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주간에 만난 사람] "말씀의 단맛, 써보지 않곤 몰라요"](//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5733_1.0_titleImage_1.jpg)
[성서주간에 만난 사람] "말씀의 단맛, 써보지 않곤 몰라요"다섯 번째로 성경 필사 중인 서정희씨 벌써 다섯 번째다. 구약 열왕기 상권 20장 7절을 써내려가는 손가락엔 굳은살이 단단히 박였다. 굳은살이 보기 흉하지 않으냐는 말에 서정희(마리나, 80, 청주교구 부강본당) 할머니는 "어차피 쓰다보면 또 박일텐데 뭘 빼냐"고 눙친다. 하루 일고여덟 시간 투자 "왜 쓰시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처음엔 멋모르고 썼는데, 기도를 드리며 말씀을 쓰다보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됐다"고 필사 소감을 전한다. 40년간 한복과 이불, 수의를 바느질하느라 잔뼈가 굵은 할머니가 성경 필사에 폭 빠지게 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손에서 바느질 일을 내려놓은 뒤 우연히 여고 동창이자 친정 고모인 서옥례(아폴리나, 81)씨가 성경을 필사하는 걸 보고 도전을 느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기노트를 사서 이듬해 1월부터 '죽을 둥 살 둥' 매달렸다. 청주교구 부강본당 서정희 마리나 할머니가 딸 이현주 요세파씨에게 자신이 필사한 성경쓰기노트를 보여주며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밥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잠 자는 것 외엔 오롯이 필사만 했다. 하루 일고여덟 시간은 족히 투자했다. 처음엔 깨알 같은 글씨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속도가 나지 않아 속도 많이 상했다. 그렇지만 쓰다보니 점차 가슴이 벅차 올랐다. 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도 그런 기쁨 속에서 딱 일주일 모자라는 10개월이 걸려 공동번역성서 구약 2430쪽 1215장, 신약 505쪽 258장을 모두 썼다. "침대 위에 상 하나 펴놓고 성경을 올려놓은 뒤 말씀을 한 대목 한 대목씩 새기며 옮길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써보시지 않은 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또 하느님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늦게나마 성경을 쓸 수 있게 도전과 용기를 주신 신부님과 수녀님들, 신자분들께도 감사를 드리곤 해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 말씀과 함께한 세월이 11년이 다 돼간다. 두 번째 필사는 1년, 세 번째는 3년, 네 번째도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성경도 공동번역성서에서 새 성경으로 바뀌었다. 한때는 퇴행성관절염으로 수술을 받고 치료하느라 필사가 늦어지기도 했다. 네 번째 필사 뒤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도 필사했다. 필사로 받은 청주교구장과 주임 신부 축복장도 네 개나 되고, 성경(Bible)을 뜻하는 두 영문 알파벳 'BL'이 새겨진 필사기념반지도 받았다. 그렇지만 축복장이나 반지보다 더 기쁜 건 말씀의 단맛을 알게됐다는 것이다. 그 열심에 지난 2007년 선종한 남편 이윤우(요셉)씨도 신약을 1년에 걸쳐 모두 썼다. 신ㆍ구약성경을 필사할 때마다 생기는 필사노트 20권은 자녀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본당 사제 등에게 선물했다. 할머니의 꿈은 오늘도 성경필사다. "죽을 때까지 남은 여생,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성경필사와 봉사만 하며 하느님과 함께하고 하느님과 더 가까이 살겠다"고 다짐하는 서 할머니의 얼굴엔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 같은 기쁨이 가득하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이지혜2011.11.15

'하느님 나라의 복음' 처음 선포된 '생명의 땅'[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10. 갈릴래아이스라엘 생명의 젓줄인 갈릴래아 호수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과 은혜로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사진은 갈릴래아 호수 전경. 이창훈 기자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4,23). 예수께서 기쁜 소식 '하늘 나라의 복음'을 처음으로 선포하셨던 생명의 땅 '갈릴래아'. 예수께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가르침과 기적을 이곳 갈릴래아에서 행하셨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군중에게 참행복을 선언하고 여러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병자들을 치유하고 빵의 기적을 행하셨다. 부활하신 다음 사도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설교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에 대해 선포하신다. 그 하느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이며 세상과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지금 벌써 행동하시는 하느님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계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정말로 하느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달리 말하면 그분은 세상의 고삐를 손에 쥐고 계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의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하느님은 지금 행동하신다'"(「나자렛 예수」 1권, 111~112쪽 참고). ▨갈릴래아 지방 1세기 유다계 로마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갈릴래아 지방 경계를 동쪽으로 요르단, 서쪽으로 아코와 카르멜산, 남쪽으로 사마리아와 베트셰안, 북쪽으로 비카 지역 일대라고 기록했다. 지금의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 인근 북부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예수 시대 때 갈릴래아 호숫가 크고 작은 마을은 204개나 됐다. 예수의 주요 활동지로 성경을 통해 잘 알려진 카파르나움, 벳사이다, 겐네사렛, 티베리아스, 막달라, 타브가와 같은 어촌과 산중에 있는 코라진, 쿠르시 등이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던 마을이었다. 