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목, 이렇게 해보자] (중간 결산) 재미·성취감 주는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을 교회로](//cpbc.co.kr/CMS/newspaper/2014/05/rc/510498_1.1_titleImage_1.jpg)
[청소년 사목, 이렇게 해보자] (중간 결산) 재미·성취감 주는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을 교회로자녀 신앙 교육에 대한 부모 교육이 우선돼야 청소년사목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교회 신자 수는 60% 가까이 늘어났지만 청소년 신자 수는 20% 넘게 감소했다. 숫자만 줄어든 게 아니다. 중고등학생 신자들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10%를 겨우 넘고,청년 신자 주일미사 참례율은 5~6%에 그치고 있다. 신앙이 식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 발길을 다시 교회로 이끌 수 있을까. 평화신문은 이 어려운 질문의 답을 찾고자 지난해 7월부터 ‘청소년사목 이렇게 해보자!’ 연재를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서울대교구 총대리 조규만 주교를 비롯해 청소년사목에 열정을 쏟고 있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21명에게 청소년 신앙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들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그들의 아이디어를 종합, 청소년사목이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엄마가 달라져야 청소년이 바뀐다최근 발표된 서울대교구 청소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서울대교구 중고등부 학생 신자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11.6%에 그치고 있다. 청소년 10명 중 1명만이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사목자들은 엄마가 바뀌어야 신앙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장 양장욱 신부는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에게는 신앙생활 의무를 제대로 강조하지 않는 엄마들 때문에 청소년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부가 아닌 신앙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무악재본당 청소년분과장 이혜숙(로사)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공부가 뒤처질까 걱정돼 성당에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젊은 엄마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교회에서 엄마들에게 자녀가 왜 신앙을 가져야 하고, 성당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23년째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권희진(서울 가락동본당)씨는 “시험 기간만 돌아오면 아이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성적보다 신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가정 신앙교육의 지침과 방향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맞춤형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만들자수원교구 청소년국장 이건복 신부는 “소속 본당에 관계없이 청소년들이 모여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청소년 거점 본당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신부는 “주임신부님들은 ‘청소년 신앙 활성화’라는 큰 목표를 생각하고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거점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부국장 이형기 신부는 “본당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본당에서 성공한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목자들이 청소년사목을 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보완책 등을 정리한 ‘청소년사목 레시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호빈(서울 하계동본당 보좌) 신부는 “교구에서 본당이 원하는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청소년 프로그램팀’을 운영한다면 본당 사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교리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정준교(스테파노) 위원은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를 다닌 학생과 늦게 세례를 받은 고학년 학생이 한 반에서 교리교육을 받는 게 주일학교 현실” 이라며 “학년별 교리교육을 폐지하고 학년에 상관없이 세례 시기에 따라 반이 구성되는 수준별 교리교육을 실시해보자”고 제안했다. 교리교육에도 체험학습을청소년들이 주일학교에 흥미를 못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일주일 내내 지겹도록 했던 공부(교리)를 성당에서 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주일까지 책상에 앉아 교리공부를 한다는 게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목자들은 교회가 지친 청소년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 담당 박범석 신부는 “공부 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성당에 와서 또 책상에 앉아 교리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한 주는 교리교육을 하고 그다음 주는 배운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면 주일학교에 흥미를 느끼는 청소년이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장 용하진 신부는 “학생들이 교리와 복음을 ‘공부’로 여기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성경이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뿐”이라며 “재미있으면서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교회가 학생들에게 좋은 공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수(로사, 고2)양은 “미신자 친구들은 한두 번 성당에 놀러 왔다가 ‘재미가 없다’며 더는 오지 않는다”면서 “본당에서 신자가 아닌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캠프나 운동회, 동아리 등을 만들어 준다면 성당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아실, 꼭 필요할까대부분 성당 뒤편에는 유리벽으로 막힌 유아실이 있다. 유아실 안은 늘 시끌벅적하다. 부모와 유아가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지만 유아실에서 온전히 미사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유아의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아실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 담당 박종수 신부는 “현재 유아실은 배려가 아닌 격리의 공간”이라며 “유아실이 없어져야 더 많은 유아와 부모가 성당에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제와 신자들이 유아들을 신앙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기고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신부는 “단계적으로 적응 과정을 거치면 유아들도 충분히 미사에 함께할 수 있다”면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유아실에 아이들을 격리해 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성당에서 아예 아이들 소리를 못 듣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신부는 지금 유아실로 사용하는 공간을 수유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방으로 꾸민다면 엄마들이 편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고 말했다.아기를 데리고 미사에 참례하는 엄마 생각은 어떨까. 두 명의 자녀를 둔 홍은정(마리아, 31)씨는 “미사 중에 아이가 소리를 내면 신자들이 눈치를 줘 부담스럽다”면서 “유아실이라는 공간마저 없다면 아기 엄마들은 성당에 올 생각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신자들이 유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언젠가는 엄마와 유아들도 성당 안에서 함께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0ㆍ40대 청장년들에게 관심을서울대교구 청소년 사목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청년(20~35세)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은 5.6%에 불과하다. 2013년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한 한국교회 전체 주일미사 참례율 21.2%의 1/4 수준이다. 부모 세대인 청년들이 교회를 등지면서 청소년들의 신앙도 자연스럽게 식어가고 있다.조규만(인터뷰 당시 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청소년사목 대상을 청소년뿐 아니라 청소년들 신앙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부모까지 확장해야 한다”면서 “청년들과 어울리기도 그렇고 장년층과 어울리기도 애매한 30ㆍ40대 신자들을 위한 사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건복 신부는 “청년과 청ㆍ장년을 구분해서 사목하면 호응을 얻을 것”이라며 “본당마다 청ㆍ장년부를 만들어 기혼자와 35~50세 신자는 ‘청ㆍ장년부’, 미혼인 35세 이하 청년은 기존 청년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담당 이태철 신부는 “청년들은 스스로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청년들의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했다. 평화신문2014.05.21
