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31. 아론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323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1. 아론은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이집트의 황소 우상숭배 모방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하느님을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림은 '금송아지 숭배' (니콜라 푸생 작, 17세기). 모세는 하느님 부르심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탈출시켰다. 그들은 이집트를 나온 지 석 달 만에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만을 시나이 산으로 부르셨다. 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40일간 머물며 이스라엘을 대표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머물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모세에게 아무 소식이 없자 그 틈을 못 참고 불평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론에게 몰려가 자신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아론이 그들에게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들의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자, 온 백성이 저희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왔다. 아론이 그 금을 그들 손에서 받아 거푸집에 부어 수송아지 상을 만들자, 사람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아론은 이것을 보고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은 뒤, '내일은 주님을 위한 축제를 벌입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 번제물을 올리고 친교 제물을 바쳤다. 그러고 나서 백성들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탈출 32,2-6). 아론이 수송아지를 만든 것은 이집트의 우상숭배에 그 기원을 둔다. 구약시대 이집트에서는 동물 형태를 신으로 섬겼다. 그래서 이들은 신전에 산 짐승을 두거나, 동물 형상을 만들어 전시하곤 했다. 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던 이집트 고센 땅에서는 황소를 우상숭배하고 있었다. 번식력이 강한 황소를 다산과 풍요를 주는 신으로 섬겼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이들의 황소 우상숭배 행위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없는 틈에 광야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며 소멸하지 않고 풍요를 제공해줄 신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옛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대부분 나무로 형태를 만들어 도금한 것이다. 탈출기에 등장하는 아론의 금송아지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는 모세가 우상을 부술 때의 행동에서 알 수 있다.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탈출 32,20). 이처럼 우상을 부술 때 먼저 우상을 불에 태운 뒤 두드리거나 압축해 조각을 내고 그런 다음에 갈거나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우상 속에 있는 나무를 먼저 태워 숯으로 만든 뒤에 도금한 금을 두드리거나 벗겨내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금송아지를 불에 태운 것도 모자라 그것을 마시게 한 것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세는 레위 후손들을 모아다 백성을 살해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백성 가운데에서 3000명 가량이나 쓰러졌다. 하느님께서도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사건으로 크게 진노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탈출 32,9)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탈출 32,35). 우상숭배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퇴사자22012.05.01
![[아! 어쩌나] 235.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남편](//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79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35.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남편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Q. 남편은 아직도 자신이 젊은 줄 압니다. 그리고 아주 잘 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는 직장마다 상사와 부딪쳐 몇 개월 못 보내고 계속 그만둡니다. 처음엔 남편 말처럼 직장 상사가 문제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얼마 다니지 못하고 몇 번이나 옮기는 것을 보면서 남편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남편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제대로 일도 못 하면서 늘 상사에 대한 불평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상사가 뭐라고 하면 발끈해서 직장을 그만두곤 했던 것입니다. 남편 나이 쉰이 다 돼 가는데 걱정되네요. A. 중국 고사에 바다를 지키는 신이 황하의 신 하백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개구리가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입니다. 우물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물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왜 그런가? 바로 '열등감' 때문입니다. 열등감은 마음의 상처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형제들 사이에서 치인 기억들, 그래서 생긴 자기 혐오감 같은 불편한 감정을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은 두 가지로 표출됩니다. 먼저 하나는 위축된 채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나 같은 건 죽어야 해' 하는 우울감 쪽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상대방의 단점을 물고 늘어지는 형태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사는데, 왜 상대방 단점만 물고 늘어지는가?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험담을 할 때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술을 마셨을 때에야 '살아나는' 사람들처럼 험담을 일삼는 사람은 험담을 할 때나 자신이 살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쉽사리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중독에 빠진 것이지요. 이러한 심리적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보지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를 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비참함으로 돌아가는 작업이기에 절대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거나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물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기에 남의 험담만 하면서 세월을 죽이는 것입니다. 흔히 어떤 공동체에서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없이 봉사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험담해서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들은 공동체의 암적 존재라고 합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생산적 삶을 사는 법,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고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는 법만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천덕꾸러기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자신감 부족입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흔히 우리가 탁상물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눈이나 입으로만 공부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그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전부인 양 하며,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혹은 자신의 단점을 알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마치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찬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1-35). 바로 열등감, 우물 안 개구리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질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는가?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루카 7,35)는 성경 말씀처럼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경험의 길, 수행의 길을 가야 합니다. 즉, 자신이 머무는 자리가 최상이 아니란 것을 알기 위해 마음도 몸도 공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성부께서는 성조들에게 늘 떠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늘 마음을 열고 공부하는 자세로 사는 사람들은 흐르는 물과 같아 사람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어서 아무도 마실 수 없고, 마시는 사람들은 탈이 납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cpbc2014.02.04