1세기 당시 가장 작은 마을도 1500여 명의 주민이 있었다 하니 예수 시대 갈릴래아 지방에는 대략 30여만 명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갈릴래아는 원래 구약 가나안 사람 땅이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뒤 즈불룬ㆍ아세르ㆍ납탈리 지파 유다인들이 가나안 사람과 갈릴래아에서 어울려 살았다(판관 1,30-33). 이후 단 지파 유다인들도 갈릴래아에 정착했다. 휴경지가 없을 만큼 비옥한 갈릴래아 지방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로마 등 열강의 지배를 받았다. 이런 이유로 유다인들은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이사 8,23; 마태 4,15)라고 멸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 이스라엘은 1948년부터 2년에 걸친 시리아와 레바논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갈릴래아 지방 전역을 차지했다. ▨갈릴래아 호수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160여㎞, 나자렛에서 30여㎞ 올라가면 갈릴래아 호수가 나온다. 갈릴래아 호수는 하프 모양의 유다인 전통 악기 '키네레트'를 닮았다 해서 히브리 사람들은 "얌 키네레트"라 불렀다. 이를 로마인들은 '갈릴래아'라 했고, 오늘날 영어로 '갈릴리'라 표현한다. 또 마르코(1,16; 3,7)ㆍ마태오(4,18; 14, 25)는 '갈릴래아 바다'라 하고, 루카는 '겐네사렛 호수'(5,1), 요한은 '갈릴래아 바다''티베리아스 바다'(6,1)를 혼용해 표기하고 있다. 이는 바다와 호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얌'으로 표기하는 히브리말을 헬라어로 옮기면서 생긴 혼선이다. 지중해 해수면보다 약 212m 낮은 갈릴래아 호수는 남북 길이21㎞, 동서 폭 12㎞, 둘레 52㎞, 넓이 170㎢, 깊이 49m로 호수라기보다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풍광도 수려하다. 3~4월이면 야생 양귀비가 호숫가를 주홍색 꽃빛으로 물들이고, 한여름에는 대추야자나무와 수초들이 초록의 싱그러움을 뽐낸다. 가을에는 황금 갈대의 고고함과 겨울에는 북풍의 성난 파고를 잠재우는 햇살의 넉넉함이 순례자들을 여유롭게 한다. 갈릴래아 호숫물은 헤르몬 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온 것으로 요르단 강을 따라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갈릴래아 호수는 평화로운 주변 풍광과 달리 무척 변덕스럽다. 한낮에는 잔잔하다가도 일교차가 심한 날이나 기온이 내려가는 일몰 때는 풍랑이 거세진다. 호수 북동쪽에 자리잡은 골란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푄현상을 일으켜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큰 파도를 만들어 낸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랬듯이 주로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숫가를 두루 다니셨다. 배에 올라 앉아 호숫가에 있는 군중들에게 설교하셨고(마태 13,1),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기도 했다(마르 6,32). 또 물 위를 걸으시기도 하고(마태 14, 22-33), 풍랑을 잠재우신 기적도 행하셨다(마르 4,35-41).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평화방송여행사 협찬 / 02-2266-1591~2 cpbc2013.09.10
![[성경 속 궁금증] (22)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5203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22)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카인의 질투와 살해에 주목해야"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창세 4,1-5).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제사는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카인의 질투가 결국에는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게 만든다. 하느님께서는 왜 카인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을까?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왜 카인의 제물을 거절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래서 추측만 할 뿐이다. 이 질문에 많은 학자들이 해답을 시도했다. 이 이야기 배경에는 가나안지역의 민족들보다 이스라엘 민족을 더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가나안지역 사람들은 농경문화를 이루며 부유한 경제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목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지역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해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신들은 그래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우월감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성경 원어를 보면 카인이 바친 예물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바치는 예물이다. 그것은 속죄 제사도, 축제 제사도, 안식일 제사도 아니었다. 본래 속죄 제사 때 바치는 제물은 코르반(korban)이라고 한다. 본문대로 보면 카인은 자신이 수확한 것 중에서 맏배를 바치지 않았던 것이다. 맏배를 바치는 것은 인간이 취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첫 소출을 정성껏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다. 아벨은 카인과 달리 맏배를 정성껏 바쳤고, 그 결과 하느님께서 그의 예물을 받아들이셨다.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아벨은 예물과 함께 자기 자신을 바쳤던 것으로 묘사된다. 아벨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을 기꺼이 굽어보시고,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하느님께서는 장자 특권을 지닌 카인보다 오히려 기득권에서 밀린 아벨에게 더 호의를 보이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굽어보셨다고 해서 카인을 미워하거나 내치신 것은 아니다. 