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1이번 호부터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을 격주로 연재한다. 대표적 대중문화인 영화 속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표출되는 복음 메시지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또 그 메시지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제시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영화와 그리스도교 영성의 접목 혹은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획이다. 서석희 신부는 전주교구 소속으로 교구 홍보국장을 지내고 현재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영상예술)에 수학 중이다. 성경 속 예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흑인 죄수들성경을 통째로 인용흑인 죄수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하는예수 그리스도 장엄함 흑백삽화로 표현1.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화를 볼 때 성경이나 성경구절이 나오면 '왜 하필이면 그 시점, 그 지점에서 인용되는가?'하는 측면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성경구절 인용은 대부분, 단순한 의미로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거나, 부분적으로 영화의 시퀀스나 장면 안에서 뭔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인용된다. 때로 영화를 코믹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성경 내용을 변형시키기도 하지만,-케빈 스미스 감독의 '도그마'(Dogma, 1999)-그런 내용마저도 영화의 전체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 속 성경구절의 역할과 비중, 곧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그 성경구절이 어떤 역할을 하고 영화 주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Amistad, 1997, 155분)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가 소재 2. 영화 '아미스타드'는 1839년의 실화를 근간으로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쿠바로 끌려와 다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팔려 '화물'로 실려가던 흑인 52명이 반란을 성공시킨다. 반란 주모자인 싱케이를 비롯한 흑인들은 고향으로 가려 했지만, 살아남은 백인 2명의 계략으로 미국 법정에 살인 혐의로 서게 된다. 이들로 인해 미국법정은 노예제 존폐를 둘러싼 토론장이 된다. 난생 처음 배운 영어로 외친 "기브 어스 프리"(Give Us Free)는 결국 좌절되고, 그들은 감옥으로 돌아가 다시 판결을 기다린다. 그들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그들과는 무관한 노예 문제를 둘러싼 미국역사의 갈등 지점에 서게 됐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흑인 모두가 노예인 것이 아니라 자유인도 있었다. 또 스페인과는 다르게 영국이나 미국은 노예제를 점차적으로 완전히 폐지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이런 가운데 미국은 북부와 남부가 첨예하게 대립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미스타드호의 반란과 흑인들 문제는 그들을 '화물'이나 '노예'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인'으로 취급할 것인가에 대한 공방으로 치달았다. 이는 곧 북부와 남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싱케이와 잠바 일행은 백인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갇힌 감옥 앞으로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몰려와 기도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 눈에는 '주문을 외는 것'처럼 보였다. 십자가를 들고 가스펠송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싱케이 일행에게는 '슬픈 광대들'로 여겨졌다. 어느 날 이들 일행은 감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슬픈 광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잠바는 그들에게서 성경책을 받게 된다. 중간 중간에 삽화가 그려진 성경책이었다. 물론 아프리카인인 잠바가 영어 성경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경의 주요 장면을 그린 몇 개의 삽화를 보는 것뿐이다. 잠바와 동료들은 성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끼워 맞춰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처음 그림은 유다인들이 사자들에게 던져진 장면이다. 그러자 책을 들고 있는 잠바가 설명한다. ①"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어…. 고난투성이 삶이야."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자 아기 예수가 마리아, 요셉, 목자들에게 둘러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잠바가 또 설명한다. ②"근데 그때 이 아기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던 모양이야." 옆에 있던 동료가 묻는다. "이 아기는 누군데?" 그러자 잠바는 책장을 넘겨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그림을 펼쳐 보이고는, 예수님 머리 위에 있는 후광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③"나도 몰라. 하지만 이 사람이 가는 곳마다 해가 따라다녀." 성경 속 삽화 통해 힘과 용기 얻어 다음 그림은 예수님이 병들어 아픈 듯한 사람들을 만져주는 장면. ④"여기 이 사람이 손으로 사람들을 고쳐주고 있어."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려는 무리들 사이에 서 계신 장면이 나오자, ⑤"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어…"하며 또 넘긴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축복해주는 장면이 나오자, ⑥"아이들도 따스하게 받아주고…." 그들은 삽화를 보며 계속 이야기한다. ⑦"이 사람은 바다 위로도 걸어 다닐 수 있어. 그런데 사건이 터졌어. 이 사람이 잡힌 거야. 뭔가 죄목을 쓰고." ⑧"봐, 여기 이렇게 손이 묶여 있잖아." "뭔가 사고를 쳤나 봐." 그들은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장면을 본다. 옆에 있던 동료 싱케이는 ⑨"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잠바." 하고 돌아서려 한다. 그러자 잠바가 다시 말한다. "하지만, 봐, 이게 끝이 아니야." 둘은 다음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다. ⑩"사람들이 시체를 내렸어…. 그리고 동굴에 넣었어. 우리가 하는 식으로 천으로 싸서." 다음 그림에서는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와 함께 계시는 장면에서 ⑪"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난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지. ⑫그러다 결국은 하늘로 올라갔어."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영혼도 거기로 가는 거야.” 그리고 이들은 맨 마지막으로 ⑬세 개의 빈 십자가가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멎는다. 그들은 자기들을 고국에서 여기까지 데려온 세 척의 빈 배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돛을 응시한다. 마치 세 개의 십자가를 연상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 힘든 순간에 알 수 없는 "그(=예수)"에 대해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 이들이 성경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이들을 판결할 재판관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두 장면이 하나로 이어지고 교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옥에 비치는 빛이 어우러지면서 희망이 감돌고 있다. 3. 영화에서 십자가 세 개와 배 세 척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성경을 통째로 인용하고 있다. 아울러 이 영화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며 성경 속 예수님과 '같은 처지'임을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을 구약성경 탈출기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결부시킨다. 또 '부유한 자를 내치시고 가난한 이들을 들어 올리시는'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의 의미와 결부시킨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적 삶과 고난에서 예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장면은 나아가 예수님이 그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음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며 관객들도 뜻 모를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흑인 죄수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함과 엄숙함이 흑백 삽화에 배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하느님 메시지 듣는 기회 4. 성경을 인용하는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 '아미스타드'를 통해 인용된 성경구절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 의미를 획득하는가를 살펴보았다.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이란 말이 있다.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히고 만다'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그렇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의미를 얻게 되면, 그것은 깊은 묵상이나 삶의 차원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논리적 차원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인용될 때 우리는 유심히 눈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영화 속에서 하느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영화 속 성경구절에 주목해서 영화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창훈2012.01.31

