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인 욥의 십자가가 갖는 의미는[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6) 욥기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잘 설명해 준다. 레오 보나, ‘욥’, 유화, 188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욥기의 히브리어 유다교 타낙 성경 명칭은 ‘욥’이며,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히브리어 ‘욥’은 우리말로 ‘미움받다’, ‘증오하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과 그로 인해 시련을 겪는 욥의 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욥은 ‘돌아오다’는 뜻의 아람어 ‘아바’에서 유래하기도 해 ‘하느님께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또 욥기를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ΙΩΒ’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JOB’이라 표기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욥기’라고 표기하며 가톨릭 성경 분류표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해 놓았습니다. 욥기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의인이라고 여겨지지는 흠 없는 사람인 욥이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의 시험대에 올라 갖은 시련을 겪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신비를 들은 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모든 것을 이전 이상으로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욥기는 시련을 겪는 욥(1─2장), 욥과 테만 사람 엘리파츠,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초파르와의 대화(3─31장), 부즈 사람 바라크엘의 아들 엘리후의 연설(32─37장), 주님과 욥의 대화(38,1─42,6), 모든 것을 회복하는 욥(42,7-17)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고통을 겪는 한 의인에 대한 고대 민중 설화를 토대로 엮어진 책이라고 봅니다. 이 고대 민중 설화는 기원전 2000년대 말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말로 전승되다 기원전 11~10세기 사무엘-다윗-솔로몬 시대 때 히브리어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유다인들 중 어떤 이가 이 민중 설화를 토대로 당시 잘 알려진 수난받는 의인 욥 이야기(에제 14,14. 20 참조)를 토대로 욥기를 엮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욥기는 산문체와 운문체, 문화 배경과 종교 개념이 다양하게 드러나 단 한 번에 저술되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욥기에는 하느님을 ‘야훼’ ‘엘’ ‘엘로하’ ‘샷다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적어도 세 과정을 거쳐 엮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욥의 이야기가 말로 전해져 내려왔고, 다음으로 이 민중 설화를 다른 이야기와 합치는 중간 편집 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욥의 시련 이야기에 욥과 세 친구의 대화, 하느님과 욥의 대화, 욥기 28장의 ‘지혜 찬가’가 추가됐으리라 추정합니다. 끝으로 최종 편집자가 엘리후의 연설을 삽입해 욥기를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욥기가 엮어진 시기를 기원전 5~1세기 사이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욥기의 최종 편집자는 누구일까요? 성경학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 중 예레미야의 고백(예레 11,18-20; 12,1-4)을 잘 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렸던 시편이나 유다 임금들의 궁전에서 전해지던 잠언들을 외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욥기의 저자가 예레미야의 제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욥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품입니다. 욥기는 모세오경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유다인들에게 무엇이 지혜인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욥기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성’입니다. 욥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시련을 받았습니다.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어떤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하시고, 결국 고통을 넘어서는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종말론적 희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43쪽) 욥기는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욥기는 하느님의 권능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각별한 배려와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쳐줍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과 피조물들을 향한 선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욥기는 인간의 지식이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항구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더불어 지혜는 오직 하느님께 속해 있고 인간의 지식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성경학자 김정훈 신부는 욥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욥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드러내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뢰는 인간을 더욱 굳건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이끌었으며,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변함없는 신앙은 세상과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시서와 지혜서」 46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25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그리스도인의 사랑법](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13/3lZ1747115199239.jpg)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그리스도인의 사랑법이계철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주신 새 계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긴 고별사(13-17장) 안에서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십계명을 하나의 근본 계명으로 정리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4-35)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사랑의 새 계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라 말씀하셨지만, 언뜻 보면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당시 그리스 현자들도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쳤고, 구약성경에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나옵니다.(레위19,18) 유다인들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새 계명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박해하는 사람들과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해를 입히는 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랑이셨습니다.(마태 5,44; 루카 6,35)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을 위해 당신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에 근거하였습니다. 이 점이 세상이 말해왔던 사랑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새 계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에 대해,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방법과 사랑의 결과로 나누어 말씀해주십니다. 이에 따라서 복음을 묵상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의 새 계명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의 대상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 이전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사랑하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 안에는 배반자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에는 유다는 물론 모든 원수까지 그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 계명의 사랑은 모든 이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인간을 위해 수난과 고통과 죽음까지 기꺼이 내어놓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 방법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방법으로 새 계명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의 결과는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느님을 알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사랑하며 살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조건 없이 사랑하고서 자신은 잊히고 오로지 하느님만 드러나시게 하는 사랑입니다. 정리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포함한 모든 인류를 향한 드넓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목숨까지 내어주는 깊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주님 사랑의 증거자가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완성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처럼 목숨까지 내어놓을 만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계철 신부cpbc2025.05.13

시련 속에도 희생자 ‘부활’ 위한 유골 찾기는 계속된다[부활특집] 조세이탄광 2024년 9월 25일, 수몰사고 82년 만에 ‘새기는 모임’이 발굴해 개방한 조세이탄광 본갱도 입구. 013년 2월 2일 건립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도비’. 한반도와 지척인 일본 혼슈 최서단 야마구치현, 그 남서쪽 끝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11~13일 기자는 사흘 내내 매서운 바닷바람과 싸우며 이 적막한 모래사장을 찾았다. 84년 전인 1942년 2월 3일,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포함해 광부 183명이 수장된 조세이(長生) 탄광의 ‘흔적’을 찾아서다. 바로 배기·배수시설인 ‘피야(ピヤ, 영어 Pier에서 유래)’다. 바다 한가운데 솟은 원기둥 ‘피야’ 표면은 파도와 소금기에 짓무른 흉터로 야속한 세월을 드러내고 있었다. 석탄 1톤을 캐기 위해 10배가 넘는 바닷물을 빼내야 했던 해저 탄광에서 피야는 ‘심장’이자 숨통이었다. 피야 2기만이 차가운 바닷속에 희생자가 잠들어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본지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고통의 우리 역사를 마주했다. 함께 희생자를 진정한 부활로 승화시킬 수 있겠다고 여겼다. 이시다 카즈마(22)씨 우베의 차가운 바다, ‘피야’가 증언하는 비극 우베시가 2019년 이곳에 세운 안내판에는 “석탄은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큼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다”면서 “사고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역사가 있다”고 적혀 있다. 조세이탄광 희생자 4분의 3인 136명이 ‘한반도 출신’이라는 사실은 포함됐지만, 일제의 침략 전쟁에 강제 동원됐다는 진실은 없었다. 1942년 야마구치현 내 탄광의 조선인 채용률은 평균 9.3%. 반면 조세이탄광은 무려 75%를 넘어 ‘조선탄광’으로 불렸다. 잦은 누수로 무척 위험했기에 조선인을 투입한 것이다. 수몰 사고는 태평양 전쟁 당시 법을 어기면서까지 채굴량을 늘리려던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과욕이 부른 예견된 인재(人災)였다. 그들은 규정을 무시한 채 얇은 지층까지 파냈고, 갱도 천장을 받치는 석탄 기둥마저 깎아냈다. 결국 갱구 내부 천장이 무너져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안내판엔 빠진 내용이다. 