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우수상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5>끝 '결과에 관계없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사랑!'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을 위한 강생 구속 과정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신학원 강의를 비롯한 수많은 공부를 통해 터득하고, 교리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교리를 가르쳐 오기도 했지만 막상 나 자신은 이제야 피부로 조금 느끼는 것 같으니…!! 그러면서도 '이러한 마음을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아직도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은연중 나를 드러내려는 영적 교만이 수시로 밀려오고 있으나, 그때마다 화살기도를 통해 주님께 마음의 흔들림을 봉헌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과거 진급이라는 세속적 명예 때문에 엄청나게 방황했던 이 죄인이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와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 특수사목 현장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얄팍한 인간적 갈등에 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운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해외 선교사들, 국내 산간벽지에서 어려운 생활여건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공소 선교사들, 병들고 외로운 불우 이웃을 찾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수많은 봉사자들을 생각하면 현재 겪고 있는 나 자신의 자그마한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를 통해 은총을 충만히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신앙의 해가 끝나고 그 연장 선상에서 지속적인 성경 공부 등 후속 조치를 취하고는 있으나, 현재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이미 통계수치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신자 증가율 감소, 냉담교우 증가, 주일미사 참례율 저하 등 각 분야에서 교회 성장의 적신호가 피부로 와 닿는 수준까지 강하게 깜박거리고 있다. 어느 본당이나 젊은 층은 찾아보기 어렵고 이미 신자들의 고령화는 진행되고 있어 불과 몇 년 후가 걱정되는 실정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한국교회의 약화 현상을 거의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이 취해온 삶의 현장에서의 복음화는 시대를 거듭해오면서 강조되고 있으나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새롭게 부임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몸소 스스로 가난한 모습으로 사시면서 "교회의 역할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며 앞장서고 있어 새로운 가톨릭의 희망과 비전을 보는 것 같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모든 사목 일꾼들이 2013년에 겪었던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을 사랑과 화합으로 소화하고, 2014년 갑오년에는 '말'처럼 한 단계 도약해 한국 천주교회의 밝은 미래가 수놓아지기를 바라본다. 각 본당을 비롯한 모든 사목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적 변화상을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길처럼 일어나, 현재의 적신호를 청신호로 바꾸는 하나의 큰 물줄기가 돼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한 이정표가 세워지기를 빌어본다. 230년 전 아시아 변방의 동쪽 하늘에 떠올라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한국 천주교회의 저 붉은 신앙의 태양이 2014년에는 새로운 정기를 받아 더욱 밝게 타오르기를 바라면서, 한없이 미약한 제가 그동안 받았던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하느님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앞으로 남은 저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데 온 정성을 쏟을 것을 다짐해 본다. 이계상 분도(서울 명일동본당) <끝>백영민2014.03.18
![[수품성구와 나]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186_1.0_titleImage_1.jpg)
[수품성구와 나]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사제는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바로 사제는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아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가축들의 밥그릇인 구유에서 탄생하셨고, 양부이신 성 요셉을 도와 노동자로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세상 희로애락을 체험하십니다. 그렇게 30년을 나자렛 고을에서 기도와 묵상, 노동을 통해 아주 평범하게 공생활을 준비하셨고, 그 후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3년간 치열하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온갖 병자를 고쳐주시고, 밤낮으로 몰려드는 군중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시며 영원한 삶, 평화와 행복의 삶, 참 삶의 가치와 이정표를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강행군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전도여행을 끊임없이 펼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몸을 눕힐 편안하고 안락한 거처도 휴식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깊은 밤과 이른 새벽을 이용해 하느님 아버지와 깊이 일치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천주성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다른 이의 선익을 위해서만 기적을 행하시는 이타적 삶을 온전히 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력을 다해 피땀을 흘리며 선한 일만을 하셨지만, 비리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직한 모습의 예수님을 세상의 세력은 그대로 두지 않고 위험인물로 낙인찍어 제거하기로 작당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사칭했다는 이유, 국민을 선동해 정치질서를 교란하고 국가안보를 그르쳤다는 이유, 죄인과 어울리고 가난한 이를 변호했다는 이유, 신앙인의 본분을 저버리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 등을 들어 종교의 최고 권위와 국가 최고 법정은 사형언도를 내렸고, 결국 십자가를 진 고난의 행렬 끝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해 온 인류의 행복과 영원한 생명의 발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존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님의 생애 33년은 인간들을 위해 남김없이 봉헌된 삶이셨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재산과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성경 속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지만 소유물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교황궁에 사는 것을 포기하고 순례객이 머무는 '성 마르타의 집' 한 칸을 빌어 아주 작은 공간을 사용하며 교황직을 기쁘고 행복하게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황께서는 가난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지 않고, 곤궁한 처지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 가난한 교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저는 강산이 몇 번 바뀐다는 수십 년간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수품 성구의 진정한 주인공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신명나게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가난한 삶과는 너무 멀리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의 수품 성구를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길게 남아 있지 않은 저는 과감하게 군더더기처럼 얽혀있는 가시적, 비가시적 장식물을 모두 털어버리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꾸밈없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은총을 주님께 청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태양의 노래를 부르며 벌거벗은 몸으로 질주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cpbc2014.03.18

