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원주교구-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청소년의 해](//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25_1.1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원주교구-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청소년의 해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 우리 교구는 올해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지내는 신앙의 해라는 바탕 위에서 '희망의 해'로 맞이하고자 하며, 이어서 내년에는 '사랑의 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과 희망, 사랑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나타나기에, 교구 설정 50주년이 되는 2015년을 준비하는 3년을 믿음, 희망, 사랑의 해로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 백성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마다 희망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근거는 믿음입니다. 희망은 긍정적 힘입니다. 어려운 현실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반복되는 좌절은 우리를 절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은 이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상실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에 처했지만,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다가가시어 희망을 건네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절망의 총체인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고, 절망의 상징인 닫힌 무덤을 열고 나오시어 희망의 상징이 되셨습니다. 희망은 절망조차도 덮지 못하는 그런 긍정적 힘입니다. 희망은 잘못된 나와 우리를 바로 세우는 힘입니다. 희망은 실현을 위한 노력을 품고 있어야 참다운 희망이 됩니다. 희망은 미래에 존재하지만, 현실에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관계해야 합니다. 거울을 통해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처럼, 희망은 현재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고쳐나가도록 나를, 우리를 채찍질하고 격려해 나가게 해줍니다. 희망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사이에 희망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가는 곳'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는 곳이라면 나 혼자만 잘 살아 그곳에 가면 되겠지만, 하느님 나라는 오는 것이기에 지금 이곳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청소년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청소년의 해'를 보내면서 청소년에 대한 교회의 배려와 관심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청소년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결손가정의 청소년이 주변에 수없이 존재합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자라난 청소년은 어른을 공경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폭력과 자살하는 학생들 이야기가 뉴스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청소년에 대한 고민과 배려는 바로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오늘'이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경기불황으로 서민경제는 시름에 잠겨있고, 가정 붕괴와 생명경시풍조는 날로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어려움을 절망으로 맞이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조은일2012.12.31
수원교구 분당성마태오본당 설립 17주년 맞아 성미술전, 15~23일'찾아가는 종교미술관…' 찾아오세요'Logos의 암호', 조광호 신부 작 수원교구 분당성마태오본당(주임 방상만 신부)은 설립 17주년을 맞아 15일부터 23일까지 성당 내 갤러리에서 '찾아가는 종교미술관-그림으로 하느님을 만나다'를 주제로 성미술전을 연다. 지폐 5만 원권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이종상(요셉) 화백을 비롯해 조광호(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장)ㆍ나경환(수원교구 가톨릭미술가회 담당)ㆍ김태원(원주교구 가톨릭미술가회 담당) 신부, 김미영(서울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수녀, 추원교(요셉, 한양대 디자인대학) 교수, 한진섭(요셉, 조각가)씨 등 유명 미술가 24명이 참여한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소재로 한 작품부터 성경 구절을 표현한 작품까지 회화ㆍ조각ㆍ공예ㆍ유리화ㆍ이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다. 본당 성미술부가 기획해 성당에서 여는 전시회지만, 참여 작가와 규모 면에서 대형 갤러리에서 열리는 성미술전에 뒤지지 않는다. 15일 오전 11시에는 체칠리아앙상블과 마태오 청소년오케스트라의 개막 연주회가 열린다. 분당성마태오본당은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성미술 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성미술 작가와 사제, 수도자들에게 작품을 요청해 이번 전시회를 성사시켰다. 본당은 2년 전에도 김수환 추기경 추모 사진전과 미술전 '내마음에 그림 하나'를 열었듯이, 성당 공간을 문화복음화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문의 : 031-711-4268, 분당성마태오본당 사무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09.04
![[가톨릭 문화산책]<26>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6)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4075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6)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루카 22,19)한 식탁에서 같은 빵 나누며 '주님 안에 하나되기' 후라 안젤리코는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났음에도 늘 "진실한 재산은 조그만 만족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조그만 만족을 위해 단순하고 경건한 생활을 택한 그는 착하고 온화하고 조촐한 삶을 통해 속세의 관심에서 떨어져 살았다. 전기 작가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 번 그린 그림을 더 손질하거나 고치는 일 없이 그대로 뒀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손길이 자신의 붓을 인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서는 붓을 들지 않았으며,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그릴 때는 언제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고결한 삶과 더불어 구성과 색채 사용에 놀라운 감각이 동반된 회화기법 덕분에 후라 안젤리코는 빠른 속도로 유명해진다 작품 : '제자들의 성찬', 후라 안젤리코 작 (1440년께,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미술관) ● 빛의 신비 5단 :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빵과 포도주, 친교, 영원함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성체성사 소박한 방안에 모인 사람들은 성체를 받아 모실 준비를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한 손에 성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체를 직접 먹이신다.