(2)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2)데이비드 린치 감독 '엘리펀트 맨'1. 영화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순간, 때로는 그것이 전례 분위기를 만들어내 하느님 은혜에 대한 성스러운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또 가지각색의 방법을 통해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느님 섭리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124분)이 그런 영화에 속한다. 관객은 이 영화를 접하는 순간 지나치게 순수하지만 극도로 고통스런 운명에 처한 한 인간의 수난극에 참여하게 된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성경 구절 시편 23편을 통해 슬프도록 아름다운 한 인간의 고뇌와 아픔뿐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경외감에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실존했던 엘리펀트 맨의 일생 다뤄 2. 19세기 영국 런던에 실존했던 무시무시한 기형아 엘리펀트 맨의 일생을 다룬 흑백 영화 '엘리펀트 맨'은 1890년 27살에 세상을 뜬 존 메릭(John Merrick)이라는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지?'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인간은 왜 그렇게 소중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하는 물음에 냉정하고도 철저하게 접근해 간다. '다발성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존 메릭은 어쩌면 역사상 그 누구보다 외양이 추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형인 그는 서커스단에 버려져 기형적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살아간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린 그에게 서커스 단장은 개에게 명령을 내리듯 "일어서!"하고 소리친다. 담요가 땅바닥에 떨어져 내리면 사람들은 '이제껏 본 중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상의 표본'을 넋 놓고 쳐다보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추한 모습의 그를 학대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끔찍한 공포감에 시달리는지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배려하지 않았다. 서커스 단장이 그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마치 쇼의 도입부를 장식하듯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코끼리에게 공격을 당해 '저런 아이'가 태어났다고 그럴 듯하게 소개하는 바람에 메릭은 '엘리펀트 맨'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메릭은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걸 피하려 늘 머리에 자루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를 사람이 아닌 기이한 동물로 여겼다. 우리에 가두고 때리고 동물처럼 사육하며 돈벌이 수단인 희귀동물로 여겼다. 그는 아무 감정도 없고 말도 못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그의 모습이, 사람들이 그에게 고통을 주고 놀려댈 때 그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떠한 반항이나 공격도 하지 않는 것이 그의 내면이 훌륭한 감수성으로 차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유일하게 접근한 의사 트래비스는 말 못하는 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를 서커스단에서 탈출시켜 병원 격리 병동에 숨겨놓고 그에게 생명을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병원은 모자라는 병상을 불치병 환자가 영구적으로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병원장은 트래비스에게 '엘리펀트 맨'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에게 말할 능력이나 사고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다시 서커스단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병원에 머물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의사 트래비스는 엘리펀트 맨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병원장에게 보여주자고 간청한다. 엘리펀트 맨이 처음으로 더듬거리면서 말을 하자 흥분한 의사는 성경 시편 23편의 첫 구절을 반복하게 하면서 인터뷰를 준비시킨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엘리펀트 맨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말해 달라는 병원장의 요구에 겁을 먹어 거의 기계적인 반복음에 가까운 몇 마디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망한 병원장은 마치 '동물에게 말을 시키려는 의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병실 밖으로 나온다. 뒤따라 나온 의사 트래비스도 앞으로 엘리펀트 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병원장과 상의하기 시작한다. 엘리펀트 맨에게는 '인간으로 이곳에서 사느냐, 아니면 다시 짐승이 되어 서커스단으로 되돌아가느냐'가 판가름 날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때 탁한 목소리에 온 힘이 실린 시편 23편 성경 구절이 병실 안에서 밖으로 울려 퍼진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하느님 자비의 노래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중략)…." 병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시편 23편을 들으면서 의사 트래비스는 자신이 가르치지 않은 부분까지도 엘리펀트 맨이 다 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확신에 차서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놀란 병원장과 트래비스는 다시 병실에 들어가게 되고, 엘리펀트 맨이 글을 읽을 줄 알고 깊은 사고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이 세상에서 성경과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지를, 그 중에서도 특히 23편이 너무나 아름다워 늘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는 세상, 자신을 늘 무례하게만 대하는 세상의 그 끔찍함 속에서 그에게 유일한 위안과 사랑을 주는 것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것이었음을, 그리고 또한 그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림 5]] 3. 영화 '엘리펀트 맨'은 오늘날 전례 때에 또 성가곡으로 자주 인용되는 시편 23편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게 해준다. 그렇다. 이 시편은 단순히 삶을 묵상하는 한 인간의 일반적인 믿음 고백이 아니다. 또 주변 환경이 좋을 때에 노래한 것도 아니다. 이 시편은 오히려 위기에 처한 한 인간의 부르짖음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버릴지라도 하느님의 크신 보살핌은 계속되리라는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대한 고백이요, 벼랑 끝에 있을지라도 인간은 결코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고백이다. 절망 끝에서 오직 하느님만 희망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아나윔)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궁지에 몰린 그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바로 하느님의 측은지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예외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혼자가 되는 장례 때에 이 시편이 인용되고 또 여러 성가곡으로 불리는 이유를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이 시편의 의미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적절하게 제시하면서 아울러 이 시편을 영화의 전체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으로 인용하고 있다. '가장 추한 것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고 가장 절박한 상황, 벼랑 끝에 신의 자비와 은총이 있다'는 것을 시편 23편을 활용해 제시하면서 아울러 극적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관객은 시편 23편의 의미와 이 시편을 외면서 위안을 얻고 하느님을 찾는 엘리펀트 맨의 고귀한 인간성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예외 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그 핏줄과 출생의 비밀이 곧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면서 '인간의 숭고함'을 가득 담아내는 스크린에 압도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풍요로움에 깊이 젖어들게 된다. 인간의 숭고함 담아낸 스크린에 압도 4. '엘리펀트 맨'에 나오는 의사 트래비스는 자신의 친구가 된 엘리펀트 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다. "겉보기에 그는 추하고 혐오스럽다. 그러나 만일 그의 영혼을 사람 모습에 비유하자면 어떠할까? 훤칠한 키와 늠름한 풍채에 이마는 반듯하고 사지는 늘씬하며 두 눈은 굽힐 줄 모르는 용기로 번뜩일 것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비참한 삶을 한탄하거나 무정한 서커스단장에게서 받은 학대에 분개하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엘리펀트 맨을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괴물 같은 외형 속에 그토록 순결하고 온화한 영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암송한 시편 내용처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그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엄마의 사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펀트 맨은 자신이 만든 종이 모형의 성당을 침대 옆 창가에 두고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감사하며….