"신앙에 대한 확신과 기쁨 얻었다"서울 시흥동본당 신앙의 해 폐막미사, 모범신자 표창시흥동본당 신앙의 해 폐막미사에서 본당 신자들이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본과 묵주기도함을 봉헌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 제2차 바티칸공의회 특강, 성경 완독, 신앙체험 발표, 묵주기도…. 서울대교구 시흥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 신자들은 공부와 교육, 기도의 삼박자를 갖춘 특별한 신앙의 해를 보냈다. 본당 신자들은 지난해 10월 신앙의 해가 시작되기 전인 7월부터 주임 신부의 요한복음 특강을 시작으로 10월부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특강을 들었다. 3개월에 한번씩 평일 저녁에 모여 '신앙의 밤'을 보내며 함께 기도하고, 신자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체험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4월부터는 전 신자가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구역별로 나눠 필사하고, 5월부터는 전 신자가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해 폐막 때까지 40만 7723단을 봉헌했다. 1년간 신앙의 내실을 다진 본당 신자들은 11월 24일 신앙의 해 폐막미사를 봉헌하고, 신앙의 해 결실로 사랑 실천에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폐막미사에서는 지금까지 신앙의 해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영상을 상영하고, 각종 교육과 행사에 열심히 참여한 11명의 신자에게 모범 신자상을 수여했다. 대상 수상자 강말순(마리아)씨는 제주도 왕복항공권(2인)을 상품으로 받았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필사, 신ㆍ구약 완독, 모든 특강 참석 등으로 모범 신자상을 받은 곽도실(리드비나, 51)씨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가정과 환경을 주셔서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하느님 말씀에 빠져 지낸 기쁜 해였다"고 말했다. 주수욱 신부는 "교황님과 일치한 가운데 본당 공동체가 성숙해지고, 하느님의 선물인 신앙을 충분히 맛보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이 모든 것은 선교와 사랑 실천으로 표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본당 기획분과장 음영소(프란치스코)씨는 "청년부터 어른 신자까지 모두 신앙에 대한 확신과 기쁨을 얻은 한 해였다"며 "내년도는 '사랑의 해'로 정해 개인과 가정, 본당 공동체 차원에서 사랑 실천에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3.11.26
![[생활속의 복음] "돌을 치워라!"](//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9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돌을 치워라!"사순 제5주일(요한 11,1-45) 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사순 제5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에서 우리 신앙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우리는 죽어서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에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살면 우리는 어둠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성당 동산에 꽃씨를 뿌린 적이 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꽃씨가 뿌려진 땅에서 작은 새싹이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땅은 방사능 물질이 섞인 비도 받아들이고, 황사가 섞인 비도 받아들이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땅은 생명을 품어주고, 작은 싹이 나도록 해주는 것을 봤습니다. 방사능 물질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를 생각합니다. 문득, 그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에 우리 인간들만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방은 불을 보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불 속으로 날아가는 나방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숭이를 잡을 때 사람들은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입구가 작은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넣습니다. 원숭이는 항아리 속에 있는 과일을 잡습니다. 그런데 과일을 잡은 원숭이의 손은 항아리에서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원숭이는 사람에게 잡힌다고 합니다. 원숭이 또한 미련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그런데 나방과 원숭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욕망이라는 불꽃을 향해 불쌍하게 날아가곤 합니다. 사람들도 원숭이처럼 욕심과 탐욕을 잡고서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하고, 친구들을 배반하기도 합니다. 이런 욕망과 욕심을 비워버려야만 우리는 참된 진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바로 우리의 낡은 허물들을 벗어버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고, 우리의 생명수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거울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면서 온전히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셨고, 마귀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마시면 다시 목마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사순 제5주일은 생명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려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우리는 주변에서 부활 신앙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서 일생을 살기로 약속하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행려자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함께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은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부활의 삶을 몸으로 사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사는 분들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분들이고 세상 것에 복종하는 분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말씀에 복종하는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돌들이 있습니다. '욕심의 돌, 욕망의 돌, 시기의 돌, 분노의 돌, 원망의 돌을 치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된 자유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cpbc2014.04.01
![[시사진단] 무릎을 꿇고 하는 일](//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433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무릎을 꿇고 하는 일김혜경 세레나(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다시 선거철이 됐나 보다. 아침, 저녁 지하철 입구에는 몸에 띠를 두른 정치인들이 부쩍 눈에 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역 입구가 시끌시끌하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우리 정치인들의 '반짝 쇼'는 이제 하나의 행사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할 뿐 전혀 반갑지가 않다. 그들에게 거는 기대감은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고, 그것을 그들도 아는지 최근에는 선거운동인지, 신앙고백인지 모를 공약이 거리의 소음을 대신하는 것을 느낀다. 큰 소리로 '절대 도둑질하지 않겠다!' '직장인과 서민들 유리지갑 털어 짜낸 세금으로 딴짓 안 하겠다!'는 등의 고백이나 당치도 않을 허풍을 공약이라고 내세워 표만 얻겠다는 꼼수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가 힘들다. 후보자들의 전통시장 방문도 선거철을 전ㆍ후로 하는 일종의 보여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서민들은 매번 변함없이 속아주고 우리의 세금을 절도 당하고 있다. 서민들과 달리 후보자들은 참으로 훌륭한 위선자들이 아닐 수 없다. 복음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죄인들에게는 대단히 관대했으나 위선자들에게 그렇지 않았다. 