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의 보물]<9> 성수 -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37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성수 -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세례성사 상기시키며 축복, 정화 상징 이스라엘 갈릴래아 세례터를 찾은 신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고대부터 물은 흙과 불과 함께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였다. 물은 사람의 갈증을 풀고 농업과 축산을 가능하게 하는 등 생명을 상징한다. 또한, 홍수 등에서 알 수 있듯 물은 인간에게 위협적 존재이기도 하다. 자연 현상에서 이해된 물의 상징성은 성경에서, 교회 역사 안에서, 오늘날 전례 안에서 드러난다. 그리스도교와 성수 구약에서 물은 생명을 나타내며 하느님 축복의 표상으로 사용됐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10).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 17,6). 구약에서 물은 하나의 생명으로 비유되고 그 생명은 하느님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반대로 물은 인간에게 위협적 존재로 드러나기도 한다. 노아의 홍수에서 물은 죽음과 단죄를, 모세가 파라오의 병거와 기병에 쫓겨 홍해 바다를 건널 때는 그들을 삼키는 매개체로 물이 사용됐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요한 4,10-14 참조)이 언급된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이 받는 성령을 암시하며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교회 역사에서 성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자. 성수 사용은 2세기께 외경인 베드로 행전에서 처음 나타난다. 베드로 행전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름과 함께 성수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수를 사용한 것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는 거주지를 축복할 때 물을 썼고, 이를 받아들인 그리스도교는 거주지는 물론 사람, 사물을 축복하는 데 물을 사용했다. 538년 교황 비질리오가 새로운 성당 축복에 성수를 사용했으며, 성 토요일에 집과 들판에 성수를 뿌렸다는 내용이 7세기께 「로마 예식서」에 수록돼 있다. 이후 단순한 정화를 넘어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성수가 사용됐다. 주일미사 때마다 거행한, 성수를 뿌리는 성수예식이 교황 레오 4세(재임 847~855년)의 지시로 시작됐다. 중세에는 성수 축성의 성대한 예식이 있었는데 이는 집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동방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 밤에 강이나 바다에서 성대한 물 축복 예식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 십자가를 물에 담갔고 많은 지역에서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 이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물 축복에서 비롯됐고 이미 4세기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됐다. 중세 후반기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성수 축성이 서방교회에도 전파됐다. 그러나 이 성수에 관련된 축제들이 세속화되면서 서방교회는 1890년 이를 금지했다. 전례 안의 성수 사용 오늘날 성수는 전례 안에서 물건과 사람의 축복에 사용한다. 세례성사, 병자성사, 장례식, 혼인성사, 부활 성야의 세례서약 갱신 예식 등에 사용된다. 이 경우 성수는 하느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 성당 입구 성수반에서 성수를 찍어 기도하며, 가정방문 때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 경우 성수는 세례 때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수가 지니는 의미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수예식이다. 성수예식이란 정화하거나 축복하기 위해 사람이나 건물 또는 사물 위에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말한다. 성수예식은 신자들에게 세례성사와 내적 영적 정화를 상기시키는 것을 돕는다. 정화와 치유를 통해 세례 때의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세례를 되새기고 은총을 갱신하는 이런 관점은 부활 성야 때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신자들은 서약을 갱신한 뒤에 성수를 받는다. 이러한 세례에 대한 기억은 성당에 들어오기 전에 성수반의 성수를 손끝에 묻혀 성호를 그으면서 하는 기도문에서 계속 이어진다.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일상에서 성수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을 살펴보자. "성수에는 항상 소금을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거룩한 물인 성수는 두 가지 본질적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순수한 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의 축복 기도다. 소금은 지역과 문화에 따른 선택적 요소다. 가끔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올 때도 성수반에 성수를 찍고 나오는 분들이 있다. 성수를 손끝에 찍어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성수 기도문'에서 알 수 있듯이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악에서 보호를 받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위함이다. 거룩한 주님 희생 제사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거룩한 시간을 보냈기에 성수를 다시 찍을 필요는 없다. 끝으로 루르드 성지에서 떠온 물을 '성수'나 '기적수'라고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 루르드 성지는 치유의 은사가 많이 일어난 곳이다. 그런데 치유의 기적이 꼭 물 때문에 생겼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물 자체가 미네랄이 풍부해서 몸이 좋아진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루르드 성지는 성모의 중재자적 역할을 기억하고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기적은 올바른 신앙 자세로 기도를 많이 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1.21

죽음, 지상생활 마치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위령성월 기획 / 주교회의 편찬 '가톨릭교회 사말교리'(1) 죽음죽음은 원죄의 결과로, 지상생활의 마침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사진은 2009년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직후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나 다 죽는다.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 또는 연옥에 가게 된다는 가르침이 '사말(四末) 교리'다. 사말 교리는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가르침이며, 사말은 곧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을 말한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과 죽음 이후 상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발간한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가톨릭교회의 사말 교리」의 주요 내용을 4회에 걸쳐 요약 정리한다. 1.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다 인생 여정은 흔히 나그넷길에 비유된다. 가톨릭교회도 인생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그 여정은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삶을 좀 더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우리 삶에 긴박감을 준다. 인생이 시간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대할 수 있다.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진다"(히브 9,27)는 말씀대로 인간은 지상생활을 마감한 다음 다시 지상생활로 오지 못한다. 교회는 환생(還生)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 국제신학위원회는 환생설에 대해 "성경과 교회 전승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이방인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네 가지는 △환생설은 반복할 수 없는 유일회적인 삶을 거부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윤회를 주장하면서 영원한 벌과 영원한 행복을 거부한다 △자신의 업을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정화해야 하는 입장을 취하는 환생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느님 은총의 여지를 박탈한다 △영혼을 본질적으로 육신으로부터 분리하려는 경향을 강조하며 육신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등이다. 