이창훈2012.02.14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 / 갈라진 형제교회들11세기 정교회ㆍ16세기 개신교 분리… 성공회도 개신교2011년 10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성공회 로완 대주교(왼쪽에서 두 번째), 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세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종교 간 평화회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1월 18일~25일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이다. 일치는 분열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교는 첫 천년대 동안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몸이었다. 그러다가 11세기에 정교회가, 16세기에는 개신교가 갈라져 나왔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셈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형제교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교회는 일치주간을 정하고, 형제교회와 일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일치주간을 맞아 가톨릭의 형제교회인 정교회와 개신교의 면면을 살펴보자. ▨정교회 정교회는 1054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 전통과 전례를 지켜하고 있는 동방 교회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라는 뜻에서 정교회(正敎會)라고 부른다. 순수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만큼 크다. 정교회 본거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터키에 의해 함락되자 정교회 중심은 러시아로 옮겨졌다. 러시아정교회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그리스(1830년), 루마니아(1925년), 알바니아(1937년) 등 나라의 정교회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국가별 정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즉, 가톨릭과 같은 단일 구조가 아니다. 정교회 교리는 가톨릭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성직이 주교ㆍ사제ㆍ부제로 나뉘는 것은 가톨릭과 같다.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가톨릭과 결정적인 차이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함께 성전(聖傳, Holy Tradition)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이 구약 49권과 신약 27권(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이뤄졌다는 점,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되 교의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르다. 한국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정교회 소속 신부가 주한 러시아공사관을 거점으로 선교하면서 출발했다.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한국정교회는 1975년 그리스정교회 소속 신부가 한국 선교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정교회 신자 수는 4000여 명이다. ▨개신교 16세기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분리됐다. 가톨릭에 대한 '항의자'(Protestant)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로도 불린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신학적 견해를 달리하는 교파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현재 500여 개 교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교파로는 장로교ㆍ감리교ㆍ침례교ㆍ성결교ㆍ루터교ㆍ구세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신자이자 의사인 알렌과 언더우드 목사 등이 황해도 송천에 교회를 세우고 의료와 선교 사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많이 다르다. 가톨릭은 성경과 더불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전통(성전)을 신앙의 원천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 받아들인다. 가톨릭이 성전에 근거를 두고 교의로 선포하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구약 가운데 제2경전을 제외한 39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 연옥교리도 인정하는 않는다. 개신교보다 가톨릭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성공회(聖公會)도 개신교에 속한다.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교황에게 혼인무효 소송을 냈으나 교황이 이를 거부하자 자신을 교회 수장(首長)으로 선포하면서 가톨릭과 별개로 세운 것이 성공회다. 성공회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인정하는 등 많은 점에서 가톨릭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제독신 의무도 없다. 성경은 개신교처럼 구약 39권, 신약 27권만을 인정한다. 대한성공회는 1889년 11월 조선교구 설립을 목적으로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영국) 신부가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서 주교품을 받는 것으로 시작됐다. 1993년 독립 관구로 승격한 대한성공회는 서울ㆍ대전ㆍ부산교구 등 3개 교구에 100여 개 교회와 5만여 명의 신자를 두고 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3.01.15

'어머니들의 기도' 모임을 아십니까1995년 영국에서 시작… 청소년 죽음의 문화에 '신앙의 힘'으로 맞서어머니들의 기도에 참석한 세검정본당 신자들이 작은 바구니에 자녀 이름을 적은 둥근 종이를 넣으며 기도하고 있다. 이힘 기자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한다면 그 아이 부모가 바르게 말하고 행동한 덕분이고, 말썽을 피우거나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면 역시 부모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따와 폭력으로 무너져가는 학교, 가정 해체와 사회의 무관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청소년 자살 증가율 1위 등 암울한 우리나라 현실은 혹시 부모 잘못 때문은 아닐까. 청소년과 가정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에 '신앙의 힘'으로 맞서고 있는 장한 어머니 모임이 있다. 영국에서 창설된 '어머니들의 기도'(Mothers Prayers)다. 이 모임은 1995년 11월 영국 가톨릭 신자 베로니카 윌리엄씨가 올케 산드라씨와 함께 만든 기도 단체. 자녀와 손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신자에게도 열린, 교파를 초월한 기도 모임이다. 어머니들의 기도는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100여 개국에 수만 명의 회원을 둔 국제적 사도직 단체로 성장했다. 창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공동창설자 산드라씨가 한밤중에 '너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여라!'하는 목소리에 깨어나는 경험을 두 번이나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베로니카씨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처해 있는 위험에 관한 통계자료를 접하고 '해답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결론을 내려 산드라씨와 모임을 만든 것이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올해 1월 서울 세검정성당에서 뜻있는 어머니들이 기도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세검정을 비롯해 반포4동ㆍ압구정1동성당 등에서도 매주 기도모임이 열리고 있다. 혜화동에서는 개신교 신자들 기도모임도 있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한 벨기에대사 부인 최자현(마리아, 54)씨 공이 컸다. 해외에 거주하던 그는 2005년 이웃의 소개로 어머니들의 기도를 알게 된 뒤 꾸준히 모임에 참석해오다 1년여 전 영어와 불어로 돼 있던 기도책자를 한글로 번역해 귀국, 모임의 불씨를 지폈다. 어머니들의 기도는 테이블 위에 십자가와 촛불, 성경과 작은 바구니를 놓고 시작한다. 기도는 △준비를 위한 기도 △보호를 위한 기도 △용서의 기도 △그룹 안에서의 하나 되기를 위한 기도 △찬미의 노래 등 9단계로 진행된다. 기도 끝에 동그란 작은 종이에 자녀나 기도해주려는 이의 이름을 적어 작은 바구니에 봉헌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머니들 성향에 따라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찬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된다. 입대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류경림(바실리사, 47)씨는 "1월부터 기도모임에 참여해왔다. 오랜 기간 냉담했던 아들이 군에서 냉담을 풀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해왔는데, 주님께서 조금씩 응답을 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아들과 가족,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0.15
