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229. 제 영혼이 더러워 보여요](//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7087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29. 제 영혼이 더러워 보여요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Q. 성경을 보면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저를 두고 한 것 같아 마음이 찔리곤 합니다. 기도하면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게다가 성적으로 아주 불결한 생각마저 들어서 저 스스로 놀랍니다. 제 안에 '무슨 악마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자주 갈등을 겪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안하게 사귀는 것 같은데 저는 늘 마음이 개운치 않고,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자주 바뀌곤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요?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A. 저 역시 젊었을 때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마음만 먹으면 인생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 기도 모임을 찾았고, 이름 난 스승들을 찾아 마음을 바꿀 방법을 배우려 했습니다. 그때 생각에는 그렇게 몇 년만 노력하면, 무엇인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치고 싶은 결점은 더 많아지고 바꿔야 할 결함도 늘어만 갔습니다. 왜 도인들처럼 되고 싶어 노력했는데 왜 내 마음은 바뀌지를 않고, 그야말로 만신창이와 시궁창같이 돼가는 것일까요?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주 오랜 뒤에 알게 됐습니다. 누가 '사람의 마음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갈등'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보기에 아주 믿음이 깊고 강직한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일대기를 듣다 보면, 그렇게 험한 일을 많이 당하셨는데도 끄떡없이 순탄치 않은 인생길을 가신 그분의 마음은 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변함없는 믿음으로 꽉 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끔 기록된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보면 그렇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솔직히 고백하기를 "자신은 인생에서 더 선한 것을 보고 인정하면서도 마음은 더 악한 것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내 안의 선하지 않은 부분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옛날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원죄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더러운 영처럼 사는 것인가요? 왜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걸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 안의 자아 중에서 아주 고약하고 사악한 자아 때문입니다. 어느 사회이건 간에 범죄자가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이건 간에 감옥은 늘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같이 울어주고 선행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것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사악한 마음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악함이 내 안을 점령하지 못하게 늘 마음을 살피고 있어(자아 성찰) 기승을 부리지 못할 뿐입니다. 마치 감옥 안의 죄수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듯, 그렇게 내 안의 어둠은 늘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 내 마음의 절제력이 떨어졌을 때 그 어둠이 밖으로 나와 내 영혼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병적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암 덩어리 같은 병적인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위에서 던지는 병적 말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한 말들은 아이에게 치명적입니다. 무관심을 넘어서 무시를 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은 평생을 '열등 콤플렉스'와 '적개심'을 가지고 살면서 파괴적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병적 콤플렉스가 사람으로 하여금 소위 예쁜 짓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운 짓만 골라 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고 인정받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내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봐야 합니다. 보지 못하면 나가라고 할 수 없고, 나가지 않으면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종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루카 4,35).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cpbc2013.12.10

하느님 말씀 새기며 하나된 안동교구 계림동본당안동교구 계림동본당, 교구 축제 앞두고 9일간 말씀축제성경가훈 전시ㆍ성경암송 경연ㆍ골든벨 등 다채로운 행사안동교구 계림동본당 신자들이 성경 말씀으로 서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말씀으로 하나 됐어요!' 안동교구 상주 계림동본당(주임 김한모 신부)은 8~16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를 주제로 말씀 축제를 열고, 9일간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기며 하나가 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를 '말씀 실천의 해'로 지내고 있는 안동교구에서 '교구 말씀 축제'(10월 14일)를 앞두고 본당 차원에서 말씀 축제를 마련한 것은 계림동본당이 처음이다. 본당은 8일 성경 가훈 제작을 시작으로 축제 막을 올리고 9일에는 말씀 축제 개막미사를 봉헌했다. 10~16일에는 신자들이 제작한 성경가훈 서각과 글씨 등 작품 200여 점을 성당 1층 로비와 만남의 방에 전시했다. 성경 필사본과 성경통독 인증서, 성화 등도 함께 걸렸다. 12일 말씀을 주제로 열린 발표회에서는 성경암송과 성가경연, 장기자랑, 성경 체험수기 발표 등이 이어졌다. 13일에는 성경과 관련된 영화 '미라클 메이커'(2000)를 상영했고, 14~15일 성경 퀴즈와 성경 골든벨, 성경 피정 등이 잇따라 열렸다. 성경 피정에서 참석자들은 자신의 삶 안에서 살아 있는 말씀을 체험한 소중한 경험 등을 나눴다. 16일 교중미사 때 종합발표와 시상식에 이어 말씀 영상 상영으로 축제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는 본당 전 신자가 말씀에 맛 들이는 계기가 됐다. '언젠가는 성경을 읽어야지'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신자들이 축제를 계기로 성경을 읽고 필사를 했다. 성경 필사에 참여한 신자는 208명으로, 본당 주일미사 참례자가 300여 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어린 아이를 제외한 신자 대부분이 참여했다는 뜻이다. 신자들은 말씀으로 서각 등 작품을 만들거나 퀴즈에 참여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성경을 읽고 묵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말씀 축제에 자신의 서각 작품을 낸 박단선(예비신자, 41)씨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받을 예정인데, 세례받기 전부터 본당 축제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참다운 신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일창(모이세) 사목회장은 "특별히 젊은이들이 말씀 축제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도록 앞으로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2.09.18

전국 각 교구장, 아기 예수 탄생 축하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이웃에게 사랑 전하자 전국 각 교구 교구장들은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12월 24~25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가장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탄생을 축하했다.김희중 대주교가 이주민 가정 자녀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고 있다. 장재학 명예기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2013년 12월 25일 광주 원동성당에서 광주지역 이주민과 함께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김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다"면서 "우리 또한 그 사랑을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고 모든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 후에는 이주민과 자녀들이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며 예수 성탄을 축하했고, 광주이주민회관을 비롯해 교구 빈첸시오회, 운남동ㆍ원동본당 빈첸시오 회원들은 떡과 삼겹살을 마련해 미사 참례자들과 음식을 나눴다. 장재학 명예기자 bio2583@pbc.co.kr 의정부교구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이날 산재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필리핀 이주노동자 아리엘씨 가정을 방문, 집에서 예수성탄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아리엘씨는 12년 전 작업 도중 큰 사고를 당해 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프라도수녀회 요셉피나 수녀와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구리 엑소더스의 도움으로 산업 재해 인정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거동할 수 없는 아리엘씨를 위해 의정부교구 사제들이 돌아가면서 그의 집을 방문, 필리핀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해 왔다. 최근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이기헌 주교는 예수성탄대축일에 일정에도 없는 아리엘씨 가정을 방문, 가족과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리길재 기자 대전교구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12월 25일 오전 충남 예산군 덕산면 봉운로 아동양육시설인 새감마을(원장 김경옥 수녀)을 찾아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새감마을 공동체와 함께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유 주교는 강론에서 "더 좋은 새감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잘못했을 때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고, 성경 말씀대로 내가 먼저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랑받는 아들 딸이 되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미사 직후 유 주교와 사제단은 원생들에게 교구 장애인사목부 느루공동체에서 만든 쿠키를 선물하고 원생들에게서 모형 자전거를 선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기사ㆍ사진 제공=대전교구 홍보국 부산교구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12월 24일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부산가톨릭농아복지회를 찾아 성탄 미사를 봉헌하고 청각장애인들을 격려했다. 황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성탄 최고의 신앙 선물은 바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라며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받아 모시며 참 평화를 이루는 성탄절,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탄절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상해 명예기자 jsh@pbc.co.kr 안동교구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예천본당 지보공소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거행하고,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했다. 권 주교는 강론에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자신과 동일시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마태 25,40)을 엿볼 수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제주교구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12월 25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강 주교는 미사에 참례한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 신자들에게 "오늘 작은 아기로 우리 가운데 와 주신 예수님의 엄청난 사랑과 자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자"며 청했다. 