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아들 병원비 300만 원조차 없어 '한숨'](//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28_1.0_titleImage_1.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아들 병원비 300만 원조차 없어 '한숨'어려움 속에 알코올 중독 아들 돌보며 사는 80세 노모 서분이씨이명춘씨가 병실을 방문한 어머니 서분이(맨 왼쪽)씨와 수녀들 기도를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6일 전주시 전주예수병원의 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이명춘(사비노, 48)씨가 병실로 들어서는 어머니 서분이(율리아나, 80)씨를 보자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수십 년째 오로지 술에 의지해 살아온 자신이 어머니 앞에선 더욱 부끄러울 뿐이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손은 보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고령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면서도 홀로 둘 수 없는 아들 곁을 매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술을 먹지 말라고 타일러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아요. 그래도 한때 일자리를 갖고 자리 잡는가 싶었는데, 그마저도 술 때문에 관두고 돈이 생기면 술만 마셔요." 마음속에 쌓였던 서씨의 한탄이 이어졌다. 아들 이씨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매일 아침, 저녁 밥 먹듯이 술을 마셔온 이씨는 결국 몇 년 전부터 수시로 병원 신세를 졌다. 만취해 들어온 이튿날 아침에는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위와 대장 수술을 받았지만, 퇴원 후 다시 술을 마셨다. 최근 폐에 물이 차 입원을 거듭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다시 병원을 찾았다. 눈에 물이 차는 증세가 찾아와 책 읽는 것도 어려울 정도가 됐다. 술에 빠져 사느라 이씨는 혼기도 놓쳤다. 서씨는 "아들이 젊은 시절,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랬는지 어느 날부터 술을 그렇게 마시기 시작하더니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이 모든 게 제 탓인 것만 같아 늘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저리다"고 말했다. 서씨는 육 남매를 키우며 평생 우울증을 안고 살아왔다. 30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가정의 행복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큰딸이 어렵게 아르바이트해서 동생들을 키웠다. 유아세례를 받은 남매는 학창 시절엔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결혼 후엔 하나같이 형편이 쪼들렸다. 큰아들은 교통사고 후 직장을 잃고 밤새 대리운전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아내가 재산을 갖고 도망가버린 후 홀로 원룸에 살고 있다. 막내딸도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등 모두 월셋집에 살면서 홀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서씨의 생활비는 노인연금 포함 한 달 70만 원. 아들 명춘씨와 사는 서씨는 월세와 아들 약값, 술값에 생활비 대부분을 썼다. 현재 300만 원 넘는 명춘씨 입원비에 쓸 돈은 한 푼도 없다. 이씨는 "병실에 있으면서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지만, 바깥에 나가면 술을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서씨는 "성당과 경로당에 가면 모두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데, 저는 평생 어렵게 살면서 웃음도, 희망도 없이 이렇게 지냈다"면서 "그래도 주님께 의탁하며 형편 되는대로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다 주님께 가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후견인 : 이영일(전주교구 가정방문실 원장) 수녀 서분이 어르신은 남편을 보낸 후 오랫동안 홀로 자녀들을 키웠지만, 지속되는 어려움과 알코올 중독 아들을 돌보며 우울증 속에 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며 주님만 바라보는 어르신을 위해 평화신문 독자 여러분께서 도와주세요. ▨성금계좌 (예금주: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서분이씨 가정에 도움을 주실 독자는 15일부터 2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8)에게 문의 바랍니다. cpbc2013.12.10
![[생활 속의 복음] 사랑과 친교의 다리를 놓자](//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3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사랑과 친교의 다리를 놓자연중 제3주일 (마태 4,12-23)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2001년부터 신학생들을 위한 30일 피정을 함께 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교회에 큰 보물을 선물했습니다. 그것은 '영신수련'입니다. 영신수련 23항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믿어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취할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버릴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도 있고, 건강보다 약함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단명하는 것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원리와 기초는 마치 만능열쇠와 같습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막는 모든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피정을 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기쁜 것은 30일 동안에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기도 시간을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조금씩 기도의 맛을 느끼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매번 묵상 때마다 성경 말씀에서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를 체험하면서 때로는 감사의 기도를, 때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오늘은 2014년 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설렘과 기대로 시작한 1월도 이렇게 훌쩍 가버리는 것을 보면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을 수 없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삶,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일, 회개하고 그 복음을 믿는 일, 이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백성들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고쳐주는 일", 바로 이 일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시간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손가락은 10개입니다. 이 10개의 손가락이 모여서 양손이 됩니다. 손가락 하나하나만으로는 물건을 만들기도 힘들고, 글을 쓰기도 힘들고, 밥을 먹기도 힘이 듭니다. 10개의 손가락이 모두 하나가 되어 손을 이룰 때 우리 손은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청소를 할 수도 있고, 우리 몸을 위험에서 막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믿고,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이웃에게 전하고, 소외된 사람들, 아픈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도 우리 각자의 힘만으로는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의 다리, 친교의 다리, 봉사의 다리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형제들 간에 사랑의 다리, 친교의 다리, 봉사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본당 사무실은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 사이에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합니다. 본당의 각 구역 반장님들은 신자들 사이에 다리가 되고, 본당과 본당 신자들 사이에 다리가 됩니다. 본당 사목협의회는 본당의 각 단체들 간에 다리가 되고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 사이에 다리가 됩니다. 