또 하느님께서 한쪽을 선택하셨다고 해서 다른 쪽을 버리신 것도 아니다. 카인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자기 제물을 받아 주시지 않은 것에 화를 내며 죄 없는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였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냐가 아니라 미움과 질투, 폭력의 문제다. 이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기본 자세다.퇴사자22012.02.14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9> 마르코(상)](//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046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마르코(상)'메시아 비밀' 담고 있는 마르코복음서마르코복음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전승과 사상을 종합하는 교회일치 신학을 제시했다. 그림은 바티칸 박물관 '지도의 방' 벽면에 그려져 있는 마르코 성인화. 날개 달린 사자는 마르코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전승을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복음으로, 초대교회에 큰 공헌을 했다. 고대교회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주교 증언에 따르면 복음서를 쓴 마르코는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출신 요한 마르코이다. 그는 예루살렘 가정교회 유지의 아들이었다.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빠져나와 마리아의 집으로 향하는데, 이 마리아가 마르코의 어머니다. 마르코는 당시 국제공용어인 그리스어에 능통해 베드로 사도를 수행하며 그의 설교를 통역했다. 또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전교여행에 동행했기에, 마르코복음서에는 두 사도의 영향이 반영됐다. 때문에 복음서는 두 사도의 전승과 사상을 종합하는 교회일치 신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복음서는 주님의 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사야서와 즈카르야서, 시편 등 구약성경을 인용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복음서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사야서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돼 본토로 귀환하게 되리라는 예언으로, 폐허에서 일어서야 하는 귀향민에게 희망을 고취했다. 마르코서는 이러한 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을 이용해 예수가 선포한 기쁜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틀로 차용한다.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와 바빌론 종살이에서 해방돼 귀환할 때 광야를 거친다(이사 40,3). 마르코복음서 역시 광야를 서두로 삼고 있다. 요한 세례자는 예언서에 나타난 대로(1,2~3)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설교 듣는 이들에게 함께 주님의 길을 마련하도록 촉구한다. 이처럼 광야를 거쳐 주님이 오신다는 점에서 이사야서의 본토 귀환 여정은 마르코복음의 지리적 여정과 일치한다. 또 이사야서는 귀향민에게 하느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신다고 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코복음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새 하늘이 열리고, 예수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거나 5000명의 유다인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킬 때 광야가 초원으로 변하며 새 땅이 열리는 것을 보여줬다. 하느님 초대에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이 참여해 기쁨을 나눈다고 한 이사야적 전망 역시 반영돼 있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며 공생활을 시작했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속에서 나올 때 하늘이 갈라졌다(1,10). 이는 이사야서의 한 대목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63,19)을 암시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예수 세례 때 실현된 것이다. 복음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11)는 대목에서 예수는 하느님 아들로 선언된다. 구약성경에서 '아들'은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외아들'(창세 2,22)로 표현된 이사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이사악이 하느님 말씀에 따라 제헌(祭獻)됐듯 예수 역시 스스로 바쳐져야 한다는 소명이 있음을 암시한다. 복음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예수 한 명이다. '너는'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복음서는 '메시아 비밀'이라고 하는 특유의 주제를 드러낸다. 복음서 곳곳에서 마귀가 예수를 하느님 아들이라는 점을 폭로하려고 하지만 예수는 이를 막는다. 왜 예수의 신원이 비밀로 지켜져야 했는가. 예수는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많은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뛰어난 능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가 메시아이자 하느님 아들인 것은 놀라운 능력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하느님 아들이라는 근거는 인간적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예수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리셨다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아들이라는 결정적 근거다. 이는 어떠한 인간도 개입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하느님만의 역사다. 하느님은 예수를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부활시키고 오른편에 앉게 함으로써 당신과 같은 권능과 권한, 영광으로 이끄셨다. 하느님의 이러한 역사하심에서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비로소 하느님 아들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마르코복음서는 '메시아 비밀'이라는 모티브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예수의 신원이 단박에 알려질 수 없다는 원초적 사실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를 함부로 고백하기보다는 침묵속에서 그분이 가신 길을 따르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3.27

