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3)롱랑 조페 감독 '미션' 1.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Mission, 1986, 125분)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 두 개의 플롯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진다. 전반부는 멘도자의 범죄-속죄-용서를 통한 개인의 회심과 변화 과정을 담고 있고, 후반부는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수도회 신부들이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을 수난극 형태로 담고 있다. 이 후반부 플롯만 놓고 보면 요즘 절찬리에 상영 중인 '신과 인간'(Of Gods And Men, 2010)과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닌다. '미션'의 전반부와 후반부 두 플롯에는 코린토1서 13장 1??13절에 나오는'사랑'과 요한1서 4장 16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성경 구절이 각각 나온다. 궁극적으로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각기 다른 이 성경구절이 영화 '미션'을 감동으로 이끄는 전정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참된 속죄와 참회, 하느님께 맡겨진 것 2. '미션' 전반부는, 라틴 아메리카 선교에 나선 성 카롤로스 선교회 소속 가브리엘 신부가 몇몇 동료 신부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죽음으로 끝난, 이과수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족에 대한 선교에 성공하면서 진행된다. 동시에 가브리엘 신부는 그곳에서 자신과 정반대로 과라니족을 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용병 출신 노예상인 멘도자와 대립한다. 그런데 노예상인이던 멘도자는 어느날 자신의 약혼녀와 남동생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알고 상심하던 중에 결투를 신청한 동생에게 격분해 그만 동생을 죽이고 만다. 결투를 해서 죽였기에 감옥에 갈 일은 없었지만 그는 동생을 죽인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도원 독방에 들어가 굶어죽으려 하다가 때마침 가브리엘 신부를 만나 속죄와 참회의 길을 걷게 된다. 용병으로서 자부심의 상징들이었던 칼과 투구 등을 짊어지고 그 자신이 노예로 팔아넘긴 과라니족에게 가는 것이 멘도자의 속죄 여정이었다. 너무 힘들어 가다가 그만둘 가능성이 있고, 설사 폭포 위 과라니족에게 간다 하더라도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과라니족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과라니족에게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멘도자는 속죄 길에 오른다. 멘도자는 힘겹게 폭포 위를 향하다가 무거운 짐 때문에 밑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웠던 요한 신부가 가브리엘 신부에게 찾아와 멘도자의 짐을 풀어주자고 요청한다. "속죄는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생각입니다"라는 요한 신부의 말에 가브리엘 신부는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다면, 저도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신부님, 하느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하고 답변한다. 가브리엘 신부의 이 대답에는 '충분한 참회'에 대한 판단은 자기 자신의 결정이나 다수결에 의한 합의가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마침내 가브리엘 신부 말대로 멘도자는 과라니족 앞에 서게 된다.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맡긴 채. 과라니족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가족을 잡아갔던 원수, 멘도자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적대감을 표하지만 하느님 사랑으로 마침내 그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인다. 용서의 손길을 내민 것은 멘도자 자신도 그를 지켜본 신부들도 아니었다. 그를 원수처럼 여겼던 과라니족이었다. 하느님 뜻에 맡긴 용서가 과연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온 것이다. 과라니족에게서 복수가 아닌 용서를 받게 된 멘도자는 마침내 북받치는 눈물과 함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이 지점에서 영화 '미션'은 전반부를 마무리하면서 범죄와 속죄, 회개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예수회 수사가 되어가는 멘도자를 통해 코린토1서 13장 1??13절을 인용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라는 구절을 강조해 인용하는데, 이는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은 '사랑'이라는 전반부 플롯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비폭력 저항으로 그려낸 '복음적 사랑' 3. 영화 전반부가 한 인간의 회심 과정을 다루는 회심극의 플롯이라면 후반부는 과라니족 그리고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선교사들이 겪는 수난극의 플롯이다. 영화 배경이 되는 1750년쯤의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의 식민지 상황이었다. 당시 식민지 영토 확장 경쟁을 벌이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 오지에 있는 그들의 영토 경계선을 어떻게 그을지에 대해 합의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럽 한 구석의 탁자 위에서 그은 선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그은 경계선에 따라 선교사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선교지가 당시 악명 높은 노예 제도를 합법화한 포르투갈에 편입되고 만다. 그러자 원주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교황청에서는 선교사들에게 원주민 곁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땅이 초토화되는 것을 묵인하고 떠나라는 교황청의 결정에 갈등한다. 하지만 교황청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멘도자는 이미 수사가 됐지만 순종의 맹세를 깨뜨리고 과라니족과 함께 싸울 것을 택한다. 그러자 그를 과라니족에게로 이끌었던 가브리엘 신부는 요한1서 4장 16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 손을 피로 물들이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이미 목숨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가브리엘 신부 또한 교황청의 철수 명령에 회의를 느끼고 마지막까지 하느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도 무기 없이 저항할 것을 결심한다. 