약국 찾아온 노숙인에게 밥해주는 약사이정자씨, 20년간 남편 재활 도우며 미혼모시설, 아프리카 선교 등 후원 20년째 반신마비 남편을 돌보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이정자씨가 자신의 약국에서 쑥쓰러운 듯이 웃고 있다. 이힘 기자20년 전 교통사고로 반신마비가 된 남편(김병욱, 66)을 지금까지 묵묵히 병구완하면서 얼마 전부터는 주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선행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약국을 찾아온 행려인을 위해 밥을 지어 먹이는가 하면, 매달 여러 미혼모시설에 성금을 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성당에 모금하러 찾아온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선교사인 외국인 수사에게 "아프리카를 돕는 것이 평생 과업이었다"며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거액의 성금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 수빈 온누리약국 대표약사 이정자(프란치스카, 60, 서울 성내동본당)씨 이야기다. 이씨는 "우리 약국에 약을 사러 오는 손님 중에도 끼니를 굶는 분이 계시다"며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떠올라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약국 한쪽에 있는 창고에는 각종 약 상자뿐 아니라 고구마와 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줄 겨울 외투 등이 쌓여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자 창고에 아예 먹을거리를 채워놓은 것이다. "거의 매일 1년 넘게 찾아오는 노숙인이 있어요. 마흔 살은 돼 보이는 데 항상 16살이라고 대답해요. 어느 날 약국 청소를 하고 싶다며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더라고요. 그러면서 '누나는 내 희망이에요'라고 말하더군요. 코끝이 찡했어요. 어려운 이웃이 작은 도움으로 삶의 희망을 얻는 것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요." 이씨는 요즘 "사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나눔이 가져다 준 은총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이들마다 그를 '잘 웃는 약사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은행 직원이 "참 잘 웃으시네요"라고 하기에 그는 "성당에 다녀보세요. 그럼 웃을 일이 많아질 거예요"라며 교회로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 지냈다. 고통은 20년 전에 시작됐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의식도 없이 응급실에 실려온 남편은 살 확률이 10%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다. 매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성심기도원을 찾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남편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하지만 삶은 버겁기만 했다. 오전에는 반신불구가 된 남편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는 약국에서 일하는 고된 삶이 이어졌다. 밤낮으로 이를 악물고 일했지만, 2000년께 지인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되면서 형편은 더 나빠졌다. 고통 속에서 기도에 매달리면서 그는 하느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1982년 영세한 후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했는데, 하느님께서는 갖은 어려움이라는 '고통의 신비'로 당신 품으로 다시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이씨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제 죄를 씻는다고 생각해요. 의약분업 이전 저는 참 많이 낙태약을 처방했지요.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한 저는 죄인입니다. 기도원에 가는 것도 태어나지 못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예요." 그는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선택하셨다고 여긴다. 그래선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에페소서 2장 10절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1.19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124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예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자매님께서 천주교회를 다니는 언니와 함께 성지순례를 왔습니다. 기도 생활도 잘하고,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는 전형적인 열심한 개신교회 신자였습니다. 언니는 동생 못지않게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성물판매소를 하고 있으며, 신앙생활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하는데 동생은 영성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하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동굴에서 예수님 그림을 보고 그 동생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언니가 조용히 이야길 합니다. 동생이 세례 받기를 원하는데 주면 어떨까요? 순간 생각했습니다. 저 열심한 개신교 신자가 지금 마음이 흔들릴 때 세례를 주고 천주교로 확 끌어들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돌아가 본당에 가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그 동생은 정말 열심히 교리를 배웠고 성탄 무렵에 헬레나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언니에 뒤지지 않는 열심한 신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천주교로 개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한국이름 이외에 서양이름이 있는데 자기도 그런 서양이름을 갖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긴 가브리엘, 베드로, 젬마, 헬레나, 루카 이런 이름이 있다는 것이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례가 단순히 새로운 이름 하나 더 얻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세례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보았던 신문의 기사 내용이 생각납니다. 중국에서는 장군들이 매년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낸다는 기사였습니다. 장군들은 군 생활을 오래했지만 장군이 되면서 병사들과는 많이 떨어져서 지내게 되고 그래서 병사들 고충이 무엇인지, 병사들 분위기가 어떠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장군들은 매년 며칠씩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하고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병사들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체험이 장군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고 있으며 병사들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장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장군들도 그런 체험을 할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특권층'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런 특권층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특혜를 받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이야말로 '특권층 중에 특권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몸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과 권한이 있지만 섬기려는 삶을 사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세례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특혜를 받고 섬김을 받고 그래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않는 삶,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않은 삶이었으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었습니다.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인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 권리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세례'가 곧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례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는 이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례 받은 신앙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 첫째, 바른 인생길을 가야 합니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해야 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를 풀어주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러면서 오늘 요한 세례자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모든 영광과 기쁨은 하느님께로 돌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받아주시듯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백영민2014.01.07
![[평화칼럼]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cpbc.co.kr/CMS/newspaper/2013/10/rc/480628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박군수 미카엘(평화방송 라디오국장) LP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음반 위에 바늘을 얹고 첫 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의 설렘. 턴테이블 위 음반이 마치 클래식 선율처럼 유장하게 돌아가던 모습.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음반 목록인 '족보'라는 것이 있었고, 명반으로 회자되는 것들을 몇 장이나 가지고 있느냐가 고수를 가리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시절, 음반회사에 갓 입사한 직원의 경험담이다. 점심시간에 사무실로 자장면이 배달됐다. 곧바로 "깔아, 깔아" 하는 선배 목소리가 들렸다. '뭘 깔라는 거지?'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선배는 음반 몇 장을 테이블 위에 깔았다. '아니, 저 명반을 자장면 받침으로 깔다니….' 그러나 해 본 사람은 안다. LP 음반이 중국음식 받침으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라디오 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한때 전화 신앙상담이 인기를 끌었다. 요리문답 수준에서부터 깊이 있는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전화를 받고 방송으로 연결하는 피디는 목이 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이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어쩌나? 어느날 연세 지긋하신 자매님이 전화를 하셨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피디의 채근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저,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매님은 평화신문 독자였다. 매주 배달되는 신문을 읽고 또 읽으며 차곡차곡 모아왔는데 오래도록 쌓이다 보니 집안에 둘 곳이 마땅찮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고, 교황님 사진이며 존경하는 추기경님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을 분리 수거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평화신문을 마치 성물처럼 귀하게 여기는 자매님의 '고민'을 들으며 목이 메었다. 