환생설에 따르면, 과거의 업보는 여러 생에 걸쳐서라도 철저히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청산돼야 한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만이 죄인을 너그럽게 용서하심으로써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신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용서를 베푸셨고(루카 7,47-50; 요한 8,11 참조),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한 베드로를 용서해 다시 불러주셨으며(요한 21,15-18 참조),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마르 14,24 참조). 2. 죽음은 원죄의 결과다 구약의 코헬렛 저자는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7)며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인간 실존 전체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죽음은 영혼과 육신 모두에 타격을 준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피하려 하고 슬픔과 상실감, 두려움을 느낀다. 예수님께서도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고(요한 11,33-35 참조), 당신 죽음에 직면해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여 괴로워하셨다(마르 14,33-34 참조). 이런 배경에서 성경이 죽음을 죄와 밀접하게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창조 설화는 최초의 인간이 하느님의 명을 어긴 결과로 죽음이 왔다고 설명한다(창세 2,17; 3,3.19 참조). 바로오 사도는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로마 5,12)며 죽음을 "죄가 주는 품삯"(로마 6,23)이라고 규정한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죽음은 최초의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고"(히브 2,15)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다. 3.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1)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가는 과정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에서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하고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죽음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가는 조건이며 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간에게 죽음을 더 이상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행복한 탄생으로 평화롭게 맞이할 가능성을 열어줬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5)와 같이 고백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빈번히 언급된 '임사(臨死) 체험'은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임을 확인해 주는 듯 보인다. 임사체험을 한 이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그들은 자신이 육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자신의 육체와 구분되는 다른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죽은 친척,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빛나는 존재, 사랑과 따뜻함을 발산하는 존재를 만난다.… 다시 이승의 삶으로 귀환해 원래 육체와 재결합한다. 이런 체험은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닮았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육신과 영혼의 분리, 변화된 육신, 죽은 이들과의 재회, 심판하면서 동시에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새로운 삶 안에서 누리는 행복 등이다. 2)죽음의 능동적 수용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에 놓여 있지만 죽음을 능동적 태도로 맞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을 능동적 태도, 곧 성부의 뜻에 순명하는 행위(마르 14,36), 성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루카 23,46 참조), 성부께 돌아가는 행위(요한 14,2 등 참조),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는 행위(요한 19,30)로 받아들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능동적 자세로 죽음을 변화시키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인간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사셨고, 십자가 죽음을 당신 삶의 귀결과 완성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죽음을 성부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킬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11항). 폴란드 출신 성 막시밀리안 콜베(1894~1941) 신부처럼 타인을 위해 희생적으로 죽는 경우, 또는 노쇠(또는 병고)로 죽음을 맞는 경우에도 능동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노쇠와 병고를 견뎌 나가며 죽음을 삶의 완결로 받아들였다. 3)죽음의 능동적 수용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노력 교회는 신자들이 주님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병자성사와 성체성사로 도움을 준다. 또한 누구보다도 주님과 일치 속에 사셨던 성모 마리아께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기를 청하고(성모송),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에게 선종의 은혜를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라고 권고해왔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시간을 부당하게 중단시키는 모든 죽음, 곧 굶주림과 전쟁, 폭력 등으로 인한 죽음과 자살을 반대한다. 특히 자살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행동으로서 올바른 자기 사랑에 크게 어긋날 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생명을 경시하고 자살을 부추기거나 미화하는 잘못된 사회 풍조에 대해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라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으며, 자살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큰 잘못이라는 점을 신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0.29

만나고 고백하고 기념하고 증언하자춘천교구 미원본당, 신앙의 해 실천지침 마련미원본당 신자들이 김현준 신부 강의를 들으며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죄의 벌은 없어지지 않아요. 벽에 못을 박았다가 뽑아도 자국은 남잖아요. 전대사는 못자국(잠벌)까지 깨끗하게 지워주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1일 오전 춘천교구 미원본당 교리실. 평일미사를 마치고 나온 신자들이 교리실에 앉아 김현준 주임신부 강의를 들었다. 김 신부는 고해성사와 보속, 전대사 등을 어르신들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미원본당은 신앙의 해를 맞아 4가지 실천지침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을 바탕으로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고백하고, 기념하고, 증언할 수 있게 이끄는 지침이다. 이날 교리교육은 지침 가운데 '고백' 차원의 프로그램이다. #성경과 함께(만남) 본당은 신자들이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 집 성경가훈갖기'를 장려해 현재 50여 가정이 성경 가훈을 만들었다. 또 지역별 구역과 별도로 '말씀구역'을 만들어 성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말씀구역은 (성경) 쓰기ㆍ읽기ㆍ외우기ㆍ묵상구역 등 4개 구역이 있다. 