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론ㆍ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 진리 수호 [기획] 진리의 수호자, 교황 베네딕토 16세<상> 그는 왜 보수적 신학자가 되었나'천재적 신학자'로 불리는 교황은 뛰어난 지적 능력과 도덕적 강인함, 그리고 날카로운 논변으로 가톨릭 교의와 정통성을 수호했다. 이달 말로 제265대 교황직에서 사임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한마디로 평하면 '진리의 수호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 범람하는 세기말적 사상과 교설(巧說)에 맞서 가톨릭 정통성을 수호했다. 교황 재임 8년 동안에는 교회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풍랑에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지난했던 그의 영적 투쟁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그가 지금까지 헤쳐온 풍랑은 동시대 그리스도인들과 후임 교황에게 여전히 계속되는 도전이 될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언젠가 "교황으로 선출(2005년)됐을 때 기요틴 도끼날이 떨어진 것 같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요틴(guillotine)은 프랑스혁명 당시 등장한 사형기구 단두대이다. 교황직의 중압감을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도끼날'에 비유할 만도 했다. 그는 콘클라베가 열리기 며칠 전 78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만 해도 설레는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은퇴계획을 늘어놓았다. 은퇴 나이도 한참 지난 터였다. 그런 마당에 12억 가톨릭교회 수장(首長)이라는 중책이 떨어졌으니 도끼날은 아니더라도 '마른하늘에 날벼락'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는 고요하고 평온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의 평전을 쓴 미국 가톨릭 내셔널지의 바티칸 통신원 존 알렌은 "그를 만날 때마다 수줍음과 넘치는 기지를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교황 자신도 한 인터뷰에서 "(교황이) 끊임없이 군중 앞에 모습을 보이고 마치 스타처럼 사람들 시선을 받는 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가?"하고 기자에게 반문한 적이 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만 봐도 그는 군중 앞에서 손을 흔들어 환호에 답하는 스타형이라기보다는 책에 파묻혀 진지한 눈빛으로 뭔가를 연구하는 학자풍이다. 실제 그는 교황 피선 직후 다른 건 몰라도 수 십 년 손때 묻은 책과 책장으로 가득한 연구실(서재)만은 통째로 교황청으로 옮겼다. #광신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충격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보수주의자다. 그가 교황에 선출됐을 때 유럽 언론들이 '철갑 추기경'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 같은 우스꽝스런 별명을 붙여 그를 소개했을 정도다. 1981년부터 24년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가톨릭 교의와 전통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상과 신학적 조류에 한 치 양보 없이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와 싸웠다면, 그는 세속주의 및 도덕적 상대주의와 성전(聖戰)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무기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도덕적 강인함, 그리고 날카로운 논변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보수적 시각을 견지한 것은 아니다. 본, 뮌스터, 튀빙겐 등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만 해도 그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자로 통했다. 교의신학과 기초신학을 가르치는 강의실은 항상 초만원이었다. 솔직성과 관용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바티칸 책임자들이 교회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칼 라너와 함께 공의회에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은 핵심적 인물이다. 당시 독어권에서 영향력이 높았던 요제프 프링스 추기경의 신학 자문역으로 공의회에 참석한 그는 회의장 분위기가 현실에 안주 내지는 과거 회귀 쪽으로 기울자 교리ㆍ교의ㆍ전례 분야에서 번뜩이는 논리로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그를 '공의회 파괴자'라고 몰아붙였다. 당시 신학자들은 문서 초안을 작성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주교들 토론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는 회기 내내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신학사상과 교회문제에 대한 시각은 급격히 바뀌었다. 1960년대 후반 유럽 대학가를 휩쓴 네오 마르크시즘 열풍과 공의회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급진적 주장 때문이다. 그는 교편을 잡고 있던 튀빙겐대학 신학과가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신약성경은 대중을 기만하는 비인간적 문헌", "예수에게 저주를!" 따위의 전단과 구호가 교정에 난무했던 시절이다. 그는 그 혼돈 속에서 '그리스도의 옷'을 걸치고 사회와 교회에 파고드는 광신적 이데올로기를 목격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나는 무신론적 열정에 사로잡힌 흉한 얼굴, 심리적 불안, 모든 도덕적 성찰을 부르주아의 썩은 냄새라고 내던져 버리는 열등의식, 이런 것들이 베일을 벗는 장면을 목도했다"고 말했다. 교회 내적으로도 공의회의 개혁 정신에 열광한 나머지 전체 교회에 대한 인식을 상실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데 대한 지적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르콩트는 저서 「마지막 유럽 교황, 베네딕토 16세」에서 "분명히 그는 미화된 중세적 과거에 집착하는 '시대에 뒤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공의회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아쉬워하는 '순진한 근대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두는 데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진리의 수호' 측면에서 봐야 그의 사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성장 환경과 신학사상의 텃밭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는 독일 바이에른 출신이다. 지리적으로 유럽 중앙에 위치한 바이에른은 16세기 종교개혁 바람이 대륙을 뒤흔들 때 그 바람을 막아낸 유일한 게르만 지방이다. 바이에른은 가톨릭 전통과 색채가 매우 강한데다 주민들 성향도 독립적이다. 그런 지방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성소를 결정했기에 가톨릭 진리 수호에 대한 집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난 결연한 아우구스티노주의자다" 더구나 그는 신학생 시절부터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로 칭송받는 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신학 노선을 따랐다. 그는 1996년 "난 결연한 아우구스티노주의자다. 만일 무인도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성경과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두 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아우구스티노는 예수 그리스도 다음가는 대스승이다.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그의 영적 투쟁은 로마-그리스의 이교도 문화와 싸워가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사유를 철학적 틀 속에 정립한 아우구스티노의 그것과 닮았다. 그는 1981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돼 바티칸에 입성했다. 그때부터 현대 사회의 무신론,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가톨릭교회 근본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급진적 주장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열풍을 잠재우고, 교황 무류성에 대한 의혹과 맞서 싸운 게 대표적 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cpbc2013.02.19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5) 성경은 모두 몇 권?](//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1643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5) 성경은 모두 몇 권?가톨릭은 신, 구약 총 73권▶성경 권수 성경 권수는 유다교, 천주교, 개신교에 따라 각기 다르다. ①유다교 유다교는 구약성경 가운데서도 제1경전만을 정경으로 인정해 권수는 총 39권이다. 유다교는 구약성경을 크게 세 부분, 즉 율법서 토라, 예언서 너비임, 성문서 커투빔로 구분한다. 율법서는 창세기ㆍ탈출기ㆍ레위기ㆍ민수기ㆍ신명기 총 5권이다. 예언서 21권, 성문서는 13권으로 이뤄져 있다. ②가톨릭 가톨릭은 구약성경 가운데 제1경전과 제2경전 모두를 정경으로 인정하고 신약성경을 인정해 권수가 총 73권이다. 구약성경은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구분한다. 오경은 창세기ㆍ탈출기ㆍ레위기ㆍ민수기ㆍ신명기 5권이다. 