이 무거운 바다를 홀로 응시하던 대학생 이시다 카즈마(22)씨는 “지난 1월 한일정상회담에서 희생자 유골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면서 “사실 제 또래들은 이 문제를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골을 기다리는 유족분들의 연세가 많으실 텐데, 양국이 우호적으로 문제를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82년 만에 열린 ‘바다 무덤’의 문, “어이, 들리나!” 역사의 아픔을 삼킨 바다 인근 육지 해안가. 피야가 정면으로 보이는 ‘갱구광장’에 조세이탄광 본갱도 입구가 흙탕물에 반쯤 잠긴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폭 2.2m, 높이 고작 1.6m였다. 84년 전 그날, 고향에 가족을 두고 끌려온 조선인 청년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은 이 캄캄한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갔다. 탄차 선로가 있어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날 좁은 길을 줄지어 움직였다. 하지만 바닷물이 천장을 뚫고 덮치던 순간, 회사는 고가의 기계가 망가질까 봐 갱구 문을 밖에서 잠가버렸다. 이들의 목숨은 기계 부속품보다 못했다. 사고직후 폐쇄돼 땅에 파묻힌 갱구를 찾아낸 주인공은 한국 유족과 연대해온 일본 시민단체였다. 올해 설립 35돌을 맞은 ‘조세이탄광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다. 2018년 유족들의 유골 수습 요구에 일본 정부가 ‘유골 위치를 알 수 없어 어렵다’고 변명하자 직접 발굴에 나섰다. 유골 한 조각이라도 나온다면 정부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시민 성금으로 중장비를 빌려 2024년 9월 24일 드디어 갱구를 처음 파냈다. 도면상 위치는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탄광의 신’을 모시던 신사의 콘크리트 기단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튿날 8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갱구는 희생자들의 영혼 같은 엄청난 바닷물을 토해냈다. 그때 ‘새기는 모임’ 운영위원 모리 노리후사(76)씨는 캄캄한 구멍을 향해 산 사람에게 말하듯 외쳤다. “어이, 들리나!” “저는 유골에 영혼이 깃들어 지금도 살아있다고 확신합니다. 추운 날 갱구에 오면 ‘이렇게 추운 날에도 일했겠구나, 정말 추웠겠어’라고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한여름엔 ‘이렇게 더울 때 매일 석탄을 캤구나’ 하고요.” 파낸 흙더미는 ‘피야가 보이는 언덕’이 됐고, 광장에는 발굴된 파편들이 전시됐다. 배 파편을 이용한 한글 안내판도 모리씨 작품이다. 수시로 현장을 찾는다는 그의 눈빛엔 깊은 연민이 서려 있었다. 의로운 대만 잠수사의 죽음 “끝까지 완수해 주세요” 갱구는 열렸지만, 안쪽 200m 지점이 붕괴돼 막혀 있었다. 유골을 찾으려면 피야를 통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 갱도에 진입해야 했다. 수중 조사 역시 시민 모금으로 성사됐다. 마침내 지난해 8월 한국인 잠수사 김경수·김수은씨가 두개골 등 첫 유골을 수습했다. 석탄처럼 검게 변했으나 형태는 온전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들은 추가로 4구의 시신도 확인했다. 이어 올해 2월 6일 의로운 일에 동참한 다국적 잠수팀이 두 번째 유골 수습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적 이튿날, 대만 출신 잠수사 쉬웨이(57)씨가 수중 조사 중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며 조사는 무기한 중단됐다. 비통함에 빠진 ‘새기는 모임’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지난 3월 6일 대만 장례식에서 쉬씨의 부인이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76) 대표에게 건넨 당부였다. “남편이 자원봉사에 참여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의미있는 프로젝트가 멈춰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부디 남편의 뜻을 이어 끝까지 이 일을 완수해 주십시오.” 꺾이지 않는 욥과 나무, 이제는 일본 정부가 답할 때 쉬씨 장례식에 다녀온 모리씨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수중 조사를 두고 여론이 갈리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위험하니 그만두라’는 여론이 많아져도 우리 바람을 관철해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중요한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의 화해’입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양국의 미래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성경을 자주 읽는다며 ‘욥기’를 언급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새기는 모임’과 유족들이 욥과 같은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욥기에 ‘나무는 잘리고 뿌리가 늙어도 물기를 느끼면 싹이 트고 묘목처럼 가지를 뻗는다’는 구절이 있죠. 그 말씀을 새기고 나아갈 겁니다.” 모리씨는 “안전하게 유골을 꺼낼 확실한 공법이 있다. 갱도 안의 물을 다 빼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비용적으로 민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국가의 몫이기에 생명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일본 정부가 책임지고 한국 정부와 공동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개의 비석 - ‘감사’와 ‘사죄’, ‘순난자’와 ‘희생자’ 갱구광장 인근 옛 탄광 귀빈용 식당 자리에 비석이 하나 있었다. 사고 40주기인 1982년 세워진 ‘조세이탄광 순난자(殉難者)의 비’다. 사고 직후 은폐됐던 비극을 1976년 처음 세상에 알린 야마구치 다케노부(1931~2015, ‘새기는 모임’ 초대 대표) 선생의 논문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비석에는 치명적인 침묵이 존재한다. 사망자 74%가 조선인인데도 ‘조선인’이나 ‘강제동원’이란 단어가 쏙 빠졌다.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감사’를 담아 ‘국가를 위해 몸 바친 행위(순난)’로 포장했다. 비석은 이렇게 끝난다. “영원히 잠들라, 편안하게 잠들라, 탄광의 사나이들이여.” 반쪽짜리 위령비를 등지고 도보로 약 10분, ‘새기는 모임’이 일본인의 사죄를 담아 2013년 조성한 ‘추도광장’에 닿았다. 한일 모든 희생자의 이름을 담은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도비’가 자리한 곳이다. 피야를 본뜬 추도비 양쪽 기둥에는 ‘강제동원 한국·조선인 희생자’와 ‘일본인 희생자’라고 새겨졌다. 이 광장은 조선인에 대한 폭력의 진상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조세이탄광 현장견학에서 ‘새기는 모임’ 운영위원 모리 노리후사씨가 참가자들에게 사고 당시 정황을 설명을 하고 있다. 본명을 찾아주며 시작된 연대, 남북한과 일본이 함께 이어가야 일본 측 기록상 ‘창씨개명’이 아닌 조선인 전원의 ‘본래 이름’을 찾아 추도비에 새기는 것. 이는 1991년 ‘새기는 모임’ 발족 때부터의 목표였고, 마침내 결실을 이뤘다. 유족을 수소문해 남북한에 보낸 118통의 편지는 “덕분에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처음 알았다”는 답장 17통으로 돌아왔다. 한국에도 유족회가 결성돼 35년간 우정을 잇고 있다. 추도광장에서 만난 ‘새기는 모임’의 유일한 재일동포 운영위원 김정원씨의 눈빛은 남달랐다. 1980년대 도쿄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강제동원 역사를 좇던 그는 1990년 재일동포들의 증언집을 펴냈다. 야마구치현으로 이사 온 뒤에도 강제동원 역사를 공부하다 1995년 ‘새기는 모임’에 합류했다. 그는 추도광장 조성 일화를 들려줬다. “부지를 찾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마침내 적합한 곳을 찾았을 때, 일본인 회원 5명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댔죠. 모자란 돈은 제 친구 어머니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도 헌신하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며 십시일반 보탰죠.” ‘새기는 모임’은 추도비 건립 이듬해인 2014년 ‘희생자 유골을 찾아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새 목표로 세웠다. 김 위원은 “희생자 중 오늘날 북한 출신도 5명 있고, 최근 강원도 창도군에 사는 유족도 찾았다”며 “일본과 북한이 미수교 상태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유골을 찾아 돌려보내는 것은 인간 존엄 회복과 한반도 전체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 야마구치는 보수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활동에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김 위원은 “꾸준히 진정성 있게 지역 사회와 관계를 맺어온 덕분”이라며 “조선인을 동정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했다. 20대 청년의 용기 있는 목소리, 희망을 잇는 세대 2030 젊은 일본인 회원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점은 ‘새기는 모임’의 가장 큰 희망이다. 3월 13일 조세이탄광 현장견학에도 여러 청년이 참여했다. 구마노 고에이(26)씨는 도쿄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역사적 각성은 뜻밖에도 ‘K팝’에서 시작됐다. 고교 시절 한국 문화에 빠져 대학생 때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와 재일동포를 만나며 역사의 무게를 깨달은 그는 한국 서강대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갱구를 보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다 아래서 조선인 광부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조차 안 됩니다. 일본인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일본 정부에 유골 수습과 반환을 계속 촉구할 것입니다. 한국 분들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나서도록 더 강하게 요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일본을 변화시킬 유일한 길” 이노우에 요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대표 인터뷰 | 이노우에 요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대표 35년째 조세이탄광의 비극을 알리는 데 투신해온 이노우에 요코(76) ‘새기는 모임’ 대표. 창립회원인 그는 2014년 제2대 대표가 돼 사고 82년 만에 갱구를 열고, 첫 유골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왜 일본인으로서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물었다. “제 아버지는 중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국가의 든든한 보상 덕에 저는 대학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하지만 일제에 강제로 끌려와 차가운 바다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은 구출은커녕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불공평함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평생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가 강제 동원의 뼈아픈 역사를 안 것은 10대 시절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제 고향 나가노현 역시 조선인 유골이 야산에 버려진 강제 노동현장이란 걸 알았습니다. 주변에 일본 이름을 쓰던 재일조선인 친구들이 얼마나 속으로 마음 아파했는지 모른 채 지내왔던 겁니다. 일본 교육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이사 온 야마구치현에도 조선인 강제동원의 비극이 서려 있었다. 재일조선인 인권운동을 하다가 ‘새기는 모임’ 창립회원이 됐다. 그가 이 긴 싸움에 인생을 바친 이유는 명확했다. 견고한 ‘망각의 벽’을 깨기 위해서다. “일본 사회는 정부와 국민 모두 과거의 가해 사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긴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조세이탄광의 비극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널리 알리고, 일본이 저지른 죄를 밝혀나가는 작업이 꼭 필요했습니다.” 조세이탄광을 ‘생명’의 과제로 바라보는 이노우에 대표는 한국과 일본 가톨릭교회가 보여준 연대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가톨릭교회에서 현장을 찾아 기도해주시고 큰 기부를 해줘 정말 기뻤습니다. 특히 한국 주교회의가 보내준 1000만 엔은 한 번에 이렇게 큰돈을 받는 게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이 숭고한 일에 더 많은 종교계가 함께 나서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기는 모임의 모든 활동은 개인후원으로 이뤄진다. 이노우에 대표는 “6000명 넘는 일본·한국 시민들이 6000만 엔에 가까운 큰돈을 모아줬다. 국경을 넘은 연대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바다를 오간 30여 년의 세월은 켜켜이 쌓인 ‘미움’을 ‘화해’로 바꾸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창기부터 매년 한국 유족들을 일본으로 초대해 숙식을 함께하며 슬픔을 나눴던 이노우에 대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일화를 꺼냈다. “‘평생 일본을 원망해 일본 제품은 사지도 않았다’던 유족분이 훗날 한국에 찾아간 제게 따뜻한 커피를 타주시며 ‘이노우에씨와 교류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유족분은 ‘아버지를 죽게 한 일본은 원수의 나라였지만, 아무 상관없는 일본인들이 유골을 찾아주려 애쓰는 모습에 그 원망이 사라졌다’고 하셨죠. 그 말씀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이노우에 대표는 6차례나 수중 조사를 한 끝에 마침내 2025년 8월 첫 유골이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정말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사죄의 마음과 그 모습 그대로 기다려주셨다는 감사함에 가슴이 무척 먹먹했다”고 회고했다. 이노우에 대표는 유골이 가진 강력한 ‘진실의 힘’을 믿는다. 당장에라도 일본 정부가 유골 DNA 감정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 없는 유골 자체가 일본 식민 지배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억울한 유골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가해 역사를 똑바로 마주하는 과정은 일본 사회를 변화시킬 유일한 길입니다. 바다 아래 남은 유골 한 구 한 구가 세상에 나올 때마다 일본 정부는 더는 진실에서 도망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조세이탄광의 진실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결코 혐오나 차별을 일삼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우리는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6.04.01

