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며: 바오로의 등장[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 사도 성 바오로 중국 금(金)나라의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그렇다.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마찬가지로, ‘고난’(수난)이 승화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도약’(부활) 또한 가능하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교회에 그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출발은 환희의 신비였다. 예수 그 이후, 초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하지만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 문제다. 교회는 급격히 늘어난 신자 때문에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직접 관리를 맡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협조자(부제) 7명을 뽑았다. 그들의 이름은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다.(사도6,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최초의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노를 주보 성인으로 모신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대성당 스테파노는 열정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그런 그를 유대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통의 신비’가 시작된다.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 끌려왔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 사회를 붕괴시키려 한 죄.’ 하지만 스테파노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사도 6,15)로 대사제 및 유대교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여러분은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 7,53) 이 말은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모욕으로 들렸다. 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모른다고 하고, 육군 장성에게 소총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분노한 유대인들은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포박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이때 스테파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기도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평판이 좋고 지혜와 믿음,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사도 6,3-5 참조)는 그렇게 잠들었다. 사도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요한의 형제였던 대 야고보 사도의 머리가 잘렸다.(42년)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를 이끌던, 초대 기둥 중 하나(갈라 2,9)였던 알패오의 아들(마태 10,3) 소 야고보 사도도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62년)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것(사도12,6-19 참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밖에도 예수 그 이후,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차별, 고립을 겪었던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사도 17,5;24,5 참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1베드 4,14-16)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신앙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기반이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와해 된다. 그럼에도 성령에 충만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는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그가 성경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울(훗날의 바오로 사도)이었다. 바리사이파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그는 스테파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글 _ 편집부cpbc2025.02.03

하느님 경외함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처세술 담겨[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8) 잠언 잠언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성년식을 치르는 한 유다인 소년이 토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잠언(箴言)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잠언을 ‘미쉴레 쉘로모’라고 하며 ‘성문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제목을 그대로 옮겨 ‘파로이미아이 살로몬토스’(Παροιμιαι Σαλωμωντοs)라고 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도 마찬가지로 ‘파라볼레 살로모니스’(Parabolae Salomoni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우리말 성경은 ‘잠언’이라고 표기하고, 교회 전통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으로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 임금을 잠언의 저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솔로몬 임금을 잠언과 코헬렛, 지혜서, 아가의 저자로 등장시킵니다. 성경은 잠언의 저자 솔로몬을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임금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입니다.(잠언 16,10-15) 또 잠언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해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708-1709쪽 참조) 잠언의 저자로 솔로몬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의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3,3-14. 16-28; 집회 47,14-17) 또한 잠언 내용 가운데 3개의 묶음에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제시돼 있어서입니다.(잠언 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 임금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솔로몬 임금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했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이 솔로몬 임금을 중심으로 본격 시작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시편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이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닙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머리글(1,1-7)과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훈계(1,8─9,18),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집(10,1─22,16), 현인들의 첫 번째 잠언집(22,17─24,22), 현인들의 두 번째 잠언집(24,23-34), 히즈키야 임금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집(25─29장),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30,1-14 ), 수(數) 잠언(30,15-33), 마싸 임금 르무엘의 잠언(31,1-9), 훌륭한 아내에 대한 찬양(31,10-31) 9개의 잠언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잠언의 내용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기반으로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처세와 삶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지혜로운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잠언은 권고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입니다.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됩니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지혜를 얻어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죽음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해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다시 말해 잠언은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지혜로써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은 시편처럼 구약 성경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됐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잠언의 뿌리를 이스라엘 공동체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두로 전승돼 오던 조상들의 지혜를 수집해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잠언이라고 합니다. 이 수집 작업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왕정시대 때부터 시작됐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 31장의 잠언으로 편집됐다는 것이 일반 견해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가톨릭 신앙에도 반영됩니다. 교회 이렇게 선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54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8