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제자들과 함께 기념하기 위함이다. 제자들의 손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한 손에서 가슴에 엇갈려 모은 손, 하늘을 향해 벌린 손까지 모두 경건한 자세다. 이 가운데 여덟 명은 긴 식탁 주위에 서 있고, 나머지 네 명은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다. 네 명이 앉았던 의자는 비어 있다. 공간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안젤리코가 여덟 명만을 긴 식탁에 배치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8이란 숫자다. 숫자 8은 영원의 수로, '구원'과 '부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8이라는 수의 의미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노아의 가족 8명은 홍수의 심판에서 방주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창세 6,9-9,17). '모든 남자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창세 17,12). 할례를 통해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죄의 사함을 위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안식일(주간 마지막 날인 7일째인 날)이 지나고 주간 첫날(8일째)이 밝아올 무렵 부활하셨다(마태 28,1-7). 따라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우리의 덧없는 시간적 개념에 '영원'을 담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돼 신성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순간이다. 바로 여덟 번째 날, 부활한 날이다. #친교를 위한 식탁 가운데에 예수께서 손수 나눠주시는 성체를 기다리는 제자들로 인해 방 안 공기는 긴장과 흥분이 감돈다. 화면 왼쪽에 성체를 이미 받아 모신 제자들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아직 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한 오른쪽 제자들은 초조한 기색이다. 영성체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는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 사랑을 함께 나누려 한다. 여기에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포함된다. 안젤리코는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제자 사이에 유다를 그린다. 다른 제자들 얼굴 뒤에 노란색 후광이 그려진 것과 달리 유다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색처럼 어두운 색 후광이 그려진다. 예수를 수난의 길로 접어들게 한 유다지만, 그의 눈빛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하염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부터 급한 성격의 베드로, 배신을 앞둔 유다까지 다양한 유형이다. 예수는 식탁에 모인 여러 성품의 제자들-비록 불균등한 형태를 이루지만-에게 같은 잔에 같은 빵을 나누어 모두가 동일하며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신다. 아무런 조건 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서 모두는 같은 식탁에서 하나의 빵에서 비롯된 빵조각을 떼어 받아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목마르지 않을 물-생명의 양식 식탁 위에는 어떤 음식도 놓여 있지 않다. 다만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채 윤곽선만 흐릿하게 보이는 컵 몇 개가 그려져 있다. 안젤리코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요한복음 6장 35절의 말씀처럼, 맛깔난 음식을 잘 차린 식탁보다 작은 성체를 나눠주는 예수의 움직임을 통해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창문 뒤쪽으로 연결된 오른쪽 회랑 중앙에는 두레박이 있는 우물이 보인다. 성찬례가 거행되있는 수도원의 작은 구석방은 오른쪽에 멀리 보이는 문을 통해 우물과 연결해 볼 수 있다. 모든 갈증을 없애주는 우물, 결코 목마르지 않을 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성체인 것이다. 왼쪽에 나자렛의 성모 역시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 예수가 전해줄 생명의 양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최후의 만찬에서 여자, 즉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안젤리코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에서 중개자이자 영적 모친, 교회 어머니인 성모를 교회와 공동체 중심에 등장시켜 예수의 존재와 성체성사의 은총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주일마다 성찬의 식탁을 준비한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다. 우리는 예수의 온전히 내어주심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 하느님의 생명이 채워진다. '내어줌'과 '채워짐'의 신비가 성찬의 식탁에서 이뤄진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작품 : '그리스도의 변모', 라파엘로 산치오 작 (1516~20년, 목판에 유채, 바티칸 미술관, 일부) ● 빛의 신비 4단 :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변모, 영광, 빛 그리스도께서는 타볼 산 정상에서 자신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엘리야,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신다. 기쁨과 환희,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는 '빛처럼 하얀'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있다. 예수의 등 뒤로는 성령을 상징하는 '빛의 구름'이 형성돼 있다. 변모에서 빛은 성령처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신비와 계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요소다. 그림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우르비노에서 태어난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작품 '그리스도의 변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프랑스 남동부 나르본 성당의 제대 장식 그림으로 이 작품을 의뢰 받아 제작에 들어갔으나 건강이 악화돼 37살 젊은 나이로 선종함에 따라 완성을 보지 못했고,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가 완성했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부활의 영광'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이다.