동시에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멘도자가 축복을 받으러 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축복해 줄 수 없소. 당신이 옳다면 하느님이 지켜주시겠지요, 하지만 옳지 않다면 축복은 무의미합니다.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어집니다. 틀림없이 그럴거요. 나는 그런 세상에서는 살아갈 힘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성경구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는 자신의 동료가 된 멘도자와 대립되는 입장에 선 가브리엘 신부의 신념이자 신앙으로 인용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최종 목적은 똑같다.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들이 과라니족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저항'의 한 형태다. 다만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을 선택하고 멘도자는 폭력으로 대항하다 죽는 것을 선택한다. 그 사이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가 인용되고 있다.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듯이 가브리엘 신부는 성체강복과 현시를 하면서 행렬하다가 순교한다. 총을 맞은 멘도자도 고개를 들고 그의 죽음을 본 이후에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 가브리엘 신부가 선택한 것이 바로 복음적 방법임을 제시하려는 롤랑 조페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 성경구절은 영화 후반부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마지막에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는 추기경의 뼈아픈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겁니다."성경 구절 발휘한 영적 힘이 감동의 핵심 4. 지난해 2월, 1986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Golden Palm,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영화 '미션'이 뮤지컬로 리메이크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됐다. 그러나 초대형 작품이라는 화려한 소문과는 달리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고 급기야는 국내에서 사상 초유의 리콜사태를 맞았다. 늦게나마 '실력 있는(?)' 여배우로 여주인공을 바꾸고 배우들 숫자를 보강하기는 했지만, 그저 성의를 보이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다각적으로 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미션'이 주는 감동의 요소를 관객을 압도하는 이과수 폭포의 화려하고도 웅장한 장관이나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이 주는 감동에만 의존해 무대 위에서 재현하려 하면서 영화 이야기가 준 영적 감동에 대해서는 간과한 데 있지 않나 싶다. 비록 짤막한 성경구절이지만, 그 성경구절이 영화 속에서 마치 누룩처럼 발효되어 마침내 영화 전체를 아우르게 한 그 영적 힘을 무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뮤지컬이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춤과 노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영화 '미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은 이야기 흐름에 따른 성경의 적절한 인용과 배치, 그로 인한 화면과 음악의 절묘한 조화에서 오는 영적 감동에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이창훈2012.02.28
![[성경 속 궁금증] 31. 아론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323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1. 아론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이집트의 황소 우상숭배 모방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하느님을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림은 '금송아지 숭배' (니콜라 푸생 작, 17세기). 모세는 하느님 부르심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켰다. 그들은 이집트를 나온 지 석 달 만에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만을 시나이 산으로 부르셨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40일간 머물며 이스라엘을 대표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머물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모세에게 아무 소식이 없자 그 틈을 못 참고 불평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론에게 몰려가 자신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아론이 그들에게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들의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자, 온 백성이 저희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왔다. 아론이 그 금을 그들 손에서 받아 거푸집에 부어 수송아지 상을 만들자, 사람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아론은 이것을 보고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은 뒤, '내일은 주님을 위한 축제를 벌입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 번제물을 올리고 친교 제물을 바쳤다. 그러고 나서 백성들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탈출 32,2-6). 아론이 수송아지를 만든 것은 이집트의 우상숭배에 그 기원을 둔다. 구약시대 이집트에서는 동물 형태를 신으로 섬겼다. 그래서 이들은 신전에 산 짐승을 두거나, 동물 형상을 만들어 전시하곤 했다.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던 이집트 고센 땅에서는 황소를 우상숭배하고 있었다. 