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의 고통, 하느님께 모두 맡기세요"아일랜드 '라헬의 포도원' 총책임자 베르나데트 굴딩 여사낙태 경험자로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베르나데트 굴딩 여사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 아이는 살아 있었을 겁니다. 제가 한 아이를 낙태시킴으로써, 이후 이어질 수 있는 수많은 세대가 종결됐습니다." 1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별관 강의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소장 정재우 신부)가 마련한 특별세미나에서 아일랜드 '라헬의 포도원' 프로그램(낙태를 위한 치유 피정) 총책임자인 베르나데트 굴딩 여사는 "낙태한 여성에게 오는 첫 번째 반응은 고통과 슬픔, 죄책감과 수치감"이라며 "이것들을 상자에 넣어 잘 정리하는 게 중요하지만 수많은 낙태 여성들은 이것을 정리하는 고통에 압도당해 스스로 고통받아야 한다고 믿고, 자신에게 벌주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다"면서 입을 열었다. 10년 동안 아일랜드에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울어준 굴딩 여사는 19세 때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했다. 굴딩 여사는 "저는 낙태를 합법화시켰고, 낙태하고 나니 문제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우울증, 자살충동, 공황발작 등을 일으켰고 제 손아귀 밖으로 아기가 떨어지는 악몽을 꾸었습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아 울음소리를 내는 인형도 샀습니다. 제가 잃은 것은 세포 덩어리가 아닌 자녀였습니다." 굴딩 여사는 "아무도 내게 낙태의 위험을 알려주지 않았고, 다른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굴딩 여사는 낙태하고 몇 년 후, 결혼할 남자를 만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남편의 따뜻한 지지와 격려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는 자녀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과 거래했어요. 나의 죄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벌주지 마시라고. 둘째가 한 살이 됐을 때 아파서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고, 저는 이 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낙태 때문에 주어진 고난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굴딩 여사는 20년 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친한 친구 수녀에게 털어놨다. 친구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이야기했다. 그가 눈을 뜨자 친구는 울고 있었다. 친구는 "고통을 낭비하지 말고, 그 고통을 하느님께 드려 선한 일에 사용하라"고 말해줬다. 굴딩 여사는 친구 권유대로 고해성사를 했고, 낙태한 아이 이름을 '가브리엘'이라고 지었다. 기도 중에 "예수님을 만나 옷자락을 만지는 체험을 하면서 예수님께 죄책감과 슬픔을 드렸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내 죄를 눈처럼 희게 하셨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라헬의 포도원'을 알게 된 그는 2003년 아일랜드에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라헬의 포도원 피정을 시작했다. 피정을 통해 여성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슬픔을 서로 공개하고, 죄책감과 수치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이때 함께한 이들의 위안과 정신적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여성들은 자신이 낙태한 아이의 심장이 뛰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낙태를 낙태 그 자체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낙태에 대한 고통이 치유되지 않고 회복되지 않으면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 굴딩 여사는 자신의 삶이 낙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1일 한국에 온 굴딩 여사는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치유 피정을 열고, 19일 인천교구 답동성당에서 강연을 한 후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 라헬의 포도원(Rachel's Vinyard)이란?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한 치유 피정이다. 1986년 미국의 가톨릭 심리치료사인 데레사 버크 박사가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치유 피정을 시작했다. 피정은 '간음한 여인'(요한 8,10-11)에 대한 성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추모미사도 봉헌한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레바논 등 20여 개국에서 라헬의 포도원 피정을 실시하고 있다. 라헬의 포도원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구약성경의 여인 '라헬'(예레 31,15)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에서는 1년 4차례 라헬의 포도원 주말 피정이 비공개로 열리고 있다. 11월에는 8~10일 열린다. 문의 및 신청 : seek2020@hanmail.net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3.10.22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10>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93_1.0_titleImage_1.jpg)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 온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성당에서 많이 만났다. 함께 자랐고, 함께 기도했으며, 함께 뛰놀았던 친구들이 다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고 서로의 형편은 달랐지만, 그래도 성당 친구들이 있어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중심이며, 성장 과정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성당이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많은 곳이 본당이지만, 한편으론 그 안에서 큰 실망을 하거나 상처받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 믿었던 교우로부터 상처받고 신앙을 잃을 정도로 상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자 간의 다툼은 금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호형호제 하거나 대부대자 하며 친하게 지내다가도 결국엔 금전 문제 때문에 다툼이 시작되곤 한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지만, 마지막은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6ㆍ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어렵게 타지 생활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톨릭 신앙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아무것에도 의지할 데 없던 시절, 아버지는 신앙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극복할 힘을 얻곤 하셨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모습은 성당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하시거나 미사 중에 전례 봉사를 하시는 모습이었고, 집에서는 전기ㆍ물ㆍ기름 절약하시는 검소한 분이셨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고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우리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크게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금전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 됐을 때 약국을 운영하는 대자에게 거금을 빌려 주었는데 그분 사업이 악화됐고 결국엔 단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이후 아버지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대자에게 돈을 빌려 준 사실로 잔소리를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평상시 절약하고 아껴 모은 돈으로 아내나 자식에게는 그렇게 인색하더니 남 좋은 일을 했다'는 것, '그 돈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하셨다. "여보, 오죽하면 그 친구가 그렇게 하겠소. 