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잘 버는 의사’ 대신 ‘자선병원’을 꿈꾸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가난한 이들의 의사, 선우경식 요셉(2) 중학교 시절 부친과 함께 중학생 때 성당 다니다 영세 의대 재학 중 ‘부르심’ 느꼈지만 부모님 뜻에 따라 의대 졸업 미국 유학 갔다가 귀국 선우경식은 강론 때 자주 들었던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성경 구절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의사였다. 그는 1945년 평양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6·25전쟁 때 부모님을 따라 대구로 피란 왔다가 서울에 정착했다. 중학생 때 집에서 혼자 성당을 다니다 세례를 받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대 재학 중 ‘부르심’을 느끼고, 휴학한 후 가톨릭 신학대학에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신학교를 가더라도 대학을 마치고 가라”며 간곡하게 만류했다. 그는 아버지 뜻에 따라 1969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사제의 꿈은 접었다. 외아들이자 장남으로서 ‘의사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사제가 아니어도 의사로서 사회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성모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해군 의무단 장교로 병역의무를 마친 후 성모병원 내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그 과정에서 가난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보며, 의대를 졸업할 때 손을 들고 맹세한 “모든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의사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그를 힘들게 했다. 선우경식은 깊은 갈등 끝에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의료보험이 잘 갖춰진 미국으로 떠났다. 뉴욕 브루클린(Brooklyn)에 있는 ‘킹스 브룩 유다인 메디컬 센터(Kings brook Jewish Medical Center)’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3년 과정을 마치자, 병원에서는 그에게 일반 내과 의사로 근무해달라고 제의했다. 의사 생활에 갈등과 회의가 없던 그는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성취감도 만족도 잠시였다. 이번에는 새로운 갈등에 빠져들었다. 그는 액수가 큰 월급 수표를 받을 때마다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된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으로 돈만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통장에 잔고가 쌓일수록 돈 잘 버는 미국 의사가 되었다는 현실이 불편했다. 2년을 고민하던 선우경식은 이대로 미국에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 잘 버는 의사로 안주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심했다. 1980년 9월,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가톨릭대 의대 졸업식에서 부모님과 함께 조그만 의원이라도 의술로 돈을 벌지 않기로 마음 먹고 저소득층 위한 1차 의원 만들기로 김 추기경의 조언 병원 설립 취지 등 설명하자 추기경, 교회 울타리로 들어와 교계 병원 등 지원 받으라 이야기 하느님 뜻 따르는 의사 한국으로 돌아온 선우경식은 취직할 생각보다는 어떻게 의사 생활을 해야 갈등을 느끼지 않고 보람이 있을지에 대해 골몰했다. 그는 종일 자신의 방에서 책장 정리를 하거나 뒷마당에 나가 장독대의 옹기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며 자신의 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선우경식은 성소는 포기했지만, 하느님 뜻을 따르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신림10동에 있는 사랑의 집 주말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론에서 신부님이 언급한 마태오 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이 가슴 속으로 쿵 떨어졌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 순간 선우경식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큰 충격을 느꼈다. 이제까지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한 봉사만 생각했지, 자신을 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의사인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의 기도는 길었고, 어느 날 자신이 버려야 할 것은 의사라는 직업으로 벌 수 있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술로 돈을 벌지 않고, 온전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의료봉사자가 되는 것이 자신을 버리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선우경식 원장, 산부인과 이진우 선생 요셉의원의 신림동 시절, 진료하고 있는 선우경식 원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 그즈음, 사랑의 집은 환자들로 넘쳐났고,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6개 지역 활동가들이 매달 조합비를 내는 사람들로 조합을 구성해서 조그만 의원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갖고 왔다. 이 제안은 선우경식이 생각하는 자선병원은 아니었지만, 자선병원을 고집하면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부분은 훗날 고민하기로 하고 그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1차 진료 병원인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구입해야 할 의료 기기도 많고, 여러 분야의 의사도 있어야 했다. 천만 단위를 넘어 억 단위가 필요했지만, 조합원이 될 주민들이나 활동가들이 뭉칫돈을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선우경식은 암담했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환자들의 꿈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선우경식은 먼저 사랑의 집을 담당하는 노엘 매키 신부와 크리스토퍼 신부를 만났다. 그가 1차 진료 병원을 만들기 위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모금을 하려고 한다고 말하자 매키 신부가 조언을 해줬다. “선우 선생님,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쪽에 연락해보세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셔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다 얼마 후 선우경식은 어렵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그가 조합을 만들어 병원을 만들려고 한다는 설명을 들은 추기경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셉 형제님, 교회가 서둘러서 그런 곳에 가서 의료복지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못 하는 현실에서 평신도가 추진한다고 하니 고맙지만, 그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경청하던 선우경식은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예, 추기경님.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난감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너무나 많은 분이 진료와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도 병원 설립에 동참하게 되었고, 추기경님의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뵌 겁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우경식을 바라봤다. 힘든 일에 뛰어든다는 것에 걱정이 앞섰지만, 모르는 체할 수도 없었다. “요셉 형제님,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추기경님, 혹시 성모병원 같은 가톨릭 병원에서 좀 오래된 의료기기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선우경식은 의료 장비라도 확보하면 작고 허름한 단독 건물을 얻어 개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은 추기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요셉 형제님. 제 생각에는 그런 도움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교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걸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제 생각에는 지금 말씀하시는 병원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부설기관으로 들어오면, 서울의 성모병원을 비롯해 대구의 파티마병원 같은 교계 병원의 지원을 받을 명분도 생기고, 향후 모금 활동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우경식은 김수환 추기경의 조언을 들으며 돈보다 힘이 센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충렬 (실베스테르) 작가 cpbc2025.11.11

구원자 예수의 인성을 드러내는 칭호 ‘사람의 아들’[저는 믿나이다] (18) ‘사람의 아들’ 칭호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을 드러내실 때 밝히신 칭호로 주로 자신의 수난과 죽음, 재림, 죄 사함의 권능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다. 초대 교회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주님’과 연결해 메시아의 인성을 강조하는 ‘사람의 아들’ 칭호를 사용하였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 십자가의 길. 성경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드러내는 칭호 가운데 ‘주님’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신 칭호입니다. 신약 성경 안에 ‘사람의 아들’이란 말은 오직 예수님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하면서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라고 한 말입니다. 스테파노가 순교 순간 본 이 환시는 사실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곧 유다인 최고회의에서 심문을 받을 때 예고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 이런 의미에서 스테파노의 고백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실현됐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칭호는 ‘그리스도’(메시아), ‘주님’, ‘하느님의 아들’ 이 세 가지로 집중됩니다. 바오로 사도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5-16)라며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사도 9,20) 이처럼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은 처음부터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명하셨고, 부활하신 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여주신다고 선포합니다. 교회가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다”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마태 16,17) 아울러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 신원을 드러내실 때 말씀하신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에도 주목했습니다.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실 때, 앞으로 겪게 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실 때, 또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할 때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뜻에 따라 ‘사람의 아들’의 수난과 죽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아들의 죽음은 ‘부활’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반드시 수난을 겪고 죽어야만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에 속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사람의 아들’이 큰 환난이 일어나고 우주의 표징들이 나타난 후 큰 권능을 지니고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하셨죠.(마르 13,26) 교회는 이 말씀을 근거로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심판자뿐 아니라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오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밝히십니다. 이는 당신이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라는 이 말씀을 근거로 그 권한을 받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드러내는 칭호입니다. ‘사람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람들을 믿음과 따름의 길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겪고 아버지에 의해 부활하시어 영광스럽게 되시는 구체적인 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도들이 이끈 초대 교회는 온전히 그리스도 신앙으로 ‘사람의 아들’을 고백하고 선포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 안에서 지상의 삶을 산 인간, 나자렛 예수였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통해 일생을 사신 분, 부활을 통해 역사상 절대 혼동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삶을 산 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지배자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해줄 유다인들의 메시아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자로서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인간 본성을 취하시어 강생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시어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부활하시어 우리 부활의 근원이 되시고, 하늘에 올라 아버지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시어 창조 이전부터 누리던 영광을 다시 누리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을 이 영광에 참여하게 해주십니다. 리길재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5.03.11

