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105. 함정](//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25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05. 함정악마의 유혹처럼 큰 함정도 없다. 그림은 '악마에게 시험 받으시는 예수' (두초 작, 1308~1311년)함정을 놓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생활의 일부였다. 음식을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을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함정을 놓았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사용한 함정은 주로 위장된 그물에 덮여 있는 구덩이였다. 오늘날 통상적 수사방법으로는 범인을 체포하기 어려운 경우 범죄를 유도한 후 그 실행을 기다려 범죄를 소탕하는 것을 함정수사라고 부른다. 그래서 함정은 올무나 덫의 의미도 지닌다. 함정을 놓는다는 것은 성경에서는 주로 비유적으로 사용됐다. 성경에서는 불의한 행동을, 그것을 행하는 자들 앞에 놓인 함정이라고 말한다. "악인은 제 악행에 붙잡히고 제 죄의 밧줄에 얽매인다. 그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아 죽게 되고 너무 어리석어 길을 잃게 된다"(잠언 5,22-23).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바로 함정에 빠지는 위험한 행위가 된다. "온전하게 걷는 이는 구원을 받고 그릇된 길을 걷는 자는 구렁에 빠진다"(잠언 28,18). 신약성경에서는 악인들 중에서도 가장 악한 존재로 꼽히는 사탄의 유혹을 가리켜 '악마의 올가미'로 표현한다(1티모 3,7). 성경은 종종 악인을 간교한 사냥꾼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가지고 모든 약한 자들을 파괴하며 희생시키는 자들을 상징한다.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함정 중에서 중요한 이미지는 여자에 관한 것이다. "너 자신을 여자에게 넘겨주어 그가 네 능력 위에 올라서지 못하게 하여라. 창부를 만나지 마라. 그의 덫에 걸릴까 염려된다"(집회 9,2-3). 특별히 악한 여인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나는 여자란 죽음보다 쓰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는 올가미, 그 마음은 그물, 그 손은 굴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죄인은 그에게 붙잡히고 만다"(코헬 7,26). 이 충고는 경건한 사람이라면 방탕한 여인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정을 파는 자는 동시에 자신이 그 속에 빠지게 될 위험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죄가 어떤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혼동하게 만들어 쉽게 함정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의 아름다운 딸을 다윗에게 아내로 줌으로써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주의가 산만해지고 미혹되게 하려고 했다. "이런 궁리를 하였다. '그 애를 다윗에게 아내로 주어야겠다. 그래서 그 애를 미끼 삼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해야지'"(1사무 18,21).죄는 바른 판단과 인식을 방해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위험에 빠지는 덫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죄를 가리켜 소경의 상태로 비유하셨는데, 죄인이 쉽게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또한 사도 바오로는 부자가 되려는 욕망을 덫에 걸려드는 유혹이라고 묘사했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1티모 6,9). 그런 의미에서 함정이나 덫은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닐까.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이정훈2011.02.15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1> 루카 (상)](//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7217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루카 (상)구원 계획,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루카복음서는 예수가 장차 행하게 될 소명을 시메온의 노래를 비롯한 네 개의 찬미가로 드러난다.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감격스러워 하는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화. 루카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선교했던 동역자이자 의사로서, 예수와 시간상으로 동떨어진 제3세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구약성경과 그리스 문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려한 필치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편찬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오는 종말과 심판, 하느님 나라에 심취해 세상의 질서와 제도에 무관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루카는 이들에게 현실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점과 현실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또 주요 인물들이 활동한 장소와 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구원 계획과 세상 역사를 결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루카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문학적 특징은 병행법(synkrisis)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와 요한 세례자 행적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와 제자들 행적이 반복 서술돼 있다. 이는 제자들이 스승 예수의 삶과 소명을 이어받아 뒤따른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루카복음과 마태오복음은 모두 예수의 유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내용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마태오복음이 예수 부모 중에서도 요셉을 중심으로 기록했다면 루카복음은 철저히 마리아 중심으로 서술했다. 또 마태오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에게 마리아 잉태 사실을 통보하지만, 루카복음에서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와 아기가 생길 것임을 알린다. 이때 천사는 마리아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취한다. 역사적 배경에도 차이가 있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는 통치자 헤로데 왕(BC 4-7년)과 적수인 것처럼 묘사된다. 반면, 루카복음에서는 예수 부모가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에 예수가 태어난다. 이 같은 시간차는 예수 부모가 로마제국의 정치질서와 유다교 율법에도 충실했음을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적대적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평화를 전하는 종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태오복음에서 별이 나타나 동방박사들을 이끈다. 메소포타미아의 학자이자 사제였던 이들이 가장 먼저 예수 탄생을 알게 됐다는 것은 예수가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할 보편적 메시아라는 점을 암시한다. 루카복음에서는 양을 치던 목동들 앞에 천사들이 나타나 환호의 노래를 부른다. 이는 예수 탄생이 우주적 찬미가 울려 퍼지는 경사스런 사건이라는 것을 뜻한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는 '다윗 왕좌를 계승하는 이'와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는 이'로서 그 신원과 사명이 제시된다. 그가 장차 행하게 될 소명은 네 개의 찬미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천사 가브리엘에게 잉태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1,52-53)라고 노래한다. 다소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노래는 당시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추정된다. 이는 다가올 메시아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 간절히 청원한 끝에 뒤늦게 아기를 가진 그는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1,76-79) 하고 노래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들을 평화의 길로 이끄는 사명이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라고 노래하며 평화의 복음을 선포했다. 죽기 전 그리스도를 뵙기를 간절히 청했던 시메온은 예수를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2,29-32)라고 노래했다. 이는 아기 예수를 본 것이 이미 구원을 본 것이며, 하느님 구원이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결정적 사실을 나타낸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4.09
