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15>에드워드 스힐벡스(하)](//cpbc.co.kr/CMS/newspaper/2013/08/rc/470820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에드워드 스힐벡스(하)시대,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신앙 언어 필요 에드워드 스힐벡스의 신학적 견지는 개종을 주목적으로 했던 선교 방향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로 바꿔 놓았고, 인간 해방을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게 했다.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신학의 방법론과 논리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를 빛낸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인간 나자렛 예수를 성경을 통해 재발견하고 이를 교의신학의 기반으로 삼은 점은 신학에 중요한 업적이었을 뿐 아니라 영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경직돼 있던 교리(doctrine)를 중심으로 한 신학에 해석학을 적용하고, 인간이 주체적 존재로서 경험한 신앙체험과 하느님 계시와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 해방을 위한 구체적 실천 문제를 신학에 적용했다. 인간 고통과 소외 계층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신학적 고찰과 실천을 연결시키고, 구조적 악을 말한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깊은 공감대를 이뤘다. 그의 진보주의적인 사고로 보수주의자들에게 의혹을 받고 고통을 받았으나, 그는 끝까지 형제애를 잃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그는 회고록에서 교회에 속하고 도미니코회에 속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스힐벡스는 성경 두 구절이 항상 자신을 지탱했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 5,19-21). 이를 통해서 우리는 스힐벡스가 얼마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려 있으려 노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성령께서 자신의 신학 연구가 세상에 열린 연구가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한 희망적이고 자유롭고 건설적이게 했을 뿐 아니라, 동일한 근원이 교회를 비판하게 했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종교는 소중한 자산이지만, 인간을 조작하고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고문하는 비인간적인 것이 될 수도 있기에 인간을 방어하기 위해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다룬 여러 주제 중에서 한국 상황에 도움이 될 두 가지 주제를 한국 실정에 맞게 설명하고자 한다. 구원의 보편성 스힐벡스는 '그리스도교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이며, 가장 우수한 종교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종교에서 생각하는 종교개념을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유일성을 유지하면서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타종교와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근본적 신학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타종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만남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인식된다. 그리스도교 정체성은 하느님과 관계를 나자렛 예수의 특수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로 본다. 예수의 하느님은 예수의 특수한 역사를 통해 구원의 보편성을 역사 속에서 구체화한다. 예수의 특수성은 '열림'을 상징하며 이 특수성 안에 '갇힘'을 상징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긍정적 관계를 맺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이고, 모든 인간의 해방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보편성을 가지며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스힐벡스는 하느님 구원 행위를 종교 안에 한정시킬 수 없고, 구원 역사를 그리스도교 역사로 축소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인간 역사 전체는 이미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있고 인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을 '세상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바꿔서 이야기한다. '세상 밖에 구원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는 교회 역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서 인간 역사를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신학적 견지는 타종교에서 개종을 주목적으로 했던 선교 방향을 하느님 나라의 선포로 바꿔 놓게 하고, 인간 해방을 위해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각 상황에서 구체화할 때 보편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구체적으로 복음을 살 때 그리스도교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논지는 세계화 현상으로 여러 종교가 서로 만나고 섞이는 오늘날에 그리스도교 정체성과 유일성을 상대화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다고 본다. 오늘날 무엇이 문제인가 「크리스천 경험의 실천 : 교회」에서 스힐벡스는 서구인들에게 왜 하느님이 문제가 되는지를 교회의 외부적, 내부적 요인으로 구분해 분석하는데, 이를 우리 실정에 맞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외부 요소로서 사회구조의 변화와 현대인의 인격구조 변화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삶이 거의 미리 계획된 것이었고 획일적이었다. 예를 들면 농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아버지 뒤를 이어 농부로 살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 사회구조 자체가 다양성과 상이성을 지향하는 사회로 변화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구조의 변화는 현대인의 인격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열려 있으며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관한 문제, 즉 신앙 측면에서도 그러한 성향을 보인다. 현대 서구인들은 이렇게 변화된 사회에서 변화된 인격구조를 가지고 태어나서 자라기 때문에 과거처럼 교회에 소속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즉 과거에는 신자로 태어나서 신자로 죽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가 신앙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었기에 스스로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회 내부 요소 중 하나로 그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문제를 다룬다.