척박한 환경에서도 일손 도우며 신앙 키워가는 교우촌 아이들[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31. 일손 돕는 아이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아기를 업은 소년과 종이 우산을 든 아이’, 랜턴 슬라이드, 1911년 5월 황해도 해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들음’과 ‘봄’은 신앙 성장시키는 자양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사랑’이라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완전한 사랑에 대한 신앙이며, 그 사랑의 결정적인 힘, 곧 세상을 변모시키며 시간을 비추어 주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신앙입니다.”(「신앙의 빛」 15항)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믿게 됨으로써 예수님 안에 계시된 하느님 사랑 안에서 신앙을 성숙시켜 간다. 요한 복음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우리 삶 안에 맞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하며, 사랑 안에서 그분과 결합되어 그분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 걸을 때 비로소 그분의 존재를 믿게 된다고 가르친다.(요한 2,11; 6,47; 12,44 참조)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 사랑 안에서 믿음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가르친다.(로마 10,17) 조부모와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성경 말씀을 통해 신앙의 순종을 전수한다. 또 믿음은 ‘봄’으로써 성장한다. 어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봄으로써 자녀들은 신앙에 젖어든다. 따라서 ‘들음’과 ‘봄’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산속 깊은 골짜기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신앙을 지켜온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 환경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교우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특히 황량한 산중 고독 속에 조부모·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대견해했다. “그들은 고통과 궁핍 속에 자랐고 일용할 양식을 척박한 대지에서 힘겹게 얻었다. (⋯)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 191~193쪽) 이번 호에는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가족을 도우며 신앙을 키워가던 교우촌 아이들의 모습, 그중에 일손 돕는 아이들 모습을 살펴본다.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담뱃대에 담뱃잎을 담고 있는 프란치스코와 체칠리아’, 랜턴 슬라이드,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능숙하게 담뱃잎 재워주는 두 어린아이 1911년 5월 16일 황해도 청계동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카메라 셔터가 고장 날 정도로 신나게 촬영했다. 그는 이날 점심 식사를 막 마쳤을 때 두 어린아이가 자신과 일행들에게 담뱃대에 담뱃잎을 재워주는 걸 촬영했다.<사진 1> “우리의 멋들어진 여름 식당은 해가 어디 걸려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침은 주로 제의실 입구에서 함께 먹고, 점심은 성당문 옆 마루에서, 저녁은 아예 밖으로 나가서 먹는다. 최고의 명당자리는 역시 야외에 있다. 그곳에는 봄날의 훈풍이 불고,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활기 넘치는 아이들과 진중한 남자들끼리 넉넉히 함께할 수 있다. 그들은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우리의 식사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한다. 사제가 기꺼이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에 기쁘고, 종일토록 책임과 압박에 시달리다가 한때나마 사제 곁에 머무는 것을 은총으로 여기기에 기쁜 것이다. 점심 식사가 끝났다. 빌렘 신부 복사의 아들 프란치스코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마치 평생 담배를 피운 사람처럼 능숙하게 우리 담뱃대에 담배를 담아 주었다. 그때 불청객이 나타났다. 사리원에서 온 순사들인데, 하나는 일본인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 통역이었다. 빌렘 신부를 만나러 왔다지만 우리 때문에 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우리 신원을 확인하려 들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 421~422쪽) 능숙하게 담배를 재우는 두 아이는 ‘프란치스코와 체칠리아’다. 사내는 빌렘 신부의 복사 안봉근(요한 세례자)의 다섯 살배기 ‘창익’이다. 세례명이 체칠리아인 여아는 누구의 자녀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안봉근 일가의 친족일 것이다. 베버 총아빠스가 놀라워할 만큼 아이들이 능숙하게 담뱃잎을 재우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담배 시중을 든 모양이다. 오늘날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당 마당에서 사제들과 선교사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담배를 권해드리는 어린아이들이 천진하기만 하다. 이 아이들이 집안에서 얼마나 가정교육과 신앙교육을 잘 배웠는지 유추할 수 있다. 아마 담뱃잎을 재워주는 것이 아이들에겐 성직자·수도자들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벌멍덕을 든 아이들과 벌통’,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집안 일 돕는 어린아이들의 봉사는 겸손 베버 총아빠스는 황해도 청계동 한 가정 뒷마당에서 벌멍덕을 든 아이들을 촬영했다.<사진 2> 양봉은 수도자들의 주요 노동 중 하나여서 자연히 관심이 갔을 것이다. 베버 총아빠스와 동행하며 한국의 풍물을 촬영한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는 1918년 서양 양봉 기술을 한국인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양봉요지」를 저술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교재다. 벌멍덕은 주로 우리나라 토종 꿀벌을 키울 때 쓰는 도구다. 분봉해서 벌통을 옮길 때 멍덕 안에 꿀을 발라 벌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들어가 자리 잡도록 하는 데 쓰인다. 지푸라기를 꼬아 고깔 모양으로 만든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아이들은 담장 앞 짚 주저리를 씌운 나무 벌통 곁에 서 있다. 오랫동안 양봉을 해본 탓인지 벌통 옆에서도 겁을 내지 않는다. 짚 주저리 속 벌통 위에는 벌이 꿀을 저장하고 새끼를 칠 수 있도록 뚜껑을 덮어뒀다. 벌멍덕을 손에 쥔 아이가 아마도 책임지고 벌을 키우는 모양이다. 집안 일을 돕는 어린아이들의 봉사는 겸손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가장 단순한 일을 맡기지만 아이들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의 정신과 의지, 정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교감한다. 베버 총아빠스 일행은 청계동을 방문하기에 앞서 1911년 5월 11일 황해도 해주의 명망 있고 유복한 한 교우 집에서 묵었다. 집 주인은 집 일부를 경당으로 꾸몄고, 사제관으로 방 2개를 증축해 놓았다. 베버 총아빠스는 이곳에서 ‘아기를 업고 있는 아이와 종이 우산을 들고 있는 아이’를 촬영했다.<사진 3> 아마 신심 깊은 이 집 주인의 자녀일 것이다. 맏이로 보이는 앳된 소년이 막내를 들춰 업고 우산을 든 동생을 돌보고 있다. 베버 총아빠스가 든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는 둘째와 달리 형은 무심하다. 어쩌면 베버 총아빠스는 이 사진으로 형제 간 신뢰를 표현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신뢰는 찰나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충실을 기반으로 한다. ‘큰 형이 우리를 돌보고 있구나’ 하는 절대적 확신이 있어야만 그 자리가 평안해진다. 신뢰는 형제애의 품위를 드높인다. <사진 4> 작가 미상, ‘장작 패는 소년’, 유리건판, 1920년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늠름하고 당당하게 장작을 패는 소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장작 패는 소년’ 사진이 보관돼 있다.<사진 4> 누가 어디서 촬영했는지는 기록이 없고, 1920년대 사진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사진 속 도끼를 든 소년은 늠름하다. 눈매도 나이에 비해 예사롭지 않다. 소년 뒤로 수북이 쌓인 생소나무를 보아 아마도 겨울나기 땔감을 준비하는 듯하다. 한 가족의 따뜻한 겨울나기가 이 소년의 도끼질에 달려 있다. 소년의 얼굴에 알듯 모를 듯 행복감과 자신감이 피어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도끼를 든 당당함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온전히 드러낸다. 당당함은 자신이 충만할 때만 드러나는 기품이다. 대물림으로 켜켜이 쌓인 신앙의 확고함은 세상 안에서 당당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 부모와 함께 실천하며 성숙한 아이들의 신앙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생명을 불어넣는 활력이다. 그래서 교회는 아이들을 ‘보화’라며 소중히 여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6.04
![[송향숙 평화칼럼] 되찾은 그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27/RAj1748327700638.jpg)
[송향숙 평화칼럼] 되찾은 그림송향숙 그레고리아(생활성서사 교재연구팀 팀장) 지난 5월 22일은 “하늘, 땅, 물, 공기, 사람, 벌레는 모두 한 생명”이라며 생명 운동을 펼치신 무위당 장일순(요한 세례자) 선생님이 주님 품에 안기신지 31주년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선종하시기 4년 전인 1990년에 나는 그분을 뵈었다. 월간 「생활성서」 편집장이라는 다소 무거워진 어깨를 펴지 못했던 내게 선생님은 자신이 ‘좁쌀 한 알[一粟子]’이라며 융숭히 맞아 섬기셨다. 손수 지으셨다는 원주 봉산동 토담집에서 보낸 선생님과의 하루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치지 않고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거의 얼이 나갈 지경이었다. 동서고금 사상들이 종횡무진 활보하는 그 이야기들을 나는 다 알아듣지 못했다. 특히 동학사상 관련 이야기가 그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분 말씀을 내 작은 그릇으론 다 담지 못해 흘러넘쳤다. 선생님은 그날 아름다운 난과 뜻깊은 말씀이 적힌 시화 두 점을 직접 그려주셨다. 하나는 생활성서사 수도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이름을 적은,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공동체에는 잎이 무성하고 꽃이 가득한 난에 ‘종풍불석향(從風不惜香, 바람에 따라 보내는 향기를 아끼지 않는다)’이라고 써주셨다. 어느 바람에는 향기를 많이 주고 어느 바람에는 향기를 적게 주는 게 아니라 바람마다 그것이 원하는 향기를 아낌없이 다 내준다는 의미로 나는 알아들었다.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나 봉사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해 주셨다. 나에게는 호기심으로 수줍게 미소 짓는 ‘얼굴 난’에 ‘만물 막비시천주(萬物 莫非侍天主,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써주셨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을 모시는 귀한 존재다. 사람·동물·식물은 물론이고 우리 눈에 죽은 듯 보이는 무생물까지 우주 만물이 모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그러니 모든 존재를 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모든 것에서 창조주 하느님 모습을 뵙고 섬겨야 한다.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에 주신 시화는 선생님의 난 치시는 모습과 함께 그달 「생활성서」 기사의 삽화로 실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시화는 거처를 이리저리 옮기는 동안 잃어버렸다. 살아오면서 잃은 것들이 더러 있지만, 후회를 싫어하는 나는 대개 그것들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잃고 나서 오랫동안 가슴 아리고 애통했던 기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 무렵, 선친께서 선물로 주신 내 생애 첫 노란 도장이었다. 도장 찍을 일이 없었음에도 너무 좋아 늘 지니고 다녔는데, 어느 날 그것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또 하나는 바로 장일순 선생님께서 그려주신 시화였다. 몇 년 전, 은퇴해 살 집 하나 마련해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책 사이에서 선생님이 그려주신 그 시화를 발견했다. 잃어버렸다고 애통해했던 그 귀한 보물을 되찾던 날 얼마나 놀랍고 행복했던지. 되찾은 아들·양·은전⋯ 되찾아 기쁜 성경 속 모든 비유가 떠올랐다. 그렇다. ‘되찾은 그림’이었다! 그림에는 세월처럼 얼룩이 묻어 있었다. 손님이 오면 나는 벽에 걸린 이 시화가 ‘내 보물 1호’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날마다 그걸 보면서 ‘만물 막비시천주’의 삶을 다짐한다. 이 세상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모두를 소중히 모시자. 미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마음 쓰긴 내게 너무 벅찬 과제라, 사람만이라도 소중히 섬겨보자 하지만, 순간순간 잊고 만다. 주님 품에 가기 전 이 귀한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발끝까지 가도록 날마다 이 시화를 보며 기도한다. cpbc2025.05.28

신앙을 고민할 때가 바로 기회다[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80) 주님의 방문 식사 중 갑자기 대화가 멈출 때 프랑스어 표현으로 ‘천사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천사가 지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가 ‘지나간’ 일은 매우 큰일을 의미했다. 천사의 방문으로 인생의 큰 격변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천사의 방문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일어난 일만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주님의 천사는 지금도 우리 삶을 방문하시고 하느님의 계획을 알리시며 우리 삶을 새로운 길로 안내해주고 계신다. 모든 방문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건네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주님의 천사가 방문하였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을 알아들었고, 그에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사의 방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천사가 직접 눈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한 형제님께서 신앙의 어려움을 토로하신 적이 있다.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해서, 신앙을 계속 갖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셨다. 그래서 답을 드렸다. “신앙에 대한 고민으로 많이 괴로우시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위기가 기회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만약 그런 위기가 없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형제님이 삶과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셨으니, 이제 진정으로 신앙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고민거리가 없다면 우리 삶은 그 자리에서 맴돌면서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삶에 위기가 닥칠 때,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지 고민할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천사의 방문이 이루어지는 때다. 천사는 일상의 사건이나 만남, 특별히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게 하는 일들을 통해 방문한다. 우리 삶에는 그러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그동안 평온했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과의 만남, 놀라움과 의구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 성경은 바로 그때가 천사가 우리 삶을 방문하는 때이며, 하느님 계획이 드러나는 때라고 말한다. 마리아와 요셉의 삶에 큰 위기가 닥쳤다. 천사의 방문을 받고 놀라움과 의구심에 휩싸였다. 그러나 두 분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발견하셨다. 비록 당장은 답이 보이지 않기에, 불안정함과 불확실함이 지속되었지만(만약 답이 명확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의 계획에 자신을 맡겨드릴 수밖에 없었다. 신앙이란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겨드리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 아닐까. 이는 스스로 포기하는 ‘내려놓는 것’과는 다르다. 맡겨드린다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신 분께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4) 천사의 방문은 일상 한가운데, 특별히 나를 돌아보고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경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무심결에 지나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대화들, 이 모두가 주님의 천사께서 우리 삶을 방문하시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 방문을 알아보고 응답할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를 청하자. 한민택 신부cpbc2024.12.24