윤인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미술학과)조은일2013.07.16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마산교구-신앙의 해,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67_1.2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마산교구-신앙의 해,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처한 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현세위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는 신앙의 기복화와 개인화를 초래하며, 영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로 자리를 이동하고, 그 결과 신앙의 가치보다는 경제적 성공만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이 가치관은 교회 안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해 많은 신앙인들 역시 마음의 위로와 물질적 축복을 보장해 주는 수단으로서만 신앙을 받아들일 뿐 신앙인의 사명과 책무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특히 교구가 처한 현실은 더 어렵습니다. 교구의 복음화율은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며, 미사 참례율도 다른 교구에 비해 저조한 상태이고, 냉담교우 비율 역시 높습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화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줍니다.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은 신앙의 해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아야 합니다. 교황께서는 새로운 복음화 여정의 길을 떠나고자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아울러 2000년 교회의 역사 안에서 체험된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종합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아울러 공의회 정신의 진정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연구, 성찰하도록 초대하십니다. 거룩함과 죄가 교차되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배인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그리스도 사랑을 알아차리고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의 길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행동을 성찰하고,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전해준 분들의 삶을 배움으로써 믿음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은총의 선물인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 현존과 사랑을 알아보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공부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돼야겠습니다. 신앙 선조들처럼 우리가 받은 이 신앙의 유산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은 신앙은 전달되지 않지만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신앙은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전달자들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해를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고, 우리가 물려받은 찬란히 빛나는 신앙을 그 모습 그대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1테살 1,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더불어 아래와 같은 실천 사항들을 제안합니다. 1) 성경 쓰기와 읽기를 계속합니다. 2) 본당은 신자들에게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공의회 문헌'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3) 성찬 예식에 적극적으로 참례합니다. 4) 모든 본당과 신심단체는 연 1회 교구 내 여섯 순교자 묘소를 방문하고, 가능하다면 도보로 순례합니다.조은일2013.01.15
![[책으로 읽는 영성] 14. 우정](//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917_1.0_titleImage_1.jpg)
[책으로 읽는 영성] 14. 우정성실한 친구, 최고 보물이요 명약우정(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성서와 함께) 안셀름 그륀 신부가 전하는 우정 예찬론이다. 그륀 신부는 성경 말씀은 물론 성인과 학자, 시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우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전한다. 집회서는 성실한 친구를 피난처, 보물, 생명을 살리는 명약으로 설명하며 성실한 친구가 얼마나 값진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집회 6,14-16).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는 "친구가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성인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며 책을 저술했다. 친구들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켜 나갔고, 그들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위대한 신학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일깨워준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친구와 함께 가면 어떤 길도 멀지 않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친구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며, 용기를 내도록 북돋워준다.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으로 살아간 작가 젠타 마우리나는 "새에게 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는 지상의 먼지 위로 자신을 들어 올려주는 우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예수님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서 "예수님에 대한 우정은 사람들 영성에 따뜻하고 인간적 요소를 심어준다"고 했다. 예수님 역시 당신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며 우정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친숙하게 지내며 자신의 감정과 경험, 지식과 사랑을 기꺼이 나누셨다. 그륀 신부는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이며, 친구와 대화하듯이 그분과 다정하게 대화할 수 있고, 그분이 우리 길을 동반하시며 당신 생명도 돌보지 않는 헌신적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우정의 본질은 진정으로 완성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퇴사자22012.11.20