[사설] 정전 60주년에 부쳐 "주님, 이 어리석은 민족을 용서하소서! 수백 만 백성이 배를 곯고 있는데, 쌀밥 한 공기, 고깃국 한 그릇도 배불리 못 먹이면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핵무기를 실험하며 허공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무리를 용서하소서! 주님, 이 무심한 민족을 용서하소서! 한 핏줄, 한 민족 백성이 굶주림에 허덕이다 못해 철조망을 뛰어넘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먼 나라 산하를 헤매다가 가진 것 다 팔고 몸까지 팔고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데 지척에서 소 닭 보듯, 나 몰라라 하는 이 무정한 무리를 용서하소서.…" 제주교구장이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지난 4월 7일 하느님의 자비주일에 신자들이 함께 기도해 달라며 청한 '이 땅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내용 중 한 부분이다. 강 주교의 우려와 탄식처럼 지금 한반도는 정전 60년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지수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 40년 만에 해방됐고, 50여 년 바빌론 유배 생활 끝에 귀향했건만 우리 민족은 한 땅덩어리에서 60년째 갈라져 있다. 역사 이래 이토록 불행한 민족의 비극이 끝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 주교단은 서로 간에 저지른 비인도적 잘못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참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진정한 참회가 있을 때 용서가 가능하고 용서가 선행될 때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기 위해선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교회가 할 일은 민족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국민을 교육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가 없이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를 위한 최적의 자산을 갖고 있다. 바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다. 이곳에서 성체 앞에서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그날까지 신앙인들이 솔선수범해 열심히 기도할 때 통일의 올바른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cpbc2013.07.30
![[복음 이야기]<4>헤로데의 아들들](//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17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헤로데의 아들들'구관이 명관?' 아버지보다 더한 폭정 헤로데와 그의 아들들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사치스런 호화생활을 누렸다. 사진은 예리코 헤로데 궁전에서 발굴된 대리석 수반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로데에게 선물한 것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제15년, 즉 서기 29년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요한 세례자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하면서 세례를 베풀었다.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가 활동할 때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안티파스)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있었다(루카 3,1)고 한다. 이 시기 팔레스티나의 정치 상황은 헤로데 임금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헤로데 후계자 가운데 홀로 왕국을 유지할 만한 특출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 간의 협력으로 그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로데의 아들과 그의 누이에게 유다 땅을 4쪽으로 나눠 다스리게 했다. 그래서 헤로데의 네 번째 부인인 사마리아 여인 말타케의 아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가 왕국의 중앙 부분인 이두매아와 유다와 사마리아를,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요르단 건너편 페레아 지역을 분할받았다. 또 이집트 여인 클레오파트라에게서 태어난 헤로데 필리포스가 갈릴래아 호수 건너 골란과 성경에서 바샨이라 불리는 바타네아 산악 지대와 북부 트랜스 요르단 일대를, 헤로데의 누이 살로메는 아스돗과 얌니아오 아스칼론 등 해안 도시를 상속받았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기원전 23~서기 18년)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는 기원전 4년 아버지 헤로데의 장례를 마친 후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에게 "왕의 칭호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이라고 밝히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이들은 세금 면제를, 또 다른 이는 헤로데 측근의 처벌을 요구했다. 아르켈라오스가 이 모든 요구를 거절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시리아 총독 바루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바루스는 로마군을 이끌고 와 폭동을 진압하고 유다인 2000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는 예리코에 있는 헤로데 궁전을 호화롭게 재건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하려고 세금을 무겁게 부과했다. 그러자 유다인의 폭동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노는 서기 6년 그를 면직시켜 오늘날 오스트리아 빈으로 추방하고, 그의 영토를 로마 속주로 귀속시켰다. 마태오 복음은 헤로데 임금의 유아 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던 요셉이 아기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으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해"(마태 2,21-23)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게 됐다고 마태오 복음은 전하고 있다.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20~서기 39년) 헤로데 안티파스가 상속받은 갈릴래아와 페레아 지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함락된 이후 이방인이 대거 이주해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라 불렸다. 유다 하스모네아 왕조 아리스토불루스 1세는 기원전 104년에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주거민을 강제로 할례를 시키고 유다인을 이주시켜 철저하게 율법을 따르는 경건한 지역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그는 형이 실권하자 자신도 권력을 잃을까 봐 갈릴래아 호수에 새 수도를 건설해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 '티베리아스'라고 불렀다. 아울러 페레아 베타람타를 재건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내 이름을 붙여 '리비아스'라고 했다. 또 예루살렘을 자주 방문하고 대사제 선정에도 관여하지 않는 등 신중하게 유다인의 눈치도 봤다. 그러나 그는 서기 28년 이복형인 헤로데 필리포스의 아내이자 조카인 헤로디아에게 매료돼 아내인 나바테아의 공주와 이혼하고 헤로디아와 재혼함으로써 여지껏 쌓아온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요한 세례자는 안티파스의 불륜을 공공연히 힐난하다 암만의 마케루스 요새에 투옥됐고, 그 유명한 연회 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요구로 참수됐다(마르 6,17-29; 마태 14,3-12; 루카 3,19-20). 이 사건이 빌미가 돼 로마의 눈 밖에 난 그는 칼리굴라 황제의 명으로 면직돼 지금의 프랑스 리옹으로 유배됐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복음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만나 보려 하는 장면'(루카 9,7-9; 마태 14,1-2; 마르 6,14-16),'예수님께서 그를 여우라고 단정짓는 내용'(루카 13,31-32), '빌라도 총독과 함께 예수님을 심문하는 대목'(루카 23, 6-12)에 등장하고 있다. 헤로데 필리포스(기원전 27~서기 33/34년) 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스의 이복형제인 헤로데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북부 산악 지역을 다스렸기에 팔레스티나의 정치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 현명하고 온순한 성품을 가진 그는 예술, 문학, 과학, 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요르단 강의 수원지를 밝혀내기도 했다. 그는 기원전 4년부터 서기 33/34년까지 자신의 영지를 통치했다. 그는 안티파스와 마찬가지로 친로마 정책을 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 율리아를 기념해 갈릴래아 벳사이다 근처에 도시를 건설해 '율리아스'라 불렀다. 또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마태 16,13-20; 마르 8,27-30; 루카 9,18-21)한 장소인 카이사리아 필리피도 그가 기원전 2년께 헤르몬 산 밑에 샘이 솟아오르는 곳에 세운 도시이다. 그가 죽자 그의 영지는 시리아에 합병됐다가 칼리굴라 황제가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에게 줬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1.21
![[출판]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0989_1.1_titleImage_1.jpg)