강 주교는 강론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셨고, 항상 아끼셨던 세상의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어려운 이들, 그런 이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 대열에 낄 수 있다"며 "하느님 마음을 닮은 마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도 천사들과 한목소리로 구세주 탄생을 노래하고 찬미할 자격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질책하고 심판하시기보다 그들의 애환 속에 함께 어울리고, 울고, 가슴 치고,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기를 선택하셨다"며 "우리 형제들이 정의에 목말라하고 불의에 항거하면서 울부짖고 싸우고 얻어맞고 끌려가서 감옥에 갇히는 오늘의 순교적인 현장들을 순례하면 예수님께서 훨씬 더 기뻐하시고 우리를 어여삐 여기실 것"이라고 위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군종교구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12월 25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육군교도소 희망대공소에서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를 집전하고, 수감된 장병들을 위로했다. 유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내 마음과 내 삶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밝혀주신다"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님께 내 마음과 영혼 모두가 향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2.31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5)공의회 이후 변화 모국어로 미사 참례, 성경에 관심 증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 모습. 영성체 할 때는 제단과 신자석을 분리시키는 난간 앞에 무릎을 꿇고 입으로 성체를 모셨다. 오늘의 가톨릭신자들은 50년 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와 신자들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0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회 신자 수는 520만5589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65년 말 신자 수는 53만 217명이었습니다. 당시 신자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서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그 비율은 전체 신자의 10%에 불과합니다. 이미 선종하신 분들을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공의회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변화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공의회 이후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전례 쇄신과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강조 가장 먼저 이뤄진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례 분야였습니다.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이 반포되고(1963년 12월 4일) 난 직후 1964년 4월 한국 주교회의는 전례 쇄신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촉진이라는 전례헌장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산하에 전례위원회를 설치합니다. 전례위원회의 첫 결실은 한국어 미사였습니다. 당시까지 미사 전례는 라틴어로 거행했습니다. 신자들은 뜻도 잘 모르는 라틴어를 귀동냥으로 따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라틴어를 따라 하기 힘든 신자들은 미사와 상관 없이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 변화였습니다. 주교회의는 공의회 기간인 1964년 10월 로마에서 회의를 열어 1965년 1월 1일부터 자비송, 대영광송, 독서, 복음, 신경, 거룩하시다 등 신자들이 함께 하는 부분은 한국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교회의는 우리말 미사 취지가 신자들의 능동적 전례 참여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사제들에게 제대로 시행할 것을 당부하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미사통상문'으로 지칭되는 우리말 미사는 이후 로마(교황청)의 미사경본 개정 작업에 따른 우리말 번역 작업과 수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미사 전례에서 바뀐 것은 모국어 사용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고 사제는 성찬 전례 때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자들은 사제 등을 바라보며 미사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사제는 지금처럼 제대를 중심에 두고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제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중심에 모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석과 제단 사이에는 분리 난간이 설치돼 있었고 신자들은 난간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입으로 받아 모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난간은 모두 치워졌고, 신자들은 서서 손으로 성체를 모십니다. 성당에서 하는 동작들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거나 성당에서 제대를 가로지를 때 지금은 모두 큰 절로 제대를 향해 예를 표시합니다만, 공의회 이전에는 마치 중세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시했습니다. 이 밖에 여성이 미사 복사를 서거나 평신도에게 예외적으로 성체 분배권을 수여하는 것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른 변화들입니다. 전례력 개혁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에 따라 이뤄진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가 예수 성탄과 예수 부활을 두 축으로 해서 대림시기를 시작으로 성탄시기-연중시기-사순시기-부활시기-연중시기로 1년을 전례주년으로 지낸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인들의 축일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전례주년의 중심은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경축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1969년 지금과 같은 전례력이 마련돼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례 쇄신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느님 말씀 곧 성경에 관한 강조입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에서 성찬 전례가 강조됐고 말씀 전례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습니다. 이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이 "오직 성경만으로!"를 주장한 데 맞서 가톨릭교회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전(聖傳)과 함께 성사(聖事)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경을 소홀히 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미사 전례에서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활용될 것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미사에서 말씀 전례도 성찬 전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습니다. 특히 공의회는 계시헌장을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 번역은 물론 성경 읽기와 성경 보급, 성경 연구 사도직 활성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에서도 성경에 대한 관심이 일고 성경 공부에 집중하는 사도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주교회의 산하에 성서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공의회가 끝난 후인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는 제대로 다 번역된 신구약 성경이 없었고, 새로운 성경 번역을 추진하던 성서위원회는 1968년 개신교와 함께 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경이 1977년에는 공동번역 구약성경이 출간되면서 합본으로 발간됐습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교회 일치 촉진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함께 작용한 결실이었습니다. 개신교 측에서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아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1980년대에 분도출판사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를 펴냈고, 2005년에는 가톨릭교회의 독자적인 새 번역 성경이 출간됐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강조한 공의회 가르침은 일반 신자들을 위한 성경 공부 모임으로 이어졌습니다. 1972년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성서모임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들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에는 성경 공부뿐 아니라 성경 필사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에 더욱 맛들이려는 노력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례 쇄신 운동과 성경 연구 및 보급 운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특히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운동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변화와 쇄신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1.31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43>하느님 법](//cpbc.co.kr/CMS/newspaper/2014/03/rc/499168_1.0_titleImage_1.jpg)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하느님 법본성과 마음에 새겨진 구원의 초대장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를 입은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해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해"(1949항)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하느님의 법에 대해 알아봅니다(1949~1986항). 도덕률과 법 도덕률은 하느님 지혜의 작품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1950항).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1951항)입니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에서 비롯합니다. 따라서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해서 이성적으로 내리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1951항). 도덕률은 △모든 법의 근원이신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한 법 △자연법 △옛 율법과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국법 △교회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다양한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도덕률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께서는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십니다. 그분은 법의 마침이요 법의 완성입니다. 자연법(1954~1960항) 자연법은 쉽게 말해서 자연에 내재해 있는 법, 또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는 타고난 도덕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법입니다. 자연법은 하느님의 법 곧 신법(神法)의 하나로,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자연법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선의 근원이며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입니다. 이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자연법의 중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돼 있습니다. 이 법을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법 규정들이 인간 본성에 고유한 이성(理性)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보편적인 법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됩니다.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자연법은 시대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며, 도덕 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됩니다. 