죄인에게 죄를 탓하거나 그를 엄하게 단죄한 적은 없지만, 위선자들에게는 대접받기를 즐기고 높은 자리를 찾으며 거리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며 구체적으로 율법학자와 사제들을 들어 단죄하셨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따르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 겸손한 '척'하는 사람에게는 존경하는 '척'하고, 정말 겸손한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에게는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는 사람에게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엎드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율사와 사제들이 잘하는 '보여주기'식 겸손이나 공감을 얻기 위한 위선적 행위와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집권 1년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베들레헴의 그분, 나자렛의 그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분 모습을 새롭게 보여줬다. 동시에 여러 계기를 통해 베들레헴과 나자렛과 골고타의 그분처럼 살기 위한 그리스도인 삶의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하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표적인 그리스도인 삶의 자세에는 "무릎을 꿇는다"는 표현이 종종 들어 있다. 살아가면서 무릎을 꿇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는 것이고, 자기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는다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절대 순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개월 전쯤에도 "복음화는 무릎을 꿇고 하는 것"(신학생과 남녀 수도자 지원자들과 함께 한 미사 강론에서, 2013년 7월 7일)이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선포를 통한 겸허한 자세를 호소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피아를 향해 전혀 다른 차원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대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제발 부탁건대, 회개하여 생활을 바꾸십시오. 악행을 멈추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선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여러분에게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더러운 일과 마피아의 살인으로 지금 여러분이 얻은 많은 권력과 돈, 피 묻은 돈과 권력은 다음 생애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아직 회개할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십시오"(2014년 3월 21일 반(反)마피아 시민단체 '리베라(Libera)'와 함께 한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하느님 앞에서, 자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복음화도 무릎을 꿇고 해야 하고, 사고 치는 자식들에게 제발 정신 차리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다. 단 한 자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부모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오는 6월 4일 기초 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일을 앞두고, 이런 마음으로 국민들을 대해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무리한 바람일까? cpbc2014.04.0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14>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9699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 에드워드 스힐벡스 (중)신앙 진리, 고정된 교의 아닌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모든 역사를 하느님 구원 의지로 봤다.에드워드 스힐벡스가 신학에 몸담기 시작할 때, 서구에서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한창이었다. 신학자들은 '신앙과 경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다루기 시작했다. 신앙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데, 근대로 들어오면서 교회 안에서 이 관계를 극단적으로 다루는 성향들이 대립했다. 이에 스힐벡스는 '신앙과 경험'의 관계 핵심이 되는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의 대표 서적을 통해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전반기에는 '경험'이라는 개념이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았고 신학 방법론은 연역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교리 전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앙의 역사성에 주의함으로써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반기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사는 하느님이 인간 만나는 방법 그는 전반기 대표작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에서 주체와 객체의 '만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당시 이분화된 신학을 뛰어넘고자 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됐기에 인간은 하느님께로 갈 수는 있으나, 창조물로써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없고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인간의 원의는 하느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은총을 전달하실 때 인간의 특성인 육체성을 중재로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강생하셨고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당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의 인간 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인간의 가시성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강생의 논리로써 인간을 만나신다. 즉 성사로서 인간에게 오신다는 것이다. 스힐벡스는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육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만남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오시어 동시대인들을 만나고 구원의 현실을 인간이 알 수 있게 보여 주셨다. 승천하신 후에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다. 성사는 예수님 삶의 연장, 즉 강생 논리의 연장으로 그리스도와 인간을 인간적 차원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성사란 역사 안에 눈에 보이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다. 성사를 통해서 예수님 삶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강생 신비는 상실되기 때문이다. 특히 18~19세기 성사에 대한 이해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스힐벡스는 물리적 측면으로 이해하던 성체의 개념을 만남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도록 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리스도론 삼부작 스힐벡스는 1967년에 신학 방법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세속화된 사회에 속하는 현대인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이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언어에 적합하게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가톨릭 신학에 대두되기 시작한 해석학의 부족을 절감하고 이를 신학에 적용, 그리스도교 전통이 어떻게 변천됐는지를 보고 오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했다. 문화적 상황이 바뀌면 교회의 진리 또한 그 상황에 맞도록 표현돼야 하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독트린(doctrine)으로 고정화돼 상황에 따라 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세속화가 교리를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상황에 맞는 신앙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봤다. 그에게 신학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계시와 교회의 전통'이고 다른 축은 '인간의 경험'이다. 이 두 축을 연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신학이 살아있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그의 방대한 삼부작을 통해 잘 볼 수가 있다. 