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용어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용어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현대인에게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를 그리스도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인식이 부족해 야기된 문제로 본다. 예를 들어 '주님'이라는 용어는 가부장적 문화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다양성과 평등성을 추구하는 서구 현대인에게는 억압을 상징하는 언어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는 신앙은 맹신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적이어야 근본주의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고백하는 교회 전통적 교의를 글자 그대로 암기하는 식의 신앙이 아닌, 현대인에게 맞는 언어로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신앙 언어 창출의 필요성은 세속화 현상으로 위기에 처한 서구교회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려 썼다. 언어는 문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교회 용어는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용어임을 생각할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 전통문화는 여러 다른 외부의 문화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혼합돼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기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어떻게 현대인에게 걸맞은 언어를 창출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 현대인들, 특히 사이버 공간과 친밀한 젊은층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문화와 신앙과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구체적인 문화를 통해 신앙을 수용하고 형성하며 구체적으로 생활하고 실천하고 전달한다. 신앙은 인간 문화를 매개체로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문화는 늘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언어 또한 고정적일 수 없다. 신앙의 새로운 언어 창출을 위해서는 교회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대 상황의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자신을 숨기시는 하느님 스힐벡스는 자신의 회고록 마지막 부분에 자신에게 의미를 준 성경구절을 엮어 하나의 시편을 만들었다. 이 시편을 보면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볼 수 있다. 그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시지만 또한 자신을 숨기는 하느님이시기에(예레 23,23) 계속 그분을 찾아 나서야 함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하느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라고 물으시는 하느님이시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가 알아보아야 할 징표는 어떠한 것인가.김미정 수녀(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파리 예수회대 교수) cpbc2013.08.27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승천하신 예수의 생애 마지막 사건 현장[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5.올리브산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푸른 올리브나무'(예레 11,16)라 했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올리브나무에 비유하며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자랑했다(시편 52,10). 사진은 겟세마니 성당 정원에 있는 올리브나무.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사도 1,12 참고-유다 율법은 안식일에 1km 이상 걷지 못함). 구약 시대 때부터 이 산을 히브리 말로 '하르 하 자이팀'(올리브산)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예부터 이곳에 올리브나무가 무성했음을 알 수 있다. 올리브산은 신ㆍ구약의 역사가 얽힌 곳이다. 다윗은 압살롬 반역을 피해 도망가던 길에 이곳을 지나갔고(2사무 15,30-32),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여기에다 모압의 우상 크모스와 암몬인의 우상 몰록을 위해 산당을 지었다(1사무 11,7). 이후 유다 임금 요시야는 올리브 산의 이 산당들을 허물고(2열왕 23,13-14)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 예언자 즈카르야는 '주님의 날'에 올리브 산에서 벌어질 일(즈카 14,4)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신약성경에서 올리브산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 이곳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루카 19, 29),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하셨다(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에 올리브산에 올라가 쉬셨고(루카 22, 37-38), 최후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하느님께 기도한 후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31-53; 요한 13,36-38;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선언 이후 올리브 산에는 4세기 중엽부터 성당들이 지어졌는데 대표적인 4대 성당이 겟세마니 성당과 주님 눈물 성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승천 경당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7.23
![[복음 이야기]<5>유다 총독](//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69_1.1_titleImage_1.jpg)
[복음 이야기]유다 총독유다인 경멸하면서도 두려워한 빌라도 총독 로마 제국 유다 총독의 주요 임무는 질서유지와 세금(공물)징수,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형사재판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로마 성계단 성당에 있는 빌라도에게 신문받고 있는 예수님 상. 리길재 기자헤로데 아르켈라오스의 폭정에 견디다 못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로마 황제에게 대표단을 보내 영주를 몰아내고 총독을 보내주면, 대사제 임명권을 상징하는 예복을 맡기겠다고 협상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유다와 이두매아, 사마리아의 영주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기원전 23~서기 18년, 재위 기원전 4~서기 6년)를 면직 추방하고 그의 영토를 '총독 속주'로 개편했다. 로마 황제는 제국을 이탈리아 본토와 3종류의 속주, 봉신 왕들의 왕국 영토로 나눠 통치했다. 속주는 황제 속주와 원로원 속주, 행정장관 속주로 구분됐다. 황제 속주는 말 그대로 황제에게 속한 땅으로 법무관이 '속주장관'으로 황제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원로원 속주는 원로원에 속한 영토로 집정관이 '총독'으로 다스렸다. 또 행정장관 속주는 최근에 정복했거나 통치가 어려운 지역을 행정 장관이 다스리는 영토를 말한다. 유다는 행정장관 속주였다. 