자연법은 또한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법도 자연법을 토대로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연법 규범을 분명하게 또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죄로 흐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류의 혼동 없이 확실하게 자연법의 진리들을 인식하려면 은총과 계시가 필요합니다. 옛법(1961~1964항) 하느님의 법은 자연법, 십계명의 윤리적 명령을 담고 있는 옛법,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인 새법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사진은 1950년대 영화 「십계」의 한 장면. 【CNS】 옛법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내려주신 구약의 계명들을 말합니다. 옛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로서, 옛법의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돼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입니다(1962항). 하지만 율법은 아직 완전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시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1963항). 율법은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하지만 죄를 없애지 못하기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은 여전히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입니다. 옛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법, 곧 복음의 법(1964~1974항)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 혹은 계시된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입니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으로서 특별히 산상설교(마태 5-7장)에 표현돼 있습니다. 새 법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1966항)입니다.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옛법을 완성하고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합니다. 이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합니다.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산상설교는 옛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산상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보태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고쳐먹도록 인간을 이끕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너그러우심을 본받게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를 실천하게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는 마음으로 하게 합니다. 그래서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새 법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황금률 안에 요약돼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새 계명에 들어 있습니다.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또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 부르는데, 의식적이고 법률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가 아니라 옛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새 법에는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1974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백영민2014.03.0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격변하는 시대, 교회의 쇄신과 적응 이끌어낸 20세기 신학자들 생애·사상 통한 신앙적 성찰](//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85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격변하는 시대, 교회의 쇄신과 적응 이끌어낸 20세기 신학자들 생애·사상 통한 신앙적 성찰<1>전체개관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식에는 전 세계 2500명 이상의 교부들이 참석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 바라보던 종래의 배타적 시각에서 벗어나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해석한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시도였고 공헌이었다. 사진은 1962년 10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막을 올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장. 평화신문이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신학과사상학회(학회장 백운철 신부)와 공동으로 특별 기획한 것은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을 연재, 소개하는 작업이다. 신앙생활을 위해 반드시 신학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 성찰은 신앙적 판단력을 심화시키고 질적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성경 공부에 맛 들이며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지만, 신학은 아직 생소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신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 그저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신학자들이 말한 바가 과연 무엇인가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러 신학자를 소개할 예정이다. 20세기 가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를 선별해 그들의 생애와 사상과 영향 등을 다룰 것이다.20세기 신학의 중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여기에는 신학적 전문성이 전제돼야 하기에 신학과사상학회가 특별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신학과사상학회는 가톨릭 신학과 사상을 더욱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진을 중심으로 2007년 결성한 전국 규모의 학회다. 현재 신학과사상학회가 매년 2회 발간하는 전문학술지 「가톨릭 신학과 사상」은 우수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1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Korea Citation Index)에 정식으로 등재됐다. 20세기 신학의 전반적 흐름 안에서 평화신문과 신학과사상학회가 선별한 현대 신학자를 소개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중심축을 이루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교회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선별된 신학자들과 공의회 관계는 어떠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격변의 20세기를 맞이한 가톨릭교회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야 했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로 이러한 와중에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 세계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자성과 쇄신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전반적인 쇄신 작업을 이룩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새롭게 되새겨 복음 정신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우리 모두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많은 비극적 사건으로 점철된 암울한 20세기 전반기를 보낸 후, 가톨릭교회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과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폐쇄적 입장을 취했던 가톨릭교회에 쇄신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비극을 깊이 체험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이뤄진 복음적 재성찰의 결과다. 교회는 결코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할 수 없으며 그들의 염원과 소망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결과였다.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가 서거한 후, 급변하는 시대에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갈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일에 교회와 세상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전통주의적 견해를 고수하던 신앙교리성 장관 알프레도 오타비아니(1890~1979) 추기경을 지지한 이탈리아 추기경들과 변화와 개방을 요구하던 프랑스 추기경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베네치아교구장이던 안젤로 론칼리(1881~1963) 추기경이 선출돼 '요한 23세'라는 교황명을 택하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1881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제가 됐으며 1925년 교황청 순시자로 임명돼 불가리아에 파견된 후 주교품을 받았다. 이후 그리스와 터키 주재 교황대사를 거쳐, 1944년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됐다. 이때 쌓아놓은 프랑스 주교들과 친분이 교황 선출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1953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교구장으로 임명되는 동시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그가 1958년 10월 28일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그는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고, 이미 77세라는 고령의 나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 '콘클라베' 과정에서 이탈리아 추기경과 프랑스 추기경 사이에 팽팽한 대립의 결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요한 23세는 교황 즉위 후, 예상과 달리 매우 의욕적 행보를 보였다. 그는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마치 시골 사제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자애로운 사목자상을 보여줬다. 1959년 1월 25일에는 새로운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개인적 확신과 결단에 따른 것이었고, 요한 23세는 이를 하느님께서 내리신 영감의 결과였다고 여러 번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 결정에 매우 놀랐다. 이후 본격적인 공의회 준비 과정에 들어갔고 전 세계가 이를 큰 기대 속에 지켜봤다. 요한 23세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시대의 표징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더는 세상의 아픔과 관심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의 복음적 쇄신과 개방, 그리고 시대 적응(Aggiornamento)을 외쳤고 결국 1962년 10월 11일 역사에 길이 남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을 열었다. 개막식에는 전 세계에서 온 2500명 이상의 교부들이 참석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 바라보던 종래의 배타적 시각을 복음의 빛에 근거해 재해석하려 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시도였고 공헌이었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을 철저히 분리하는 대신, '안을 향한 교회'와 '밖을 향한 교회'라는 새로운 견지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학적 통찰은 「교회 헌장」에선 친교를, 「사목 헌장」에선 봉사 개념을 각각 천명하며 구체화돼 드러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영향을 미친 신학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은 요한 23세의 개인적 결단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지만, 그러한 교회적 성찰과 변화를 위한 염원은 이미 하나의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활동했던 여러 신학자들 영향이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문위원이나 신학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직접적으로 공헌한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작성에 간접적으로 신학적 영향을 미쳤던 사람도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직접 참여한 대표적 인물로는 지난 2월 말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를 들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당시 요제프 라칭거(1927~ )라는 이름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 독일 쾰른대교구장인 요셉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렇듯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혹은 공의회 전후로 활동하며 공의회에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 가톨릭 신학자를 꼽아본다면 베네딕토 16세 외에도 아래와 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대부분 독일어권과 프랑스어권에서 활동한 신학자다. 