역사서는 여호수아기ㆍ판관기ㆍ룻기 등 16권으로 이뤄져 있다. 시서와 지혜서는 욥기ㆍ시편ㆍ코헬렛 등 7권이다. 예언서는 이사야서ㆍ예레미야서ㆍ바룩서 등 18권으로 이뤄져 있다. 구약성경은 총 46권이다. 신약성경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으로 구분한다. 복음서는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복음서 4권으로 이뤄져 있고, 사도행전은 1권으로 이뤄져 있다. 서간은 로마서ㆍ코린토서ㆍ갈라티아서ㆍ에페소서 등 21권으로 이뤄져 있다. 묵시록은 요한 묵시록 1권이다. 이로써 신약성경은 총 27권이다. ③개신교 개신교는 구약성경 가운데 제1경전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신약성경을 인정하여 권수가 총 66권이다. 유다교, 천주교, 개신교 성경 권수가 다른 것은 종교 간 갈등과 번역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했던 초대교회에서는 사실 히브리어 성경보다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칠십인역」에는 가톨릭에서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 성경이 포함돼 있었다. 유다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많이 사용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기로 새로이 「아퀼라」(Aquila), 「심마쿠스」(Symmachus) 같은 그리스어 번역본을 제작했다. 1517년 종교분열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존중과 가톨릭에 대한 반기로 유다교 전통을 따라 제1경전만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성경 권수를 세분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새 백성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유다교, 가톨릭, 개신교 성경 권수가 서로 다른 것은 종교 간 갈등과 번역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사진은 미국 가톨릭계 학교 교사들이 유다 회당을 방문해 토라(율법서)를 살펴보는 장면. CNS 자료사진 ▶성경 구분 1)구약과 신약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이뤄져 있다. 구약은 하느님과 옛 백성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서 모세의 중재로 맺은 옛 계약을 의미한다. 신약은 하느님과 새로운 백성인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맺은 새 계약을 의미한다. 2)제1경전과 제2경전 구약성경 가운데 히브리어 성경에 포함돼 있는 성경을 제1경전이라 하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돼 있지 않고 그리스어 성경인 「칠십인역」에만 포함되어 있는 성경을 제2경전이라고 한다. 제2경전은 역사서인 토빗기ㆍ유딧기ㆍ마카베오기 상하권, 시서와 지혜서인 지혜서와 집회서, 예언서인 바룩서 총 7권이다. 교회는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제1경전과 제2경전으로 이뤄진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합쳐 73권을 성경으로 최종 선언했다. 3)정경(正經), 외경(外經), 위경(僞經) ①정경 교회에서 올바른 경전으로 인정된 경전을 말한다. 가톨릭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리스어 성경인 「칠십인역」에만 포함돼 있는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②외경 정경은 아니지만 교회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경전을 말한다. 가톨릭은 아담과 하와의 생애, 에녹서, 열 두 족장의 유언, 모세의 승천기 등을 외경으로 분류한다. 개신교는 가톨릭에서 제2경전으로 분류하는 경전들을 외경으로 분류한다. ③위경 정경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 가르침에 위배되는 저작을 말한다. 가톨릭에서 위경이라 부르는 저작으로는 영지주의를 드러내는 베드로 복음과 이집트 복음 등이 있다. 4)장(章)과 절(節) 성경의 장과 절은 1550년께 처음으로 구분됐다. 장과 절은 성경을 편리하게 읽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그 구분이 속 내용과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지나치게 장과 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김원철2011.06.28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840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인간, 하느님과 관계와 기억의 힘으로 주체적 존재 돼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신학은 근대적 사상의 유산과 만나 대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주체의 신학 메츠는 자신의 초기 저작 「세상의 신학을 향하여」(1968)에서 표방한 정치신학의 탈사사화(脫私事化)를 「역사와 사회 속의 신앙」(1977)에서 재차 강조하면서 주체와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신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진리와 의미개념은 사사화하거나 개인주의화한 사유방식, 동일성의 사유체계로부터 모색될 수 없고 구체적 역사에 대한 주체적, 실천적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의 정치신학은 역사적 의식이 주체와 실천과 관계된 기억의 이성에서 방향을 잡고, 이렇게 주체와 결합된 기억을 공적 차원의 의식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또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주체적 존재로 서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을 통해 보편적 연대를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메츠의 주체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고려한 가운데 인간학적 전환을 신학적으로 완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주체의 신학은 인간을 주체적 존재의 사회적 본질과 역동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이해하고, 인간의 주체적인 동일성은 역사적 사회적 매개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츠는 특히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을 비판한다. 주체의 구체적 역사적 체험은 사회적 모순과 적대적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데, 라너의 초월적 경험의 주체는 이를 간과해 인간의 역사적 고통에 직면한 주체의 동일성을 과도하게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메츠는 성경에 근거한 주체 형성의 사유 전통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서 라너의 초월적 주체신학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데, 그에 따르면 주체는 실천과 그의 인식론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기억'과 '서사'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성취된다. 기억과 서사는 역사적 투쟁과 위협 속에서 정체성의 확증과 구원을 위한 근본적인 범주며, 이 기억과 서사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주체로 체험하고 주체로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과 서사는 인간 주체성을 구원하는 실천이성의 범주이며, 모든 인식의 가능조건이 된다. 기억에 기초한 주체의 신학은 아우슈비츠의 상황에서 재차 강조된다. 아우슈비츠 이후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희생자와 아우슈비츠의 유다인에게 의존해 있기에 주체의 역사 의식은 고통당하는 이와의 관계 속에서 보증될 수 있다. 주체는 고통 당하는 타자를 위한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자와 더불어 사는 존재를 주체됨의 본질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는 타자를 향해, 타자와 더불어(살아 있는 자, 죽은 자, 희생자를 모두 포함한 타자) 타자를 위해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체험하고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심층에 이르고 '나를 나로서 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아로서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와 무관한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관념적인 신학이나 심층심리학의 자아 규정과 구별된다. 이와 더불어 메츠는 근대화 과정과 근대화 이후의 과정에서 시장제일주의 사고와 교환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인간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주체의 해방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의 힘으로 참으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추종의 그리스도론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위해서 유다-성서적 전승의 뿌리와 연결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전승에는 종말론적 시간 의식과 추종의 실천을 통한 그의 기억이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에서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으로서 '추종의 그리스도론'(Nachfolgechristologie)과 '성토요일 그리스도론'(Karsamstagschristologie)을 전개한다. 