![[평화칼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4992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변승우 명서 베드로(평화방송 TV국장)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미사 중에 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살짝 궁금하다. 주님께서 단박에 나를 낫게 해주실 '한 말씀' 그 '결정적 힐링멘트'가 뭘까 하는 생각에 잠시 분심 아닌 분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당신 말씀 가운데 어느 한 마디 영혼의 완벽한 치유를 주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나의 우문(愚問)은 당연히 무지의 소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취향을 빙자해 복음서의 몇 장면을 떠올려본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며 예수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예리코에서 눈 먼 이에게 빛을 되찾아주셨을 때도(마르 10,52), 갈릴래아 인근에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뒤에도 똑같은 얘길 건네셨다(루카 17,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요즘 같으면 '네 믿음이…3종 세트'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검색어 1위를 독식할 법하다. 200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자. 불치의 병이 순식간에 사라진 최고의 클라이맥스에서 성자(聖子)는 기적의 이유를 당신 권능 때문이라고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받으며 살아온 이들, 그 당사자들의 '믿음'이 치유의 동력이라고 하셨다. 드라마로 치면 엄청난 반전이요 감동의 명대사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아픔은 어김없이 죄의 결과로 여겨졌다고 한다. 질병도, 장애도, 가난도, 천하게 태어나 차별 당하는 것도 모두 다 "내가 못난 탓"이었다. 그렇게 사람 취급 못 받던 이들이 예수를 구세주라고 고백한 후 육신이 나았다. 그러나 병의 완치는 은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분'이 속삭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대체 무슨 말인가? 운명을 거슬러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달라지게 하는 힘이 다름 아닌 '내 안'에 있으며, 그 힘의 정체가 바로 '스스로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순간 천형(天刑)처럼 견뎌온 굴종의 세월이 일거에 사라졌다. 병자들은 그렇게 '내 안'에 이미 역사하고 계신 하느님을 만났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들은 아마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남은 생을 그 누구보다 당당히 살아냈을 것이다. "당신의 한 말씀으로 제가 온전히 나았습니다"라는 기도를 평생 잊지 않고서 말이다. 도미니코회 소속의 세계적 신학자 앨버트 놀란 신부(남아공)는 저서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 성경의 이 대목을 언급하며 '믿음'은 무기력한 숙명론을 이기는 힘이요,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동감한다. 하느님이 주신 축복된 DNA로 우리 안에 숨 쉬고 있다가 일순간에 발화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희망의 본체…. 그것이 곧 '믿음'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예수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으리라 확신한다.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신앙의 해'가 마무리됐다. 현대 사회의 숱한 질병에 감염된 우리네 믿음을 되살려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내달릴 진격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과학맹신주의, 세속주의, 상대주의, 물신주의, 개인주의…. 질환은 다양하고, 병세도 자못 위중해서 투병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병상을 털고 일어설 백신 또한 우리의 '믿음' 안에 이미 탑재돼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신앙의 해'를 발전시켜갈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 안에서, '믿음'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신 가장 빛나는 '축복'임을 확인할 수 있기를, 그 수혜자인 우리가 바로 세상을 변하게 할 희망의 주인공이란 진실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 말씀대로, 우리의 믿음이 결국 우리를 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cpbc2013.11.26

「복음의 기쁨」, 하느님 향한 영적 동행의 초대장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가톨릭·개신교 첫 합동 심포지엄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한 가톨릭과 개신교 합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청중들이 발제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가톨릭과 개신교의 학술 교류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개고리로 훈풍을 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권고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의 학술 교류가 물꼬를 텄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이자 기여는 전통적인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 이해에 그치지 않고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적 경계를 넘어 교회일치를 위한 다양한 주제의 학술적 대화가 다양하게 펼쳐질 전망이다.가톨릭대 신학대학ㆍ신학과사상학회 주최로 7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처음으로 열린 가톨릭ㆍ개신교 합동 심포지엄에서 이런 분위기가 극명하게 감지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복음의 기쁨」에 드러난 ‘교회 쇄신’과 ‘일치’, 그리고 공동선을 향한 복음 실천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라는 세 가지 큰 화두를 걸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격과 사상에 근거한 격의 없는 통합의 주제어들이 쏟아졌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에선 “하느님의 백성은 기도하였고, 추기경은 투표하였고, 하느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말입니다.” (조규만 주교) “성경 이외 책을 읽고 은혜를 입은 것은 「복음의 기쁨」이 처음이다.” (강성영 목사) “오늘 발표자로 나온 개신교 신학자들은 똑같은 옷만 입으면 구별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호 주교) 등 재치 넘치는 유머가 쏟아져 좌중을 웃기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교회 일치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복음의 기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고백했다. 박종천(감리교 신학대학교 총장, 세계감리교협의회 신학교육위원회 위원장) 목사는 “「복음의 기쁨」은 현존하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의 경계를 넘어 고대 그리스도교(초대 교회)의 복음적이고 교회 일치적인 신앙을 현대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참 목자’의 말씀”이라고 평가했다.「복음의 기쁨」이 발표됐을 때 18세기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 목사가 우리 시대로 다시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특권과 안일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목회(사목)와 선교에 실천했다는 점에서 두 지도자의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운철(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학과사상학회 회장) 신부는 “「복음의 기쁨」은 제도적인 교회관보다 하느님 백성의 교회관을, 전통 중심보다는 말씀 중심의 그리스도교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다른 종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복음적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부각시켰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 권고는 교리 중심보다는 케리그마(선포 내용) 중심으로, 윤리적 규범보다는 구원과 사랑 중심으로 복음을 전개하기에 그리스도교 내의 동일성이 차이보다 훨씬 두드러져 종파 간의 교리적 논쟁 여지를 별로 남겨놓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복음의 기쁨과 복음 선포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강성영(한신대 교수) 목사는 교회 일치 영성을 「복음의 기쁨」에 자주 나오는 ‘다른 이들’ 즉 타자에 대한 영적 감수성에서 찾았다. 