행정장관은 원로원 의원급에서 임명되지 않고 주로 군인 계급에서 선임됐다. 행정장관의 주요 임무는 △질서유지 △세금(공물)징수 △'칼의 권리' 즉 사형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 형사재판의 전권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편의상 행정장관도 속주 총독으로 불렸다. 유다 행정장관(총독) 초대 로마의 유다 행정장관 즉 총독은 서기 6년에 부임한 코포니우스였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날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약속대로 그에게 대사제 예복을 맡겼다. 유다 총독은 시리아 총독에게 종속됐다. 코포니우스가 초대 유다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시리아 총독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였다. 바로 루카 복음 2장 2절에 나오는 인물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서 로마식 인구 조사를 두 차례 실시한 장본인이다. 퀴리니우스 시리아 총독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주석 성경」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퀴리니우스는 시리아 총독으로서 마태오 복음 2장 19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뒤(루카 1,5 참조), 헤로데 임금이 죽은 지 10년 뒤인 기원 후 6년에 팔레스티나에서 호적 등록 또는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기원전 12년부터 근동의 로마 통치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가 실제로는 헤로데가 죽기 전에 이미 호적 등록을 시작하였는지, 루카가 나중에 실행된 호적 등록을 앞당겨 이야기하는지, 현재의 자료로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여튼 퀴리니우스 시리아 총독 시절에 초대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코포니우스의 첫 활동은 인구 조사에 반발하는 유다인들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그의 재임(서기 6~9년) 시절에 사마리아인들이 무교절에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 사람 뼈를 뿌려 더럽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돌이킬 수 없는 원수 관계가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시리아 총독과 함께 한나스를 대사제로 내세우고 최고회의를 재정비하게 했다. 본시오 빌라도 예수님 시대 유다 총독은 본시오 빌라도(재임 26~36년)였다. '창으로 무장한 자'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빌라도는 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군기와 당시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상을 예루살렘에 들여오려 했다가 병사를 동원해도 물러서지 않는 유다인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철회하고 대신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금방패를 자신의 관저인 카이사리아 헤로데 궁전에 들여놓았다. 그는 또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건설 자금으로 예루살렘 성전 금고에 있는 은을 강탈했다가 유다인의 폭동을 유발했다. 그는 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유다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을 군중 속에 잠입시켜 닥치는 대로 살육케 했다. 또 한 번은 성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했다(루카 13,1). 요한 복음서는 빌라도를, 바른 일을 하려고는 하지만 로마의 평판에 신경을 쓰고 유다인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두려워한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자로 그리고 있다. 빌라도의 이러한 성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재판 과정이다. 예수님의 죄목을 찾지 못한 그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으나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요한 19,12)라는 유다인의 외침에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다. 빌라도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결국 실각했다. 36년께 한 예언자가 사마리아에 나타나 그라짐 산봉우리에 묻혀 있는 모세의 장막과 거룩한 기물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군중들이 이를 보기 위해 그라짐 산에 몰려들었다. 폭동을 우려한 빌라도는 군대를 보내 산정을 점거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마리아인 학살이 자행됐다. 이에 시리아 총독인 루키우스 비텔리우스는 '사마리아인 학살을 명령했다'는 이유로 빌라도를 파면하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는 빌라도에게 추방 후 자살을 명했다. 빌라도 실각 후 유다 총독제는 30년간 지속됐으나 37~44년까지 팔레스티나의 행정권은 헤로데 임금 때처럼 다시 속령의 군주에게 위임됐다. 이 유다의 마지막 왕이 헤로데 아그리파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 사도를 감금했던 인물이다(사도 12,1-3).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4.02.04
![[가톨릭 신앙의 보물]<10>교황직의 역사와 직무(상) -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cpbc.co.kr/CMS/newspaper/2014/02/rc/495084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교황직의 역사와 직무(상) - 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시도들의 으뜸 베드로, 지상의 대리자로 세워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평화의 사도로 기억된다. 그분의 관심과 애정에 힘입어 한국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교황직의 역사, 직무와 함께 교황직에 대한 오해에 대해 살펴보자. 교황직의 역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12사도를 뽑았다. '12'라는 숫자는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교회 안에서 세우신다는 것이 드러난다. 교회의 주춧돌로서 12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교회의 시작이 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교회의 규범을 정하며 교회를 이끌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이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후대에 가장 충실히 전한 증인들이다. 이들은 세상 각지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며 그 가르침이 계속되도록 후계자를 세웠는데 이들이 주교다. 교회가 세상에 퍼져 나가고 수많은 교회와 주교들이 생겨났다. 베드로의 제자인 마르코가 세운 알렉산드리아교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던 안티오키아교회, 교회가 시작됐던 예루살렘교회,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활동하고 순교했던 로마교회다. 이 네 교회가 중심이 돼 세계 교회를 이끌었고 후에 안드레아 사도가 세웠다는 콘스탄티노폴리스교회가 더해져 다섯 개의 총대주교좌를 이룬다. 