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설립자 기꼬 아르궤요씨 평화방송 TV 특별대담아시아 복음화, 성령 통해 하느님 사랑 현실화해야 기꼬 아르궤요씨가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대담하고 있다. 초대교회 공동체 운동으로 불리는 ‘네오까떼꾸메나도(Neo-catecumenato) 길’이 21세기 새로운 복음화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1968년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 알타스 판자촌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2008년 국제 사도직 단체로 교황청 승인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는 120여 개국에서 약 2만 개 공동체가 활동 중이며 한국에도 서울ㆍ인천ㆍ부산ㆍ마산교구 등 34개 공동체가 형제적 친교를 이루며 성숙한 신앙을 기르고 있다.40여 년 전 이 운동을 시작한 스페인 출신의 기꼬 아르궤요(75)씨가 최근 한국을 방문, 평화방송 TV와 특별 대담을 했다. 한홍순(토마스)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한 이 특별 대담을 정리, 소개한다. 평화방송 TV(Sky 평화 413)는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정신과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이 대담을 △9일 오전 8시 △16일 오전 8시 2회에 걸쳐 방영한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124개 나라에서 2만여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대학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뒤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유다인 학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세상의 불의한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릴 정도로 내적 갈등을 겪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가정부가 찾아와 도와달라고 제게 울며 사정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이 아이들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말려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를 돕기 위해 여러 차례 가정을 방문하면서, 주님께서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아들에게 매 맞는 여성, 강간피해자, 출소자 등을 보며 왜 하느님께서 이러한 처참한 일들을 허락하시는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습니다. 그분은 몸소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지요. 꼴찌들 안에 못 박혀 계시는 그리스도를 말입니다. 그 후로 가난한 집시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에서 지냈습니다. 가지고 간 것은 기타와 성경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시들은 저를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판자촌에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하느님 말씀과 전례, 공동체에 기반을 둔 모임이었지요. 이것이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성직자들에게 비판도 받았지만, 조금씩 복음화 도구로 인정받으며 로마 본당을 중심으로 퍼졌고 지금은 이탈리아와 캐나다, 오스트리아, 영국 등 124개국에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함께하고 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을 “현시대와 사회에 유효한 가톨릭 양성의 여정”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왜 교황님은 이렇게 정의하셨는지요. 현대에 이런 양성과정이 바람직한지요.“현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사사목에서 복음화사목으로 건너가는 일입니다. 본당 사제가 미사와 성체성사, 세례성사 등을 통해 신자들의 신앙을 돌보는 것이 성사사목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성체성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근본적 복음의 명령을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외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일은 성당 건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작년에 출간된 「케리그마」는 26개 언어로 번역돼 많은 이들이 읽고 있습니다. 책을 쓰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며 왜 ‘케리그마’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케리그마(kerygma)는 그리스말로 ‘복음, 기쁜 소식 선포’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케리그마를 통해 믿는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는 윤리, 철학이기에 앞서 하나의 소식입니다. 케리그마에는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매일 이 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 안토니오 카니사레스 요베라 추기경님은 제가 케리그마에 관한 책을 쓰길 바라셨고 저는 교회를 섬기고자 그 뜻을 따랐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제3천년기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시간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한국교회가 이 복음화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하느님께서는 아시아 복음화를 준비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제가 한국을 찾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로 무신론적 분위기를 겪고 있는 몇몇 나라들을 보면 아시아 복음화를 현실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그래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도 아시아를 위한 사제 양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모임에서는 젊은이 200여 명이 사제 성소를 지망했습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세례’를 통해서입니다. 세례는 우리에게 성령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새 사람들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는 내 제자가 될 것이다. 너희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세상이 믿을 것이다.’라는 복음 말씀이 이루어진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의 가정공동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젊은이들은 참된 것을, 진리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젊은이들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주는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정말로 악마가 공격하는 것은 가정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구원합니다. 물론 생명을 열고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가정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부행위는 생명을 향해 열고 있어야 한다’는 바오로 6세 교황님 뜻에 순종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유럽에서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이슬람교도들보다 더 많은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세계 곳곳에 가족 단위로 선교사를 파견하며 복음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회와 교회를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 초대 공동체처럼 사는 것은 정말 큰 선물입니다.”-한국교회는 순교자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올해 8월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피와 신앙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수많은 한국 순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바치면서 한국 교회를 위해 전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피 섞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셨던 것이지요.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어 순교자들을 시복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더불어 순교자 시복은 한국교회에도 쇄신의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정리=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평화신문2014.07.02
![[공동체]가톨릭교회 첫 성경 학습관 생겼다](//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007_1.0_titleImage_1.jpg)
[공동체]가톨릭교회 첫 성경 학습관 생겼다17일 서울 정릉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본원서 이세의 집 및 영원한도움의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 가져 이기락(오른쪽) 신부와 김영남 신부가 이세의 집ㆍ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을 마친 뒤 학습관에 들러 예루살렘 현지 지형을 복원한 모형을 보며 가톨릭성서모임 말씀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경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168.59㎡(51평) 규모 성경 학습관이 가톨릭교회에 생겼다. 성경의 배경을 이루는 팔레스티나와 주변 지역을 이스라엘 현지에서 확보한 지도와 사진ㆍ유물 모형ㆍ컬러 도판ㆍ아이패드 등을 통해 시기별로,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학습 전시관이다. 가톨릭성서모임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온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총원장 조현영 수녀)는 17일 서울 정릉3동 본원에서 조규만(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 주례로 이세의 집과 그 안에 마련한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 축복식을 가졌다. 이세의 집 이름은 올해 선종 25주기를 맞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설립자이자 제2대 평양지목구장인 존 에드워드 모리스(John E.Morris, 1889~1987) 몬시뇰 한국 이름인 '목이세'에서 따왔다. 지난해 4월 공사에 들어가 1년 2개월 만에 축복식을 가진 이세의 집은 지하 1층ㆍ지상 3층 건축연면적 2145.09㎡(650평) 규모로 지어졌다. 지하 1층은 그룹방과 식당ㆍ세탁실ㆍ기계실로, 1층은 피정자용 침실과 강당ㆍ사무실로, 2층은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와 학습관ㆍ경당으로, 3층은 수녀원으로 쓰인다. 냉ㆍ난방지열시스템을 채택,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설치비용의 2분의 1을 지원받아 친환경 건축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설계는 (주)디앤디건축사사무소(소장 김현주)에서, 시공은 (주)가가종합건설(대표이사 차선영)에서 맡았다. 특히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학습관은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영적 힘을 얻는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경의 세계'를 주제로 한 학습관은 1관에서 기원전 3500년께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성경 전체를 개괄하는 지도와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2관에선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소개된다. 3관은 '하느님 현존관'으로 국내ㆍ외 성경을 전시, 성경의 세계를 돌아본 관람자들이 기도하는 분위기로 꾸몄다. 학습관은 하나를 이뤄 복음선포를 해온 가톨릭성서모임과 성서와함께ㆍ성서연구소 등 성경 사도직의 세 축을 이루는 단체들이 정성과 기도로 얻은 집이어서 더욱 뜻이 깊다. 조 주교는 축복식 강론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가톨릭성서모임을 통해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는지 모른다"면서 "하느님 말씀 안에서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영원한 도움의 성서 연구소에서 마련한 학습관이 큰 몫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축복식에는 조 주교를 비롯해 이기락(주교회의 사무처장)ㆍ김영남(가톨릭대 교수)ㆍ백운철(가톨릭대 교수) 신부, 총원장 조현영(데레사아마타) 수녀와 회원들, 가톨릭성서모임 말씀 봉사자들, 성서와함께 편집자들, 영원한 도움의 성서연구소 관계자 등 170여 명이 함께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6.19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7_1.1_titleImage_1.jpg)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사회교리, 지킬 교리로 그리스도인 실천할 교리 8일은 인권주일이고, 이날부터 한주간은 사회교리주간이다. 