![[아! 어쩌나] 196. 가난과 배고픔이 행복이라고요?](//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7215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96. 가난과 배고픔이 행복이라고요? Q. 새내기 신자입니다. 세례 받은 후 매일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루카복음 6장 20절을 읽다 보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문의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저는 집안이 매우 가난해 식구들이 모두 직장에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려고 애쓰고 삽니다. 일이 없을 때는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마음고생 몸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 말씀은 왠지 현실감이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또 부자를 미워하고 가난한 사람 편을 드는 것 같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 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A. 형제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한때 일부 젊은이들이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공산 혁명을 생각하셨다'고 주장할 정도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해석에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라면 현실에서 말도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주님이 하신 말씀의 진의 즉, 가난한 사람의 행복이란 100% 채우는 것이 아닌, '삶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굶주린 사람들 역시 심리적으로 희망과 갈망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이지 정말 굶주린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정말 가난에 찌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란 모자람 없이 충분히 가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 행복을 사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은 늘 있기 마련이고, 완전하게 모든 것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다 가진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갖지 못한 마음은 늘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자 메네데모스는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물론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갖는 것은 마음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기에 메네데모스 식의 논리를 '궤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늘 배고픈 심정으로 공부하고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연승가도를 달리는 프로팀 코치가 승리했음에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나는 지금의 승리에 웃을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이처럼 무엇인가를 더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에 생동감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나 감각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강렬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본능을 충족시키는 행위들은 애석하게도 수명이 짧기 때문입니다. 마치 확 피어올랐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불꽃과 같습니다. 이런 행복감은 순간의 황홀함이 지난 다음에는 깊은 어둠이 오고, 더 길고 깊은 공허감이 따라오기에 위험한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행복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 정신적 욕구, 영성적 욕구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욕구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적 욕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리적, 정신적 욕구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치부하고, 오로지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려고 하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신자들 가운데 생리적, 정신적 욕구는 세속적이라며 오로지 영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개개인의 인생길이 어땠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자기 콤플렉스에 밀려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입니다. 대개 이런 분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감추고 위장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생리적 욕구, 정신적 욕구는 적당히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영성적 삶을 추구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님 말씀은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4.09
![[가톨릭 문화산책]<31>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7)](//cpbc.co.kr/CMS/newspaper/2013/08/rc/470826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7)채찍질 후 고통스런 예수, 우리 마음에도 그려져 "그러니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주겠소"(루카 23,16)작품 : '채찍질을 당한 후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응시하는 그리스도' 벨라스케스 작(1630년께, 런던 내셔널갤러리) ● 고통의 신비 2단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육체적 고통, 순종, 신뢰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고, 겟세마니로 가서 기도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유다의 대사제와 율법학자, 원로들이 보낸 병사들에게 잡혀 대제사장과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채찍질을 당했던 사실을 기록한다. 하지만 루카는 예수가 처형당할 만큼 죄가 없으니 채찍질이나 몇 번 하고 풀어주라고 빌라도가 명령한 사실을 전한다. 예수 수난을 주제로 다룬 작품에서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수가 겪은 잔인한 육체적 고통과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예수가 구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정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벨라스케스의 작품 역시 예수에 대한 육체적 고문보다는 예수의 인내의 참된 가치와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초점을 둔다.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채찍질 당한 후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응시하는 그리스도'란 긴 제목의 작품은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기도', 그리고 성녀 비르지타가 어렸을 때 예수 수난을 체험한 신비 때문에 '성녀 비르지타의 환시'로도 불렸다. 예수께서 막 채찍질 당하신 뒤 장면이다. 바닥에는 채찍 도구들이 널려 있다. 그림 왼쪽 끝에는 단단한 기둥이 세워져 있고, 커다란 돌기둥에 두 손이 묶인 예수는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지친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앉아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한 어린아이가 두 손을 꼭 모으고 있고, 그 옆에는 천사가 서 있다. 무방비 상태로 앉은 예수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를 향해 보호받기를 원하는 듯하다. 천사는 어린아이에게 "보아라" 하고 말하는 것처럼 채찍질을 당한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의 힘없고 고통스러운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가슴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 벨라스케스는 그리스도를 아름다운 몸으로 묘사한다. 