주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다스렸지만, 사도단의 전통에 따라 교회 안에 문제가 있을 때 모여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 주교들의 회의를 '공의회'라 부른다. 그들 중에서 12사도가 세운 교회와 그 후계자들은 특별한 권위와 영예를 누렸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곳보다 충실히 전해 내려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위치는 특별했다. 로마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사도로 뽑으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다. 그들 가운데 높고 낮음도 없었지만,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12사도 중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제자의 명단에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가 베드로이고,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을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이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와 겟세마니 동산에도 데리고 가셨던 이도 베드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후에 당신의 양 떼를 맡기신 이도 베드로다.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라는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하느님 나라 열쇠를 주시며 지상의 대리자로 세웠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했지만 마지막에 로마에서 순교했다. 베드로는 당시 공동묘지였던 바티칸 언덕에 묻혔는데 박해가 끝나자 그 무덤 위에 베드로성당이 세워졌다. 그것이 오늘날 교황이 있는 바티칸시국의 토대가 됐다.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들은 그의 신앙을 이어받아 교회를 이끌고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했다. 다른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이 됐고 애덕활동에도 모범이 됐다. 특히 로마의 황제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간 이후에 로마의 주교는 백성에게 사목자이자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구하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 서방에서 로마 주교의 위치가 중요성을 더해 갔다. 레오 대교황이나 그레고리오 대교황 등 여러 로마 주교들의 뛰어난 업적을 통해 로마 교회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어머니 교회 역할을 했다. 교황은 라틴말로 '파파'(Papa)라고 하는데 이는 아버지, 혹은 주교를 뜻하며, 4세기 이래 로마 주교의 호칭으로 자리 잡았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사도단의 후계자인 전 세계 주교단의 으뜸으로서 공의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에 들어 교회가 국가의 간섭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누가 주교가 될 것인가를 비롯해 교회 운영에 국가가 간섭했는데, 이에 맞서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교회 개혁으로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 권력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오히려 세속을 지배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서방교회의 중심이었던 로마 교황까지도 때로는 세속 권력 다툼에 휩쓸렸다. 교황이 동시에 세 명이 나와 서로 파문했던 서방교회의 대분열 등은 교황사의 어두운 부분이다. 교회 내적으로 보았을 때 더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분열이다. 오랜 친교를 맺어왔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졌고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하나였던 서방교회마저도 개신교, 성공회, 천주교로 갈라졌다. 로마 주교인 교황은 전체 교회 신앙의 보루로서 신앙의 형제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교황직이 전 세계의 목자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비오 6세 교황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로 끌려간 교황이 수모를 당하며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베드로부터 전해진 교황직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신자들은 교황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대한 가르침이 확립됐고 교황직은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신앙의 문제에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뚜렷이 전하며 명실공히 세계 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2.04

약국 찾아온 노숙인에게 밥해주는 약사이정자씨, 20년간 남편 재활 도우며 미혼모시설, 아프리카 선교 등 후원 20년째 반신마비 남편을 돌보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이정자씨가 자신의 약국에서 쑥쓰러운 듯이 웃고 있다. 이힘 기자20년 전 교통사고로 반신마비가 된 남편(김병욱, 66)을 지금까지 묵묵히 병구완하면서 얼마 전부터는 주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선행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약국을 찾아온 행려인을 위해 밥을 지어 먹이는가 하면, 매달 여러 미혼모시설에 성금을 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성당에 모금하러 찾아온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선교사인 외국인 수사에게 "아프리카를 돕는 것이 평생 과업이었다"며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거액의 성금을 전하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 수빈 온누리약국 대표약사 이정자(프란치스카, 60, 서울 성내동본당)씨 이야기다. 이씨는 "우리 약국에 약을 사러 오는 손님 중에도 끼니를 굶는 분이 계시다"며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떠올라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약국 한쪽에 있는 창고에는 각종 약 상자뿐 아니라 고구마와 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줄 겨울 외투 등이 쌓여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자 창고에 아예 먹을거리를 채워놓은 것이다. "거의 매일 1년 넘게 찾아오는 노숙인이 있어요. 마흔 살은 돼 보이는 데 항상 16살이라고 대답해요. 어느 날 약국 청소를 하고 싶다며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더라고요. 그러면서 '누나는 내 희망이에요'라고 말하더군요. 코끝이 찡했어요. 어려운 이웃이 작은 도움으로 삶의 희망을 얻는 것처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요." 이씨는 요즘 "사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나눔이 가져다 준 은총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이들마다 그를 '잘 웃는 약사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은행 직원이 "참 잘 웃으시네요"라고 하기에 그는 "성당에 다녀보세요. 