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문화산책]<56>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12.끝)](//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240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12.끝) 천상의 관 받는 성모 바라보며 천상세계에 대한 희망 품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영원히 강복하셨습니다"(시편 45,3) 작품 : 성모대관 라파엘로 작, 267×163㎝, 1502~1503년, 로마 바티칸 회화관 ● 영광의 신비 5단 :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신부(新婦), 천상의 관(冠), 영광 성모 마리아는 고대부터 '하느님을 잉태하신 분'이라는 칭호로 공경과 신심의 대상이었다. 신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성모 마리아에게 간청했다. 특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431년 에페소 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교회 입장이 공식화된 후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은 놀라울 만큼 발전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죽음과 승천에 관한 교부들의 언급과 대중 사이에 퍼져있던 신심이 그리스도교화하면서 성모 탄생과 주님 탄생 예고(성모 영보), 성모 승천 등은 축제로 자리 잡는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성모 마리아가 심판자 그리스도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대중을 위해 빌어주는 자비로움, 그리고 곧바로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으로 널리 찬양받는다. 12세기 이후 성모 마리아 공경은 '성모 대관' 도상으로 절정을 맞는다. 성경은 성모 대관에 대해 전하지 않지만, 구약의 에스테르기를 통해 대관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임금은 다른 어떤 여자보다도 에스테르를 사랑하게 되어, 그는 모든 처녀보다 임금의 귀여움과 총애를 더 많이 받았다. 임금은 에스테르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그를 와스티 대신 왕비로 삼았다. 임금은 대신들과 시종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렇게 '에스테르의 잔치'를 벌이고, 모든 주에 면세를 베풀며 임금답게 풍성한 선물을 내렸다"(에스 2,17-18). 에스테르는 마리아의 예형론(Trpologie)적 인물로 간주된다. 시편의 "제왕의 딸들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사이에 있으며 왕비는 오피르의 황금으로 단장하고 당신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시편 45,10)와 요한 묵시록의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묵시 12,1)에서도 성모 마리아의 대관 장면에 대한 예형론적 근간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페루지아에 머물던 시기에 성 프란치스코 알 몬테 성당을 위해 그렸다. 성모가 임종 후 무덤으로 옮겨지고 그 후 하늘에 올라 천상 모후의 관을 예수께 받는 장면이다. 작품 구성은 상하로 이등분돼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관계다. 성모는 자기 아들에게 왕관을 받고 예수의 영적 신부가 된다. 중세 전통에 따르면, 모자 간인 예수와 성모의 관계는 예수는 삼위일체에 의해 하느님과 같다는 바탕을 두고 영적으로 결합한 부부 간으로 생각됐다. 천상의 광경을 지켜보는 사도들 장례식을 마친 뒤 성모 시신은 예루살렘 무덤으로 옮겨진다. 성모 마리아는 육신의 순결함으로 육체가 무덤 안에서 부패하는 고통을 겪지 않게 됐고, 그녀의 영혼은 육체와 결합했으며, 무덤에서 다시 나와 무수한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천상의 신부 방'으로 들어갔다. 사도들은 성모의 죽음에 몹시 슬퍼했으나, 하늘에 올라 천상의 관을 받는 광경을 지켜보는 그들의 모습에는 경외감이 감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사도들은 이 놀라운 사건에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없다. 라파엘로의 색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조로 가장 아름다운 천상 모습을 지켜보는 사도들의 매우 온화하고 정적인 모습이 표현돼 있다. 사도들은 지상 생활을 마친 뒤 성모와 같이 영원한 천상 공간으로 들어가길 염원하는 듯 그들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성모의 허리띠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황금 전설(Legenda Aurea)」을 보면, 사도 토마스는 사도들 가운데 성모 임종 당시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성모 마리아는 이미 무덤으로 옮겨져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간 상태였고, 이를 보지 못한 토마스는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성모가 옷에 둘렀던 깨끗한 허리띠가 그대로 토마스의 손에 떨어진다. 그는 비로소 성모의 몸과 영혼이 진실로 하늘로 올려졌음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성모 승천'과 '성모 대관' 도상에서 종종 사도 토마스의 의심과 연결해 성모 허리띠가 등장하곤 한다. 이에 앞서 토마스 사도는 주님 부활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주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주님 부활에 대한 자신의 의혹을 거둔다. 이렇듯 토마스는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표징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꽃으로 장식된 빈 무덤 그림 중앙에 약간 사선으로 위치한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을 연상케 한다. 화가는 무덤에서 하늘로 오른 성모의 경이로운 사건을 강조하고자 아름다운 꽃으로 빈 무덤을 장식하고 있다. 지상의 꽃들은 하늘에 오른 성모를 향해 활짝 피어 있다. 이 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백합과 장미꽃인데 모두 성모 마리아와 관련이 있다.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장미는 그녀의 고통과 사랑을 의미한다. 바로 지상의 여인으로 성모가 보인 순결함과 사랑, 고통에 대한 보답은 천상에서 주님에게 천상 모후의 관을 받는 은총이다. 성모를 위한 축제 과연 하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상하 이중으로 구분된 그림 상부에는 예수가 그의 어머니에게 관을 씌우고 있다. 하늘에 오른 성모는 예수에게서 관을 받는다. 고대로부터 왕관은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관,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가진 관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관은 세속의 힘과 영광뿐 아니라 대관의 의미도 지닌다. 관을 바치는 것은 공경의 표시와 겸손의 의미다. 성모에게 관을 씌우는 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영광과 공경의 표시이고 마리아의 승리의 상징인 것이다. 사실상 성모 마리아의 행적은 성모 승천 이후로 끝난다. 하지만 성 예로니모의 기록에 따르면, 성모는 하늘로 오른 직후 성부의 옥좌에 모셔졌다. 많은 화가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성모 승천 다음에 성모의 대관식 장면을 그리곤 한다. 성모는 주님 탄생 예고 때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천상의 관을 받고 있다. 사람의 딸로 태어난 성모가 천상 옥좌에 앉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는 두 인물의 친밀성뿐 아니라 동등함을 드러내는 자세이며, 마리아로 상징되는 힘의 권한이 그리스도와 대등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성모 대관의 장면에서 성모 마리아가 왕관을 쓰고 그리스도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때 성모는 신부의 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왕관을 쓴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는 교회와 세속 군주와의 동맹, 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신학적 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모를 둘러싼 천사들은 성모가 천상에서 영원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순간을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며 정겹게 축하하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로 천사는 성모의 삶에서 지상과 천상의 중재자적 역할로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다. 천사들의 감미로운 노래와 연주는 지상의 여인으로 천상의 복을 얻는 복됨을 찬미하는 가락이다. 또한 그림 오른쪽 하단부에 사도들 무리 중 가장 끝에 서 있는 사람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지상 공간에 우리와 함께한 화가는 경이로운 천상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화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하늘에 올라 영원한 천상 세계로 들어가 복을 누릴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윤인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cpbc2014.03.18
