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부활](//cpbc.co.kr/CMS/newspaper/2011/03/rc/37107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부활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부활'(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1463년)죽음을 이긴 승리·새로운 출발 구약성경에 보면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간 후 총리가 됐을 때, 이스라엘에는 극심한 가뭄이 든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가는데, 형들을 알아본 요셉은 형들에게 정탐꾼 누명을 씌워 막내 동생 벤야민을 데려오라고 시메온을 인질로 잡아둔다. 야곱은 아들을 찾으려고 벤야민을 보내면서 귀한 예물도 함께 보내는데, 여기에 편도가 있었다(창세 43,11). 편도는 아몬드로, 그때까지만 해도 이집트에는 없던 귀한 과일이다. 편도는 봄의 선구자로서 겨울을 지내며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에서 갑자기 꽃이 활짝 피어난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편도나무를 죽음을 면하게 했던 거룩한 나무이자 부활을 상징하는 나무로 생각했다. 세례 때 입는 흰옷은 부활을 상징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흰옷을 입은 것은 흰옷이 부활의 기쁨과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활절을 준비하며 만들었던 부활 달걀도 부활을 상징한다. 달걀은 모든 문화권에서 생명과 다산(多産), 봄, 풍요, 특히 보이지 않는 생명을 상징한다. 달걀은 겉으로 봐서는 죽은 듯이 보이지만 생명이 깃들어 있어 언젠가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의 기원인 부활과 연관을 맺어왔던 것이다. 또 알을 깨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달걀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돌무덤에 비유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부활 달걀의 풍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중세기 유럽에서는 부활절을 기념하며 여러 가지 모양의 빵과 과자를 만들었다. 이때 양, 닭, 토끼 등 동물을 소재로 만들어진 것을 신자들이 성당으로 가져와 부활 음식과 함께 축복을 받았다. 양고기를 먹던 옛 관습에서 양의 모양은 '하느님의 어린 양'을 상징했고, 토끼는 눈을 뜨고 자는 동물이라고 해서 죽음의 잠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했다. 부활은 다니엘 예언자가 예언했듯이 죽음에서 깨어남을 상징한다.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다니 12,2). 또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2열왕 4,18-37). 신약성경에서 부활은 일차적으로 새로운 출발이란 이미지를 갖는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때도 시작을 알리는 이른 아침이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마르 16,2). 예수님 부활의 최고 상징은 의심할 나위 없이 무덤 입구에서 굴려진 바윗돌이다.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루카 24,1-3).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신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1사무 2,6). 그렇기에 예수님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요한 11장)의 재생(再生)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다시 죽지 않는 완전한 생명으로 우리 안에 살아나신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4). 김은아2011.03.22

재활용 옷가게 '소금창고' 운영하는 김경순, 이주희씨봉사지기 10년, 아름다운 신앙 동반자 주님을 향한 신앙 여정에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친구가 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옷가게 '소금창고'를 운영하는 김경순(마리아 막달레나, 62)ㆍ이주희(후안 디에고, 62)씨다.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이들은 주님 앞에 "영ㆍ물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다짐을 하고 10년이 넘는 세월 변함없이 주님 종으로 살고 있다. 신앙의 동반자를 만나러 소금창고를 찾았다. #벼랑 끝에서 만난 주님 "창고에 쌓인 소금을 퍼줄수록 더 많은 소금이 들어오니 주님의 섭리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를 하느님의 소금창고 창고지기라고 말하는 김경순ㆍ이주희씨는 "호스피스 환자를 돕기 위해 옷가지를 모으던 게 쌓여 재활용 옷가게를 만들었다"며 "누군가 물품을 기증하면, 꼭 필요한 이들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씨는 서울의료원에서 호스피스 봉사와 무연고자를 위한 상장례 봉사 등을 하고 있다. 각종 물품을 지원받아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건네는 활동도 한다. 함께 봉사하기를 10년, 봉사는 시련과 주님이 맺어 준 만남 속에서 시작됐다. 이씨는 "1998년 사업이 망하고 가정도 깨져 거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며 "사면초가 상황에서 하늘만 보고 한숨만 쉬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는 김씨에게 빌린 돈이 있었는데 돈을 갚지 못해 연락도 하지 못했다. 김씨 역시 경제적 상황은 비슷했다.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고 병고에 시달리면서 신앙적 깨달음을 얻은 김씨는 웨딩숍을 운영해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해 아낌없이 내어주다 보니 사업도 흔들렸다. 기도 중에 재물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대희년을 앞두고 채무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돈 때문에 미워한 것을 용서해 달라, 안 갚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 이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아 늘 마음에 걸렸던 터다. 당시 이씨는 세례를 받고 지방의 한 양로원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이씨는 "하늘을 보고 문득 '내가 의지할 곳은 주님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길로 성당을 다녀 세례를 받고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봉사를 시작한 지 3년 후, 마음에서 세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마침 친구 김씨 축일이라 축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김씨는 "돈 때문에 잃어버린 친구를 하느님이 세례까지 주어 연락이 닿게 해주셨구나"하고 기뻐했다. 그들의 봉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주님 향한 여정의 동반자 "이 친구는 기관차이고 저는 객차입니다." 이주희씨는 김경순씨를 자신을 끌어주는 '기관차'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김씨 말만 들으면 주님 향한 여정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김씨를 따라 성경공부를 다니고 호스피스 등 각종 봉사를 다니며 주님께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평일 봉사로 서울의료원(구 강남병원) 호스피스팀 시작의 주춧돌도 놨다. 노숙자, 무연고자가 많은 시립병원 특성상 봉사가 쉬울 리 없었다. 김씨는 "병원에서는 무연고자나 난동을 피우는 환자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불렀다"며 "얼마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으면 아픈데도 소동을 피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임종을 앞둔 이들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들을 바다로 데려다 줬고, 꼭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을 찾아 백방으로 다녔다. 김씨는 "임종을 앞둔 환자의 아들이 경제적 이유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의식이 없는 환자가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자녀 결혼 때문이라는 생각에 조촐한 결혼식을 병원에서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기적이었을까, 환자는 결혼식 중 눈을 떠 기뻐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평온한 얼굴로 주님 품에 안겼다. 떠나는 환자들을 마지막까지 함께 지키고자 두 사람은 상장례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비난도 따랐다. 주변 이들이 "왜 게으른 노숙자를 돕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돈 버는 것도 없이 봉사만 하는 이씨를 보고 자녀들도 우려했다. 이씨는 "장성한 두 딸이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이제 정신 나갔다'며 걱정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딸들은 나이가 들며 아버지를 이해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두 딸은 "예수님 발바닥이 되어 낮은 곳에서 일해 달라"며 수입의 십일조를 아버지께 드리고 있다. 김씨 자녀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씨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했다. 그는 "부부냐는 오해도 많이 들었지만, 남은 삶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듣던 김씨는 "난 이미 하느님과 결혼했다. 다음 생에 해줄게"라며 받아넘겼다. 말을 주고 받던 두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가는데 어떻게 계획을 세우겠느냐"고 웃었다. "주님 향한 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해서 영ㆍ물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아야죠. 앞날은 주님만이 아시죠."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조은일2013.07.02