그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오! 형편이 나아지면 반드시 갚을 것이요. 나는 그 친구를 믿소."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한순간에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우들 사이에서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많았기에 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면 그 상처는 더 크게 남는다. 어찌 보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도 이러한 믿음과 배신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약성경 안에 나타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일방적 짝사랑의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모든 것을 인간에게 믿고 맡기셨지만, 교만하고 죄 많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는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간추린 사회교리」 105항 참조). 아무리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그 피조물인 인간 안에는 하느님 모습이 살아 있다. 단지 인간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세상 안에 살면서 인간들에게 잊혀 가는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친 사람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분명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됐기에 그 자체로 사랑받을 존재며, 존중받을 만한 존재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의 대자는 아버지 빈소에도 찾아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의 눈에 띄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말없이 왔다 갔을지 모르겠다. 끝까지 대자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처럼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며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백영민2014.04.01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7>한스 큉(중)](//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3144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한스 큉(중)예수, 인간의 모든 차원과 관계에서 궁극의 척도 큉은 근대 사상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느님을 이해했다. 1970년대 큉의 신학적 관심은 교회론에서 그리스도론과 신론으로 옮겨진다. 큉은 1979년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헤겔의 철학을 신학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담은 「하느님의 육화(肉化)」를 출간했다. 이 연구는 큉이 박사학위를 끝낸 직후 교수 자격 논문으로 시작한 것인데, 중간에 여러 사정 때문에 십여 년이 지난 다음에 마무리됐다. 큉은 두 가지 목표를 두고 헤겔 연구를 수행했다.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의 도움으로 역동적인 신관(神觀)에 이르는 것과 △그리스도론 교의를 결정한 첫 번째 천년기 공의회 이래로 우리에게 전래된 정적(靜的)인 고전 그리스도론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심도 있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큉이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추구하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큉도 처음에는 다른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칼케돈공의회(451년)에 뿌리를 둔 전통적 그리스도론, 곧 삼위일체 교리에서 출발해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로고스와 인성이 어떻게 결합하느냐를 묻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추종했다. 또한 헤겔의 사변적 철학의 도움으로 이 그리스도론을 오늘에 맞게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튀빙겐대에서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에 몰두하면서 다른 방향의 그리스도론, 곧 역사적 예수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구상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런 전환은 「하느님의 육화(肉化)」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난다. "신약성경의 증언 그리고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에게는 예수와 그의 역사적인 메시지와 모습, 그의 삶과 운명, 역사적인 실재와 역사적인 영향으로부터 출발해서 이 인간 예수와 하느님과의 관계, 즉 그와 아버지와의 일치를 묻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하지 않을까? 간단히 얘기해서 사변적으로 혹은 교의적으로 위에서가 아니라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다." 큉은 이런 그리스도론이 전통적 그리스도론의 핵심 내용도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느님의 대리자이자 인간의 대리자인 예수 큉은 1974년 출판한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책의 축소판 「왜 그리스도인인가」는 1982년 우리말로 출판됐다, 사진)에서 현대 세계와 사상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전체적 해석을 시도하는 가운데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큉에 따르면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세계의 대(大)종교들과 '세속적' 인본주의 도전에 직면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따라서 한 사람의 신앙이든, 교회이든, 신학이든 그것이 어떤 사상이나 원칙이 아니라 분명히 한 분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돼 있을 때에야 '그리스도교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전제하에 큉은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그려낸다. 예수는 당시 유다사회 내 다른 어떤 종교 집단과도 동일시되지 않는, 모든 틀을 깨뜨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수의 핵심 관심사인 하느님 나라의 이해가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 능력으로 도래하지만, 그 나라는 인간에게 하느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회개를 요구한다. 예수는 하느님 뜻은 내용상으로 인간의 포괄적 행복에 있다고 보고, 절대화된 전통과 제도를 상대화하고 모든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한다. 특이하게도 예수는 원수 사랑을 선포하고 죄인에게 용서를 베풀면서 하느님을 '잃은 자들의 아버지'로 드러낸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은 "의인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인들의 하느님"이고, 이는 "전대미문의 신관 혁명"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당시 종교지도자층과 충돌이 일어났고, 그 충돌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끝난다. 십자가는 실패의 표지지만, 부활은 이런 판단을 뒤엎는다. 