메츠 신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실천은 이제 추종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증언하는 근본적 범주며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본질이다. 추종은 '정체성 실현을 위한 기준'이다. 따라서 주체가 된다는 것은 추종의 실천에서 이뤄지며, 이 실천을 통해 주체됨의 유효성과 의미를 얻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추종은 주체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가능조건으로, 그리스도인 실존은 바로 추종의 실존이다. 이로써 주체와 관계된 추종의 실천은 그의 그리스도론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추종은 그리스도론적 진리의 비변증법적인 내면화의 행위도 배타적인 규범적 관념도 아니며, 기억과 서사를 토대로 한 정치성이자 신비성이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추종의 신비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보편적 정의와 과거의 고통은 물론 현재의 고통을 위한 요청을 수용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물음에 기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이와 비동일성에 대한 종말론적 의식 없이 진술되는 그리스도론은 비정치적이며, 그의 사회비판적 힘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론 없는 그리스도론은 승리의 이데올로기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신비적'이라는 것은 어떤 비의적인 신비나 정치권력의 신비가 아니라 하느님이 세상의 작은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것처럼 인간을 위한 신적 사랑실천에 투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추종의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고통당하는 타자와 보편적 연대를 이루고,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체적 존재로 불러내는 종말론적 하느님을 증언하게 된다. 이러한 추종의 그리스도론의 신비적 차원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를 이루는 하느님의 힘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저항과 중단의 신비, 회심과 고통의 신비로 이끌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이러한 신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고통당하는 예수의 신비다. 성 토요일의 그리스도론 '성토요일' 개념은 90년대 메츠 신학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에 광범위하게 퍼진 포스트모더니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메츠는 부활절 그리스도론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반면 성토요일 그리스도론은 너무 빈약하다고 봤다. 부활절의 그리스도론은 우리의 기도를 승리의 언어에 젖어들게 했지만 그만큼 그 언어는 재앙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성토요일 개념이 비록 1990년대에 등장했지만, 메츠의 그리스도론 발전사에 비춰보면 성토요일에 대한 암시는 1960년대 초반의 저작에서 이미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저작 「영의 가난」(1962)은 메츠 그리스도론의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 메츠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형태를 근본적으로 초월적인 하느님의 자기 낮춤, 수난 속에서 자기 낮춤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훗날 '고통의 기억'으로 구체화되는데, 특히 고통의 기억은 자유의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바로 그런 점에서 구원하고 해방하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토대로 해석된다. 아울러 메츠에게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에서 성금요일과 부활절 사이를 매개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그에 따르면 만일 누가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외침을 들을 수 없다면 그는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승리 신화를 들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의 근본문제인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문제를 해소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차단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정치신학- 교회 내 문화적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메츠의 정치신학의 중심적 틀은 근대와 계몽사상의 지평에서 형성됐다. 그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서구라는 문맥을 통해 정치 해석학의 틀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의 종교비판을 접하면서 복음을 사회와 실천과 상관성에서 파악하려 했다. 그 때문에 그의 신학은 근대적 사상의 유산(주체, 자유, 역사와 같은 근대사상의 중심개념)과 만나 대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신학은 이러한 근대적 사상의 유산을 문제 삼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로 피할 수 없는 도전과 마주하게 됐다. 오늘날 정신사를 풍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정신적, 사회적 환경 그리고 인간의 경험 세계와 삶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의 방식이나 행동양식 그리고 사고 유형이 다양화돼 가는 변화 과정에 있는 것과는 달리 세계화는 이미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현실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어떻든 이 두 변화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설 정도로 내용적으로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대의 정신적, 사회적 모호성과 불투명성에 직면한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중의 과제 앞에 놓여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뤄 진정한 세계교회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고, 교회 외적으로는 이웃종교와 세상의 다른 가치체계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보편성과 절대성 요청을 타당하게 드러내는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메츠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이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천착해왔다.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cpbc2013.10.15
![[가톨릭 문화산책]<1>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1)](//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73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1)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리아, 인류 구원의 길로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지나 '문화와 영성의 시대'다. 교회는 따라서 인간 문화를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고 쇄신함으로써 참된 문화를 고양하고자 한다. 새해를 맞아 가톨릭 문화와 영성을 되돌아보는 '가톨릭문화산책'을 기획, 가톨릭 미술과 음악, 영화, 건축 등 네 분야별로 가톨릭 문화의 진수와 그 향기를 풀어놓는다. 작품 : '주님 탄생 예고', 12세기 초, 산 마르코 성당 모자이크 일부, 베네치아 ● 환희의 신비 1단 :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기쁜 소식, 순종, 만남'주님 탄생 예고'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해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대목을 그린다.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예고한 지 반년이 되자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으로 가서 요셉의 약혼자 마리아에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을 낳을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기는 성령이 내려와 잉태될 것이고,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친척 엘리사벳도 이미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됐음을 일러줬다. 이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하고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천사는 요셉에게 가서 약혼자가 임신한 것을 알리고, 그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0-22)하고 알렸다. 