주교회의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게 살 수 있게 하려고 1982년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정했고, 2011년부터는 신자들이 '신앙인 사회생활의 지침'인 사회교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사회교리주간을 제정했다. 적극적으로 교회 가르침을 알고 사회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은 신앙인의 의무다. 사진은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신자. 백영민 기자 교회와 사회는 분리된 것인가 "왜 사제들이 정치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냐, 신자들 신앙에나 신경을 써야 하는 거 아니냐." 교회가 국정원 대선개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건설, 해고노동자 문제 등에 관해 목소리를 내면 적지 않은 신자들이 반대의 뜻을 밝힌다. 근래에는 자신들의 의견을 신문 광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사례도 늘었다. 한 일간지 9월 24일자에는 "어쩌다가 양들이 목자들을 걱정하는 천주교회가 되었습니까"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전직 국회의원과 언론인은 물론 교회 내 평신도의 중심이라 불리는 전ㆍ현직 평협 회장단과 임원, 교회 내 단체장 112명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발기인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뜻을 함께한 것이다. 이들은 개별 사제들 모임인 정의구현사제단은 물론 주교회의 공식 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에 대해서도 "편향된 사회이념을 신앙교리인 양 퍼뜨리는 현실이 지겹지 않으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자신들 주장은 "평신도의 현세질서 바로 세우기 의무와 국가에 대한 사명을 명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2장과 제5장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일부 사제와 수도자들의 반교회적이며 반국가적 행동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교회가 정치ㆍ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릇됨을 넘어선 반국가적인 행위일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지난해 사회교리주간 세미나에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 구절을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해석이 맞다면 신앙인은 정치 참여 수단인 투표도 포기해야 하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사회교리라는 용어가 주는 낯섦과 선입견으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사회교리를 신앙교리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십계명에 바탕을 둔 사회교리는 그 자체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외 없이 실천해야 하는 가톨릭교회 교리"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사회교리는 역대 교황의 문헌과 회칙, 교서, 권고 등을 담은 것으로,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통해 정치와 경제ㆍ인권ㆍ노동ㆍ평화ㆍ환경ㆍ생명 등 사회생활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복음적 시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올해 인권주일과 사회교리주간에 발표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담화 역시 이를 바탕으로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건설 등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했다. 이는 교회가 인간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보호ㆍ증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장동훈 신부는 "국책사업은 사회적 공론화와 해당 지역주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걸쳐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불법을 저지르고 현지 주민을 탄압하는 행위는 일방적 폭력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교회가 국책사업에 반대한다"고 해석하고 비난하기 전에, 잘못된 진행 과정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선 교회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교회는 교리를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신자들 역시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제들의 정치ㆍ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반대한다. 교리를 두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회교리 가르침을 담은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를 펴낸 황창희(인천가톨릭대 교수, 윤리신학박사) 신부는 성경을 큰 틀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교리 역시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 신부는 "사회교리 일부만을 골라 특정 상황에 맞춰 해석한다면 그 뜻이 곡해될 수 있다"며 "사회교리 중 정치 참여 부분은 교회가 정치 제도권 안에 들어가 일정 역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신부는 "사회교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를 들으면, 단순히 교회가 정치문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교회 가르침을 정확히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를 사제와 신자들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우려했다. 사회교리는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교회의 대화와 협력의 언어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사회교리가 제시하는 공동선 원리, 연대성 원리, 그리고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 같은 가르침들은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성전은 물론 세상 한가운데서도 신앙과 성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에 비춰 성찰하고 행동함으로써 신앙은 생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당시 사회적 논란인 노동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담은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했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소수 자본가의 생산수단 독점에 기인한다는 인식 아래 빈부격차와 노동자의 현실 개선을 위한 지침을 담은 첫 사회회칙이었다. 일각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인식과 흡사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태」는 사회교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초석이 됐다. 지금 한국교회는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해지고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교회는 교리를 바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사회ㆍ정치적 성향을 잠시 뒤로 하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교회 가르침을 바라보고 세상에 빛을 전하는 것은 결국 신자들의 몫이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cpbc2013.12.03
![[복음 이야기]<13> 유다인의 시간과 때](//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4540_1.0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 유다인의 시간과 때오전 6시부터 12시간을 하루로 여겨 이스라엘 백성은 태음력을 사용했다. "달은 제때에 맞춰 자리를 잡고 시간과 시대의 표징을 알려 준다"(집회 43,6). 유다인의 태음력은 1년 354일로 태양력보다 11일이 짧았다. 따라서 달과 계절 간 부조화를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그래서 지중해를 정복한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부조화를 없애기 위해 연력을 개혁, 한 해를 365일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태양력을 사용한 이집트에선 30일씩 12개월에 5일의 윤날을 첨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태양력을 채용할 수 없었다. 11일의 윤날을 달력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봄의 2월 즉 아다르와 니산 달 사이에 윤달 '베아델'을 넣었다. 이스라엘의 윤년은 1년 400일이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서기 29년이 이스라엘의 윤년이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를 지배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로마력을, 헬라인들은 마케도니아력을, 이집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은 알렉산더력을, 요르단 강 건너편 데카폴리스 지역에선 시리아력을,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력을 사용해 매우 혼란했다. 또 사해의 에세네파는 구약 요벨의 「희년」서에 따라 1년을 364일로 지냈다. 이처럼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여러 달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복음서에도 파스카 축제와 예수께서 행한 최후의 만찬 일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성찬례(최후의 만찬)를 제정하신 날을 무교절 첫날 저녁 즉 니산 달 14일로 보고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니산 달 12일이며, 14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해는 달로 나누어졌는데 율법학자 세 사람이 증인들을 불러, 달을 본 장소, 하현달의 크기, 지평선부터의 높이 등 세밀히 물은 다음 29일째 저녁 하늘에 초승달이 뜨면 7인 위원회 법정에서 새달을 선포하고 산꼭대기에서 봉화를 올려 백성들에게 이를 알렸다. 7일을 1주일로 정해 사용한 것은 유다력이 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다(창세 1장). 유다인은 창조의 7일을 1주의 원형으로 사용했고 7일째를 '하느님의 안식일'(사바트,Sabbat)로 정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유다인들은 주간의 일곱째 날인 이 '안식일'(오늘의 토요일에 해당)을 가장 거룩한 날로 지냈다. 그래서 그 전날을 '안식일 전날'(마르 15,42), 그 다음 날을 '준비일 다음 날'(마태 27,62)이라 부르고, 다른 날에는 서수를 붙였다. 이에 마태오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마태 28,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날'은 유다인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밤에 대한 낮(주간)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고 있는 세계인들은 공식적으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지만, 유다인은 '해가 지는 순간'을 그 날의 끝과 다음 날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예루살렘에서는 하루의 끝을 나팔로, 대축일에는 숫양의 뿔나팔로 알렸다. 유다인은 하루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라 표현했고, 아침ㆍ저녁 제물을 바치는 시간이 표준시간이 됐다(민수 28,4; 1열왕 18,29-36).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하루는 12시간으로 나눴다. 아침 6시를 0시로, 저녁 6시를 12시로 보았다. 이른 아침은 아침 6시이고, 3시는 오전 9시, 6시는 낮 12시, 9시는 오후 3시, 11시는 오후 5시, 오후 6시 이후는 저녁, 오전 6시 이후는 낮이라 했다(마태 20,1-10 참조). 시간을 구분하는 이 시제는 본래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했다. 헬라와 로마 문명의 영향으로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후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이 시제를 채용했다. 구약성경은 유다인들이 '아하즈의 해시계'를 사용했다(2열왕 20,9-11; 이사 38,8)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군영의 보초나 양 떼를 지키는 목자가 망을 보는 시간을 길이(更)로 나눴다(시편 90,4 참조). 로마인들은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후 하룻밤을 넷으로 나눈 '4경제'(四更制)를 통용했다. 1경은 약 3시간이었다. 마르코 복음은 이 4경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새벽'(마르 14,35)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녁'은 등잔불이 누런 불빛을 뿜을 때이고, '한밤중'은 달이나 별이 있어도 안정이 안 돼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는'(시편 130,6) 때이며, '닭이 울 때'는 예수께서 대사제 관저에서 끌려 나와 불행한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시간(마태 26,75)이며, '새벽'은 지평선이 조금씩 아름답게 물들어가며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때다. 이 기록을 근거로 마태오복음서의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시간이 '밤 4경'(새벽 4시쯤)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태 14,25).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4.04.09