우리가 이렇게 소중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반성도 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곧바로 자매님의 '고민'을 방송에 연결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피디의 고민이 밀려왔다. 신부님이 이 '고민'에 어떻게 답변을 할지, 더구나 생방송인데…. 신부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네, 자매님! 걱정하지 마시구요, 본당 사무실에 가져다주세요." 평화방송 라디오가 가을을 맞아 프로그램 단장을 새롭게 했다. 아침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 생방송을 통해 청취자를 만난다. 마음이 설렌다. 개편 프로그램을 방송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몇몇 프로그램은 벌써 청취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세상의 아픔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도로 위안 받는 시간인 '기도의 오솔길'에 잔잔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작한 개편 준비는 평화방송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일로 출발했다. 10년 전인 2003년 청취율 자료와 2013년 조사결과를 검토했다. 두 자료를 비교해 보니 그 10년 간 라디오 청취층에 변화가 있었고 선호 프로그램도 달라져 있었다. 재미와 편안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비율이 20%를 넘었다. 8월에는 라디오 가족들이 워크숍을 갖고 열띤 논의와 토론을 통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지혜를 모았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평화방송이 교회의 신뢰 속에 신자와 청취자의 사랑을 받는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명도 새겼다. 복음의 발원지! 평화방송의 본분을 다하면서 청취율도 올리려는 이번 개편에 많은 분들이 격려를 보내주셨다. "평화방송 살아 있네!" 오래 전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주셨던 자매님의 지극한 마음을 생각한다. cpbc2013.10.29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83>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2)](//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92_1.1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2)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가톨릭교회 교리서」(1992년)는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신앙고백', '그리스도 신비의 거행'(성사),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그것이다. 신앙고백도 성사도 기도도 우리 교우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다. 그 내용의 복잡성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삶이란 말도 사실은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 말 '사람'은 '살다'의 이름씨인 '삶'과 '알다'의 이름씨인 '앎'이 결합된 말이라고 배웠다.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러니까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을 아는 것'쯤으로 풀 수 있다. 그리스도처럼 사는 길이 무엇인가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간 존엄성, 인류 공동체, 하느님의 구원-법과 은총, 십계명으로 나눠서 풀이하고 있다. 교리서는 인간 존엄성에서 그 근거와 인권(인간의 기본적 권리들과 모든 권리의 원천이며 목적이 되는 생명권)과 국가의 의무를 가르친다. 인류 공동체에서는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재화(혹은 재화사용)의 보편 목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을 가르친다. 십계명 부문에서도 흔히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단순한 종교적 계명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군 복무를 공동체에의 봉사로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대체복무제와 국가의 의무를 가르치고 있다. '거짓증언 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대중매체와 관련한 교리가 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에서는 국가의 가정에 대한 의무에 대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다. 이를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이 현실에서(가정ㆍ문화ㆍ경제ㆍ정치ㆍ생태ㆍ평화ㆍ국제질서ㆍ법과 제도) 무엇을 실천하며 살아야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인지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교리서가 이렇게 현실의 문제를 교리로 제시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바로 세상 안에서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체험하고 있으며, 교회는 마땅히 하느님 백성과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으로 인간다운 세상 만들어야 얼마 전 폐막한 '신앙의 해'는 앞에서 소개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출간 20년뿐만 아니라, 이 새 교리서의 배경이 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 개막 50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이 공의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헌은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사목헌장」의 구성과 내용을 거의 고스란히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과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제3편, 교황 및 주교들의 가르침,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역사적 공동체적 체험 가운데 이른바 '현실' 혹은 '세상'과 관련한 것들을 정리한 「간추린 사회교리」를 교회는 2004년에 내놓게 된다. 가톨릭 신앙인뿐만 아니라 교우가 아닌 분들은 가톨릭교회가 '세상' 혹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토록 깊은 관심이 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꽤나 생소할 것이다. 사람들은 물론 가톨릭 신앙인조차 이를 개입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다음과 같이 인간에 대한 봉사라고 밝힌다. 교회는 인류가 직면한 "고뇌에 찬 문제들에 대하여 인류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그 문제들을 복음에서 이끌어 낸 빛으로 비추어 주고(…) 구원의 힘을 인류에게 풍부히 제공함으로써, 하느님 백성(교회)이 들어 있는 온 인류 가족에 대한 연대와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사목헌장」 3항).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는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이끌어야 할 원리들(인간 존엄함과 인권,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보조성, 참여, 연대)과 더불어 근본적인 가치들도 제시한다. 이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로 교회는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을 꼽는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휩쓸려 거짓과 억압, 불의와 미움이 판을 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이성과 지성과 양심은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을 실현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래서 교회는 이 가치들을 "경제, 정치, 문화, 기술의 본질적 개혁과 필요한 제도 개혁을 이루도록 부름 받은 공권력의 필수적인 준거"로 제시하며, 더 나아가 "사람들이 내린 여러 가지 결정들 안에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는지 보여주고자 현세 질서에 개입한다"고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97항 참조).cpbc2013.12.10
![[아! 어쩌나] 229. 제 영혼이 더러워 보여요](//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87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29. 제 영혼이 더러워 보여요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Q. 성경을 보면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저를 두고 한 것 같아 마음이 찔리곤 합니다. 기도하면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게다가 성적으로 아주 불결한 생각마저 들어서 저 스스로 놀랍니다. 제 안에 '무슨 악마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자주 갈등을 겪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안하게 사귀는 것 같은데 저는 늘 마음이 개운치 않고,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자주 바뀌곤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A. 저 역시 젊었을 때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마음만 먹으면 인생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 기도 모임을 찾았고, 이름 난 스승들을 찾아 마음을 바꿀 방법을 배우려 했습니다. 그때 생각에는 그렇게 몇 년만 노력하면, 무엇인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치고 싶은 결점은 더 많아지고 바꿔야 할 결함도 늘어만 갔습니다. 왜 도인들처럼 되고 싶어 노력했는데 왜 내 마음은 바뀌지를 않고, 그야말로 만신창이와 시궁창같이 돼가는 것일까요?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주 오랜 뒤에 알게 됐습니다. 누가 '사람의 마음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갈등'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보기에 아주 믿음이 깊고 강직한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일대기를 듣다 보면, 그렇게 험한 일을 많이 당하셨는데도 끄떡없이 순탄치 않은 인생길을 가신 그분의 마음은 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변함없는 믿음으로 꽉 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끔 기록된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보면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솔직히 고백하기를 "자신은 인생에서 더 선한 것을 보고 인정하면서도 마음은 더 악한 것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내 안의 선하지 않은 부분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옛날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원죄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더러운 영처럼 사는 것인가요? 