![[평화칼럼] 나를 성가시게 하는 분들께](//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6207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나를 성가시게 하는 분들께변승우 명서베드로 (TV국장) 당신들을 만난 뒤 사는 일이 많이 번거롭습니다. 걸핏하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에요.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이집트와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치며 성경의 맥을 되짚어가는 12일 여정이었지요. 저는 6mm 카메라를 들고 당신들과 동행했습니다. 솔직히 첫인상은 그저 그랬어요. 행선지만 성지일 뿐 보통 관광 여행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겼거든요. 게다가 평균 연령 환갑을 넘긴 분들이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저는 순례 시작부터 기진맥진이었습니다. 특히 모세가 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에 오르는 밤길은 40대 중반의 PD가 카메라를 메고 뛰기엔 산행의 호흡이 너무 가빴습니다. 이래저래 촬영은 무덤덤하게 이어졌어요. 정상 가까이에서 당신들에게 짧은 인터뷰를 요청하기 직전까진 말입니다. "하느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는 산에서 먼저 간 아내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려고." 바오로 할아버지는 관절염 때문에 수없이 주저앉으면서도 끝내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준비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자식들한테 말했어. 나는 죽어도 성지에 간다, 하느님 만나야 한다, 죽고 사는 건 그 다음이라고 말이야." 악성 류머티스로 몇 번이나 생을 포기하려 했다는 미카엘라 할머니에게 순례는 세상을 다시 살아내기 위한 다짐이었습니다. "이 많은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지요." 요한 형제님은 울먹이느라 인터뷰를 끝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절절한 한 분 한 분의 목소리 뒤로 시나이의 새벽이 열렸습니다. 새벽빛은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칼로 치듯이" 닥쳐왔는데, 눈부신 빛 속에 두 손을 모은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고백이자 치유이고, 희망인 동시에 약속이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들을 담아내기엔 제 카메라가 터무니없이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복음을 전하는 방송국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일상처럼 잊혀져갔던 숱한 믿음의 현장들이 당신들의 모습과 겹치며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목격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순례는 계속됐고, 여정의 말미에서 당신들은 제게 또 한 번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베들레헴에서였지요. 뜻하지 않은 폭탄 테러 소식에 우리는 부득이 예약한 호텔이 아닌 싸구려 숙소에서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주먹만한 벌레가 득실대고 화장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이었어요. 순례를 기획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일원으로서 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참가비를 돌려 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저녁 늦게 당신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곳 누추한 마구간에서 예수님이 나셨는데 우리가 호화롭게 호텔에 묵으면 오히려 이상하죠. 불편한 곳에서 하룻밤 자는 게 진짜 은총이라고 생각해요." 말씀을 듣는 순간, 환불을 먼저 걱정했던 저는 쥐구멍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런 분들의 신앙과 삶을 얘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 그 믿음의 원류를 찾아가고 증언하는 일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는지…. 한없이 생각이 깊어지는 밤을 보냈습니다. 그날 이후 당신들은 제게 '가톨릭 신자'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례의 기억은 묘한 통점으로 가슴에 남아 제가 게으르거나 엇나가고 싶을 때마다 어김없이 경고음을 울립니다. 덕분에 가톨릭 방송의 PD로 사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형편없이 부족한 신자입니다. 하지만 당신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방부제처럼 간직하고 있기에 조금씩 나아지리라 확신하고, 신앙 앞에서 결코 건방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2008년 가을의 성지순례는 제게 '새로운 복음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저는 당신들로 인해 성가십니다. 그 행복한 성가심이 저의 가장 든든한 '동력'입니다.cpbc2013.10.01
![[회칙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18> '살인 금지'는 태아에게도 적용](//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6173_1.1_titleImage_1.jpg)
[회칙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살인 금지'는 태아에게도 적용배아, 태아에 생명의 필연적 연속, 일체성이 엄존 들어가며 미혼모 쉼터 마리아의 집을 운영하는 착한목자수녀회 소속이면서 '틴스타'를 이끌었고, 필자와 함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에서도 봉사하신 수녀님의 말입니다.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내는 미혼모들이 갖는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입양 간 아이가 후에 자신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형편과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자신이 키울 수는 없지만 낙태보다는 생명을 선택했기에 평생 품어야 하는 아픔이다." 그렇지요. 하지만 선택한 생명으로 인해 평생 품어야 하는 아픔이 어찌 미혼모들에게만 있겠습니까. 장애나 난치병을 타고난 생명, 지지리도 못난 자신을 닮은 그런 생명을 선택했기에 평생 품고 가야 하는 생모들의 삶이라고 거저먹기는 아닐 것입니다. '가슴으로 낳은' 양모들의 아픔은 그야말로 거룩한 훈장이지요. ♀생명봉사자 : 초음파로 초기 태아의 모습을 종종 보는데 아직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외모지상주의 때문일까요? 인간 생명의 첫 순간에 대한 논쟁이 되겠습니다만, 수정 후 어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특정한 발달 단계나 상태에 도달해야만 인간으로 간주한다는 발달주의적 생각들도 그와 비슷합니다. 그 첫째가 태아 스스로 자궁 밖에서 자생력(自生力)을 가지지 못할 때는 모체의 일부분으로 간주한다는 것, 둘째는 인간다운 특징인 두뇌가 형성돼야 인간으로 간주되며 두뇌 활동이 끝난 뇌사(腦死)상태에서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것, 셋째는 자궁 착상에 성공한 순간부터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리스도교 교부시대에 태아의 몸에 언제 영혼이 들어가서 사람이 되는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있었는데, 남아는 수정 후 40일, 여아는 80일에야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선 호에서 언급했듯이 이 모두는 교회의 교리도 생물학적 진실도 아닙니다. 배아의 모든 발달 단계와 단계 사이에는 생명의 필연적인 연속성(連續性)과 일체성(一體性)이 엄존합니다(졸고, '생명복제', 「생명공학과 가톨릭윤리」 311-354쪽 참조). <<현대의 유전학은 첫 순간부터 이 살아있는 존재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관한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60항 §1). ♂♀생명봉사자 : 성경에는 고의적 낙태에 대한 언급은 없던데요, 교회는 어떻게 단죄했나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 점도 언급하십니다. <<성서 본문들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아기의 인간 존재에 대한 지대한 존중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살인하지 못한다"는 하느님의 계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까지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61항 §1). 그리고 교회 규정을 소개해주십니다. <<1917년의 교회법전은 낙태를 파문의 벌로 다스렸습니다. 개정된 교회법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고 규정합니다>>(62항 §2). 나가며 앞서 언급한 마리아의 집에 10년 전 미국으로 입양 간 입양아들이 모국방문 길에 찾아와, 출산을 기다리던 예비 미혼모와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예비 미혼모 한 명이 자신은 곧 아기를 외국으로 보낼 예정인데, 커서 엄마를 미워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며 입양아로서 만약 친모를 만나면 뭐라고 말하겠느냐고 질문했더니,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입양아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엄마를 만나면 '고맙습니다' 할 거예요. 저를 기르실 수는 없었지만 제가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보내 주셔서요. 그리고 꼭 안아드릴 거예요." ※ << >>는 「생명의 복음」 본문.이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교육분과장,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 주임)cpbc2013.10.01
![[출판] 성서학 박사와 함께 떠나는 영성 가득한 성지순례](//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477_1.0_titleImage_1.jpg)