북 청년 서울 WYD 초청, 北 의사 먼저 물어야야방한 유흥식 추기경 기자간담회북 청년 초청, 요란한 추진 금물25개 언론사 기자 51명 참석대통령 교황청 방문 이뤄지길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북한 청년들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 처지를 이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지, 상대방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데 불쑥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협상 태도가 아닙니다.” 3일 서울 광진구 주교회의 강당에서 휴가차 방한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과 만났다. 유 추기경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북한 청년들의 참석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2014년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며 “요란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측 의사를 묻기 전부터 언론이 먼저 북한 청년들의 참가를 바란다고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북한 청년들의 참가를 희망하고 기도한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며 “한국에 오면 기자들과 직접 만나 편안하게 대화하고 싶었다”며 바티칸에서 여러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대답을 못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아침 미사 때 기자들과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했다. 질문은 콘클라베 현장 분위기, 레오 14세 교황과 한국과의 인연,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역할과 업무, 12·3 계엄 관련 메시지 발표 배경 등에 집중됐다. 아울러 레오 14세 교황의 방북 가능성과 한국인 새 추기경 임명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2021년 6월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된 유 추기경은 “전 세계 모든 신부님이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양성하고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며 임명 당시 동료 브라질 주교에게서 받은 문자를 회고했다. 문자에는 “세상의 모든 신부님이 기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성직자부 장관의 임무이며, 한 명의 신부라도 얼굴이 기쁘지 않으면 그건 장관 책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 추기경은 “신부님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 제 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티칸에서 ‘웃는 추기경’으로 통한다. “한국 교회는 열린 교회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보기엔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많다”며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고, 마음을 열었을 때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고 강조했다. 유 추기경은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이 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분이 우리나라 남북을 위해 큰 일을 하실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며 “교황님이 미국 분이기에 북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미국인이라는 점에 대해선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은 그분이 미국인이란 것은 생각 않고, 20여 년간 페루의 가난한 지역의 선교사였던 것을 높게 샀다”고 설명했다. 교황이 주교부 장관으로 일했기에 업무상으로도 자주 소통했다며,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면, 레오 14세 교황은 조용하고 특별히 잘 들어주는 분”이라고도 전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 6개월 사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시고 새 교황님이 선출되면서 교황청이 복잡했다”며 “한국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인터넷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고해성사를 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유 추기경은 “대통령님께 가능하면 올해 중 교황청을 방문하셔서 교황님을 뵀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드렸다”고도 밝혔다. 정치인들에게는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에 봉사하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루려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자라나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성경 말씀으로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를 꼽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25개 언론사의 기자 51명이 참석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7.10

빵과 포도주에 현존하는 예수님과 하나되는 성체성사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4)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다. OSV 성체는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시다. 밀가루 제병이 곧 예수님의 몸이요, 포도주가 곧 예수님의 피라는 이 교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 교리는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빵과 포도주 속에 예수님이 실체로 그리고 실제로 계시다는 교리는 성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 51)고 하셨으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이러한 예고를 완성하시고 실현하셨습니다. ① 성체성사에 관한 성경 말씀의 예고 성체성사는 이미 구약 시대부터 예고되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굶주렸습니다. 굶주리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세적 생명을 유지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살도록 내려주신 양식이었습니다. 이 ‘만나’로써 하느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새로운 백성이 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실 성체성사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②성체성사의 제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시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마태 26,26-30; 마르 14,22-26; 루카 22,14-20; 1코린 11,23-25 참조) ③ 성체성사의 효과 세례성사로 받게 된 ‘성령 안의 생명’을 유지해 줍니다. 주님을 모시는 영성체로 주님께 대한 일치가 증대되며,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에서 보호받습니다. 또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확고하게 해 줍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공적 예배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기 때문에 모든 성사의 중심이자 정점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은 다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새롭게 하며, 신앙생활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④영성체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을 영성체라고 합니다. 보통은 하루 한 번만 영성체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두 번까지 영성체할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에 속한 가톨릭 신자들은 보통 빵의 형태로만(단형) 영성체를 하지만, 빵과 포도주 두 형태로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형으로 영성체를 해도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전체를 받습니다.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빵의 외형 속과 포도주의 외형 속에 전체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⑤ 거양성체 미사 중 가장 거룩한 순간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사제가 높이 들어 올려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5.01.07
![[송년특집] 바티칸 정원에 한복 입은 성모 모자이크 성화 걸렸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17/LJT1734417776550.jpg)
[송년특집] 바티칸 정원에 한복 입은 성모 모자이크 성화 걸렸다문화출판 결산 바티칸 정원에서 거행된 ‘평화의 모후 모자이크 성화’ 축복식을 찾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작품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이지혜 기자 2024년 가톨릭 문화출판계는 바티칸을 수놓은 한국 성모 성화,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 유명 성미술 전시, 순례 책 봇물, 반전 기원과 기후변화 경고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바티칸에 걸린 한복 입은 성모 성화 지난해 9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에 이어 올해 9월에는 역대 교황들의 산책로인 바티칸 정원에 한국의 성모를 담아낸 모자이크 성화가 걸렸다. 가로 100㎝·세로 150㎝ 크기의 ‘평화의 모후 모자이크 성화’는 바티칸 정원에 설치된 12번째 성모 성화로, 한복을 입은 성모님이 지구를 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한국 성화를 그려온 심순화(가타리나) 작가가 그리고 모자이크 작업은 윤해영 작가가 맡았다. 복음화에 앞장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에 앞장선 신앙 선조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출간됐다. 16~18세기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달된 가톨릭과 그 신앙이 20세기 초중반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먼저 중국의 문화와 선교 역사에 괄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긴 아담 샬(예수회, 1592~1666) 신부의 「주교연기」가 번역·출간됐다. 주님의 가르침이 탄생한 근원과 오늘에 이른 과정, 우리 인류에게 어떤 보탬을 주는가를 성리학과 불가·도가의 이론적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전개했다. 초기 140여 년간 예수회의 중국 선교를 집중 탐구한 「동아시아로의 항해」, 이를 통해 이뤄진 동서양 간 문명교류를 분석한 「명청시기 예수회 선교사 한학의_史(역사)」도 방대한 자료를 자랑한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파리외방전교회, 1792~1835) 주교의 삶과 신앙 여정을 다룬 책도 출간됐다. 관련 심포지엄 자료집을 토대로 조한건(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부가 엮은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사진>는 프랑스 출신 사제가 동아시아 대륙의 끝 조선으로 향하다 순교한 짧은 생애를 톺았다. 주교의 삶과 주요 영성을 묵상과 기도로 연결하는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도 연이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안동교회사연구소(소장 신대원 신부)는 조선 선교로 시작해 시토회 수도자로 마친 깔래 신부(1833~1884)의 생애를 담은 「마리 깔래 신부의 생애」를 펴냈고, 인천교회사연구소(소장 장동훈 신부)는 ‘서해안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최분도(B. Zweber, 1932~2001) 신부, 강화도 주민들의 자립을 도운 전미카엘(M. Bransfield, 1929~1989) 신부 등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을 자료집으로 엮는 작업을 이어갔다. 제주의 양돈산업을 일구며 제주도민의 삶에 변화를 선물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1928~2018) 신부의 삶은 창작오페라 ‘제주의 기적, 맥그린치’(작곡 이상철 신부)로 공연됐다. 카라바조 작 ‘그리스도의 체포’. 출처=우피치미술관 국내외 유명 성미술 전시 잇달아 2024년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다채로운 성미술을 접할 기회가 잇따랐다. 