왜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걸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 안의 자아 중에서 아주 고약하고 사악한 자아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이건 간에 범죄자가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이건 간에 감옥은 늘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같이 울어주고 선행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것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사악한 마음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악함이 내 안을 점령하지 못하게 늘 마음을 살피고 있어(자아 성찰) 기승을 부리지 못할 뿐입니다. 마치 감옥 안의 죄수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듯, 그렇게 내 안의 어둠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 내 마음의 절제력이 떨어졌을 때 그 어둠이 밖으로 나와 내 영혼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병적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암 덩어리 같은 병적인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위에서 던지는 병적 말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한 말들은 아이에게 치명적입니다. 무관심을 넘어서 무시를 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은 평생을 '열등 콤플렉스'와 '적개심'을 가지고 살면서 파괴적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병적 콤플렉스가 사람으로 하여금 소위 예쁜 짓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운 짓만 골라 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고 인정받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내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봐야 합니다. 보지 못하면 나가라고 할 수 없고, 나가지 않으면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종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루카 4,35).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cpbc2013.12.10

하느님 말씀 새기며 하나된 안동교구 계림동본당안동교구 계림동본당, 교구 축제 앞두고 9일간 말씀축제성경가훈 전시ㆍ성경암송 경연ㆍ골든벨 등 다채로운 행사안동교구 계림동본당 신자들이 성경 말씀으로 서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말씀으로 하나 됐어요!' 안동교구 상주 계림동본당(주임 김한모 신부)은 8~16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를 주제로 말씀 축제를 열고, 9일간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기며 하나가 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를 '말씀 실천의 해'로 지내고 있는 안동교구에서 '교구 말씀 축제'(10월 14일)를 앞두고 본당 차원에서 말씀 축제를 마련한 것은 계림동본당이 처음이다. 본당은 8일 성경 가훈 제작을 시작으로 축제 막을 올리고 9일에는 말씀 축제 개막미사를 봉헌했다. 10~16일에는 신자들이 제작한 성경가훈 서각과 글씨 등 작품 200여 점을 성당 1층 로비와 만남의 방에 전시했다. 성경 필사본과 성경통독 인증서, 성화 등도 함께 걸렸다. 12일 말씀을 주제로 열린 발표회에서는 성경암송과 성가경연, 장기자랑, 성경 체험수기 발표 등이 이어졌다. 13일에는 성경과 관련된 영화 '미라클 메이커'(2000)를 상영했고, 14~15일 성경 퀴즈와 성경 골든벨, 성경 피정 등이 잇따라 열렸다. 성경 피정에서 참석자들은 자신의 삶 안에서 살아 있는 말씀을 체험한 소중한 경험 등을 나눴다. 16일 교중미사 때 종합발표와 시상식에 이어 말씀 영상 상영으로 축제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는 본당 전 신자가 말씀에 맛 들이는 계기가 됐다. '언젠가는 성경을 읽어야지'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신자들이 축제를 계기로 성경을 읽고 필사를 했다. 성경 필사에 참여한 신자는 208명으로, 본당 주일미사 참례자가 300여 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어린 아이를 제외한 신자 대부분이 참여했다는 뜻이다. 신자들은 말씀으로 서각 등 작품을 만들거나 퀴즈에 참여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성경을 읽고 묵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말씀 축제에 자신의 서각 작품을 낸 박단선(예비신자, 41)씨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을 예정인데, 세례받기 전부터 본당 축제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참다운 신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일창(모이세) 사목회장은 "특별히 젊은이들이 말씀 축제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도록 앞으로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2.09.18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396_1.2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 그래도 기도합니다 김영수/생활성서/7000원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십자가로 괴로울 때, 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어지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그 순간에도 저자(김영수 아브라함, 시인)는 '그래도 기도합니다'라며 하느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온갖 죄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저에게 내려주소서"(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중에서). 괴로운 마음을 하느님 앞에 털어놓으며, 사랑과 은총을 청하는 기도가 마음을 위로해준다. 창조론 알렉산드레 가노치 지음/신정훈 옮김/가톨릭대학교출판부/2만 원 사람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빚어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일까. 이 책은 그리스도교 창조신앙과 진화론을 대표로 하는 자연과학의 연구 현황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창조신학을 살펴보고, 교부시대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사 흐름 안에서 논의돼 온 창조론을 분석했다. 이어 진화론을 함께 다루며 그리스도교 창조론 해석 원칙을 제시한다.마리아, 복되신 어머니 데이비드 나이트 신부 지음/조민현 신부 옮김/히스웨이/1만 원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해설한 책.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고,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으며 하늘에 불려 올라가셨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책은 이처럼 신비로 가득한 마리아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머리로 이해한 마리아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각 장 끝에 성경 구절과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묵상주제 등을 실었다.하느님의 등불 성녀 필리핀 뒤셴 루이즈 캘런 지음/안은경 옮김/나이테미디어/5만 원 아메리카 선교의 선구자로 꼽히는 성녀 필리핀 뒤셴(성심수녀회, 1769~1852) 수녀의 삶과 영성을 다룬 전기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녀는 성심수녀회를 설립한 성녀 마들렌 소피 바라를 따라 성심수녀회 수녀가 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 선교에 헌신했다. 성녀는 아메리카 지역에서 여성 교육에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고, 수녀회를 성장시키며 예수성심을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 성녀는 1940년 복자로 선포됐고, 1988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영성생활 길잡이- 인간 마음의 형성 정영식 지음/쉐마북스/1만 5000원 영성이 없는 믿음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 종교가 없어도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이들의 삶은 위기가 닥칠 때 쉽게 무너진다. 왜 착하게,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 정영식(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신부는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을 강조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영성과 연결돼 있다는 정 신부는 이 책에서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일상생활에서 영성을 구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4.16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5)공의회 이후 변화 모국어로 미사 참례, 성경에 관심 증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 모습. 영성체 할 때는 제단과 신자석을 분리시키는 난간 앞에 무릎을 꿇고 입으로 성체를 모셨다. 오늘의 가톨릭신자들은 50년 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와 신자들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0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회 신자 수는 520만5589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65년 말 신자 수는 53만 217명이었습니다. 당시 신자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서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그 비율은 전체 신자의 10%에 불과합니다. 이미 선종하신 분들을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공의회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변화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공의회 이후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전례 쇄신과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강조 가장 먼저 이뤄진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례 분야였습니다.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이 반포되고(1963년 12월 4일) 난 직후 1964년 4월 한국 주교회의는 전례 쇄신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촉진이라는 전례헌장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산하에 전례위원회를 설치합니다. 전례위원회의 첫 결실은 한국어 미사였습니다. 당시까지 미사 전례는 라틴어로 거행했습니다. 신자들은 뜻도 잘 모르는 라틴어를 귀동냥으로 따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라틴어를 따라 하기 힘든 신자들은 미사와 상관 없이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 변화였습니다. 