비록 모진 채찍질을 당한 후라 매우 지쳐 보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다(시편 45,3)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생애 최초로 이탈리아를 다녀온 후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던 시기의 작품답게 여러 가지 영향을 풍부하게 섞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에서 여러 대가와 만나고 고대 작품을 연구하고 나서 인간 형상을 다루는 데 최고조의 능력을 발휘한다. 작품은 장식적 요소 하나 없이 아주 단순하다. 작품 배경은 벨라스케스 자신이 젊은 시절 감동을 받았던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으로 처리하고, 그와 대비시켜 힘없이 앉아 있는 예수의 몸과 어린아이는 밝게 처리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두 팔이 고통스럽게 기둥에 매달린 예수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묘사돼 육체적 고통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으며, 단순한 구성으로 주제에만 주의를 집중시킨다. 깨끗한 눈과 마음의 어린아이 벨라스케스는 채찍질을 당한 예수를 표현한 장면에서 고문자들은 배제하고 어린아이만 등장시킨다. 예수를 바라보는 깨끗한 눈과 마음의 어린아이의 순수성이 마치 예수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이 어린아이만이 예수의 고통을 진정 이해하는 듯하다. 한편 그림 제목에서 살필 수 있듯이 아이는 그리스도인(믿는 사람들)의 영혼을 나타낸다.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예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수호천사의 인도로 이미 예수 피땀으로 얼룩진 기둥과 앞에 놓인 고문 도구들을 바라보며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작품을 이렇게 하나의 시각적 묵상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수난에 관한 시각적 명상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은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 방법론과 함께 가톨릭 개혁기 스페인의 영성과 종교미술이 나가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영신수련」은 예수의 삶과 부활 이야기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예를 들어 시각적 묘사로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장소를 상상하며 명상을 구성한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이 사건에 참여해야 한다. 고통받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비탄에 빠진 그리스도와 함께 눈물과 애끓는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나 때문에 겪으신 그 많은 아픔을 함께 느끼기를 청하는 것이다.(「영신수련」 203항) 13세기 초부터 예수가 겪은 고통과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새로운 신앙적 흐름이 형성된다. 중세 말부터 전해오는 가톨릭 묵상법 가운데 하나인 보나벤투라의 「그리스도 일생 명상」은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이다'라고 할 때에,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더라도 이를 영적 명상의 조건으로 간주해야 한다. 내가 마치 '예수께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다고 가정해보자'라고 말한 것처럼 받아들여라. 그리고 이 명상에서 영적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면 세속의 걱정거리를 모두 떨쳐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께서 행하시는 그 순간에 항상 함께하라"고 말하고 있다. 묵상적 이미지를 그려내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누는 신비를 체험할 수 있어서다. 묵상할 때 마음을 집중해 마치 그리스도의 수난이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마치 주님께서 당하시는 수난을 우리가 직접 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며, 주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직접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채찍질을 당한 예수 모습이 담긴 작품을 바라보며 우리는 수난의 고통을 공감한다. 이렇듯 시각적 이미지는 상상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을 체험하도록 해준다. 한 예로 14세기 영국 신비주의자 노리치의 줄리언 수녀는 "이후 나는 눈앞에 있는 십자가상을 계속 바라봤으며, 거기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모욕과 채찍질, 일그러지고 멍든 그리스도의 상처,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봤다"고 기록에 남겼다. 이 작품은 하나의 이미지 속에 그리스도가 겪은 수난의 전 과정을 집약하고 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당신의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요구에 순종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저버리지 않는 순종과 신뢰! 예수의 구원의 힘의 너비와 길이, 높이, 깊이는(에페 3,18) 예수께서 당한 난폭한 육체적 폭력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온전히 쏟아 부었던 사랑의 깊이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작품 :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 만테냐 작 (1455년께, 런던 내셔널갤러리) ● 고통의 신비 1단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고뇌의 기도, 외로움, 순종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만찬을 나눈 뒤 세 제자와 함께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서 하느님께 고뇌의 기도를 올린다. 곧 다가올 죽음을 앞두고 예수는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하고 말하며 모든 것을 하느님 뜻대로 따르겠다고 기도한다.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의 그림에서 보듯이 예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하늘에는 천사들이 앞으로 다가올 예수 수난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다. 언덕 아래에는 그를 따르기로 자처한 제자들이 무심히 잠만 자고 있고, 화면 오른쪽 멀리에는 유다가 병사를 앞세워 예수를 잡으러 온다. 제자들과 함께 있어도 예수께서는 홀로 깨어 외롭게 기도하며 자신을 아버지께 맡긴다. 그림 오른쪽 나뭇가지 위에는 사다새(펠리컨)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어미가 자신의 가슴을 쪼아 흘러넘치는 피로 배고픈 새끼들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다새가 상징하듯이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윤인복 교수 (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cpbc2013.08.27
![[나의 묵주 이야기] 34. 신앙ㆍ나눔ㆍ위로의 징표, 묵주](//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381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 이야기] 34. 신앙ㆍ나눔ㆍ위로의 징표, 묵주 김선실 데레사 (한국파트너십연구소 연구원, 서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지난해 성탄전야는 가톨릭 신자가 된지 만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때 고등학교 선배이던 성당 언니가 대모를 서주며 선물로 준 것이 묵주였다. 영세하자마자 가지게 된 묵주는 곧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징표였다. 그 후 언제나 내 곁에는 몇 개의 묵주가 함께하곤 했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기도 했고 어느 행사나 모임에 가서 기념품으로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묵주를 가지고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곤 했다. 대모님에게서 영세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을 기억하며 영세를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서, 같은 지향으로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때로는 묵주를 보고 멋있다고 감탄하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나눠줬다. 몇 년 전에는 묵주를 손수 만드는 분을 만나 한꺼번에 100개나 되는 팔찌 묵주를 기증받은 적이 있다. 마침 필리핀계 이주여성들을 만나고 있던 참이라 그 여성들과 자녀들에게 나눠 주며 얼마나 기뻐했던지! 근래에 선물 받은 특별한 묵주는 어느 수녀님이 직접 만든 수공예 매듭 묵주다. 묵주알이 전부 매듭이라 정성도 들어 있고 색채도 곱지만 무엇보다도 그 묵주를 볼 때마다 투병 중이신 그분을 떠올리게 되고 저절로 그분 완쾌를 빌면서 기도하게 된다. 이 묵주 또한 얼마 동안 가지고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분이 완쾌됐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때까지는 가지고 있겠지만…. 