예수 부활로써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이 참된 하느님이고, 예수가 옳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스도론적 고백의 핵심은 예수가 인간의 모든 차원에서, 즉 인간이 하느님과 갖는 관계, 다른 인간과 갖는 관계에 최종 척도를 이룬다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에 대해서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대리자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열띤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가톨릭 신약학자 야콥 크래머(J.Kremer, 1924~2010) 신부는 긍정적 평가를 했다. "한스 큉은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결과를 탁월한 방식으로 이용하면서 나자렛 예수에 관한 신약성경의 진술을 그 당시로부터 이해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서술은 성서주석학 전문가조차도 다 전망하기 어려울 만큼 충만한 성서학 연구를 훌륭하게 사용한 것을 보여준다. 그는 성서학 연구를 결코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그들 마음을 끌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큉이 예수 당시의 상황과 예수의 행동과 가르침의 독특성에 관해서 서술한 부분은 근래에 나자렛 예수에 대해 저술된 것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칼 라너는 큉이 전개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 정당한 시도일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전통적 그리스도론의 내용을 충분히 담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다. "삼위일체, 로고스의 선재, 육화한 로고스의 우주적 의미가 큉의 그리스도론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간단히 아니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게는 절대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그리스도론의 교의들을 큉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긍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의 시도는 그 목표에 완전히 이르지는 못하고 그저 중간에 머물러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출발점은 정당하다. 그러나 나의 확신에 의하면 도달해야 하고, 도달할 수 있는 그리스도론의 충만함에 이르지는 못했다." 근대 무신론의 도전에 응답하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이해 큉은 1978년 신 문제를 다룬 「신은 존재하는가?」를 출간한다(책 전반부는 같은 제목으로 1994년 우리말로 번역됐다, 사진). 가톨릭교회는 피조물을 통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신을 인식할 수 있기에 비 신앙인에게도 신 인식이 가능하지만, 참된 하느님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쳐 왔다. 큉의 입장도 이와 대동소이한데, 독특한 점은 그것을 근대의 사상 흐름을 배경으로 재정립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헤겔을 거쳐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와 같은 근대 무신론자들 사상을 상세히 다룬다. 큉은 근대 무신론은 인간 행복을 위해 신과 종교를 거부한 '무신론적 인본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한 '철저한 인본주의'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큉은 근대 무신론의 귀결은 니체로 대표되는 허무주의라고 주장하면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시도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한 하느님을 긍정하는 길을 제시한다. 세계와 인간 모두를 포함하는 실재 전체는 근본적으로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불확실성을 지닌 실재 앞에서 인간은 긍정적 태도든 부정적 태도든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근본적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실재 자체가 양면성을 지녔기에 결단을 위한 명확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결단은 항상 모험이고, 자신을 거는 신뢰나 불(不)신뢰의 문제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근본 결단에는 실재에 대한 '근본 신뢰' 혹은 '근본 불신뢰'의 문제가 걸려있다. 큉은 이 둘 중에서 근본 신뢰는 인간의 본래적 성향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비존재보다는 존재를, 무의미보다는 의미를, 불행보다는 행복을 원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실재에 대한 긍정을 향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은 본성적으로 긍정으로 향해 있음에도 실재의 허무함을 고집할 수 있다. 하지만 허무주의자도 살기를 원한다면 실천에 있어서 항상 존재에 의존해야 하기에, 허무주의적 태도는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다. 따라서 근본 불신뢰는 실천에 있어 모순이 따르는 비합리적 태도다. 다음 단계로 근본 신뢰를 바탕으로 신 존재를 긍정하는 길이 제시된다. 실재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근본 신뢰를 가능하게 하지만, 실재 전체는 계속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다. 바로 여기서 불확실한 실재가 존재하게 된 조건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그것의 최종 근거 곧 실재를 지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신을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재의 불확실성 때문에 실재의 최종 근거로서 신을 인정하려면, 근본적으로 결단이 필요하고 이는 증명이 아니라 일종의 신뢰 행동이다. 양면성을 지닌 실재의 최종 근거를 인정하는 신뢰는 넓은 의미의 "신(神) 신앙", 혹은 근본 신뢰와 연관 지어서 "신-신뢰"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근본 신뢰와 신-신뢰를 통해 인지한 실재의 최종 근거로서 신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이에 비해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은 구체성과 분명함을 지닌다. "철학자들의 신 개념은 전체적으로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철학자들의 신은 이름 없이 머물러 있다. 그 신은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다. 성경의 하느님 신앙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하나의 이름을 지니고 결단을 요구한다. 그는 역사를 통해서 존재하는 이로, 즉 계속 존재할 것이며 인도하고 돕고 강하게 하는 이로 자신을 계시한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앙'이다.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cpbc2013.09.10
![[평화화랑] 서예전, 외과의사 24년 필력 선보여유승진 서예전, 가영시아사진전 평화화랑전시](//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96_1.1_titleImage_1.jpg)
[평화화랑] 서예전, 외과의사 24년 필력 선보여유승진 서예전, 가영시아사진전 평화화랑전시사진전, '빛' 주제로 신앙을 형상화 가톨릭대 의대 외과학교실과 의정부성모병원 유승진(루카, 64, 서울 방배동본당) 교수와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 출신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명동 평화화랑 제1,2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문의 : 02-727-2336 ▨유승진 서예전 현직 외과의사이면서 24년째 서예의 길에 몰입해온 유승진 교수의 작품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근무하며 초민(艸民) 박용설(66)씨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서예에 매력에 빠져 한시를 함께 익히면서 다진 솜씨를 선보인다. 출품작은 전지 8장에 행서와 초서를 섞어 쓴 소동파의 '전 적벽부' 전문과 한문성경에서 가려 광개토왕 비문 글씨체인 예서체로 쓴 '시편 23편' 등 40점이다. 서예가 본업은 아니지만 20여 년간에 걸쳐 균형의 미를 추구하며 다진 필력에서 우러나오는 예서와 행서, 초서 작품이 일품이다. '추사 김정희 이후의 일인자'로 꼽히는 손재형 선생의 계보를 잇는 작품답다. 유 교수는 "아이들(자녀) 혼인 때 가훈을 직접 써서 남겨주고 싶어 시작한 서예의 길이 이렇게 매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32년 5개월간 봉직한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서 내년 2월 퇴직을 앞두면서 무사히 정년을 할 수 있게 된 데 감사의 뜻을 전하고, 동시에 잡다하게 익힌 글씨를 정리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가톨릭사진연구회 제4회 회원전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 사진두레 출신 오지홍(토마스)씨 작품 '생명'.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 사진 두레를 통해 사진에 입문한 어르신 모임인 가톨릭사진연구회(회장 유동희)의 네 번째 전시회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빛이 생겨라'(창세 1,3)라는 말씀을 주제로 1~5기 회원 89명 가운데 33명이 1인당 1점씩 선보인다. 작품별로 질적 우열의 차는 있지만, 55세에서 73세에 이르기까지 회원별로 각자 '빛'을 주제로 신앙을 형상화하는 열정은 한결같다. 2년 과정 사진두레를 졸업한 뒤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사진작가 문수영(토마스)씨 지도로 서울대교구 별관에서 오전에는 전산 실무와 사진보정기법 등을 익히고, 오후면 서울 시내와 근교에서 교육과 출사를 병행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다. 출사는 고궁과 공원, 북촌 한옥마을, 청계천, 과천 사진박물관 등지에서 주로 이뤄졌으며, 1년에 두 번씩은 서울을 벗어나 영동이나 남도 등 여러 지역을 다니기도 했다. 오세택 기자 cpbc2013.11.19