루카 복음서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의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님 탄생 예고' 도상에 나타나는 기본적 세 요소는 천사와 마리아, 마리아를 향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비둘기다. 그러나 황금색으로 배경을 가득 채운 이 모자이크 작품에서는 성령의 비둘기는 보이지 않고, 하늘의 천사와 우물 가까이에 있는 마리아만이 보인다. #축복을 주는 천사 작품 왼쪽 위에는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표현돼 있다. 천사의 오른손은 전형적인 축복의 동작으로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다.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하고 말하며, 마리아를 '복된 여인'이라 지칭한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가 세 살이 돼 젖을 떼자 안나와 요아킴은 제물과 함께 딸 마리아를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다른 동정녀들과 함께 성전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거룩함 속에 착실하게 성장하는데, 천사들 보호 아래서 하느님의 환상을 즐기며 거룩하게 지냈다. 마리아는 동틀 무렵에서 오전 9시 전후까지 기도,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내지 3시까지 천 짜는 일, 그 이후부터는 천사가 나타나 음식을 가져다 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한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기도하고 말씀 안에서 일하며 살았으며, 이어 요셉의 신부로 혼인 약속을 한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한 마리아에게 성전에서의 생활은 실로 커다란 하느님 역사를 준비하라는 과정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놀란 동정녀 마리아 그림 중앙에는 작은 주전자를 들고 있는 마리아가 있다. 천사의 인사에 마리아는 놀란 표정이다. 처음에는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많은 화가는 '주님 탄생 예고' 장면 중 마리아를 표현하는 데 있어, 마리아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알렸다고 간주하고 책과 함께 마리아를 나타내곤 했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시편을 손에 든 마리아를 그렸다. 마리아의 자세는 주님 말씀을 들으며 주님과 교감을 나누는 동작으로 그려졌으며, 무릎 위에는 책이 올려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단지 천사의 인사만이 언급돼 있을 뿐 마리아의 동작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이 모자이크 작품은 '주님 탄생 예고' 내용을 기도 중인 모습이 아니라 물을 길어 우물로 향하는 모습으로 그려 비잔틴적인 특성을 보인다. 비잔틴 도상의 경우를 보면, 천사는 마리아에게 두 단계로 출현한다. 먼저 천사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고, 이어 마리아가 집에서 성전을 위해 자색 베일을 짜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나타난다. 첫 장면은 동방의 사막 지역에서 물이 갖는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고, 두 번째로 마리아가 자주색 실을 길게 잡고 있는 도상은 새로운 이브의 역할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원죄 후에 실을 짜는 것으로 죄 값을 치르는 운명을 뜻한다. 이 모자이크의 '주님 탄생 예고'는 비잔틴적 전통 도상을 토대로 우물가에서 생각지도 않은 인사와 함께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8-30)하고 말하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놀라고 걱정스러워하는 마리아를 묘사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놀라움과 동시에 경배의 몸짓으로 무릎을 굽히고 있다. 이미 마리아의 머리 위에는 그리스어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새겨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나자렛의 집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 탄생 예고' 이야기의 배경을 갈릴래아의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작은 고을 나자렛으로 설정한다. 성경 본문에서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루카 1,28)는 문장의 '들어가다'라는 표현은 천사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마리아가 집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하게 한다. 서양에서 '주님 탄생 예고' 도상은 일반적으로 왼쪽에 천사가 있고 오른쪽에 마리아가 있어 양쪽으로 분리되는 장면이 보편적이나, 때로는 마리아 집을 실내나 실외로 설정해 전체적 주제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때도 있다. 실외는 나자렛 고을이나 집 대문 아래를 배경으로 하는 반면에 실내를 배경으로 할 때에는 건축 구조를 두 공간으로 나누기도 했다. 여기서 한 공간은 천상 세계로 천사를 배치하고, 또 다른 공간은 지상 세계로 마리아를 배치하곤 했다. 이 모자이크는 '주님 탄생 예고' 장면을 조금 특별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면은 실외로 나자렛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묘사한다. #작은 주전자 마리아는 손에 이미 물을 담은 듯 손잡이가 달린 작은 주전자를 쥐고 있다. 이 물 주전자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둥근 형태의 주전자는 바로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킨다. 주전자가 물을 담는데 사용되는 것처럼, 마리아도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잉태할 것이다"는 말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하고 말하며, 하느님 말씀에 겸손하게 "예"하고 순종으로 받아들인다. #우물과 녹색 나무 작품 오른쪽에 상당히 단순하게 표현된 우물이 있다. 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우물은 집이나 동물들에게 사용할 물을 그곳에서 퍼올리기 위해서 팠다. 따라서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지나던 길손이 목을 축이기 위해 머물고,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물은 서로에 대해 알고 가족 간에 혼인을 성사시킬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모세와 그의 아내, 야곱과 라헬, 이사악과 레베카가 혼인했을 때도 우물이라는 장소가 등장한다. 이 작품 역시 우물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지는 마리아와 천사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계약을 성사시키려 한다. 사실 마리아는 요셉과 혼인을 하게 되지만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아들을 잉태한다. 또 '봉해진 우물'(아가 4,12), '정원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아가 4,15)이라고도 불리는 마리아는 풍요롭고 순결한 모성을 의미한다. 우물 옆에는 녹색 나무 한 그루가 단단하게 우뚝 솟아 있다. 시들지 않은 이 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하와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생명나무 선악과를 따먹어 하느님 뜻을 거역했고, 마리아는 하느님 뜻을 전하는 천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한다. 하와는 하느님 말씀을 거역해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했지만, 마리아는 순명해 인류를 구원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옛 계약'은 무너졌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또 나무 뿌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는 우물이 파진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경에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2-3)는 구절처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나무처럼 전혀 물의 부족함이 없어 나뭇잎들은 항상 푸르고 전혀 시들지 않으며 언제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삶이다.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조은일2013.01.15