![[성경 속 궁금증] (1) 왜 농부는 바위에 씨앗을 뿌렸을까요?](//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5317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1) 왜 농부는 바위에 씨앗을 뿌렸을까요?요즘 파종법과 전혀 달라 씨 뿌리는 사람(고흐 작, 1888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르 4,3-8).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씨를 뿌리는 사람 비유를 들어 가르치신다. 이 비유는 공관복음 모두에 등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비유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신다. 여기서 씨는 하느님 말씀이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이시고, 땅은 인간 마음을 뜻한다. 씨앗이 길에 떨어진 것은 사탄이 와서 뿌려진 말씀을 앗아가 버리는 것을 비유한다. 돌밭은 환난이나 박해가 생기면 쉽게 넘어지는,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가시덤불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에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땅은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여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충실한 신자를 비유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 궁금증이 밀려온다. 농부가 왜 처음부터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않고 길 위나 바위, 가시덤불에 떨어지게 뿌렸을까? 그 이유는 요즘 파종법과 성경시대 파종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쟁기로 밭을 고르고 난 뒤 씨앗을 뿌리고 흙을 돋우지만 성경시대에는 쟁기로 밭을 갈지 않은 채 그냥 흙 위에 씨를 뿌렸다. 예수님 시대 쟁기는 밭고랑을 갈 정도로 날이 강하지 못해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씨앗을 가지고 나가 바람에 날리면서 한 번에 뿌리는 방법과 나귀 등에 구멍을 뚫은 씨앗 자루를 실어 돌아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파종을 하다 보니 씨앗이 길 위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또 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살던 팔레스티나 지역에는 돌이 많아 파종이나 쟁기질이 아예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씨앗을 뿌려도 농부가 흙으로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파종한 씨앗의 70~80%는 소실됐다. 농부 입장에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농부 마음이 바로 하느님 마음이 아닐까. 농부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잘 길러 내리라 마음을 쓴다. 그러나 제멋대로 흘러가버려 결국은 제대로 땅에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채 말라죽는 씨앗들도 많이 있다. 농부 입장에서는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과연 나는 어떤 땅에 떨어진 씨앗인지 묵상해보자.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1.08.02
![[가톨릭 문화산책]<28> 영화(6) 맨오브 스틸(Man of Steel) - 대중 문화 속 하느님 구원 역사](//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6447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영화(6) 맨오브 스틸(Man of Steel) - 대중 문화 속 하느님 구원 역사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악 물리치는 '구원자' 그려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 감독 : 잭 스나이더 상영 시간 : 148분 장르 : 액션ㆍ모험ㆍ판타지ㆍSF 등급 : 12세 이상 과학자들은 지구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경고한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열대림은 소멸하며, 지구 온난화와 산성비 등 가시적 변화가 지구촌 도처에서 나타난다. 남극과 북극해를 뒤덮은 얼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녹아 해수면이 점점 상승한다. 홍수와 가뭄, 혹한이 정상적 기상 흐름을 잃은 지 오래다. 근대문명의 발달로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부상했고 자본과 권력은 신자유주의를 낳았다. 생명윤리를 외면한 유전자 조작과 생명 복제라는 비윤리적 생명공학이 현대 과학문명의 괴물로 자리를 틀고 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인 '맨 오브 스틸'에서 말하고자 하는 파멸된 크립톤 행성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읽어내야 할 경고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 무차별적 자원 개발로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 이 행성 최고의 과학자 조엘은 그래서 갓 태어난 아들 칼엘을 지구로 보낸다.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지구에서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자란 칼엘은 남다른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탄생과 성장 과정의 비밀을 듣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한편 크립톤 행성의 반란군 조드 장군은 파괴된 행성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codex)가 칼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부하들을 이끌고 지구에 온다. 이제 칼엘은 자신을 외면하던 사람들이 사는 지구의 보루가 돼 최강의 적 조드 장군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전쟁을 시작한다.#새로운 시작 영화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수백 년 만에 산고를 겪으며 자연출산한 아이는 엘(EL) 가문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칼엘(Kal EL). 아버지 이름은 조엘(Jor EL)이었다. 'EL'은 엘로힘의 고대어로, 하느님과 같은 보통 명사이며 일반적으로 신성(神性)을 뜻하고, 동시에 고유명사로서 단 한 분뿐인 하느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조엘과 칼엘은 하느님을 은유한다. 크립톤인들은 행성 표면의 자원을 모두 고갈시킨 후 그것도 모자라 행성의 중심핵까지 파내려가 결국 행성이 붕괴직전까지 간다. 이같은 급박함에도 조엘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크립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인들이 자신의 행성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아들을 지구로 보낸다. 크립톤 행성의 파괴는 오늘날의 생태계와 환경호르몬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는 지구를 보여주는 비유(metaphor)이기도 하다. 조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칼엘에게 말한다. "가슴의 'S' 마크는 '엘'가문의 상징인 '희망'을 의미하지. 그 안에 믿음이 있어. 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네가 그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믿어라"하고 말한다. 어머니 라라도 칼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새롭게 재생될 믿음과 희망을 암시하는 시작이다. #공존의 길 크립톤 행성의 대장 조드는 크립톤 행성만 살리는 데 목숨을 건다. 그는 힘을 앞세워 살상과 반란의 칼을 휘두른다. 조드는 자신의 종족을 구하고 영원히 번영하기 위해 열등한 혈족은 제거하고 우열족만을 살리려 한다. 한편 북극에서 만난 칼엘에게 조엘은 이렇게 말한다. "10만 년 동안 번영했었지…. 기적을 일궈냈던 거지…. 인위적으로 인구 조절을 했고, 아이들은 사회에서의 역할이 정해졌지. 노동자와 군인, 지도자 전부 말이야. 네 어머니와 나는 뭔가 중요한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 소중한 가치를…."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칼엘이라고 말한다. 조엘은 모든 생명체의 공존, 크립톤 종족과 지구인, 모두의 중요성을 칼엘에게 말한다. "넌 크립톤의 자식이자 지구의 자식이기도 해. 네가 원한다면 두 세상의 자식이 되어 다오." 그리고 두 종족 간에 다리가 돼 구원자의 역할을 하길 바란 것이다. 지구인들은 또한 거대 문명의 지배 속에서 충분히 폭력적이었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멸망 위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지구 건설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나누고 누리며 숨 쉬는 세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는 던진다. 