그는 “「복음의 기쁨」은 다른 이들과의 만남에서 타자를 환대하고 타자와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함께 사는 신비’를 체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일치의 회심은 개인적 의미의 개종이나 종교적 회심과는 다른 의미로 타자와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더 나아가 생태계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태도의 근본적 변화”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복음의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을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 초청할 뿐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협력과 연대의 장으로 불러낸다”며 “하느님께로 향한 영적 동행은 전환기의 도전 속에 작아져만 가는 그리스도교가 인류의 일치와 구원을 감당할 만큼 더욱 커지는 길임을 알려준다”고 피력했다.▨교회 쇄신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교회 쇄신은 교회의 복음 선포 내용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파스카의 신비에 다시 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빛 속에서만 우리는 시대 징표에 대한 ‘복음적인 분별’(「복음의 기쁨」 50항)을 할 수 있다. 영적 세속화는 사목자가 성장 추구형 관리자로 실적주의에 빠져서 세속적인 성공에 매달리고 복음적 자세나 복음적 목표가 부재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백운철 신부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의 권고처럼 사제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복음적 회심’은 성령의 가장 위대한 은혜라고 한 박종천 목사는 “오직 성령 충만한 하느님 백성만이 ‘담대하게, 큰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또한 시류를 거슬러, 복음의 새로움을 선포할 힘을 가져’(「복음의 기쁨」 259항) 새로운 복음화로서 토착화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유석성(서울신학대 총장, 한국기독교회 회장) 목사는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 역할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것”이라며 “자기 희생, 나눔과 봉사의 실천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정의로 평화를 구현할 때 비로소 교회 쇄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선을 향한 복음 실천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복음의 기쁨」은 단지 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주는 일로 선교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복음의 기쁨과 생명이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복음화를 지향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권고를 통해 선교란 인간과 문화를 복음화하는 포괄적 행위로 삶의 일상 자체가 선교 현장이며 특히 사회와 교회 변방으로 몰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래서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세상 안에서의 복음 실천을 ‘공동선을 향한 연대’로 인식했다.백 신부는 “「복음의 기쁨」이 추구하는 모델은 자본주의의 독재 권력에 대항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되, 기업가나 다른 기득권층에 배타적인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를 평화의 복음으로 선포하면서 모든 이들을 공동선 안에서 하나로 묶는 통합의 대안 사회”라고 설명했다. ‘신앙과 과학의 대화’에 주목한 백 신부는 “특히 생명에 관련해 양자 간의 대화가 요청된다”면서 신학자와 과학자들의 학문적 만남을 제안했다. ‘평화는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길’이라며 연대를 강조한 유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높이고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이뤄가는 것이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통합의 창출”이라고 했다.「복음의 기쁨」을 인용, “자유시장경제는 자본의 노동 착취나 권력의 시민 억압 문제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의 사회적 배제, 즉 배척과 소외를 초래하는 새로운 비인간적 체제”라고 진단한 강 목사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하느님과 윤리에 대한 거부’라고 단정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사회악과 생태악을 초래했다면서 「복음의 기쁨」은 정치,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사랑의 실천과 방향을 확대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는 생명 경제의 대항문화라고 말했다.▨행동하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격과 사상에 대해 발표한 이병호(전주교구장,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행동하는 교황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물속에 빠지게 해서 수영을 가르치는 것처럼 충격적이라고 설명한 이 주교는 “「복음의 기쁨」은 세상 끝날까지 유효한,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축사를 한 조규만(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주교도 “「복음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화의 모범이며, 교회의 첫째 의무가 복음 선포임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 문헌은 핵심을 놓치지 않고, 교황의 사목적 체험이 녹아 있으며, 교황 특유의 유머와 파격적 어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김희중(광주대교구장,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대주교도 축사에서 교회 일치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아니라면서 분열을 탓하기 전에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서로의 차이점보다는 신앙의 공통 유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cpbc2014.06.11
![[신앙의 재발견] <5>미사전례-시작예식 · 말씀전례](//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6727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재발견] 미사전례-시작예식 · 말씀전례 참회로 정화하고 성경 말씀 새겨듣고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나오는 신자들 중에는 습관대로 기도문을 외우며 전례에 참례하는 이들이 있다. 전례의 변화가 생기더라도 이유를 모르고 틀린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주례 사제와 신자들이 주고받는 미사 통상문의 의미와 전례적 흐름에 대해 알아보자. 기계적으로 행하던 미사 참례가 더욱 풍성한 은총으로 다가올 것이다. 입당 성가인가? 시작 성가인가? 사제가 제의방에서 제의를 입고 기도를 바친 다음 성당으로 들어올 때 부르는 성가이기에 '입당 성가'라고 부른다. 사제는 제단에 오르기 전 제대 앞에서 깊은 절을 하는데, 입당 성가는 사제가 제대에 이르러 절을 할 때 거의 끝나야 한다. 시작 예식은 사제의 성호경으로 문을 연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기도문으로 성부ㆍ성자ㆍ성령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축복의 인사를 건넨다. 다음은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고백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사제는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하는 기도문을 바친다. '반성'의 의미는 죄를 알고 바꾸겠다는 결심이다. 신자들은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외친다. 하느님께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함에 있어, 나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제가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라는 전례적 사죄경을 바쳐 소죄가 사해지는 은총을 받게 된다. 사죄경은 고해성사 때에도 사제가 바치는데, 이를 성사적 사죄경이라 부르고, 대죄가 사해지는 효력이 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미하는 기도인 대영광송은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바치지 않는다. 사순시기는 주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시기이고, 대림시기는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말씀전례에서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지침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주보를 보거나 「매일미사」, 성경을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당당해야 한다. 충분한 연습을 통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읽어야 하며, 연극 대사처럼 감정을 넣거나 강약을 주어 미사 전례에 방해가 돼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신앙고백으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보다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보편교회는 미사의 공식 신앙고백문을 니케아 신경으로 정하고 있으나 1967년 주교 시노드 건의에 따라 지역교회 판단에 따른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도신경에서는 '믿는다'는 말이 6번이나 나온다. 시작예식에서는 나의 죄를 깨달아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고, 말씀전례에서는 성경 말씀을 새겨듣고 '나는 믿습니다'를 고백한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성찬례를 재현하는 거룩한 성찬전례에 참례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평화방송 TV '신앙의 재발견'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8시(본방송), 화요일 오후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4시, 일요일 오후 8시퇴사자22012.02.28