먼저 프랑스 신학자를 살펴보면, 고생물학자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있다. 그는 우주 발전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상승적 진보를 강조하면서, 이 모든 자연적 진화 과정이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진화적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 즉 자신에게 회귀하는 우주적 진화의 종착점이다. 샤르댕은 진화적 세계관 안에서 우주와 인간의 탄생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며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는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는데, 이는 교회 안팎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예수회원 앙리 드 뤼박(1896~1991)은 공의회 개막 이전에 세상을 떠난 샤르댕과 달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신학 자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했고, 그의 저술은 교회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공의회 문헌 작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드뤼박은 1983년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앙리 드뤼박과 함께 프랑스의 '신(新)신학'을 전개한 도미니코회 소속 이브 콩가르(1904~1995)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작성에 직접 참여한 신학자이며, 교회론과 성령론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콩가르는 1994년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한편, 독일어권 신학자를 살펴보면 먼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자라고 활동한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를 들 수 있다. 과르디니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전개 속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종교철학적이고 가톨릭 신학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가운데 자신의 독보적인 인간학적 견해를 제시했다. 20세기 독일어권 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손꼽히는 교의신학자는 인간학적 초월신학을 전개한 독일 예수회원 칼 라너(1904~1984)다. 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고전적 신학을 현대적 지평에서 새롭게 해석한 공로를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라너는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궁극적 실재를 향한 초월로 개방돼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받는 실존, 즉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서 있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간학을 구축, 은총론과 그리스도론 등의 신학을 매우 유기적이며 조직적인 체계 안에서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전개했다. 라너는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자문위원에 임명돼 공의회 기간 활발히 활동했다. 스위스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1988)는 사랑의 현상에 착안한 '심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 그는 이성적 숙고와 역사적 탐구, 그리고 사랑으로 이뤄지는 인간적 자유의 과제가 파스카 신비 그 자체 안에서 모두 하나를 이룬다고 봤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필돼 1961부터 26년에 걸쳐 출간된 그의 방대한 신학 3부작 저서는 첫째로 신학적 미학(1961~1969)을, 둘째로 신학적 드라마(1971~1983)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신학적 논리학(1985~1987)을 다룬다. 벨기에 출신이며 도미니코회 소속인 에드워드 스킬레벡스(1914~2009)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여해 활동했던 진보 성향의 신학자로서 교회직무론과 그리스도론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서술적 그리스도론' 입장에서 예수님 역사를 곧 우리 시대를 위한 살아 있는 역사로, 성경적으로 근거 있고 신학적으로 책임 있게 이야기하기를 시도했다. 즉 예수님의 인격적 체험이 모든 인간을 위한 공통적 체험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그리스도론이란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현시됐던 바가 서술적 방식으로 현재화되는 것이라 하겠다. 스위스 출신의 신학자 한스 큉(1928~ )은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돼 신학 자문 역할을 맡았다. 큉은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들, 그리고 인본주의의 다양한 흐름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충돌에 관심과 염려를 보이며 자신의 진보 성향의 신학을 펼쳤다. 그는 1970년대 자신의 교회론적 주장으로 교도권과 갈등을 빚고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도교 사상사뿐 아니라 타 종교와 대화, 세계윤리, 과학과 대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을 넓혀가며 자신의 방대한 신학 사상을 전개했다. 독일의 기초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1928~ )는 칼 라너의 제자이면서도 라너의 이론적인 초월신학을 넘어서 더욱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스킬레벡스와 같이 '서술적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을 사용했다. 교회 공동체가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기억과 수난사를 되새기며 사람들이 연대성 안에서 이를 믿고 회심해 따르도록 호소하고 격려할 때, 마침내 그리스도 사건의 정체와 의미가 진정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학적 탐구가 곧 사회윤리적 차원의 관심과 실천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전이가 이뤄진다. 독일의 발터 카스퍼(1933~ ) 추기경은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승계자로 평가되며, 2010년까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1974)는 아직까지도 그리스도론 분야의 최고 명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의 또 다른 명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1972)은 튀빙겐대학교 교수 시절 제자인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이 번역, 국내에 소개됐다. 그리고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대교구장인 크리스토프 쇤보른(1945~ )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세대에 속하지만, 현재 바티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하나다.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책임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20세기 활동한 제3세계 신학자 한편, 20세기에 활동한 제3세계 신학자들을 살펴보면 우선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태동시킨 페루 도미니코회 구스타보 구티에레즈(1928~ )를 꼽을 수 있다. 구티에레즈는 1970~80년대 남미의 억압적 시대 상황 속에서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외치며 등장한 해방신학이 복음 정신에 입각한 신학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하며 이를 여러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렸다. 이후 해방신학은 여러 신학자에 의해 다양한 갈래로 전개됐는데, 사회 분석을 위한 방법론적 채택의 오류와 일부 노선의 급진성 등이 지적받으며 교도권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남미 해방신학의 출현은 20세기 신학사에서 제3세계 신학과 토착화 신학의 흐름이 다양하게 등장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고 평가된다. 아시아적 맥락에서 토착화 신학을 구체적으로 전개한 인물을 꼽는다면, 다년간 대만 보인대학교 총장을 지낸 루오꽝(羅光, 1911~2004) 대주교를 들 수 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관점에서 중국 철학을 새로이 조명하며 동서를 관통하는 가톨릭 철학 사상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스콜라 철학과 유가 철학의 상호보완적이고도 통합적인 관점에서 '생명철학'을 전개함으로써, 사상적 관점의 토착화라는 차원에서 아시아 신학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평가된다. 아시아 신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톨릭 신학자는 스리랑카의 예수회원 알로이시어스 피어리스(1934~ )이다. 신학자이며 불교학자인 피어리스는 가난과 종교심이라는 두 가지를 아시아 신학의 핵심 요소로 간주해 출발한다. 그래서 '강요된 가난'이라는 실재를 살아가는 아시아 대륙에서 전통적 종교 유산을 통해 내려오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복음적 요소를 재발견, 그리스도교 신앙 관점에서 재성찰함으로써 '아시아의 해방신학'이라는 통합된 신학적 전망을 제시했다.윤리신학·전례신학·성서신학자 지금껏 교의신학자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교의신학의 인접분야인 윤리신학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베른하르트 해링(1912~1998)을 들 수 있겠다. 독일 구속주회 회원인 해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가톨릭 윤리신학에 대한 대화적 접근을 시도했다. 한편, 20세기 후반에 들어 주목받은 생태신학 분야에서는 미국 예수고난회 소속 토마스 베리(1914~2009)의 업적이 크다. 그는 생태학을 심원한 신학적, 영성적 차원에서 다루며 '생태영성'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여성신학 역시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주목받은 분야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한 성경신학자 엘리자베스 슈쓸러 피오렌자(1938~ )는 현대 여성신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손꼽을 수 있다. 전례신학 분야에서는 독일 베네딕도회의 오도 카젤(1886~1948)이 있다. 그는 예수님 생애 신비 신학을 다루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업적은 전례에서 거행되는 신비 안에서 현존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카젤의 신학적 입장은 전례 거행의 구원론적 의미를 밝히는 데 기여했고, 20세기 전례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 개혁에도 이바지했다. 한편, 영성신학 분야에서는 프랑스 베네딕도회 쟝 러클레르크(1911~1993)와 오라토리오회 루이 부이에(1913~2004) 등이 20세기 가톨릭 영성신학의 흐름을 이끌어간 주요 인물로 꼽힌다. 성서신학 분야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 속에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론을 수용, 학문적인 성경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베네딕토 16세가 「나자렛 예수」 1권에서 '20세기 후반 독일어권의 가톨릭 성경학계에서 가장 출중한 학자'라고 언급한 루돌프 슈나켄부르크(1914~2002)는 4권으로 이뤄진 「요한 복음 주석서」를 비롯해 「네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1993)에 이르기까지 신약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구약 성경 전반에 관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독일 예수회원 노르베르트 로핑크(1928~ )를 꼽을 수 있다. 한편, 프랑스 성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샤를르 페로(1929~ )가 있다. 그는 처음에 유다이즘을 연구하다가 초대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에 전념하게 됐다. 페로는 「예수와 역사」(1979)를 통해 역사의 예수님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고,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1997)에서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했으며, 마침내 「예수 이후-초대 교회의 직무」(2000)를 발간함으로써, 역사의 예수님에서 신앙의 그리스도를 거쳐 초대 교회의 직무에까지 이르게 되는 3부작을 완성했다.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도 걸출한 신학자들이 배출됐다. 슐피스회 소속의 레이먼드 브라운(1928~1998)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간 연구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신약 성경 입문」(1997)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신약 성경 연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쿰란 문헌 연구의 전문가인 예수회원 조셉 피츠마이어(1938~ )는 해박한 아람어 지식을 바탕으로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전승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두 권의 「루카 복음서 주석서」(1983/1985)를 펴냈다. 또 「로마서 주석서」(1993) 등을 통해 바오로 서간 전문가로서도 활발히 연구를 진행했다. 존 P. 마이어(1942~ )는 역사의 예수 연구서로서 「어느 주변 유다인」 1~4권을 1991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마지막 5권 출간을 준비 중인 마이어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역사의 예수님 참모습을 그려보겠다고 말한다.신앙적 지평 확대·심화 계기되길 지금까지 언급된 신학자에 대한 소개가 앞으로 매주 나가게 될 것이다. 신학과사상학회 임원진이나 회원, 또는 해당 분야의 적임자라고 생각해 추천, 섭외한 외부 인사가 원고를 작성하게 된다. 어떠한 경우든 해당 신학자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가진 학자가 원고를 쓰도록 배려했음을 밝힌다. 부디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 기획이 한국 교회 많은 독자에게 신앙적 성찰의 심화와 성숙, 그리고 신학적 지평의 확대를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퇴사자22013.05.07