칼엘은 캔자스 주 스몰빌에 내려와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산다. 신적 능력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소박한 지구의 삶을 지구 부모에게 습득한다. 지구 아버지 켄트는 아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분별력있게, 또 능력을 균형 있게 활용하라고 조언하며 신뢰로 동반한다. 그러나 칼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구에 살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켄트는 클라크에게 칼엘의 현존 자체가 기적이고,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해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유를 알게 될 때를 기다리게 한다. 열등한 인종도, 우열한 인종도,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칼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가 도래해야 함을 말한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투신 칼엘은 자신의 초능력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위험에 처한 약자들을 위해 흘러넘치는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통학버스가 강에 빠지자 어린이를 구해 주고, 유조선이 폭발하자 초능력으로 철근을 막아낸다. 그의 사명은 악만 빼고 누구든지 살리는 일이다. 드디어 그의 때가 왔다. 칼엘은 북극에 숨겨진 크립톤 비행선에서 아버지 조엘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뒤 그의 눈빛과 몸에서 초능력을 감지한다. 이때 조드 장군이 지구를 찾아와 크립톤 행성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를 24시간 안에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칼엘은 "넌 평범하지 않아. 언젠가 선택의 날이 올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칼엘은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번민을 털어 놓는다. 등 뒤로 보이는 겟세마니 예수님 그림은 고뇌하는 칼엘의 심정과 겹치는 상징이다. 신부는 오로지 믿음에 따라 행동할 것을 권한다. 칼엘은 지구와 인류를 위해 투쟁할 것을 결심한다.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결전에 나선다. 싸움 중 조드가 칼엘에게 한 말을 기억해보자. "네가 받아들인 인간들을 고통받게 해 주마. 인간을 그렇게까지 사랑한다면 그들 죽음에 눈물이나 흘려." 불을 뿜어대는 악의 상징이다. 칼엘은 죽어가는 인간을 바라보며 그의 말대로 눈물을 흘린다. 천신만고 끝에 칼엘은 승리한다. 여기서 마지막 장면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평범하지 않는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주시해야겠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칼엘의 모습. 드러나지 않지만 누룩과도 같은 존재, 오늘날 구석구석에서 선을 퍼뜨리는 또 다른 우리 중의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맨 오브 스틸'은 전형적인 미국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다. 따라서 미국적 강인함과 불굴의 영웅상을 연출했다. 이 영웅상은 타 문화에 대한 개방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된 메시지가 도드라진다. 그래선지 웅장하고 화려한 서사 구조와 극적인 장면들은 다소 지루해 보이기도 하고, 무자비하게 그려진다. 진정한 관용이 어디쯤에서 발휘돼야 할지 묻고 싶어지는 부분이 적잖은 영화다. 그룹대화 1. 생명공학을 앞세워 파괴되는 지구 환경과 유전자 조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 나는 주체적으로 지구 위기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3. 유전자 조작을 막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성경구절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조은일2013.07.30
![[전례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22)연중 제 10주일-병자성사](//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87_1.0_titleImage_1.jpg)
[전례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22)연중 제 10주일-병자성사성령의 힘으로 병자에게 전하는 치유의 은총병자성사는 중병이나 노쇠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사다. 사진은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주교가 한 자폐증 어린이 환자의 손에 병자 성유를 발라주는 모습.[CNS 자료사진] 연중 제10주일인 오늘 미사 본기도에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고통받는 이들, 특별히 질병이나 노환으로 어려움 속에 있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사인 병자성사(1499~1532항)에 대해 알아봅니다. ◇살펴봅시다 질병과 고통은 인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병고에 시달리면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체험합니다. 때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젖습니다. 그 결과 절망의 나락에 빠지거나 자기 속으로 도피해 외부와 담을 쌓아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병과 고통이 이렇게 부정적 측면만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고,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지를 가려내는 분별력을 갖게 해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실망이나 반항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1500~1501항 참조). ㉠구원 역사에 본 병자성사의 근거들(1502~1511항) :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치유하시는 분으로 제시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26). 병은 죄와 악과 신비스럽게 관련돼 있으며, 그래서 하느님의 용서는 치유의 시발이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치유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고쳐주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이셨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하느님 나라 도래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구속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게"(1505항)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8). 또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 그 고통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의미를 지닙니다(콜로 1,24 참조). 