평신도,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1. 이 땅의 평신도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전교회장과 남학생’, 유리건판, 1911년 하우현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2>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 랜턴 슬라이드, 1931년 초 원산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르심 받은 평신도 ‘평신도’는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이다. ‘평신도 사도직’은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신앙인답게 살아가며 삶의 자리를 복음화함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이처럼 평신도는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밝히고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했다. 아울러 평신도는 성직자·수도자와 함께 교회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평신도는 단지 포도원 일꾼이 아니다.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과 함께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가지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평신도에게 있어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근원과 출발점은 바로 ‘세례성사’다.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은 교회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 평신도에게 부여된 교회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선 자신의 신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를 받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신자들을 재교육하고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는 전교회장들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사진 1> “이런 열심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종교 운동이다. (⋯) 여러 사람이 보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리서를 베껴 써서 다른 이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힘을 보탰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95~396쪽)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교회는 100년 가까이 이어진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로 파괴된 교회를 재건했다. 이 일을 맡아 중추적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전교회장들이다. 그들은 본당 신부를 대리해 공소를 찾아다니며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고, 지역 선교에도 앞장섰다. 1931년 초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함경도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가 원산성당에서 열렸다.<사진 2> 이 회의를 진행한 원산본당 주임 파비아노 담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원산의 신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주일에 신자들을 어떻게 다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이다. 원산의 임시 성당은 600명도 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성당인데 미사마다 1000명 이상 몰려온다. 교중 미사 때는 제대 주위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앉아 있어서 사제는 제대 앞에서 꼼짝도 못 할 지경이다.”(「분도통사」 563쪽) 성 베네딕도회 남녀 선교사들이 학교와 진료소 등을 운영하며 선교에 큰 성과를 이뤘지만, 전교회장들의 헌신적 공헌 역시 한몫을 했다. 평신도 모두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 ‘가정 성화·복음화’이다.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배우고, 복음 선포와 인간 존엄성·공동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영적 성숙과 성화를 익혀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이 ‘가정 기도’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선교사에게 큰절하는 어린이’, 유리건판, 1911년 4월 갓등이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자직·왕직에 참여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1일 경기도 왕림 갓등이성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성당 마당에서 선교사에게 큰 절로 예를 표하는 한 소년을 촬영했다.<사진 3> “갓등이 마을의 선교 활동은 활기찼다. 방마다 친근감과 호기심으로 넘쳤다. 소녀들에게도 인사할 기회를 주려고,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관습이 지엄하여 방 안에 사내아이가 하나라도 있으면 소녀들은 함부로 범접하지 못했다. 이제는 소녀들이 문과 창문으로 밀고 들어와 툇마루 아래까지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곧 개구쟁이 녀석들이 몰려와 제자리를 내놓으라고 우기는 통에 소녀들은 다시 물러났다. (⋯) 집집마다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릴 때도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 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사제는 셋인데 제대가 하나뿐이라 이른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지만, 좁은 경당은 벌써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미사 내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39~241쪽) 평신도는 사제 양성 못지않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교회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평신도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윤리 기준을 식별할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배워야 한다. 평신도는 그 수와 역할을 볼 때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회 구성원이다. 평신도 직분은 말할 나위 없이 숭고하다. 평신도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왕직에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교회는 평신도에게서 세상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평신도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지도 아래 성경과 교리·교회 가르침을 교육받고 양성될 때 더욱 성숙하고 활기있게 자신을 성화하면서 세상을 그리스도화하고 복음화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 아울러 평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끈 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감사의 표현은 교회 가르침을 생활 속에 실현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성화된다. <사진 4> ‘신자 집을 방문한 사우어 아빠스’, 랜턴 슬라이드, 1921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다양한 차림의 아이들’, 랜턴 슬라이드, 1920년대 용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해야 초대 원산대목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는 신자 가정을 방문하는 걸 즐겼다.<사진 4> “예비 신자들이 입을 모아 독특한 가락으로 교리문답을 낭독했다. 꼭 노래처럼 들렸다. 안드레아 신부가 유창한 한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 모두 조용히 경청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인간 영혼의 본질과 운명, 구원,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대해 강의했다. 이따금 하는 질문에도 안드레아 신부가 답변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교리 수업이 끝났다. 집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고도 이튿날 아침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남자 몇이 돌아가지 않고 조용히 교리문답서를 넘기고 있었다. 개신교 신자였다.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닌지는 지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분도통사」 283쪽) 교회는 청소년·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화의 주역으로 교회를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권고한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첫째 사도가 되어야 하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을 고려하여 자기 자신들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들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12) <사진 5>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들과 신앙의 은총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교회의 삶이다.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 선포의 가장 효과적 형태는 다름 아니라 매일매일의 복음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복음에 일치하는 일관성 있는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1.05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은 ‘지구 위한 교회 재건’”가톨릭 에코포럼, 「찬미받으소서」 10주년 잠피니 신부 초청 강연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 아우구스토 잠피니-데이비스 신부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10주년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회칙 핵심·시대적 의미 조명… 교황의 생태·연대 정신 성찰 통합 생태론과 연민·친절·대화의 문화 등 신앙인 역할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비롯한 문헌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유산은 무엇일까. 같은 아르헨티나인으로 교황청에서 5년간 근무하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분을 맺은 사제와 함께 이를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 아우구스토 잠피니-데이비스(아르헨티나 산이시드로교구) 신부 특별강연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는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을 맞아 잠피니 신부를 초청, 제55회 가톨릭 에코포럼을 진행했다. 