하느님 말씀은 인간이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말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느님 계시를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 말씀 전달의 매개체가 된다는 의미로, 하느님 계시는 다른 세계가 아닌 인간세계를 매개체로 한 경험을 통해 전달된다. 이는 하느님 계시가 역사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신앙 경험은 일반적인 경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에 이미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바로 예수를 근원으로 하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인간 예수께로 돌려 그분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 작품 「예수 : 살아계신 분의 이야기」(1974)는 교의(dogma)를 통해서가 아닌, 인간 역사 안으로 오신 인간 나자렛 예수를 재발견하기 위해 복음에 나타난 그분의 삶을 가까이 살펴본 저서다. 또한 복음 메시지는 신앙 고백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분석한다. 역사 비판으로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인간 예수와 그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재발견한 것이다.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 없이는 역사의 예수는 없고, 또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사건 없이는 신앙 공동체가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며 성경과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로써 당시 신앙 공동체의 성경 메시지 접근과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채 학구적으로만 성경을 분석하는 성서학자들의 성경 접근과 엄청난 차이를 줄이고, 이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성서학자들은 교의적 문제를 멀리했고 교의신학자들은 현대 성서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몰랐는데, 스힐벡스는 교의신학과 성서학을 연결하는 노력을 했다. 두 번째 저서 「그리스도 : 주님으로서의 예수 경험」(1977)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예수를 만난 제자들 경험에서 시작됐기에 어떻게 이 구원의 은총이 세상을 매개체로 해 이들이 은총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바오로와 요한의 글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은총을 경험하고 그분이 그리스도시고 주님이심을 고백하는지, 어떻게 주님의 경험이 은총의 경험이자 해방을 위한 구체적 실천이 되는지를 봤다. 그리고 이 분석을 통해 교회의 권위와 전통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앙 경험이 정당성을 부여받는지 분석했다. 스힐벡스는 이 두 저서를 통해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면서 신성은 인간 밖의 것 혹은 인간 위의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인간 안에서 인간의 것으로 계시됨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스도교는 해석된 구원경험의 역사이지 교회의 관념화된 가르침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줬다.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세상의 경험에 교회가 열려있게 하려고 했다. 삼부작의 마지막 저서는 교회에 관한 것으로 「크리스천 경험의 실천 : 교회」(1989)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교회론은 마지막 장에 나온다. 구원과 계시의 역사, 일반 경험과 계시 경험, 전통과 상황과의 관계, 현대 사회 분석 등을 통해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론을 다룬 뒤 교회 목적과 위치를 보고자 했다. 타 종교와 관계, 생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창조론 등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 저서에서 스힐벡스는 신앙의 진리는 고정된 교회 교의로서 신앙인들이 암기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한다. 따라서 신앙 고백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형태의 고백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오로 사도, 토마스 아퀴나스, 아빌라의 대 데레사, 로메로 주교 등의 수많은 신앙인이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신앙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다양한 신앙 고백에서 우리는 인간과 하느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세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근본주의자가 돼서 신앙을 마치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돼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구원의 메시지는 교리를 포함하지만 교리가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이 우선적이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구원의 경험을 그 당시 문화를 통해서 해석한 말씀인 것처럼 오늘 우리의 현대 문화를 통해서 새로운 신앙 언어는 재창출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저서에서 그의 넓게 열린 신학적 견지는 구체적인 실천과 연관 지어 고찰됨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와 전 인류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후자 안에서 전자의 역사를 보고자 하였다. 왜냐면 모든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스힐벡스는 그 어떤 상황도 하느님의 의지 밖에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인류의 전체 역사를 염두에 두고 고찰한 신학자다. 김미정 수녀(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파리 예수회대 교수)약력 ▲2013년 논문 : 「타 종교와의 관계-바티칸공의회 : 한시작의 시작」(파리), 「한국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창조주 하느님 개념」(브뤼셀)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신학과 사상) 등 다수 ▲저서 : 「죄와 조화」(파리), 불어공동 저서 : 「평화와 폭력 가운데」, 「이냐시오 영성의 식별과 선교」, 「전통의 좋은 사용」 등 다수. ▲번역서 : 「말씀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 이냐시오 영성 수련에 따른 기도 지침서」 cpbc2013.08.20
![[성경 속 궁금증] 43. 팔리움은 왜 양털로 만들까?](//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5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3. 팔리움은 왜 양털로 만들까?양, 희생의 신앙적 의미 갖고 있어 교황과 대주교 임무 상징에 어울려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이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서 교황님께 팔리움을 받았다. 이후 일간지 등에 팔리움에 관한 사진과 기사 등이 실렸다. 팔리움은 우리 신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단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팔리움이 상위권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양털로 짜는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위와 권한을 상징한다. 팔리움(pallium)은 라틴어 단어인데, 우리말로는 쉽게 옮기기 어려워 발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팔리움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제의(祭衣) 위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좁은 고리 모양의 양털띠다. 그런데 왜 팔리움은 양털로 짜는 것일까? 물론 교회의 오랜 전통이지만 양이 갖는 성경적 특성도 한몫한다고 생각된다. 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양은 제사의 희생물로 애용됐다. 이스라엘에서 어린양은 가장 흔한 희생 제물이었다. 제단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희생의 어린양이 한 마리씩 바쳐졌다(탈출 29,38-39). 어린양은 고대 근동지역과 지중해 연안에서 제사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물이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해 번제물로 하느님께 바쳤다. 그리고 유월절의 어린양은 대속물이었다(탈출 12,1-14). 하느님은 집 문설주에 칠해진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사람들 집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게 하셨다. 이처럼 어린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속죄 수단이었다. 