본당 레지오의 선교 활동은 비신자들과 본당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렇게 많은 본당의 단체들과 단체들이 서로에게 다리를 놓고 그 안에서 사랑을, 친교를, 봉사를 나눈다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겸손되이 뉘우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단체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합심하고 일치해 같은 목소리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를 도와줄 때 우리는 커다란 힘으로 복음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cpbc2014.01.21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 <3>](//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416_1.0_titleImage_1.jpg)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 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성경은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와 같다. 사진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 미사에서 복음서를 들고 있는 모습.14. 성경은 진실을 담고 있나요?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됐고, 하느님이 원저자이기 때문에 확고하고 성실하며 그르침이 없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 103-107항) 성경은 완성된 상태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받아쓰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된 것입니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십니다."(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 특정 본문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데 필요한 요소 하나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그래, 이 글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야.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거든!"이라는 의견이 일치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수많은 저서들 가운데 어떤 것이 실제로 성령의 영감을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4세기 이래로 이른바 성경의 정경으로 정해졌습니다. 정경(正經)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공식 인정된 거룩한 책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5. 교회에서 성경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요? ▶교회는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습니다.(103-104항, 131-133항, 141항) 성체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제외하면, 교회는 성경을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장 공경합니다. 거룩한 미사에서 우리는 복음을 서서 듣는데, 우리가 듣는 인간의 말을 통해 하느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조언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그리스도 이후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불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6. 어떻게 하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나요?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법은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이 쓰였듯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109-119항, 137항) 성경은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크나큰 사랑과 경외심으로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개괄적으로 읽어야 하는데, 세세한 내용을 보느라 전체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 핵심 신비인 예수 그리스도에 입각해 전체 내용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분에 관해서는 구약성경을 포함한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교회의 동일하고 활기찬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바로 그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비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비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쇠렌 키르케고르) ※구약성경(Old Testament, 라틴어로 '유산, 유언, 계약'을 뜻하는 'testamentum'에서 유래): 전체 성경 가운데 1부에 해당하며, 유다교 신자들의 성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구약성경은 모두 46권으로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돼 있습니다. ※신약성경(New Testament): 전체 성경 가운데 2부에 해당합니다. 신약성경 27권에는 그리스도교 원전들이 들어있는데, 4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서간, 가톨릭 서간, 요한묵시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17.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구약성경을 이루고 있는 책들 또한 하느님 말씀이며 성경입니다. 만약 구약성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121-123항,128-130항,140항) 구약성경에서 신앙을 가르치는 긴 역사가 시작되고, 그 역사는 신약성경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며, 이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위한 서곡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도들과 지혜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시편은 교회의 일상기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말씀하고 계시며, 오늘 우리와 이야기하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18.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신약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느님의 계시는 신약성경에서 완성됩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는 4복음서는 신약성경의 핵심이며 교회의 귀중한 보물입니다. 복음서를 통해 하느님의 아드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 인간과 어떻게 만나고 계신지 드러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상황과 성령의 활동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들 편지에서는 인간 삶의 모든 모습이 그리스도의 빛 속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요한묵시록은 이 세상의 종말을 미리 내다봅니다.(124-127항,128-130항,140항)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의 거의 전부는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에 점점 더 깊이 연결됨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복음을 읽고 복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19. 성경에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성경을 어떻게 '진리'라 할 수 있나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정확한 역사나 자연과학적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 저자들도 시대가 낳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문화적 관념을 공유했기 때문에 종종 그 시대의 오류에 지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느님과 구원에 이르는 길에 관해 인간이 알아야만 하는 내용을 틀림없이 확실하게 담고 있습니다.(106-107항, 109항)퇴사자22012.10.23