구역 신자들은 월 1회 모여 성경을 읽고 쓰고 외우고 묵상하며 말씀을 나눈다. #교리와 함께(고백) 신자들은 주일미사 때 사도신경 대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을 바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공부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또 주일ㆍ평일미사 후에 틈틈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갖고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본당은 내년 본당의 날(9월14일)에 교리 경시대회를 연다. #성찬례와 함께(기념) 본당은 신앙생활의 중심인 미사에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례하도록 주일미사 날개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냉담교우든 예비신자든 두 명 이상을 데리고 미사에 참례하는 운동이다. 김 신부는 신자들이 미사에 집중할 수 있는 세 가지 지침도 만들었다. 독서ㆍ복음 말씀을 미리 읽어 미사를 정성껏 '준비하고', 미사 중에 사제가 바치는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따라하고', 성체를 모신 후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김 신부는 "미사 중에 감사송 등 사제가 혼자 바치는 기도를 속으로 따라하면 미사전례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기도, 애덕, 선교와 함께(증언) 가족기도는 한 자리에 모여 기도를 바칠 기회가 없는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날마다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며 부모와 형제를 기억한다. 본당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애덕회'를 설립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선교상황실을 운영하며 선교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김 신부는 "교황님이 선포하신 신앙의 해 취지를 잘 이해하고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천하면 신앙 공동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11.06
![[가톨릭 신앙의 보물]<3> 전례주년과 신앙생활-대림,성탄 시기 - 정의철 신부(서울 중앙동본당 주임, 전례학 박사)](//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8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전례주년과 신앙생활-대림,성탄 시기 - 정의철 신부(서울 중앙동본당 주임, 전례학 박사)기다림, 회개, 희망 속에 예수 탄생 의미 되새겨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 1,23).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사진은 지거 쾨더(독일 베네딕토회) 신부의 성화. 회개와 희망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가톨릭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1년 단위의 큰 틀인 전례주년(교회 달력) 안에서 이뤄진다. 전례주년은 대림시기부터 시작된다. 대림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아벤투스(Adventus)에서 온 말이다. 이는 이교도 문화에서 기원한 용어로, 원래는 신이 자신의 신도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 번 신전을 찾아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예배 대상인 신이 축제가 거행되는 동안에 신전에서 신도들과 머무는 것으로 여겼다. 또 궁중 예절에서 중요 인사의 부임 또는 즉위, 첫 공식 방문의 뜻도 포함돼 있다. 불가타(Vulgata) 성경은 이교도적 용어인 대림을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심을 드러내는 의미'라는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로 바꿔 사용했다. 이에 따라 메시아 시대를 연 그리스도의 강생을 기념하며 준비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에 구원사업을 완성하러 영광스럽게 오실 것(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을 '대림'이란 용어로 표현했다. 대림시기는 4주간으로 구성되며 전례 성격에 따라 다시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대림 첫 주일~12월 16일)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12월 17~12월 24일)는 대림시기의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님의 강생을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대림시기 전례는 복음 안에서 그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난다. 대림 제1주일 복음은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에 관한 내용이며, '깨어 있음'을 강조한다. 대림 제2, 3주일 복음은 요한 세례자에 관한 내용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에 중점을 뒀다. 대림 제4주일 복음은 본격적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다. 가해에는 요셉에게 한 예고, 나해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한 예고, 다해에는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에 관한 내용을 읽는다. 대림시기 제2독서는 구약의 예언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됐는가를 보여주는 사도들의 서간을 읽는다. 대림시기 기도문에는 예수님의 성탄과 관련이 있는 성모 마리아, 요한 세례자, 이사야 예언자를 부각한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마리아의 협력을 강조하는 시기이며, 요한 세례자를 부각하는 이유 역시 주님을 맞기 위한 회개와 연관이 있다. 대림시기에 희망의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이사야 예언서를 주로 낭독하는 이유 역시 대림시기 영성은 깨어 기다리는 것, 회개, 희망인 까닭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누리는 성탄시기 동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성탄 축일을 1월 6일에 지냈고, 서방교회에서는 12월 25일에 지냈다. 성탄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아니즘'(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가 주장한 이단설)을 배격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신 주님의 탄생일을 성대하게 경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요 태양으로 보았기에 새로운 해가 다시 소생하는 날인 12월 25일(로마는 동지인 이날을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로 지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퇴폐적 태양신 숭배 축제에 빠져들지 못하게 같은 날 예수 성탄 축일을 지냈다는 설이 있다)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냈다. 성탄시기는 성탄의 기쁨을 더 연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저녁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의 기간이다. 성탄시기에는 성탄 팔일 축제,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신비를 기념한다. 성탄 팔일 축제 기간에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월 26일)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12월 28일)이 포함된다. 성탄 팔일 축제는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끝맺는다. 성탄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막을 내리며 구원의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는 '연중시기'로 들어간다. 대림시기와 성탄시기는 신앙인들이 기다림과 희망, 회개의 마음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방송은 수요일 오전 9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3.12.03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인간생명 수호 앞장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생명수호주일 생명미사 봉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발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대주교)는 1일 명동대성당에서 제6회 생명수호주일 및 생명위원회 설립 8주년 기념 생명미사를 봉헌하고, 사목 일선에서 용기와 사랑으로 생명수호에 앞장서고 있는 생명수호담당자들을 격려했다. 미사 중 열린 기념식에서 본당 생명수호담당자 교구 대표 서봉흠(요셉)씨는 내년 본당 생명수호 활동을 위한 다짐을 발표, △생명을 위한 기도 및 성경읽기, 생명에 관한 문헌 읽기 생활화 △생명교사 양성교육 및 생명수호담당자 모임 활성화 △제대혈 기증 운동 동참 및 생명돌봄 활동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이에 앞서 생명의 신비상 시상위원장 조규만(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가 제8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생명위원회는 인간생명의 존엄성 수호와 난치병 치료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데 공로가 큰 연구자와 활동가에게 시상하고 있다. 