책, 영화로 복음의 씨앗 뿌린 임인덕 신부, 하늘나라로 책과 영화로 한국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임인덕(독일명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성베네딕도회, 사진) 신부가 13일(한국시각) 독일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8세.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5년 성 베네딕도회에 입회, 1961년 종신서원을 한 뒤 1965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듬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교사로 파견돼 한국에 왔고 50년 가까이 한국에서 지냈다. 지난 8월 요양차 독일로 떠난 고인은 "병세가 나아지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안동교구 성주ㆍ점촌본당 주임을 지낸 고인은 왜관수도원 마오로기숙사 사감을 맡기도 했다. 또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뜻있는 젊은이들과 '우니타스' 모임을 만들어 야학교실을 열었다. 고인은 1972년 분도출판사 사장에 부임한 뒤 1993년까지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신학과 성경 관련 서적은 물론 독재 시대에도 사회정의와 환경문제를 다룬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 「정의에 목마른 소리」, 「해방신학」 등을 펴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밖에 순수한 감성을 자극하고 희망을 전해주는 분도 우화 시리즈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과 이해인 수녀 시집은 출판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1994년 출판사에서 베네딕도미디어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한국을 떠날 때까지 영상 매체를 제작, 번역, 보급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았다. 본당 주임 시절부터 시청각 교육의 중요성에 눈 뜬 고인은 작품성이 높고 정의, 평화, 사랑의 가치를 담은 주옥같은 영화를 국내에 소개했다. 본당 울타리를 넘어 대학, 공장 등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또 몇 해 전까지 베네딕도미디어에서 DVD가 출시되면 지팡이를 짚고 직접 방송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는 정성을 보였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31일 오전 10시 30분 경북 칠곡 왜관읍 수도원 대성당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할 예정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10.15
![[가톨릭 문화산책]<32> 성음악(7) 교회의 분리와 교회음악의 분리](//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46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7) 교회의 분리와 교회음악의 분리신교는 대중적 '코랄' 발전, 가톨릭은 전통 전례 유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음악가인 요한 발터의 코랄의 한 예. 이때까지는 네 성부를 대보표에 적을 줄 몰라 따로따로 네 장으로 만들었다. 주 선율은 테너가 부른다.교회사에서 가장 큰 비극을 꼽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16세기 교회 분리를 든다. 하지만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비극을 통해서도 좋은 결과를 창조해 주셨다. 교회는 분리를 통해 다시 자신을 내적으로 정비하고 또 풍성하게까지 했던 것이다. 1516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저항으로 시작된 교회 분리는 스위스에서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와 그의 뒤를 이은 장 칼뱅(1509~1564)에 의해 보강됐다. 저항은 중앙집권적 신성로마제국에서 벗어나려는 지방 영주들의 지원을 받으며 급속히 세력을 형성했다. 결국에는 가톨릭교회를 옹호하는 황제 칼 5세와 이에 항거하는 지방 영주들이 교회분리파를 옹호하며 결성한 슈말칼텐 동맹세력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복잡한 정치적 술수들이 얽히며 전쟁이 끝나고 아우크스부르크협약에 따라 영주의 신앙에 따라 해당 영지의 신앙이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백성들은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다른 영지로 이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 30년 전쟁이 일어났고, 종내에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각자 신앙이 보장되면서 전쟁은 막을 내렸다. 중앙집권제가 지방분권제로 변화되는 전환점에 교회 분리 운동이 큰 에너지를 공급한 셈이다. 프로테스탄트, 전례와 성음악 변화 이렇게 교회를 분리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쪽에서는 신자들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향수를 털어내기 위해 당면 과제가 있었다. 바로 전례와 성음악이었다. 처음으로 손을 댄 건 라틴어 사용을 금지하고 자신들의 언어인 독일어로 전례를 거행하는 것이었다. 라틴어가 이미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낯선 언어가 돼버린 당시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은 대단히 충격적이었고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거기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이때까지 가톨릭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했고, 이는 성경을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전용물로 만들었다. 또한 루터는 '코랄(Choral)'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쉽고 대중적인 성가 형식을 고안해 냈다. 평신도들이 쉽게 배우는 성가 가사에 새로운 교리를 이식해 부르도록 한 운동은 커다란 효과를 거뒀다. 코랄은 또 지금까지 그레고리오 성가가 모든 음악의 소재가 됐던 역할을 대신해 독일 교회음악의 소재가 됐다. 루터는 성음악에 관심이 깊은 사제였다. 현악기인 류트(Lute)와 최고 음역의관악기인 플루트(Flute) 연주를 즐겼고, 테너를 맡아 노래하기도 했으며, 조스깽 데 프레(1440~1521)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코랄을 개척하면서 자신도 몇 곡을 직접 지었는데,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깊은 고난에서(Aus tiefer Not)'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전문 음악가들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이 대목에서 요한 발터(1496~1570)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루터와 함께 활동한 발터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첫 음악가다. 이는 당시 유럽 내에서 음악이 가장 빈곤했던 독일을 음악의 나라로 세우는 첫걸음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하인리히 이사악(1450께~1517)이나 오를란도 디 랏소(1532~1594) 같은 독일 출신 음악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플라망 악파의 음악가들이며 주로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했기에 독일의 음악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터는 1524년에 「작은 성가책(Geystliches gesangk Buchleyn)」을 출판했고, 1526년에는 「독일 미사곡(Deutsche Messe)」을 발간했다. 발터를 잇는 프로테스탄트 음악가로는 속칭 '3S'로 불리는 하인리히 쉬츠(1585~1672)와 헤르만 샤인(1586~1630), 하인리히 샤이데만(1596~1663) 등을 꼽을 수 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에 이르러서는 교회음악 분야에서뿐 아니라 세속음악에서도 유럽 음악을 선도하기 시작한다. 또한 영국 왕 헨리 8세는 1554년 자신의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 교황청에 항거해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세웠다. 그러고나서는 독일 프로테스탄트와 같은 고민 속에서 영어를 전례에 도입하고 영어를 가사로 하는 전례음악을 발전시켰다. 초기 기초를 닦은 음악가로 토마스 탈리스(1505~1585), 윌리엄 버드(1543~1623)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겉으로는 국교회를 위한 음악가로서 활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가톨릭신앙을 지켰다. 영국국교회 역시 자신들의 독창적 음악을 마련하는데, 가톨릭교회의 모테트에 대응하는 앤섬(Anthem) 형식이 그것이다. 또 전례도 미사에서 변형된 예배(Service)를 고안했는데, 이는 미사와 시간전례(성무일도)를 적당히 섞은 형태였다. 가톨릭, 라틴어 전례와 음악 그대로 반면 가톨릭교회는 교회 분리의 충격에서 벗어나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개최하는데, 여기서는 교리와 교회개혁뿐 아니라 전례와 전례음악에 대한 정비도 뒤따랐다. 이 공의회에 따라 전례 흐름과 잘 어울리며 가사 전달이 잘 되는 음악, 곧 팔레스트리나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악파 음악이 장려됐다. 교회 분리라는 몸살에도 가톨릭 신앙에 꿋꿋하게 남아 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의 교회에서는 당연히 라틴어 전례와 라틴어 전례음악이 그대로 유지, 발전됐다. 민족사적으로 보면 게르만족과 앵글로족은 북유럽에서 야만시기를 함께 보냈고, 영어와 독일어도 먼 친척 언어다. 네덜란드어는 이 두 언어의 중간 혼합언어다. 결국 이 친척들은 가톨릭교회를 떠났고, 자신들의 언어에 따른 전례음악을 개발했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옛 라틴어의 사투리에 속한다. 이들은 계속 가톨릭교회에 남아 라틴어 전례음악에 충실했다. 언어상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세계 각국 교회가 모국어로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코랄(Choral) 가톨릭성가집에는 작곡자 이름을 쓰는 자리에 '코랄'이라고 돼 있는 곡들이 여럿 있다. 코랄(독 Choral, 영 Chorale)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독일의 표준적 음악 대사전인 「역사와 현대에 있어서의 음악(Die Musik in Ges -chichte und Gegen wart)」에서 코랄 항목을 찾아보면 "서방 가톨릭교회 전례에 사용되는 라틴어 전례문에다 단성부이고, 악기도 동반하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교회선법에 따른 온음음계식 음악의 옷을 입힌 작품들의 총체적 개념"이라고 긴 정의가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코랄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 미사를 코랄 미사라고 하며, 이때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합창단을 '코랄 숄라(Choral Schola)'라고 한다. 이를 보면 코랄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선적 연관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의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미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중(Chorus)이 부르기에는 너무 어렵게 발전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찬미가(Hymnus)라는 곡이 언제부턴가 발견되기 시작하는데, 이 곡들은 여러 절의 가사를 단순한 한 선율에 붙여 반복해서 부르는 유절(有節) 형식을 갖고 있다. 현행 시간전례에 나타나는 찬미가들이 바로 전형적인 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부분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그래서 찬미가와 같이 여러 절로 이뤄진 가사를 만들고, 모든 절을 하나의 단순한 선율에 붙여 노래하게 했다. 