영화 '친구2'로 돌아온 배우 유오성"어머니가 주신 신앙, 40년 만에 다시 찾아" 간담이 서늘해져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눈빛. 범죄와 폭력세계에서 연민과 애잔함을 지닌 주인공. 영화 '친구2'를 통해 12년 만에 스크린 속 건달 이준석으로 돌아온 배우 유오성(요한 세례자, 47, 서울 청담동본당, 사진)은 여유가 넘치고 온화했다. 심지어 부드러웠다. "무서울 줄 알았다"고 털어놓으니, "솔직히 까칠하고 친해지기 어려운 배타적인 이미지가 있다"면서 "겉으로 보이는 만큼 그 반대의 면도 있다"며 웃었다. 강원도 영월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유오성씨는 올해 '친구2'를 찍으며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지난 여름부터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유년시절 미사 때 복사를 섰던 추억이 있지만 성인이 되면서, 영화 촬영현장에 발을 들여놓으며 신앙에서 멀어졌다. 유오성은 어린 시절부터 항상 묵주알을 굴리며 신앙에 의지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새벽 장사에 나가기 전 항상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장사로 번 구겨진 돈을 다리미로 정성껏 다려 봉헌금으로 냈다. "교리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주신 선물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40년 만에 되찾았어요." 그는 지난 봄 '친구2'를 촬영하기 전, 촬영팀에 양해를 구했다. "주일에는 촬영을 못 한다. 성당에서 교리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리 시험도 봐야 한다. 3번 이상 빠지면 잘린다." 개근상을 받고 싶었던 그는 울산에서 촬영하면서 6개월간 매주 서울로 올라와 교리를 받았다.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성경 필사를 했다. 유오성은 "니가 가라 하와이" "친구 아이가" 등의 명대사를 남겼던 '친구'(2001) 이후, '도마 안중근' '각설탕' '감자 심포니' 등을 찍었지만 흥행에는 좋은 성적을 못 냈다. 작품을 찍을 때마다 '이 역할은 내가 해야지' 하며 달려든 그에게 욕심을 버리는 시간이 됐다. "이 역할이 내가 맡을 만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을 대신해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는 다음 작품이 뭐냐고 묻는 기자들 질문에 "없다"고 말한다. 마음속에는 어느 누군가가 다음 작품을 만들어 주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는 작품의 흥행 여부에 따른 초조함이 사라졌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자신감은 더 생겼다. 다른 사람의 탈렌트를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하지도 않게 됐다. 또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그것에 들떠있지 않게 됐다고 털어놨다. "영화가 흥행을 못 하면 꼭 내 탓 같은 쓸데없는 책임감에 시달렸어요. 이제는 흥행하면 '아 우리 이야기가 통했구나', 흥행하지 못하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동의를 덜 얻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유오성은 '친구2'에서 감옥에서 17년 만에 출소한 후 친구 동수의 아들 성훈을 아들처럼 보살피며 부성애와 죄책감, 연민을 느끼는 준석 역을 맡았다. 그는 이 영화가 '지친 세상에 위안을 주는 가족영화'라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 코미디든 비극, 희극이든 세상에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며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되짚어 보게 하는 작품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해 1992년 연극 '핏줄'로 데뷔한 그는 촬영현장에서 단역배우와 스텝들을 잘 챙긴다. 단역 생활을 해봤기에 촬영 현장에서 눈치 보고 마음 불편했던 심정을 잘 알아서다. 그는 요즘 아내와 함께 청담동성당에서 매일 새벽미사를 봉헌한다. 체육관에서 휴대전화 타이머 대신 기도문을 타이머 삼아 운동을 하고, 3~4시간씩 독서를 하고 있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더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며 "배고플 때 주머니 걱정하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성당이 있는 것도 감사하다"며 미소 지었다. 글ㆍ사진=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3.12.24
![[평화화랑]세 여류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70_1.1_titleImage_1.jpg)
[평화화랑]세 여류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 회화 섬유미술 통해 말씀, 동자승, 몸 등을 소재로 1999년 캐나다로 건너가 15년째 현지에서 활약해온 교포 한국화가 노영숙(오틸리아, 토론토 성 김대건 안드레아한인본당)씨는 4~10일 평화화랑 제1전시실에서 귀국전을 겸해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또한 한국화가 김정란(42)씨와 섬유미술가 김영혜(56)씨는 11~17일 평화화랑 제1, 2 전시실에서 각각 개인전을 갖는다. ▨노영숙 개인전노영숙 작 '십자나무 생명나무'.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노영숙씨는 멕시코 캄페체교구에서 활동하는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신부의 인터넷 카페 '최강일기'(http://cafe.daum.net/frchoi kang) 등을 통해 작품과 묵상 글을 나눠왔지만, 이번엔 '신앙의 해'를 맞아 오프라인을 통해 고국의 형제자매들과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자 한다. 출품작은 말씀을 주제로 한 근작을 포함해 자연과 인간, 우주에 대한 묵상을 담은 그린 37점, 특히 예수회에서 8박 9일간에 걸친 영신수련을 통해, 창작하는 기쁨과 몰입을 통해 진리이신 하느님을 찾아가는 순례 여정 가운데서 그린 신작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더불어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과 사건, 사람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며 다양함 속에서 발견하는 창조와 생명의 기쁨을 드러낸다. ▨김정란 개인전 '성당에 간 동자승'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를 모티브로 한 연작을 선보인다. 동자승이 주로 등장하긴 하지만, 종교적 이유에서 등장시킨 건 아니다. 한국화의 선이나 먹색 표현에 동자승이 아주 잘 어울려 모티브로 활용했을 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천진난만하지만은 않은, 억눌린 채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작가적 시선을 맞춘다. 출품작은 20점. ▨김영혜 개인전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몸'을 소재로 한 섬유미술 작품을 출품한다. 사람 피부와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천, 곧 폴리에스텔에 충전재를 채워 부피감을 주고 섬유 자체의 물성을 신축성있게 표현했다. 그리고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거나 부조적으로 표현해 몸이 갖는 생명의 에너지를 강조했다. 특히 작은 것에 관심을 보이는 작가는 몸의 일부, 곧 가슴이나 무릎, 배 등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다. 출품작은 15점. 오세택 기자cpbc2013.09.03

「성서주일에 만난 사람」안동교구 이분례씨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생겼어요이분례씨가 성경을 펼쳐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을 가리키고 있다. 성경 완필하면 성인(?)될 줄 알았는데 변화없어 계속 도전성경필사 체험수기 대상... 이스라엘 순례 감동 잊지 못해 "주변에서 성경 필사를 권하기에 한 번만 쓰면 제가 뭐라도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 변화도 없는 거예요. 오기가 생겨 쓰고 또 썼더니 구약 5번, 신약 11번을 썼어요. 하하~" 지난달 열린 안동교구 말씀축제에서 성경필사 체험수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분례(막달레나, 60, 봉화본당)씨는 성경필사를 한 체험을 이야기하다 웃음보가 '빵' 터졌다. 신ㆍ구약을 완필하면 성인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다 말이다. "하지만 성경필사를 하다 보니,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긴 것은 확실합니다. 1997년 1월에 필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완필만을 목표로 잡았지요. 그래서 하루에 다섯 장을 쓴 적도 있어요. 평소 볼펜도 안 쥐던 사람이 갑자기 몇 시간씩 성경을 쓰니, 팔 인대가 늘어나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이씨는 처음 성경필사에 도전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완필만을 목표로 써내려갔지만, 매일매일 쓰며 묵상하다 보니 이제는 생활이 됐다고 했다. 그 덕분에 기도하는 시간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주님 말씀은 삶의 일부가 됐고, 그때부터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에 깃든 의미가 마음속에 와 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약은 이야기가 재미있어 5번 썼는데도 내용이 훤한데, 신약은 예수님 말씀이 어려워 10번을 넘게 썼다는 그는 신약을 10번째 쓸 무렵 이스라엘ㆍ로마ㆍ이집트 성지순례를 떠났던 체험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떠난 성지순례를 "예수님께서 당신 말씀을 10번이나 썼지만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저를 위해 은총의 시간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가자 막연했던 예수님 행적이 큰 은총으로 다가옴을 느꼈어요. 가는 곳마다 짜릿한 감정을 느꼈고, 아예 이스라엘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신약을 한 번 더 썼지요. 성경 속에 살아계신 주님과 이스라엘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15년 동안 성경을 쓴 그는 지금도 신약성경을 필사 중이다. 필사한 노트만 60권가량. 성경필사를 하는 동안 발생한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이씨는 1999년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2009년에는 남편도 뇌출혈로 쓰러졌다. 두 사람이 차례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의지했기에, 부부는 모두 병마를 극복하고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다. 말씀으로 맛 들인 은총의 체험은 기도로 이어져 매일 성체조배를 하고 있고, 묵주기도 40단을 매일 바친다. 그는 기도하면 이뤄주시지 않은 것이 없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경찰공무원으로 은퇴한 남편(권가환 요셉)이 받는 많지 않은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이씨는 "남편 연금 일부를 한 달에 한 번씩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불쌍한 영혼을 위한 미사예물로 봉헌한다"며 "교무금을 더 늘려 내는 것이 목표"라고 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는 말씀이라며 "주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이 구절에 드러나 있다"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2.11.20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03_1.0_titleImage_1.jpg)