번식력이 강한 황소를 다산과 풍요를 주는 신으로 섬겼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이들의 황소 우상숭배 행위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없는 틈에 광야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며 소멸하지 않고 풍요를 제공해줄 신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옛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대부분 나무로 형태를 만들어 도금한 것이다. 탈출기에 등장하는 아론의 금송아지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는 모세가 우상을 부술 때의 행동에서 알 수 있다.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탈출 32,20). 이처럼 우상을 부술 때 먼저 우상을 불에 태운 뒤 두드리거나 압축해 조각을 내고 그런 다음에 갈거나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우상 속에 있는 나무를 먼저 태워 숯으로 만든 뒤에 도금한 금을 두드리거나 벗겨내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금송아지를 불에 태운 것도 모자라 그것을 마시게 한 것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세는 레위 후손들을 모아다 백성을 살해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백성 가운데에서 3000명 가량이나 쓰러졌다. 하느님께서도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사건으로 크게 진노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탈출 32,9)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탈출 32,35). 우상숭배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퇴사자22012.05.01
![[아! 어쩌나] 235.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남편](//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79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35.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남편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Q. 남편은 아직도 자신이 젊은 줄 압니다. 그리고 아주 잘 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는 직장마다 상사와 부딪쳐 몇 개월 못 보내고 계속 그만둡니다. 처음엔 남편 말처럼 직장 상사가 문제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얼마 다니지 못하고 몇 번이나 옮기는 것을 보면서 남편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남편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제대로 일도 못 하면서 늘 상사에 대한 불평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상사가 뭐라고 하면 발끈해서 직장을 그만두곤 했던 것입니다. 남편 나이 쉰이 다 돼 가는데 걱정되네요. A. 중국 고사에 바다를 지키는 신이 황하의 신 하백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개구리가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입니다. 우물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물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왜 그런가? 바로 '열등감'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마음의 상처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형제들 사이에서 치인 기억들, 그래서 생긴 자기 혐오감 같은 불편한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은 두 가지로 표출됩니다. 먼저 하나는 위축된 채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나 같은 건 죽어야 해' 하는 우울감 쪽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상대방의 단점을 물고 늘어지는 형태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사는데, 왜 상대방 단점만 물고 늘어지는가?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험담을 할 때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술을 마셨을 때에야 '살아나는' 사람들처럼 험담을 일삼는 사람은 험담을 할 때나 자신이 살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쉽사리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중독에 빠진 것이지요. 이러한 심리적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보지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를 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비참함으로 돌아가는 작업이기에 절대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거나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물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기에 남의 험담만 하면서 세월을 죽이는 것입니다. 흔히 어떤 공동체에서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없이 봉사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험담해서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들은 공동체의 암적 존재라고 합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생산적 삶을 사는 법,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고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는 법만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천덕꾸러기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자신감 부족입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흔히 우리가 탁상물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눈이나 입으로만 공부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그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전부인 양 하며,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혹은 자신의 단점을 알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마치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찬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1-35). 