![[아! 어쩌나] 204.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하>](//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84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04.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Q. 신부님들이 강론할 때마다 사랑 타령을 하는데, 과연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사랑을 외치는 사람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무기력해 보입니다. 힘이 없어 사랑이란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A.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여서 몸의 음식 이상으로 마음의 음식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심리적 음식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고,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종교적 계명 차원이 아닌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심리적 영양소입니다.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 보호시설에 들렀다고 합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적대국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늘 외침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아주 슬픈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전쟁고아가 많습니다. 이곳의 어린이 시설을 방문한 수녀님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커야 할 아이들이 성장이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아야 할 사랑이 없어 그저 시간표대로 애정없이 주어지는 음식을 먹고 자란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즉,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뇌하수체 분비선에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 육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정신적 성장에도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애착 관계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성숙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는 부모와 애착 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이고 일관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이웃 사랑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사랑을 받아봐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도 일종의 학습을 통해 얻는 것인데, 그런 사랑의 학습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기에 어른이 돼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어렵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가끔 '나를 왜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대사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는 사랑 결핍증 환자들이 주로 말하는 것들입니다. 소위 '사랑에 걸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이지요. 배가 고프니 밥 달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내가 배고파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외치는 것이 사랑타령입니다. 이런 사랑은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감정으로 맺어진 커플은 오래가지 못하고, 서로 질리고 싫증나서 헤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학습 행위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기에 우리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사랑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토끼는 관상동맥 체계가 사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토끼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 역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관심 받으면, 마음과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약을 먹고 또 육체적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온갖 식단을 짜서 몸의 건강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더 많은 질병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병으로 죽어가는 것은 약이 모자란 것도, 음식 때문도 아닙니다. 마음의 외로움이 깊어 가면서 병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돈을 주고 외로움을 더는 방법들을 찾는데, 문제는 비용을 내고 주고받는 관계가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적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상생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주님 가르침을 따라 서로 자기 몸처럼은 아닐지라도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성당에 가는 사람들만의 삶이 아니라 나의 건강한 생활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루카 10,27)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생존방법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6.04

인터넷 팟캐스트로 '하느님 알리기' 행복팟캐스트 진행자 재미교포 전경아, 심지니씨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으로 복음화에 힘쓰고 있는 전경아(왼쪽)ㆍ심지니씨."안녕하세요, 여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입니다. 전 세계 청취자들이 저희 방송을 들으며 하느님 참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새로운 방식의 새 복음화에 동참한 이들이 있다.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www.sdcatholic.com) 진행자 전경아(체칠리아, 39, 샌디에이고 한인본당)ㆍ심지니(리디아, 26)씨다. 이민 2세대인 이들은 1인 미디어 시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매주 낭랑한 목소리로 청취자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스튜디오는 각자의 자동차와 방, 옷장 등이다. 회당 20분 분량의 방송은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와 스마트기기로 녹음해 인터넷에 올린다. 각자 따로 방송하기에 매주 2회 분량이 업데이트된다. 방송 내용은 △이민사회 속 신앙생활 이야기 △가톨릭 뉴스 △가톨릭 Q&A △성가 △교회 영어 표현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방송을 듣다 보면 몰랐던 생활성가에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고, 교회 영어단어와 상식을 배우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 세계 교회 소식도 접할 수 있고, 감동적인 사연에 훈훈함도 느낄 수 있다. 2012년 8월 첫 방송 이후 벌써 45회를 넘는 꾸준한 방송으로 새로운 개인 가톨릭 미디어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다 만난 두 사람은 방송이란 탤런트를 '하느님 일'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들의 뜻을 주님께서도 아셨는지, 어느 날 본당의 한 신자가 신기하게도 이들에게 휴대용 음성 녹음기를 선물하는가 하면 본당 누리방을 관리하는 신자가 방송 편집 프로그램을 구해주기도 했다. 변변한 장비가 없어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따로 녹음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르지만, 이들은 방송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은총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씨는 "완벽한 방음을 자랑하는 집 벽장에서 매주 녹음을 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심정으로 열심히 성경과 교회 서적을 뒤적이며 주제를 찾고 대본을 쓴다"면서 "무작정 시작한 탓에 녹음작업 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많지만,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제작 관련 일을 하는 심씨는 "막상 생업이 아닌 일을 하려다 보니 가끔 시간에 쫓기거나 녹음했던 파일이 사라져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럴 때면 종종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이 시간만큼은 신앙의 참뜻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여겨 기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인 전씨는 "방송을 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도 어느새 성가를 따라 흥얼거리고, 종종 방송을 들은 본당 신자 분들이 감동했다고 말할 때면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씨는 "주일 미사만 참례하던 제가 방송을 하면서 저의 신앙 지식도 키울 수 있게 돼 좋다"면서 "생활성가 가수 인터뷰 등 새 코너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방송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이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이 땅에서 아름다운 천국을 함께 맛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조은일2013.03.12