[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 '지금도 벅찬 그 이름, 선생님'을 특집으로 다루며 △마음의 동반자 △나의 철없던 그 시절에는 △진정한 교리교사로 사는 길 등을 실었다. '현장 취재, 탐방'에서는 부산교구 해운대본당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회를 만났고, 교리 도움자료로 올바른 마리아 신심을 다뤘다. 성경 속 인물 열전에서는 수호천사를 소개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특집으로 한국정책방송 KTV가 제작한 '멘토링토크 시대공감 Q' 방송내용을 정리했다. 멘토링토크는 개신교 최일도 목사, 천주교 김용해(예수회) 신부, 원불교 권도갑 교무, 불교 마가 스님 등 서로 다른 종교 성직자들이 모여 현 시대 고민을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신년기획으로는 캐나다 로키산맥 등반 감상을 담은 '태고의 신비, 로키산맥을 넘다'를 실었다.(마리아의 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이명박 정부 5년이 남긴 것(서복경) △거짓말을 하지 마라(곽승룡) △공권력이 가장 먼저 솔직해야 한다(김형준)를 다뤘다. 신앙의 해를 보내며 △구약성경의 맥-신학과 성경의 관계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성경 따로, 교리 따로? △교회의 신앙 고백,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관해 알아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의 인물상'에서는 고재화ㆍ중열 부자(父子)를 소개했다. 황해도 시골 마을에서 공소회장을 지내며 하느님 말씀 실천에 앞장선 아버지 고재화와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수인(囚人)들을 대상으로 선교에 헌신한 아들 고중열의 삶과 신앙을 살펴봤다. 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첫 초상화를 규명하는 특별기고 '성 김대건 신부의 최초 초상화'를 실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교회일치 기도주간을 맞아 포콜라레 영성과 교회일치의 관계 및 이 영성이 추구해온 교회일치 운동의 목적과 방향에 관해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신정훈(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쓴 '다종교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게재했다.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화뮤지컬 '빨래' 관람기가 눈에 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신앙의 해 쇄신과 새로운 복음화 이뤄야 △믿음의 문 △신앙의 해와 우리의 복음화 △프랭크 더프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했다. '더불어 살기'에서는 춘천 서석본당 생곡공소와 광주 강진본당 신천공소를 찾아갔다. 신학여행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사상을 살펴봤고, 전례의 숲에서는 자비송에 관해 알아봤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매일의 복음과 독서는 물론 말씀에 관한 묵상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아침뜨락에서는 가르멜수도회 박현찬 신부가 '영성과 현실-참된 내적 평화를 찾아서'를 통해 참된 평화에 관해 들려줬다. 영성에세이에서는 △계약의 하느님-우리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찾아 △우리를 찾으시는 하느님-사랑의 계약을 누리는 비결을 담았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집으로 '희망을 희망하다-희망의 신학, 사목, 영성'을 다루며 △희망을 살아가는 신앙인, 그리스도인(곽승룡) △희망사목의 모색(차동엽) △희망은 영혼의 닻과 같다(천향길)를 실었다. 미래사목 대안으로 △2040세대를 위한 교회 모델(현정수) △다원 종교사회, 신앙의 부흥(박문수) △유대인의 신앙 교육에서 배우는 신앙 대물림의 지혜 등을 살펴봤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유럽 성모발현성지를 가다(신효진) △김상용 신부의 시네마 천국 △도토리네 생각 한토막(신명환) △풍경이 있는 자리(김귀웅 신부) △예수 생각(이혜정 수녀) 등을 새로 시작한다. '파이팅 2013년'을 특집 주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초년생,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아버지, 막 결혼한 자녀 등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를 실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 새로봄에서는 '신앙의 면역력을 높여라'를 주제로 △신앙은 빈마음에서 시작됩니다(이경식) △세상과 교회의 경계에서 찾는 신앙감각(송용민)을 실었다. '배워봅시다, 성경의 언어'에서는 '히브리어와 처음 만나기'를 다뤘고, '말씀과 함께 걷는다'에서는 욥기를 소개했다. 성경 첫걸음에서는 구약성경에 관해 알아봤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새해 특별 인터뷰로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찾아가 '추기경 할아버지의 새해 덕담'을 들었다. '예수님이 살던 곳'에서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 안나성당을, 성경 속 인물 이야기에서는 '용기 있는 에스테르 왕비'를 소개했다. 창작동화 꼭지에서는 강정규 아동문학가의 '아버지'를 실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표지이야기 '공의회를 사는 사람들'에서는 안동교구 산북공소 이현경(프란치스카) 선교사를 찾아가 공소생활을 살펴봤다.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회심 후 바오로의 복음선포'를 짚어줬고, '구약성경에 남긴 신들의 흔적'에서는 주원준 박사가 베엘제불에 관해 설명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또다시 희망찬 꿈을 품으려'를 특집주제로 △이름 모르는 젊은 그대에게(이용섭) △일어나라, 시간 다 됐다!(윤재우) △나도 우리 엄마에겐 이런 존재였겠구나(김미경) △나는 오늘도 달린다!(박의주)를 실었다. '성화 톺아보기'에서는 폴 고갱의 작품 △겟세마니 동산의 그리스도 △설교의 환영 등을 분석하며 설명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 퇴사자22012.12.31
![[나의 묵주 이야기] 어둡던 저의 뜨락에 빛은 내리고](//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3875_1.1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 이야기] 어둡던 저의 뜨락에 빛은 내리고채금자 데레사(전주교구 익산 송학동본당) 22년 전 종교적 갈등으로 쭈욱 냉담했던 나는 갑작스레 시력을 잃는 경우를 당하고 칠일 후 다시 시력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성당에 다녀도 좋다는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 성모님은 이런 계기로 바로 감사와 찬미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거구나. 다시금 어떤 이유에서라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없게 하려면 '묵주의 9일기도'를 매일 바쳐보자. 기도를 하노라면 한 시간 이상씩 하느님, 예수님 그리고 성모님과 일치되어 앉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력을 잃는 고통을 통해 당신 가까이로 불러주신 그분의 심오한 뜻을 깨달아가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저이지만 당신께서 필요한 곳에 마음대로 쓰십시오!" 주님께서는 내가 전에 살았던 성당에서 10가지 일이나 하게끔 하셨다. 주일이면 오전 8시 반에 성당에 나가 성물점 관리를 한 후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고, 미사 후에는 신앙에 목마른 이들과 신앙상담을 하고, 토요일 오후엔 어린이들과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하고, 주일학교 아이들과 어우러져 교리도 가르치는 할머니 교사였다. 이처럼 할 일이 많은데 냉담교우였을 때는 주님의 마음이 답답하게도 허송세월만 한 것이다.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받고 나면 주님 일꾼으로의 길을 열성으로 키워주고,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특히 묵주기도의 신비는 그들에게 놀라움과 거룩한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길에서 만나는 신자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기를 원하며 기도하는 법을 물을 때 내 가슴은 환희로 벅차올랐다. 