바로 열등감, 우물 안 개구리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질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는가?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루카 7,35)는 성경 말씀처럼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경험의 길, 수행의 길을 가야 합니다. 즉, 자신이 머무는 자리가 최상이 아니란 것을 알기 위해 마음도 몸도 공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성부께서는 성조들에게 늘 떠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늘 마음을 열고 공부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은 흐르는 물과 같아 사람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어서 아무도 마실 수 없고, 마시는 사람들은 탈이 납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cpbc2014.02.04
![[평화칼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4992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변승우 명서 베드로(평화방송 TV국장)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미사 중에 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살짝 궁금하다. 주님께서 단박에 나를 낫게 해주실 '한 말씀' 그 '결정적 힐링멘트'가 뭘까 하는 생각에 잠시 분심 아닌 분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당신 말씀 가운데 어느 한 마디 영혼의 완벽한 치유를 주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나의 우문(愚問)은 당연히 무지의 소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취향을 빙자해 복음서의 몇 장면을 떠올려본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며 예수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예리코에서 눈 먼 이에게 빛을 되찾아주셨을 때도(마르 10,52), 갈릴래아 인근에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뒤에도 똑같은 얘길 건네셨다(루카 17,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요즘 같으면 '네 믿음이…3종 세트'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검색어 1위를 독식할 법하다. 200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자. 불치의 병이 순식간에 사라진 최고의 클라이맥스에서 성자(聖子)는 기적의 이유를 당신 권능 때문이라고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 그 당사자들의 '믿음'이 치유의 동력이라고 하셨다. 드라마로 치면 엄청난 반전이요 감동의 명대사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은 어김없이 죄의 결과로 여겨졌다고 한다. 질병도, 장애도, 가난도, 천하게 태어나 차별 당하는 것도 모두 다 "내가 못난 탓"이었다. 그렇게 사람 취급 못 받던 이들이 예수를 구세주라고 고백한 후 육신이 나았다. 그러나 병의 완치는 은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분'이 속삭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대체 무슨 말인가? 운명을 거슬러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달라지게 하는 힘이 다름 아닌 '내 안'에 있으며, 그 힘의 정체가 바로 '스스로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순간 천형(天刑)처럼 견뎌온 굴종의 세월이 일거에 사라졌다. 병자들은 그렇게 '내 안'에 이미 역사하고 계신 하느님을 만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들은 아마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남은 생을 그 누구보다 당당히 살아냈을 것이다. "당신의 한 말씀으로 제가 온전히 나았습니다"라는 기도를 평생 잊지 않고서 말이다. 도미니코회 소속의 세계적 신학자 앨버트 놀란 신부(남아공)는 저서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 성경의 이 대목을 언급하며 '믿음'은 무기력한 숙명론을 이기는 힘이요,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동감한다. 하느님이 주신 축복된 DNA로 우리 안에 숨 쉬고 있다가 일순간에 발화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희망의 본체…. 그것이 곧 '믿음'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예수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으리라 확신한다.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신앙의 해'가 마무리됐다. 현대 사회의 숱한 질병에 감염된 우리네 믿음을 되살려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내달릴 진격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과학맹신주의, 세속주의, 상대주의, 물신주의, 개인주의…. 질환은 다양하고, 병세도 자못 위중해서 투병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병상을 털고 일어설 백신 또한 우리의 '믿음' 안에 이미 탑재돼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신앙의 해'를 발전시켜갈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 안에서, '믿음'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신 가장 빛나는 '축복'임을 확인할 수 있기를, 그 수혜자인 우리가 바로 세상을 변하게 할 희망의 주인공이란 진실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 말씀대로, 우리의 믿음이 결국 우리를 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cpbc2013.11.26