![[아! 어쩌나?] (178) Q. 나이를 잘 먹으려면](//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7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78) Q. 나이를 잘 먹으려면 Q. 나이를 잘 먹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성경을 보면 시메온이라는 노인이 나오는데 저도 그분처럼 주님 은총 안에서 나이를 먹고 싶습니다. A. 글쎄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어쨌든 자매님이 부러워하는 시메온이라는 분에 대해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주셨다." 참으로 부러운 분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이 세상 사람 중에 노인이 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사람은 더 무기력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 활기찬 삶을 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자 셀리그먼은 '유연한 시간관념'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유연한 시간관념이란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가 일시적이며 통제할 수 있고, 특정 상황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낙천적 삶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비관적인 사람들, 운명론자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우선 지금의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압도돼 매사에 무기력합니다. 또한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사소한 좌절이 매일, 길게는 몇 달씩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처럼 자기파괴적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생기를 잃습니다. 시메온이라는 분은 유연한 시간관념을 갖고 살았던 분이라 여겨집니다. 이분은 구세주가 없어 고난을 겪는 현실에 압도돼 아무것도 못하고 산 것이 아니라, 기다리면서도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건강한 노년기를 가질 수 있었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어른으로서 지도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자매님도 시메온 노인의 삶을 깊이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Q. 주님과 비교하면 저는 아주 작은 일에도 잘 넘어집니다. 그래서 제 대모님은 늘 저를 보고 '믿음이 약하다'고 하시고, '주님처럼 역경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기운이 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꾸만 주눅이 들고, 주님 앞에서 움츠러드는 기분이 듭니다. 정말 제 믿음이 약해서 이런 것일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서 늘 야단맞고 자란 데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 열등감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지요. 대모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신앙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곤합니다. 성당을 그만 다녀야 할까 봅니다. A. 무슨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자매님이 문제가 있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대모님이 문제가 많은 분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역경을 만날 때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잘 견디고 어떤 사람은 잘 넘어집니다. 이렇게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까짓 것 하나 못 견디느냐"고 말하지만, 그런 말들이 오히려 무지막지한 말들입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못 먹고 자란 아이들은 병치레를 심하게 하고 몸의 힘이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무시당하고 무관심 대상이었던 아이들은 심리적 힘이 약해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주님은 이러이러하셨는데, 여러분은 뭐하는 것인가요?"하는 질책성 말들을 하는데, 이런 말들은 아주 위험한 발언입니다. 주님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인간적 관점에서 봐도 어린 시절을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셨기에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비교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또한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분들은 잠재적 우울증을 갖고 있는데, 스스로 심하게 자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식의 자기 비난은 건강한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분들은 불우한 기억으로 뭉쳐진 내재아를 달래주고 위로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주고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내적 힘을 키워가야 역경을 만났을 때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11.27
![[성경 속 상징] (112) 날개](//cpbc.co.kr/CMS/newspaper/2011/04/rc/372641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12) 날개강함과 보호… 도피와 안전날개 달린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주는 '주님 탄생 예고'(프라 안젤리코 작, 1430년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을까?' 사람이 새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고대 예술품에서 날개 달린 인간과 동물 형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꿈을 이뤄준 라이트 형제는 수백 마리 새를 잡아다 놓고 그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면밀히 관찰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라이트 형제는 새 모양을 본뜬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마침내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꿈을 이룬다. 성경에서 날개는 주로 비유적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날개에 관한 실제 언급은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선 창조 이야기에서 날아다니는 새가 언급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21).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도 "온갖 날짐승과 날개 달린 것들이"(창세 7,14)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날개는 강함과 보호의 상징이다. 특히 새끼를 날개로 업어 나르는 독수리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자연에 대한 상세한 관찰을 통해 새들 날개가 갖는 특징을 성경에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날개 달린 새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도피와 안전의 상징이다.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시편 91,4).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할 때 날개를 언급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이와 같이 하느님 날개는 보호와 구원, 사랑과 은혜 등의 이미지로 언급되고 있다. 날개는 영적이며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도 상징된다. 그래서 날개를 가진 존재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에게 내려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태 3,16). 날개를 지닌 영적 존재에 대한 언급은 특별히 묵시문학에 많이 등장한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4,8). 이처럼 성경시대 사람들은 날개를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빛나는 흰색 날개는 거룩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cpbc2011.04.05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4)성경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56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4)성경은 무엇인가성령으로 쓰인 하느님 말씀 우리는 성서(聖書)와 성경(聖經)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다. 성서는 '거룩한 글(책)', 성경은 '거룩한 경전'이라는 뜻인데, 두 명칭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성령의 감도로 쓰인 하느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런데 공동번역을 사용할 때는 주로 성서라고 했으나, 2005년 새 번역 「성경」 발간 이후 경전(經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이라고 일컫는다.7세기께 이집트에서 기록된 후리어 성경사본(Freer Gospels)의 표지 그림. 마태오와 루카 두 사도가 성경을 들고 있다. ▶1100여 년에 걸쳐 기록돼 성경의 원저자는 하느님이다. 