하느님께서 어느 누구의 간절한 기도도 흘려듣지 않으시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조금 시간이 지나도 꼭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 느끼는 신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경이로운 수확이었다. 9일기도 책과 묵주를 가방에 가득 채우고 미국령인 괌(Guam)을 방문했을 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차곡차곡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외로움으로 실의에 빠진 한인교포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안겨 주고 기쁨으로 흘러내리는 그들의 눈물을 감동으로 교감하였으니까 말이다. 어디서 잘까, 무엇을 먹을까,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성령의 이끄심에 그저 몸과 마음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심지어 원주민까지 자신의 집에 와서 기도를 해 달라는 거였다. 거룩하고 위대하고 성스러운 묵주기도는 이처럼 나를 놀랍게 이끌어 나갔다. 괌이라는 이 섬에서는 예전에 일본인들이 우리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와 힘들게 지쳐 쓰러지게 일을 시키다 사망하면 언덕 어느 곳에나 묻어 버렸다고 한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가엾고 애처로운 영혼들의 무언의 몸부림을 알아채고 위로의 묵주기도도 올렸다. 이 글을 쓰면서 그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한참 동안 묵상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묵주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우리의 할 일, 갈 길을 명확하게 제시해 줍니다. 함께 진솔한 기쁨을 나눕시다. -------------------------------------------------------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9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6 cpbc2013.11.19
![[성경 속 궁금증] 37.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머리에 기르을 부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073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7.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머리에 기르을 부었을까?하느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그리스도는 희랍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조르쥬 루오작, 20세기).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의 왕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스리라고 선택하신 사람이라 믿었다. 그리고 왕의 즉위식에서는 왕이 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예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왜냐면 이스라엘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하느님 인정을 받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왕에게 기름 붓는 예식은 보통 하느님을 대신하는 예언자나 사제가 주관했다.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예언자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으로 세운다.'"(2열왕 9,6) 또 축성된 특별한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은 필요한 능력과 힘을 하느님에게서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 기름부음을 받아 예언자가 된 사람은 하느님의 영에 의해 계시를 받는 것이므로, 예식에 쓰이는 기름은 하느님의 영을 상징하기도 했다.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1사무 16,13). 그렇기에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 다윗과 같은 왕, 엘리사와 같은 예언자는 반드시 기름부음과 같은 성별(聖別)을 필요로 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나 사제로 축성된 이들을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라 했다.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하고 생각하였다"(1사무 16,6).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로 번역돼 불렸다. 보통 기름부음 예식에서는 올리브기름을 사용했는데, 때로는 값비싼 향료들을 첨가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기름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뿐만 아니라 성소(聖所)를 구별하기 위해서도 쓰였는데, 이때는 특별히 제작된 거룩한 성별 기름을 사용했다. "너는 성별 기름을 가져다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그 기름을 부어,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물을 성별하여라. 그러면 성막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탈출 40,9). 그러면 이것들은 거룩한 것, 곧 하느님께만 속한 것이 돼 다른 데는 쓸 수 없었다. 이밖에도 이스라엘에서는 특정 인물을 선별해 사람들에게 알려 표창할 때도 기름을 부었으며, 가정에서는 손님에 대한 호의와 예우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을 당했을 때는 기름부음을 하지 않았는데, 기름부음을 받은 얼굴은 기쁨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료할 때나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도 기름을 발랐다(마태 16,1). 또 주인은 존경의 표시로 손님 머리에 기름을 발라줬다(마태 26,7). 손님 발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헌신과 존경을 바친다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루카 7,28).퇴사자22012.06.19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평화신문·가톨릭출판사 공동기획] <2>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거행하는가?도메니키노 '성녀 세실리아', 1617~1618년경, 유화,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138. 전례의 집전자는 누구인가요? 이 세상의 모든 전례를 통해 천사와 인간, 산 이와 죽은 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하늘과 땅을 포괄하는 우주적 전례를 집전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제와 신자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전례에 참례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36-1139항). 139. 전례를 '하느님의 봉사'라고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은 거룩한 표징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선물하셨고, 그로써 우리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선물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무엇보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봉사'를 뜻하며, 그 다음으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봉사'를 의미합니다(1145-1192항). 예수님은 말씀과 성사에 현존하십니다. 140. 전례에 표징과 상징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사시며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인간의 표징들을 이용하는데, 빵과 포도주, 세례수, 성령을 상징하는 도유(기름 부음)가 그 예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하느님의 이 거룩한 표징들에 대해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징(무릎을 꿇어 경배하거나 복음을 들을 때 일어서는 행위 등)으로 응답합니다. 141. 전례력이란 무엇인가요? 전례력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부터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사건까지 그분의 일생에 관한 신비들로 한 해를 재편성해 놓은 연력(年曆)을 말합니다. 전례력은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로 시작, 첫 번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성탄시기를 거쳐 두 번째 정점이며 그보다 더 높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겪는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시기, 성령 강림 대축일로 끝납니다(1168-1173항, 1194-1195항). 142. 시간 전례란 무엇인가요? '시간 전례'는 전 세계 교회 공동체가 날마다 특정한 시간에 다 같이 바치는 공적 기도입니다. 성경 본문들로 구성된 기도문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에 관한 신비로 점점 더 깊이 이끌립니다(1174-1178항, 1196항). 