"14년 만에 얻은 늦둥이, 신앙으로 키워요"가톨릭출판사 제2회 독후감공모전 청소년 수상자 이지훈군 가족이지훈군과 부모가 진접성당 성모상 앞에서 상패와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수정 기자 지난 8월에 열렸던 가톨릭출판사 제2회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장. 6명의 수상자 가운데 유일한 청소년 수상자인 이지훈(토마스 아퀴나스, 중1, 의정부교구 진접본당)군이 장려상 수상소감을 말하려 단상에 서자 시상식장을 메운 어른들의 기특한 시선이 지훈군에게 쏠렸다. 지훈군은 떨리는 기색 없이 당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찬미 예수님!" 「꼬마 여우와 아기 예수」를 읽고 독후감을 쓴 지훈군은 "책을 읽고 부모님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서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성가정에서 자란 '바른 소년'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신앙으로 지훈군을 키웠을 부모와 그 가정이 궁금해 의정부 진접성당에서 지훈군과 부모를 만났다. 아빠 이주희(라우렌시오, 54)씨와 엄마 백경숙(율리안나, 55)씨에게 지훈군은 귀한 아들이었다. 첫째 딸(이경아, 보나, 28)을 낳은 뒤 14년 만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었다. 엄마 백씨가 몸이 약해 주변에선 더 이상 임신이 어렵다고 했지만 부부는 "자녀를 주시면 꼭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간절한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아이가 지훈이다. 부부는 자녀들에게 신앙 모범을 보이자며 그때부터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본당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빠 이씨는 미사 해설을, 엄마 백씨는 성서 100주간 말씀봉사자 대표를 맡았다. 또 지훈군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하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이 같은 저녁기도 시간은 지훈이네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가족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지훈군은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라도 하면 "기도하셔야죠"라며 저녁기도부터 챙길 정도가 됐다. 어린이 복사단에서 활동했을 땐, 새벽미사 복사 서는 날이면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곤 했다. 아빠 이씨는 "제가 미사 해설을 하고 아들이 제단 위에서 복사를 서는 날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훈군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럽다"면서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상금 50만 원도 어디에 쓸지 이미 계획을 끝냈다. 감사예물로 일부 내고, 성전건립기금으로도 봉헌하고, 가족 해외 성지순례 비용에도 보태기로 했다. 아들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빛엔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부부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아들이니 하느님 뜻대로 쓰시기를 기도할 뿐이다"고 했다. 지훈군은 "수학과 체육을 좋아한다"며 "야구선수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했다. 아직 꿈많은 14살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3.10.01
![[청소년 사목, 이렇게 해보자] (중간 결산) 재미·성취감 주는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을 교회로](//cpbc.co.kr/CMS/newspaper/2014/05/rc/510498_1.1_titleImage_1.jpg)
[청소년 사목, 이렇게 해보자] (중간 결산) 재미·성취감 주는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을 교회로자녀 신앙 교육에 대한 부모 교육이 우선돼야 청소년사목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교회 신자 수는 60% 가까이 늘어났지만 청소년 신자 수는 20% 넘게 감소했다. 숫자만 줄어든 게 아니다. 중고등학생 신자들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10%를 겨우 넘고,청년 신자 주일미사 참례율은 5~6%에 그치고 있다. 신앙이 식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 발길을 다시 교회로 이끌 수 있을까. 평화신문은 이 어려운 질문의 답을 찾고자 지난해 7월부터 ‘청소년사목 이렇게 해보자!’ 연재를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서울대교구 총대리 조규만 주교를 비롯해 청소년사목에 열정을 쏟고 있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21명에게 청소년 신앙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들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그들의 아이디어를 종합, 청소년사목이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엄마가 달라져야 청소년이 바뀐다최근 발표된 서울대교구 청소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서울대교구 중고등부 학생 신자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11.6%에 그치고 있다. 청소년 10명 중 1명만이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사목자들은 엄마가 바뀌어야 신앙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장 양장욱 신부는 “자신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에게는 신앙생활 의무를 제대로 강조하지 않는 엄마들 때문에 청소년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부가 아닌 신앙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무악재본당 청소년분과장 이혜숙(로사)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공부가 뒤처질까 걱정돼 성당에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나와 같은 실수를 하는 젊은 엄마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교회에서 엄마들에게 자녀가 왜 신앙을 가져야 하고, 성당에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23년째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권희진(서울 가락동본당)씨는 “시험 기간만 돌아오면 아이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성적보다 신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라며 “교회가 가정 신앙교육의 지침과 방향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맞춤형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만들자수원교구 청소년국장 이건복 신부는 “소속 본당에 관계없이 청소년들이 모여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청소년 거점 본당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신부는 “주임신부님들은 ‘청소년 신앙 활성화’라는 큰 목표를 생각하고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거점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부국장 이형기 신부는 “본당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본당에서 성공한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목자들이 청소년사목을 하며 겪은 시행착오와 보완책 등을 정리한 ‘청소년사목 레시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호빈(서울 하계동본당 보좌) 신부는 “교구에서 본당이 원하는 청소년사목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청소년 프로그램팀’을 운영한다면 본당 사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교리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정준교(스테파노) 위원은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를 다닌 학생과 늦게 세례를 받은 고학년 학생이 한 반에서 교리교육을 받는 게 주일학교 현실” 이라며 “학년별 교리교육을 폐지하고 학년에 상관없이 세례 시기에 따라 반이 구성되는 수준별 교리교육을 실시해보자”고 제안했다. 교리교육에도 체험학습을청소년들이 주일학교에 흥미를 못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일주일 내내 지겹도록 했던 공부(교리)를 성당에서 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주일까지 책상에 앉아 교리공부를 한다는 게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목자들은 교회가 지친 청소년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 담당 박범석 신부는 “공부 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성당에 와서 또 책상에 앉아 교리교육을 받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한 주는 교리교육을 하고 그다음 주는 배운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면 주일학교에 흥미를 느끼는 청소년이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장 용하진 신부는 “학생들이 교리와 복음을 ‘공부’로 여기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성경이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뿐”이라며 “재미있으면서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교회가 학생들에게 좋은 공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수(로사, 고2)양은 “미신자 친구들은 한두 번 성당에 놀러 왔다가 ‘재미가 없다’며 더는 오지 않는다”면서 “본당에서 신자가 아닌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캠프나 운동회, 동아리 등을 만들어 준다면 성당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아실, 꼭 필요할까대부분 성당 뒤편에는 유리벽으로 막힌 유아실이 있다. 