신약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는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하고 말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은 희생과 속죄라는 신앙적 의미를 지닌 동물이었다. 양은 또한 유목민에게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동물이었다. 양은 고기와 젖을 사람에게 제공하고 털을 옷감 재료로 제공함으로써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한다.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명주나 면직물이 없어 거의 모직물만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밤에 잘 때 덮는 담요와 같은 것도 모직이었다. 숫양의 뿔은 액체를 넣는 그릇으로 사용됐다. 이처럼 양은 고기는 식용으로, 털과 가죽도 의복 등 다방면으로 사용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유용한 동물이었다. 성경에서도 양이 무려 500회 이상이나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은 양떼와 목자로 자주 비유됐다. 성경은 양털의 흰색을 하느님 자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위와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흰 양털로 짠다. 팔리움은 대주교의 경우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교황의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고, 교황과의 일치를 보여주는 외적 표시가 된다. 양털이야말로 팔리움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2.07.17
![[출판] 교황 저서 나자렛 예수, 역사적 사실 성경적 믿음 근거로 예수 참 모습 그려](//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8134_1.0_titleImage_1.jpg)
[출판] 교황 저서 나자렛 예수, 역사적 사실 성경적 믿음 근거로 예수 참 모습 그려교황, 역사비평적 해석 넘어 새로운 통찰로 예수 조명나자렛 예수 1,2(교황 베네딕토 16세 지음/박상래 이진수 신부 옮김/바오로딸/2만 3000원(1권), 2만 원(2권)) "나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복음서들의 예수를, 진정한 예수, 본격적 의미의 '역사적 예수'로 소개하는 일을 한번 시도하고 싶었다. (…) 예수는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사신다. 친구로서뿐 아니라 아들로서 그렇게 사신다. 그분은 가장 내밀한 일치를 이루면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사신다. 이 점을 바탕으로 해서 시작해야만 비로소 예수의 참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나자렛 예수」 1권을 발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책 서문에서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점 깊어만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인간 예수를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고, 그 하느님을 근본으로 하는 진정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예수 공생활을 다룬 「나자렛 예수」 1권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된 지 1년 만인 2006년 선보인 교황 첫 개인저서로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발간 즉시 30개 국 언어로 번역됐고, 각국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교황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20년 넘게 지내며 현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명성이 높다. 이 책은 추기경 시절부터 준비해 온 책으로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 궁금증을 파고든다. 책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거룩한 변모를 할 때까지 예수 삶을 다루고 있다. 세례와 유혹, 하느님 나라 선포 등 공생활을 상세히 보여주며 인간 예수가 참 하느님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산상설교'와 '주님의 기도'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에 비춰 설명함으로써 2000년 전 주님 말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2011년 펴낸 2권은 예수 수난과 죽음, 부활을 담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1권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과 성경적 믿음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순한 역사비평적 해석을 넘어 새로운 방법론적 통찰'로 사실과 신앙 사이에 다리를 세우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나자렛 예수」는 올해 12월 예수 탄생과 유년 시절을 담은 3권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교황은 "복음서의 예수야말로 역사적으로 타당하고 납득이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 책은) 그분과 살아있는 관계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오로딸출판사는 교황이 선포한 '신앙의 해'를 기념하며 「나자렛 예수」 1ㆍ2권을 나란히 선보였다. 1권은 2010년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 바 있지만, 바오로딸 출판사가 새롭게 판권계약을 맺었다. 독일어권에서 신학을 전공한 박상래(대전교구 원로사목자) 신부와 이진수(마산교구, 부산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각각 1권과 2권 번역을 맡았다. 한편 바오로딸 출판사는 27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북구 송중동 성바오로딸수도회 알베리오네센터에서 「나자렛 예수」 강연회와 작은 음악회를 마련한다. 2권을 번역한 이진수 신부가 책에 담긴 예수 생애에 관해 강의한다. 작은 음악회에는 테너 박승희씨가 출연해 헨델의 메시아를 들려준다. 선착순 200명. 참석 문의 : 02-944-0849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10.09
![[생활속의 복음]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709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주님 수난 성지 주일(마태 26,14-27,66)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교회는 오늘부터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위해 먼 길을 함께 가줄 친구는 있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구원자 예수'라는 노래를 한번 묵상하겠습니다.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위해 주님 불렀는데/ 매 자리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나의 이름 잊지 않으셨네./ 가슴 메어질 듯 그 음성 나를 부르시네. 내가 이해받기를 바랐고/ 내가 위로받기 원했는데/ 못자국 선명하신 주님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 고통 중에도/ 내 이름 가슴에 안으셨네./ 녹아내릴 듯한 그 눈길 내게 말하시네. (후렴)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부족해도 가난해도 아파 신음 할 때도/ 사랑한다. 내가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최연숙 아가타 자매입니다. 그녀는 부산에서 태어나 45년을 살았고, 스물한 살에 눈이 멀었습니다. 원인은 당뇨 합병증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소아당뇨 진단을 받은 뒤 끝을 알 수 없는 치료가 시작됐지만 1984년 겨울, 그녀의 꽃다운 시절은 검은 장막에 갇혀버렸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뒤 아가타씨는 교리를 배워 보례와 견진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앞날을 고민하던 중, 대세를 주선해 준 친척 수녀에게서 생활성가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자연을 노래한 것이 유달리 많았습니다. "실명하고 느낀 게 먼지, 때, 쓰레기더미에도 제각기 다른 색이 있더군요. 전엔 지저분하고 더럽던 모든 게 지금 생각하면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요." "햇살의 소리 들어보셨어요? 눈 감고 가만히 있어보세요. 공기의 움직임? 어떤 소리가 느껴져요. 숲에 햇살이 내려앉고 나는 분자가 돼 바람과 섞이는 느낌!" 