하루 동안 일곱 번 있는 '기도 시간'에 바치는 시간 전례에는 교회가 기도에 사용하는 모든 어휘가 담겨 있습니다. 143. 교회가 전례를 바꾸거나 쇄신할 수 있나요? 전례에는 바꿀 수 있는 요소와 바꿀 수 없는 요소가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에게서 직접 전해 받은 모든 요소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요소도 있는데, 교회가 그런 요소들을 바꿔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서나 선포되고 거행되며 살아 있는 것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개별 민족들의 정신과 문화에 상응해야 합니다(1200-1209항).cpbc2013.10.15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상)](//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9218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상)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적 탐구의 조화로운 통합 제시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본격적인 세속화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뤄지기 시작한 근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질문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의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는 '과학주의'라는 광대한 흐름의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극단적인 과학적 세계관은 무신론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며 그리스도교 신앙관과 가치관에 맞서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 안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조화로운 통합을 시도하고, 여러 저서를 통해 우주적 관점의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한 프랑스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신부의 신학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의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 과학주의의 무신론적 도전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에 큰 도전과 위협으로 다가오는 과학주의는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과학기술지상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론 매우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그 노예가 된 것 같은 삶을 살아간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힘이 그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하느님 영역에 도전해 과학기술의 힘으로 바벨탑을 쌓는 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목적과 동기는 바로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하늘은 곧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까지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독선과 교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렇듯 인간의 본분을 잊고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 하느님의 권능에까지 침범하려 도전하는 오만함이야말로 오늘날 극단적인 과학주의 흐름이 보여주는 뚜렷한 경향이다. 이러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 가치관과 인간관 및 세계관은 그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윤리적 가치관 또한 도외시된다. 과학기술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것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거의 신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초월적 차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만든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가치가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매우 명시적이고 공격적인 현대 무신론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무신론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등 여러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와 기준은 오직 현대의 자연과학적 방법론뿐이기에 모든 종교적 믿음은 근거 없는 미신과 맹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회칙 「신앙의 빛」을 통해 "과학으로 제작하고 측량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로 여겨지는"(25항) 오늘날의 과학주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신봉하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이제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사회 현상까지도 설명 가능한 우주적 보편 원리로 등장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사회생물학을 주창했고,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 등에게 영향을 미쳐 보다 급진적인 과학적 무신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 등의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들 역시 우주의 자체적 생성을 주장하며 명시적인 무신론을 내세우게 됐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필요성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급진적 주장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적 탐구는 반드시 무신론적 경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과연 그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에 근거한 무신론적 과학주의 입장에서 무한히 광대한 우주와 심오한 인간 생명의 신비를 모두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인가.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인간 영혼의 신비는 인간 이성에 의해 어느 정도 탐구될 수는 있지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여전히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 속하기에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으로 파악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대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권능에 의한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가르치면서도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과 신학의 책임 있는 대화를 통해 이에 관한 연구가 진지하게 지속되기를 권고하면서도 인간 영혼에 관한 영역은 반드시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과 신학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 비판에 입각한 상호 대화를 통해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둘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진리 탐구적 열망의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해, 각자 고유한 길에서 위대한 근원적 신비를 향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긍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견해를 무시하고 간과하는 신학자의 맹목적 입장도 큰 문제지만, 신학적 전망과 가치를 배격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과학적 세계관의 독주 역시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의 빛」을 통해서 과학의 한계를 조정하고 보완하는 신앙 역할을 강조한다. "과학의 시각은 신앙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신앙은 과학자들이 실재의 고갈될 수 없는 모든 부(富) 안에서 실재에 늘 열려 있도록 격려합니다. 신앙은 과학적 연구가 몇 가지 공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비판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고, 자연이 언제나 더욱더 큰 실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창조의 신비 앞에서 경이감을 갖게 함으로써 신앙은 이성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줍니다. 이는 과학적 탐구에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 더 큰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34항). 