[출판] 성서학 박사와 함께 떠나는 영성 가득한 성지순례미국 예수회 킬갈렌 신부 저술, 성지 소개에 묵상과 폭넓은 해설 곁들여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존 킬갈렌 지음/염철호 옮김/바오로딸/1만 5000원) 갈릴래아, 유다, 예루살렘으로 나눠 성경 속 현장 입체적으로 묘사 Holy Land. 우리말로 번역하면 거룩한 땅, 즉 성지(聖地)다. 성지는 예수께서 태어나 활동하고 죽음을 맞았다가 부활한 지역을 말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지를 '팔레스티나'(라틴어)로 불렀는데,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바로 이곳이다.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은 신약성경 무대가 되는 성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존 킬갈렌(예수회,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 교수) 신부다. 킬갈렌 신부는 수 년간 성서대학에서 여름방학 과정으로 개설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프로그램 안내를 맡았다. 또 책 집필을 위해 수차례 더 성지를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성지 곳곳을 속속들이 아는 성서학자가 쓴 책인 만큼, 성지 소개는 구체적이며 입체적이다. 그는 성지를 △제1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제2부 유다 △제3부 예루살렘으로 나눠 설명하며 성경 속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우선 각 성지에 대한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살펴본 뒤 성경 구절과 함께 성지 소개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성지 소개와 곁들인 성서학자의 영적 묵상과 해설에서 드러난다. 신학, 역사학, 성서학, 지리학 넘나드는해박한 해설로 신약성경 이해 도와 킬갈렌 신부는 혼인잔치가 열린 카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통해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짚어줬다. 또 예수가 풍랑을 가라앉히고, 물 위를 걸으며,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한 갈릴래아 호수 편에선 걱정에 잠겨 있는 백성을 믿음의 길로 초대하는 예수의 뜻을 읽어냈다. 때문에 이 책은 "유익한 정보를 주면서도 은근한 영감을 제공하며, 성경과 관련된 성지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킬갈렌 신부는 "성지를 통해 신약성경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깨닫게 하며, 신약성경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수의 삶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접하고, 또 그 장소와 사건을 통해 하느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면 독자들 영성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라면서 하느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한 독자들이 예수와 그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되길 희망했다. 신학, 역사학, 성서학, 지리학을 넘나드는 해설에 더해 신앙과 영성을 이끌어낸 그는 시쳇말로 '성지 안내 종결자'로 부를만하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9.18

"뭐니뭐니해도 신앙교육 못자리는 가정"서울 상도동본당, 첫영성체 가정교리로 가정 변화 이끌어상도동본당 초등부 첫영성체 가정교리는 가정을 변화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부모와 자녀가 가정에서 함께 첫영성체 교리를 나누며 서로를 신앙의 길로 이끈다. 사진은 지난 11월 10일 첫영성체 축하식 현장. 사진제공=상도동본당 첫영성체반 김경선(베로니카, 44)씨는 요즘 아들(도광윤 요한 세례자, 초5)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마냥 철부지인 것 같던 아들이 1년간 첫영성체 교리를 받고 나서 부쩍 의젓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다"며 첫영성체반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던 아들이었는데 첫영성체를 하더니 스스로 복사단에 들겠다고 해서 엄마를 놀라게 했다. 어느 날인가 새벽미사 복사를 서고 오더니 "나 때문에 엄마도 새벽에 일어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해 엄마를 감동시키기까지 했다. 장선정(레지나, 40)씨는 딸(심예원 사비나, 초4)이 첫영성체를 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결혼하느라 세례를 받았지만 결혼 후엔 성당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본당에서 초등부 첫영성체 교리를 가정교리로 진행하는 바람에 엄마 장씨도 교리를 받으러 성당에 나와야 했다.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싶어도 딸과 함께 가야 하는 주일 오전 8시 30분 미사에 빠질 수 없었다. 성당에 다녀오면 활기가 넘치고 성당 가는 걸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느새 장씨에겐 미사와 기도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주임 정의덕 신부)의 초등부 첫영성체 가정교리는 가정을 변화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벌써 10년 넘게 첫영성체 교리를 가정교리로 진행해 온 본당 사목자와 교사들은 "뭐니뭐니해도 신앙교육의 못자리는 가정"이라면서 "첫영성체 가정교리는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녀는 부모를 통해 서로의 신앙을 보고 배우도록 이끌어 준다"고 입을 모았다. 본당은 인보성체수도회에서 만든 가정교리교재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러」를 바탕으로 첫영성체 교리를 꾸려간다. 해마다 2월이면 교리를 시작해 11월에 첫영성체 미사로 마무리한다. 교육은 교사→부모→자녀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다. 평일에는 부모 교육(주 1회)이 있다. 교육을 받은 부모들은 집에 가서 자신이 배운 교리 내용을 자녀에게 알려 준다. 부모에게 교리를 배운 아이들은 주일날 성당에 와서 교리 시간에 교사를 통해 집에서 배운 교리를 복습하고 확인하는 식이다. 이러니 교사도 부모도 교리공부에 소홀할 수 없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기도하기, 성경 읽기 등 '숙제'를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모범 신앙인으로 변해야만 했다. 엄마 아빠가 평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아이한테만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아들(김진건 토마스 아퀴나스, 초3)이 첫영성체를 받은 엄마 이민지(실비아, 39)씨는 "단기간 교육이 아니라 1년 정도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니 나도 아이도 달라지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면서 "아이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내 신앙심도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첫영성체반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했다. 가족이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져서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 기도를 바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분위기로 이어지게 됐고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족성지순례, 가족피정, 부모 ME교육처럼 가족이 함께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교육 프로그램도 가정 변화에 큰 도움이 됐다. 김경선씨는 "부모 교육을 통해 교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녀 교육법도 함께 배우고 또래 부모들과 자녀 문제 고민을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면서 "예전보다 아이들에게 화도 덜 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첫영성체 가정교리는 그동안 본당 활동에 무관심했던 부모들이 본당 행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교리 때문에 성당에 오다 보니 아는 사람도 생기고 본당 소식도 자주 접하게 돼, 본당 공동체 활동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민지씨는 "아이만 첫영성체 교리를 받았다면, 아이만 성당에 보내놓고 나 몰라라 했을 텐데 부모가 함께하는 교리다 보니 본당 행사에 빠지지 않게 되고 활동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 교사 최미현(클라우디아, 49)씨는 "예전 같으면 성당에 와서도 말 붙일 사람이 없어 미사만 참례하고 집에 가기 바빴던 부모들이 이젠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편하게 성당에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첫영성체 교리 담당 김한국 신부는 "가정교리에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부모도 자녀도 모두 기쁘게 교리를 배우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교리교사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김 신부는 또 "첫영성체 가정교리가 가정은 물론 본당 공동체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2.03