시상식은 내년 2월 11일 오후 4시 서울로얄호텔 3층에서 열린다. 염수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물질과 편리함 속에서 '헛된 행복'을 찾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비윤리적 생명파괴 현상에 우리는 용감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생명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라며 "우리에게 맡겨진 인간생명을 책임감을 갖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권리와 때로는 추정적 권리까지 부여하면서, 반대로 생명 자체는 모든 사람의 기본 가치이자 권리로서 언제나 보호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면서 "의료 행위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생명의 수호와 증진"이라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는 임병헌(교구 사무처장)ㆍ박영식(가톨릭대 총장)ㆍ박정우(가톨릭대)ㆍ지영현(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신부, 최홍준(파비아노) 한국평협 회장, 본당 생명수호담당자 등이 참석했다. 교구는 12월 첫째 주일을 생명수호주일로 정하고, 생명수호를 위한 생명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 <제8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학술분야(인문사회과학) 본상 /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 안 주교는 사목자이자 교수로 윤리신학을 바탕으로 윤리ㆍ생명윤리ㆍ환경윤리 분야에서 학술적 업적을 남겼다. 윤리신학과 윤리에 관한 학술서를 비롯해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사목」지를 통해 20편이 넘는 생명윤리 지침을 발표했다. 인간학과 생명윤리에 관한 10여 권의 번역서로 인간생명의 고귀함과 생명현상에 나타난 윤리적 가치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심화했다. 사목자로서 생명윤리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가톨릭 입장을 밝히며 실천적으로 생명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활동분야 본상 / 프로라이프의사회 차희제(토마스) 회장 낙태 반대 의사 단체인 프로라이프의사회 회장. 불법 낙태 시술병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낙태죄 양형 기준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생명문화 확산을 적극 주도해왔다. 낙태시술을 거부하고 오직 분만과 부인과 진료 및 수술만 해왔던 차 회장은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돼 불법 낙태 시술병원 3곳을 검찰에 고발, 낙태논쟁에 불을 지폈다. 생명대행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안, 기획해 2012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생명수호를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학술분야 장려상 / 경상대 윤리교육과 홍석영 교수 한국의 생명과학자들이 연구윤리를 지키도록 모색해온 연구자. 인간학과 생명윤리학, 연구윤리에 관한 32편의 논문과 11권의 저서(공동저서 10권, 단독저서 1권)를 발표한 바 있다. 2002년 '인간배아의 인격지위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고, 2003년 '인격주의에 기초한 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다수 논문을 발표하며 가톨릭 생명윤리 입장을 견지해왔다. ▨활동분야 장려상 / 마리아 모성원(원장 신경화 수녀)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미혼모자보호시설. 태아 생명 보호를 사명으로 미혼인 상태에서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들에게 숙식과 의료 서비스, 취업 및 심리상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혼전 임신으로 낙태의 위협을 받고 있거나, 의지할 곳 없는 미혼모들을 돌봐줌으로써 미혼모들이 아기를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출산 후에는 미혼모의 결정에 따라 양육을 지원해주거나 전문입양기관에 연계해주고 있다. cpbc2013.12.03
![[가톨릭 문화산책]<11>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3)](//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6039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3)12살 소년 예수, 원로 율법학자도 감탄케 한 슬기로움 드러내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는 루카복음 2장을 그린 작품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자 12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나 아들을 잃었다가 사흘 뒤 성전에서 찾는다. 성전에서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림은 온통 사람들로 빽빽하다. 뒤러는 성전에서 어린 예수가 율법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펼치는 모습을 원근법적 공간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물 흉부의 인상과 동작에만 초점을 맞춰 표현한다. 인물의 성격과 감정은 얼굴 묘사와 손동작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작품 : 알브레히트 뒤러 작,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 (65×80㎝, 1506년,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 환희의 신비 5단 :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잃어버림, 찾으심, 기쁨 #소년 예수의 가르침 그림 중앙에 건강하게 윤기 흐르는 모발을 가진 12살 소년 예수가 있다. 주변에는 율법학자 여섯 명이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 원형으로 배열돼 그려진다. 시선은 소년 예수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 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아라'하신 당신을 제가 생각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시편 27,8).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소년 예수는 마치 제자들에게 뭔가 설명하는 선생님처럼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자기 생각을 풀어놓는다. 예수의 슬기로움에 율법학자들은 놀라움과 호기심을 보인다. 예수와 같은 위치에서 쭈글쭈글하고 주름진 피부에 기이한 얼굴로 표현된 율법학자는 혼란스럽고 날카로운 인상이다. 이 율법학자의 심리는 거칠고 굽은 손마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듯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놓는 소년 예수의 손동작과는 대조적이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찾은 예수는 율법교사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루카 2,46). 어린 예수를 잃은 부모는 슬픔에 빠져 사흘이나 찾아 헤매다가 성전에서 예수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잃었던 예수를 다시 찾았다는 데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상기할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 24,7). #각기 다른 개성의 율법학자들 율법학자들 얼굴은 활기찬 모습에서 무기력함과 우울함, 날카로움까지 각양각색이다. 젊고 깨끗한 예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튀어나온 턱과 두꺼운 입술, 깊게 팬 주름투성이의 예수 오른편 율법학자는 세상의 온갖 때에 찌든 모습이다. 그는 소년 예수의 말이 한낱 어린아이의 말에 불과하다는 듯 오히려 예수에게 무엇인가 말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의 손과 마주한 그의 손동작은 예수의 지혜로움 때문인지 불안해 보인다. 이와 달리 다른 율법학자들은 소년 예수의 말에 감탄하며 경청하거나 그 말이 옳은지를 확인하려 한다. 왼쪽 아래 율법학자는 책을 완전히 덮고 예수의 말만 경청한다.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를 머리에 붙이고 있는 것으로 미뤄 율법대로 살아가는 경건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권위를 가질 법한 위치의 이 율법학자는 소년 예수의 말에 푹 젖어 눈을 떼지 못한다. 소년 예수 역시 맑고 티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말을 듣는 율법학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교감한다. 