잠피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은 우리 공동의 집(지구)을 위한 교회의 재건”이라며 “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받은 주님의 부르심, 곧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 위에 새겨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동체 생활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했던 성인의 부르심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직을 정의하는 3개 문헌에서 강하게 울려 퍼진다”며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피조물을 통한 하느님 찬미’, 회칙 「모든 형제들」은 ‘보편적 형제애의 꿈’, 권고 「복음의 기쁨」은 ‘시노달리타스·친교·사명·돌봄을 통한 지속적인 교회 쇄신’의 시작점”이라고 설명했다. 잠피니 신부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취하고 버리는 문화 △존엄성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 시스템 △연약한 이들과 노인과 태아 그리고 지구를 외면하는 세계화된 무관심을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짚었다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오염되고 어두운 상처투성이 세상에 복음이 어떤 빛을 제시하는지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사회교리 방법론을 따르며 성경과 전통에서 깊이 있는 통찰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공동선과 보조성·연대성 그리고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상기시킨다”며 “단지 가톨릭뿐 아니라 전 세계 쇄신을 위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편 교회와 세계에 유독 당부한 두 가지는 △모든 피조물과의 교감 속에서 인간을 중심에 두는 통합 생태론 △연민·친절·대화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만남의 문화였다. 잠피니 신부는 “이는 우리 신앙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핵심”이라며 “신앙인으로서 이런 원칙을 통해 대전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한국 교회는 독특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평신도 순교와 선교적 증언에 기반을 둔 깊은 전통, 사회정의와 민주화에 적극 참여한 전통, 젊은이와 수도공동체 사이에서 확산하는 생태적 의식”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 정신의 동반자로서 함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자”고 당부했다. 잠피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기 전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그가 “과학자도 우리 편이고, 관련 법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이가 노력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탄식하자 교황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기회가 된다. 위기일수록 가톨릭교회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윤리(에토스)다. 그 본질은 영성이며, 제도화된 종교와 다른 이 영성은 비신자나 다른 종교인과도 나눌 수 있다. 영성이야말로 생태와 사회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이다.” 잠피니 신부는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 후 첫 강복에서 ‘악은 결코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을 듣고 기뻤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말한 ‘불의가 무적은 아닌 것이다’(「찬미받으소서」 74항)를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5.05.21

신앙 안에서 기쁘십니까[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98) 기뻐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신앙에서 기쁨이 없다면 어떨까?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처음 내신 문헌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1항)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기쁨이다. 기쁨 없이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 기쁨 없이는 신앙을 살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가? 성경은 구원을 발견한 이들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다시 발견했을 때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참조) 예수님의 탄생에 큰 기쁨을 맛본 이들은 길 위의 목자들이었고, 나이가 많았던 시메온과 한나였다.(루카 2,15-20; 25-39 참조)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 선언을 통해 하느님 자녀로 사는 기쁨으로 모든 이를 초대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예수님의 비유 속에도 기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기쁨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하느님 나라를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이며(마태 13,44 참조), 회개하는 죄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하느님의 기쁨이기도 하다.(루카 15,1-10 참조)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루카 15,11-32 참조) 그 기쁨은 작은아들이 저지른 배은망덕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것이었다. 물론 그 기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런데 가장 큰 기쁨은 돌아가셨던 주님께서 되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이 아니었을까.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 그분 앞에서는 이제 죽음도 힘을 잃고 말며,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신다는 것이야말로 제자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세상 만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수난과 죽음이 배어있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다시 보며 기뻐할 것이고, 그때에는 그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기쁨은 수난과 죽음을 관통한 다음에, 곧 수난을 통해 자신을 죽인 다음에 주어지는 기쁨이다. 신자들과 부활 체험을 나눌 때마다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삶에서 닥치는 고통과 시련은 근심과 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신앙 안에서 견디어낼 때 우리는 더 높이 솟아오르는 희망을 발견하며, 고통과 시련이 나를 죽이기 위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진정한 기쁨은 나의 의지나 뜻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에 나의 삶을 맡겨드릴 때 주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도 있다. 주님의 일에도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따른다. 그렇지만 주님께 의탁하며 끝까지 감내할 때, 내 손으로 일하지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열매가 맺히는 경험이 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지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오늘 어떤 기쁨을 좇아 살고 있는가? 한민택 신부cpbc2025.05.06
![[과학과 신앙] (6)기후 변화와 바벨탑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15/PWW1728980105959.jpg)
[과학과 신앙] (6)기후 변화와 바벨탑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은 ‘농가의 결혼식’ ‘눈 속의 사냥꾼’ 같은 농촌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와 성경을 모티브로 한 ‘바벨탑’으로 유명하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은 교만해진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 쌓은 탑으로, 창조주의 진노로 인해 언어가 달라져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고 탑의 건설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브뤼헐의 ‘바벨탑’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가 잘 표현된 명작이다. ‘바벨탑’을 보며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지금, 인류는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교훈을 잊고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3년 11월 WMO(세계기상기구)는 그 해 발생한 엘니뇨 현상이 다음 해 4월까지 지속되리라 전망했는데, 실제로 2024년은 세계 여러 곳이 엘니뇨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허덕였다. 중국 신장의 경우 지표면 온도가 70도를 넘은 곳도 있었다. 2024년 우리나라 여름철 열대야 일수는 서울의 경우 39일이었으며, 6월∼8월의 평균기온은 25.6도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엘니뇨(El Niño)는 스페인어로 어린 남자아이를 뜻한다. 엘니뇨는 적도∼위도 30도에서 부는 무역풍의 약화로 발생하는데, 태평양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며 1~2년에 걸쳐 해수의 이상 저온현상인 라니냐로 전환된다. 엘니뇨는 태평양 동쪽에 어획량 감소, 강수량의 증가 및 홍수를 야기하고, 서쪽에는 고기압 형성으로 가뭄과 산불 발생 빈도를 증가시킨다. 특히 올해 인도네시아와 호주 북부 쪽에 산불 피해가 컸다. 라니냐(La Niña)는 여자아이란 뜻으로 엘니뇨와 반대로 무역풍이 강해져서 발생하며 태평양 서쪽에는 강수량 증가, 동쪽에는 가뭄과 산불을 일으킨다. WMO는 2024년 하반기부터 라니냐가 시작되어 겨울철 한파가 지구 곳곳을 강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지구 생태계, 농업 생산성 및 세계 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 태양 에너지의 변화, 화산폭발 같은 자연적 원인이고 둘째는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 도시화와 산림 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이다. 특히 현대 산업 사회에서 무절제한 자원 소비, 환경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은 기상이변을 가속시키는 주범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진보하고 기술이 정교해짐에 따라 공학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했으며 첨단 유전자 지식으로 무장한 인간은 생명현상의 신비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산업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물들에 자아도취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면 인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또 다른 바벨탑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철학 없는 과학의 진보는 모래 위에 쌓는 성과 같고 인간성과 인류애가 결여된 기술발달은 빛 좋은 독배(毒杯)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산업화가 브레이크 없이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도록, 인간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그리고 합리적 이성이 빨간색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전성호 베르나르도cpbc2024.11.20