말씀으로 만든 구유에 아기 예수 오셨네서울 광장동본당, 성경 필사필사 노트 500권으로구유와 성탄 트리 제작 성경 필사 노트로 제작한 구유 앞에서 광장동본당 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서울 광장동본당(주임 장혁준 신부) 신자들이 만든 특별한 성탄 트리와 구유가 최근 제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권의 성경 필사 노트로 제작한, 말 그대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아기 예수님의 구유와 대형 트리가 탄생한 것이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모든 신자의 마음이 하나 된 결과다. 성탄 트리와 구유는 500여 권에 이르는 성경 필사 노트로 만들어졌다. 트리에만 300권가량의 노트가 탑처럼 높게 쌓였다. 본당 신자들이 열심히 쓴 말씀과 주님을 향한 마음이 모여 광장동본당만의 말씀 트리와 구유가 완성된 것이다. 구유에는 아기 예수님을 중심으로 노트가 가지런히 둘러싸였고, 트리에는 커다란 별 아래 노트들이 수직으로 세워졌다. 말씀이 트리와 구유가 되어 불을 밝힌 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자들의 신심과 노력으로 아기 예수님을 모시게 됐다는 것에 어느 때보다 성탄의 기쁨이 넘쳐흘렀다. 성경 필사 노트와 나무로 제작한 성탄 트리. 성탄 트리를 떠받치는 중심 기둥과 장식품, 구유를 지탱하는 부분 등 모든 재료는 나무다.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떠올리며 반짝이는 금속보다 소박한 나무를 쓴 것이다. 구유는 하느님께서 7일 동안 천지 창조를 하신 의미를 담아, 맨 아래 7단으로 쌓기 시작해 꼭대기는 1단으로 필사 노트 구유를 구성했다. 본당이 성경 필사 노트로 성탄 트리와 구유를 제작하게 된 것은 지난해 전 신자 성경 읽기 운동에서 비롯됐다. 많은 신자가 성경을 완독했고, 올해는 신약 성경 필사에 모두가 함께하기로 했는데, 그러던 중 사목회에서 필사 노트로 트리와 구유를 제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본당 김준희(마틸다) 사목회장은 “다른 교구의 본당에서 성경 필사 노트로 성탄 트리와 구유를 제작한 것을 보고, 우리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신자들의 성경 필사도 꾸준히 진행되던 터라 어려울 것은 없었다. 트리와 구유 제작 설계에만 한 달 반이 걸렸다. 구유는 노트를 가로로 잘 쌓아올리면 됐지만, 트리는 커다란 틀을 중심으로 노트를 세로로 쌓아야 했기에 균형과 하중도 고려해야 했다. 말씀으로 쌓아올린 완벽한 트리를 만들기 위해 건축설계 일을 하는 이양무(프란치스코) 교육분과장이 도맡아 작업에 도움을 줬다. 성경 필사 노트로 만든 성탄 구유. 김준희 사목회장은 “모든 신자가 손과 마음으로 쓴 성경 필사 노트로 성탄 트리와 구유를 꾸몄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양무 분과장은 “코로나 이후 성당에서 멀어진 신자들을 주님께 오도록 하고, 또 앞으로 새 성전 건립을 앞두고 모두가 마음을 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일인데, 신자들이 기뻐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본당은 내년에 구약 성경 필사에 돌입한다. 내년 성탄 때엔 구약 필사 노트가 광장동본당의 두 번째 트리와 구유가 될 예정이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12.18

2026년 핵심 키워드는 ‘소통’과 ‘청년과 함께하는 미래’[신년대담] 옥현진 대주교(광주대교구장)202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1년 앞두고 한국 교회 전체가 본격적으로 2027 서울 WYD를 향해 매진해야 할 시기다. 반면 우리 사회는 저출산을 비롯한 인구통계학적 위기와 사회 전반에 확산한 불신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러 상황 속에 광주대교구는 올해 ‘소통하는 공동체’, ‘청년과 함께하는 미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생태 환경을 살리는 교회’를 지향하며 시노달리타스를 정착시키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를 만나 신앙인과 시민에게 전하는 위로와 당부, 그리고 교회가 먼저 신뢰와 연대의 길을 향해 걸어야 하는 당위성에 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리=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본지와의 대담에서 질문에 답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2025년 교회는 희년을 지냈지만, 우리 사회는 다사다난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정리해 보신다면요. 나라 안팎으로 큰 일들이 많았습니다. 새 대통령을 맞이했고 우리는 새 교황님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에 역할을 해줘야 할 분들이 못하고 있을 때, 시민들이 길에서 외침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를 응원하고 기도하면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보내야 할까요. 희년의 삶은 성경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묶인 것을 풀어주고 새 출발을 하는 때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느님 안에서 화해하고 새롭게 주님 은총을 받는 해죠. 마음속에 미운 사람이든 마음의 짐이든 주님께 맡겨드리고 나는 주님 뜻대로 용서하고 내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새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일주교교류모임에 함께하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그 장소에 조선인들을 위한 기념탑이 있습니다. 2만여 명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탑인데, 그 앞에서 저희 주교단이 기도하고 노래도 불러드렸습니다.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시다가 여기서 희생당하셨을까 생각하면서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원폭 투하 이후 수많은 조선인 희생자들, 부상자들은 일본에서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함께 생각하면서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바닷속 탄광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노동자들도 추모하셨습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의 조세이(長生, 장생)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민간단체 한 곳이 애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자원봉사하는 잠수사들이 유해 발굴을 돕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고 해서 우리 한국 주교단이 이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선순환이 한일 외교 무대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먼저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 미사 강론 중에 히로시마교구 교구장 주교님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뭉클했습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통해 주교님들 안에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음을 느꼈습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5월 7일 광주 살레시오여중·고에서 학생들과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올해 교구장 사목서한 주제로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번 사목서한에는 제가 교구장이 되기 전부터 ‘하느님 백성의 대화’ 모임을 통해 식별한 네 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청소년들이 찾아올 수 있는 교회 △생태환경을 살리는 교회 △모든 계층과 소통하는 교회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소통’과 ‘세계청년대회 준비를 위한 환대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는 마음으로 각자가 먼저 실천하자는 의미입니다. 사목서한에서 ‘소통하는 공동체’와 ‘청년과 함께하는 미래’를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때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다른 문화권 젊은이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올 것입니다.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그 중심엔 예수님이 계신 거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이 모시고 온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세계청년대회를 잘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11월 8일 교구청 성당에서 봉헌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광주대교구대회 발대미사'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십자가 조각을 전달받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9월 13일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와 함께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는 어떤 지향으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교구대회를 준비하고 계신지요. 우리 교구를 방문하는 청년들에게 우리의 어떤 특별한 모습을 전할까 고민했습니다. 그 답은 민주주의, 바로 ‘K-민주주의’입니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는지 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같이 5·18 동영상을 보며 나눔의 시간을 가질 것이고, 5·18 묘원을 참배하는 기회도 마련할 것입니다. 또 광주대교구 담양 묘원에는 이태석 신부님이 잠들어 계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 ‘부활’을 시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계 젊은이들과 선교 정신을 함께 함양하고자 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결국 선교 아니겠습니까? 교구대회가 복음을 전하는 정신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땐 레오 14세 교황도 방한하십니다. 교황 방한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요. 지구촌 모든 사람은 평화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를 향한 염원이 모인다면 틀림없이 평화의 노선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이 오신다면 평화를 향한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가장 우려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커졌습니다. 예전엔 판사들이 판결을 내리면 ‘그 죄에 맞는 판결을 내렸겠지’라고 믿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이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회 구성원들 서로 간의 불신, 특정 직분에 대한 불신들이 동시에 커지는 것 같아 염려됩니다.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해주신다면요. 사필귀정(事必歸正), 올바름으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더디 가죠. 하지만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만 간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주인 의식을 지니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은 힘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각자가 주인 의식을 갖고 힘들지만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할 바를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집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위험한 일에 노출된 노동자,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위기까지. 오늘날 여러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구체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그 다음에는 성실하게 하나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저는 하바쿡서 2장 4절을 좋아합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쉽게 뭔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기후 문제도 그렇고 인구 정책도 그렇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지속해서 청년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를 연구하고 토론해 나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교회 신자들과 정치·사회인, 경제인들은 각자 역할을 다한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성소의 뜻을 가진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무거운 돌을 들어서 딱 한 번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평생 그 무거운 돌을 들고 있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쉬운 것을 좋아해요.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잊힙니다. 반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주로 힘들었던 시간입니다. 성소를 지닌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들에게 초심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사제가 막 됐을 때 신자들에게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커피는 사랑처럼 쓰고 마귀처럼 새카맣고 지옥처럼 뜨겁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탕을 넣어 달게 하고 크림을 넣어 흐리게 하고 후후 불어 식혀 마신다.’ 저는 사제가 됐을 때 그리스도의 향기를 간직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 마음 그대로 사제로 서품을 받으면서 제대 앞에서 부복(俯伏)했을 때의 그 마음을 지켜가는 거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구 전체를 위해 사목하시다 보면 다양한 문제도 마주하십니다. 그때마다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요. 하느님께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문제와 사건을 직면했을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왕좌왕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새해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이웃에게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인사하면서 작은 평화, 내 마음의 평화를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장현민2026.01.06