오른쪽 아래 길고 흰 수염을 가진 노장의 율법학자는 성경을 펼쳐 들고 예수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맞은편 동료에게 눈길을 비춘다. 그의 얼굴에선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이 읽힌다. 이 율법학자의 우울한 빛과는 달리 왼쪽 위 율법학자는 젊고 날카로운 눈으로 성경을 뒤적이며 소년 예수의 말을 확인한다. 오른쪽과 왼쪽 구석에 있는 두 인물은 두려움과 경계의 눈빛을 띨 뿐 무관심한 표정이다. 예수를 둘러싼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전통과 토라를 따르지만, 예수의 가르침(Didaskalis)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루카 24,47). 노장의 현인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 두려움과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예수의 권한은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마르 1,27). 과연 우리는 예수의 말씀에 어떤 표정과 동작을 취할 것인가? #마음의 동작, 손 소년 예수의 손에서 율법학자들의 다양한 동작의 손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손도 움직임이 헛되지 않다. 손 동작은 단지 감상자의 눈을 즐겁게 하거나 공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동작은 등장 인물의 마음 상태를 명확히 드러낸다. 제각기 다른 표정과 손동작이지만 그들의 일치점은 인생 경험을 나타내는 손마디, 그리고 성경 내용과 성전의 신성한 공간을 신뢰하는 손이다. 이 그림에는 얼마나 많은 손이 표현되어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복음적 봉사를 손으로 할 수 있을까? 인사하는 손과 안내하는 손, 포옹하는 손, 사랑하는 손 등 다양한 손 동작이 예수의 메시지와 일치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교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머리-손과 예수의 말씀 간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 렘브란트 작, '성전에 예수님을 봉헌함' (60×48㎝, 1631년,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 환희의 신비 4단 :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봉헌, 빛, 마음 속 생각 빛은 태양이나 다른 어떤 발광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아기 예수에서 흘러나온다. 예수를 품에 안은 시메온은 눈부시게 환한 그 빛을 쳐다보며 감동한다. 이 빛은 시메온이 간절히 바라던 희망의 빛이다. 이 표현은 바로 예수가 이방인들에게는 주님의 길을 밝히는 계시의 빛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영광의 빛이 된다는 의미다. 기다리던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해 온 게 아니라 만민에게 구원의 문을 여는 '위로의 빛'과 '영원의 빛'으로 온다는 뜻이다. 하느님 아들임에도 우리를 위해 가장 나약하고 죄인의 모습으로 성전에 봉헌된 예수! 구원의 빛, 위로의 빛, 영광의 빛으로 온 예수를 시메온과 한나처럼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윤 인 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조은일2013.04.02

성체성사 제정되고 성령강림 통해 교회 탄생한 거룩한 산[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7. 시온산 시온산은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골짜기와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에 위치한 해발 765m 동산으로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귀중한 성지이다. 시온산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찾아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곳 시온산이다. 또한 성령강림 때에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 계셨으며(사도 1,12-14)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시온산은 또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열린 장소이며, 335년 '예수 부활 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예루살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지인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다. 우리말로 '봉우리'란 뜻의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에 자리 잡은 '다윗성'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나, 다윗이 이곳에 '계약 궤'를 옮겨와 제단을 쌓으면서 이곳을 '거룩한 산'이라 부르게 됐다(2사무 6,12-18; 시편 2,6). 이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우면서 시온이라는 명칭은 이 성전까지 포함하는 이름이 됐다(이사 18,7; 미카 4,7). 시온은 또 예루살렘 시민 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시편 126), 신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히브 12,22; 묵시 14,1)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는 시온산이 성벽 안에 있었지만, 오스만튀르크 술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1536~1542년)하면서 성벽 밖에 자리하게 됐다. 오늘날 시온산 지역에는 최후 만찬 경당과 동정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 귀속 후 어떠한 종교적 장식도 없는 최후 만찬 경당 내부 모습. ▨ 최후 만찬 경당 예수께서 행하신 최후 만찬 일시에 관한 복음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관복음서(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와 요한 복음서가 다르게 보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 저녁'에 최후 만찬을 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다(마태 26,17-19; 마르 14,12-16; 루카 22,7-13). 반면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요한 13,1)에 최후 만찬을 한 것으로 나온다. 성경학자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심문할 때 유다 권위자들은 아직 파스카 음식을 들지 않았으며, 이를 위해 전례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했다는 사실(요한 18,28)을 통해 요한의 보고가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또 십자가형이 축제일이 아니라 축제 하루 전에 거행됐다는 점(예수께서 성전에서 파스카 양들이 도살된 시각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의미)을 또 다른 증거로 제시한다. 안타깝게도 네 복음서는 최후 만찬 장소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오늘의 최후 만찬 기념 성당 터는 비잔틴 시대 때부터 성지로 개발됐다. 4세기에 첫 성당이 건립됐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됐고, 이후 십자군 시대 때 다시 성당이 지어졌지만, 또다시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가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이 터를 사들여 작은 형제회에 봉헌했고,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성당을 지어 지상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 '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 '성령 강림 기념 경당'과 '최후 만찬 기념 경당'을 마련했다. 이 성당은 1517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정부재산으로 귀속됐다. 라틴말 '체나쿨룸'(다락방)으로 불리는 최후 만찬 경당 터에는 성 목요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행하는 말씀 전례 외에는 그 어떠한 예식도 허가되지 않고 있다. ▨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시온산 작은 형제회 수도원 바로 옆 골목길 어귀에 자리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은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신(교회헌장 59 참조) 것을 기념해 지은 성당이다. '성모 승천'에 관한 교회 전승은 초세기 사도들의 전승을 모아 전하고 있는 2세기 위경들에 이미 나타난다. 4세기부터는 성모 승천을 고백했고, 5세기 들어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천주의 어머니 날' 축일로 지냈다. 13세기에는 성모 승천이 보편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자리했다. 이러한 교회 전승에 따라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반포했다. 