성모 발현 평화의 언덕에 봉헌한 로카르노 ‘마돈나 델 삿소’[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5. 스위스 로카르노 마돈나 델 삿소 성지 1480년 성모 발현 전승 위에 세워진 마돈나 델 삿소 성지. 스위스 티치노 지역을 대표하는 성모 신심의 중심지로, 해발 370m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마조레 호수와 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와 순례자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장소이다. 현재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가 순례 사목을 펼치고 있다. 제네바·바덴바덴·에비앙⋯. 유럽의 휴양 도시는 종종 전쟁과 평화의 분수령이 되는 외교 무대였습니다. 온천이나 호수 주변 평화로운 풍광, 평소 잘 갖추어진 숙박시설과 회의장 인프라는 여러 나라 대표가 모이기에 이상적이었죠.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1925년 유럽 열강이 모여 ‘로카르노 협정’을 맺었던 로카르노도 그런 장소입니다. 스위스 땅이지만, 언어와 문화는 이탈리아권에 속하는 로카르노는 알프스의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마조레 호수와 야자수가 자라는 온화한 기후로 이미 19세기부터 유럽인들에게 ‘알프스 속의 휴양지’로 알려졌지요. 하지만 로카르노는 단순히 휴양지만은 아니었습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맞닿은 지역이어서 로마 제국 시절부터 알프스와 지중해를 잇는 교역의 도시였지요. 중세에는 밀라노 공국과 신흥 스위스 연방 사이 국경 요충지로 발전합니다. 중세에는 밀라노 공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스위스 땅이지만 언어와 문화는 북부 이탈리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세 밀라노를 지배하던 비스콘티 가문은 공국의 세력을 팽창하며 1386년 권력의 상징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대성당’인 거대한 밀라노 두오모를 건립합니다. 유럽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가장 큰 대성당이 세워지면서 성모 신심이 밀라노 공국의 정체성과 정치적 상징 속에 자리 잡지요. 이러한 흐름은 15세기 후반 로카르노에서 일어난 기적과 맞물리면서 북이탈리아 전체에 성모 신심이 고양됩니다. 로카르노 언덕 오르셀리나에 자리한 성모 승천 성당. 1891 ~1912년 성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수도원을 확장하고, 성당 정면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다. 1919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성모 승천 순례 성당. 17~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면서 프레스코 벽화와 제단화로 성당을 장식했다. 주 제대의 성모자상은 발현 전승과 연결된 기적의 상으로, 1880년 레오 13세 교황이 천상 모후관을 봉헌했다. 주 제대 주변의 금빛 장식과 바로크 양식의 기둥, 천사의 조각은 이곳이 성모 신심의 중심지를 드러낸다. 호숫가 언덕 바위에서 발현한 성모 1480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였습니다. 로카르노의 프란치스코회 바르톨로메오 피아티 다 이브레아 수사가 언덕 위 바위의 환한 빛 속에서 성모님을 목격합니다. 그는 이 체험을 공동체에 알리고는 바위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은수생활을 시작했죠. 당시 로카르노는 국경 도시로 불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밀라노 공국과 스위스 연방의 갈등, 전쟁과 세금 부담, 농민과 시민의 불안정한 삶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 ‘바위의 성모님’, 이탈리아어로 ‘마돈나 델 삿소(Madonna del Sasso)’ 발현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1487년 언덕 정상에 중재자이신 성모 소성당과 통고의 성모 소성당이 세워졌고, 1502년에는 산기슭에 주님 탄생 예고 소성당이 봉헌됩니다. 1516년부터 로카르노는 스위스 영토가 됐지만,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도 가톨릭 정체성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특히 북이탈리아의 독특한 순례 성지인 거룩한 산, 즉 ‘사크로 몬테(Sacro Monte)’ 전통과 맞물리면서 성지는 본격적으로 확장됩니다. 산이나 언덕에 일련의 소성당들을 지어 성경 속 사건이나 성인의 삶을 재현하는 성지를 조성하는 전통입니다. 아무튼 17~18세기에 걸쳐 로카르노 도심에서 마돈나 델 삿소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고, 언덕길 곳곳에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작은 경당을 순차적으로 만들면서 성지가 도심 아래까지 확장됩니다. 특히 정상의 중재자 성모 소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성모 승천 성당으로 화려하게 개축됐고, 19세기에는 스위스 남부 전체를 대표하는 성모 성지로 자리 잡습니다. 마돈나 델 삿소 십자가의 길과 푸니쿨라. 17세기부터 언덕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면서 수난의 장면을 묵상할 수 있는 총 12채의 경당이 순차적으로 세워졌다. 전통적인 14처와는 차이가 있지만, 마지막 장면은 성당 상부 예배 공간과 연결돼 전체 묵상 여정을 완성하도록 구성되었다. 협궤 케이블 열차인 푸니쿨라가 성지까지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 거룩한 산으로 로카르노 중앙역에서 시내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다 보면, 언덕 위 하얗게 빛나는 성지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오늘 순례의 목적지인 마돈나 델 삿소입니다. 노선버스나 케이블 열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서 오르기를 권합니다. 계단과 완만한 경사로가 섞여 있고 중간중간 예수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열두 경당이 있어 길을 오르며 마음을 정화하는 순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덕 위에 오르면 푸른 숲과 어우러진 마조레 호수와 로카르노 시내, 마지아강 삼각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안내문의 ‘숨 막히는 전망’이라는 표현 그대로입니다. 붉은 지붕 위로 높은 종탑과 옅은 붉은색 벽체, 성지의 핵심인 성모 승천 성당의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웅장합니다. 측면 제대 제단화와 도나티 형제가 제작한 목조 조각상군 ‘비탄’. 브람반티노의 ‘이집트로의 탈출’, 안토니오 치세리의 ‘그리스도의 매장’, 베르나르디노 디 콘티의 ‘주님 탄생 예고’ ‘성모 승천’ 제대화 등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통고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각이 성당 곳곳에 있다. 성모 통고와 그리스도 수난의 체험 공간 성모 승천 성당 내부는 주 제대를 중심으로 한 장방형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측면 제대, 스투코 장식과 프레스코가 한데 어우러진 전형적인 바로크 성당입니다. 주 제대에 모셔진 성모자상은 15세기 후반 제작된 목조 조각상입니다. 발현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는지는 모르지만, ‘기적의 상’으로 공경받아 왔습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는 19세기 이후 새로 설치된 겁니다. 아치형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모 탄생과 승천을 주제로 하고 있어 주 제대 기둥과 천사 조각상이 이곳이 성모 성지임을 드러냅니다. 측면 제대와 가대석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묵주 신비와 관련된 도상들을 볼 수 있지요. 또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성모님 삶 등 복음의 주요 장면이 성당 공간 전체에 펼쳐져 있습니다. 로카르노 출신 도나티 형제가 제작한 목조 조각상군 ‘비탄’도 인상적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시신을 둘러싼 성모님과 제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깊은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1925년 로카르노에서 꽃 핀, 전쟁이 아니라 대화라는 희망을 보여준 ‘로카르노 정신’은 짧은 봄날과도 같았습니다. 10년도 되지 않아 전체주의의 마수에 휩쓸리고 말았죠. 극우가 대두하고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지금 그 정신이 다시 꽃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흔들리는 외적 평화가 아닌, 세대를 넘어 이어질 참된 평화를 주시길 청합니다. <순례팁> ※ 밀라노에서 로카르노까지 기차로 2시간(벨린초나 경유), 자동차로 1시간 45분. 역에서 십자가의 길을 거쳐 성지까지 도보로 30분. 성지까지 버스(No.3)로 15분. 내려오는 길에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좋다. ※ 순례 성당 미사 : 주일과 대축일 7:15·10:00·11:00·17:00, 평일 7:00(토)·17:0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9.30

무릎 꿇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7. 기도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묵주를 든 두 소녀’, 유리건판, 1910년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십자성호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오늘 하루 주신 모든 은총과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은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전 존재가 십자가와 하나됨을 고백하고, 타인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을 증거한다. 가장 짧고도 명료한 십자성호 기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나를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심을 절로 드러낼 뿐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로 모든 이를 구원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의 도량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이다. 주님께서 기도의 완전한 본보기이시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자주 고독 속에서 은밀히 기도하셨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절대적 확신과 사랑, 순명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생생하고 꾸준한 믿음,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촉구하시며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라고 권고하신다.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은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확장되어 가는 그만큼, 그리스도다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차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65) 이 주님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 날부터 ‘한자리에 모여’(사도 2,1)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 1,14) 신앙생활을 성장시켜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성찬례에 참여’하고 ‘성사 생활과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진 2>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년’,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 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어린이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을 방문해 ‘묵주를 든 두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사진 1> 사진 파일에는 ‘1910년대’라고 적혀있지만, 두 소녀의 사진 속 배경인 한옥 성당과 벽돌담이 내평성당과 흡사해 아마도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내평성당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많은 풍속 사진을 담을 때 촬영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두 소녀는 다소곳이 묵주를 쥐고 있다. 기도하는 손은 언제 봐도 거룩하고 아름답다. 20세기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손이 얼굴 다음으로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손이 개인의 내·외면의 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손을 주신 이유는 그 안에 영혼을 들고 다니기 위함’이라는 교회 속담도 있다. 묵주를 다소곳이 쥐고 있는 두 소녀의 손은 ‘겸손’을 드러낸다. 겸손은 기도의 바탕이다. 교회는 겸손을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요소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신자들은 곤경과 위험이 닥칠 때 성모님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1920년대 만주땅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와 소년을 촬영한 필름 원판이 있다.