대장정 교회 서적들 잇달아 출간길게는 40여 년, 많게는 70여 권의 교회 서적을 출간하는 대장정이 한정된 전문가와 재원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원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평신도들이 읽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하느님 말씀과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걸어가는 이들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눈여겨 살펴보자. 잘못된 예배란 무엇인가 신학대전 40 종교와 경신(Ⅱ) / 토마스 아퀴나스 / 윤주현 신부 옮김 / 한국성토마스연구소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40권 ‘종교와 경신(Ⅱ)’가 출간됐다. 「신학대전」의 제1부는 만물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발원 과정이고, 제2부는 만물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귀환 여정이며, 제3부는 그 귀환의 길 또는 수단이 되어주신 구세주의 위업을 다루고 있다. 40권 ‘종교와 경신(Ⅱ)’는 「신학대전」 제2부 제2편 제92문~제100문을 통해 잘못된 예배의 다양한 종류를 제시한다. 헌신적인 신심의 정신이 결여된 외적 예배 행위, 거짓 신들에게 예배드리는 우상숭배, 마귀와 마술적인 힘에 대해 종교적 신앙과 신뢰심 같은 것을 갖는 미신과 마술 행위 등이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기 위한 예배의 본성에 어긋나는 이유를 분석한다. “오직 그분만이 자신의 영원함 속에서 미래의 것을 마치 현재처럼 보신다. 이사야서 41장 [2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신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다가올 일들을 알려 보아라.’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 감히 그와 같은 미래의 일을 하느님의 계시 이외에 여하한 방식으로 미리 알거나 예언한다면, 그 자체로 분명하게 하느님을 침해하는 것이다.”(73쪽) 「신학대전」 라틴어-우리말 대역판은 고 정의채 몬시뇰에 의해 지난 1985년 첫 권이 발간된 이래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인 2031년까지 전체 3부 60권(보충부까지 포함하면 72권) 완간을 목표로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16권까지는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펴냈고, 이후 한국성토마스연구소(소장 이재룡 신부)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간행을 이어가고 있다. 연초 나온 39권 ‘종교와 경신’에 이어 40권 ‘종교와 경신(Ⅱ)’는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번역했다. 탈출기의 신학적 메시지 탈출기·레위기 / 바바라 그린 수녀 등 / 김영선 수녀 / 성서와함께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제5권 「탈출기·레위기」가 출간됐다. 이스라엘 백성 또는 ‘하느님 백성’의 시작을 알리는 성경인 탈출기의 주해를 쓴 바바라 그린(도미니코수녀회) 수녀는 탈출 사건의 역사성을 밝히는 일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탈출기 자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신학적·영성적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데 주력했다. 또 탈출기 서사에 활용된 동기들의 문학적 기능과 의미를 설명해 탈출기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혀 전체적인 그림을 이루는지 제시한다. “탈출기는 너무나 심오하고 광대하여 더는 과장할 수가 없다. 얀 아스만이 주장하듯이, 탈출기는 ‘끝없이 이야기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변화와 변형을 거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를 변화시키고 형성한 이야기''이다.”(115쪽) 레위기 주해를 쓴 토마스 히케는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레위기의 전체 주제가 거룩하신 하느님을 모신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 주해에서는 레위기의 본문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본문의 세부사항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신학적·사회적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레위기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지도를 제공한다. “‘레위기(Leviticus)’라는 명칭은 레위(Levi) 지파인 이스라엘의 사제들을 가리킨다. 레위기는 사제들이 성소에서 수행하는 제의와 종교의식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또한 사제들이 이스라엘 백성, 곧 일반 백성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들도 풍부하게 제시한다.”(121쪽) ‘제롬(Jerome)’은 성경을 당시 서민들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놓은 예로니모(Hieronymus) 성인의 영어식 이름이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는 1968년 전 세계 가톨릭 학자들이 모여 만든 「제롬 성경 주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의 전면 개정판(2022)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2027년까지 총 33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영성 신학의 걸작 담화집(제1-13담화) / 요한 카시아누스 / 진 토마스 신부 역주, 허성석 신부 해제 / 분도출판사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시리즈 12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제1-13담화)」이 출간됐다. 카시아누스는 380년경 베들레헴에서 수도승 생활을 시작한 뒤 385년경 이집트로 가서 2년간 전역을 여행하고, 이후 10년을 더 머물렀다. 이때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를 만나 그의 제자이자 동료가 되었다. 카시아누스 여정의 종착점은 갈리아(오늘날 프랑스)로, 이곳에서 「규정집」과 「담화집」을 저술하며 동방 수도승 생활과 영성을 서방에 전한다. 「담화집」은 역사상 처음으로 저술된 영성 신학의 걸작으로, 중세 서방 수도승들의 영적 양식이자 필독서였다. 카시아누스는 24편으로 구성된 담화 속에서 15명의 압바들과 대화를 나누며 더 진보한 영성생활에 대해 논한다. 「규정집」이 주로 잘못의 개선과 관련된 ‘외적 인간의 양성’을 주제로 삼는다면, 「담화집」은 완덕을 위해 노력하는 ‘내적 인간의 양성’에 초점을 두고 분별·마음의 순결·세 가지 포기·끊임없는 기도를 다루고 있다. “베네딕도가 서방 수도승 생활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면 카시아누스는 수도승 생활의 내적 삶과 신비적 갈망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동시에 이집트에 대한 카시아누스의 매우 탁월한 해석은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그것은 곧 사막 영성을 정의하게 되었다.”(Desert Christians, 373) 한국교부학연구회(회장 장인산 신부)가 국가 지원을 받아 2018년부터 분도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시리즈는 대중판 교부 문헌 총서다. 198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기존 ‘교부 문헌 총서’의 원전 번역을 꾸준히 이어가면서도 신자들의 삶과 영성에 꼭 필요한 짧고 감동적인 교부 문헌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번에 ▲13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제14-24담화) ▲14 팔라디우스의 라우수스에게 바친 수도승 이야기 외 ▲15 오리게네스의 켈수스 반박(제1-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8.14

교황, 공산주의자 아니냐는 의혹에 “성경을 이야기할 뿐”최근 아르헨티나 국영통신사와 인터뷰, 사회 회칙에 언급한 내용은 구약에 근거한 것이라 설명 아르헨티나 언론인 베르나르다 로렌테와 인터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본주의의 탐욕을 질타하며 노동자 편을 드는 자신에게 일부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데 대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교황은 최근 아르헨티나 국영통신사 텔람(Tlam)과의 인터뷰 중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셀프 사상 검증을 했다. 물론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뒤 “교황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웃음) 복음을 읽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말할 뿐”이라고 말했다. “제가 사회 회칙에 쓴 내용을 언급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황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히브리 율법은 과부, 고아, 이방인을 돌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이들 세 부류의 형편을 잘 보살피면 모든 게 잘 돌아갈 겁니다.” 신앙은 정치적 이념 아니다 이런 화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교황이 즉위 첫해인 2013년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했을 때 서방의 일부 경제학자와 보수 언론은 “이분 혹시 마르크스주의자 아냐?”라고 수군거렸다. 미국의 한 보수 논객은 새 교황이 “빨갱이 사상(pure Marxism)을 늘어놓고 있군” 하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혹자는 ‘정치를 좋아하는 교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소외를 심화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53항)라는 비탄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10년 전 미국 마이애미 헤럴드에 실린 만평. “누가 당신에게 그런 사상을 심어줬소? 교황은 빙그레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교황의 진보적 개혁적 메시지 교황의 메시지에 진보적, 개혁적 단어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해방신학의 기조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대목도 있다. 한 예로 교황은 ‘밖으로 나가는 교회’를 강조한다. 이는 “교회는 밖에서 활동하기 위해 건조된 배이기에 항구를 떠나 대양에서 파도와 싸우며 나가야 한다”는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1992년 환속)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Popolo’(사람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민중의 개념에 가까울 때가 더러 있다. 베르골료(교황의 옛 이름)의 신학적 사상을 살찌운 토양이 아르헨티나라는 점을 상기하면 교황의 언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1964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군사 쿠데타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 정권들은 가혹한 독재 정치로 국민을 탄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적 착취가 심해지면서 국민은 더 가난해졌다.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만 하더라도 군부는 1976년 정권을 탈취한 후 악명 높은 ‘더러운 전쟁’을 벌이며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 교황은 당시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맡고 있었다. 민중이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고, 또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생겨난 신학적 흐름이 해방신학이다. 해방신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마르크스주의의 분석 틀로 사회 문제를 바라봤다는 혹평부터 민중에게 구원의 희망을 안겨준 진정한 민중신학이라는 평가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교황이 해방신학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은 없다. 교황은 “신앙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운동이 아니다”라고 자주 강조한다. 해방신학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해석된다. 교회는 정치 참여 의무 있어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교회가 특정 정파나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호되게 꾸짖는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증진을 위한 일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정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인신매매 같은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교회는 정치에 관여할 의무가 있다”(2016년 세계 법조인 모임 연설)고까지 발언했다. 교황이 말하는 정치는 넓은 의미의 정치다. 최근에도 사회,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10월 22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신앙과 일상생활은 별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만일 별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앙을 현실의 구체적인 삶, 사회의 도전, 사회 정의, 정치 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신적 어려움’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지난 9월 복자 호세 시스네로스의 선교적 삶을 기리면서도 같은 메시지를 내놨다. “복자는 오늘날의 중대한 사회, 경제, 정치 문제에 헌신하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두고 말만 하고, 혹은 불평하거나 비난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못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도록 부름 받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10.26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거울[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9. 얼굴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여학생들’,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느님 모상인 모든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 얼굴은 그 사람의 자아를 반영한다. 기쁨과 환희, 자비와 관용, 고달픔과 슬픔, 분노와 인색이 모두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의 첫 인상을 통해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하고, 기분을 헤아리기도 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선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일 뿐 아니라 주님을 통해 사랑이 가득하고 자비가 풍성한 거룩하신 하느님을 뵈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얼굴은 아름답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늘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의 얼굴을 뵈려 한다. 신앙은 온 인격으로 하느님께 귀의함을 뜻하기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자기 인생의 첫 자리에 모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세 1,26 참조) 그래서 교회는 보이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개개인이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기에 모든 인간은 존엄한 인격체다. 하느님 모습으로 지어진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따라서 인간은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이다. 성경은 영혼을 ‘인간 생명’과 ‘인격’ 전체로 표현한다.