이런 전통을 받아 사도 시대에 교회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앓는 사람을 위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면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를 일곱가지 성사 가운데 하나인 병자성사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병자성사는 특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성사입니다. ㉡병자성사는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집전하나(1514~1519항) :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이미 이 성사를 받기에 적절한 시기가 된 것"(1514항)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또 병자가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면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다가 더 심해지는 경우에도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는 어르신들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병자성사는 사제, 곧 주교와 신부들만 집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병자들이 사제를 청해 이 성사를 받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또 교회 공동체 전체는 병자들을 특별히 기도와 형제적 사랑으로 감싸줘야 합니다. 병자성사는 가정이나 성당이나 병원이나 어디에서든 거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 중에 거행하는 것이 매우 합당합니다. 또 상황이 허락하면 병자에게 고해성사를 먼저 베풀고 병자성사 후에 성체를 영해 줄 수도 있습니다. 참회기도와 말씀 전례에 이은 안수와 도유가 병자성사의 중심 요소들입니다. 도유는 병자의 이마와 양 손에 합니다. 그런 후에 병자에게 성체를 영해줍니다. ㉢병자성사의 효과(1520~1523항) : 병자성사를 통해 병자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받습니다. 병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을 얻습니다. 이 은총을 통해 병자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이러한 도움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한다"(1520항)고 교회는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병자성사를 통해 죄도 용서받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으로 환자는 또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시키는 힘과 은혜를 얻습니다. 또 이로써 원죄의 결과인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닙니다. 즉 고통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 또한 이 성사로써 은총을 얻습니다. "교회는 이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병자들의 선익을 위해 전구한다. 또 병자도 나름대로 이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교회의 성화와 모든 이의 선익에 이바지한다"(1522항). 병자성사는 또 병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마지막 길을 준비하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로부터 임종이 임박한 이들에게 병자성사를 거행했습니다. "병자성사의 마지막 도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여 우리 지상생활의 마지막에 튼튼한 방패를 마련해 준다"(1523항). ◇알아둡시다 노자성체(1524~1525항) : 교회는 임종을 앞둔 이들에게 병자성사를 거행한 후에 성체를 줍니다. 이 성체를 노자(路資) 성체라고 합니다. 이승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러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 힘이 되는 성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6.04
![[성경 속 상징] (119) 식사- 여러 종류 특별한 식사 등장](//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72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19) 식사- 여러 종류 특별한 식사 등장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모든 생물은 예외 없이 먹어야 산다. 사람도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의 식사(食事)는 끼니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사람의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부모와 자녀, 넓게는 타인과 함께하는 교류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음식을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식사를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는 물론 가정교육이 어땠는지 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 많은 나라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한다. 사람은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언어를 익히고, 예절을 배우며, 인내심을 기른다. 또한 가족을 배려하는 사고를 통해 사회적 공존성이 강화된다고 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의 세 살 버릇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인이 돼서도 식사는 중요한 사회 활동이자 대화 창구가 된다. 식사는 예식을 갖춘 것일수록 그 안에 담긴 상징과 메시지가 중요하다. 식사는 명예, 사회적 지위, 소속, 거룩함의 상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타인 집으로의 초청이나 숙박은 언제나 식사로의 초청을 전제로 한다. 또 성경에는 예식을 위한 식사, 결혼과 같은 축제의 식사, 이별의 식사 등 여러 종류의 특별한 식사가 등장한다. 식사는 사회적ㆍ종교적 경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유다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선을 긋는 것이 바로 식사였다. 또한 파스카와 같이 특별한 시기 식사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여겼다(신명 16,1-8). 경건한 유다인 가정은 매 식사 때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을 기억했다. 식사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기에 모든 식사가 다 신성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세속적 식사란 없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었고, 즐거움과 유쾌함이 식사의 상징이었다(잠언 15,15).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고,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군중을 먹이셨다(루카 9,10-17). 이처럼 풍성한 식사는 하느님 나라 상징이다. 하느님의 최후 승리와 심판을 축하하는 것도 모든 나라 백성들을 위한 식사 모습으로 나타난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식사는 신약의 초대교회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식사는 예식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이처럼 초대교회 식사 자리는 주님 식탁에 모여 한 형제ㆍ자매가 되는 자리였다. 예수님 최후 만찬을 기억하는 식사 자리는 미사 형태로 발전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식사에는 이처럼 많은 상징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조은일2011.06.14