연초에는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50여 점을 만날 수 있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열어간 카라바조와 동시대 작가들의 회화 50여 점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계속 전시 중이다. 뒤러의 3대 목판화로 꼽히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대수난’·‘요한 묵시록’, 카라바조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체포’·‘성 토마스의 의심’ 등 작품 대부분이 성경의 주요 내용을 표현해 신앙인들에게 더욱 주목받는 전시였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굵직한 전시도 잇달았다. 조각계 원로 최종태(요셉, 92세) 작가 기증전은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렸고, 서양화가 고 조영동(루도비코, 1933~2022) 작가 기증전은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개최됐다. 작품 활동에서도 예술과 신앙의 조화를 이룬 두 작가는 150점 이상의 작품을 각각 서울대교구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천경자(데레사, 1924~2015)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장발(루도비코)·이순석(바오로)·장우성(요셉)·김기창(베드로)·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등 국내 화단에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70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렸다. 순례 도서 봇물 출판계에서는 유난히 순례 도서가 많이 출간돼 코로나19 엔데믹을 실감한 한 해였다. 이집트·이스라엘 등 구약과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지역부터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와 흔적이 가득한 유럽 전역까지 책으로 알찬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다. 허영엽(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는 아브라함의 성조 시대부터 바오로의 선교 여행까지 성경 속 특정 장소에 대한 설명·등장인물·다른 구절과의 관계 등을 소개한 「성경 순례」<사진>를 펴냈다. 김평만(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신부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아빌라의 성 데레사·십자가의 성 요한 등 스페인을 중심으로 세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유스티노 신부의 치유의 순례기 2」를 출간했다. 고 이창훈(알폰소, 1959~2023) 가톨릭평화신문 기자는 예수님의 생애를 좇아 이스라엘 성지들을 입체적으로 풀어쓴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를 유작으로 남겼다. 오랫동안 가이드로 활동한 김용백(스테파노)씨는 탈출기와 성가정의 행적, 여러 수도원을 탐방한 「너를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를 엮었고, 공지영(마리아)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요르단강·나자렛·예루살렘 등을 순례하며 기록한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발표했다.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김혜경(세레나) 연구교수가 쓴 「모든 길은 로마로」는 일곱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 로마의 유적지를 다각도로 살피며 자연스레 가톨릭과의 연결점도 제시했다. 반전·평화 기원 및 기후변화 경고 문화출판계에서는 평화를 기원하고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하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3월 AP통신 취재팀이 초기 20일간 수집한 다큐멘터리 ‘마리우풀에서의 20일’이 전 세계에 공개되며 상기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평화롭던 도시가 한순간에 초토화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분단과 정전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생태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음악을 통해 확산하고자 기획된 ’DMZ 오픈 국제음악제''는 두 번째 무대를 마련했고, 서울시합창단은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하이든의 ‘전쟁 미사’를 공연하기도 했다.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가 기획한 전시에서는 해수면 상승·사막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인간과 동물의 아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지구의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은유적인 표현의 사진으로 경고했다. 원주교구 사제이자 환경운동가인 박홍표 신부는 삶과 환경에 관한 생각을 95편의 시로 엮은 「파도는 침묵하지 않는다」를 펴냈고, 해양환경단체에서 활동 중인 이소연씨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통해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착취적 현실을 고발하고 새 옷을 사지 않는 의생활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천주교·불교·개신교·원불교 성직자가 함께 펴낸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는 수많은 다름 속에서 평화를 노래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18

비교하지 않으시는 하느님[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03) 미움이라는 걸림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만큼 미움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감정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운 마음이 생기고 그 감정이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삶이기에, 미움이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람에게는 왜 미운 감정이 생기는 걸까? 우리는 왜 의지와 무관하게 생기는 미운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해야 하고, 타인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미워하는 감정,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성경을 펼치고 잠시만 살펴보아도 미움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타난다. 카인은 친동생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죽이기까지 하였다.(창세 4,8 참조)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막내 요셉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였고, 미움 때문에 막내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창세 37,4 참조) 예수님께서도 미움 같은 감정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눈에 너무 크고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원수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마태 5,43 참조) 미움이라는 피할 수 없는 감정과 예수님의 원수 사랑 계명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미움이 보편적인 감정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제나 수도자도 인간이기에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로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곧 미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움을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그러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남을 객관적으로 바로보고 인정할 필요는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상대의 어떤 말이나 행동도 상처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마음 넓은 존재가 아니다. 이를 인정할 때 조금은 자유롭게 자신의 미운 감정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미움에 담긴 심리를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심리가 작동하지만, 미움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비교’ 때문일 것이다. 카인은 주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굽어보셨다고 생각했기에 화가 나고 미운 감정이 들었다. 야곱의 아들들도 요셉과 비교가 되었기에 질투를 느꼈고, 막내를 사막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다. 미워하는 마음은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거나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때, 혹은 나에게 서운하게 대해줄 때 종종 생긴다. 그렇다면 미운 감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달라질 것이다. 내가 그토록 하느님의 사랑받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과 확신이 없기에 비교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결코 비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하게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 인간을 보시고 좋아하신다. 비교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마음에서 생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이 다름은 비교할 것이 아닌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을 모자이크처럼 수놓기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모두라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빛을 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웃과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민택 신부cpbc2025.06.10