서울 전산정보실, 안드로이드폰용 앱 5개 추가 제공가톨릭성경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실장 주호식 신부)이 최근 안드로이드폰용 애플리케이션 5개를 추가로 제작, 제공하고 있다. 추가된 애플리케이션은 가톨릭성경ㆍ매일미사ㆍ가톨릭성지ㆍ가톨릭사전ㆍ서울본당정보 등이다. 안드로이드폰은 플레이스토어(안드로이드마켓)나 티스토어에서, 아이폰은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으면 된다. 현재 전산정보실에서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용을 합쳐 총 14개이며, 모두 무료다. 스마트폰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m.catholic.or.kr를 입력해도 가톨릭성경 등 10여 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다음은 각 애플리케이션에 관한 정보. ▲서울주보-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에서 만든 애플리케이션으로, 매주 발행되는 주보를 받아볼 수 있다. ▲매일미사-미사 독서와 복음을 전례력에 맞춰 볼 수 있다. ▲사목수첩-사목자들의 사목활동에 필요한 각종 예식서 등이 담겨 있다.(아이폰용) ▲PBC Radio-평화방송 FM 라디오(105.3㎒) 청취가 가능하다.(아이폰용) ▲굿뉴스 타임즈-교구와 본당 소식 등 각종 가톨릭 뉴스가 실시간으로 뜬다.(아이폰용) ▲묵주기도-묵주기도를 하면서 기도한 날짜와 신비를 달력을 통해 볼 수 있다.(아이폰용) ▲가톨릭성지-교구별 성지가 총망라돼 있다. ▲가톨릭성경-가톨릭 공용 신ㆍ구약 성경이 담겼다. ▲가톨릭성가-가톨릭성가집에 수록된 성가의 가사보기와 성가 듣기, 악보 보기, 검색이 가능하다. ▲가톨릭주소록-교구별 성당ㆍ성지 주소, 연락처, 지도를 볼 수 있다. ▲가톨릭성인-성인별 축일과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가톨릭QR-전국 교구 단체와 본당 단체, 기타 단체가 생성한 QR코드를 읽을 수 있다.(아이폰용) ▲성무일도-시간마다 봉헌되는 성무일도를 전례력에 맞춰 봉헌할 수 있다.(아이폰용) ▲가톨릭사전-가톨릭대사전ㆍ전례사전 등을 바탕으로 제작, 가톨릭교회 관련 용어들을 검색할 수 있다.(안드로이드폰용)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이정훈2012.05.08
[접속!문화마당]최수동씨 제11회 개인전 등 ▨영성사진 콘테스트 공모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실장 정태우 신부)은 신앙의 해를 맞아 교구민을 대상으로 영성사진 콘테스트를 진행한다. 콘테스트 주제는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로, 신앙인의 시선이 묻어나는 사진이면 된다. 전문적 촬영기술이나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앞세운 사진보다 전례와 성물, 사람들, 자연풍경에 신앙을 향한 시선이 담긴 사진이 좋다. 사진은 JPG형식의 파일로, 1600×1200~3500×2625 픽셀이어야 한다. 출품 사진은 콘테스트 공식 누리방(http://contest.daegujubo.or.kr)에 올리면 된다. 1인당 3작품까지 제출할 수 있다. 공모는 내년 10월 31일까지다. 심사는 대구가톨릭사진가회 담당 장효원 신부와 회원들이 맡는다. 매월 3점의 당선작을 선정해 주보에 게재하며, 내년 연말에는 월별 당선작을 재심사해 총 6점의 당선작을 가려 시상한다. 문의 : 053-250-3048,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인천가톨릭미술가회장 최수동씨 개인전 인천가톨릭미술가회장 최수동(바오로, 66, 인천 가정동본당)씨가 11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31(02-732-1290)에서 '위대한 탄생'을 주제로 성화전을 연다. 출품작은 예수 성탄 주제 연작 22점으로, 세상의 빛이고 진리이며 생명으로 온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구상으로 그려냈다. "초월적 실제를 가시적 예술형식으로 표현해 내는 게 가톨릭 예술의 본질"이라고 설파한 고 최민순 신부의 가르침을 토대로 성경을 묵상하며 그렸다. 최수동 작 '예수 탄생', 53×41㎝, 2012. 내년 4~5월께 십자가의 길 14처와 함께 예수 부활의 의미를 담은 연작을 발표할 계획이다. 첫 성화전이며 11번째 개인전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12.04
![[백운철 신부의 신약 여행] <5>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下)](//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0243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 여행]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下)영적인 몸으로 변화하며 예수 부활에 참여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부활 의미를 설명하며 코린토 신자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해주었다.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베르고뇨네(1481~1522)의 '무덤에서 나오신 예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에서 일어나고 있던 종교적 열광주의에 대해 코린토 서간을 통해 답변했다. "여러분이 이교인이었을 때에 말도 하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휩쓸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2-3). 이교도이던 코린토 신자들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끄신 분이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하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는 다양하다. 그 순서는 지혜와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식별, 신령한 언어다. 바오로 사도는 이 모든 은사를 언급하며 최종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길로써 사랑을 강조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3). 예수는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부자에게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또 이웃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도는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예수의 말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영웅적 행위의 바탕에 사랑이 있지 않으면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바오로가 생각하는 사랑은 외적으로 눈부신 영웅적 사랑이 아니다. 그저 참고 인내하며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1코린 13,4-8). 이처럼 온전한 사랑을 통해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마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가장 복된 상태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아담과 모세를 제외한 이들은 하느님을 뵐 수 없었다. 그러나 사도는 우리에게도 하느님과 직접 뵙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말한다. 흔히 하느님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겠지만, 함께하는 궁극적 구원의 사랑에 이르게 되면 불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더라도 믿음과 희망, 사랑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행복이 지속되는 천국이 지루하지 않을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은 늘 새롭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새로운 세계로 끊임없이 인도하시기에 믿음과 희망은 끝까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오로가 코린토 1서 13장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닐까. 한편 사도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복음을 전한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은 예수가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혔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이 헛된 것일 수도 있었다.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사해지고 죽음이 극복된 것이다.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1코린 15,13)하고 말했다. 이는 하느님 구원 계획 안에 부활이 있었기에 예수 역시 부활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부활은 육신의 부활이지 영혼의 불멸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부활을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는 '에게이로(egeiro)'로, 이는 '일어나다', '깨어나다'라는 뜻이다. 바오로 사도는 재림의 때가 되면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는 우리 역시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비전은 부활로 말미암아 개개인의 부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본래 창조할 때 당신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획이 이뤄지는 첫 번째 단계가 예수 부활이다. 죽음이 극복된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법칙을 뛰어넘어 하느님이 새로운 법칙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법이 이 세상을 지배하면 죽음이 없어지고 영원한 생명이 전개되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부활이 가진 우주적 의미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할 때 죽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벌거벗은 씨앗이 새로운 몸을 얻어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처럼 인간 역시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나고,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난다고 말했다(1코린 15,42-43). 이처럼 하느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영적인 몸으로 변화하면서 그리스도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가르친 부활의 핵심적 내용이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2.05