그럼 웃을 일이 많아질 거예요"라며 교회로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 지냈다. 고통은 20년 전에 시작됐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의식도 없이 응급실에 실려온 남편은 살 확률이 10%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다. 매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성심기도원을 찾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남편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하지만 삶은 버겁기만 했다. 오전에는 반신불구가 된 남편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는 약국에서 일하는 고된 삶이 이어졌다. 밤낮으로 이를 악물고 일했지만, 2000년께 지인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되면서 형편은 더 나빠졌다. 고통 속에서 기도에 매달리면서 그는 하느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됐다. "1982년 영세한 후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했는데, 하느님께서는 갖은 어려움이라는 '고통의 신비'로 당신 품으로 다시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이씨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제 죄를 씻는다고 생각해요. 의약분업 이전 저는 참 많이 낙태약을 처방했지요.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한 저는 죄인입니다. 기도원에 가는 것도 태어나지 못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예요." 그는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선택하셨다고 여긴다. 그래선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에페소서 2장 10절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1.19

(1) 영화가 성경을 인용할 때(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1이번 호부터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을 격주로 연재한다. 대표적 대중문화인 영화 속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표출되는 복음 메시지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또 그 메시지들이 수행하는 역할과 제시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봄으로써 영화와 그리스도교 영성의 접목 혹은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획이다. 서석희 신부는 전주교구 소속으로 교구 홍보국장을 지내고 현재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영상예술)에 수학 중이다. 성경 속 예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흑인 죄수들성경을 통째로 인용흑인 죄수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하는예수 그리스도 장엄함 흑백삽화로 표현1.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화를 볼 때 성경이나 성경구절이 나오면 '왜 하필이면 그 시점, 그 지점에서 인용되는가?'하는 측면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성경구절 인용은 대부분, 단순한 의미로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거나, 부분적으로 영화의 시퀀스나 장면 안에서 뭔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인용된다. 때로 영화를 코믹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성경 내용을 변형시키기도 하지만,-케빈 스미스 감독의 '도그마'(Dogma, 1999)-그런 내용마저도 영화의 전체 이야기 구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 속 성경구절의 역할과 비중, 곧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그 성경구절이 어떤 역할을 하고 영화 주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미스타드'(Amistad, 1997, 155분)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가 소재 2. 영화 '아미스타드'는 1839년의 실화를 근간으로 흑인 노예의 인권과 자유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쿠바로 끌려와 다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팔려 '화물'로 실려가던 흑인 52명이 반란을 성공시킨다. 반란 주모자인 싱케이를 비롯한 흑인들은 고향으로 가려 했지만, 살아남은 백인 2명의 계략으로 미국 법정에 살인 혐의로 서게 된다. 이들로 인해 미국법정은 노예제 존폐를 둘러싼 토론장이 된다. 난생 처음 배운 영어로 외친 "기브 어스 프리"(Give Us Free)는 결국 좌절되고, 그들은 감옥으로 돌아가 다시 판결을 기다린다. 그들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그들과는 무관한 노예 문제를 둘러싼 미국역사의 갈등 지점에 서게 됐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흑인 모두가 노예인 것이 아니라 자유인도 있었다. 또 스페인과는 다르게 영국이나 미국은 노예제를 점차적으로 완전히 폐지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이런 가운데 미국은 북부와 남부가 첨예하게 대립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미스타드호의 반란과 흑인들 문제는 그들을 '화물'이나 '노예'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인'으로 취급할 것인가에 대한 공방으로 치달았다. 이는 곧 북부와 남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싱케이와 잠바 일행은 백인 모두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갇힌 감옥 앞으로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몰려와 기도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 눈에는 '주문을 외는 것'처럼 보였다. 십자가를 들고 가스펠송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싱케이 일행에게는 '슬픈 광대들'로 여겨졌다. 어느 날 이들 일행은 감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슬픈 광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잠바는 그들에게서 성경책을 받게 된다. 중간 중간에 삽화가 그려진 성경책이었다. 물론 아프리카인인 잠바가 영어 성경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경의 주요 장면을 그린 몇 개의 삽화를 보는 것뿐이다. 잠바와 동료들은 성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끼워 맞춰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처음 그림은 유다인들이 사자들에게 던져진 장면이다. 그러자 책을 들고 있는 잠바가 설명한다. ①"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어…. 고난투성이 삶이야."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자 아기 예수가 마리아, 요셉, 목자들에게 둘러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잠바가 또 설명한다. ②"근데 그때 이 아기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던 모양이야." 