사실 아가타씨의 일상은 불편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샘솟는 노래를 얼른 적지 못해 답답하고, 남들이 잘못 받아쓴 악보가 돌아다녀도 뒤늦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끼니마다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하고, 인도자 없이는 집 밖에 멀리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제 십자가를 그냥 껴안고, 때로는 잊고, 이따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나는 완전하신 하느님을 못 믿어도 그분은 변함없이 나를 믿으신다'는 것 하나만 믿으며, 아가타씨는 오늘도 아름다운 노래를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수난 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 자신의 꿈과 다른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군중,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대사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도둑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또한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내게 피해가 온다 싶으면,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이 있다면 기꺼이 신앙의 이름표를 떼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십자가, 희생, 겸손, 사랑이라는 길이 있지만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꿈을 쫓아갈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쉽게 우리의 신앙을 팔아넘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려고 가난한 이들의 외침, 절망 중에 있는 이들의 절규, 아파하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등장 인물 중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준 베로니카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 도망갔지만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함께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2000년 전에 내가 예수님 수난의 길을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지금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자리를 걸어가고 있을까요? cpbc2014.04.10
![[출판]책꽂이-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 입문 등](//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5023_1.2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 입문 등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 입문 (페데리코 루이스 살바도르 신부 지음/이종욱 신부 옮김/기쁜소식/5000원)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 분야에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신학자 페데리코 루이스 살바도르(스페인, 맨발 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쓴 책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성을 성인의 생애와 살아온 환경, 저서 등을 통해 살펴봤다. 신비가이자 신학자로서 세운 성과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물론 성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어법과 문체의 특징, 상징의 의미 등을 다뤘다. 성인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 실존, 사랑, 고통, 죽음, 영성생활 등에 관한 문제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가르멜회 영성을 소책자 분량으로 담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가르멜의 향기' 시리즈 두 번째 권이다. 크리스토퍼 하루 3분 묵상 (제임스 켈러 지음/염봉덕 옮김/가톨릭출판사/1만 2000원) 예화, 성경말씀, 기도로 구성된 짧은 묵상글 모음집이다. 예화로 마음의 문을 열고,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가짐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마음을 기도로 다짐하게 한다. 저자 제임스 켈러(1900~1977, 미국) 신부는 '하루에 3분 묵상' 시리즈를 발간하며 믿음과 영성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시리즈(3~7권)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글들만을 모아 새롭게 출판한 것. 매일의 삶에서 하느님을 되새기고 묵상하도록 이끈다. 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매일의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 (백승우 외 4인 지음/시금치/1만 1000원) 유기농산물 소비는 점차 늘고 있지만 유기농사꾼들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왜곡된 의사소통과 소원한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고 대안을 제시한다. 유기농업을 온전히 알고 소비한다면 유기농업이 우리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농사꾼을 비롯해 국제유기심사원, 도시농부, 생협활동가, 환경운동가로,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유기농 인증과정, 유기농산물 소비의 필요성과 생태주의 등에 대해 두루 소개한다. 유기농업의 발전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손에 달려 있다. 세 번째 집 (이경자 지음/문학동네/1만 2000원) 북한이탈 여성 성옥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세밀히 다룬 소설이다. 1973년 등단한 이래 한무숙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고정희상 등을 수상하며 위기에 처한 존재들의 삶을 그려내는 데 주력해온 이경자(안나) 소설가의 신작. 작가는 북한이탈주민 성옥과 집 짓는 남자 인호의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와 집에 관한 철학을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이어 또 다른 북한이탈주민 명숙과 혜교, 남혁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유형의 북한이탈주민 삶을 탁월하게 형상화해낸다. 결국 집이란 작은 육신을 누이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영원히 그리운 정신의 고향이다. 자동차와 거짓말 (오종훈 지음/클/1만 4000원) 20년 경력의 자동차 전문기자 오종훈(노엘)씨가 직접 경험하고 취재해 밝히는 자동차 업계의 '달콤한 거짓말, 불편한 진실'이다. 오씨는 자동차를 사고팔고, 보험 들고, 수리하는 모든 과정에 거짓이 늘 함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소비자들 눈과 귀를 가리는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운전자들이 흔히 속는 영업사원의 거짓말, 중고차에 관한 거짓말, 자동차보험에 관한 거짓말, 자동차 정비에 관한 거짓말을 구체적 예를 들어가며 거짓 정보를 골라주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오로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비자만을 생각하며 쓴 책이다. 박수정 기자 cpbc2013.09.24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40> 덕](//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2348_1.1_titleImage_1.jpg)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덕선을 선택하고 행동하게 하는 근간 향주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해주는 덕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을 말한다. 사진은 이웃 사랑의 모범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현장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 【CNS】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덕(德)에 관해 씁니다.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덕에 대해 알아봅니다. 덕이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1803항)입니다. 덕은 선한 일을 하게 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모든 능력을 다해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사람은 구체적 행동을 통해 선을 추구하고 선을 선택합니다. 덕은 크게 인간적인 덕 혹은 윤리덕과 하느님을 향한 덕 혹은 향주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덕(1804~1811, 1833~183 9항) 인간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지성이나 의지에서 확고한 태도를 보입니다. 또 마음가짐이 안정돼 있고 장점들이 몸에 배 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 덕성스러운 사람은 자유로이 선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덕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노력, 윤리적 노력으로 획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덕을 쌓는다 혹은 덕행을 닦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다른 모든 덕의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네 가지 덕이 있습니다. 현명, 정의, 용기, 절제입니다. 다른 모든 덕은 이 네 가지 덕을 중심으로 묶을 수 있어서 이 네 가지 덕을 사추덕(四樞德)이라고 합니다. 