![[아! 어쩌나] 228. 아들을 버리고 싶네요](//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28. 아들을 버리고 싶네요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Q. 70대 할머니입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호적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남편은 밖으로만 돌고 술을 좋아해서 8년 동안 별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친정에 가 있었는데 웬 아기가 대문 밖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아들이지요. 아기를 파출소에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친정 아버지가 말리시더군요. 아들을 거둘 당시 형편이 좋지 않아 아이들을 친정에 맡겼습니다. 딸은 내가 돈을 대고, 아들은 남동생이 돈을 대서 키워줬지요. 아들은 자라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았습니다. 반항도 많이 하고, 친정 부모님도 아들을 거둔 것을 후회하고 있지요. 아들은 지금은 결혼해서 따로 삽니다. 만나자고 해도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폭언을 퍼붓기만 하고, 부모에게 용돈 한 번 준 적이 없습니다. 호적을 정리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렇게 힘들게 살 바에는 정부보조금이라도 받으려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남편은 18년째 투병 중이고요. 뇌졸중이 왔는데, 대장암에 치매도 걸렸습니다. 남편과 재결합 후 남편에게 폭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아들을 볼 때마다 바람피워 낳은 자식이라고 하면서요. 아들이 미워서 자꾸 욕이 나오는데, 절제되지 않네요. 본당 신부님은 내가 감정절제를 잘 못한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그래서 영성체도 못하고 있습니다. A. 자매님 연세가 여든에 가까우신데 이런 일을 당하시니 참으로 힘드시겠습니다. 남편이라고는 남편 노릇도 못하던 사람이 자매님 마음에 상처를 줬고, 지금은 병석에 누워 있고, 주워서 키워준 아들은 자매님을 원망하면서 폭언을 퍼붓습니다. 본당 신부는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자매님을 질책하고 그래서 영성체도 못하고 있으시다니 그야말로 사면초가 신세이시군요. 남들은 나이 여든이면 자식에게 봉양 받고 본당에서도 어르신 대접을 받는데, 자매님의 노년은 기구하기 이를 데 없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사람이 감정절제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려드립니다. 자매님은 아주 오래전 남편에게 상처를 입고 화병에 걸리셨는데, 지금은 아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으시면서 오래전 상처가 더 심해져 '마음의 병'에 걸리셨습니다. 이런 마음 안의 분노는 절제가 안 됩니다. 절제하려다 자칫 억압하게 되면 심각한 신경증적 질병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욕이 나오는 대로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배설물을 화장실에서 배설하듯, 마음 안의 불편한 감정 역시 뱉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기왕에 하시는 김에 자매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 모두에게 보란 듯이 다 푸신다면 금상첨화이고요. 남편분도 자매님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준 사람이니, 실컷 욕질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병적 죄책감'을 가지신 듯 합니다. 욕 좀 했다고 영성체를 못하시다니요. 자매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자매님은 피해자인데 왜 영성체를 못하시나요? 하셔야 합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이야기해도 영성체를 못하는 것은 지나친 양심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살지요. 그런데 그 양심이 보편적이고 객관성을 가진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장 과정의 교육내용이나 콤플렉스 혹은 상처 등의 조건들에 의해 양심의 상태가 다르게 형성됩니다. 즉, 지나치게 양심적이거나 아니면 비양심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의 경우는 지나치게 양심적인 경우입니다. 아마도 부모님 영향을 받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거나 지나친 양심은 병적 죄책감을 양산해 사람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막는 역기능적 부작용을 낳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따라서 자매님은 성경 묵상을 하되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담긴 말씀을 주로 묵상하시고, 시간 나는 대로 자신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엄한 본당 신부님 말고 자매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하소연하시고 위로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상처가 아물 것입니다. 아들은 이미 자식으로서 자리를 스스로 버렸으니 호적을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아들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런 아들이 하나라도 있으면 노후에 도움도 받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 중에 사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 어디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오셨음을 생각하시고 주님께 위로를 구하는 마음으로 영성체하시길 바랍니다. 자매님과 같은 분들을 위해 시편 말씀을 드립니다. "뉘 있어 당신과 견주리이까? 그 많은 고생과 불행을 나에게 지워주셨어도 당신은 나를 되살려주시고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내시리이다"(「공동번역 성서」 시편, 71,19-20).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cpbc2013.12.03
![[가톨릭 문화산책]<55> 문학(11)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0215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문학(11)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네 죄가 따뜻한 날 서리처럼 녹아내리리라 나쓰에는 입양한 딸 요코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사진은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빙점' 의 한 장면. 사랑의 힘이 병을 떨치게 하다 결핵과 만성 척추염으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던 여성이 있었다. 어릴 때 헤어진 친구 마에가와 다다시를 요양원에서 다시 만난 그는 친구들 감화에 힘입어 그리스도교인이 되지만 친구는 그만 병을 못 이기고 하늘나라로 간다. 그는 슬픔에 잠겨 1년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하는데, 그의 나이 서른세 살 때 한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이 방문은 한 여성의 생을 바꾼다. 사형수와 결핵 환자들이 자기 심정을 토로한 글과 그리스도교인들의 위문 사연을 받아 소책자를 만들고 있던 스와가라란 이가 책에 자주 글을 올리는 미우라 미쓰요를 여성으로 착각, 당신 주소를 보니 같은 홋카이도의 아사히가와이니 우리 책에 당신만큼이나 글을 자주 올리는 홋다 아야코라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를 좀 해주라는 엽서를 보내게 된다. 홋카이도 영림서 경리직원이던 미우라 미쓰요는 주저주저하면서 과년한 처녀 환자 홋다를 찾아간다. 그 또한 임파선 결핵과 방광 결핵 환자였던 시절이 있어 동병상련의 심정이 있기는 했지만, 미지의 여성 환자 병문안은 조심스런 일이었다. 누워서만 지내고, 우유병을 오른손으로 잡고 가슴 위에서 서서히 기울여 벌린 입에 우유를 따라 마시는 것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한 미우라는 몇 달에 한 번씩 병문안을 간다. 미우라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병을 떨치고 일어난 홋다 아야코는 1959년, 37세 나이로 2년 연하의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함으로써 미우라 아야코가 된다. 돈을 벌어야겠기에 구멍가게를 열고 주인이 된다. 1963년 정초에 미우라 아야코는 친정으로 신년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동생 히데오가 챙겨준 아사히신문을 보게 된다. 신문에는 1천만 엔 상금을 내건 장편소설 공모 광고가 나와 있었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1년여 동안 밤에 집에 가지 않고 가게 안채에서 엎드려 소설을 쓴다. 1964년 7월 10일 신문에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기성 문인을 포함해 731편의 투고 장편 중에서 당당히 당선! 이 소설은 연재가 될 때,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그때마다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다. 42세의 구멍가게 여주인이 쓴 소설 「빙점」은 왜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소설 「빙점」의 줄거리 1946년,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시 교외에 있는 병원의 원장 게이조는 아내 나쓰에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쓰에가 안과의사 무라이를 좋아해 단둘이 있고 싶은 마음에 세 살짜리 딸 루리코를 집에서 나가 놀라고 하는데, 루리코는 그 길로 그만 유괴 살해되고 만다.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해 기르자는 아내의 요청이 있자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서 범인의 딸을 수소문해 출생을 비밀에 붙이고 기르기 시작한다. 요코라 이름 지은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나쓰에의 마음을 돌변케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남편의 서재를 청소하던 중 그의 다이어리에서 떨어진 메모에 적힌 요코의 신분을 안 나쓰에는 남편에 대한 심한 배신감과 친딸 루리코를 죽인 살인범의 자식임을 알게 된 요코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이후 나쓰에는 요코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요코가 여고 2학년 때 자기 아들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의 구애를 받자 요코의 출생에 대해 폭로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요코는 큰 충격을 받고 음독,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때 요코의 실제 아버지가 살인범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낸 기다하라가 요코에게 달려오는 것으로 「빙점」은 끝난다. 속편 주제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벌하라" 요코를 죽이면 안 된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미우라 아야코는 속편을 쓴다. 전편의 주제가 죄, 혹은 원죄라면 속편은 용서 혹은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범의 자식이 아니라는 오명을 벗었지만 요코는 자신의 출생이 어머니 게이코의 부정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 어머니를 증오하게 된다. 