이렇듯 묵주는 내 손을 거쳐 많은 이들에게로 흘러갔고 앞으로도 또 그러할 것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통교하듯 서로의 마음과 기도를 이어주며, 묵주는 어느 새 나눔의 징표가 됐다. 그러나 단 하나 30년 가까이 지니고 있는 묵주가 있다. 20대 중반 외국으로 떠날 때 공항에서 가톨릭학생회 후배이자 대녀가 울면서 손에 쥐어준 묵주다. 환송 나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멀리 떠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채 웃으며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 시간 쯤 지나 겉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묵주를 꺼내 보았다. 까만 묵주 주머니 안에 비교적 알이 자그마한 주황색 묵주가 들어있었다.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고 왈칵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향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이 날 때 묵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굳이 묵주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고 그래서 늘 소지품 속에 넣고 다녔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곳으로 떠날 때 동행했던 그 묵주는 지금까지도 늘 길 떠날 때마다 나와 동행한다. 이와 같이 묵주는 나에게 가톨릭 신앙의 징표, 나눔의 징표, 그리고 낯선 곳을 향해 두려움을 가지고 떠날 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징표가 됐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도 못 한 채 말이다. 그럼에도 1990년대 초반 여성신학을 만나기 전까지 묵주기도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비는 기복신앙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어 약간의 거리감, 아니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모신심에 관한 오해를 익히 들었기에 더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여성신학을 접하게 된 후 여성의 관점에서 성경을 새롭게 읽기 시작했고, 특히 루카복음 1장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됐을 때 그런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성모님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정의로운 하느님 나라 실현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이다(루카 1,46-55). 묵주가 우리에게 가톨릭 신앙의 징표라면, 묵주기도는 성모님이 꿈꾸었던 하느님 나라를 위해 바치는 기도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명ㆍ평화ㆍ인권' 묵주가 그런 뜻으로 만들어졌고 여럿이 나눠 가졌기에 오늘도 그 뜻을 새기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cpbc2013.03.12
이웃 종교 소통ㆍ화합 한마당 성황제16회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 열려불교체험관을 방문한 김희중 대주교가 윤장대(팔각형으로 된 책궤)에 '기쁨'이라는 메시지를 적고 있다. 이웃종교 간 화합과 소통의 한마당인 제16회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가 '생명 평화 나눔 사랑'을 주제로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 의장 자승 스님)가 주최한 이날 축제에는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 대표와 신자, 시민 등이 참가해 이웃종교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종단대표 어린이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이날 축제는 종단별 축하 공연, 마술쇼, 기념음악회로 이어졌다. 각 종단은 체험관을 마련해 이웃종교 신자들과 시민들을 초대했다. 천주교는 까리따스수녀회에서 팔찌 묵주 만들기, 명화 퍼즐 맞추기, 기도문 나무에 매달기, 성경 이어쓰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인기를 끌었다. 특히 묵주 만들기는 넉넉히 준비해 놓은 재료가 부족했을 정도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는 문화예술을 매개로 각 종교가 실현하는 공동선과 보편적 가치를 나누는 장이다. 1997년 설립돼 종교 간 갈등 해소와 국민 화합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종단 간 문화와 예술 교류를 통한 화합 도모를 위해 매년 이 축제를 열고 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임영선2012.09.11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전주교구- 각자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63_1.1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전주교구- 각자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우리는 오는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계속될 신앙의 해를 지내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해의 근본 취지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신앙의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나 자신에서 시작해 교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서 사도적 확신을 갖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83년 남미 선교 5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 대륙의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말 의미를 지니려면 주교 여러분이 각자 소속 사제 및 신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헌신으로 복음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여야 합니다. 열정에서, 방법에서, 그리고 표현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교구 사목평의회에서도 교회와 신앙생활의 현실을 돌아보며, 가장 큰 문제로 하느님 체험 부족을 들었습니다. 신앙이 굳건하지 못해 신흥 종교와 사이비 종교에 쉽게 넘어가기까지 하는 현상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봉독ㆍ공부ㆍ나눔, 전례 활성화, 소공동체 활성화, 피정, 「가톨릭교회교리서」 연구, 그리고 성직자ㆍ수도자의 소명의식 강화를 그 처방으로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하느님 말씀이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처럼 우리 안에 뿌려진 다음, 우리가 그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하느님 능력으로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주님 가르침입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 말씀을 자신 안에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 과제는 이 순서를 뒤에서부터 되밟아 살아 계신 주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지체를 우리의 몸에 두셨습니다"(1코린 12,12-18).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포한 새로운 교회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소공동체입니다. 우리 교구도 그동안 활발하게 추진해온 성서운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모양으로 해오던 소공동체를 새로운 각오로 한층 체계를 갖춰 널리 확산시켜야겠습니다. 성서사도직운동을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활성화하기 위해 교구 기구를 정비하고 보강해야겠습니다. 미사를 더욱더 활기차고 따뜻한 축제로 만들기 위해 전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하느님을 특별히 체험한 신자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널리 알리는 방안을 활용해야겠습니다. 아직 성서 공부와 나눔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는 이들은 먼저 하느님 말씀을 통해 깊은 신앙체험을 하게 합니다. 그다음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공의회 문헌을 공부합니다. 교구와 다른 지역 성지를 찾아가 신앙 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깁시다. 구역ㆍ반 개념과 소공동체 개념을 분명히 구분해 사용합시다. 성서사도직과 소공동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제 특별연수회를 개최하겠습니다.조은일2013.01.22