<사진 2·3> 삼원봉성당은 1909년 5월 1일 훗날 초대 대전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는 라리보 신부가 첫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사목활동을 펼친 유서 깊은 신앙 공동체다. 1923년부터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았고,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가 이곳 삼원봉 출신이다. <사진 4>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 랜턴 슬라이드, 1927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무릎 꿇음은 극명하게 겸손 드러내는 자세 “삼원봉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면, 매일 저녁 성당에 모여 공동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녀 학생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선창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짧지 않은 저녁기도를 쉽게 따라 익힌다. (⋯) 신자들이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한국 교회 초창기를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본당 공동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하르트만노 에벌 신부, 1926년 「삼원봉 본당 연대기」 중에서) 삼원봉은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곳이다. 포도주와 성혈이 얼어 촛불로 성작을 데워가며 미사를 지내야 했다. 사진 속 소년소녀들의 모습에 그 추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것보다 더 극명하게 겸손을 드러낸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 행동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표현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이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703)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사진 4> 은 1927년에 촬영됐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알찬 시간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 역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육신과 영혼의 눈길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고 그분께 마음을 기울여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 이 경청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기도 중에 ‘예’(Amen)라고 응답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Fiat)라는 순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기도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사랑에 일치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동반됨을 잊지 말자.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9.30

제6대 마산교구장에 이성효 주교 임명주한 교황대사관 오후 8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성효 주교를 마산교구장으로 임명하셨다” 발표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리노, 67) 주교가 21일 제6대 마산교구장에 임명됐다. 주한 교황대사관은 이날 오후 8시(로마 시각 낮 12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성효 주교를 마산교구장으로 임명하셨다”고 발표했다. 임명 소식은 교황청 공식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발표됐다. 마산교구는 2022년 8월 27일 배기현 주교의 사임으로 현재까지 신은근 신부가 교구장 서리로 교구장을 대리해왔다. 이성효 주교는 1957년 진주에서 태어나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 주교는 1980년 2월 아주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마치고 1987년 수원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 독일 트리어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후 1993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2000년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에서 보좌로 첫 사목을 시작한 이 주교는 2001년부터 3년간 오산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사목부장, 영성관장, 교무처장,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수원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이성과 신앙연구소장을 맡았다. 2011년 2월 7일 수원교구 보좌주교이자 투리스 타말레니 명의주교로 임명되어 그해 3월 25일 주교품을 받았다. 2011년부터 수원교구 총대리를, 2014년부터 교황청 문화교육부 위원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생명운동본부장과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현재는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이 주교의 저서로는 「선포와 봉사」(2003), 「교부학 인명(공저)」(2004)이 있으며, 번역서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인내론」, 「교부들의 성경주해 : 신약성경Ⅷ」(2015), 「4차 산업혁명과 인류의 미래」(2019) 등이 있다. 마산교구는 1966년 2월 15일 부산교구에서 분리돼 설립됐다. 초대 교구장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교구는 경남 거제시, 사천시, 진주시, 창원시, 통영시 전역, 김해시·밀양시 일부, 거창군, 고성군, 남해군 등 경상남도 서부 지역을 관할한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 따르면, 주교좌 양덕동성당을 비롯해 본당 74개, 공소 49개, 사제 237명, 신자 18만 2662명(복음화율 7.7%)을 두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 약력 이성효(리노) 주교 1957년 7월 6일 경남 진주 출생 1976년 2월 수원 고등학교 졸업 1980년 2월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3 - 198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1985 - 1987년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졸업 1987년 8월 - 1992년 2월 독일 트리어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부학 석사 1992년 4월 9일 사제 수품 1992년 4월 - 1993년 1월 수원교구 호계동본당 보좌 신부 1993년 4월 - 2000년 6월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 교부학 박사 2001년 1월 - 2003년 9월 수원교구 오산본당 주임 신부 2001년 3월 - 2003년 6월 수원가톨릭대학교 강사 2003년 9월 30일 - 2011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2004년 12월 9일 - 2006년 5월 1일 수원가톨릭대학교 사목부장 겸 영성관장 2006년 5월 1일 - 2006년 12월 14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2006년 5월 1일 - 2008년 12월 11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무처장 2006년 6월 1일 - 2010년 7월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장 2008년 6월 - 2010년 9월 한국가톨릭신학학회 편집위원장 2008년 12월 - 2010년 7월 수원가톨릭대학교 이성과 신앙연구소장 2010년 9월 - 2011년 2월 7일 안식년 2011년 2월 7일 수원교구 보좌주교 임명(투리스 타말레니 명의주교) 2011년 3월 25일 주교 수품 2011년 3월 26일 수원교구 총대리 임명 2012년 3월 14일 - 2017년 10월 18일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장(생명윤리위원회 위원) 2012년 3월 14일 - 2017년 10월 18일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위원 2014년 3월 29일 - 현재 교황청 문화교육부(전 문화평의회) 위원 2017년 10월 18일 - 2024년 10월 14일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 2017년 10월 18일 - 2024년 10월 14일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2018년 6월 26일 - 현재 수원교구 제1대리구장 2024년 10월 15일 - 현재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2024년 10월 15일 - 현재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 2024년 12월 21일 마산교구장 임명 신문취재팀 이지혜2024.12.21

인간은 짝을 찾아나서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6. 고독 구약 성경의 창조 설화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창세기 2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보면 주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사람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빼내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러자 사람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라고 기쁨에 넘쳐 외친다. 이 이야기에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관련해 실존론적으로 매우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나중에 둘로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에게서 나온 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 자기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존재로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자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존재다. 인간의 고독은 사회관계망 혹은 인격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고립이나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처해 있는 근원적인 실존적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고독하여 찾아 나서는 타자는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존재이기에 분명 ‘자기’여야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는 존재, 즉 나와 대립하는 낯선 자기 소외(疏外)의 존재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자기로부터 소외된 그 타자는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다. 나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고독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바로 ‘자기인 타자’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타자는 결코 나와 하나가 될 수 없는 ‘타자인 자기’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안에 본질적으로 놓여있는 이런 관계적 타자성을 근원어로서의 짝말(Wortpaare) ‘나-너’(Ich-Du)로 표현한다. 부버에 따르면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 없이는 결코 자기를 이해할 수도, 본래의 자기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본성적으로 타자에게로 기울어져 있음은 자기 소외로서의 고독에 근거하며, 이 근원적 소외로서의 실존적 고독은 인간이 본래 고립되고 외로운 ‘나 홀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 속에 있는 ‘공존재’(Mitsein)임을 의미한다. 야스퍼스(Karl Jaspers) 또한 고독은 타자와의 소통 속에서만 실현되는 나의 ‘가능 실존’을 준비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고독은 소통 안에 존재하기에 소통 없이, 그리고 고독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나의 고유한 근원으로부터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없음에도 자기 밖의 타자로부터 동일한 자기를 발견하고, 그와 일치하고자 하는 실존적 고독에 처해 있다. 타자는 나에게 고독과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소외되고 낯선 대상이다. 우리는 이 간격을 메꾸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상처받곤 하다. 실존적 고독은 타자와 일치하려는 열망을 낳지만, 그 일치하려는 행위가 자기중심적일 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타자를 강제로 자기와 일치시키려는 행위는 소유·집착·가스라이팅·증오·폭력 등으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존적 고독이 타자 중심적인 헌신·희생·봉헌의 열망으로 승화될 때 바로 사랑의 계기가 된다. cpbc2025.04.16