「복음의 기쁨」, 하느님 향한 영적 동행의 초대장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가톨릭·개신교 첫 합동 심포지엄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한 가톨릭과 개신교 합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청중들이 발제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가톨릭과 개신교의 학술 교류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개고리로 훈풍을 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권고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의 학술 교류가 물꼬를 텄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이자 기여는 전통적인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 이해에 그치지 않고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적 경계를 넘어 교회일치를 위한 다양한 주제의 학술적 대화가 다양하게 펼쳐질 전망이다.가톨릭대 신학대학ㆍ신학과사상학회 주최로 7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처음으로 열린 가톨릭ㆍ개신교 합동 심포지엄에서 이런 분위기가 극명하게 감지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복음의 기쁨」에 드러난 ‘교회 쇄신’과 ‘일치’, 그리고 공동선을 향한 복음 실천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라는 세 가지 큰 화두를 걸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격과 사상에 근거한 격의 없는 통합의 주제어들이 쏟아졌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에선 “하느님의 백성은 기도하였고, 추기경은 투표하였고, 하느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말입니다.” (조규만 주교) “성경 이외 책을 읽고 은혜를 입은 것은 「복음의 기쁨」이 처음이다.” (강성영 목사) “오늘 발표자로 나온 개신교 신학자들은 똑같은 옷만 입으면 구별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호 주교) 등 재치 넘치는 유머가 쏟아져 좌중을 웃기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교회 일치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복음의 기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고백했다. 박종천(감리교 신학대학교 총장, 세계감리교협의회 신학교육위원회 위원장) 목사는 “「복음의 기쁨」은 현존하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의 경계를 넘어 고대 그리스도교(초대 교회)의 복음적이고 교회 일치적인 신앙을 현대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참 목자’의 말씀”이라고 평가했다.「복음의 기쁨」이 발표됐을 때 18세기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 목사가 우리 시대로 다시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특권과 안일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목회(사목)와 선교에 실천했다는 점에서 두 지도자의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운철(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학과사상학회 회장) 신부는 “「복음의 기쁨」은 제도적인 교회관보다 하느님 백성의 교회관을, 전통 중심보다는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교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다른 종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복음적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부각시켰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 권고는 교리 중심보다는 케리그마(선포 내용) 중심으로, 윤리적 규범보다는 구원과 사랑 중심으로 복음을 전개하기에 그리스도교 내의 동일성이 차이보다 훨씬 두드러져 종파 간의 교리적 논쟁 여지를 별로 남겨놓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복음의 기쁨과 복음 선포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강성영(한신대 교수) 목사는 교회 일치 영성을 「복음의 기쁨」에 자주 나오는 ‘다른 이들’ 즉 타자에 대한 영적 감수성에서 찾았다. 그는 “「복음의 기쁨」은 다른 이들과의 만남에서 타자를 환대하고 타자와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함께 사는 신비’를 체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일치의 회심은 개인적 의미의 개종이나 종교적 회심과는 다른 의미로 타자와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더 나아가 생태계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태도의 근본적 변화”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복음의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을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 초청할 뿐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협력과 연대의 장으로 불러낸다”며 “하느님께로 향한 영적 동행은 전환기의 도전 속에 작아져만 가는 그리스도교가 인류의 일치와 구원을 감당할 만큼 더욱 커지는 길임을 알려준다”고 피력했다.▨교회 쇄신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교회 쇄신은 교회의 복음 선포 내용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파스카의 신비에 다시 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빛 속에서만 우리는 시대 징표에 대한 ‘복음적인 분별’(「복음의 기쁨」 50항)을 할 수 있다. 영적 세속화는 사목자가 성장 추구형 관리자로 실적주의에 빠져서 세속적인 성공에 매달리고 복음적 자세나 복음적 목표가 부재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백운철 신부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의 권고처럼 사제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복음적 회심’은 성령의 가장 위대한 은혜라고 한 박종천 목사는 “오직 성령 충만한 하느님 백성만이 ‘담대하게, 큰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또한 시류를 거슬러, 복음의 새로움을 선포할 힘을 가져’(「복음의 기쁨」 259항) 새로운 복음화로서 토착화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유석성(서울신학대 총장, 한국기독교회 회장) 목사는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 역할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것”이라며 “자기 희생, 나눔과 봉사의 실천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정의로 평화를 구현할 때 비로소 교회 쇄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선을 향한 복음 실천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복음의 기쁨」은 단지 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주는 일로 선교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복음의 기쁨과 생명이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복음화를 지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권고를 통해 선교란 인간과 문화를 복음화하는 포괄적 행위로 삶의 일상 자체가 선교 현장이며 특히 사회와 교회 변방으로 몰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래서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세상 안에서의 복음 실천을 ‘공동선을 향한 연대’로 인식했다.