![[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하)- 세상은 참 좁습니다](//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71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하)- 세상은 참 좁습니다우용국 신부(서울대교구)우용국 신부가 시드니 캐링바성당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십수 년 전, 한 외국인 수녀님께서 어느 젊은 간호사에게 '성소 모임'에 나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성경에 관해 공부하는 '성서 모임'이라고 알아듣고 나가봤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성소 모임에 계속 나가게 됐고, 결국에는 입회를 하고 종신서원을 거쳐 가난한 이웃과 임종을 앞둔 병자들을 위해 열심히 사도직활동에 임하는 수도자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잘 응답할 때 그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맺어지는 법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바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the Little Company of Mary)의 호주 출신 메리 트레이시 수녀님, 그리고 박 모니카 수녀님입니다. 메리 수녀님은 1970~8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에 기꺼이 한국으로 오셔서 30년 동안 의사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신학생 시절, 행려자들을 위한 병원인 요셉의원에서 잠시 체험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메리 수녀님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선교활동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키워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간호사였던 박 모니카 수녀님을 통해서는 성소에 대한 첫 마음을 다시금 살펴보고 조금씩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언제나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조력자로 보내주고 계십니다. 지난 1월 시드니대교구장님의 인사이동을 명 받고 시드니 남쪽에 위치한 캐링바본당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곳에서 메리 수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은퇴하신 후 호주로 돌아오셨는데, 바로 성당 근처에 있는 공동체에 계셨던 것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한국을 떠나 노년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바로 그곳 한국에서 온 젊은 사제가 고향 본당으로 오게 됐으니 '세상은 참 좁아요' 하시는 수녀님의 첫마디 말씀이 정말로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수녀님께서는 가난한 나라 한국으로 소임을 받고선 멜버른의대에 들어가 공부하고 의사가 되셨습니다. 그때 함께 소임받았던 여러 동료들이 공부가 힘들어 중간에 성소를 포기했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복음화가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희생이 있어야 했는지, 이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늘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시드니와 서울 간 시차는 한 시간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로는 반년의 차이가 있어서 지금은 겨울이 점점 깊어가는 때입니다. 본당 내 학교들도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 전화가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환절기에 접어들면서 병자성사와 장례미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늦은 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가 자주 있는데, 임종을 앞두고 급하게 사제를 찾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성당에 전혀 나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제 다급해지니 찾는구나, 게다가 한참 자고 있을 때만 찾는구나" 하는 지극히 게으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저분들이 이제 곧 주님 곁으로 갈 텐데, 조금이라도 잘 해드려야지 가서 내 얘기를 좀 잘 해드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귀찮은 일은 기꺼운 일로 바뀌었습니다. 모처럼 하늘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제가 사목하는 캐링바성당이 위치한 이 지역은 서덜랜드 샤이어라는 곳으로, 시드니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마지막 거주지라고 불릴 만큼 주민 대부분이 백인들로 이뤄진 곳입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섞여 어울려 살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고, 또한 영국 본토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많은 지역인 만큼 아무래도 가톨릭보다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신자 비율이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양로원을 비롯한 노인복지시설들도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고, 그래서 검정머리 젊은 동양인 신부가 성직자 복장으로 방문할 때면 쉽게 주목받는 곳입니다. 물론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낄 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친절하게 잘 맞아주시고 또한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현재 호주사회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활동이 멈춰 있을 만큼 쇠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릴 때면 성공회 신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함께 합니다. 물론 성체를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하느님의 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영국교회든 가톨릭교회든 그 껍데기는 비록 달라도,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같은 식구들이기에 구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비록 크고 넓게 보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작고 아담한 동산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을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며, 종래에는 모두 한 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까. 비록 겉모습은 조금씩 다르고, 말도 사고방식도 차이점이 있지만, 그러나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로 이뤄진 한 가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서로 힘껏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양한 문화적ㆍ사회적 배경을 가진 민족들로 이뤄진 시드니에서의 여러 사목활동을 통해 다양성과 포괄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영어로 'diversity' 라는 말에는 이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서로 다른 그 많은 것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그 다양한 것들을 한데 포괄할 수 있는, 바로 그 영역의 확장이 복음화가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소통(communion: 친교, 영성체 모두 같은 뜻입니다)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포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차단하고 배타적이 되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은 실로 너무나 좁은 곳입니다. 더욱 더 많은 후배 신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계 곳곳의 많은 교구들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도 늘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습니다. 이 귀중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퇴사자22013.07.02