“단무지 사이소~”… 지식인 허물 벗고 하느님께 취직하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도시 빈민의 대부, 제정구 바오로 - (3) 판자촌의 구도자 양평동 판자촌 복음자리의 김수환 추기경과 정일우(오른쪽) 신부와 제정구(왼쪽) 1973년 서울대 복적… 청계천으로 이사 낮엔 단무지 행상·밤엔 야학 교장 소임 청계천 주민들과 양평동 집단 이주 영혼의 단짝 정일우 신부와 함께 살며 ‘더불어 살아가는’ 빈민운동 원칙 확립 옥바라지한 연인과 40일 기도 후 결혼 “판자촌서 나오면 취직시켜 주겠다” 중앙정보부로부터 솔깃한 제안 받고 판자촌에서의 삶 하느님 뜻으로 확신 충격적인 청계천 판자촌의 실상 ‘하느님 백성의 생존을 위해 저를 오롯이 바치나이다.’ 서울 청계천 송정동 판자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2년이었다.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활빈교회 야학교사가 되면서였다. 청계천 뚝방에 올라서서 내려다본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둑과 개천 사이의 공터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판잣집, 가마니와 비닐로 덮고 두른 움막, 나무막대에 천을 걸쳐놓은 삼각 텐트, 콜타르 먹인 종이에 모래를 뿌려놓은 지붕, 처마에 매달린 빨랫줄과 옷가지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공중화장실, 회색빛 흙바닥과 얕은 시궁창⋯. 2400여 세대가 사는 청계천 판자촌은 산 자가 갈 수 있는 가장 막다른 골목, 즉 지상의 막장이었다. 그동안 그려왔던 민중의 실체와 서민의 삶이 그럴싸하게 포장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곳을 외면한 진리와 정의와 자유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이들이 제 모습을 찾고 제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오리라 여겼다. 흙바람이 부는 뚝방에 서서 그들과 함께하겠노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1973년에 복적되면서 아예 청계천으로 이사했다. 활빈교회의 야학인 배달학당의 교장 소임을 맡았다. 처음에는 기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엿장수를 돕거나 넝마주이를 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내 나름의 번듯한(?) 직업이 있어야만 했다. 단무지 행상에 나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청량리 단무지 공장에서 20여 관을 사서 수레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기도 해서 ‘단무지 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늦게까지 길거리를 헤매다 녹초가 돼서 돌아왔지만, 자존심이 상해 잠도 오지 않았다. 옷가슴에 학교 배지를 달고 옆구리에 책을 낀 서울대생과 밀짚모자에 까만 고무신을 신은 판자촌 총각의 모습이 교차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비로소 내가 얼마나 교만과 허위에 젖어있는지를 통렬하게 깨달았다. 뚝방에서의 결심은 지식인의 그럴싸한 이념이자 이상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손수레를 힘차게 끌며 칼칼한 경상도 억양으로 외쳤다. “단무지 사이소! 달콤하고 짭짤한 단무지가 왔심더.” 그날부터 청량리와 종로 일대를 누빈 수레는 일찌감치 속을 비워내고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당시 나는 판자촌 주민들과 공동체로 살기 위해 연세대 부설 도시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공동체 조직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수하자 활동비로 매달 2만 원씩 지급됐다. 11개월간 투옥됐을 때도 활동비가 지급돼 석방 후에는 그 적립금으로 구두닦이 터를 매입할 수 있었다. 소년 구두닦이 선배 둘이 나를 가르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독하다’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노동이 곧 판자촌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자 기반이었던 것이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삶은 그해 말 정일우 신부와 한 달간 함께 지내며 더욱 활기를 띠었다. 청계천 판자촌 송정동 지역사회학교 배달학당 시튼 성인 전기 읽고 가톨릭 영성에 이끌림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자마자 청계천 판자촌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당시 서울 명동대성당의 보좌로 있던 정일우 신부는 판자촌이 철거되더라도 주민들과 다른 곳으로 이주해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나 역시 원하던 바였다. 반면 정부 지원을 받은 활빈교회 측은 소금땅이라 당장 농사짓기 어려운 남양만 간척지로 이주할 것을 고집했다. 그들에게는 청계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문제보다 지역 선교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실망스러웠다. 그때 우연히 손에 든 책이 「엘리사벳 앤 시튼 전기」였다. 1774년 미국 뉴욕의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난 시튼은 남편 사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미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 학교와 사랑의 시튼 수녀회를 창설했다. 지극한 사랑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던 그녀는 최초의 미국 출신 성녀로 시성됐다. ‘내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때 가난 속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녀의 전기를 읽으며 내 가슴속 갈증의 실체를 깨달았다. 바로 사랑이었다. 개신교에서 중시하는 외적 능력보다 침묵, 명상, 기도, 내적 충만감에서 오는 사랑이 중요했다. 이후 나와 정 신부는 철거민들의 생존 근거를 마련하는 집단 이주에 힘을 쏟았다. 마침내 그해 11월 양평동 뚝방 판자촌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정 신부는 7평, 나는 4평짜리 집을 구입했다. 정 신부 집의 5평은 사람들이 와서 놀거나 공부하거나 미사 드리는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1976년 2월 11일 김수환 추기경이 사랑방 축복 미사를 드린 후 명명했다. “포근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복음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 나는 영혼의 단짝이자 스승인 정 신부와 약조했다. 정부나 후원단체에서 지원받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그냥 주민들과 이웃으로 살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하며 거들자는 빈민운동의 원칙을 세웠다. 주민들을 계몽하거나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나를 버리고 비우는 빈손의 자유라고나 할까. ‘가짐 없는 큰 자유’라는 지인이 써준 서예 글씨가 잘 어울렸다. 양평동 판자촌 복음자리 현판식 함석헌 선생 주례 열린 제정구의 결혼식. 김수환 추기경과 제정구(가운데 오른쪽) 첫 딸 아름을 낳은 후에 부인 신명자(가운데 왼쪽)씨, 정일우(왼쪽 맨 끝) 신부. 시흥 복음자리마을에서 세 딸과 제정구 가짐 없는 큰 자유 심훈 소설 「상록수」 주인공 닮은 부부 1976년 4월, 서른세 살 노총각이던 나는 아홉 살 연하의 한신대 신학생인 신명자와 결혼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그녀는 활빈교회에 종종 봉사하러 왔다. 배달학당의 교장이었던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내가 투옥되자 옥바라지해줄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고 마음씨 고운 그녀와 속마음을 나누게 됐다.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어 동지이자 연인이 됐다는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과 흡사했다. 제정구는 학업을 중단한 박동혁이었고, 신명자는 여자신학교를 다니던 채영신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신랑감이 판자촌에 사는 대학 제적생이자 전과자였으니 그녀의 부모가 반대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아내는 집에 감금됐고, 나는 정 신부 지도로 속리산 상환암에서 나흘간 피정했다. 그때 신부가 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성직이나 혼인이나 모두 구도자의 길임을 깨달았다. 결혼이 내게 맞는 수행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40일간 기도하자고 했다. 공생활에 앞서 광야에서 40일간 지내며 기도했던 예수님의 길을 체험하고자 했다. 마침내 운명적인 결혼식 날, 주례를 맡은 함석헌 선생은 1시간 반에 걸친 주례사를 통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곧추서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구도자가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이었다. 양평동 판자촌에서 신혼살림 우리 부부는 양평동 판자촌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부부는 큰 방, 정 신부는 작은 방에서 함께 지냈다. 그곳에서 첫딸 아름이를, 후일 이주한 시흥에서 둘째 딸 아미와 셋째 딸 빈나를 낳아 키웠다.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직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판자촌에서 살지 않고, 정일우 신부와 함께 지내지 않는다면 당장 취직시켜준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절묘했다. 나는 그 제안을 듣자마자 그 반대로 판자촌에서 정 신부와 함께 사는 것이 진정 하느님 뜻이라 여겼다. 그날 호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 3000원을 털어 성경을 샀다. 그 첫 장에 큼직하게 기념 사인을 했다. ‘축 취직 기념(하느님께) 1976년 9월 1일’ 판자촌 공동체는 비록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집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붙들리거나 어딘가에 갇힐 염려가 없었고, 어떠한 간섭이나 속박 없이 제 할 일 하며 사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구도자의 길이 따로 있나 싶었다. 수도원이나 사막이 아닌 판자촌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이 평화로웠다. 전지하신 하느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시편 139,7) <계속> 김문태 힐라리오(한국평단협 수석부회장, 문학박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5.12.23

성모 신심으로 조국의 자유와 신앙 지켜낸 벨기에 할레[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9. 벨기에 할레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브라반트 고딕 양식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1341년부터 1467년 사이에 건축되었다. 수직선을 강조한 탑과 섬세한 창호, 부드럽게 흐르는 석조 리듬이 특징이다. 외벽의 곡선 부벽과 창틀의 비례는 장식보다 균형미를 중시한 브라반트 장인의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각 나라의 국기와 수도를 잘 외웁니다. 삼색기가 워낙 많아 헷갈릴 법도 한데, 묘하게도 색과 모양만으로 구별해 냅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과 달리 색과 형태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유럽의 삼색기는 모두 같은 듯 보이지만, 각기 다른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세로형 파랑·하양·빨강은 혁명의 이상을, 독일의 검정·빨강·노랑은 민족의 자유와 통일의 염원을 상징합니다. 오늘 소개할 나라인 벨기에의 검정·노랑·빨강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던 때, 독립군이 들었던 깃발의 색에서 유래했습니다. 1830년 여름, 브뤼셀에서 민중들은 지금의 벨기에 국가인 ‘브라반트인의 노래’를 부르며 브라반트 공국의 황금 사자 문장(紋章)에서 따온 색으로 된 삼색기를 흔들며 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브라반트는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에 걸친 지역입니다. 브뤼셀을 중심으로 루벤과 메헬런 같은 상업 도시들이 중세 길드와 대학, 교회와 수도원으로 형성된 자치의 전통 위에서 북해의 중요한 허브로 발전했지요. 그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은 도시 공동체의 정체성이자 버팀목이 되었고, 그 신앙이 켜켜이 쌓인 대표적 도시가 할레입니다.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의 종탑. 회백색 사암으로 만든 정사각 형태의 71m 높이 5층 탑이다. 꼭대기 층에는 54개의 종으로 구성된 카리용이 있다. 탑 안쪽 정문 위에 있는 성모상은 원래 성당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반트의 성모 성지 할레 브뤼셀 인근의 할레는 센강 상류의 마을로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부터 여러 도로가 이곳을 지나쳤습니다. 7세기 몽스 수도원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면서 일찍이 성모 신심이 싹텄습니다만, 본격적인 성모 공경은 13세기 후반에 시작됩니다. 