옆에 있던 동료가 묻는다. "이 아기는 누군데?" 그러자 잠바는 책장을 넘겨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그림을 펼쳐 보이고는, 예수님 머리 위에 있는 후광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③"나도 몰라. 하지만 이 사람이 가는 곳마다 해가 따라다녀." 성경 속 삽화 통해 힘과 용기 얻어 다음 그림은 예수님이 병들어 아픈 듯한 사람들을 만져주는 장면. ④"여기 이 사람이 손으로 사람들을 고쳐주고 있어."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려는 무리들 사이에 서 계신 장면이 나오자, ⑤"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어…"하며 또 넘긴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축복해주는 장면이 나오자, ⑥"아이들도 따스하게 받아주고…." 그들은 삽화를 보며 계속 이야기한다. ⑦"이 사람은 바다 위로도 걸어 다닐 수 있어. 그런데 사건이 터졌어. 이 사람이 잡힌 거야. 뭔가 죄목을 쓰고." ⑧"봐, 여기 이렇게 손이 묶여 있잖아." "뭔가 사고를 쳤나 봐." 그들은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장면을 본다. 옆에 있던 동료 싱케이는 ⑨"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잠바." 하고 돌아서려 한다. 그러자 잠바가 다시 말한다. "하지만, 봐, 이게 끝이 아니야." 둘은 다음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다. ⑩"사람들이 시체를 내렸어…. 그리고 동굴에 넣었어. 우리가 하는 식으로 천으로 싸서." 다음 그림에서는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와 함께 계시는 장면에서 ⑪"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난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지. ⑫그러다 결국은 하늘로 올라갔어."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영혼도 거기로 가는 거야.” 그리고 이들은 맨 마지막으로 ⑬세 개의 빈 십자가가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멎는다. 그들은 자기들을 고국에서 여기까지 데려온 세 척의 빈 배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돛을 응시한다. 마치 세 개의 십자가를 연상하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 힘든 순간에 알 수 없는 "그(=예수)"에 대해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 이들이 성경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이들을 판결할 재판관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두 장면이 하나로 이어지고 교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옥에 비치는 빛이 어우러지면서 희망이 감돌고 있다. 3. 영화에서 십자가 세 개와 배 세 척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성경을 통째로 인용하고 있다. 아울러 이 영화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며 성경 속 예수님과 '같은 처지'임을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을 구약성경 탈출기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결부시킨다. 또 '부유한 자를 내치시고 가난한 이들을 들어 올리시는'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의 의미와 결부시킨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적 삶과 고난에서 예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장면은 나아가 예수님이 그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음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며 관객들도 뜻 모를 경외감과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흑인 죄수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함과 엄숙함이 흑백 삽화에 배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하느님 메시지 듣는 기회 4. 성경을 인용하는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 '아미스타드'를 통해 인용된 성경구절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 의미를 획득하는가를 살펴보았다.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이란 말이 있다.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히고 만다'는 뜻이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그렇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의미를 얻게 되면, 그것은 깊은 묵상이나 삶의 차원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논리적 차원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성경이 인용될 때 우리는 유심히 눈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영화 속에서 하느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영화 속 성경구절에 주목해서 영화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창훈2012.01.31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124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마태 3,13-17)조재형 신부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예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자매님께서 천주교회를 다니는 언니와 함께 성지순례를 왔습니다. 기도 생활도 잘하고,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는 전형적인 열심한 개신교회 신자였습니다. 언니는 동생 못지않게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성물판매소를 하고 있으며, 신앙생활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하는데 동생은 영성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하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동굴에서 예수님 그림을 보고 그 동생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언니가 조용히 이야길 합니다. 동생이 세례 받기를 원하는데 주면 어떨까요? 순간 생각했습니다. 저 열심한 개신교 신자가 지금 마음이 흔들릴 때 세례를 주고 천주교로 확 끌어들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돌아가 본당에 가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그 동생은 정말 열심히 교리를 배웠고 성탄 무렵에 헬레나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언니에 뒤지지 않는 열심한 신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천주교로 개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한국이름 이외에 서양이름이 있는데 자기도 그런 서양이름을 갖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긴 가브리엘, 베드로, 젬마, 헬레나, 루카 이런 이름이 있다는 것이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례가 단순히 새로운 이름 하나 더 얻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세례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보았던 신문의 기사 내용이 생각납니다. 