성모 승천, 구원의 영광 보여주는 희망의 표지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와 의미성모 승천 대축일은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림은 예루살렘 성모영면성당에 있는 '성모 승천' 이콘. 8월 15일은 성모 승천, 즉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이날 모든 신자는 주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지내면서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짚어본다. ▨성모 승천 교리 성모 승천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다. 성모 승천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는 4세기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다. 당시 많은 교회 문헌이 승천을 비롯한 성모 마리아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에피파니오 주교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했다. 지나친 성모 공경을 우려한 까닭이다. 성모 승천 교의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6세기 투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다. 성모 승천 교의는 8세기 들어 신학적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 알베르토(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등 신학자와 베네딕토 14세 교황(재위 1740~1758)이 이를 확인했다. 1870년께부터 교황들은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마침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을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했다. 195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교회헌장」 59항)며 성모 승천을 정통 교리로 재천명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신적 권능에 의한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부른다.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찬가지로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 교회가 언제부터 성모 승천을 성대하게 기념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께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가 성모 승천을 공적으로 기념한 것은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축일로 지내면서부터다. 교회는 6세기께 이 축일을 '성모 안식 축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교회는 순교자와 성인들을 그들의 선종일에 맞춰 기념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성모 마리아가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성모 안식 축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동로마 제국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이 축일이 로마교회에 전해진 것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피난 온 동로마 제국 내 수도원들 영향으로 추측된다. 세르지오 교황(재위 683~701)은 다른 성모 축일에서처럼 이날 행렬을 하도록 권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는 데 기여했고, 레오 4세 교황(재위 847~855)은 팔부 축일로 지정했다. 니콜라오 1세 교황(재위 858~867)은 이 축일을 부활 대축일, 성탄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과 같이 대축일로 기념하도록 했다. 교회는 16세기 '로마 성무일도'에 성모 승천 팔부 축일을 삽입했다. 1970년 미사 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됐다. 현재 성모 승천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가운데 하나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마리아 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신자들이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축일로 지낸다. ▨성모 승천 의미 교회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다. 마리아는 처녀임에도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명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됐고,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됐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모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됐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성모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의 표지가 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가 바라던 종국적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밝혔다. 성모 승천은 구원의 역사가 완성됐을 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생을 하느님 뜻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모 신심과 한국교회 성모 승천 대축일과 한국교회는 각별한 인연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고, 3년 뒤 같은 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광복절과 대한민국 건국일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신자들 사이에는 해방과 건국이 한국교회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가 도우신 결과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이는 또한 성모신심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초창기부터 활발했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꽃을 활짝 피운다.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퍼지던 성모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전수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승인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서울 명동성당은 1898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또 국내 첫 본토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1932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성모기사회 등 성모신심 단체들이 대거 한국교회에 진출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열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또 1984년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고,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2000년 대희년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위해 묵주기도 3억 단을 봉헌하기도 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이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3.08.06
![[새 교황 탄생]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시작으로 31명 배출](//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4234_1.0_titleImage_1.jpg)
[새 교황 탄생]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시작으로 31명 배출교회사 속 수도회 출신 교황 누가 있나 1846년 그레고리오 16세 선종 이후 167년 만에 수도회 출신으로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됨으로써 교구와 함께 교회의 두 수레바퀴를 이루는 수도회 출신 교황들에 새삼 시선이 쏠리고 있다. 266대에 이른 교황 중 수도회 출신은 얼마나 되는지, 그 면면과 교회사에 남긴 발자취는 어떠했는지 관심이 일고 있는 것. 그렇다면 역사상 수도자로서 베드로좌에 오른 최초의 교황은 누구일까.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다. 30살 젊은 나이로 로마 원로원 의장에 올랐던 대교황은 자신의 사저에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성 안드레아수도원)을 만들고 베네딕도회에 입회했다. 시칠리아에 5개 수도원을 세워 묵상과 함께 성경과 라틴교부 문헌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던 중 590년 교황직에 올라 게르만족을 개종시켰고, 「그레고리오 전례서」를 완성하는 등 광범위한 저술을 남겼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정했고, '서방 수도자들의 제2의 대부'가 됐다. 이후 1420여 년에 걸쳐 베네딕도회와 클뤼니 수도회, 베네벤토의 소피아 수도회,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시토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도미니코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카말돌리회, 예수회 등 10개 수도회가 31명(11.65%)의 교황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베네딕도회가 가장 많은 12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베네딕도회 총연합에 속하거나 베네딕도회 계열인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시토회) 4명, 클뤼니 수도회 2명, 카말돌리회 1명까지 합치면 모두 19명이나 된다. 이어 도미니코회가 4명,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각각 2명씩 탄생시켰다. 이밖에 베네벤토의 성 소피아 수도회와 예수회도 1명씩 배출했다. ▶베네딕도회 대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64대)를 시작으로 보니파시오 4세(67대), 아데오다토(혹은 데우스데딧) 2세(77대), 성 그레고리오 2세(89대), 성 레오 4세(103대), 요한 9세(116대), 레오 7세(126대), 파스칼 2세(160대), 첼레스티노 5세(192대), 클레멘스 6세(198대), 우르바노 5세(200대), 비오 7세(251대) 등이다. 