(마태 16,25-26; 요한 15,13) 그러면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것(마태 26,38), 가장 가치 있는 것(마태 10,28)으로 영혼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인간 개개인의 영혼은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셨고, 불멸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인간의 육체 또한 존엄하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을 통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는 인간은 그 육체적 조건을 통하여 물질 세계의 요소들을 자기 자신 안에 모으고 있다. 이렇게 물질 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르며, 창조주께 소리 높여 자유로운 찬미를 드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적 생활을 천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은 하느님께 창조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자기 육체를 좋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사목 헌장」 14)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존엄하다. “영혼과 지성과 의지를 지닌 인간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을 향하고, 영원한 행복을 향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진리와 선을 탐구하며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완성을 추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11) 따라서 그 어떤 인간도 타인의 영원한 생명을 향한 행복 추구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낙태와 사형 등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어떤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풀숲에 앉은 여학생’,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많은 한국인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수줍게 웃는 얼굴, 차분한 표정, 앳된 얼굴, 담담한 얼굴 등을 통해 각자의 삶을 지탱해온 인간 본성을 살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우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삶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웅변했다. “풋풋한 젊은이들의 두 눈은 행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삶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를 이 황량한 산중 고독 속으로 내몰았는지도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 만족한다.…뜨거운 믿음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저 눈동자들! 이 산골짜기에서 신앙을 구했고, 신앙은 그들의 전부였으니, 그들이 이 산골짜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1~193쪽)<사진 1>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인을 ‘생각 깊은 자연주의자들’이라고 칭송했다. 자연의 신비를 관조하고 경청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국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에 반해 일본인들을 ‘물질주의자’라 했다. 일본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그것을 소유하는 데에 더 큰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85쪽 참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듯 ‘풀숲에 앉은 한 여학생’을 촬영했다.<사진 2> 그리고 경건한 신앙심을 지니고 올바로 기도하는 신앙인을 생각 깊은 자연주의자로 인지했다. “옛 사막교부들이 그러했듯이 이들도 한데 모여 살지 않았다. 집들이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어떤 집은 반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주민은 모두 12명도 채 되지 않았다. (⋯) 그들은 지독한 가난마저 사랑했다. 기도하고 일하며 늘 하느님께 의탁했다. 그들은 홀로 침묵 가운데 묵주 기도를 바치며 길을 걸었다. 매일 아침 그들은 돗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기도를 바쳤다. 밭일을 하고, 장작을 패고, 물을 길을 때도 그들은 헌신적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여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평화가 서려 있었다.”(「분도통사」 325~326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원피스를 입은 여아’,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아기를 안고 있는 소녀’,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느님 자비의 얼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눈은 하느님을 갈망한다. 그리고 얼굴과 손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열기를 내뿜는다. 이 갈망은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말 그대로 ‘본성’이다. 인간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사진 3> “어떤 가족은 매일 꼬박꼬박 성실하고 정확하게 삼종기도와 아침·저녁 기도, 묵주 기도를 올린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고맙고 기뻤다. 그들의 기도생활은 마치 수도원 하루 일과와도 같았다. 내가 찾아가서 머물 때 교리문답을 다시 하고 질문을 하면 답을 해준다. 이 신자들의 기억력은 정말 대단하다. 몇 년 동안 교리책 한 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과 대답뿐 아니라 해석까지도 다 외우고 있는 신자도 있었다.”(칼리스터 히머 신부 회령본당 1928년 연대기 중) 하느님 자비의 얼굴은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당신 말씀과 행동, 그리고 온 인격으로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 삶에서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이는 세상에 하느님 사랑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생생한 사랑과 자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삶이다. 온유한 배려와 환대, 너그러운 용서와 진심 어린 겸손으로 하느님을 향한 애끓는 사랑을 실천하자. 그 사랑이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새 생명인 ‘태아’를 존중하고 그 생명을 지키는 일로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사진 4>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5.10.22
![[제12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치유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2/18/eSf1739859793942.jpg)
[제12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치유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최남옥(데레사, 서울대교구 수유1동본당) 2024년 12월 6일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진료실. “어디 봅시다. 피검사 결과 CA125가 5.3, CA19.9도 정상, 골밀도 빼고는 다른 수치들도 거의 정상이네요. CT 결과는 영상을 보면서 전체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간도 깨끗하고 췌장도 괜찮고 고관절 부위도 깨끗하고요~” 등등. 난소암 전문 교수님께서 아주 자세히 나의 몸 상태를 설명해 주시며 “축하합니다. 이제는 1년에 한 번씩만 봅시다”라고 말씀하셨고, 항암제 주입을 위해 14년 동안 몸에 부착하고 있던 케모포트도 제거하라며 영상의학과 혈관조영실 예약을 잡아주셨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암투병하며 지낸 15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갑상선암을 시작으로 난소암ㆍ유방암ㆍ위암, 그리고 두 번의 난소암 재발과 전이로 6번의 암 수술과 27번의 항암치료,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했다. 힘들디 힘든 병마와의 싸움. 오로지 성경 말씀에 의지하며 마음관리ㆍ면역관리ㆍ식이관리와 더불어 정기 추적검사를 해왔는데 15년 만에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케모포트 제거 시술 후 서울성모병원 1층 로비로 내려와 성모님께 이 기쁨을 알리고 성당에 들어가 잠시 성체조배 후 집으로 돌아왔다. 2009년 2월,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었다. 목을 조금 다쳐 CT와 초음파를 하다가 갑상선 암을 발견했다. 4월에 수술하고 간단히 치료를 마친 뒤 퇴원하자마자 정상출근하며 예전과 다름없이 많은 일들을 해냈다. 당시 내가 가장이기도 했고 아직 딸들이 대학생이었기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후 2년 가까이 지나면서 낮에 좀 피곤한 것 외에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새벽녘이면 아랫배가 아파 잠이 깨곤 하면서 배뇨도 쉽지 않았다. 2010년 12월 건강검진 결과 이상이 발견되어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얘길 듣고 서울성모병원으로 갔다. 종합검사 결과 난소암 3기로 판명이 났다. 2011년 1월 19일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힘들긴 했지만 여전히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일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6개월이 지났다. 평소 바쁘다는 구실로 주일미사만 의무적으로 했었는데, 항암치료 후에는 가능하면 매일 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항암 동기’ 프란치스카도 만났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의 신앙 이야기와 일상적 삶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해 11월, 우리는 성 필립보 생태 마을에 2박 3일간 머물렀다. 공기 맑은 청정지역에서 맛있는 자연식 밥을 먹고 밤엔 의자에 누워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구경했다. 따끈한 온돌방 아랫목에선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삶의 무게를 덜어냈다. 나의 믿음이 미지근하기는 하나 식지 않는 잔잔한 것이라면 프란치스카는 개신교에서 개종한, 아주 뜨끈하고 성령의 힘이 충만한 믿음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방언으로 기도해줬고 그동안 너무 버거웠다고 눈물 흘리는 나에게 “언니, 언니는 80까지 살 테니까 걱정하지마” 라면서 위로해줬다. 기도를 받은 그날, 잠이 살짝 들었는데 꿈인지 환시인지는 모르겠으나 성모님을 뵈었다. 내가 누워있는 방 천장이 천상갑옷처럼 빛나면서 성모님이 나를 향해 미소 띤 채 쳐다보고 계셨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고 있던 프란치스카가 왜 그러냐고 놀라 물었고, 나는 겪은 것을 그녀에게 들려줬다. 그 뒤부터는 힘들거나 죽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마다 이 체험을 떠올리며 성모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인지하려고 노력했다. 난소암 표준치료가 끝나고 8개월이 지난 후 PET/CT 검사 결과 종양이 간 표면에 2.5㎝ 정도, 횡격막에 포도송이 열리듯 쫙 뿌려졌고 직장에도 암이 재발, 전이되었다. 교수님은 이번엔 처음보다 많이 심각하고 수술은 외과 교수와 협진으로 이루어질 거라며 수술 날짜를 바로 잡으셨다. 그때 ‘암 치유센터 성모꽃마을’에 가기로 예약돼 있어 교수님께 그곳에 다녀온 후 수술해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허락하시며 거기서 마음을 편히 잘 다스리고 오라고 하셨다. 수술 날짜는 그 다음 주인 2012년 3월 28일로 잡혔다. 성모꽃마을은 청주에 있는 암 환우를 위한 자연치유센터로 박창환 가밀로 신부님이 가꾸신 사랑의 센터다. 그곳에선 암 극복을 위한 5박 6일 동안의 공부와 쉼터를 제공하고 한 달 이상의 장기요양과 호스피스 등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거기서 나는 매일 미사로 시작하는 하루일과를 보내고 여가시간에는 성모님의 칠고 동산을 걸으며 성모칠고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악인들이 내 몸을 잡아 삼키려 달려들지라도 내 적이요 원수인 그들은 비틀거리다 쓰러지리라(시편 27,1~)’ 란 문구를 되뇌었다. 일주일 후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10시간에 걸친 대수술 도중 횡격막과 직장에 천공 위험이 생겨 수술실로 보호자 호출도 이루어졌다. 수술 후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몸에 소변줄과 두 개의 배액 주머니가 달리고 흉관이 삽입돼 있었다. 매일 2리터의 물을 빼내고 통증에 시달리며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기도를 하려 해도 되지 않았고 말씀을 잡고 마음을 다지려고 시편을 열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했다. 난 링거줄을 주렁주렁 달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딸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 성당으로 가 부활절 미사를 드렸다. 한 달의 입원 후 또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항암제가 하나 더 늘어 부작용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먹을 수도 없었고 음식 냄새만 맡으면 구토하는 등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갔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날이 계속되면서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가평 산속에 자리한 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수액을 맞으면서라도 항암치료를 계속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일날은 병원에서 강촌성당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해 주었다. 베토벤 머리를 한 젊은 신부님은 미사 후, 우리 환우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다. 미사가 끝나고 다 같이 점심을 먹은 후 병실에서 환우 서너 명이 모여 간단히 치유기도와 복음을 읽으며 기도 모임도 했다. 어느 날, 같은 병실 환우가 자기도 성당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사십이 조금 넘은 미혼인 그녀는 초등학교 영양사로 근무하던 중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수술도 하지 못한 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나는 항암 치료차 성모병원에 가면서 지하 1층 가톨릭 서점에서 박도식 신부님이 쓰신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구입해 선물로 주었다. 그 친구는 열심히 책을 읽더니만 기도 모임에도 참석하였다. 영세도 받고 싶다고 하여 강촌성당 주일미사 때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성탄에 영세식이 있으니 그때 일주일 동안 집중교리를 하여 영세를 주시겠다며 기본 기도문을 모두 외우라고 하셨다. 성탄이 가까워졌으나 산 속에서 강촌성당까지 갈 방법이 없어 막막했는데 마침 차가 있는 형제님이 태워다주셔서 무사히 일주일 교리를 마쳤다. 그 환우는 비앙카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난 대모를 하게 되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망설이던 나에게 언니보다 오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대모를 서달라고 해 웃으면서 대모 대녀 관계가 되었는데 그녀는 2년 뒤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2012년 9월 말께 우여곡절 끝에 15번째의 항암치료가 끝나고 PET/CT를 찍었다. 교수님은 간 주변에 작은 혹들이 보이는데 단순 흔적일 수도 있다며 항암치료는 이제 그만할 테니 면역력으로 이겨내라 하셨다. 다만 오른쪽 유방에 종양 같은 것이 보이니 유방암 센터에 가보라며 진료 의뢰를 해 주셨다. MRI 촬영 및 조직검사를 실시했다. 유방암 센터 교수님은 종양 모양은 안 좋으나 조직검사 결과는 양성이라 하셨다. 3개월 뒤 추적관찰 결과 종양 부위가 넓게 펴져서 정확한 조직검사를 위해 수술을 받아야했다. 2013년 1월 16일, 4번째의 암 수술을 했다. 난소암 수술에 비해 정말 간단했지만 심리적으론 몹시 힘들었다. 