'부득이한 경우' 구체적 기준 만들어 주세요서울 공항동본당, 주일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 등 신자 토론회 전경표 신부가 신자들 의견을 듣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기도나 선행으로 주일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부득이한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주일미사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고해성사 부담이 덜어져)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주일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의무, 주일미사 전례 활성화'를 위한 신자 토론회가 열린 12일 서울 공항동본당 강당. 전경표 주임신부, 김광두 보좌신부를 비롯해 사목위원, 단체장, 구역ㆍ반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토론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 신부가 주일미사에 관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지침과 이에 대한 주교회의 해석을 소개하고 신자들 의견을 듣는 것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지침서는 "미사나 공소예절에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신자는 "집안에 워낙 행사가 많아 주일미사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고해성사를 봐야 해서 껄끄러운 마음이 있었다"며 "주일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있다면 주일미사를 자주 거를 수밖에 없는 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자는 "각자 양심에 따라 정말 부득이한 사정으로 주일미사에 빠졌을 때는 평일미사 참례로 의무를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일미사에 빠졌는데도 죄의식이 생기고, 고해성사에 대한 부담으로 신자들 냉담이 많아진다"고 지적했다. 판공(고해)성사에 대한 토론에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충훈(도미니코, 34)씨는 "미사참례율, 고해성사 참여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오랫동안 지켜왔던 원칙을 바꾸는 것은 교회의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라며 "그동안 해왔던 대로 원칙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화정(스텔라, 46)씨는 "판공성사의 취지는 좋지만 부활ㆍ성탄 때마다 길게 줄을 서서 짧은 시간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라며 "형식적인 판공성사보다는 1년에 한 번 진지하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으로 판공성사 의무를 대신하자"고 제안했다. 한 신자는 "언제든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면 신자들이 부담을 덜 가질 것"이라며 "본당마다 은퇴 신부님을 모셔서 상설고해소를 운영하면 좀더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 전례 활성화를 위해서는 "본당에서 전례음악에 신경을 더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3.05.14
![[성경 속 궁금증] (2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598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2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이끄시어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을 통해 자신의 권능을 드러냈다. 그림은 독일 지거 쾨더 신부가 그린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 1,2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께 가는 길인 율법을 연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은 토라(Torah), 즉 율법이었다. 율법은 구약성경 최초의 다섯 권(모세오경)을 가리키며, 그것의 핵심은 십계명이었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하느님께서 직접 모세를 통해 주셨다고 믿었다. 이러한 율법을 연구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학자들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율법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구약성경과 조상들 전통을 근거로 내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다. 당시 율법은 절대적 신성과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학자들 권위는 기본적으로 율법에서부터 생긴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유다인들에게 율법은 신앙과 생활의 최고 규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에서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규율과 규칙을 이끌어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런 과정에서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원칙을 규율과 규칙으로 바꿔 놓았다. 그들 가르침에 의해 종교는 복종하는 규칙으로 변질됐다. 때로 율법은 기득권층의 특권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율법의 근본 정신을 드러내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로 가르쳐주셨다. 