이 코랄은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박자도 마디도 없는 자유로운 선율이었고, 아직도 독일 성가집에는 바로 이런 외형을 가진 코랄이 실려 있다. 결국 루터가 코랄을 발견했다는 표현보다는 코랄을 재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시작한 코랄은 곧 독일 가톨릭교회에서도 발전했다. 마치 그레고리오 성가가 정선율로서 모테트나 미사곡의 기본 소재로 사용됐듯이, 이젠 코랄이 독일 교회음악에서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양식의 기본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단순한 형식의 전례음악이 가톨릭교회에서도 신자 대중이 미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 큰 공헌을 하는 성가(찬송가)의 기원이 됐다. 영어로는 이 코랄을 '힘(Hymn)'이라고 하는데, 코랄이 처음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찬미가(Hymnus)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명칭이다. 1967년에 반포된 '성음악 훈령(Musicam Sacram)'에서도 "대중성가(Cantus popularis sacer), 곧 전례적(liturgicus)이며 종교적인(religiosus) 대중성가"를 성음악에 포함하는데(제4항), 이는 바로 코랄에서 기원한 현재의 성가를 지칭하는 것이다.백남용 신부(서울대교구, 교회음악가)cpbc2013.09.0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4>이브 콩가르(상)](//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7081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이브 콩가르(상)조명받지 못했던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이끈 선구자 많은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세 번째 위격인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기껏해야 비둘기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베드로좌 위 비둘기 모양의 성령을 형상화한 유리화. CNS 자료사진'성령론의 재발견' 많은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그 세 번째 위격인 성령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으로 고백되는 성부,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성자와 달리, 성령에 관해서는 그 어떤 명확한 진술을 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비둘기 정도의 이미지가 떠오를 뿐이다. 성령은 과연 누구인신가? 성령이란 성령의 위격적 특성은, 그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 현존의 고귀한 선물과 은총이라는 데에 있다. 성부 하느님의 영이며 또한 성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신비로이 주관하며, 인간의 내면에 거주해 우리의 성화(聖化)를 이끌어 가신다. 미사 안에서 '사도신경'과 함께 선택적으로 고백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은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位格)이신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영광을 받으신다"고 선포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부 안에 근원을 두고 성자 안에서 주어진 '생명'은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내밀하게 전달됨"(「가톨릭교회교리서」, 683항)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통로인 동시에 그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자신이시다. 이처럼 성령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 안에서 명백하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위격적 존재로 고백된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서방 교회의 역사적 전통 안에서 오랜 기간 성령에 대한 관심과 인식과 성찰이 충분치 못한 채 간과돼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무엇일까? 동방 교회의 신비주의적 신학 경향과는 달리 모든 것을 논리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했던 이성주의적 신학의 대두와 그리스도 중심주의적 관점의 지나친 강조, 그리고 법률주의적 교회관의 성립 등을 거론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신학적 문제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의 위격적 실상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 시기 동안에, 성령은 주로 비둘기라는 종교미술적 상징에 의해서만 묘사돼 왔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으로 분명히 표현되는 성부와 성자의 경우와 달리, 성령은 그 위격적 실상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얼굴 없는 존재'로 머물게 된다. 카파도키아의 교부인 대 바실리우스(329/330-379) 성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근접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힘으로서 이 세상 안에 실제적으로 작용하시는 분이시다. 즉,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써 도저히 파악할 수도 없고 인간의 능력으로 감히 접근조차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무한한 실재(實在)요 신비이지만, 이러한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실재를 우리가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사랑의 표지요 선물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런데 이 사랑의 선물이란 하느님 밖의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본질 자체이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있어서, 그 전달 행위의 직접적 원리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체가 되신다. 그리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이러한 자기 전달 행위의 극치는 바로 성령의 인도에 따른 성자의 강생 신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 역사를 통해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시고 인도하시는 성령께서는 바로 '교회의 영혼'(anima Ecclesiae)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을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온 세상 안에 충만하여 활동하시는 성령을 가리켜서는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the universal presence and activity of the Holy Spirit)이라는 신학적 용어를 사용해 표현한다. 이는 성령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이다. 이미 구약성경의 지혜서 1장 7절은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요엘 예언서 3장 1절에서는 선택된 이들 위에 내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가시던 주님의 영께서 이제는 온 세상 만민 위에 임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던 구약성경의 예언이 드디어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됐음을 선포한다(사도 2,16-21 참조). 성령론의 현대적 흐름 1897년에 이르러,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성령에 대한 첫 회칙인 「그 신적 책무」(Divinum Illud Munus)를 발표했고,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강조했다. 또한 성령강림대축일 전 9일기도를 바칠 것을 결정하여 온 교회에 선포했다. 1962-1965년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성령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공의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을 통해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했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교회 역사 안에서 간과돼 왔던 성령론적 통찰의 재발견을 위한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했다. 물론 공의회 전체는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지만, 교회와 세상 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성령론적 전망이 다시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내부는 물론이고, 교회의 가시적 영역 밖에서까지 활동하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작용에 대한 자각이 이뤄졌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새로이 이뤄진 성령론적 성찰과 전망은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개, 발전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를 뒤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임무를 승계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심화와 신심의 계발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승과 보완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오로 6세는 1975년에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를 발표했는데, 이 교황 권고는 성령론적 관점에서 복음화의 사명을 설명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문헌이다. 문헌은 성령을 통해 복음이 세상 깊은 곳까지 침투해들어감을 역설한다. 이후 1982년 로마에서는,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교의(dogma) 정립 과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381년) 개최 1600주년과 에페소공의회(431년) 개최 1550주년을 기념하는, 성령론에 관한 대규모의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동안 이루어진 성령론의 발전에 대해,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신학자들의 주장을 교회 전체적 차원에서 통합하고자 시도했던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성령론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가 총망라되어 많은 발표들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론의 발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통해 보다 명시적으로 구체화돼 드러나게 됐다. 이는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유일하게 성령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이브 콩가르의 공헌 이러한 성령론의 현대적 발전 과정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신학자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 추기경이다. 그는 도미니코회 소속 사제로서, 예수회원 앙리 드뤼박(Henri de Lubac, 1896-1991)과 함께 프랑스의 20세기 '신(新)신학'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공의회 문헌 작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교회론과 교회 일치(ecu menism), 그리고 성령론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들을 남겼다. 콩가르는 서거 1년 전인 1994년에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콩가르는 위에서 언급한 1982년의 로마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이 회의 직전인 1979-1980년에 그가 총3권으로 이루어진 성령론에 관한 명저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를 출간함으로써 성령론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을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권의 책은 아직까지도 현대 성령론의 교과서로 간주되는 불후의 명저이다. 국내에서는 백운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의 번역으로 2004년에 그 1권이 번역, 출간됐다(가톨릭출판사). 다음호에서는 이 세권의 책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cpbc2014.02.18