왜 하느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갑상선암ㆍ난소암, 이번에는 유방암.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열심히 기도에 집중하려 해도 어느샌가 마음은 불안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직검사 결과 병기는 다행히 1기지만 암세포 분화도가 높아 33번의 방사선을 쫴야 했다. 방사선 치료는 일주일에 4회씩 실시됐다. 난소암 항암치료보다는 한결 수월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성모병원 별관 ‘영성과 건강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명상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교수 수녀님은 나의 암 히스토리와 현재 심리상태를 들으시고 "이번에 ‘내 영혼 돌보기 프로그램’이 5주간 진행된다"면서 프로그램 CD와 「나는 날마다 나아지고 있다」, 「호스피스 사랑의 노래」란 책을 건네시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수녀님이 주시는 과제를 수행하고 1주일에 한 번씩 수녀님과의 면담이 이루어지면서 순간순간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재발의 두려움 속에 빠지곤 했다. 또 어떤 암이 어디로 튈지 너무도 불안했다. 무엇이든지 붙잡고 나를 지탱하며 희망을 놓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 후에는 1층 성당으로 가 감실의 예수님과 잠시 이야기도 하고, 지하 서점에서 문고판 책인 「안셀름 그륀의 치유」,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 극복하기. 스트레스」, 「세상에 하나뿐인 나 사랑하기」 등을 구입해 읽고 또 읽었다. 그해 성탄까지는 매일 소나무 숲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관리ㆍ음식관리를 하는 등 조금은 편해진 일상을 지내다가 12월 24일날 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 검진을 했는데 위 내시경 결과 3.5cm 정도의 혹이 발견됐다. 소견서를 들고 또 성모병원 소화기내과를 찾았다. 내시경 초음파와 CT 촬영결과 모양이 안 좋은 종양이 있어 위장관외과로 보내졌고, 또 수술대에 눕게 되었다. 이번에도 수술 도중 보호자 호출이 있었다. 종양이 위와 림프로 퍼져 위의 3분의 2와 림프를 제거했다. 물 한 모금도 겨우 넘기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희망의 흰 구름은 간데 없고 왜 자꾸 먹구름만 드리우는지. 내 마음엔 평화가 없었다. 그래도 ‘평화를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안에 평화가 머물게 하소서‘ 기도했다. 그러면서 시편 (38,22-23)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며, 저를 도우소서‘ 울부짖었다. 겨우 죽을 먹어가며 치료의 여정을 계속했다. 음식만 들어가면 위통으로 뒹굴고, 항암제 부작용으로 구내염도 생겨 잇몸에서는 피가 나는 등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체중은 41kg까지 줄었다. 그래도 교수님은 영양제 링거를 투여하며 항암치료를 지속했고 난 희망과 용기를 얻기 위해 요나의 뱃속의 기적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러다 다시 위내시경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위 상부 식도 부분에 0.7cm의 혹이 보여 위 절제 후 12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또 한 번의 위 수술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마약성 진통제도 패치도 통증을 달래주지 못했다. 음식만 먹으면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음식만 봐도 위통을 느끼는 것이다. 뼈만 앙상한 채 누워있는 내게 성당 자매들이 병문안을 왔다 갔다. 현관에서 남편과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주고받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호스피스⋯. 벌떡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을 졸라 차 뒷자리에 누워 마지막으로 꼭 받고 싶었던 치료를 위해 대전대학교 한방병원 종양내과에 갔다. 교수님께 그동안의 암 히스토리와 진단서, 소견서 등을 제출하고 거금의 약값을 지불한 뒤 약을 가져왔다. 그리고 하느님과 최후의 딜을 했다. 언젠가는 꼭 하려고 했던 신·구약 73권 필사를 마칠 수 있도록 3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간단한 짐을 준비해 포천의 산속 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영양수액을 맞으며 조금이라도 뭘 먹으려고 노력했고 지팡이를 짚고 매일 산속을 걸었다. 피톤치드를 마시며 문고판 성경을 읽고 병실에 돌아와선 필사를 했다. 항암 후유증으로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막이 파열되고 손가락 감각이 없어져 힘들긴 했지만 하루 1시간 30분 정도 필사를 하면 3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루틴으로 했다. 그렇게 위암 치료를 끝낸 2015년 2월, 유방암 정기검진 결과 또 문제가 생겼다. 유방암 교수님은 CEA 종양 수치가 높게 나왔다며 위 수술을 해주신 위장관외과 교수님께 의뢰해 주셨다. 그 수치는 대장암 표지자 수치여서 대장내시경과 피검사를 다시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극도의 불안과 걱정으로 잠이 안 와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조금씩 자곤 했는데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넓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웅성거리는데 나도 그 가운데서 평소 나를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해주는 언니와 함께 서럽게 울었다. 그러는 중 신부님 여러 분이 미사를 드렸다. 그 전에 우리 본당에 계셨던 장대익 루도비꼬(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신부님도 거기에 계셨다. 미사가 끝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간다며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 서 있었는데 루도비꼬 신부님이 “데레사는 이쪽이야”라며 다른 줄에 서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줄을 바꿔 서서 기다리다 잠이 깼다. 기분이 묘했다. 일주일 후 대장내시경 결과를 듣기 위해 위장관 교수님께 갔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성당으로 가 감실에 계신 예수님께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드린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교수님은 종양 수치가 조금 높기는 하나 대장내시경 결과는 용종 2개만 뗐다며 안심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표준치료가 끝났다. 요양병원으로 돌아가 하루하루 지내면서 레지오도 다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서울 태릉역까지 오면 큰딸이 나를 픽업해 성당으로 데려다 주어, 조금 늦기는 했지만 회합시간에 함께 기도할 수 있었고 회합이 끝나면 집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 6시에 당고개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프란치스카에게 기도 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프란치스카도 난소암이 두 번 재발되어 나와 같은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일단 내 병실에서 둘이 기도를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다녀와서 7시부터 삼종기도, 치유기도, 매일 미사에 나와 있는 독서와 복음, 그리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렇게 하다 보니 기도 식구들이 한두 명씩 늘었다. 이제 좁은 병실에서는 기도 모임이 어려워 병원 원장님께 낮에 명상의 룸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프란치스카와 나는 천주교 환우들을 만나면 기도 모임에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 그리고 주일엔 병원서 가까운 내촌성당으로 미사를 다녔다. 영세받은 후 오랫동안 냉담했던 환우가 주의 기도ㆍ성모송부터 다시 배워가며 기도 모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앙에 의지하며 투병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기도 모임을 시작한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지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도 모임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병원에서 멀지 않은 성지를 찾아 2~3개월에 한 번씩 성지순례도 다녀왔다. 풍수원 성당ㆍ마제성지ㆍ천진암 성지 등을 찾아 미사 드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성지 둘레길도 산책하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곤 했다. 3년의 성경 필사 약속 중 어느덧 2년이 지나자 구약성경을 거의 마무리하게 되었다. 욕심이 생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향을 ‘신구약 다 쓸 때까지 3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가 아닌 ‘3년 동안 다 쓰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치유의 은총을 주세요’라고 바꿔서 기도하고 있었다. 2017년 8월 17일, 드디어 3년의 긴 필사 여정을 끝내게 되었다. 어느새 내 앞엔 다 쓴 두툼한 성경 쓰기 대학노트 13권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암 부작용으로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마비돼 한참을 주물러 손을 풀고 써 내려간 노트들이었다. 미션을 수행했다는 뿌듯함과 성경을 쓰면서 말씀으로 위로받고 치유받은 그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었던 데 대해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 집으로 돌아가 완치의 여정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라고 감사기도 드리며 병원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주님과 또 약속했다. 이제는 집에 왔으니 2년 동안 매일 미사를 드리며 열심히 치유의 길을 걷겠다고. 월요일에는 6시 새벽 미사, 그 외에는 집 근처 주변 성당의 10시 미사를 드리며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잠시 떠나는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그곳 성당의 미사 시간에 맞춰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집 가까이 있는 무연고 영유아 장애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도 시작했다. 이곳을 청소하고 소독하며 아이들의 식사를 도왔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아기를 품에 안고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며, 이렇게 살아서 작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다. 재발의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해 올 때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우이동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을 향해 걸으면서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나의 고통과 불안을 덜어내려고 했다. 암 치료와 몸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점점 좋아지는 성적표를 받았다. 갑상선암을 시작으로 유방암ㆍ위암은 10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고, 두 번의 재발과 전이로 날 괴롭혔던 난소암은 중간중간 종양 수치가 정상범위에서 조금씩 이탈하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고 관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주님 또 하루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시작으로 아침기도와 미사, 면역요법ㆍ 식이요법ㆍ운동요법을 하며 규칙적인 일상을 지낸 결과 드디어 난소암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냈다. 네 종류의 암에서 해방된 2024년 마지막 달, 2011년 난소암 판정을 받은 이후 써온 병상 일기를 펼쳐 보았다. 암 통증으로 고통 속에서 헤매는 날도 많았지만 또 바쁘게만 지냈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고 고통 중에서도 주님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말씀을 꼭 붙잡고 지내온 날들이었다. 며칠 있으면 성탄이다. 암에서 해방돼 일흔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태어남을 감사드리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해야겠다. 최남옥(데레사) / 서울대교구 수유1동본당cpbc2025.02.18

바오로 사도,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주님’이라 선포[저는 믿나이다] (17) ‘주님’ 칭호 바오로 사도는 헬레니즘 문화권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주님’ 칭호를 즐겨 사용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1650년께, 유화.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신앙 공동체의 주류로 자리하면서 교회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습니다. 교회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율법 중심의 유다교 영역에서 주로 활동했다면 이때부터 헬레니즘 영역 안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곧 “예수께서 메시아이시다”라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한 분이신 야훼 하느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 일일이 그리고 올바르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당시 헬레니즘 지역에서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칭호는 그리 종교적인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지역 운동선수, 특히 레슬링 선수만 해도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할 때마다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는 헬레니즘 지역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말 대신에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선포합니다. 이방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세주의 칭호를 사용한 것이죠.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에 대한 신학적 숙고가 시작됩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많은 칭호가 나옵니다. 먼저 예수님의 지상 활동과 관련된 칭호로는 ‘예언자’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대사제’ 등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미래 활동과 관련해서는 ‘메시아’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과 같은 칭호가 사용됐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현재 업적과 관련해서는 ‘주님’ ‘구원자’라는 칭호가, 예수님의 선재(先在)를 설명할 땐 ‘로고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그 밖에 ‘다윗의 자손’ ‘예언자’라는 칭호도 사용됐습니다. 