즉, 속편은 요코가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는 기나긴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처음에 요코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죄 없는 자신이 부정한 어머니를 심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작가는 여기서 신약성경 속 예수의 일화를 가져온다. 어느 날 유다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온다.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녀를 감싸고 돈다면 예수는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고, 죽이자고 하면 당시 로마 총독만 갖고 있던 사형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돼 반역자로 제소할 구실을 마련하는 셈이었다. 그때 예수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유다인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작가는 이 일화를 통해 인간은 태생적으로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세상에 완전한 이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요코는 고개를 숙인 채 눈길을 걸어가던 게이코의 등을 향해 호소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중략) 갑자기 요코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요코는 그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속편의 마지막 장면이다. 요코는 스스로를 인격체로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코의 마음속에도 죄의 씨앗인 '빙점'이 흐르고 있었다. 빙점은 인간의 냉정함이다. 작가는 빙점의 대척으로 불타는 유빙을 제시한다. 죄의식과 증오심 같은 것이 빙점이라면, 용서와 참회는 그것을 녹이는 불타는 유빙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죄를 짓게 마련이고, 인간의 죄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하늘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 인간은 타인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성화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속된 말로 「빙점」은 출생의 비밀을 따지는 막장 드라마이지만 죄와 벌, 용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을 방문하다 1999년, 7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미우라 아야코는 철두철미 크리스천이었다. 사랑이냐 윤리냐, 종교적 이상이냐 세속적 현실이냐를 놓고 따진 (일본에서는 드문) 기독교 작가였다. 남편 마쓰요는 아내의 집필활동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아내 곁에서 평생 동안 보좌했다. 충실한 비서가 있어 한평생 쓴 소설만 해도 96편에 달한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었다. 대신 나는 신앙과 생명을 얻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한 뒤 남는 것은 쌓아놓은 공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눈 것들이다." 홋카이도에 가면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꼭 들러보시라. 작고 1년 전인 1998년에 세워졌다. 독자 1만 5000명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금액이 2억 엔에 달했다. 지난해 7월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에 가봤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했다. 애독자들이 시간을 내 교대로 문학관을 지켜갈 만큼 이들의 「빙점」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cpbc2014.03.11

한국교회사연구소 공개대학 '하느님의 종 125위' 지상중계<9ㆍ끝> 신유박해 순교자- 중인ㆍ양인 신분의 서울 순교자 11위 방상근 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조선 후기 신분제는 양반-중인-양인-천인 체제를 유지한다. 이 가운데 중인은 양반에서 도태되거나 양인에서 신분이 상승한 중간층을 일컫는데, 이들이 서울의 중간 지점인 청계천 일대 북촌과 남촌에 거주하던 데서 유래한다. 중인은 주로 역관이나 의관, 율관(법률사무), 천문관, 서리, 향리 등으로 활동했다. 양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양인보다는 우위에 있던 하급 지배계급이었다. 다만 승진에 제한을 받아 육조(六曹)나 삼사(三司) 등의 주요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가 발표한 '조선후기 천주교사 연구'에 따르면, 신유박해기 신자들의 신분은 양반이 27.9%, 중인이 13.1%, 양인이 25.7%, 천인이 5.5%, 신분을 알 수 없는 자가 27.7%를 차지했다. 이는 1790년 천주교의 조상제사 금지 사실이 알려지고, 1791년 진산사건이 발생해 신해박해가 벌어지면서 교회 지도층 양반 가운데 일부가 교회를 떠나거나 멀리하게 되는 와중에서 10년 만에 교회가 재편된 결과였다. 신유박해 이후 교회 지도층 38명의 신분을 분석해 보면, 양반이 9명(22.68%), 중인 21명(55.26%), 양인 신분이 5명(13.16%), 미상 3명(7.89%)으로, 교회 주류가 양반 신분에서 중인 신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대표적 교회 지도층 가운데 한 사람이 역관 집안 출신 최창현(요한, 1759~1801)이다. 1784년 조선교회 창립 직후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초기 교회 가성직 조직의 일원으로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서민 대중이 읽지 못했던 한역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데 기여했는데, 그 책이 1636년 예수회원 엠마누엘 디아즈 신부가 중국에서 번역해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였다. 1794년 말 주문모 신부 입국 이후엔 조선교회 총회장으로서 교회를 유지시켰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하면서 체포돼 그해 4월 8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최필공(토마스, 1744~1801)은 의원 집안 출신이었다.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체포됐을 때 다른 신자들은 배교하고 석방됐으나 그만은 배교를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정조의 유화책에 마음을 고쳐먹고 관서 심약(審藥, 궁중에 바치는 각 지방 약재들을 심사하고 감독하기 위해 각 도에 파견하던 종9품 벼슬)에 임명돼 혼인을 하기에 이른다. 평안도에 부임한 최필공은 그러나 천주께 등을 돌린 심약함을 자책하다가 3년 뒤 심약 직무를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와 편자동에 약방을 마련하고 다시 신앙생활을 한다. 1800년 12월 말 체포 투옥된 그는 "천주교 신앙에 대한 믿음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며 1801년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의 길을 걷는다. 최필공의 사촌동생으로 역시 의원 집안 출신인 최필제(베드로, 1770~1801) 또한 1800년 말 체포돼 이듬해 5월 1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다. 역관 집안 출신인 최인철(이냐시오, ?~1801)은 1795년 순교한 최인길(마티아)의 동생으로, 천주교가 들어오자 일찍이 형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고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신자들과 함께 형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일시 배교해 석방됐으나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과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으며 나중에는 교회 중심인물로 지목돼 '사학의 괴수'라고까지 불렸다. 1801년 체포돼 그해 7월 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김이우(바르나바, ?~1801)ㆍ현우(마태오, 1775~1801) 형제는 역관 집안 출신으로, 김범우(토마스)의 넷째, 다섯째 이복동생이다. 김범우의 인도로 이승훈에게서 세례를 받은 형제는 최필제 등 교회 지도층과 어울렸고, 김이우의 집에선 수시로 세례예식이 행해졌다. 역시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돼 동생은 그해 5월께 포도청에서 장형을 받다가 순교했고, 형은 7월 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의원 집안 출신인 김종교(프란치스코, 1754~1801)는 학문에 대한 취미가 남달라 이벽(요한 세례자)조차도 "놀라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존중했다고 전해진다. 1795년 을묘박해 때 포도청에 체포돼 일시 배교했으나 1801년 8월 27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신분을 알 수 없지만 교회 책 필사에 앞장선 명도회원 정인혁(타대오, ?~1801)은 1801년 5월 14일 서소문 밖에서, 역관 명문인 천녕 현씨 가문 출신인 현계흠(플로로, 1763~1801)은 12월 10일 서소문 밖에서 각각 참수를 당했다. 양인인지, 중인인지 알 수 없지만 약방을 운영했던 김계완(시몬, ?~1802)은 1800년 박해가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피신했다가 이듬해 체포돼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마지막으로 서울 안국동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손경윤(제르바시오, 1760~1802) 회장은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cpbc2013.05.28