유아실 안은 늘 시끌벅적하다. 부모와 유아가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지만 유아실에서 온전히 미사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유아의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아실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 담당 박종수 신부는 “현재 유아실은 배려가 아닌 격리의 공간”이라며 “유아실이 없어져야 더 많은 유아와 부모가 성당에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제와 신자들이 유아들을 신앙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기고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신부는 “단계적으로 적응 과정을 거치면 유아들도 충분히 미사에 함께할 수 있다”면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유아실에 아이들을 격리해 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성당에서 아예 아이들 소리를 못 듣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 신부는 지금 유아실로 사용하는 공간을 수유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방으로 꾸민다면 엄마들이 편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고 말했다.아기를 데리고 미사에 참례하는 엄마 생각은 어떨까. 두 명의 자녀를 둔 홍은정(마리아, 31)씨는 “미사 중에 아이가 소리를 내면 신자들이 눈치를 줘 부담스럽다”면서 “유아실이라는 공간마저 없다면 아기 엄마들은 성당에 올 생각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신자들이 유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언젠가는 엄마와 유아들도 성당 안에서 함께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0ㆍ40대 청장년들에게 관심을서울대교구 청소년 사목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청년(20~35세)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은 5.6%에 불과하다. 2013년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한 한국교회 전체 주일미사 참례율 21.2%의 1/4 수준이다. 부모 세대인 청년들이 교회를 등지면서 청소년들의 신앙도 자연스럽게 식어가고 있다.조규만(인터뷰 당시 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청소년사목 대상을 청소년뿐 아니라 청소년들 신앙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부모까지 확장해야 한다”면서 “청년들과 어울리기도 그렇고 장년층과 어울리기도 애매한 30ㆍ40대 신자들을 위한 사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건복 신부는 “청년과 청ㆍ장년을 구분해서 사목하면 호응을 얻을 것”이라며 “본당마다 청ㆍ장년부를 만들어 기혼자와 35~50세 신자는 ‘청ㆍ장년부’, 미혼인 35세 이하 청년은 기존 청년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담당 이태철 신부는 “청년들은 스스로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청년들의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했다. 평화신문2014.05.21
(2)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2)데이비드 린치 감독 '엘리펀트 맨'1. 영화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순간, 때로는 그것이 전례 분위기를 만들어내 하느님 은혜에 대한 성스러운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또 가지각색의 방법을 통해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느님 섭리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124분)이 그런 영화에 속한다. 관객은 이 영화를 접하는 순간 지나치게 순수하지만 극도로 고통스런 운명에 처한 한 인간의 수난극에 참여하게 된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성경 구절 시편 23편을 통해 슬프도록 아름다운 한 인간의 고뇌와 아픔뿐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경외감에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실존했던 엘리펀트 맨의 일생 다뤄 2. 19세기 영국 런던에 실존했던 무시무시한 기형아 엘리펀트 맨의 일생을 다룬 흑백 영화 '엘리펀트 맨'은 1890년 27살에 세상을 뜬 존 메릭(John Merrick)이라는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지?'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인간은 왜 그렇게 소중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하는 물음에 냉정하고도 철저하게 접근해 간다. '다발성신경섬유종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존 메릭은 어쩌면 역사상 그 누구보다 외양이 추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형인 그는 서커스단에 버려져 기형적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살아간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린 그에게 서커스 단장은 개에게 명령을 내리듯 "일어서!"하고 소리친다. 담요가 땅바닥에 떨어져 내리면 사람들은 '이제껏 본 중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상의 표본'을 넋 놓고 쳐다보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추한 모습의 그를 학대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끔찍한 공포감에 시달리는지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배려하지 않았다. 서커스 단장이 그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마치 쇼의 도입부를 장식하듯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코끼리에게 공격을 당해 '저런 아이'가 태어났다고 그럴 듯하게 소개하는 바람에 메릭은 '엘리펀트 맨'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메릭은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걸 피하려 늘 머리에 자루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를 사람이 아닌 기이한 동물로 여겼다. 우리에 가두고 때리고 동물처럼 사육하며 돈벌이 수단인 희귀동물로 여겼다. 그는 아무 감정도 없고 말도 못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그의 모습이, 사람들이 그에게 고통을 주고 놀려댈 때 그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떠한 반항이나 공격도 하지 않는 것이 그의 내면이 훌륭한 감수성으로 차 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유일하게 접근한 의사 트래비스는 말 못하는 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를 서커스단에서 탈출시켜 병원 격리 병동에 숨겨놓고 그에게 생명을 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병원은 모자라는 병상을 불치병 환자가 영구적으로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병원장은 트래비스에게 '엘리펀트 맨'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에게 말할 능력이나 사고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다시 서커스단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병원에 머물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의사 트래비스는 엘리펀트 맨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병원장에게 보여주자고 간청한다. 엘리펀트 맨이 처음으로 더듬거리면서 말을 하자 흥분한 의사는 성경 시편 23편의 첫 구절을 반복하게 하면서 인터뷰를 준비시킨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엘리펀트 맨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말해 달라는 병원장의 요구에 겁을 먹어 거의 기계적인 반복음에 가까운 몇 마디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망한 병원장은 마치 '동물에게 말을 시키려는 의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병실 밖으로 나온다. 뒤따라 나온 의사 트래비스도 앞으로 엘리펀트 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병원장과 상의하기 시작한다. 엘리펀트 맨에게는 '인간으로 이곳에서 사느냐, 아니면 다시 짐승이 되어 서커스단으로 되돌아가느냐'가 판가름 날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때 탁한 목소리에 온 힘이 실린 시편 23편 성경 구절이 병실 안에서 밖으로 울려 퍼진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하느님 자비의 노래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중략)…." 병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시편 23편을 들으면서 의사 트래비스는 자신이 가르치지 않은 부분까지도 엘리펀트 맨이 다 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확신에 차서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놀란 병원장과 트래비스는 다시 병실에 들어가게 되고, 엘리펀트 맨이 글을 읽을 줄 알고 깊은 사고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이 세상에서 성경과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지를, 그 중에서도 특히 23편이 너무나 아름다워 늘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는 세상, 자신을 늘 무례하게만 대하는 세상의 그 끔찍함 속에서 그에게 유일한 위안과 사랑을 주는 것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것이었음을, 그리고 또한 그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림 5]] 3. 