![[출판]책꽂이](//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1337_1.0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숨어 계신 님 1(이재성 지음/프란치스코출판사/1만 2000원) 이재성(작은형제회) 수사가 쓴 관상 일기와 후배들에게 보낸 영적 편지다. 일생생활에서 솟구치는 미움과 시기심, 갖가지 아픔과 상처,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과 경쟁 등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을 기도와 관상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막 교부들 금언집을 연상시키는 글들에서 이 수사의 치열하면서도 겸손한 영성을 엿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출판사 사장 고계영 신부는 "저자가 오랫동안 관상에 몰입해 꽃 피운 신비 작품으로, 한 줄을 읽더라도 거기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하느님과 함께 5분(피에르 신부 지음/임숙희 옮김/성서와 함께/8000원) 세계적 빈민구호 단체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한 아베 피에르(1912~2007, 프랑스) 신부가 남긴 짧은 묵상글이다. 그가 남긴 글엔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말씀을 실천한 활동가이자 영성가로 살아온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면서 인종 차별, 가난, 소외, 억압과 같은 우리 시대 악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책은 피에르 신부가 묵상한 성경 구절을 한글과 영어로 나란히 소개한 뒤 피에르 신부의 묵상글을 이어서 실었다. 주일ㆍ대축일 성경 묵상-나해(알베르 반호이 지음/오영민 옮김/나이테미디어/2만 원) 알베르 반호이(프랑스 예수회) 추기경 강론집으로 주일과 대축일 독서와 복음을 사목적ㆍ영성적으로 해설했다. 기존 여러 강론집이 저자의 체험이나 시대 상황에 비춰 성경말씀을 설명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철저히 성경 내용을 기반으로 복음 메시지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반호이 추기경은 마르코복음이 주를 이루는 나해의 주일 독서와 복음의 의미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그는 성서학박사이자 교수로 오랫동안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교황청 성서대학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사랑의 부활-죽기 전에 죽을 수 없을까?(이제민 엮음/경세원/1만 2000원) 이제민(마산교구 명례성지 담당) 신부의 인생낱말사전 6번째 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신비를 다뤘다. 죽음, 생명, 사랑, 고통의 신비(1~4부)와 함께 부활에 대한 올바른 이해(5부), 내가 믿는 부활(6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신부는 책에서 "그리스도교가 부활신앙을 통해 인류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면서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이라고 말했다. 또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면서 그리스도 부활에 담긴 희생 정신을 강조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4.12
무덤- 죽음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163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21)무덤- 죽음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시신을 묻은 무덤은 본래 주검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무덤은 죽은 이를 오랫동안 기리기 위한 상징적 성격이 강해졌다. 그래서 무덤 양식들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풍수사상이 발달해서 조상 무덤은 자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요즘에도 좋은 묏자리를 찾아 이장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따라서 무덤 양식을 통해 당시 생활상이나 믿음이나 풍속을 이해할 수 있다. 무덤은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상당히 넓고 길게 퍼져 있어 여러 가지 낱말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능은 임금 무덤을 일컫는 것이고, 총은 흙으로 봉토를 쌓은 다음 나무를 심어놓은 무덤을 가리킨다. 묘는 흙으로 봉토를 만드는 대신 구조물을 세워 무덤을 보호하는 것이다. 유다인들 매장 방식이나 무덤 모양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후에도 일종의 생존이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덤을 죽은 이들 집으로 여기고 준비했다. 무덤을 유택(幽宅)이라고 부르는 동양과 비슷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덤은 죽은 이가 거처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러한 무덤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하는지는 해당 지역 지형이라든가 망자의 사회적 신분, 그 시대 사고방식 및 문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이스라엘인들이 살던 팔레스티나는 바위가 많은 산악 지방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연 동굴이나 인공으로 판 굴을 집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죽은 이들 집도 이와 비슷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죽음 뒤 생존이 매장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생각했기에 화장을 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화형에 처할 때나(창세 38,24) 전염병이 돌 때는 시신을 화장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죽은 이를 당일에 묻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었다. 더운 지방이어서 시신이 빨리 부패하고 또 주검과 접촉하면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주검, 곧 죽은 사람의 몸에 닿은 이가 자신을 정화하지 않으면, 그는 주님의 성막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에서 잘려 나가야 한다. 정화의 물을 자기 몸에 뿌리지 않아, 그가 부정한 그대로이며 그의 부정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민수 19,13). 주검은 물론 무덤도 부정한 것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따라서 묘지는 일반적으로 성이나 동네 밖에 마련했다. 그러나 주요 인물들은 예외적으로 성이나 마을 안에 묻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임금들 무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다윗성에 묻혔다(1열왕 2,10). 신약에서 무덤은 예수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명의 상징이 된다. 예수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빈 무덤을 만난다. 예수님 빈 무덤은 역설적으로 영생의 희망을 상징한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루카 24,5-6). 이제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무덤은 죽음과 어둠의 상징이 아니라 산 이와 죽은 모든 이의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의 상징이다. 조은일2011.06.28