![[가톨릭 신앙의 보물]<9> 성수 -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3337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성수 -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세례성사 상기시키며 축복, 정화 상징 이스라엘 갈릴래아 세례터를 찾은 신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고대부터 물은 흙과 불과 함께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였다. 물은 사람의 갈증을 풀고 농업과 축산을 가능하게 하는 등 생명을 상징한다. 또한, 홍수 등에서 알 수 있듯 물은 인간에게 위협적 존재이기도 하다. 자연 현상에서 이해된 물의 상징성은 성경에서, 교회 역사 안에서, 오늘날 전례 안에서 드러난다. 그리스도교와 성수 구약에서 물은 생명을 나타내며 하느님 축복의 표상으로 사용됐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10).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 17,6). 구약에서 물은 하나의 생명으로 비유되고 그 생명은 하느님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반대로 물은 인간에게 위협적 존재로 드러나기도 한다. 노아의 홍수에서 물은 죽음과 단죄를, 모세가 파라오의 병거와 기병에 쫓겨 홍해 바다를 건널 때는 그들을 삼키는 매개체로 물이 사용됐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요한 4,10-14 참조)이 언급된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이 받는 성령을 암시하며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교회 역사에서 성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자. 성수 사용은 2세기께 외경인 베드로 행전에서 처음 나타난다. 베드로 행전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름과 함께 성수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수를 사용한 것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는 거주지를 축복할 때 물을 썼고, 이를 받아들인 그리스도교는 거주지는 물론 사람, 사물을 축복하는 데 물을 사용했다. 538년 교황 비질리오가 새로운 성당 축복에 성수를 사용했으며, 성 토요일에 집과 들판에 성수를 뿌렸다는 내용이 7세기께 「로마 예식서」에 수록돼 있다. 이후 단순한 정화를 넘어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성수가 사용됐다. 주일미사 때마다 거행한, 성수를 뿌리는 성수예식이 교황 레오 4세(재임 847~855년)의 지시로 시작됐다. 중세에는 성수 축성의 성대한 예식이 있었는데 이는 집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동방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 밤에 강이나 바다에서 성대한 물 축복 예식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 십자가를 물에 담갔고 많은 지역에서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해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 이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물 축복에서 비롯됐고 이미 4세기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됐다. 중세 후반기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성수 축성이 서방교회에도 전파됐다. 그러나 이 성수에 관련된 축제들이 세속화되면서 서방교회는 1890년 이를 금지했다. 전례 안의 성수 사용 오늘날 성수는 전례 안에서 물건과 사람의 축복에 사용한다. 세례성사, 병자성사, 장례식, 혼인성사, 부활 성야의 세례서약 갱신 예식 등에 사용된다. 이 경우 성수는 하느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 성당 입구 성수반에서 성수를 찍어 기도하며, 가정방문 때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 경우 성수는 세례 때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수가 지니는 의미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수예식이다. 성수예식이란 정화하거나 축복하기 위해 사람이나 건물 또는 사물 위에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말한다. 성수예식은 신자들에게 세례성사와 내적 영적 정화를 상기시키는 것을 돕는다. 정화와 치유를 통해 세례 때의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세례를 되새기고 은총을 갱신하는 이런 관점은 부활 성야 때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신자들은 서약을 갱신한 뒤에 성수를 받는다. 이러한 세례에 대한 기억은 성당에 들어오기 전에 성수반의 성수를 손끝에 묻혀 성호를 그으면서 하는 기도문에서 계속 이어진다.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일상에서 성수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을 살펴보자. "성수에는 항상 소금을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거룩한 물인 성수는 두 가지 본질적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순수한 물이고 다른 하나는 사제의 축복 기도다. 소금은 지역과 문화에 따른 선택적 요소다. 가끔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올 때도 성수반에 성수를 찍고 나오는 분들이 있다. 성수를 손끝에 찍어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성수 기도문'에서 알 수 있듯이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악에서 보호를 받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위함이다. 거룩한 주님 희생 제사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거룩한 시간을 보냈기에 성수를 다시 찍을 필요는 없다. 끝으로 루르드 성지에서 떠온 물을 '성수'나 '기적수'라고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 루르드 성지는 치유의 은사가 많이 일어난 곳이다. 그런데 치유의 기적이 꼭 물 때문에 생겼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물 자체가 미네랄이 풍부해서 몸이 좋아진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루르드 성지는 성모의 중재자적 역할을 기억하고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기적은 올바른 신앙 자세로 기도를 많이 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4.01.21

죽음, 지상생활 마치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위령성월 기획 / 주교회의 편찬 '가톨릭교회 사말교리'(1) 죽음죽음은 원죄의 결과로, 지상생활의 마침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사진은 2009년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직후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나 다 죽는다.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 또는 연옥에 가게 된다는 가르침이 '사말(四末) 교리'다. 사말 교리는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가르침이며, 사말은 곧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을 말한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과 죽음 이후 상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발간한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가톨릭교회의 사말 교리」의 주요 내용을 4회에 걸쳐 요약 정리한다. 1. 죽음은 지상 생활의 마침이다 인생 여정은 흔히 나그넷길에 비유된다. 가톨릭교회도 인생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그 여정은 죽음으로 종결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삶을 좀 더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우리 삶에 긴박감을 준다. 인생이 시간적으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대할 수 있다.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진다"(히브 9,27)는 말씀대로 인간은 지상생활을 마감한 다음 다시 지상생활로 오지 못한다. 교회는 환생(還生)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 국제신학위원회는 환생설에 대해 "성경과 교회 전승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이방인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규정하고, 네 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네 가지는 △환생설은 반복할 수 없는 유일회적인 삶을 거부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윤회를 주장하면서 영원한 벌과 영원한 행복을 거부한다 △자신의 업을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정화해야 하는 입장을 취하는 환생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느님 은총의 여지를 박탈한다 △영혼을 본질적으로 육신으로부터 분리하려는 경향을 강조하며 육신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등이다. 환생설에 따르면, 과거의 업보는 여러 생에 걸쳐서라도 철저히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청산돼야 한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만이 죄인을 너그럽게 용서하심으로써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신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용서를 베푸셨고(루카 7,47-50; 요한 8,11 참조),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한 베드로를 용서해 다시 불러주셨으며(요한 21,15-18 참조),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마르 14,24 참조). 2. 죽음은 원죄의 결과다 구약의 코헬렛 저자는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7)며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인간 실존 전체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에 죽음은 영혼과 육신 모두에 타격을 준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피하려 하고 슬픔과 상실감, 두려움을 느낀다. 예수님께서도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고(요한 11,33-35 참조), 당신 죽음에 직면해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여 괴로워하셨다(마르 14,33-34 참조). 이런 배경에서 성경이 죽음을 죄와 밀접하게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창조 설화는 최초의 인간이 하느님의 명을 어긴 결과로 죽음이 왔다고 설명한다(창세 2,17; 3,3.19 참조). 바로오 사도는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로마 5,12)며 죽음을 "죄가 주는 품삯"(로마 6,23)이라고 규정한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죽음은 최초의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고"(히브 2,15)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다. 3.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됐다 1)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가는 과정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에서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하고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죽음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가는 조건이며 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간에게 죽음을 더 이상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행복한 탄생으로 평화롭게 맞이할 가능성을 열어줬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5)와 같이 고백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빈번히 언급된 '임사(臨死) 체험'은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임을 확인해 주는 듯 보인다. 