![[교회사 공개대학②] '1815년 을해박해 순교자Ⅱ'](//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8358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공개대학②] '1815년 을해박해 순교자Ⅱ'방상근 석문 가롤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1815년 을해박해는 △지역적으로 경상도에 한정된 국지적 박해였고 △박해 원인이 정치적 이유보다는 기근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배교자의 밀고에서 기인했으며 △박해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을해박해 순교자 가운데 김윤덕(아가타 막달레나, ?~1815)은 경상도 상주 은재(경북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 태생으로, 연풍고을 안배에 사는 김씨와 혼인해 순득(운빈)을 낳았다. 장성한 뒤 고향 인근에 전해진 복음을 듣고 입교, 훗날 노래산 교우촌(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으로 이주했으나 1815년 부활대축일을 지내던 중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다. 당시 관헌이 "너같이 무식한 자가 어떤 생각으로 죽으려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리 비천하고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조물주이신 천주님 은혜를 모를 수 있겠으며 그분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용기있게 답변했다. 그러나 대구로 이송돼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한 뒤 석방돼 막 대구감영 문을 나서던 중 안동에서 이송돼 오던 김종한에게서 "지금 훌륭한 죽음을 맞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권면하는 말을 듣고 다시 관장 앞에 나서 신앙을 고백한 뒤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당하고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같은 노래산 교우촌 출신인 서석봉(안드레아, ?~1815) 순교자는 언제 어디서 출생했는지, 언제 신앙을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과부 구성열과 혼인한 뒤 사위인 최봉한 부부와 함께 청송 노래산으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815년 부활대축일을 지내던 중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다가 아내, 사위와 함께 대구로 이송, 형벌을 받았고 신앙을 고수하며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옥중에서 순교했다. 역시 노래산 교우촌 출신인 구성열(바르바라, ?~1816)은 원래 충청도 홍주 한내장벌(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입교했으나 첫 남편과 사별하고 서석봉과 재혼한다. 부부는 사위 최봉한 부부와 함께 청송 노래산으로 이주했으나 역시 1815년 부활대축일에 체포돼 경주로 압송됐고, 이듬해인 1816년 12월 19일 참수됐다. "비록 그는 여자의 몸이었지만 마음의 강직함은 결코 남자에 뒤지지 않았고 몸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증거할 줄 알았다"는 훗날의 평가가 오늘까지도 전해진다. 그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됐다가 1817년 친척과 교우들에 의해 이장됐다. 충청도 홍주 다락골(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태생인 최봉한(프란치스코, ?~1815)은 서석봉ㆍ구성열의 사위로 입교 뒤 공주 무성산으로 이주했으나 주문모 신부 입국 소식을 듣고 모친, 누이와 함께 상경한다. 모친이 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 얼마 뒤 사망하자 누이를 정약종의 집에 머물게 하고 시골로 내려간 그는 서석봉의 딸과 혼인, 장인 부부와 함께 청송 노래산으로 이주했다. 역시 1815년 체포돼 천주교 우두머리로 지목돼 의식을 잃은 적이 여러 차례 있을 정도로 혹독한 형벌을 받았으나 그의 놀라운 열의와 용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형벌을 이겨내지 못하고 1815년 5월께 옥사했다. 고성대(베드로, ?~1816)ㆍ성운(요셉, ?~1816) 형제는 충청도 덕산 별암(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태생이다. 형은 본래 성격이 포악해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를 꺼렸으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동생은 본래 성격이 착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언제나 합심해 성경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적 권면을 하는 데 열심이었으므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됐다. 다만 한때 고산 저구리(전북 완주군 운주면 적오리)로 이주했던 형은 1801년 전주 포졸에게 체포된 뒤 처음엔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보존해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석방됐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우와 함께 청송 노래산으로 이주했다. 1815년 부활대축일 때 체포돼 경주로 압송된 형제는 대구로 이송돼 형벌의 고통을 참으며 기꺼이 신앙을 증거했다. 당시 죽기로 먹은 마음이 목석과 같았고, 고통과 궁핍에도 항상 기쁨 안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816년 12월 19일 참수됐다. 끝으로 충청도 청양 수단이(충남 청양군 사양면 신왕리) 태생인 김화춘(야고보, ?~1816)은 본성이 온순하고 참을성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전주에서 순교한 김대권(베드로)의 동생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워 입교한 그는 장성한 뒤 교회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키며 기도생활과 성경 읽기에 부지런해 교우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1815년 체포돼 경주를 거쳐 대구로 이송돼 1816년 10월 21일 참수됐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3.10.15
![[아! 어쩌나] 193. 생각을 못하는 사람](//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430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93. 생각을 못하는 사람 Q. 남자친구는 아주 박식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만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흔들립니다. 남자친구는 대화 내용이 거의 자기 생각이 아닌 자신이 읽은 책을 인용하곤 합니다. 이것이 갈수록 제 마음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생각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고, 왠지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성경을 모두 암기한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성경의 장과 절을 대면서 답을 하기에 성당 사람들은 남자친구를 참으로 대단하다고들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가 그 깊은 의미는 모르고 '그저 달달 외우기만 하는구나'하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합니다. 