[출판]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특집 주제로 △요셉이 형제를 받아들인 이유(정성종) △용서를 위한 예식(박종인) △미움과 용서(권희진) △기도와 기다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김보금) 등을 다뤘다. '신앙의 해 신앙의 핵'에서는 교황 탄생을 살펴봤고 '끄덕끄덕 전례전례'에서는 시작예식을 설명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특집으로 교황 프란치스코 탄생을 다루며 △위대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님 힘내세요 △교황 프란치스코, 우리에게 기도를 청하다 등을 게재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에서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이만우(77) 신부를 만났고 '영성의 빛'에서는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를 소개했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다문화가정 문제를 살펴보며 △오늘날의 다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서종남) △다문화 문제, 어떻게 해결할까?(김용순) △다문화라는 말이 가장 싫어요(옥현진)를 다뤘다. '세상 속 신앙 읽기'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다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상처받는 신자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한국교회'에서는 한마음한몸운동 발의 단계에 함께했던 장익 주교와 최재선ㆍ김기준씨를 인터뷰해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역사를 들었다. '다블뤼 비망기'에서는 대구 감영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내용과 이시임 안나의 어린 아들 종악이 참혹하게 옥사하는 사건을 다뤘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우리나라에 포콜라레 운동을 처음 소개한 수원교구 원로사제 심영택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포콜라레 운동 회장 엠마우스가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보낸 서한 내용을 소개했고, 포콜라레운동의 일치 영성을 살아가는 국내외 주교들의 친교모임을 소개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성모님의 등에 업혀 사는 삶(이용훈) △성 베드로와 레지오 마리애 영성(맥그리거/구자륭) △영혼의 밤(홍기선) △교회 선교에 있어 사제와 평신도(죠셉머피/이재호)를 실었다. '걷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는 광주대교구 곡성본당 옥터성지를 찾아갔고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에서는 가톨릭교회에 왜 교황이 있는지를 알아봤다.(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홍성남 신부가 집착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삶의 지혜를 일러줬다. '영성에세이'에서는 △위대한 사건, 구원 △당신의 구원을 보여주소서를 게재했다. 매일 묵상으론 그날의 말씀과 해설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집으로 '20대에게 생기(生氣)를…'을 다루며 △대한민국 20대,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한지혜) △청년 Power Up, 성당이 돕는다(김진홍) △가톨릭학생회는 동아리가 아닙니다. 교회입니다-대전교구 대학사목부 등을 실었다. 미래사목 대안에서는 △청년 소공동체, 그리스도의 제자 되기(김민수) △가톨릭교회의 종교간 대화에 대한 입장과 한국교회의 종교간 화해와 협력(한미숙) 등을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신앙의 해에 마리아를 만나다'를 특집으로 마리아 영성을 짚어보고 '신앙의 해에 더욱 성모님을 생각하는 이유'(손희송)를 살펴봤다. 세계 곳곳에서 발현한 성모님의 여러 모습도 함께 실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지난해 5월 세례받은 임권택(바오로, 77) 영화감독을 인터뷰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 '세상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를 주제로 청년 좌담회를 마련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청년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경과 영성'에서는 전영준 신부가 성경묵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체계화 됐는지를 설명했다.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에서는 파스카 축제에 관해 알아봤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가족센터를 탐방해 다문화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일깨웠다. 이달의 가톨릭 소식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을 다뤘고,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로는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을 추천했다. 그림동화는 '열 명의 마리아와 꼬마 천사'를 실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표지 이야기로는 성 빈센트 다문화 가정센터에서 이주민 자녀를 돌보는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수녀회 수녀 4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사도 10,1-2) 삶과 신앙을 살펴봤다. 매일 성경묵상은 심흥보(서울 삼성동본당 주임)ㆍ김현준(서울 양천본당 주임)ㆍ황태종(제주 교정사목부) 신부가 맡았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특집으로 '프란치스코! 성인과 새 교황'을 다루며 △프란치스코 성인을 빼닮은 교황 탄생(편집부) △개혁의 십자가 짊어진 새 교황(차동엽) △신앙의 해와 프란치스코 교황님(김영식) 등을 실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에서는 생명문화연구가 이광호(베네딕토)씨를 인터뷰했고, 수제 쿠키를 만드는 장애인보호작업장 '느루'를 찾아갔다.(사단법인 미션3000/3500원)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4.30

"산 위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았다"[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8. 타보르산갈릴래아 호수 서쪽 이즈르엘 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보르산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거룩한 장소이다.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던 곳도, 밤새워 기도하시던 곳도 산이다. 또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곳도 산이다. 예수의 일생은 산과 참 많은 연관이 있다. 유혹을 받은 산, 복음을 선포하던 산, 기도를 드리던 산, 거룩한 변모의 산, 마지막 고뇌의 밤을 지새웠던 산, 십자가에 매달렸던 산,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20)고 선포했던 곳도 산이다. '예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에 나온다. "거룩한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동안 일어난 일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이다. 예수의 존재와 하느님의 서로 사무치는 내적인 교류가 더할 수 없이 순수한 빛이 되어 나타났다. 예수께서 빛에서 난 빛이신 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나누는 존재의 일치에서 비롯된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1권, 453쪽). 이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이 구원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이윽고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싸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소리가 울렸다. 곧 하느님의 현존을 제자들은 목격한 것이다. 이처럼 타보르산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과 예수의 신성을 눈으로 직접 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거룩한 장소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사건을 "산 위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았다"(「나자렛 예수」 1권, 463쪽)고 풀이했다. 타보르산은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서편에서 약 17㎞ 떨어진 이즈르엘 평원 북동쪽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타보르산은 갈릴래아 주변에 있는 산 중 가장 두드러진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가르멜산과 길보아산, 모레산, 므끼또,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기적을 베푼 나인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타보르산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여호수아가 12지파의 땅을 분배할 때 즈불룬과 이사카르, 납탈리 지파의 경계로 삼을 때다(여호 19,12-34). 또 판관 드보라와 그의 장수 바락이 야빈의 장수 시스라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에 타보르산이 언급된다(판관 4,1-16). 그 외 사무엘기 상권과 호세아서, 시편 등에 타보르산이 등장한다. 반면, 신약성경에서는 어디에도 타보르산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의 거룩한 변모와 관련해서도 다만 '높은 산'(마태 17,2; 마르 9,2) '산'(루카 9,28)이라고 간단히 적고 있다. 타보르산이 예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장소로 믿고 있는 것은 교회 전승에 의해서다. 