현재 독일 베론 성 베네딕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상이 있다. ▨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시온산 남동쪽 키드론 골짜기와 게헨나(힌놈)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라틴말로 '갈리칸투'(닭울음 성당)라고 하는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통곡한 곳(마르 14,53-54; 마태 26,57-66; 루카 22,66-71; 요한 18,12-24), 바로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다. 이 터에서 물 저장 시설과 감옥으로 사용했던 동굴, 히브리 도량형과 맷돌 등 유물이 발굴됐다. 이 동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카야파에게 신문을 받은 후 조롱받고 주먹질 당한 후 갇혀 있던(마태 26,67) 장소다. 닭울음 성당에서 또 하나 귀중한 보고는 예수 시대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이어지는 로마 시대 돌계단이다. 예수께서는 성 목요일에 시온산에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눈 후 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겟세마니로 기도하러 가셨고, 또 율법학자와 원로들에게 체포된 후에는 이 길을 통해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늘날 성당은 1931년 승천수도회가 건립한 것이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8.20

패션, 판화, 시 , 도예.... 예술적 탐험은 무한대장르 허무는 예술가 임경숙씨, 17일 시흥시 '더 소사' 개관행사에 도예 200여점 선보여 1985년 백남준(1932~2006)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퐁피두센터에서 패션쇼와 행위예술 시연, 1986년 판화전 개최, 1988년 시집 「나는 생을 노래하네」 출간, 1991년 3개월 간 습작 끝에 시나리오 '겨울애마 봄' 집필, 1993년 유화 개인전, 1995~98년 매맞는 여성과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 방지법 제정을 위한 퍼포먼스 다수 공연, 2000년 재활용 예술인 정크 아트(Junk Art) 개인전, 2005년 천연염색아트전…. 이뿐만이 아니다. 17일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문을 연 아트 스페이스 '더 소사' 개관행사에 '다면체 인간'을 주제로 도예작품 200여 점을 선보였다. 도예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갖는 7번째 개인전이었다. 1982년 프랑스로 건너가 플레리 드 라 퍽뜨에서 의상과 데생을 전공한 이후 임경숙(마리아, 서울대교구 우이본당, 사진)씨의 삶은 장르의 벽을 허무는 예술적 모색으로 점철돼 있다. '예술 박테리아'를 자처할 정도다. 장르 간 교류를 통한 소통과 통섭이 그의 작업관이다. 패션에서 출발, 판화와 유화, 정크 아트, 퍼포먼스, 시, 수필, 시나리오, 천연염색, 도자기로 이어지는 예술적 탐색은 '예술은 영혼의 작업이지 재료의 구분으로 한계를 짓는 대상이 아니다'는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야말로 인생을 시처럼, 예술처럼 살아왔다. 교회에서도 그는 유명인사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여러 수도회와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1998년 잠실역도체육관에서 살레시오수녀회 초청으로 아시아 살레시안들의 일치를 위한 퍼포먼스를 가졌고, 2000년 장충체육관에서 수도자들과 함께 2~3개월을 준비해 성경 주제인 '너는 복이 되리라'를 퍼포먼스로 보여줬다. 또 성가 소비녀회와는 종신서원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갖기도 했다. 최근에도 살레시오수녀회 청소년 영성의 집(원장 김영내 수녀)과 함께 무한 경쟁과 가족 해체 등 신자유주의 모순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육성을 듣고 풀어내는 퍼포먼스를 갖기도 했다. 최근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도예나 천연염색은 흙과 풀, 꽃을 재료로 한 원초적 생명과의 만남이기에 더 애착을 둔다. 지나치게 인위적이지 않은 원시의 손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거친 터치와 서투름의 미학으로 작품을 제작해 나간다고 그는 전했다. 재료의 경계를 허물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는 "흙 안에는 하느님의 숨결과 생명이 있고, 온갖 형상들이 숨어 있기에 흙을 빚으면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오세택 기자조은일2013.07.23

도심 속 문화영성센터로 탈바꿈작은 형제회, 연말까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증ㆍ개축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증ㆍ개축 투시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이 '도심 속 문화영성센터'로 거듭난다. 작은 형제회(관구장 기경호 신부)는 1987년 개관, 올해로 26주년을 맞기까지 한국 가톨릭교회와 평신도, 사회 단체,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해온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증ㆍ개축,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고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 도심 속의 영성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16일 서울 정동길 9 회관 성당에서 관장 신성길 신부 주례로 증ㆍ개축 안전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본 공사에 들어갔다. 지하 2층과 지상 5층 고쳐짓기(개축)는 오는 10월까지, 성당과 공연장이 들어설 6~7층 증축은 연말까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무리한다. 공사가 끝나면 현재 건축연면적 5950.41㎡(1800평)에서 7008.26㎡(2120평) 규모로 늘어난다. 예상 공사비는 40억 원. 고쳐짓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미국 뉴욕 맨하탄 31번가 성 프란치스코성당이 모델이 됐다. 이 성당은 평일미사만 15대를 봉헌하고 고해소는 하루 종일 상시 운영하며 각종 영성강좌와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800만 명에 이르는 뉴욕시민들에게 영적 서비스 센터가 돼 왔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도 증ㆍ개축이 완료되는 대로 도심 속 영성센터로서 미사전례와 성사 집전은 물론 상담활동, 상시적 기도모임, 열린 영성강좌, 직장인 청년성서모임 강화 등 기도와 성경, 사목, 문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교회와 시민들이 만나는 접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2010년 1월 문을 연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San Damiano)'도 프란치스코회의 특성을 살려 서울의 대표적 문화거리 가운데 하나인 정동 문화거리에서 문화적으로 봉사하며 책과 미디어, 문화를 매개로 다양한 만남을 갖는 공간으로 계속 활용해 나가기로 했다. 언뜻보면 북카페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하느님과 사람, 문화예술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도심 속 문화 공간이자 젊은이, 미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수용하는 문화의 장이 되는 셈이다. 신성길 신부는 미사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의 새로운 25년을 시작하며 새로운 복음화를 담아낼 공간을 마련하고자 증축과 개축을 시작하려 한다"며 신자들의 기도와 관심, 도움을 요청했다. 문의 : 02-6364-2222. 후원계좌 : 외환은행 071-22-02221-2, (재)프란치스꼬회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3.07.23