![[가톨릭 문화산책]<39> 건축(8)빛나는 창, 우리가 가게 될 천상 도시의 벽](//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1743_1.3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8)빛나는 창, 우리가 가게 될 천상 도시의 벽고딕 성당의 빛나는 장미창, 영원한 그리스도 표현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의 북쪽 장미창 고대 그리스 신전에는 신역(神域)이 있었다. 이를 그리스어로 테메노스(temenos)라고 한다. 신전과 그것을 둘러싼 일정한 영역이 거룩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건축은 성당이 놓인 대지 전체가 거룩한 공간이 아니다. 거룩한 곳과 속된 것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오직 성당의 외벽뿐이다. 벽 안쪽만이 거룩한 예배의 장소이며, 성당을 격리하는 것은 오직 벽이다.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까지는 돌로 만든 벽이 이 성당을 거룩한 장소로 격리시켰다. 그런데 고딕의 벽은 그렇지 않았다. 고딕 건축의 역사는 벽을 만든 돌을 돌이 아니게 만드는, 곧 돌이 지니는 물질성을 부정하는 건축의 역사였다. 이를 위해 벽의 많은 부분을 뚫고 창을 만들었다. 건축에서 창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벽에 뚫은 구멍이다. 창을 통해 환기도 시키고 바깥 세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고딕 대성당에서는 창은 의미가 전혀 달랐다. 창의 유리를 채색해 빛을 투과시켰고, 이렇게 들어온 빛은 돌을 삼투하고 돌과 융합하며 돌을 변용시켰다. 그 결과 물질적인 힘, 물질의 중력은 사라지고, 물질을 넘어 무언가 초월적인 것을 지시하는 벽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고딕 대성당의 창은 벽을 뚫어 빛을 받아들이는 창이 아니라, 거룩한 장소로 격리하는 '빛나는 벽', 아니, '스스로 빛나는 벽'이었다. 그렇다면 고딕 대성당의 창은 왜 '빛나는 벽이 됐을까? 그것은 하느님의 집인 성당이라는 하늘의 도성을 이 땅에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도 거의 모든 문명에서 건축은 세계의 전형이었고 우주를 재현해줬다. 교부들의 저술에서도 하느님의 집은 천상의 도시, 천상 예루살렘으로 여겼는데, 이러한 교회 건축의 모습은 초기 그리스도교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요한묵시록 말씀을 따른 것이다.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도성은 맑은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성 성벽의 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거리는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묵시 21,18-21). 하늘의 도성은 하늘에 매달려 있고, 그 벽은 금이나 보석으로 빛나는 물질로 지어져 있었는데, 성당은 이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어야 했다. 사파이어는 차가운 푸른빛을 내고 루비는 붉은빛을 낸다. 인간은 속이 비치며 빛을 투과시키며 안이 빛나는 물질을 언제나 좋아했다. 보석을 투과하는 빛은 물질에 감춰 있던 빛을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보석이라는 물질이 물질로만 머무르지 않고 빛의 광휘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그렇지 않은 다른 물질과는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보석을 투과하는 빛을 보면서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곧 초월적 존재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은 물질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가까워지게 해주는 힘이 있다. 성 빅토르의 후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이들은 신비한 묵상을 통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는 빛의 초월적인 의미를 분명히 해줬다. 이들에게 빛은 하느님의 속성이며 그분이 하시는 일의 권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성 베르나르도는 "자연의 빛이 유리창에 들어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그 빛이 유리의 색을 띠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빛이란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표현해 주며, 거룩한 빛을 받아 성모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셨음을 표현해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딕 건축의 '스스로 빛나는 벽'은 원죄없이 잉태되심의 싱징이었다. 중세 고딕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며 확산하는 빛으로, 빛나는 얼이 어두움의 물질세계와 구분되면서도 물질세계 안에 계심을 보여줬다. 이렇게 하여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하늘의 도성을 만든 온갖 보석을 이 땅에 재현할 수 있었다. 고딕 대성당과 함께 나타난 것이 장미창이다. 장미창은 고딕 대성당의 서쪽, 남쪽, 북쪽 등 세 개의 통로를 통괄하듯이 그 위에 크게 뚫려 있다. 대성당에서 우리에게 한눈에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장미창일 것이다. 밖에서 보면 돌을 섬세하게 세공한 것으로만 볼 뿐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대성당 안에 들어서 보면 강렬한 빛이 장미창의 신학적인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먼저 성모님을 생각하며 이 창을 성모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장미창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생 드니에 처음으로 나타난 장미창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구세주의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생물들 옆 땅바닥에는 네 얼굴에 따라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에제 1,15-16).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는 말씀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수직을 향하는 고딕 대성당이 원이라는, 이와는 상반되는 자기 완결적인 형태로 장미창을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고딕 대성당의 창은 '빛나는 벽'이다. 고딕 대성당은 우리가 가게 될 천상 도시의 빛나는 벽을 미리 보여줬다. 빛나는 장미창은 극도로 중심적이며 모든 빛의 근원을 뜻한다.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세 개의 창이 아니라, 하나의 빛의 세 가지 모습인 것이다. 세 장미창은 과거(구약)와 현재(신약)와 미래(장차 오실 심판)라는 세 가지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성당은 이 세 개의 시간이 합쳐진 영원한 현재를 재현하고 있다. 또 이 세 개의 장미창은 영원하신 진리이자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고딕 대성당의 새로운 건설 시스템이란 바로 이런 빛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건축이 아니고서는 나타낼 수 없는 하늘의 도성. 하느님에게서 빛이 나오고, 창이 빛나는 벽이 됐으며, 천상의 예루살렘이 우리와 함께 있게 됐다.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 프랑스 샤르트르대성당에는 13세기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커다란 장미창이 세 개 있다. 그렇다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세 장미창을 왜 따로 배치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북쪽은 아기 예수로서, 남쪽은 부활하신 예수로서, 서쪽은 심판자 예수로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회중석과 트랜셉트(성당의 좌우 날개 부분)가 교차하는 부분에 서서 동쪽 제단을 향하면, 뒤에 있는 서쪽과 좌우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세 개의 장미창의 빛이 가장 크게 교차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따듯한 색은 팽창하는 색, 찬 색은 수축하는 색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세 사람들은 붉은 유리는 빛의 투과가 나빠서 색이 수축하고, 반대로 푸른 유리는 빛의 투과가 좋아 색이 팽창한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샤르트르대성당에서는 빛이 약한 북쪽 장미창은 빛의 투과가 좋은 푸른 유리를, 빛이 강한 남쪽 장미창에는 붉은 유리를 사용했다. 북쪽 트랜셉트의 장미창(1235년)은 구약을 형상화했다. 중심의 오쿨루스(원형 창문)는 성모와 어린 예수를 나타내며, 이것은 12개 꽃잎 모양의 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에 성령의 네 가지 은사를 나타내는 네 마리 비둘기가 있고, 나머지는 초를 들고 찬미하는 천사들이 있다. 그 바깥쪽 12개의 다이아몬드 형태에는 구약의 유다 왕 등이 있고, 가장 바깥쪽 반원형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예언자들이 있다. 이 장미창 밑에는 꼭대기가 뾰족 아치로 된 높고 좁은 란셋 창(lancet window)이 5개 있는데, 한가운데는 성 안나가 어린 성모를 안고 있다. 이것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겨짐을 뜻한다. 이에 비해서 남쪽 트랜셉트(1225~30년)의 중심 오쿨루스는 새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것이다. 오른손을 들어 강복하면서 찬미하는 천사로 둘러싸여 계시다. 12개의 원 두 겹에는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24명의 장로가 있다. 이 장미창 밑에는 5개의 란셋 창이 있는데, 그 중앙에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가 있다. 그 좌우 네 개는 네 예언자 어깨 위에 네 복음사가가 앉아 있다. 이것은 구약 위에 신약이 세워졌음을 나타낸다. 한편 정면 입구 위에 있는 장미창(1215년)의 오쿨루스는 심판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안쪽 12쌍의 원형 무늬는 천사와 묵시록의 장로들을, 바깥쪽 12쌍의 원형 무늬는 무덤에서 일어나는 죽은 이들과 심판에 이들을 불러내려고 나팔을 부는 천사를 나타낸다.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cpbc2013.11.05