또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을 선포하셨기에 가르침의 내용이 힘차고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데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참된 권위는 사람을 억압하고 복종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힘을 실어주는 데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성경에는 예수님에게 더러운 영들도 복종한다는 대목이 있다(마르 1,27 참조).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이 있는 것과도 연결이 된다. 옛 사람들은 정신병이 더러운 영, 악령에게서 왔다고 생각했다. 유다인들에게 악령은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을 방해하는 존재였다. 예수님께서 그런 악령을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단순한 명령으로 물리치시니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준 이야기는 단순히 치유기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적에는 예수님의 권위가 그분의 놀라운 행위를 통해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말의 가르침이 아니라, 권위 있는 행동으로 악의 세력을 몰아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보여주셨다.퇴사자22012.02.21
서울대교구 청년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해설(상)청년들 성경공부에 목말라 한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서울대교구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2010년 6월)에 이어 최근 발표한 '청년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는 사목국 산하 성서사목부(담당 안향 신부)가 청년들 요구에 부합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만 19~34살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청년 신자들이 시간과 장소 부담 없이 접하기 쉬운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원한다는 점이다. 응답자 대다수(83%)가 성경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로 성당을 꼽았고, 센터(CYCㆍ명동성당ㆍ청소년회관 등, 10.2%), 학교나 직장(3%)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성경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청년미사 전'(28.1%), '주일 오전'(13.8%), '목요일 저녁'(13.4%)을 꼽았다. 직장생활과 학업으로 바쁜 청년 신자들이 비교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시간대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7.5%)가 성경공부 경험이 없는 이유로 '시간 없음'을 든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일부지만 청년 성경공부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청년 주일학교 개설'(7.9%)을 제안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청년들은 '하느님을 더 잘 알고 싶고,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갈망이 일어날 때'(34.5%), '교리를 잘 알고 싶을 때'(29%),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을 때'(28.8%)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과 복음을 올바로 이해(41.6%)하고, 실생활에서 하느님 말씀을 바르게 실천(31.6%)하며, 인생의 기준 및 목표를 정립(12.6%)하고, 윤리적ㆍ도덕적 가치관을 형성(7.4%)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청년들은 여타 신심단체 활동보다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 성장에 더 많은 도움을 얻는다고 응답했다. '본인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정도' 질문에서 성경공부 모임 점수는 3.86점(5점 만점)으로, 다른 단체 활동(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성령기도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대부분 본당 활동에 열심인 청년들이어서 청년성서모임 같은 성서사도직 단체(62.2%), 본당 자체 프로그램(16.8%), 서적ㆍ방송ㆍ인터넷(11.7%) 등을 통해 성경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성경공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16.4%)는 응답과 함께 '프로그램 부재'(15.4%), '홍보 부족'(15.1%)을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공부를 활성화하려면 청년들 인식 및 관심 촉구(38.2%)와 더불어 성경공부 프로그램 개발ㆍ홍보(18.2%)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울러 성경공부 모임을 단체화하자(16.2%)는 의견도 나왔다. 레지오 마리애, 교사회, 성가대처럼 성경공부 모임도 본당 내 사도직단체로 상설화하자는 것이다. 청년들은 또 성경공부를 할 때 읽기 또는 강의 형태에 구성원 간 생활 나눔이 결합된 '그룹 공부+생활 나눔'(50.8%), '강의+생활 나눔'(28.8%) 방식을 선호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담당 우창원 신부는 제언에서 "설문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가 청년들 영적 갈망을 채워줄 다양한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성경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서사목부는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청년들 선호도를 반영해 청년들이 본당에서 참여할 수 있는 성경공부 프로그램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11.10.04