하느님 계시로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단계를 거치다가 글로 쓰이기 시작했고, 글로 쓰인 기간 역시 장구하며, 기록과 편집에 참여한 저자와 편집자 역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기록했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 전체가 기록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구약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신약은 기원후 150년께 마무리됐기에 성경은 대략 1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됐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솔로몬 임금(기원전 961-922년)이 다스리던 기원전 950년께부터 단편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587-538년 바빌론 유배시기 무렵에 단편적으로 작성된 문헌들이 낱권 책들로 엮어졌다. 이어 기원전 200년께 어느 정도 성경 형태를 갖췄다. 이 무렵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됐다. 이것이 바로 「칠십인역」이다. 물론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후대에 집필된 제2경전 지혜서 같은 경우는 기원전 1세기, 더 나아가 기원전 30년께 기록됐다고도 추정한다. 신약은 기원후 51년 바오로 사도의 테살로니카 1서를 시작으로 기록됐다. 요한계 문헌이 비교적 후대인 기원후 100년 전후에 기록됐고, 베드로 2서는 기원후 100~130년께 기록됐다고 한다. ▶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록됐나?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6세기에 마호메트가 하느님 계시를 받아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께서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신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사람이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대필한 것도 아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을 거쳐 형성됐다. 구약과 신약 모두 구전→문서화→편집→정경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형태를 갖췄다. 구약의 형성과정은 아래와 같다. ①구전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과정을 거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후손들에게 이야기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성조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집트 종살이에서 어떻게 해방됐는지, 약속의 땅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등 그들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했던 사건을 이야기로 엮어 전했다. ②문서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전승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글로 작성해 고정하는 문서화 작업을 시작했다. ③편집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글로 작성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수집ㆍ정리되는 가감첨삭 편집 과정을 거쳤다. 구전 및 문서 전승을 종합해 하느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④정경화(正經化) 오랜 세월에 걸쳐 글로 기록되고 편집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바른 경전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거쳤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책들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쓰인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한 다음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김원철2011.06.21

한가위 조상 제사 이렇게... 주교회의, '가정 제례예식',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예식'에 관한 지침 주교회의는 지난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과 '설ㆍ한가위 명절미사 전이나 후에 거행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의식'에 관한 지침을 승인했다. 그동안 명절 때면 본당은 공동의식으로, 가정에서는 나름의 제례로 차례를 지내왔지만 공식지침이 없다 보니 양식에 통일성이 없고, 때로는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전까지 통용된 3가지 가정 제례 양식은 개인 연구자들이 제시한 안(案)이지 주교회의 차원에서 공식 인준한 것은 아니다. 주교회의가 인준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다. 따라서 제례 의미가 조상 숭배 개념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신자 가정에서 의무적으로 제례를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일 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 제례에 우선해 위령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고한다. 한가위를 앞두고 주교회의가 인준한 주요 지침을 소개한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설이나 한가위 명절 때 본당에서 공동으로 조상 추모의식을 거행할 때는 '미사 전이나 후'에 해야 한다. 사진은 신자들이 한가위 합동 위령미사 후 공동 추모의식을 거행하는 모습. ▨본당 공동의식 명절 때 본당에서 공동의식을 거행할 때는 '미사 전이나 후에' 해야 한다. 전례와 비전례적 신심행위(공동의식)가 혼합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의식은 이에 대한 사제의 설명, 분향, 위령기도 등 간소하게 구성한다. 또 명절미사 때 조상 이름을 일일이 적어 게시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유교식 제사에서 사용하는 위패(位牌)로 오인될 소지가 많다. 부득이할 경우 음식상이나 제대 앞이 아니라 제대 주변에 미사지향을 알리는 차원에서 게시한다.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榜)이라는 유교식 용어는 조상 숭배 의미를 연상시킬 소지가 있어 '조상(고인)의 이름', '조상의 사진' 등의 용어로 대치한다. ▨가정 제례 예식(명절 차례) 시작예식, 말씀예절, 추모예절, 마침예식으로 구성한다. 특히 추모예절은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위령기도를 주요 예식으로 구성한다. <준비사항> 1.마음과 몸의 준비: 제례 전에는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례 때는 복장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는다. 2.상차림: 제례상은 음식을 차리지 않고 단순하게 추모예절만을 위한 상을 차릴 수도 있다. 상 위에는 십자가와 조상(고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모시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 외에 「성경」 「가톨릭 성가」 「상장예식」(또는 「위령기도」) 등을 준비한다. 음식상을 차릴 때에는 형식을 갖추려 하지 말고 소박하게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다. <시작예식> 3.시작 알림: 제례준비가 끝나면 가장은 다음과 같이 제례의 시작을 알리며 예식을 진행한다. 지금부터 명절을 맞이하여 설날(또는 한가위) 차례를 거행하겠습니다. 4.성호경 5.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성가 50번ㆍ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6.시작기도: 가장은 오늘 거행하는 제례의 취지를 설명한 후 가족들의 마음을 모으는 기도를 바친다. †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설/한가위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차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주인이신 주님께 조상님들과 우리 자신을 봉헌하면서 정성된 마음으로 이 예절에 참여합시다. 잠시 침묵 후에 †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주님의 종 ( )를 받아들이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서로 화목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말씀예절> 7.성경봉독: 아래에 있는 성경 말씀 외에 다른 본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마태 5,1-12(참 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 로마 12,1-21(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과 생활 규범), 1코린 13,1-13(사랑), 에페 5,6-20(빛의 자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8.가장의 말씀: 가장은 조상을 회고하면서 가훈, 가풍, 유훈 등을 가족들에게 설명해 준다. 또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가족들이 신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권고한다. <추모예절> 9.분향과 배례: 가장이 대표로 향을 피우고 다함께 큰절을 두 번 한다. 10.위령기도(「가톨릭 기도서」 74~79면): 긴 위령 기도를 바치거나 노래로 부를 때는 「상장예식」(또는 「위령기도」)을 참조한다. † 지극히 어지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 믿으며 ( )를 아버지 손에 맡겨드리나이다. ○ ( )가 세상에 살아있을 때에 무수한 은혜를 베푸시어 아버지의 사랑과 모든 성인의 통공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 )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아있는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시편 129(130), 시편 50 †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또한 저희의 부르짖음이 주님께 이르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을 생각하며 비오니 주님의 성인들과 뽑힌 이들 반열에 들어 주님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모두 무릎을 꿇고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각각 한 번씩 하고 다음 기도로 위령기도를 마친다. † 주님, (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 ( )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마침예식> 11.마침성가: 「가톨릭 성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성가 50번ㆍ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12.음식나눔: 온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사랑과 친교의 대화시간이 되도록 한다.김원철2012.09.18