![[가톨릭 문화산책]<2> 성음악(1) 성음악의 모태, 시편](//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66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1) 성음악의 모태, 시편전례, 기도 중 부르는 시편, 주님 향한 찬미 감사 탄원의 노래 독일 작가 프리츠 아이헨베르크의 구약 주제 목판화 시리즈 10점 중 '12현 수금을 타는 다윗'. 이 작품은 2011년 4월 미국 워싱턴주 동부 스포캔 곤자가대학교 박물관 갤러리에서 공개됐다. 【워싱턴=CNS】 교회의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종교(Religio)란 '다시(re) 묶는다(ligare)'에서 유래한다. 그 말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떠나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고자 함이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영성신학자들도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 혹은 정담'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걸어줘야 가능하다. 우리가 그 말씀에 대답을 하면 서로의 관계, 즉 친교가 생기고 유지된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었는데, 그 말씀을 기록해 '성경'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갖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도 있고, 또는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도 있다. 혹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수도 있고, 무언가 도와달라고 청할 수도 있다. 이 찬미와 감사, 속죄, 청원이 기도의 4가지 요소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응답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성경 가운데서 드물게 인간의 대답을 기록해 둔 부분들이 있다. 시편집이 대표적인 책이다. 흔히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왕이자 가장 훌륭했다고 전해지는 다윗왕이 썼다고 하는 시편집은 노랫말집이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로 '터힐림'이라 하는데, '찬양가들'이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프살모스', 즉 '하프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둘을 종합하면 찬양과 노래라는 뜻이다. 기도의 네 요소처럼 시편 150편도 크게 분류하면 찬양시편과 감사시편, 탄원시편, 일반시편으로 나뉜다. 이 시편집 외에도 솔로몬이 지었다는 아가서와 예레미야ㆍ애가서,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탈출 15,1-18),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1사무 2,1-10),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 젊은이의 노래(다니 3,52-90) 등이 더 있다. 노랫말은 이렇게 전해오지만 어떤 음악적 옷을 입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편에 자주 성가대와 악장, 악기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악보라는 기보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선율이나 리듬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노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늘 부르던 노래다. 예루살렘으로 도보순례를 떠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하고 노래한다. 죄를 짓고는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1)하고 노래한다. 바빌론 유배생활을 하면서는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시편 137,1)하고 노래한다. 특히 임금 즉위식이나 성전 예식 중에 백성들은 성가대와 함께 온갖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파스카 축제의 정점인 파스카 만찬예식 때에도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중간 중간에 시편 113장부터 118장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138장까지도 노래로 부르곤 했다. 당연히 예수님도, 제자들도 시편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편 자체를 성음악이라 부르기엔 아직 일렀다. 성음악이란 교회(Eccle sia, 敎會)의 전례용 음악을 뜻하며, 교회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를 말하기보다는 성령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 구약 전통을 따라 전례에서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시편은 비로소 성음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다. 테르툴리아노(160~225) 교부의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를 묘사한 「초대 교회 법령집(Constitu tiones Apostolorum)」에 이미 전례 중에 시편을 노래한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성 암브로시오나 성 아우구스티노 등 교부들의 기록에도 역시 전례 중 시편 노래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시편을 노래하는 구체적 방법도 발달했다. 대응창법(Anti phona)과 화답창법(Responsorium)이 그것이다. 대응창법은 신자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시편을 한 절씩 교대로 주고받는 창법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연도를 바칠 때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화답창법은 현재 미사 화답송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선창자가 시편을 메기면, 전 교중은 계속 같은 후렴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미사전례 형식이 갖춰지면서 3대 행렬노래인 입당송과 봉헌송, 영성체송 등은 대응창법으로 시편을 불렀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하는 화답송, 복음 전 환호인 알렐루야는 화답창법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미사전례 중에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시편노래들인 셈이다. 초대교회 미사전례뿐 아니라 시간전례(성무일도)에서도 시편은 그 중심을 이뤘다. 원래 유다교나 기원전 1세기께 사해 북서안 쿰란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한 유다교의 한 분파인 쿰란공동체 전통에서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던 관습이 있었다. 이를 본떠서 초세기 교회 신자들은 저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차차 공동기도로 발전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로 발전했다. 또 사도시대에는 날마다 오전 9시(사도 2,15), 정오(사도 10,9), 오후 3시(사도 3,1)에 기도하는 모습도 발견된다. 이같은 시간기도는 당연히 시편기도로 꾸며졌다. 성 안토니오(251~356)에 의해 수도원 체제가 생겨나고, 성 베네딕토(480~547)에 의해 수도원 규칙이 확립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수도원들이 생겨났다. 이 수도생활에서는 시간전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시간전례의 주 내용은 시편기도였고, 이 전통에 따라 지금도 시간전례에서 시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미사전례서에서는 약간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같이 불러야 하는 부분의 노래는 시편이 주를 이룬다. 또 요즘은 시간전례를 매일 하는 신자들도 꽤 많다. 우리는 알고 하건, 모르고 하건 간에 시편 노래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시편은 그리스도교 성음악의 모태요 영원한 원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윗왕 이야기 어느 날 밤 다윗왕은 자기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범했다. 한 번 실수였지만, 그 여인은 아기를 가졌다. 다윗은 겁이 나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야를 불러 아내와 잠자리에 들 기회를 여러 번 줬지만 계속 실패했다. 결국 다윗은 그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고, 과부가 된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제 모든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언자 나탄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꺼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어떤 부자가 있습니다. 그 옆에는 암양 한 마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암양을 자식들과 같이 데리고 자고 같이 먹고 하였습니다. 마치 딸 같았습니다. 하루는 그 부자에게 길손이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양이나 소를 잡고 싶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그 암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왕은 그런 나쁜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 소리쳤다. 그러자 나탄이 말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왕은 즉시 용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유명한 시편 51장이다. 위령기도(연도)를 열심히 하는 신자들은 다 외워서 하는 시편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편 50,3)이다. 다윗이 거룩한 왕이라 불리고, 또 훗날 오실 구세주 메시아의 전형으로 꼽히곤 하는데, 이는 그가 죄를 모르는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여 고백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해 죄를 짓는다. 그러나 우리도 죄를 지으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부인하지 말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시편 51장은 우리 모두가 외워서 부를 시편 중 하나이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3-4). 백 남 용 신부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전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장) 조은일2013.01.22