그래서인지 책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 이야기만 하는데 왠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좋은데 아버지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믿으려는 자세는 보기 좋지 않아 보입니다. 제 남자친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요? 아니면 저에게 문제가 있나요? A. 자매님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외려 남자친구가 문제가 있네요. 남자친구처럼 모든 문제를 책을 보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책을 인용해 답을 하는 식이지요. 처음에는 아주 멋있어 보이고 박식해 보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 사람이 과연 자기 생각이나 할 줄 아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지나치게 책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일일이 답을 주는 그런 책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그 해결책도 지극히 개인적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은 자료로는 사용해도 되지만, 책을 자기 인생의 열쇠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은 왜 그런 행위를 할까요? 바로 '아버지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을 싫어하거나 혹은 자녀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는 병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머릿속에 자기 생각이 아닌 아버지 말씀이 명령어로 입력돼 있어서 마치 로봇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아버지의 말을 따라 행동하려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책 내용을 명령어로 받아들입니다. 군대에서 갓 훈련받은 훈련병처럼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 생각에 대해서는 쓸모없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훈련'이 잘 돼 있지 않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면 보통 사람보다 더욱 심하게 당황하고 헤매는 양상을 보입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종교를 갖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신앙, 그리고 무지막지한 신앙론에 빠져 일상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 내적 힘도 약하고 황폐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씹지 않고 먹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씹지 않고 삼키려 한다면 당연히 탈이 나고 몸이 더 약해집니다. 이것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기만 한다면, 그 내용이 마음에서 나를 공격하는 부작용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심리적 배탈'이라고도 부릅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성경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록된 글이지만, 그 안에 있는 깊은 의미를 되새기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외우고 인용하기만 한다면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 인용도 때로는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인데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용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해 성경 구절과 장ㆍ절까지 인용해 사람들의 기를 죽이고, 자기식으로 생각하기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종교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 묵상을 강조합니다. 말씀을 그냥 삼키는 것이 아니라 되새기면서 마음 안에 충분히 소화하도록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묵상법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전 어떤 철학자는 읽는 책 글귀마다 자기 생각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 생각을 쓰고, 비교해보고 깊이 음미해보는 과정을 통해 내 마음에 건강한 인생지침이 생깁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3.20
![[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2321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사순 제4주일(요한 9,1-41)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사순시기를 잘 지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50년을 함께 살았던 노부부가 '스피드 퀴즈'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맞춰야 할 문제는 '천생연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멈, 우리들의 만남은 무엇이지?"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웬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네 글자로 하면 뭘까?"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평생웬수."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웬수'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평생 할머니 속을 썩였던 할아버지가 목에 사레가 들려서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구급차를 불렀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직 약간의 기운이 남아서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평생 말을 듣지 않더니, 의사 말도 듣질 않네! 의사 선생님이 죽었다고 하잖아!" 눈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로 보려 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조상의 탓도 아니고, 본인의 탓도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사람이 아픈 것도, 장애인이 되는 것도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가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신학적으로 합당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와 같습니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으면 먼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화살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왜 화살을 쏘았는지를 생각하는 동안에 화살에 맞은 사람은 독이 온몸에 퍼져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너희는 사람들의 외모와 능력,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지만, 야훼께서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신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성에 갇혀 다른 이들의 생각을 보지 못하고, 편견과 독단과 아집과 이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나 자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몸이 있어도 참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요구하십니다. 참으로 들을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십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봅니다. 참으로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듣지 못해서 눈과 귀가 있으면서도 그릇된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 욕하고 비난하며 침을 뱉고 인격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려고 왔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거짓과 가식과 허영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를 보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참된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희망과 평화, 진실과 사랑이 한데 어울려 참된 빛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전에 저 땅속에서 쉼 없이 양분과 물을 찾고 있는 뿌리를 볼 수 있다면, 깨끗한 거리를 보기 전에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볼 수 있다면, 일등에게 찬사와 축하를 보내기 전에 꼴등에게 위로와 격려를 먼저 할 수 있다면, 용서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이미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참회와 절제, 자선의 사순시기도 벌써 반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난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보기 싫어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남은 사순시기를 지냈으면 합니다. cpbc2014.03.25