주교회의는 공의회 기간인 1964년 10월 로마에서 회의를 열어 1965년 1월 1일부터 자비송, 대영광송, 독서, 복음, 신경, 거룩하시다 등 신자들이 함께 하는 부분은 한국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교회의는 우리말 미사 취지가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사제들에게 제대로 시행할 것을 당부하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미사통상문'으로 지칭되는 우리말 미사는 이후 로마(교황청)의 미사경본 개정 작업에 따른 우리말 번역 작업과 수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미사 전례에서 바뀐 것은 모국어 사용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사제는 성찬 전례 때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자들은 사제 등을 바라보며 미사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사제는 지금처럼 제대를 중심에 두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제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중심에 모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석과 제단 사이에는 분리 난간이 설치돼 있었고 신자들은 난간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입으로 받아 모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난간은 모두 치워졌고, 신자들은 서서 손으로 성체를 모십니다. 성당에서 하는 동작들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거나 성당에서 제대를 가로지를 때 지금은 모두 큰 절로 제대를 향해 예를 표시합니다만, 공의회 이전에는 마치 중세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시했습니다. 이 밖에 여성이 미사 복사를 서거나 평신도에게 예외적으로 성체 분배권을 수여하는 것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른 변화들입니다. 전례력 개혁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이뤄진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가 예수 성탄과 예수 부활을 두 축으로 해서 대림시기를 시작으로 성탄시기-연중시기-사순시기-부활시기-연중시기로 1년을 전례주년으로 지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인들의 축일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전례주년의 중심은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1969년 지금과 같은 전례력이 마련돼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례 쇄신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말씀 곧 성경에 관한 강조입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에서 성찬 전례가 강조됐고 말씀 전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습니다. 이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이 "오직 성경만으로!"를 주장한 데 맞서 가톨릭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전(聖傳)과 함께 성사(聖事)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경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미사 전례에서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활용될 것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미사에서 말씀 전례도 성찬 전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습니다. 특히 공의회는 계시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 번역은 물론 성경 읽기와 성경 보급, 성경 연구 사도직 활성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에서도 성경에 대한 관심이 일고 성경 공부에 집중하는 사도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주교회의 산하에 성서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공의회가 끝난 후인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는 제대로 다 번역된 신구약 성경이 없었고, 새로운 성경 번역을 추진하던 성서위원회는 1968년 개신교와 함께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경이 1977년에는 공동번역 구약성경이 출간되면서 합본으로 발간됐습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교회 일치 촉진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함께 작용한 결실이었습니다. 개신교 측에서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아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1980년대에 분도출판사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펴냈고, 2005년에는 가톨릭교회의 독자적인 새 번역 성경이 출간됐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한 공의회 가르침은 일반 신자들을 위한 성경 공부 모임으로 이어졌습니다. 1972년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성서모임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들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에는 성경 공부뿐 아니라 성경 필사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에 더욱 맛들이려는 노력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례 쇄신 운동과 성경 연구 및 보급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특히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운동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와 쇄신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1.31

전국 각 교구장, 아기 예수 탄생 축하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이웃에게 사랑 전하자 전국 각 교구 교구장들은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12월 24~25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가장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탄생을 축하했다.김희중 대주교가 이주민 가정 자녀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고 있다. 장재학 명예기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2013년 12월 25일 광주 원동성당에서 광주지역 이주민과 함께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김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다"면서 "우리 또한 그 사랑을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고 모든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 후에는 이주민과 자녀들이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며 예수 성탄을 축하했고, 광주이주민회관을 비롯해 교구 빈첸시오회, 운남동ㆍ원동본당 빈첸시오 회원들은 떡과 삼겹살을 마련해 미사 참례자들과 음식을 나눴다. 장재학 명예기자 bio2583@pbc.co.kr 의정부교구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이날 산재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필리핀 이주노동자 아리엘씨 가정을 방문, 집에서 예수성탄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아리엘씨는 12년 전 작업 도중 큰 사고를 당해 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프라도수녀회 요셉피나 수녀와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구리 엑소더스의 도움으로 산업 재해 인정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거동할 수 없는 아리엘씨를 위해 의정부교구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그의 집을 방문, 필리핀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해 왔다. 최근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이기헌 주교는 예수성탄대축일에 일정에도 없는 아리엘씨 가정을 방문, 가족과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리길재 기자 대전교구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12월 25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 봉운로 아동양육시설인 새감마을(원장 김경옥 수녀)을 찾아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새감마을 공동체와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유 주교는 강론에서 "더 좋은 새감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잘못했을 때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고, 성경 말씀대로 내가 먼저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랑받는 아들 딸이 되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미사 직후 유 주교와 사제단은 원생들에게 교구 장애인사목부 느루공동체에서 만든 쿠키를 선물하고 원생들에게서 모형 자전거를 선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기사ㆍ사진 제공=대전교구 홍보국 부산교구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12월 24일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부산가톨릭농아복지회를 찾아 성탄 미사를 봉헌하고 청각장애인들을 격려했다. 황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성탄 최고의 신앙 선물은 바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라며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받아 모시며 참 평화를 이루는 성탄절,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탄절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상해 명예기자 jsh@pbc.co.kr 안동교구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예천본당 지보공소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거행하고,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다. 권 주교는 강론에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자신과 동일시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마태 25,40)을 엿볼 수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제주교구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12월 25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강 주교는 미사에 참례한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 신자들에게 "오늘 작은 아기로 우리 가운데 와 주신 예수님의 엄청난 사랑과 자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자"며 청했다. 