튀링겐의 성 엘리자베트가 브라반트 공작 딸에게 선물한 성모자상을 성당에 모시게 된 것을 계기로 할레는 성모 성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지요. 1335년 아비뇽에 모인 18명의 주교가 할레 순례자들에게 40일간의 대사를 부여하기로 합의할 만큼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1344년에는 순례자 사목을 돕기 위해 ‘성모 마리아 형제단’이 설립됩니다. 형제단의 기록부에는 이곳에서 성모님의 은총으로 일어난 59개 기적이 담겨 있습니다. 중세 초 형제단은 길드 중심으로 형성되어 성당이나 수도원 일을 돕거나 후원했는데요, 오늘날 본당에 있는 평신도 신심 단체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성모 마리아 형제단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형제단 중 하나로 지금까지 대축일에 성모자상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세례당의 공 모양 탑과 세례대. 구체는 1440년경 제작된 것으로 뒤편 장식벽 뒤 남쪽 통로 다락방을 지나 성당 밖으로 나간 뒤 들어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이를 몰라 사람들이 이곳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 브라반트 고딕의 정형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브뤼셀을 벗어나면 이내 기차 창밖으로 좁은 하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이 펼쳐집니다. 붉은 기와지붕의 농가, 밭두렁을 따라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는 브라반트의 전형적인 풍경이지요.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곧 할레역입니다. 역에서 나와 센강을 건너 도심 쪽으로 걸어가면 큰 광장인 ‘그로트마르크트(Grote Markt)’가 나옵니다. 시청 맞은 편에 회백색 사암의 묵중한 종탑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납니다. 14·15세기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입니다. 종탑 옆에 공 모양의 슬레이트로 덮인 구조물은 세례 당의 탑 역할을 합니다. 브라반트 고딕 언어로 세례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표현하려 한 것 같습니다. 탑 내부로 들어가는 길이 외부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로여서 실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쫓기던 사람들을 구원하는 은신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쪽 포털로 들어가겠습니다.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님을 묘사한 팀파늄이 있는 문입니다. 성당 안의 공간은 높고 길게 뻗어 있지만, 양쪽은 어둡고 중앙 통로만이 밝게 빛나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대 중앙으로 향하게 됩니다. 높이 솟은 기둥들이 팔각형 기둥머리를 지나 교차 아치 천장으로 이어지고, 교차점마다 장미와 잎 무늬, 성인상의 작은 부조가 있습니다. 브라반트의 석공들이 다듬은 돌을 통해 소박하지만 단단한 신앙의 미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바실리카 주 제대와 할레의 검은 성모자상. 내진 기둥에 열두 사도 조각상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성모 마리아의 신비와 성경 속 장면들, 성 마르티노의 생애가 묘사되어 있다. 목각 성모자상은 높이 95cm, 폭 25cm의 크기로 원래 은도금 조각상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튀링겐의 성 엘리자베트가 브라반트 공작에게 선물했고, 훗날 공작 딸인 마틸다가 1267년 당시 성모 소성당에 봉헌하면서 순례가 시작됐다. 트라제그니 소성당의 성 마르티노 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제단은 1533년 카를 5세 황제가 얀 모네에게 주문 제작한 것으로 일곱 성사가 메달 형식의 제대화로 묘사되어 있고, 그 위로 성 마르티노와 교부들, 복음사가들이 조각되어 있다. 신앙의 지킴이 ‘검은 성모자상’ 성당 곳곳에 성모님의 상징인 ‘신비스러운 장미’가 보이지만, 주역은 주 제대의 ‘할레의 검은 마돈나’입니다.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님 모습인데요. 둘 다 왕관을 쓰고 있지만 모자간 친밀한 유대감이 물씬 드러납니다. 성모자상은 부분적으로 은으로 덮인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검게 됐을까? 할레는 1489년·1580년 두 번의 포위 공격을 받았는데, 전승에 따르면 기적적으로 성모님이 나타나 포탄을 옷으로 받아내면서 도시를 보호했다고 합니다. 그때 시커먼 포연에 휩싸였기에 검게 됐다는 거지요. 당시 멀쩡한 포탄 30발이 현재 성당 종탑 아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향 연기와 산화로 표면이 그을어 검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신자들은 그 변화를 하느님의 표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이런 신심 덕분에 15세기 중엽에는 교황청에서 대사를 부여할 만큼 순례 열기가 높았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맞부딪힌 최전선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북부는 신교 지역이 되었고, 1566년의 성상 파괴로 플랑드르의 많은 도시에서 성상·제대·유리가 훼손되었습니다. 전에 소개한 스헤르펜회벨 성지는 그 재건의 상징이었죠. 이와 달리 남부 브라반트 지역은 가톨릭 신앙을 처음부터 지켜냈고, 할레의 성모자상도 공동체의 보호로 무사했습니다. 역사 서술은 몇 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의미의 층위는 깊습니다. ‘지켜냈다’라는 기억은 이후 공동체의 정체성이자 힘이 되었고, 대축일마다 할레의 광장은 전례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지켜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순례 팁> ※ 브뤼셀에서 할레까지 약 20㎞로 기차로 20분, 역에서 바실리카까지 도보로 10분. 브라반트 풍경을 즐기려면 버스 이용.(No. 170~ 172, HALLE Basiliekstraat 하차) ※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10:00·18:00, 평일 08:00. 성당 옆 순례자 센터, 바실리카 지하 소성당에 박물관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11.05
![[제13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 아들의 선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03/Hqq1772524588293.jpg)
[제13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 아들의 선물전진숙(아녜스, 제주교구 연동본당) 구글 제미나이 제작 아침 출근길, 회사가 가까워지면 비행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바다도 보인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서 산다. 이주한 지 13년이 넘어간다. 이사를 하고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은, 연고가 있어서 왔느냐는 것이었다. 아는 이가 없이는 쉽게 올 수 없는 곳이 제주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구역 미사를 우리 집에서 드리면서, 가족을 만들어 주기 시작하신 주님의 계획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아들 라파엘은 33개월에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아들에게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십 년에 100㎞씩 수도권에서 멀어지면서 살면, 노후 걱정할 거 없다는 선배의 조언도 한몫했다. 결혼이 늦어져서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 드렸다. 늦었지만 짝을 만나게 해주시고 딸 요안나가 태어났다. 요안나가 13개월 되는 해에 남편이 2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혼자서 키우느라고 힘들었다. 아기들은 아프면서 자란다고 하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요안나에게 일어났던 일은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TV 앞에서 흥이 나서 춤을 추다가, 무릎 위로 순식간에 TV가 떨어졌지만 무사했던 일, 저녁밥을 먹다가 갑자기 콘센트에 포크를 꽂아서 정전이 되었지만 감전되지 않았던 일, 친구들이 놀러 와서 배웅하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안겨 있던 딸아이가 문 사이에 손을 넣었지만 무사했던 일 등에는 항상 주님께서 함께 계셨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연수가 끝나고 둘째를 가지려고 할 때는 두려움이 컸다. 5년이라는 터울 때문보다는 태몽이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넓은 들판을 걷고 있는데, 꽃들이 모두 시들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정상 위에 활짝 핀 꽃 무리가 있기는 했지만, 아이가 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몽이 아이의 미래를 모두 알려 준다고 믿지 않았지만, 엄마로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들 라파엘이 태어났다. 모두 정상이었다. 옹알이도 잘하고 눈 맞춤 역시 잘하던 아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여름 캠프를 다녀 온 딸 요안나가 가족들에게 옮긴 유행성 결막염을 앓고 난 후였다. 아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라웠다. 아시시 프란치스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특수교육기관을 구역 모임 중에 알려주셨다. 원장 수녀님께서는 특수교육을 전공하셔서 가족, 특히 형제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방학 기간, 글짓기 지도를 해서 문집을 만들고 나눔을 했다. 딸 요안나의 글을 읽어보시고 수녀님께서 후원자들에게 보내주고 싶어 하셨다. 문집의 내용을 읽은 후원자들의 기부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이 일어났다. 아들 라파엘이 교육을 받는 내내 위로를 받았다.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자, 웃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많이 힘들지?’하는 주님의 음성을 느꼈다. 삶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와 아쉬움이 따르지만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셨다. 잘했고, 잘하고 있다는 말씀이 들려왔다. “당신이 도우시면 살아나리이다”라는 시편 성경 말씀이 가슴에 꽂혔다. 올해로 아들 라파엘은 36살이 되었다. 자폐증의 증세는 다양하다. 의사소통의 장애, 의미 없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또래 관계 형성을 못 하고 한정된 관심사에 몰두한다. 아들의 경우는 숫자에 집착했다. 그래서 집에 달력이 넘쳐났다. 매일 한 장씩 넘기는 365일 만년력, 탁상달력, 벽에 거는 달력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달력을 넘기면서 숫자를 보기 때문에 달력의 기능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발하러 가는 곳에서도 탁상달력을 넘기고, 문이 있는 곳은 다 열어 본 뒤에야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원하는 층으로 될 때까지 아파트 현관 출입구를 떠나지 못한다. 감사하게도 주민들께서 이해해주신다. 아들이 안 보이면 가족처럼 같이 찾아주시기도 하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들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아들과 내가 바뀌어서 마음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주간활동센터 자원봉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여름 캠프로 3박 4일 길게 지내다 오는 프로그램이 잡혀서 걱정이 앞섰다.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적어드렸다. - 라파엘의 식습관은 선비기질이랍니다. 먹기 싫으면 굶습니다. 그렇지만 감자 앞에선 무너집니다. 선생님의 감자 반찬은 양보하셔야 할 거예요. - 경직되고 땀을 흘리면 놀랐다는 뜻이랍니다. 