현명 : "모든 상황에서 참된 선을 식별하고 그것을 실행할 올바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천 이성을 준비시키는 덕"(1806항)입니다. 현명은 양심의 판단을 올바로 내릴 수 있도록 이끌고 행동을 올바로 내리도록 해줍니다. 말하자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규범과 척도를 일러줍니다. 그래서 현명을 '덕의 마부(馬夫)'라고 부릅니다. 이 현명의 덕을 통해 우리는 구체적 상황에서 윤리적 원칙을 오류 없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 이루어야 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정의 :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1807항)를 말합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의로운" 사람이 정의의 덕을 지닌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주인 여러분, 종들을 정당하고 공정하게 다루십시오. 여러분에게도 하늘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4,1) 하고 당부하는데, 정의의 덕을 실천하라는 당부입니다. 용기 : "어려움 중에도 단호하고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윤리적 덕"(1808항)을 말합니다. 용기는 유혹을 이기고 장애를 극복하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주고 공포,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겨내도록 해주는 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절제 : "쾌락의 유혹을 조절하고 창조된 재화를 사용하는 데에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윤리적 덕"(1809항) 입니다. 절제의 덕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이 선을 향하도록 하고 조심성을 유지합니다. 사추덕을 포함한 모든 인간적인 덕 곧 윤리적 덕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써 정화되고 고양됩니다. 죄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인간은 도덕적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선물은 우리가 꾸준하게 덕을 추구하도록 필요한 은총을 줍니다. 우리는 이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성사의 도움을 받고, 선을 사랑하고 악을 경계하라는 성령의 호소를 따라야 합니다. 향주덕(1812~1829, 1840~1845항) 인간적인 덕들은 인간의 능력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데에 적절하게 해주는 향주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향주덕은 하느님과 직접 관계되는 덕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신 삼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1812항) 덕입니다. 향주덕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의 기초가 되고 모든 윤리덕에 의미와 생명을 줍니다. 향주덕에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 :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과 거룩한 교회가 우리에게 믿으라고 계시하는 모든 것을 믿는"(1842항) 향주덕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 뜻을 알고 실천하고자 애씁니다. 또 살아 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희망과 사랑이 없는 믿음은 그 사람을 그리스도께 완전하게 결합시켜 주지 못합니다. 참된 믿음은 희망과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믿음을 간직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이를 담대하게 고백하고 확신에 차 증언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희망 :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1817항) 향주덕을 말합니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넣어주신 행복을 바라는 덕"(1818항)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실망하지 않게 보호하고 △버림받을 때 언제나 힘을 북돋아주며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열어주고 △시련 중에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 희망은 기도, 특히 주님의 기도 안에서 표현되며 지탱됩니다. 사랑 : "하느님만을 위하여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게 하는"(1822항) 향주덕입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계명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며 율법의 완성"(1824항)입니다. 사랑은 모든 덕의 바탕이며 귀결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향주덕 중에서 으뜸'이라고 노래합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사랑의 열매는 기쁨과 평화와 자비이며, 사랑은 친절과 우정 어린 충고를 요구합니다. 성령의 선물과 열매(1830~1832항)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성령의 선물로 지탱됩니다. 흔히 '성령 칠은'이라고 하는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은 지혜ㆍ통찰ㆍ의견ㆍ용기ㆍ지식ㆍ공경ㆍ경외입니다. 또 성령의 열매로 성경은 아홉 가지를 꼽습니다. 사랑ㆍ기쁨ㆍ평화ㆍ인내ㆍ호의(친절)ㆍ선의(선행)ㆍ성실(진실)ㆍ온유ㆍ절제가 그것입니다(갈라 5,22-23).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4.01.14

정통 교회에 '추수꾼' 잠입시켜 신자 포섭[기획] 신천지교회의 실태와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 신천지 포교전략과 대처방법<연재순서> 1. 신천지는 무엇인가? 2. 신천지 포교전략, 예방과 대처 방법 3.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 4. 사목적 제언신자들이 신천지에 포섭되는 것을 막으려면 사목자들이 신천지 정체와 그들의 접근방법 등에 대해 신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줘야 한다. 한 어머니가 신천지에 포섭된 딸을 돌려달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신천지의 포교전략과 수법은 기상천외하며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모략의 하나님'을 표방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교수법은 악랄하기까지 하다. 신천지의 '포교에 합당한 자'에 대한 기준은 △종교는 그리스도교 △나이 20~60살 △건강하고 빚이 없는 사람 등이다. 신천지는 핵심적 교리를 유지하면서 효과적인 포교와 성장을 위해 친사회적 이미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101가지 궁금한 내용을 담은 '궁금증 유발멘트'를 통한 전략도 쓰고 있다. '궁금증 유발멘트'는 성경 내용의 의문을 풀어주기보다는 포교 대상자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켜 다음 약속을 잡고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한 수단이다. 신천지 탈퇴자들 증언에 따르면, 신천지는 지역 교회 추수꾼 전략 외에 기독교초교파신문 천지일보 운영과 신천지 신도를 교계 언론에 침투시키는 방법으로 기독교계 언론에도 세력을 넓혀왔다. 신천지는 공개포교를 통해 훨씬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신천지임을 알고 성경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신천지 복음방이나 신학원에 갈 수 있기에 모략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필요 없고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모략포교는 '진리를 전하는데 왜 거짓말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위축되지만, 공개포교는 스스로 신천지에 대해 당당함을 느끼고 열매를 맺을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공개포교는 신도들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돼 앞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추수꾼(위장신자)들은 교회, 대형마트, 문화센터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친교를 가장하여 접근한다. 자주 전화를 하며 무료성경공부를 하자고 권한다. 신천지교회에서는 전국적으로 무료성경신학원을 운영하면서 기성 교인들을 상대로 자신들 교리를 설파하고 있다. 무료성경신학원 수강시간은 월ㆍ화ㆍ목ㆍ금요일 주 4회가 일반적이고, 교육은 초등(2개월)과 중등(2개월) 및 고등(2개월) 등 3단계로 구분되며 총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처음 4개월 동안은 정통교회 성경해석과는 전혀 다른 소위 '비유풀이'라는 것으로 자신들 해석을 철저하게 주입시킨다. 5개월 째 되는 날부터 곧바로 요한계시록 풀이로 들어가는데, 이때 비로소 이만희와 신천지교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며 이만희가 메시아임을 가르친다. 이 교육 과정을 거치면 신천지교회 교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수지침, 이(耳)침 무료강의 등을 내걸어 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접근한다. 