교부 오르게네스와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오,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 등이 자기 저서에서 '타보르산이 예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산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공경하는 장소"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보르산에 예수의 거룩한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처음 지어진 때는 4세기 말쯤이다. 570년 한 순례자의 기행문에는 "타보르산 정상에 예수와 모세, 엘리야에게 봉헌된 3개 경당이 세워져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성당은 670년 이후 이슬람 군대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십자군이 이곳을 정복한 후 1099년 대성당과 부속 건물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113년 이슬람군이 이곳을 기습 공격해 수도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성당과 수도원을 파괴했다. 5차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폐허로 변한 타보르산은 목숨을 건 성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과 순례자들의 노력으로 17세기 이후에야 이곳에서 가톨릭 전례를 거행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성당 현재의 타보르산 대성당은 1919년 10월 짓기 시작해 1924년 완공됐다. 대성당 오른쪽에는 작은형제회 수도원과 마약 중독자 재활 공동체인 '몬도 엑스'가 있다. 이들은 성지관리와 순례자 숙소를 돕고 작은 성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종탑 아래에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다. 이곳은 비잔틴 시대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한 경당이 있던 바로 그 자리다. 대성당 정면에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대성당 내부는 두 줄 기둥으로 삼등분 돼 있는데 중앙 제대 왼쪽은 성모 마리아께, 오른쪽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비잔틴 양식 주님 변모 경당 대성당 중앙에서 12계단을 내려가면 제대 바로 아래 동굴처럼 생긴 비잔틴 양식 주님 변모 경당이 나온다.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 경당은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작은형제회는 새 성당을 지을 때 이 자리의 첫 성당을 기념해 비잔틴 양식으로 경당을 꾸미고 제대를 십자군 시대 잔해로 만들었다. 제대 주변은 예수 그리스도 생애를 성탄ㆍ성체성사ㆍ구원ㆍ부활의 신비로 조명한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모세ㆍ엘리야 경당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좌우로 모세와 엘리야 경당이 있다. 이 경당은 각 성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프레스코화로 꾸며놓았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방송여행사 협찬 / 02-2266-1591~2cpbc2013.08.2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15>에드워드 스힐벡스(하)](//cpbc.co.kr/CMS/newspaper/2013/08/rc/470820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에드워드 스힐벡스(하)시대,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신앙 언어 필요 에드워드 스힐벡스의 신학적 견지는 개종을 주목적으로 했던 선교 방향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로 바꿔 놓았고, 인간 해방을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게 했다.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신학의 방법론과 논리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를 빛낸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인간 나자렛 예수를 성경을 통해 재발견하고 이를 교의신학의 기반으로 삼은 점은 신학에 중요한 업적이었을 뿐 아니라 영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경직돼 있던 교리(doctrine)를 중심으로 한 신학에 해석학을 적용하고, 인간이 주체적 존재로서 경험한 신앙체험과 하느님 계시와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 해방을 위한 구체적 실천 문제를 신학에 적용했다. 인간 고통과 소외 계층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신학적 고찰과 실천을 연결시키고, 구조적 악을 말한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깊은 공감대를 이뤘다. 그의 진보주의적인 사고로 보수주의자들에게 의혹을 받고 고통을 받았으나, 그는 끝까지 형제애를 잃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그는 회고록에서 교회에 속하고 도미니코회에 속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스힐벡스는 성경 두 구절이 항상 자신을 지탱했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 5,19-21). 이를 통해서 우리는 스힐벡스가 얼마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려 있으려 노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성령께서 자신의 신학 연구가 세상에 열린 연구가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한 희망적이고 자유롭고 건설적이게 했을 뿐 아니라, 동일한 근원이 교회를 비판하게 했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종교는 소중한 자산이지만, 인간을 조작하고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고문하는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도 있기에 인간을 방어하기 위해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다룬 여러 주제 중에서 한국 상황에 도움이 될 두 가지 주제를 한국 실정에 맞게 설명하고자 한다. 구원의 보편성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이며,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종교에서 생각하는 종교개념을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유일성을 유지하면서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타종교와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근본적 신학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만남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인식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하느님과 관계를 나자렛 예수의 특수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로 본다. 예수의 하느님은 예수의 특수한 역사를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역사 속에서 구체화한다. 예수의 특수성은 '열림'을 상징하며 이 특수성 안에 '갇힘'을 상징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긍정적 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고, 모든 인간의 해방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보편성을 가지며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스힐벡스는 하느님 구원 행위를 종교 안에 한정시킬 수 없고, 구원 역사를 그리스도교 역사로 축소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인간 역사 전체는 이미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있고 인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세상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바꿔서 이야기한다. '세상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는 교회 역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를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신학적 견지는 타종교에서 개종을 주목적으로 했던 선교 방향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로 바꿔 놓게 하고, 인간 해방을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각 상황에서 구체화할 때 보편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구체적으로 복음을 살 때 그리스도교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논지는 세계화 현상으로 여러 종교가 서로 만나고 섞이는 오늘날에 그리스도교 정체성과 유일성을 상대화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다고 본다. 오늘날 무엇이 문제인가 「크리스천 경험의 실천 : 교회」에서 스힐벡스는 서구인들에게 왜 하느님이 문제가 되는지를 교회의 외부적, 내부적 요인으로 구분해 분석하는데, 이를 우리 실정에 맞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외부 요소로서 사회구조의 변화와 현대인의 인격구조 변화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삶이 거의 미리 계획된 것이었고 획일적이었다. 예를 들면 농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아버지 뒤를 이어 농부로 살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 사회구조 자체가 다양성과 상이성을 지향하는 사회로 변화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구조의 변화는 현대인의 인격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열려 있으며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관한 문제, 즉 신앙 측면에서도 그러한 성향을 보인다. 현대 서구인들은 이렇게 변화된 사회에서 변화된 인격구조를 가지고 태어나서 자라기 때문에 과거처럼 교회에 소속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즉 과거에는 신자로 태어나서 신자로 죽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가 신앙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었기에 스스로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회 내부 요소 중 하나로 그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문제를 다룬다.