![[성경 속 상징] 기적](//cpbc.co.kr/CMS/newspaper/2011/03/rc/370317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기적하느님 능력과 영광 드러내예수 그리스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첫 번째 기적을 그린 '카나의 혼인잔치' (파울로 베로네세 작, 1562년). 얼마 전 영화 '루르드'를 보았다. 해마다 600만 명 순례객이 모여드는 프랑스 성모님 성지 루르드에 관한 영화다. 나는 루르드 성지에 관한 아름다운 풍경이나 기적에 관한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거룩한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이 목격한 놀라운 기적을 다룬다. 기적 앞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인간 본성을 철저히 드러내는 영화다. 여자 주인공은 별다른 믿음 없이 그냥 성지순례를 왔다가 우연히 기적을 체험한다.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 앞에 다른 환자와 보호자, 자원봉사자, 성직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아주 다양하고 이기적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일어난 기적에 절망과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한다. 이들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기적 앞에서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과 희망을 보지 못한다. 마지막 작별파티에서 오랫동안 흐르는 노래 'Felicita(행복)'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결국 인간은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라는 메시지가 잘 투영된 영화였다. 기적은 한마디로 초자연적 계시의 표징이며, 하느님께서 비범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사건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생애, 모세 계약의 재건자들인 엘리야와 엘리사의 생애 동안에 기적 이야기가 집중된다.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이나 사막에서의 기적들과, 약속된 땅의 정복에 관한 이야기들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은혜로운 보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여호 24,17). 기적은 하느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주님, 신들 가운데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거룩함으로 영광을 드러내고 위업으로 두렵게 하며 기적을 일으키겠습니까?"(탈출 15,11).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하느님 나라가 당신 자신 안에 이미 현존해 있음을 보여주셨다(마태 11,4-5). 기적은 회개와 신앙을 일깨워주는 도구가 되고,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해주는 상징이 된다. 물론 기적 자체가 믿음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루카 10,13). 기적은 참다운 사도를 나타내는 표징이 된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한결같이 인내하며 여러 표징과 이적과 기적으로 참사도의 표지들을 드러냈습니다"(2코린 12,12). 성경에서 기적이란 언제나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의 상징이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다. 예수님의 기적뿐 아니라 교회 많은 성인들의 기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적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믿음의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기적은 그 상징성이 중요하다.cpbc2011.03.15
교회, 성경의 생태적 삶 알려야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제5회 에코포럼 성경이 신ㆍ구약을 통틀어 하느님과 인간과 땅 즉, '생태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교회가 그것을 시대 징표에 맞게 해석해내지 못하고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게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해붕 신부)가 1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개최한 제5회 에코포럼에서 최승정(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땅의 위기인 환경오염에 대해 인류에 가장 큰 사상적 영향력을 끼친 그리스도교가 예언자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신부는 "구약의 계약신학, 좁게는 창세기 창조 이야기에서 이미 땅은 신학적 중심에 있고, 창세기 1~11장 이야기마다 땅이 생명의 근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하지만 땅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의 죄와 함께 비옥함을 상실해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느님 창조활동의 기본은 땅과 물을 가르는 일이었고, 인간 역할은 땅과 물의 갈등과 긴장을 돌보고 다스리며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었지만 인간이 하느님 뜻을 거슬러 교만과 폭력을 일삼자 땅이 저주받아 홍수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최 신부는 또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오늘날 생태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본질은 '하느님처럼 되려는 마음'이기에 인간중심적 기술문명 및 물질문명과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최 신부는 이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학자 질문에 예수님이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어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고 했던 것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이웃이 돼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웃의 대상을 생태적 관점으로 폭을 넓혀 '생명을 지닌 모든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와 새 창조 : 생태신학적 그리스도론의 시도'를 발표한 백운철(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자신의 생명을 타자에게 내어주고 그 생명을 타자 안에서 다시 찾는다는 영원한 생명의 '에코 시스템'"이라며 "생명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은 가장 완전한 생태적 삶을 사신 분"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영도자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받고 그 생명을 동료 인간 및 이웃 생명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자연을 완성하는 부활의 에코 시스템에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 신부는 "인간이 바로 서야 자연이 되살아난다는 연대성 원리는 인간이 하느님께 위임받은 자연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진다"며 "오늘날 생태문제 핵심은 결국 '정의 문제'로 귀결되며, 경제 만능주의와 자연의 무분별한 착취는 오염을 가중시켜 결국 죽음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논평을 맡은 안소근(가톨릭교리신학원) 수녀는 "하느님은 땅의 다스림을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 맡기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뜻을 인식할 수 있고,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하느님 뜻을 거슬러 하느님 영역을 침해할 때 인간은 고귀한 가치를 내던지고 자신의 집인 땅을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김영남(가톨릭대 신학대학) 신부는 논평에서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신약성서 연구에서 핵심은 청빈과 겸허의 삶을 살고 가르치신 그리스도 곁을 맴도는 것"이라며 "생태학적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인간은 오만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는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조규만 주교와 조해붕 신부 등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 신자 등 250여 명이 참석해 4대강 사업과 구제역 사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목을 모으는 환경과 생태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1.06.07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17] 미사 참례 통해 영적 힘 얻어 기쁜 신앙 생활 영위](//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8414_1.3_titleImage_1.jpg)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17] 미사 참례 통해 영적 힘 얻어 기쁜 신앙 생활 영위4.