또한 기존 교회에 새신자로 가장해 2인 1조로 침투한다. 주로 기성교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 잘 모르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 권위 있는 사람 등에게 교묘히 접근하고 있다. 신천지는 전략적 인간관계를 통해 개개인에게 '맞춤 접근'을 한다. 따라서 이들이 접근할 때는 단호하게 거절을 해야 하며 절대 다른 곳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신천지는 훈련된 추수꾼을 본당에 잠입시켜 신자들을 현혹하고, 결국은 교회 분열을 초래하는 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러 교회 근처를 맴돌다가 신자들 권유를 받아 교회 내로 들어오거나 △신천지에 포섭된 후에 다니던 교회에서 그대로 생활하며 추수꾼으로 활동하게 한다. 또 △정통교회에 잠입한 추수꾼이 다른 신천지 신자를 교회에 데려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추수꾼을 잠입시키고 있다. 대부분 추수꾼들은 본당 안에서 사목회장, 구역장, 반장 등을 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정도 직위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유혹하기 쉽고, 직책을 맡으면 신자들의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신천지에 포섭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본당 주임신부가 공식적인 성경공부에만 참석할 수 있도록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또 각 구역ㆍ반별로 실시하는 소공동체 모임에서 복음나누기 외에 의심이 가는 성경공부 및 기타 나눔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당 및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세미나를 제외하고 별도의 시설 및 장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MBTI 검사, 성격분석, 미술치료, 도형분석 등)에 참석하지 말아야 하고, 신천지 교인들과 대화할 때 성경말씀으로 맞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에서는 세미나를 열어 신천지 관련 기관의 위치나 포교방법, 추수꾼에 대한 내용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주보 등에 공지하면 좋을 것이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3.04.02
[사설] 신앙의 해, 새로운 복음화의 출발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포한 '신앙의 해'가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막을 내린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 기념일인 2012년 10월 11일 시작했다. 여기에는 신앙의 해가 오늘날 교회생활의 핵심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기회이며,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신앙 쇄신을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로 여긴 베네딕토 16세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교의와 교회 가르침은 항상 '재해석'하고 '재수용'해야 한다. 사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된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고, 오늘날 세계인의 의식, 문화, 환경은 당시와 분명 다르다. 아직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교회 안에 정착되고 있는 과정이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상황에서 재해석하고 재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의 출발점이 신앙의 해이며, 그 동력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최대 의제인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식, 새로운 표현'의 새 복음화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의 해 동안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흐트러진 신앙의 틀을 새롭게 세우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노력해 왔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대부분 교구는 주보와 누리방, 각종 강좌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교육했다. 또 성경 읽기ㆍ쓰기, 소공동체, 신앙대회, 교리경시대회 등을 통해 신자들의 허약한 신앙을 강화해 왔다. 신앙의 해는 한 해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을 쇄신하고 성숙시키는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각 교구도 이에 부응해 새해에 한층 강화된 프로그램으로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현상에 급급하지 않고 질적 성장을 내다보는 성숙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신앙의 해가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한국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cpbc2013.11.19
![[성경 속 궁금증] 47. 제사장은 왜 특별한 옷을 입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32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47. 제사장은 왜 특별한 옷을 입었을까?일반 백성과 구별해 위엄 나타내고 하느님 섬기는 소명받은 자 드러내촛대에 기름을 붓는 제사장 아론(1278년). 사람이 공적으로 입는 옷은 보통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구약시대 제사장 의복을 보면 황금을 사용할 정도로 화려했다. 당시 사람들은 황금이 모든 물질과 생명의 가치 위에 군림하는 영원한 영광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제사장 옷은 보통 자주색과 푸른색, 붉은색을 섞어서 짠 천을 이용해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다(탈출 26-28장). 구약의 사제들은 경신례를 행할 때 예복을 입어 자신들이 성직자임을 표현했다. 특별한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사제가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일상생활을 떠나 제사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표현하고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사제가 특별한 의복을 입는 것은 일반 백성과 구별돼 거룩하게 하느님 앞에 제사를 인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제사장이 입은 화려한 옷은 일반인과 구별된 사제들이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식을 새롭게 했다. 특별히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 하느님을 섬기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제사장 의복은 존엄과 영광의 의미를 지닌다. 제사장이 이 제복을 갖춰 입지 않고는 성막에 들어가지 못했고 제사도 드리지 못했다. 만약 제사장이 바른 제복을 입지 않고 사제의 일을 하려고 하면 죽임을 당했다. 사제가 특별한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사장이 옷을 다 입으면 머리에 기름을 부었는데, 이것도 세속과 거룩하게 구별됨을 나타낸다. 구약성경을 보면 제사장 의복은 흉패, 에폿, 겉옷, 반포 속옷, 관, 띠 등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에폿은 대제사장이 흉패 밑에 입었던 아주 화려하고 정교한 앞치마와 유사한 옷이었다. 그리고 에폿은 두 부분으로 돼 있는데 하나는 등에, 하나는 가슴에 입었다. "그들은 금과, 자주와 자홍과 다홍 실, 그리고 가늘게 꼰 아마실로 정교하게 에폿을 만들어야 한다. 에폿에 멜빵을 두 개 붙이는데, 그 양쪽 끝에 붙여라"(탈출 28,6-7). 에폿 하나만 보더라도 제사장 의복을 얼마나 정성을 들여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상상이 간다. "에폿 위에 달 띠는 같은 솜씨로 금과, 자주와 자홍과 다홍 실, 그리고 가늘게 꼰 아마실로 만들어 에폿에다 한데 붙이게 하여라. 너는 마노 보석 두 개를 가져다 거기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라. 태어난 순서에 따라 한 보석에 여섯 이름, 다른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을 새겨라. 보석공이 인장 반지를 새기듯, 두 보석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라. 그리고 그 보석들을 금테두리에 박아라"(탈출 28,8-11).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때 더 중요한 것은 외적 의복보다 마음이다. 베드로 사도는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거룩한 사제가 되라고 가르치면서 영적 부분을 강조한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옷을 입느냐보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더 중요하다. 퇴사자2201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