깊게 안아 주시면 진정됩니다. - 선생님의 귀밑머리를 넘겨드리면, 고맙다는 표현이에요. - 밤에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베개를 뒤척여주시면 괜찮아집니다. 말로서는 소통할 수 없었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아들의 속내를 알 수 있어서, 캠프 기간 내내 행복했다고 하셨다. 아들로 인해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음이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진단을 받고 상심이 컸다. 그렇지만 아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두근 두근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봤다.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소리로 답한다.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하다. 비극에서 낙천의 보석을 골라내는 작가의 통찰력을 배우고 싶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들로 태어나서 아들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제주의 바람은 어떻게 느껴질까. 수면 내시경까지 하면서 겨우 꺼냈던 감자탕의 돼지 뼈를 왜 다시 먹으려고 했을까. 탄력을 잃어가는 엄마, 아빠의 피부를 만져 보는 것은 슬픔을 표현한 것일까. 늘 해오던 틀로부터 훌훌 빠져나올 때의 홀가분함을 외면하는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의 가족이어서 행복했을까.’ 2년 전부터 아들 라파엘은 주간 활동센터에서 주간 단기 보호시설로 옮겨서 다닌다. 다른 이용인들은 2주에 한번 집에 오지만 우리는 매 주일마다 오게 한다. 주간활동센터는 매일 집으로 오기 때문에 가족을 만날 수 있지만, 단기 거주시설은 4박 5일을 센터에서 있다가 주말에 오기 때문에 적응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마침 딸 요안나가 서울에서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제주에 오기 전 분당성당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해서 청년 회장까지 하면서 봉사를 많이 했다. 동생이 자폐라는 것을 청년회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제주와는 달리, 분당성당은 장애주일학교가 운영되어 아들 라파엘이 성당에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주일이면 주보를 챙기는 것이 아들의 기쁨이었다. 그렇지만 청년회 회장을 할 때 모든 것을 지켜보던 청년이 딸의 배우자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우리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여 지내는 기간, 사위가 될 청년은 결혼을 미루고 딸 요안나가 다시 서울로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동생이 자폐증을 앓고 있어서 결혼 상대를 만나는 데 생각이 많았던 딸이었다. 주님께서 준비해놓으신 짝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면서 늘 함께 계심을 깨우쳤다. 요안나가 다시 서울로 가서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들 라파엘을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단기 거주시설로 옮기게 하시고 적응하는 연습까지 하게 하신 주님의 치밀한 계획이 놀라웠다. 단기 거주시설에 입소한 후 월요일이면 오전 9시에 아파트로 셔틀버스가 온다. 창문을 통해 엄마·아빠를 쳐다보는 아들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굳어져 있음을 느꼈다. 아들을 보내고 다음 주 4박 5일분의 복용 약을 준비하면서, 늘 화살기도는 바친다는 남편이 종일 울적해했다. 부모가 점점 늙어가는데, 아들이 굳은 표정으로 가니깐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자,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양치질을 하고 나오다가 눈 옆을 다쳤다고 하시면서 사진을 보내셨다. 서둘러 비상약을 가지고 센터로 갔다.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크게 다치지 않음에 감사를 드린다. 다른 이용인들은 2주에 한 번 집에 오지만, 매 주일마다 오게 하길 잘했구나 생각한다. 아들보다 남편 베드로가 더 행복해한다. 작년에 남편 베드로가 신장암 수술을 받으러 갔다. 수술을 받기 전에 라파엘을 보여주려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아들 라파엘이 아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남편은 주님께서 만져주시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삶의 문제들은 늘 믿음을 시험한다. 두려움이 있을 때, 믿음으로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믿음에 아무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짧은 한마디보다 아들의 손길이 기도였다고 한다. 원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순간,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체험을 한 남편이 부러웠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확실히 익히게 해준 아들과 만나는 기쁨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한다. 어려운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기도하는 마음도 변화시키는 체험을 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기도로 문제를 다스리는 삶보다 문제가 없는 삶을 원한다. 언제쯤 문제가 해결되나 이런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겸손한 마음을 자리 잡게 한 아들이 놀랍기만 하다. 언제나 문제 해결은 예수님이 하신다. 예수님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을 때,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지 않았던가. 하인들이 안 것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 하인들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분인지 함께 기뻐하라고 하신다. 아들 라파엘의 손길로 두려움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깨닫고 나니, 아들이 자꾸 보고 싶다고 한다. 자녀의 상황이 어렵다고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면 대화가 안 된다. 문제만 생기면 삶 전체가 흔들리고, 쉽게 무너져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일상의 안정감은 기도하며 크고 작은 문제에 응답을 받고 계속 살 힘을 얻는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삶이 되면서,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하게 되었다. 아들의 옷을 자주 구매하는 매장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어서 문의했다. 넓은 매장이어서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매장이 넓어서 장애인 주차구역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한 행정 담당자에게 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 되물었다. 그리고 장애인 주차구역이 설치되었다.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을 때 오는 두려움에 담담해진다. 아무도 따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냥 판단하고 넘어간다. 정말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지혜를 주신 주님이 놀랍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지만 담담함과 담대함이 부어진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주님께 의지하니 고난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려는 차분한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다. 하루가 길었다.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들 때문에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빛나고 있는 내일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비록 고단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틈새로 들어온 삶의 기쁨이 아들 라파엘이라고 주님께서 알려 주신다. 신이 다 돌볼 수가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우리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가족이다. 이제,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기다림에 맡긴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 행복을 선택한다.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삶을 잊고 살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니 감사로 모든 문을 열어 보라고 하신다.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준 아들의 선물이 고맙다. 찬송가 1번 ‘나는 굳게 믿나이다’를 아들 라파엘이 틀어준다. 아멘! 전진숙 아녜스cpbc2026.03.03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분[저는 믿나이다] (39)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가현 이단자들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라고 가르쳤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르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귀를 막으십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시고 마리아에게서 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셨으며 참으로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 하시고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것들이 보는 앞에서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으니 예수님은 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졌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그분을 통하여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분을 떠나서 우리는 참 생명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무신론자, 곧 믿지 않는 이들은 그분이 수난하신 것은 가현(假現)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실상 가현적인 사람은 바로 그들입니다. (⋯) 정말 그렇다면 저는 헛되이 죽는 것이고 주님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트랄레스인들에게 보낸 편지」 9―10장, 박미경 역주, 교부 문헌 총서 13 「일곱 편지」, 분도출판사) “여러분은 예수 가현 이단자들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만나는 일조차 없도록 하십시오. 다만 저들이 어떻게든 회개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만, 우리의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안에서는 될 수 있습니다. (⋯) 저들은 우리에 관해서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저를 칭찬한다 할지라도 나의 주님께서 육신을 지니셨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모독한다면, 그것이 저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지요? 예수께서 육신을 지니셨음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그분을 부인하는 자이니, 오히려 그야말로 주검을 지니고 다니는 자에 불과합니다. (⋯) 예수 가현 이단자들은 성체와 기도를 멀리합니다. 