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작 하느님 향한 굳은 믿음, 기쁨의 묘약 간암 말기에 시력과 청력까지 잃은 오빠. 그런 오빠가 잠 못 이루며 묵주기도를 몇백 단씩 바쳤는데도 밤새 아파서 기도를 조금밖에 못 했다고 할 때면 성한 내 몸이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릅니다. 오빠는 하루종일 누워서 기도만 하면서 기도 중에도 때론 어두운 마음이 생긴다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합니다. 주님께 너무 죄송하다면서요. 그런 오빠를 보면서 잡생각 속에 기도를 드리는 제가 진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반성이 듭니다. 오빠는 최근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지냈습니다. 간암 말기라 혈관이 터져 몇 번의 색전술로 위험한 고비도 넘겼지요.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 오빠는 맥박도 없고 의식도 없었어요. 신부님께서는 저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병자성사를 주셨어요. 그런데 오빠가 신부님의 성사에 맞춰 크고 똑똑한 말투로 "아멘"을 외치는 거예요. 저와 엄마는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어요. 분명 하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오빠가 어떻게 대답했을까? 다음날 의식이 돌아온 오빠에게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신 것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예수님께서 왔다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멘'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빠는 "여기 중환자실에 사탄이 있는 것 같은데, 묵주만 꼭 쥐고 있으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저에게 묵주기도의 위력을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병실에 있는 동안 냉담 중인 환자들을 주님 품으로 많이 이끌었습니다. 고통이 심해 말도 못하는 오빠는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정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만 했대요. 복음전파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같은 병실 냉담교우가 회개하고 다시 성당을 나간다고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조카들에게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성경 안에는 지혜가 들어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 줬습니다. 저에게는 "아녜스야,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하고, 항상 기도 먼저 바쳐라.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땐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봐라. 모든 걸 들어 주시는 아빤데…"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습니다. 오빠의 말에 저는 조용히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만 있으면 모든 상황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오빠가 퇴원한 후 엄마는 식사할 틈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빠의 기저귀 갈아줍니다. 식사는 물론, 4시간마다 하는 투석과 주사를 놓는 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밤을 꼬박 새우다 보면 보호자도 지치고 힘이 듭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미사 때 성체성사와 성체조배의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는 길이 얼마나 큰 은총으로 향하는 길인 줄 모르고 지냅니다. 우리 식구는 한번 미사에 참례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오빠 투석을 돕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힙니다. 그러면 2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뇌출혈로 손과 발이 부자연스러운 오빠의 신발 신기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어렵게 성당에 도착하면 무척 기쁩니다. 성당에 와 있다는 그 자체, 주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그야말로 감동이지요. 예수님을 모신다는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일인데 이렇게 좋은 미사참례의 기쁨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엄마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신 적이 없습니다. 오빠 또한 거동을 못하기 전까지 매일미사에 열심히 참례했습니다. 저 또한 근심기도 중에 주님을 만나고,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될 때 제 마음이 하얀 깃털이 되어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으십시오. 기도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얼마 전 오빠가 너무 힘들어하며 고해성사 드리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빠가 병상 중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줬어요. 유리창이 깨져있는 지하 단칸방에 할머니와 아기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빠는 선뜻 지갑의 돈을 꺼낼지 말지를 망설였대요. 꿈에서 깨어난 오빠는 재물을 버리지 못했던 마음에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며 부끄러워했어요. 얼마 전 장애연금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주님의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천국의 집을 짓고 재물을 쌓아둬야지 이 지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진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때 알았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 까만 점하나만 있어도 못 견뎌하며 성사로 주님께 다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온통 까만점으로 뒤덮여 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길로 곧장 고해성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어요. 저희의 고통을 대신하고 저희를 위해 죽음까지 맞이하셨죠. 신앙의 해는 지금 이 시대에 교회 안에서 절실히 필요한 결정임이 틀림없습니다. 교황님 뜻을 따라 우리 신앙인은 회개하고, 복음선포와 성사, 기도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빠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장애인입니다. 암 투병과 복막투석으로 손과 발의 거동은 불편합니다. 수십 군데로 전이된 암과의 사투 속에서도 오빠가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신앙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모든 걸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주어진다는 지혜를 배웠습니다.이지혜2013.01.15