가히 유럽 교회의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토'의 카리스마와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답게 숫적으로 많은 교황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영광과 교회 건설, 세상 구원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빛나는 표징이 됐다.그레고리오 1세. ▶클뤼니 수도회ㆍ시스테르시안 수도회ㆍ까말돌리회 10세기 베네딕도회 개혁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해산된 클뤼니 수도회는 성 그레고리오 7세(157대)와 복자 우르바노 2세(159대)가 사도좌에 착좌했다. 13세기 들어 클뤼니회에서 개혁 주도권을 넘겨받은 '백의 수사들(white monk)' 시스테르시안 수도회 출신 교황은 에우제니오 3세(167대)와 루치오 3세(171대), 첼레스티노 4세(179대), 베네딕토 12세(197대) 등이다. 까말돌리회는 한국천주교회가 잊을 수 없는 교황, 곧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한 그레고리오 16세(254대)를 배출했다. ▶도미니코회 복자 인노첸시오 5세(185대)를 시작으로 복자 성 베네딕토 11세(194대), 성 비오 5세(225대), 베네딕토 13세(245대) 등을 배출했다. 교황이 입는 흰 수단은 도미니코회 출신인 비오 5세로부터 비롯됐는데, 이는 도미니코회 수도복과 그 색깔이나 형태가 비슷하다. ▶작은 형제회ㆍ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니콜라오 4세(191대)와 식스토 5세(227대)가 작은 형제회 출신이고, 식스토 4세(212대)와 클레멘스 14세(249대)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출신이다. '프란치스코 수도복을 입은 예수회원'이라고도 불린 클레멘스 14세는 1773년 예수회 해체를 요구하는 군주들 압박에 밀려 예수회를 해체했으나, 예수회는 41년 뒤인 1814년에 다시 허용된다. ▶기타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하드리아노 4세(169대)와 에우제니오 4세(207대)가 각각 사도좌에 올랐다. 또 베네벤토의 소피아 수도회도 복자 빅토리오 3세(158대)가, 예수회도 현 교황이 각각 사도좌에 착좌했다. 특히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주도로 종교개혁 당시 쑥밭이 된 서방 가톨릭교회의 부흥을 이끈 예수회는 설립된 지 473년만에 첫 교황을 배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오세택2013.03.20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0> 마르코(하)](//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6050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마르코(하)광야·빈 무덤 지나 부활의 갈릴래아로빈 무덤을 찾은 세 여인이 예수가 부활했음을 알고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이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부활을 선포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로 가게 된다. 그림은 코르넬리우스(1783~1867)의 '무덤가의 세 마리아'.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강림한다. 하늘이 갈라질 정도로(마르 1,10) 강력한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내던졌다'(1,12). 마르코복음은 광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예수가 사탄을 제압하고 들짐승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3). 이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9)하고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했다는 표지다. 마르코복음에서 광야라는 장소는 대단히 중요하다. 광야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 복낙원(復樂園)을 암시한다. 예수가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일 때 광야는 초원으로 변모한다(6,39-40). 이는 이사야서를 비롯한 묵시문학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예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성령의 활동 안에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하고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왔지만 여전히 감춰져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지 않는 한, 하느님 나라에 관한 어떤 말도 의미가 없다. 하느님 나라와 믿음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하느님 나라 선포는 공동체가 더불어 수행해야 하는 공동의 소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자세다. 예수의 네 제자가 생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뒤따랐던 것처럼, 구체적 삶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1,18). 예수가 행한 치유와 구마(驅魔) 행위는 기존 질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마귀는 성경에서 인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둠의 세력인 동시에 공동체의 사회적 시스템, 또는 자연 배후에서 작용하는 세력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구마 행위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5장에 기록된 '마귀들과 돼지 떼' 에피소드다. 예수가 마귀 들린 이 앞에 나타나 이름을 묻자 그 안의 더러운 영들이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5,9). 이들은 예수에게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하지만 더러운 영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더니 호수에 빠져 죽는다(5,10??13). 마귀들의 이름을 군대라고 밝힌 것은 로마 군대를 연상시킨다. 이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로마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서 현재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이 변모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제국주의적 현실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는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꼽음으로써(12,29), 인간의 궁극적 원리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는 성전 앞의 환전상과 비둘기장수를 쫓아내는 성전 정화사건(11,15)을 벌인다. 그리고 성전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파괴되리라고 암시한다(13,2). 또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제구를 나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는 유혈제사를 비판하고,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11,17). 유혈제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빵으로 바꾸어 나누는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르코복음은 후반부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16,8)고 진술한다. 빈 무덤에서 예수의 부활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이를 선포하기보다는 두려워서 스스로 입에 족쇄를 채우고 도망친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1장의 배경인 '광야'에 다시 놓인 것과 같다. 이처럼 마르코복음서는 광야에서 시작해 무덤으로 끝난다. 그러나 광야가 주님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잠시 준비하는 곳인 것처럼, 무덤 역시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확인하는 장소로서 거쳐 가는 장소일 뿐이다. 때문에 제자들은 당혹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으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16,7)로 향해야 한다. 이는 인간적 좌절과 실패, 두려움을 겪는 우리를 불러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초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4.02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14> 4.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1)'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9616_1.2_titleImage_1.jpg)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4.