샤르댕의 생애와 공헌 이러한 '과학과 신학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1881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후 신학과 과학을 두루 공부했다. 1911년 사제품을 받은 후 지질학과 고생물학, 고고인류학 등의 분야를 계속 연구했다. 1915~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체험은 그의 신학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2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23~1946년 중국에 머물며 과학 연구를 진행했고 1929년 '북경 원인'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46~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1951~1955년 미국 뉴욕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미국에서 1955년 부활 대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샤르댕 사후 50주년을 기념해 유엔(UN) 본부가 '인류의 미래-테이야르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사상적 발자취는 높게 평가되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르댕은 현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던 공로를 인정받는다. 샤르댕의 여러 저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촉진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다. 샤르댕은 우주의 발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점진적 진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자연적 진화와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제시했는데, 바로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바오로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본 바탕으로 샤르댕은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의 제시와 전개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역동적인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또한 종착점으로 제시한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합회 편집위원장)cpbc2013.12.24

세계 15개 나라 19명 새 추기경 탄생 프란치스코 교황, 삼종기도 후 명단 발표..,. 서임식 2월 22일 거행 추기경이 지닌 가장 중요한 권한 가운데 하나가 교황 선출권이다. 이번 새 추기경 탄생으로 다음 교황 선출 때 남반구 교회의 영향력은 더 커지고, 가난한 교회의 목소리도 좀 더 반영될 수 있게 됐다. 【CNS】 【외신종합】 가톨릭교회에 19명의 새 추기경이 탄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 세례 축일인 12일 낮 바티칸에서 삼종기도를 마친 직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를 포함해 교황 선출권을 지닌 만 80세 미만의 대주교 15명과 주교 1명, 그리고 만 80세가 넘은 은퇴 대주교 3명 등 모두 19명을 새 추기경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교황은 새 추기경들의 이름과 소속을 일일이 말하며 "새 추기경들이 보편교회와 로마의 주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교황 삼종기도에 참석하러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은 새 추기경 탄생 소식에 환호로 답했다. 추기경 서임식은 교황이 지난 11월에 발표한 것처럼 2월 22일 바티칸에서 거행된다. 새 추기경 명단에는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를 비롯해 주교시노드 사무총장 로렌조 발디세리 대주교,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 대주교, 성직자성 장관 베냐미노 스텔라 대주교 등 교황청 기관장 4명이 포함됐다. 교황청 기관장은 일반적으로 추기경좌로 이들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내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를 제외한 새 추기경은 15명이다. 이 가운데 12명은 현직 교구장이면서 80세 미만으로 교황 선거권을 지녔다. 대륙별로는 아시아 2명(대한민국ㆍ필리핀), 남미 3명(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칠레), 중미 2명(니카라과ㆍ아이티), 북미 1명(캐나다), 유럽 2명(영국ㆍ이탈리아), 아프리카 2명(코트디부아르ㆍ부르키나파소)이다. 나머지 세 추기경은 80세 이상으로, 현직에서 은퇴한 대주교다. 교황은 교회에 특별히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이들을 추기경에 임명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복자 요한 23세 교황 개인비서를 지낸 카포빌라 대주교는 98세로, 새 추기경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가장 나이가 적은 새 추기경은 아이티 레카이교구장 쉬블리 랑글루아 주교로 55세다. 교황의 새 추기경 임명은 12억 명의 가톨릭 신자 가운데 70%가 살고 있는 남반구(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위상이 반영됐다는 평이다. 새 추기경 19명 가운데 11명이 비유럽 출신이다. 지난 100년간 가톨릭교회의 중심축은 북반구(유럽, 북미)에서 남반구로 옮겨왔다. 남미 최대 가톨릭 국가 브라질과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 필리핀은 교세를 고려해 추가 추기경 탄생을 교황에게 꾸준히 요청했다. 필리핀 새 추기경에 임명된 올란도 퀘베도 대주교는 마닐라대교구장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과 함께 필리핀 2인 추기경 시대를 열었다. 퀘베도 대주교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사무총장을 지내며 FABC 주역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퀘베도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으로 교황청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구로 평가받는 FABC의 위상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의 추기경 임명은 가난한 교회를 향한 교황의 사목 방향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아이티의 경우 현직 교구장 주교가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님께서는 아이티와 부르키나파소에 추기경을 임명하면서 교회 사명의 핵심이 가난한 이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렸다"고 말했다. 추기경이 지닌 가장 중요한 권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황 선출권이다. 이번 새 추기경 탄생으로 다음 교황 선출에 남반구 교회의 영향력은 더 커지고, 가난한 교회의 목소리도 좀 더 반영될 수 있게 됐다. 현재 교황 선거권을 지닌 추기경은 새 추기경을 포함해 123명이다. 대륙별 분포는 유럽 63명, 중남미 18명, 아시아 16명, 북미 13명, 아프리카 12명, 오세아니아 1명이다. 한편, 교황은 새 추기경 임명을 발표한 12일 새 추기경들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로마 13, 14) 로마 교회와 보편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편지에서 "추기경이라는 자리는 승진도, 명예도, 어떠한 장식도 아니다"면서 "더 넓은 마음과 비전이 요청되는 소박한 봉사직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죽음까지 받아들인 마음을 간직하라(필리 2,5-8)는 성경말씀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멀리 내다보고 더 많은 사랑을 베풀기를 요청했다. 교황은 또 "단순하고 겸손된 마음으로 추기경을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거듭 청하며 가난과 절제, 냉철함과 거리가 먼 세속적 형태의 축하식은 자제하기를 당부했다.cpbc2014.01.14