강 주교는 강론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셨고, 항상 아끼셨던 세상의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어려운 이들, 그런 이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 대열에 낄 수 있다"며 "하느님 마음을 닮은 마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도 천사들과 한목소리로 구세주 탄생을 노래하고 찬미할 자격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질책하고 심판하시기보다 그들의 애환 속에 함께 어울리고, 울고, 가슴 치고,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기를 선택하셨다"며 "우리 형제들이 정의에 목말라하고 불의에 항거하면서 울부짖고 싸우고 얻어맞고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는 오늘의 순교적인 현장들을 순례하면 예수님께서 훨씬 더 기뻐하시고 우리를 어여삐 여기실 것"이라고 위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군종교구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12월 25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육군교도소 희망대공소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를 집전하고, 수감된 장병들을 위로했다. 유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내 마음과 내 삶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밝혀주신다"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님께 내 마음과 영혼 모두가 향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2.3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격변하는 시대, 교회의 쇄신과 적응 이끌어낸 20세기 신학자들 생애·사상 통한 신앙적 성찰](//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85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격변하는 시대, 교회의 쇄신과 적응 이끌어낸 20세기 신학자들 생애·사상 통한 신앙적 성찰<1>전체개관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식에는 전 세계 2500명 이상의 교부들이 참석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 바라보던 종래의 배타적 시각에서 벗어나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한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시도였고 공헌이었다. 사진은 1962년 10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막을 올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장. 평화신문이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신학과사상학회(학회장 백운철 신부)와 공동으로 특별 기획한 것은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을 연재, 소개하는 작업이다. 신앙생활을 위해 반드시 신학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 성찰은 신앙적 판단력을 심화시키고 질적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성경 공부에 맛 들이며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지만, 신학은 아직 생소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신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 그저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신학자들이 말한 바가 과연 무엇인가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러 신학자를 소개할 예정이다. 20세기 가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를 선별해 그들의 생애와 사상과 영향 등을 다룰 것이다.20세기 신학의 중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여기에는 신학적 전문성이 전제돼야 하기에 신학과사상학회가 특별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신학과사상학회는 가톨릭 신학과 사상을 더욱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진을 중심으로 2007년 결성한 전국 규모의 학회다. 현재 신학과사상학회가 매년 2회 발간하는 전문학술지 「가톨릭 신학과 사상」은 우수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1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Korea Citation Index)에 정식으로 등재됐다. 20세기 신학의 전반적 흐름 안에서 평화신문과 신학과사상학회가 선별한 현대 신학자를 소개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중심축을 이루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교회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선별된 신학자들과 공의회 관계는 어떠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격변의 20세기를 맞이한 가톨릭교회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야 했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로 이러한 와중에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 세계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자성과 쇄신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전반적인 쇄신 작업을 이룩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새롭게 되새겨 복음 정신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우리 모두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많은 비극적 사건으로 점철된 암울한 20세기 전반기를 보낸 후, 가톨릭교회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과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폐쇄적 입장을 취했던 가톨릭교회에 쇄신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비극을 깊이 체험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이뤄진 복음적 재성찰의 결과다. 교회는 결코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할 수 없으며 그들의 염원과 소망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결과였다.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가 서거한 후, 급변하는 시대에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갈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일에 교회와 세상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전통주의적 견해를 고수하던 신앙교리성 장관 알프레도 오타비아니(1890~1979) 추기경을 지지한 이탈리아 추기경들과 변화와 개방을 요구하던 프랑스 추기경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베네치아교구장이던 안젤로 론칼리(1881~1963) 추기경이 선출돼 '요한 23세'라는 교황명을 택하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1881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제가 됐으며 1925년 교황청 순시자로 임명돼 불가리아에 파견된 후 주교품을 받았다. 이후 그리스와 터키 주재 교황대사를 거쳐, 1944년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됐다. 이때 쌓아놓은 프랑스 주교들과 친분이 교황 선출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1953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교구장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그가 1958년 10월 28일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그는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고, 이미 77세라는 고령의 나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 '콘클라베' 과정에서 이탈리아 추기경과 프랑스 추기경 사이에 팽팽한 대립의 결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요한 23세는 교황 즉위 후, 예상과 달리 매우 의욕적 행보를 보였다. 그는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마치 시골 사제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자애로운 사목자상을 보여줬다. 1959년 1월 25일에는 새로운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개인적 확신과 결단에 따른 것이었고, 요한 23세는 이를 하느님께서 내리신 영감의 결과였다고 여러 번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 결정에 매우 놀랐다. 이후 본격적인 공의회 준비 과정에 들어갔고 전 세계가 이를 큰 기대 속에 지켜봤다. 요한 23세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시대의 표징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더는 세상의 아픔과 관심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의 복음적 쇄신과 개방, 그리고 시대 적응(Aggiornamento)을 외쳤고 결국 1962년 10월 11일 역사에 길이 남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을 열었다. 개막식에는 전 세계에서 온 2500명 이상의 교부들이 참석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 바라보던 종래의 배타적 시각을 복음의 빛에 근거해 재해석하려 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시도였고 공헌이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을 철저히 분리하는 대신, '안을 향한 교회'와 '밖을 향한 교회'라는 새로운 견지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학적 통찰은 「교회 헌장」에선 친교를, 「사목 헌장」에선 봉사 개념을 각각 천명하며 구체화돼 드러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영향을 미친 신학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은 요한 23세의 개인적 결단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그러한 교회적 성찰과 변화를 위한 염원은 이미 하나의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활동했던 여러 신학자들 영향이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문위원이나 신학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직접적으로 공헌한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작성에 간접적으로 신학적 영향을 미쳤던 사람도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직접 참여한 대표적 인물로는 지난 2월 말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를 들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요제프 라칭거(1927~ )라는 이름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 독일 쾰른대교구장인 요셉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렇듯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혹은 공의회 전후로 활동하며 공의회에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 가톨릭 신학자를 꼽아본다면 베네딕토 16세 외에도 아래와 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대부분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에서 활동한 신학자다. 