![[출판]책꽂이- 아 어쩌나 자존감편 등](//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90_1.2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아 어쩌나 자존감편 등 아! 어쩌나-자존감편 (홍성남 신부 지음/아니무스/1만 2000원) 평화신문 최장수 연재꼭지인 홍성남 신부의 영성심리 상담 칼럼 '아! 어쩌나'가 책으로 나왔다. 제1장 내면의 아이 마주하기, 제2장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기, 제3장 자기를 사랑하는 훈련, 침묵과 기도, 제4장 무조건 행복해지기로 구성된 책은 '자존감'과 관련된 상담 칼럼 55개를 골라 담았다. 홍성남(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신부는 "세상을 살맛 나게 살려면 살맛 나게 하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면서 "힘들 때일수록 나를 살맛 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로은 삶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고찰 (바티스타 몬딘 지음/김관희 옮김/인천가톨릭대학교 출판부/2만 5000원) 이탈리아 주교회의 신학자문위원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여한 바티스타 몬딘 신부가 펼치는 삼위일체론이다. 제1부에서는 삼위일체 신비의 계시와 교의 역사를 살펴보며 구약성경, 교부, 스콜라신학, 현대신학 등이 주장하는 삼위일체론을 설명했다. 제2부에서는 조직신학적 삼위일체론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을 상세히 다뤘다. 저자는 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주제가 신학과 실생활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거의 파괴주의에 가까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삼위일체 신비를 새롭게 이해하고 재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순교자 (엔도 슈사쿠 지음/이은형 옮김/도서출판 지운/1만 5000원) 일본을 대표하는 가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의 단편 모음집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순교자'는 1867년 일본에서 벌어진 천주교 대박해 사건을 배경으로 하며 그의 대표작 「침묵」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키스케의 모습을 통해 순교와 배교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며 그리스도교 신앙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나머지 작품은 저자가 낯선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10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내면의 유약함을 치밀하게 드러내며, 완전하지 못한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을 깨닫게 한다. 아들아! 밧줄을 잡아라(1) (김영식 글/김지수 사진/북갤러리/1만 5000원) 2004년부터 2013년까지 33번에 걸쳐 해낸 백두대간 종주기다. 착한 아들 김지수(다니엘)와 독한(?) 아빠 김영식(마태오) 부자가 펴낸 책으로 아빠가 글을 쓰고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이번 책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황장산(저수재)까지 종주한 기록을 담았다. 백두대간 품속에서 울고 웃으며 부자가 함께 걸으면서 느낀 도전과 성취, 기쁨과 고통, 갈등과 화해의 흔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부자는 산행에 바친 시간 만큼 몸도 마음도 성장했다. 아빠는 "백두대간은 고해소이자 인생상담 학교였다"면서 "아들은 고민을 털어놓고 아픈 상처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pbc2013.08.06
![[가톨릭 문화산책]<57> 성음악(12,끝) 우리 시대의 교회 음악 지침들](//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2314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12,끝) 우리 시대의 교회 음악 지침들성가대 전유물이었던 성음악, 신자들 참여로 확대 발전 예술은 그 자체로 더 심오한 미학적 세계로의 탐구욕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예술은 특정한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전례음악에서 늘 문제시된다. 교회 전례는 대중 집회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회음악의 지나친 심미적 발달은 전례와 충돌하고, 반면에 대중성만을 강조한 교회음악은 그 저급한 수준으로 인해 음악 전문세계에서 백안시된다.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함께 즐기면서도 음악적으로 당대의 최고 수준을 선도하는 교회음악이란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근대에 와서 상업성을 가진 대중예술, 혹은 실용예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면서 순수예술과의 충돌은 심각하다. 이 둘 사이에 교회 당국의 고민이 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은 각 지방의 고유한 음악 전통을 존중, 전례에 도입할 길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4월 미국 워싱턴DC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에서 찬미가를 부르는 알렉산드리아 성 루이스가톨릭교회 합창단. 1.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교서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Tra le sollecitudini, 1903년)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은 전례와 전례음악 사이에 큰 갈등을 초래했고, 그 반작용으로 프랑스 솔렘을 중심으로 한 그레고리오 성가 부흥운동과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한 체칠리아협회의 성음악 복고운동이 생겼다. 이 혼돈 가운데서 교회 입장을 튼튼하게 잡아주는 교황 지침서가 나왔으니 바로 교황 비오 10세의 자의교서(自意敎書, Motu proprio) 「목자의 역할을 다함에 있어서」(Tra le sollecitudini, 1903)이다. 이 교서는 Ⅰ.일반 원칙, Ⅱ.성음악의 여러 종류들, Ⅲ.전례음악의 가사, Ⅳ.성음악곡의 외형, Ⅴ.가창자, Ⅵ.오르간과 악기, Ⅶ.전례 성가의 길이, Ⅷ.주요 방법들, Ⅸ.결론 등 아홉 항목에 걸쳐 매우 구체적 원칙들을 담고 있다. 우선 서론에서 당시 교회음악의 여러 폐악들을 지적하고, 교회음악 부흥운동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며, 이 명쾌한 지침을 내리면서 오해에서 오는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일반 원칙으로 "성음악이란 미사전례에 사용되는 구절에 적절한 멜로디를 붙여 그 구절이 갖는 의미전달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성음악의 예술성을 강조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성음악의 최고 전형으로 삼았다. "교회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성스럽고 미사전례에 충실한 음악이 된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수록 그만큼 그 성음악의 품격은 더 떨어지게 된다"(3항). 고전적 다성음악도 허용하는데, 그 이유는 다성음악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동시대 음악은 주로 세속적인 이용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우 경계했으며, 성음악이라도 이런 세속적 작품형식을 따르지 않은 곡만을 허락하였다.(5항) 가사로는 오로지 라틴어만을 지정했고, 각 지방어는 철저히 금지했다. 또 전례 기도문인 가사를 변형하거나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반복하는 등의 편집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부르라 했다. 전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실제로 성직에 있어야 했고, 여성들은 성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성가대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13항). 성음악은 원칙적으로 순수한 성악이어야 했고, 오르간 반주는 허용했다. 만일 관현악단이나 다른 악기가 반주할 경우에는 대주교의 특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전례에서 피아노는 명시적으로 금지했고, 드럼이나 심벌즈, 벨 등과 같은 타악기류도 소란스럽고 경박한 악기로 여겨 역시 금지했다. 이 자의교서는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에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인용되지도 않은 채 사문화됐다. 오히려 개신교의 뜻있는 몇몇 음악가들이 그들의 교회음악을 운영하는 참고지침으로 인용하는 경우를 봤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963년) 이 문헌은 매우 준엄하고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유럽뿐 아니라 세계는 제1차(1914~1918) 및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겪으면서 전혀 새롭게 변했다. 과거의 모든 체제나 사고방식이 붕괴되고 개방화되면서 교회 변혁도 시급하고 절실했다. 이때 교황 요한 23세 주재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교회가 신식 옷으로 갈아입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방과 시대 적응, 현대화라는 뜻을 가진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란 단어가 표제어로 등장했고, 전례개혁을 위해 「전례헌장」이 발표됐다. 이 전례헌장의 가장 눈에 뜨이는 단어는 전례에 있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와 '모국어 사용 허용'이었다. 전례헌장의 제6장은 특별히 성음악에 할애했다. 이 헌장 역시 비오 10세의 자의교서 전통을 이어받아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식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 행위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종류의 교회음악, 특히 다음곡(多音曲)도 제30항에 따라 전례 의식의 정신과 부합하는 한 전례 집전에서 결코 배척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간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전례 중에 신자들의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신앙적인 대중가곡(오늘날 성가책에 수록된 형태의 성가)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118항). 이제 성가는 성가대 전유물에서 신자들의 몫으로 할애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언어도 '오직 라틴어'에서 모국어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혀졌다. 