저들은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체야말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수난 하신 그리스도의 살이요, 아버지께서 자애로이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살인데도 말입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4―7장, 같은 책)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예수님은 인간으로 강생하지 않고 단지 인간처럼 보이게 육신을 빌려왔을 뿐이며, 그가 겪은 십자가 수난의 고통 역시 가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가현론자들에 맞서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신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에보디우스에 이어 제3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사목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그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요한 사도의 직제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고, 교회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교회’라는 표현을 쓴 인물입니다. 그는 105~135년 사이에 로마에서 맹수들의 먹이가 되어 순교합니다. 그는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다”(콜로 2,9)는 교회의 신앙 고백을 순교로 증언했습니다. 바오로와 요한 사도의 영향을 받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예수님을 “육신이 되신 하느님”이라 표현하며 ‘참인간’이심을 단호하게 증언합니다. 그는 참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인간 본성을 취하시어 ‘강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있어 가현론자들처럼 하느님의 강생을 부인하는 것은 구원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공고히하기 위해 “아버지와 우리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서두 인사에서)라 고백하면서 그리스도께 완전한 신성을 부여합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분이시며 마지막 날에 오실 분이라고 밝힙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6,1 참조, 같은 책)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언급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신다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성부·성자·성령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성 이냐시오의 가르침은 가현론자뿐 아니라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에우티케스주의나 인성만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단죄하고, 예수 그리스도 한 위격(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구별 없이 동일하게 결합돼 있다는 칼케돈 공의회의 신앙 고백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12

하느님의 사랑 아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9) 코헬렛 코헬렛은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성실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8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행렬하고 있다. OSV 구약 성경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코헬렛’을 성문서로 분류해 ‘아가’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뜻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다만 회중을 모으거나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무를 맡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코헬렛을 ‘Εκκλησιαστηs’(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회중을 가르치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 명칭을 그대로 계승해 코헬렛을 ‘Ecclesiaste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구약 성경 제1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코헬렛’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성경 분류법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분류해 놓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번역해 표기한 바 있습니다. 책 이름이 코헬렛으로 불린 이유는 표제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코헬 1,1)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이 노년에 코헬렛을 지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솔로몬’뿐이기 때문입니다.(코헬 1,1. 12 참조) 하지만 코헬렛의 실제 저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인 기원전 3세기께 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에 아람어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가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났던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편집된 집회서의 저자가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고(집회 14장 참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제작된 쿰란 필사본에 코헬렛의 몇 구절이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코헬렛이 실제 저자에 의해 최종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코헬렛은 표제(1,1)와 머리말(1,2-11), 코헬렛의 자기 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1,12─2,26), 인간 현실의 부정적 면과 한계(3,1─6,12), 인간 실존 문제들(7,1─12,8), 맺음말(12,9-14)로 구분됩니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12,8) 이처럼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허무라고 합니다. ‘허무’로 표현되는 히브리말 ‘헤벨’은 본래 ‘숨’, ‘입김’, ‘실바람’을 뜻합니다. 추상적으로는 ‘허무’, ‘허망’, ‘무상’, ‘덧없음’, ‘공허’, ‘헛됨’을 의미합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헤벨의 숨은 뜻입니다. 헤벨은 곧 사라질 것 같은 무상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곧 히브리어 헤벨은 생의 갖가지 요인(부귀, 명예, 쾌락 등)이 숨처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숨과 마찬가지로 찰나적이어서 찰나적인 것을 삶의 본질인 양 좇고 영원히 소유하려는 노력만큼 무상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80쪽) 코헬렛은 그러면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들어 설명합니다. 코헬렛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합니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더 행복하고, 이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합니다.(4,2-3) 코헬렛은 또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며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를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헬렛은 ‘즐김’은 삶의 본질과 진수를 누리며 현재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ㄴ)며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정리하면, 코헬렛은 단순히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성실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성실해야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에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15

진심으로 뉘우친 죄 고백하고 용서받는 은총의 성사[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5) 고해성사 고해성사는 죄 때문에 받을 벌을 면제해 주고,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힘을 키워줍니다. OSV 고해성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예식입니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불완전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가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함으로써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죄 때문에 받을 벌을 면제해 주고, 죄의 유혹과 싸워 이길 힘을 키워줍니다. ① 고해성사의 성경적 근거 구약시대 - 구약 성경은 전체가 하느님 자비하심에 대한 백성들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원조가 죄를 범한 후에도 사랑을 거두지 않고, 구세주를 약속하셨습니다. 요나서에선 뉘우치는 니네베 사람들에게서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뉘우치는 표시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했으며, 공적 예배를 통해 참회와 함께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바쳐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했습니다. 신약시대 - 고해성사는 예수님 부활의 저녁 사건에 그 기원을 둡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포에 떨고 있는 사도들 가운데 나타나 평화의 인사를 나눈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신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해성사 때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죄의 용서 역시 하느님께서 직접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②고해성사의 준비 성찰 : 하느님과 이웃과 나 자신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잘못한 일들을 반성합니다. 행해야 할 사랑이나 선에 대한 결핍이나 회피한 일은 없는지 반성합니다. 통회 :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을 더럽히고,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음을 아프게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합니다. 완전한 통회 :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두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통회를 말합니다. 소죄를 용서해 주며, 되도록 빨리 고해성사를 받겠다는 굳은 결심이 포함된 경우 대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통회 : 통회 그 자체로는 소죄의 용서가 가능하지만, 대죄의 용서를 얻진 못합니다. 고해성사로 용서받도록 준비시켜 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452~1453항 참조) 결심 :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입니다. 통회와 결심은 함께 이뤄집니다. 통회에 결심이 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통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석 :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에게 끼친 손해를 갚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합당한 태도를 다시 갖추려는 것입니다.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③특수한 고해성사 첫 고백 : 세례성사를 받은 후 범한 죄를 처음으로 고백하는 성사입니다. 판공성사 : 한국 교회는 적어도 1년에 두 번, 주님 성탄 대축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에 고해성사에 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성사표를 발부하는데, 교적에 성사를 받았는지 사실을 기록해 사목 자료로 삼습니다. 총 고백 : 이미 고백한 죄이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결혼 전이나 서품·서원 전, 임종 등)에 다시 고백해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모(冒)고백 : 솔직한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과 교회를 속이고 성사를 모독하는 행위를 모고백이라 합니다. 진정한 성찰과 통회 없이 고해성사에 임할 때 이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5.01.14