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4)마무리글 천주교회의 가장 중요한 전례는 미사다.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다. 사진은 미사 중 거양성체(축성한 성체를 신자들이 경배하도록 높이 들어보이는 것) 장면. 평화신문 자료사진한국천주교회의 현실 천주교회의 가장 중요한 전례는 미사다. 다른 여러 성사는 성찬례와 연결돼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합당하고 장엄한 예배를 드린다. 한마디로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라 하겠다. 이토록 중요한 미사인데 최근 한국천주교회의 모습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미사 참례자가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2012년 주교회의 통계를 보면, 한국천주교회 주일미사 참례자 비율은 22.7%다. 게다가 서울대교구 주일미사 참례자 비율은 이보다 낮은 21%다. 꾸준히 신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쉬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미사 참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참례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 하겠다. 미사에 참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직장 업무, 여행, 가족 행사, 휴가, 지인의 결혼 및 돌잔치, 외국 친척 방문, 유학 중인 자녀 돌봄,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실망감, 성직자 혹은 수도자에 대한 실망감 등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이란 다양한 방식과 이유로 우리를 현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사목 현장에서 만난, 잠시 쉬었다 돌아온 신자들을 보면 처음에 쉴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주님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주는 바쁘니까…'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한 주를 빠지게 된 것이 '그 다음 주도 그리고 그 다음 주도'하면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결국 한 번의 작은 유혹에 넘어감으로써 조금씩 주님에게서 멀어져 버린 것이다. 구약성경 집회서는 이렇게 작은 유혹에 대해 경고한다. "작은 것을 무시하는 자는 조금씩 망하리라"(집회 19,1). 우리 옛말에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한 번 작은 유혹에 넘어가면 두 번, 세 번 반복되고 결국 주님에게서 멀어져 버릴 뿐 아니라 큰죄를 짓게 될 상황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미사에 자주 참례하는 것이다. 특별히 주일 미사 참례는 항상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사실 우리가 잘 모르는 영성체의 효과들이 있다. 그 효과들을 얻지 못하게 될 때 다시 말해서 영성체를 하지 않을 때 우리가 얻지 못하는 효과들로 인해 더욱 주님과 멀어질 수 있다. 영성체의 효과에 대해 살펴보자. 영성체의 효과 1)그리스도와의 일치 증진 영성체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증진해준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물질적 양식이 육체에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영성체는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에 그 효과를 가져온다.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며 새롭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죽는 그 순간까지 지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는 그 나그넷길의 양식인 성체로 양분을 받아야 하며, 우리가 죽을 때에는 이 양식을 노자성체를 통해 받게 됨으로써 주님 나라에 갈 힘을 얻게 된다. 2)죄에서의 보호 영성체는 우리를 죄에서 떼어 놓는다. 영성체로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피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것이다. 성체를 자주 모실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우정이 깊어지게 되고 우정이 깊어지면 죽을 죄(대죄)를 피하게 된다. 따라서 영성체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3)소죄의 정화 육체의 음식이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시키듯, 성체는 일상생활에서 약해져가는 사랑을 북돋아준다. 그리고 생기를 되찾은 사랑은 소죄를 없애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의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시고, 피조물에 대한 그릇된 애착을 끊고 당신 안에 뿌리내리게 하신다. 4)신비체의 일치 교회 공동체를 신비체라고 부른다. 교회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가 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시는 뜻에 따라 생활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비체가 일치를 이루는 때가 바로 영성체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한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를 결합시켜 하나의 몸, 곧 교회를 이루신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5)가난한 이들을 위한 투신 성체성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게 한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되게 받기 위해서는 그분의 형제들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한다.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손과 발이 되고 가장 아파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사효성과 인효성 성체만 모시면 미사의 모든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미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이다. 말씀 전례 역시 미사의 핵심이고 큰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말씀 전례는 매미사 때마다 전례력에 따라 말씀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기 위해서 우리의 준비가 필요하다. 성사의 효과에는 사효성(事效性)과 인효성(人效性)이 있다. 사효성이란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와 성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성사에 참례하는 것만으로 합당한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사의 효과는 집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효성이란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와 성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만큼에 상응하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사가 사효적이라고 가르치지만 "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28항)고 함으로써 상호 보충적 의미를 전하고 있다. 따라서 미사에 참례할 때 급한 마음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신자도 사효성으로 은총을 받겠지만, 더욱 정성스레 준비한 신자가 인효성으로 더 풍성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 하겠다. 따라서 미사에 참례할 때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얼룩진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그날의 미사 지향을 알고, 독서와 복음을 충분히 읽고 묵상한 신자는 그렇지 못한 신자에 비해 더 풍성한 은총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을 그릇을 잘 준비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와 복음은 전례력에 따라 변화하기에 꾸준히 읽고 묵상할 때 하느님 말씀의 은총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전 사제의 강론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말씀을 깨닫게 된다. 신앙의 해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미사를 통해 더욱 하나 되고 하느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성체를 자주 영함으로써 영적 힘을 얻어 신앙의 기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기쁘게 신앙을 살아갈 때 나를 바라보는 이들도 기뻐할 것이고 함께 신명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를 바라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또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우리 신앙의 삶이 기쁨과 행복이 된다면 미사 시간은 의무감으로 참례하는 시간이 아닌 일주일 중에 가장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이정준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실)cpbc2013.10.15