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1)'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미사,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며 핵심 미사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뤄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7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CNS 자료사진】미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친교를 나누고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가 모두 하나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말씀과 성체를 받아모신 그리스도인은 다시금 영적 힘을 가득 채우고 일상생활로 파견(Missio)됨으로써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 11항)이다. 미사의 기원 미사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루신 최후의 만찬이다. "우리 구세주께서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식사 중에 당신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유다인들의 파스카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하셨다. 미사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뤄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 때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다. 미사의 호칭들 성체성사의 풍요로움은 다양한 이름들을 통해 나타난다. △성찬례(Eucharistia: 감사제)-하느님께 드리는 감사행위를 의미하고 창조와 속량, 성화의 하느님 업적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의 만찬-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난 전날 밤에 드신 최후의 만찬과 관계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과 관련되는 이름이다. △거룩한 희생 제사-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한다는 것과 교회의 봉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친교-이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해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거룩한 미사(Missa)-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가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미사의 구조 미사는 모든 세기에 걸쳐 거행됐다. 오랜 세월을 통해 오늘날까지 보존돼 온 기본 구조는 두 가지의 주요 부분으로 진행된다. 첫째, 모임과 독서와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로 이뤄지는 말씀 전례. 둘째, 빵과 포도주의 봉헌, 축성의 감사기도, 영성체로 이뤄지는 성찬 전례다.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해 차려진 상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 몸을 받아먹는 식탁이다. 이러한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복음 말씀이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루카 24,13-35) 말씀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만나고 길을 가시던 도중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루카 24,30)고 전해주고 있다. 1)말씀 전례 미사를 통해 우리는 말씀의 양식으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억하며, 선포하고, 마음에 새겨 간직하게 된다. 미사 때 듣게 되는 하느님 말씀은 전례주년에 따라 이뤄진다. 전례주년이란 한 해의 흐름 안에서 그리스도의 강생부터 성령강림 날까지, 더 나아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기념하는 것이다. 특히 말씀의 식탁에서 중요한 것은 단연 복음이다. 그래서 다른 독서와 다르게 공동체가 모두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고 가장 큰 경의를 표하게 된다. 2)성찬 전례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 영적 양식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이 펼쳐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파스카 제사와 잔치를 제정하시고, 이를 통해 십자가의 제사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지속되게 하셨다. 사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해, 주님께서 행하셨고 당신을 기억해 행하도록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십자가상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함으로써 그 구원의 효과가 우리 안에 현실화된다. 또한 이 예식 안에서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가 하나인 생명의 빵, 세상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한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 미사의 준비 미사의 본질은 제사다. 예수님은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로 감사와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고,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지속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에 따라 각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그에 합당한 복장과 행동, 음식 등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미사에 참례할 때도 그에 합당한 복장과 행동이 있고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1)미사의 지향-미사는 전례주년에 따라서 지향이 바뀐다. 미사 지향에 따라서 독서와 복음, 기도문, 성가도 변한다. 대림시기, 성탄시기, 연중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등 오랜 시간 동안 지향을 지니게 되는 기간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여러 성인의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등에 따라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지향이 변하게 된다. 따라서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미사의 지향을 미리 확인하고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하는 것은 미사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받을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또한 미리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할 때 강론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복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2)고해성사-바오로 사도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양심 성찰을 권고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얼룩을 씻어내는 준비가 필요하다. 3)공복재-성체를 영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이 공복재는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동안 물과 약 외에 어떤 식음도 삼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이나 질병에 걸린 이나 기타 사유로 심신이 병약한 이들과 이들을 간호해야 하는 이들은 비록 한 시간 이내에 조금 먹었더라도 성체를 영할 수 있다(교회법 제919조 참조). 4)복장-거룩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몸가짐과 복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제사 때에 반바지나 짧은 치마, 맨발로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례할 때 집에서 입는 옷차림이나 식료품 가게에 가듯이 옷차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는 만큼 주님을 뵈옵기에 합당하게 자신의 옷 중에 품위 있고 깨끗한 옷을 입고 참례해야 한다. 신앙의 해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신앙의 쇄신과 신앙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며 정점인 미사를 올바로 알고 잘 준비해 참례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기본이며 신앙의 해를 올바로 살아가는 자세일 것이다. 그 어떤 기도보다 더 많은 은총의 보화를 지니고 있는 미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평화와 지혜를 얻고 영성체를 통해 영혼의 양식과 구원의 은총을 받아 더욱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이정준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실)cpbc201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