백 신부는 “「복음의 기쁨」이 추구하는 모델은 자본주의의 독재 권력에 대항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되, 기업가나 다른 기득권층에 배타적인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를 평화의 복음으로 선포하면서 모든 이들을 공동선 안에서 하나로 묶는 통합의 대안 사회”라고 설명했다. ‘신앙과 과학의 대화’에 주목한 백 신부는 “특히 생명에 관련해 양자 간의 대화가 요청된다”면서 신학자와 과학자들의 학문적 만남을 제안했다. ‘평화는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길’이라며 연대를 강조한 유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높이고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이뤄가는 것이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통합의 창출”이라고 했다.「복음의 기쁨」을 인용, “자유시장경제는 자본의 노동 착취나 권력의 시민 억압 문제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의 사회적 배제, 즉 배척과 소외를 초래하는 새로운 비인간적 체제”라고 진단한 강 목사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하느님과 윤리에 대한 거부’라고 단정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사회악과 생태악을 초래했다면서 「복음의 기쁨」은 정치,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사랑의 실천과 방향을 확대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는 생명 경제의 대항문화라고 말했다.▨행동하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격과 사상에 대해 발표한 이병호(전주교구장,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행동하는 교황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물속에 빠지게 해서 수영을 가르치는 것처럼 충격적이라고 설명한 이 주교는 “「복음의 기쁨」은 세상 끝날까지 유효한,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축사를 한 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주교도 “「복음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화의 모범이며, 교회의 첫째 의무가 복음 선포임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 문헌은 핵심을 놓치지 않고, 교황의 사목적 체험이 녹아 있으며, 교황 특유의 유머와 파격적 어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김희중(광주대교구장,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대주교도 축사에서 교회 일치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아니라면서 분열을 탓하기 전에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서로의 차이점보다는 신앙의 공통 유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cpbc2014.06.11
[출판]선교, 그 축복의 길- 가장 좋은 선교는 예수님처럼 복음 전할 일꾼 선발 양성 파견이재을 신부, 소공동체 모임 사목체험과 단상 담아 선교, 그 축복의 길(이재을 지음/으뜸사람/9000원) '사랑방 소공동체'로 복음선포 일꾼을 양성하는 데 힘써 온 이재을(서울대교구 공덕동본당 주임)신부가 펴낸 책이다. 인터넷 카페 '사랑방천주교 사랑나눔! 행복배가!'(http://cafe.daum.net/H-caritas)에 올린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사랑방 소공동체는 이 신부가 만든 소공동체 모임이다. 이 신부는 26년간 여러 본당에서 소공동체 운동, 성경 생활화와 공부, 봉사자 양성 교육, 구역ㆍ반 조직, 청년 공동체 등 다양한 사목을 시도해왔다. 물론 모두 성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각 세대와 계층, 현대 문화와 환경을 적절하게 아우르고, 새로운 사목과 선교 방법을 마련하는 데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이 신부는 해법을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과 방법'에서 찾았다. 홀로 활동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사도로 삼아 그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모습에서 교회의 미래 선교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 신부는 책 머리말에서 "오늘날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복음 선포 또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고 그들을 양성하고 파견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주님을 따라 걷는 길 △예수님의 계산법 △까치의 '떠남' 그리고 △이불의 고마움, 그 겸손 등으로 구성된 책은 이 신부의 사목 체험과 단상을 담고 있다. 이 신부는 "의미 있는 복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용기를 주고자 사목 현장에서 쓴 글"이라며 "복음 선포의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져 복음의 기쁨이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7.16