신앙의 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 '평신도의 산앙의 해 삶의 성찰과 쇄신'8일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영성원에서 열린 '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 종합토론 시간에 토론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힘 기자 신앙의 해 폐막을 보름여 앞두고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와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개최한 '신앙의 해 결산 심포지엄'은 신앙의 해를 평가하고, 신앙의 해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심포지엄은 한국평협 차원에서 제시한 실천사항에 대한 발표, 평신도 설문조사 발표와 더불어 한국 평신도사도직의 새 진로를 엿보는 시간이 됐다. 심포지엄 발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기조강연- 신앙의 해 의의와 신앙의 해 이후 평신도의 소명 /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신앙의 해가 그리스도왕 대축일(24일)로 끝난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신앙의 해를 시작하는 사목교서에서 "오늘날 유럽교회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과도한 과학적 사고방식과 개인주의"라고 지적하셨다. 이것은 유럽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우리 문제이다. 교도권은 신자들의 신앙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과학주의와 세속주의, 신영성운동, 개인주의 등 신앙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의 맹점과 폐해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경고해야 하며, 대처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톨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예비신자가 꾸준히 있다. 하지만 그만큼 냉담교우가 생겨난다. 한마디로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는 앞으로 5년간 순차적으로 신앙의 해 다섯 주제(표어)에 초점을 맞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필로니 추기경도 "신앙은 한 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지속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성숙한 신앙인이 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 물신숭배와 경제적 양극화, 생명경시, 거짓, 폭력 등의 어둠이 짙게 깔린 것은 하느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핵심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이 어둠의 세력을 거슬러 나눔과 정의, 생명, 정직,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정은 신앙 전달과 훈련에 매우 중요한 평신도 고유 영역이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이 자연스레 기도를 배우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신앙 안에서 헤쳐나갈 때 자녀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성모님처럼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산다면, 그 가정은 제2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자라는 요람이 될 것이다. ▨주제발표1- 한국평협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다짐 실천 결과 보고 / 최홍준(한국평협 회장) 한국평협은 지난해 11월 제4차 상임위원회의에서 신앙의 해를 더 잘 살기 위한 다섯 개 항목의 '다짐문'을 발표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다짐'은 △우리는 교회의 기초 공동체인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성화 소명에 응답하며 신앙 선조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생명문화 건설에 힘쓰겠습니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정직하게 이웃과 함께 친교의 삶을 살겠습니다 등이다. 한국평협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신앙의 해 신앙생활 의식조사와 신앙 체험수기 공모 △신앙의 해 묵주기도 밤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각 교구 평협도 도보 성지순례와 심포지엄, 특강, 체험사례 발표, 미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쳐왔다. 각 교구 평협과 사도직 단체들이 신앙의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백서」 형식의 문건을 제작해 자료로 남겼으면 한다. 아울러 각 교구 평협과 한국평협의 운영 실태를 좀 더 깊이 알아보고 평협이 자리매김을 했으면 한다. ▨주제발표2- 신앙의 해를 사는 평신도 신앙의 모습 / 선한승(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는 신앙의 해에 신자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대상자는 주로 수도권에 사는 신자 1384명(남성 500명, 여성 884명)으로, 1960년대 이전 출생자가 전체의 54%였다. 기혼자가 88%로 다수이며, 대졸자가 47%로 가장 많았다. 미사참례 횟수는 일주일에 2~3번이 46%로 가장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82%가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미사에 참례했다. 고해성사는 1년에 4~5번이 가장 많았고(44%), 한 달에 한 번 이상도 41%에 달했다. 하지만 매일 기도한다는 응답자는 21%에 그쳤다. 성경도 가끔 생각날 때 읽는다는 응답이 3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성경을 매일 읽는 신자는 19%에 그쳤다. 신앙의 해 인지 조사에서는 전체 26%만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어렴풋이 안다'는 응답은 48%로, 전체 71%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모른다는 응답도 약 30%에 달했다. 또 응답자 33%만이 신앙의 해 프로그램 등에 참가했다고 응답했다. 신앙의 해를 맞아 본당 차원에서 여러 활동이 펼쳐지고 있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 본당의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해가 일회적 행사가 아니고, 서울대교구가 제시하는 5가지 표어를 일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일상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의식을 내면화하고 생활한다는 응답자는 88%나 되는 반면 사형폐지와 낙태, 인공수정, 안락사 문제 등에서 교회 가르침에 부합하게 생각하는 신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참다운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읽기와 미사참례 등 적극 권장 △신앙의 해 취지 계승 발전 △공동체 활동 참가와 선교활동 강화 △교회 정책 순응하는 생활 △신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와 신자의 공동노력 등이 필요하다. ▨주제발표3- 신앙의 해 자기 쇄신을 통한 평신도 사도직의 새 진로 / 최혜영 수녀(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 위원) 한국평협은 2010년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평신도를 교회 공동 책임자로 키워내야 한다. 평신도 영성은 현세 질서의 복음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시민정신의 성숙과 발전을 이뤄낼 사회참여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평협이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인재양성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에 계속 힘쓰면 교구 차원의 평신도 사목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평신도사도직이 본당 중심이었다면, 앞으로 새 복음화 활동은 넓은 사회연계망 안에서 펼쳐질 것이므로 직장과 전문직, 동호회 등 다양한 모임을 포괄할 수 있도록 외연을 넓혀야 한다.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여성소위원회 활성화와 여성사목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교회가 여성 신자를 육성하는 것이 활기 있는 교회를 만드는 데 지름길이 되고, 여성사목이 가정과 청소년, 노인, 사회복지 등 다른 여러 사목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특색이 있는 평신도 단체들이 스스로 잘 성장하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평협은 각 단체가 세상 안에서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무신론적 문화를 극복하고 보다 복음적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신도사도직을 삶의 현장에서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와 타 종교 단체 등 시민사회와 연계도 필요하다. 사제성소와 수도성소 계발에 힘써야 하는 것도 평신도 몫이다. ▨종합토론 △서철(청주교구 사목국장) 신부 : "도보 성지순례 열풍이다. 그런데 걷기에만 집중한다. 순교자 한 분 한 분 행적이나 영성을 자기 것으로 채우는 데는 부족하다. 순교자가 하느님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여긴 것처럼 내 선택 기준이 하느님이 되도록 평협 운동 차원에서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서정권(베드로, 광주대교구 평협) 회장 : "신앙의 해는 우리 모두 신앙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자 아닌 이들이 '천주교' 하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이름을 떠올릴 정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임경수(아우구스티노, 대구대교구 평협) 회장 : "선한승 박사 연구결과를 보면, 신앙생활은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미흡하다. 우리가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다. 사제, 수도자가 평신도에게서 태어나는데, 우리가 모범을 못 보여 성소자가 줄고 있는 점은 반성해야 한다. 신앙의 해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변진흥(야고보) 박사 : "신앙의 해는 신앙의 위기가 전제다. 그런데 위기의식이 있는가? 위기는 위기의식마저 무너졌을 때가 진짜 위기다. 사회가 좌익으로 갈 때나 우익으로 갈 때 어디까지가 가톨릭교회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인지를 설정해 줘야 한다. 그 범위 안에서 대화하고 풀면 한국 사회가 한국교회를 따를 것으로 본다." cpbc2013.11.12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24> 발터 카스퍼(하)](//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2773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 발터 카스퍼(하)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와 쇄신 강조 지난 3월 독일에서 열린 발터 카스퍼 추기경 80세 생일 기념 행사에서 카스퍼 추기경(가운데)과 함께한 심상태 몬시뇰. 심 몬시뇰은 카스퍼 추기경 제자다. 카스퍼 신학의 중요사상 카스퍼를 포함한 현대의 대표적 신학자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위시한 신앙의 핵심 진리를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인 본성, 본질, 실체와 위격 개념 등을 사용해 의미를 밝힌 형이상학적 신학 경향을 탈피하고, 역사 안에서 만물과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마침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하느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의 실상을 구명하는 데 역점을 두는 구세사적 신학을 공통으로 전개한다. 그리고 교회를 불완전한 사회나 종교 집단과 구별되는 교계제도로 구성된 초자연적 완전 사회로 파악하던 개선주의 경향을 벗어나 구세사적 지평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으로서 친교 공동체로, 구원의 성사적 표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신앙의 주요 진리에 대한 공통된 신학 사상이 형성돼 있지만, 튀빙겐 신학의 인식 원리와 방법에 입각한 카스퍼의 주요 신학사상 안에는 특유의 구별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제약된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공통된 내용보다는 특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요 통찰만을 간략히 소묘하고자 한다. 신앙이해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 흔히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객관적 구원 사실을 진리라고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카스퍼에게 성경과 성전에서 증언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외부인 눈에는 숨겨진 역사로서 신앙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기적과 예수 부활 등을 이해하는 데에서 성경 본문이나, 교회 가르침을 진리 근거로 제시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이 결정적 주요성을 지닌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구세사는 인간에게 숙명론적으로 발생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 일상의 비루함과 현실 세계의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주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의탁하는 역사적 신앙 감행을 통해 발생한다. 