![[사람들/인터뷰]프로스페로 그렉 추기경, "평신도들, 성경 곁에 두고 가까이 하길"](//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531_1.0_titleImage_1.jpg)
[사람들/인터뷰]프로스페로 그렉 추기경, "평신도들, 성경 곁에 두고 가까이 하길"수도회 연천 수도원 및 성당 축복식, 수도회 사제서품식 참석차 방한신약과 4세기 교부학 연구에 몰두...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성경은 결코 사제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시대 언어로 씌어진 주석서나 해설서 등을 참고하며 평신도들이 성경을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읽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삶에 내면화하고 실천하는데 힘쓰기 바랍니다." 우리 시대의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교부학자로 꼽히는 프로스페로 그렉(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몰타관구) 추기경이 6일 내한,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한국지부 사제서품식과 연천 수도원 및 성당 축복식 등에 참석했다.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터라 사제서품식과 축복식에 참석하면서 '사목'을 체험하게 됐다는 그렉 추기경은 "사목자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했다"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그렉 추기경은 1953년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이듬해 교황청 성서대학(Pontificium Institutum Biblicum)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 신학원과 라떼라노대학, 그레고리오대학, 성서대학 등에서 교수로 살았다. 또 1970년에는 같은 수도회 트라페 신부와 함께 대학원 과정인 교부학 대학(Instituto Patristico Augustinianum)을 설립, 9년간 학장으로 지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자문위원, 교황 신학 아카데미 비서로도 활동했다. 유흥식(대전교구장) 주교, 노성기(광주가톨릭대 총장) 신부, 정승익(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 등 국내 성서학자나 교부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제자다. 이처럼 성서학과 교부학 연구에 몰두한 공로로 그는 지난 1월 87살 고령의 나이에 부제급 추기경에 임명됐다. "평생을 신약성경 해석을 위주로 한 성경해석학(Hermeneutics)과 사도시대 이후 2~4세기 교부들을 중심으로 한 교부학(Patristics) 연구에만 묻혀 살았습니다. 이를 테면 평생을 성서학과 교부학 분야 제자들을 길러내느라 '간접선교'만 하면서 산 셈입니다." 그는 "1971년 전 세계에서 유일한 교부학 대학인 아우구스티니아눔을 설립해 지금까지 석ㆍ박사만 300여 명을 배출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도 아우구스티니아눔에서 1주일에 두 과목씩 강의를 하는 그렉 추기경은 "아우구스티니아눔은 가톨릭뿐 아니라 성공회, 개신교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에게도 문호를 개방,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최고의 교부학 연구 및 교육의 전당으로서 자리매김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또 "우리는 4년에 한 번씩 연구결과물을 제시하고 있는데 최근엔 「성경과 도덕」을 출판했고, 2년 뒤에는 「성경의 영감과 진실」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가톨릭대 총장 박영식 신부님이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함께 활동 중이다"고 귀띔했다. 그렉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자국어 성경이 많이 보급됐는데도 평신도들에겐 아직도 성경이 전문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책으로 여겨지는 게 안타깝다"며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주석서나 해설서를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1925년 지중해 섬나라 몰타 태생인 그는 1943년 성 아우구스띠노수도회에 입회, 1950년 사제품을 받았다. 영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며 로마에서 성서학과 교부학을 가르치면서 「성서신학 연구 방법론」, 「성서신학 해석학」, 「신약성경 영성의 개요」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16일 출국.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9.18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5>이브 콩가르(중)](//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8121_1.4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이브 콩가르(중)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1979~1980년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총 3권을 통해, 20세기 후반 성령론의 재발견 및 새로운 발전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책은 현대 성령론의 큰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며, 아직까지도 이 분야의 모범적 교과서로 손꼽히는 명저다. 성령론적 그리스도론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1982년 로마에서 개최된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의 발표에도 어느 정도 배경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우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발표된 교회 공식 문헌들은 성령에 관해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분리 불가능한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강조는 한편으로 성령론적 전망의 개진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주의' 관점을 보완해서 구원 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를 재확인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적 의미에서의 이른바 '성령 중심주의'의 출현을 경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대 신학의 흐름에서 성령론의 발전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나, 그 본질이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차원에서 '성령 중심주의'를 주창하는 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이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신 '성령'에 관해서만 말하겠다는 식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성령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일이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이루어진 성령론 발전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보다 더 넓은 성령의 구원 경륜을 말하는 일부 극단적 주장이 출현했고, 교회 