[출판]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특집주제로 '신부님 신부님 주일학교 신부님'을 선정해 △삶은 소리와도 같은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신부님의 신상털기 △나를 찾아오시는 분, 나를 변화시키는 하느님을 다뤘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교리도움자료에서는 시복시성 절차와 기오ㆍ병오 박해를 살펴봤고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순교자'를 주제로 교리교안을 소개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비타꼰 현장에서는 여성 노숙인 쉼터 '일ㆍ문화카페'를 찾아갔고, 비타꼰 화랑은 한지조형가 소빈(스타니슬라오)씨의 닥종이 인형 작품을 소개했다. 가톨릭 성(性) 이야기에서는 야동을 보는 초등학생 문제를 다뤘다. 이승환 기자와 함께 떠나는 신앙여행에서는 수원교구 안양 수리산 성지를 순례했다.(마리아의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시평에서는 '불안치유의 정치와 종교'(김정용)를 다뤘다. 경향돋보기에서는 '피로사회 탈출, 귀농'을 주제로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보시니 좋았던" 하느님의 마음을 이제야 △귀농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살펴봤다.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를 설명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의 인물상에서는 음악 활동과 집필 활동에 전념했던 최명화 신부를 조명하며 최 신부가 작곡한 성가곡에 관해 알아보고 최 신부의 번역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신학총서 제4권, 분도출판사)가 나오기까지 이야기를 소개했다. 자료를 찾아서에서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찾아갔고 고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된 인연도 덧붙였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특집으로 '2012년 여름 마리아폴리' 의미를 살펴보며 마리아폴리 현장과 참가자들이 남긴 인상문을 소개했다. 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일치된 세계를 꿈꾸는 국제 젊은이 축제 '젠페스트'(8월 31일~9월 2일)를 기념해 젠페스트 의미와 역사를 알아봤다. 8월 방한한 포콜라레 총본부 '종교간 대화' 부문 공동책임자 이순영씨를 만났다. (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의 영성으로 △약함의 강함 △성체대회와 레지오 단원의 등급 △나의 성화(聖化)통해 하느님 영광 드러내기 △몽포르의 성인 루도비코 마리아를 실었다. 전례의 숲에서는 '입당 행렬과 입당 성가'에 관해 알아봤고,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은 왜 어떻게 기도하는가'에 대해 설명했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황인수(성바오로수도회) 신부가 '텃밭에서'를 기고했고, 영성에세이에서는 △어둠을 나와 진리로-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 △복자 존 헨리 뉴먼이 오늘날 주는 가르침을 게재했다. 9월 한 달간 말씀과 복음과 독서말씀, 관련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 가톨릭출판사 제1회 독후감 공모전 우수상 작품인 '준주성범, 청년들에게 고함'(우기홍)도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집 '우리아이가 기도를 해요 0~13살 사목'에서는 △미래 교회 공동체의 희망, 영유아 사목 △부모교육은 선택 아닌 필수 △교리교사가 살아야 주일학교가 산다 △유소년들에 대한 본당 사목자의 노력과 고민을 게재했다. 공동선에서는 '언론, 예언직을 수행하라!'를 주제로 한국 언론의 현주소 등을 짚어봤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기'를 특집주제로 선정해 △제대로 알기 Q&A △교회가 인정한 스물한 번의 보편 공의회, 교황 요한 23세 △교황 바오로 6세, 이전 공의회와 다른 점은? △한국교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등을 게재했다. 꿈이 있는 세상에서는 해외입양인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는 까페 '네스트'를 찾아갔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 새로봄에서는 '거꾸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하느님께서 주신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요 △시대를 거스른 옛 신자들의 삶과 성경 말씀을 실었다. 성경 첫걸음에서는 '성경은 어떻게 전해졌을까'를 알려줬고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편에서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다뤘다. 성미술 산책에서는 청양 다락골 성지 부활 순교자상에 대해 알아봤다.(성서와 함께/3000원) ▨소년 청각장애를 지닌 박민서 신부를 특별 인터뷰해 청각장애인 성당을 건립하고 싶은 소망을 들어봤다. 나의 첫 번째 성경에서는 '춤추는 다윗 임금'을 소개했고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는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3D'를 추천했다. 예수님이 살던 곳에서는 '올리브 산'에 얽힌 이야기를 게재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공의회를 사는 사람들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삶'을 주제로 대안학교 교사 변경환(베드로)씨를 만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이야기에서는 올해 개봉한 '야곱 신부의 편지'를 소개했고, 이철희(대구대교구) 신부가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를 기고해 신앙체험을 들려줬다. 표정이 있는 풍경에서는 강경젓갈로 유명한 충남 논산 강경읍 골목 풍경을 담았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특집으로 '초대 교회 공동체를 꿈꾸다'를 다루며 △박기호 신부에게 듣는 산위의 마을 공동체 생활 △산위의 마을 가족들의 공동체 살이 △하느님 안에서, 자연과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만나 생태마을을 실었다. 순례하고 산행하고에서는 수원교구 양근성지를 다녀왔고, 사이버여행에서는 '일인 미디어 시대의 사이버 폭력'(박문수)을 짚어봤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8.28

유다 문화의 황금기, 헤로데 삶으로 재조명'헤로데 대왕, 왕의 마지막 여정' 전시회헤로디움에서 발굴된 헤로데 무덤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묘실. 이스라엘 박물관 헤로데 전시회의 최고 볼거리는 지난 2007년 헤로디움(Herodium)에서 발굴 복원된 헤로데의 무덤과 그의 묘실에서 발견된 3개의 석관이다. 요세푸스 「유다고대사」에 의하면 헤로데는 기원전 4년 예리코 궁전에서 숨을 거둔 후 헤로디움에 묻혔다고 한다. 헤로디움은 예루살렘 남쪽 15km, 베들레헴 동남쪽 5km에 위치한 유다광야 가장자리에 있는 요새다. 헤로데가 700m의 흙을 쌓아 만든 이곳엔 요새궁전과 함께 정원, 대형 수영장, 화려하게 장식된 목욕탕, 귀빈석을 갖춘 극장 등 여가 시설이 있다. 헤로데는 말년에 이 여가시설을 자신의 장례 행렬과 무덤을 위한 장소로 바꾸고 예루살렘을 마주보는 방향으로 웅장한 묘를 만들었다. 근래까지 정확한 장소를 몰랐던 헤로디움은 저명한 고고학자 에후드 네쩨르(Ehud Netzer)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에 의해 지난 2007년에 비로소 발굴됐다. 또 키프로스 궁전에서 발견된 헤로데 개인 욕조와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성전산의 조각된 돌 그리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헤로데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대야 등 대규모 복원 과정을 거친 유물 250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헤로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출신과 종교, 무자비한 통치방식, 아내와 세 아들에 대한 사형 집행, 신약성경 베들레헴 '영아 학살자'(마태 2,16)로 언급되면서 '폭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마의 친구이자 동료'라는 칭호를 받았던 헤로데는 안토니우스와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의 적극 지지로 기원전 37년 로마 원로원 동의를 얻어 유다 왕이 됐다. 헤로데는 기원전 70년경 순수 유다인 혈통이 아닌 팔레스타인 남부 에돔땅 이두매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다교로 개종한 그의 아버지 헤로데 안티파테르는 유다 하스모네 왕조 요한 히르카누스 2세 밑에서 일하면서 기원전 63년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과 협정을 체결, 유다를 로마 속국으로 넘긴 인물이다. 그는 이후 로마로 가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복한 갈리아 지방 총독으로 부임했다. 로마에 의해 유다왕으로 임명된 헤로데는 친유다적이면서도 반유다 정책을 폈다. 그는 유다인으로부터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 히르카누스 2세 손녀인 마리암네 1세와 결혼했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 또 로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도시 카이사리아를 건설했고, 예루살렘에 안토니아 요새를 세웠다. 하지만 헤로데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아내 마리암네 1세와 장모 알렉산드라, 맏아들 안티파테르를 처형했다. 죽기 직전 베들레헴 영아들도 학살했다. 헤로데는 언제 어디서 유다인들이 자신을 향해 봉기하고 대항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전략 요충지에 일종의 도피처인 요새를 11개나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인 베들레헴 남쪽에 세워진 헤로디움과 사해 동쪽 마케루스, 사해 서쪽 마사다, 예루살렘과 사해 중간에 위치한 히르카니아, 예리코 인근 키프로스, 예리코 북단 알렉산드리움이다. 말년 동맥경화증을 앓은 헤로데는 한차례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한 뒤 생을 마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퇴사자22013.03.12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8) 춤과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양](//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4593_1.0_titleImage_1.jpg)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8) 춤과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양 우리가 성당에 나오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 할까? 