영화 '엘리펀트 맨'은 오늘날 전례 때에 또 성가곡으로 자주 인용되는 시편 23편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게 해준다. 그렇다. 이 시편은 단순히 삶을 묵상하는 한 인간의 일반적인 믿음 고백이 아니다. 또 주변 환경이 좋을 때에 노래한 것도 아니다. 이 시편은 오히려 위기에 처한 한 인간의 부르짖음이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버릴지라도 하느님의 크신 보살핌은 계속되리라는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대한 고백이요, 벼랑 끝에 있을지라도 인간은 결코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고백이다. 절망 끝에서 오직 하느님만 희망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아나윔)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궁지에 몰린 그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바로 하느님의 측은지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예외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혼자가 되는 장례 때에 이 시편이 인용되고 또 여러 성가곡으로 불리는 이유를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이 시편의 의미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적절하게 제시하면서 아울러 이 시편을 영화의 전체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으로 인용하고 있다. '가장 추한 것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고 가장 절박한 상황, 벼랑 끝에 신의 자비와 은총이 있다'는 것을 시편 23편을 활용해 제시하면서 아울러 극적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관객은 시편 23편의 의미와 이 시편을 외면서 위안을 얻고 하느님을 찾는 엘리펀트 맨의 고귀한 인간성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예외 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그 핏줄과 출생의 비밀이 곧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면서 '인간의 숭고함'을 가득 담아내는 스크린에 압도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풍요로움에 깊이 젖어들게 된다. 인간의 숭고함 담아낸 스크린에 압도 4. '엘리펀트 맨'에 나오는 의사 트래비스는 자신의 친구가 된 엘리펀트 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다. "겉보기에 그는 추하고 혐오스럽다. 그러나 만일 그의 영혼을 사람 모습에 비유하자면 어떠할까? 훤칠한 키와 늠름한 풍채에 이마는 반듯하고 사지는 늘씬하며 두 눈은 굽힐 줄 모르는 용기로 번뜩일 것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비참한 삶을 한탄하거나 무정한 서커스단장에게서 받은 학대에 분개하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엘리펀트 맨을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괴물 같은 외형 속에 그토록 순결하고 온화한 영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암송한 시편 내용처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그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엄마의 사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펀트 맨은 자신이 만든 종이 모형의 성당을 침대 옆 창가에 두고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감사하며….이창훈2012.02.14

'어머니들의 기도' 모임을 아십니까1995년 영국에서 시작… 청소년 죽음의 문화에 '신앙의 힘'으로 맞서어머니들의 기도에 참석한 세검정본당 신자들이 작은 바구니에 자녀 이름을 적은 둥근 종이를 넣으며 기도하고 있다. 이힘 기자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한다면 그 아이 부모가 바르게 말하고 행동한 덕분이고, 말썽을 피우거나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면 역시 부모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따와 폭력으로 무너져가는 학교, 가정 해체와 사회의 무관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청소년 자살 증가율 1위 등 암울한 우리나라 현실은 혹시 부모 잘못 때문은 아닐까. 청소년과 가정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에 '신앙의 힘'으로 맞서고 있는 장한 어머니 모임이 있다. 영국에서 창설된 '어머니들의 기도'(Mothers Prayers)다. 이 모임은 1995년 11월 영국 가톨릭 신자 베로니카 윌리엄씨가 올케 산드라씨와 함께 만든 기도 단체. 자녀와 손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신자에게도 열린, 교파를 초월한 기도 모임이다. 어머니들의 기도는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100여 개국에 수만 명의 회원을 둔 국제적 사도직 단체로 성장했다. 창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공동창설자 산드라씨가 한밤중에 '너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여라!'하는 목소리에 깨어나는 경험을 두 번이나 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베로니카씨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처해 있는 위험에 관한 통계자료를 접하고 '해답은 오직 기도뿐'이라는 결론을 내려 산드라씨와 모임을 만든 것이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올해 1월 서울 세검정성당에서 뜻있는 어머니들이 기도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세검정을 비롯해 반포4동ㆍ압구정1동성당 등에서도 매주 기도모임이 열리고 있다. 혜화동에서는 개신교 신자들 기도모임도 있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한 벨기에대사 부인 최자현(마리아, 54)씨 공이 컸다. 해외에 거주하던 그는 2005년 이웃의 소개로 어머니들의 기도를 알게 된 뒤 꾸준히 모임에 참석해오다 1년여 전 영어와 불어로 돼 있던 기도책자를 한글로 번역해 귀국, 모임의 불씨를 지폈다. 어머니들의 기도는 테이블 위에 십자가와 촛불, 성경과 작은 바구니를 놓고 시작한다. 기도는 △준비를 위한 기도 △보호를 위한 기도 △용서의 기도 △그룹 안에서의 하나 되기를 위한 기도 △찬미의 노래 등 9단계로 진행된다. 기도 끝에 동그란 작은 종이에 자녀나 기도해주려는 이의 이름을 적어 작은 바구니에 봉헌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머니들 성향에 따라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찬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된다. 입대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류경림(바실리사, 47)씨는 "1월부터 기도모임에 참여해왔다. 오랜 기간 냉담했던 아들이 군에서 냉담을 풀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해왔는데, 주님께서 조금씩 응답을 주시는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아들과 가족,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0.15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 / 갈라진 형제교회들11세기 정교회ㆍ16세기 개신교 분리… 성공회도 개신교2011년 10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성공회 로완 대주교(왼쪽에서 두 번째), 정교회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세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종교 간 평화회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1월 18일~25일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이다. 일치는 분열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교는 첫 천년대 동안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몸이었다. 그러다가 11세기에 정교회가, 16세기에는 개신교가 갈라져 나왔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셈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해 형제교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교회는 일치주간을 정하고, 형제교회와 일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일치주간을 맞아 가톨릭의 형제교회인 정교회와 개신교의 면면을 살펴보자. ▨정교회 정교회는 1054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 전통과 전례를 지켜하고 있는 동방 교회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라는 뜻에서 정교회(正敎會)라고 부른다. 순수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그만큼 크다. 정교회 본거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터키에 의해 함락되자 정교회 중심은 러시아로 옮겨졌다. 러시아정교회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그리스(1830년), 루마니아(1925년), 알바니아(1937년) 등 나라의 정교회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국가별 정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즉, 가톨릭과 같은 단일 구조가 아니다. 정교회 교리는 가톨릭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성직이 주교ㆍ사제ㆍ부제로 나뉘는 것은 가톨릭과 같다.