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용어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용어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현대인에게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그리스도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인식이 부족해 야기된 문제로 본다. 예를 들어 '주님'이라는 용어는 가부장적 문화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다양성과 평등성을 추구하는 서구 현대인에게는 억압을 상징하는 언어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신앙은 맹신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적이어야 근본주의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고백하는 교회 전통적 교의를 글자 그대로 암기하는 식의 신앙이 아닌, 현대인에게 맞는 언어로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신앙 언어 창출의 필요성은 세속화 현상으로 위기에 처한 서구교회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려 썼다. 언어는 문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교회 용어는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용어임을 생각할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 전통문화는 여러 다른 외부의 문화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혼합돼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기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어떻게 현대인에게 걸맞은 언어를 창출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 현대인들, 특히 사이버 공간과 친밀한 젊은층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문화와 신앙과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구체적인 문화를 통해 신앙을 수용하고 형성하며 구체적으로 생활하고 실천하고 전달한다. 신앙은 인간 문화를 매개체로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문화는 늘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언어 또한 고정적일 수 없다. 신앙의 새로운 언어 창출을 위해서는 교회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대 상황의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 스힐벡스는 자신의 회고록 마지막 부분에 자신에게 의미를 준 성경구절을 엮어 하나의 시편을 만들었다. 이 시편을 보면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볼 수 있다. 그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시지만 또한 자신을 숨기는 하느님이시기에(예레 23,23) 계속 그분을 찾아 나서야 함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하느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라고 물으시는 하느님이시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가 알아보아야 할 징표는 어떠한 것인가.김미정 수녀(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파리 예수회대 교수) cpbc2013.08.27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승천하신 예수의 생애 마지막 사건 현장[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5.올리브산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푸른 올리브나무'(예레 11,16)라 했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하며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자랑했다(시편 52,10). 사진은 겟세마니 성당 정원에 있는 올리브나무.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사도 1,12 참고-유다 율법은 안식일에 1km 이상 걷지 못함). 구약 시대 때부터 이 산을 히브리 말로 '하르 하 자이팀'(올리브산)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예부터 이곳에 올리브나무가 무성했음을 알 수 있다. 올리브산은 신ㆍ구약의 역사가 얽힌 곳이다. 다윗은 압살롬 반역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이곳을 지나갔고(2사무 15,30-32),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여기에다 모압의 우상 크모스와 암몬인의 우상 몰록을 위해 산당을 지었다(1사무 11,7). 이후 유다 임금 요시야는 올리브 산의 이 산당들을 허물고(2열왕 23,13-14)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 예언자 즈카르야는 '주님의 날'에 올리브 산에서 벌어질 일(즈카 14,4)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신약성경에서 올리브산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 이곳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루카 19, 29),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하셨다(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에 올리브산에 올라가 쉬셨고(루카 22, 37-38), 최후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하느님께 기도한 후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31-53; 요한 13,36-38;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선언 이후 올리브 산에는 4세기 중엽부터 성당들이 지어졌는데 대표적인 4대 성당이 겟세마니 성당과 주님 눈물 성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승천 경당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7.23
![[복음 이야기]<5>유다 총독](//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69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유다 총독유다인 경멸하면서도 두려워한 빌라도 총독 로마 제국 유다 총독의 주요 임무는 질서유지와 세금(공물)징수,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형사재판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로마 성계단 성당에 있는 빌라도에게 신문받고 있는 예수님 상. 리길재 기자헤로데 아르켈라오스의 폭정에 견디다 못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로마 황제에게 대표단을 보내 영주를 몰아내고 총독을 보내주면, 대사제 임명권을 상징하는 예복을 맡기겠다고 협상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유다와 이두매아, 사마리아의 영주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기원전 23~서기 18년, 재위 기원전 4~서기 6년)를 면직 추방하고 그의 영토를 '총독 속주'로 개편했다. 로마 황제는 제국을 이탈리아 본토와 3종류의 속주, 봉신 왕들의 왕국 영토로 나눠 통치했다. 속주는 황제 속주와 원로원 속주, 행정장관 속주로 구분됐다. 황제 속주는 말 그대로 황제에게 속한 땅으로 법무관이 '속주장관'으로 황제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원로원 속주는 원로원에 속한 영토로 집정관이 '총독'으로 다스렸다. 또 행정장관 속주는 최근에 정복했거나 통치가 어려운 지역을 행정 장관이 다스리는 영토를 말한다. 유다는 행정장관 속주였다. 행정장관은 원로원 의원급에서 임명되지 않고 주로 군인 계급에서 선임됐다. 행정장관의 주요 임무는 △질서유지 △세금(공물)징수 △'칼의 권리' 즉 사형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 형사재판의 전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편의상 행정장관도 속주 총독으로 불렸다. 유다 행정장관(총독) 초대 로마의 유다 행정장관 즉 총독은 서기 6년에 부임한 코포니우스였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날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약속대로 그에게 대사제 예복을 맡겼다. 유다 총독은 시리아 총독에게 종속됐다. 코포니우스가 초대 유다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시리아 총독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였다. 바로 루카 복음 2장 2절에 나오는 인물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서 로마식 인구 조사를 두 차례 실시한 장본인이다. 퀴리니우스 시리아 총독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주석 성경」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퀴리니우스는 시리아 총독으로서 마태오 복음 2장 19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뒤(루카 1,5 참조), 헤로데 임금이 죽은 지 10년 뒤인 기원 후 6년에 팔레스티나에서 호적 등록 또는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기원전 12년부터 근동의 로마 통치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가 실제로는 헤로데가 죽기 전에 이미 호적 등록을 시작하였는지, 루카가 나중에 실행된 호적 등록을 앞당겨 이야기하는지, 현재의 자료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여튼 퀴리니우스 시리아 총독 시절에 초대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코포니우스의 첫 활동은 인구 조사에 반발하는 유다인들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그의 재임(서기 6~9년) 시절에 사마리아인들이 무교절에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 사람 뼈를 뿌려 더럽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돌이킬 수 없는 원수 관계가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시리아 총독과 함께 한나스를 대사제로 내세우고 최고회의를 재정비하게 했다. 