먼저 프랑스 신학자를 살펴보면, 고생물학자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있다. 그는 우주 발전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상승적 진보를 강조하면서, 이 모든 자연적 진화 과정이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진화적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 즉 자신에게 회귀하는 우주적 진화의 종착점이다. 샤르댕은 진화적 세계관 안에서 우주와 인간의 탄생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며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는데, 이는 교회 안팎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예수회원 앙리 드 뤼박(1896~1991)은 공의회 개막 이전에 세상을 떠난 샤르댕과 달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신학 자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했고, 그의 저술은 교회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공의회 문헌 작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드뤼박은 1983년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앙리 드뤼박과 함께 프랑스의 '신(新)신학'을 전개한 도미니코회 소속 이브 콩가르(1904~1995)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작성에 직접 참여한 신학자이며, 교회론과 성령론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콩가르는 1994년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한편, 독일어권 신학자를 살펴보면 먼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자라고 활동한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를 들 수 있다. 과르디니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전개 속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종교철학적이고 가톨릭 신학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가운데 자신의 독보적인 인간학적 견해를 제시했다. 20세기 독일어권 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손꼽히는 교의신학자는 인간학적 초월신학을 전개한 독일 예수회원 칼 라너(1904~1984)다. 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고전적 신학을 현대적 지평에서 새롭게 해석한 공로를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라너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궁극적 실재를 향한 초월로 개방돼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받는 실존, 즉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서 있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간학을 구축, 은총론과 그리스도론 등의 신학을 매우 유기적이며 조직적인 체계 안에서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전개했다. 라너는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자문위원에 임명돼 공의회 기간 활발히 활동했다. 스위스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1988)는 사랑의 현상에 착안한 '심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 그는 이성적 숙고와 역사적 탐구, 그리고 사랑으로 이뤄지는 인간적 자유의 과제가 파스카 신비 그 자체 안에서 모두 하나를 이룬다고 봤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필돼 1961부터 26년에 걸쳐 출간된 그의 방대한 신학 3부작 저서는 첫째로 신학적 미학(1961~1969)을, 둘째로 신학적 드라마(1971~1983)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신학적 논리학(1985~1987)을 다룬다. 벨기에 출신이며 도미니코회 소속인 에드워드 스킬레벡스(1914~2009)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여해 활동했던 진보 성향의 신학자로서 교회직무론과 그리스도론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서술적 그리스도론' 입장에서 예수님 역사를 곧 우리 시대를 위한 살아 있는 역사로, 성경적으로 근거 있고 신학적으로 책임 있게 이야기하기를 시도했다. 즉 예수님의 인격적 체험이 모든 인간을 위한 공통적 체험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그리스도론이란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현시됐던 바가 서술적 방식으로 현재화되는 것이라 하겠다. 스위스 출신의 신학자 한스 큉(1928~ )은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신학 자문 역할을 맡았다. 큉은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들, 그리고 인본주의의 다양한 흐름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충돌에 관심과 염려를 보이며 자신의 진보 성향의 신학을 펼쳤다. 그는 1970년대 자신의 교회론적 주장으로 교도권과 갈등을 빚고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도교 사상사뿐 아니라 타 종교와 대화, 세계윤리, 과학과 대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을 넓혀가며 자신의 방대한 신학 사상을 전개했다. 독일의 기초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1928~ )는 칼 라너의 제자이면서도 라너의 이론적인 초월신학을 넘어서 더욱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스킬레벡스와 같이 '서술적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을 사용했다. 교회 공동체가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기억과 수난사를 되새기며 사람들이 연대성 안에서 이를 믿고 회심해 따르도록 호소하고 격려할 때, 마침내 그리스도 사건의 정체와 의미가 진정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학적 탐구가 곧 사회윤리적 차원의 관심과 실천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전이가 이뤄진다. 독일의 발터 카스퍼(1933~ ) 추기경은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승계자로 평가되며, 2010년까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1974)는 아직까지도 그리스도론 분야의 최고 명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의 또 다른 명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1972)은 튀빙겐대학교 교수 시절 제자인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이 번역, 국내에 소개됐다. 그리고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대교구장인 크리스토프 쇤보른(1945~ )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세대에 속하지만, 현재 바티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하나다.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책임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20세기 활동한 제3세계 신학자 한편, 20세기에 활동한 제3세계 신학자들을 살펴보면 우선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태동시킨 페루 도미니코회 구스타보 구티에레즈(1928~ )를 꼽을 수 있다. 구티에레즈는 1970~80년대 남미의 억압적 시대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외치며 등장한 해방신학이 복음 정신에 입각한 신학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하며 이를 여러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렸다. 이후 해방신학은 여러 신학자에 의해 다양한 갈래로 전개됐는데, 사회 분석을 위한 방법론적 채택의 오류와 일부 노선의 급진성 등이 지적받으며 교도권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남미 해방신학의 출현은 20세기 신학사에서 제3세계 신학과 토착화 신학의 흐름이 다양하게 등장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고 평가된다. 아시아적 맥락에서 토착화 신학을 구체적으로 전개한 인물을 꼽는다면, 다년간 대만 보인대학교 총장을 지낸 루오꽝(羅光, 1911~2004) 대주교를 들 수 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관점에서 중국 철학을 새로이 조명하며 동서를 관통하는 가톨릭 철학 사상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스콜라 철학과 유가 철학의 상호보완적이고도 통합적인 관점에서 '생명철학'을 전개함으로써, 사상적 관점의 토착화라는 차원에서 아시아 신학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평가된다. 아시아 신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톨릭 신학자는 스리랑카의 예수회원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1934~ )이다. 신학자이며 불교학자인 피어리스는 가난과 종교심이라는 두 가지를 아시아 신학의 핵심 요소로 간주해 출발한다. 그래서 '강요된 가난'이라는 실재를 살아가는 아시아 대륙에서 전통적 종교 유산을 통해 내려오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복음적 요소를 재발견, 그리스도교 신앙 관점에서 재성찰함으로써 '아시아의 해방신학'이라는 통합된 신학적 전망을 제시했다.윤리신학·전례신학·성서신학자 지금껏 교의신학자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교의신학의 인접분야인 윤리신학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베른하르트 해링(1912~1998)을 들 수 있겠다. 독일 구속주회 회원인 해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가톨릭 윤리신학에 대한 대화적 접근을 시도했다. 한편, 20세기 후반에 들어 주목받은 생태신학 분야에서는 미국 예수고난회 소속 토마스 베리(1914~2009)의 업적이 크다. 그는 생태학을 심원한 신학적, 영성적 차원에서 다루며 '생태영성'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여성신학 역시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주목받은 분야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한 성경신학자 엘리자베스 슈쓸러 피오렌자(1938~ )는 현대 여성신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손꼽을 수 있다. 전례신학 분야에서는 독일 베네딕도회의 오도 카젤(1886~1948)이 있다. 