무뎌진 마음에 사랑을 일깨우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97) 사랑에 눈뜨기 사랑⋯.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물이나 공기가 없이 살 수 없지만,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처럼 사랑 또한 우리를 살게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 중요성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수녀회의 성삼일 전례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한 수녀님께서 사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부님, 이제 저도 세속화가 돼서 성삼일 전례에 마음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네요.” 수녀님의 고백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일상사와 세상 걱정으로 마음이 무뎌져,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마음을 쓰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걷던 일을 회상하며 뜨거웠던 마음을 떠올린 때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어떤 경험이었을까? 주님께서 가까이 다가와 자신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건네주신 말씀들, 자신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며 보여주신 친밀감에 담긴 사랑에 대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스승의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들은 똑같은 분의 똑같은 사랑으로 눈을 뜨고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본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 그분께서 돌아가신 다음 살아나셔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며 똑같은 사랑으로 그들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그들이 절망과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며 새로운 희망이 떠오를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다. 재와 같던 그들 내면에 사랑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유학 시절 한 수도원에서 성삼일 전례에 참례하며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깊이 체험한 적이 있었다. 아무 조건도 없이, 남김없이 당신의 온 존재를 선물로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성삼일 전례 곳곳에 배어있었다. 그 사랑 앞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사랑에 마음을 닫고 무딘 영혼으로 살아왔는지도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이 세상에 왔으며,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던 것도 바로 사랑 덕분이었다. 그 사랑은 그 어떤 사심이나 욕심도 없이 그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좋고 사랑스러웠기에 베푸셨던 부모님의 사랑이었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눠 온 우정이었다. 그 사랑과 우정이 우리를 키우고 우리 사이를 돈독히 해주었다. 살면서 많은 중요한 일을 겪고 큰 계획을 갖고 살지만, 결국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큰 위기나 시련을 겪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랑의 고귀함을 깨닫고 그동안 그 사랑에 왜 그렇게 무감각하게 살아왔는지 후회하는 우리 자신의 무뎌진 마음이다.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인간적 사랑을 매개로 당신의 애틋한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주신다. 특별히 교회 삶 전체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향한 눈을 뜨도록 이끌어 주신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 사이의 ‘사랑’에 관한 대화로 마무리한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6)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주님 사랑에, 그리고 우리 주위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에 얼마나 눈을 뜨고 살아왔나? 너무 무디고 딱딱한 마음으로 살아온 나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잊고 살아오지 않았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을 향한 눈을 뜨게 해주시도록 기도하면 어떨까. 한민택 신부cpbc2025.04.29

마음 챙기고 영성 다듬는 책과 만날 시간독서의 계절 추천 도서 5권‘등화가친(燈火可親)’, 가을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좋은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나들이하는 사이사이, 마음도 챙기고 영성도 다듬을 수 있는 책들도 가까이 해보자. 다시 만나는 구약성서 / 장 루이 스카 신부 / 박요한 영식 신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다시 만나는 구약성서」는 지난해 소개된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에 이어 출간됐다.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오경을 강의하며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긴 장 루이 스카(예수회) 신부가 설화와 성경 주석을 통해 구약성경이 담고 있는 깊고 풍부한 의미를 살펴본다. “이 신탁과 레위기 25장의 법들을 비교하면 이 ‘은혜의 해’는 거룩한 해 또는 희년임을 알 수 있다. 감옥에 갇힌 이들과 종들이 해방되어야 하는 해이다. 이 종들은 빚을 갚기 위하여 종들이 된 사람들에 비교되는 유배자들이다. (중략) 이들은 귀환한 유배자들이며 바빌론의 침공으로 파괴된 성읍을 재건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희년과 유배에서의 귀환 사이에 밀접한 연결을 위한 보완적 표시들이 있다. 그러므로 ‘은혜의 해’는 유배를 종식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귀환의 문을 연다.”(198쪽) 책은 창조의 시간부터 성조들, 고대 사회의 족보와 사랑, 이집트의 노예제도와 약속의 땅에서의 일에 대한 성찰, 희년과 순례, 원로들과 사제의 역할 등을 짚고, 마지막으로 구약성경에 기묘한 방식으로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설명한다. 감정 학교 / 안셀름 그륀 신부 / 나무의마음 「감정 학교」는 시기심·모욕감·질투·혐오·분노·증오·탐욕·후회·고독·두려움 등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 48가지가 어떻게 우리 존재를 규정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안셀름 그륀(성 베네딕도회) 신부는 잘못된 감정적 대응으로 후회하고 있거나 자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사례와 융의 심리학을 결합해 감정의 양면성을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그 본질과 쓸모를 알려준다. “카를 융은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후회에 젖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삶을 바꾸려는 ‘후회의 능동성’을 잊어버린 채 후회라는 감정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융은 이런 마음 자세를 사람들이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따뜻한 이불 속에 머무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설명합니다.”(126쪽) 부정적인 감정만 살펴보는 것은 아니다. 사랑·기대감·희망·신뢰·자유·행복·감동·기쁨·자부심 등 타인과 함께하고 나를 안정시키는 기분 좋은 감정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그러므로 너는 기쁘게 네 빵을 먹고, 즐겁게 네 포도주를 마셔라.’(코헬 9,7) 전도자 코헬렛은 인간이 온갖 고통을 겪더라도 기쁨을 느끼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중략) 기쁨은 충만한 삶에서 오는 것이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미 있게 사는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264쪽) 영적 위로 / 티모시 갤러허 신부 / 김영의 옮김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영적 위로」는 이냐시오 영성 전문가 티모시 갤러허 신부의 대표작 「영의 식별」에 이은 책이다. 「영의 식별」이 신자들의 전반적인 영적 상태를 스스로 감지하고 파악하여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내용이라면 「영적 위로」는 더 섬세하고 진전된 상황에서의 영의 식별을 돕는다. 즉 원수가 ‘선을 가장하여’ 지극히 열심한 신앙인들을 속이려는 상황에서는 식별에 새로운 안내가 필요하다. 차츰차츰 악한 영 특유의 해로운 끝으로 이끌어 가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냐시오는 신앙인들이 그 끝을 주의 깊게 관찰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생각의 진행 과정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모두 선하고 모두 선으로 기울어 있다면 이는 선한 천사의 표지이다. 그러나 떠오른 생각들이 그 진행 과정에서 결국은 어떤 악한 결말에 이르거나, 산만해지거나, 이전에 구상한 것보다 덜 좋은 쪽으로 이끌거나, 이전에 누리던 평화와 안정과 침착성을 빼앗아 심약해지게 하거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면 이는 우리의 유익과 영원한 구원의 원수인 악한 영에서 나왔다는 분명한 표지이다.”(134쪽) 현명한 이타주의자 / 슈테판 클라인 / 장혜경 옮김 / 페이지2북스 종교인이나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현실에서 이타주의자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독일 출신의 슈테판 클라인은 「현명한 이타주의자」에서 “언뜻 보기엔 시간과 힘, 돈을 자신의 목표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이 더 이익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타주의자가 훨씬 앞서간다”고 주장한다. 생물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타주의에 대한 정의부터 왜 사람은 남을 돕는 일에 서툰지, 어떤 경우에 남을 돕게 되는지, 왜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변을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뇌과학·경제학 등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다양한 학문과 실험 결과들을 근거로 설명한다. “남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년 전부터 우리는 핵스핀단층촬영장치 덕분에 느끼고 생각할 때의 뇌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중략) 신뢰는 기분을 좋게 해준다. 타인이 우리를 위해 기대 이상의 것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신뢰를 느끼면 보상 시스템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환기시킨다. 공정한 행동을 한 사람은 우리 기억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82쪽) 채식주의자 / 한강 / 창비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책이다.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에 이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소설가 한강씨가 2007년 펴낸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는 ‘영혜’를 중심으로 남편·형부·언니의 시선에서 서술된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저항하며 금식을 통해 동물성을 벗어던지고 나무가 되려는 영혜가 보여주는 식물적 상상력이 신선하다.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72쪽)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채식주의자」는 2010년부터 일본·중국·프랑스 등에서 꾸준히 번역·출간되었고, 지금까지 40개국 이상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국내에서는 2009년 개봉했고, 25일 볼로냐에서 초연된 연극은 이탈리아 주요 도시를 거쳐 프랑스에서도 상연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0.23