![[특집/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청주교구,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 심화](//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30_1.0_titleImage_1.jpg)
[특집/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청주교구,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 심화'이웃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의 해' 구현'불평 안 하기 운동' 평신도운동으로 전개신앙 근원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에 초점 청주교구는 11일 제94차 감곡성체현양대회에서 신앙의 해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앞으로 1년여에 걸쳐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을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청주교구가 준비한 신앙의 해 프로그램과 신앙 실천 밑그림을 소개한다. 청주교구는 2013년을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2차년도(2013~16) 첫째 해로 보낸다. 지난 1차 4개년(2009~12)에 걸쳐 교구 조직과 규정을 새로 마련하고 중장기 사목계획을 수립해 교구 기틀을 다진 데 이어 2차년도 4개년 첫째 해를 신앙의 해로 지내는 기쁨 속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준비한다. 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사목교서를 통해 내년 한 해를 '이웃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의 해'로 정했다.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통해 신앙을 굳건히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복음화에 힘쓸 것을 교구민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교구는 이를 토대로 신앙의 해가 끝날 때까지 전례와 교육, 선교, 홍보, 사제 등 5개 분야로 나눠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한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산상 성체강복을 통해 1년여 동안 이어질 신앙의 해에 전 교구 공동체가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축복해 주시기를 빌고 있다. 사진제공=청주교구 #신앙의 새 사목교서 실천에 주력 교구는 우선 '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의 해'라는 2013년 사목교서를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새롭게 돌아서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만나도록 초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성경을 읽고,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바치며,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미사 성제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한다. 이에 따라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을 사목교서 세부 실천지표로 정했다. 우선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개인과 단체, 본당과 지구가 힘을 모은다. 신앙의 선물은 이웃과 함께 나눌 때 풍요롭기에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데 합심한다. 이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에도 주력한다. '청소년은 교회 미래'라는 교구 시노드 정신에 따라 교구 안팎 청소년들이 복음적 가치관을 습득하도록 지구 차원에서 도보 성지순례와 합동 성시간, 청년 성경공부, 청소년 생명교육 등을 마련한다. 또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각 가정이 주일미사 참례와 성경 묵상, 가정기도에 힘쓰도록 독려한다. 나아가 주위 홀몸 어르신이나 다문화, 한 부모 가정 등에도 관심을 갖고 나눔을 실천하도록 권고한다. 교구는 각 가정이 가정사도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자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교구 차원 세부안은 교구는 내년 사순시기에 복대동본당에서 전개해 호평을 받은 '불평 안 하기운동'을 평신도운동으로 전개한다. 교육 분야에선 교구 사목 부서별 교육자료를 마련해 대림ㆍ사순 판공 문제지와 소공동체지 등과 함께 본당에 제공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운데 「교회헌장」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자의교서 「믿음의 문」, 25개 암송교리와 25개 암송성경 등을 숙지해 실천하도록 했다. 교구를 이를 기초로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협력해 지구 및 교구 경시대회를 열기로 했다. 선교 분야에선 신자 1인당 새 양, 잃은 양을 1명씩 찾는 '영적 11운동', 하루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씩 모아 봉헌함으로써 성체성사의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3000운동, 가정에서 생명ㆍ환경운동 실천하기, 하느님의 종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운동을 통한 신앙의 증인 만나기, 사회복음화 및 사회복지 네트워크 활성화 등도 추진한다. 아울러 2000년 대희년에 앞서 '성자의 해'에 나온 소책자를 개정한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사제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이밖에 신앙의 해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를 본당에 보급한다. 교구 선교사목국장 서철 신부는 "신앙의 해를 맞아 어떻게 하면 교구 공동체가 주님이시며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또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계획을 마련했다"며 "특히 신앙의 유산이 담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자주 읽고 익힘으로써 신앙을 더 키워나가는 데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이지혜2012.10.23