그는 예수님 생애 신비 신학을 다루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업적은 전례에서 거행되는 신비 안에서 현존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카젤의 신학적 입장은 전례 거행의 구원론적 의미를 밝히는 데 기여했고, 20세기 전례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 개혁에도 이바지했다. 한편, 영성신학 분야에서는 프랑스 베네딕도회 쟝 러클레르크(1911~1993)와 오라토리오회 루이 부이에(1913~2004) 등이 20세기 가톨릭 영성신학의 흐름을 이끌어간 주요 인물로 꼽힌다. 성서신학 분야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 속에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론을 수용, 학문적인 성경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베네딕토 16세가 「나자렛 예수」 1권에서 '20세기 후반 독일어권의 가톨릭 성경학계에서 가장 출중한 학자'라고 언급한 루돌프 슈나켄부르크(1914~2002)는 4권으로 이뤄진 「요한 복음 주석서」를 비롯해 「네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1993)에 이르기까지 신약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구약 성경 전반에 관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독일 예수회원 노르베르트 로핑크(1928~ )를 꼽을 수 있다. 한편, 프랑스 성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샤를르 페로(1929~ )가 있다. 그는 처음에 유다이즘을 연구하다가 초대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에 전념하게 됐다. 페로는 「예수와 역사」(1979)를 통해 역사의 예수님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고,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1997)에서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했으며, 마침내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2000)를 발간함으로써, 역사의 예수님에서 신앙의 그리스도를 거쳐 초대 교회의 직무에까지 이르게 되는 3부작을 완성했다.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도 걸출한 신학자들이 배출됐다. 슐피스회 소속의 레이먼드 브라운(1928~1998)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간 연구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신약 성경 입문」(1997)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신약 성경 연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쿰란 문헌 연구의 전문가인 예수회원 조셉 피츠마이어(1938~ )는 해박한 아람어 지식을 바탕으로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전승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두 권의 「루카 복음서 주석서」(1983/1985)를 펴냈다. 또 「로마서 주석서」(1993) 등을 통해 바오로 서간 전문가로서도 활발히 연구를 진행했다. 존 P. 마이어(1942~ )는 역사의 예수 연구서로서 「어느 주변 유다인」 1~4권을 1991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마지막 5권 출간을 준비 중인 마이어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역사의 예수님 참모습을 그려보겠다고 말한다.신앙적 지평 확대·심화 계기되길 지금까지 언급된 신학자에 대한 소개가 앞으로 매주 나가게 될 것이다. 신학과사상학회 임원진이나 회원, 또는 해당 분야의 적임자라고 생각해 추천, 섭외한 외부 인사가 원고를 작성하게 된다. 어떠한 경우든 해당 신학자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가진 학자가 원고를 쓰도록 배려했음을 밝힌다. 부디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 기획이 한국 교회 많은 독자에게 신앙적 성찰의 심화와 성숙, 그리고 신학적 지평의 확대를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퇴사자22013.05.07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43>하느님 법](//cpbc.co.kr/CMS/newspaper/2014/03/rc/499168_1.0_titleImage_1.jpg)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하느님 법본성과 마음에 새겨진 구원의 초대장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를 입은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해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해"(1949항)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하느님의 법에 대해 알아봅니다(1949~1986항). 도덕률과 법 도덕률은 하느님 지혜의 작품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1950항).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1951항)입니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에서 비롯합니다. 따라서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해서 이성적으로 내리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1951항). 도덕률은 △모든 법의 근원이신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 △자연법 △옛 율법과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국법 △교회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다양한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도덕률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께서는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십니다. 그분은 법의 마침이요 법의 완성입니다. 자연법(1954~1960항) 자연법은 쉽게 말해서 자연에 내재해 있는 법, 또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는 타고난 도덕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법입니다. 자연법은 하느님의 법 곧 신법(神法)의 하나로,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자연법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선의 근원이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입니다. 이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자연법의 중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돼 있습니다. 이 법을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법 규정들이 인간 본성에 고유한 이성(理性)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보편적인 법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됩니다.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자연법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며, 도덕 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됩니다. 자연법은 또한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법도 자연법을 토대로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연법 규범을 분명하게 또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죄로 흐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류의 혼동 없이 확실하게 자연법의 진리들을 인식하려면 은총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옛법(1961~1964항) 하느님의 법은 자연법, 십계명의 윤리적 명령을 담고 있는 옛법,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인 새법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사진은 1950년대 영화 「십계」의 한 장면. 【CNS】 옛법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내려주신 구약의 계명들을 말합니다. 옛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로서, 옛법의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돼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입니다(1962항). 하지만 율법은 아직 완전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시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1963항). 율법은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하지만 죄를 없애지 못하기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은 여전히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입니다. 옛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법, 곧 복음의 법(1964~1974항)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 혹은 계시된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입니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으로서 특별히 산상설교(마태 5-7장)에 표현돼 있습니다. 새 법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1966항)입니다.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옛법을 완성하고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합니다. 이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합니다.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산상설교는 옛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산상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보태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고쳐먹도록 인간을 이끕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너그러우심을 본받게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를 실천하게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는 마음으로 하게 합니다. 그래서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새 법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황금률 안에 요약돼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새 계명에 들어 있습니다.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또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 부르는데, 의식적이고 법률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옛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새 법에는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1974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백영민201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