본시오 빌라도 예수님 시대 유다 총독은 본시오 빌라도(재임 26~36년)였다. '창으로 무장한 자'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빌라도는 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군기와 당시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상을 예루살렘에 들여오려 했다가 병사를 동원해도 물러서지 않는 유다인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철회하고 대신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금방패를 자신의 관저인 카이사리아 헤로데 궁전에 들여놓았다. 그는 또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건설 자금으로 예루살렘 성전 금고에 있는 은을 강탈했다가 유다인의 폭동을 유발했다. 그는 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유다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을 군중 속에 잠입시켜 닥치는 대로 살육케 했다. 또 한 번은 성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했다(루카 13,1). 요한 복음서는 빌라도를, 바른 일을 하려고는 하지만 로마의 평판에 신경을 쓰고 유다인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두려워한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자로 그리고 있다. 빌라도의 이러한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재판 과정이다. 예수님의 죄목을 찾지 못한 그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으나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요한 19,12)라는 유다인의 외침에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다. 빌라도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결국 실각했다. 36년께 한 예언자가 사마리아에 나타나 그라짐 산봉우리에 묻혀 있는 모세의 장막과 거룩한 기물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군중들이 이를 보기 위해 그라짐 산에 몰려들었다. 폭동을 우려한 빌라도는 군대를 보내 산정을 점거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마리아인 학살이 자행됐다. 이에 시리아 총독인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사마리아인 학살을 명령했다'는 이유로 빌라도를 파면하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는 빌라도에게 추방 후 자살을 명했다. 빌라도 실각 후 유다 총독제는 30년간 지속됐으나 37~44년까지 팔레스티나의 행정권은 헤로데 임금 때처럼 다시 속령의 군주에게 위임됐다. 이 유다의 마지막 왕이 헤로데 아그리파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 사도를 감금했던 인물이다(사도 12,1-3).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2.04
![[가톨릭 신앙의 보물]<10>교황직의 역사와 직무(상) -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84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교황직의 역사와 직무(상) -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시도들의 으뜸 베드로, 지상의 대리자로 세워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평화의 사도로 기억된다. 그분의 관심과 애정에 힘입어 한국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교황직의 역사, 직무와 함께 교황직에 대한 오해에 대해 살펴보자. 교황직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12사도를 뽑았다. '12'라는 숫자는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교회 안에서 세우신다는 것이 드러난다. 교회의 주춧돌로서 12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교회의 시작이 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교회의 규범을 정하며 교회를 이끌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이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후대에 가장 충실히 전한 증인들이다. 이들은 세상 각지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며 그 가르침이 계속되도록 후계자를 세웠는데 이들이 주교다. 교회가 세상에 퍼져 나가고 수많은 교회와 주교들이 생겨났다. 베드로의 제자인 마르코가 세운 알렉산드리아교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던 안티오키아교회, 교회가 시작됐던 예루살렘교회,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활동하고 순교했던 로마교회다. 이 네 교회가 중심이 돼 세계 교회를 이끌었고 후에 안드레아 사도가 세웠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교회가 더해져 다섯 개의 총대주교좌를 이룬다.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다스렸지만, 사도단의 전통에 따라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 때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 주교들의 회의를 '공의회'라 부른다. 그들 중에서 12사도가 세운 교회와 그 후계자들은 특별한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곳보다 충실히 전해 내려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위치는 특별했다.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사도로 뽑으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다. 그들 가운데 높고 낮음도 없었지만,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12사도 중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제자의 명단에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가 베드로이고,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을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이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와 겟세마니 동산에도 데리고 가셨던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후에 당신의 양 떼를 맡기신 이도 베드로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하느님 나라 열쇠를 주시며 지상의 대리자로 세웠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했지만 마지막에 로마에서 순교했다. 베드로는 당시 공동묘지였던 바티칸 언덕에 묻혔는데 박해가 끝나자 그 무덤 위에 베드로성당이 세워졌다. 그것이 오늘날 교황이 있는 바티칸시국의 토대가 됐다.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들은 그의 신앙을 이어받아 교회를 이끌고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했다. 다른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이 됐고 애덕활동에도 모범이 됐다. 특히 로마의 황제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간 이후에 로마의 주교는 백성에게 사목자이자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 서방에서 로마 주교의 위치가 중요성을 더해 갔다. 레오 대교황이나 그레고리오 대교황 등 여러 로마 주교들의 뛰어난 업적을 통해 로마 교회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어머니 교회 역할을 했다. 교황은 라틴말로 '파파'(Papa)라고 하는데 이는 아버지, 혹은 주교를 뜻하며, 4세기 이래 로마 주교의 호칭으로 자리 잡았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사도단의 후계자인 전 세계 주교단의 으뜸으로서 공의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에 들어 교회가 국가의 간섭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누가 주교가 될 것인가를 비롯해 교회 운영에 국가가 간섭했는데, 이에 맞서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교회 개혁으로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 권력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오히려 세속을 지배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서방교회의 중심이었던 로마 교황까지도 때로는 세속 권력 다툼에 휩쓸렸다. 교황이 동시에 세 명이 나와 서로 파문했던 서방교회의 대분열 등은 교황사의 어두운 부분이다. 교회 내적으로 보았을 때 더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분열이다. 오랜 친교를 맺어왔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졌고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하나였던 서방교회마저도 개신교, 성공회, 천주교로 갈라졌다. 로마 주교인 교황은 전체 교회 신앙의 보루로서 신앙의 형제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교황직이 전 세계의 목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비오 6세 교황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로 끌려간 교황이 수모를 당하며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베드로부터 전해진 교황직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신자들은 교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한 가르침이 확립됐고 교황직은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신앙의 문제에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뚜렷이 전하며 명실공히 세계 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