17

교황, 이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와 서울 WYD’ 논의 이 대통령, 교황과 30분간 단독면담… 교황 방북 등 거론된 듯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레오 14세 교뢍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레오 14세 교황이 15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전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깊이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내년 2027 서울 WYD를 계기로 방한해줄 것을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과 이 대통령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으로, 분단 80년이 넘은 남북 상황에 평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직접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과 이 대통령과의 면담은 30분가량 이뤄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이 대통령의 교황과의 만남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정부의 구상을 말했으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황청의 변함없는 지지와 관심을 재확인했다”며 “양 정상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과의 만남에서 남북관계 개선 방안 또한 폭넓게 논의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여러 남북관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됐던 교황 방북도 거론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교황과의 만남 이후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도 한반도 평화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통령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파롤린 추기경은 “인내뿐 아니라 희망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9일 유럽 순방길에 올라 17일까지 벨기에·EU·이탈리아·바티칸·프랑스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교황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과 만나 회담했다. 이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인 14~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고,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황과의 면담에 앞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는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봉헌됐다. 이 대통령은 미사 직후 특별연설에서 “저는 지금도 (남북 대화의)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는다”며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사에는 김혜경 여사를 비롯해 신형식(스테파노)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각국 외교관, 청와대 관계자, 로마 현지 사제·수도자·신자 3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2027 서울 WYD가 종교 행사만이 아니라 국가 행사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 대회가 평화와 연대를 향한 희망이 되고,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교황청과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함께한 자리에서 다시금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WYD가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드린다”고 피력했다. 우리 대통령이 교황청에서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미사에 함께한 것은 문재인(티모테오) 전 대통령이 2018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한 미사에 참여한 이후 7년 8개월 만이다. 앞서 12일에는 이 대통령과 함께 유럽을 방문 중인 김혜경 여사가 로마 한인신학원을 찾아 서울 WYD를 준비하는 성직자와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바티칸=김혜영 기자 justina81@cpbc.co.kr이준태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