임사체험을 한 이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그들은 자신이 육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자신의 육체와 구분되는 다른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죽은 친척,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빛나는 존재, 사랑과 따뜻함을 발산하는 존재를 만난다.… 다시 이승의 삶으로 귀환해 원래 육체와 재결합한다. 이런 체험은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닮았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육신과 영혼의 분리, 변화된 육신, 죽은 이들과의 재회, 심판하면서 동시에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새로운 삶 안에서 누리는 행복 등이다. 2)죽음의 능동적 수용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에 놓여 있지만 죽음을 능동적 태도로 맞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을 능동적 태도, 곧 성부의 뜻에 순명하는 행위(마르 14,36), 성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루카 23,46 참조), 성부께 돌아가는 행위(요한 14,2 등 참조),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는 행위(요한 19,30)로 받아들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능동적 자세로 죽음을 변화시키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인간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사셨고, 십자가 죽음을 당신 삶의 귀결과 완성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죽음을 성부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킬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11항). 폴란드 출신 성 막시밀리안 콜베(1894~1941) 신부처럼 타인을 위해 희생적으로 죽는 경우, 또는 노쇠(또는 병고)로 죽음을 맞는 경우에도 능동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함으로써 노쇠와 병고를 견뎌 나가며 죽음을 삶의 완결로 받아들였다. 3)죽음의 능동적 수용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노력 교회는 신자들이 주님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병자성사와 성체성사로 도움을 준다. 또한 누구보다도 주님과 일치 속에 사셨던 성모 마리아께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기를 청하고(성모송),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에게 선종의 은혜를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라고 권고해왔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시간을 부당하게 중단시키는 모든 죽음, 곧 굶주림과 전쟁, 폭력 등으로 인한 죽음과 자살을 반대한다. 특히 자살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행동으로서 올바른 자기 사랑에 크게 어긋날 뿐 아니라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생명을 경시하고 자살을 부추기거나 미화하는 잘못된 사회 풍조에 대해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라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으며, 자살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큰 잘못이라는 점을 신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10.29
![[가톨릭 신앙의 보물]<3> 전례주년과 신앙생활-대림,성탄 시기 - 정의철 신부(서울 중앙동본당 주임, 전례학 박사)](//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58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신앙의 보물] 전례주년과 신앙생활-대림,성탄 시기 - 정의철 신부(서울 중앙동본당 주임, 전례학 박사)기다림, 회개, 희망 속에 예수 탄생 의미 되새겨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 1,23).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사진은 지거 쾨더(독일 베네딕토회) 신부의 성화. 회개와 희망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가톨릭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1년 단위의 큰 틀인 전례주년(교회 달력) 안에서 이뤄진다. 전례주년은 대림시기부터 시작된다. 대림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아벤투스(Adventus)에서 온 말이다. 이는 이교도 문화에서 기원한 용어로, 원래는 신이 자신의 신도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 번 신전을 찾아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예배 대상인 신이 축제가 거행되는 동안에 신전에서 신도들과 머무는 것으로 여겼다. 또 궁중 예절에서 중요 인사의 부임 또는 즉위, 첫 공식 방문의 뜻도 포함돼 있다. 불가타(Vulgata) 성경은 이교도적 용어인 대림을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가운데 오심을 드러내는 의미'라는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로 바꿔 사용했다. 이에 따라 메시아 시대를 연 그리스도의 강생을 기념하며 준비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에 구원사업을 완성하러 영광스럽게 오실 것(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을 '대림'이란 용어로 표현했다. 대림시기는 4주간으로 구성되며 전례 성격에 따라 다시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대림 첫 주일~12월 16일)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12월 17~12월 24일)는 대림시기의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예수님의 강생을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대림시기 전례는 복음 안에서 그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난다. 대림 제1주일 복음은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에 관한 내용이며, '깨어 있음'을 강조한다. 대림 제2, 3주일 복음은 요한 세례자에 관한 내용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에 중점을 뒀다. 대림 제4주일 복음은 본격적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다. 가해에는 요셉에게 한 예고, 나해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한 예고, 다해에는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에 관한 내용을 읽는다. 대림시기 제2독서는 구약의 예언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됐는가를 보여주는 사도들의 서간을 읽는다. 대림시기 기도문에는 예수님의 성탄과 관련이 있는 성모 마리아, 요한 세례자, 이사야 예언자를 부각한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한 마리아의 협력을 강조하는 시기이며, 요한 세례자를 부각하는 이유 역시 주님을 맞기 위한 회개와 연관이 있다. 대림시기에 희망의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이사야 예언서를 주로 낭독하는 이유 역시 대림시기 영성은 깨어 기다리는 것, 회개, 희망인 까닭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누리는 성탄시기 동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성탄 축일을 1월 6일에 지냈고, 서방교회에서는 12월 25일에 지냈다. 성탄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아니즘'(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가 주장한 이단설)을 배격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신 주님의 탄생일을 성대하게 경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요 태양으로 보았기에 새로운 해가 다시 소생하는 날인 12월 25일(로마는 동지인 이날을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로 지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퇴폐적 태양신 숭배 축제에 빠져들지 못하게 같은 날 예수 성탄 축일을 지냈다는 설이 있다)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냈다. 성탄시기는 성탄의 기쁨을 더 연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저녁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의 기간이다. 성탄시기에는 성탄 팔일 축제,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신비를 기념한다. 성탄 팔일 축제 기간에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월 26일)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12월 28일)이 포함된다. 성탄 팔일 축제는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끝맺는다. 성탄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막을 내리며 구원의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는 '연중시기'로 들어간다. 대림시기와 성탄시기는 신앙인들이 기다림과 희망, 회개의 마음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오신 예수님 탄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방송은 수요일 오전 9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ww.c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3.12.03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인간생명 수호 앞장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생명수호주일 생명미사 봉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발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대주교)는 1일 명동대성당에서 제6회 생명수호주일 및 생명위원회 설립 8주년 기념 생명미사를 봉헌하고, 사목 일선에서 용기와 사랑으로 생명수호에 앞장서고 있는 생명수호담당자들을 격려했다. 미사 중 열린 기념식에서 본당 생명수호담당자 교구 대표 서봉흠(요셉)씨는 내년 본당 생명수호 활동을 위한 다짐을 발표, △생명을 위한 기도 및 성경읽기, 생명에 관한 문헌 읽기 생활화 △생명교사 양성교육 및 생명수호담당자 모임 활성화 △제대혈 기증 운동 동참 및 생명돌봄 활동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이에 앞서 생명의 신비상 시상위원장 조규만(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가 제8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생명위원회는 인간생명의 존엄성 수호와 난치병 치료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데 공로가 큰 연구자와 활동가에게 시상하고 있다. 시상식은 내년 2월 11일 오후 4시 서울로얄호텔 3층에서 열린다. 염수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물질과 편리함 속에서 '헛된 행복'을 찾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비윤리적 생명파괴 현상에 우리는 용감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생명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라며 "우리에게 맡겨진 인간생명을 책임감을 갖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권리와 때로는 추정적 권리까지 부여하면서, 반대로 생명 자체는 모든 사람의 기본 가치이자 권리로서 언제나 보호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면서 "의료 행위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생명의 수호와 증진"이라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는 임병헌(교구 사무처장)ㆍ박영식(가톨릭대 총장)ㆍ박정우(가톨릭대)ㆍ지영현(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신부, 최홍준(파비아노) 한국평협 회장, 본당 생명수호담당자 등이 참석했다. 교구는 12월 첫째 주일을 생명수호주일로 정하고, 생명수호를 위한 생명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 <제8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학술분야(인문사회과학) 본상 /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 안 주교는 사목자이자 교수로 윤리신학을 바탕으로 윤리ㆍ생명윤리ㆍ환경윤리 분야에서 학술적 업적을 남겼다. 윤리신학과 윤리에 관한 학술서를 비롯해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사목」지를 통해 20편이 넘는 생명윤리 지침을 발표했다. 인간학과 생명윤리에 관한 10여 권의 번역서로 인간생명의 고귀함과 생명현상에 나타난 윤리적 가치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심화했다. 