중국에서는 장군들이 매년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낸다는 기사였습니다. 장군들은 군 생활을 오래했지만 장군이 되면서 병사들과는 많이 떨어져서 지내게 되고 그래서 병사들 고충이 무엇인지, 병사들 분위기가 어떠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장군들은 매년 며칠씩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하고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병사들과 일체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체험이 장군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고 있으며 병사들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장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장군들도 그런 체험을 할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특권층'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런 특권층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특혜를 받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이야말로 '특권층 중에 특권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몸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과 권한이 있지만 섬기려는 삶을 사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세례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특혜를 받고 섬김을 받고 그래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않는 삶,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않은 삶이었으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이었습니다.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인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 권리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세례'가 곧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례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는 이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례 받은 신앙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 첫째, 바른 인생길을 가야 합니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고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해야 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를 풀어주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러면서 오늘 요한 세례자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모든 영광과 기쁨은 하느님께로 돌리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께서는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받아주시듯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백영민2014.01.07
![[평화칼럼]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cpbc.co.kr/CMS/newspaper/2013/10/rc/480628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박군수 미카엘(평화방송 라디오국장) LP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음반 위에 바늘을 얹고 첫 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의 설렘. 턴테이블 위 음반이 마치 클래식 선율처럼 유장하게 돌아가던 모습.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음반 목록인 '족보'라는 것이 있었고, 명반으로 회자되는 것들을 몇 장이나 가지고 있느냐가 고수를 가리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시절, 음반회사에 갓 입사한 직원의 경험담이다. 점심시간에 사무실로 자장면이 배달됐다. 곧바로 "깔아, 깔아" 하는 선배 목소리가 들렸다. '뭘 깔라는 거지?'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선배는 음반 몇 장을 테이블 위에 깔았다. '아니, 저 명반을 자장면 받침으로 깔다니….' 그러나 해 본 사람은 안다. LP 음반이 중국음식 받침으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라디오 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한때 전화 신앙상담이 인기를 끌었다. 요리문답 수준에서부터 깊이 있는 성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전화를 받고 방송으로 연결하는 피디는 목이 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이 질문에 답변을 못하면 어쩌나? 어느날 연세 지긋하신 자매님이 전화를 하셨다.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피디의 채근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저, 평화신문을 어떻게 할까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매님은 평화신문 독자였다. 매주 배달되는 신문을 읽고 또 읽으며 차곡차곡 모아왔는데 오래도록 쌓이다 보니 집안에 둘 곳이 마땅찮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고, 교황님 사진이며 존경하는 추기경님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는 신문을 분리 수거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평화신문을 마치 성물처럼 귀하게 여기는 자매님의 '고민'을 들으며 목이 메었다. 우리가 이렇게 소중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반성도 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곧바로 자매님의 '고민'을 방송에 연결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피디의 고민이 밀려왔다. 신부님이 이 '고민'에 어떻게 답변을 할지, 더구나 생방송인데…. 신부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네, 자매님! 걱정하지 마시구요, 본당 사무실에 가져다주세요." 평화방송 라디오가 가을을 맞아 프로그램 단장을 새롭게 했다. 아침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1시간 생방송을 통해 청취자를 만난다. 마음이 설렌다. 개편 프로그램을 방송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몇몇 프로그램은 벌써 청취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세상의 아픔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기도로 위안 받는 시간인 '기도의 오솔길'에 잔잔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작한 개편 준비는 평화방송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일로 출발했다. 10년 전인 2003년 청취율 자료와 2013년 조사결과를 검토했다. 