![[출판]공부 십자가 진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3285_1.0_titleImage_1.jpg)
[출판]공부 십자가 진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의정부교구 강주석 신부, 입시위주 교육 현실 안타까워 직접 기도서 펴내 강주석(의정부교구 광적본당 주임) 신부는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모습에서 무죄한 어린 양이 짊어진 십자가 슬픔을 느꼈다. 건강까지 해쳐가며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사회 구조는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우라는 악한 군중의 외침처럼 다가왔다. 아이들은 답답한 현실에 왈칵 울음을 쏟아내고 싶지만 눈물마저도 시험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강 신부는 수험생들에게 기도로 힘과 용기를 보태고 싶어 자신이 직접 쓴 수험생을 위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책으로 펴냈다.각 처마다 성경 구절과 묵상글, 기도로 구성 성경 구절과 묵상글, 기도로 구성된 책은 수험생을 위한 강 신부의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묻어 난다. "이번에 넘어지면 못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모두들 목표를 향해 죽을 힘으로 달리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넘어지면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달아나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 삶의 무게 때문에 넘어지는 당신의 자녀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 예수님, 아직 믿음이 부족한 저희들이지만 십자가의 길에서 또 다시 넘어지시는 당신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어 우리 아이들이 넘어지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아멘."(제7처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수험생 부모도 위로 강 신부는 수험생 자녀와 함께 수험생 생활을 하는 부모 마음도 헤아리며, 부모들이 자녀에게 부담이 아닌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도록 기도했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기쁨의 선물로 다가왔던 아이, 그런데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 소중한 아이를 키워 내면서 가슴에 못이 박힌다는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못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님, 우리도 주어진 십자가를 잘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소서. 아멘."(제11처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강 신부는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하느님 아들과 그 어머니, 그 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 마음을 묵상하면서 이 기도를 썼다"면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을 통해 수험생과 가족들이 인생 여정에서 부딪히는 고통의 의미를 찾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8.14
![[출판]저자와 만남-사도신경 지은 차동엽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780_1.0_titleImage_1.jpg)
[출판]저자와 만남-사도신경 지은 차동엽 신부사도신경에 담긴 교회 보물 끄집어내 보여주고파사도신경(차동엽 지음/위즈앤비즈/1만 4100원) "사도신경은 교회 보물이며 생명줄입니다. 또 우리가 바치는 절절한 신앙고백이자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지요. 이 사도신경을 제대로 고백하며 살아간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에 넘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사도신경 해설서를 펴낸 차동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신부의 사도신경 예찬은 끝이 없었다. 차 신부는 "사도신경은 교회와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새 희망을 줄 2000년의 지혜이자 자녀에게 대물림할 신앙의 가보"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 화두는 절망과 분노입니다. 미래가 안 보인다, 비전이 안 보인다며 답답해 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위기를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이 때에 한줄기 빛이 돼주는 출구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찾는 지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차 신부는 "명색이 신학자라는 나조차도 사도신경을 읊어만 왔지, 그 속에 담긴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면서 "이 책을 쓰는 내내 새로운 깨달음에 설레였고,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사도신경은 라틴어로 심볼룸 아포스톨로룸(symbolum apostolorum)으로, 사도들의 증표라는 뜻이다. 또 증표ㆍ상징ㆍ기호를 나타내는 '심볼룸'의 어원은 깨트리거나 쪼개진 물건의 반쪽을 뜻한다. 차 신부는 사도신경을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반쪽"으로 설명했다. 그는 사도신경을 '주님과 나눈 약속의 정표'로 불렀다. 차 신부는 책에서 사도신경 한 단어, 한 구절씩 곱씹고 되새김질했다.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뜻을 구체적으로 풀이했다. 또 자신의 체험과 여러 예화를 곁들이며, 이 기도를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구현하며 살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구절을 설명하며 고통과 불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고, '나는 믿나이다'라는 고백에서 말씀을 붙잡고 시련을 견디는 신앙을 일깨웠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해설하는 대목에선, 무신론과 다원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의미를 정확히 짚어주며 "예수는 세상 지혜뿐 아니라 초월적 진리까지도 다 아우르고 계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사도신경에 담긴 교회론과 종말론을 비롯해 부활신앙과 성령, 성모 마리아 영성에 대한 명쾌한 풀이를 제시했다. 신학과 신앙의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2000년간 전해져온 사도신경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다. 차 신부는 "그동안 성경(「맥으로 읽는 성경」), 주님의 기도(「통하는 기도」), 향주3덕ㆍ복음3덕(「믿음 희망 사랑」) 참행복(「행복선언」)에 관한 책을 썼는데, 사도신경 집필로 그리스도교 보물인 7대 신앙유산(성경, 십계명, 참행복, 주님의 기도, 향주3덕, 복음3덕, 사도신경)이 완성됐다"면서 "그리스도인 윤리와 신앙, 영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게 해준 하느님 섭리를 느꼈다"고 말했다. 차 신부는 현재 평화방송TV에서 사도신경을 강의하고 있다. 방송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다. 한편 미래사목연구소는 5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도신경과 새복음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에서는 홍승모(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부, 한국평협 오용석(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무총장, 차동엽 신부가 각각 △성경의 요약으로서 사도신경 △본당 새복음화 프로그램으로서 사도신경 △믿는 이의 승리-사도신경의 현대적 적용을 발제한다. 이날 가수 장혜진(멜라니아)씨가 참석, 특별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접수 및 문의 : 031-985-2835, 미래사목연구소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