사목자로서 생명윤리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가톨릭 입장을 밝히며 실천적으로 생명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활동분야 본상 / 프로라이프의사회 차희제(토마스) 회장 낙태 반대 의사 단체인 프로라이프의사회 회장. 불법 낙태 시술병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낙태죄 양형 기준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생명문화 확산을 적극 주도해왔다. 낙태시술을 거부하고 오직 분만과 부인과 진료 및 수술만 해왔던 차 회장은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돼 불법 낙태 시술병원 3곳을 검찰에 고발, 낙태논쟁에 불을 지폈다. 생명대행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안, 기획해 2012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생명수호를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학술분야 장려상 / 경상대 윤리교육과 홍석영 교수 한국의 생명과학자들이 연구윤리를 지키도록 모색해온 연구자. 인간학과 생명윤리학, 연구윤리에 관한 32편의 논문과 11권의 저서(공동저서 10권, 단독저서 1권)를 발표한 바 있다. 2002년 '인간배아의 인격지위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고, 2003년 '인격주의에 기초한 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다수 논문을 발표하며 가톨릭 생명윤리 입장을 견지해왔다. ▨활동분야 장려상 / 마리아 모성원(원장 신경화 수녀)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미혼모자보호시설. 태아 생명 보호를 사명으로 미혼인 상태에서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들에게 숙식과 의료 서비스, 취업 및 심리상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혼전 임신으로 낙태의 위협을 받고 있거나, 의지할 곳 없는 미혼모들을 돌봐줌으로써 미혼모들이 아기를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출산 후에는 미혼모의 결정에 따라 양육을 지원해주거나 전문입양기관에 연계해주고 있다. cpbc2013.12.03

만나고 고백하고 기념하고 증언하자춘천교구 미원본당, 신앙의 해 실천지침 마련미원본당 신자들이 김현준 신부 강의를 들으며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죄의 벌은 없어지지 않아요. 벽에 못을 박았다가 뽑아도 자국은 남잖아요. 전대사는 못자국(잠벌)까지 깨끗하게 지워주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1일 오전 춘천교구 미원본당 교리실. 평일미사를 마치고 나온 신자들이 교리실에 앉아 김현준 주임신부 강의를 들었다. 김 신부는 고해성사와 보속, 전대사 등을 어르신들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미원본당은 신앙의 해를 맞아 4가지 실천지침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을 바탕으로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고백하고, 기념하고, 증언할 수 있게 이끄는 지침이다. 이날 교리교육은 지침 가운데 '고백' 차원의 프로그램이다. #성경과 함께(만남) 본당은 신자들이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 집 성경가훈갖기'를 장려해 현재 50여 가정이 성경 가훈을 만들었다. 또 지역별 구역과 별도로 '말씀구역'을 만들어 성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말씀구역은 (성경) 쓰기ㆍ읽기ㆍ외우기ㆍ묵상구역 등 4개 구역이 있다. 구역 신자들은 월 1회 모여 성경을 읽고 쓰고 외우고 묵상하며 말씀을 나눈다. #교리와 함께(고백) 신자들은 주일미사 때 사도신경 대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을 바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공부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또 주일ㆍ평일미사 후에 틈틈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갖고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본당은 내년 본당의 날(9월14일)에 교리 경시대회를 연다. #성찬례와 함께(기념) 본당은 신앙생활의 중심인 미사에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례하도록 주일미사 날개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냉담교우든 예비신자든 두 명 이상을 데리고 미사에 참례하는 운동이다. 김 신부는 신자들이 미사에 집중할 수 있는 세 가지 지침도 만들었다. 독서ㆍ복음 말씀을 미리 읽어 미사를 정성껏 '준비하고', 미사 중에 사제가 바치는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따라하고', 성체를 모신 후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김 신부는 "미사 중에 감사송 등 사제가 혼자 바치는 기도를 속으로 따라하면 미사전례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기도, 애덕, 선교와 함께(증언) 가족기도는 한 자리에 모여 기도를 바칠 기회가 없는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날마다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며 부모와 형제를 기억한다. 본당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애덕회'를 설립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선교상황실을 운영하며 선교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김 신부는 "교황님이 선포하신 신앙의 해 취지를 잘 이해하고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천하면 신앙 공동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11.06

성체성사 제정되고 성령강림 통해 교회 탄생한 거룩한 산[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7. 시온산 시온산은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골짜기와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에 위치한 해발 765m 동산으로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귀중한 성지이다. 시온산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찾아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곳 시온산이다. 또한 성령강림 때에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 계셨으며(사도 1,12-14)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시온산은 또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열린 장소이며, 335년 '예수 부활 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예루살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지인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다. 우리말로 '봉우리'란 뜻의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에 자리 잡은 '다윗성'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나, 다윗이 이곳에 '계약 궤'를 옮겨와 제단을 쌓으면서 이곳을 '거룩한 산'이라 부르게 됐다(2사무 6,12-18; 시편 2,6). 이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우면서 시온이라는 명칭은 이 성전까지 포함하는 이름이 됐다(이사 18,7; 미카 4,7). 시온은 또 예루살렘 시민 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시편 126), 신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히브 12,22; 묵시 14,1)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는 시온산이 성벽 안에 있었지만, 오스만튀르크 술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1536~1542년)하면서 성벽 밖에 자리하게 됐다. 오늘날 시온산 지역에는 최후 만찬 경당과 동정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 귀속 후 어떠한 종교적 장식도 없는 최후 만찬 경당 내부 모습. ▨ 최후 만찬 경당 예수께서 행하신 최후 만찬 일시에 관한 복음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관복음서(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와 요한 복음서가 다르게 보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 저녁'에 최후 만찬을 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다(마태 26,17-19; 마르 14,12-16; 루카 22,7-13). 반면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요한 13,1)에 최후 만찬을 한 것으로 나온다. 성경학자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심문할 때 유다 권위자들은 아직 파스카 음식을 들지 않았으며, 이를 위해 전례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했다는 사실(요한 18,28)을 통해 요한의 보고가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또 십자가형이 축제일이 아니라 축제 하루 전에 거행됐다는 점(예수께서 성전에서 파스카 양들이 도살된 시각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의미)을 또 다른 증거로 제시한다. 안타깝게도 네 복음서는 최후 만찬 장소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오늘의 최후 만찬 기념 성당 터는 비잔틴 시대 때부터 성지로 개발됐다. 4세기에 첫 성당이 건립됐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됐고, 이후 십자군 시대 때 다시 성당이 지어졌지만, 또다시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가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이 터를 사들여 작은 형제회에 봉헌했고,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성당을 지어 지상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 '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 '성령 강림 기념 경당'과 '최후 만찬 기념 경당'을 마련했다. 이 성당은 1517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정부재산으로 귀속됐다. 라틴말 '체나쿨룸'(다락방)으로 불리는 최후 만찬 경당 터에는 성 목요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행하는 말씀 전례 외에는 그 어떠한 예식도 허가되지 않고 있다. ▨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시온산 작은 형제회 수도원 바로 옆 골목길 어귀에 자리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은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신(교회헌장 59 참조) 것을 기념해 지은 성당이다. '성모 승천'에 관한 교회 전승은 초세기 사도들의 전승을 모아 전하고 있는 2세기 위경들에 이미 나타난다. 4세기부터는 성모 승천을 고백했고, 5세기 들어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천주의 어머니 날' 축일로 지냈다. 13세기에는 성모 승천이 보편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자리했다. 이러한 교회 전승에 따라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반포했다. 현재 독일 베론 성 베네딕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상이 있다. ▨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시온산 남동쪽 키드론 골짜기와 게헨나(힌놈)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라틴말로 '갈리칸투'(닭울음 성당)라고 하는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통곡한 곳(마르 14,53-54; 마태 26,57-66; 루카 22,66-71; 요한 18,12-24), 바로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다. 이 터에서 물 저장 시설과 감옥으로 사용했던 동굴, 히브리 도량형과 맷돌 등 유물이 발굴됐다. 이 동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카야파에게 신문을 받은 후 조롱받고 주먹질 당한 후 갇혀 있던(마태 26,67) 장소다. 닭울음 성당에서 또 하나 귀중한 보고는 예수 시대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이어지는 로마 시대 돌계단이다. 예수께서는 성 목요일에 시온산에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눈 후 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겟세마니로 기도하러 가셨고, 또 율법학자와 원로들에게 체포된 후에는 이 길을 통해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늘날 성당은 1931년 승천수도회가 건립한 것이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8.20