![[성경 속 상징] (123) 동물- 하느님은 사자나 표범에 비유](//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6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23) 동물- 하느님은 사자나 표범에 비유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동물은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고대시대부터 동물은 인간의 사냥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숭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역사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곰을 숭배한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한 부족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도 고양이 얼굴에 여인의 몸을 하고 있는 바스트(bast)를 사랑과 자비, 다산과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했다. 이처럼 특정 동물에 영적 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숭배하는 것을 토테미즘(totemism)이라 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원시종교들은 인간 이상의 어떤 힘에 의지하려는 인간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 신앙심(信仰心)과는 다르다. 성경에도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말, 낙타, 늑대, 메추라기 같이 실제 존재하는 동물뿐 아니라 용(龍), 불말(火馬) 같은 상상의 동물도 존재한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 특정 동물은 하느님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어떤 동물은 하느님 대리자로 악마들과 투쟁하는가 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 같이 악마 앞잡이로 활동하기도 한다. 때로는 악마 모습이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때에 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16,13). 또한 성경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언급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레위 11장 참조). 창세기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와 병행해 제시한다. 따라서 인간과 짐승의 관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동물들을 다스리도록 위임하셨다(창세 1-2). 따라서 동물은 성경 여러 곳에서 믿음과 충성, 헌신의 상징으로 표현됐다. 또 성경에는 동물을 인생에 비유하고 상징하는 경우도 많다. 죽은 개는 천한 인생을 상징했다.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2사무 16,9). 일반적으로 개는 경멸과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단 교리를 주장함으로써 신자들을 유혹하는 가짜 사목자를 개들이라 칭하며 경고한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필리 3,2). 성경은 종종 인간에게 지혜를 가르칠 때 동물 이미지를 사용한다. "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로워져라"(잠언 6,6). 예수님께서는 동물을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마태 13,47). 성경은 동물을 하느님을 은유적으로 비유하고 상징하는 데 사용한다. 하느님은 사자나 표범에 비유되고(호세 13,7),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암탉에도 비유됐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성경의 동물은 그 종류만큼이나 아주 다양하고 재미있는 싱징으로 그려진다.조은일2011.07.12

광주대교구 설정 75주년 및 대교구 승격 50주년 기념행사 다채지역 복음화 이루는 빛으로 거듭난다 매일 다른 주제로 10월 7~14일 기념주간 지내 교구민 일치, 신앙쇄신 다짐하는 축제 한마당 광주대교구는 10월 7~14일 교구 설정 75주년 및 대교구 승격 5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교구 성장에 함께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내적 성숙과 신앙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교구는 5월 30일 옥현진(교구 총대리) 보좌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기념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 올해 교구가 성년(聖年)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왔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일치해 지역 복음화를 이루는 빛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8일간 축제를 통해 교구 구성원 모두가 교구 역사와 성년의 의미를 충분히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 감사의 날인 7일 오전 10시 30분 광주 임동주교좌성당에서 기념주간 선포와 감사미사 봉헌을 시작으로 매일 다른 주제의 행사를 펼친다. 이날 오후 3시에는 광주 5ㆍ18 기념문화센터에서 교구민이 함께하는 교구 성가합창제를 개최한다. 8일 은인의 날에는 오전 11시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은인들에게 감사패와 교황 축복장을 수여한다. 또 교구 발전에 기여한 선교ㆍ수도회 관계자도 초청할 예정이다. 오후 2시에는 가톨릭 사회운동 세미나를 열고 교회와 지역사회간 관계를 짚어본다. 9일 수도자의 날에는 오전 10시 평생교육원 대강당에서 교구에 진출한 수도회 장상 및 수도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교구장과 대화 시간을 갖는다. 1934년 4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와 선교사들이 교구에 처음 진출한 이후 올해 5월 성 프란치스코 의료봉사수녀회까지 교구에 진출한 수도회는 모두 43개다. 10일 평신도의 날에는 오후 2시 평생교육원 대강당에서 평신도 세미나를 개최한다. 교구 역사 안에서 평신도 역할을 살펴본 뒤 평신도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오후 6시 염주 실내체육관에서는 묵주기도의 밤 행사를 갖고 오후 8시 30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다. 11일 사제의 날에는 오전 10시 30분 평생교육원 대성당에서 '이 시대의 사목자 역할'을 주제로 교구 사제단이 한자리에 모여 사제단에게 필요한 새로운 전통과 문화에 관해 토의한다. 미사 중에 '신앙의 해' 선포식도 함께 열 계획이다. 12일 가정의 날에는 오전 9시 평생교육원 대강당에서 가족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성경가훈 써주기, 가정성화를 위한 특강 등이 이어진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오후 8시 30분 혼인갱신 미사를 집전한다. 13일은 청소년의 날로, 오전 10시 평생교육원 대강당에서 가족성경 암송대회가 열린다. 오후 3시 30분 평생교육원 대성당에서 교구장과 청소년 대화, 청소년 미사가 있을 예정이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장애인 한마음 체육대회도 개최된다. 기념주간 대미를 장식하는 14일은 오전 10시 이주민의 날 행사를 시작으로 오후 1시 식전 축하행사, 오후 3시 축제미사로 꾸며진다. 미사 중 교구 성년 및 교구장 비전 선포가 있으며, 사제ㆍ수도자ㆍ평신도 다짐을 담은 선언문이 봉헌된다. 다자녀 가정과 75살 어르신에게 포상도 한다. 준비위원장 옥현진 주교는 "기념주간은 지난 시간을 기억하며 감사와 격려,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신앙의 해를 맞아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신앙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는 1937년 4월 13일 광주지목구로 출발했다. 초대 교구장은 임맥폴린(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 사제 22명, 신자 3567명, 본당 9개, 공소 36개로 시작한 교구는 1957년 대목구로, 1962년 대교구로 승격했다. 전주ㆍ제주교구와 함께 광주관구를 이루고 있는 교구는 2012년 6월 말 현재 사제 258명, 본당 128개, 공소 80개, 신자 33만 8514명 등으로 교세를 확장하며 성장해왔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9.18