우리는 행복한 순간이 오면 펄쩍펄쩍 뛸 만큼 기쁘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기분이 아주 좋으면 춤을 추게 돼 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느낄 때 춤을 춰야 한다. 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다. 모든 종교에는 춤이 존재한다. 불교의 승무가 그것이다. 특히 스님들이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쓴 채로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추는 춤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불교가 정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불교는 동적인 종교다. 108배, 3000배만 봐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개신교에는 '워십댄스'라는 것이 있다. 영어의 워십(worship)은 섬김, 숭배,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수백 명의 신도들이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며 예배하는 모습은 개신교회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도 춤에 대한 부분이 많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홍해바다를 건너자마자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탈출 15,20). 구약성경에는 춤이 자주 등장한다. 다윗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고 나서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사무엘하 6,14). 그러자 사울의 딸 미칼이 임금님의 체면도 잊은 채 춤을 춘 다윗을 비난하지만, 다윗은 "주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그 집안 대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바로 그 주님 앞에서 내가 흥겨워한 것이오"(사무엘하 6,21)하고 당당히 말한다. 성경 전반에 걸쳐 살펴보면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드릴 때, 성조들은 춤과 노래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있다. 힐데가르트(1098~1179) 수녀는 월요일마다 성당에 들러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하느님 앞에서 춤을 췄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천주교에서는 그나마 성령세미나, 성령기도회에서 찬양의 맥을 잇고 있다. 성령세미나에 대한 편견을 가진 교우들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또 미사 전례에 맞춘 찬무를 통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공동체들도 있다. 익숙지 않지만 이같은 긍정적 변화는 살아 움직이는 전례를 만들어줄 것이다. 성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똑같은 성가도 천주교에서는 엄숙하다 못해 우울한 분위기에서 부르지만 개신교에서는 기쁘고 신나게 부른다. 가톨릭 성가는 대부분 고전파 작곡가,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곡들로 만들어져 부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교회는 신자들이 부르기 쉽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성가대가 갖는 고질적 어려움 중 하나는 단원확보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성가대에 들어오라고 하면 꽁무니를 뺀다. 성가 중에는 대중과 맞지 않는 곡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고백이다. 진정한 종의 모습은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로 돌려드리고,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춤과 노래를 통한 경배로 하느님과 나와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금요일 오전 8시(본방송), 토요일 저녁 8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오후 6시, 월요일 오후 8시 40분.퇴사자22012.08.28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교사에게 취업을 허하라!'를 특집으로 다루며 △보물찾기 △빛나는 인생 만들기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 △하느님께서는 아직 내가 필요하신 걸로~! 등을 실었다. 우리교사회 자랑에서는 춘천교구 청호동본당 초등부 교사회를 소개했다. 교리 도움자료 '교리 아락실'에서는 10월을 맞아 묵주기도성월의 유래를 살펴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비타꼰 독립영화에서는 탁구 국가대표 김경아(미카엘라) 선수를 만났고,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에서는 백요한(파리외방전교회) 신부를 인터뷰했다. 이승환 기자와 함께 떠나는 신앙여행에서는 청주교구 감곡매괴 성모순례지성당을 방문했고, 비타꼰 현장에서는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운영하는 필리핀 영어캠프를 취재했다.(마리아의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신앙의 해를 주제로 △신앙의 해에 다시 읽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앙의 해 선포 배경과 의미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들인가? 등을 다뤘다. 바티칸통신에서는 마르티니 추기경 선종 소식을 소개했고, '원로에게 듣는다'에서는 오경환(인천교구) 신부를 만났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자 역사 비망기'에서는 1815년 순교한 김시우 알렉시오와 최여옥 프란치스코를 조명하며, 신앙생활과 순교과정 등을 다뤘다. 지난달 '한국 천주교회와 교계제도'를 주제로 마련한 2012 한국교회사연구소 심포지엄을 지상중계하며 각 주제발표와 종합토론 내용을 실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특집으로 8월 31일~9월 2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2 젠 페스트 현장을 소개하고 젠 페스트에 참가한 한국 청년들 소감을 들었다. 종교 간 대화에서는 포콜라레 총본부 '종교 간 대화' 부문 공동책임자 이순영(크리스티나)씨를 만나 포콜라레 운동의 종교 간 대화 활동과 각종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걷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는 박해시대 교우촌 수원교구 손골성지를 찾아갔고, 'YOUNG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제주 신성여고 도움이신 성 마리아 쁘레시디움을 소개했다. 레지오의 영성으로는 △성모상에 대한 기억 △고통과 새로운 복음화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의 삶 바라봐 등을 다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연제식(청주교구) 신부가 쓴 '최선의 하느님은 최선의 길로 이끄신다'를, 영성 에세이에서는 △은총의 해, 신앙의 해 △「기쁨과 희망」(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이 던지는 도전을 실었다. 이와 함께 한 달간 매일 복음과 독서 말씀을 골라 싣고 말씀해설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집으로 신앙의 해를 다루며 △신앙의 해 제정과 '새로운 복음화' 촉구 배경 및 의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신앙의 해 △신앙의 해 선포와 가톨릭교회교리서 등을 짚어봤다. 공동선에서는 '가톨리시즘으로 보는 공평한 사회'를 주제로 교육, 복지, 경제문제를 가톨릭 시각으로 풀어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심리학자의 세상 잠망경'에서는 김재신 심리학 박사가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다뤘다. 특집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내가 그분을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 △얼마나 가난해야 교회일까? △노숙 성인 가라사대 등을 실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 새로봄에서는 '갇힌 이들에게 한 송이 꽃이 되어 주세요'를 주제로 부산교구 교정사목 봉사자 대표 강수경(미카엘)씨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김성은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성미술 산책에서는 전주교구 쌍치공소 십자가(이채현 작, 1996년, 청동, 910x1130mm)를 소개했다. 성경 첫걸음은 '성경의 각 권은 어떤 문학 유형일까'를 다뤘다.(성서와 함께/3000원) ▨소년 군인주일을 맞아 군종교구에서 사목하는 구성진(무열대본당) 신부를 만나 인터뷰했다. 특별기획으로 '포도가 예수님의 피가 되기까지'를 소개하며 미사주와 포도주에 대해 알아봤다. 나의 첫 번째 성경에서는 '다윗 임금의 후손들' 이야기를 다뤘고,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로는 '지상의 별처럼'을 추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참 소중한 당신 '다시 돌아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특집 주제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그 영향 △전례의 토착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또다시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 △공동선 추구와 사회현실 참여 등을 다뤘다. 아름다운 사람들에서는 성물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는 바오로아트 대표 이희웅(바오로) 작가를 만났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박수정201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