![[성경 속 궁금증] 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6220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무엇인가?하얗고 달며 기름에 튀긴 빵 같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솔로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왔냐며 불평을 터뜨렸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하느님께 아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내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이 만나를 먹는다(탈출 16장).'만나를 모으는 이스라엘 백성'(로베르티 작, 1479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어떤 것이었을까? 탈출기에서는 만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출 16,14-15).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긁어모아 식량으로 삼았으며, 안식일 전날은 안식일을 위해 조금 더 모았다고 한다. 성경에 의하면 만나는 빵이 아니라 고수풀 씨앗처럼 하얗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으며(탈출 16,31), 기름에 튀긴 빵 맛이었다고 한다(민수 11,8 참조). 만나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나 관목의 잎사귀에 맺히는 이슬 모양의 형성물로 추측된다. 만나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비교적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맛이 단 편이다. 만나는 식량이 부족한 사막에서는 오늘날에도 식량으로 사용된다. 만나는 밤에 이슬이 내릴 때 함께 내렸다(민수 11,9). 태양이 떠오르기 전인 이른 아침에 광야의 모래 위에서 '흰 서리 같은 것'(탈출 16,14)이 발견됐는데, 이것은 '햇볕에 녹아 버렸기 때문에'(탈출 16,21) 이스라엘 백성은 이른 아침에 거둬들였다. 오늘날에도 시나이 지역에는 '레카노라 에스쿨렌타'라는 지의류(地衣類)가 자란다. 이 식물은 사막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한다. 실제 맛도 달콤해 시나이 광야의 유목민인 베두인족은 이것을 만(man)이라 부른다. 6월과 7월 이른 아침에 발견되는 만은 광야를 뒤덮는 낟알로 돼 있다. 그 낟알들은 꿀처럼 단맛이 나고, 성경의 만나와 비슷하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빵과 젤리 등을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먹던 만나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만나를 먹고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가나안 땅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은 만나를 먹었던 것이다"(탈출 16,35). 만나는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먹어야 했던 양식이었다. 따라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퇴사자22012.05.29
![[성경 속 궁금증] (32) 하느님은 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463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2) 하느님은 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했을까?모든 것 버리고 주님의 종으로'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도메니코 페티 작, 1614년).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1-5). 이 성경 대목은 많은 글과 성화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하느님은 왜 모세를 부르신 후 신발을 벗으라고 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발을 더러운 것으로 생각해 집 안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벗는다. 오늘날에도 이슬람 교인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에 들어가 꿇고 엎드려 기도한다. 이처럼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 것은 마땅한 예의이자 존경의 표시가 된다. 특별히 이슬람 교인들의 맨발은 완전한 헌신과 순종을 의미한다. 또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그동안 익힌 인간의 관습과 생각을 버린다는 내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속세와의 접촉을 끊고 복종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죄인인 인간은 당연히 신발을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예의를 갖추고 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신발을 벗어 맨발을 드러내는 것은 신성한 것에 대한 겸손과 존중의 의미를 갖는다. 성경에서 보면 신발을 벗는 행위가 법적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구원하거나 교환할 때, 무슨 일이든 확정 짓기 위하여 자기 신을 벗어서 상대편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서는 증거로 통하였다"(룻 4,7). 이처럼 같은 행위와 물건이 같은 문화권에서도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보통 사람들이 신발을 신는 것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근동지방에서 신발을 신는 것은 특별한 임무나 여행을 위한 준비를 의미하거나(마르 6,9) 그 사람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신발을 신는 것은 자유민의 특권이었다. 포로와 노예는 맨발로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것은 현재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종이 되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퇴사자22012.05.1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40>루오꽝(상)](//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67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루오꽝(상)신학과 중국 철학의 상통점 찾는 데 주력 루오꽝(羅光, 1911~2004) 대주교는 중국 후난(湖南)성 헝양(衡陽) 난샹 태생으로 자(字)는 달의(達義)인데 세례명인 스타니슬라오(Stani slaus)를 음역해 지었고, 호(號)는 '작조'인데 그 뜻은 '그리스도는 세계의 빛'이다. 집안이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기에 루오 대주교도 자연스럽게 유아 세례를 받았다. 6세부터 천주교 위더(毓德) 소학교에 다녔는데 항상 수석을 했다. 13세에는 성심수도원 중등학교 과정을 수학했고, 19세에는 수도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31년 성심수도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교황청 우르바노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에도 계속 신학, 법학 등을 공부해 신학박사와 법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렇게 세 가지 학문을 공부한 결과 자연스럽게 이 세 분야를 회통하게 돼 일가를 이루게 됐다. 루오 대주교는 우르바노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26세 나이로 중국 문학, 철학 교수를 맡게 됐다. 그 기간 동안 문학, 철학 방면의 창작 활동도 멈추지 않아 35세에 교황을 알현할 기회가 있어 교황에게 「유가사상 대강」(儒家思想大綱), 「논중국 외유 법규」(論中國外儒法規)란 책을 바쳤다. 그 후에도 여러 작품을 저술했는데, 창작 활동 외 번역 활동도 열심히 해 중국 고전인 「중용」(中庸), 「대학」(大學), 「논어」(論語) 등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1991년 루오 대주교는 자신의 인생을 헝양(衡陽)시절 19년, 로마 31년, 타이완 30년으로 나누었는데 헝양(衡陽) 19년 중 12년은 난샹(南鄕)의 고향에서 보냈고 7년은 황샤오완(黃沙灣)수도원에서 보냈다. 로마의 31년 중 9년은 공부를 했고, 25년은 교수 생활을 했으며, 18년은 주 교황청 대사 종교고문으로 지냈다. 타이완의 30년 중 5년은 타이난(臺南)교구 주교로, 12년은 타이베이(臺北)대교구 주교로 봉직했으며, 13년은 푸런대학교(輔仁大學) 총장으로 지냈다. 80세 이후는 일체의 세속적 직분을 마다하고 오로지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만 했다. 루오 대주교가 봉직했던 천주교 푸런대학교는 1925년에 베이징에 설립됐는데 1949년 베이징이 공산당에 함락되자 중국 교육부가 접수해 1952년 베이징사범대학과 병합함으로써 폐교됐다. 1956년 푸런대학교 재타이완 동창회가 설립돼 타이완에서의 모교 복교를 위한 서한을 교황에게 보냈다. 1961년에는 푸런대학교 철학연구소(철학 대학원)에서 형이상학을 강의하는 등 당시 총장이던 위빈(于斌) 대주교의 가장 큰 조력자였다. 1978년 8월 위빈 추기경이 서거하자 푸런대학교 총장직을 이어받아 타이완 복교 후 제2대 총장으로 1992년 1월까지 재임했다. 루오 대주교는 위빈 추기경의 이념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규모를 확충해 9개 학과 13개 대학원 과정을 증설해 푸런대학교를 7개 대학 42개 계열학과, 22개 대학원 과정의 종합 대학으로 만들었다. 이런 학교 구조적인 부분 외에 임기내 많은 건물을 완공해 푸런대학교 캠퍼스의 오늘날 모습을 만들었다. 루오 대주교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공헌은 비단 학교 건물 건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의 인격 도야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푸런대학교 총장 재임 시 '인생철학'을 전교생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 교과목으로 개설하고 직접 강의도 했다. 루오 대주교는 '인생철학' 강의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 엘리트로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라는 주제에 대해 유가와 천주교 사상을 융합한 관점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중시하고 스승을 받들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심성을 배양하고, 또 유가 사상과 천주교 사상이 현실에서 언행일치가 되도록 해 장래 사회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양하는 데 밑거름이 되게 했다. 