또 각 지방의 고유한 음악 전통을 존중하면서 전례에 도입할 길을 열었다. 오르간 이외의 다른 악기 사용도 전례의 거룩한 분위기를 도울 수 있다면 너그럽게 허락했다. 새로 전례음악을 작곡할 때의 가사는 전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돕는 것이 돼야 하며, 주로 성경과 전례에서 취하라 했다. 3.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 1967년) 그러나 이 제6장만으로는 성음악에 관한 자세한 지침을 주기에 부족해 많은 질문이 쇄도했고 혼란이 야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주임신부들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성가대를 없애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그렇게 했다. 이에 교황청 예부성성(오늘날 경신성사성)은 전례헌장의 시행 세칙에 해당하는 「성음악 훈령」을 반포했다. 이 훈령에서는 '성음악의 정의'부터 시작해 9개 장, 69개 항에 걸쳐서 매우 자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규범을 제시했다. 이 성음악 훈령도 역시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사장됐었다.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만든 '교회음악'이라는 교재에 부록으로 실렸지만, 공식 번역도 아니었고 일반에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2004년에 비로소 한국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산하에 성음악분과를 두기로 계획하고, 많은 교회 음악가들과 관계자들을 모아 준비모임을 하는 과정에서 이 훈령이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연구되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이 우리나라에서 연구되기까지 거의 40여 년이 걸렸으니, 로마와 한국과의 거리가 이렇게도 멀었던가? 4.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2009년) 한국 주교회의 성음악분과위원회 준비위원회에서는 2005년 6월 24일에 제1차 전국 성음악 봉사자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참석자들의 뜻을 모아 한국교회 성음악 지침 제정, 새로운 성가집 편찬, 교회음악 봉사자들을 위한 지속적 교육 계획 등을 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그 결과 국내의 많은 성음악 봉사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한국교회의 현 실정을 반영해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이 제작 반포됐다. 이 지침은 성격상 성음악 훈령의 내용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통음악을 공식적으로 수렴하고 또 소위 씨씨엠(CCM, 현대 그리스도교 음악)과 복음성가 형태의 곡들, 그리고 이들의 반주에 필수적인 대중음악 악기들도 일정 부분 제도권 안으로 감싸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지침서는 한국교회 사목자들과 성음악 봉사자들 모두의 필독서다. 그래서 여기서 세세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며, 오늘과 미래의 바람직한 성음악 발전을 위해 관계자들과 관심 있는 이들이 직접 읽어보기를 바랄 뿐이다. 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cpbc2014.03.25
![[사순 기획] 그리스도인의 먹을거리와 단식-②단식, 그 어려움과 영적 풍요로움](//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2004_1.0_titleImage_1.jpg)
[사순 기획] 그리스도인의 먹을거리와 단식-②단식, 그 어려움과 영적 풍요로움육체의 복종으로 얻어지는 내적 정화단식은진정한 참회가 선행돼야 하고, 정의와 사랑의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 사진은 인도 뭄바이에 있는 한 즉석식품(패스트푸드) 매장 앞에서 비스킷 한 개를 들고 굶주림에 떨고 있는 무의탁 소년의 모습이다. [뭄바이(인도)=CNS] 단식은 동서양 문화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실천해온 종교적 수행법이다. 음식과 음료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절제하거나 끊는 방법으로 실천했다. 그리스도교에서 단식의 근본 정신은 타 종교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신ㆍ구약 성경에 보면 단식의 의미와 실행방법이 많이 나온다. 이스라엘 율법에서도 속죄의 날엔 예외 없이 모두 단식을 했다.(레위 16,29-31 ; 민수 29,7) 사막의 은수자들도 단식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단식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겐 힘겹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단식' 시리즈 두 번째 편에서는 '단식, 그 어려움과 영적 풍요로움'에 대해 짚어본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일하는 강길태(타대오, 45)씨는 올 사순시기 들어 일주일에 두 차례씩 단식을 하고 있다. 최근 우연찮게 유화를 배울 기회가 생겨 그림을 그리는 시간인 수ㆍ목요일 점심을 금식을 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엔 배고픔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도 힘겨웠을 뿐 아니라 손도 떨리고 정신도 산만해지면서 어찌할 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꾹 참다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영적으로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뱃속에선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 그 소리를 옆사람이 들을까봐 조심하며 침묵 속에서 단식하다보니 마음자세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영적으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단식의 어려움은 육체적인 데에 있다. "사흘 굶으면 담 안 넘는 사람 없다"는 말마따나 식욕은 인간 실존을 무너뜨린다.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에 표현할 길이 없는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몸에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어려움이 닥치지만, 대체적으로 공복감과 함께 피로와 탈력감을 느끼고, 수면시간이 줄며, 설태가 생기고, 변비도 생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숙변도 나오고, 피부발진도 생기고, 후각도 예민해지고 감정기복도 심하다. 현기증이나 메스꺼움도 나타나고, 일시적으로 아픈 증상이 더 심해지는 명현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몸에 어려움이 올 땐 자꾸 몸을 움직여줘야 한다. 등산을 통해 땀을 흘리거나 스트레칭이나 요가, 에어로빅, 훌라후프 돌리기 등으로 몸을 자주 움직이면 단식의 효과는 두 배다. 두 번째로 웃음치료도 몸이 원상태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로 성경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인식을 통해 받는 감동도 단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물이나 죽염에 의존하는 단식이 어렵다면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이 그간 14차에 걸쳐 개최해온 효소단식 같은 방법도 아주 효과적이다. 이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면 단식은 많은 영적 선익을 안겨준다. 육체를 제어하고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과 더 큰 친교 관계를 갖도록 이끌어준다. 단식을 하지 않을 땐 몸에 에너지가 넘치기에 관심이 세상에 집중되는데 반해 단식을 하면 그 순간부터 에너지가 떨어지면서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머리도 맑아지고 성경을 읽으면 말씀이 마음속에 쏙쏙 들어온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정화가 되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서 12세기 사제 엘리야는 "육체는 단식과 경계(警戒) 없이 정화될 수 없고, 영혼은 자비와 진리 없이 정화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단식을 높이 평가했다. 성 예로니모도 단식은 다른 덕행들의 기초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일치된 전통에 따르면, 단식 실천은 회개와 내적 정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전가톨릭대 기초신학 교수 겸 정하상교육회관장인 김석태 신부는 "단식을 하면 육신은 힘들지만 영이 부활한다"며 "기도가 하느님과의 관계라면, 자선은 이웃과의 관계이고, 단식은 자기, 자기 몸과의 관계다"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퇴사자22013.02.26