언론 오보, 동성애자 사제품 허용 논란 일으켜교회, 동성애 성향 지닌 이들 신학교와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어 최근 국내외 언론이 가톨릭교회가 동성애자들도 사제가 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오보를 전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OSV 국내외 언론 이탈리아 주교회의 ‘신학생 양성 지침과 규범’ 오보 외신, 문구 왜곡에 동성애 사제 옹호 글 인용으로 논란 일파만파 교회, 동성애 성향 지닌 이들 신학교와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어 최근 교황청이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발간한 「이탈리아 신학생 양성을 위한 지침과 규범」을 승인한 소식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국내외 상당수 언론이 “동성애자도 사제가 될 수 있다”고 잘못 보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탈리아 교회는 즉시 반박했지만 논란은 확산된 뒤였다. 언론들이 왜곡, 오보한 부분은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승인받은 지침과 규범의 44항의 일부다. “양성 과정에서 동성애 성향을 언급할 때 식별의 측면으로만 이 주제를 축소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후보자가 전체적인 그림에서 이 의미를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서적-성적 영역에서 사제 후보자 양성의 목적은 독신 생활의 순결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있다”는 문장이다. 그러나 실제 44항의 앞선 문장들을 보면, 신학교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나 교육 과정 중에 발견된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 동성애 행위를 하거나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신학교나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일부 외신들이 전체 맥락은 빼놓고 이어지는 문구의 일부 표현만 따로 뚝 떼어 보도하다 문헌의 내용과 반대되는 사실을 보도했고, 이를 국내 언론들도 제목까지 그대로 전하면서 교황청이 동성애자들도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승인했다는 식으로 옮긴 것이다. 더불어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미국의 한 신부 글을 외신들이 인용하면서 일파만파 논란이 됐다. 결론적으로 가톨릭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지녔거나 행위를 하는 이를 사제로 서품할 수 없다. 이탈리아 주교회의의 이번 지침도 교황청 성직자부와 가톨릭교육성(현 문화교육부)이 과거 문헌을 통해 밝힌 “동성애 성향을 지니거나 행위를 하는 이들에 대해선 신학교와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을 반복해 게재한 것이다. 신앙교리부가 1975년 발표한 ‘성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도 “객관적 도덕 질서에 따르면 동성애 관계는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이 결여된 행위이다. 이는 성경에서 심각한 타락으로 단죄되었고, 하느님을 배척하는 슬픈 결과를 자아내는 것으로까지 제시된다”고 밝히고 있다. 방종우(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신부는 “논란이 된 문장은 지원자들이 독신과 순결의 의미를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성자가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 가르침과 동성애 문제는 꾸준히 논란이 돼오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윤리적 문제가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 신부는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동성애는 분명 객관적 무질서에 해당하며, 성경에서도 ‘비역’(남성 간 성행위를 낮춰 부르는 말)으로 지적하지만, 현대 문화 안에서 동성애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여겨지고, 성향과 행위를 구분하는 교회 가르침 또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나, 분명한 왜곡”이라고 밝혔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선천적 동성애 성향에 대해선 당장 죄로 보지 않으나, 행위에 대해선 죄악으로 여긴다. 하느님의 계명 아래 교회가 가르치는 진정한 사랑의 숭고한 행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방 신부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간청하는 믿음」을 통해 동성애자 축복을 허용한 것은 하느님 사랑을 전달하는 의미이지 동성애 행위 자체를 축복하거나 승인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교회는 그들이 지닌 아픔과 시선을 통감하며 그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차별하고 혐오하는 문화에는 함께 맞서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회 가르침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공격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면서 “교회는 절대 차별이나 혐오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하느님 뜻을 성실히 따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5.02.04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거룩하게 일치시켜주시는 성령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6/02/qFY1748846976523.jpg)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거룩하게 일치시켜주시는 성령님이계철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로 50일간의 부활 시기를 마칩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제대 주위를 밝히던 부활 성야 때 축성된 부활초도 이제 거둬들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영원한 생명의 보증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부활이 완성되고 충만해집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많은 신자분들은 성부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이시요, 성자께서는 아들 예수님이시라면, 성령께서는 어떤 분이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합니다. 성령께서는 성자와 똑같은 위격을 가지신 독립된 분이시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함께 뿜어나오는 기운이요, 영이며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아드님을 아드님답게 하는 능력이십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숨결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성령께서는 똑같은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이십니다. 그리고 더 가까이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생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과거 미사통상문의 사제 인사 부분에는 성삼위를 매우 잘 표현하였습니다.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즉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은총으로 구원하셨으며 성령께서는 거룩하게 일치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승천하신 후에도 하느님의 새로운 모습으로 제자들 곁에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육신을 볼 수 없게 되었어도 주님께서 계실 때와 똑같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함께하시기 위해서 성령께서 오셔야 했습니다. 따라서 육으로 오신 사건이 성탄이라면, 영으로 새롭게 오신 사건이 성령강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더 사랑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모든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고 그리스도 중심이 되게 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시지만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해 하나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을 통한 일치는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저마다 안에 계시는 수많은 하느님의 능력을 인정하며 섬기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입니다. 실제 주님께서 ‘곁에’ 계실 때보다 ‘안에’ 계심으로써(즉 성령 강림을 통해) 제자들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 강림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메시아이심을 선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일을 교회의 창립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실패로 보여졌지만 부활의 승리를 이루셨고, 제자들도 스승을 배반하고 두려움에 숨어버렸지만 성령 강림으로 복음의 선포자로 월계관을 쓰게 되었듯이 우리도 생활 속에서 성령 안에 말씀을 실천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을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알며,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의 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제 성령 강림 대축일로 부활 시기를 마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됩니다. 연중 주간에는 일상에서 항상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묵상하며 체험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세상에 복음을 실천하며 사랑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계철 신부cpbc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