![[생활속의 복음]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5000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연중 제26주일 (루카 16,19-31) 연중 제26주일이다. 언제부턴가 이즈음 사람 사이에서는 신뢰랄지 신용이랄지 신실(信實) 따위의 말들이 점점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이 용어들은 모두 믿음 혹은 신심이나 신앙의 다른 표현으로서 그만큼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훼손돼버렸다는 말이 된다. 사람 사이에 믿음이 날이 갈수록 훼손되고 왜곡돼가고 있다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은 곧 돈과 명예, 권력 따위가 아닌가 싶다. 인간끼리의 관계가 그러할진대 인간과 자연 사이, 인간과 하느님 사이는 또 어떻겠는가? '믿음'이란 약속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사이의 믿음이 무너지면 사람과 자연 사이,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믿음 또한 무너져버리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몇 가지 전제를 제시하신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또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4-15)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곧 사람살이에서 믿음을 회복하고, 믿음을 사는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제시하신 가르침이다. 곧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27)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통상적으로 믿음이란 '사람 사이의 소통(人+言)'을 뜻한다. 소통은 서로 막힘없이 꿰뚫어 두루 미치게 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양방향에서 상호부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서로 막히면 통하지 않게 되고, 통하지 않으면 '불통'이 돼 독재와 독단, 전체주의가 판을 치게 만든다. 그러면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믿음이 존재하지 않고 믿음이 없으면, 사랑과 정의와 평화는 없어지게 돼 일방적인 약육강식의 사회가 형성될 뿐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을 삶의 첫째로 손꼽으며 살고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믿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고, 하느님께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근원이심을 믿으며, 사람은 모두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재들이라는 진실을 믿는다. 이렇게 믿음을 가진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은 드디어 이 땅에서 십 분의 일을 넘어섰다고 큰소리를 낸다. 하지만 사회는 고사하고 믿는 이들 안에서마저 믿음이 점점 왜곡되고 약해지고 있으니, 과연 이 땅에서 '참된 믿음'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믿음이 있어야 사랑이 싹트고, 사랑이 싹터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야 참된 행복이 비로소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하시지 않겠는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우리 시대를 향해 참 적절한 비유 말씀을 들려주신다. 거지 라자로와는 달리 돈에 목숨을 건 덕분으로 온갖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다가 죽은 부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루카16,25). 그러자 그 부자는 남아 있는 집안의 식구들에게 애정을 보이면서 걱정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6)고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에게는 성경뿐 아니라 타 종교 경전들, 예컨대 불교 경전들, 유교의 「사서삼경」, 「명심보감」 그리고 수많은 현자의 어록들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지가 차고 넘치도록 수록돼 있다. 사실 평소 같으면 그 부자는 수많은 어록의 명구(名句)들을 입에 닳도록 외우거나 족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뒀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체험한 하느님 나라를 보고 난 뒤라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루카 16,30)라며 애원하기 바쁘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 누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신앙의 해 순교자성월이 오늘로 마지막 주일을 맞는다. 오늘을 보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 증거자 삶이 어떠했으며, 어떻게 살다가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는지를 체득했는지 묻고 싶다. 사실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만일 우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태 17,20)이라도 갖고 있다면, 당장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 불의한 힘에 억눌려 살아가는 이들, 절망 앞에 놓인 이들 편에 서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도가 돼야 할 것이다. cpbc201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