이런 분위기는 향후 푸런대학교 교학 특색 중 하나가 됐다. 루오 대주교는 중국 문화와 천주교 문화의 융합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1971년 구정(春節) 교구청 대성전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 분향, 헌화, 헌과(獻果) 의식을 주재하고 단배(團拜)도 했다. 그 다음 해는 주교단 상임위원들과 제사 의식에 관해 토론을 하고 제사 의식을 행하면서 헌화, 분향, 제주(祭酒) 의식도 행하고 성경도 봉독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중국인들이 행하는 조상 제사를 미신, 우상숭배 등으로 치부하고 교리에 어긋난다고 배척하며 금지해 조상 제사는 늘 논쟁의 발단이 됐다. 루오 대주교의 이런 행동은 중국인 천주교 신자들이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해결해주는 계기가 됐다. 루오 대주교는 1961년 41세에 타이난 신설 교구의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 이듬해에는 삐유에 신철학원(碧岳神哲學院, 1992년 타이베이 성토마스 총원과 병합돼 천주교 타이완 연합 총수도원이 됐음)을 건립했다. 또 타이난 교구 교구청을 비롯해 삐유에수도원, 다륀(達義)수도원을 세웠으며, 성공대학교 인근에 학생 활동 센터를 건립하고 더광여중(德光女中), 승공여중(聖功女中), 츠요중학(慈幼中學), 리밍중학(黎明中學)을 설립했다. 루오 대주교는 타이난교구 주교로 재임한 지 5년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업적을 이뤘다. 1966년 루오 대주교는 타이베이대교구 대주교로 임명됐고, 대주교 재임 중에 타이베이 교구청을 건립하고 교우 선교 사목회를 만들었으며 겅신(耕莘)간호학교도 세우고 산샤(三峽)에 천주교 공원묘지도 만들었다. 루오 대주교는 사목하는 틈틈이 여가 생활로 중국화(中國畵)에 심취했다. 특히 말, 대나무 등을 즐겨 그렸다. 화집도 발간할 정도로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 루오 대주교는 푸런대학교 총장직을 내려놓았고, 건강이 비록 좋지 않았지만 열심히 저작활동을 하다 2002년에 병세가 악화돼 2004년 2월 28일 주님 품안에 안겼다. 루오 대주교 저작 루오 대주교의 저작물<사진>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세상에 나온 저작 중 제일 유명한 것은 「루오꽝 전서」(羅光全書)다. 루오 대주교의 작품은 대부분 푸런대학교 신학원과 작조관에 소장돼 있다. 「루오꽝 전서」는 철학과 종교 두 가지 내용으로 이뤄져 있는데, 철학은 대부분 중국 철학이다. 서양 철학을 소개하는 책은 두 권에, 비교 철학도 세 권에 불과하다. 종교 부분은 전기(傳記), 영성에 관한 것, 교리 등이 있으며 그 외 문학과 시집도 이 유형에 속하는 것이 있고 루오 대주교 자신의 사진과 그림 작품도 들어있다. 루오 대주교는 「루오꽝 전서」에서 "…작품을 쓰는 데 있어 유일한 관심사는 '천주교가 중국 문화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루오 대주교는 하느님과 중국 철학의 상통하는 점을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 푸런대학교는 「루오꽝 전서」로 총 42권, 66종 저작을 1996년에 펴냈는데, 루오 대주교의 1993년까지의 저작들을 수록했고 1994년부터 임종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은 아직 전서에 수록하지 못했다. 「루오꽝 전서」의 근본 골격을 이루는 저작은 역시 「생명철학」(生命哲學)이란 책이다. 박용모 교수(세바스티아노, 부경대) 타이완(臺灣) 푸런대학교(天主敎輔仁大學)에서 「주희 '이기' 철학사상 연구」(朱熹理氣哲學思想之硏究)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루오꽝 주교에게서 학위논문 지도를 받은 마지막 학생이다. 경성대학교, 동의대학교, 창원대학교, 부산 가톨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부경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물로는 '맹자 심성철학 연구'(孟子心性哲學硏究), '노자의 지(知) 연구' '왕양명 공부론의 진로에 대한 성찰', '맹자의 성(性)에 대한 기본 태도' 등이 있다. cpbc2014.04.01
![[가톨릭 여성운동 단체를 소개합니다] (3)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77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여성운동 단체를 소개합니다] (3)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실천하는 천주교 여성 정체성 확립천여공은 천주교 여성 정체성을 살리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교회 안팎으로 다양한 단체와 연대해 활동해왔다. 사진은 2009년 10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 모습. 사진제공=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이하 천여공, 공동대표 김진희ㆍ최금자)는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천주교 여성의 정체성을 살리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여성문제를 비롯한 사회참여 운동에 동참하며 교회 안팎으로 다양한 단체와 연대해 활동해왔다. 천여공 탄생은 1970~80년대 노동, 빈민, 사회복지, 여성, 환경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한 천주교 여성들이 밑거름이 됐다. 1988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에 여성위원회가 구성된 것을 시작으로 가톨릭교회 내 여성을 중심으로 한 몇몇 소모임이 생겨났다. 이 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교회 안에 여성공동체를 만드는 데 뜻을 같이하며 1993년 4월 7일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라는 싹을 틔웠다. 천여공 출발에 동참한 회원 60여 명은 창립총회에서 "천주교 여성들이 하나가 돼 교회 안팎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 스스로의 자질을 향상시키며, 교회 쇄신과 아울러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천명했다. 천여공은 △교회 내 여성문제에 관한 연구와 교육 △사회 구조악에 희생된 여성문제 연구와 해결 △지역 여성 활동가와 연대 및 지원사업 △여성 고유의 전례 토착화와 영성 계발 △국내외 단체와 연대 활동에 노력을 기울였다. 회원 교육은 필수 과정으로 '성경 속 여성'을 진행했다.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성서와함께/1995)를 교재로 사용하며, 성경 속 여성을 현대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여성 의식을 높이고, 실천하는 천주교 여성으로서 교회와 사회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심화 과정에서는 여성학, 여성신학, 세계 및 한국교회사,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등 다양한 내용을 다뤘다. 이 밖에도 여성 관련 강의 요청이 오는 곳이면 어디든지 강사를 파견했다. 1995년에는 우리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 천주교 여성신자 실태 및 의식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고, 1997년 '제3천년대를 향한 한국 천주교 여성사목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연구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한국교회 내 여성사목 문제 개선에도 적극 나섰다. 1996년 가톨릭 여성 한마당을 개최한 후 △본당 사목회에 여성 신자 참여 비율 20% 보장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사목국 또는 여성사목위원회 설치 △교회 전례에서 남녀평등 실현(여성 복사, 여성 성체분배자)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주교회의에 전달했다. 또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여성분과' 설치를 이끌어냈다. 여성인권을 위한 실천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호주제 폐지 활동 △성매매방지법 제정 활동 등에 앞장섰고, 천주교 성폭력 상담소(1998~2002), 미리암 이주여성센터(2004~현재), 가톨릭 여성의 전화(2007~2012) 등 부설기관을 설립해 위기의 여성을 도왔다. 이와 함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국제가톨릭지성인문화운동 등에 가입, 다양한 단체와 연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천여공 회원은 현재 200여 명에 이른다. 조직 확대보다는 천여공 고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활동 내용의 질적 측면에 집중해 조직 내실화를 꾀해왔다. 천여공은 신입회원 확보와 활동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지속적 과제로 삼고 있다. 천여공은 앞으로 여성과 여성신자로서 의식 향상 교육에 더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여성들이 여성을 제약하는 구조적 제도나 관습, 법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하고, 개선을 위한 변화에 나서도록 이끌 예정이다. 또한 천주교 여성단체 간 연대를 새롭게 해 활동이 중단된 '가톨릭여성단체연대'를 되살리는 데 힘쓰기로 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퇴사자2201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