이번 호에는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가장 즐겨 사용했던 ‘주님’(Κυριοs, 퀴리오스)이라는 칭호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에서 ‘주님’ 칭호를 184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5-11) 이 그리스도 찬가에서 알 수 있듯이 ‘주님’은 ‘그리스도’와 가장 밀접한 칭호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라는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에 따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고 히브리말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창조주이신 거룩한 아버지 하느님만을 지칭하던 ‘주님’이라는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께도 똑같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칭호이지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거나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55) 그리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다고 가르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와 관련해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라며 교회의 신앙이 성령의 작용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처럼 ‘주님’이라는 칭호는 헬라어를 말하는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지중해 동부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돼 전 교회로 확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영성생활에서 ‘주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칭호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라고 말한 한 나병 환자의 간구처럼 주님께 청하는 간절한 기도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실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하는 가장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리스도교 기도의 특징은 ‘주님’이라는 칭호에 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로 기도에 초대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말로 기도를 끝맺으며, 신뢰와 희망에 넘쳐 ‘마란 아타!’(주님께서 오신다) 또는 ‘마라나 타!’(저희의 주님, 오십시오)를 외친다.(1코린 16,22)”(「가톨릭교회 교리서」 451) 역설적이게도 초대 교회는 ‘주님’ 칭호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박해의 대상이 됩니다. 당시 로마 황제들 특히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주님이며 신’(domonus et deus)이라 칭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카이사르 외에 또 다른 임금이자 주님으로 예수를 선포하였다며 박해를 한 것이죠. 바오로 사도 역시 똑같은 이유로 테살로니카에서 곤욕을 치릅니다.(사도 17,5-7) 리길재 베드로리길재 선임2025.03.04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01/bPZ1743493312684.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구요비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렘브란트 작 ‘간음한 여인과 예수’ 부분, 1644년. 오늘 예수님께서 만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불충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은유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호세아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契約)을 신랑과 신부 사이의 혼인 계약으로 묘사합니다. 이에 따라,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을 멀리하여 계약에 불충실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신랑이신 주 하느님께 불충실한 간음으로 규정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 즉 계속 집을 나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달래고 집으로 데려오는 삶을 돌이켜보다가,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그러하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16.21-22) “하느님의 사랑은 분명히 에로스라 할 수 있지만, 또한 전적으로 아가페이기도 합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9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냉혹한 재판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신랑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묵시 19,7-9 참조)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러 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한 4,20)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가 응답하는 길은, 우리가 관계 맺고 사는 이웃에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치 기준의 중심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머니 복중에 있는 태아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무한한 존엄성이 무시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속한다는 가치관이 팽배합니다. 이런 시대의 사조는 남녀 간 상호 존중과 인격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야 할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 다툼과 이혼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응답하는 길은 인간 삶의 중심을 인격적인 존중과 사랑에 두고 이 사랑의 원리를 살아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즉, 그 어떠한 극한적인 실존 상황 안에서도 사랑을 최고의 가치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구요비 욥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cpbc2025.04.01

희년, 어떻게 맞이할까희년에 함께하면 좋은 책들2025년은 희년(禧年, Jubilee)이다. 희년은 가톨릭교회에서 신자들에게 특별한 영적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로 성년(聖年)이라고도 한다. 희년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언제 시작됐으며, 신앙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 속에 답이 있다! 희망의 순례자들 / 김정용 신부 / 바오로딸 “희년은 2024년 12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고,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문을 닫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 교회는 2024년 12월 29일 교구별로 개막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 12월 28일 폐막 미사로 마무리된다. 성문이 열리면, 순례자들은 희년 동안 대사를 받을 수 있다.”(13쪽) 「희망의 순례자들」은 희년의 역사부터 희년의 요소, 희년 대사를 얻기 위한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안내한다. 희년 제도는 근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로부터 해방하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 즉 이집트 땅에서 해방하신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과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건이며, 동시에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방향과 지침을 의미한다. 우리 교회가 희년의 정신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현실화하고자 하는 이유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는 2025년 희년의 뿌리가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근본적으로 희망의 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나서는 여정이다.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이 둘러쳐 놓은 모든 장벽, 모든 경계, 곧 모든 형태의 차별과 혐오의 문화, 배타성과 불평등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50쪽) 저자 김정용(광주대교구) 신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기초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5 희년 여정 노트 / 가톨릭출판사 “‘희년(Jubilee)’이라는 말은 숫염소의 뿔로 만든 ‘요벨(yobel)’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법에 따라 50년마다 한 번씩 희년의 해가 돌아오면 요벨을 불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고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모든 부채를 감면받고, 노예는 자유인이 되도록 했습니다.”(‘2025년 희년을 맞이하며’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5월 9일 2025년 정기 희년을 공식 선포하는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발표했다. 「2025 희년 여정 노트」는 이를 토대로 이번 희년의 주제와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소책자다. ‘삶의 기쁨’ ‘미소는 희망의 씨앗’ ‘단순한 눈길’ 등 매일 한 장씩 희망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희망과 관련된 성경 구절, 최민순 신부의 「시편과 아가」 구절도 포함돼 있다. 뒷부분에는 희년 전대사와 희년 행사 일정도 수록했다. 쥬빌레오 로마 / 김세웅 / 스콜라란 “성년은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하던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중략)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를 떠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절망에 빠진 신자에게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구약 히브리 백성의 전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희년의 개념을 끌어올려 용서와 구원을 약속하는 성년을 선포함으로써 성령께서 새로이 교회를 이끄시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교황은 로마를 방문하는 신자에게 전대사를 주었는데⋯.”(21쪽) 올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순례지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탈리아, 이탈리아 안에서도 로마일 것이다. 희년 전대사를 위해 로마의 4대 대성전, 곧 성 베드로 대성전·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성모 대성전·성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쥬빌레오 로마」는 1300년부터 시작된 가톨릭 희년의 역사를 따라 각 희년과 관련된 교황의 업적과 시대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바티칸박물관과 성지순례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세웅(디오니시오) 씨가 집필해 교회사적인 깊이와 현장감이 맞물린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 / 한경아 / 성바오로 지난해 11월 시작된 ‘한국 교회 축성생활의 해’가 2025년에도 이어진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세상 안에서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언해 온 성직자와 수도자 11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우리나라에 파견돼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안동교구 두봉 주교, 30여 년간 방황하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허보록 신부, 수많은 강의와 피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웃음을 전하고 있는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이미숙 수녀 등 저마다의 소명도, 하느님 체험기도 다양하다. 미술전문기자로 활동했던 한경아(아녜스) 작가가 엮었다. “여러 방송에 나갔고, 특히 ‘유퀴즈’ 출연 이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누가 찾아올지 몰라요. (중략) 이러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주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허락하셨고 나아가 원하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믿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언제 어디서 누가 찾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요.”(‘안동교구 두봉 레나도 주교’ 중) “힘들 때도 있습니다. 후원자의 배려로 회사에 입사한 청년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회사에 손해를 끼칠 때도 있어요. 안타깝지만 후원자와의 관계도 끊어지곤 합니다. (중략) 늘 예수님께 아이들의 상처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파리외방전교회 허보록 필립보 신부’ 중)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 / 아우로라 마니 / 김희중 대주교 옮김 / 생활성서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를 시작으로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하느님 나라는 희망이에요」 등 아이들을 위한 생활성서사의 가톨릭 교리 입문서 ‘뭐예요?’ 시리즈가 완간됐다. 책은 각각 ‘죄가 뭐예요?·성탄이 뭐예요?·비유가 뭐예요?’라는 주제로 전개된다.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엄선해 우리말로 옮긴 이 책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의 주요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그 가운데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은 성탄의 참의미를 일깨워주는 교리 입문서로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데도 가난하게 태어나셨어요.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24