도심 속 문화영성센터로 탈바꿈작은 형제회, 연말까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증ㆍ개축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증ㆍ개축 투시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이 '도심 속 문화영성센터'로 거듭난다. 작은 형제회(관구장 기경호 신부)는 1987년 개관, 올해로 26주년을 맞기까지 한국 가톨릭교회와 평신도, 사회 단체,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해온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증ㆍ개축,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고 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 도심 속의 영성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16일 서울 정동길 9 회관 성당에서 관장 신성길 신부 주례로 증ㆍ개축 안전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본 공사에 들어갔다. 지하 2층과 지상 5층 고쳐짓기(개축)는 오는 10월까지, 성당과 공연장이 들어설 6~7층 증축은 연말까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무리한다. 공사가 끝나면 현재 건축연면적 5950.41㎡(1800평)에서 7008.26㎡(2120평) 규모로 늘어난다. 예상 공사비는 40억 원. 고쳐짓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미국 뉴욕 맨하탄 31번가 성 프란치스코성당이 모델이 됐다. 이 성당은 평일미사만 15대를 봉헌하고 고해소는 하루 종일 상시 운영하며 각종 영성강좌와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800만 명에 이르는 뉴욕시민들에게 영적 서비스 센터가 돼 왔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도 증ㆍ개축이 완료되는 대로 도심 속 영성센터로서 미사전례와 성사 집전은 물론 상담활동, 상시적 기도모임, 열린 영성강좌, 직장인 청년성서모임 강화 등 기도와 성경, 사목, 문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교회와 시민들이 만나는 접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2010년 1월 문을 연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San Damiano)'도 프란치스코회의 특성을 살려 서울의 대표적 문화거리 가운데 하나인 정동 문화거리에서 문화적으로 봉사하며 책과 미디어, 문화를 매개로 다양한 만남을 갖는 공간으로 계속 활용해 나가기로 했다. 언뜻보면 북카페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하느님과 사람, 문화예술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도심 속 문화 공간이자 젊은이, 미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수용하는 문화의 장이 되는 셈이다. 신성길 신부는 미사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의 새로운 25년을 시작하며 새로운 복음화를 담아낼 공간을 마련하고자 증축과 개축을 시작하려 한다"며 신자들의 기도와 관심, 도움을 요청했다. 문의 : 02-6364-2222. 후원계좌 : 외환은행 071-22-02221-2, (재)프란치스꼬회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3.07.23
![[성경 속 궁금증] 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6220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무엇인가?하얗고 달며 기름에 튀긴 빵 같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솔로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왔냐며 불평을 터뜨렸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하느님께 아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내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이 만나를 먹는다(탈출 16장).'만나를 모으는 이스라엘 백성'(로베르티 작, 1479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어떤 것이었을까? 탈출기에서는 만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출 16,14-15).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긁어모아 식량으로 삼았으며, 안식일 전날은 안식일을 위해 조금 더 모았다고 한다. 성경에 의하면 만나는 빵이 아니라 고수풀 씨앗처럼 하얗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으며(탈출 16,31), 기름에 튀긴 빵 맛이었다고 한다(민수 11,8 참조). 만나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나 관목의 잎사귀에 맺히는 이슬 모양의 형성물로 추측된다. 만나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비교적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맛이 단 편이다. 만나는 식량이 부족한 사막에서는 오늘날에도 식량으로 사용된다. 만나는 밤에 이슬이 내릴 때 함께 내렸다(민수 11,9). 태양이 떠오르기 전인 이른 아침에 광야의 모래 위에서 '흰 서리 같은 것'(탈출 16,14)이 발견됐는데, 이것은 '햇볕에 녹아 버렸기 때문에'(탈출 16,21) 이스라엘 백성은 이른 아침에 거둬들였다. 오늘날에도 시나이 지역에는 '레카노라 에스쿨렌타'라는 지의류(地衣類)가 자란다. 이 식물은 사막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한다. 실제 맛도 달콤해 시나이 광야의 유목민인 베두인족은 이것을 만(man)이라 부른다. 6월과 7월 이른 아침에 발견되는 만은 광야를 뒤덮는 낟알로 돼 있다. 그 낟알들은 꿀처럼 단맛이 나고, 성경의 만나와 비슷하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빵과 젤리 등을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먹던 만나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만나를 먹고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가나안 땅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은 만나를 먹었던 것이다"(탈출 16,35). 만나는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먹어야 했던 양식이었다. 따라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퇴사자22012.05.2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40>루오꽝(상)](//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67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루오꽝(상)신학과 중국 철학의 상통점 찾는 데 주력 루오꽝(羅光, 1911~2004) 대주교는 중국 후난(湖南)성 헝양(衡陽) 난샹 태생으로 자(字)는 달의(達義)인데 세례명인 스타니슬라오(Stani slaus)를 음역해 지었고, 호(號)는 '작조'인데 그 뜻은 '그리스도는 세계의 빛'이다. 집안이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기에 루오 대주교도 자연스럽게 유아 세례를 받았다. 6세부터 천주교 위더(毓德) 소학교에 다녔는데 항상 수석을 했다. 13세에는 성심수도원 중등학교 과정을 수학했고, 19세에는 수도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31년 성심수도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교황청 우르바노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에도 계속 신학, 법학 등을 공부해 신학박사와 법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렇게 세 가지 학문을 공부한 결과 자연스럽게 이 세 분야를 회통하게 돼 일가를 이루게 됐다. 루오 대주교는 우르바노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26세 나이로 중국 문학, 철학 교수를 맡게 됐다. 그 기간 동안 문학, 철학 방면의 창작 활동도 멈추지 않아 35세에 교황을 알현할 기회가 있어 교황에게 「유가사상 대강」(儒家思想大綱), 「논중국 외유 법규」(論中國外儒法規)란 책을 바쳤다. 그 후에도 여러 작품을 저술했는데, 창작 활동 외 번역 활동도 열심히 해 중국 고전인 「중용」(中庸), 「대학」(大學), 「논어」(論語) 등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1991년 루오 대주교는 자신의 인생을 헝양(衡陽)시절 19년, 로마 31년, 타이완 30년으로 나누었는데 헝양(衡陽) 19년 중 12년은 난샹(南鄕)의 고향에서 보냈고 7년은 황샤오완(黃沙灣)수도원에서 보냈다. 로마의 31년 중 9년은 공부를 했고, 25년은 교수 생활을 했으며, 18년은 주 교황청 대사 종교고문으로 지냈다. 타이완의 30년 중 5년은 타이난(臺南)교구 주교로, 12년은 타이베이(臺北)대교구 주교로 봉직했으며, 13년은 푸런대학교(輔仁大學) 총장으로 지냈다. 80세 이후는 일체의 세속적 직분을 마다하고 오로지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만 했다. 루오 대주교가 봉직했던 천주교 푸런대학교는 1925년에 베이징에 설립됐는데 1949년 베이징이 공산당에 함락되자 중국 교육부가 접수해 1952년 베이징사범대학과 병합함으로써 폐교됐다. 1956년 푸런대학교 재타이완 동창회가 설립돼 타이완에서의 모교 복교를 위한 서한을 교황에게 보냈다. 1961년에는 푸런대학교 철학연구소(철학 대학원)에서 형이상학을 강의하는 등 당시 총장이던 위빈(于斌) 대주교의 가장 큰 조력자였다. 1978년 8월 위빈 추기경이 서거하자 푸런대학교 총장직을 이어받아 타이완 복교 후 제2대 총장으로 1992년 1월까지 재임했다. 루오 대주교는 위빈 추기경의 이념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규모를 확충해 9개 학과 13개 대학원 과정을 증설해 푸런대학교를 7개 대학 42개 계열학과, 22개 대학원 과정의 종합 대학으로 만들었다. 이런 학교 구조적인 부분 외에 임기내 많은 건물을 완공해 푸런대학교 캠퍼스의 오늘날 모습을 만들었다. 루오 대주교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공헌은 비단 학교 건물 건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의 인격 도야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푸런대학교 총장 재임 시 '인생철학'을 전교생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 교과목으로 개설하고 직접 강의도 했다. 루오 대주교는 '인생철학' 강의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 엘리트로서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라는 주제에 대해 유가와 천주교 사상을 융합한 관점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중시하고 스승을 받들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심성을 배양하고, 또 유가 사상과 천주교 사상이 현실에서 언행일치가 되도록 해 장래 사회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양하는 데 밑거름이 되게 했다. 이런 분위기는 향후 푸런대학교 교학 특색 중 하나가 됐다. 루오 대주교는 중국 문화와 천주교 문화의 융합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1971년 구정(春節) 교구청 대성전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 분향, 헌화, 헌과(獻果) 의식을 주재하고 단배(團拜)도 했다. 그 다음 해는 주교단 상임위원들과 제사 의식에 관해 토론을 하고 제사 의식을 행하면서 헌화, 분향, 제주(祭酒) 의식도 행하고 성경도 봉독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중국인들이 행하는 조상 제사를 미신, 우상숭배 등으로 치부하고 교리에 어긋난다고 배척하며 금지해 조상 제사는 늘 논쟁의 발단이 됐다. 루오 대주교의 이런 행동은 중국인 천주교 신자들이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해결해주는 계기가 됐다. 루오 대주교는 1961년 41세에 타이난 신설 교구의 주교로 임명됐으며, 그 이듬해에는 삐유에 신철학원(碧岳神哲學院, 1992년 타이베이 성토마스 총원과 병합돼 천주교 타이완 연합 총수도원이 됐음)을 건립했다. 또 타이난 교구 교구청을 비롯해 삐유에수도원, 다륀(達義)수도원을 세웠으며, 성공대학교 인근에 학생 활동 센터를 건립하고 더광여중(德光女中), 승공여중(聖功女中), 츠요중학(慈幼中學), 리밍중학(黎明中學)을 설립했다. 루오 대주교는 타이난교구 주교로 재임한 지 5년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업적을 이뤘다. 1966년 루오 대주교는 타이베이대교구 대주교로 임명됐고, 대주교 재임 중에 타이베이 교구청을 건립하고 교우 선교 사목회를 만들었으며 겅신(耕莘)간호학교도 세우고 산샤(三峽)에 천주교 공원묘지도 만들었다. 루오 대주교는 사목하는 틈틈이 여가 생활로 중국화(中國畵)에 심취했다. 특히 말, 대나무 등을 즐겨 그렸다. 화집도 발간할 정도로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 루오 대주교는 푸런대학교 총장직을 내려놓았고, 건강이 비록 좋지 않았지만 열심히 저작활동을 하다 2002년에 병세가 악화돼 2004년 2월 28일 주님 품안에 안겼다. 루오 대주교 저작 루오 대주교의 저작물<사진>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세상에 나온 저작 중 제일 유명한 것은 「루오꽝 전서」(羅光全書)다. 루오 대주교의 작품은 대부분 푸런대학교 신학원과 작조관에 소장돼 있다. 「루오꽝 전서」는 철학과 종교 두 가지 내용으로 이뤄져 있는데, 철학은 대부분 중국 철학이다. 서양 철학을 소개하는 책은 두 권에, 비교 철학도 세 권에 불과하다. 종교 부분은 전기(傳記), 영성에 관한 것, 교리 등이 있으며 그 외 문학과 시집도 이 유형에 속하는 것이 있고 루오 대주교 자신의 사진과 그림 작품도 들어있다. 루오 대주교는 「루오꽝 전서」에서 "…작품을 쓰는 데 있어 유일한 관심사는 '천주교가 중국 문화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루오 대주교는 하느님과 중국 철학의 상통하는 점을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 푸런대학교는 「루오꽝 전서」로 총 42권, 66종 저작을 1996년에 펴냈는데, 루오 대주교의 1993년까지의 저작들을 수록했고 1994년부터 임종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은 아직 전서에 수록하지 못했다. 「루오꽝 전서」의 근본 골격을 이루는 저작은 역시 「생명철학」(生命哲學)이란 책이다. 박용모 교수(세바스티아노, 부경대) 타이완(臺灣) 푸런대학교(天主敎輔仁大學)에서 「주희 '이기' 철학사상 연구」(朱熹理氣哲學思想之硏究)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루오꽝 주교에게서 학위논문 지도를 받은 마지막 학생이다. 경성대학교, 동의대학교, 창원대학교, 부산 가톨릭대학교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부경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물로는 '맹자 심성철학 연구'(孟子心性哲學硏究), '노자의 지(知) 연구' '왕양명 공부론의 진로에 대한 성찰', '맹자의 성(性)에 대한 기본 태도' 등이 있다. cpbc201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