교도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29항에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존재가 아니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해 지적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0년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에서도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병행하는 것도 아니다"(12항)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즉, 성령론이 그리스도론에 반대되거나 그리스도론을 대체하는 흐름에서 전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부터 이루어진 성령론의 재발견과 새로운 발전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의 구원론적 의미를 삼위일체론적 차원에서 재숙고함에 있어 새로운 성령론적 성찰이 요청된다는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 22항이 의도하듯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영으로서 보편적이고 우주적 차원에서 구원 사업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작용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보편적, 우주적 현존과 작용은 구원 역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의 유일회적 특수성과 맺게 되는 불가분의 관계 안에서 단일한 구원 경륜을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옹의 이레네우스(130/140?~200/202?) 교부는 성자와 성령 곧 '하느님의 두 손'(the Two Hands of God)이라고 주된 저서 「이단 반론」(Adversus Haereses)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독일의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은 주된 저서 「예수 그리스도」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생명에 성령을 통하여 참여함"이라고 말함으로써 단일한 삼위일체적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불가분한 관계를 잘 설명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론은 반드시 그리스도론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론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이어야 한다고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이처럼 삼위일체의 구원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자와 성령 간의 불가분한 상호보완적 관계를 강조하는 현대 신학의 흐름과 분야를 가리켜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이라고 부른다. 성령 청원 기도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총 3권은 '성령론'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동시에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은 저서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먼저 이 책의 제1권에서, 콩가르는 성령론의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개관을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한다. 즉, 구약성경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영에 대해, 또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님의 영에 대해 고찰하며, 이 '영' 개념이 신약성경을 거쳐 초대 교회에 이르러 어떻게 보다 분명한 위격적 차원의 '성령'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지를 잘 설명한다. 또한 중세의 전례 기도문 안에서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가 자리잡아가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제2권과 제3권에서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제3권의 후반부는 성체성사에서의 '성령 청원 기도'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다. 사실, 성령은 전례와 성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작용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상기해 '기념'(Anamnesis)하게 하며, 마침내 그분을 현존케 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는 거룩한 힘으로 작용한다. 특별히 '성령 청원 기도'란, 성체성사의 전례 안에서 성령을 부르며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임하기를 청원하는 기도를 말한다. 견진성사에서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에게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청하는 예식이 가장 핵심적이다. 사제로 서품되는 성품성사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성령의 임하심을 청하는 주교단과 사제단의 안수 기도이며, 이 예식과 연결된 마지막 축성 기도를 통해 후보자는 비로소 사제로 서품되는 것이다. 성체성사에서 '성령 청원 기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축성/기념과 더불어 가장 핵심 부분을 구성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처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성체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성령의 이름을 부르며, 봉헌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해주시도록 기원하는 '축성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성체와 성혈의 축성과 거양 이후에, 다시 같은 성령을 부르며 교우들의 일치를 기원하는 '일치 기원'의 '성령 청원 기도'다. 감사기도 제2양식에서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을 우리 안에 직접 받아 모시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 몸을 이룸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의 신비체'(the mystical body of Christ)인 '교회'를 비로소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비이며, 또한 그 신비를 청하는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이처럼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한 신학과 초대 교회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며, 특히 교회의 성사와 전례 안에서 작용하는 성령의 신비로운 현존과 활동에 대해 상세히 고찰해 본격적인 연구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는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교회론과 성령론을 연결시킨 통합적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교회론적 공의회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그저 단절적, 배타적 관점에서만 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안을 향한 교회'Ecclesia ad intra)와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는 관점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시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의 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성령께서는 성사와 전례 등과 같은 '안을 향한 교회'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활동하시지만, 그 신비로운 현존과 작용은 교회의 가시적, 제도적 경계를 넘어 '밖을 향한 교회'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콩가르의 저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는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도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cpbc2014.02.25