신앙에 소홀했던 어머니를 변화시킨 소년[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7) 성체신심 지난 5월 미국 뉴욕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씨가 아들의 생전 성체 신심을 전하는 강연에 참석한 신자들이 아쿠티스 액자를 든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복자의 성체 신심을 기리며 성체조배에도 임했다. OSV 성체와 십자가 ‘성체성사’(Eucharistia)는 본래 ‘감사’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합니다. 이 감사의 전례가 세워진 것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때입니다. 또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 이는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하는 성찬 제정과 축성을 통해 인류를 대신하여 당신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재현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도 온전히 봉헌합니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성체와 십자가가 ‘같은 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십자가 죽음에서처럼 성체 안에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을 보았기에, 그는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카를로에게 성체성사가 없는 날은 마치 태양도, 빵도, 웃음도, 휴식도 없는 날과 같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과 성체조배 카를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말씀을 자주 묵상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어좌에서 내려와 동정녀의 태 안에 드신 때처럼 날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께서는 날마다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 그분께서는 실제로 육(肉) 안에서 거룩한 사도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듯이 지금도 축성된 빵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그분의 육신만을 보았지만 영의 눈으로 그분을 보고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육신의 눈으로 빵과 포도주를 볼 때, 그것이 참되고 살아 있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임을 보고 또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카를로는 아시시와 베르나 성지에서 배운 대로 성체조배를 통해서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침묵 안에서 드리는 성체조배 때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카를로는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희미한 빛이 어두운 방에 들어오면 공기 중의 먼지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요. 달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빛줄기에 닿은 먼지 알갱이들은 사방에서 빛나죠.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예요. 성체조배를 하면서 성체에서 나오는 빛에 감화되면 우리 영혼의 모든 ‘먼지’, 영혼을 더럽히고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그 먼지들을 볼 수 있게 돼요.” 미사 앞뒤로 감실 앞에 머물러 성체를 공경하면서 카를로는 점점 더 ‘순한 어린양’으로 다듬어졌습니다. 또 하느님 뜻에 항상 ‘예’라고 응답하는 침묵의 지혜를 배워갔습니다. 모든 성인과 위대한 이들이 그러했듯, 카를로도 침묵 안에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찰과 묵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침묵의 학교’에서 자라났습니다. 부모를 당황하게 한 질문들 카를로는 식사 때마다 아버지와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두고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과 교리에 관해서도 부모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신앙에 관한 호기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카를로의 어머니는 회상합니다. “저는 말하자면 카를로의 비서였어요! 카를로는 네 살 때부터 이미 신앙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거든요.” 카를로의 질문은 점점 깊이를 더해갔고, 신앙생활에 수동적이던 어머니는 처음엔 그 질문들이 어렵고 당황스럽기만 했답니다. 그러나 친정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여의면서 아들이 묻던 천국과 연옥에 대한 질문들이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카를로의 믿음은 차츰 부모의 신앙을 일깨워 가족 모두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카를로의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의 삶과 영성을 전하고 많은 이를 성체성사의 삶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유소영cpbc2025.06.17

첫 두드림[월간 꿈 CUM] 중독과의 만남 (1) “여기가 A.A. 맞나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모임을 줄여 A.A라고 부른다. 이 모임은 단순하게 설명하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단주하기 위한 자조 집단이다. 전 세계 11만 8000개의 그룹, 한국에도 186개 그룹의 모임이 매주 있을 만큼 전 세계 최대 자조 집단 모임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모임의 장소이다. 당연히 알코올중독병원에 있어야 할 모임이 지역사회 내 복지관, 주민센터 그리고 성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모임이 성당에서 하고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당시 사목하고 있던 이주사목회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성당의 회합실이라니.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는 소논문 2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 어떤 분야를 연구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연구를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학생으로서 중독은 가장 구미에 당기는 분야이다. 논문지도 교수님께서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장으로서 중독 연구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가.’ 문 선생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 그리던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환자였다. 짧은 머리에 산전수전 다 겪으신 두툼한 얼굴, 잠바를 벗으면 문신은 몇 개 그려져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체격, 밖으로 나오시던 도중 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시며 마주친 그분의 첫인상은 내 상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그런데 신부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순수한 어린양의 표정과 해맑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애쓰고 또 애썼다. 무엇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을 했으며, 여기 계신 분 중에서 단 한 분도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등등 생각보다 길었던 설명 뒤에 돌아온 짧은 한마디가 이 모임의 합격점을 받았음을 확신했다. “저기에 앉으세요.” 모임 15분 전 미리 와 계셨던 다른 두 선생님은 문 선생님의 합격점을 번복할 마음보다 오히려 신부에 대해 궁금했던 그동안의 질문들을 털어놓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 순간, 이 두 분은 가톨릭 신자분이시고 문 선생님은 부처님과 닮으셨으니 불교를 믿겠구나 확신하였지만 왜 이리 자꾸만 빗나가는지, 알고 보니 문 선생님은 열심한 천주교 집안이었고, 다른 두 분은 무신론자였다. ‘그래! 중독으로 소논문을 작성해야지!’ 이러한 결심은 곧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로 연결된다. 신학교에서 주로 하는 연구방법인 교회법을 고찰하거나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아닌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는 것이 사회복지에서 질적 연구로 논문을 쓰는 방법이다. 이로써 벌써 두 가지나 중독으로 논문을 쓰는 데에 충분조건을 채웠다. 하나는,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뭐 어려울까. 또 하나는, 신부인데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 모임을 통해 깨달았다. 자꾸만 로만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주차하는 공터에 있는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리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다니…. 휴.’ A.A모임은 공개와 비공개 모임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비공개 모임이다. 공개 모임과 달리 비공개 모임은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면 참석할 수 없다. 곧 모임 참석자 중 한 명이라도 허락하지 않으면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으며, A.A모임은 어떤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전정보가 추운 겨울날 땀으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괜히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너처럼 우린 편안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를 연구하고 싶어 인터뷰를 하겠다고! 우리가 무슨 동물원에 원숭이야!’라고 소리치는 분은 안 계시겠지? 설마. 그래도 성당 회합실인데 신부에게 그렇게까지 하실 분은 없을 거야.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마주친 문 선생님! (계속) 글 _ 이중교 신부 (야고보,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 사회복지학 박사) 2009년 사제품을 받았다. 2021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알코올의존자의 재발과 회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이며, 서강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cpbc2025.06.30

유다인 독립 항쟁사와 순교사에 함께하신 주님[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4) 마카베오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형제들이 유다 독립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신앙 자유를 위해 셀레우코스 왕조에 항거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콘은 ‘한 어머니와 일곱 명의 거룩한 마카베오 순교자’(2마카 7장 참조)로 동방 정교회는 이들 순교자의 양옆에 있는 이가 스승 엘레아자르와 어머니 솔로모니아이고, 일곱 아들은 아빔, 안토니우스, 굴리아스, 엘레아자르, 에우세보누스, 알리무스, 마르첼루스라고 한다. 출처=미국 동방 정교회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유다교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 수록돼 있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유다교 정경에는 없지만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에는 수록된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제2경전이라 해서 그 권위나 중요성이 덜한 것은 아닙니다. 가톨릭교회는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로 쓰인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을 구약 성경 정경으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유다교 히브리어 정경만을 구약 성경으로 인정하기에 제2경전을 구약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에는 ‘Μακκαβαιων ΑㆍΒㆍΓㆍΔ’라는 이름으로 네 권의 마카베오기가 수록돼 있습니다. 이중 ‘Μακκαβαιων ΑㆍΒ’가 고대 동ㆍ서방 교회 안에서 읽혔습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를 ‘ⅠMachabaeus’, ‘ⅡMachabaeus’로 표기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성경」은 ‘마카베오기 상ㆍ하 권’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마카베오기는 헬레니즘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마카베오기는 셀레우코스 4세 통치 말기인 기원전 176년부터 유다의 대사제 요한 히르카노스가 하스모네아 왕조의 임금으로 즉위하는 기원전 134년까지 반 세기가량의 역사만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유다 땅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속국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마카베오기 상권이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 치세 말기 또는 알렉산드로스 야나이오스의 재위 초기 때인 기원전 100년께 저술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원전 63년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이 유다를 침공해 군홧발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를 난입했는데 저자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로마인들을 호의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울러 마카베오기 하권 또한 기원전 124년에서 기원전 63년 사이에 쓰였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권의 저자가 셀레우코스력 188년(기원전 124년)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낸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2마카 1,10)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저자가 다른 완전히 별개의 작품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두 형제인 요나탄, 시몬이 유다 독립을 위해 벌인 저항 운동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하권은 안티오코스 4세의 유다교 박해 이전 시대에서 시작해 대사제직을 차지하려는 일부 유다인의 음모, 안티오코스 4세의 유다교 박해에 저항한 유다인들의 순교와 항쟁사를 다룹니다. 하지만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모두 유다 마카베오와 그 형제들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유다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바쳐 모독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해 다시 봉헌하고 신앙의 자유를 되찾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예루살렘의 헬레니즘화(1마카 1,11-15)와 안티오코스 4세의 성전 모독 사건(1마카 1,20-28), 유다인과 유다교 박해(1마카 1,29-64)를 기술하면서 마타티아스에서 시몬까지 이어지는 하스모네아 가문의 마카베오 항쟁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스모네아 가문의 마카베오 항쟁(1마카 3,1─16,10)을 기술하고, 기원전 130년께 마카베오 항쟁의 마지막 주역인 시몬이 살해당한 사건(1마카 16,11-17), 하스모네아 왕조의 첫 통치자인 요한 히르카노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끝맺습니다.(1마카 16,18-24) 마카베오기 하권은 안티오코스 4세의 유다교 박해 이전 시대(기원전 187~기원전 175년)에서 시작해(2마카 1,1─2,18) 안티오코스 4세에 저항한 유다인들의 순교와 항쟁사(2마카 2,19─13,26)를 기술합니다. 그리고 유다 마카베오의 전승(2마카 14,1─15,36)을 전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하느님의 구원이 하스모네아 왕조를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경외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승리가 오는 곳은 “하늘”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교 풍습을 거부하며 율법을 지켰음을 증언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예루살렘 성전 정화 사건을 부각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유다인들이 죄를 지었고 대사제들이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전을 되찾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군사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하는 자세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하느님의 자비를 부르는 것은 ‘순교자들의 피’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성전 정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덧붙여 죽은 이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죽은 이는 훌륭한 상이 마련돼 있으며, 그렇지 못한 이들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