신앙생활을 위해 구세사의 객관적 성격이 주요하더라도, 신앙의 주관적ㆍ역사적 국면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카스퍼의 입장이다. 하느님과 그리스도 이해 카스퍼의 하느님 신학사상은 그분을 '절대적 자유로서의 사랑'으로 이해한다. 그는 성부로서의 하느님이 절대적 자유의 선물이고 성자는 성부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 절대적 인정이며, 성령은 절대적 단일성과 절대적 상위성의 동일원천성이라고 이해한다. 하느님, 성령, 절대적 사랑은 하나의 관계이며 그것이 자유의 선물이고 시간 내지 가능성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서 자유의 선물이신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타자적인 것 즉 창조를 원하시는 데에서 필요하지 않은, 자유를 지닌 어떤 것이 생겨난다고 본다. 하느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실제적인 무조건적 자유의 선물이다. 그리고 카스퍼는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아드님이자 로고스의 성령 역사로 이뤄진 육화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는 상위성을 단일성과 함께 성령적으로 시야에 담을 때에만 적절히 이해된다고 본다. 이어서 그는 예수가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으로서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 칼케돈공의회 교의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로서 '인격' 개념 설명을 통해 밝힌다. 그는 인격이 구체적으로 '오직 관계 안에서'만 자신을 실현하는 사랑을 본질로 지닌다고 규정하면서 이 내용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그분을 신적 인격으로 특징짓는 정체성은 성부께 대한 그의 사랑의 관계, 곧 성부를 향한 사랑에서 발하는 그의 순명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인간적 순명이 천주 성자의 순명인 한, 순명이 그를 성부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성부와의 일치도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스퍼는 성자의 위격이 현실적으로 인간 예수로 존재하기에 성자는 인간으로서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적 위격이기도 하다고 논증한다. 성자가 자신의 신적 위격성을 이제 인간적 유형 양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 안에서 신적 '누구'의 인간적 '나', 천주 성자가 있다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성령과 긴밀한 연계 안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세계 안에서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 성령의 새로 마련된 현존과 실재의 목표이자 정점"이면서, 또한 "성령 파견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거를 찾는다. 그 다음 논거로는 예수와 그의 성령을 통해 종말시대가 이끌려졌다는 점을 꼽는다. 교회 이해 카스퍼의 교회론 역시 성령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는 교회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충실하듯이 '시대의 물음'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열려 있고 은사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연계하면서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분임을 아울러 역설한다. 그는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일종의 그리스도 일원론적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성령을 교회 제도에 연계하는 경향이 점증하며 '교계적 교회의 영혼'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성삼 위격들의 외부로의 공동 역사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노적 신학 명제가 강조되는 나머지 신자들의 개별 인격이 독자적 존재가 되도록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에 대해서 공언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성자 시대 이후에 성령의 시대에 대해서 언급한 중세 피오레의 요셉 수도원장을 거슬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넘어서는 구세사적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하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카스퍼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강조한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는 죽은 문자의 양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유의 양식 안에서 발생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늘 반복해 그 새로움 안에서 이 새로운 것을 자유에 맡긴다. 성령은 늘 새로운 것의 하느님으로부터 열린 공간이며 새로운 존재의 늘 새로운 힘이다." 카스퍼는 교회를 "성령의 성사"로 지칭하기도 한다. 성령의 성사로서 교회 이해는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폐쇄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비해 본질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견지한다. "교회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돌입할 때까지 와 있는 실재이다.… 교회는 한 번은 전체 실체를 포괄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도 어디서나 숨겨진 가운데 돌입하고 있는 하느님 다스림의 선취적인 표징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일치 교령」이, 성령이 구원의 중재를 위해 다른 교회적 공동체를 사용하신다고 말할 때, 그로써 우리의 학교 교의학에서는 전혀 해서는 안 됐어야 할 양식으로 성령이 작용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카스퍼는 또한 '성령'과 '성사' 개념의 연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령 작용이 항상 구체적인 가시적 일치로 이끈다고 강조한다. 그는 분열을 극복하려는 교회는 가시적 다양성의 가시적 단일성에로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령의 성사인 교회 안에서 단일성이 다양성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사이의 관계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안에서 드러난 라칭거와 카스퍼 사이의 입장 차이의 핵심이 있다. 그는 다양성에 앞선 단일성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라칭거와는 달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성령의 성사'로서 이해된 교회의 삼위일체적 성격에 따른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상호침투성을 말한다. 즉 많은 지역교회들이 단지 하나인 교회의 한 부분이나 구역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안에서 하나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카스퍼는 성령의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의 장점으로 교회에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 새로운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조할 수 없는 것" 등이 속하는 사실을 꼽는다.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새로움 안에서 항상 되풀이해 새롭게 현재화하는 데에서 이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죽이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의 성령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현상 유지의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잠금장치가 아니라 지속적 쇄신의 성령이다."한국교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애정 끝으로 카스퍼가 한국교회에 비상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방한, 며칠간 머물면서 자신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같이 '아시아 복음화'가 제3천년기 보편교회의 최대 도전이자 과업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실패한 서구교회를 대체하고 이 과업을 수행할 여건을 제대로 구비한 지역교회로 한국교회를 꼽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에 앞서 50년 동안 복음을 신앙진리로 스스로 수용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지탱하고자 진력한 창설 주역들에 대해 찬탄 어린 경의를 나타냈다. 그는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실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큰 신학자이기도 하다.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cpbc2013.11.12

124위 순교지를 가다 죽산성지 잡혀가면 돌아오지 못한 박해시절 처형터… 박경진 프란치스코·오 마르가리타 부부 순교1868년 9월, 절골(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이 요란스럽다. 이곳에 숨어 신앙생활을 하는 ‘천주쟁이’들을 잡기 위해 죽산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포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은 한 가족은 필요한 것만 챙겨 필사적으로 산에 몸을 숨겼다. 얼마나 달렸을까. 급하게 도망치다 보니 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만큼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 스스로 뛰지 못하는 막내를 업고 산을 오른 아내 오 마르가리타(?~1868)는 보채는 아이를 달랠 겸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런데 누군가 오 마르가리타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포졸이었다. 포졸은 그 자리에서 그에게 온갖 쌍욕과 매질을 퍼부었다. 그는 매 맞으면서도 혹시 어린아이에게 생채기 날까 막내를 세게 끌어안았다. 아내와 아들 넷이 걱정된 남편 박경진(프란치스코, 1835~1868)은 결국 해가 질 때쯤 조심스레 산에서 내려왔다. 동네에 도착해 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그는 일단 동네 사람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집주인은 방까지 달궈줬다. 잠에 빠지려는 찰나, 포졸 대여섯이 작은 문을 비집고 들어와 그에게 쉼 없이 몽둥이질했다. 열린 문틈으로 포졸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집주인이 보였다.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 부부는 포박된 채 재회했다. 머리채가 산발이 된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남편이 피투성이가 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부부가 끌려간 곳은 죽산도호부. 경기와 강원, 충북의 교우촌을 몰살시킨 악명 높은 곳이다. 모진 고초를 겪은 부부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피폐해졌다. 하지만 신앙은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에게 사형명이 내려졌다. 형 집행일 전날 박경진은 동생 박 필립보와 아들 박 안토니오에게 짧은 편지를 남겼다.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다음날, 부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10리를 걸어 도착한 형장에서 나란히 죽음을 맞이했다. 1868년 9월 28일이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참조대나무 형상의 순교자 현양탑 옆으로 죽산 순교자 25위 묘가 줄지어 있다.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일죽나들목을 나와 안성 방향으로 300m. ‘죽산성지’라 쓰인 커다란 돌비석이 보인다. 이곳의 옛 이름은 ‘이진 터’. 고려 때 오랑캐(몽골)들이 진을 친 곳이라는 설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병인박해 때 새 이름이 붙었다. ‘잊은 터’, 이곳은 본래 박해 시절 처형지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곳으로 누군가 끌려가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그만큼 죽산은 순교의 피가 서려 있는 곳이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서 이름을 확인한 순교자만 25위나 된다. 