두 자료를 비교해 보니 그 10년 간 라디오 청취층에 변화가 있었고 선호 프로그램도 달라져 있었다. 재미와 편안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인터넷이나 앱을 통해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비율이 20%를 넘었다. 8월에는 라디오 가족들이 워크숍을 갖고 열띤 논의와 토론을 통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지혜를 모았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평화방송이 교회의 신뢰 속에 신자와 청취자의 사랑을 받는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명도 새겼다. 복음의 발원지! 평화방송의 본분을 다하면서 청취율도 올리려는 이번 개편에 많은 분들이 격려를 보내주셨다. "평화방송 살아 있네!" 오래 전 신앙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주셨던 자매님의 지극한 마음을 생각한다. cpbc2013.10.29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83>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2)](//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92_1.1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사회교리-그리스도인의 삶(2)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가톨릭교회 교리서」(1992년)는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신앙고백', '그리스도 신비의 거행'(성사),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그것이다. 신앙고백도 성사도 기도도 우리 교우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다. 그 내용의 복잡성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삶이란 말도 사실은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 말 '사람'은 '살다'의 이름씨인 '삶'과 '알다'의 이름씨인 '앎'이 결합된 말이라고 배웠다.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러니까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을 아는 것'쯤으로 풀 수 있다. 그리스도처럼 사는 길이 무엇인가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간 존엄성, 인류 공동체, 하느님의 구원-법과 은총, 십계명으로 나눠서 풀이하고 있다. 교리서는 인간 존엄성에서 그 근거와 인권(인간의 기본적 권리들과 모든 권리의 원천이며 목적이 되는 생명권)과 국가의 의무를 가르친다. 인류 공동체에서는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재화(혹은 재화사용)의 보편 목적,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을 가르친다. 십계명 부문에서도 흔히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단순한 종교적 계명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군 복무를 공동체에의 봉사로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대체복무제와 국가의 의무를 가르치고 있다. '거짓증언 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대중매체와 관련한 교리가 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에서는 국가의 가정에 대한 의무에 대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다. 이를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이 현실에서(가정ㆍ문화ㆍ경제ㆍ정치ㆍ생태ㆍ평화ㆍ국제질서ㆍ법과 제도) 무엇을 실천하며 살아야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인지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교리서가 이렇게 현실의 문제를 교리로 제시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바로 세상 안에서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체험하고 있으며, 교회는 마땅히 하느님 백성과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으로 인간다운 세상 만들어야 얼마 전 폐막한 '신앙의 해'는 앞에서 소개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출간 20년뿐만 아니라, 이 새 교리서의 배경이 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 개막 50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이 공의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헌은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사목헌장」의 구성과 내용을 거의 고스란히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과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제3편, 교황 및 주교들의 가르침,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역사적 공동체적 체험 가운데 이른바 '현실' 혹은 '세상'과 관련한 것들을 정리한 「간추린 사회교리」를 교회는 2004년에 내놓게 된다. 가톨릭 신앙인뿐만 아니라 교우가 아닌 분들은 가톨릭교회가 '세상' 혹은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토록 깊은 관심이 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꽤나 생소할 것이다. 사람들은 물론 가톨릭 신앙인조차 이를 개입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다음과 같이 인간에 대한 봉사라고 밝힌다. 교회는 인류가 직면한 "고뇌에 찬 문제들에 대하여 인류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그 문제들을 복음에서 이끌어 낸 빛으로 비추어 주고(…) 구원의 힘을 인류에게 풍부히 제공함으로써, 하느님 백성(교회)이 들어 있는 온 인류 가족에 대한 연대와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사목헌장」 3항). 좀 더 구체적으로 교회는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이끌어야 할 원리들(인간 존엄함과 인권,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보조성, 참여, 연대)과 더불어 근본적인 가치들도 제시한다. 이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로 교회는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을 꼽는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휩쓸려 거짓과 억압, 불의와 미움이 판을 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이성과 지성과 양심은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을 실현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래서 교회는 이 가치들을 "경제, 정치, 문화, 기술의 본질적 개혁과 필요한 제도 개혁을 이루도록 부름 받은 공권력의 필수적인 준거"로 제시하며, 더 나아가 "사람들이 내린 여러 가지 결정들 안에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는지 보여주고자 현세 질서에 개입한다"고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97항 참조).cpbc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