막장, 절망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열리는 새로운 시작[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20. 막장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막장 드라마에서나 펼쳐질 법한 범죄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삶의 끝자락, 파국으로 여겨지는 막장은 우리 현실의 단면이기도 하다. 2023년 발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묻지마 범죄 현장에서 수사관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는 종종 드라마를 보며 말한다. “이건 막장이야.” 출생의 비밀, 금지된 사랑, 끝없는 복수⋯. 자극적인 설정에 개연성은 부족하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말처럼 막장 드라마는 오히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곤 한다. 그런데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다 보면,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묻지마 범죄·층간소음 살인·가정폭력·아동학대에 심지어 국회 청문회조차 ‘막장’ 논란의 무대가 되곤 한다. 이런 뉴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본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막장’은 어느새 우리 삶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막장’이라는 말은 가볍게 쓰기엔 그 말의 뿌리가 무겁다. 본래 ‘막장’은 광산에서 가장 깊은 갱도의 끝자락,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끝자리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그 어둠 속 현장은 생존의 심장부이기도 했다. 막장은 천박함이 아니라 존엄과 투혼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막장’은 비도덕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을 지칭하는 부정적 수사로 굳어졌다. ‘막장 드라마’ ‘막장 정치’ ‘막장 사회’처럼 상식과 도덕이 무너진 파국의 코드로 쓰인다. ‘막[末]’이라는 말은 내려갈 곳 없는 소진과 절망의 상태를 말한다. 막장·막판·막일·막무가내·막바지⋯. 앞이 보이지 않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지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작을 뜻하는 고유어 ‘막’도 있다. ‘막’은 끝을 의미하는 절망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금·갓·지금 바로를 뜻하며 행동의 시작이나 순간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예컨대 ‘막 도착하다’ ‘막 시작하다’ ‘막 지은 밥’ 같은 표현이 그렇다. ‘막걸리’라는 말도 지금 막 거른 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새로운 발효의 기쁨이 시작되는 순간과 맞닿아 있다. 같은 음절 ‘막’이지만, 하나는 끝을, 다른 하나는 시작을 가리킨다. 끝과 시작, 절망과 희망이 이 짧은 말 안에 함께 담겨 있다. ‘막노동’은 천대받는 육체노동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가장 밑바닥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정직한 일이다. ‘막말’은 품격 없고 무례하다는 비난을 받지만, 때로는 그 거침없는 솔직함이 가식 없는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막’은 규범의 테두리 바깥에서 억눌린 감정과 현실을 여과 없이 내뱉는 언어다. 어쩌면 그것은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는 벼랑 끝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막장’도 마찬가지다. 삶의 끝자락. 파국과 절망의 공간이지만, 그 끝에서 역설적으로 진짜 인간의 얼굴이 드러나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현실에서 억눌렸던 욕망과 상처, 무너진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막’은 문명화된 언어의 바깥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을 들춰낸다. 통제와 품격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것들이 ‘막’이라는 틈 사이로 흘러나온다. 거칠지만 정직하고, 불편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언어. 그래서 ‘막’은 혐오가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막’은 무질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질서 이전의 상태, 창조가 시작되기 직전의 혼돈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도 창조는 바로 그 혼돈에서 출발한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창세 1,2) 있지만,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은 “빛이 있으라” 하시며 무질서 속에 새 질서를 여셨다. 무너짐의 끝에서야 진실이 고개를 들고, 더는 갈 곳이 없을 때 비로소 빛이 새어 들어온다. 우리는 때때로 바로 그 ‘막’에서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솔직한 얼굴 앞에서 세상과의 관계도 다시 맺을 수 있다. 그러니 ‘막’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다. 희망은 어쩌면 바로 그 막막함 속에서 움트는 법이다. ‘막장’, 더 이상 내려갈 데 없는 끝이지만, 동시에 하늘을 향한 비상구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무대 위에 서 있다. ‘지금’이라는 막과 ‘끝’의 막, 그 교차로에 머무르며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막’은 이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산의 ‘막장’이라 할지라도, 그 끝은 하느님 안에서 다시 시작되는 ‘막’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인생에는 ‘막’이 있습니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이야기가 시작되고, 언젠가 그 막은 다시 내려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시작과 끝이 맞닿은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신앙도 바로 그 지점에 머뭅니다. 세상에서는 퇴장이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입장이 되는 자리. 순교자들은 그 막을 지나 생명의 시작으로 나아간 이들입니다. 막이 내렸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의 피는 땅에 스며든 듯하지만, 교회의 씨앗이 되어 우리의 ‘막’ 위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삶은 늘 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지금 막 시작된 이 순간은 언젠가 마지막 막이 내리는 순간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절망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열리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터툴리아누스) 죽음을 넘어 생명을 증언한 이들의 ‘막’은 곧 하늘나라의 첫 막이 됩니다. cpbc2025.07.02

역사 안에서 유다인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큰 그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3)에스테르기 에스테르기는 하느님께 대한 직접 언급이 없을 뿐이지 유다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역사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암시하고 있다. 아르트 데 헬데르, ‘첫번 째 푸림절 서한을 쓰는 에스테르 왕비와 모르도카이’, 유화, 1685년경. 히브리어 타낙 성경 ‘에스테르’는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헬라어 번역 성경인 「칠십인역」에는 ‘Εσθηρ’(에스테르),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Esther’라 해 역사서로 분류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 역시 ‘에스테르기’라 해 불가타에 따라 역사서에 배열해 놓았습니다. 에스테르기는 167절로 구성된 히브리어 본문에 헬라어 번역본에서 93절을 첨가해 한 권으로 통합한 책입니다. 「칠십인역」은 헬라어 첨가 부분을 하느님에 관해 직접 언급이 없는 히브리어 본문 사이사이에 삽입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가치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우리말 「성경」에도 히브리어 본문 가운데 삽입된 헬라어 본문을 구분하기 위해 장, 절을 다르게 표기합니다.(예; 1,1①) 하지만 히브리어 구약 성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는 유다교 타낙 성경처럼 히브리어 본문만을 에스테르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성경은 에스테르기를 역사서로 분류하지만 실제로 역사성이 희박한 작품입니다. 페르시아 역사에는 ‘와스티’라는 왕비도, ‘에스테르’라는 왕비도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테르기는 임금을 제외한 다른 모든 등장인물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의 왕비는 항상 페르시아인이었습니다. 에스테르기 1장 1절의 임금이 크세르크세스 1세라면 그의 왕비는 1장 11절이 말하는 와스티가 아니라, 후타오사라는 여인입니다. 유다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몰살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또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재상 하만의 태도도 페르시아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스테르기 내용은 마카오베기에 나오는 유다인들을 모질게 탄압한 헬레니즘 시대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4세(기원전 175~기원전 164년)의 통치 시대와 들어맞습니다. 히브리어본 에스테르기에 한 번도 하느님이 언급되지 않은 까닭은 이 책이 작성될 시기에 유다인들이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여길 만큼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외세의 억압과 박해 속에서 하느님께서 과연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지를 의심했습니다. 마치 안 계신 듯,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밤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에스테르기입니다. 에스테르기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게 될 것이라 격려합니다. 에스테르기는 혼란한 인간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발자취를 알아보라고 당부합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에스테르기 저술 시기를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전 100년 사이로 넓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께 히브리어 본문이 저술됐고, 기원전 2세기 중엽에 헬라어 본문이 기록됐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에스테르기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도입부(1,1①-1 )는 기원전 597년 바빌로니아 1차 유배 때 포로로 끌려온 모르도카이가 유배지에서 앞으로 닥치게 될 유다인들의 고난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꿈을 통해 전해 받습니다. 첫째 부분(1,1-2,23)은 크세르크세스 임금이 잔치에 불참한 와스티 왕비를 폐위하고 유다인 처녀 에스테르를 새 왕비로 선택합니다. 둘째 부분(3,1-9,19①)은 유다인들을 말살하려는 재상 하만의 계략에 맞서는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의 활약을 들려줍니다. 셋째 부분(9,20-10,3⑪)은 푸림절 유래를 설명합니다. 푸림은 주사위, 제비를 뜻하는 히브리어 ‘푸르’의 복수형입니다. 에스 9,24-26은 푸림절이 본디 이교도들의 축제였지만 유다인들이 이를 자신들의 축제로 받아들였음을 설명합니다. 에스테르기는 나라를 잃은 유다인들이 다른 민족 사이에 섞여 살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고 이민족과 분명히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다른 민족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민족우월주의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유다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고유 신앙과 관습, 전례 등에 충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말살하려는 그 모든 시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시고자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하느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성경학자들은 해외 유다인 공동체가 이방 민족에게 박해를 당하다가 같은 동포 가운데 어느 누군가의 주도적 역할에 힘입어 박해를 벗어난 사건이 실제 일어났을 수 있고, 그런 사건을 바탕으로 에스테르기가 꾸며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에스테르기는 하느님께 대한 직접 언급이 없을 뿐이지 유다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역사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암시합니다.(에스 4,14) 또한 에스테르기는 하느님의 섭리를 기적 같은 초자연적 개입으로만 여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초자연적 개입이 있든 없든 유다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모든 위협에서 건져내는 사건 자체가 하느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테르기는 해외 공동체의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위협을 예견치 못하는 상황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를 신앙으로 이겨내도록 이끌어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