이 중 2차 시복 대상자인 여기중과 문 막달레나, 정덕구(야고보), 조치명(타대오), 김 우브로시나, 최제근 안드레아, 방 데레사, 유 베드로 등 8위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오는 8월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124위 중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 부부가 바로 이곳에서 순교했다. #성스러운 눈물이 깃든 곳 성지에 발을 들여 놓으려면 먼저 널따란 기와 대문을 지나야 한다. 대문 현판에는 ‘성역’(聖域)이라 쓰여 있다. 그 글은 마치 성스러운 곳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바로하라는 듯 순례객을 기다리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성지의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낮은 기와 담장을 따라 줄지어 장미도 피었다. 소낙비 때문에 떨어진 빨간 꽃잎들이 이곳에서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떠올리게 한다. 장미 덩굴 따라 동그란 돌이 놓여 있다. 묵주알이다. 하늘에서 성지를 바라보면 담장을 따라 큰 묵주가 완성된다. 묵주알 굴리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주의 길’을 걷고 나면 피에타상에 적힌 성경 말씀으로 기도를 마무리 짓게 된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시편 126,5) #순교의 향기 묵주의 길을 지나면 순교자 묘역이 나온다. 죽산 순교자 25위의 무덤과 무명순교자 봉분이 있다. 바로 이곳에 신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하느님의 종 박경진·오 마르가리타 부부가 나란히 묻혀 있다. 묘역 양 끝에는 순교자 현양탑이 있다. 현양탑은 하늘을 향해 길고 높게 뻗어 있다. 대나무 형상을 한 이 현양탑은 고통 속에서도 믿음의 끝을 놓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의 절개를 의미한다. 현양탑을 끼고 돌아 묘역 뒤편으로 오르면 작은 언덕 위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처마다 흰 대리석으로 묵상을 돕는 조각품이 놓여 있다. 조각가 최영철(바오로)씨의 작품으로 2012년 봉헌됐다. 1처, 2처, …14처.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는 예수님 말씀과 함께 순교자 신심을 묵상한다. #기억해야 하는 터 박해 시절 사람들은 이곳을 ‘잊은 터’라 불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을 잊자는 의미에서였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순교자 124위 순교자 시복 전대사 순례지로 지정돼 ‘기억해야 하는 터’가 됐다. 성지 방문해(또는 방문 전)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와 영성체, 묵주기도 5단, 시복시성기도문,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과 시복식을 위한 기도문, 주모경 1회를 봉헌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문의: 031-676-6701 기억해야 할 곳이 한 곳 더 있다. 죽산면 사무소 입구 덤불에 쌓인 작은 공간. 바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옥사 또는 장사했던 죽산도호부 터다. 이곳에 현양비를 세우고 죽산순교성지까지 약 1시간 거리의 순례길을 조성하는 것이 성지 관계자의 계획이다. 글·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죽산도호부 관아 자리 순교자 현양비 건립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사무소 입구에 죽산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비가 세워진다. 이곳은 박해 시절 죽산도호부 관아가 있던 자리로 순교자들이 문초를 당하며 피흘린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양비가 들어설 곳은 사무소 입구 좌측 약 82.6㎡ 정도의 시유지. 안성시의 사용 허가를 받은 죽산 순교성지(담당 이철수 신부)는 이 공간을 작은 성지로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이철수 신부는 “도호부에서 고문을 받고 옥사에서 순교하거나 형벌 때문에 장사한 순교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인 만큼 이곳에 현양비를 세우는 일이 역사적 사명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시유지 사용을 허가받기 위해 안성시 관계자들과 수없이 만나며 순교자 현양비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전했다. 그 결과 5월 12일 시에서 시유지 사용을 허가받았다. 현재는 오는 8월에 진행될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 전에 현양비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이 신부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뤄낼 수 있었다”며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미신자들에게도 한국교회 순교자 영성을 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양비는 죄인을 가두기 위해 목에 씌우던 형구인 ‘칼’의 모양을 본떠 제작된다. 높이는 약 2m이며 비석에 박경진(프란치스코)이 동생 박 필립보와 아들 박 안토니오에게 남긴 편지글이 문구로 새겨진다. 백슬기 기자 백영민2014.06.25
![[사목교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9182_1.0_titleImage_1.jpg)
[사목교서]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친애하는 군종교구 사제와 수도자, 교구민 여러분! 올해는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라는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I.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가 지녀야 할 최대의 의무이자 최대의 관심사가 돼야 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 주는 행위입니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외아들을 이 세상에 탄생시킨 것만이 아니고, 이 지상에서 나를 위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또 나를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희생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충만히, 구체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하느님께 대한 나의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감사는 자연히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인생 자세를 갖게 해줍니다. II.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7)라는 말대로 이웃 사랑, 곧 형제애를 추구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항구한 사랑과 겸손한 섬김 및 희생이 담긴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로마 5,5), 비록 많은 내적 갈등과 고뇌를 겪게 된다 해도 형제애의 실천이 가능해집니다. III. 금년 사목목표인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구체적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1. 하느님께 대한 사랑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듣고, 쓰고, 외우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어디서든 개인으로 혹은 공동으로 기도하는 삶에 힘쓰되, 특히 성당에서 성체조배와 성시간과 미사 전후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힘씁시다. -각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감사드리는 생활을 하며, 서로 하느님의 사랑 체험에 대해 나누도록 합시다. 2. 이웃 사랑(형제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의 주요 요소인 친절과 겸손과 예의의 자세를 실천하도록 합시다. -가족들 간에, 교회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 간에, 그리고 이웃 간에 친교와 나눔을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특히 미사 때만이 아니고 미사 전후에 서로 기쁘게 인사를 나누고, 주일미사 후에는 친교의 식사나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도와주려는 마음을 지니며, 특히 기쁜 일과 슬픈 일에 함께하도록 합시다. -어려운 이웃을, 특히 우리 주님께서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이라고 일컬은 이들을 기꺼이 희생으로 도와주도록 합시다.cpbc2013.12.24

교황님은 작은 것을 좋아해‘가장 작은 한국 차를 타고 싶다’는 말씀에 담긴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장 작은 한국 차를 타고 싶다.” 지난 6월 30일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전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마디가 언론매체를 들썩이게 했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인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취임 직후부터 ‘작은 것’들을 택하며 청빈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교황. 한국 방문에서도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어 소박하면서도 방문국을 최대한 배려하는 선택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황이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말 그대로 규모와 크기가 작고 어린 것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 신약성경 복음서에 언급되는 ‘작은 이들’ 곧 불우하고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과 소박하고 견실한 삶에 대한 사랑을 포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작은 것 사랑’에 숨어있는 가치들을 살펴보자.?교황궁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즉위 직후, 교황관저 대신 교황 선거(콘클라베)를 위해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을 거처로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교황들이 교황 관저(apostolic palace: 교황궁)에 머물던 110년 바티칸 관행을 깬 것으로, 추기경 시절의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같은 해 6월 7일, 교황은 이탈리아의 예수회 학교 학생들의 만난 자리에서 “왜 마르타의 집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사는 것은 내게 좋지 않다.” ? 결국 신자들과 직접 만나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 신앙을 전파하려는 의지가 교황관저 대신 소박한 게스트하우스 숙소를 선택한 배경인 셈이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1891년 바티칸 인근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당시 레오 13세 교황이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설치한 건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엔 전쟁을 피해 온 망명자와 유대인, 이탈리아와 외교관계가 끊어진 나라 외교관들의 피신처로 이용됐으며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기 위해 개축됐다. ?주행거리 30만km 중고 소형차를 운전하다? 2013년 9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의 한 신부에게서 출고된 뒤 20년이 지난 소형차를 선물 받았다. 영국 BBC는 교황의 검소함에 감동한 렌초 초카 신부가 교황에게 자신이 몰던 흰색 르노4를 선물했다고 전했다. 르노4는 교황이 아르헨티나에 머물던 시절 몰고 다닌 모델로 현재는 단종된 차종. 선물 받은 차의 주행거리는 30만 km로 알려졌다.? 초카 신부는 이탈리아 잡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낮은 데로 임하겠다’는 교황을 존경해왔다”며 “마땅한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20년간 함께한 ‘르노4’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교황은 초카 신부에게서 자동차 열쇠를 넘겨받고 그 자리에서 직접 운전을 하며 즐거워했다. BBC는 “근처에 있던 경호원들이 직접 운전하는 교황을 보고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해 7월 바티칸을 순례하러 온 신부들과 가진 세미나에서 "사제나 수녀들이 새 차를 가진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제 여러분은 더 많이 봉사하고 많이 움직이되 검소한 차를 갖기 바란다"고 밝힌 적도 있었다.? 낡은 십자가와 재활용 반지, 바티칸을 바꾸다? 2013년 3월 13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강복을 위해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났을 때, 그의 목에 걸린 십자가(pectorial cross)는 새 교황을 위해 만든 금 십자가가 아닌 낡은 철제 십자가였다. 주교 시절부터 쓰던 철제 십자가를 교황은 지금까지 쓰고 있다. ? 교황의 옥새로 불리는 어부의 반지(Fisherman's Ring)는 새 교황이 즉위하면 금으로 새로 제작된다. 