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가톨릭과 결정적인 차이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함께 성전(聖傳, Holy Tradition)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이 구약 49권과 신약 27권(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이뤄졌다는 점,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되 교의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르다. 한국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정교회 소속 신부가 주한 러시아공사관을 거점으로 선교하면서 출발했다.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한국정교회는 1975년 그리스정교회 소속 신부가 한국 선교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정교회 신자 수는 4000여 명이다. ▨개신교 16세기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분리됐다. 가톨릭에 대한 '항의자'(Protestant)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로도 불린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신학적 견해를 달리하는 교파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현재 500여 개 교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교파로는 장로교ㆍ감리교ㆍ침례교ㆍ성결교ㆍ루터교ㆍ구세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신자이자 의사인 알렌과 언더우드 목사 등이 황해도 송천에 교회를 세우고 의료와 선교 사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많이 다르다. 가톨릭은 성경과 더불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전통(성전)을 신앙의 원천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 받아들인다. 가톨릭이 성전에 근거를 두고 교의로 선포하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구약 가운데 제2경전을 제외한 39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 연옥교리도 인정하는 않는다. 개신교보다 가톨릭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성공회(聖公會)도 개신교에 속한다.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교황에게 혼인무효 소송을 냈으나 교황이 이를 거부하자 자신을 교회 수장(首長)으로 선포하면서 가톨릭과 별개로 세운 것이 성공회다. 성공회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인정하는 등 많은 점에서 가톨릭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제독신 의무도 없다. 성경은 개신교처럼 구약 39권, 신약 27권만을 인정한다. 대한성공회는 1889년 11월 조선교구 설립을 목적으로 고요한(Charles John Corfe, 영국) 신부가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서 주교품을 받는 것으로 시작됐다. 1993년 독립 관구로 승격한 대한성공회는 서울ㆍ대전ㆍ부산교구 등 3개 교구에 100여 개 교회와 5만여 명의 신자를 두고 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3.01.15
[사설] 정전 60주년에 부쳐 "주님, 이 어리석은 민족을 용서하소서! 수백 만 백성이 배를 곯고 있는데, 쌀밥 한 공기, 고깃국 한 그릇도 배불리 못 먹이면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핵무기를 실험하며 허공에 돈을 뿌리는 어리석은 무리를 용서하소서! 주님, 이 무심한 민족을 용서하소서! 한 핏줄, 한 민족 백성이 굶주림에 허덕이다 못해 철조망을 뛰어넘고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먼 나라 산하를 헤매다가 가진 것 다 팔고 몸까지 팔고 영혼이 산산조각 나는데 지척에서 소 닭 보듯, 나 몰라라 하는 이 무정한 무리를 용서하소서.…" 제주교구장이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지난 4월 7일 하느님의 자비주일에 신자들이 함께 기도해 달라며 청한 '이 땅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내용 중 한 부분이다. 강 주교의 우려와 탄식처럼 지금 한반도는 정전 60년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지수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 40년 만에 해방됐고, 50여 년 바빌론 유배 생활 끝에 귀향했건만 우리 민족은 한 땅덩어리에서 60년째 갈라져 있다. 역사 이래 이토록 불행한 민족의 비극이 끝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 주교단은 서로 간에 저지른 비인도적 잘못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참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진정한 참회가 있을 때 용서가 가능하고 용서가 선행될 때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기 위해선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 교회가 할 일은 민족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국민을 교육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가 없이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를 위한 최적의 자산을 갖고 있다. 바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다. 이곳에서 성체 앞에서 남북한이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그날까지 신앙인들이 솔선수범해 열심히 기도할 때 통일의 올바른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cpbc2013.07.30
![[복음 이야기]<4>헤로데의 아들들](//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17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헤로데의 아들들'구관이 명관?' 아버지보다 더한 폭정 헤로데와 그의 아들들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사치스런 호화생활을 누렸다. 사진은 예리코 헤로데 궁전에서 발굴된 대리석 수반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로데에게 선물한 것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제15년, 즉 서기 29년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요한 세례자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하면서 세례를 베풀었다.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가 활동할 때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안티파스)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있었다(루카 3,1)고 한다. 이 시기 팔레스티나의 정치 상황은 헤로데 임금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헤로데 후계자 가운데 홀로 왕국을 유지할 만한 특출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 간의 협력으로 그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로데의 아들과 그의 누이에게 유다 땅을 4쪽으로 나눠 다스리게 했다. 그래서 헤로데의 네 번째 부인인 사마리아 여인 말타케의 아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가 왕국의 중앙 부분인 이두매아와 유다와 사마리아를,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요르단 건너편 페레아 지역을 분할받았다. 또 이집트 여인 클레오파트라에게서 태어난 헤로데 필리포스가 갈릴래아 호수 건너 골란과 성경에서 바샨이라 불리는 바타네아 산악 지대와 북부 트랜스 요르단 일대를, 헤로데의 누이 살로메는 아스돗과 얌니아오 아스칼론 등 해안 도시를 상속받았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기원전 23~서기 18년)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는 기원전 4년 아버지 헤로데의 장례를 마친 후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에게 "왕의 칭호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이라고 밝히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이들은 세금 면제를, 또 다른 이는 헤로데 측근의 처벌을 요구했다. 아르켈라오스가 이 모든 요구를 거절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시리아 총독 바루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바루스는 로마군을 이끌고 와 폭동을 진압하고 유다인 2000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는 예리코에 있는 헤로데 궁전을 호화롭게 재건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하려고 세금을 무겁게 부과했다. 그러자 유다인의 폭동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노는 서기 6년 그를 면직시켜 오늘날 오스트리아 빈으로 추방하고, 그의 영토를 로마 속주로 귀속시켰다. 마태오 복음은 헤로데 임금의 유아 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던 요셉이 아기 예수와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으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해"(마태 2,21-23)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게 됐다고 마태오 복음은 전하고 있다.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20~서기 39년) 헤로데 안티파스가 상속받은 갈릴래아와 페레아 지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함락된 이후 이방인이 대거 이주해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라 불렸다. 