국제국제도서전에 참가한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 부스 성황다양한 '가톨릭 마음의 양식' 눈길 끌어 "가톨릭교회에 출판사가 이렇게 여러 개 있는 줄은 몰랐어요." "신앙에 자양분이 되는 신심서적을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어 더 좋습니다."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 부스엔 가톨릭에서 발행하는 서적과 잡지, 영상물을 찾는 사람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영성ㆍ심리, 기도ㆍ묵상, 성경, 성인전, 문학, 아동 등 6개 분야로 책을 전시한 협의회 부스에는 도서전에 왔다가 우연히 가톨릭 부스를 발견해 들른 신자들이 많았다.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은 아동용 신앙서적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명희(미카엘라)씨는 "교회 책은 성물방에서 접한 것이 전부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어 놀랐다"면서 "국제도서전에서 가톨릭 도서를 만나니 반갑다"고 했다. 바오로딸에서 나온 「자긍심 있는 여자아이 키우는 법」과 「진흙을 조물조물」을 구입한 권도현(율리안나)씨는 "임신 8개월째인데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골랐다"며 "가톨릭계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이 나오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개신교 신자들도 가톨릭교회에서 나온 신학과 신앙서적에 관심을 보였다. 또 생활성서사에서 이현주 목사 책을 발간한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선물용으로 상담심리 책을 산 양봉식 목사는 "가톨릭에도 좋은 책이 많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19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이번 도서전에는 가톨릭출판사, 바오로딸, 분도출판사, 생활성서, 성바오로, 성서와함께 등 6개 가톨릭계 출판사가 '한국가톨릭출판사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공동 참가했다. 교계 출판사가 공동으로 부스를 꾸며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협의회는 부스 한쪽을 각 출판사가 제작한 DVD와 음반을 소개하는 자리로 꾸몄고, 성화 퍼즐 맞추기, 기도나무에 소원쓰기 등 체험행사공간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2일에는 홍성남(서울대교구 영성생활삼담소장) 신부를 초청, 독자와 만남 시간도 마련했다. 협의회 회장 김수영(분도출판사 사장) 신부는 "교계 출판사가 공동으로 한 개의 부스를 차려 참가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교계 서적을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협의회는 이번 도서전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을 다문화가정에 한국어 교재와 책을 기증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06.25
![[출판] 책꽂이](//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51_1.1_titleImage_1.jpg)
[출판] 책꽂이 주일ㆍ대축일 성경 묵상 다해 알베르 바누아 지음/오영민 옮김/나이테미디어/2만 원-----------------------------------------------전례주년 '다해'의 주일, 대축일 독서 해설집이다. 다해의 특징은 전례가 주로 루카복음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파스카 시기에는 요한복음이 중심이 된다. 또 독서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12,15장),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11,12장) 등을 통해 바오로 서간을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저자 알베르 바누아(프랑스 예수회) 추기경은 이처럼 다해가 지닌 특성을 정확히 간파하며 이에 적절한 말씀 묵상을 담았다.마르코 복음서 이야기로 읽기송창현 지음/대구가톨릭대학교출판부/1만 5000원-------------------------------------------- 어떻게 하면 복음서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해 복음서를 '이야기'로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마르코복음서를 해설한 책이다. 교황청 성서대학과 예루살렘 성서ㆍ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을 전공한 송창현(대구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복음서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성경을 쉽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한 "복음서를 읽을 땐 신앙과 교회공동체와 관련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신앙적 읽기와 학문적 읽기의 만남을 조언했다.아가페마르셀로 로시 지음/차동엽 옮김/오픈하우스/1만 2000원------------------------------------------------- 요한복음을 바탕으로 사랑의 참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저자 마르셀 로시(브라질) 신부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며 하느님 사랑을 찬미했다. 그는 사마리아의 여인, 라자로의 부활, 카나에서의 혼인 등을 통해 요한복음에 담긴 사랑의 의미와 모습을 묵상을 통해 알려준다. 또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랑의 기도도 실었다. 그는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라면서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 편지를 읽고 또 읽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고대수사본-선 있는 악보를 중심으로 최호영 지음/가톨릭대학교출판부/1만 5000원-------------------------------------------------- 그레고리오 성가의 고대수사본(Paleographia) 가운데 국내 학계에선 학문적 성과를 찾아보기 어려운 '선 있는 악보'에 관한 논문 모음집이다. 저자는 독일 뮌헨 국립 음대에서 그레고리오 성가 교수 자격을 취득한 최호영(가톨릭대 교수) 신부다. 최 신부는 가톨릭 전례음악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 연구에 천착해왔다. 이 책에선 그레고리오 성가의 연구 방법론, 기호학을 비롯해 고대수사본 베네벤토 34, 알비와 이리외, 그라츠 807, 몽펠리에 등을 다뤘다.식량의 제국 제니퍼 클랩 지음/정서진 옮김/이상북스/1만 6000원--------------------------------------------- 국제사회에서 '식량'을 둘러싼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가 지난해 초 "정보혁명 다음은 농업혁명"이라고 선언한 가운데 초국적 기업들은 세계 식량시장 확보를 위해 민첩히 움직이고 있다. 이 책은 초국적 기업과 국제무역, 금융시장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 식량경제를 서술하며 왜 지금 식량이 세계무대에서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됐는지를 파헤친다. 또 선진국의 식량원조와 농산물 무역의 모순을 고발하며 식량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적 식량운동을 소개한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1.15
![[예비신자에게 묻습니다] 37.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79_1.0_titleImage_1.jpg)
[예비신자에게 묻습니다] 37.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지난해 4월 미국 미시건주 디어본에 있는 이슬람사원에 모여든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유다교 종교지도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종교 간 화합을 지향으로 기도하고 있다.Q.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A. 16세기에 벌어진 이른바 '종교개혁'은 가톨릭에서 갈라진 교회인 개신교의 탄생을 불러왔습니다. 가톨릭에 대한 '항거자(Protestant)'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개신교회는 이후 수많은 분파가 끊임없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큰 교파만해도 500여 개, 혹은 3000여 개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지만, 정확한 파악은 어렵습니다. 2만여 개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입니다. 대표적 프로테스탄트 분파로는 장로교와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루터교, 구세군, 오순절교회 등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2010년 현재 194개 분파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의 중간 쯤으로 여겨지는 성공회도 개신교에 속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신자이자 의사인 알렌과 언더우드 목사 등이 황해도 송천에 교회를 짓고 의료사업과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하면서 전파됐습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와 크게 다릅니다.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함께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전통, 곧 성전(聖傳)을 신앙의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오직 성경만을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전에 근거를 두고 교의로 선포하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성모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은 "성전(聖傳)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계시헌장」 10항)고 고백한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가톨릭교회가 구약성경 가운데 46권을 받아들이는데 반해 프로테스탄트는 39권만을 인정한다는 점도 다릅니다. 또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교회의 연옥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도 차이점입니다. 전례 유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달리 프로테스탄트는 전례가 없기에 가톨릭교회에서 쓰는 전례주년이 없습니다. 교회가 1년 동안 전례적 성사를 거행하는 일정표인 전례주년은 시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부활을 기억하고 현재화하는 것인데, 프로테스탄트는 전례주년이 없기에 성사적 은총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개신교회에서 기독교(基督敎)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이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의 기독(基督)은 그리스도(Christos)의 중국어 음역입니다. 물론 현재의 중국어 발음은 '지두'에 가깝지만, 옛 발음은 '기도' 혹은 '기독'에 가까워 기독교라고 표현하게 됐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나 정교회, 개신교는 모두 기독교, 곧 그리스도교이기에 개신교만을 기독교라고 써서는 안 됩니다. 정확히 쓰려면, 프로테스탄트, 혹은 개신교라고 써야 합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퇴사자2201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