이후 선종하거나 사임할 때까지 공식 문서에 서명 날인할 때 사용하거나 수많은 신도의 입맞춤을 받으며 교황과 함께한다. 교황이 어부의 반지를 받는 것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부의 반지를 새로 만들지 않고, 바오로 6세(1963-1978 재임)를 위해 디자인됐으나 채택되지 않은 주조틀을 재활용해 만든 반지를 선택했다. 그것도 관례에 따른 금반지가 아니라, 금으로 도금한 은반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선수범은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와 주교들의 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2013년 10월 25일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주교들이 목에 걸어 착용하는 가슴 십자가(pectorial cross)를 황금 재질에서 은이나 다른 금속 재질로 바꾸고, 각종 비용도 줄여나가기 시작한 데 이어 사치스런 대형 차량도 평범한 것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은 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직후부터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촉구해왔다. 2013년 12월 17일 아침 교황 즉위 후 맞은 첫 생일 아침상에 동유럽 출신 노숙인 세 명을 초청해 생일상을 함께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 그보다 앞서 2013년 7월 8일, 교황은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의 아프리카 불법이주자 수용소를 사목방문해 “우리의 풍족한 문화가 우리를 다른 이들의 울음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요청했다. 난민들을 위한 메시지는 두 달 뒤에도 이어졌다. 9월 10일 교황은 로마에 있는 아프리카 난민 수용소를 방문, 수십 명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눈 뒤 “교회는 돈을 벌려고 비어있는 수도원을 굳이 호텔로 바꿀 이유가 없다. 이 시설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난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가톨릭 수도원들은 수도생활 지망자 수가 줄어들면서 방치되었다가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개조되는 사례가 많아 논란거리가 돼왔다. 가난(청빈)은 가톨릭 수도생활의 3대 덕목(청빈, 정결, 순명) 중에서도 으뜸인 만큼, 교황의 발언은 가난을 실천하는 수도자들의 집인 수도원을 가난한 이에게 내어주라는 권고로 읽힌다.? 교황은 또 "명목상 국제적 보호를 받는다는 난민들이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질 기회조차 없이 가난하고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며 "로마는 난민들이 인간의 영역을 되찾고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아울러 난민들이 다양한 인종, 종교, 국적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다양성은 선물’이라고 지적하면서 "풍부함은 환영할 일이지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라며 이민족에 대한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상메시지로 이웃돕기 거듭 호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12월 기아에 허덕이는 불우이웃 돕기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영상메시지 2편을 연달아 촬영했다.? 12월 5일, 교황은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재사용 물건들을 찾아내는 세계의 ‘카톤네로스(넝마주이)’를 격려하는 영상메시지를 촬영하며 “카톤네로스의 활동은 환경을 위해 고귀하고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회용 문화’를 비판하면서 “매일 버려지는 음식으로 전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산하 국제구호기구인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이 주도하는 지구촌 기아퇴치 운동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참여를 독려했다. 이 운동은 ‘인류는 한 가족, 모든 이에게 음식을’이라는 주제로 2025년까지 전개된다.? 새 추기경도 작은 나라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1월 12일 처음으로 임명한 추기경들의 명단은 ‘주변부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소국 부르키나파소, 중미 카리브해의 아이티가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한 것이다. 필리페 나켈렌투바 우에드라오고 와가두구 대주교, 치블리 랑글루아 레카이 주교가 그 주인공이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수준이 낮은 나라로 꼽힌다. 인구 대다수가 이슬람교와 토착 부족 종교를 믿는다. 아이티는 세계 최빈국이며, 다른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다. 아이티에서는 대주교가 아닌 주교를 발탁했다.? 작고 가난한 나라의 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교황의 결정은 극빈지역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황이 참가인원이 2천 명에 불과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결정한 것도 ‘작은’ 교회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면모를 엿보게 한다. 13일 대전교구에서 개막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는 대회 역사상 최초로 교황이 방문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역대 교황들은 세계청년대회에만 참석해 왔으며 2013년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는 300만 명이 참가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cpbc2014.08.08

"하느님께 많은 걸 받았기에 이미 행복"제16회 가톨릭 독서콘서트,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특강 '가장 멋진 삶' 두봉 주교가 11월 28일 가톨릭 독서콘서트 특강을 마치고 신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힘 기자 "'나는 귀염둥이다''나는 복이 있다''나는 멋쟁이다'하고 외쳐보세요. 주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세상살이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 영원히 멋지게 살아봅시다!"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가 11월 28일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신다"며 우리가 얼마나 받은 것이 많은지 다시금 깨달으라고 말했다. 두봉 주교는 이날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회장 김정동)가 서울 불광동성당(주임 김민수 신부)에서 개최한 제16회 가톨릭 독서콘서트에서 강사로 나서 '가장 멋진 삶'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1929년 프랑스에서 출생해 85세인 두봉 주교는 고령에도 특강을 들으러 온 300명이 넘는 신자들에게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전했다. "우리가 왜 살까요? 저는 '멋지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 있나요? 부모님과 나라, 어느 시대를 선택한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지요.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주신 것도 참 묘합니다." 두봉 주교는 "구약성경에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예레 1,5)는 부분이 있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신다"고 말했다. "저는 위로 큰형님과 누님이 계시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10살 때 2차대전이 나서 먹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키가 160(㎝)밖에 안 돼요. 큰형님은 180인데 저와 막내아우는 못 먹어서 160이에요. 나는 왜 형보다 20㎝나 작을까 고민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50년 전 한국에 오니 한국사람 평균 키가 160이었어요. 주님은 저를 한국에 보낼 계획이셨나봐요." 두봉 주교는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장점은 물론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이미 잘 알고 계시기에 이것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받은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면 '참 잘했다'는 느낌이 들고, 나쁜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바로 양심 때문이며, 우리 양심은 자동차 후방감지기가 '삐'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서 작동한다"고 말했다. 두봉 주교는 또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된 것도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덕분"이라며 "늘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사는지 생각하고 기쁘게 살자"고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2.03
![[성경 속 궁금증] (21) 성경에서 왜 뱀이 유혹자로 등장하는가](//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384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21) 성경에서 왜 뱀이 유혹자로 등장하는가죽음과 파괴, 유혹자의 상징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1). 성경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를 뱀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를 일반적으로 태고사(太古史)라고 한다. 태고사는 세상 창조, 아담과 하와 창조, 카인과 아벨, 노아 홍수, 바벨탑 등 재미있게 전개되는 설화(說話)형식으로 쓰여 있다. 어떤 이는 인류 가운데 배꼽이 없는 사람은 아담과 하와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출산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창조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설화를 글자 그대로 믿고 이해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태고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설화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옛날 이야기 중에는 허무맹랑한 것도 많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가정과 공동체 역사와 문화를 배우게 된다. 형식은 이야기지만 그 의미와 뜻은 그 안에 고스란히 보존돼 전승된다. 따라서 설화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의미와 뜻에 집중해야 한다. 성경에서도 뱀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해야 그 설화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뱀은 아주 복잡한 의미를 가진 상징적 동물이다. 죽음과 파괴, 지식, 힘, 간계, 음험, 교활, 암흑, 부패, 유혹자의 상징이며, 다리나 날개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서 모든 것에 침투하는 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눈은 인간의 내적 본성과 양심을 나타낸다. 뱀은 마녀나 마술사 같이 사악한 힘을 가진 존재가 변장한 모습으로 자연계의 사악한 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경에는 뱀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서 뱀은 50여 차례나 언급되는데, 물론 그 역할도 다양하다. 뱀은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창세기는 뱀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존재라고 소개한다(창세 3,1). 뱀은 하와를 죄에 빠뜨리는 유혹자로 온갖 달콤한 말로 하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며(창세 3,1-24 참조), 하와는 유혹에 빠져 먹음직한 열매를 따먹게 된다. 결국 하와뿐만 아니라 아담까지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게 됐고, 이 때문에 하느님 저주를 받은 뱀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어야 하는 가련한 존재가 됐다(창세 3,1-5). 신약성경은 뱀을 죽음의 세력, 하느님에 의해 짓부숴져 사도들 발 아래 밟히는 사탄으로 표현한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사탄을 짓부수시어 여러분의 발아래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로마 16,20). 이처럼 뱀은 전통적으로 사탄과 동일시되고 나쁜 성향을 갖고 있는 죽음의 천사로 이해됐다. 따라서 성경 저자들이 성경에 뱀을 유혹자로 묘사하고 등장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퇴사자2201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