![[생활속의 복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711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연중 제7주일(마태 5,38-48)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말을 탤런트 김혜자씨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특히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며칠 전 발톱을 깎다가, 깊이 깎는 바람에 걸을 때 불편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어느 한 곳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온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오늘 특별히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지치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센 폭풍우 뒤에 따사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어둠을 뚫고서 새벽이 오듯이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들 모두의 시름과 고통을 씻어주는 한줄기 빛으로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러한 고통과 시련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인 레위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형제와 자매의 고통과 시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거룩하시니 여러분도 거룩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모두 하느님께 속해 있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언제나 바쁘다고 합니다. 재난과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의 많은 구호 단체들은 자신의 일처럼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사고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 안에 한 가족이라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바람과 해님'이란 동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동화이지만 어릴 때 제게는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의 삶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오직 자신만을 아는 남편이 어느 날 아내에게 17번째 결혼기념일 선물로 예비신자 교리 신청서를 적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런 불평 없이 17년 동안 남편의 말을 들어주고, 시부모님을 극진히 섬기며, 아이들을 잘 키워주는 아내가 고마웠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신자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남편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뭉클했습니다. 17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했던 그 자매의 정성도 놀라웠지만, 완고한 남편을 부드러운 남자로 변화시켜 주신, 그래서 지금은 구역장 일도 열심히 하는 그 남편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힘에 놀랐습니다. 온갖 사건과 사고의 틈바구니에서, 마치 바위틈에 여린 꽃이 피는 것처럼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병들고 아픈 아이들을 입양해서 기르는 가족도 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장학기금으로 기부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30년 동안 참고 참아서 드디어 남편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린 분도 있습니다. 자칫 어둠에 가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논리에 가려서 아름다운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묻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결국 어둠을 이기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신앙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오른 뺨을 때리면 다른 쪽도 대 주십시오. 누군가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십시오. 누군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cpbc2014.02.18

청소년 사목의 디딤돌, 액션송 3집 나와서울 청소년국 중고등부, 12년 만에 발매… 보급용으로 본당 배표 예정박범석 신부(가운데)와 액션송 연구부를 비롯한 제작부원들이 3집 앨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담당 박범석 신부)가 지난 5월 '액션송(Action Song)' 음반 3집을 내놨다. 2001년 2집 발매 이후 12년 만이다. 액션송은 운율과 몸짓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와 율동'으로 이뤄진 기도다. 이번에 나온 3집은 판매용(1,2집)이 아닌 보급용으로, 교구 각 본당에 배포된다. 앞으로 본당 미사와 행사, 교사학교, 청소년 대표자 연수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8)', '주님과 함께 꾸는 꿈' 등 13개 수록곡은 △남녀노소가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음역을 일정 영역으로 제한했고 △반주자가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쉬운 화성을 사용했으며 △청소년이 지닌 취향을 고려하되 미사 전례에도 어색함이 없게 편곡했고 △성경 내용이 반영된 가사를 먼저 제작한 뒤에 가사에 어울리는 선율을 찾았으며 △전체 연주 시간이 3분 미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중고등부는 2011년부터 액션송 제작 연구팀을 꾸려 3집 작업에 들어갔다. 제작 과정에서 성음악 지침에 따라 가사는 주로 성경과 전례서에서 인용했고, 전례성가로서 합당한지 검증 작업도 거쳤다. 작년 6월 중고등부 교사 월례교육 때 500여 명 앞에서 제작 곡을 시연해 검증한 시도가 그것이다. 냉정한 평가가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두 곡을 제외하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곡을 만들어야 했다. 액션송 연구부원과 음반 제작 참여자는 모두 30여 명. 주일학교 교사, 광고음악 감독, 영상 음악 작곡가, 성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이들은 기도와 소통으로 더 좋은 곡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특히 연구부원 8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2시간 이상 공식 제작 회의에 몰입했다.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길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성경 말씀과 연결짓기 위해 회의는 늘 복음 나누기로 시작했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 주실까'를 생각하며 몇 번이고 가사 내용을 고민했다. 같은 선율도 여러 악기로 여러 사람이 불러보며 입에 잘 붙는지 고려했다. 자비로 녹음실을 마련해 생활성가 가수와 외부 초빙 가수들과 함께 곡을 노래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액션송에 수록된 가사들은 적어도 10번 이상 수정을 거치면서 다듬어졌고, 가사는 대부분 우리의 물음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 대화구조로 이뤄졌다. 박범석 신부는 1년 6개월 동안 연구부원들이 심혈을 다해 작업한 3집 액션송이 "청소년들에게 영적 목마름을 채워줄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며 새 노래집이 청소년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알리는 디딤돌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 한편, 중고등부는 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청소년회관 경당에서 액션송 연구부원과 제작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액션송 제작팀 해단미사를 봉헌했다. 성가대와 밴드용 악보는 올해 안에 편곡해 만들 계획이고, 액션송에 맞춘 율동집도 추후 배포될 예정이다. 액션송은 누리방(www.foryouth.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MR 및 악보 문의 : foryouth@for youth.or.kr 강성화 기자 퇴사자2201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