![[신앙의 재발견] <5>미사전례-시작예식 · 말씀전례](//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6727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재발견] 미사전례-시작예식 · 말씀전례 참회로 정화하고 성경 말씀 새겨듣고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나오는 신자들 중에는 습관대로 기도문을 외우며 전례에 참례하는 이들이 있다. 전례의 변화가 생기더라도 이유를 모르고 틀린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주례 사제와 신자들이 주고받는 미사 통상문의 의미와 전례적 흐름에 대해 알아보자. 기계적으로 행하던 미사 참례가 더욱 풍성한 은총으로 다가올 것이다. 입당 성가인가? 시작 성가인가? 사제가 제의방에서 제의를 입고 기도를 바친 다음 성당으로 들어올 때 부르는 성가이기에 '입당 성가'라고 부른다. 사제는 제단에 오르기 전 제대 앞에서 깊은 절을 하는데, 입당 성가는 사제가 제대에 이르러 절을 할 때 거의 끝나야 한다. 시작 예식은 사제의 성호경으로 문을 연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기도문으로 성부ㆍ성자ㆍ성령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축복의 인사를 건넨다. 다음은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고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사제는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하는 기도문을 바친다. '반성'의 의미는 죄를 알고 바꾸겠다는 결심이다. 신자들은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외친다. 하느님께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함에 있어, 나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제가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라는 전례적 사죄경을 바쳐 소죄가 사해지는 은총을 받게 된다. 사죄경은 고해성사 때에도 사제가 바치는데, 이를 성사적 사죄경이라 부르고, 대죄가 사해지는 효력이 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미하는 기도인 대영광송은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바치지 않는다. 사순시기는 주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시기이고, 대림시기는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말씀전례에서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지침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주보를 보거나 「매일미사」, 성경을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당당해야 한다. 충분한 연습을 통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읽어야 하며, 연극 대사처럼 감정을 넣거나 강약을 주어 미사 전례에 방해가 돼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신앙고백으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보다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보편교회는 미사의 공식 신앙고백문을 니케아 신경으로 정하고 있으나 1967년 주교 시노드 건의에 따라 지역교회 판단에 따른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도신경에서는 '믿는다'는 말이 6번이나 나온다. 시작예식에서는 나의 죄를 깨달아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고, 말씀전례에서는 성경 말씀을 새겨듣고 '나는 믿습니다'를 고백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성찬례를 재현하는 거룩한 성찬전례에 참례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평화방송 TV '신앙의 재발견'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8시(본방송), 화요일 오후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4시, 일요일 오후 8시퇴사자22012.02.28

"14년 만에 얻은 늦둥이, 신앙으로 키워요"가톨릭출판사 제2회 독후감공모전 청소년 수상자 이지훈군 가족이지훈군과 부모가 진접성당 성모상 앞에서 상패와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수정 기자 지난 8월에 열렸던 가톨릭출판사 제2회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장. 6명의 수상자 가운데 유일한 청소년 수상자인 이지훈(토마스 아퀴나스, 중1, 의정부교구 진접본당)군이 장려상 수상소감을 말하려 단상에 서자 시상식장을 메운 어른들의 기특한 시선이 지훈군에게 쏠렸다. 지훈군은 떨리는 기색 없이 당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찬미 예수님!" 「꼬마 여우와 아기 예수」를 읽고 독후감을 쓴 지훈군은 "책을 읽고 부모님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서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성가정에서 자란 '바른 소년'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신앙으로 지훈군을 키웠을 부모와 그 가정이 궁금해 의정부 진접성당에서 지훈군과 부모를 만났다. 아빠 이주희(라우렌시오, 54)씨와 엄마 백경숙(율리안나, 55)씨에게 지훈군은 귀한 아들이었다. 첫째 딸(이경아, 보나, 28)을 낳은 뒤 14년 만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었다. 엄마 백씨가 몸이 약해 주변에선 더 이상 임신이 어렵다고 했지만 부부는 "자녀를 주시면 꼭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간절한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아이가 지훈이다. 부부는 자녀들에게 신앙 모범을 보이자며 그때부터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본당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 이씨는 미사 해설을, 엄마 백씨는 성서 100주간 말씀봉사자 대표를 맡았다. 또 지훈군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하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 같은 저녁기도 시간은 지훈이네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가족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지훈군은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라도 하면 "기도하셔야죠"라며 저녁기도부터 챙길 정도가 됐다. 어린이 복사단에서 활동했을 땐, 새벽미사 복사 서는 날이면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곤 했다. 아빠 이씨는 "제가 미사 해설을 하고 아들이 제단 위에서 복사를 서는 날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훈군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럽다"면서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상금 50만 원도 어디에 쓸지 이미 계획을 끝냈다. 감사예물로 일부 내고, 성전건립기금으로도 봉헌하고, 가족 해외 성지순례 비용에도 보태기로 했다. 아들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빛엔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부부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아들이니 하느님 뜻대로 쓰시기를 기도할 뿐이다"고 했다. 지훈군은 "수학과 체육을 좋아한다"며 "야구선수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했다. 아직 꿈많은 14살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