(3)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3)롱랑 조페 감독 '미션' 1.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Mission, 1986, 125분)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 두 개의 플롯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진다. 전반부는 멘도자의 범죄-속죄-용서를 통한 개인의 회심과 변화 과정을 담고 있고, 후반부는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수도회 신부들이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을 수난극 형태로 담고 있다. 이 후반부 플롯만 놓고 보면 요즘 절찬리에 상영 중인 '신과 인간'(Of Gods And Men, 2010)과 비슷한 서사구조를 지닌다. '미션'의 전반부와 후반부 두 플롯에는 코린토1서 13장 1??13절에 나오는'사랑'과 요한1서 4장 16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성경 구절이 각각 나온다. 궁극적으로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각기 다른 이 성경구절이 영화 '미션'을 감동으로 이끄는 전정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참된 속죄와 참회, 하느님께 맡겨진 것 2. '미션' 전반부는, 라틴 아메리카 선교에 나선 성 카롤로스 선교회 소속 가브리엘 신부가 몇몇 동료 신부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죽음으로 끝난, 이과수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족에 대한 선교에 성공하면서 진행된다. 동시에 가브리엘 신부는 그곳에서 자신과 정반대로 과라니족을 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용병 출신 노예상인 멘도자와 대립한다. 그런데 노예상인이던 멘도자는 어느날 자신의 약혼녀와 남동생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알고 상심하던 중에 결투를 신청한 동생에게 격분해 그만 동생을 죽이고 만다. 결투를 해서 죽였기에 감옥에 갈 일은 없었지만 그는 동생을 죽인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도원 독방에 들어가 굶어죽으려 하다가 때마침 가브리엘 신부를 만나 속죄와 참회의 길을 걷게 된다. 용병으로서 자부심의 상징들이었던 칼과 투구 등을 짊어지고 그 자신이 노예로 팔아넘긴 과라니족에게 가는 것이 멘도자의 속죄 여정이었다. 너무 힘들어 가다가 그만둘 가능성이 있고, 설사 폭포 위 과라니족에게 간다 하더라도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과라니족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는 과라니족에게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멘도자는 속죄 길에 오른다. 멘도자는 힘겹게 폭포 위를 향하다가 무거운 짐 때문에 밑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웠던 요한 신부가 가브리엘 신부에게 찾아와 멘도자의 짐을 풀어주자고 요청한다. "속죄는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생각입니다"라는 요한 신부의 말에 가브리엘 신부는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다면, 저도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신부님, 하느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하고 답변한다. 가브리엘 신부의 이 대답에는 '충분한 참회'에 대한 판단은 자기 자신의 결정이나 다수결에 의한 합의가 아니라 하느님 뜻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마침내 가브리엘 신부 말대로 멘도자는 과라니족 앞에 서게 된다.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맡긴 채. 과라니족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가족을 잡아갔던 원수, 멘도자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적대감을 표하지만 하느님 사랑으로 마침내 그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인다. 용서의 손길을 내민 것은 멘도자 자신도 그를 지켜본 신부들도 아니었다. 그를 원수처럼 여겼던 과라니족이었다. 하느님 뜻에 맡긴 용서가 과연 예기치 않은 곳으로부터 온 것이다. 과라니족에게서 복수가 아닌 용서를 받게 된 멘도자는 마침내 북받치는 눈물과 함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이 지점에서 영화 '미션'은 전반부를 마무리하면서 범죄와 속죄, 회개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예수회 수사가 되어가는 멘도자를 통해 코린토1서 13장 1??13절을 인용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라는 구절을 강조해 인용하는데, 이는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은 '사랑'이라는 전반부 플롯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비폭력 저항으로 그려낸 '복음적 사랑' 3. 영화 전반부가 한 인간의 회심 과정을 다루는 회심극의 플롯이라면 후반부는 과라니족 그리고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선교사들이 겪는 수난극의 플롯이다. 영화 배경이 되는 1750년쯤의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의 식민지 상황이었다. 당시 식민지 영토 확장 경쟁을 벌이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 오지에 있는 그들의 영토 경계선을 어떻게 그을지에 대해 합의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럽 한 구석의 탁자 위에서 그은 선이 얼마나 끔찍한 사태를 불러일으킬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그은 경계선에 따라 선교사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선교지가 당시 악명 높은 노예 제도를 합법화한 포르투갈에 편입되고 만다. 그러자 원주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교황청에서는 선교사들에게 원주민 곁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선교사들은 과라니족의 땅이 초토화되는 것을 묵인하고 떠나라는 교황청의 결정에 갈등한다. 하지만 교황청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멘도자는 이미 수사가 됐지만 순종의 맹세를 깨뜨리고 과라니족과 함께 싸울 것을 택한다. 그러자 그를 과라니족에게로 이끌었던 가브리엘 신부는 요한1서 4장 16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 손을 피로 물들이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이미 목숨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가브리엘 신부 또한 교황청의 철수 명령에 회의를 느끼고 마지막까지 하느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도 무기 없이 저항할 것을 결심한다. 동시에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멘도자가 축복을 받으러 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축복해 줄 수 없소. 당신이 옳다면 하느님이 지켜주시겠지요, 하지만 옳지 않다면 축복은 무의미합니다.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어집니다. 틀림없이 그럴거요. 나는 그런 세상에서는 살아갈 힘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성경구절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는 자신의 동료가 된 멘도자와 대립되는 입장에 선 가브리엘 신부의 신념이자 신앙으로 인용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최종 목적은 똑같다. '과라니족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들이 과라니족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저항'의 한 형태다. 다만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을 선택하고 멘도자는 폭력으로 대항하다 죽는 것을 선택한다. 그 사이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가 인용되고 있다.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듯이 가브리엘 신부는 성체강복과 현시를 하면서 행렬하다가 순교한다. 총을 맞은 멘도자도 고개를 들고 그의 죽음을 본 이후에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 가브리엘 신부가 선택한 것이 바로 복음적 방법임을 제시하려는 롤랑 조페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 성경구절은 영화 후반부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마지막에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는 추기경의 뼈아픈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겁니다."성경 구절 발휘한 영적 힘이 감동의 핵심 4. 지난해 2월, 1986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Golden Palm,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영화 '미션'이 뮤지컬로 리메이크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됐다. 그러나 초대형 작품이라는 화려한 소문과는 달리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고 급기야는 국내에서 사상 초유의 리콜사태를 맞았다. 늦게나마 '실력 있는(?)' 여배우로 여주인공을 바꾸고 배우들 숫자를 보강하기는 했지만, 그저 성의를 보이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다각적으로 봐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미션'이 주는 감동의 요소를 관객을 압도하는 이과수 폭포의 화려하고도 웅장한 장관이나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이 주는 감동에만 의존해 무대 위에서 재현하려 하면서 영화 이야기가 준 영적 감동에 대해서는 간과한 데 있지 않나 싶다. 비록 짤막한 성경구절이지만, 그 성경구절이 영화 속에서 마치 누룩처럼 발효되어 마침내 영화 전체를 아우르게 한 그 영적 힘을 무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뮤지컬이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춤과 노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영화 '미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은 이야기 흐름에 따른 성경의 적절한 인용과 배치, 그로 인한 화면과 음악의 절묘한 조화에서 오는 영적 감동에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이창훈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