유다 하스모네아 왕조 아리스토불루스 1세는 기원전 104년에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주거민을 강제로 할례를 시키고 유다인을 이주시켜 철저하게 율법을 따르는 경건한 지역으로 뿌리내리게 했다. 그는 형이 실권하자 자신도 권력을 잃을까 봐 갈릴래아 호수에 새 수도를 건설해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 '티베리아스'라고 불렀다. 아울러 페레아 베타람타를 재건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내 이름을 붙여 '리비아스'라고 했다. 또 예루살렘을 자주 방문하고 대사제 선정에도 관여하지 않는 등 신중하게 유다인의 눈치도 봤다. 그러나 그는 서기 28년 이복형인 헤로데 필리포스의 아내이자 조카인 헤로디아에게 매료돼 아내인 나바테아의 공주와 이혼하고 헤로디아와 재혼함으로써 여지껏 쌓아온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요한 세례자는 안티파스의 불륜을 공공연히 힐난하다 암만의 마케루스 요새에 투옥됐고, 그 유명한 연회 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요구로 참수됐다(마르 6,17-29; 마태 14,3-12; 루카 3,19-20). 이 사건이 빌미가 돼 로마의 눈 밖에 난 그는 칼리굴라 황제의 명으로 면직돼 지금의 프랑스 리옹으로 유배됐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복음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만나 보려 하는 장면'(루카 9,7-9; 마태 14,1-2; 마르 6,14-16),'예수님께서 그를 여우라고 단정짓는 내용'(루카 13,31-32), '빌라도 총독과 함께 예수님을 심문하는 대목'(루카 23, 6-12)에 등장하고 있다. 헤로데 필리포스(기원전 27~서기 33/34년) 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스의 이복형제인 헤로데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북부 산악 지역을 다스렸기에 팔레스티나의 정치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 현명하고 온순한 성품을 가진 그는 예술, 문학, 과학, 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요르단 강의 수원지를 밝혀내기도 했다. 그는 기원전 4년부터 서기 33/34년까지 자신의 영지를 통치했다. 그는 안티파스와 마찬가지로 친로마 정책을 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 율리아를 기념해 갈릴래아 벳사이다 근처에 도시를 건설해 '율리아스'라 불렀다. 또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마태 16,13-20; 마르 8,27-30; 루카 9,18-21)한 장소인 카이사리아 필리피도 그가 기원전 2년께 헤르몬 산 밑에 샘이 솟아오르는 곳에 세운 도시이다. 그가 죽자 그의 영지는 시리아에 합병됐다가 칼리굴라 황제가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에게 줬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1.21

"산 위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았다"[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8. 타보르산갈릴래아 호수 서쪽 이즈르엘 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보르산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거룩한 장소이다.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던 곳도, 밤새워 기도하시던 곳도 산이다. 또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곳도 산이다. 예수의 일생은 산과 참 많은 연관이 있다. 유혹을 받은 산, 복음을 선포하던 산, 기도를 드리던 산, 거룩한 변모의 산, 마지막 고뇌의 밤을 지새웠던 산, 십자가에 매달렸던 산,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20)고 선포했던 곳도 산이다. '예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에 나온다. "거룩한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동안 일어난 일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이다. 예수의 존재와 하느님의 서로 사무치는 내적인 교류가 더할 수 없이 순수한 빛이 되어 나타났다. 예수께서 빛에서 난 빛이신 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나누는 존재의 일치에서 비롯된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1권, 453쪽). 이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이 구원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이윽고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싸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소리가 울렸다. 곧 하느님의 현존을 제자들은 목격한 것이다. 이처럼 타보르산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과 예수의 신성을 눈으로 직접 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거룩한 장소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사건을 "산 위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았다"(「나자렛 예수」 1권, 463쪽)고 풀이했다. 타보르산은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서편에서 약 17㎞ 떨어진 이즈르엘 평원 북동쪽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타보르산은 갈릴래아 주변에 있는 산 중 가장 두드러진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가르멜산과 길보아산, 모레산, 므끼또,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기적을 베푼 나인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타보르산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여호수아가 12지파의 땅을 분배할 때 즈불룬과 이사카르, 납탈리 지파의 경계로 삼을 때다(여호 19,12-34). 또 판관 드보라와 그의 장수 바락이 야빈의 장수 시스라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에 타보르산이 언급된다(판관 4,1-16). 그 외 사무엘기 상권과 호세아서, 시편 등에 타보르산이 등장한다. 반면, 신약성경에서는 어디에도 타보르산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의 거룩한 변모와 관련해서도 다만 '높은 산'(마태 17,2; 마르 9,2) '산'(루카 9,28)이라고 간단히 적고 있다. 타보르산이 예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장소로 믿고 있는 것은 교회 전승에 의해서다. 교부 오르게네스와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오,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 등이 자기 저서에서 '타보르산이 예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신 산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공경하는 장소"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보르산에 예수의 거룩한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처음 지어진 때는 4세기 말쯤이다. 570년 한 순례자의 기행문에는 "타보르산 정상에 예수와 모세, 엘리야에게 봉헌된 3개 경당이 세워져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성당은 670년 이후 이슬람 군대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십자군이 이곳을 정복한 후 1099년 대성당과 부속 건물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 문화와 영성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113년 이슬람군이 이곳을 기습 공격해 수도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성당과 수도원을 파괴했다. 5차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폐허로 변한 타보르산은 목숨을 건 성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과 순례자들의 노력으로 17세기 이후에야 이곳에서 가톨릭 전례를 거행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성당 현재의 타보르산 대성당은 1919년 10월 짓기 시작해 1924년 완공됐다. 대성당 오른쪽에는 작은형제회 수도원과 마약 중독자 재활 공동체인 '몬도 엑스'가 있다. 이들은 성지관리와 순례자 숙소를 돕고 작은 성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종탑 아래에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된 경당이 있다. 이곳은 비잔틴 시대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한 경당이 있던 바로 그 자리다. 대성당 정면에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대성당 내부는 두 줄 기둥으로 삼등분 돼 있는데 중앙 제대 왼쪽은 성모 마리아께, 오른쪽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비잔틴 양식 주님 변모 경당 대성당 중앙에서 12계단을 내려가면 제대 바로 아래 동굴처럼 생긴 비잔틴 양식 주님 변모 경당이 나온다. 비잔틴과 십자군 시대 경당은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작은형제회는 새 성당을 지을 때 이 자리의 첫 성당을 기념해 비잔틴 양식으로 경당을 꾸미고 제대를 십자군 시대 잔해로 만들었다. 제대 주변은 예수 그리스도 생애를 성탄ㆍ성체성사ㆍ구원ㆍ부활의 신비로 조명한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모세ㆍ엘리야 경당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좌우로 모세와 엘리야 경당이 있다. 이 경당은 각 성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프레스코화로 꾸며놓았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평화방송여행사 협찬 / 02-2266-1591~2cpbc201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